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十二回:張翼德大鬧長板橋,劉豫州敗走漢津
제42회 장익덕(장비)은 장판교에서 크게 싸우고, 유예주(유현덕)는 패하여 한진으로 달아나다.
卻說鍾縉、鍾紳,二人攔住趙雲廝殺。趙雲挺槍便刺。鍾縉當先揮大斧來迎。兩馬相交,戰不三合,被雲一槍刺落馬下,奪路便走。背後鍾紳持戟趕來,馬尾相衝,那枝戟只在趙雲後心內弄影。雲急撥轉馬頭,恰好兩胸相拍。雲左手持槍隔過畫戟,右手拔出青釭寶劍砍去,帶盔連腦,砍去一半,紳落馬而死,餘眾奔散。趙雲得脫,望長板橋而走。只聞後面喊聲大震。原來文聘引軍趕來。趙雲到得橋邊,人困馬乏。見張飛挺矛立馬於橋上,雲大呼曰:「翼德援我!」飛曰:「子龍速行,追兵我自當之。」
각설하고 종진, 종신 두 사람이 조자룡을 막고 싸웠다. 조자룡이 창을 내밀어 곧 찔렀다. 종진이 앞서 큰 도끼를 휘두르며 와서 맞아 싸웠다. 두 말이 서로 교차하고, 싸운 지 삼합이 되지 않아 조자룡의 한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지니 조자룡이 길을 찿아 달아났다. 뒤에 종신이 극을 가지고 쫓아 와 말 꼬리가 서로 닿고, 갈라진 창끝이 조자룡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것을 느꼈다. 조자룡이 급히 말머리를 돌리니 바로 두 가슴이 서로 닿을 듯하였다. 조자룡이 왼손으로 창을 들고 화극을 막고, 오른 손으로 청홍보검을 뽑아 베니 투구와 함께 머리가 반이나 베어지면서 종신이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나머지 무리들이 흩어져 달아났다. 조자룡은 벗어나 장판교를 향하여 달렸다. 뒤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하는 것을 들었다. 원래 문빙이 군대를 이끌고 쫓아오고 있었다. 조자룡이 다리 가에 이르니 사람과 말이 피로하였다. 장비가 다리 위에서 창을 내밀고 말을 세우고 있는 것을 보고는 조자룡이 고함쳐 말하기를 “익덕(장비)은 나를 도우시오!”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조자룡은 속히 가시오. 추격하는 군대는 내가 막을 것이다.” 했다.
雲縱馬過橋,行二十餘里,見玄德與眾人憩於樹下。雲下馬伏地而泣。玄德亦泣。雲喘息而言曰:「趙雲之罪,萬死猶輕!糜夫人身帶重傷,不肯上馬,投井而死。雲只得推土牆掩之;懷抱公子,身突重圍;賴主公洪福,幸而得脫。適纔公子尚在懷中啼哭,此一會不見動靜,想是不能保也。」遂解視之。原來阿斗正睡著未醒。雲喜曰:「幸得公子無恙!」雙手遞與玄德。玄德接過,擲之於地曰:「為汝這孺子,幾損我一員大將!」趙雲忙向地下抱起阿斗,泣拜曰:「雲雖肝腦塗地,不能報也!」後人有詩曰:
조자룡이 말을 몰아 다리를 지나 이십여 리를 가니 유현덕과 여러 사람들이 나무 아래서 쉬고 있었다. 조자룡이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울었다. 유현덕이 또한 울었다. 조자룡이 숨을 헐떡이며 말하기를 “저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습니다! 미 부인이 몸에 중상을 입어 말에 오르지 않고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저는 다만 흙 담장을 밀어 가린 후, 공자를 품고 몸으로 여러 겹의 포위를 뚫고 주공의 넓은 복에 의지하여 다행히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조금 전까지 공자께서는 오히려 품속에서 울고 있었는데, 이 잠간동안에 동정을 보이지 않으시니 아마도 보존하지 못한 듯합니다.”하고는 마침내 풀어서 보았다. 원래 아두는 잠이 들어 깨지 않았다. 조자룡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다행히도 공자께서는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하고는 두 손으로 유현덕에게 넘겨주었다. 유현덕이 받아 땅에 그를 던지며 말하기를 “이 어린 아이 때문에 거의 나의 한 명의 대장을 잃을 뿐 하였구나!”했다. 조자룡이 황망히 땅을 향해 던져진 아두를 안고 일어나 울면서 말하기를 “제가 비록 간과 뇌를땅에 칠할 지라도 갚을 수 없습니다!” 했다. 뒷 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다. 시에
曹操軍中飛虎出,趙雲懷內小龍眠。無由撫慰忠臣意,故把親兒擲馬前。
“조조의 군중에서 비호처럼 나오는데 조자룡의 품속에는 작은 용이 잠자고 있었다. 충신의 뜻을 위로할 길 없어, 친 아들 잡아 말 앞에 던졌다.” 했다.
卻說文聘引軍追趙雲至長板橋,只見張飛倒豎虎鬚,圓睜環眼,手綽蛇矛,立馬橋上;又見橋東樹林之後,塵頭大起,疑有伏兵,便勒住馬不敢近前。
각설하고 문빙이 군대를 이끌고 조자룡을 추격하여 장판교에 이르렀는데 다만 장비가 머리털과 범의 수염을 거꾸로 세운 채 고리눈을 부릅뜨고, 손에는 사모를 들고 장판교 위에 말을 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다리의 동쪽 숲 뒤에서 먼지가 크게 일어는 것을 보고는 복병이 있을 것을 의심하여 말을 멈추고 감히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였다.
俄而曹仁、李典、夏侯惇、夏侯淵、樂進、張遼、張郃、許褚等都至。見飛怒目橫矛,立馬於橋上,又恐是諸葛孔明之計,都不敢近前,紮住陣腳,一字兒擺在橋西,使人飛報曹操。操聞知,急上馬,從陣後來。張飛圓睜環眼,隱隱見後軍青羅傘蓋、旄鉞旌旗來到,料得是曹操心疑,親自來看。飛乃厲聲大喝曰:「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聲如巨雷。曹軍聞之,盡皆股栗。曹操急令去其傘蓋,回顧左右曰:「我向曾聞雲長言,翼德於百萬軍中,取上將之首,如探囊取物。今日相逢,不可輕敵。」
잠시 지나 조인, 이전, 하후돈, 하후연, 악진, 장요, 장합, 허저 등이 모두 이르렀다. 장비가 노한 눈으로 창을 빗겨들고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있는 것을 보고는 또 이것이 제갈공명의 계책일 것을 두려워하여 모두 감히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고 진의 선두를 멈추어, 일자로 다리 서쪽에 벌려 있으면서 사람을 시켜 조조에게 보고하게 했다. 조조가 보고를 듣고는 급히 말에 올라 진의 뒤를 따라 왔다. 장비는 고리 눈을 둥글게 부릅뜨고 어슴푸레 후군의 청라산개와 모월 정기가 와서 이르는 것을 보자 조조가 의심이 생겨 직접 와서 보는 것을 생각하였다. 장비가 이에 성난 소리로 크게 고함쳐 말하기를 “나는 곧 연 당 사람 장익덕(장비)이다! 누가 감히 나와 죽음을 결단하는 싸움을 하겠는가?”하는데 소리가 큰 우레와 같았다. 조조의 군대가 그것을 듣고 모두 몹시 두려워하였다. 조조가 급히 그 산개를 걷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지난번에 관운장에게서 익덕(장비)은 백만 명의 군대 안에서 상 장수의 머리 취하기를 마치 주머니를 뒤져 물건을 꺼내듯 한다고 들었다. 지금 서로 만났으니 가벼이 대적할 수 없다.” 했다.
言未已,張飛睜目又喝曰:「燕人張翼德在此!誰敢來決死戰?」曹操見張飛如此氣概,頗有退心。飛望見曹操後軍陣腳移動,乃挺矛又喝曰:「戰又不戰,退又不退,卻是何故!」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장비가 눈을 부릅뜨고 또 고함쳐 말하기를 “연 땅 사람 장익덕(장비)이 여기에 있다! 누가 감히 와서 죽음을 결단하는 싸움을 하겠는가?”했다. 조조가 장비의 이 같은 기개를 보고 자못 물러나려는 마음이 있었다. 장비는 조조의 후군 진영의 일각이 이동하는 것을 바라보고는 곧 창을 내밀고 또 소리치기를 “싸울 듯, 싸우지 않을 듯, 물러날 듯, 물러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했다.
喊聲未絕,曹操身邊夏侯傑驚得肝膽碎裂,倒撞於馬下。操便回馬而走。於是諸軍眾將一齊望西逃奔。正是:黃口孺子,怎聞霹靂之聲;病體樵夫,難聽虎豹之吼。一時棄槍落盔者,不計其數。人如潮湧,馬似山崩,自相踐踏。後人有詩曰:
함성이 끊이지 않으니 조조 주변의 하후걸이 놀라 간담이 부서지고 찢어져 말 아래에 거꾸로 처박혔다. 조조가 곧 말을 돌려 달아났다. 이에 여러 군대 여러 장수들이 일제히 서쪽을 향해 달아났다. 바로 이러하다. 입이 노란 어린애가 어찌 벽력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병든 몸의 나무꾼은 범과 표범의 포효를 듣기 어렵다. 일시에 창을 버리고 투구를 떨어뜨린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사람은 조수와 같고, 말은 산이 무너지듯하여 서로 밟았다. 뒷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는데 시에
長板橋頭殺氣生,橫槍立馬眼圓睜。一聲好似轟雷震,獨退曹家百萬兵。
“장판교 머리에 살기가 생겨나 창을 빗겨 든 채 말을 세우고 고리눈 부릅떴다. 우르릉 우레소리 진동하는 듯한 한 소리로 홀로 조조의 백만 군대를 물리쳤다.”
卻說曹操懼張飛之威,驟馬望西而走,冠簪盡落,披髮奔逃。張遼、許褚趕上扯住轡環。曹操倉皇失措。張遼曰:「丞相休驚。料張飛一人,何足深懼!今急回軍殺去,劉備可擒也。」曹操方纔神色稍定,乃令張遼、許褚再至長板橋探聽消息。
각설하고 조조가 장비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말을 달려 서족으로 달아나는데 관의 비녀가 모두 떨어지고 머리가 풀어헤쳐진 채 도망하였다. 장요, 허저가 쫓아 와 말고삐를 당겨 멈추었다. 조조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 장요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장비 한 사람인데 어찌 깊이 두려워합니까? 지금 급히 군대를 돌려 쳐들어가면 유현덕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했다. 조조는 겨우 정신과 안색을 점차 안정시키고, 곧 장요, 허저로 하여금 다시 장판교에 이르러 소식을 탐지하게 하였다.
且說張飛見曹軍一擁而退,不敢追趕,速喚回原隨二十餘騎,解去馬尾樹枝,令將橋梁拆斷,然後回馬來見玄德,具言斷橋一事。玄德曰:「吾弟勇則勇矣,惜失於計較。」飛問其故。玄德曰:「曹操多謀:汝不合拆斷橋梁。彼必追至矣。」飛曰:「他被我一喝,倒退數里,何敢再追?」玄德曰:「若不斷橋,彼恐有埋伏,不敢進兵;今拆斷了橋,彼料我無軍而怯,必來追趕。彼有百萬之眾,雖涉江漢,可填而過,豈懼一橋之斷耶?」於是即刻起身,從小路斜投漢津,望沔陽路而走。
각설하고 장비는 조조의 군대가 일제히 우르르 물러가는 것을 보았으나 감히 뒤 쫓지 못하고, 빨리 원래 따르던 이십여 기를 불러 말꼬리의 나뭇가지를 풀고, 다리를 끊어버리게 한 후 말을 돌려 가 유현덕을 만나 다리를 끊은 한 가지 일을 모두 말하였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 아우가 용맹으로는 곧 용맹하였는데 애석하게도 계교에서 잘못하였다.”하니 장비가 그 이유를 물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조조는 꾀가 많은데 네가 교량을 끊은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는 반드시 쫓아 올 것이다.”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한 고함에 되돌아 몇 리를 물러났는데 어지 감히 다시 쫓아오겠습니까?”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만약 다리를 끊지 않았다면 그는 매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군대를 진군시키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지금 다리를 끊었으니 그는 우리 군대가 없어 겁을 낸다. 헤아리고 반드시 쫓아 올 것이다. 그는 백만의 무리를 소유하여 비록 강한을 건너려 하여 메꾸고 지날 수 있는데 어찌 하나의 다리가 끊어진 것을 두려워하겠는가?”했다. 이에 즉시 몸을 일으켜 작은 길을 따라 한진에 들어가 면양으로 가는 길을 향해 달아났다.
卻說曹操使張遼、許褚探長板橋消息,回報曰:「張飛已拆斷橋梁而去矣。」操曰:「彼斷橋而去,乃心怯也。」遂傳令差一萬軍,速搭三座浮橋,只今夜就要過。李典曰:「此恐是諸葛亮之詐謀,不可輕進。」操曰:「張飛一勇之夫,豈有詐謀?」遂傳下號令,火速進兵。
각설하고 조조가 장요, 허저를 시켜 장판교의 소식을 탐지하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장비가 이미 다리를 끊고 갔습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가 다리를 끊고 갔으니 곧 마음에 겁을 낸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일 만의 군대를 보내 속히 세 개의 부교를 만들게 하고, 오늘 밤 지날 수 있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전이 말하기를 “이는 제갈공명의 속이는 꾀일까 두려우니 가벼이 진군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장비는 하나의 용기 있는 사나이일 뿐인데 어찌 속이는 꾀가 있겠는가?”하고는 마침내 명령을 내려 속히 진군하게 하였다.
卻說玄德行近漢津,忽見後面塵頭大起,鼓聲連天,喊聲震地。玄德曰:「前有大江,後有追兵,如之奈何?」急命趙雲準備抵敵。曹操下令軍中曰:「今劉備釜中之魚,阱中之虎;若不就此時擒捉,如放魚入海,縱虎歸山矣。眾將可努力向前。」眾將領令,一個個奮威追趕。忽山坡後鼓聲響處,一隊軍馬飛出,大叫曰:「我在此等候多時了!」
각설하고 유현덕이 행군하여 한진이 가까워지는데 홀연히 뒤에서 먼지가 크게 일어나는 것이 보이고, 북소리는 하늘을 연잇고, 함성은 땅을 진동하였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앞에는 큰 강이 있고, 뒤에는 추격하는 군대가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는 급히 조자룡으로 하여금 적을 막을 것을 준비하게 하였다. 조조가 군중에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지금 유현덕은 솥 안의 물고기이고, 함정 안의 범이다. 만약 이 때에 사로잡지 못한다면 물고기를 놓아 바다에 들어가게 하는 것과 같고, 범을 놓아 산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과 같다. 여러 장수들은 노력하여 앞으로 전진하라.”했다. 여러 장수들이 명령을 받고 한 개개 장수들이 위엄을 떨쳐 뒤 쫓았다. 홀연히 고개 뒤 북소리가 울리는 곳에 한 부대의 군마가 날듯이 나와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내가 여기에 있은 지 오래 되었다!” 했다.
當頭那員大將,手執青龍刀,坐下赤兔馬。原來是關雲長,去江夏惜得軍馬一萬,探知當陽長板大戰,特地從此路截出。曹操一見雲長,即勒住馬回顧眾將曰:「又中諸葛亮之計也!」傳令大軍速退。
앞장 선 대장은 손에 청룡도를 잡고 적토마에 앉아 있었다. 원래 이 관운장은 강하에 가 군마 일만을 빌려 오다가 당양의 장판교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는 소식을 알고, 일부러 이 길을 따라 막고 나온 것이다. 조조가 한 번 관운장을 보고는 곧 말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고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또 제갈공명의 계책이 적중하였구나!”하고는 대군은 속히 물러나라고 명령하였다.
雲長追趕十數里,即回軍保護玄德等到漢津,已有船隻伺候;雲長請玄德并甘夫人、阿斗至船中坐定。雲長問曰:「二嫂如何不見?」玄德訴說當陽之事。雲長歎曰:「昔日獵於許田時,若從吾意,可無今日之患。」玄德曰:「我於此時亦『投鼠忌器』耳。」
관운장이 수십 리를 쫓아 가다가 곧 군대를 돌려 유현덕 등을 보호하며 한진에 이르니 이미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관운장이 유현덕과 감부인, 아두를 청하여 배안에 이르러 앉게 하였다. 관운장이 물어 말하기를 “두 형수는 어찌하여 보이지 않습니까?”하니 유현덕이 당양의 일을 모두 말하였다. 관운장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옛날 허전에서 사냥할 때 만약 내 뜻을 따랐다면 오늘의 환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이때에는 또한 ‘쥐새끼를 잡으려다 그릇을 깨는 것을 꺼렸을 뿐이다.’ 했다.
正說之間,忽見江南岸戰鼓大鳴,舟船如蟻,順風揚帆而來。玄德大驚。船來至近,只見一人白袍銀鎧,立於船頭上大呼曰:「叔父別來無恙?小姪得罪來遲!」玄德視之,乃劉琦也。琦過船哭拜曰:「聞叔父困於曹操,小姪特來接應。」玄德大喜,遂合兵一處而行。在船中正訴情由,忽西南上戰船一字兒擺開,乘風唿哨而至。
말하는 사이에 홀연히 강 남쪽 언덕에서 전고가 크게 울리면서 배가 개미 같이 순풍을 타고 돛을 날리며 왔다. 유현덕이 크게 놀랐다. 배가 와서 가까이 이르니 흰 포에 은색 갑옷을 입은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가 배 머리 위에 서서 크게 외쳐 말하기를 “숙부께서는 그 동안 별일 없으셨습니까? 제가 늦어 죄를 지었습니다.”했다. 유현덕이 그를 보니 곧 유기였다. 유기가 배를 건너 와 울며 말하기를 “숙부께서 조조에게 곤궁을 당하였다는 것을 듣고 제가 특히 대응하러 왔습니다.”했다.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군대를 한 곳에 합하고 갔다. 배 안에 있으면서 실정을 모두 말하는데 홀연히 서남쪽에 전선들이 일자로 늘어서 바람을 타고 휘파람을 불며 이르렀다.
劉琦驚曰:「江夏之兵,小姪已盡起至此矣。今有戰船攔路,非曹操之軍,即江東之軍也,如之奈何?」
유기가 놀라 말하기를 “강하의 군대는 제가 이미 모두 일으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전선이 길을 막음이 있는데 조조의 군대가 아니면 곧 강동의 군일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했다.
玄德出船頭視之,見一人綸巾道服,坐在船頭上,乃孔明也,背後立著孫乾。玄德慌請過船,問其何故卻在此。孔明曰:「亮自至江夏,先令雲長於漢津登陸地而接應。我料曹操必來追趕,主公必不從江陵來,必斜取漢津矣;故特請公子先來接應,我竟往夏口,盡起軍前來相助。」
유현덕이 배 머리에 나와 그를 보니 한 사람이 윤건과 도복을 입고, 뱃머리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곧 제갈공명이고, 뒤에는 손건이 서 있었다. 유현덕이 황급히 배에 건너 올 것을 청하고, 어찌하여 여기에 있는지를 물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강하에 이르러 먼저 관운장으로 하여금 한진에서 육지에 올라 대응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조조가 반드시 쫓아 올 것과 주공께서 반드시 강하에 오지 못하고 반드시 빗겨 한진을 취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공자께서 먼저 와 대응할 것을 청하고 저는 마침내 하구에 가서 모든 군대를 일으켜 전진하여 서로 돕게 한 것입니다.” 했다.
玄德大悅,合為一處,商議破曹之策。孔明曰:「夏口城險,頗有錢糧,可以久守。請主公到夏口屯住。公子自回江夏,整頓戰船,收拾軍器,為犄角之勢,可以抵當曹操。若共歸江夏,則勢反孤矣。」劉琦曰:「軍師之言甚善。但愚意欲請叔父暫至江夏,整頓軍馬停當,再回夏口不遲。」玄德曰:「賢姪之言亦是。」遂留下雲長,引五千軍守夏口。玄德、孔明、劉琦共投江夏。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군사를)한 곳에 합치고 조조를 깨트릴 계책을 상의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하구는 성이 험하고 전량이 많아 오래 지킬 만합니다. 주공께서는 하구에 가 주둔할 것을 청합니다. 공자는 강하로 돌아가 전선을 정비하고, 무기를 수습하여 기각의 형세를 만들면 조조를 막을 수 있습니다. 만약 함께 강하로 돌아가면 곧 형세가 도리어 외로워질 것입니다.” 했다. 유기가 말하기를 “군사의 말이 매우 좋습니다. 다만 저의 생각으로는 숙부께서 잠시 강하에 이르러 군마를 정돈하여 적을 막게하고, 다시 하구로 돌아가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조카의 말이 또한 옳다.”하고는 마침내 관운장에게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내려가 하구를 지키게 했다. 유현덕, 제갈공명, 유기는 함께 강하로 들어갔다.
卻說曹操見雲長在旱路引軍截出,疑有伏兵,不敢來追;又恐水路先被玄德奪了江陵,便星夜提兵赴江陵來。荊州治中鄧義、別駕劉先。已備知襄陽之事,料不能抵敵曹操,遂引荊州軍民出郭投降。
각설하고 조조는 관운장이 마른 길(육로)에 있으면서 군대를 이끌고 길을 끊고 나오는 것을 보고 복병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쫓아오지 못하였다. 또 수로로 유현덕이 강릉을 빼앗을 것을 두려워하여 곧 밤을 새워 군대를 데리고 강릉에 나아갔다. 형주 치중 등의, 별가 유선은 이미 양양의 일을 자세히 알아 조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마침내 형주의 군대와 백성을 이끌고 성곽을 나와 항복하였다.
曹操入城,安民已定,釋韓嵩之囚,加為大鴻臚。其餘眾官,各有封賞。曹操與眾將議曰:「今劉備已投江夏,恐結連東吳,是滋蔓也。當用何計破之?」荀攸曰:「我今大振兵威,遣使馳檄江東,請孫權會獵於江夏,共擒劉備,分荊州之地,永結盟好。孫權必驚疑而來降,則吾事濟矣。」
조조가 성에 들어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안정시킨 후 갖혀 있던 한숭을 풀어주고 벼슬을 더하여 대홍려를 삼았다. 그 나머지 여러 관리들도 각각 봉하고 상을 주었다. 조조가 여러 장수들과 논의하여 말하기를 “지금 유현덕이 이미 강하에 들어갔으니 동오와 연결하여 강력해질까 두렵다. 어떤 계책을 써서 그들을 깨트리는 것이 마땅한가?”했다. 순유가 말하기를 “내가 지금 군대의 위엄을 크게 떨쳤으니 사신을 보내 강동에 격문을 전하고 손권에게 강하에서 사냥 모임을 청하여 함께 유현덕을 사로잡고, 형주의 땅을 나누어 길이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손권은 반드시 놀라고 의심하면서도 와서 항복할 것이니 곧 우리의 일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했다.
操從其計,一面發檄遣使赴東吳;一面計點馬步水軍共八十三萬,詐稱一百萬,水陸並進,船騎雙行,沿江而來。西連荊峽,東接蘄黃,寨柵聯絡三百餘里。
조조가 그 계책을 따라 한 편으로는 사자를 동오에 보내 격문을 전하고, 한편으로는 기병과 보병, 수군 모두 팔십만을 헤아리고 점검하여 일백만이라 사칭하고 수로와 육로로 나란히 진군하여 배와 말이 이 열로 가면서 강을 따라 갔다. 서쪽으로 형섬에 연이었고, 동쪽으로 기황에 접하며, 영채와 목책이 삼백여 리에 이어졌다.
話分兩頭。卻說江東孫權,屯兵柴桑郡,聞曹操大軍至襄陽,劉琮已降,今又星夜兼道取江陵,乃集眾謀士商議禦守之策。魯肅曰:「荊州與國鄰接,江山險固,士民殷富。吾若據而有之,此帝王之資也。今劉表新亡,劉備新敗,肅請奉命往江夏弔喪,因說劉備使撫劉表,眾將同心一意,共破曹操;備若喜而從命,則大事可成矣。」權喜從其言,即遣魯肅齎禮往江夏弔喪。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 하자. 각설하고 강동의 손권은 군대를 시상군에 주둔하고 있다가 조조의 대군이 양양에 이르고 유종이 이미 항복하였으며, 지금 또한 밤 새워 길을 재촉하여 강릉을 취하였다는 것을 듣고 이에 여러 모사를 모아 지킬 계책을 상의하였다. 노숙이 말하기를 “형주는 나라와 인접해 있고, 강과 산이 험고하고 사민들은 부유합니다. 우리가 만약 웅거하여 그것을 소유한다면 이는 제왕의 자산이 됩니다. 지금 유표가 죽고 유현덕은 패하였으니 제가 명을 받들어 강하에 가서 조문하고 잇달아 유현덕을 설득하여 유표의 여러 장수를 위로하게 하여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조조를 깨트리게 하겠습니다. 유현덕이 만약 기쁘게 명을 따른다면 곧 큰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기쁘게 그 말을 따라 곧 노숙에게 예물을 가지고 강하에 가 조문하게 하였다.
卻說玄德至江夏,與孔明、劉琦共議良策。孔明曰:「曹操勢大,急難抵敵,不如往投東吳孫權,以為應援。使南北相持,吾等於中取利,有何不可?」玄德曰:「江東人物極多,必有遠謀,安肯相容耶?」孔明笑曰:「今操引百萬之眾,虎踞江漢,江東安得不使人來探聽虛實?」若有人到此,亮借一帆風,直至江東,憑三寸不爛之舌,說南北兩軍互相吞併。若南軍勝,共誅曹操以取荊州之地;若北軍勝,則我乘勢以取江南可也。」玄德曰:「此論甚高。但如何得江東人到?」
각설하고 유현덕이 강하에 이르러 제갈공명, 유기와 함께 좋은 계책을 의논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조조의 군세가 크니 급히 적을 막기 어려우니 동오 손권에게 가 응원을 요청하는 것이 낫습니다. 남북으로 하여금 서로 대치하게하고 우리들은 중간에서 이익을 취한다면 어찌 할 수 없음이 있겠습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강동은 인물이 지극히 많으니 반드시 원대한 계획이 있을 것인데 어찌 즐겨 서로 용납하겠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지금 조조가 백만의 무리를 이끌고 강한에 범처럼 웅크리고 있으니 강동이 어찌 사람을 시켜 허실을 탐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여기에 이른다면 제가 한 돛단배를 빌려 바람을 타고, 바로 강동에 이르러 세치의 문드러지지 않는 혀에 의지하여 남북의 두 군대가 서로 집어 삼키려 하도록 설득하겠습니다. 만약 남쪽의 군대가 이기면 함께 조조를 죽이는 것으로서 형주의 땅을 취하고, 만약 북쪽의 군대가 이긴다면 곧 우리는 형세를 타서 강남을 취할 수 있습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 논의가 매우 고명합니다. 다만 어떻게 강동의 사람이 이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正說間,人報江東孫權差魯肅來弔喪,船已傍岸。孔明笑曰:「大事濟矣!」遂問劉琦曰:「往日孫策亡時,襄陽曾遣人去弔喪否?」琦曰:「江東與我家有殺父之讎,安得通慶弔之禮?」孔明曰:「然則魯肅之來,非為弔喪,乃來探聽軍情也。」遂謂玄德曰:「魯肅至,若問曹操動靜,主公只推不知。再三問時,主公只說可問諸葛亮。」
말을 나누는 사이에 사람이 강동의 손권이 노숙을 보내 조문하게 하는 배가 이미 강가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대사는 이루어졌구나!”하고는 마침내 유기에게 물어 말하기를 “지난 날 손책이 죽었을 때 양양에서 사름을 보내 조문하였습니까?”했다. 유기가 말하기를 “강동과 우리 집안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데 어찌 축하와 조문의 예가 통하였겠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그러한 즉 노숙이 오는 것은 조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곧 군사의 실정을 살피러 오는 것입니다.”했다. 마침내 유현덕에게 일러 말하기를 “노숙이 이르러 만약 조조의 동정을 묻는다면 주공께서는 다만 미루고 알지 못한다 하십시오. 두 번 세 번 물을 때 주공께서는 제갈공명에게 물어보라 하십시오.” 했다.
計議已定,使人迎接魯肅。肅入城弔喪,收過禮物,劉琦請肅與玄德相見。禮畢,邀入後堂飲酒。肅曰:「久聞皇叔大名,無緣拜會;今幸得見,實為欣慰。近聞皇叔與曹操會戰,必知彼虛實:敢問操軍約有幾何?」玄德曰:「備兵微將寡,一聞操至即走,竟不知彼虛實。」魯肅曰:「聞皇叔用諸葛孔明之謀,兩場火燒得曹操魂亡膽落,何言不知耶?」玄德曰:「除非問孔明,便知其詳。」肅曰:「孔明安在?願求一見。」
계획이 이미 정해진 후 사람을 시켜 노숙을 영접하게 하였다. 노숙이 성에 들어가 조문하고 예물을 거두어 바쳤다. 유기는 노숙을 청하여 유현덕과 만났다. 에를 마치고 맞이하여 후당에 들어가 술을 마셨다. 노숙이 말하기를 “황숙의 대명을 들은 지 오래되었으나 만날 인연이 없었는데 지금 다행히도 만나게 되었으니 진실로 기쁩니다. 근자에 들으니 황숙과 조조가 싸웠다 하니 반드시 그 허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감히 묻습니다. 조조의 군대는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입니까?”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저는 군대가 미미하고 장수가 적어 조조가 이른다는 것을 한 번 듣고는 곧 달아나 끝내 그 허실을 알지 못합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황숙께서 제갈공명의 꾀를 써 두 곳의 전장에서 불로 태워 조조의 혼이 도망하고 쓸개가 떨어지게 하였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다만 제갈공명에게 물어보시면 곧 그 자세한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한번 보기를 청합니다.” 했다.
玄德教請孔明出來相見。肅見孔明禮畢,問曰:「向慕先生才德,未得拜晤;今幸相遇,願聞目今安危之事。」孔明曰:「曹操奸計,亮已盡知;但恨力未及,故且避之。」肅曰:「皇叔今將止於此乎?」孔明曰:「使君與蒼梧太守吳臣有舊,將往投之。」肅曰:「吳臣糧少兵微,自不能保,焉能容人?」孔明曰:「吳臣處雖不足久居,今且暫依之,別有良圖。」
유현덕이 제갈공명을 청하여 나와 서로 만나게 하였다. 노숙이 제갈공명을 만나 예를 마치고 물어 말하기를 “선생의 재능과 덕을 사모하였지만 뵐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다행히도 서로 만났으니 지금의 편안함과 위태로운 일을 듣고자 합니다.” 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조조의 간사한 꾀는 제가 이미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다만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를 피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황숙께서는 지금 장차 여기에서 그만 둡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사군(유현덕)께서는 창오태수 오신과 우의가 있기 때문에 가서 들어가려 합니다.”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오신은 양식이 적고 군대가 미미하니 스스로 지킬 수 없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오신이 있는 곳은 비록 오래 있기에는 부족하여 지금 또한 잠시 의지하려는 것이며, 따로 좋은 계획이 있습니다.” 했다.
肅曰:「孫將軍虎踞六郡,兵精糧足,又極敬賢禮士,江東英雄,多歸附之;今為君計,莫若遣心腹往結東吳,以共圖大事。」孔明曰:「劉使君與孫將軍自來無舊,恐虛費詞說。且別無心腹之人可使。」肅曰:「先生之兄,現為江東參謀,日望與先生相見。肅不才,願與公同見孫將軍,共議大事。」玄德曰:「孔明是吾之師,頃刻不可相離,安可去也?」
노숙이 말하기를 “손 장군의 군대는 육군에 웅크리고 있고, 군대는 정예롭고 양식은 풍족하며 또한 지극히 어진 이를 공경하고 선비를 예로 대우하니 강동의 영웅들이 많이 귀부하였습니다. 지금 그대의 계책은 심복을 보내 동오와 결연하는 것으로서 함께 대사를 도모하는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유사군(유현덕)과 손 장군은 우의가 없었으니 쓸데없는 말만 할까 두렵습니다. 또한 따로 심복의 사람으로 부릴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선생의 형님이 현재 강동의 참모가 되어 날마다 선생과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재능은 없으나 공과 함께 손 장군을 만나 함께 대사를 의논하기를 원합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나의 스승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떨어져 지낼 수 없으니 어찌 갈 수 있겠습니까?” 했다.
肅堅請孔明同去。玄德佯不許。孔明曰:「事急矣,請奉命一行。」玄德方纔許諾。魯肅遂別了玄德、劉琦,與孔明登舟,望柴桑郡來。正是:只因諸葛扁舟去,致使曹兵一旦休。不知孔明此去畢竟如何,且看下文分解。
노숙이 제갈공명과 같이 갈 것을 굳게 청하였다. 유현덕이 거짓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일이 급하니 명을 받들어 함께 갈 것을 청합니다.”했다. 유현덕이 겨우 허락하였다. 노숙이 마침내 유현덕, 유기와 헤어져 제갈공명과 함께 배에 올라 시상군을 향하여 갔다. 바로 이러하다. 제갈공명이 조각배를 타고 갔기 때문에 조조의 군대가 하루아침에 그만둠에 이르렀다. 제갈공명이 이에 가서 끝내 어떠했는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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