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국연의

제24회 국적은(조조는) 귀비를 죽이고, 황숙(유현덕)은 패하여 달아나 원소에게 들어가다.

by 최인표 2020. 4. 10.

第二十四回國賊行兇殺貴妃皇叔敗走投袁紹

24회 국적은(조조는) 귀비를 죽이고, 황숙(유현덕)은 패하여 달아나 원소에게 들어가다.

 

卻說曹操見了衣帶詔與眾謀士商議欲廢卻獻帝更擇有德者立之程昱諫曰:「明公所以能威震四方號令天下者以奉漢家名號故也今諸侯未平遽行廢立之事必起兵端矣操乃止只將董承等五人并其全家老小押送各門處斬死者共七百餘人城中官民見者無不下淚後人有詩歎董承曰

각설하고 조조가 의대의 조칙을 보고는 여러 모사와 상의하여 헌제를 폐하고 덕이 있는 자를 택하여 세우고자 하였다. 정욱이 간하여 말하기를 명공(조조)은 위엄이 사방을 진동시키고, 천하를 호령하는 까닭은 한 나라 황실의 이름을 받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후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대번에 폐하고 세우는 일을 행하는 것은 반드시 군대가 일어나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하니 조조가 이에 그만두었다. 다만 동승 등 다섯 사람은 모두 그 집안의 노소 전부를 각 문에 압송하여 베어 죽였다. 죽은 자가 모두 칠백여 명이었다. 성 안의 관민들로 본 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옛 사람이 지은 동승을 기리는 시가 있다.

 

密詔傳衣帶天言出禁門當年曾救駕此日更承恩憂國成心疾除奸入夢魂忠貞千古在成敗復誰論

비밀조칙 의대로 전하여/ 천자의 말이 궁궐문을 나왔다./ 그해 일찍이 천자의 수레를 구하고/ 이날 천자의 은혜 입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병이 되고/꿈에서 간신을 제거하였다./ 충정은 천고에 빛나고/ 이루고 실패함을 다시 누가 논하리오!/

 

又有歎王子服等四人詩曰

또 왕자복 등 네 사람을 기리는 시가 있다

 

書名尺素矢忠謀慷慨思將君父酬赤膽可憐捐百口丹心自是足千秋

흰 비단에 서명하여 충성을 맹세하였고/ 의분에 차 임금의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하였네./ 충심으로 백여 명이 가련하게 죽고/ 충성심이 이로부터 천추에 찼구나.

 

且說曹操既殺了董承等眾人怒氣未消遂帶劍入宮來弒董貴妃貴妃乃董承之妹帝幸之已懷孕五月當日帝在後宮正與伏皇后私論董承之事至今尚無音耗忽見曹操帶劍入宮面有怒容帝大驚失色操曰:「董承謀反陛下知否?」帝曰:「董卓已誅矣。」操大聲曰:「不是董卓是董承!」帝戰慄曰:「朕實不知。」操曰:「忘了破指修詔耶?」帝不能答操叱武士擒董妃至帝告曰:「董妃有五月身孕望丞相相憐。」操曰:「若非天敗吾已被害豈得復留此女為吾後患?」伏后告曰:「於冷宮待分娩了殺之未遲。」操曰:「欲留此逆種為母報讎乎?」董妃泣告曰:「乞全屍而死勿令彰露。」操令取白練至面前帝泣謂妃曰:「卿於九泉之下勿怨朕躬!」言訖淚下如雨伏后亦大哭操怒曰:「猶作女兒態耶!」叱武士牽出勒死於宮門之外後人有詩歎董妃曰

각설하고 조조가 동승 등 여러 사람을 죽이고도 노한 기운이 아직 없어지지 않아 마침내 검을 가지고 궁에 들어 가 동귀비를 죽이러 갔다. 귀비는 곧 동승의 누이로 천자가 총애하여 임신한 지 오개월이었다. 그날 천자가 후궁에 있었는데 바로 복황후와 사사로이 동승의 일을 논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갑자기 조조가 검을 가지고 궁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얼굴에 노한 모습이 있어 천자가 크게 놀라 얼굴색을 잃었다. 조조가 말하기를 동승이 모반하였는데 폐하께서는 알고 있었습니까?” 하니 천자가 말하기를 동탁은 이미 죽었습니다.”했다. 조조가 큰 소리로 말하기를 이는 동탁이 아니오! 이는 동탁이 아니오!”하니 천자가 두려워하여 벌벌떨며 말하기를 짐은 실상을 알지 못하오.”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손가락을 찢어 조칙을 쓴 것을 잊었습니까?”하니 천자가 답하지 못하였다. 조조가 무사를 꾸짖어 동비를 잡아 이르렀다. 천자가 서로 알리며 말하기를 동비는 임신한지 오개월인데 승상께서는 불쌍하게 여기기를 바랍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만약 하늘이 막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해를 입었을 것이오. 어찌 이 여자를 남겨두어서 나의 후환으로 하리오?” 했다. 복황후가 서로 알리며 말하기를 냉궁에 내쳤다가 분만하기를 기다려 죽여도 늦지 않을 것이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 역적이 씨앗을 남겨두었다가 어미를 위해 원수를 갚고자 합니까?” 하니 동비가 울며 말하기를 시신을 온전히 하여 죽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게 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조조가 흰 비단을 가져와 얼굴 앞에 이르게 하였다. 천자가 눈물을 흘리며 동비에게 일러 말하기를 경은 구천의 아래에서 짐을 원망하지 말라!” 했다. 말을 마치고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복황후 또한 크게 곡하였다. 조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다만 계집아이의 모양을 짓는구나!”하고는 무사를 꾸짖어 끌고 나가 궁궐 문 밖에서 목을 매어 죽였다. 후세 사람들이 지은 동비를 기리는 시가 있다.

 

春殿承恩亦枉然傷哉龍種並時捐堂堂帝主難相救掩面徒看淚湧泉

임금에게 받은 사랑 헛되이/애닯구나 용의 씨앗 같이 잃었다. 당당한 천자도 도와 구하기 어려워/ 얼굴을 가리고 한갓 샘솟듯 눈물 흘리며 보네

 

操諭監宮官曰:「今後但有外戚宗族不奉吾旨入宮門者斬守禦不嚴與同罪。」又撥心腹人三千充御林軍令曹洪統領以為防察操謂程昱曰:「今董承等雖誅尚有馬騰劉備亦在此數不可不除。」昱曰:「馬騰屯軍西涼未可輕取但當以書慰勞勿使生疑誘入京師圖之可也

조조가 천자의 명을 핑계로 궁을 감독하는 관리에게 말하기를 지금 이후로 단지 외척과 종족일지라도 내 명을 받들지 않았다면 곧 궁궐 문을 들어가게 하는 자는 머리를 벨 것이다. 지키기를 엄하게 하지 않으면 같은 죄를 다스릴 것이다.” 했다. 또 심복 삼천 명을 뽑아 어림군을 채우고 조홍으로 하여금 저느리게 하여 지키고 살펴보게 하였다. 조조가 정욱에게 일러 말하기를 지금 동승 등이 비록 죽었으나 오히려 마등, 유비(유현덕)이 있고, 또한 이 몇이 살아 있으니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했다. 정욱이 말하기를 마등은 군대가 서량에 주둔하고 있어 가벼이 취할 수 없으니 다만 마땅히 글로 위로하여 의심이 생기게 하지 않게 하여 경사에 들어오게 유인하여 도모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劉備現在徐州分布掎角之勢亦不可輕敵況今袁紹屯兵官渡常有圖許都之心若我一旦東征劉備勢必求救於紹紹趁虛來襲何以當之?」操曰:「非也備乃人傑也今若不擊待其羽翼既成急難圖矣袁紹雖強事多懷疑不決何足憂乎?」

유비는 현재 서주에 있어 양쪽에서 견제하는 형세를 나누어 펴고 있어 또한 가벼이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 원소가 군대를 관도에 주둔하여 항상 허도를 도모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루아침에 동쪽을 정벌하면 유비(유현덕) 세력은 반드시 원소에게 구원을 정할 것입니다. 원소가 빈 곳을 쫓아 와 습격한다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아니다. 유비(유현덕)는 곧 인걸이다. 지금 만약 치지 않고, 그 날개가 이미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급히 도모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소는 비록 강하나 일이 많고, 의심이 많으며 결단하지 못하니 어찌 근심하겠는가?” 했다.

 

正議間郭嘉自外而入操問曰:「吾欲東征劉備奈有袁紹之憂如何?」嘉曰:「紹性遲而多疑某謀士各相妒忌不足憂也劉備新整軍兵眾心未服丞相引兵東征一戰可定矣。」操大喜曰:「正合吾意。」遂起二十萬大軍分兵五路下徐州

의논하는 사이에 곽가가 밖으로부터 들어왔다. 조조가 물어 말하기를 내가 동쪽으로 유비(유현덕)를 정벌하려 하는데 원소의 근심이 있으니 어떠한가?” 했다. 곽가가 말하기를 원소는 성품이 느리고 의심이 많으며 그의 모사들이 갂기 서로 투기하고 있으니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유비(유현덕)는 새롭게 군대를 정비하여 여럿의 마음이 아직 복종하지 않았으니 승상께서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을 정벌하면 한 번의 싸움으로 평정할 수 있습니다.” 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바로 나의 뜻에 부합한다.” 하고는 마침내 이십만 대군을 일으켜 군대를 다섯 개 길로 나누어 서주에 내려가게 했다.

 

細作探知報入徐州孫乾先往下邳報知關公隨至小沛報知玄德玄德與孫乾計議曰:「此必求救於袁紹方可解危。」於是玄德修書一封遣孫乾至河北乾乃先見田豐具言其事求其引進

세작(첩자)이 탐지하고는 서주에 들어가 보고하였다. 손건이 먼저 하비에 가서 관운장에게 보고하여 알리고 따라서 소패에 이르러 유현덕에게 보고하여 알렸다. 유현덕이 손건과 계책을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원소에게 구원을 청하여야 비로서 위태로움을 풀 수 있다.” 하고는 이에 유현덕이 글 한 통을 지어 손건을 보내 하북에 이르게 하였다. 손건이 이에 먼저 전풍을 만나 그 일을 갖추어 말하고 그가 인도하여 원소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청하였다.

 

豐即引孫乾入見紹呈上書信只見紹形容憔悴衣冠不整豐曰:「今日主公何故如此?」紹曰:「我將死矣!」豐曰:「主公何出此言?」紹曰:「吾生五子惟最幼者極快吾意今患疥瘡命已垂絕吾有何心更論他事乎?」豐曰:「今曹操東征劉玄德許昌空虛若以義兵虛而入上可以保天子下可以救萬民此不易得之機會也惟明公裁之

전풍은 곧 손건을 인도하여 들어가 원소를 만나 글을 올렸다. 다만 원소의 모습을 보니 얼굴이 초최하고 의관이 정돈되지 않았다. 전풍이 말하기를 오늘 주공은 무슨 이유로 이 같습니까?” 하니 원소가 말하기를 내가 장차 죽을 것이다!” 했다. 전풍이 말하기를 주공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합니까?” 하니 원소가 말하기를 내가 다섯 아들을 낳았는데 가장 어린 것(막내)이 지극히 내 뜻에 즐겁다. 지금 피부병으로 목숨이 이미 죽어가고 있다. 내가 무슨 마음으로 다시 다른 일을 온할 수 있겠는가?” 했다. 전풍이 말하기를 지금 조조가 동쪽으로 유현덕을 정벌하여 허창이 비었으니 만약 의로운 군대로 빈곳으로 들어간다면 위로는 천자를 보호할 수 있고, 아래로는 모든 백성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이니 명공(원소)께서는 결단을 내리십시오.” 했다.

 

紹曰:「吾亦知此最好奈我心中恍惚恐有不利。」豐曰:「何恍惚之有?」紹曰:「五子中惟此子生得最異倘有疏虞吾命休矣。」遂決意不肯發兵乃謂孫乾曰:「汝回見玄德可言其故倘有不如意可來相投吾自有相助之處。」田豐以杖擊地曰:「遭此難遇之時乃以嬰兒之病失此機會大事去矣可痛惜哉!」跌足長歎而出

원소가 말하기를 내가 또한 이것이 가장 좋은 것을 알고 있는데 내 마음이 흐리멍덩하니 이롭지 않음이 있을까 두렵다.” 했다. 전풍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흐리멍덩함이 있습니까?” 하니 원소가 말하기를 다섯 아들 가운데 오직 이 아들을 가장 기이하게 낳았는데 혹 소홀히 하다가 실패하게 되면 나는 살 수 없을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일으키는 것을 결정하지 않고는 이에 손건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돌아가 유현덕을 만나 그 이유를 말하고, 혹 뜻과 같지 않음이 있어서 들어오면 내가 스스로 도울 곳에 있을 것이다.” 전풍이 지팡이로 땅을 치며 말하기를 이 만나기 어려운 때를 만나 곧 어린아이의 병 때문에 이 기회를 잃으니 대사가 떠났구나! 애석하구나!” 하고는 발을 동동거리며 길게 탄식하고 나왔다.

 

孫乾見紹不肯發兵只得星夜回小沛見玄德具說此事玄德大驚曰:「似此如之奈何?」張飛曰:「兄長勿憂曹兵遠來必然困乏乘其初至先去劫寨可破曹操。」玄德曰:「素以汝為一勇夫耳前者捉劉岱時頗能用計今獻此策亦中兵法。」乃從其言分兵劫寨

손건이 원소가 즐겨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보고 밤낮으로 소패로 돌아와 유현덕을 뵙고 이 일을 모두 말하였다. 유현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 같으니 어찌하면 좋을까?”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형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조조의 군대는 멀리서 오므로 반드시 곤핍할 것이니 그 처음 이르는 것을 타고 먼저 가서 영채를 빼앗으면 조조를 깨트릴 수 있습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평소 너는 일개 용감한 필부일 뿐이었는데 앞에서 유대를 잡을 때 자못 계책을 썼고, 지금은 이 게책을 올리니 또한 병법에 알맞다.”하고는 이에 그 말을 따라 군대를 나누어 영채를 빼앗기로 했다.

 

且說曹操引軍往小沛來正行間狂風驟至忽聽一聲響亮將一面牙旗吹折操便令軍兵且住聚眾謀士問吉凶荀彧曰:「風從何方來吹折甚顏色旗?」操曰:「風自東南方來吹折角上牙旗旗乃青紅二色。」彧曰:「不主別事今夜劉備必來劫寨。」操點頭忽毛玠入見曰:「方纔東南風起吹折青紅牙旗一面主公以為主何吉凶?」操曰:「公意若何?」毛玠曰:「愚意以為今夜必主有人來劫寨。」後人有詩歎曰

각설하고 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가 소패에 왔다. 행군하는 사이에 광풍이 부는데 갑자기 한 소리 우렁차게 들리는 한편으로 군영 앞에 세운 깃발에 불어 부러뜨렸다. 조조가 곧 군병으로 하여금 머물게하고 여러 모사를 불러 길흉을 물었다. 순욱이 말하기를 바람이 어느 방행으로부터 불어왔습니까? 바람이 불어 부러뜨린 깃발은 어떤 색입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바람이 동남쪽으로부터 불어와 진영 모퉁이 위의 큰 깃발을 부러뜨렸는데 깃발은 곧 청색과 홍색 두 색이었다.” 했다. 순욱이 말하기를 별 다른 일이 아니고, 오늘 밤 유현덕이 반드시 와서 영채를 빼앗으려 할 것입니다.” 했다. 조조가 머리를 그덕였다. 갑자기 모개가 들어와 뵙고 말하기를 바야흐로 동남풍이 일어 청홍이 아기 한 폭을 부러뜨렸습니다. 주공께서는 길흉을 어떻게 여기십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공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모개가 말하기를 저의 뜻으로는 오늘 밤 어떤 사람이 와서 영채를 빼앗으려 할 것입니다.” 했다. 후세 사람들이 기리는 시를 지은 것이 있다.

 

吁嗟帝冑勢孤窮全仗分兵劫寨功爭奈牙旗折有兆老天何故縱奸雄操曰:「天報應我,當即防之。」遂分兵九隊只留一隊向前虛紮營寨餘眾八面埋伏是夜月色微明玄德在左張飛在右分兵兩隊進發只留孫乾守小沛。 

! 천자의 주손 세력이 외롭고 곤궁하여/ 무기를 온전히 하고 군대를 나누어 영채를 빼앗는 일을 하였다. 다투어 진영 앞의 깃발 부러지는 조짐 있어/하늘이 무슨 이유로 간웅을 놓아두는가? 조조가 말하기를 하늘이 나에게 알려주었으니 마땅히 곧 막아야 할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아홉 개 부대로 나누어 한 부대만 남기고 앞을 향해 나가 빈 영채를 세우고, 남은 무리들은 팔면에 매복시켰다. 이날 밤은 달빛이 희미하게 밝았다. 유현덕은 왼쪽에 있고, 장비는 오른 쪽에 있으면서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출발하되 다만 손건 만은 소패를 지키게 했다.

 

且說張飛自以為得計領輕騎在前突入操寨但見零零落落無多人馬四邊火光大起喊聲齊舉飛知中計急出寨外正東張遼正西許褚正南于禁正北李典東南徐晃西南樂進東北夏侯惇西北夏侯淵八處軍馬殺來張飛左衝右突前遮後當所領軍兵原是曹操手下舊軍見事勢已急皆投降去了

각설하고 장비가 스스로 계책대로 되어 간다. 여기고, 가볍게 무장한 기병을 거느리고 앞에 있으면서 조조의 영채에 돌입하였는데 다만 보이는 것은 드문드문 흩어지고 많은 인마가 없으며, 네 모퉁이에서 불빛이 크게 일어나며 함성이 일제히 일어났다. 장비가 계략에 빠진 것을 알고 급히 영채 밖으로 나왔다. 동쪽에서는 장요가, 서쪽에서는 허저가, 남쪽에서는 우금이, 북쪽에서는 이전이, 남쪽에서는 서황이, 서남쪽에서는 악진이, 동북쪽에서는 하후돈이 서북쪽에서는 하후연이 여덟 곳에서 군마가 쇄도해 왔다. 장비가 좌충우돌하면서 앞과 뒤를 막았는데 거느린 바의 군사는 원래 조조 수하의 옛 군대로 일의 형세가 이미 급한 것을 보고는 모두 항복해 들어갔다.

 

飛正殺間逢著徐晃大殺一陣後面樂進趕到飛殺條血路突圍而出只有數十騎跟定欲還小沛去路已斷欲投徐州下邳又恐曹軍截住尋思無路只得望芒碭山而去。 

장비가 죽기로 싸우는 사이에 서황을 만나 크게 한 바탕 싸우는데 뒤에서 악진이 쫓아 이르렀다. 장비가 죽을힘을 다해 혈로를 뚫고 포위를 치고 나왔는데 다만 수 십기만 뒤 따르고 있었다. 소패에 돌아가고자 하나 가는 길이 이미 끊어졌으므로 서주, 하비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또한 조조의 군대가 저지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깊이 생각하여도 길이 없어 다만 망탕산을 바라보면서 갈 뿐이었다.

 

卻說玄德引軍劫寨將近寨門喊聲大震後面衝出一軍先截去了一半人馬夏侯惇又到玄德突圍而走夏侯淵又從後趕來玄德回顧止有三十餘騎跟隨急欲奔還小沛早望見小沛城中火起只得棄了小沛欲投徐州不邳又見曹軍漫山塞野截住去路玄德自思無路可歸想袁紹有言:「倘不如意可來相投」,今不若暫往依棲別作良圖遂望青州路而走正逢李典攔住玄德匹馬落荒望北而逃李典擄將從騎去了。 

각설하고 유현덕이 군대를 이끌고 영채를 빼앗으러 장차 영채의 문에 가까이 갔는데 함성이 크게 일면서 뒤에서 한 군대가 치고 나와 먼저 간 절반의 인마를 저지하였다. 하후돈이 또한 이르렀다. 유현덕이 포위를 뚫고 달아나는데 하후연이 또 뒤에서 쫓아 왔다. 유현덕이 돌아보니 다만 삼십여 기만 뒤따랐다. 급히 달아나 소패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멀리 바라보니 소패성 안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이 보이자 할 수 없이 소패를 버리고 서주, 하비로 가려 하였으나 또한 조조의 군대가 산에 질펀하고 들을 막아 가는 길을 저지한 것을 보았다. 유현덕이 스스로 길이 없어 돌아갈 수 없다 생각하다 원소가 혹 뜻과 같지 않으면 나에게 들어오라.”한 말이 생각났다. 지금 잠시 가서 의지하여 머물다가 따로 좋은 계책을 짓는 것이 낫다. 하고는 마침내 청주 길을 바라보고 달아나는데 바로 이전이 막음을 만났다. 유현덕이 필마로 큰길을 벗어나 황야로 북쪽을 향해 도망하고, 이전은 따르던 기병을 포로로 잡아 갔다.

 

且說玄德匹馬投青州日行三百里奔至青州城下叫門門吏問了姓名來報刺史刺史乃袁紹長子袁譚譚素敬玄德聞知匹馬到來即便開門相迎接入公廨細問其故玄德備言兵敗相投之意譚乃留玄德於館驛中住下發書報父袁紹一面差本州人馬護送玄德至平原界口袁紹親自引眾出鄴邵三十里迎接玄德玄德拜謝紹忙答禮曰:「昨為小兒抱病有失救援於心怏怏不安今幸得相見大慰平生渴想之思。」玄德曰:「孤窮劉備久欲投於門下奈機緣未遇今為曹操所攻妻子俱陷想將軍容納四方之士故不避羞慚逕來相投望乞收錄誓當圖報。」紹大喜相待甚厚同居冀州。 

각설하고 유현덕은 필마로 청주에 나아가는데 하루에 삼백리를 가 달아나 청주성 아래에 이르러 문에서 소리쳤다. 문지기가 성명을 묻고는 자사에게 보고하였다. 자사는 곧 원소의 맏아들 원담이었다. 원담이 평소 유현덕을 공경하였는데 필마로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곧 성문을 열고 맞이하여 관청으로 영접하여 들어 가 자세히 그 이유를 물었다. 휴현덕이 군대가 패하여 들어오려는 뜻을 갖추어 말하였다. 원담이 이에 유현덕을 관역 안에 머물게 하고 글을 내어 아버지 원소에게 보고하는 한편으로 본주에 인마를 보내 유현덕을 호위하여 보냈다. 평원의 경계입구에 이르렀는데 원소가 직접 무리를 이끌고 업소에서 삼십리를 나와 유현덕을 맞이하였다. 유현덕이 절하며 감사하니 원소가 항망히 답례하며 말하기를 지난번에 작은 아이가 병이 들어 구원하지 못하여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하고 편안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요행히도 서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평생 갈망하던 생각에 크게 위로가 됩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외롭고 곤궁한 제가 오랫동안 문하에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기회와 인연을 만나지 못하였는데 지금 조조의 공격을 받고, 처자가 모두 잡혔지만 장군이 사방의 선비를 받아들이는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피하지 않고 지름 길로 와서 들어왔습니다. 바라건데 거두어주시기를 청합니다. 맹세하건데 마땅히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했다. 원소가 크게 기뻐하며 매우 두터이 대우하여 기주에 같이 머물렀다.

 

且說曹操當夜取了小沛隨即進兵攻徐州糜竺簡雍守把不住只棄城而走陳登獻了徐州曹操大軍入城安民己畢隨喚眾謀士議取下邛荀彧曰:「雲長保護玄德妻小死守此城若不速取恐為袁紹所竊。」操曰:「吾素愛雲長武藝人材欲得之以為己用不若令人說之使降。」郭嘉曰:「雲長義氣深重必不肯降若使人說之恐被其害。」帳下一人出曰:「某與關公有一面之交願往說之。」眾視之乃張遼也程昱曰:「文遠雖與雲長有舊吾觀此人非可以言詞說也某有一計使此人進退無路然後用文遠說之彼必歸丞相矣。」正是整備窩弓射猛虎安排香餌釣鰲魚未知其計若何且看下文分解

한편 조조는 그 날 밤에 소패를 취하고 따라 곧 군대를 진군시켜 서주를 공격하였다. 미축, 간옹이 성을 지킬 수 없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진등이 서주를 바쳤다. 조조의 대군이 성에 들어가 백성을 편안하게 한 후 여러 모사를 불러 하비를 취할 것을 의논하였다. 순욱이 말하기를 관운장이 유현덕의 가족을 보호하고 있어서 죽음으로 이 성을 지키고 있으니 만약 속히 취하지 않으면 원소가 도둑질 할 것이 두렵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관운장의 무에와 인재를 아껴서 그를 얻어 나를 위해 쓰고자 하였으니 사람을 시켜 설득하여 항복하게 하는 것이 낫다.” 했다. 곽가가 말하기를 관운장은 의리와 기개가 깊고 중하미 반드시 쉽게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사람을 시켜 그를 설득하다가 그 해를 입을까 두렵습니다.” 했다. 장막 아래서 한 사람이 나오면서 말하기를 제가 관운장과 일면의 사귐이 있으니 가서 설득해보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이 사람으로 하여금 나아가고 물러날 길이 없게 한 후에 문원(장요)을 써서 그를 설득하면 그는 반드시 승상에게 귀의할 것입니다.” 했다. 바로 이러하다. 와궁을 정비하여 사나운 범을 쏘아잡고, 향기로운 미끼를 배열하여 자라를 낚았다. 그 계책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니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