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三回:禰正平裸衣罵賊,吉太醫下毒遭刑
제23회 미정평(예형)이 옷을 벗고 적을 꾸짖고, 길태의가 독을 쓰고 형벌을 만나다.
卻說曹操欲斬劉岱、王忠。孔融諫曰:「二人本非劉備敵手,若斬之,恐失將士之心。」操乃免其死,黜罷爵祿,欲自起兵伐玄德。孔融曰:「方今隆冬盛寒,未可動兵;待來春未為晚也。可先使人招安張繡、劉表,然後再圖徐州。」操然其言,先遣劉曄往說張繡。曄至襄城,先見賈詡,陳說曹公盛德。詡乃留曄於家中。
각설하고 조조가 유대, 왕충을 베고자 하였다. 공융이 간하여 말하기를 “세 사람은 본래 유비(유현덕)의 적수가 아닌데 만약 목을 벤다면 장사의 마음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했다. 조조가 이에 그 죽음을 면해주고 작과 녹을 없애버리고, 직접 군대를 일으켜 유현덕을 치려하였다. 공융이 말하기를 “지금은 한 겨울이어서 매우 추우니 군대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오는 봄을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 먼저 사람을 시켜 장수, 유표를 불러 편안하게 한 후에 다시 서주를 도모해야 합니다.” 했다. 조조가 그 말이 그렇다 여기고, 먼저 유엽을 보내 장수에게 가서 설득하게 했다. 유엽이 양성에 이르러 먼저 가후를 만나 조조의 성대한 덕을 말하였다. 가후가 이에 유엽을 집 안에 머물도록 했다.
次日來見張繡,說曹公遣劉曄招安之事。正議間,忽報袁紹有使至。繡命入。使者呈上書信。繡覽之,亦是招安之意。詡問來使曰:「近日興兵破曹操,勝負如何?」使曰:「隆冬寒月,權且罷兵。今以將軍與荊州劉表俱有國士之風,故來相請耳。」詡大笑曰:「汝可回見本初,道:『汝兄弟尚不能容,何能容天下國士乎!」』
다음 날 (가후가)장수를 만나 조조가 유엽을 보내 항복하는 일을 설명하였다. 의논하는 사이에 갑자기 원소의 사신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장수가 들어갔다. 사자가 서신을 올렸다. 장수가 그것을 보니 또한 항복하라는 뜻이었다. 가후가 사신에 물어 말하기를 “최근에 군대를 일으켜 조조를 깨트린 이기고 진 것이 어떠합니까?”하니 사자가 말하기를 “한겨울 추운 달로 임시로 군대를 거두었습니다. 지금 장군과 형주 유표는 모두 국사의 풍이 있기 때문에 와서 청할 뿐입니다.” 했다. 가후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너는 돌아가 본초(원소)를 만나 말하라. ‘너의 형제도 오히려 용납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 국사를 용납할 수 있겠오!’” 했다.
當面扯碎書,叱退來使。張繡曰:「方今袁強曹弱;今毀書叱使,袁紹若至,當如之何?」詡曰:「不如去從曹操。」繡曰:「吾先與操有讎,安得相容?」詡曰:「從操其便有三:夫曹公奉天子明詔,征伐天下,其宜從一也;紹強盛,我以少從之,必不以我為重,操雖弱,得我必喜,其宜從二也;曹公王霸之志,必釋私怨,以明德於四海,其宜從三也。願將軍無疑焉。」
마주하여 글을 찢어버리고 질책하여 사신을 물러가게 하였다. 장수가 말하기를 “바야흐로 지금 원소는 강하고 조조는 약한데 지금 글을 훼손하고 사자를 질책하니 원소가 만약 이른다면 어떻게 하려하는가?” 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조조를 따르는 것이 낫습니다.”하니 장수가 말하기를 “내가 앞서 조조와 원한이 있는데 어찌 서로 용납할 수 있겠는가?” 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조조를 따르는 것의 편함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대저 조조는 천자의 밝은 조칙을 받들어 천하를 정벌하고 있으니 그 마땅히 따라야 할 첫 째입니다. 원소는 강성하고, 우리는 약함으로서 그를 따르니 반드시 우리를 중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조조가 비록 약하나 우리를 얻으면 기뻐할 것이 틀림없으니 그 마땅히 따라야 할 둘째입니다. 조조는 왕도와 패도의 뜻이 있으니 반드시 사사로운 원한을 푸는 것으로서 사해에 밝은 덕을 펼 것이니 그 마땅히 따라야 할 세 번째입니다. 장군께서는 의심하지 말 것을 청합니다.” 했다.
繡從其言,請劉曄相見。曄盛稱操德,且曰:「丞相若記舊怨,安肯使某來結好將軍乎?」繡大喜,即同賈詡等赴許都投降。繡見操,拜於階下。操忙扶起,執其手曰:「有小過失,勿記於心。」遂封繡為揚武將軍,封賈詡為執金吾使。操即命繡作書招安劉表。賈詡進曰:「劉景升好結納名流,今必得一有文名之士往說之,方可降耳。」操問荀攸曰:「誰人可去?」攸曰:「孔文舉可當其任。」
장수가 그 말을 따라 유엽과 만나기를 청하였다. 유엽이 조조의 덕을 크게 칭송하고 또 말하기를 “승상이 만약 옛 원한을 기억하고 있다면 어찌 나로 하여금 와서 장군과 우호를 맺게 하였겠습니까?”하니 장수가 크게 기뻐하며 곧 가후 등과 함께 허도에 나아가 항복하였다. 장수가 조조를 보고 계단 아래에서 절하였다. 조조가 급하게 일어나 그 손을 잡고 말하기를 “조그마한 허물과 잘못이 있지만 마음에 기억하지 않습니다.”하고는 마침내 장수를 봉하여 양무장군으로 삼고, 가후를 봉하여 집금오사로 삼았다. 조조가 곧 장수에게 글을 지어 유표를 귀순시키도록 명하였다. 가후가 나아가 말하기를 “유경승(유표)은 명사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니 지금 반드시 이름있는 선비를 얻어 가서 유세해야 비로소 항복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조가 순유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갈 수 있겠는가?”하니 순유가 “공문거(공융)가 그 책임을 감당할 만합니다.” 했다.
操然之。攸出見孔融曰:「丞相欲得一有文名之士,以備行人之選。公可當此任否?」融曰:「吾友禰衡,字正平,其才十倍於我。此人宜在帝左右,不但可備行人而已。我當薦之天子。」於是遂上表奏帝。其文曰:
조조가 그렇다 여겼다. 순유가 나와 공융을 만나 말하기를 “승상께서 학문으로 이름있는 선비를 얻어 사신의 선발을 갖추시려 합니다. 공이 이 임무를 맡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니 공융이 말하기를 “내 벗 예형은 자가 정평인데 그 재능이 나보다 열 배입니다. 이 사람은 마땅히 천자 좌우에 있어야 하고, 단지 사신의 자격을 갖추었을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마땅히 천자에게 그를 천거할 것입니다.” 했다. 이에 마침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아뢰었다. 그 글에 말하기를
臣聞洪水橫流,帝思俾刈;旁求四方,以招賢俊。昔世宗繼統,將弘基業;疇咨熙載,群士響臻。陛下叡聖,纂承基緒,遭遇厄運,勞謙日昃;維嶽降神,異人並出。竊見處士平原禰衡:年二十四,字正平,淑質貞亮,英才卓犖;初涉藝文,升堂睹奧。目所一見,輒誦之口;耳所暫聞,不忘於心。性與道合,思若有神。弘羊潛計,安世默識,以衡準之,誠不足怪。忠果正直,志懷霜雪;見善若驚,嫉惡若讎。任座抗行,史魚厲節,殆無以過也。鷙鳥累百,不如一鶚。使衡立朝,必有可觀,飛辯聘詞,溢氣坌涌;解疑釋結,臨敵有餘。
신는 홍수가 멋대로 흘러 들판을 덮치자 요임금은 홍수를 다스릴 것을 생각하시고 널리 사방에서 인재를 구하여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불렀습니다. 옛날 세종(한 무제)이 정통성을 이어 기업을 받들어 넓히시려 하여 여러 사람에게 맡기시려 물으시니 여러 선비들이 메아리처럼 이르렀다. 들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덕이 크고 사리에 밝으셔서 나라를 이어 받아 액운을 만났으나 수고롭고 겸손하게 하시기를 해가 기울도록 하시니 산악의 신이 내려오고 기이한 사람이 아울러 나왔습니다. 가만히 처사 평원 예형을 보면 나이는 이십사세로 자는 정평인데 자질이 빼어나고 성품이 바르고 성실하며 뛰어난 재능이 남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처음에는 학술과 문예를 섭렵하였고, 학문을 이루고 나서는 오묘한 경지를 보였습니다. 눈으로 한 번 본 것은 문득 입으로 그것을 외웠고, 귀로 잠간 들은 것은 마음에 잊지 않았습니다. 성품은 도와 부합하고, 생각은 신이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상홍양의 암산능력과 장안세의 기억력으로서 저울질(비교)하여도 진실로 괴이하지 않습니다. 충성스럽고 과단성이 있으며 정직하고, 뜻은 서리와 눈 같은 순수함을 품었고, 선한 것을 보면 놀란 듯이 본받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은 원수와 같이 하였습니다. 임좌의 드러나지 않은 덕행과 사어의 높은 절개도 거의 나은 것이 없습니다. 새매 수백 마리는 한 마리 물수리보다 못합니다. 예형으로 하여금 조정에 서게 한다면 반드시 볼만함이 있을 수 있고, 나는 듯한 변설과 부르는 말은 기운이 넘치고 티끌이 치솟는 듯하고, 의심나는 것을 풀고 맺힌 것을 해석하는 것은 적을 대하고도 여유가 있습니다.
昔賈誼求試屬國,詭係單于;終軍欲以長纓,牽制勁越;弱冠慷慨,前世美之;近日路粹,嚴象亦用異才擢拜臺郎:衡宜與為比。如龍躍天衢,振翼雲漢,揚聲紫微,垂光虹蜺,足以昭近署之多士,增四門之穆穆。鈞天廣樂,必奇麗之觀;帝室王居,必蓄非常之寶。若衡等輩,不可多得。激楚、陽阿,至妙之容,掌伎者之所貪;飛兔、騕裏,絕足奔放,良、樂之所急也。臣等區區,敢不以聞?陞下篤慎取士,必須效試。乞令衡以褐衣召見。如無可觀釆,臣等受面欺之罪。」
예전에 속국의 관리가 되기를 청하여 선우를 꾸짖어 끌었고, 종군은 갓끈을 길게 하고 굳센 월을 견제한 것은 약관의 나이에 불의에 대하여 의기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퍼한 일은 전 세대가 아름답게 여겼습니다. 요즘 노수와 엄상이 또한 기이한 재능을 뽑아 쓰려 대랑의 벼슬을 주었는데 예형이 또한 비견될 수 있습니다. 만일 용이 천구에 뛰어오른다면 날개를 은하에 펄럭이고 소리를 북두성에 울리고 빛나는 무지개를 드리워 충분히 조정의 많은 선비를 밝히며 사방의 제후들은 신중하고 공경함을 더하였습니다. 천제가 있는 하늘의 음악처럼 반드시 기이하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황실과 황궁에는 반드시 평범하지 않은 보배가 쌓였습니다. 예형과 같은 무리들은 많이 얻을 수 없습니다. 격초, 양아의 지극히 절묘한 모양은 기예를 관장한 자가 탐하는 바이고, 비토와 요리는 다리가 부러져도 힘차게 달렸으니 왕량과 백락이 급하게 할 구해야 할 것입니다. 신들이 구구하게 감히 아뢰지 못하지만 폐하께서는 선비를 취하시는 것을 돈독히 하고 신중하게 하셔서 반드시 시험하셔야 할 것입니다. 바라건데 예형에게 벼슬을 주지 않더라도 불러보실 것을 청합니다. 만약 보고 채택할 것이 없다면 신들은 면전에서 속인 죄를 받겠습니다.
帝覽表,以付曹操。操遂使人召衡至。禮畢,操不命坐。禰衡仰天歎曰:「天地雖闊,何無一人也!」操曰:「吾手下有數十人,皆當世英雄,何謂無人?」衡曰:「願聞。」操曰:「荀彧,荀攸,郭嘉,程昱,機深智遠,雖蕭何,陳平不及也。張遼[陳怡妏3],許褚,樂進,李典,勇不可當,雖岑彭,馬武不及也。呂虔,滿寵,為從事;于禁,徐晃,為先鋒。夏侯惇,天下奇才;曹子孝,世間福將。安得無人?」衡笑曰:「公言差矣。此等人物,吾盡識之:荀彧可使弔喪問疾,荀攸可使看墳守墓,程昱可使關門閉戶,郭嘉可使白詞念賦,張遼可使擊鼓鳴金,許褚可使牧牛放馬,樂進可使取狀讀詔,李典可使傳書送檄,呂虔可使磨刀鑄劍,滿寵可使飲酒食糟,于禁可使負版築牆,徐晃可使屠豬殺狗。夏侯惇稱為『完體將軍』,曹子孝呼為『要錢太守』。其餘皆是衣架!飯囊!酒桶!肉袋耳!」操怒曰:「汝有何能?」衡曰:「天文地理,無一不通;三教九流,無一不曉;上可以致君為堯、舜,下可以配德於孔、顏。豈與俗子共論乎!」
천자가 표를 보고 조조에게 주었다. 조조가 마침내 사람을 시켜 예형을 불러오게 하였다. 에를 마치고 조조가 앉으라 명하지 않았다. 예형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천지가 비록 넓다하는데 한 사람이 없는가!”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 수하로 수십명이 있고, 모두 이 시대의 영웅인데 어지 사람이 없다하는가?”했다. 예형이 말하기를 “듣기를 원합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순욱, 순유, 곽가, 정욱은 기지가 깊고 원대하나 소하, 진평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장요, 허저, 악진, 이전은 용맹을 당할 자 없으나 잠팽, 마무에는 미치지 못한다. 여건, 만총이 일에 종사하고 우금, 서황은 선봉이 된다. 하후돈은 천하의 기재이다. 조자효는 세상에서 복많은 장군이라 한다. 어찌 사람이 없다 할 수 있겠는가?” 했다. 예형이 웃으며 말하기를 “공의 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 인물들은 내가 모두 그들을 압니다. 순욱은 상에 조문하고 병을 위문하게 할 수 있고, 순유는 무덤을 돌보고 묘를 지키게 할 수 있고, 정욱은 문을 지키게 할 만하고, 곽가는 사와 부를 읆조리게 할 만하고, 장요는 북을 치고 징을 치게 할 만하고, 허저는 소를 기르고 말을 방목하게 할 만하고, 악진은 장계를 받고 조서를 읽게 할 만하고, 이전은 글을 전하고 격문을 보내게 할 만하고, 여건은 칼을 갈고 검을 주조하게 할 만하고, 만총은 술을 마시고 술지거미를 먹게 할 만하고, 우금은 판을 지고 담장을 쌓게 할 만하고, 서황은 돼지를 잡고 개를 죽이게 할 만합니다. 하후돈은 ‘완체장군(제몸만 위하는 장군)’이라 할수 있고, 조자효는 ‘요전태수(돈만 중하게 여겨 토색질하는 태수)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옷걸이! 밥통! 술통! 고기 푸대일 뿐이다!” 했다. 조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어떤 재능이 있는가?”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천문과 지리를 하나라도 통하지 못함이 없고 삼교 구류를 하나라도 깨닫지 못함이 없습니다. 위로는 임금을 요와 순임금에 이르게 할 수 있고, 아래로는 덕이 공자와 안회에 이를 만합니다. 어찌 세속의 그대들과 같이 논할 수 있으리오!” 했다.
時止有張遼在側,掣劍欲斬之。操曰:「吾正少一鼓吏;早晚朝賀宴享,可令禰衡充此職。」衡不推辭,應聲而去。遼曰:「此人出言不遜,何不殺之?」操曰:「此人素有虛名,遠近所聞。今日殺之,天下必謂我不能容物,彼自以為能,故令為鼓吏以辱之。」
그 때 다만 장요가 옆에 있었는데 검을 들고 그를 베고자 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우리가 바로 북치는 고리가 한 사람 부족하였는데 조만간에 열릴 조하연향에서 예형으로 하여금 이 직에 충당하게 할만하다.” 했다. 예형이 거절하지 않고 대답한 후 갔다. 장요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말만하면 겸손하지 않은데 어찌하여 죽이지 않습니까?”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평소 헛된 이름이 있는 것을 멀고 가까이서 들은 바가 있다. 오늘 그를 죽인다면 천하가 반드시 내가 남을 용납하지 못한다 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재능이 있다 여긴다. 그러므로 북치는 고리로 삼음으로써 그를 욕보인 것이다.” 했다.
來日,操於省廳上大宴賓客,今鼓使撾鼓。舊吏云:「撾鼓必換新衣。」衡穿舊衣而入,遂擊鼓為「漁陽三撾」,音節殊妙,淵淵有金石聲。坐客聽之,莫不慷慨流涕。左右喝曰:「何不更衣!」衡當面脫下舊破衣服,裸體而立,渾身盡露。坐客皆掩面。衡乃徐徐著褲,顏色不變。
다음날 조조가 대청에 올라 큰 연회와 손님을 살피고 이제 고리가 북을 치게 하였다. 옛 북치는 고리가 말하기를 “북을 칠 때는 반드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했다. 예형이 찢어진 옛 옷을 입고 들어가 마침내 북을 쳐 ‘어양삼과’를 연주하니 음절이 매우 현묘하고 조용하고 깊은 것이 금속의 소리가 있었다. 앉아 있던 손님들이 그것을 듣고 강개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좌우가 소리쳐 말하기를 “어찌하여 옷을 갈아입지 않았는가!” 하니 예형이 면전에서 옛 찢어진 옷을 벗어버리고 나체로 서서 몸 전체를 드러내었다. 앉아 있던 손님들이 모두 얼굴을 가렸다. 예형이 이에 천천히 바지를 입으면서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다.
操叱曰:「廟堂之上,何太無禮?」衡曰:「欺君罔上乃謂無禮。吾露父母之形,以顯清白之體耳!」操曰:「汝為清白,誰為汙濁?」衡曰:「汝不識賢愚,是眼濁也;不讀詩書,是口濁也;不納忠言,是耳濁也;不通古今,是身濁也;不容諸侯,是腹濁也;常懷篡逆,是心濁也!吾乃天下名士,用為鼓吏,是猶陽貨輕仲尼、臧倉毀孟子耳!欲成霸王之業,而如此輕人耶?」
조조가 질책하며 말하기를 “묘당의 위에서 어찌 크게 무례한가?”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곧 무례라 말합니다. 내가 부모가 준 형상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맑고 깨끗한 몸을 드러냈을 뿐이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네가 청백이라 한다면 누가 오탁함이 되는가?”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네가 어질고 어리석음을 알지 이는 눈이 흐린 것이고, 『시경』과 『서경』을 읽지 않았으니 이는 입이 흐린 것이다. 충성스러운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는 귀가 흐린 것이고, 고금에 통달하지 않았으니 이는 몸이 흐린 것이고, 제후를 용납하지 않으니 이는 배가 흐린 것이다. 항상 찬역의 뜻을 품고 있으니 이는 마음이 흐린 것이오! 내가 곧 천하의 이름있는 선비로 등용되어 고리가 되었으니 이는 양화가 공자를 가벼이 여기고, 장창이 맹자를 비방한 것과 같은 것일 뿐이오! 패왕의 업을 이루고자 하면서 이 같이 사람을 가벼이 합니까?” 했다.
時孔融在坐,恐操殺衡,乃從容進曰:「禰衡罪同胥靡,不足發明王之夢。」操指衡而言曰:「令汝往荊州為使。如劉表來降,便用汝作公卿。」衡不肯往。操備馬三匹,令二人扶挾而行;卻教手下文武,整酒於東門外送之。荀彧曰:「如禰衡來,不可起身。」衡至。下馬入見,眾皆端坐。衡放聲大哭。荀彧問曰:「何為而哭?」衡曰:「行於死柩之中,如何不哭?」眾皆曰:「吾等是死屍,汝乃無頭狂鬼耳!」衡曰:「吾乃漢朝之臣,不作曹瞞之黨,安得無頭?」眾欲殺之。苟彧急止之曰:「量鼠雀之輩,何足汙刀!」衡曰:「吾乃鼠雀,尚有人性;汝等只可謂之蜾蟲!」眾恨而散。
이 때 공융이 자리에 있다가 조조가 예형을 죽일까 두려워하여 이에 조용히 나아가 말하기를 “예형의 죄는 서미형과 같은 것으로 등용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했다. 조조가 예형을 가리켜 말하기를 “너를 형주에 가는 사신으로 명령한다. 만약 유표가 와서 항복하면 곧 너를 공경으로 등용할 것이다.” 했다. 예형이 흔쾌히 가려하지 않았다. 조조가 말 세 필을 준비하고, 두 사람으로 하여금 도와 가게하고, 부하와 문무관으로 하여금 동문 밖에 술을 두고 환송하게 하였다. 순욱이 말하기를 “만약 예형이 온다면 몸을 일으키지 말라.” 했다. 에형이 이르렀다. 말을 내려 들어가 뵈니 무리들이 모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예형이 크게 소리 내어 곡하였다. 순욱이 물어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곡하는가?”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죽어 관의 안에 갔는데 어떻게 곡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무리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들이 죽은 시체라면 너는 곧 머리 없는 미친 귀신일 뿐이구나!”했다. 예형이 말하기를 “나는 곧 한나라 조정의 신하이고, 조만과 무리짓지 않았는데 어찌 머리가 없다합니까?” 하니 무리들이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순욱이 급히 저지하여 말하기를 “쥐와 참새의 무리들인데 어찌 칼을 더럽힐 수 있으리오!”했다. 예형이 말하기를 “내가 쥐와 참새인데도 오히려 인성을 소유하고 있는데 나희들은 단지 나나니 벌이라 이를 수 있다!” 하니 무리들이 한탄하며 흩어졌다.
衡至荊州,見劉表畢,雖頌德,實譏諷。表不喜,令去江夏見黃祖。或問表曰:「禰衡戲謔主公,何不殺之?」表曰:「禰衡數辱曹操,操不殺者,恐失人望;故令作使於我,欲借我手殺之,使我受害賢之名也。吾今遣去見黃祖,使曹操知我有識。」眾皆稱善。
예형이 형주에 이르러 유표를 뵙는 예를 마쳤는데 비록 덕을 칭송하였으나 실제는 풍자하였다. 유표가 기뻐하지 않고 강하로 가 황조를 만나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유표에게 물어 말하기를 “예형이 주공을 희롱하였는데 어찌하여 그를 죽이지 않습니까?”하였다. 유표가 말하기를 “예형이 여러 번 조조를 욕보였는데도 조조가 죽이지 않은 것은 인망을 잃을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사신을 가게하여 내 손을 빌려 그를 죽여서 나로 하여금 어진 이를 해쳤다는 이름을 받게 하고자 해서이다. 내가 지금 황조에게 보내 만나게 한 것은 조조로 하여금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서였다.”하니 무리들이 모두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時袁紹亦遣使至。表問眾謀士曰:「袁本初又遣使來,曹孟德又差禰衡在此,當從何便?」從事中郎將韓嵩進曰:「今兩雄相持,將軍若欲有為,乘此破敵可也。如其不然,將擇其善者而從之。今曹操善能用兵,賢俊多歸,其勢必先取袁紹,然後移兵向江東,恐將軍不能禦;莫若舉荊州以附操,操必重待將軍矣。」表曰:「汝且去許都,觀其動靜,再作商議。」嵩曰:「君臣各有定分。嵩今事將軍,雖赴湯蹈火,一唯所命。將軍若能上順天子,下從曹公,使嵩可也;如持疑未定,嵩到京師,天子賜嵩一官,則嵩為天子之臣,不得復為將軍死矣。」表曰:「汝且先往觀之。吾別有主意。」
이 때 원소가 보낸 사신이 이르렀다. 유표가 여러 모사에게 물어 말하기를 “원본초(원소)가 보낸 사신이 왔고, 조맹덕(조조)이 보낸 예형이 여기에 있으니 어느 편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가?”하니 종사중랑장 한숭이 나아와 말하기를 “지금 두 영웅이 서로 대치하고 있으니 장군께서 만약 하려는 것이 있다면 이를 타고 적을 깨트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장군께서는 그 좋은 자를 선택하여 따라야 합니다. 지금 조조는 군대 운용을 잘하고 어질고 뛰어난 이들이 많이 돌아가니 그 형세가 반드시 먼저 원소를 취할 것입니다. 그런 후 군대를 옮겨 강동을 향하면 장군께서 잘 막아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형주를 들어서 조조에게 붙는 것 만한 것이 없으며 조조는 반드시 장군을 중하게 대우할 것입니다.”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네가 또한 허도에 가서 그 동정을 보고 다시 상의하자.” 했다. 한숭이 말하기를 “군신은 각각 정해진 직분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장군을 섬기고 있으니 비록 끓는 물과 불을 밟음에 나아갈지라도 명한 바를 한결같이 할 것입니다. 장군께서 만약 위로 천자에게 순종하고 아래로 조조를 따를 수 있다면 제가 사신 갈 수 있습니다. 만약 의심하여 결정하지 못한 채 제가 경사(서울)에 이르고, 천자가 저에게 한 가지 벼슬을 내린다면 곧 저는 천자의 신하가 되어 다시 장군을 위해 죽을 수 없을 것입니다.”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네가 먼저 가서 관찰하라. 나는 따로 주장할 생각이 있다.” 했다.
嵩辭表,到許都見操。操遂拜嵩為侍中,領零陵太守。荀彧曰:「韓嵩來觀動靜,未有微功,重加此職。禰衡又無音耗,丞相遣而不問,何也?」操曰:「禰衡辱吾太甚,故借劉表手殺之,何必再問?」遂遣韓嵩回荊州說劉表。嵩回見表,稱頌朝廷盛德,勸表遣子入侍。表大怒曰:「汝懷二心耶!」欲斬之。嵩大叫曰:「將軍負嵩,嵩不負將軍!」蒯良曰:「嵩未去之前,先有此言矣。」劉表遂赦之。
한숭이 유표를 하직하고 허도에 이르러 조조를 만났다. 조조가 마침내 한숭에게 벼슬을 주어 시중으로 삼고 영릉태수를 겸하게 했다. 순욱이 말하기를 “한숭이 온 것은 동정을 보려는 것으로 작은 공도 없는데 중한 이 직책을 더하였습니다. 예형이 또한 소식이 없는데 승상께서 보내고도 묻지 않는 것은 왜입니까?”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예형은 나를 욕보인 것이 매우 심하였기 때문에 유표의 손을 빌려 그를 죽이려는 것이었는데 어찌 다시 묻는가?” 하고는 마침내 한숭을 보내 형주로 돌아가 유표를 설득하게 했다. 한숭이 돌아가 유표를 만나 조정의 성대한 덕을 칭송하고 유표에게 아들을 보내 시위로 들일 것을 권하였다. 유표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두 마음을 품었구나!”하고는 목을 베려하였다. 한숭이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장군께서 저를 저버리신 것이지 제가 장군을 저버린 것이 아니오!” 했다. 괴량이 말하기를 “한숭이 떠나지 않았을 때 먼저 이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하니 유표가 마침내 그를 용서하였다.
人報黃祖斬了禰衡,表問其故。對曰:「黃祖與禰衡共飲,皆醉。祖問衡曰:『君在許都有何人物?』衡曰:『大兒孔文舉,小兒楊德祖:除此二人,別無人物。』祖曰:『似我何如?』衡曰:『汝似廟中之神,雖受祭祀,恨無靈驗!』祖大怒曰:『汝以我為土木偶人耶!』遂斬之。衡至死罵不絕口。」劉表聞衡死,亦嗟呀不已,令葬於鸚鵡洲邊。後人有詩歎曰:
사람들이 황조가 예형을 베어 죽였다고 보고하니 유표가 그 이유를 물었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황조와 예형이 같이 술을 마셔 모두 취하였습니다. 황조가 예형에게 묻기를 ‘그대가 허도에 있을 때 어떤 인물이 있었는가?’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큰 아이는 공문거(공융) 작은 아이는 양덕조이다. 이 두 사람을 제하면 따로 인물이 없다’ 했다. 황조가 말하기를 ‘나 같은 사람은 어떠한가?’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너는 사당 안의 신과 같아서 비록 제사를 받을지라도 영험이 없는 것이 한스럽다.’하니 황조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를 흙과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로 여기는가!’하고는 마침내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예형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했다. 유표가 예형이 죽었다는 것을 듣고 또한 탄식하기를 그치지 못하고 앵무 모래톱 가에 장례하게 했다. 뒷사람들이 시를 지어 탄식한 것이 있다. 시는
黃祖才非長者儔,禰衡喪首此江頭。今來鸚鵡洲邊過,惟有無情碧水流。
황조의 재능은 어른의 짝이 아니고/예형은 머리를 이 강 머리에서 잃었다./ 오늘 와서 앵무 모래톱을 지나는데/무정한 푸른 물만 흘러간다.
卻說曹操知禰衡受害,笑曰:「腐儒舌劍,反自殺矣!」因不見劉表來降,便欲興兵問罪。荀彧諫曰:「袁紹未平,劉備未滅,而欲用兵江漢,是猶舍心腹而顧手足也。可先滅袁紹,後滅劉備,江漢可一掃而平矣。」操從之。
각설하고 조조는 예형이 해침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웃으며 말하기를 “썩은 유자의 혓바닥 검은 도리어 자기를 죽였구나!” 했다. 유표가 와서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 군대를 일으켜 죄를 묻고자 하였다. 순욱이 간하여 말하기를 “원소를 아직 평정하지 못하고, 유비(유현덕)를 없애지 못하였는데 강한에 군대를 쓰고자 하는 것은 이는 심장과 배를 버리고 손과 발을 돌아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먼저 원소를 없앤 후 유비(유현덕)을 없애면 강한은 한 번의 빗질로 평정할 수 있습니다.” 했다. 조조가 그것을 따랐다.
且說董承自劉玄德去後,日夜與王子服等商議,無計可施。建安五年,元旦朝賀,見曹操驕橫愈甚,感憤成疾。帝知國舅染病,令隨朝太醫前去醫治。此醫乃洛陽人:姓吉,名太,字稱平,人皆呼為吉平,當時名醫也。平到董承府用藥調治,旦夕不離;常見董承長吁短歎,不敢動問。
각설하고 동승은 유현덕이 스스로 떠난 후 밤낮으로 왕자복 등과 상의하였으나 시행할만 한 계책이 없었다. 건안 오년 정월 초하루 천자에게 하례를 드리러 갔다가 조조가 교만하고 멋대로 함이 더욱 심한 것을 보고 분함을 느껴 병이 들었다. 천자는 국구가 병들었음을 알고는 태의로 하여금 앞으로 가서 치료하게 하였다. 이 태의는 낙양 사람으로 성은 길이고, 이름은 태이며 자는 칭평이니 사람들이 모두 길평이라 불렀는데 당시의 이름있는 의원이었다. 길평이 동승부에 이르러 약을 써 치료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떠나지 않았다. 항상 동승이 길게 한숨쉬고 짧게 탄식하는 것을 보고도 감히 묻지 못하였다.
時值元宵,吉平辭去,承留住,二人共飲。飲至更餘,承覺困倦,就和衣而睡。忽報王子服等四人至,承出接入。服曰:「大事諧矣!」承曰:「願聞其說。」服曰:「劉表結連袁紹,起兵五十萬,共分十路殺來。馬騰結連韓遂,起西涼軍七十二萬,從北殺來。曹操盡起許昌兵馬,分頭迎敵,城中空虛。若聚五家僮僕,可得千餘人。乘今夜府中大宴,慶賞元宵,將府圍住,突入殺之。不可失此機會!」
때는 마침 정월 대보름이었다. 길평이 하직하고 떠나려는데 동승이 머물게 하고 둘이 같이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지 한두 시간이 흘렀을 때 동승이 피곤함을 깨닫고는 옷을 입은 채 잠이 들었다. 갑자기 왕자복 등 네 사람이 이르자 동승이 나가 영접하여 맞아 들였다. 왕자복이 말하기를 “큰 일이 조화롭다!”하니 동승이 말하기를 “그 말을 듣고자 합니다.” 했다. 왕자복이 말하기를 “유표는 원소와 결연하여 군대 오십만을 일으켜 함께 열 개의 길로 나누어 쇄도해 옵니다. 마등은 한수와 결연하여 서량 군 칠십이만을 일으켜 북쪽으로부터 쇄도해 옵니다. 조조가 허창의 병마를 모두 일으켜 길목을 나누어 적을 맞이하니 성안이 비었습니다. 만약 다섯 집의 종들을 모으면 천여 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승상부 안에서 크게 잔치를 여는 틈을 타서, 승상부를 포위하고, 치고 들어가 그를 죽여야 합니다. 이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했다.
承大喜,隨即喚家奴各人收拾兵器,自己披挂綽鎗上馬,約會都在內門前相會,同時進兵。夜至二鼓,眾兵皆到。董承手提寶劍,徒步直入,見操設宴後堂,大叫:「操賊休走!」一劍剁去,隨手而倒。霎時覺來,乃南柯一夢,口中猶罵操賊不止。吉平向前叫曰:「汝欲害曹公乎?」承驚懼不能答。吉平曰:「國舅休慌。某雖醫人,未嘗忘漢。某連日見國舅嗟歎,不敢動問。恰纔夢中之言,已見真情。幸勿相瞞。倘有用某之處,雖滅九族,亦無後悔。」承掩面而哭曰:「只恐汝非真心!」
동승이 크게 기뻐하며 따라서 종들을 불러 각기 병기를 수습하게하고, 자기는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말에 올라 모두 궁궐에 있는 문 앞에서 서로 만나기로 약속하고 같은 때에 군대를 나아가게 하기로 하였다. 밤 초경에 이르러 여러 군대들이 모두 이르렀다. 동승이 손에 보검을 잡고 걸어서 바로 들어가 조조가 후당에서 잔치를 열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조조 도적은 달아나지 말라!”하고는 일검으로 베어가니 손을 따라 엎어졌다. 가랑비가 내릴 때 깨 보니 바로 남가일몽으로 입으로는 오히려 조조 도적을 욕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길평이 앞을 향하여 소리쳐 말하기를 “너는 조조를 해치려 하는가?”하였으나 동승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답할 수 없었다. 길평이 말하기를 “국구는 당황하지 마십시오. 제가 비록 의원이지만 일찍이 한나라를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연일 국구가 한숨 쉬고 탄식하는 것을 보고도 감히 묻지를 못하였습니다. 마침 잠간의 꿈속의 말에서 이미 진정한 실정을 보았습니다. 속임이 없으면 다행이겠습니다. 혹시 제가 쓰일 곳이 있다면 비록 구족이 멸해지더라도 또한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했다. 동승이 얼굴을 가리고 곡하여 말하기를 “다만 당신의 진심이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했다.
平遂咬下一指為誓。承乃取出衣帶詔,令平視之;且曰:「今之謀望不成者,乃劉玄德、馬騰各自去了,無計可施,因此感而成疾。」平曰:「不消諸公用心。操賊性命,只在某手中。」承問其故。平曰:「操常患頭風,痛入骨髓;纔一舉發,便召某醫治。如早晚有召,只用一服毒藥,必然死矣,何必舉刀兵乎?」承曰:「若得如此,救漢朝社稷者,皆賴君也!」
길평이 마침내 손가락 하나를 깨물어 맹서하였다. 동승이 이에 의대의 조서를 꺼내어 길평으로 하여금 보게 하고는 또한 말하기를 “지금 제가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한 것은 곧 유현덕, 마등이 각각 스스로 갔기 때문에 계책을 시행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병이 생겼습니다.” 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여러 공들께서는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조조 도적의 목숨은 다만 제 손 안에 있을 뿐입니다.” 했다. 동승이 그 이유를 물었다. 길평이 말하기를 “조조는 항상 두통이 있는데 고통이 골수에 들어가 한번 발작하면 곧 나를 불러 치료하게 합니다. 만약 조만간에 부름이 있을 때 다만 한번 독약을 복용시키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어찌 반드시 칼과 군대를 들겠습니까?” 했다. 동승이 말하기를 “만약 이 같을 수 있다면 한나라의 조정과 사직을 구하는 것은 모두 그대에게 의지할 것이오!” 했다.
時吉平辭歸。承心中暗喜,步入後堂,忽見家奴秦慶童同侍妾雲英在暗處私語。承大怒,喚左右捉下,欲殺之。夫人勸免其死,各人仗四十,將慶童鎖어冷房。慶童懷恨,夤夜將鐵鎖扭斷,跳墻而出,逕入曹操府中,告有機密事。操喚入密室問之。慶童云:「王子服,吳子蘭,种輯,吳碩,馬騰五人在家主府中商議機密,必然是謀丞相。家主將出白絹一段,不知寫著甚的。近日吉平咬指為誓,我也曾見。」
이 때 길평이 하직하고 돌아갔다. 동승이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걸어서 후당으로 들어가다 갑자기 종 진경동이 시첩 운영과 어두운 곳에서 사사로운 말을 나누는 것을 보았다. 동승이 크게 노하여 좌우를 불러 잡아와 죽이려 하였다. 부인이 그 죽음을 면할 것을 권하여 각기 장 사십씩을 치고는 진경동을 냉방에 매어 두었다. 진경동이 한을 품고 한 밤중에 쇠사슬을 비틀어 끊고 담장을 뛰어 나와 지름길로 조조의 부중에 들어가 비말의 일이 있음을 고하였다. 조조가 불러 밀실에 들어가 물었다. 진경동이 말하기를 “왕자복, 오자란, 종집, 오석, 마등 다섯 사람이 가주의 부중에 있으면서 기밀을 상의하였는데 승상을 도모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가주가 흰 비단 한 단을 내어다 알지 못하는 것을 베껴 썼습니다. 최근에는 길평이 손가락을 깨물어 맹세하는 것을 제가 일찍이 보았습니다.” 했다.
曹操藏匿慶童於府中,董承只道逃往他方向去了,也不追尋。次日,曹操詐患頭風,召吉平用藥。平自思曰:「此賊合休!」暗藏毒藥入府。操臥於床上,令平下藥。平曰:「此病可一服即愈。」教取藥罐,當面煎之。藥已半乾,平已暗下毒藥,親自送上。操知有毒,故意遲延不服。平曰:「乘熱服之,少汗即愈。」操起曰:「汝既讀儒書,必知禮義。『君有疾飲藥,臣先嘗之;父有疾飲藥,子先嘗之。』汝為我心腹之人,何不先嘗而後進?」平曰:「藥以治病,何用人嘗?」
조조가 진경동을 부중에 숨겨두었는데 동승은 다만 다른 방향으로 도망하였다고 여겨서 따라 찾지 않았다. 다음 날 조조가 두통이 있다 속이고 길평을 불러 약을 썼다. 길평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도적이 쉴 때가 되었구나!”하고는 독약을 감추어 부에 들어갔다. 조조가 침상 위에 누워 길평으로 하여금 약을 쓰게 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이 병에는 한 번 복용하면 곧 나을 것입니다.”하고는 약탕기를 가져오게 하여 직접 면전에서 끓였다. 약이 반쯤 졸았을 때 길평이 몰래 독약을 넣어 직접 올려 보냈다. 조조가 독이 들어 있음을 알고 고의 지연하여 복용하지 않았다. 길평이 말하기를 “뜨거울 때 복용하고 조금 땀을 흘리면 곧 나을 것입니다.” 했다. 조조가 일어나며 말하기를 “네가 이미 유가의 글을 읽었으니 반드시 예의 뜻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임금이 병이 있어 약을 마실 때, 신하가 먼저 그것을 맛보고, 아버지에게 병이 있어 약을 마시면 자식이 먼저 그것을 맛본다.’ 하니 너는 나의 심복이 되어 어찌 먼저 맛본 후에 올리지 않는가?” 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약으로 병을 다스리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맛봄을 쓰겠습니까?” 했다.
平知事已泄,縱步向前,扯住操耳而灌之。操推藥潑地,磚皆迸裂。操未及言,左右已將吉平執下。操曰:「吾豈有疾,特試汝耳!汝果有害我之心!」遂喚二十個精壯獄卒,執平至後園拷問。操坐於亭上,將吉平縛倒於地。吉平面不改容,略無懼怯。操笑曰:「量汝是個醫人,安敢下毒害我?必有人唆使你來。你說出那人,我便饒你。」平叱之曰:「汝乃欺君罔上之賊,天下皆欲殺汝,豈獨我乎!」操再三磨問。平怒曰:「我自欲殺汝,安有人使我來?今事不成,惟死而已!」
길평이 일이 이미 누설되었음을 알고 큰 걸음으로 앞을 향해 나가 조조의 귀를 끌어 당겨 약을 부으려 했다. 조조가 약을 밀어 땅에 부어버리니 벽돌이 모두 솟아나오고 갈라졌다. 조조가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좌우가 이미 길평을 잡았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병이 있겠는가? 다만 너를 시험하였을 뿐이라! 너는 과연 나를 해치려는 마음이 있었구나!” 했다. 마침내 이십 개의 건장한 옥졸들을 불러 길평을 잡아 후원에 이르러 고문하였다. 조조가 정자 위에 앉아 길평을 묶어 땅에 엎드리게 했다. 길평이 얼굴을 고치지 않았고, 두려워하거나 겁도내지 않았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헤아려보면 너는 일개 의원일 뿐인데 어찌 감히 독을 뿌려 나를 해치려하였는가? 반드시 어떤 사람이 너로 하여금 오게 부추겼을 것이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한다면 내가 곧 너를 너그럽게 할 것이다.” 했다. 길평이 그를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곧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도적으로 천하가 모두 너를 죽이고자 하는데 어찌 유독 나뿐이리오!” 했다. 조조가 두 번 세 번을 물었다. 길평이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너를 죽이고자 하였는데 어찌 어떤 사람이 나로 하여금 오게 하였겠는가? 지금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오직 죽을 뿐이다!” 했다.
操怒,教獄卒痛打。打到兩個時辰,皮開肉裂,血流滿階。操恐打死,無可對證,今獄卒揪去靜處,權且將息。傳令次日設宴,請眾大臣飲酒。惟董承託病不來。王子服等皆恐操生疑,只得俱至。操於後堂設席。酒行數巡,曰:「筵中無可為樂,我有一人,可為眾官醒酒。」教二十個獄卒:「與吾牽來!」
조조가 노하여 옥졸로 하여금 몹시 때리게 하였다. 때리기를 두 개 시진(네 시간)을 하니 피부가 갈라지고 속살이 찢어져 피가 흘러 계단에 가득하였다. 조조는 길평이 맞아 죽으면 대질하여 증명할 수 없음을 두려워하여 옥졸로 하여금 조용한 곳에 끌고 가 잠시 쉬게 하였다. 다음 날 연회를 연다는 명령을 내리고 여러 대신들에게 술 마실 것을 청하였다. 오직 동승만은 평을 핑계로 오지 않았다. 왕자복 등이 모두 조조의 의심을 살 것을 두려워하여 모두 이르렀다. 조조가 후당에 자리를 마련하였다. 술이 몇 차례 돈 후 말하기를 “연회 중에 음악이 없을 수 없고, 나에게 한 사람이 있는데 여러 관리들의 술을 깨게 할 수 있다.” 하고는 이십 명의 옥졸을 시켜 “나에게 끌고 오라!” 했다.
須臾,只見一長枷釘著吉平,拖至階下。操曰:「眾官不知:此人連結惡黨,欲反背朝廷,謀害曹某;今日天敗,請聽口詞。」操教先打一頓,昏絕於地,以水噴面。吉平甦醒,睜目切齒而罵曰:「操賊!不殺我,更待何時?」操曰:「同謀者先有六人,與汝共七人耶?」平只是大罵。王子服等四人面面相覷,如坐鍼氈。操教一面打,一面噴。平並無求饒之意。操見不招,且教牽去。
잠시 후 큰 칼을 찬 길평을이 글려 계단 아래에 이르렀다. 조조가 말하기를 “여러 관리들은 알지 못할 것이오. 이 사람은 악당과 연결하여 조정을 배반하고 나를 모해하고자 하려는 것을 오늘 하늘이 무너뜨렸으니 말을 듣기를 청합니다.” 했다. 조조가 먼저 일회 때리게 하였는데 땅에 혼절하자 물을 얼굴에 뿜게 하였다. 길평이 깨어나자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꾸짖어 말하기를 “조조 도적아 나를 죽이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는가?”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같이 꾀한 자로 먼저 여섯 명이 있었고, 너와 함께 일곱 명인가?”하니 길평이 다만 크게 욕할 뿐이었다. 왕자복 등 네 명은 얼굴만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조조가 한편으로는 치게 하고 한편으로는 얼굴에 물을 뿜게 하였다. 길평은 아울러 관대함을 구하는 뜻이 없었다. 조조가 부르지 않음을 보고는 끌고 가게 하였다.
眾官席散,操只留王子服等四人夜宴。四人魂不附體,只得留待。操曰:「本不相留,爭奈有事相問。汝四人不知與董承商議何事?」子服曰:「並未商議甚事。」操曰:「白絹中寫著何事?」子服等皆隱諱,操喚出慶童對証。子服曰:「汝於何處見來?」慶童曰:「你迴避了眾人,六人在一處畫字,如何賴得?」子服曰:「此賊與國舅侍妾通姦,被責誣主,不可聽也。」操曰:「吉平下毒,非董承所使而誰?」子服等皆言不知。操曰:「今晚自首,尚猶可恕;若待事發,其實難容!」
여러 관리들이 떠나는데 조조가 다만 왕자복 등 네 명을 머물게하여 밤에 잔치를 열었다. 네 사람은 혼이 몸에 붙어 있지 않아 다만 머물러 기다릴 뿐이었다. 조조가 말하기를 “본래 머물게 할 생각은 아니었으나 일을 물어 볼 것이 있으니 어찌하랴. 너희 네 명이 동승과 상의한 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는가?” 하니 왕자복이 말하기를 “어떤 일도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조조가 말하기를 “흰 비단에 베껴 쓴 것은 무슨 일인가?” 했다. 왕자복 등이 모두 숨기고 꺼리니 조조가 진경동을 불러 내 대질하여 증명하였다. 왕자복이 말하기를 “너는 어디서 보고 왔는가?”하니 진경동이 말하기를 “네가 여러 사람을 회피하며 여섯 사람이 한 자리에 있으면서 서명하였는데 어찌하여 믿을 수 없다 하는가?”하니 왕자복이 말하기를 “이 도적은 국구의 시첩과 간통하다 꾸짖음을 듣고 주인을 속였으니 들을 수 없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길평이 독을 쓴 것은 동승이 시킨 것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했다. 왕자복 등이 모두 할 말을 알지 못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지금 늦었지만 자수하면 오히려 용서할 수 있지만 만약 일이 발각됨을 기다리면 그 실제는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했다.
子服等皆言並無此事。操叱左右將四人拏住監禁。次日,帶領眾人逕投董承家探病。承只得出迎。操曰:「緣何夜來不赴宴?」承曰:「微疾未痊,不敢輕出。」操曰:「此是憂國家病耳。」承愕然。操曰:「國舅知吉平事乎?」承曰:「不知。」操冷笑曰:「國舅如何不知?」喚左右:「牽來與國舅起病。」承舉措無地。
왕자복 등이 모두 나란히 이런 일이 없었다고 말하였다. 조조가 좌우를 질책하여 네 사람을 잡아 감금하라 했다. 다음 날 여러 사람을 데리고 빠른 길로 동승의 집에 문병을 핑계로 나아갔다. 동승이 나와 맞이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어째서 밤에 잔치에 오지 않았습니까?”하니 동승이 말하기를 “작은 병이 낫지 않아 감히 가벼이 나갈 수 없었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는 국가를 근심하는 병일뿐입니다.” 하니 동승이 깜짝 놀랐다. 조조가 말하기를 “국구는 길평의 일을 아는가?”하니 동승이 말하기를 “알지 못합니다.” 했다. 조조가 냉소하며 말하기를 “국구는 어찌하여 알지 못합니까?”하고는 좌우를 불러 “끌고 가 국구가 병에서 일어나게 하라.” 했다. 동승이 조치할 여지가 없었다.
須臾,二十獄卒推吉平至階下。吉平大罵:「曹操逆賊!」操指謂承曰:「此人曾攀下王子服等四人,吾已拏下廷尉。尚有一人,未曾捉獲。」因問平曰:「誰使汝來藥我?可速招出!」平曰:「天使我來殺逆賊!」操怒教打。身上無容刑之處。承在座觀之,心如刀割。操又問平曰:「你原有十指,今如何只有九指?」
잠시 후 이십명의 옥졸이 길평을 밀어 계단 아래 이르렀다. 길평이 크게 욕하기를 “조조 역적아!”하니 조조가 동승을 가리키며 일러 말하기를 “이 사람은 일찍이 왕자복 등 네 명과 연루되어 내가 이미 정위에 잡아 가두었다. 아직 한람이 있는데 잡지 못하였다.”하고는 인하여 길평에게 물어 말하기를 “누가 너로 하여금 나에게 약을 주라 시켰는가? 속히 불러내야 할 것이다!” 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하늘이 나로 하여금 역적을 죽이라 시켰다.”하니 조조가 노하여 때리게 하였다. 몸 위에 형벌을 할 곳이 없었다. 동승이 자리에 있으면서 그를 보니 심장을 칼로 가르는 것과 같았다. 조조가 또 길평에게 물어 말하기를 “너는 원래 열 개의 손가락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다만 아홉 개 손가락만 있는가?” 했다.
平曰:「嚼以為誓,誓殺國賊!」操教取刀來,就階下截去其九指,曰:「一發截了,教你為誓!」平曰:「尚有口可以吞賊,有舌可以罵賊!」操令割其舌。平曰:「且勿動手。吾今刑不過,只得供招。可釋吾縛。」操曰:「釋之何礙?」遂命解其縛。平起身望闕拜曰:「臣不能為國家除賊?乃天數也!」拜畢,撞階而死。操令分其肢體號令。時建安五年正月也。史官有詩曰:
길평이 말하기를 “씹어서 맹세하였기 때문인데 국적을 죽일 것을 맹세하였오!” 했다. 조조가 칼을 가져오게 하여 계단 아래로 내려가 그 손가락을 자르고 말하기를 “한번으로 잘랐으니 너는 맹세하여 보라!”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아직 입이 있으니 도적을 삼킬 수 있고, 혀가 있으니 적 도적을 욕할 수 있구나!” 했다. 조조가 그 혀를 자르게 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또 손을 움직이지 말라. 내가 지금 형벌을 감당하지 못하니 자백하겠다. 내 결박을 풀라.”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것을 푸는 것이 무슨 막힘이 있겠는가?”하고는 마침내 그 결박을 풀게 하였다. 길평이 몸을 일으켜 대궐을 바라보며 절하고 말하기를 “신이 국가를 위해 도적을 없애지 못한 것은 곧 하늘의 운수입니다.” 했다. 절을 마치고는 계단에 부딪혀 죽었다. 조조가 그 지체를 나누라 명령하였다. 이 때는 건안 오년 정월이다. 사관이 남긴 시에 말하기를
漢朝無起色,醫國有稱平。立誓除姦黨,捐軀報聖明。極刑詞愈烈,慘死氣如生。十指淋漓處,千秋仰異名。
한 나라는 일어나는 모습이 없고, 병든 나라 고치기는 길평이 있다./간사한 무리를 없애려는 맹서 세우고, 몸을 버려 천자에게 보답하였다. 모진 형벌 받으며 말은 더욱 가열차고, 처참하게 죽었지만 기운은 살아 잇는 듯하다/열 손가락 피가 떨어지는 곳에 천년의 기이한 이름을 우러른다.
操見吉平已死,教左右牽過秦慶童至面前。操曰:「國舅認得此人否?」承大怒曰:「逃奴在此!即當誅之!」操曰:「他首告謀反,今來對證,誰敢誅之?」承曰:「丞相何故聽逃奴一面之說?」操曰:「王子服等吾已擒下,皆招證明白,汝尚抵賴乎?」即喚左右拏下,命從人直入董承臥房內,搜出衣帶詔并義狀。操看了,笑曰:「鼠輩安敢如此!」遂命:「將董承全家良賤,盡皆監禁,休教走脫一個。」操回府以詔狀示眾謀士商議,要廢獻帝,更立新君。正是:數行丹詔成虛望,一紙盟書惹禍殃。未知獻帝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조조는 길평이 이미 죽은 것을 보고 좌우로 하여금 끌고 진경동을 지나 면전에 이르게 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국구는 이 사람을 아는가?”하니 동승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도망한 종이 여기에 있구나! 마땅히 죽여야 하리라!”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 놈은 모반을 고발하였는데 지금 와 대질하여 증명해야 하는데 누가 감히 죽이겠는가?” 했다. 동승이 말하기를 “승상은 무슨 이유로 도망한 종의 한쪽 말만 들으십니까?”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왕자복 등은 내가 이미 잡아가두었고 모두 자백하여 명백해졌는데 너는 아직도 잡아떼는가?” 했다. 곧 좌우를 불러 잡게 하고, 따르는 사람에게 명하여 곧바로 동승이 누운 방 안으로 들어가 의대의 조서와 의장을 찾아내게 하였다. 조조가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쥐새끼들이 어찌 감히 이 같이 하는가!”하고는 마침내 명하기를 “동승의 모든 집안의 양인과 천인을 잡아 모두 감금하여 한 사람도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했다. 조조가 부에 돌아가 조서를 보이고 모사들과 헌제를 폐하고 새로운 임금을 바꾸어 세울 것을 상의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몇 행의 붉은 조서는 헛된 바람이 되고, 한 장 종이에 쓴 맹약의 글은 재앙을 숨겼다. 헌제의 생명이 어떠할지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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