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唐新羅國 初月山 大崇福寺 碑銘 幷序
유당 신라국 초월산 대숭복사 비명과 서
臣聞, 王者之基祖德, 而峻孫謀也, 政以仁爲本, 禮以孝爲先, 仁以推濟衆之誠, 孝以擧尊親之典, 莫不體無偏於夏範, 遵不匱於周詩. 聿修芟秕稗之譏, 克祀潔蘋蘩之薦, 俾慧渥均濡於庶彙, 德馨高達於穹旻. 然勞心而扇暍泣辜, 豈若拯群品於大迷之域, 竭力而配天享帝, 豈若奉尊靈於常樂之鄕.
신이 들었습니다. “왕 노릇하는 자는 조상의 덕을 기틀로 자손을 위한 계획을 높게 하고, 정사는 仁으로 근본을 삼고, 예는 孝로서 우선을 삼는다.”합니다. 仁으로서 무리를 구제하는 정성을 미루고, 효로서 어버이를 높이는 법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하범(홍범)에서 치우치지 않는 정사를 체득하지 않을 수 없으며, 周나라 詩(《시경》)에서 다함이 없는 지극한 효를 따라야 합니다. 조상의 덕을 이어받아 닦으면서 쭉정이라는 나무람을 베어내고, 제사함에는 변변하지 못한 제수를 올리는 것을 정결히 하고, 은혜를 여러 종류의 많은 물건에 고르게 적셔지게 하며, 덕의 향기가 높이 하늘에 도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부채질하는(백성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과 허물을 보고 슬프게 울어주는 것이 어찌 크게 미혹함의 영역에서 뭇 중생을 구제하는 것과 같겠으며, 힘을 다하여 하늘에 짝하고 상제에게 제사하는 것이 어찌 높은 신령을 항상 즐거워하는 나라에서 받드는 것과 같겠습니까?
是知敦睦九親, 實在紹隆三寶. 矧乃玉毫光所照燭, 金口偈所流轉, 靡私於西土生靈, 先及於東方世界, 則我太平勝地也, 性滋柔順, 氣合發生. 山林多靜默之徒, 以仁會友, 江海協朝宗之欲, 從善如流. 是故, 激揚君子之風, 薰漬梵王之道, 猶若泥從璽金在鎔, 而得君臣鏡志於三歸, 士庶翹誠於六度. 至乃國城無惜, 能令塔廟相望, 雖在贍部洲海邊, 寧慚都史多天. 衆妙之妙, 何名可名.
이에 구친에게 두터이 화목한 것이 진실로 삼보를 이어받아 융성하게 하는데 달려있음을 알게 합니다. 하물며 옥호광명(백호광명)이 비추는 것과 부처님의 게송(金口)이 유행하는 것이 인도(西土)에 홀로(한정)하지 않고 먼저 동방세계(신라)에 미쳤으니 곧 우리의 크게 편안한 좋은 땅은 성품이 더욱 유순하고, 기운이 펴고 태어남에 부합하였습니다. 산림에는 고요히 말없이 있는(참선하는) 무리들이 많아 仁으로서 벗을 모으고 강과 바다가 조종의 하고자 함에 부합하듯이 선을 따르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군자의 기풍을 격려하여 드날리고, 향기로운 범왕(부처님)의 도에 무젖어 마치 진흙(인주가)이 도장을 따르고, 쇠가 용광로에 있는 것과 같아서 임금과 신하가 삼귀에 뜻을 비추고 사와 서인이 육도(육바라밀)에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국성에 이르기까지 아낌이 없어 탑과 사당이 서로 바라보게 할 수 있었다. 비록 남섬부주의 바닷가에 있어도 어찌 도사다천(도솔천)에 부끄러워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미묘함의 미묘함을 무슨 이름으로 이름 할 수 있겠습니까?
金城之离, 日觀之麓, 有伽藍號崇福者, 乃先朝嗣位之初載, 奉爲烈祖元聖大王 園陵, 追福之所修建也. 粵若稽古寺之濫觴, 審新刹之覆簣, 則昔波珍飡金元良者, 炤文王后之元舅, 肅貞王后之外祖也, 身雖貴公子, 心實眞古人, 始則謝安縱賞於東山, 儼作歌堂舞館, 終乃慧遠同期於西境, 捨爲像殿經臺, 當年之鳳管鵾絃, 此日之金鍾玉磬, 隨時變改, 出世因緣.
금성의 남쪽에 있는 해를 보는 산기슭에 숭복사라 불리는 가람(절)이 있으니 곧 선조(경문왕)가 왕위를 이은 초년에 열조 원성대왕의 원릉을 받들어 만들고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곳이다. 옛 절의 근원을 상고해보고, 새로운 절의 이루어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곧 옛 파진찬 김원량은 소문왕후의 원구(큰 외삼촌)이며 숙정왕후의 외조부이다. 몸은 비록 귀공자이나 마음은 진실로 참다운 고인이다. 처음에는 곧 사안이 동산에서 마음껏 즐겼듯이 하여 훌륭한 가당과 무관을 지었고, 마지막에는 곧 혜원이 서경을 기약한 것과 같이하여 (가당과 무관을) 희사하여 像展, 經臺를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곤산의 대나무(관악기)와 큰 물고기의 힘줄(현악기)이었으나, 이 날에는 쇠로 만든 종과 옥으로 만든 경쇠였다. 때에 따라 변하고 바뀌는 것은 인연에 따라 세상에 나오는 것입니다.
寺之所枕倚也, 巖有鵠狀, 仍爲戶牓. 能使鴦廬長價, 永令鵝殿增輝, 則彼波羅越之標形, 崛恡遮之紀號, 詎若飛千里取譬, 變雙林以刱題者哉. 但玆地也, 威卑鷲頭, 德峻龍耳, 與畵金界, 宜闓玉田.
절이 의지한 곳은 바위에 따오기의 형상이 있어 이에 문의 현판(鵠寺)으로 삼았습니다. 동서 익랑으로 하여금 길이 값이 높아질 수 있게 있게 하고, 길이 거위가 날개를 펼친 듯한 불전으로 하여금 빛남을 더하게 하였으니 곧 저 파라월의 형상을 나타내었으나 굴린차의 이름을 기념한 절이 어찌 천리를 나는 고니의 비유를 취하고, 쌍림을 바꾸어서 이름을 새로 지은 이 절과 같겠습니까? 다만 이 땅은 위엄으로는 독수리 머리보다 낮고, 덕은 용의 귀처럼 높으니 금계를 그리기보다는 옥전을 조성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洎貞元戊寅年, 遺敎窀穸之事, 因山是命, 擇地尤難, 乃指淨居, 將安秘殿. 時獻疑者有言, 昔游氏之廟, 孔子之宅, 猶皆不忍終毁, 人到于今稱之, 則欲請奪金地, 無乃負須達陁大捨之心乎. 冥葬者, 地所祐天所咎, 不相補矣. 而莅政者譏曰, 梵廟也者, 所居必化, 無𨓏不諧, 故能轉禍基爲福場, 百億劫濟其危俗, 靈隧也者, 頫硂坤脈, 仰揆乾心, 必在苞四象于九原, 千萬代保其餘慶, 則也. 法無住相, 禮有盛期, 易地而居, 順天之理. 但得靑烏善視, 豈令白馬悲嘶. 且驗是仁祠, 本隷戚里, 誠宜去卑就峻, 捨舊謀新. 使幽庭據海域之雄, 淨刹擅雲泉之媺, 則我王室之福山高峙, 彼侯門之德海安流. 斯可謂知無不爲, 各得其所, 豈與夫鄭子産之小惠, 魯恭王之中轍, 同日而是非哉. 宜聞龜筮協從, 可見龍神歡喜.
정원 무인년(798, 원성왕14) 겨울에 이르러 무덤구덩이의 일(장례의 일)로 유교(유언을)를 내려 장례하도록 이에 명하였기 때문에 땅(왕릉 자리)을 가리는 것이 더욱 어려웠다. 이에 깨끗한 몸이 사는 곳(절)을 가리켜 장차 비전(왕릉)을 장차 모시려 하였다. 그때 의아해 하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옛날 유씨의 사당과 공자의 집을 오히려 모두 차마 끝내 무너뜨리지 않아 사람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칭찬을 합니다. 곧 금지(절)를 빼앗을 것을 청하려 하니, 수달다가 크게 희사한 마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땅에)장례하는 것은 땅은 돕는 바이나 하늘은 허물하는 바일 것이니 서로 보완하지 못합니다.”했다. 정사에 임하는 자를 기롱하여 말하기를 “절이라는 것은 거주하면서 반드시 교화하여 향하는 곳마다 화합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앙의 터를 돌려 복의 장소로 할 수 있고, 백억 겁의 세월에 위태로운 풍속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묘지는 구부려 땅의 맥을 저울질하고(살피고) 우러러 하늘의 마음을 헤아려 반드시 네 가지 자연의 상태(四象)를 묘지에 포함하여 천만 대 그 넉넉한 경사를 보존하는 것이 법칙입니다. 법은 머무는 모양이 없고, 예에는 정해진 기일이 있으니 땅을 바꾸어 사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다만 청오같은 풍수가를 얻어 잘 살피게 할 뿐이지 어찌 절을 헐어 백마로 하여금 슬피 울게 하겠습니까? 또한 이 절을 살펴보면 본래 외척의 집에 소속되어 있었으니 진실로 낮음을 떠나 높음으로 나아가고,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윽한 뜰(幽庭: 왕릉으로)로 하여금 전국(海域)의 웅장한 곳을 차지하게 하고, 정결한 절은 자연의 좋은 곳을 차지하게 하면 곧 우리 왕실 복의 산이 높아질 것이며, 저 불문의 덕이 바다처럼 편안히 흐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알면 하지 않음이 없고, 각기 그 자리를 얻음이니 어찌 저 정나라 자산의 작은 은혜와 한나라 노공왕이 중간에 그만 둔 것을 같은 날의 옳고 그름을 따지겠는가? 마땅히 거북점과 시초 점의 점괘를 화합하여 따른다는 말이 들리면 용과 신이 기뻐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遂遷精舍, 爰創玄宮, 兩役庀徒, 百工蕆事. 其改創紺宇, 則有緣之衆, 相率而來, 張袂不風, 植錐無地, 霧市奔趍於五里, 雪山和會於一時. 至於撤瓦抽椽, 奉經戴像, 迭相授受, 競以誠成, 役夫之走步未移, 釋子之宴居已就.
마침내 정사(절을)를 옮기고 이에 임금의 관을 묻는 광중(玄宮)을 만들었는데 두 일로 장인을 모으니 모든 장인들이 일을 갈무리하였다. 그 절을 고쳐 지을 때에는 곧 인연이 있는 무리들이 서로 이끌고 왔는데 옷소매를 펼치면 바람이 통하지 않았고, (사람이 빽빽하여)송곳 꼿을 땅이 없었으며, 오리의 안개를 피우는 술법을 배우려 사람이 분주히 달려와 저자를 이루고, 한 때 설산의 법회에 대중이 모인 것과 같았다. 기와를 치우고 서까래를 뽑음에 이르러서, 경전을 받들고 불상을 머리에 이고 교대로 서로 주고받아 정성으로 이루니 역부(일하는 사람)의 무리들이 걸음을 옮기기 전에 스님들의 거처가 이미 이루어졌다.
其成九原, 則雖云王土, 且非公田. 於是括以邇封, 求之善價, 益丘壟餘百結, 酬稻穀合二千苫(斞除一斗爲苫, 十六斗爲斞). 旋命所司與王官之邑, 共芟榛徑, 分蒔松埏, 故得蕭蕭多悲風, 激舞鳳歌鸞之思, 鬱鬱見白日, 助盤龍踞虎之威. 且觀其地, 壤異瑕丘, 境連暘谷. 祇樹之餘香未泯, 穀林之佳氣增濃, 繡峯則四遠相朝, 練浦則一條在望, 實謂喬山孕秀, 畢陌標奇. 而使金枝益茂於鷄林, 玉派增深於鰈水者矣. 初寺宇之徙也, 雖同湧出, 未若化城, 哉得剗荊棘而認岡巒, 雜茅茨而避風雨. 僅踰六紀, 驟歷九朝, 而累値顚覆, 未遑崇飾, 三利之勝緣有待, 千齡之寶運無虧.
그 왕릉을 이룸에는 곧 비로 王土라 말하나 또한 公田이 아니었다. 이에 봉분에 가까운 곳을 헤아려 좋은 값으로서 구하고, 조금 높고 비탈진 땅 100여결을 더하였는데 벼를 합해 2천苫(斞에서 1두를 뺀 것을 苫이라 한다. 16斗를 斞라 한다. 곧 苫은 16斗에서 1斗를 뺀 15斗)을 주었다. 장례를 치르는 담당 관청과 王都 주변의 읍이 함께 무성한 숲을 베어내고 길을 내며 나누어 왕릉으로 가는 길에 소나무를 심었다. 그러므로 바람 소리가 쓸쓸하고 슬픈 바람이 많이 불 때는 춤추는 봉황과 노래하는 난새의 생각(돌아가신 임금을 생각)이 많이 솟구치게 하였으며, 무성한 숲 속에서 밝은 해가 보이면 서린 용과 웅크린 호랑이가 위엄을 도왔다. 그 땅을 살펴보면 땅은 하구와 달라도 경계는 양곡에 접하였다. 기수의 남은 향기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 곡림의 아름다운 기운이 더욱 짖어지며, 수놓은 봉우리들은 곧 사방 멀리에서 조회하고, 누인 명주 같은 갯벌은 곧 한 줄기로 바라보이니 실로 교산이 빼어남을 잉태하고, 필맥이 기이함을 나타냈다 할 만하다. 금가지(왕실)로 하여금 계림에서 더욱 무성하게 하고 종실이 동방에서 깊음을 더하였다.
初寺宇之徙也, 雖同湧出, 未若化城, 哉得剗荊棘而認岡巒, 雜茅茨而避風雨. 僅踰六紀, 驟歷九朝, 而累値顚覆, 未遑崇飾, 三利之勝緣有待, 千齡之寶運無虧.
처음 절을 옮길 때는 비록 같이 솟아나왔으나 아직 城과 같이 되지 못하였는데, 가시덤불을 깍아 내고나서야, 언덕과 산을 알 수 있었고, 모자를 섞어(엮어) 바람과 피를 피하였다. 겨우 6기(72년)를 지나고 빠르게 9대를 지나면서 여러 번 엎어지고 자빠지고, 미처 높이고 꾸밀 겨를이 없었다가 세 가지 이로움의 좋은 인연(경문왕)을 기다림이 있어 천년의 보배로운 운세가 이지러짐이 없게 되었습니다.
伏惟, 先大王, 虹渚騰輝, 鼇岑降跡, 始馳名於玉鹿, 別振風流, 俄綰職於金貂, 肅淸海俗. 據龍田而種德, 捿鳳沼以沃心, 發言則仁者安人, 謀政乃導之以道. 八柄之重權咸擧, 四維之墜緖斯張, 歷試諸難, 利有攸𨓏. 旋屬憂侵杞國, 位曠搖山, 雖非逐鹿之原, 亦有集烏之苑. 然以賢以順, 且長且仁, 爲民所推, 捨我奚適.
삼가 생각하건대 선대왕(경문왕)은 홍저가 빛을 떨치듯이 자라가 받치고 있는 신선의 산에 자취를 내렸고, 처음 옥록에서 이름을 치달렸고, 별도로 풍류(화랑)에서 떨치다 홀연히 금초의 직(재상의 직)을 받아 모든 관직을 통섭하여 바다의 풍속을 엄정하고 맑게 하시었다. 용의 덕을 차지하고 덕의 씨를 심어 봉소(궁중의 못)에 깃들어 마음을 기름지게 하였다. 말을 하면 곧 어진 자로 사람을 편안하게 하였고, 정사를 도모하면 곧 도를 가지고 그들을 인도하였다. 여덟 가지 중요한 권한을 모두 쥐고,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네 가지 덕목의 떨어진 실마리가 이에 펴지고(회복되고), 차례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는 곳마다 이로움이 있었다. 오래되지 않아 기국을 근심하고 침범한 것을 만나니 왕위가 비어 산이 흔들렸다. 비록 사슴을 쫓음의 언덕(왕위 쟁탈전)은 아니나 또한 까마귀가 모이는 동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하고, 순하게 하고, 또한 노성하고 또한 인으로 하며, 백성이 미는바 되어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겠는가?
乃安身代邸, 注意慈門, 慮致祖羞, 願興佛事. 因請芬皇寺僧崇昌, 以修奉梵居之地, 白于佛, 復遣金純行, 以隆宣祖業之誠, 告于墓, 詩所謂, 愷悌君子, 求福不囘, 書所謂, 上帝時歆, 下民祇協. 故能至誠冥應, 善欲克終, 卿士大夫與守龜協, 赫赫東國而君臨之.
이에 代邸에서 몸을 편안하게 하고, 자문(불교)에 뜻을 기울이며 조상에게 부끄러움이 이를까 염려하여 불사를 일으킬 것을 원하였습니다. 때문에 분황사 스님 숭창에게 절(梵居)을 중수하고 받들 것에 대해 부처님께 아뢸 것을 청하고, 다시 김순행을 보내 祖業의 정성을 융성하게 펼칠 것이라 무덤에 알리게 하였으니 《시경》에 이른 바 “화평한 군자여 복을 구함이 그릇되지 않도다.”이고, 《서경》에 이른 바 “상제가 이에 흠향하시어 아래의 백성들이 공경히 따른다.”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성이 신령에 감응하여 이익을 줌에 이를 수 있었고, 훌륭한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경, 사대부들이 거북점의 뜻과 합치되었으니 東國(신라)을 빛나게 하여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爰遣陪臣, 告終稱嗣. 遂於咸通六年, 天子使攝御史中丞胡歸厚, 以我鄕人前進士裵匡, 腰魚頂豸爲輔行, 與王人田獻銛來. 錫命曰, 自光膺嗣續, 克奉聲猷, 俾彰善繼之名, 允協至公之擧, 是用命爾爲新羅國王. 仍授檢校太尉兼持節充寧海軍使, 向非變齊標秀, 至魯騰芬, 則何以致飛鳳筆而寵外諸侯, 降龍旌而假大司馬之如是矣. 亦旣榮沾聖澤, 必將親拜靈丘, 肆以備千乘之行, 奚翅耗十家之産.
이에 신하를 (당나라에)보내, 왕의(헌안왕의) 돌아가심을 아뢰고 왕위를 이었음을 말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함통 6년(865, 경문왕5) 천자께서 섭어사중승 호귀후로 하여금 우리나라 사람 전진사였던 배광의 허리에 어대를 두르고, 머리에는 치관을 쓰게 하여 부사로 삼고, 왕사 전헌섬(첨)과 함께 보내 칙명을 내려 말하기를 “영광스럽게 왕위를 이어 받음을 받듦으로부터 업적을 기리고 칭찬하는 것을 잘 받들고, 잘 계승하였다는 이름을 드날리니 진실로 지극한 공정의 천거에 부합하였으니 이에 칙명으로 너를 신라국왕으로 삼고, 검교태위 겸지절충녕해군사를 준다.”했습니다. 지난 날 선대왕이 제나라를 변화시키며, 빼어난 면모를 드러내었으나 노나라의 꽃향기가 풍김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곧 어찌 천자가 글(鳳筆)을 보내 밖의 제후를 총애함에 이르렀겠으며, 용이 그려진 깃발을 내려 대사마를 빌려줌이 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미 은택에 영광스럽게 무젖었으니 반드시 장차 직접 신령한 언덕(선왕의 는)에 절할 때 천승(제후의 수레)의 행차를 준비할 것이니 어찌 열 집의 생산을 소모하겠습니까?
遂命太弟相國(尊諡惠成大王), 致齋淸廟, 代謁玄扃. 懿乎. 鷄樹揚蕤, 鴒原挺茂. 歲久而永懷耕象, 時和而罷問喘牛. 藻野縟川, 觀者如雲. 迺有鮐背之叟, 鵠眉之僧, 抃手相慶, 大相賀曰, 貴介弟之是行也, 聖帝之恩光著矣, 吾君之孝理成焉. 禮義鄕風, 綽有餘裕, 遂使海波晏, 塞塵淸, 天吏均, 地財羨, 則乃踵修蓮宇, 威護栢城, 今也其時, 捨之何俟.
마침내 태제 상국(높은 시호 혜성대왕임: 진성여왕 대에 죽은 위홍) 에게 명하여 맑은 사당(종묘)에서 재를 지내게 하고, 왕의 무덤을 대신 뵙게 하셨으니 아름답도다! 왕의 가계가 꽃다움을 드날리고, 형제는 빼어나게 무성하였다. 해가(풍년이) 오래하여 길이 코끼리가 밭을 가는 것을 생각하고, 때로 화합하여 (재상으로)헐떡이는 소의 까닭을 물을 필요가 없다. 들을 문채 나게 하고 내를 색칠 해 꾸미니 보는 자가 구름과 같았다. 이에 복어 등의 늙은이와 따오기 (흰)눈썹의 스님들이 있어 손뼉을 치며 크게 서로 축하해 말하기를 “귀한 왕의 아우의 이러한 행실은 거룩한 황제의 은택이 빛나게 드러나니 우리 임금의 효도와 다스림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다.”했습니다. 예의와 시골의 풍속이 느긋하고 여유로워 마침내 바다의 물결을 잠잠하게 하고, 변방의 먼지가 맑아지며, 사시가 고르고 땅의 재물이 불어나게 되어, (선대를)이어 절을 수리하고 능을 호위하시니 지금이 그 때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무엇을 기다리시겠습니까?
於是, 孝誠旁達, 思夢相符. 迺見聖祖大王, 撫而告曰, 余而祖也, 而欲建佛像, 飾護予陵域, 小心翼翼, 經始勿亟. 佛之德, 予之力, 庇爾躳, 允執厥中, 天祿永終. 旣以韻耿銅壺, 形開玉寢, 不占十煇, 若佩九齡. 遽命有司, 虔修法會, 華嚴大德釋決言, 承旨於當寺, 講經五日, 所以申孝思而薦冥福也.
이에 효성이 두루 도달하고, 생각이 꿈과 서로 부합하였으니 곧 꿈에 성조대왕(원성대왕)을 뵈었는데 어루만지며 알려 말하기를 “나는 너의 할아버지이다. 네가 불상을 세워서 내 왕릉의 구역을 꾸미고 지키려 하는데 조심하고 공경하며 삼가고, 경영을 시작하고 빠르게 하지 말라. 부처님의 덕과 나의 힘이 너의 몸을 덮을 것이니 진실로 그 가운데(중도)를 잡아 천록을 길이하여 마치라.”고했습니다. 이미 구리항아리(물시계 항아리)에 정취있고 맑은 소리가 나매 형상(몸)이 옥침에서 열려 열 가지 빛 무리를 점치지 않아도 마치 九齡의 꿈 해몽과 같은 듯하였습니다. 대번에 유사(담당관청)에 명하여 정성껏 법회를 닦게하여 화엄대덕 석 결언이 이 절에서 명을 받들어 5일 동안 경전을 강론하였는데 효성스러운 생각을 펴고 명복을 드리려는 것 때문이었다.
仍下敎曰, 不愛其親, 經所戒也, 無念爾祖, 詩寧忘乎. 睠言在藩, 有欲修寺, 魂交致感, 㾕慓襟靈. 旣愧三年不飛, 深思一日必葺, 百尹御史, 謂利害何. 雖保無賣兒貼婦之譏, 或慮有鬼怨人勞之說. 獻可替否, 爾無忽諸. 宗臣繼宗勛榮以下, 協議上言曰, 妙願感神, 慈靈現夢, 誠因君志先定, 果見衆謀僉同, 是寺也成 九族多慶. 幸値農隙, 請興杍工.
이에 왕명을 내려 말하기를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경전에서 경계하는 바이다.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으랴!’한 《시경》의 말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당나라가)돌아보는 말이 번국(신라)에 있고, 절을 수리하고자 하자 꿈으로 감응함에 이르렀으니 한기가 들고 급한 마음을 깊게 품게 된다. 이미 3년을 날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고 하루를 반드시 수선할 것을 깊이 생각하고, 여러 관청의 장과 관리들은 이로움과 해로움이 어떠한지를 말하라. 비록 아이를 팔고 부인을 전당잡힌다는 비방이 없음을 보증할 지라도 혹 귀신이 원망하고 사람이 수고롭다는 말이 있을까 염려한다. 옳은 일을 권하고 그릇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여 너희들은 소홀함이 없게 하라.” 했다. 종신인 계종 훈영 이하가 협의하여 아뢰어 말하기를 “신묘한 기원이 신을 감동시켜 자애로운 신령이 꿈에 나타났고, 진실로 임금의 뜻이 먼저 정해졌으니 여러 사람들이 꾀함이 모두 같음을 보였습니다. 이 절이 이루어지면 9족에게 경사가 많을 것입니다. 다행히 농한기를 만났으니 목수의 일을 일으킬 것을 청합니다.”했다.
爰用擇人龍於建禮仙門, 擧僧象於昭玄精署, 乃命宗室三良 曰端元 毓榮 裕榮, 與釋門二傑 曰賢諒 神解, 及贊導僧崇昌, 督其事. 且國君爲檀越, 邦彦爲司存, 力旣有餘, 心能匪懈. 將俾小加大, 豈宜新間舊. 然恐沮檀溪宿願, 不瑕傷㮈苑前功, 選掇故材, 就遷高土庶.
이에 건례선문에서 人龍(훌륭한 인재를)을 가려 등용하고, 소현정서에서 훌륭한 스님을 천거하였다. 이에 종실(왕실)의 세 어진이인 단원, 육영, 유영과 석문(불교계)의 두 걸출한 이인 현량, 신해와 찬도승 숭창으로 하여금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또한 나라의 임금이 단월이 되고, 나라의 뛰어난 사람이 사존(일을 주관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힘으로는 남음이 있고, 마음으로는 나태하지 않았다. 장차 작은 것으로 하여금 더 크게 하려하니 어찌 새것에 옛것을 사이하는 것이 마땅하겠는가?(섞는 것이 마땅하겠는가?) 그러나 단계의 숙원이 막힐까 두렵고, 내원의 前功을 해치지 않으려 옛 목재를 선택하여 흙을 높게 한 곳으로 옮겨놓게 하였다.
於是占星揆日, 廣拓宏規, 合土範金, 爭呈妙技. 雲梯而倕材架險, 霜途而獿 堊黏香, 屬嵒麓而培垣, 壓溪流而敞戶, 易荒土皆而釦砌, 變卑廡而琱廊. 複殿龍盤, 中以盧舍那爲主, 層樓鳳跱, 上以修多羅爲名. 高設鯨桴, 對標鸞檻. 綺井華攢而革甲鞢, 繡栭枝擁以杈枒, 聳翼如飛, 廻眸必眩.
이에 별을 점치고 날을 헤아려 넓게 개척하고 규모를 크게 하며, 흙을 이기고 쇠를 녹여 부어 다투어 현묘한 기술을 나타내었다. 사다리를 놓고, 무거운 재목으로 높은 곳에 가설하고 서리 같은 하얀 塗壁은 노와 같은 색흙에 향을 이겨 넣으며, 바위로 된 기슭을 깍아 담장을 북돋우고, 계곡의 흐르는 물을 굽어보며, 시원스럽게 문을 내었으며, 거친 계단을 바꾸어 좋은 섬돌로 하며, 낮은 회랑을 변화시켜 행랑채를 아로새겼다. 겹으로 된 佛殿은 용이 서린 듯하고, 안에 노사나부처님을 주불로 하였으며 층층의 누각은 봉처럼 우뚝 섰는데, 그 위에 수다라를 이름으로 하였다. 고래 등같이 높이 가설한 마룻대는 난새 같은 난간을 마주하게 하였다. 단청 채색한 천정은 피어있는 꽃이 여기저기 모여 있고, 말안장 아래 까는 천처럼 길게 줄지어 있으며, 수놓은 두공은 가지 친 곁가지처럼 끼웠으니 날개를 솟구쳐 나는 듯 하고, 눈동자를 굴릴 때마다 반드시 어질어질 하였다.
其以增崇改作者, 有若睟容別室, 圓頂蓮房, 揣食臑堂, 晨炊㢋舍. 加以雕礱罄巧, 彩雘窮精, 巖洞共淸, 煙霞相煥. 玉刹掛蓬溟之月, 兩朶霜蓮, 金鈴激松澗之風, 四時天樂. 就觀勝槩, 傑出遐陬. 左峯巒則鷄足挐雲, 右原隰則龍鱗閃日. 前臨則黛列鯷嶠, 後睇則鉤連鳳崗. 故得遠而望也, 峭而奇, 追而察也, 爽而麗, 則可謂樂浪仙境, 眞是樂邦, 初月名山, 便爲初地.
더 높이고 고쳐지은 것으로는 임금의 초상을 모시는 별실이 있고, 스님들이 머무는 방, 음식을 헤아리는 식당과 밥을 짓는 넓은 부엌이었습니다. 더하여 새기고 갈아 공교로움을 다하고 붉은 채색은 정밀함을 다하였으니 바위에 뚫린 구멍이 함께 맑고 안개와 노을이 서로 빛났다. 옥으로 된 刹竿에는 봉명의 달이 걸려 두 갈래 서리 맞은 연꽃이 피어나고, 금방울이 소나무와 시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부딪혀서 사 계절로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는 듯하였다. 주변 경치를 돌아보면 우리나라에서 매우 뛰어났다. 왼쪽 봉우리와 산은 곧 닭이 발로 구름을 잡아당기는 듯하고, 오른쪽 높고 마른 땅과 낮고 습한 땅은 곧 용의 비늘이 해에 번쩍이는 듯했다. 앞에 나가면 곧 메기 같은 뾰족한 산이 검게 나열해 있고, 뒤로 돌아보면 곧 갈고리로 봉황 같은 산등성이를 잇닿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멀리서 바라보면 뾰족하고 기이하며, 쫓아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상쾌하고 아름다우니 곧 낙랑의 신선의 경개라 이를만하고, 참으로 즐거운 나라이다. 초월이란 명산은 곧 초지(《화엄경》 십지품의 초지인 환희지)라 할만하다.
善建而事能周匝, 勤修而福不唐捐, 必謂大庇仁方, 上資寶壽. 罩三千界爲四境, 籌五百歲爲一春, 豈期獵豹樊岑, 方歡竪尾, 跨龍荊峀, 遽泣墮髥.
잘 세워 일을 모두 잘 할 수 있었고, 부지런히 닦아 복이 헛되지 않아 반드시 仁方(우리나라를)을 크게 보호하였으니 위로는 왕의 수명에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삼천세계를 덮어(망라하여) 네 경계를 삼고 오백 년을 헤아려 한 봄으로 삼았으니 어찌 번산에서 표범을(치타를) 사냥하여 바야흐로 꼬리 세우는 것을 기뻐하다가 형산에서 용을 걸터앉아 타고, 갑자기 늘어뜨린 수염을 잡고 눈물 흘릴 줄 기약했겠습니까?
獻康大王, 德峻妙齡, 神淸遠體. 仰痛於寢門問竪, 俯遵於翌室宅宗, 滕文公盡禮居憂, 終能克己, 楚莊王俟時修政, 其實驚人. 矧復性襲華風, 躳滋慧露, 抗尊祖之義, 激歸佛之誠.
헌강대왕은 젊은 나이에 덕이 높았고, 정신이 맑고 몸이 좋았습니다. 우러러 침실 문에서 內竪(환관)에게 안부를 묻지 못하게 됨을 슬퍼하고, 엎드려 익실에서 상례의 주인이 되는 일을 따라는데 등 나라 문공이 예를 지극히 하고, 거상함으로써 마침내 사사로움을 이길 수 있었으며, 초나라 장왕이 때를 기다려 정사를 닦아 진실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본성을 회복하고 중국의 풍속(문물)을 인습하여 몸소 지혜의 이슬에 젖으며, 조상을 높이는 의리를 높여 부처님께 돌아가는 정성을 떨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中和乙巳年秋, 敎曰, 善繼其志, 善述其事, 永錫爾類, 在我而已. 先朝所建鵠寺, 宜易牓爲大崇福. 其持經開士, 提綱淨吏, 南畝以資供施, 一依奉恩故事 (奉恩寺 乃聖悳大王追福建寺), 其故波珍飡 金元良所捨地利, 輸轉非輕, 宜委正法司. 別選二宿德, 編籍爲常住, 薦祉于冥路, 則有以見居上位者, 无幽不察, 結大緣者, 有感必通. 自是鳧鍾吼泬寥, 龍鉢飫香積. 唱導則六時玉振, 修持則萬劫珠聯. 偉矣哉. 得非尼父所謂無憂者, 其惟文王乎, 父作之, 子述之者耶.
중화 을사년(885, 헌강왕11) 가을 왕이 명하여 말하기를 “그 뜻을 잘 계승하고, 그 일을 잘 이어받으며(따르며) 길이 너의 무리에게 내려주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선대에 세운 바의 ‘곡사’는 마땅히 절 이름을 바꾸어 ‘대숭복’이라 하라. 그 경전을 지니는 보살과 절의 일을 맡은 청정한 관리(스님이)가 좋은 전지를 공급하고 보시에 이바지 하였는데 한결같이 은혜를 받든 옛 일에 의하도록 하라.(봉은사는 곧 성덕대왕의 복을 기원하여 건립한 절) 고 파진찬 김원량이 희사한 바 땅의 산물로부터 얻은 이로움을 운반하는 일을 가벼이 여기자 말아서 마땅히 정법사에 맡기라. 따로 두 명의 덕망있는 스님을 뽑아 寺籍에 편입시키고, 상주하여 명로에 복을 올리게 한다면 곧 윗자리에 있는 자로서 저승까지 살피지 않을 수 없음이 될 것이요, 큰 인연을 맺은 자도 (큰 인연을 맺은 김원량도)감동하여 반드시 통함이 있을 것이다.”했다. 이로부터 종소리가 하늘에 울리고 용발(발우)로 향적여래가 먹는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불교의 교리를 말하여 신앙으로 이끌면 곧 六時로 玉磬이 울리고, 닦고 지니면 곧 만겁동안 구슬이 이어질 것이다. 위대하도다. 공자의 이른 바 “근심이 없는 이는 오직 문왕일 것이다. 아버지가 일으키고 아들이 이어받았다.” 하는 것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慶曆景午年春, 顧謂下臣曰, 禮不云乎, 銘者自名也, 以稱其先祖之德, 而明著之後世, 此孝子孝孫之心也. 先朝締搆之初, 發大誓願, 金純行與若父肩逸, 嘗從事於斯矣. 銘壹稱而上下皆得, 爾宜譔銘. 臣也, 浪跡星槎, 偸香月桂, 虞丘永慟, 季路徒榮, 承命震驚, 撫躬悲咽.
경력 경오년(광계 2년 병오 886, 정강왕1) 봄 신(최치원)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예기》에 말하지 않았는가. ‘銘은 스스로 이름 함이니 그 선조의 덕을 칭찬하여 밝게 후세에 드러내는 것’이라 하니 이는 효자와 효손의 마음이다. 선대에 절을 짓던 처음에 큰 서원을 내었는데 김순행과 너의 아버지 견일이 일찍이 이 일에 종사하였다. 명이 한 번 일컬어지면 상하 모두가 얻을 것이니 너는 마땅히 명을 지으라.”했다. 신은 바다를 건너 중국에 가 정처 없이 떠돌며 月桂에서 향기를 훔쳤으나 우구자의 긴 슬픔을 남겼고, 계로의 헛된 영화만 누릴 뿐이었는데 명을 받들자 두렵고 놀라 몸을 어루만지며(반성하여) 슬픔에 목이 메입니다.
窃思西宦日, 嘗覽柳氏子珪, 錄東國之筆, 所述政條, 莫非王道, 今讀鄕史, 宛是聖祖大王朝事蹟. 抑又流聞, 漢使胡公歸厚之復命也, 飽採風謠, 白時相曰, 自愚已往, 出山西者, 不宜使海東矣. 何則, 鷄林多佳山水, 東王詩以印之而爲贈, 賴愚嘗學, 爲綴韻語, 强忍愧酉守之, 不爾爲海外笑必矣. 君子以爲知言. 是惟烈祖以四術開基, 先王以六經化俗, 豈非貽厥之力. 能得換乎其文, 則銘無愧辭, 筆有餘勇.
삼가 생각해 보니 서쪽(당나라)에서 벼슬할 적에 일찍이 류씨자규(류자규)가 동국(우리나라)의 일을 기록한 것을 보았는데 서술한 바의 정치적 조목이 왕도가 이님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역사를 읽으니 완연히 성조대왕 대의 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전하는 말을 들으니 漢使(중국의 사신) 호귀후가 복명할 적에 風謠를 많이 채집하고는 그 때의 재상에게 말하기를 “제가 간 이후로부터 산서 출신은(무인은) 해동에 사신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계림(신라는)은 아름다운 산수가 많습니다. 동왕(신라왕)이 시를 가지고 (아름다운 산수를)그려내어 주는데, 내가 일찍이 배운 것에 의지하여 운치 있는 말을 엮어 억지로 부끄러움을 참아가며 화답하였습니다만 그렇지 않았다면 해외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했습니다. 군자가 말을 안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오직 烈祖가 시, 서, 예, 악의 四術로서 터를 열었고, 선왕께는 6경을 가지고 풍속을 교화하였으니 어찌 그 자식에게 좋은 계책을 물려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능히 그 문물을 빛나게 하셨으니 곧 명에는 부끄러운 말이 없게 되고, 붓에는 남은 용맹함이 있을 것입니다.
遂敢窺天酌海, 始緝凡詞, 誰知墜月摧峯, 俄興永恨. 旋遇定康大王, 功成遺礪, 韻叶吹篪. 旣嗣守丕圖, 將繼成遺績, 無安厥位, 未喪其文. 而遠逐日弟兄, 據値西山之影, 高憑月姉妹, 永流東海之光.
마침내 감히 하늘을 엿보고 바다를 잔질하여 비로소 평범한 말을 엮어보았는데 오직 달이 떨어지고, 산봉우리가 꺽어지니 홀연히 긴 한만이 일어날 줄 알았겠습니까? 뒤이어 정강대왕이 공을 이루고 남은 숫돌을 가는 것을 만나 불던 저가 운에 합하였습니다. 이미 왕위를 잇고, 큰 계획을 지켜 장차 남은 공적을 이어 이루려 하여 그 자리에서 편안함이 없어 그 글을 마치지 못하였습니다. 멀리 해 같은 형제를 쫒다가 서산의 그림자를 만나니 높은 달 같은 누이에게 의지하여 길이 동해에 빛을 흐르게 하였습니다.
伏惟 大王殿下, 瓊萼聯芳, 璇源激爽, 體英坤德, 纘懿天倫. 諒所謂, 懷神珠, 鍊彩石, 有虧皆補, 無善不修. 故得寶雨金言, 焯然授記, 大雲玉偈, 宛若合符. 且以文考成佛宮, 康王施僧供, 已峻琉璃之界, 未刊琬琰之詞, 申命瑣材, 俾搖柔翰, 臣雖池慚變墨, 而筆忝夢椽, 窃比張融 , 不恨無二王之法, 庶幾曹操, 或解有八字之褒. 設使灰撲塡池, 塵飛漲海, 本枝蔚矣, 齊若木以長榮, 豊石巍然, 對沃焦而卓立. 齋誠拜手, 抆涕援毫, 追蹤華而獻銘曰,
엎드려 생각하건대 대왕전하께서는 왕손(瓊萼)들의 형제가 왕가의 계통이 매우 밝으며, 빼어난 坤德을 체득하여 아름다운 천륜을 이었습니다. 진실로 이른 바 신주를 품고, 고운 빛깔의 돌(彩石)을 불린 것이어서 이지러짐이 있으면 모두 깁고, 좋은 일이라면 잘 닦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보우경》에서 부처님의 말씀(金言)으로 분명하게 수기하였고, 《대운경》의 옥 같은 글이 완연히 부합하는 듯 함을 얻었습니다. 또한 先考 景文大王께서 절을 이룩하셨고, 헌강대왕께서는 스님들께 공양을 베푸시어 이미 유리의 경계를 우뚝하게 하셨으나 아직 아름다운 옥의 말을 펴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재능에게 명을 펴시어 붓을 놀리게 하시니 신(최치원)이 비록 못이 먹물로 변함에 부끄럽고, 붓이 꿈속에 서까래만 함에 욕되나 장융이 두 왕씨의 필법이 없음을 한하지 않음에 가만히 비할 것이며, 조조가 어쩌다가 여덟 글자의 찬사를 풀이 했다는 것에 가까울 것입니다. 설령 재가 부딪혀 못을 메우게 하고, 먼지가 날아 바다를 넘치게 할지라도 근본과 가지(왕실의 후예)는 무성하여 若木과 나란히 오래도록 영광스러울 것이며, 풍성한 비는 빼어나 沃焦를 마주하며 우뚝 서 있을 것입니다. 재계하고 정성으로 손을 모아 절하고 눈물을 닦으며 붓을 당겨 빛나는 자취를 쫓아 명을 지어 올립니다.
迦衛慈王, 嵎夷太陽. 가비라의 부처님은 해 뜨는 곳의 태양이다.
顯于西土, 出自東方. 서토에서 드러내어 동방에서 솟아나왔다.
無遠不照, 有緣者昌. 멀다고 비추지 않음이 없고, 인연이 있는 자가 크게 일어났다.
功崇淨刹, 福蔭冥藏. 정결한 절에 공이 높았고, 복이 왕릉에 미쳤다.
烈烈英祖, 德符命禹. 열열한 英祖께서는 덕이 순임금에 부합하였다.
納于大麓, 奄有下土. 큰 숲에 드시어 문득 하토를 소유하였다.
保我子孫, 爲民父母. 우리 자손을 보존하시어 백성의 부모가 되었다.
根深桃野, 派遠桑浦. 뿌리는 동방에 깊었고, 갈래는 동해에 뻗었다.
蜃紼龍輴, 山園保眞. 상여 줄잡아, 상여를 끌어 진체를 왕릉에 보존한다.
幽堂闢隧, 踊塔遷隣. 무덤의 길을 열고, 절을 이웃으로 옮겼다.
萬歲哀禮, 千生淨因. 영원히 애도하는 예가 되고, 천 번 태어나는 청정 인연되리라.
金田厚利, 玉葉長春. 절은 이로움이 많고, 왕실은 길이 봄을 누리리라.
孝孫淵懿, 昭感天地. 효성스런 자손의 덕이 깊고 아름다워, 천지를 밝게 감동시킨다.
鳳翥龍躍, 金圭合瑞. 봉황이 날아오르고 용이 뛰니 金圭가 상서에 부합한다.
乞靈不昧, 徼福斯至. 신령의 어둡지 않음을 청하고, 복을 맞이하여 여기에 이르렀다.
欲報之德, 剋隆法事. 덕을 갚고자 융성한 불도의 일을 일으켰다.
妙選邦傑, 嚴敦國工. 현묘하게 나라의 인재 가리고, 나라의 장인을 잘 다스려
對農之隙, 成佛之宮. 농한기를 틈타 부처의 궁(절)을 이루었다.
彩檻攢鳳, 雕樑架紅. 채색한 난간에는 봉이 모이고, 아로새긴 들보에는 무지개가 걸렸다.
繚墉雲矗, 繢壁霞融. 둘러친 담장은 구름이 솟아오르듯 하고 수놓은 벽은 노을이 어리었다
盤基爽塏, 觸境蕭灑. 자리한 터전은 앞이 탁 트이고, 보이는 경치는 맑고 깨끗하다
藍峀交聳, 蘭泉迸瀉. 쪽빛 산봉우리 어울려 솟아있고, 향기로운 샘물 솟아난다.
花娓春巖, 月高秋夜. 예쁜 꽃, 아름다운 봄 산, 높이 달뜬 가을밤이라.
雖居海外, 獨秀天下. 비록 海外에 있지만, 천하에 홀로 빼어나구나.
陳耕報德, 隋號興國. 진에서는 보덕이 밭을 갈았고, 隋에서는 나라 일으킬 것 외쳤다
孰與家福, 崇之國力. 어찌 집안의 복이라고만 하랴 국력을 높이심이라.
堂聒妙音, 廚豊淨食. 불당에선 미묘한 소리 나고, 주방에는 풍성하고 정결한 음식 있네
嗣君遺化, 萬劫無極. 임금자리 이어 남긴 덕화, 만겁 동안 다 함이 없으리라.
於鑠媧后, 情敦孝友. 아름답구나 여왕이여! 孝悌의 정이 돈독하다
致媺雁行, 愼徽龍首. 형제 아름답게 이루시고, 王者의 도 삼가하여 훌륭하게 하셨다.
詞恧腐毫, 書慙掣肘. 글은 썩은 붓 놀린 듯 부끄럽고, 글씨는 팔목을 당긴 듯하여 부끄러우나
鰌壑雖渴, 龜珉不朽. 고래, 구렁이 비록 마를지라도 거북 위의 옥돌은 썩지 않으리라.
□□□手 桓蠲等刻
□□□수 환견 등이 새겼다.
출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고대금석문 정병삼 판독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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