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一百八
韓長孺列傳第四十八
御史大夫韓安國者,梁成安人也,[一]後徙睢陽。[二]嘗受韓子、雜家說於騶田生所。[三]事梁孝王為中大夫。吳楚反時,孝王使安國及張羽為將,扞[四]吳兵於東界。張羽力戰,安國持重,以故吳不能過梁。吳楚已破,安國、張羽名由此顯。
어사대부 한안국은 양 성안 사람으로 후에 수양에 옮겨갔다. 일찍이 추현의 전생에게서 한자와 잡가의 설을 배웠다. 양 효왕을 섬겨 중대부가 되었다. 오, 초가 배반하였을 때 효왕이 한안국과 장우로 하여금 장군이 되게 하고, 동쪽 경계에서 오의 군대를 막게 했다. 장우는 힘써 싸우고 한안국은 소중하게 지켰기 때문에 오가 양을 지날 수 없었다. 오, 초가 이미 깨트려진 후 한안국과 장우의 명성이 이로부터 드러났다.
[一] 集解徐廣曰:「在汝潁之閒也。」 索隱按:徐廣云「在汝潁之閒」。漢書地理志縣名,屬陳留。正義括地志云:「成安故城在汝州梁縣東二十三里。」地理志云成安屬潁川郡。陳留郡又有成安縣,亦屬梁,未知孰是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여’와 ‘영’의 사이에 있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서광은 “‘여’와 ‘영’의 사이에 있다.” 했고, 『한서』 「지리지」 현명에는 “진류에 속한다.” 했다. 【正義】 『괄지지』에 “성안 옛 성은 여주 양현 동쪽 23리에 있다.” 했다. 「지리지」에 “성안은 영천군에 속한다.” 했다. 진류군에 또한 성안현이 있고, 또한 양에 속한다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하겠다.
[二] 正義今宋州宋城。
[二] 【正義】 지금의 송주 송성이다.
[三] 索隱案:安國學韓子及雜家說於騶縣田生之所。
[三] 【索隱】 살펴보니 한안국은 한자와 잡가의 설을 추현 전생이 있는 곳에 가서 배웠다.
[四] 索隱上音醬,下音汗。
[四] 【索隱】 위의 음은 ‘醬(젓갈 장)’이고 아래의 음은 “汗(땀 한)‘이다.
梁孝王,景帝母弟,竇太后愛之,令得自請置相、二千石,出入游戲,僭於天子。天子聞之,心弗善也。太后知帝不善,乃怒梁使者,弗見,案責王所為。韓安國為梁使,見大長公主[一]而泣曰:「何梁王為人子之孝,為人臣之忠,太后曾弗省也?[二]夫前日吳、楚、齊、趙七國反時,自關以東皆合從西鄉,惟梁最親為艱難。梁王念太后、帝在中,[三]而諸侯擾亂,一言泣數行下,跪送臣等六人,將兵擊卻吳楚,吳楚以故兵不敢西,而卒破亡,梁王之力也。今太后以小節苛禮[四]責望梁王。梁王父兄皆帝王,所見者大,故出稱蹕,入言警,車旗皆帝所賜也,即欲以侘鄙縣,[五]驅馳國中,以夸諸侯,令天下盡知太后、帝愛之也。今梁使來,輒案責之。梁王恐,日夜涕泣思慕,不知所為。何梁王之為子孝,為臣忠,而太后弗恤也?」大長公主具以告太后,太后喜曰:「為言之帝。」言之,帝心乃解,而免冠謝太后曰:「兄弟不能相教,乃為太后遺憂。」悉見梁使,厚賜之。其後梁王益親驩。太后、長公主更賜安國可直千餘金。名由此顯,結於漢。
양 효왕은 경제와 어머니를 같이하는 동생인데 두태후가 아껴서 스스로 재상과 록 2천석관리를 둘 수 있게 하고, 나고 들며 놀 때에 천자를 참칭하였다. 천자가 극서을 듣고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태후가 천자가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이에 노하여 양의 사자를 만나지 않고 왕의 하는 바를 살피고 책망하였다. 한안국이 양의 사자가 되어 대장공주를 뵙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양왕이 사람의 자식된 효를 하고, 사람의 신하된 충성을 하는데 태후께서 일찍이 살펴보지 않습니까? 대저 지난날에 오, 초, 제, 조 등 7국이 배반하였을 때 관 이동 지역이 모두 합종하여 서쪽으로 향할 때 오직 양 만이 가장 친하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양왕은 태후와 천자가 천하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제후들이 소란할 때 한 마디 말로 눈물 흘리기를 자주하고 꿇어앉아 신 등 6명을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오와 초를 쳐서 물리치게 하였기 때문에 오와 초가 이 때문에 군대가 감히 서쪽으로 가지 못하고, 마침내 깨트려져 망한 것은 양왕의 힘입니다. 지금 태후께서는 작은 절차와 지나치게 번거로운 예로 양왕을 책망합니다. 양왕의 부형은 모두 제왕으로 본 바가 크기 때문에 나서면 벽제하고, 들어오면 경계하며 수레와 깃발이 모두 천자가 내린 것입니다. 곧 변방의 비루한 현에서 자랑하고 나라 안에서 말을 몰아 치달리는 것으로써 제후에게 과시하여 천하로 하여금 모두 태후와 천자의 아낌을 알리고자 함입니다. 지금 양의 사신이 왔는데 문득 조사하고 질책하니 양왕이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눈물 흘리며 사모하여 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어찌 양왕이 자식으로서 효를 행함과 신하로서 충성을 하는 것을 태후께서는 불쌍히 여기자 않으십니까? 했다. 대장공주가 갖추어 태후에게 말하니 태후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천자에게 말하라.”하니 공대장공주가 천자에게 말하니 천자의 마음이 곧 풀어져 관을 벗고 태후에게 사과하며 말하기를 “형제가 서로 가르치지 못하여 곧 태후에게 근심을 끼쳤습니다.” 하고 모든 양의 사신을 만나고 후하게 내렸다. 그 후 양왕이 더욱 가까이하였다. 태후와 장공주가 다시 한안국에게 천여금의 가치가 될 만한 것을 내렷다. 이름이 이로 말미암아 드러나고 한에 관계를 맺었다.
[一] 集解徐廣曰:「景帝姊。」 索隱案:即館陶公主。正義如淳云:「景帝妹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경제의 누이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곧 ‘관도공주’이다. 【正義】 여순이 말하기를 “경제의 여동생이이다.” 했다.
[二] 索隱省音仙井反。省者,察也。
[二] 【索隱】 ‘省’의 음은 ‘仙’과 ‘井’의 反이다. ‘省’은 살펴봄이다.
[三] 正義謂關中也。又云京師在天下之中。
[三] 【正義】 관중을 말한다. 또 말하기를 경사(서울)은 천하의 가운데 있다.
[四] 索隱案:謂苛細小禮以責之。
[四] 【索隱】 살펴보니 번거롭고 소소한 작은 예로써 그것을 질책하는 것이다.
[五] 集解徐廣曰:「侘,一作『絎』也。」駰案:侘音丑亞反,誇也。索隱嫮音丑亞反,字如「 」。「 」者,誇也。漢書作「嫮」,音火亞反。絎音寒孟反。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侘’는 한편으로 ‘絎(바느질할 행)’이라 쓴다.” 배인이 살펴보니 “‘侘’의 음은 ‘丑’과 ‘亞’의 反이니 자랑함이다.” 했다. 【索隱】 ‘嫮’의 음은 ‘丑’과 ‘亞’의 反인데 글자는 ‘ ’와 같다. ‘ ’는 자랑함이다. 『한서』에 ‘嫮’라 썼는데 음은 ‘火’와 ‘亞’의 反이다. ‘絎’의 음은 ‘寒’과 ‘猛’의 反이다.
其後安國坐法抵罪,蒙[一]獄吏田甲辱安國。安國曰:「死灰獨不復然乎?」田甲曰:「然即溺之。」居無何,梁內史缺,漢使使者拜安國為梁內史,起徒中為二千石。田甲亡走。安國曰:「甲不就官,我滅而宗。」甲因肉袒謝。安國笑曰:「可溺矣!公等足與治乎?」[二]卒善遇之。
그 후 한안국이 법에 연루되어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몽현의 옥리 전갑이 한안국을 욕보였다. 한안국이 말하기를 “다 타버린 재라도 어찌 다시 타지 않을 것인가?” 하니 전갑이 말하기를 “타면 곧 오줌을 눌 것이다.” 했다. 죄수의 처지에 어찌할 수 없었다. 양의 내사 자리가 비니 한이 사자로 하여금 한안국을 양의 내사에 제수하였다. 죄수의 무리 중에서 일어나 녹 2천석의 관리가 되었다. 전갑이 도망하여 달아났다. 한안국이 말하기를 “전갑이 관에 나오지 않으면 내가 종족을 멸할 것이다.” 했다. 전갑이 이에 옷깃을 걷어 어깨를 드러내고 사과하였다. 한안국이 웃으며 말하기를 “오줌을 눌 수 있겠는가! 공들은 징계하기에 충분하겠는가?”하고는 마침내 그들을 잘 대하여 주었다.
[一] 集解蒙,縣名。索隱抵音丁禮反。蒙,縣名,屬梁國也。
[一] 【集解】 ‘蒙’은 현이름이다. 【索隱】 ‘抵’의 음은 ‘丁’과 ‘禮’의 反이다. ‘蒙’은 현 이름이니 양국에 속한다.
[二] 索隱案:謂不足與繩(持)[治]之。治音持也。
[二] 【索隱】 살펴보니 노끈로 묵어 다스리기에 충분하지 않다(가지가 없다)고 한 것이다. ‘治’으 음은 ‘持’이다.
梁內史之缺也,孝王新得齊人公孫詭,說之,欲請以為內史。竇太后聞,乃詔王以安國為內史。公孫詭、羊勝說孝王求為帝太子及益地事,恐漢大臣不聽,乃陰使人刺漢用事謀臣。及殺故吳相袁盎,景帝遂聞詭、勝等計畫,乃遣使捕詭、勝,必得。漢使十輩至梁,相以下舉國大索,月餘不得。內史安國聞詭、勝匿孝王所,安國入見王而泣曰:「主辱臣死。[一]大王無良臣,故事紛紛至此。今詭、勝不得,請辭賜死。」王曰:「何至此?」安國泣數行下,曰:「大王自度於皇帝,孰與太上皇之與高皇帝及皇帝之與臨江王親?」孝王曰:「弗如也。」安國曰:「夫太上、臨江親父子之閒,然而高帝曰『提三尺劍取天下者朕也』,故太上皇終不得制事,居于櫟陽。臨江王,適長太子也,以一言過,廢王臨江;[二]用宮垣事,卒自殺中尉府。何者?治天下終不以私亂公。語曰:『雖有親父,安知其不為虎?雖有親兄,安知其不為狼?』今大王列在諸侯,悅一邪臣[三]浮說,犯上禁,橈明法。天子以太后故,不忍致法於王。太后日夜涕泣,幸大王自改,而大王終不覺寤。有如太后宮車即晏駕,大王尚誰攀乎?」語未卒,孝王泣數行下,謝安國曰:「吾今出詭、勝。」詭、勝自殺。漢使還報,梁事皆得釋,安國之力也。於是景帝、太后益重安國。孝王卒,共王即位,安國坐法失官,居家。
양의 내사의 자리가 비니 효왕이 새롭게 제 사람 공손궤를 얻어 기뻐하며 조정에 청하여 내사로 삼고자 하였다. 두태후가 듣고 이에 왕에게 명령하여 한안국을 내사로 삼게 하였다. 공손궤, 양승이 효왕을 설득하여 천자의 태자가 되는 일과 땅을 더하는 일을 구하였는데 한의 대신들이 들어주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몰래 사람을 시켜 한의 전권을 행사하는 모신들을 찌르게 하였다. 옛 오의 재상 원앙을 죽임에 이르자 경제가 공손궤와 양승 등의 계획을 듣고는 이에 사자를 보내 공손궤와 양승을 반드시 잡게 하였다. 한의 사자 10여인이 양에 이르러 재상 이하 온 나라를 크게 찿았으나 달이 넘도록 잡지 못하였다. 내사 한안국이 공손궤와 양승이 효왕이 있는 곳에 숨은 것을 듣고 한안국이 들어가 왕을 뵙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임금의 욕은 신하의 죽음입니다. 대왕에게 좋은 신하가 없기 때문에 일이 분분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공손궤와 양승을 얻지 못한다면 하직하고 죽음을 내릴 것을 청합니다.” 했다. 효왕이 말하기를 “어찌 여기에 이를 것인가?” 하니 한안국이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 번 아래에 가서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스스로 황제와 관계를 헤아려 보시면 태상황과 고황제, 황제와 임강왕의 관계 중에 누가 친하다고 여기십니까?” 했다. 효왕이 말하기를 “같지 못하다.(내가 못하다.)” 했다. 한안국이 말하기를 “저 태상황과 임강왕은 부자사이였지만 고제가 ‘삼척의 검을 가지고 천하를 취할 자는 짐이다.’하였는데 그러므로 태상황이 끝내 일을 제재할 수 없어 역양에서 살았습니다. 임강왕은 적장자로 태자가 되었지만 한 마디 말의 잘못 때문에 폐하여 임강에서 왕 노릇하였고, 궁궐의 담장을 사용한 일로(태묘의 당을 침범하여 궁궐을 지은 일) 마침내 중위부에서 스스로 죽었습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끝내 사사로움 때문에 공적인 것을 어지럽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비록 친 아버지가 있지만 어찌 그가 범이 되지 않음을 알겠는가? 비록 친 형이 있지만 어찌 그가 이리가 되지 않음을 알겠는가? 합니다. 지금 대왕의 반열은 제후에 있는데 한 간사한 신하의 뜬 말에 기뻐하여 천자가 금하는 것을 범하고 밝은 법을 휘게하고 있습니다. 천자는 태후의 일 때문에 차마 왕에게 법이 이르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후는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요행히 대왕께서 스스로 고칠 것을 바라는데 대왕께서는 끝내 깨닫지 못하십니다. 만일 태후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면 대왕께서는 오히려 누구에게 매달리시렵니까?” 하였다. 말을 아직 마치지 않았는데 효왕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한안국에게 사과하며 말하기를 “내가 지금 공손궤와 양승을 내보내겠다.” 하니 공손궤와 양승이 자살하였다. 한 사신이 돌아가 보고하여 양의 일을 모두 풀어주었는데 한안국의 힘이었다. 이에 경제, 태후가 더욱 한안국을 중하게 여겼다. 효왕이 죽자 공왕이 즉위하였는데 한안국이 법에 연죄되어(법을 어겨) 관직을 잃고 집에 머물렀다.
[一] 索隱此語見國語。
[一] 【索隱】 이 말은 『국어』에 보인다.
[二] 集解如淳曰:「景帝嘗屬諸姬,太子母栗姬言不遜,由是廢太子,栗姬憂死。」
[二]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경제가 일찍이 여러 여자를 거느렸는데 태자의 어머니 율희가 말을 공손히 하지 않았다. 이 대문에 태자를 폐하니 율희가 근심하자 죽었다.” 했다.
[三] 索隱悅,漢書作「訹」。說文云「訹,誘也」。
[三] 【索隱】 ‘悅’은 『한서』에 ‘訹’라 썼다. 『설문』에 “‘訹’는 유인하다.” 라 했다.
建元中,武安侯田蚡為漢太尉,親貴用事,安國以五百金物遺蚡。蚡言安國太后,天子亦素聞其賢,即召以為北地都尉,遷為大司農。閩越、東越相攻,安國及大行王恢將。未至越,越殺其王降,漢兵亦罷。建元六年,武安侯為丞相,安國為御史大夫。
건원 연간에 무안후 전분이 한의 태위가 되어 귀한 이와 친하고 일을 함부로 하니 한안국이 오백금 가치의 물건으로써 전분에게 주었다. 전분이 한안국을 태후에게 말하고, 천자가 또한 평소 그 어짐(현명함)을 들었으므로 곧 불러 북쪽 땅의 도위로 삼았다가 옮겨(승진시켜) 대사농을 삼았다. 섬월과 동월이 서로 공격하니 한안국과 대행왕 恢(넓을 회)가 장군이 되었다. 아직 월에 이르지 않았는데 월이 그 왕을 죽이고 항복하였으므로 한의 군대가 또한 그만두었다. 건원 6년 무안후를 승상으로 삼고, 한안국을 어사대부로 삼았다.
匈奴來請和親,天子下議。大行王恢,燕人也,數為邊吏,習知胡事。議曰:「漢與匈奴和親,率不過數歲即復倍約。不如勿許,興兵擊之。」安國曰:「千里而戰,兵不獲利。今匈奴負戎馬之足,懷禽獸之心,遷徙鳥舉,難得而制也。得其地不足以為廣,有其眾不足以為彊,自上古不屬為人。[一]漢數千里爭利,則人馬罷,虜以全制其敝。且彊弩之極,矢不能穿魯縞;[二]衝風之末,力不能漂鴻毛。非初不勁,末力衰也。擊之不便,不如和親。」群臣議者多附安國,於是上許和親。
흉노가 와서 화친을 청하니 천자가 조정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다. 대행왕 恢는 연 사람인데 여러 번 변경의 관리가 되어 오랑캐의 일을 익혀 알았다. 의논하여 말하기를 “한과 흉노의 화친은 그 때마다 몇 년을 지나지 않아 곧 다시 약속을 배반하였습니다. 허락하지 말고 군대를 일으켜 치는 것보다 못합니다.” 했다. 한안국이 말하기를 “천리를 가서 사우면 분대가 이로움을 얻지 못합니다. 지금 흉노가 戰馬의 충분함을 등에 지고 짐승의 마음을 품고 새떼처럼 옮겨다니니 잡아서 제압하기 어렵습니다. 그 땅을 얻어도 넓히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그 무리를 소유하여도 강하게 하기에는 부족하니 예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복속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이 수천리에 걸쳐 이로움을 다투면 곧 사람과 말이 지치지만 오랑캐는 온전함으로써 그 지침을 제압할 것입니다. 또한 강한 활을 쏘아도 끝에 가면 화살이 노나라에서 나는 고운 비단을 뚫을 수 없고, 맹렬한 바람의 끝은(아무리 맹렬한 바람도 마지막에 멈출 때는) 힘써도 기러기의 털을 날리게 하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굳세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의 힘이 쇠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치는 것은 편하지 않으니 화친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했다. 여러 신하들 중 의논하는 자들이 많이 한안국에 붙으니 이에 천자가 화친을 허락하였다.
[一] 索隱案:晉灼云「不內屬於漢為人」。
[一] 【索隱】 살펴보니 진작이 말하기를 “받아들여 복속하여 한의 사람이 되지 않음이다.” 했다.
[二] 集解許慎曰:「魯之縞尤薄。」
[二] 【集解】 허신이 말하기를 “노나라의 비단은 매우 얇다.” 했다.
其明年,則元光元年,雁門馬邑豪聶翁壹[一]因大行王恢言上曰:「匈奴初和親,親信邊,可誘以利。」陰使聶翁壹為閒,亡入匈奴,謂單于曰:「吾能斬馬邑令丞吏,以城降,財物可盡得。」單于愛信之,以為然,許聶翁壹。聶翁壹乃還,詐斬死罪囚,縣其頭馬邑城,示單于使者為信。曰:「馬邑長吏已死,可急來。」於是單于穿塞將十餘萬騎,入武州塞。[二]
그 다음해 곧 원광 1년 안문 마읍의 호족 섭옹일이 대행왕 회를 통하여 천자에게 말하기를 “흉노가 처음 화친하여 친하고 믿고 있으니 유인하여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했다. 몰래 섭옹일을 간자로 삼아 도망하여 흉노에 들어가 선우에게 “내가 마읍 령과 승, 관리의 머리를 베어 성이 항복하면 재물을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게 했다. 선우가 그것을 믿고 그렇다 여겨 섭옹일의 말을 허락하였다. 섭옹일이 이에 돌아와 속여서 사형수를 목베어 그 머리를 마음성에 달아 선우의 사자에게 보여 믿게 하였다. 말하기를 “마읍의 수령과 관리들이 이미 죽었으니 급히 올 수 있습니다.” 했다. 이에 선우가 요새를 뚫고 10여만 기를 거느리고 무주의 요새로 들어갔다.
[一] 集解張晏曰:「豪猶帥也。」 索隱聶,姓也;翁壹,名也。漢書云「聶壹」。
[一]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豪’는 우두머리와 같다.” 했다. 【索隱】 ‘聶’은 성이고, ‘翁壹’은 이름이다. 『한서』에는 ‘聶壹’이라 썼다.
[二] 集解徐廣曰:「在雁門。」 索隱地理志縣名,屬鴈門。又崔浩云「今平城直西百里有武州城」是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안문에 있다.” 했다. 【索隱】 「지리지」 현명에는 “안문에 속한다.” 했다. 또 최호는 “지금의 평성 직서쪽 100리에 무주성이 있다.”하였는데 이것이다.
當是時,漢伏兵車騎材官二十餘萬,匿馬邑旁谷中。衛尉李廣為驍騎將軍,[一]太僕公孫賀為輕車將軍,[二]大行王恢為將屯將軍,[三]太中大夫李息為材官將軍。[四]御史大夫韓安國為護軍將軍,諸將皆屬護軍。約單于入馬邑而漢兵縱發。王恢、李息、李廣別從代主擊其輜重。[五]於是單于入漢長城武州塞。未至馬邑百餘里,行掠鹵,徒見畜牧於野,不見一人。單于怪之,攻烽燧,得武州尉史。欲刺問尉史。尉史曰:「漢兵數十萬伏馬邑下。」單于顧謂左右曰:「幾為漢所賣!」[六]乃引兵還。出塞,曰:「吾得尉史,乃天也。」命尉史為「天王」。塞下傳言單于已引去。漢兵追至塞,度弗及,即罷。王恢等兵三萬,聞單于不與漢合,度往擊輜重,必與單于精兵戰,漢兵勢必敗,則以便宜罷兵,皆無功。
이러한 때를 당하여 한이 복병으로 전투용 수레, 기병, 말을 타고 강한 활을 당길 수 있는 군대 20여만을 마읍 옆 골짜기에 숨겨두었다. 위위 이광을 효기장군으로 삼고, 태복 공손하를 경거장군, 대행왕 괴를 장둔장군, 태중대부 이식을 재관장군으로 삼았다. 어사대부 한안국을 호군장군으로 삼고, 여러 장군을 모두 호군에 속하게 했다. 선우가 마읍에 들어오면 한의 군대가 일제히 일어서는 것으로 약속했다. 왕회, 이식, 이광은 따로 代로부터 그 치중(군수물자 수송부대)을 주로 치기로 했다. 이에 선우가 한의 장성 무주 요새로 들어왔다. 마읍 100여리에 이르지 않는 곳에서 약탈을 하다 한갓 들에서 가축이 먹이를 먹는 것은 보았으나 하나의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 선우가 괴이하게 여겨 봉수를 공격하여 무주 위사를 잡았다. 칼로 찌를 듯 위협하여 위사에게 물었다. 위사가 말하기를 “한의 군대 수십만이 마음 아래에 숨어 있다.” 했다. 선우가 측근들을 둘러보면서 말하기를 “거의 한에게 속을 뻔하였구나!” 하고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요새를 나와 말하기를 “내가 위사를 얻은 위사는 곧 하늘이다.”하고는 위사를 “천왕”이라 부르도록 명령하였다. 요새에서 선우가 이미 이끌고 돌아갔다고 말을 전하였다. 한의 군대가 추격하여 요새에 이르렀으나 미치지 못할 것을 헤아리고는 곧 그만두었다. 왕회 등의 3만 군대는 선우가 한과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가서 군수물자 수송부대를 치면 반드시 선우의 정예군대와 싸우게 될 것이며, 한의 군대가 형세상 반드시 패할 것을 헤아리고는 곧 임의로 군대를 파하니 모두 공이 없었다.
[一] 集解漢書曰:「北貉燕人來致驍騎。」應劭曰:「驍,健也。」張晏曰:「驍,勇也,若六博之梟矣。」
[一] 【集解】 『한서』에 “북쪽 오랑캐와 연 사람이 와서 梟騎를 이루었다.” 했다. 응소가 말하기를 “‘驍(날랠 효)’는 강건함이다.” 했다. 장안이 말하기를 “‘驍’은 용맹함이니 마치 육박의 ‘梟(올빼미 효, 용맹하다.)’와 같다.” 했다.
[二] 正義司馬續漢書云:「輕車,古之戰車。」
[二] 【正義】 『사마속한서』에 “‘輕車’는 옛날의 전투용 수레이다.
[三] 正義李奇云:「監主諸屯。」
[三] 【正義】 이기가 말하기를 “여러 둔전을 감독하고 주관한다.” 했다.
[四] 正義臣瓚云:「材官,騎射之官。」
[四] 【正義】 신찬이 말하기를 “‘材官’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관직이다.” 했다.
[五] 正義釋名云:「輜,廁也。所載衣服雜廁其中。」
[五] 【正義】 「석명」에 “‘輜’는 ‘厠(뒷간 측)’이다. 의복과 여러 가지가 그안에 실려졌다.” 했다.
[六] 正義幾音祈。
[六] 【正義】 ‘幾’의 음은 ‘祈’이다.
天子怒王恢不出擊單于輜重,擅引兵罷也。恢曰:「始約虜入馬邑城,兵與單于接,而臣擊其輜重,可得利。今單于聞,不至而還,臣以三萬人眾不敵,禔取辱耳。[一]臣固知還而斬,然得完陛下士三萬人。」於是下恢廷尉。廷尉當恢逗橈,當斬。[二]恢私行千金丞相蚡。蚡不敢言上,而言於太后曰:「王恢首造馬邑事,今不成而誅恢,是為匈奴報仇也。」上朝太后,太后以丞相言告上。上曰:「首為馬邑事者,恢也,故發天下兵數十萬,從其言,為此。且縱單于不可得,恢所部擊其輜重,猶頗可得,以慰士大夫心。今不誅恢,無以謝天下。」於是恢聞之,乃自殺。
천자가 왕회가 나가서 선우의 치중을 치지 않고 마음대로 군대를 이끌고 파한 것에 대해 노하였다. 왕회가 말하기를 “처음에 오랑캐가 마읍성에 들어오면 군대가 선우와 전투를 하고 신(왕회)은 그 치중을 쳐서 이득을 얻기를 약속하였습니다. 지금 선우가 듣고 이르지 않고 돌아가니 신(왕회)은 3만의 무리로는 대적할 수 없어 다만 욕됨을 취하였을 뿐입니다. 신(왕회)이 진실로 돌아오면 죽을 것을 알았으나 폐하의 군대 3만 명을 완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했다. 이에 왕회를 정위에게 내렸다. 정위가 왕회는 두요의 죄(적을 두려워하여 피하고 굴복하거나 달아나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마땅히 머리를 베어야 한다고 했다. 왕회가 사사로이 승상 전분에게 천금을 주었다. 전분이 감히 천자에게 말하지 못하고 태후에게 말하기를 “왕회가 앞장서 마읍의 일을 지었는데 지금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천자가) 왕회를 죽이려하시니 이는 흉노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주는 것입니다.” 했다. 천자가 태후에게 문안하는데 태후가 승상의 말을 가지고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가 말하기를 “앞장서서 마읍의 일을 꾸민 자는 왕회입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군대 수십만을 발병하여 그 말을 따랐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도한 비록 선우를 잡지 못하였을지라도 왕회가 이끄는 부대가 그 치중을 쳤다면 오히려 자못 얻는 것이 있어서 사대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왕회를 죽이지 않는다면 천하에 사과할 수 없습니다.” 했다. 이를 왕회가 듣고 곧 자살하였다.
[一] 集解徐廣曰:「禔,一作『祇』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褆(옷 두툼할 제)’는 한편 ‘祇(토지신 기)’라 썼다.
[二] 集解漢書音義曰:「逗,曲行避敵也;橈,顧望。軍法語也。」 索隱案:劭云「逗,曲行而避敵,音豆」。又音住,住謂留止也。橈,屈弱也,女孝反。一云橈,顧望也。
[二] 【集解】 「한서음의」에 “‘逗(머무를 두)’는 돌아가서 적을 피하는 것이고, ‘橈(꺽일 요)’는 다만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군법의 말이다.”했다. 【索隱】 살펴보니 응소가 말하기를 “‘逗’는 돌아가서 적을 피하는 것이니 음은 ‘豆’이다.” 했다. 또한 음은 ‘住’인데 ‘住’는 머물러 그치는 것을 말한다. ‘橈’는 굽히고 약한 것이다. ‘女’와 ‘孝’의 反이다. 한편 ‘橈’는 다만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安國為人多大略,智足以當世取合,而出於忠厚焉。[一]貪嗜於財。所推舉皆廉士,賢於己者也。於梁舉壺遂、臧固、郅他,[二]皆天下名士,士亦以此稱慕之,唯天子以為國器。安國為御史大夫四歲餘,丞相田蚡死,安國行丞相事,奉引墮車蹇。[三]天子議置相,欲用安國,使使視之,蹇甚,乃更以平棘侯薛澤為丞相。安國病免數月,蹇愈,上復以安國為中尉。歲餘,徙為衛尉。
한안국의 사람됨은 큰 지략이 많고, 지혜는 당시 세상에서 부합함을 취하기에 충분하였지만 충후함에서는 벗어났다. 재물을 탐내고 좋아하였다. 천거한 바는 모두 청렴한 선비이고, 자기보다 현명한 자였다. 양에서는 호수, 장고, 질타를 천거하였는데 모두 천하에 이름 있는 선비였고, 선비들이 또한 이로써 칭찬하고 사모하였으며 천자도 나라의 그릇이라 여겼다. 한안국이 어사대부가 된지 4년 정도 지나 승상 전분이 죽었는데 한안국이 승상의 일을 행하면서 천자를받들어 이끌다 수레에서 덜어져 절게 되었다. 천자가 승상을 둘 것을 의논하면서 한안국을 등용하고자 하여 사자를 시켜 보게 하였더니 심하게 절어서 이에 다시 평극후 설택을 승상으로 삼았다. 한안국이 병으로 관직을 면한지 수개월에 저는 것이 나았다. 천자가 한안국을 중위로 삼았다. 1년 정도 후 옮겨 위위가 되었다.
[一] 索隱案:出者,去也。言安國為人無忠厚之行。
[一] 【索隱】 살펴보니 ‘出’은 떠남이다. 한안국의 사람됨이 충후함의 행실이 없음을 말한다.
[二] 索隱上音質,下徒河反。謂三人姓名也,壺遂也,臧固也,郅他也。若漢書則云「至他」,言至於他處,亦舉名士也。
[二] 【索隱】 위의 음은 ‘質’이고, 아래는 ‘徒’와 ‘河’의 反이다. 세 사람으 성명을 말하니 ‘호수’, ‘장고’, ‘질타’이다. 『한서』 같은 경우에는 곧 ‘至他’라 하였는데 다른 곳에서 이르렀다는 말이니 도한 이름있는 선비를 천거함이다.
[三] 集解如淳曰:「為天子導引而墮車,跛足。」
[三]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천자를 위해 인도하다가 수레에서 떨어져 발을 절게 되었다.” 했다.
車騎將軍衛青擊匈奴,[一]出上谷,破胡蘢城。[二]將軍李廣為匈奴所得,復失之;公孫敖大亡卒:皆當斬,贖為庶人。明年,匈奴大入邊,殺遼西太守,及入鴈門,所殺略數千人。車騎將軍衛青擊之,出鴈門。衛尉安國為材官將軍,屯於漁陽。[三]安國捕生虜,言匈奴遠去。即上書言方田作時,請且罷軍屯。罷軍屯月餘,匈奴大入上谷、漁陽。安國壁乃有七百餘人,出與戰,不勝,復入壁。匈奴虜略千餘人及畜產而去。天子聞之,怒,使使責讓安國。徒安國益東,屯右北平。[四]是時匈奴虜言當入東方。
거기장군 위청이 흉노를 치기 위해 상곡을 나가 오랑캐의 용성을 깨트렸다. 장군 이광은 흉노에게 잡혔다가 다시 탈출하였고, 공손오는 크게 병졸을 잃어서 모두 참수형에 해당하였으나 속죄하여 서인으로 삼았다. 다음해 흉노가 크게 변경에 들어와 요서태수를 죽이고, 안문에 들어옴에 이르렀는데 죽음을 당하고 약탈당한 사람이 수천명이었다. 거기장군 위청이 그들을 쳐서 안문을 나갔다. 위위 한안국이 말을 타고 활을 쏠 수 있는 군대의 장군이 되어 어양에 주둔하였다. 한안국이 사로잡은 포로가 흉노는 멀리 갔다고 말하였다. 곧 글을 바야흐로 농사철이이 또한 군대의 주둔을 파할 것을 청하였다. 군대의 주둔을 파한지 한 달 정도 지나 흉노가 크게 상곡, 어양에 들어왔다. 한안국의 진에 곧 7백여 명이 있었는데 나가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다시 진으로 들어왔다. 흉노가 수천 명과 가축을 포로로 하고 약탈하여 갔다. 천자가 그것을 듣고 노하여 사자로 하여금 한안국을 질책하고 꾸짖게 했다. 한안국을 더욱 동쪽으로 옮겨 우북평에 주둔하게 했다. 이 때 흉노의 포로가 마땅히 동쪽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一] 集解徐廣曰:「元光六年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원광 6년이다.” 했다.
[二] 集解蘢音龍。索隱音龍。
[二] 【集解】 ‘蘢(개여뀌 롱)’의 음은 ‘龍’이다. 【索隱】 음은 ‘龍’이다.
[三] 正義幽州縣。
[三] 【正義】 유주현이다.
[四] 正義幽州漁陽縣東南七十七里北平城,即漢右北平也。
[四] 【正義】 유주 어양현 동남쪽 77리 북평성이 곧 한 우북평이다.
安國始為御史大夫及護軍,後稍斥疏,下遷;而新幸壯將軍衛青等有功,益貴。安國既疏遠,默默也;將屯又為匈奴所欺,失亡多,甚自愧。幸得罷歸,乃益東徙屯,意忽忽不樂。數月,病歐血死。安國以元朔二年中卒。
한안국이 처음 어사대부와 호군이 되었고, 후에 점점 배척돠어 멀어지다가 좌천되었고, 새로이 총애를 받은 건장한 장군 위청 등이 공이 있어 더욱 귀하게 되었다. 한안국이 이미 멀어진 후에는 묵묵히 있었고, 군대를 거느리고 주둔하고서는 또한 흉노에게 속아 잃음이 많아 매우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요행히 그만두고 돌아감을 얻으려하였으나 더욱 동쪽으로 옮겨 주둔하게 되면서 뜻이 실의에 빠져 즐거워하지 않았다. 몇 달 후 병으로 필ᅟᅳᆯ 토하며 죽었다. 한안국은 원삭 2년에 죽었다.
太史公曰:余與壺遂定律曆,觀韓長孺之義,壺遂之深中隱厚。[一]世之言梁多長者,不虛哉!壺遂官至詹事,天子方倚以為漢相,會遂卒。不然,壺遂之內廉行脩,斯鞠躬君子也。
태사공이 말하기를 “나와 호수가 율력을 정하였는데 한장유(한안국)의 의기와 호수의 깊은 마음속의 관찰하고 숨겨진 두터움을 보았다. 세상에서 양에 장자가 많다고 말하는 것이 농담이 아니었구나! 호수의 관직이 첨사에 이르니 천자가 바야흐로 기대어 한의 승상을 삼고자 하였으나 호수의 죽음을 만났다. 그렇지 않았다면 호수가 안으로 청렴한 행실을 닦아 이에 군자에게 극진한 공경을 받았을 것이다.” 했다.
[一] 集解徐廣曰:「一云『廉正忠厚』。」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廉正忠厚’라 말하기도 한다.” 했다.
【索隱述贊】安國忠厚,初為梁將。因事坐法,免徒起相。死灰更然,生虜失防。推賢見重,賄金貽謗。雪泣悟主,臣節可亮。
【索隱述贊】 한안국이 충후하여 처음에 양의 장군이 되었다. 일 때문에 법을 어겼으나 죄를 면하고 일어나 재상이 되었다. 꺼져 재가 되었다가 다시 불타오르니 포로를 살리고 방비를 잃었다. 현명한 이를 추천하여 중임을 맡겼다가 뇌물 받고 비방을 받았다. 눈물 흘리며 주인을 깨우치니 신하의 절개가 훌륭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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