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二回:袁曹各起馬步三軍,關張共擒王劉二將
제22회 원소와 조조가 각각 마보 삼군을 일으키고, 관운장과 장비가 왕유 두 장수를 사로잡다.
卻說陳登獻計於玄德曰:「曹操所懼者袁紹。紹虎踞冀、青、幽、并諸郡,帶甲百萬,文官武將極多,今何不寫書遣人到彼求救?」玄德曰:「紹向與我未通往來,今又新破其弟,安肯相助?」登曰:「此間有一人與袁紹三世通家。若得其一書致紹,紹必來相助。」玄德問何人。登曰:「此人乃公平日所折節敬禮者,何故忘之?」玄德猛省曰:「莫非鄭康成先生?」登笑曰:「然也。」
각설하고 진등이 유현덕에게 계책을 바쳐 말하기를 “조조가 두려워하는 바는 원소입니다. 원소가 기주, 청주, 유주, 병주의 여러 군에 범처럼 웅크리고 있으며, 백만의 군사와 문관과 무장이 지극히 많으니 지금 어찌 글을 써서 사람을 보내 그에게 가서 구원을 청하지 않습니까?”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원소는 예전에 나와 왕래가 통하지 않았는데 지금 또한 새롭게 그 동생을 깨트렸으니 어찌 즐겨 서로 도울 수 있겠습니까?” 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이 사이에 한 사람이 있으니 원소와 여러 대 가문이 통하였습니다. 만약 그를 얻어 글 한 통을 원소에게 보낼 수 있다면 원소는 반드시 와서 도울 것입니다.” 했다. 유현덕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진등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곧 공(유현덕)이 평소에 태도를 바꾸어 공경하고 예를 다하는 자인데 무슨 이유로 잊었습니까?” 했다. 유현덕이 갑자기 깨닫고 말하기를 “정강성 선생 아닙니까?”하니 진등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했다.
原來鄭康成名玄,好學多才,嘗受業於馬融。融每當講學,必設絳帳,前聚生徒,後陳聲妓,侍女環列左右。玄聽講三年,目不邪視,融甚奇之。及學成而歸,融歎曰:「得我學之秘,惟鄭玄一人耳!」玄家中侍婢俱通毛詩。一婢嘗忤玄意,玄命長跪階前。一婢戲謂之曰:「『胡為乎泥中?』」此婢應聲曰:「『薄言往愬,逢彼之怒。』」其風雅如此。桓帝朝,玄官至尚書。後因十常侍之亂,棄官歸田,居於徐州。玄德在涿郡時,已曾師事之。及為徐州牧,時時造廬請教,敬禮特甚。
원래 정강성은 이름이 현이니 배우기를 좋아하고, 재능이 많으며 일찍이 마융에게 수업하였다. 마융은 매번 강학할 때 반드시 붉은 휘장을 치고, 앞에는 학생들을 모이게 하고, 뒤에는 노래하는 기생을 벌여두었으며 시녀를 좌우에 둘러 세웠다. 정현이 강의를 들은 지 삼년 동안 곁눈질하지 않으니 마융이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배움을 이루고 돌감에 이르자 마융이 탄복하며 말하기를 “나의 학문의 비전을 얻은 것은 오직 정현 한 사람일 뿐이구나!” 했다. 정현의 집안은 시비들이 모두 『모시』에 통달하였다. 한 여종이 일찍이 정현의 뜻을 거스르니 정현이 오래동안 계단 앞에 꿇어 있게 하였다. 한 여종이 그를 희롱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진흙 속에서 행하고 있는가?”하니 이 여종이 응답하여 말하기를 “가서 하소연해도 들은 채하지 않고 그의 노여움만 만났다네.” 하였으니 그 아름다움이 이와 같았다. 환제 때 관직이 상서에 이르렀다. 후에 십상시의 난으로 인하여 관직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서주에서 살았다. 유현덕이 탁군에 있을 때 일찍이 스승으로 섬겼다. 서주목이 되자 때때로 살고 있는 집에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공경하고 예를 다하는 것이 특별하였다.
當下玄德想出此人,大喜,便同陳登親至鄭玄家中,求其作書。玄慨然依允,寫書一封,付與玄德。玄德便差孫乾星夜齎往袁紹處投遞。紹覽畢,自忖曰:「玄德攻滅吾弟,本不當相助;但重以鄭尚書之命,不得不往救之。」遂聚文武官,商議興兵伐曹操。
유현덕이 즉시 이 사람을 생각해 내고는 크게 기뻐하며 곧 진등과 같이 직접 정현의 집에 이르러 글을 써 줄 것을 청하였다. 정현이 흔쾌히 승낙하고는 글 한 통을 서서 유현덕에게 주었다. 유현덕이 곧 손건으로 하여금 한 밤중에 보내 원소가 있는 곳으로 가서 배달하게 하였다. 원소가 보기를 마치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유현덕은 내 동생을 공격하여 없앴으니 본래는 마땅히 돕지 말아야 하는데 다만 정 상서의 명을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가서 구원하지 않을 수 없다.” 했다. 마침내 문무관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 조조를 정벌하는 것을 상의하였다.
謀士田豐曰:「兵起連年,百姓疲弊,倉廩無積,不可復興大軍。宜先遣人獻捷天子,若不得通,乃表稱曹操隔我王路,然後提兵屯黎陽;更於河內增益舟楫,繕置軍器,分遣精兵,屯劄邊鄙。三年之中,大事可定也。」謀士審配曰:「不然:以明公之神武,撫河朔之強盛,興兵討曹賊,易如反掌,何必遷延日月?」謀士沮授曰:「制勝之策,不在強盛。曹操法令既行,士迕精練,比公孫瓚坐受困者不同。今棄獻捷良策,而興無名之兵,竊為明公不取。」謀士郭圖曰:「非也:兵加曹操,豈曰無名?公正當及時早定大業。願從鄭尚書之言,與劉備共仗大義,剿滅曹賊;上合天意,下合民情,實為萬幸甚!」
모사 전풍이 말하기를 “매년 군대를 일으켜 백성들은 피폐해졌고, 창고에 곡식의 쌓임이 없으니 다시 대군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사람을 보내 천자에게 전리품을 바치고, 만약 통하지 않는다면 곧 표를 올려 조조가 우리의 왕로를 막는다고 핑계댄 후 군대를 이끌고 여양에 주둔하고, 다시 하내에 배를 더하고 병기를 정비하며, 정예 군대를 나누어 보내 변경에 주둔하고 삼년이 지나면 대사가 정해 질 것입니다.” 했다. 모사 심배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명공의 신 같은 무력과 하삭을 위무한 강성함으로서 군대를 일으켜 조조 도적을 토벌한다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울 것이니 어찌 날과 달을 미루십니까?”했다. 모사 저수가 말하기를 “승리를 만들어내는 계책은 강성함에 있지 않습니다. 조조의 법령은 이미 시행되었고, 군사들은 잘 훈련되었으니 공손찬이 앉아서 어려움을 당한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지금 전리품을 바치는 좋은 계책을 버리고 명분 없는 군대를 일으키는 것은 명공을 위해서라도 취해서는 안 됩니다.” 했다. 모사 곽도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군대로 조조를 치는데 어찌 명분이 없다하십니까? 공께 바로 때가 이르렀으니 빨리 대업을 정하십시오. 정상서이 말을 따라 유비(유현덕)과 함께 대의에 의지하여 조조 도적을 무찔러 없애는 것이 위로는 하늘의 뜻에 부합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실정에 부합하니 실로 다행함이 많을 것입니다.
四人爭論未定,紹躊躇不決。忽許攸、荀諶自外而入。紹曰:「二人多有見識,且看如何主張。」二人施禮畢,紹曰:「鄭尚書有書來,令我起兵助劉備,攻曹操。起兵是乎?不起兵是乎?」二人齊聲應曰:「明公以眾克寡,以強攻弱,討漢賊以扶王室:起兵是心。」紹曰:「二人所見,正合我心。」便商議興兵。先令孫乾回報鄭玄,並約玄德準備接應;一面令審配、逢紀為統軍,田豐、荀諶、許攸為謀士,顏良、文醜為將軍,起馬軍一十五萬,步兵一十五萬,共精兵三十萬,望黎陽進發。
네 사람의 논쟁이 정해지지 않으니 원소가 주저하고 결단하지 못하였다. 갑자기 허유와 순심이 밖으로부터 들어왔다. 원소가 말하기를 “두 사람은 견식이 많으니 또한 어떠한 주장인지를 보여주시오.”했다. 두 사람이 예를 베풀기를 마치자 원소가 말하기를 “정상서의 글이 와 있는데 나로 하여금 군대를 일으켜 유비(유현덕)를 도와 조조를 공격하라 합니다. 군대를 일으키는 것이 옳습니까? 군대를 일으키자 않는 것이 옳은가?” 했다. 두 사람이 일제히 대답하여 말하기를 “명공은 많은 것으로서 적은 것을 이기고, 강함으로서 약함을 공격하고, 한나라의 도적을 토벌하는 것으로서 왕실을 돕는 것이니 군대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이 마음입니다.” 했다. 원소가 말하기를 “두 사람이 본 바가 바로 내 마음에 부합하다.”하고는 곧 군대를 일으키는 것을 상의하였다. 먼저 손건으로 하여금 돌아가 정현에게 보고하게 하고, 아울러 유현덕과는 준비하고 대응을 약속하였다. 한편으로 심배, 봉기로 하여금 통군을 삼고, 전풍, 순심, 허유는 모사로 삼고, 안량, 문추를 장군으로 삼아 기병 십오만, 보병 십오만 도합 정병 삼십만을 일으켜 여양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分撥已定,郭圖進曰:「以明公大舉伐操,必須數操之惡,馳檄各郡,聲罪致討,然後名正言順。」紹從之,遂令書記陳琳草檄。琳字孔璋,素有才名;靈帝時為主簿。因諫何進不聽,復遭董卓之亂,避難冀州,紹用為記室。當下令草檄,援筆立就。其文曰:
나누어 다스리기로 정한 후 곽도가 나아가 말하기를 “명공이 크게 일으켜 조조를 치는 것이니 모름지기 조조의 악을 세어가며 지적하는 격문을 각 군에 보내 죄를 성토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명분이 바로 잡히고, 말이 순조롭게 됩니다.”하니 원소가 그것을 따라 마침내 서기 진림으로 하여금 격문 초안을 짓게 하였다. 진림의 자는 공장이니 평소 재주 있다는 명성이 있었고, 영제 때 주부가 되었다. 하진에게 간쟁하였으나 듣지 않았고, 다시 동탁의 난을 맞아 기주에서 난을 피하였는데 원소가 등용하여 기실로 삼았다. 그 때 격문의 초안을 짓게 하자 붓을 잡고 서서 써 내려갔다. 그 글은
蓋聞明主圖危以制變,忠臣慮難以立權。是以有非常之人,然後有非常之事;有非常之事,然後立非常之功。夫非常者,固非常人所擬也。
대개 현명한 임금은 위태로울 때 도모하여 변화를 짓고, 충신은 어려울 때를 고려하여 꾀함을 세운다고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보통이 아닌 사람이 있은 후에야 보통이 아닌 일이 있고, 보통이 아닌 일이 있은 후에야 보통이 아닌 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대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진실로 보통이 아닌 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습니다.
曩者,強秦弱主,趙高執柄,專制朝權,威福由己;時人迫脅,莫敢正言;終有望夷之敗,祖宗焚減,汙辱至今,永為世鑒。及臻呂后季年,產,祿專政,內兼二軍,外統梁趙;擅斷萬機,決事省禁;下陵上替,海內寒心。於是絳侯、朱虛興威奮怒,誅夷逆暴,尊立太奈;故能王道興隆,光明顯融:此則大臣立權之明表也。
예전에 강한 진나라도 임금이 약해지니 조고가 권력을 잡아 조정의 권력을 오로지하고, 위력과 복을 제 마음대로하여 그 때 사람들을 협박하니 감히 바른 말을 하지 못하고 마침내 망이궁의 패함이 있었고, 조상의 사당이 불타고 없어진 오욕이 지금에 이르러 길이 세상의 거울이 되었습니다. 여후 시대에 여후의 조카 여산과 여록이 정사를 오로지하여 안으로 이군을 겸하고, 밖으로는 양 나라와 조 나라를 통솔하고, 임금의 정사를 마음대로 결단하며 일을 결단하고 금령을 살피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능멸하고 윗사람은 태만하여 아무 일도 안하니 해내가 두려워 떨었습니다.
司空曹操:祖父中常侍騰,與左悺、徐璜並作妖孽,饕餮放橫,傷化虐民。父嵩乞丐,攜養,因贓假位;輿金輦璧,輸貨權門;竊盜鼎司,傾覆重器。操閹遺醜,本無懿德;僄狡鋒俠,好亂樂禍。
사공 조조는 할아버지 중상시 등은 좌관, 서황과 함께 나쁜 짓을 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날뛰며 세상의 풍속을 해치며 백성들에게 사납게 하였습니다. 조조의 아버지 조숭은 구걸하던 거지로 환관의 양자가 되어 뇌물로 지위를 빌렸습니다. 수레와 가마에 금과 옥을 실어 재물을 권세있는 가문에 싣고 가 삼공의 자리를 훔치고 중요 인물을 기울이고 엎었습니다. 조조는 환관의 양자로 추함을 남겼으니 본래 아름다운 덕은 없었습니다. 교활하고 경솔하게 무기를 들고 난을 좋아하고 재앙을 즐겼습니다.
慕府董統鷹揚,掃除兇逆。續遇董卓,侵官暴民,於是提劍揮鼓,發命東夏,收羅英雄,棄瑕取用。故遂與操同諮合謀,授以裨師;謂其鷹犬之才,爪牙可任。至乃愚佻短略,輕進易退;傷夷折䘐,數喪師徒。幕府輒復分兵命銳,修完補輯,表行東郡領袞州刺史,被以虎文,獎成威柄,冀獲秦師一剋之報。而操遂承資跋扈,恣行凶忒,割剝元元,殘賢害善。
막부(원소)는 응양(군)을 통솔하여 흉하고 거스르는 자들을 쓸어 없앴습니다. 이어 동탁이 관을 침범하고 백성들을 사납게 대함을 만나니 이에 검을 들고 북을 치면서 동하에서 명을 내려 영웅을 거두어 망라하여 허물을 버리고 취하여 등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조조와 함께 의논하고 도모함을 합하여 도움을 주는 군대로서 임명되었습니다. 그 길들인 매와 개의 재능을 지녔다 여겨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어리석고 경박하며 짧은 책략으로 가벼이 나아가고, 쉽게 물러나며 다치고 죽는 이가 많아 사기가 꺽여 여러차례 군대의 무리를 잃었습니다. 막부가 문득 다시 군대를 나누어 나아가게 하여 보충하고 모아 완전하게 하며 표를 올려 동군이 예주자사를 거느리게 하고 호문을 입게 하고 위엄과 자루를 이루기를 장려한 것은 진나라 군대가 한 번에 이겼다는 보고를 얻으려 해서였습니다.
故九江太守邊讓:英才俊偉,天下知名;直言正色,論不阿諂;身首被梟懸之誅,妻拏受灰滅之。自是士林憤痛,民怨彌重;一夫奮臂,舉州同聲。故躬破於徐方,地奪於呂布;彷徨東裔,蹈據無所。幕府惟強幹弱枝之義,且不登叛人之黨,故復援旌擐甲,席捲起征。金鼓響振,布眾奔沮。拯其死亡之患,復其方伯之位。則幕府無德於兗土之民,而大有造於操也。
옛 구강태수 변양은 뛰어난 재능과 준수한 위대함으로 천하에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정직한 말과 바른 기색으로 논함에는 아첨하지 않았으나 몸과 머리는 장대 끝에 걸리는 죽음을 당하였고, 처자식이 몰살당하는 죄를 받았습니다. 이로부터 사림은 분통을 터트리고, 백성들은 원망하고 하늘은 노하였으니 한 남자가 팔을 떨치자 주를 들어 같은 소리를 내었다. 그러므로 몸은 서방에서 깨지고, 땅은 여포에게 빼앗기니 동쪽 변경을 방황하며 발 딛고 의거할 곳이 없었다. 징과 북소리 울려 떨치니 여포의 무리들을 막아 그 죽고 망함의 근심을 구원하여 그 지방관의 자리를 회복시켰습니다. 곧 막부는 연주 땅 백성들에게 덕을 베픔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조조에게 나아감이 있었습니다.
後會鑾駕返旆,群賊亂政。時冀州方有北鄙之警,匪遑離局;故使從事中郎徐勛,就發遣操,使繕修郊廟,翊衛幼主。操便放志:專行脅遷,當御省禁;卑侮王室,敗法亂紀;坐領三臺,專制朝政;爵賞由心,刑戮在口;所愛光五宗,所惡滅三族,群談者受顯誅,腹議者蒙隱戮;百僚鉗口,道路以目;尚書記朝會,公卿充員品而已。
후에 천자의 수레가 깃발을 세움을 만났을 때 여러 도적이 정사를 어지럽혔습니다. 그 때 기주는 바야흐로 북쪽 변방의 경계가 있어서 황망하여 국면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종사중랑 서훈으로 하여금 조조에게 나아가게 하여 교사와 종묘를 수선하게 하고 어린 천자를 도와 지키게 하였습니다. 조조가 문득문득 뜻을 방자히 하여 행동을 마음대로 하고 관리를 위협하여 옮기게하며 황실과 관청을 맡아 거느리고 황실을 낮추고 업신여기며 법도를 무너뜨리고 기강을 어지럽히며 앉아서 삼대를 거느리고 조정의 정사를 어지럽혔습니다. 관작과 상이 조조의 마음에서 나왔으며 형벌과 죽임이 입에서 나왔다. 아낌을 받으면 오종이 빛났고, 미움을 받으면 삼족이 멸하고, 여럿이 모여 말하는 자는 드러내놓고 죽였으며, 몰래 말하는 자는 몰래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모든 관리들은 입을 다물고 길에서 만나도 눈짓만하고, 조정의 상서는 조회를 기록할 뿐이고 공경들은 숫자와 등급을 채울 뿐이었습니다.
故太尉楊彪:典歷二司,享國極位。操因緣睚眥,被以非罪;榜楚參并,五毒備至;觸情任忒,不顧憲綱。又議郎趙彥:忠諫直言,義有可納,是以聖朝含聽,改容加錫。操欲迷奪時權,杜絕言路,擅收立殺,不俟報聞。又梁孝王先帝母昆,墳陵尊顯;桑梓松柏,猶宜肅恭;而操帥將校吏士,親臨發掘,破棺裸屍,掠取金寶。至今聖朝流涕,士民傷懷!
그러므로 태위 양표는 이사의 벼슬을 역임하여 나라의 지극한 지위를 누렸습니다. 조조는 째려보았다는 이유로 죄 아닌 것을 쒸워 종아리를 치고 볼기를 때려 오독이 갖추어짐에 이르렀으니 마음 내키는대로 하여 법과 기강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또 의랑 조언은 충성스러운 간언과 정직한 말을 하여 의로움을 받아들일만함이 있었지만 이 때문에 천자가 마음에 품어 들을 때 얼굴을 고치시고, 더하여 주셨습니다. 조조가 권력에 미혹하여 빼앗을 때 언로를 막고 멋대로 거두고 세운 채 죽이는데 천자에게 알리고 천자의 답을 듣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또 양 효왕은 선제와 동복의 형제이므로 무덤도 존귀하므로 뽕나무, 가래나무, 소나무, 잣나무도 오히려 마땅히 엄숙하고 공경히 해야 하는데 조조는 장교와 관리, 군사를 거느리고 친히 발굴에 임하여 관을 깨트려 시신을 드러나게 하고 보화를 약탈하였습니다. 지금 천자께서 눈물을 흘리고 사민이 상처를 품음에 이르렀습니다.
操又特置發丘中郎將,摸金校尉,所過隳突,無骸不露。身處三公之位,而行盜賊之態,污國害民,毒施人鬼!加其細政慘苛,科防互設;罾繳充蹊,坑阱塞路;舉手挂網羅,動足觸機陷:是以袞、豫有無聊之民,帝都有吁嗟之怨。歷觀載籍,無道之臣,貪殘酷烈,於操為甚!
조조가 또한 특히 언덕을 발굴하는 중랑장, 금을 찾는 교위를 두었는데 지나간 곳 마다 무너지고 구멍이 뚫려 해골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조조는 몸은 삼공의 지위에 있었으되 행실은 도적의 행태를 보여 나라를 더럽히고 백성을 해쳐서 해독이 사람과 귀신에게 베풀어졌습니다. 더하여 그 자잘한 정사가 잔인하고 가혹하며 법률 조목이 서로 베풀어져 그물과 주살 줄처럼 좁은 길을 채워 함정을 파고 길을 막았습니다. 손을 들면 그물에 걸리고, 발을 움직이면 덧과 함정에 빠집니다. 이 대문에 연주와 예주는 매우 곤궁하여 의지할 데 없는 백성들이 있고, 천자의 도읍에는 탄식하고 원망함이 있습니다. 전적에 실려 있는 무도한 신하들을 두루 살펴보아도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가혹하고 치열함이 조조보다 심하리오!
幕府方詰外姦,未及整訓;加緒含容,冀可彌縫。而操豺狼野心,潛包禍謀,乃欲摧撓棟梁,孤弱漢室;除滅忠正,專為梟雄。往者伐鼓北征公孫瓚,強寇桀逆,拒圍一年。操因其未破,陰交書命,外助王師,內相掩襲。會其行人發露,瓚亦梟夷,故使鋒芒挫縮,厥圖不果。
막부(원소)가 바야흐로 밖의 간사함을 꾸짖느라 미처 가르침을 정돈함에 이르지 못하여 실마리를 더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임시변통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조조는 승냥이와 이리의 야심으로 몰래 재앙을 도모하려는 마음을 품고 곧 나라의 동양을 꺽거나 휘게 하여 한 나라 황실을 외롭고 약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충성하고 정의로운 신하는 없어지고 오로지 효웅이 되려 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북을 치며 북쪽으로 공손찬을 정벌할 때 강한 도적이 사납게 막아 포위에 일년이나 저항하였습니다. 조조가 아직 깨트리지 못하였을 때 몰래 글을 주고받으며 밖으로는 천자의 군대를 돕는다 하면서 안으로 서로 습격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 사자가 발각되어 공손찬이 효수되어 죽었기 때문에 밀약이 좌절되자 조조의 기세가 위축되어 그 도모함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今乃屯據敖倉,阻河為固,欲以螳螂之斧,御隆車之隧。幕府奉漢威靈,折衝宇宙;長戟百萬,驍騎千群;奮中黃、育獲之士,騁良弓勁弩之勢;并州越太行,青州涉濟漯;大軍汎黃河以角其前,荊州下宛葉而犄其後;雷震虎步,並急虜廷,若舉炎火以炳飛蓬,覆滄海以沃熛炭,有何不滅者哉?又操軍吏士,其可戰者,皆出自幽、冀,或故營部曲,咸怨曠思歸,流涕北顧。其餘袞、豫之民,乃呂布、張楊之餘眾,覆亡迫脅,權時苟從;各被創夷,人為讎敵。若回旆反徂,登高崗而擊鼓吹,揚素揮以啟降路,必土崩瓦解,不俟血刃。
지금 곧 오창에 주둔하여 하를 막아 견고히 하고, 사마귀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가 가는 것을 막고자 하고 있습니다. 막부(원소)가 한나라 위엄과 신령스러움을 받들어 우주를 지키려하니 긴 창을 든 군사가 백만이고, 용감하고 날랜 기병이 일천의 무리이며 중황, 분육, 오획의 군사들이 떨쳐 일어나 양궁과 경노의 형세를 다하였습니다. 병주의 태행산을 넘고 청주의 제수와 탑수를 건너 대군이 황하에 뜨는 것으로서 그 앞으로 진격하고, 형주는 완성과 섭성으로 내려가 그 뒤를 칠 것입니다. 우레와 번개, 호랑이 걸음으로 아울러 도적의 조정에 모인 것이 마치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들어 쑥처럼 태워 날리는 것과 같이 넓고 큰 바다를 덮는 것처럼 숯불에 부어버리는 것과 같이 한다면 어찌 없어지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또 조조의 군사와 관리들로 싸울 수 있는 자는 모두 유주, 기주로부터 나온 자들이거나, 혹은 옛 부곡의 영채에서 온 자들로 모두 홀아비와 홀어미가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며 북쪽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 연주, 예주의 백성들은 곧 여포, 장양의 남은 무리들로 멸망당한 후 협박을 받아 당시의 형세를 따라 구차히 따르고 있으나 각각 상처를 입어 사람들이 원수로 삼고 있습니다. 만약 깃발을 돌려서 돌아 가 높은 언덕에 올라 북을 치고 피리를 불고, 흰 깃발을 휘두르면서 항복의 길을 열어주면 반드시 흙이 무너지고 와해 될 것이니 칼날에 피 묻힘을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方今漢室陵遲,綱維弛絕;聖朝無一介之輔,股肱無折衝之勢;方畿之內,簡練之臣,皆垂頭搨翼,莫所憑恃;雖有忠義之佐,脅於暴虐之臣,焉能展其節?又操持部曲精兵七百,圍守宮闕,外託宿衛,內實拘執,懼其篡逆之萌,因斯而作。此乃忠臣肝腦塗地之秋,烈士立功之會,可不勗哉?
바야흐로 지금 한나라의 도가 쇠퇴하고 기강이 떨어졌으며 천자에게는 한 사람의 보좌도 없고, 천자가 신임하는 신하는 적을 꺽을 수 있는 형세가 없으며, 기내에 살고 있는 간결하고 세련된 신하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고 날개를 접었기 때문에 천자가 의지하고 믿을 바가 없습니다. 비록 충의의 보좌가 있을지라도 포학한 신하에게 협박받을 터이니 어찌 그 절개를 펼 수 있겠습니까? 또한 조조는 부곡의 정병 칠백 명을 가지고 궁궐을 둘러싸고 지키면서 밖으로는 천자를 지킨다고 핑계대지만, 실제로는 안으로 구속하고 있으니 그 찬역의 싹을 두려워합니다. 이 때문에 이 격문을 짓는 것입니다. 이는 곧 충신이 간뇌를 땅에 칠할 때이며, 열사가 공을 세울 기회이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操又矯命稱制,遣使發兵。恐邊遠州,郡過聽給與,違眾旅叛,舉以喪名,為天下笑,則明哲不取也。即日幽、并、青、冀四州並進。書到荊州,便勒見兵,與建忠軍協同聲勢。州郡各整義兵,羅落境界,舉武揚威,並匡社稷,則非常之功於是乎著。
조조가 또한 거짓으로 천자의 명이라 핑계대고 사신을 보내 군대를 동원합니다. 변경의 멀리 있는 주와 군이 명령을 듣고 군대를 줄까 두렵습니다. 많은 무리의 뜻을 어기고 반역에 함께하여 명성을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곧 밝음을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시 유쥬, 병주, 청주, 기주 사주는 함게 전진해야 합니다. 글이 형주에 이르면 곧 군대를 점검하여 건충군과 함께 명성과 위세를 합하십시오. 주와 군은 각각 의병을 정돈하여 경계에 군대를 나영하고 무력을 들고 위엄을 드날리고 아울러 사직을 바로잡으면 곧 평범하지 않은 공이 여기에 드러날 것입니다.
其得操首者,封五千戶侯,賞錢五千萬。部曲偏裨將校諸吏降者,勿有所問。廣宣恩信,班揚符賞,布告天下,咸使知聖朝有拘迫之難。如律令。
그 조조의 머리를 얻은 자는 봉록 오천호의 후에 봉하고, 오천만전을 상줄 것입니다. 부곡, 편장, 비장, 장교와 여러 관리로 항복하는 자는 잘못을 묻지 않을 것입니다. 널리 은혜로운 신의를 펼치고 훌륭한 자를 가려 선양하고 법에 따라 상을 주는 것을 천하에 포고합니다. 모두 천자가 붙잡혀 압박받는 어려움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법과 명령과 같이 하십시오.
紹覽檄大喜,即命使將此檄遍行州郡,並於各處關津隘口張挂。檄文傳至許都,時曹操方患頭風,臥病在床。左右將此檄傳進,操見之,毛骨悚然,出了一身冷汗,不覺頭風頓愈,從床上一躍而起,顧謂曹洪曰:「此檄何人所作?」洪曰:「聞是陳琳之筆。」操笑曰:「有文事者,必須以武略濟之。陳琳文事雖佳,其如袁紹武略之不足何!」遂聚眾謀士商議迎敵。
원소가 격문을 살펴보고는 크게 기뻐하여 곧 명하여 이 격문을 주군에 두루 보내게 하고, 아울러 각 곳의 관과 진, 좁은 입구에 걸게 하였다. 격문이 전해져 허도에 이르렀을 때 조조는 두통을 앓고 있어 병으로 침상에 누워있었다. 측근들이 이 격문을 전해 올리자 조조가 그것을 보고 모골이 송연하여 몸에 차가운 땀이 나오고, 두통이 갑자기 낫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상 위로부터 한 번에 뛰어 일어나 돌아보고 조홍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격문은 어떤 사람이 지은 것인가?” 했다. 조홍이 말하기를 “이는 진림이 지은 것으로 들었습니다.” 하니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글에 있는 일들은 반드시 무략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진림의 글 속의 일은 비록 아름다우나 원소는 무략이 부족하니 어찌하리오!” 했다. 마침내 여러 모사를 모아 적을 맞을 것을 상의 하였다.
孔融聞之,來見操曰:「袁紹勢大,不可與戰,只可與和。」荀彧曰:「袁紹無用之人,何必議和?」融曰:「袁紹土廣民強。其部下如許攸,郭圖,審配,逢紀,皆智謀之士;田豐,沮授,皆忠臣也;顏良,文醜,勇冠三軍;其餘高覽,張郃,淳于瓊,等俱世之名將,──何謂紹為無用之人乎?」彧笑曰:「紹兵多而不整;田豐剛而犯上,許攸貪而不智,審配專而無謀,逢紀果而無用,此四人者,勢不相容,必生內變。顏良,文醜,匹夫之勇,一戰可擒。其餘碌碌等輩,縱有百萬,何足道哉!」
공융이 그것을 듣고 와서 조조를 뵙고 말하기를 “원소는 형세가 크니 함께 싸울 수 없고 다만 화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했다. 순욱이 말하기를 “원소는 쓸모없는 사람인데 어찌 반드시 화해를 논의하겠습니까?” 하니 공융이 말하기를 “원소는 땅이 넓고, 백성은 강합니다. 그 부하는 허유, 곽도, 심기, 봉기 같은 이는 모두 지모의 선비이고, 전풍, 저수는 모두 충신입니다. 안량, 문추는 용맹하기로는 삼군에 으뜸이며, 그 나머지 고람, 장합, 순우경 등은 모두 세상에 이름난 장수입니다. 어찌 원소를 슬모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순욱이 웃으며 말하기를 “원소는 군대가 많지만 정비되지 않았고, 전풍은 굳세지만 윗사람을 범하였고, 허유는 탐욕스럽지만 지혜롭지 않으며 심배는 오로지하되 꾀가 없으며, 봉기는 관단성이 있으나 쓸모가 없습니다. 이 네 사람은 세력을 서로 용인하지 않으니 반드시 안에서 변이 생겨날 것입니다. 안량, 문추는 필부의 용맹으로 한번 싸워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평범한 무리로 백만이 있다한들 어찌 말할 것이 있으리오!” 했다.
孔融默然。操大笑曰:「皆不出荀文若之料。」遂喚前軍劉岱、後軍王忠引軍五萬,打著丞相旗號,去徐州攻劉備。原來劉岱舊為袞州刺史;及操取袞州,岱降於操,操用為偏將,故今差他與王忠一同領兵。操卻自引大軍二十萬,進黎陽,拒袁紹。程昱曰:「恐劉岱、王忠不稱其使。」操曰:「吾亦知非劉備敵手,權且虛張聲勢。」分付:「不可輕進。待我破紹,再勒兵破備。」劉岱、王忠領兵去了。曹操自引兵至黎陽。
공융이 말이 없었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모두 순문약(순욱) 헤아림을 벗어나지 않는다.”하고는 마침내 전군 유대, 후군 왕충을 불러 오만을 이끌고 승상의 깃발을 앞세우고 서주에 가 유비를 공격하게 하였다. 원래 유대는 옛날에 연주자사가 되었는데 조조가 연주를 취함에 이르러 유대가 조조에게 항복하니 조조가 편장을 삼았다. 그러므로 지금 왕충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보낸 것이다. 조조가 직접 대군 삼십만을 이끌고 여양으로 진군하여 원소를 막았다. 정욱이 말하기를 “유대와 왕충이 그 사명에 걸맞지 않을까 두렵습니다.”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또한 유비(유현덕)의 적수가 아님을 알고 있으나 임시로 또한 허세를 부려본 것이다.” 하고는 명령하기를 “가벼이 진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원소를 깨트리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군대를 정비하여 유비(유현덕) 깨트려야 한다.” 했다. 유대와 왕충이 군대를 거느리고 갔다. 조조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여양에 이르렀다.
兩軍隔八十里,各自深溝高壘,相持不戰。自八月守至十月。原來許攸不樂審配領兵,沮授又恨紹不用其謀,各不相和,不圖進取。袁紹心懷疑惑,不思進兵。操乃喚呂布手下降將臧霸把守青、徐;于禁、李典屯兵河上;曹仁總督大軍,屯於官渡。操自引一軍,竟回許都。
두 군대가 팔십리를 떨어져 각자 도랑을 깊게 파고 루를 높게 쌓아 서로 기다리면서 싸우지 않았다. 팔월부터 지켜 십월에 이르렀다. 원래 허유는 심배가 군대를 거느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저수 또한 원소가 그 꾀를 쓰지 않는 것을 원망하였기 때문에 각각 서로 화합하지 않아 나아가 취하는 것을 도모하지 않았다. 원소가 마음속으로 의혹을 품고 군대를 진격시키지 않았다. 조조가 이에 여포의 부하인 항복한 장수 장패를 불러 청주와 서주를 지키게 하고, 우금과 이전은 황하 가에 군대를 주둔하게 하고, 조인이 대군을 감독하면서 관도에 주둔하게 하였다. 조조는 직접 일군을 이끌고 마침내 허도로 돌아갔다.
且說劉岱、王忠引軍五萬離徐州一百里下寨。中軍虛打曹丞相旗號,未敢進兵,只打聽河北消息。這裏玄德也不知曹操虛實,未敢擅動,亦只探聽河北。忽曹操差人催劉岱、王忠進戰。二人在寨中商議。岱曰:「丞相催促攻城,你可先去。」王忠曰:「丞相先差你。」岱曰:「我是主將,如何先去?」忠曰:「我和你同引兵去。」岱曰:「我與你拈鬮;拈著的便去。」王忠拈著「先」字,只得分一半軍馬,來攻徐州。
각설하고 유대와 왕충이 군대 오만을 이끌고 서주를 떠나 일백리 쯤에 영채를 세웠다. 중군에는 조승상이 있는 것처럼 깃발을 세우고 감히 군대가 진격하지 못하게 하고, 다만 하북의 소식을 알아볼 뿐이었다. 그간 유현덕은 조조의 허실을 알지 못하여 감히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고, 또한 하북을 알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조조가 사람을 보내 유대와 왕충이 나아가 싸우디를 재촉하였다. 두 사람이 영채 안에 있으면서 상의하였다. 유대가 말하기를 “승상이 성을 공격할 것을 재촉하니 그대가 먼저 가야 합니다.”하니 왕충이 “승상께서 먼저 당신을 보냈습니다.” 했다. 유대가 말하기를 “나는 이곳의 주된 장수이니 먼저 가는 것이 어떠합니까?”하니 왕충이 말하기를 “나와 당신이 함께 군대를 이끌고 갑시다.” 했다. 유대가 말하기를 “나와 당신이 제비를 뽑아서 뽑힌 사람이 곧 가도록 합시다.”했다. 왕충이 제비에 “선”자였으므로 군마를 반으로 나누어 서주에 가서 공격하기로 했다.
玄德聽知軍馬到來,請陳登商議曰:「袁本初雖屯兵黎陽,奈謀臣不和,尚未進取。曹操不知在何處。聞黎陽軍中,無操旗號,如何這裏卻反有他旗號?」登曰:「操詭計百出,必以河北為重,親自監督,卻故意不建旗號,乃於此處虛張聲勢。吾意操必不在此。」玄德曰:「兩弟誰可探聽虛實?」張飛曰:「小弟願往。」玄德曰:「汝為人躁暴,不可去。」飛曰:「便是有曹操也挐將來!」雲長曰:「待弟往觀其動靜。」玄德曰:「雲長若去,我卻放心。」
유현덕이 군마가 온다는 것을 알고 진등을 청하여 상의하여 말하기를 “원본초(원소)는 비록 여양에 주둔하고 있으면서도 모신들이 화합하지 못하여 아직 진격하여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조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여양의 군 중에는 조조의 깃발이 없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여기에 도리어 깃발이 있는 것입니까?” 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조조는 속이는 계책을 갖가지 내니 반드시 하북을 소중하게 여기고 직접 감독하려하여 일부러 깃발을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은 허세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 조조는 반드시 여기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두 동생 중에 누가 허실을 살펴볼 수 있겠는가?” 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제가 가기를 원합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너는 사람됨이 조급하고 사나우니 가서는 안 된다.”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여기에 조조가 있다면 잡아 올 것이오!”하였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제가 가서 그 동정을 살펴보겠습니다.”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관운장이 간다면 내가 도리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했다.
於是雲長引三千人馬出徐州來。時值初冬,陰雲布合,雪花亂飄,軍馬皆冒雪布陣。雲長驟馬提刀而出,大叫王忠打話。忠出曰:「丞相到此,緣何不降?」雲長曰:「請丞相出陣,我自有話說。」忠曰:「丞相豈肯輕見你!」雲長大怒,驟馬向前。王忠挺鎗來迎。兩馬相交,雲長撥馬便走。王忠趕來,轉過山坡,雲長回馬,大叫一聲,舞刀直取。王忠攔截不住,恰得驟馬奔逃,雲長左手倒提寶刀,右手揪住王忠勒甲縧,拖下鞍鞽,橫擔於馬上,回本陣來。王忠軍四散奔走。
이에 관운장이 삼천의 인마를 이끌고 서주를 나와 갔다. 때는 초겨울이었는데 짙은 구름이 끼고 눈꽃이 어지럽게 휘날려 군사와 말이 모두 눈이 내리는 것을 무릅쓰고 진을 쳤다. 관운장이 말을 달리며 칼을 가지고 나가 큰 소리로 왕창과 말을 나누었다. 왕충이 나와 말하기를 “승상께서 여기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항복하지 않는가?”하니 관운장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진에 나오시면 내가 얘기를 말 것을 청한다.”했다. 왕충이 말하기를 “승상은 어찌 가벼이 너를 만나시랴! 하니 관운장이 크게 노하여 앞을 향해 말을 달려 나갔다. 왕충이 창을 내밀며 와 맞이하였다. 두 말이 서로 교차하는데 관운장이 말을 부려 달아났다. 왕충이 쫓아오니 돌아 산언덕을 지날 때 관운장이 말을 돌려 크게 한 소리를 외치면서 칼을 휘두르며 곧바로 취하려 했다. 왕충이 가로 막았으나 버틸 수 없어 마치 도망하려하는 듯하자 관운장이 왼손에 보도를 거꾸로 잡고, 오른 손으로는 왕충의 가슴갑옷 끈을 꽉 붙잡고는 끌어당겨 말안장에서 끌어내려 말위에 가로로 싣고 본진으로 돌아왔다. 왕충의 군대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雲長押解王忠,回徐州見玄德。玄德問:「你乃何人?見居何職?敢詐稱曹丞相!」忠曰:「焉敢有詐?奉命教我虛張聲勢,以為疑兵。丞相實不在此。」玄德教付衣服酒食,且暫監下,待捉了劉岱,再作商議。雲長曰:「某知兄有和解之意,故生擒將來。」玄德曰:「吾恐翼德躁暴,殺了王忠,故不教去。此等人殺之無益,留之可為解和之地。」
관운장이 왕충을 압송하여 서주로 돌아와 유현덕을 뵈었다. 유현덕이 묻기를 “너는 곧 어떠한 사람인가? 어떠한 직책에 있기에 감히 조승상을 사칭하는가!” 했다. 왕충이 말하기를 “어찌 감히 거짓이 있겠습니까? 우리들에게 허장성세로 군대를 의심나게 하라시는 명을 받들었습니다. 승상은 실제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했다. 유현덕이 의복과 술, 음식을 주고, 잠시 감옥에 가두게 하고 유대를 잡기를 기다려 다시 상의하게 하였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제가 형님이 화해의 뜻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사로잡아 온 것입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익덕(장비)이 조급하고 사나워 왕충을 죽일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이익이 없고 그들을 억류하는 것은 화해의 자리가 될 수 있다.” 했다.
張飛曰:「二哥捉了王忠,我去生擒劉岱來!」玄德曰:「劉岱昔為袞州刺史,虎牢伐董卓時,也是一鎮諸侯。今日為前軍,不可輕敵。」飛曰:「量此輩何足道哉!我也似二哥生擒將來便了!」玄德曰:「只恐壞了他性命,誤我大事。」飛曰:「如殺了,我償他命!」玄德遂與軍三千。飛引兵前進。
장비가 말하기를 “둘째 형님이 왕충을 잡았으니 제가 사서 유대를 사로잡을 것이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유대는 예전에 연주자사가 되었는데 호뢰관에서 동탁을 칠 때 한 진영을 담당하던 제후였다. 오늘 선봉이 되었으니 적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이들을 헤아려보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오! 내가 둘째 형님과 같이 사로잡아 올 것이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다만 성명을 무너뜨려서 우리 대사를 그르칠까 두렵다.”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만일 죽인다면 내 생명으로 보상할 것이오!” 하니 유현덕이 마침내 군대 삼천을 주었다. 장비가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였다.
卻說劉岱知王忠被擒,堅守不出。張飛每日在寨前叫罵,岱聽知是張飛,越不敢出。飛守了數日,見岱不出,心生一計:傳令今夜二更去劫寨,日間卻在帳中飲酒,詐醉尋軍士罪過,打了一頓,縛在營中曰:「待我今夜出兵時,將來祭旗!」卻暗使左右縱之去。軍士得脫,偷走出營,逕往劉岱營中來報劫寨之事。劉岱見降卒身受重傷,遂聽其說,虛紮空寨,伏兵在外。
각설하고 유대가 왕충이 사로잡힌 것을 알고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장비가 매일 영채 앞에 있으면서 큰 소리로 욕하니 유대가 듣고 이가 장비임을 알고 감히 나가지 못하였다. 장비가 지키기를 여러 날 하여도 유대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한 계책을 내었다. 영을 전하여 오늘 밤 이경에 가서 유대의 영채를 빼앗을 것이다. 하였으나 낮 동안에는 도리어 장막 안에 있으면서 술을 마시고, 거짓으로 취한 척 군사의 죄와 허물을 찾아 때린 후 묶어 진영 안에 두면서 말하기를 “내가 오늘 밤 출병할 때를 기다려서 장차 제물로 삼을 것이다!” 했다. 그러나 몰래 좌우로 하여금 그들을 놓아주게 하였다. 군사들이 탈출하자 몰래 달아나 진영을 나가 지름길로 유대의 진영에 가서 영채를 빼앗는 일을 알렸다. 유대가 항복한 병졸의 몸에 중한 상처를 받을 것을 보고는 마침내 그 말을 듣고 영채를 비우고 복병을 밖에 두었다.
是夜張飛卻分兵三路,中間使三十餘人,劫寨放火;卻教兩路軍抄出他寨後,看火起為號,夾擊之。二更時分,張飛自引精兵,先斷劉岱後路;中路三十餘人,搶入寨中放火。劉岱伏兵恰待殺入,張飛兩路兵齊出。岱軍自亂,正不知飛兵多少,各自潰散。劉岱引一隊殘軍,奪路而走,正撞見張飛;狹路相逢,急難回避;交馬只一合,早被張飛生擒過去。餘眾皆降。
이날 밤 장비가 도리어 군대를 세 길로 나누고, 중간에 삼십여 명으로 하여금 영채를 빼앗아 불을 지르게 하였다. 그리고 두 길의 군대로 뽑아 유대의 영채 뒤쪽으로 나오게 하였는데, 불이 일어나는 것을 신호로 삼아 협공하기로 하였다. 이경 때 쯤 장비가 스스로 정예 군대를 이끌고 먼저 유대의 뒷길을 끊고, 중로의 삼십여 명은 치며 영채 안에 들어가 불을 놓게 하였다. 유대의 복병이 쇄도하기를 기다려 장비의 두 길의 군대가 일제히 나왔다. 유대의 군대가 저절로 어지러워져 장비의 군대가 많고 적음을 알지 못하여 각자 무너지고 흩어졌다. 유대가 일 대의 남은 군대를 이끌고 길을 빼앗아 달아나는데 장비가 정면으로 닥침을 보았다. 좁은 길에서 서로 만나니 급히 돌아 피하기 어려웠다. 말이 교차한지 단 일합에 장비에게 사로잡혔다. 남은 무리들이 모두 항복하였다.
飛使人先報入徐州。玄德聞之,謂雲長曰:「翼德自來粗莽,今亦用智,吾無憂矣。」乃親自出郭迎之。飛曰:「哥哥道我躁暴,今日如何?」玄德曰:「不用言語相激,如何肯使機謀?」飛大笑。玄德見縛劉岱過來,慌下馬解其縛曰:「小弟張飛誤有冒瀆,望乞恕罪。」遂迎入徐州,放出王忠,一同款待。玄德曰:「前因車冑欲害備,故不得不殺之。丞相錯疑備反,遣二將軍前來問罪。備受丞相大恩,正思報效,安敢反耶?二將軍至許都,望善言為備分訴,備之幸也。」劉岱、王忠曰:「深荷使君不殺之恩,當於丞相處方便,以某兩家老小保使君。」 玄德稱謝。
장비가 사람을 시켜 먼저 서주에 들어가 보고하였다. 유현덕이 그것을 듣고 관운장에 일어 말하기를 “익덕(장비)이 거칠고 경솔하였는데 오늘 또한 지혜를 썼으니 내가 근심이 없다.” 했다. 곧 직접 성곽을 나가 맞이하였다. 장비가 말하기를 “형님이 나의 조급하고 사나움을 말하였는데 오늘은 어떠합니까?”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서로 격려하여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계략을 쓸 수 있었겠는가?”하니 장비가 크게 웃었다. 유현덕이 유대를 묶어 오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말에서 내려 그 묶음을 풀어주며 말하기를 “작은 동생 장비가 잘못 모독함이 있었는데 죄를 용서해 줄 것을 바랍니다.”하고는 마침내 맞이하여 서주에 들어가 왕충을 풀어주고 함께 정성껏 대우하였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앞서 거주가 나를 해치고자 하였기 때문에 죽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승상이 내가 배반한 것으로 잘못 알고 두 장군을 보내 죄를 물었습니다. 내가 승상의 큰 은혜를 입어 바로 갚을 것을 생각하는데 어찌 감히 배반을 하겠습니까? 두 장군이 허도에 이르러 좋은 말로 나를 위해 호소해 준다면 저의 요행일 것입니다.” 했다. 유대와 왕충이 말하기를 “사군이 죽이지 않음의 은혜를 깊이 입었으니 마땅히 승상이 처한 방편으로서 우리 두 가문의 식구들이 사군(유현덕)을 보증할 것입니다.” 했다. 유현덕이 감사하였다.
次日盡還原領軍馬,送出郭外。劉岱、王忠行不上十餘里,一聲鼓響,張飛攔路大喝曰:「我哥哥忒沒分曉!捉位賊將如何又放了?」嚇得劉岱、王忠在馬上發顫。張飛睜眼挺鎗趕來,背後一人飛馬大叫:「不得無禮!」視之,乃雲長也。劉岱、王忠方纔放心。雲長曰:「既兄長放了,吾弟如何不遵法令?」飛曰:「今番放了,下次又來。」雲長曰:「待他再來,殺之未遲。」劉岱、王忠連聲告退曰:「便丞相誅我三族,也不來了。望將軍寬恕。」
다음날 모두 원래의 군마를 거느리고 돌아가니 환송하여 성곽 밖에 나갔다. 유대와 왕충이 행군하여 십리를 가지 못하였는데 한 소리 북소리가 들리고 장비가 길을 막아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우리 형님은 틀림을 깨닫지 못하시는구나! 잡은 적장을 어떻게 놓아주시는가?” 하고 위협하니 유대와 왕충이 말 위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장비가 눈을 부릅뜨고 창을 내밀며 쫒아오는데 뒤에서 한 사람이 날듯이 말을 달려오며 크게 고함치기를 “무례하지 말라!” 했다. 그를 보니 곧 관운장이었다. 유대와 왕충이 비로소 겨우 마음을 놓았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이미 형님께서 놓아주셨는데 우리 동생은 어찌하여 법령을 따르지 않는가?”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이번에는 놓아주면 다음번에 또 올 것입다.” 했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가 죽여도 늦지 않다,”하니 유대와 왕충이 말을 이어 물러날 것을 고하여 말하기를 “곧 승상께서 우리 삼족을 죽인다할지라도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했다.
飛曰:「便是曹操自來,也殺他片甲不回!今番權且記下兩顆頭!」劉岱、王忠抱頭鼠竄 長、翼德回見玄德曰:「曹操必然復來。」孫乾謂玄德曰:「徐州受敵之地,不可久居;不若分兵屯小沛,守邳城,為犄角之勢,以防曹操。」玄德用其言,令雲長守下邳;甘、糜二夫人亦於下邳安置──甘夫人乃小沛人也,糜夫人乃糜竺之妹也。──孫乾、簡雍、糜竺、糜芳守徐州。玄德與張飛屯小沛。
장비가 말하기를 “곧 조조가 올 것이니 죽여서 조각 갑옷도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 이번에 임시로 두 작은 머리를 벨 것이오!” 하니 유대와 왕충이 머리를 감싸고 숨으며 도망하였다. 관운장과 익덕(장비)이 유현덕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조조는 반드시 다시 올 것입니다.” 했다. 손건이 유현덕에게 말하기를 “서주는 적에게 받은 땅이니 오래 살 수 없습니다. 만약 군대를 나누어 소패에 주둔하여 비성을 지켜 양면 작전의 태세로 조조를 막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유현덕이 그 말을 써서 관운장으로 하여금 하비를 지키게 하고, 감, 미 두 부인을 또한 하비에 있게 하였다. 감부인은 소패 사람이고, 미부인은 곧 미축의 누이였다. 손건, 간옹, 미축, 미방은 서주를 지켰다. 유현덕과 장비는 소패에 주둔하였다.
劉岱、王忠回見曹操,具言劉備不反之事。操怒罵:「辱國之徒,留你何用!」喝令左右推出斬之。正是:犬豕何堪共虎鬥,魚蝦空自與龍爭。不知二人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유대와 왕충이 돌아가 조조를 뵙고, 유비가 배반하지 않을 것임을 갖추어 말하였다. 조고 크게 노하여 욕하기를 “나라를 욕되게 한 무리들을 어디에 쓰겠는가!”하고는 큰 소리로 좌우에게 명하여 끌어내 목을 베게 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개와 돼지가 어찌 범의 싸움을 감당하며, 물고기와 조개는 공연히 용과 다툰다. 두 사람의 성명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하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 보자.
'삼국연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4회 국적은(조조는) 귀비를 죽이고, 황숙(유현덕)은 패하여 달아나 원소에게 들어가다. (0) | 2020.04.10 |
---|---|
제23회 미정평(예형)이 옷을 벗고 적을 꾸짖고, 길태의가 독을 쓰고 형벌을 만나다. (0) | 2020.04.09 |
제21회 조조는 자주를 마시며 영웅을 논하고, 관공은 점성에서 거주를 참하다. (0) | 2020.03.31 |
제20회 조아만(조조)은 허전에서 사냥하고, 동국구(동승)은 내각에서 조칙을 받다 (0) | 2020.03.26 |
제19회 하비성에서 조조는 격전을 치르고, 백문루에서 여포는 목숨을 잃다. (0) | 2020.03.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