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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공부

原道

by 최인표 2018. 8. 27.

1. 이 글은 한유가 노장사상과 불교를 배척하고 유학을 강조한 글이다.


2. 韓愈(768~843) 자는 退之, 등주 남양사람이나 선대가 창려인이라 하여 창려 한유라 자칭했다. 관직은 이부시랑에 이르렀으며 시호를 이라 하여 韓文公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문과 시에 능하고 불교와 도가사상을 배척하며 유학을 존중하였다. 柳宗元과 함께 韓愈라 부르기도 한다. 한유의 글은 기세가 웅대하고 내용이 다양하며 서정적이다. 문집으로 昌黎集41권이 있다.



原道

 

韓愈

博愛之謂仁 行而宜之之謂義 由是而之焉之謂道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 仁與義爲定名 道與德爲虛位 故道有君子小人 而德有凶有吉 老子之小仁義 非毁之也 其見者小也 坐井而觀天 曰天小者 非天小也 彼以煦煦爲仁 孑孑爲義 其小之也則宜 其所謂道 道其所道 非吾所謂道也 其所謂德 德其所德 非吾所謂德也 凡吾所謂道德云者 合仁與義言之也 天下之公言也 老子之所謂道德云者 去仁與義言之也 一人之私言也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이라 하고, 행동하기를 마땅하게 하는 것을 라 하고, 이로 말미암아가는 것을 라 하니 자기에게 충족하여 밖에서 기다리지 않는 것을 이라 한다. 는 이름을 정한 것이요, 虛位(빈자리)가 된다. 그러므로 에는 군자와 소인이 있고, 에는 함과 함이 있으니 노자가 仁義를 작게 여긴 것은 그것()을 헐뜯는(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격식이 적기 때문이다.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는 하늘이 적다고 하는 것은 하늘이 적은 것이 아니라 그가 작은 은혜로서 을 삼고 작은 善行으로서 를 삼았기 때문이니 그것을 작다고 하는 것은 곧 마땅한 것이다. 그가 말한 라는 것은 그가 말한 바의 이고 내가 말한 바의 가 아니며, 그가 말한 바의 은 그가 덕이라고 말한 바의 이니 내가 말한 바의 이 아니다. 무릇 내가 이라고 말한 것은 를 합하여 말한 것이니 천하의 공인된 말이다. 노자가 말한 바의 를 떠나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사사로운 말이다.(개인적인 것이다.)

 

周道衰 孔子沒 火于秦 黃老于漢 佛于晉魏梁隋之間 其言道德仁義者 不入于楊 則入于墨 不入于老 則入于佛 入于彼 必出于此 入者主之 出者奴之 入者附之 出者汙之 噫後之人其欲聞仁義道德之說 孰從而聽之 老子曰 孔子吾師之弟子也 佛者曰 孔子吾師之弟子也 爲孔子者 習聞其說 樂其誕而自小也 亦曰 吾師亦嘗師之云爾 不惟擧之於其口 而又筆之於其書 噫後之人雖欲聞仁義道德之說 其孰從而求之 甚矣 人之好怪也 不求其端 不訊其末 惟怪之欲聞

나라의 가 쇠퇴하고 공자가 죽고, 나라에서 책이 불살라지고 나라에서는 黃老(황제와 노자의 도)가 성행하고, , , , 나라 시대에는 불교가 성행하니 그 道德仁義를 말하는 자들이 楊朱에 들어가지 않으면 墨翟에게 들어가고, 老莊思想에 들어가지 않으면 곧 불교에 들어가 저기로 들어가면 반드시 여기에서 나와 들어가는 자를 주인으로 하고 나오는 자를 종으로 하였다. 들어가는 자는 붙이고 나오는 자는 더럽힌다. ! 後人들이 仁義道德의 말을 듣고자 하나 누구에게서 들을 수 있겠는가? 老子(도가사상가들)가 말하기를 공자는 우리 스승의 제자이다.” 하고 불교인들도 공자는 우리스승의 제자이다.” 하니 공자를 행하는 자(유교사상가)들이 그 말은 익숙하게 듣고 그 허탄함을 즐겨하여 스스로를 작게(하찮게) 여겼다. 또한 말하기를 우리 스승이 또한 우리 스승이 일찍이 그를 스승이라 말하였다.” 하고 그 입에 그것을 거론하지 않으면 그 글에 그것을 쓰니 아! 後人들이 仁義道德의 말을 듣고자 하나 그 누구를 따라서 (들음을)구할 수 있겠는가? 심하구나. 사람들이 괴이함을 좋아하여 그 실마리를 구하지 않고 그 지엽을 묻지 않으며 오직 괴이함만을 듣고자 한다.

 

古之爲民者四 今之爲民者六 古之敎者處其一 今之敎者處其三 農之家一 而食粟之家六 工之家一 而用器之家六 賈之家一 而資焉之家六 奈之何民不窮且盜也 古之時 人之害多矣 有聖人者立 然後敎之以上生相養之道 爲之君 爲之士 驅其蟲蛇禽獸 而處之中士 寒然後爲之衣 飢然後爲之食 木處而顚 土處而病也 然後爲之宮室 爲之工 以贍其器用 爲之賈 以通其有無 爲之醫藥 以濟其夭死 爲之葬埋祭祀 以長其恩愛 爲之禮 以次其先後 爲之樂 以宣其湮鬱 爲之政 以率其怠倦 爲之刑 以鋤其强梗 相欺也 爲之符璽 斗斛權衡以信之 相奪也 爲之城郭甲兵以守之 害至而爲之備 患生而爲之防

옛날의 백성은 네 종류(사농공상)였는데 지금의 백성은 여섯 종류(사농공상과 도사, 불자)이다. 옛날의 가르침은 그 하나(유교)에 두었는데, 지금의 가르침은 셋(, , )을 두었다. 농사짓는 한 가구에 곡식을 먹는 가구가 여섯 가구이고, 장인의 가구 하나에 기구를 쓰는 가구가 여섯 가구이며, 장사하는 가구 하

나에 씀을 취하는 가구가 여섯이니 어떻게 백성들이 궁곤하고 또 도적질 하지 않겠는가. 옛날에는 사람들의 해침이 많았는데 성인을 세움이 있은 후에 그들을 서로 살고, 서로 기름의 도로써 가르치고, 임금이 되고 스승이 되어 벌레와 뱀과 날 짐승과 길짐승을 몰아내고 中土(中原)에 살게 하였다. 추워진 후에는 못을 만들게 하고, 주린 후에는 먹게 하고, 나무에 살다가 엎어지고, 땅에 살다가 병이 든 후에 궁실을 만들게 했다. 장인이 되어 그 기물의 씀을 넉넉하게 하고, 상인이 되어 그 있는 것을 없는 곳에 통하게 하며 의약을 만들어 일찍 죽는 것을 구제하였다. 장례하고 묻으며 제사하는 것으로 은혜와 사랑을 오래하게 하였다. 예를 만들어서 그 선후를 차례하고, 음악을 만들어 금심으로 답답함을 펴주고 정사를 하여 게으름을 다스렸다. 형벌을 만들어 성품이 억세어 굽히지 않는 사람과 서로 속이는 이를 김매듯이 제거하고, 부절과 인장, 양을 측정하는 도구(, 말 등)와 무게를 측정하는 도구(저울)를 만들어 서로 믿게 했다. 서로 빼앗는 것은 성곽과 무장한 군대로 지키게 하여 해침 이르면 대비하고 근심이 생기면 방비하였다.

 

今其言曰 聖人不死 大盜不止 剖斗折衡 而民不爭 鳴呼 其亦不思而已矣 如古之無聖人 人之類滅久矣 何也 無羽鱗介 以居寒熱也 無爪牙以爭食也 是故君者 出令者也 臣者行君之令而致之民者也 民者出粟米麻絲 作器皿通財貨 以事其上者也 君不出令 則失其所以爲君 臣不行君之令而致之民 則失其所以爲臣 民不出束米麻絲 作器皿通財貨以事其上則誅 今其法曰 必棄而君臣 去而父子 禁而相生相養之道 以求其所謂淸淨寂滅者 鳴呼 其亦幸而出於三代之後 不見黜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 其亦不幸而不出於三代之前 不見正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

지금 그 말(주장)에 말하기를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 도적이 그치지 않고, 말을 쪼개고 저울을 꺽어 버리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는다.” 한다. ! 그것이 또한 생각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만약 옛 날에 성인이 없었다면 사람의 종류가 없어진 것이 오래 되었을 것이다. 왜 그러한가? 깃털과 비늘, 껍질이 없어 추위와 뜨거움(더위)에 살았을 것이며, 손톱과 이빨 없이 음식을 다투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임금은 명령을 내는 자이고, 신하는 임금의 명령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는 자이다. 백성은 곡식과 옷감을 내고 그릇을 만들며, 재화를 통하게 하는 것으로써 그 윗사람을 섬기는 자이다. 임금이 명령을 내지 않으면 곧 임금 노릇하는 이유를 잃은 것이고, 신하가 임금의 명령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지 못하게 하면 곧 신하 노릇하는 까닭을 잃은 것이다. 백성들이 곡식과 옷감을 내고, 그릇을 만들고, 재화를 유통시키는 것으로써 그 윗사람을 섬기지 않으면 곧 벤다. 지금 그 법에 말하기를 반드시 임금과 신하를 버리고 부자가 떠나서 서로 도우며 사는 도를 금지 금지하는 것으로써 이른바 淸淨(노장사상) 寂滅(불교사상)을 구해야 한다.” 한다. ! 그것이 또한 요행히도 三代(, , )보다 뒤에 나와서 , , 文王, 武王, 周公, 孔子에게 내침을 당하지 않았고, 그것이 또한 불행하게도 三代(, , )보다 앞서 나오지 않아서 , , 文王, 武王, 周公, 孔子에게 바로잡히지 않았다.

 

帝之與王 其號雖殊 其所以爲聖一 夏葛而冬裘 渴飮而飢食 其事雖殊 其所以爲智一也 今其言曰 曷不爲太古之無事 是亦責冬之裘者曰 曷不爲葛之之易也 責飢之食者曰 曷不爲飮之之易也 傳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然則古之所謂正心而誠意者 將以有爲也 今也欲治其心 而外天下國家 滅其天常 子焉而不父其父 臣焉而不君其君 民焉而不事其事 孔子之作春秋也 諸侯用夷禮則夷之 進於中國則中國之 經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 詩曰 戎狄是膺 荊舒是懲 今也 擧夷狄之法 而加之先王之敎之上 幾何其不胥 而爲夷也

황제와 왕은 그 부르는 이름이 비록 다르지만 성인이 되는 까닭은 하나이다. 여름에 갈옷을 입고, 겨울에 갓옷을 입으며, 목마르면 물마시고 주리면 밥을 먹는 것이 비록 그 일이 비록 다르지만 그 지혜로움이 되는 까닭은 하나이다. 지금 그들이 말하기를 어찌 태고의 무사함을 하지 않는가?” 한다. 이는 또한 겨울에 갓옷을 입은 자를 책망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갈 옷의 쉬움으로 하지 않는가?” 한다. 굶주려서 먹는 자를 책망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물마심의 쉬움을 하지 않는가?”한다. 經傳에 말하기를 옛 날에 천하에 明德을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를 가지런하게 하고, 를 가지런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진실 되게 해야 한다.” 그리하면 곧 옛날의 이른바 마음을 바르게 하여 뜻을 진실 되게 하면 장차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면서도 천하와 국가를 밖으로 돌리고(도외시하고) 그 하늘의 떳떳한 도리를 없애며, 자식은 그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 신하는 그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으며 백성들은 섬겨야 할 것을 섬기지 않는다. 공자가 春秋에 쓰기를 제후가 오랑캐의 예를 쓰면 곧 오랑캐이고, 중국에 나아가면 곧 중국이다.” 했다. 夷狄(오랑캐)에게 임금이 있으나 諸夏(中國)에 없는 것보다 못하다.” 했고, 詩經오랑캐를 이에 정벌하고 의 땅을 징계한다.” 하였는데 지금에는 夷狄(오랑캐)의 법을 들고 선왕의 가르침 위에 더하니 거의 모두 오랑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夫所謂先王之敎者何也 博愛之謂仁 行而宜之之謂義 由是而之焉之謂道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 其文 詩書易春秋 其法禮樂刑政 其民士農工賈 其位君臣父子師友賓主昆弟夫婦 其服麻絲 其居宮室 其食粟米果蔬魚肉 其爲道易明 而其爲敎易行也 是故以之爲己 則順而詳 以之爲人 則愛而公 以之謂心 則和而平 以之爲天下國家 無所處而不當 是故生則得其情 死則盡其常 郊焉而天神假 廟焉而人鬼饗 曰 斯道也何道也

저 이른바 선왕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사랑을 넓게 하는 것을 이라 하고 행하되 마땅하게 하는 것을 라 하고, (인과 의)로 말미암아 그것에로 가는 것을 라 하고, 자기에게 만족하여 (자기)밖에서 (구함을) 기다리지 않는 것을 이라 한다. 그 글로는 시경, 서경, 역경, 춘추이고 그 법에는 禮樂刑政이며, 그 백성들로는 , , , 상인이며, 그 자리로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스승과 벗, 손과 주인, 형제, 부부이며, 그 옷으로는 베옷이며, 그 거처는 궁실이며, 그 먹는 것으로는 조와 쌀과 과일과 채소와 생선과 고기이다. 그 도로 삼음은 쉽고 밝게 하며 그 가르침을 행함에는 행하기 쉽게 한다. 이 때문에 그것으로써 자기를 위하면 곧 히 하고 자세히 하며, 그것으로써 다른 사람을 다스리면 곧 사랑하고 공정하며, 그것으로써 마음 삼으면 곧 하되 공평해지고 그것으로써 천하국가를 다스리면 있는(가는) 곳 마다 마땅하지 않음이 없다. 이 때문에 살아서는 곧 그 에 맞게 하고 죽어서는 그 떳떳한 도리를 다한다. 郊祭를 지내면 천신이 이르고 사당에 제사하면 사람과 귀신이 흠향한다. 말하기를 이 도는 어떠한 도인가?”

曰 斯吾所謂道也 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 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武周公 文武周公傳之孔子 孔子傳之孟軻 軻之死不得其傳焉 荀與揚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祥 由周公而上 上而爲君 故其事行 由周公而下 下而爲臣 故其說長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말하는 도이니 지난번에 말한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이 아니다.” 는 이것을 에게 전하고, 에게 전하고 는 탕에게 전하고 은 문왕과 무왕, 주공에게 전하고 주공은 공자에게 전화고 공자는 맹가()에게 전하였는데 맹가()가 죽으면서 전해지지 못하였다. 순황과 양웅은 거기에서 선택하였으나 정밀하지 못하고 거기에서 말하였으나 자세하지 못하였다. 주공으로부터 위는(이전은) 위에서 임금노릇을 하였기 때문에 그 일이 행하여졌으나 주공아래(이후는)로는 아래에서 신하 노릇하였기 때문에 그 말이 오래하게 되었다.

 

然則如之何而可()也 曰 不塞不流 不止不行 人其人 火其書 廬其居 明先王之道以道之 鰥寡孤獨廢疾者有養也 其亦庶乎 其可也

그러한 즉 어떻게 하여야 옳겠는가? 말하기를 “(도교와 불교를) 막지 않으면 (유학이) 유행하지 못하고, (도교와 불교를) 저지하지 않으면 (유학이) 행해지지 못한다. 그 사람(도사, 승려)을 사람(보통 사람)으로 하고 그 글()을 불사르며, 그 도관과 사찰을 일반 집으로 하고, 선왕의 도를 밝히는 것으로써 인도하여 홀아비, 과부, 고아, 늙어 자식 없는 사람, 불치의 병자를 봉양하는 것이 또한 거의 옳음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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