1
이 책 저책 뒤적이다 왕소군을 소재로 한 이백의 시를 발견하고 그 배경을 찾아보고 한문공부 겸해서 엉터리 번역을 하여 보았다. 읽는 분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니 번역에는 신경 쓰시지 말고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2
중국은 고대로부터 주변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아 왔다. 五胡(匈奴, 鮮卑, 氐, 羌, 羯族)로 대표되는 이들 유목민족들은 중국의 농경지대로 끊임없이 진출하고자 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전쟁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들 유목민족들은 봄에서 가을까지는 초원지대에서 가축을 기르며 생활하나, 겨울이 되어 초원의 풀이 마르고 기온이 떨어지면 초원지대에서 생활하기 어려워 장성을 넘어 중국북부의 농경지대로 이동하곤 하였다. 중국의 중앙정부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축조하고, 군대를 보내 막거나, 정벌군을 일으켜 밀어내기도 하였다. 중국의 군대에게 밀린 유목민족들은 장성을 넘어 도망하였다가 중국의 군대가 돌아가면 다시 침입하기를 되풀이 하였다. 이에 중국이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여 초원지대까지 추격하면 이들은 북쪽의 사막으로 달아났기 때문에 근절시키지 못하였다. <天高馬肥>는 가을에 유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자는 有備無患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왕소군에 대한 이야기도 이러한 중국과 변방의 유목민족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인데 그 내용이 매우 애절하고 슬퍼서 많은 문인들이 자신의 작품소재로 이용하였다. 다음의 두 수의 시는 이백의 작품이다. 번역이 엉망이어서 그 애절한 감정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배경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3
왕소군은 前漢 元帝(BC 49∼BC 33)의 후궁으로 이름은 檣(牆)이다. 字 소군이니 일설에는 소군이 이름이고 장이 자라고도 한다. 南郡의 양가집 딸로 한나라 원제의 후궁으로 들어갔으나, 황제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匈奴의 침입에 고민하던 한 원제는 그들을 회유하는 수단으로 BC 33년 왕소군 흉노의 呼韓邪單于(單于:선우는 추장 지배자를 의미하고, 干(칸)과 비슷한 의미이다. 우리나라 신라의 관등 중에 伊伐干, 伊干, 匝干, 大阿干의 干도 같은 의미이다.)에게 시집보냈다. 왕소군은 呼韓邪單于왕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낳았다. 호한야가 죽은 뒤 호한야 본처의 아들인 復株累單于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았다. 이러한 왕소군의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윤색되고, 흉노와의 화친정책 때문에 희생된 비극적 여주인공으로 전하여 왔으나 史實인지는 알 수 없다. 後漢 때의 《西京雜記》에는 대부분의 후궁들이 畵工에게 뇌물을 바치고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황제의 총애를 구하였다. 그러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이 추하게 그려졌고, 그 때문에 오랑캐의 아내로 뽑히게 되었다. 왕소군이 말을 타고 떠날 즈음에 원제가 보니 절세의 미인이고 태도가 단아하였으므로 크게 후회하였으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제는 크게 노하여 왕소군을 추하게 그린 화공 毛延壽를 斬刑에 처하였다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晉 文帝 司馬昭의 이름과 글자가 같은 것을 피하기 위하여 王明君이라 하였고, 明妃라고도 불렸다. 그 뒤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중국문학에 허다한 소재를 제공하였다. 《昭君辭》 《明君歎》이라는 한나라의 樂府가 가장 오래 된 것이고, 그녀를 소재로 한 희곡인 元나라 때의 馬致遠이 지은 《破幽夢孤漢宮秋雜劇:漢宮秋》이 가장 유명하다. 진나라의 石季倫이 지은 《王明君辭幷序》가 있고, 唐나라 이후 李白· 白居易 등 많은 시인들이 그녀를 소재로 시를 읊었다. 또 敦煌에서 발굴된 《明妃變文》에 의하여, 당말 五代경부터 口傳文學의 소재가 되었음이 밝혀졌다. 왕소군은 楊貴妃, 西施, 貂嬋과 더불어 중국 고대 4대 미인으로 꼽힌다.
昭君出塞
이백
昭君拂玉鞍 왕소군의 치마는 옥안장을 스치고
上馬啼紅頰 말 탄 왕소군의 붉은 뺨에 눈물이 흐르네
今日漢宮人 오늘은 한나라의 궁녀요
明朝胡地妾 내일아침은 오랑캐의 첩이라오
昭君(明妃)
漢家秦地月 한나라 진 땅의 달이
流影送明妃 그림자 흘리며 명비를 보내네.
一上玉關道 한 번 옥문관 길을 나서
天涯去不歸 하늘 끝으로 가 돌아오지 않네.
漢月還從東海出 한나라의 달은 돌아와 동해에서 다시 뜨건만
明妃西嫁無來日 서쪽 땅에 시집간 명비는 올 날이 없네
燕支長寒雪作花 연지산은 오래도록 추워 차가운 눈꽃을 만들고
峨眉憔悴沒胡沙 초최한 미인은 오랑캐 땅 모래 속에 묻혔네
生乏黃金枉圖畵 살아 생전엔 황금이 없어 좋은 초상화 그리지 못하더니
死留靑塚使人嗟 죽은 뒤엔 푸른 무덤 남겨 탄식케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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