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一百六
吳王濞列傳第四十六
吳王濞[一]者,高帝兄劉仲之子也。[二]高帝已定天下七年,立劉仲為代王。而匈奴攻代,劉仲不能堅守,棄國亡,閒行[三]走雒陽,自歸天子。天子為骨肉故,不忍致法,廢以為郃陽侯。[四]高帝十一年秋,淮南王英布反,東并荊地,劫其國兵,西度淮,擊楚,高帝自將往誅之。劉仲子沛侯濞年二十,有氣力,以騎將從破布軍蘄西,會甀,[五]布走。荊王劉賈為布所殺,無後。上患吳、會稽輕悍,無壯王以填之,[六]諸子少,乃立濞於沛為吳王,[七]王三郡五十三城。已拜受印,高帝召濞相之,謂曰:「若狀有反相。」心獨悔,業已拜,因拊其背,[八]告曰:「漢後五十年東南有亂者,豈若邪?[九]然天下同姓為一家也,慎無反!」濞頓首曰:「不敢。」
오왕 비는 고제의 형 유중의 아들이다. 고제가 천하를 평정한지 7년 후 유중을 세워 代王으로 삼았다. 유중이 굳게 잘 지키지 못하고 나라를 버리고 도망하여 홀로 다른 길을 따라 낙양으로 달아나 천자에게 돌아갔다. 천자가 骨肉이 된 까닭으로 차마 법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폐하여 합양후를 삼았다. 고제 11년 가을 회남왕 영포가 배반하여 동쪽으로 형 땅을 아우르고, 그 나라의 군대를 빼앗고 서쪽으로 회수를 건너 초를 치니 고제가 스스로 거느리고 가서 베어 죽였다. 유중의 아들 패후 비는 나이 20세로 기력이 있고, 기병을 거느리고 따라가 연포의 군대를 기 땅 서쪽 회추에서 깨트리니 영포가 달아났다. 형왕 유가가 영포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나 후사가 없었다. 천자가 오와 회계가 민첩하고 사나우며 강건한 왕으로서 메울 이가 없고, 여러 아들이 어림을 근심하다 이에 패 땅에 유비를 세워 오왕으로 삼았는데 왕은 3개군, 53성을 다스리게 했다. 이미 오왕에 임명하고 인을 주는데 고제가 비를 불로 그를 보면서 일러 말하기를 “너의 관상이 배반하는 상이 있다.”하고 마음으로는 뉘우치나 왕에 이미 임명하였으므로 그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한에서 50년 후 동남쪽에서 난을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아마도 너일 것이다. 그러나 천하가 성을 같이하여 一家가 되었으니 삼가 배반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했다. 유비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감히 하지 않겠습니다.” 했다.
[一] 索隱案:澎濞字也,音披位反。
[一] 【索隱】 살펴보니 ‘澎’은 유비의 자인데 음은 ‘披’와 ‘位’의 反이다.
[二] 集解徐廣曰:「仲名喜。」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유중의 이름은 ‘희’이다.” 했다.
[三] 索隱謂獨行從他道逃走。閒音紀閑反。
[三] 【索隱】 홀로 다른 길을 따라 달아나는 것을 말한다. ‘閒’의 음은 ‘紀’와 ‘閑’의 反이다.
[四] 索隱地理志馮翊縣名,在郃水之陽。音合。正義郃陽故城在同州河西縣南三十里。
[四] 【索隱】 「지리지」에 풍익현 이름으로 합수의 남쪽에 있다. 음은 ‘合’이다. 【正義】 합양 옛 성은 동주 하서현 남쪽 30리에 있다.
[五] 索隱地名也。在蘄縣之西。會音古兌反。甀音錘。
[五] 【索隱】 땅 이름이다. 기현의 서쪽에 있다. ‘會’의 음은 ‘古’와 ‘兌’의 反이다. ‘甀’의 음은 ‘錘’이다.
[六] 索隱填音鎮。
[六] 【索隱】 ‘塡’의 음은 ‘鎭’이다.
[七] 集解徐廣曰:「十二年十月辛丑。」
[七]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12년 10월 신축이다.” 했다.
[八] 索隱拊音撫。
[八] 【索隱】 ‘拊’의 음은 ‘撫’이다.
[九] 集解徐廣曰:「漢元年至景帝三年反,五十有三年。」駰案:應劭曰「克期五十,占者所知。若秦始皇東巡以厭氣,後劉項起東南,疑當如此耳」。如淳曰「度其貯積足用為難,又吳楚世不賓服」。索隱案:應氏之意,以後五十年東南有亂,本是占氣者所說,高祖素聞此說,自以前難未弭,恐後災更生,故說此言,更以戒濞。如淳之說,亦合事理。
[九]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 원년에서 경제 3년에 이르러 배반하였으니 53년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응소가 말하기를 ‘50년을 넘어서는 것은 점치는 자의 아는 것이다. 만약 진 나라 시황제가 동쪽으로 순수하면서 그 기운을 누르고자 하였는데 뒤에 유방과 항우가 동남쪽에서 일어난 것은 마땅히 이 같은 것을 의심하였을 뿐이다.’” 했다. 여순이 말하기를 “그 쌓인 것을 헤아려 충분히 난을 일으킬 정도가 되고, 또한 오, 초는 대대로 복종하지 않았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응씨의 뜻은 50년 후에 동남쪽에 난이 있을 것이라 하였는데 본래 기운을 점치는 자가 말한 것으로 고조가 평소에 이 말을 들었던 것이며, 이전의 난이 아직 그치지 않았고, 후에 난이 다시 생길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이 말을 하여 다시 유비를 경계한 것이다. 여순의 설이 또한 일에 부합한다.
會孝惠、高后時,天下初定,郡國諸侯各務自拊循其民。吳有豫章郡銅山,[一]濞則招致天下亡命者(益)[盜]鑄錢,煮海水為鹽,以故無賦,國用富饒。[二]
효혜제, 고후 때에 이르러 처하가 처음으로 안정되고 군국의 제후들이 각기 힘써 스스로 그 백성을 어루만져 따르게 하였다. 오에는 예장군에 동산이 있는데 유비가 곧 천하의 도망자를 불러 이르게 하고 몰래 돈을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세금이 없어도 나라의 쓰임이 풍족하였다.
[一] 集解韋昭曰:「今故鄣。」 索隱案:鄣郡後改曰故鄣。或稱「豫章」為衍字也。正義括地志云:「秦兼天下,以為鄣郡,今湖州長城縣西南八十里故章城是也。」 銅山,今宣州及潤州句容縣有,並屬章也。
[一]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지금의 ‘고장’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장군은 후에 고쳐 ‘고장’이라 했다. 혹은 ‘예장’이라 하는데 붙은 글자이다. 【正義】 『괄지지』에 “진 나라가 천하를 겸하고 장군을 두었는데 지금의 호주 장성현 서남쪽 80리 옛 장성이 이것이다.” 했다. ‘동산’은 지금의 선주와 윤주 구용현에 있는데 모두 장군에 속한다.
[二] 集解如淳曰:「鑄錢煮鹽,收其利以足國用,故無賦於民。」 正義按:既盜鑄錢,何以收其利足國之用?吳國之民又何得無賦?如說非也。言吳國山既出銅,民多盜鑄錢,及煮海水為鹽,以山海之利不賦之,故言無賦也。其民無賦,國用乃富饒也。
[二]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돈을 주조하는 것과 소금을 끓여 그 이익을 거두어 나라의 쓰임에 충족하였기 때문에 백성에게 세금이 없었던 것이다.” 했다. 【正義】 살펴보니 이미 몰래 돈을 주조하였지만 어떻게 그 이익을 거두어 나라의 쓰임에 충족할 수 있었겠는가? 오나라의 백성이 또한 어지 세금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잘못 말한 듯하다. 오국의 산이 이미 구리가 나고, 백성들이 많이 몰래 돈을 주조하는 것과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것으로써 산과 바다의 이익으로써 세금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세금이 없었던 것이다. 그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나라의 쓰임이 이에 넉넉하였다.
孝文時,吳太子入見,[一]得侍皇太子飲博。吳太子師傅皆楚人,輕悍,又素驕,博,爭道,不恭,皇太子引博局提吳太子,殺之。[二]於是遣其喪歸葬。至吳,吳王慍[三]曰:「天下同宗,死長安即葬長安,何必來葬為!」復遣喪之長安葬。吳王由此稍失藩臣之禮,稱病不朝。
효문제 때 오의 태자가 들어와 뵈고 황태자를 모시고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두었다. 오의 태자 사부는 모두 초 사람으로 날래고 사나웠으며, 또한 평소 교만하였는데 바둑을 두면서 길을 다투어 공손하지 않으니 황태자가 바둑판을 당겨 오 태자에게 던져 죽였다. 이에 그 喪을 돌려보내 장례하게 하였다. 오에 이르니 오왕이 성내며 말하기를 “천하가 한 집안인데 장안에서 죽었으면 곧 장안에서 죽었으면 곧 장안에서 장례할 것이지 하필 와서 장례하는가!”하고는 다시 상을 보내 장안에서 장례하게하였다. 오왕이 이 때문에 점점 번신의 에를 잃고 병을 핑계로 조회하지 않았다.
京師知其以子故稱病不朝,驗問實不病,諸吳使來,輒繫責治之。吳王恐,為謀滋甚。及後使人為秋請,[四]上復責問吳使者,使者對曰:「王實不病,漢繫治使者數輩,以故遂稱病。且夫『察見淵中魚,不祥』。[五]今王始詐病,及覺,見責急,愈益閉,恐上誅之,計乃無聊。唯上棄之而與更始。」於是天子乃赦吳使者歸之,而賜吳王几杖,老,不朝。吳得釋其罪,謀亦益解。然其居國以銅鹽故,百姓無賦。[六]卒踐更,輒與平賈。[七]歲時存問茂材,賞賜閭里。佗郡國吏欲來捕亡人者,訟共禁弗予。[八]如此者四十餘年,[九]以故能使其眾。
경사(서울)에서 그 아들의 일 때문에 병을 핑계로 조회하지 않음을 알고 시험하고 물어서 실제는 병이 아님을 알고 여러 오 사신이 오자 문득 묶고 질책하며 다스렸다. 오왕이 두려워하여 모의함이 더욱 심하였다. 후에 사람을 시켜 가을 조회를 하였는데 천자가 다시 오의 사신을 질책하니 사자가 대답하기를 “왕은 실제로는 병이 아닌데 한이 사자 여러 무리를 엮어 다스렸기 때문에 마침내 병을 핑계 한 것입니다. 또 저 ‘연 못 안의 물고기를 살펴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합니다. 지금 왕이 처음 거짓으로 병났다 했다가 발각되어 심한 질책을 당하여 더욱 닫고, 천자가 죽일 것을 두려워함에 이르면 계책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오직 천자께서 그것을 버리고 더불어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했다. 이에 천자가 곧 오의 사자를 풀어주어 돌아갈 수 있게 하고, 오왕에게 안석과 지팡이를 내리고 늙어 조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오가 그 죄가 풀리니 모의하는 것을 또한 더욱 풀었다. 그러나 그 나라에 있는 구리와 소금의 일 때문에 백성은 세금이 없었다. 병졸 중에 스스로 가서 병졸이 된 경우에 돈을 주었다. 새해 첫머리에는 안부를 묻고 인재를 무성히 하고, 마을에 상을 내렸다. 다른 군국의 관리들이 와서 도망한 사람을 잡아가려 하면 용모를 보는 것만으로는 금지하고 주지 않았다. 이 같이 한 것이 40여년 하였기 때문에 그 무리를 잘 부릴 수 있었다.
[一] 索隱姚氏案:楚漢春秋云「吳太子名賢,字德明」。
[一] 【索隱】 요씨가 살펴보니 『초한춘추』에 “오 태자의 이름은 ‘賢’이니 자는 ‘덕명’이다.” 했다.
[二] 索隱提音啼,又音底,又音弟。
[二] 【索隱】 ‘提’의 음은 ‘諦’이고 또 음은 ‘底’이고, 또 음은 ‘齊’이다.
[三] 正義於問反,怨也。
[三] 【正義】 ‘於’와 ‘問’의 反이니 원망함이다.
[四] 集解應劭曰:「冬當斷獄,秋先請擇其輕重也。」孟康曰:「律,春曰朝,秋曰請,如古諸侯朝聘也。」如淳曰:「濞不得行,使人代己致請禮也。」 索隱音淨。孟說是也。應劭所云斷獄先請,不知何憑。如淳云代己致請,亦是臆說。且文云「使人為秋請」,謂使人為此秋請之禮也。
[四] 【集解】 응소가 말하기를 “겨울에는 마땅히 옥사를 결단하는데 가을에 먼저 그 죄의 輕重을 가를 것을 청한다.” 했다. 맹강이 말하기를 “‘律’에 봄을 ‘朝’라 하고, 가을을 ‘請’이라 하는데 옛 날 제후들이 朝聘하는 것과 같다.” 했다. 여순이 말하기를 “유비가 갈 수 없으므로 사람을 시켜 자기를 대신하여 가을 조빙의 예를 이르게 한 것이다.” 했다. 【索隱】 음은 ‘淨’이다. 맹강의 말이 옳다. 응소가 말한 옥을 결단하는데 먼저 청한다. 한 것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여순이 자기를 대신하여 청의 예를 지극히 한다. 한 것 또한 억측한 말이다. 또 글에 “사람을 시켜 가을의 조빙을 한다.” 한 것은 사람을 시켜 이 秋請의 예를 한 것을 말한다.
[五] 集解張晏曰:「喻人君不當見盡下之私。」 索隱案:此語見韓子及文子。韋昭曰「知臣下陰私,使憂患生變,為不祥。故當赦宥,使自新也」。
[五]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임금된 이가 아랫사람의 사사로움보기를 다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아눈 한자와 문자를 만나 말한 것이다. 위소가 말하기를 “신하의 숨겨진 사사로움을 알면 근심하게 하여 변란이 생기니 상서롭지 않음이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용서하고 스스로 새롭게 해야 한다.” 했다.
[六] 索隱按:吳國有鑄錢煮鹽之利,故百姓不別徭賦也。
[六] 【索隱】 살펴보니 오국은 돈을 주조하고 소금을 끓이는 이익이 있었기 때문에 백성이 별도의 요역과 부역을 하지 않는 것이다.
[七] 集解漢書音義曰:「以當為更卒,出錢三百文,謂之『過更』。自行為卒,謂之『踐更』。吳王欲得民心,為卒者顧其庸,隨時月與平賈,如漢桓、靈時有所興作,以少府錢借民比也。」 索隱案:漢律,卒更有三,踐更、居更、過更也。此言踐更輒與平賈者,謂為踐更合自出錢,今王欲得人心。乃與平賈,官讎之也。正義踐更,若今唱更、行更者也,言民自著卒。更有三品:有卒更,有踐更,有過更。古者正卒無常人,皆當迭為之,是為卒更。貧者欲顧更錢者,次直者出錢顧之,月二千,是為踐更。天下人皆直戍邊三月,亦各為更,律所謂繇戍也。雖丞相子亦在戍邊之調,不可人人自行三月戍,又行者出錢三百入官,官給戍者,是為過更。此漢初因秦法而行之,後改為謫,乃戍邊一歲。
[七] 【集解】 「한서음의」에 “‘更卒’이 됨에 해당하면 돈 300문을 내는데 이것을 ‘過更’이라 한다. 스스로 가서 병졸이 되는 것을 ‘踐更’이라 한다. 오왕이 백성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병졸이 되는 자는 그 품삯을 돌아보고 때와 월에 따라 ‘平賈’를 주었는데 한 환제, 영제 때 일을 일으킴이 있으면 소부의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견주어진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한나라 ‘律’에 병졸을 바꾸는 경우가 셋이니 ‘천경’, ‘거경’, ‘과겅’이다. 여기서 ‘천경’에 문득 ‘평가’를 주었다 말한 것은 ‘천경’을 함에 스스로 돈을 내는 것이 부합함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 왕은 인심을 얻고자 하였다. 이에 ‘평가’를 주면 관이 그것을 주었다. 【正義】 ‘踐更’은 지금의 ‘唱更’, ‘行更’과 같은 것이니 백성들이 스스로 병졸에 붙이는 것이다. ‘更’은 삼품이 있으니 ‘卒更’이 있고, ‘踐更’이 있고, ‘過경’이 있다. 옛 날에는 ‘正卒’은 항상하는 사람이 없고, 모두 마땅히 교대로 그것을 하였으니 이가 ‘卒更’이 된다. 가난한 자가 ‘更錢’을 돌아보고자 하는 자이고, 다음 담당이 돈을 내고 그것을 돌아보는데 월 이천으로 이것이 ‘踐更’이 된다.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곧바로 변경에서 수자리를 3개월 하는 데 각각 ‘更’이 되고, ‘律’에 이른바 ‘繇戍’이다. 비록 승상의 아들일지라도 또한 변경을 지키는 뽑힘이 있으면 사람들이 스스로 3개월을 지킬 수 없고, 또 행하는 자가 돈 300을 내어 관에 들이면 관이 지키는 자에게 주니 이것을 ‘過更’이라 한다. 이는 한나라 초에 진나라 법으로 인하여 행하다 후에 고쳐 ‘謫’이라 하였는데 곧 변경을 1년동안 지키게 하였다.
[八] 集解徐廣曰:「訟音松。」駰按:如淳曰「訟,公也」。正義訟音容。言其相容禁止不與也。
[八]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訟’의 음은 ‘松’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여순이 말하기를 “‘訟’은 ‘公’이다.” 했다. 【正義】 ‘訟’의 음은 ‘容’이다. 그 용모를 보고, 금지하여 주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九] 正義言四十餘年者,太史公盡言吳王一代行事也。漢書作「三十餘年」,而班固見其語在孝文之代,乃減十年,是班固不曉其理也。
[九] 【正義】 40여년이라 말한 것은 태사공이 오왕 한 대에 일을 행한 것을 모두 말한 것이다. 『한서』에는 “30여년”이라 썼는데 반고는 그 말이 효문제의 대에 있음을 보고 10년을 줄였으니 이는 반고가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晁錯為太子家令,得幸太子,數從容言吳過可削。數上書說孝文帝,文帝寬,不忍罰,以此吳日益橫。及孝景帝即位,錯為御史大夫,說上曰:「昔高帝初定天下,昆弟少,諸子弱,大封同姓,故王孽子悼惠王王齊七十餘城,庶弟元王王楚四十餘城,兄子濞王吳五十餘城:封三庶孽,分天下半。今吳王前有太子之郄,詐稱病不朝,於古法當誅,文帝弗忍,因賜几杖。德至厚,當改過自新。乃益驕溢,即山[一]鑄錢,煮海水為鹽,誘天下亡人,謀作亂。今削之亦反,不削之亦反。削之,其反亟,禍小;不削,反遲,禍大。」三年冬,楚王朝,晁錯因言楚王戊往年為薄太后服,私姦服舍,[二]請誅之。詔赦,罰削東海郡。因削吳之豫章郡、會稽郡。及前二年趙王有罪,削其河閒郡。[三]膠西王卬以賣爵有姦,削其六縣。
조착이 태자의 가령이 되어 태자의 총애를 얻고 여러 번 조용히 오의 허물로 깍을 만하다고 말하였다, 여러 번 글을 올려 효문제를 설득하였는데 문제가 너그러워 차마 벌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오가 날로 더욱 함부로 하였다. 효경제가 즉위하자 조착이 어사대부가 되어 경제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옛날 고제께서 처음 천하를 평정하였을 때 형제는 적고, 여러 아들은 약하여 크게 같은 성을 봉하였기 때문에 왕의 얼자 도혜왕이 제의 70여성에서 왕 노릇하였고, 서제 원왕은 초의 40여성에서 왕 노릇 하였으며, 영의 아들 유비는 오의 50여개 성에서 왕 노릇하여 세 서얼을 봉한 것이 천하의 반을 나누었습니다. 지금 오왕은 앞서 태자와 틈이 있어 거짓으로 병을 핑계하고 조회하지 않으니 옛 법에 베어 죽임에 해당하는 데도 안석과 지팡이를 내렸습니다. 덕은 지극히 두터이하고, 허물은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에 더욱 교만하고 넘쳐 곧 산에서는 돈을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며 천하의 도망한 사람을 유인하여 난을 일으킬 것을 꾸밉니다. 지금은 그것을 깍아도 또한 배반하고, 각지 않아도 또한 배반합니다. 그것을 깍으면 배반함은 자주하지만 화는 적고, 깍지 않으면 배반함은 더디나 화는 큽니다. 했다. 3년 겨울 초왕이 조회하니 조착이 초왕 무가 지난 해 박태후를 위하여 상복을 입었을 때 사사로이 궁중에서 궁녀와 간음하였으니 죽일 것을 청합니다.하고 말했다. 조칙으로 용서하고 벌로 동해군을 깍았다. 인하여 오의 예장군, 회계군을 빼앗았다. 앞서 2년에 조왕이 죄을 지어 하간군이 깍였다. 쇼서왕 앙이 관작을 팔고, 간음하였으므로 그 6개현을 깍았다.
[一] 索隱案:即山,山名。又即者,就也。
[一] 【索隱】 살펴보니 ‘即山’은 산 이름이다. 또 ‘即’은 나아감이다.
[二] 集解服虔曰:「服舍,在喪次,而私姦宮中也。」
[二] 【集解】 복건이 말하기를 “‘服舍’는 상주가 거처하는 곳에 있으면서 사사로이 궁중에서 간음함이다.” 했다.
[三] 索隱案:漢書作「常山郡」也。
[三] 【索隱】 살펴보니 『한서』에는 “상산군”이라 썼다.
漢廷臣方議削吳。吳王濞恐削地無已,因以此發謀,欲舉事。念諸侯無足與計謀者,聞膠西王勇,好氣,喜兵,諸齊[一]皆憚畏,於是乃使中大夫應高誂[二]膠西王。無文書,口報曰:「吳王不肖,有宿夕之憂,不敢自外,使喻其驩心。」王曰:「何以教之?」高曰:「今者主上興於姦,飾於邪臣,好小善,聽讒賊,擅變更律令,侵奪諸侯之地,徵求滋多,誅罰良善,日以益甚。里語有之,『舐糠及米』。[三]吳與膠西,知名諸侯也,一時見察,恐不得安肆矣。吳王身有內病,不能朝請二十餘年,嘗患見疑,無以自白,今脅肩累足,猶懼不見釋。竊聞大王以爵事有適,[四]所聞諸侯削地,罪不至此,此恐不得削地而已。」王曰:「然,有之。子將柰何?」高曰:「同惡相助,同好相留,同情相成,同欲相趨,同利相死。今吳王自以為與大王同憂,願因時循理,棄軀以除患害於天下,億亦可乎?」王瞿然駭曰:[五]「寡人何敢如是?今主上雖急,固有死耳,安得不戴?」高曰:「御史大夫晁錯,熒惑天子,侵奪諸侯,蔽忠塞賢,朝廷疾怨,諸侯皆有倍畔之意,人事極矣。彗星出,蝗蟲數起,此萬世一時,而愁勞聖人之所以起也。[六]故吳王欲內以晁錯為討,外隨大王後車,彷徉天下,所鄉者降,所指者下,天下莫敢不服。大王誠幸而許之一言,則吳王率楚王略函谷關,守滎陽敖倉之粟,距漢兵。治次舍,須大王。大王有幸而臨之,則天下可并,兩主分割,不亦可乎?」王曰:「善。」高歸報吳王,吳王猶恐其不與,乃身自為使,使於膠西,面結之。
한의 조정 신하들이 오를 깍을 것을 논의하였다. 오왕 비가 땅을 깍음이 그침이 없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 때문에 의하여 일을 일으키려 하였다. 제후들 중에 충분히 함께 도모할 자가 없다 생각하였는데 교서왕이 용맹하고, 기세를 좋아하고, 병기를 좋아하여 여러 제가 모두 꺼리고 두려워한다는 것을 들었다. 이에 중대부 응고로 하여금 교서왕을 회유하게 하였다. 문서 없이 입으로 보고하여 말하기를 “오왕이 현명하지 못하여 잠간의 근심이 있으나 감히 그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저로 하여금 그 환심을 깨우치게 하였습니다.” 했다. 교서왕이 말하기를 “무엇으로 가르치려는가?” 하니 응고가 말하기를 “지금 황제께서는 간사함을 흥기시키시고, 삿된 신하에게 덮여져서 작은 선행을 좋아하고 참언하는 도적의 말을 들으며 함부로 율령을 고치며 제후의 땅을 빼앗으며 요구하는 것이 많고, 선량한 사람을 죽이고 벌주는 것이 날로 더욱 심합니다. 속담에 ‘겨를 핥으면 쌀에 이른다.’합니다. 오와 교서는 이름을 제후들이 알고 있는데 한 때라도 감찰을 당하면 편안함을 얻을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오왕은 몸에 속병이 있어 조회하지 못한지 20여년인데 일찍이 병을 의심 받았으나 스스로 밝힐 수 없었고, 지금 어개를 움츠리고 발을 오그리고 있지만 오히려 용서받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들으니 대왕께서는 爵의 일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 하고, 제후들의 땅을 깍을 것이라 하는데 죄는 여기에 이르지 않으나 이는 아마도 땅을 깍는데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교서왕이 말하기를 “그러함이 있었다. 그대는 장차 어찌하려는가?” 하니 응고가 말하기를 “미워하는 것이 같으면 서로 돕고, 좋아함이 같으면 서로 머물며, 실정이 같으면 서로 이루고, 하고자 함이 같으면 서로 달려가며 이익을 같이 하면 서로 죽습니다. 지금 오왕이 스스로 대왕과 근심을 함께하시니 시세로 인하여 이치를 따르고 몸을 버리는 것으로써 천하에 근심과 해침을 제거하는 것이 또한 옳은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했다. 교서왕이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과인이 어찌 감히 이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천자가 비록 다급하게 한다면 진실로 죽음이 있을 뿐 어찌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했다. 응고가 말하기를 “어사대부 조착은 천자를 미혹하게 하고 제후를 침탈하며 충신을 가리고 현명한 이를 막으니 조정이 미워하고 원망하여 제후들이 모두 배반의 뜻이 있으니 사람의 일이 극에 이른 것입니다. 혜성이 나타나고 메뚜기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만대의 한번 일어나는 것으로 근심하고 수고로우니 성인이 일어나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오왕이 안으로 조착을 토벌하고자 하고 밖으로 대왕의 수레 뒤를 따라 천하를 두루 돌아다녀 향하는 곳은 항복하고 가리키는 것은 함락하여 천하가 감히 항복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용행히 한 마디 말로 허락하신다면 곧 오왕은 초왕을 거느리고 함곡관을 점령하여 형양과 오창의 곡식을 지키며 한의 군대를 막을 것입니다. 군영을 두고서 대왕을 기다립니다. 대왕께서 요행히 그것을 대하신다면 곧 천하를 아우를 수 있고, 두 임금(오왕과 교서왕)이 나누는 것이 또한 옿ㄹ지 않겠습니까? 했다. 교서왕이 말하기를 “좋다.” 했다. 응고가 돌아가 오왕에게 보고하니 오왕이 오히려 그가 함께 하지 않음을 두려워하여 이에 자신이 스스로 사신이 되어 교서에 가서 얼굴을 맞대고 그것을 맺었다.
[一] 集解韋昭曰:「故為齊分為國者膠東、濟北之屬。」
[一]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옛 날 제를 나누어 나라로 한 것이 ‘교동’, ‘제북’ 등이다.” 했다.
[二] 索隱音徒鳥反。
[二] 【索隱】 ‘음은 ’徒‘와 ’鳥‘의 反이다.
[三] 索隱案:言舐糠盡則至米,謂削土盡則至滅國也。
[三] 【索隱】 살펴보니 겨 빨기를 다하면 곧 쌀에 이름을 말하여 땅을 각기를 다하면 곧 나라를 없앰이 이름을 말한 것이다.
[四] 正義張革反。
[四] 【正義】 ‘張’과 ‘革’의 反이다.
[五] 索隱劉氏瞿音九具反。又說文云「瞿,遠視貌」。音九縛反。
[五] 【索隱】 유씨는 “‘瞿(볼 구)’의 음은 ‘九’와 ‘具’의 反이다.” 했고, 또 『설문』에 “‘瞿’는 멀리 보는 모양.”이라 했다. 음은 ‘九’와 ‘縛(묶을 박)’의 反이다.
[六] 索隱案:所謂「殷憂以啟明聖」也。
[六] 【索隱】 살펴보니 이른바 “은나라가 어지러워지니 밝은 성인에게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膠西群臣或聞王謀,諫曰:「承一帝,至樂也。今大王與吳西鄉,弟令事成,兩主分爭,患乃始結。諸侯之地不足為漢郡什二,而為畔逆以憂太后,非長策也。」[一]王弗聽。遂發使約齊、菑川、膠東、濟南、濟北,皆許諾,而曰「城陽景王有義,攻諸呂,勿與,事定分之耳」。[二]
교서왕의 여러 신하들이 혹 왕이 도모하는 것을 듣고 간하여 말하기를 “한 황제를 공경하면 즐거움이 이릅니다. 지금 대왕과 오가 함께 서쪽을 향하여 가령 일이 이루어진다 해도 두 임금이 나누어 다투면 근심이 이에 처음 맺어지게 됩니다. 제후의 땅은 한의 군 10 중에 둘에 충분하지 않고 배반하고 거스르는 것으로서 태후를 근심하게 하는 것은 장구한 계책이 아닙니다.” 했다. 왕이 듣지 않았다. 마침내 사신을 내어 제, 치천, 교동, 제남, 제북과 약속하니 모두 허락하고, 말하기를 “성양의 경왕은 의리가 있어 여러 여씨를 공격하였으니 함께 하지 말고 일이 정해지면 그것을 나눌 뿐이다.” 했다.
[一] 集解文穎曰:「王之太后也。」
[一] 【集解】 문영이 말하기를 “왕의 태후이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爾時城陽恭王喜,景王之子。」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이 때 성양 공왕 희는 경왕의 아들이다.” 했다.
諸侯既新削罰,振恐,多怨晁錯。及削吳會稽、豫章郡書至,則吳王先起兵,膠西正月丙午誅漢吏二千石以下,膠東、菑川、濟南、楚、趙亦然,遂發兵西。齊王後悔,飲藥自殺,畔約。濟北王城壞未完,其郎中令劫守其王,不得發兵。膠西為渠率,膠東、菑川、濟南共攻圍臨菑。趙王遂亦反,陰使匈奴與連兵。
제후들이 새로이 땅을 깍고 벌하자 몹시 두려워하면서 많이 조착을 원망하였다. 오의 회계, 예장군을 깍는다는 글이 이르자 오왕이 먼저 군대를 일으키고 교서왕이 정월 병오일에 한의 관리로 봉록이 2천석 이하를 죽였는데 교동, 치천, 제남, 초, 조가 또한 그렇게 하고, 마침내 군대를 동원하여 서쪽을 향하였다. 제왕이 뒤에 뉘우치고 약을 마시고 스스로 죽어 약속을 배반하였다. 제북왕은 성이 무너져 완성되지 않았는데 그 낭중령이 그 왕을 겁주고 지키라 하니 군대를 일으킬 수 없었다. 교서왕이 우두머리가 되어 거느리고 교동, 치천, 제남이 함게 임치를 공격하고 포위하였다. 조왕이 마침내 또한 배반하고 몰래 흉노에 사신을 보내 함께 군대를 잇게 하였다.
七國之發也,吳王悉其士卒,下令國中曰:「寡人年六十二[一],身自將。少子年十四,亦為士卒先。諸年上與寡人比,下與少子等者,皆發。」發二十餘萬人。南使閩越、東越,東越亦發兵從。
7국이 군대를 일으키자 오왕이 그 사졸을 다하려고 나라 안에 명을 내려 말하기를 “과인의 나이 62세로 몸소 장군이 될 것이고, 작은 아들의 나이는 14세로 또 사졸의 선봉이 될 것이다. 여러 나이 중에 위로는 과인과 같거나 아래로 작은 아들과 같은 이는 모두 동원할 것이다.” 하고 20여만 명을 동원하였다. 남쪽으로 민월, 동월에 사신을 보냈는데 동월이 또한 군대를 일으켜 따랐다.
[一] 集解徐廣曰:「吳王封吳四十二年矣。」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오왕이 오에 봉해진지 42년이었다.” 했다.
孝景帝三年正月甲子,初起兵於廣陵。[一]西涉淮,因并楚兵。發使遺諸侯書曰:「吳王劉濞敬問膠西王、膠東王、菑川王、濟南王、趙王、楚王、淮南王、衡山王、廬江王、故長沙王子:[二] 幸教寡人!以漢有賊臣,無功天下,侵奪諸侯地,使吏劾繫訊治,以僇辱之為故,[三]不以諸侯人君禮遇劉氏骨肉,絕先帝功臣,進任姦宄,詿亂天下,[四]欲危社稷。陛下多病志失,不能省察。欲舉兵誅之,謹聞教。敝國雖狹,地方三千里;人雖少,精兵可具五十萬。寡人素事南越三十餘年,其王君皆不辭分其卒以隨寡人,又可得三十餘萬。寡人雖不肖,願以身從諸王。越直[五]長沙者,[六]因王子定長沙以北,[七]西走蜀、漢中。[八]告越、[九]楚王、淮南三王,與寡人西面;[一0]齊諸王與趙王定河閒、河內,或入臨晉關,[一一]或與寡人會雒陽;燕王、趙王固與胡王有約,燕王北定代、雲中,摶胡眾[一二]入蕭關,[一三]走長安,匡正天子,以安高廟。願王勉之。楚元王子、淮南三王或不沐洗十餘年,怨入骨髓,欲一有所出之久矣,寡人未得諸王之意,未敢聽。今諸王苟能存亡繼絕,振弱伐暴,以安劉氏,社稷之所願也。敝國雖貧,寡人節衣食之用,積金錢,脩兵革,聚穀食,夜以繼日,三十餘年矣。凡為此,願諸王勉用之。能斬捕大將者,賜金五千斤,封萬戶;列將,三千斤,封五千戶;裨將,二千斤,封二千戶;二千石,千斤,封千戶;千石,五百斤,封五百戶:皆為列侯。其以軍若城邑降者,卒萬人,邑萬戶,如得大將;人戶五千,如得列將;人戶三千,如得裨將;人戶千,如得二千石;其小吏皆以差次受爵金。佗封賜皆倍軍法[一四]。其有故爵邑者,更益勿因。願諸王明以令士大夫,弗敢欺也。寡人金錢在天下者往往而有,非必取於吳,諸王日夜用之弗能盡。有當賜者告寡人,寡人且往遺之。敬以聞。」
효경제 3년 정월 갑자일에 처음 광릉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서쪽으로 회수를 건너 초의 군대를 병합하였다. 사신을 내어 글을 보내 말하기를 “오왕 유비는 공경히 교서왕, 교동왕, 치천왕, 제남왕, 조왕, 초왕, 회남왕, 형산왕, 여강왕, 돌아가신 장사왕의 아들에게 묻습니다. 과인을 가르쳐 주십시오! 한에 賊臣이 있는데 천하에 공이 없고, 제후의 땅을 침탈하고 관리로 하여금 탄핵하고 묶으며 심문하고 다스려 욕을 보이고, 제후와 왕의 예로 유씨의 골육을 대우하지 않으며, 선제의 공신을 끊고 나아가 간사한 도둑에게 맡겨 천하를 그르치고 어지럽혀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합니다. 폐하께서는 병이 많고 뜻을 잃어 잘 살피지 못합니다. 군대를 일으켜 誅伐하고자 하니 삼가 가르침을 듣고자 합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좁아 땅이 4방 3천리이고, 사람이 비록 적으나 정예 군대가 50만을 갖추었습니다. 과인이 평소 남월을 섬김 것이 30년이고, 그 왕과 군이 모두사양하지 않고 그 병졸을 나누어 과인을 따르니 또한 30여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과인이 비록 현명하지 않으나 몸소 여러 왕들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월이 곧 바로 장사에 접한 것은 왕자가 장사 이북을 평정하고, 서쪽으로 촉과 한중으로 달리십시오. 월과 초왕, 회남왕의 세 왕은 과인과 함께 서쪽을 향하고, 제의 여러 왕과 조왕운 하간, 하내를 평정하고 혹은 임진관으로 들어가고, 혹은 과인과 낙양에서 만나고, 연왕, 조왕은 胡王과 굳은 약속이 있으니 연왕은 북쪽으로 대와 운중을 평정하고 胡의 무리를 모아 소관에 들어가 장안에 들어가 천자를 바로잡아 高廟를 편안히 하십시오. 왕들께서 힘쓰시기를 원합니다. 초의 원왕자, 회남 三王은 혹 씻어내지 못한 10여년에 원한이 골수에 들어가 한 번 내는 바가 있고자 한 것이 오래였는데 과인이 여러 왕들의 뜻을 얻지 못하여 감히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제금 여러 왕들께서 만약 망한 것을 보존하고, 끊어진 것을 이으며, 약한 것을 떨치게 하고 사나움을 쳐서 유씨를 편안히 하는 것은 사직의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가난하여 과이니 의식의 씀을 절약하고, 금전을 쌓으며, 군대와 무기를 수선하고, 곡식을 모으기를 밤으로서 낮을 이은 것이 30여년이었습니다. 무릇 이렇게 하였으니 여러 왕께서는 힘써 그것을 사용하십시오. 대장의 머리를 베고 잡은 자는 금 오천 근을 내리고, 만호에 봉하고, 열장을 죽이거나 잡은 자는 금 삼천 근을 내리고 오천호에 봉하며, 비장을 죽이거나 잡은 자는 금 이천 근을 내리고 이천 호에 봉하며, 봉록 2천석 장군을 죽이거나 잡은 자는 금 천근을 내리고 천호에 봉하며, 봉록 천석 장군을 죽이거나 잡은 자는 금 오백근을 내리고 오백호에 봉하고 모두 열후를 삼을 것이다. 그 군대로써 만약 성읍을 가지고 항복하는 자로 병졸 만 명, 읍 만호는 대장을 얻은 것과 같이하고, 人戶 5천은 열장을 얻은 것과 같이 하고, 人戶 3천은 비장을 얻은 것과 같이하고 人戶 천은 2천석을 얻은 것과 같이하고, 그 하급 관리는 모두 차등 있게 차례로 금을 받을 것입니다. 기타 봉하고 내리는 것은 군법의 배로 할 것입니다. 그 옛 작과 읍을 소유한자는 다시 더하고 겹치지 않게 하겠습니다. 여러 왕께서는 분명히 하여 사대부로 하여금 감히 속임이 없게 할 것을 원합니다. 과인의 금전은 천하에 있는데 가는 곳마다 있어 반드시 오에서 취할 필요는 없으니 여러 왕께서는 밤낮으로 그것을 써도 다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내려야 할 자가 있다면 과인에게 알리면 과인이 또한 가서 줄 것입니다. 공경하며 알립니다.” 했다.
[一] 集解徐廣曰:「荊王劉賈都吳,吳王移廣陵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형왕 유가는 오에 도읍하였는데 오왕이 광릉으로 옮겼다.
[二] 集解徐廣曰:「吳芮之玄孫靖王著,以文帝七年卒,無嗣,國除。」駰案:如淳曰「吳芮後四世無子,國除。庶子二人為列侯,不得嗣王,志將不滿,故誘與之反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오예의 현손 정왕 착은 문제 7년에 죽었는데 후사가 없어 나라를 없앴다.” 배인이 살펴보니 여순이 말하기를 “오예의 뒤 4대에 아들이 없어 나라를 없앴다. 서자 두 사람이 열후가 되었으나 왕을 잇지 못하여 뜻에 만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인하여 함께 배반한 것이다.” 했다.
[三] 集解漢書音義曰:「故,事也。」 正義按:專以僇辱諸侯為事。
[三] 【集解】 『한서음의』에 “‘故’는 일이다.” 했다. 【正義】 살펴보니 오로지 제후를 욕보이는 것으로써 일을 삼았다.
[四] 正義詿音挂。
[四] 【正義】 ‘詿(그르칠 괘)’의 음은 ‘掛’이다.
[五] 集解音值。
[五] 【集解】 음은 ‘値(값 치)’이다.
[六] 索隱服虔云:「直音值。謂其境相接也。」
[六] 【索隱】 복건이 말하기를 “‘直’의 음은 ‘値’이다. 그 경계가 서로 접함을 말한다.” 했다.
[七] 集解如淳曰;「南越直長沙者,因王子定也。」 索隱案:謂南越之地與長沙地相接。值者,因長沙王子以定長沙以北也。
[七]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남월이 장사에 서로 접하였기 때문에 왕자가 평정하는 것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남월의 땅과 장사의 땅이 서러 접하였음을 말한다. ‘値’는 장사왕 아들로서 장사 이북을 평정하게 한 것이다.
[八] 正義走音奏,向也。王子,長沙王子也。南越之地對長沙之南者,其民因王子卒而鎮定長沙以北,西向蜀及漢中,咸委王子定矣。
[八] 【正義】 ‘走’의 음은 ‘奏’인데 향함이다. 왕자는 장사왕의 아들이다. 남월의 땅이 장사의 남쪽에 접한 것은 그 백성들이 왕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장사 이북을 평정하고 서쪽으로 촉과 한중을 향하여 모두 왕자가 평정 한 것에 맡겨진 것이다.
[九] 集解如淳曰:「告東越使定之。」
[九]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동월에 고하여 그들을 평정하게 한 것이다.” 했다.
[一0] 正義越,東越也。又告東越、楚、淮南三王,與吳王共西面擊之。三王謂淮南、衡山、廬江也。
[一0] 【正義】 동월이다. 도 동월, 초, 회남왕 세 왕이 오왕과 함께 서쪽을 향하여 그들을 치게 한 것이다. 세왕은 회남, 형산, 여강왕이다.
[一一] 正義今蒲津關。
[一一] 【正義】 지금의 포진관이다.
[一二] 索隱摶音專。專謂專統領胡兵也。
[一二] 【索隱】 ‘搏’의 음은 ‘專’이다. ‘專’은 오로지 호병을 관할하여 거느리는 것을 말한다.
[一三] 正義今名隴山關,在原州平涼縣界。
[一三] 【正義】 지금의 이름은 농산관으로 원주 평량현 경계에 있다.
[一四] 集解服虔曰:「封賜倍漢之常法。」
[一四] 【集解】 복건이 말하기를 “봉하고 내리는 것을 한의 방법보다 두 배로 한 것이다.” 했다.
七國反書聞天子,天子乃遣太尉條侯周亞夫將三十六將軍,往擊吳楚;遣曲周侯酈寄擊趙;將軍欒布擊齊;大將軍竇嬰屯滎陽,監齊趙兵。
7국이 배반했다는 것을 천자가 글로 듣고 천자는 이에 태위 조후 주아부에게 36명의 장군을 거느리게 하고 가서 오, 초를 치게 하였는데 곡주후 역기는 조를 치게하고, 장군 난포는 제를 치게 하고, 대장군 두영을 형양에 주둔하게 하여 제와 조의 군대를 감시하게 했다.
吳楚反書聞,兵未發,竇嬰未行,言故吳相袁盎。盎時家居,詔召入見。上方與晁錯調兵笇軍食,上問袁盎曰:「君嘗為吳相,知吳臣田祿伯為人乎?今吳楚反,於公何如?」對曰:「不足憂也,今破矣。」上曰:「吳王即山鑄錢,煮海水為鹽,誘天下豪桀,白頭舉事。若此,其計不百全,豈發乎?何以言其無能為也?」袁盎對曰:「吳有銅鹽利則有之,安得豪桀而誘之!誠令吳得豪桀,亦且輔王為義,不反矣。吳所誘皆無賴子弟,亡命鑄錢姦人,故相率以反。」晁錯曰:「袁盎策之善。」上問曰:「計安出?」盎對曰:「願屏左右。」上屏人,獨錯在。盎曰:「臣所言,人臣不得知也。」乃屏錯。錯趨避東廂,恨甚。
오와 초가 배반하였다는 글을 듣고 군대가 출동하지 않아 두영이 가지 않았을 때 옛 오의 재상 원앙을 천거하였다. 원앙이 이때 집에 있다가 조칙으로 불려 들어가 천자를 뵈었다. 천자가 막 조착과 함께 군대를 조절하고 군대의 식량을 셈하고 있다가 천자가 원앙에게 물어 말하기를 “그대는 일찍이 오의 재상이 되었으니 오의 신하인 전록백의 사람됨을 아는가? 지금 오와 초가 배반하였는데 공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했다. 원앙이 대답하기를 “근심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금 깨트려질 것입니다.” 했다. 천자가 말하기를 “오왕이 즉산에서 돈을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어 천하의 호걸을 유인하여 머리가 하얀 나이에 반란을 일으켰다. 이 같은데 그의 계책이 완전하지 않다면 어찌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겠는가? 무슨 이유로 그가 잘 할 수 없다고 말하는가?” 했다. 원앙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오는 구리와 소금의 이로움이 있고 곧 그것을 소유하였으나 어찌 호걸을 얻고 유인할 수 있었겠습니까? 진실로 오가 호걸을 얻을 수 있었다면 또한 왕을 도와 의를 행하고 배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가 유인한 바는 모두 무뢰배의 자제들이니 목숨을 위해 도망하고, 돈을 주조하는 간사한 사람들이 서로 거느리고 배반하였을 뿐입니다.” 했다. 조착이 말하기를 “원앙의 계책이 좋습니다.” 하니 천자가 묻기를 “좋은 계책이 있는가 ?” 했다. 원앙이 대답하기를 “ 좌우를 물리치기를 원합니다.” 하니 천자가 사람들을 물리쳤는데 유독 조착이 있었다. 원앙이 말하기를 “제가 말한 것은 다른 사람의 신하가 알아서는 않됩니다.”하니 곧 조착을 물리쳤다. 조착이 빠르게 東廂을 피하였는데 매우 한탄하였다.
上卒問盎,盎對曰:「吳楚相遺書,曰『高帝王子弟各有分地,今賊臣晁錯擅適過諸侯,[一]削奪之地』。故以反為名,西共誅晁錯,復故地而罷。方今計獨斬晁錯,發使赦吳楚七國,復其故削地,則兵可無血刃而俱罷。」於是上嘿然良久,曰:「顧誠何如,吾不愛一人以謝天下。」盎曰:「臣愚計無出此,願上孰計之。」乃拜盎為太常,[二]吳王弟子德侯為宗正。[三]盎裝治行。後十餘日,上使中尉召錯,紿載行東市。錯衣朝衣斬東市。則遣袁盎奉宗廟,宗正輔親戚,[四]使告吳如盎策。至吳,吳楚兵已攻梁壁矣。宗正以親故,先入見,諭吳王使拜受詔。吳王聞袁盎來,亦知其欲說己,笑而應曰:「我已為東帝,尚何誰拜?」不肯見盎而留之軍中,欲劫使將。盎不肯,使人圍守,且殺之,盎得夜出,步亡去,走梁軍,遂歸報。
천자가 마침내 원앙에게 물으니 원앙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오와 초가 서로 글을 남겨 말하기를 ‘고제의 왕과 자제들은 각각 땅을 나누어 소유하였는데 지금 적신 조착이 멋대로 제후의 허물을 문책한다 하면서 땅을 깍고 빼앗습니다.’ 합니다. 그러므로 배반하는 명분으로 삼은 것은 서쪽을 향해 함께 조착을 죽이는 것이니 옛 땅을 회복하면 그만둘 것입니다. 지금의 계책은 오직 조착의 머리를 베고 사신을 보내 오초7국을 용서하고 그 옛날에 깍인 땅을 회복시키면 곧 군대는 피와 칼날이 없이도 모두 그만두게 할 수 있습니다.” 했다. 이에 천자가 말없이 오래 있다가 말하기를 “진실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한 사람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서 천하에 죄를 짓지 않겠다.” 했다. 원앙이 말하기를 “신의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이를 벗어난 것이 없으니 천자께서는 깊이 헤아리시기를 원합니다.” 했다. 이에 원앙에게 벼슬을 내려 태상으로 삼고 오왕 동생의 덕후를 종정으로 삼았다. 원앙이 행장을 꾸려 사신 갈 준비를 하였다. 10여일이 지나 천자가 중위로 하여금 조착을 부르게 하니 중위가 속여서 수레를 태워 동시에 갔다. 조착은 관복을 입은 채로 동시에서 목을 베어 죽였다. 곧 원앙은 종묘를 받들게 하고, 종정은 친척을 보좌하게 하고, 사신으로 하여금 원앙의 계책과 같이 오에 알리게 하였다. 사신이 오에 이르니 오와 초의 군대가 이미 양의 성벽을 공격하였다. 종정이 친척이기 때문에 먼저 들어가서 만나 오왕으로 하여금 절하고 조칙을 받게 깨우쳤다. 오왕이 원앙이 오는 것을 듣고 도한 그가 자기를 설득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미 東帝가 되었는데 오히려 누구에게 절하라는 것인가?” 하고는 즐겨 원앙을 만나려 하지 않고 軍中에 머물게 하여 장수를 시켜 겁주려 하였다. 원앙이 긍정하지 않으니 사람을 시켜 둘러싸서 지키고, 또한 죽이게 하였는데 원앙이 밤에 탈출하여 걸어서 도망해 가서 梁軍에게 달아나 마침내 돌아가 보고하였다.
[一] 索隱適音直革反,又音宅。
[一] 【索隱】 ‘適’의 음은 ‘直’과 ‘革’의 反이고, 또 음은 ‘宅’이다.
[二] 正義令盎為太常,以示奉宗廟之指意。
[二] 【正義】 원앙으로 하여금 태상을 삼고, 종묘를 받드는 뜻을 보이게 한 것이다.
[三] 集解徐廣曰:「名通,其父名廣。」駰案:漢書曰「吳王弟子德侯廣為宗正」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이름은 ‘통’이고, 그 아버지의 이름은 ‘광’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한서』에 “오왕 동생의 아들 덕후 광이 종정이 되었다.” 했다.
[四] 正義以親戚之意輔漢訓諭。
[四] 【正義】 친척의 뜻으로서 한의 훈유를 보필하게 한 것이다.
條侯將乘六乘傳,[一]會兵滎陽。至雒陽,見劇孟,喜曰:「七國反,吾乘傳至此,不自意全。[二]又以為諸侯已得劇孟,劇孟今無動。吾據滎陽,以東無足憂者。」至淮陽,問父絳侯故客鄧都尉曰:「策安出?」客曰:「吳兵銳甚,難與爭鋒。楚兵輕,[三]不能久。方今為將軍計,莫若引兵東北壁昌邑,以梁委吳,吳必盡銳攻之。將軍深溝高壘,使輕兵絕淮泗口,塞吳饟道。彼吳梁相敝而糧食竭,乃以全彊制其罷極,破吳必矣。」條侯曰:「善。」從其策,遂堅壁昌邑南,[四]輕兵絕吳饟道。
조후가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느린 수레를 타고 군대를 형양에서 모였다. 낙양에 이르러 극맹을 만나 기뻐하며 말하기를 “7국이 배반하여 내가 느린 수레를 타고 여기에 이르렀으나 스스로 온전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제후들이 이미 극맹을 얻었을 것으로 여겼으나 당신은 지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형양에 근거하면 동쪽은 근심할 자가 없겠다.” 했다. 낙양에 이르러 아버지인 항후의 옛 객인 鄧都尉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떤 계책이 있겠습니까?”하니 객이 말하기를 “오의 군대는 매우 정예이니 함께 예봉을 다투기는 어렵습니다. 초의 군대는 날래나 오래할 수 없습니다. 지금 장군을 위한 계책은 군대를 이끌고 동북쪽으로 가 창읍에 벽을 쌓고, 양에게 오를 맡기면 오는 반드시 날카로움을 다하여 공격 것입니다. 장군은 도랑(해자)을 깊게 하며 보루를 높게 하고 날랜 군대로 하여금 회수와 사수의 입구를 끊고 오의 군량 수송로를 막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저 오와 양이 서로 피폐해지고 양식이 다하면 이에 온전하고 강한 군대로 그 지침이 지극한 군대를 제압하면 틀림없이 오를 깨트릴 수 있습니다.” 했다. 조후가 “좋습니다.” 하고는 그 계책을 따라 마침내 창읍의 남쪽을 견고하게 막고 날랜 군대로 오의 식량 수송로를 끊었다.
[一] 正義上音乘,下竹戀反。
[一] 【正義】 위의 음은 ‘乘’이고, 아래는 ‘竹’과 ‘戀’의 反이다.
[二] 正義言不自意洛陽得全,及見劇孟。
[二] 【正義】 스스로 낙양이 온전하고, 극맹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지 모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三] 正義遣正反。
[三] 【正義】 ‘遣’과 ‘正’의 反이다.
[四] 正義在曹州城武縣東北四十二里也。
[四] 【正義】 조주성은 무현 동북쪽 42리에 있다.
吳王之初發也,吳臣田祿伯為大將軍。田祿伯曰:「兵屯聚而西,無佗奇道,難以就功。臣願得五萬人,別循江淮而上,收淮南、長沙,入武關,與大王會,此亦一奇也。」吳王太子諫曰:「王以反為名,此兵難以藉人,藉人亦且反王,柰何?且擅兵而別,多佗利害,未可知也,[一]徒自損耳。」吳王即不許田祿伯。
오왕이 처음 출발할 때 오의 신하 전록백이 대장군이 되었다. 전록백이 말하기를 “군대가 주둔하고 모여 서쪽으로 가는데 다른 기이한 방법이 없으면 공에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신이 오만 명을 얻어 별도로 강과 회수를 따라 올라가 회남, 장사를 거두고, 무관에 들어가 대왕과 만나는 이것이 또한 한 가지 기이한 계책입니다.” 했다. 오왕의 태자가 간하여 말하기를 “왕께서 배반으로써 명분을 삼았으니 이 군대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였다가 또한 왕을 배반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또한 군대를 멋대로하여 따로 하면 많이 다른 이해를 알 수 없으니 공연히 스스로 덜 뿐입니다.” 했다. 오왕이 곧 전록백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一] 集解蘇林曰:「祿伯儻將兵降漢,自為利己,於吳為生患也。」
[一] 【集解】 소림이 말하기를 “전록백이 문득 군대를 거느리고 한에 항복하여 스스로 이익을 삼으면 오에 근심이 생기게 됨을 말한 것이다.
吳少將桓將軍說王曰:「吳多步兵,步兵利險;漢多車騎,車騎利平地。願大王所過城邑不下,直棄去,疾西據雒陽武庫,食敖倉粟,阻山河之險以令諸侯,雖毋入關,天下固已定矣。即大王徐行,留下城邑,漢軍車騎至,馳入梁楚之郊,事敗矣。」吳王問諸老將,老將曰:「此少年推鋒之計可耳,安知大慮乎!」於是王不用桓將軍計。
오의 소장 환장군이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오는 보병이 많은데 보병은 험한 곳에서 이점이 있고, 한은 기병이 많은데 기병은 평지에서 이점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지나는 바의 성읍을 함락시키지 말고 곧바로 버리고 가서 재빠르게 서쪽 낙양의 무고를 점거하고 오창의 곡식을 먹으며 산하의 험한 곳을 막는 것으로써 제후를 호령하시면 비록 관중에 들어가지 못할 지라도 천하는 진실로 이미 평정한 것입니다. 곧 대왕께서 천천히 가면서 성읍에 머물러 함락시키시면 한의 기병이 이르러 달려 양과 초의 교외에 들어가면 일이 무너지게 됩니다.” 했다. 오왕이 여러 늙은 장군들에게 물으니 늙은 장군이 말하기를 “이는 젊은이가 갈 끝으로 미는 계책으로 옳을 뿐이니 어찌 크고 원대한 것을 알리오!” 했다. 이에 왕이 환장군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吳王專并將其兵,未度淮,諸賓客皆得為將、校尉、候、司馬,獨周丘不得用。周丘者,下邳人,亡命吳,酤酒無行,吳王濞薄之,弗任。周丘上謁,說王曰:「臣以無能,不得待罪行閒。臣非敢求有所將,願得王一漢節,必有以報王。」王乃予之。周丘得節,夜馳入下邳。下邳時聞吳反,皆城守。至傳舍,召令。令入戶,使從者以罪斬令。遂召昆弟所善豪吏告曰:「吳反兵且至,至,屠下邳不過食頃。今先下,家室必完,能者封侯矣。」出乃相告,下邳皆下。周丘一夜得三萬人,使人報吳王,遂將其兵北略城邑。比至城陽,[一]兵十餘萬,破城陽中尉軍。聞吳王敗走,自度無與共成功,即引兵歸下邳。未至,疽發背死。
오왕 비가 그 군대를 아울러 거느리고 회수을 건너기도 전에 여러 빈객이 모두 장군, 교위, 후, 사마가 되었는데 유독 주구만은 등용되지 못하였다. 주구는 하비 사람으로 오에 망명하여 술을 팔고 행실이 없어 오왕 비가 그를 박대하여 일을 맡기지 않았다. 주구가 알현하고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신은 능력이 없어 죄를 기다리고 행할 틈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신이 감히 장군이 되는 바가 있음을 구하려는 것은 아니라 왕이 가진 한 개 한나라 부절을 얻어 반드시 왕께 갚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했다. 왕이 이에 그것을 주었다. 주구가 부절을 얻어 밤에 달려 하비에 들어갔다. 하비가 이 때 오가 배반하였다는 것을 듣고 모두 성을 지켰다. 객사에 이르러 令을 불렀다. 令이 집에 들어가자 종자로 하여금 죄로 령의 목을 베게 하였다. 마침내 형제가 잘 지내는 호걸과 관리를 불러 알려 말하기를 “오가 배반하여 군대가 또한 이를 것이고, 군대가 이르면 하비는 밥 먹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도륙 당할 것이다. 지금 먼저 항복한다면 집을 반드시 완전할 것이고, 능력이 있는 자는 후에 봉해질 것이다.” 하고 나가니 서로 알려서 하비가 모두 항복하였다. 주구가 하룻 밤에 3만명을 얻고 사람을 시켜 오왕에게 보고하니 마침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북쪽으로 성읍을 공략하였다. 성양에 이르니 군대가 10여만에 미쳐 성양 중위군을 깨트렸다. 오왕이 패하여 달아났다는 것을 듣고 스스로 함께 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헤아리고는 곧 군대를 이끌고 하비로 돌아갔다. 하비에 이르지 않았는데 등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
[一] 正義地理志云城陽國,故齊,漢文帝二年別為國,屬兗州。
[一] 【正義】 「지리지」에 “성양국은 옛 제나라인데 한 문제 2년에 따로 나라를 만들고 연주에 속하게 했다.
二月中,吳王兵既破,敗走,於是天子制詔將軍曰:「蓋聞為善者,天報之以福;為非者,天報之以殃。高皇帝親表功德,建立諸侯,幽王、悼惠王絕無後,孝文皇帝哀憐加惠,王幽王子遂、悼惠王子卬等,令奉其先王宗廟,為漢藩國,德配天地,明並日月。吳王濞倍德反義,誘受天下亡命罪人,亂天下幣,[一]稱病不朝二十餘年,有司數請濞罪,孝文皇帝寬之,欲其改行為善。今乃與楚王戊、趙王遂、膠西王卬、濟南王辟光、菑川王賢、膠東王雄渠約從反,為逆無道,起兵以危宗廟,賊殺大臣及漢使者,迫劫萬民,夭殺無罪,燒殘民家,掘其丘冢,甚為暴虐。今卬等又重逆無道,燒宗廟,鹵御物,[二]朕甚痛之。朕素服避正殿,將軍其勸士大夫擊反虜。擊反虜者,深入多殺為功,斬首捕虜比三百石以上者皆殺之,無有所置。[三]敢有議詔及不如詔者,皆要斬。」
2월 중에 오왕의 군대가 이미 깨트려져 무너지고 달아나니 이에 천자가 조칙을 지어 장군에게 말하기를 “대개 들으니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서 그것을 갚고, 잘못을 하는 자는 하늘이 재앙으로서 그것을 갚는다. 한다. 고황제께서 직접 공과 덕을 표창하시고 제후를 세웠는데 유왕, 도혜왕이 후사가 끊어져 없어지자 효문황제가 슬프고 가련히 여겨 은혜를 더하였고, 유왕의 아들 수와 도헤왕의 아들 앙 등을 왕 노릇 하게 하여 그 돌아가신 왕의 종묘를 받들게 하여 한의 蕃國이 되게 하셨으니 덕은 하늘과 땅에 짝하고, 밝음은 해와 달에 버금갔다. 오왕 비가 덕을 등지고 의리를 배반하여 천하에 망명한 죄인을 유인하고 받아들이고, 천하의 돈을 어지럽게하며 병을 핑계하여 조회하지 않은지 20여년이니 담당관청이 여러 번 비를 죄 줄 것을 청하였으나 효문황제께서 너그럽게 행실을 고쳐 선을 하도록 하게하고자 하였다. 지금 초왕 무와 조왕 수, 교서왕 앙, 제남왕 벽광, 치천왕 현, 교동왕 웅거가 따라 배반하고 거슬러 무도를 행하여 군대를 일으켜 종묘를 위태롭게 하고 대신과 한의 사신을 해치고 죽이며, 萬民을 겁박하며 죄 없는 이를 일찍 죽게 하고, 백성의 집을 불태우며, 그 무덤을 파헤쳤으니 매우 포학을 행하였다. 지금 앙 등이 또한 무겁게 거스르고 도가 없어 종묘를 불사르고 종묘에 있는 물건을 약탈하였으니 짐은 매우 애통하다. 짐은 흰 옷을 입고 정전을 피하였으니 장군들은 사대부를 권하여 배반한 오랑캐를 치라. 배반한 오랑캐를 치는 자는 깊이 들어가 많이 죽이는 것을 공으로 삼을 것이며, 잡은 자들을 머리를 베되 봉록 3백석 이상에 해당하는 자는 모두 죽이고 놓아 풀어줌이 있지 않게 하라. 감히 조칙을 논의하는 자와 조칙과 같이 하지 않은 자는 모두 허리를 베어 죽이라.” 했다.
[一] 集解如淳曰:「幣,錢也。以私錢淆亂天下錢也。」
[一]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幣’는 돈이다. 사사로이 돈을 주조하여 천하의 돈을 뒤섞어 어지럽게 하였다.” 했다.
[二] 集解如淳曰:「鹵,抄掠也。宗廟在郡縣之物,皆為御物。」 正義顏師古曰:「御物,宗廟之服器也。」
[二]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鹵(소금 로)’는 약탈함이다. 종묘에 있는 군현의 물건이 모두 ‘御物’이 된다.” 했다. 【正義】 안사고는 “‘御物’은 종묘의 옷과 그릇(제기)이다.” 했다.
[三] 正義置,放釋也。
[三] 【正義】 ‘置’는 놓아 풀어주는 것이다.
初,吳王之度淮,與楚王遂西敗棘壁,[一]乘勝前,銳甚。梁孝王恐,遣六將軍擊吳,又敗梁兩將,士卒皆還走梁。梁數使使報條侯求救,條侯不許。又使使惡條侯於上,上使人告條侯救梁,復守便宜不行。梁使韓安國及楚死事相弟張羽為將軍,[二]乃得頗敗吳兵。吳兵欲西,梁城守堅,不敢西,即走條侯軍,會下邑。[三]欲戰,條侯壁,不肯戰。吳糧絕,卒飢,數挑戰,遂夜奔條侯壁,驚東南。條侯使備西北,果從西北入。吳大敗,士卒多飢死,乃畔散。於是吳王乃與其麾下壯士數千人夜亡去,度江走丹徒,保東越。[四]東越兵可萬餘人,乃使人收聚亡卒。漢使人以利啗東越,[五]東越即紿吳王,吳王出勞軍,即使人鏦殺吳王,[六]盛其頭,[七]馳傳以聞。吳王子子華、子駒亡走閩越。吳王之棄其軍亡也,軍遂潰,往往稍降太尉、梁軍。楚王戊軍敗,自殺。
처음에 오왕이 회수를 건너 초왕 수와 함께 서쪽으로 극벽을 무너뜨리고 이김을 타고 앞으로 가는데 기세가 매우 날카로웠다. 양 효왕이 두려워하여 6장군을 보내 오를 치게 하였으나 또 양의 두 장군이 무너지자 사졸이 달아나 양에 돌아왔다. 양이 여러 번 사신으로 하여금 조후에게 보고하게 하고 구원을 구하였으나 조후는 허락하지 않았다. 또 사신으로 하여금 조후를 천자에게 나쁘게 말하니 천자가 사람을 시켜 조후에게 알리고 양을 구원하게 하였으나 다시 지키기만 하고 가지 않았다. 양이 한안국과 초에서 간하다 죽음을 당한 재상 장상의 동생 장우를 장군으로 삼자 자못 오의 군대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오의 군대가 서쪽으로 가려하는데 양성이 지키기를 굳게 하니 감히 서쪽으로 가지 못하고 조후의 군이 있는 곳으로 달려 하읍에서 만났다. 사우고자 하였으나 조후가 벽안에 있으면서 즐겨 싸우려하지 않았다. 오의 군량이 끊어져 병졸이 주리므로 여러 번 싸움을 도발하다 마침내 밤에 조후의 벽애 달려가 동남쪽을 놀라게 하였다. 조후가 서북쪽을 대비하게 하였더니 고연 서북쪽으로부터 들어왔다. 오가 크게 무너지고 사졸이 굶어죽거나 배반하여 흩어졌다. 이에 오왕이 곧 그 막하 장사 수천 명과 함께 밤에 도망가 강을 건너 단도로 달아나 동월의 보호를 받으려 했다. 동월의 군대는 만 명 정도인데 사람을 시켜 도망한 병졸을 모았다. 한이 사람을 시켜 동월에 이익을 먹이자 동월이 곧 오왕을 속였으며, 오왕이 나와 군사를 위로할 때 곧 사람을 시켜 창으로 오왕을 죽이고, 그 머리를 담아 말을 달려 전하게 하였다. 오왕의 아들 자화, 자구가 도망하여 민월로 달아났다. 오왕이 군대를 버리고 달아나니 군대가 마침내 무너져 자주 점점 태위와 양군에게 항복하였다. 초왕 무는 군대가 무너지자 자살하였다.
[一] 正義在宋州寧陵縣西南七十里。
[一] 【正義】 송주 영파현 서남쪽 70리에 있다.
[二] 集解徐廣曰:「楚相張尚諫王而死。」 正義按:羽,尚弟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초의 재상 장상이 왕을 간하다 죽었다.” 했다. 【正義】 살펴보니 ‘羽’는 장상의 아우이다.
[三] 集解徐廣曰:「屬梁國。」 正義宋州碭山縣,本漢下邑縣。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양국에 속한다.” 했다. 【正義】 송주 탕산현은 본래 한 하읍현이다.
[四] 正義東越傳云:「獨東甌受漢之購,殺吳王。」丹徒,潤州也。東甌即東越也。東越將兵從吳在丹徒也。
[四] 【正義】 「동월전」에 “오직 동구만이 한의 매수를 받아 오왕을 죽였을 뿐이다.” 했다. ‘단도’는 윤주이다. ‘동구’는 곧 동월이다. 동월이 군대를 거느리고 오를 따라 단도에 있었다.
[五] 集解韋昭曰:「啗音徒覽反。」
[五]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啗’의 음은 ‘徒’와 ‘覽’의 反이다.” 했다.
[六] 集解孟康曰:「方言『戟謂之鏦』。」 索隱鏦音七江反。謂以戈刺殺之。鄒氏又音舂。亦音「從容」之「從」,謂撞殺之也。
[六] 【集解】 맹강이 말하기를 “방언에 ‘戟(창극)’을 ‘鏦(창 종)’이라 한다.” 했다. 【索隱】 ‘鏦’의 음은 ‘七’과 ‘江’의 反이다. 창으로 찔러 죽인 것을 말한다. 추씨는 또 음을 “‘舂’이라 한다.” 했다. 또 음은 “‘從容’의 ‘從’이니 쳐서 죽이는 것을 말한다.
[七] 集解吳地記曰:「吳王濞葬武進縣南,地名相唐。」 索隱張勃云「吳王濞葬丹徒縣南,其地名相唐」。今注本云「武進縣」,恐錯也。正義括地志云:「漢吳王濞冢在潤州丹徒縣東練壁聚北,今入于江。吳錄云丹徒有吳王冢,在縣北,其處名為相唐。」
[七] 【集解】 「오지기」에 말하기를 “오왕 비를 무진현 남쪽에 장례하였으니 땅이름은 ‘상당’이다.” 했다. 【索隱】 장발이 말하기를 “오왕 비를 단도현 남쪽에 장례하였는데 그 땅 이름은 ‘당당’이다.” 했다. 지금 주석본에 ‘무진현’이라 하니 아마도 착오일 것이다. 【正義】 『괄지지』에 “ 한 오왕 비의 무덤은 윤주 단도현 동쪽 연벽취 북쪽에 있으니 지금은 강에 들어갔다. 『오록』에 ‘단도’에 오왕의 무덤이 있으니 현 북쪽에 있고 그 위치 지명은 ‘상당’이다.” 했다.
三王之圍齊臨菑也,三月不能下。漢兵至,膠西、膠東、菑川王各引兵歸。膠西王乃袒跣,席稿,飲水,謝太后。王太子德曰:「漢兵遠,臣觀之已罷,可襲,願收大王餘兵擊之,擊之不勝,乃逃入海,未晚也。」王曰:「吾士卒皆已壞,不可發用。」弗聽。漢將弓高侯穨當[一]遺王書曰:「奉詔誅不義,降者赦其罪,復故;不降者滅之。王何處,須以從事。」王肉袒叩頭漢軍壁,謁曰:「臣卬奉法不謹,驚駭百姓,乃苦將軍遠道至于窮國,敢請菹醢之罪。」弓高侯執金鼓見之,曰:「王苦軍事,願聞王發兵狀。」王頓首膝行對曰:「今者,晁錯天子用事臣,變更高皇帝法令,侵奪諸侯地。卬等以為不義,恐其敗亂天下,七國發兵,且以誅錯。今聞錯已誅,卬等謹以罷兵歸。」將軍曰:「王苟以錯不善,何不以聞?(及)[乃]未有詔虎符,擅發兵擊義國。以此觀之,意非欲誅錯也。」乃出詔書為王讀之。讀之訖,曰:「王其自圖。」王曰:「如卬等死有餘罪。」遂自殺。太后、太子皆死。膠東、菑川、濟南王皆死,[二]國除,納于漢。酈將軍圍趙十月而下之,趙王自殺。濟北王以劫故,得不誅,徙王菑川。
세 왕이 가서 제의 임치를 포위하였으나 3개월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한의 군대가 이르자 교서, 교동, 치천왕이 각각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교서왕이 이에 윗도리를 벗고 신을 벗고, 볏짚 자리를 깔고 물을 마시며 태후에게 사죄하였다. 왕태자 덕이 말하기를 “한의 군대가 멀리서 왔기 때문에 신이 관찰해 보니 이미 지쳐 습격할만 하니 대왕께서는 나머지 군대를 거두어 치기를 원하며 쳐서 이기지 못하면 곧 도망하여 바다에 들어가도 늦지 않습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나의 사졸이 모두 이미 무너졌으니 동원하여 쓸 수 없다.” 하고는 듣지 않았다. 한의 장군 궁고후 퇴당이 글을 보내 말하기를 “조칙을 받들어 의롭지 않음은 죽이고, 항복하는 자는 그 죄를 용서하여 옛것을 회복시키고, 항복하지 않는 자는 없애겠다. 왕은 어디에 처하려는가 모름지기 일을 따를 것입니다.” 했다. 왕이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한의 군대 벽에 찧으며 뵙고 말하기를 “신 앙이 법을 받드는 것에 삼가지 못하여 백성을 놀라게 하여 장군이 먼 길을 오는 괴로움을 끼쳐 궁벽한 나라에 이르게 하였으니 감히 소금에 절여 젖을 담그는 죄를 청합니다.” 했다. 궁고후가 명령을 내리는 징과 북을 잡고 보며 말하기를 “왕이 군사를 괴롭게 하였으니 왕이 군대를 동원한 상황을 듣기를 원합니다.” 했다. 왕이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으로 기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지금 조착은 천자가 권력을 쓰게 한 신하인데 고제의 법령을 바꾸고 제후의 땅을 침탈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의롭지 않아 천하를 무너뜨리고 어지럽게 한다. 여겨 7국이 군대를 일으켜 또한 조착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지금 들으니 조착이 이미 죽음을 당하였다 하니 우리들은 삼가 군대를 그치고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했다. 장군이 말하기를 “왕이 만약 조착이 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면 어찌하여 아뢰지 않았는가? 조칙으로 호부(황제가 군대를 동원하게 하는 증명)가 있지 않았는데도 멋대로 군대를 동원하여 의로운 나라를 쳤다. 이로써 보건데 뜻은 조착을 죽이려한 것이 아니다.” 했다. 이에 조서를 꺼내어 왕을 위해 그것을 읽어 주었다. 읽기를 마치고 말하기를 “왕은 스스로 잘 생각하라.” 했다. 왕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죽어도 남을 죄를 지은 듯합니다.” 하고는 마침내 자살하였다. 태후, 태자가 모두 죽었다. 교동, 치천, 제남왕이 모두 죽었으므로 나라를 없애고 한에 편입시켰다. 역(역기) 장군이 조릴 포위한지 10개월이 함락시키니 조왕이 자살하였다. 제북왕은 협박을 받았던 때문에 죽이지 않고 치천에 옮겨 왕 노릇하게 했다.
[一] 集解徐廣曰:「姓韓。」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성이 韓이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一云『自殺』。」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자살했다.’고 말한다.” 했다.
初,吳王首反,并將楚兵,連齊趙。正月起兵,三月皆破,獨趙後下。復置元王少子平陸侯禮為楚王,續元王後。徙汝南王非王吳故地,為江都王。
처음에 오왕이 먼저 배반하여 초의 군대를 아울러 거느리고 제, 조와 연합하였다. 3개월 만에 모두 깨트려지고 유독 조만 뒤에 함락되었다. 다시 원왕의 작은 아들 평육후 예를 초 초왕으로 삼아 원왕의 뒤를 잇게 하였다. 여남왕을 옮겨가게 하였으나 오의 옛 땅에 왕으로 하지 않고 강도의 왕으로 삼았다.
太史公曰:吳王之王,由父省也。[一]能薄賦斂,使其眾,以擅山海利。逆亂之萌,自其子興。爭技發難,[二]卒亡其本;親越謀宗,竟以夷隕。晁錯為國遠慮,禍反近身。袁盎權說,初寵後辱。故古者諸侯地不過百里,山海不以封。「毋親夷狄,以疏其屬」,蓋謂吳邪?「毋為權首,反受其咎」,豈盎、錯邪?
태사공이 말하기를 “오왕이 왕 노릇한 것은 아버지가 강등하였기 때문이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그 무리를 부려 산과 바다의 이로움을 멋대로 하였다. 거스로 어지럽히는 싹이 그 아들로부터 일어났다. 기예를 다투다 난을 일으켜 마침내 그 근본을 앙하게 하였고, 월을 가까이하여 친척 도모하려다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다. 조착은 나라를 위하여 멀리 생각하였으나 화가 도리어 자신에게 가까워졌다. 원앙이 임시로 설득하였으나 처음에는 사랑받았으나 뒤에 욕을 받았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제후의 당이 백리를 지나지 않았고, 산과 바다를 봉하지 않았다. ‘오랑캐와 친하지 말라. 그 친척과 소원해 진다, 하니 대개 오를 말하는 것인가? 권세를 앞세우지 말라. 도리어 그 허물을 받는다.”하니 대개 원앙과 조착인가?
[一] 集解言濞之王吳,由父代王被省封郃陽侯。省音所幸反。索隱省音所景反。省者,減也。謂父仲從代王省封郃陽侯也。
[一] 【集解】 비가 오에서 왕 노릇한 것은 아버지 대왕이 강등되어 합양후에 봅하여졌기 때문이다. ‘省’의 음은 ‘所’와 ‘幸’의 反이다. 【索隱】 ‘省’의 음은 ‘所’와 ‘景’의 反이다. ‘省’은 덞이다. 아버지 중이 대왕이었다가 깍이어 합양후에 봉해졌다.
[二] 索隱謂與太子爭博為爭技也。
[二] 【索隱】 태자와 함께 바둑을 두고, 기예를 다투었음을 말한다.
【索隱述贊】吳楚輕悍,王濞倍德。富因採山,釁成提局。憍矜貳志,連結七國。嬰命始監,錯誅未塞。天之悔禍,卒取奔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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