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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10

제119회 거짓으로 항복한 공교로운 계책은 헛된 이야기가 되고, 다시 선양받음이 모양을 따라 호로를 베껴 그리는 듯하다. 第一一九回:假投降巧計成虛話,再受禪依樣畫葫蘆 제119회 거짓으로 항복한 공교로운 계책은 헛된 이야기가 되고, 다시 선양받음이 모양을 따라 호로를 베껴 그리는 듯하다. 卻說鍾會請姜維計議收鄧艾之策。維曰:「可先令監軍衛瓘收艾。艾欲殺瓘,反情實矣。將軍卻起兵討之,可也。」會大喜,遂令衛瓘引數十人入成都,收鄧艾父子。瓘部卒止之曰:「此是鍾司徒令鄧征西殺將軍,以正反情也。切不可行。」瓘曰:「吾自有計。」遂先發檄文二三十道。其檄曰:「奉詔收艾,其餘各無所問。若早歸來,即加爵賞;敢有不出者,滅三族。」隨備檻車兩乘,星夜望成都而來。 각설하고 종회는 강유를 청해 등애를 거둘(잡을) 계책을 의논하였다. 강유가 말하기를 “먼저 감군 위관으로 하여금 등애를 거두게(잡게) 해야 합니다. 등애가 위관을 죽이려하면 배반하려는 정실이니(징조이니) 장군께서 군대를 일으켜.. 2022. 4. 5.
제118회 조상의 사당에서 곡하며 한 왕이 죽고, 서천에 들어온 두 장수는 공을 다투다. 第一一八回:哭祖廟一王死孝,入西川二士爭功 제118회 조상의 사당에서 곡하며 한 왕이 죽고, 서천에 들어온 두 장수는 공을 다투다. 卻說後主在成都,聞鄧艾取了綿竹,諸葛瞻父子已亡,大驚,急召文武商議。近臣奏曰:「城外百姓扶老攜幼,哭聲大震,各逃生命。」後主驚惶無措。忽哨馬報到說,魏兵將近城下。多官議曰:「兵微將寡,難以迎敵;不如早棄成都,奔南中七郡:其地險峻,可以自守,就借蠻兵,再來克復未遲。」光祿大夫譙周曰:「不可。南蠻久反之人,平昔無惠﹔今若投之,必遭大禍。」多官又奏曰:「蜀、吳既同盟,今事急矣,可以投之。」周又諫曰:「自古以來,無寄他國為天子者。臣料魏能吞吳,吳不能吞魏。若稱臣於吳,是一辱也。若吳被魏所吞,陛下再稱臣於魏,是兩番之辱矣。不如不投吳而降魏。魏必裂土以封陛下,則上能自守宗廟,下可以保安黎民。願陛下思之。」 각설하고 후주는 성도에 있다가 등애가 면죽을 .. 2022. 4. 1.
제117회 등사재는 몰래 음평을 건너고(돌파하고), 제갈첨은 면죽에서 전사하다. 第一一七回:鄧士載偷渡陰平,諸葛瞻戰死綿竹 제117회 등사재는 몰래 음평을 건너고(돌파하고), 제갈첨은 면죽에서 전사하다. 卻說輔國將軍董厥,聞魏兵十餘路入境,乃引二萬兵守住劍閣;當日見塵頭大起,疑是魏兵,急引軍把住關口。董厥自臨軍前視之,乃姜維、廖化、張翼也。厥大喜,接入關上,禮畢,哭訴後主黃皓之事。維曰:「公勿憂慮;若有維在,必不容魏來吞蜀也。且守劍閣,徐圖退敵之計。」厥曰:「此關雖然可守,爭奈成都無人;倘為敵人所襲,大勢瓦解矣。」維曰:「成都山險地峻,非可易取,不必憂也。」 각설하고 보국장군 동궐은 위나라 군대가 십여 개 길로 국경에 등어왔다는 것을 듣고 곧 이만의 군대로 검각을 지켰다. 그날 먼지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위나라 군사일 것으로 의심하여 급히 군대를 이끌고 관의 입구를 지켰다. 동권이 직접 군대의 앞에 나서 보니 곧 강유.. 2022. 3. 31.
제116회 종회는 군대를 나누어 한중으로 나가고, 무후(제갈공명)의 신령이 정군산에 나타나다. 第一一六回:鍾會分兵漢中道,武侯顯聖定軍山 제116회 종회는 군대를 나누어 한중으로 나가고, 무후(제갈공명)의 신령이 정군산에 나타나다. 卻說司馬昭謂西曹掾邵悌曰:「朝臣皆言蜀未可伐,是其心怯:若使強戰,必敗之道也。今鍾會獨建伐蜀之策,是其心不怯:心不怯,則破蜀必矣;蜀既破,則蜀人心膽已裂。『敗軍之將,不可以言勇;亡國之大夫,不可以圖存。』會即有異志,蜀人安能助之乎?至若魏人得勝思歸,必不從會而反,更不足慮耳。此言乃吾與汝知之,切不可泄漏。」邵悌拜服。 각설하고 사마소가 서조의 하급관리 소제에게 일러 말하기를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촉을 정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 마음에 겁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억지로 싸우게 한다면 반드시 패할 방법이다. 지금 종회가 홀로 촉을 정벌할 계책을 세웠는데 이는 마음에 겁을 내지 않기 때문이니 곧 .. 2022.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