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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126 골계열전제66

by 최인표 2019. 11. 20.

史記卷一百二十六

  滑稽列傳第六十六

 

索隱按亂也同也言辨捷之人言非若是說是若非言能亂異同也

索隱살펴보니 (미끄러울 활)’은 어지럽힘이고, ‘(머무를 계)’는 같음이다. 언변이 민첩한 사람의 말은 옳은 것을 잘못이다 하고, 잘못된 것을 옳다하여 다르고 같음을 어지럽힐 수 있는 것을 말한다.

 

孔子曰:「六蓺於治一也[]禮以節人樂以發和書以道事詩以達意易以神化春秋以義。」太史公曰天道恢恢豈不大哉談言微中亦可以解紛

공자가 말하기를 육예는 다스림이 한 가지이니 예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절제케 하고, 음악으로서 화함을 드러내게 하고, 글로서 일을 말하며, 시로서 뜻을 전달하고, 역으로 신묘함을 드러내고 춘추로서 의롭게 한다.” 했다. 태사공이 말하기를 하늘의 도는 매우 크고 광대하니 어찌 크지 않을까! 대담하는 가운데 완곡한 말로 정곡을 찌르는 것도 또한 어지러움을 풀 수 있다.

 

[] 正義言六蓺之文雖異禮節樂和導民立政天下平定其歸一揆至於談言微中亦以解其紛亂故治一也

[] 正義육예의 글이 비록 다르지만 예로 절제하고, 음악으로 조화롭게 하여 백성을 인도하고 정사를 세우며 천하를 평정하여 그 하나의 도로 돌린다. 대담하는 가운데 완곡한 말로 정곡을 찌는 것이 또한 그 어지러움을 푸는 것이기 때문에 다스림의 하나이다.

 

淳于髡[]齊之贅婿[]長不滿七尺滑稽多辯數使諸侯未嘗屈辱齊威王之時喜隱[]好為淫樂長夜之飲沈湎不治委政卿大夫百官荒亂諸侯並侵國且危亡在於旦暮左右莫敢諫淳于髡說之以隱曰:「國中有大鳥止王之庭三年不蜚又不鳴不知此鳥何也?」王曰:「此鳥不飛則已一飛沖天不鳴則已一鳴驚人。」於是乃朝諸縣令長七十二人賞一人誅一人奮兵而出諸侯振驚皆還齊侵地威行三十六年語在田完世家中

순우곤은 제나라의 데릴사위이다. 키는 7척에 미치지 못하고 말하는 가운데 완곡한 말로 정곡을 찌르고 변론을 많이 하여 여러 번 제후에게 사신으로 갔는데 일찍이 굴욕을 당하지 않았다. 제나라 희왕의 때 숨겨진 말을 좋아하고, 음란하게 밤늦도록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빠져 다스리지 않고 정사를 경과 대부에게 맡겼다. 백관이 황음하고 어지러워졌고, 제후들이 아울러 침입하니 나라가 또한 위태롭고 망함이 아침저녁에 달려있어도 측근들이 감히 간하지 못하였다. 순우곤이 은어로 설득하여 말하기를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왕의 뜰에 머문지 3년이 지나도 날지 않고 또한 울지도 않았습니다.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했다. 왕이 말하기를 이 새가 날지 않을 분이지 한 번 날면 하늘을 치고 오르고, 울지 않을 뿐이지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한다.” 했다. 이에 곧 현령과 장 72명을 조회받고 한 사람을 상주고, 한 사람을 죽이고 군대를 떨쳐 나갔다. 제후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모두 제나라를 침략한 땅을 돌려주었다. 위업이 36년간 행해졌다. 말이 전원세가에 있다.


[] 索隱苦魂反

[] 索隱이다.

 

[] 索隱女之夫也比於子如人疣是餘剩之物也

[] 索隱딸의 지아비인데 아들에 비하여 사람의 사마귀와 같으니 이는 남는 물건이다.

 

[] 索隱上許既反好也喜隱謂好隱語

[] 索隱위는 이다. ‘는 좋아함이다. ‘喜隱은 은어를 좋아함이다.

 

威王八年楚大發兵加齊齊王使淳于髡之趙請救兵齎金百斤車馬十駟淳于髡仰天大笑冠纓索絕[]王曰:「先生少之乎?」髡曰:「何敢!」王曰:「笑豈有說乎?」髡曰:「今者臣從東方來見道傍有禳田者[]操一豚蹄酒一盂祝曰:『甌窶滿篝[]汙邪滿車[]五穀蕃熟穰穰滿家。』臣見其所持者狹而所欲者奢故笑之。」於是齊威王乃益齎黃金千溢白璧十雙車馬百駟髡辭而行至趙趙王與之精兵十萬革車千乘楚聞之夜引兵而去

위왕 8년 초나라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제나라를 압박하였다. 제나라 왕이 순우곤으로 하여금 조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게 하면서 금 100근과 수레 10대를 가지고 가게 하였다. 순우곤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크게 웃고는 관의 근을 끊었다. 왕이 말하기를 선생은 그것이 적다고 여깁니까?” 하니 순우곤이 말하기를 어지 감히 그러하겠습니까?” 했다. 왕이 말하기를 웃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니 순우곤이 말하기를 지금 신은 동쪽으로부터 오면서 길옆에서 풍작을 비는 자를 보았는데 돼지 다리 하나와 술 한 잔을 들고서 빌기를 높은 곳에 있는 좁은 땅에서 대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낮은 땅에서는 수레를 가득채우고, 오곡이 무성하고 잘 익으며, 곡식이 풍요로워 집에 가득하길 바랍니다.’ 했습니다. 신이 그가 가진 것을 보니 좁으면서도 바라는 것은 사치하였기 때문에 웃었습니다.” 했다. 이에 제나라 위왕이 곧 황금 천일과 흰 보배로운 구슬 10, 거마 100대를 가져가게 하였다. 순우곤이 하직하고 가서 조나라에 이르렀다. 조나라 왕이 정예 군대 10만명과 전투용 수레 천 대를 주었다. 초나라가 그것을 듣고 밤에 군대를 이끌고 갔다.


[] 索隱案索訓盡言冠纓盡絕也孔衍春秋後語亦作冠纓盡絕

[] 索隱살펴보니 의 뜻은 다함이니 관의 끈을 모두 끊었음을 말한다. 공연의 춘추후어에 또한 冠纓盡絕이라 썼다.

 

[] 索隱案謂為田求福禳

[] 索隱살펴보니 농사와 복을 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 集解徐廣曰:「籠也。」 索隱案甌窶猶杯樓也窶音如婁古字少耳言豐年收掇可滿篝籠耳正義窶音樓篝音溝籠也甌樓謂高地狹小之區得滿篝籠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배롱 구)’(대 그릇 롱)’이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사발 구)(가난할 구)’杯樓와 같은 것이다. ‘의 음은 인데 옛 글자는 적다이다. 풍년이 들어 쉽게 거두어들여 대바구니에 가득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正義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니 대바구니이다. ‘甌樓는 땅이 높고 좁은 구역에서 대바구니를 가득 채우는 것을 말한다.

 

[] 集解司馬彪曰:「汙邪下地田也。」 索隱按司馬彪云汙邪下地田」。即下田之中有薪可滿車正義汙音烏

[] 集解사마표가 말하기를 “‘汙邪는 낮은 땅에 있는 밭이다.” 했다. 索隱사마표가 말하기를 “‘오야는 낮은 땅의 밭이다.” 했으니 곧 낮은 밭 안에 섶이 있어 수레에 가득 채울만 하다. 正義의 음은 이다.

 

威王大說置酒後宮召髡賜之酒問曰:「先生能飲幾何而醉?」對曰:「臣飲一斗亦醉一石亦醉。」威王曰:「先生飲一斗而醉惡能飲一石哉其說可得聞乎?」髡曰:「賜酒大王之前執法在傍御史在後髡恐懼俯伏而飲不過一斗徑醉矣若親有嚴客髡帣韝鞠跪[]待酒於前時賜餘瀝奉觴上壽數起飲不過二斗徑醉矣若朋友交遊久不相見卒然相睹歡然道故私情相語飲可五六斗徑醉矣若乃州閭之會男女雜坐行酒稽留六博投壺相引為曹握手無罰目眙不禁[]前有墮珥後有遺簪髡竊樂此飲可八斗而醉二參[]日暮酒闌合尊促坐男女同席履舄交錯杯盤狼藉堂上燭滅主人留髡而送客[]羅襦襟微聞薌澤當此之時髡心最歡能飲一石故曰酒極則亂樂極則悲萬事盡然言不可極極之而衰。」以諷諫焉齊王曰:「。」乃罷長夜之飲以髡為諸侯主客[]宗室置酒髡嘗在側

위왕이 크게 기뻐하며 후궁에 술을 두고 순우곤을 불러 술을 내렸다. (위왕이) 물어 말하기를 선생은 술을 어느 정도 마실 수 있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1말의 술을 마셔도 또한 취하고, 1석의 술을 마셔도 또한 취합니다.” 했다. 위왕이 말하기를 선생은 한 말의 술을 마시면 취하는데 어찌 한 석의 술을 마실 수 있겠오! 그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했다. 순우곤이 말하기를 대왕의 앞에서 술을 내리시면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옆에 있고, 어사가 뒤에 있으니 제거 두려워하여 엎드려서 마시니 한 말의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하게 됩니다. 만약 부모에게 귀한 빈객이 있으면 제가 팔을 걷고 몸을 굽혀 꿇어 앞에서 술을 기다리면, 마시다 남은 술을 내리시는데 술잔을 받들고 천자의 수명을 축수하고 일어나기를 여러 번 하면 채 두 말을 마시지 않아서 취합니다. 만약 벗과 사귀면서 오래 동안 서로보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서로 만나 기쁘게 옛 일을 말하면서 사사로운 정으로 서로 이야기하면 5, 6말을 마셔야 취합니다. 만일 마을의 모임에서 남녀가 섞여 앉아 술잔을 돌리고, 머물며 6박과 투호놀이를 하면서 서로 당겨 무리를 만들고, 남녀가 손을 잡아도 벌이 없으며 눈으로 빤히 바라보아도 금하지 않으며, 앞에는 귀거리가 떨어져 있고, 뒤에 비녀가 떨어져 있는 것을 저는 이것을 좋아하니 8말을 마시면 둘 셋만큼 취합니다. 해가 저물고 술이 한 창되면 술 단지를 합하고 당겨 앉아 남녀가 자리를 같이하며 신발이 뒤 섞이고 술 상 위의 술과 안주가 어지럽게 흩어지며, 대청 위의 촛불이 꺼지면 주인이 저를 머물게 하고 객을 보냅니다. 비단 저고리 옷깃을 풀면 은은한 향기가 납니다. 이런 때를 당하면 저는 마음이 가장 즐거워 한 섬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술이 지극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지극하면 슬퍼집니다. 만사가 그러하여 말을 지극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말을 지극하게하면 쇠퇴합니다.”하여 완곡한 말로 잘못을 고치도록 했다. 제나라 왕이 말하기를 훌륭합니다.” 하고는 이에 밥새 술 마시는 것을 그만두고 순우곤을 제후의 主客으로 삼았다. 종실이 줄을 둘 때는 순우곤이 항상 곁에 있었다.


[] 集解徐廣曰:「收衣褏袂也臂捍也音溝曲也(+)音其紀反又與謂小詭。」索隱帣音卷紀免反謂收袖也韝音溝臂扞也曲躬也(+)音其紀反同音謂小跪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자루 권)’은 옷소매를 거두는 것이다. ‘(소매 몌)이다. ‘(깍지 구)’는 팔을 보호하는 팔찌이니 음은 이다. ‘은 굽음이다. (+:꿇어앉을 기)의 음은 이고, (꿇어앉을 기)’와 같으니 조금 꿇음이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니 으로 옷소매를 거둠이다. ‘의 음은 이니 팔을 보호하는 것이다. ‘은 몸을 굽힘이다. ‘(+)’의 음은 이니 와 음이 같고, 조금 꿇는 것이다.

 

[] 集解徐廣曰:「吐甑反直視貌。」 索隱眙音與謂直視也丑甑反又音丑二反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눈여겨 볼 치)’(시루 증)’으로 바로 보는 모양이다.” 했다. 索隱의 음은 (바로볼 징)’과 같은데 바로 보는 것으로 이다. 또 음은 이다.

 

[] 索隱案上云五六斗徑醉矣」,則此為樂亦甚飲可八斗而未徑醉故云竊樂」。二參言十有二參醉也

[] 索隱살펴보니 위에서 “5, 6말을 마시면 취한다.” 한 것은 곧 이는 즐거움이 또한 심한 것이고, 술 마시기를 8말하여도 취하지 않음은 곧 몰래 즐김을 말한 것이다. 2, 3은 열에 두, 셋이 취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 集解徐廣曰:「一本云留髡坐起送客』。」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어떤 본에는 留髡坐起送客(순우곤을 앉아 머물게하고, 객을 일어나게하여 보낸다.)’” 했다.

 

[] 正義今鴻臚卿也

[] 正義지금의 홍로경이다.

 

其後百餘年楚有優孟優孟[]故楚之樂人也長八尺多辯常以談笑諷諫楚莊王之時有所愛馬衣以文繡置之華屋之下席以露床以棗脯馬病肥死使群臣喪之欲以棺槨大夫禮葬之左右爭之以為不可王下令曰:「有敢以馬諫者罪至死。」優孟聞之入殿門仰天大哭王驚而問其故優孟曰:「馬者王之所愛也以楚國堂堂之大何求不得而以大夫禮葬之請以人君禮葬之。」王曰:「何如?」對曰:「臣請以彫玉為棺文梓為槨楩楓豫章為題湊[]發甲卒為穿壙老弱負土齊趙陪位於前韓魏翼衛其後[]廟食太牢奉以萬戶之邑諸侯聞之皆知大王賤人而貴馬也。」王曰:「寡人之過一至此乎為之柰何?」優孟曰:「請為大王六畜葬之以壟灶為槨[]銅歷為棺[]齎以薑棗[]薦以木蘭祭以糧稻衣以火光葬之於人腹腸。」[]於是王乃使以馬屬太官無令天下久聞也

그 후 100여년 후 초나라에 우맹이 있었다. 우맹은 옛 초나라의 악공이었다. 키는 8척이었고 말이 많으며 항상 웃으며 가볍게 말하는데 완곡한 표현으로 잘못을 고치게 하였다. 초나라 장왕 때 아끼는 말이 있어 수놓은 옷을 입히고 화려한 집 아래에 두고, 자리는 장막이 없는 침상으로 하며, 대추와 말린과일이나 채소를 먹게 하였다. 말이 병적으로 살이 쪄 죽으니 여러 신하로 하여금 장례하게하면서 관곽을 갖추어 대부의 에로 하고자 하였다. 측근들이 그것을 간쟁하여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왕이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감히 말을 가지고 간하는 자가 있다면 벌로 죽음에 이를 것이다.” 했다. 우맹이 듣고 궁궐의 문에 들어 가 하늘을 우러르며 크게 곡을 하였다. 왕이 놀라 그 이유를 물었다. 우맹이 말하기를 말은 왕이 아끼는 것이고, 초나라는 당당하고 크니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대부의 예는 박하니 임금의 예로 장례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는가?”하자 우맹이 대답하기를 신은 옥을 깍아 관을 만들고, 문채있는 가래나무로 곽을 만들며, 단풍나무, 느릅나무, 녹나무를 관 밖에 쌓고, 군사를 징발하여 구덩이를 파게하고 노약자가 흙을 지게하며 제나라와 조나라가 앞에서 모시고 자리하게 하고, 한나라와 위나라는 그 뒤에서 호위하게 하며, 사당을 세워 태뢰로 제사하고 만호의 마을로서 받들게 합니다. 제후들이 그것을 들으면 모두 대왕이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말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과인의 허물이 하나로 여기에 이르렀는가! 어찌해야 하는가?” 했다. 우맹이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여섯가지 가축을 장례하는 것으로 하기를 청합니다. 밭두둑에 부뚜막을 만들어 밖의 널로 삼고, 구리로 만든 솥을 속 널로 삼아 생강과 대추를 갖추고 목란을 더하며 벼로 제사하고, 불로 옷을 입혀 사람의 배와 창자에 장례합니다.” 했다. 이에 왕이 곧 말을 태관에 주게 하고는 천하에 오래 동안 말하지 못하게 했다.


[] 索隱案優者倡優也字也其優旃亦同旃其字耳優孟在楚旃在秦者也

[] 索隱살펴보니 (넉넉할 우)’는 광대(배우)이다. ‘은 자이다. 優旃이 또한 같다. ‘은 그 자일 뿐이다. 우맹은 초나라에 있었고, ‘()은 진나라에 있었던 자이다.

 

[] 集解蘇林曰:「以木累棺外木頭皆內向故曰題湊。」 正義楩頻綿反

[] 集解소림이 말하기를 나무로 널 밖에 쌓고, 나무 머리는 모두 안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에 題湊(모일 주)’라 한다.” 했다. 正義(나무이름 편)’綿이다.

 

[] 集解楚莊王時未有趙魏三國索隱案此辨說者之詞後人所增飾之矣

[] 集解초나라 장왕 때는 아직 조, , 위의 세 나라가 있지 않았다. 索隱살펴보니 여기의 말하는 자의 말은 뒷사람들이 더하고 꾸민 것이다.


[] 索隱按皇覽亦說此事壟灶礱突

[] 索隱살펴보니 황람에 또한 이 일을 말하고 있는데 壟灶礱突로 하였다.

 

[] 索隱按歷即釜鬲

[] 索隱살펴보니 은 곧 釜鬲(솥 력):가마 솥이다.

 

[] 索隱按古者食肉用薑棗禮內則云實棗於其腹中屑桂與薑以洒諸其上而食之是也

[] 索隱살펴보니 옛날에 고기를 먹으면 생강과 대추를 쓰는데 예 내칙에 그 배 안에 대추를 채우고 계피와 생강을 가루내고 술을 그 위에 부어 먹는다.” 한 것이 이것이다.


[] 索隱皇覽云:「火送之箸端葬之腸中。」

[] 索隱】 『황람젓가락 끝으로 불에 보내고 창자 안에 장사한다.” 했다.


楚相孫叔敖知其賢人也善待之病且死屬其子曰:「我死汝必貧困若往見優孟言我孫叔敖之子也。」居數年其子窮困負薪逢優孟與言曰:「孫叔敖子也父且死時屬我貧困往見優孟。」優孟曰:「若無遠有所之。」[]即為孫叔敖衣冠抵掌談語[]歲餘像孫叔敖楚王及左右不能別也莊王置酒優孟前為壽莊王大驚以為孫叔敖復生也欲以為相優孟曰:「請歸與婦計之三日而為相。」莊王許之三日後優孟復來王曰:「婦言謂何?」孟曰:「婦言慎無為楚相不足為也如孫叔敖之為楚相盡忠為廉以治楚楚王得以霸今死其子無立錐之地貧困負薪以自飲食必如孫叔敖不如自殺。」因歌曰:「山居耕田苦難以得食起而為吏身貪鄙者餘財不顧恥辱身死家室富又恐受賕枉法為姦觸大罪身死而家滅貪吏安可為也念為廉吏奉法守職竟死不敢為非廉吏安可為也楚相孫叔敖持廉至死方今妻子窮困負薪而食不足為也!」於是莊王謝優孟乃召孫叔敖子封之寢丘[]四百戶以奉其祀後十世不絕此知可以言時矣

초나라 재상 손숙오는 그 현인을 잘 알고 그들을 잘 대우하였다. 병들어 죽을 때 그 아들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너는 반드시 가난하게 살아라. 만약 가서 우맹을 뵙거든 내가 손숙오의 아들이다. 하고 말하라.” 했다. 몇 년 후 그 아들이 가난하여 섶을 지고 가다 우맹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손숙오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도한 죽을 때 내가 가난해지면 가서 우맹을 만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했다. 우맹이 말하기를 너는 멀리 가지 말라하고는 곧 손숙오의 의관을 하고 손벽을 치며 재미있게 이야기 하였다. 1년 정도 지난 후 손숙오를 흉내 내니 초나라 왕과 측근들이 구별하지 못하였다. 장왕이 술을 두니 우맹이 앞으로 나가 축수하였다. 장왕이 크게 놀라 손숙오가 다시 살아 온 것으로 여겨 재상으로 삼고자 하였다. 우맹이 말하기를 돌아가 부인과 함께 헤아려보고 3일이 지나 재상이 될 것입니다.” 했다. 장왕이 그것을 허락하였다. 3일 후 우맹이 다시 왔다. 왕이 말하기를 부인이 무엇이라 말하던가?” 하니 우맹이 말하기를 부인이 말하기를 신중히 하고 초나라의 재상은 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손숙오처럼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서 충성을 다하고, 청렴함으로 초나라를 다스려서 초나라 왕이 제후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죽어 그 아들이 송곳을 꼿을 만한 땅도 없어 가난하여 섶을 지는 것으로서 스스로 먹고 마십니다. 반드시 손숙오와 같을 것이니 자살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습니다.”하고는 노래하기를 산에 살며 힘들게 밭을 갈아도 먹을 것 얻기 어렵다. 몸을 일으켜 관리가 되어 몸이 탐욕스럽고 비루한 자는 재물이 많고, 부끄러움과 욕을 돌아보지 않는다. 몸이 죽어 집안이 부유해도 뇌물을 받고, 법을 굽혔다고 간사하고 대죄에 걸려 몸은 죽고 집안이 사라졌다. 탐욕스러운 관리 어찌 할 수 있으리오! 청렴한 관리 될 것을 생각하고 법을 받들고 직책을 지키다 마침내 죽어도 감히 잘못이라 하지 않는다. 청렴한 관리 어찌 할 수 있으리오! 초나라 재상 손숙오가 첨렴을 지키다 죽었는데 지금 처자들이 가난하여 섶을 져서 먹으니 할 것이 못되네!” 했다. 이에 장왕이 우맹에게 사과하고 이에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침구 400호를 봉하여 그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그 후 10세대를 끊어지지 않았다. 이는 말할 때를 알았던 것이다.

 

[] 索隱案謂優孟語孫叔敖之子曰汝無遠有所之適他境恐王後求汝不得者也

[] 索隱우맹이 손숙오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멀리 가지 말라 다른 나라로 가면 왕이 후에 너를 찾을 때 찾을 수 없을 까 두렵다.” 한 것이다.


[] 集解戰國策曰:「蘇秦說趙王華屋之下抵掌而言。」張載曰:「談說之容則也。」

[] 集解】 『전국책소진이 조나라 왕의 화려한 집 아래서 유세하여 손을 치면서 말하였다.” 했다. 장재가 말하기를 담론하는 모습이다.” 했다.

 

[] 集解徐廣曰:「在固始。」 正義今光州固始縣本寢丘邑也呂氏春秋云:「楚孫叔敖有功於國疾將死戒其子曰:『王數欲封我我辭不受我死必封汝汝無受利地荊楚閒有寢丘者其為地不利而前有妒後有戾丘其名惡可長有也。』其子從之楚功臣封二世而收唯寢丘不奪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고시에 있다.” 했다. 正義지금의 광주 고시현이니 본래 침구읍이다. 여씨춘추초나라 손숙오가 나라에 공이 있었는데 병들어 죽으려할 때 그 아들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왕이 여러 번 나를 봉하려하였으나 내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반드시 너를 봉할 것이다. 너는 이로운 땅(좋은 땅)을 받지 말고 형과 조의 사이에 침구라는 땅이 있는데 그 것을 좋은 땅이 되지 못하고, 앞에는 妒谷이 있고, 뒤에는 戾丘가 있어 그 이름이 나쁘니 오래 소유할만 하다.’ 했다. 그 아들이 그것을 따랐다. 초의 공신은 봉한지 2세대에 거두어 들였는데 오직 침구만은 빼앗지 않았다.” 했다.


其後二百餘年秦有優旃優旃者秦倡侏儒善為笑言然合於大道秦始皇時置酒而天雨陛楯者皆沾寒優旃見而哀之謂之曰:「汝欲休乎?」陛楯者皆曰:「幸甚。」優旃曰:「我即呼汝汝疾應曰諾。」居有頃殿上上壽呼萬歲優旃臨檻[]大呼曰:「陛楯郎!」郎曰:「。」優旃曰:「汝雖長何益幸雨立我雖短也幸休居。」於是始皇使陛楯者得半相代

그 후 200여년 후 진나라에 우전이 있었다. 우전은 진나라의 광대로 난장이였다. 웃기는 소리를 잘하였으나 大道에 부합하였다. 진나라 시황제 때 술을 마시는데 비가 내려 섬돌아애서 지키는 병사들이 모두 젖어 추워하였다. 우전이 보고 불쌍하게 여겨 그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희들은 쉬고자 하는가?” 하니 방패를 들고 지키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쉴 수 있다면) 매우 다행입니다.”하였다. 우전이 말하기를 내가 곧 너희를 부르면 너희는 재빨리 대답하여 예라고 하라.” 했다. 조금 후 전각 위에서 천자를 축수하며 만세를 불렀다. 우전이 난간에서 크게 불러 말하기를 방패들고 호위하는 군사들아!” 하니 군사들이 하고 대답했다. 우전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비록 키가 크지만 무슨 이익이 있는가. 비를 만나 서 있기나 하는구나. 내 비록 키가 작으나 쉬고 있다.” 했다. 이에 시황제가 방패를 들고 지키는 자들로 하여금 반이 서로 대신하게 할 수 있게 하였다.(반 씩 돌아가며 쉬게 하였다,)


[] 正義御覽反

[] 正義이다.

 

始皇嘗議欲大苑囿東至函谷關西至雍陳倉[]優旃曰:「多縱禽獸於其中寇從東方來令麋鹿觸之足矣。」始皇以故輟

시황제가 일찍이 큰 원유(울타리치고 짐승을 기르는 정원)를 논의하였는데 동쪽으로는 함곡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옹현과 진창에 이르렀다. 우전이 말하기를 훌륭합니다. 그 안에 짐승을 많이 놓았다가 도적이 동쪽으로부터 오면 미록으로 하여금 발로 차게 하면 됩니다.” 하니 시황제가 때문에 그만 두었다.


[] 正義今岐州雍縣及陳倉縣也

[] 正義지금의 기주는 옹현과 진창현이다.

 

二世立又欲漆其城優旃曰:「主上雖無言臣固將請之漆城雖於百姓愁費然佳哉漆城蕩蕩寇來不能上即欲就之易為漆耳顧難為蔭室。」於是二世笑之以其故止居無何二世殺死優旃歸漢數年而卒

2세가 즉위하여 또한 그 성을 옻칠하려 하였다. 우전이 말하기를 훌륭합니다. 주상께서는 비록 말이 없으시나 신은 진실로 장차 청하려 했습니다. 성을 옻칠하면 비록 백성들은 비용을 걱정하겠지만 아름다울 것입니다. 옻칠한 성의 당당함에 도적이 와도 잘 오르지 못할 것입니다, 곧 나아가고자 한다면(옻칠을 하고자 한다면) 옻칠하기는 쉬운데 다만 그늘을 만드는 것이 어렵습니다.” 했다. 이에 2세가 웃으면서 그 일을 그만두었다. 얼마 후 2세가 살해되어 죽으니 우전은 한에 돌아가 몇 년 지나 죽었다.


太史公曰淳于髡仰天大笑齊威王橫行優孟搖頭而歌負薪者以封優旃臨檻疾呼陛楯得以半更豈不亦偉哉

태사공이 말하기를 순우곤은 제나라 위왕의 잘못된 행실에 대하여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었다. 우맹은 머리를 흔들며 노래하여 섶을 진자를 봉하게 하였다. 우전은 난간에 기대 크게 소리질러 방패들고 호위하는 군사들을 반씩 교대할 수 있게 하였다. 어찌 또한 위대하지 않다 하겠는가!” 했다.


褚先生曰臣幸得以經術為郎而好讀外家傳語[]竊不遜讓復作故事滑稽[]之語六章編之於左可以覽觀揚意以示後世好事者讀之以游心駭耳以附益上方太史公之三章

저선생이 말하기를 신은 요행히도 경서에 관한 학문을 얻어 낭이 되었고, 역사서 등에 섞여 전하는 글 읽기를 좋아하였다. 겸손하고 사양하지 않고 다시 옛 골계의 말 6장을 엮어 아래에 붙인다. 드러난 뜻을 살필 수 있고, 후세에 일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보이는 것으로서 그것을 읽고 마음에 즐겁고 놀라게 하고자 함일 뿐이니 위에 있는 태사공의 3장에 덧붙인다.” 했다.


[] 索隱按東方朔亦多博觀外家之語則外家非正經即史傳雜說之書也

[] 索隱살펴보니 동박삭이 또한 많이 역사서에 섞여 전하는 말을 널리 보았으니 곧 외가는 바른 경서가 아닌 역사에 전하는 잡설의 글이다.


[] 索隱楚詞云:「將突梯滑稽如脂如韋。」崔浩云:「滑音骨滑稽流酒器也轉注吐酒終日不已言出口成章詞不窮竭若滑稽之吐酒故楊雄酒賦云鴟夷滑稽腹大如壺盡日盛酒人復藉沽是也。」又姚察云:「滑稽猶俳諧滑讀如字稽音計也言諧語滑利其知計疾出故云滑稽。」

[] 索隱】 「초사각이 없고 원만하여 둥글게 돌아가는 것이 마치 기름 같고 가죽 같다.” 했다. 최호가 말하기를 “‘의 음은 이다. ‘滑稽는 술을 흘리는 그릇이다. 돌려 부어 술을 따르면 종일토록 하여도 그치지 않는다. 말이 입을 나오면 문장을 이루고, 말이 다하지 않으니 滑稽로 술을 따름과 같다. 그러므로 양웅의 주부가죽 술 주머니 골계는 배가 큰 항아리 같아 종일 술을 담아 사람들이 다시 의지하여 장사한다.’ 한 것이 이것이다. ”했다. 또한 요찰이 말하기를 “‘골계는 우스갯소리이다. ‘은 글자와 같이 읽고, ‘의 음은 이다. 해학의 말이 매끄럽고 날카로워 그 헤아림이 빨리 나옴을 알기 때문에 滑稽라 한다.

 

武帝時有所幸倡郭舍人者發言陳辭雖不合大道然令人主和說武帝少時東武侯母[]常養帝[]帝壯時號之曰大乳母」。率一月再朝朝奏入有詔使幸臣馬游卿以帛五十匹賜乳母又奉飲糒飧養乳母乳母上書曰:「某所有公田願得假倩。」帝曰:「乳母欲得之乎?」以賜乳母乳母所言未嘗不聽有詔得令乳母乘車行馳道中當此之時公卿大臣皆敬重乳母

무제 때 총애 받던 광대 곽사인이 있었는데 말을 하여 뜻을 모임이 비록 대도에는 부합하지 않았으나 인주로 하여금 온화하고 기쁘게 하였다. 무제가 어렸을 때 동무의 후 유모가 항상 무제를 길렀는데 무제가 장성하여 그를 부르기를 대유모라 했다. 한 달에 두 번의 비율로 입조하였다. (유모가)조회에 들어온다 아뢰면 조서로 총애하는 신하인 마유경으로 하여금 비단 50필을 유모에게 내리게 하고, 또 말실 것과 말린 밥, 익힌 밥을 받들어 유모를 봉양했다. 유모가 글을 올려 말하기를 어떤 곳에 공전이 있는데 그것을 빌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했다. 무제가 말하기를 유모가 그것을 얻기를 바라는가?”하고는 유모에게 내렸다. 유모가 말한 것은 일찍이 들어주지 않음이 없었다. 조서를 내려 유모가 탄 수레로 하여금 치도(황제가 다니는 길) 안을 갈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공경과 대신들이 모두 유모를 공경하고 중하게 여겼다.

 

乳母家子孫奴從者橫暴長安中當道掣頓人車馬奪人衣服聞於中不忍致之法有司請徙乳母家室處之於邊奏可乳母當入至前面見辭乳母先見郭舍人為下泣舍人曰:「即入見辭去疾步數還顧。」乳母如其言謝去疾步數還顧郭舍人疾言罵之曰:「老女子何不疾行陛下已壯矣寧尚須汝乳而活邪尚何還顧!」於是人主憐焉悲之乃下詔止無徙乳母罰謫譖之者[]

유모 가문의 자손과 종들이 장안에서 횡포하여 길에서 사람과 수레를 억누르고 조아리게 하고, 다른 사람의 의복을 빼앗았다. 궁중에서 들었으나 차마 법으로 다스리지 못하였다. 담당관청에서 유모의 집을 변경에 가 있게 하기를 청하였다. 아뢰는 것을 허락하였다. 유모가 들어가 앞에 이르러 얼굴을 보고 하직하려 하였다. 유모가 먼저 곽사인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곽사인이 말하기를 들어가 하직인사를 하고 갈 때 빠른 걸음으로 여러 번 돌아보십시오.” 했다. 유모가 그 말과 같이 하직하고 떠나면서 빠름 걸음으로 여러 번 돌아보았다. 곽사인이 빠른 말로 꾸짖어 말하기를 쯔쯔! 늙은 여자야! 어찌 빨리 가지 않는가! 폐하께서 이미 장성하셨는데 정녕 아직도 모름지기 너의 젖으로 살겠는가? 어찌 돌아보는가!” 했다. 이에 황제가 불쌍하게 여기고, 슬퍼하여 곧 조서를 내려 그치게 하여 유모를 옮기지 않게 하고, 벌로 참소한 자들을 귀양보냈다.


[] 索隱案東武縣名乳母姓

[] 索隱살펴보니 동무는 현의 이름이고, ‘는 유모의 성이다.


[] 正義高祖功臣表云東武侯郭家高祖六年封子他孝景六年棄市國除蓋他母常養武帝

[] 正義】 「고조공신표동무후 곽가는 고조 6년에 봉해졌다. 아들 타가 효경제 6년에 기시되어 나라가 없어졌다. 대개 타의 어미가 항상 무제를 길렀다.


[] 索隱罰適譖之者謂武帝罰謫譖乳母之人也

[] 索隱罰適譖之는 무제가 유모를 참소한 사람들을 벌주어 귀양 보낸 것을 말한다.

 

武帝時齊人有東方生名朔[]以好古傳書愛經術多所博觀外家之語朔初入長安至公車上書[]凡用三千奏牘公車令兩人共持舉其書僅然能勝之人主從上方讀之輒乙其處讀之二月乃盡詔拜以為郎常在側侍中數召至前談語人主未嘗不說也時詔賜之食於前飯已盡懷其餘肉持去衣盡汙數賜縑檐揭而去徒用所賜錢帛取少婦於長安中好女率取婦一歲所者即棄去更取婦所賜錢財盡索之於女子人主左右諸郎半呼之狂人」。人主聞之:「令朔在事無為是行者若等安能及之哉!」朔任其子為郎又為侍謁者常持節出使朔行殿中郎謂之曰:「人皆以先生為狂。」朔曰:「如朔等所謂避世於朝廷閒者也古之人乃避世於深山中。」時坐席中酒酣據地歌曰:「陸沈於俗[]避世金馬門宮殿中可以避世全身何必深山之中蒿廬之下。」金馬門者[]署門也門傍有銅馬故謂之曰金馬門」。

무제 때 제나라 사람 동방생이 있으니 이름은 삭이고, 傳書를 좋아하고 경전을 공부하는 학문을 사랑하여 많이 外家의 말을 넓게 보았다. 동박삭이 처음 장안에 들어가 공거에 이르러 글을 올렸는데 모두 3천개의 아뢰는 나무조각이었다. 공거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그 글을 함께 가지게 하여 겨우 감당할 수 있었다. 임금이 위로부터 그것을 읽다가 그치면 문득 그 곳에 표시를 하였다가 다시 읽고하여 2개월만에 모두 읽었다. 조서로 벼슬을 주어 낭을 삼고, 항상 궁중에서 옆에 있으면서 모시게 했다. 여러 번 불러 앞에 이르면 담소하는 말을 나누었는데 임금이 일찍이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다. 때로 조서로 앞에서 밥을 내렸다. 밥 먹기를 마치면 그 남은 고기를 모두 가지고 가게하니 옷이 땀에 젖었다. 여러 번 비단을 내리니 짊어지고 갔다. 한갓 내린 바의 돈과 비단을 장안 안의 좋은 여자 중에서 젊은 부인을 취하는데 사용하였다. 대략 부인을 취하고 1년정도 데리고 있다가 버리고 다시 부인을 취하였다. 대린 바의 돈과 재물을 모두 여자를 찾는데 모두 썼다. 천자의 좌우 여러 낭들 중에 반이 그를 불러 광인이라 불렀다. 천자가 그것을 듣고 말하기를 가령 동방삭이 일에 있어 이러한 행동이 없다면 너희들이 어찌 그에게 미칠 수 있겠는가!” 했다. 동방삭이 그 아들을 임명하여 낭으로 삼고 또 시알자가 되어 항상 부절을 지니고 사신을 나갔다. 동방삭이 전각 안에 갔을 때 낭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선생을 미쳤다.” 합니다. 동방삭이 말하기를 나 같은 사람은 이른 바 세상을 피해 조정의 사이에 있는 자이다. 옛날 사람들은 깊은 산 속에서 세상을 피하였다.” 했다. 때로 자리에 앉아 있다가 술이 거나해지면 땅에 기대어 노래하기를 뭍이 세속에 빠지니 금마문에서 세상을 피하네. 궁전 안은 전신을 세상에서 피할만하니 어찌 반드시 깊은 산중 띠집의 아랫이겠는가.” 했다. 금마문은 관청의 문인데 문 옆에 구리 말이 있기 때문에 금마문이라 한 것이다.


[] 索隱案仲長統云遷為滑稽傳序優旃事不稱東方朔非也朔之行事豈直旃孟之比哉而桓譚亦以遷為是又非也正義漢書云:「平原厭次人也。」輿地志云:「厭次宜是富平縣之鄉聚名也。」括地[]:「富平故城在倉州陽信縣東南四十里漢縣也。」

[] 索隱중장통이 말하기를 사마천이 골계전을 쓰면서 우전의 일을 에 쓰고 동방삭을 말하지 않았다. 하는데 아니다. 동방삭의 행한 일을 어찌 바로 우전과 우맹에 비하겠는가. 환담이 또한 사마천이 이러했다. 했는데 또한 잘못이다.” 했다. 正義】 『한서평원 염차 사람이다.” 했다. 여지지마땅히 염차는 부평현의 촌락 이름이다.” 괄지지부평 옛 성은 창주 양신현 동남쪽 40리에 있는데 한의 현이다.


[] 正義百官表云衛尉屬官有公車司馬漢儀注云:「公車司馬掌殿司馬門夜徼宮天下上事及闕下凡所徵召皆總領之秩六百石。」

[] 正義】 「백관표위위의 속관에 공거사마가 있다.” 했다. 한의주공거사마는 궁전 사마문을 관장하며 밤에 궁을 돌아보고, 천하의 세상일과 대궐 안에서 불려오는 바를 모두 관장하며, 녹봉은 600석이다,” 했다.


[] 索隱司馬彪云:「謂無水而沈也。」

[] 索隱사마표가 말하기를 물이 없어도 가라앉음을 말한다.” 했다.

 

時會聚宮下博士諸先生與論議共難之[]:「蘇秦張儀一當萬乘之主而都卿相之位澤及後世今子大夫修先王之術慕聖人之義諷誦詩書百家之言不可勝數著於竹帛自以為海內無雙即可謂博聞辯智矣然悉力盡忠以事聖帝曠日持久積數十年官不過侍郎位不過執戟意者尚有遺行邪其故何也?」東方生曰:「是固非子所能備也彼一時也此一時也豈可同哉夫張儀蘇秦之時周室大壞諸侯不朝力政爭權相禽以兵并為十二國未有雌雄得士者彊失士者亡故說聽行通身處尊位澤及後世子孫長榮今非然也聖帝在上德流天下諸侯賓服威振四夷連四海之外以為席安於覆盂天下平均合為一家動發舉事猶如運之掌中賢與不肖何以異哉方今以天下之大士民之眾竭精馳說並進輻湊者不可勝數悉力慕義困於衣食或失門戶使張儀蘇秦與僕並生於今之世曾不能得掌故安敢望常侍侍郎乎傳曰:『天下無害菑雖有聖人無所施其才上下和同雖有賢者無所立功。』故曰時異則事異雖然安可以不務修身乎詩曰:『鼓鍾于宮聲聞于外鶴鳴九皋聲聞于天。』。苟能修身何患不榮太公躬行仁義七十二年逢文王得行其說封於齊七百歲而不絕此士之所以日夜孜孜修學行道不敢止也今世之處士時雖不用然獨立然獨處上觀許由下察接輿策同范蠡忠合子胥天下和平與義相扶寡偶少徒固其常也子何疑於余哉!」於是諸先生默然無以應也

어느 때 궁 안의 박사와 여러 선생과 함께 논의하아다 모두 어렵게 하고자 말하기를 소진과 장의는 혼자서 만승의 임금을 감당하여 모두 경상의 우두머리 지위에 올라 은택이 후세에 미쳤습니다. 지금 그대는 대부로 선왕의 방법을 닦았고, 성인의 의리를 사모하여 시, , 백가의 말을 읽고 외우는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죽간과 포백(서적)에 드러난 것이 스스로 나라 안에서 짝할 이가 없다 여기니 곧 널리 듣고 말을 잘하며 지혜롭다 이를만 합니다. 그러나 힘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서 성스러운 황제를 섬기면서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낸 것이 오래되어 수십 년이 쌓였지만 관직은 시랑에 지나지 않고, 지위는 집극에 지나지 않으니 생각해 보건데 오히려 잘못된 행동이 있어서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했다. 동방생()이 말하기를 이는 진실로 그대들이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것도 한 때이고, 이것도 한 때이니 어찌 같을 수 있으리오! 대저 장의와 소진의 때는 주나라 왕실이 크게 무너져 제후들이 조회하지 않고, 힘으로 정사하고, 권력을 다투어 서로 군대로 잡아들이며, 합병하여 12국이 되었지만 자웅이 정해지지 않아 를 얻은 자는 강해지고, 를 잃은 자는 망하기 때문에 유세를 듣고 행동은 통하여 몸은 높은 지위에 있었고, 은택은 후세에 미쳐 자손들이 길이 영예로웠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스러운 천자가 위에 있고, 덕이 천하에 흘러 제후들이 복종하고, 사방의 오랑캐에게 위엄을 떨쳐 사해의 밖을 이어 자리로 하여 잔을 엎어놓은 것보다 안정되었으며 천하가 고르게 합하여 한 집안이 되었으니 움직이고 일을 추진하는 것이 오히려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현명함과 현명하지 못함을 무엇으로 구분한단 말인가? 지금은 천하가 크고 사민이 많아 정성을 다하여 유세하려 몰려오는 자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힘을 다하고 의리를 사모하여도 의식에 곤궁하고 혹 집을 잃습니다. 장의와 소진과 나로 하여금 같이 지금의 세상에 태어나게 하여도 손바닥만한 일도 얻지 못할 것이니 어찌 감히 상시와 시랑을 바라리오! 전에 말하기를 천하에 재앙이 없으면 비록 성인이 있어도 그 재주를 베풀 곳이 없고, 산하가 화합하면 비록 현명한 이가 있어도 공을 세울 곳이 없다.’ 합니다. 그러므로 때가 다르면 곧 일이 다릅니다. 비록 그러하다 하더라도 어찌 몸을 닦는데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경궁에서 울리는 쇠북 소리는 밖에까지 들리고, 학이 구택의 언덕에서 울면 그 소리는 온 하늘에 들린다.’하니 진실로 자신을 잘 닦는 것이지 어찌 영예롭지 않음을 근심하리오! 태공이 몸소 인과 의를 행한지 72년에 문왕을 만나 그 말을 행할 수 있어 제나라에 봉해져 700년동안 제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선비가 날로 부진런히 배움을 닦고, 도를 행하는 이유이니 감히 그칠 수 없습니다. 지금 세상의 벼슬없이 숨어사는 선비들은 때에 비록 쓰여지지 않아도 우뚝하게 홀로서서 편안히 홀로 있으면서 위로는 허유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접여를 살피며, 계책은 범려와 같이하고, 충성은 오자서에 합하나 천하가 화평하여 의리로 서로 부축하니 짝이 부족하고, 무리가 적은 것은 진실로 떳떳한 것입니다. 그 대들은 어찌하여 나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했다. 이에 여러 선생들이 말이 없고 응대함이 없었다.


[] 索隱與議論共難之方朔設詞對之即下文是答對之難也

[] 索隱與議論共難之는 살피건데 동방삭이 말을 베풀어 놓은 것에 대답한 것이니 곧 아래 글은 이에 대답하기 어려움에 대한 답이다.


建章宮[]後閤重櫟[]中有物出焉其狀似麋以聞武帝往臨視之問左右群臣習事通經術者莫能知詔東方朔視之朔曰:「臣知之願賜美酒粱飯大飧臣臣乃言。」詔曰:「。」已又曰:「某所有公田魚池蒲葦數頃陛下以賜臣臣朔乃言。」詔曰:「。」於是朔乃肯言:「所謂騶牙[]者也遠方當來歸義而騶牙先見其齒前後若一齊等無牙故謂之騶牙。」其後一歲所匈奴混邪王果將十萬眾來降漢乃復賜東方生錢財甚多

건장궁 뒤쪽 쪽문의 거듭된 난간 안에서 물건이 여기서 나옴이 있었는데 그 형상이 고라니와 비슷하였다. 아뢰니 무제가 가서 보았다. 좌우의 여러 신하들 중 일을 익히고, 경술에 능통한 자에게 물었으나 알지 못하였다. 동방삭을 불러 물었다. 동방삭이 말하기를 신이 그것을 아는데 좋은 술과 기장밥으로 크게 신에게 저녁밥을 내리시면 신이 곧 말하겠습니다.” 했다. 조칙으로 좋다.”하니 마치고 또한 말하기를 어떤 곳에 공전과 물고기를 기르는 연못과 부들과 갈대가 자라는 땅이 몇 경 있는데 폐하께서 신에게 내려주시면 신 동방삭이 곧 말하겠습니다.” 했다. 조칙으로 말하기를 좋다.” 하였다. 이에 동방삭이 곧 즐거이 말하기를 이른바 추아라는 것입니다. 멀리서 와서 의에 귀의함이 있으면 추아가 먼저 보입니다. 그 이는 앞 뒤가 자 같이 가지런하고 어금니가 없기 때문에 추아라 하는 것입니다.” 했다. 그 후 1년 만에 흉노의 혼야왕이 과연 10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한에 항복하였다. 이에 다시 동방생에게 돈과 재물을 내렸는데 매우 많았다.

 

[] 正義在長安縣西北二十里故城中

[] 正義장안현 서북쪽 20리 옛 성안에 있다.

 

[] 索隱上逐龍反下音歷重櫟欄楯之下有重欄處也

[] 索隱위는 이고, 아래의 음은 이다. ‘重櫟(상수리나무 역)’은 난간의 아래에 중첩하여 난간이 있는 곳이다.

 

[] 索隱騶音鄒方朔以意自立名而偶中也以有九牙齊等故謂之騶牙猶騶騎然也

[] 索隱(말 먹이는 사람 추)’의 음은 (나라 이름 추)’이다. 살펴보니 동방삭이 자기의 생각으로 이름을 세워 우연히 맞힌 것이다. 9개의 어금니가 가지런하게 있기 때문에 추아라 이름하니 騶騎(말 타고 고관을 수행하여 따르는 모양)와 같은 것이다.


至老朔且死時諫曰:「詩云營營青蠅止于蕃愷悌君子無信讒言讒言罔極交亂四國』。願陛下遠巧佞退讒言。」帝曰:「今顧東方朔多善言?」怪之居無幾何朔果病死傳曰:「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此之謂也

늙어서 동방삭이 또한 죽으려 할 때 간하여 말하기를 시경앵앵거리는 쉬파리 울타리에 앉아 쉰다. 자애롭고 공경하는 군자여 참소하는 말을 믿지 마시오, 참소하는 말이 끝이 없어 사방의 나라를 어지럽힌다.’ 하였으니 폐하께서는 교묘한 아첨하는 말을 멀리하시고, 참언을 물리치시기를 원합니다.” 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지금 동방삭이 좋은 말을 많이 하였는가?” 하고는 괴이하게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삭이 과연 병들어 죽었다. 전하는 말에 새가 장차 죽으려할 때는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착해진다. 하였는데 이것을 이름일 것이다.” 했다.


武帝時大將軍衛青者衛后兄也[]封為長平侯從軍擊匈奴至余吾水上而還斬首捕虜有功來歸詔賜金千斤將軍出宮門齊人東郭先生以方士待詔公車當道遮衛將軍車拜謁曰:「願白事。」[]將軍止車前東郭先生旁車言曰:「王夫人新得幸於上家貧今將軍得金千斤誠以其半賜王夫人之親人主聞之必喜此所謂奇策便計也。」衛將軍謝之曰:「先生幸告之以便計請奉教。」於是衛將軍乃以五百金為王夫人之親壽

무제 때 대장군 위청은 衛后의 오라비로 봉해져 장평후가 되었다. 군에 종사하여 흉노를 쳐서 여오수 가에 이르고, 돌아왔는데 머리를 베고, 포로를 잡는 공을 세우고 돌아오니 조서로 금 천근을 내렸다. 장군이 궁문을 나오는데 제나라 사람 동곽선생이 方士로서 公車에서 조칙을 기다리고 있다가 위장군의 수레를 길에서 막아 세우며 절하고 나아가 말하기를 일을 아뢰기를 원합니다.”하니 장군이 수레를 앞에 멈추자 동곽선생이 수레 옆에서 말하기를 왕부인이 새로 천자에게 사랑을 얻었으나 집안이 가난합니다. 지금 장군이 금 천 근을 얻었으니 진실로 그 반을 떼어 왕부인의 부모에게 내리신다면 임금이 그것을 듣고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 바 기이한 계책이요 편의적인 계획일 것입니다.” 했다. 위장군이 감사하며 말하기를 선생이 요행히도 편의한 계책으로 알려주시니 가르침을 받들기를 청합니다.” 하고는 이에 위장군이 500금으로 왕부인의 부모를 위해 축수하였다.

 

王夫人以聞武帝帝曰:「大將軍不知為此。」問之安所受計策對曰:「受之待詔者東郭先生。」詔召東郭先生拜以為郡都尉東郭先生久待詔公車貧困飢寒衣敝履不完行雪中履有上無下足盡踐地道中人笑之東郭先生應之曰:「誰能履行雪中令人視之其上履也其履下處乃似人足者乎?」及其拜為二千石佩青緺[]出宮門行謝主人故所以同官待詔者等比祖道於都門外榮華道路立名當世[]此所謂衣褐懷寶者也[]當其貧困時人莫省視至其貴也乃爭附之諺曰:「相馬失之瘦相士失之貧。」其此之謂邪

왕부인이 무제에게 아뢰었다. 황제가 말하기를 대장군이 이를 할 줄은 알지 못하였다.” 하고는 어떻게 받은 바의 계책인지를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조칙을 기다리는 자인 동곽선생에게서 받았습니다.” 했다. 조칙으로 동곽선생을 불러 벼슬을 주어 군도위로 삼았다. 동곽선생이 오래 동안 공거에서 조서를 기다리느라 빈곤하고 굶주려 옷은 헤지고 신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눈 속을 가는데 신은 위는 있으나 바닥이 없어 발이 모두 땅을 밟았다. 길 가운데서 사람들이 그것을 비웃으니 동곽선생이 대응하여 말하기를 누가 신을 신고 눈 속을 가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여 그 위는 신인데 그 신 아래가 사람의 발과 같게 할 수 있겠는가?” 했다. 벼슬을 받아 2천석의 관리가 됨에 이르러 푸름 색의 인끈을 차고 궁문을 나와 길을 가서 이전에 머물던 집 주인에게 인사하였다. 옛날에 같이 관직으로 조서를 기다리던 자들이 차례로 도성 문 밖에서 조도신에게 제사지내 도로를 영화롭게 해 주어 그 이름이 당세에 드러나게 하였다. 이것이 이른 바 갈옷을 입고 보배를 품은 자 라는 것이다. 그 빈곤한 때를 당하였을 때는 사람들이 살펴보지 않았고, 그 귀함에 이르러서 곧 다트어 붙었다. 속단에 말을 볼 때는 수척함에서 잘못되고, 선비를 살핌에는 가난함에서 잘못된다.” 했다. 그것이 이것을 이름인가?


[] 集解徐廣曰:「衛青傳曰子夫之弟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위청전자부의 동생이다.” 했다.

 

[] 集解徐廣曰:「衛青傳云甯乘說青而拜為東海都尉。」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위청전영승이 위청에게 이 말을 하여 동해도위가 되었다.” 했다.

 

[] 集解徐廣曰:「音瓜一音螺青綬。」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음은 인데 한 음은 (소라 나)’이니 푸른 인끈이다.”했다.

 

[] 集解徐廣曰:「東郭先生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동곽선생이다.” 했다.

 

[] 索隱此指東郭先生也言其身衣褐而懷寶玉

[] 索隱이는 동곽선생을 가리킴이니 그 몸에 갈의를 입고, 보옥을 품었음을 말한 것이다.

 

王夫人病甚人主至自往問之曰:「子當為王欲安所置之?」對曰:「願居洛陽。」人主曰:「不可洛陽有武庫敖倉當關口天下咽喉自先帝以來傳不為置王然關東國莫大於齊可以為齊王。」王夫人以手擊頭幸甚」。王夫人死號曰齊王太后薨」。

왕부인의 병이 심해지자 임금이 직접가서 문안하고 말하기를 아들은 마땅히 왕이 되어야 하는데 어디에 두고자 하는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낙양에서 살게하기를 원합니다.” 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할 수 없다. 낙양에는 무기 창고가 있고, 오창은 관의 입구에 해당하니 천하의 목구멍이다. 선제 이래로부터 왕을 두지 말라 전하였다. 그러나 관동의 나라로 제나라 보다 큰 것이 없으니 제나라 왕은 할 수 있다.” 했다. 왕부인이 손으로 머리를 치면서 소리내어 매우 다행입니다.” 했다. 왕부인이 죽고나자 제왕 태후가 죽었다.” 했다.

昔者齊王使淳于髡獻鵠於楚[]出邑門道飛其鵠徒揭空籠造詐成辭往見楚王曰:「齊王使臣來獻鵠過於水上不忍鵠之渴出而飲之去我飛亡吾欲刺腹絞頸而死恐人之議吾王以鳥獸之故令士自傷殺也毛物多相類者吾欲買而代之是不信而欺吾王也欲赴佗國奔亡痛吾兩主使不通故來服過叩頭受罪大王。」楚王曰:「齊王有信士若此哉!」厚賜之財倍鵠在也

지난날 제왕이 순우곤으로 하여금 초나라에 고니를 바치게 하였다. 읍문을 나가서 길에서 그 고니를 날려보내 버리고 한갓 빈 조롱을 들고 가서 거짓으로 말을 꾸미고, 가서 초왕에게 말하기를 제왕이 신으로 하여금 와서 고니를 바치게 하였는데 물 위를 지나다 차마 고니를 목마르게 할 수 없어 (조롱에서)내어 물을 마시게 하는데 나를 떠나 날아 도망하였습니다. 내가 배를 찌르고 목을 매어 죽고자 하였습니다. 우리 왕이 조수의 일 때문에 선비로 하여금 스스로 해쳐서 죽게하였다는 사람들의 의론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고니는 털 있는 물건으로 서로 비슷한 것이 많으니 내가 그것을 사서 대신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신의를 버리고 우리 왕을 속이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로 도망하고자 하였으나 우리 두 임금이 통하지 않게 하는 것이 아팠습니다. 그러므로 와서 잘못을 자복하고 머리를 두드려 대왕에게 죄를 받으려 합니다.” 했다. 초왕이 말하기를 훌륭합니다. 제왕이 신의 있는 선비를 두었음이 이 같은가!” 하고는 후하게 내렸는데 재물이 고니를 있을 때의 배나 되었다.

 

[] 索隱案韓詩外傳齊使人獻鵠於楚不言髡又說苑云魏文侯使舍人無擇獻鴻於齊皆略同而事異殆相涉亂也

[] 索隱살펴보니 한시외전제가 사람을 시켜 초에 고니를 바치게 했다.” 하나 순우곤을 말하지 않았다. 설원위 문후가 사인 무택을 시켜 제에 기러기를 바쳤다.” 하였는데 모두 대개 비슷하나 일은 다르고, 아마도 서로 섞여 어지러워진 듯하다.


武帝時徵北海太守[]詣行在所有文學卒史王先生者自請與太守俱,「吾有益於君」,君許之諸府掾功曹白云:「王先生嗜酒多言少實恐不可與俱。」太守曰:「先生意欲行不可逆。」遂與俱行至宮下待詔宮府門王先生徒懷錢沽酒與衛卒僕射飲日醉不視其太守太守入跪拜王先生謂戶郎曰:「幸為我呼吾君至門內遙語。」戶郎為呼太守太守來望見王先生王先生曰:「天子即問君何以治北海[]令無盜賊君對曰何哉?」對曰:「選擇賢材各任之以其能賞異等罰不肖。」王先生曰:「對如是是自譽自伐功不可也願君對言非臣之力盡陛下神靈威武所變化也。」太守曰:「。」召入至于殿下有詔問之曰:「何於治北海令盜賊不起?」叩頭對言:「非臣之力盡陛下神靈威武之所變化也。」武帝大笑:「於呼安得長者之語而稱之安所受之?」對曰:「受之文學卒史。」帝曰:「今安在?」對曰:「在宮府門外。」有詔召拜王先生為水衡丞以北海太守為水衡都尉傳曰:「美言可以市尊行可以加人君子相送以言小人相送以財。」

무제 때 북해태수를 불러 행재소에 오게 했다. 문학의 졸사 왕선생이란 자가 있어 스스로 태수와 함께하기를 청하면서 내가 그대에게 유익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대께서는 허락하십시오.” 했다. 제부의 연, 공조 등의 아전들이 말하기를 왕선생은 술을 좋아하고, 말이 많으며, 실제가 적으니 아마도 함께할 수 없습니다.” 했다. 태수가 말하기를 선생의 뜻이 가고자하니 거스를 수 없다.” 하고는 마침내 함께 하였다. 가서 궁아래 이르러 궁부문에서 조칙을 기다렸다. 왕선생이 한 갓 가진 돈으로 술을 사서 호위하는 군사, 복야들과 술을 마셔서 매일 취해 있으면서 그 태수를 보지 않았다. 태수가 들어가 무릎을 꿇고 절할 때가 되었다. 왕선생이 호랑(수문장)에게 말하기를 요행히도 내가 우리 태수를 불러 문안에 이르면 멀리서 말하려 합니다.” 하니 호랑이 태수를 불렀다. 태수가 와서 왕선생을 바라보았다. 왕선생이 말하기를 천자가 곧 그대에게 어떻게 북해를 다스렸기에 도적이 없게 할 수 있었는가?’ 하고 물으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려 합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현명한 재능을 가진 이를 가려뽑아 각기 그 능력에 맞게 맞기며, 등급에 따라 상을 주고, 불초한 자는 벌을 주었습니다.” 했다. 왕선생이 말하기를 대답이 이 같으면 이는 스스로 이름을 높이고, 스스로 공을 자랑하는 일이 되어 해서는 안됩니다. 그대는 신의 힘이 아니라 모두 페하의 신령스러운 위무로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하십시오했다. 태수가 말하기를 하고는 불려 들어가 전각아래 이르자 조칙으로 묻기를 어떻게 북해를 다스렸기에 도적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는가?” 하니 머리를 부딪치며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의 힘이 아니라 모두 폐하의 신령스러운 위무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했다. 무제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 어디서 장자의 말을 얻어서 그것을 말하는가! 어디서 그것을 받았는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문학졸사에게서 그것을 받았습니다.” 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니 궁부의 문밖에 있습니다.” 했다. 조칙으로 불러 왕선생에게 벼슬을 주어 수형승으로 삼고, 북해태수를 수형도위로 삼았다. 전하는 말에 좋은 말은 시장에 팔 수 있고, 고귀한 행실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다. 군자는 서로 말을 보내고, 소인은 서로 재물을 보낸다.” 했다.

 

[] 索隱漢書宣帝徵渤海太守龔遂非武帝時此褚先生記謬耳

[] 索隱】 『한서에는 선제가 발해태수 공수를 불렀다. 하여 무제 때가 아니니 이는 저선생의 기록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 正義今青州

[] 正義지금의 청주이다.

 

魏文侯時西門豹為鄴令[]豹往到鄴會長老問之民所疾苦長老曰:「苦為河伯娶婦[]以故貧。」豹問其故對曰:「鄴三老廷掾常歲賦斂百姓收取其錢得數百萬用其二三十萬為河伯娶婦與祝巫共分其餘錢持歸當其時巫行視小家女好者云是當為河伯婦即娉取洗沐為治新繒綺縠閒居齋戒為治齋宮河上張緹絳帷[]女居其中為具牛酒飯食,(十餘日共粉飾之如嫁女床席令女居其上浮之河中始浮行數十里乃沒其人家有好女者恐大巫祝為河伯取之以故多持女遠逃亡以故城中益空無人又困貧所從來久遠矣民人俗語曰即不為河伯娶婦水來漂沒溺其人民。」西門豹曰:「至為河伯娶婦時願三老[]巫祝父老送女河上幸來告語之吾亦往送女。」皆曰:「。」

위 문후 때 서문표가 업의 령이 되었다. 서문표가 가서 엽에 이르러 장노를 만나 백성들의 어려운 점을 물었다. 장노가 말하기를 괴로운 것은 하백이 부인에게 장가드는 일이며 그 때문에 가난해집니다.” 했다. 서문표가 그 이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업의 삼노와 아전들이 매년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는데 거두어들인 그 돈 수백만을 얻어 그 중 2, 30만을 하백이 부인에게 장가드는데 사용하고 축원하는 무당과 그 나머지 돈을 함께 나누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 때가 되면 무당이 돌아다니다 빈곤한 집의 여자 중 예쁜 여자를 보면 이가 하백의 부인이 되는 것에 마땅하다하고는 곧 폐백을 보내 데려갑니다. 목욕을 시키고 새 비단옷을 입히고 한가로이 머물게 하며 재계하게 한 후 물가에 재궁을 설치하고 붉은 비단으로 휘장을 늘이고 여자를 그 안에 있게 합니다. 소를 잡고 술과 음식을 갖추어 10여일을 행합니다. 함께 분칠하고 꾸며서 시집가는 여자의 상석과 같이 하고, 여자로 하여금 그 위에 있게 하고는 강에 그것을 뛰웁니다. 처음에는 떠 있다가 수 십리를 가면 곧 가라앉습니다. 人家들 중에 예쁜 여자가 있는 자는 큰 무당이 축원하여 하백을 위해 취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이 때문에 백성들이 딸을 데리고 멀리 도망합니다. 이 때문에 성 안은 더욱 비어 사람이 없고, 또한 빈곤해지는데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백성들 사이에 떠도는 말에 곧 하백이 부인에게 장가들지 못하면 몰이 와서 덮쳐 가라앉혀 그 백성들을 익사시킨다.’고 합니다.” 했다. 서문표가 말하기를 하백을 부인에게 장가보내면서 삼노, 무당, 부로가 여자를 물 위에서 보낼 때 와서 나에게 말하여 주면 내가 또한 가서 여자를 보내기를 원합니다.” 했다. 모두 말하기를 했다.


[] 正義今相州縣也

[] 正義지금 상주현이다.

 

[] 正義河伯華陰潼鄉人姓馮氏名夷浴於河中而溺死遂為河伯也

[] 正義하백은 화음동향 사람으로 성은 씨이고, 이름은 이다. 하수 안에서 목욕하다 빠져 죽었는데 마침내 하백이 되었다.


[] 正義緹他禮反顧野王云:「黃赤色也又音啼厚繒也。」

[] 正義(붉은 비단 제)’이다. 고야왕이 말하기를 황적색이다. 도한 음은 (울 제)’이니 두터운 비단이다.” 했다.

 

[] 正義亭三老

[] 正義三老이다.

 

至其時西門豹往會之河上三老官屬豪長者里父老皆會以人民往觀之者三二千人其巫老女子也已年七十從弟子女十人所皆衣繒單衣立大巫後西門豹曰:「呼河伯婦來視其好醜。」即將女出帷中來至前豹視之顧謂三老巫祝父老曰:「是女子不好煩大巫嫗為入報河伯得更求好女後日送之。」即使吏卒共抱大巫嫗投之河中有頃:「巫嫗何久也弟子趣之!」復以弟子一人投河中有頃:「弟子何久也復使一人趣之!」復投一弟子河中凡投三弟子西門豹曰:「巫嫗弟子是女子也不能白事煩三老為入白之。」復投三老河中西門豹簪筆磬折[]嚮河立待良久長老吏傍觀者皆驚恐西門豹顧曰:「巫嫗三老不來還柰之何?」欲復使廷掾與豪長者一人入趣之皆叩頭叩頭且破額血流地色如死灰西門豹曰:「且留待之須臾。」須臾豹曰:「廷掾起矣狀河伯留客之久若皆罷去歸矣。」鄴吏民大驚恐從是以後不敢復言為河伯娶婦

그 때에 이르러 서문표가 가서 만나 하수가에 갔다. 삼노, 관속, 호장자, 마을의 父老들이 모두 모이고, 인민들로 가서 보는 자가 2, 3천 명이었다. 그 무당은 늙은 여자로 나이가 70이 넘었다. 따르는 제자 여자가 10명 정도인데 모두 비단 홑옷을 입고 큰 무당 뒤에 서 있었다. 서문표가 말하기를 하백의 부인을 불러오라 그 예쁘고, 추함을 볼 것이다.” 하니 곧 여자를 데리고 휘장 안에서 나와 앞에 이르렀다. 서문표가 그것을 보고 삼노, 무당, 부로들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이 여자는 좋지 않으니 번거롭지만 큰 무당 할머니는 하백에게 들어가 보고하여 좋은 여자를 다시 구해 후일에 보낼 것이다.” 하라 하고는 곧 이졸을 시켜 함께 큰 무당 할머니를 싸서 하수 안에 던졌다. 얼마 후 말하기를 무당 할머니가 왜 오래 걸리는가? 제자가 나아가라!” 하고는 다시 제자 한 사람을 하수 중에 던졌다. 모두 3명의 제자를 던졌다. 서문표가 말하기를 무당 할머니의 제자는 여자라서 일을 잘 말하지 못하니 번거롭지만 삼노가 들어가 말하라.”하고는 다시 삼노를 하수 안에 던졌다. 서문표가 모자에 비녀와 붓을 꼿고 허리를 굽혀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하수를 향하여 서서 기다리기를 오래하였다. 장노와 , 옆에서 보는 자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서문표가 돌아보고 말하기를 무당 할머니, 삼노가 돌아오지 않으니 어찌된 것인가?” 하고는 다시 아전과 호장자 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수에)들어가 나아가게 하니 모두 머리를 두드렸는데 두드린 머리가 또한 깨져 이마의 피가 당에 흘렀는데 색이 죽은 회색과 같았다. 서문표가 말하기를 그래, 또한 잠시 동안 머물러 기다리자.” 했다. 잠시 후 서문표가 말하기를 아전은 일어나라. 하백이 객을 머물게 하기를 오래할 모양이니 너희들은 모두 그만두고 돌아가라.” 하니 관리와 백성들이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여 이 이후로부터 감히 다시 하백을 위해 부인에게 장가보내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 正義簪筆謂以毛裝簪頭長五寸插在冠前謂之為筆言插筆備禮也磬折謂曲體揖之若石磬之形曲折也一片黑石凡十二片樹在虡上擊之其形皆中曲垂兩頭言人腰側似也

[] 正義簪筆은 털로 비녀 머리를 꾸몄는데 길이 5촌으로 꼿아서 관 앞에 두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을 일러 이라 한 것은 붓을 꼿아 예에 대비함을 말한 것이다. ‘磬折은 몸을 굽혀 읍을 하는 것이 마치 석경의 형상이 굽은 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경쇠 경)’은 한 조각의 검은 돌인데 모두 12 조각을 종 거는 틀 위에 심어놓고 그것을 친다. 그 형상이 모두 가운데는 굽히고, 두 머리를 늘어뜨린 것이 사람의 허리 옆과 비슷함을 말한 것이다.

 

西門豹即發民鑿十二渠引河水灌民田[]田皆溉當其時民治渠少煩苦不欲也豹曰:「民可以樂成不可與慮始今父老子弟雖患苦我然百歲後期令父老子孫思我言。」至今皆得水利民人以給足富十二渠經絕馳道到漢之立而長吏以為十二渠橋絕馳道相比近不可欲合渠水且至馳道合三渠為一橋鄴民人父老不肯聽長吏以為西門君所為也賢君之法式不可更也長吏終聽置之故西門豹為鄴令名聞天下澤流後世無絕已時幾可謂非賢大夫哉

서문표가 곧 백성을 징발하여 12개 도랑을 파고, 하수를 끌어들여 백성의 밭에 물을 대개하니 밭이 모두 물을 쓰게 되었다. 그런 대를 당하여 백성들이 도랑을 만드는 것이 조금 번거롭고 괴롭게 여겨 하고자 하지 않았다. 서문표가 말하기를 백성들은 이루어짐을 기뻐하고, 함께 시작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부로와 자제들이 비록 나를 근심하고 괴롭게 여기겠지만 그러나 100년 후 부로와 자제들이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했다. 지금에 이르러 모두 수리를 얻어 백성들이 (수리로서)충분한 부를 주었다. 12 도랑이 황제가 다니는 길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한이 건국됨에 이르러 장리들이 12 도랑의 다리가 황제가 다니는 길을 끊고 서로 가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도랑의 물을 합하고, 또한 황제가 다니는 길에 이르러서는 3개의 도람을 함하여 하나의 다리를 만들고자 했다. 업의 백성과 부로들이 즐겨 장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서문표가 한 일인데 어진 사람의 법식을 바꿀 수 없다고 여겼다. 장리가 마침내 받아들여 그대로 두었다. 그리하여 서문표는 업의 령이 되어 이름은 천하에 알려졌고, 은택은 후세에 흘러 이대까지 끊어지지 않았으니 어찌 어진 대부가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 正義括地志云:「橫渠首接漳水蓋西門豹史起所鑿之渠也溝洫志云魏文侯時西門豹為鄴令有令名至文侯曾孫襄王與群臣飲祝曰:「令吾臣皆如西門豹之為人臣也。」史起進曰:「魏氏之行田也以百畝鄴獨二百畝是田惡也漳水在其傍西門不知用是不智知而不興是不仁仁智豹未之盡何足法也!」於是史起為鄴令遂引漳水溉鄴以富魏之河內』。左思魏都賦云西門溉其前史起濯其後。」

[] 正義】 『괄지지살펴보니 도랑의 머리를 가로질러 장수에 접하게 하였으니 아마도 서문표와 사기가 판 도랑일 것이다.” 했다. 구혁지위 문후 때 서문포가 업의 령이 되어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다. 문후의 증손자 양왕에 이르러 여러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 기도하여 말하기를 내 신하들이 모두 서문표가 다른 사람의 신하노릇 한 것과 같게 하길.’ 했다. 사기가 나아가 말하기를 위나라가 밭을 쓰는 법은 100무로서 하는데 업이 유독 200무로 하였으니 이는 밭이 나쁜 것입니다. 장수가 그 옆에 있는데도 서문표가 씀을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지혜롭지 않은 것입니다. 알면서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는 어질지 못함입니다. 인과 지를 서문표는 다하지 않았으니 어찌 본받기에 충분하리오!’ 했다. 이에 사기를 업의 령으로 삼았더니 마침내 장수를 인도하여 업을 관개하였고, 이 때문에 위의 하내가 부유해 졌다.” 했고, 좌사의 위도부서문표가 앞에서 물을 대고, 사기는 그 뒤에서 씻었다.” 했다.


傳曰:「子產治鄭民不能欺子賤治單父民不忍欺西門豹治鄴民不敢欺。」三子之才能誰最賢哉辨治者當能別之[]

에 말하기를 자산이 정나라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속이지 않았고, 자천이 단보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차마 속이지 못하였고, 서문표가 업을 다스리자 백성들이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했다. 세 사람 중 재능이 누가 가장 어진가? 다스림을 판별한 자는 마땅히 그것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 集解魏文帝問群臣:「三不欺於君德孰優?」太尉鍾繇司徒華歆司空王朗對曰:「臣以為君任德則臣感義而不忍欺君任察則臣畏覺而不能欺君任刑則臣畏罪而不敢欺任德感義與夫導德齊禮有恥且格等趨者也任察畏罪與夫導政齊刑免而無恥同歸者也孔子曰:『為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眾星共之。』考以斯言論以斯義臣等以為不忍欺不能欺優劣之縣在於權衡非徒低卬之差乃鈞銖之覺也且前志稱仁者安仁智者利仁畏罪者強仁』。校其仁者功則無以殊核其為仁者則不得不異安仁者性善者也利仁者力行者也強仁者不得已者也三仁相比則安仁優矣易稱神而化之使民宜之』。若君化使民然也然則安仁之化與夫強仁之化優劣亦不得不相縣絕也然則三臣之不欺雖同所以不欺異矣則純以恩義崇不欺與以威察成不欺既不可同概而比量又不得錯綜而易處。」 索隱案此三不欺自古傳記先達共所稱述今褚先生因記西門豹而稱之以成說也循吏傳記子產相鄭仁而且明故人不能欺之也子賤為政清淨唯彈琴三年不下堂而化是人見思故不忍欺之豹以威化御俗故人不敢欺其德優劣華之評寔為允當也

[] 集解문제가 여러 신하들에게 묻기를 세 개의 속이지 않음이 임금의 덕에서 어느 것이 우수한가?” 했다. 태위 종요, 사도 화운, 사공 왕랑이 대답하기를 신은 임금이 덕에 맡기면(덕으로 다스리면) 곧 신하들이 의리에 감화되어 차마 속이지 못하고, 임금이 살핌에 맡기면(잘 살피면) 곧 신하들은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여 속일 수 없고, 임금이 형벌에 맡기면(형벌로 다스리면) 곧 신하들은 죄(형벌을)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속이지 못합니다. ‘任德感義는 대저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한 잘못을 고치고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任察畏罪는 정사로 인도하고 형벌로 가지런히 하면 (죄를) 면하여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없으나 함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덕으로 정사를 한다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북극성은 그 자리에 있지만 여러 별들이 함께 받드는 것과 같다.’ 하니 이 말을 가지고 살펴보고 이 뜻을 가지고 논해 보면 신들은 차마 속이지 못하는 것과 속일 수 없는 것에 대한 우열의 드러남은 저울과 저울추에 달려있는 것으로(저울과 저울추로 달아본다면) 한 갓 내려가고 올라가는 차가 아니라 곧 (서른근 균)’(무게단위 수: 1냥의 24분의 1)’ 깨달음입니다. 또한 앞의 에서 말하기를 한 자는 을 편안히 여기고, 지혜로운 자는 인을 이롭게 여기고, 죄를 두려워하는 자는 을 억지로 한다,’ 했다. 을 비교하는 것은 공은 곧 다름이 없고, 그 인을 행함을 파헤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을 편안히 여기는 자는 본성이 착한 자이고, 을 이롭게 여기는 자는 힘서 행하는 자이다. 인을 억지로 하는 자는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자이다. 을 서로 비교하면 安仁이 낫다. 에 말하기를 신령스러움으로 변화시켜 백성으로 하여금 마땅하게 한다.” 하니 임금이 변화하면 백성이 그러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즉 安仁변화와 저 强仁의 변화는 우열이 또한 서로 현격하게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즉 세 신하의 속이지 않음은 비록 같아도 속이지 않는 까닭은 다릅니다, 곧 순수하게 은의를 높이는 것 때문에 속이지 않음과 위엄으로 살펴 이루려는 것 때문에 속이지 않음은 이미 같은 개념으로 견주고 헤아릴 수 없고, 또 뒤섞여 자리를 바꿀 수 없습니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이 세 가지 속이지 않음은 예부터 전해지는 기록으로부터 먼저 통달한 이들이 함께 말하고 기술한 것인데 지금 저선생이 서문표로 인하여 기록하고 그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말을 이루었다. 순리전에서 자산이 정 나라의 재상이 되어 어질고 또한 현명하여 옛 사란들이 그를 속일 수 없었다. 자천은 정사를 함에 청정하고 오직 거문고를 연주하여 3년 동안 집을 내려가지 않아도 교화되었으니 이는 사람들이 그 생각을 보았기 때문에 차마 속이지 못하였던 것이다. 서문표는 위엄으로 교화하고, 풍속을 다스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히 속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덕의 우열은 종요와 화흠 등의 평가는 진실로 마땅하다.

 

索隱述贊滑稽鴟夷如脂如韋敏捷之變學不失詞淳于索絕趙國興師楚優拒相寢丘獲祠偉哉方朔三章紀之

索隱述贊滑稽(우스개 소리)鴟夷(가죽 주머니로 만든 술 담는 그릇)는 기름 같고, 가죽 같다. 빠르게 변하고 배워 말을 잃지 않았다. 순우곤은 관의 끈을 모두 끊어 조나라를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초나라의 배우는 재상을 거절하고 침구에 사당을 얻었다. 위대하도다 동박삭이여 3장으로 그것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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