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七回:征南寇丞相大興師,抗天兵蠻王初受執
제87회 승상(제갈공명)이 크게 군대를 일으켜 남쪽 도적을 정벌하고, 천병(천자의 군대)에 대항하는 남쪽 오랑캐 왕(맹획)을 처음 잡다.
卻說諸葛丞相在於成都,事無大小,皆親自從公決斷。兩川之民,忻樂太平,夜不閉戶,路不拾遺。又幸連年大熟,老幼鼓腹謳歌,凡遇差役,爭先早辦:因此軍需器械應用之餉,無不完備;米滿倉廒,財盈府庫。
각설하고 제갈 승상(제갈공명)은 성도에 있으면서 일은 크고 작음이 없이 모두 직접 공정을 따라 결단하였다. 양천(동천과 서천)의 백성들이 태평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밤에 문을 닫지 않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았다. 또 다행히 매년 풍년이 들어 늙은이부터 어린애까지 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고 무릇 부역에 뽑히면 먼저 하기를 다투어 아침부터 힘을 쓰니 이 때문에 군수와 기계, 쓸 것의 세금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어 쌀은 창고에 가득하고 재물을 부고(창고)에 가득하였다.
建興三年,益州飛報:「蠻王孟獲,大起蠻兵十萬,犯境侵掠。建寧太守雍闓,乃漢朝什邡侯雍齒之後,今結連孟獲造反。牂牁郡太守朱褒、越雋郡太守高定,二人獻了城。止有永昌郡太守王伉不肯反。現今雍闓、朱褒、高定三人部下人馬,皆與孟獲為鄉導官,攻打永昌郡。賴王伉與功曹呂凱,會集百姓,死守此城,其勢甚急。」孔明乃入朝奏後主曰:「臣觀南蠻不服,實國家之大患也。臣當自領大軍,前去征討。」
건흥 삼년 익주에서 보고하기를 “만왕(남쪽 오랑캐 왕)맹획이 크게 오랑캐 군대 십만을 일으켜 경계를 범하여 약탈합니다. 건녕태수 옹개는 곧 한나라 십방후 옹치의 후예인데 지금 맹획과 연결하여 배반하였습니다. 장가군 태수 주포, 월전군 태수 고정 두 사람은 성을 바쳤다. 다만 영창군 태수 왕항은 기꺼이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옹개, 주포, 고정 세 사람의 부하 인마는 모두 맹획의 향도관(길잡이)이 되어 영창군을 치고 있습니다. 왕항과 공조 여개는 백성을 모아 이 성을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고 있으나 그 형세가 매우 급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이에 조정에 들어 가 후주(유선)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남쪽 오랑캐가 복종하지 않는 것을 보니 실로 국가의 큰 근심입니다. 신이 마땅히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정벌해야겠습니다.”했다.
後主曰:「東有孫權,北有曹丕;今相父棄朕而去,倘吳、魏來攻,如之奈何?」孔明曰:「東吳方與我國講和,料無異心;若有異心,李嚴在白帝城,此人可當陸遜也。曹丕新敗,銳氣已喪,未能遠圖;且有馬超守把漢中諸處關口,不必憂也。臣又留關興、張苞等分兩軍為救應,保陛下萬無一失。今臣先去掃蕩蠻方,然後北伐,以圖中原,報先帝三顧之恩,託孤之重。」後主曰:「朕年幼無知,惟相父斟酌行之。」言未畢,班部內一人出曰:「不可!不可!」眾視之,乃南陽人也:姓王,名連,字文儀;見為諫議大夫。連諫曰:「南方不毛之地,瘴疫之鄉;丞相秉鈞衡之重任,而自遠征,非所宜也。且雍闓等乃疥癬之疾,丞相只須遣一大將討之,必然成功。」孔明曰:「南蠻之地,離國甚遠,人多不習王化,收伏甚難,吾當親往征之。可剛可柔,別有斟酌,非可容易託人。」
후주(유선)가 말하기를 “동쪽에는 손권이 있고, 북쪽에는 조비가 있는데, 지금 상부(제갈공명)께서 짐을 버리고 갔다가 만약 오나라와 위나라가 와서 공격하면 어떻게 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동오는 막 우리나라와 강화하였으니 다른 마음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마음이 있다면 이엄이 백제성에 있으니 이 사람은 육손을 당할 수 있습니다. 조비는 새롭게 패하여 예기가 이미 상하였으니 멀리 도모할 수 없습니다. 또 마초가 한중의 여러 곳에 있는 요충지를 지키고 있으니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또한 관흥과 장포 등을 남기고 군대를 나누어 구원하고 대응하게 하였으니 폐하를 지킴이 만에 하나의 잘못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신이 우선 가서 남쪽 오랑캐를 소탕한 후에 북벌을 하는 것으로서 중원을 도모하여 선제께서 세 번 돌아보신 은혜를 갚고, 고(후주)를 부탁하신 중임을 다하겠습니다.”했다. 후주가 말하기를 “짐은 나이가 어리고 아는 것이 없으니 오직 상부께서 짐작하여(헤아려)행하십시오.”했다.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반부(열)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안 됩니다!”했다. 무리들이 그를 보니 바로 남양 사람으로 성은 왕이고, 이름은 염이며, 자는 문의로 현재 간의대부였다. 왕련이 간해 말하기를 “남쪽은 불모의 땅으로 열병의 온상입니다. 승상께서는 균형(인재를 평가, 국가)의 중임을 맡고 있으니 직접 멀리 정벌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또 옹개 등이 곧 개선의 병(옴, 피부병)에 걸렸으니 승상께서는 모름지기 한 대장을 보내 토벌하여도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남 쪽 오랑캐의 땅은 나라와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들이 천자의 교화를 익히지 않았으니 거두어 복종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내가 직접 가서 정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강하게 하고 부드럽게 하여 따로 짐작(헤아린 것)한 것이 있으니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했다.
王連再三苦勸,孔明不從。是日,孔明辭了後主,令蔣琬為參軍;費褘為長史;董厥、樊建二人為掾史;趙雲、魏延為大將,總督軍馬;王平、張翼為副將;并川將數十員:共起川兵五十萬,前望益州進發。忽有關公第三子關索,入軍來見孔明曰:「自荊州失陷,逃難在鮑家莊養病。每要赴川見先帝報讎,瘡痕未合,不能起行。近已安痊,打探得東吳讎人已皆誅戮,逕來西川見帝,恰在途中遇見征南之兵,特來投見。孔明聞之,嗟訝不已;面遣人申報朝廷,就令關索為前部先鋒,一同征南。大隊人馬,各依隊伍而行。飢餐渴飲,夜住曉行:所經之處,秋亳無犯。
왕련이 두 번, 세 번 굳게 권하였으나 제갈공명은 따르지 않았다. 이 날 제갈공명은 후주를 하직하고, 장완은 참군, 비위는 장사, 동궐, 번건 두 사람은 연사로 삼고, 조운(조자룡), 위연을 대장으로 삼아 군마를 총 감독하게 하고, 왕평과 장익을 부장으로 삼았다. 아울러 천(서천, 동천)의 장수 수십 명과 함께 천(동천, 서천)의 군대 오십만을 일으켜 앞으로 익주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홀연히 관공(관운장)의 셋째 아들 관색이 군대 안으로 들어 와 제갈공명을 뵙고 말하기를 “형주를 잃은 후 도망하여 포가장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늘 천(동천, 서천)에 나아가 선제를 뵙고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나 상처가 낫지 않아 갈 수 없었습니다. 근래에 이미 (병이)편안해지고 나은 후 알아보니 동오의 원수들을 이미 모두 죽인 것을 알고, 지름길로 서천에 와 황제를 뵈려 하는 도중에 우연히 남쪽을 정벌하는 군대를 만났으므로 특히 들어와 뵙는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듣고 감탄하기를 그치지 않는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 조정에 보고하고, 관색을 앞의 부대 선봉으로 삼아 함께 남쪽을 정벌하게 하였다. 큰 부대의 인마는 각각 대오를 이루어 갔다. 주리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밤에는 멈추고 날이 새면 가는데 지나는 곳마다 추호도 범하는 것이 없었다.
卻說雍闓聽知孔明自統大軍而來,即與高定、朱褒商議,分兵三路:高定取中路,雍闓在左,朱褒在右;三路各引兵五六萬迎敵。於是高定令鄂煥為前部先鋒。煥身長九尺,面貌醜惡,使一枝方天戟,有萬夫不當之勇;領本部兵,離了大寨,來迎蜀兵。卻說孔明統大軍已到益州界分。前部先鋒魏延,副將張翼、王平,纔入界口,正遇鄂煥軍馬。兩陣對圓,魏延出馬大罵曰:「反賊早早受降!」鄂煥拍馬與魏延交鋒。戰不數合,延詐敗走,煥隨後趕來。走不數里,喊聲大震。張翼、王平兩路軍殺來,絕其後路。延復回。
각설하고 옹개는 제갈공명이 스스로 대군을 통솔하고 온다는 것을 듣고 곧 고정, 주포와 상의하여 군대를 세 길로 나누어 고정은 중간 길을 취하고(중간 길로 가고), 옹개는 왼쪽에 있고, 주포는 왼쪽에 있었다. 세 길이 각각 군대 오륙만을 이끌고 적을 맞이하였다. 이에 고정은 악환으로 하여금 앞 부대의 선봉으로 삼았다. 악환의 키는 구척(아홉 자)이고, 얼굴모습은 추악하며, 한 가지 방천극을 잘 사용하여 만명의 사람들이 당해내지 못하는 용맹이 있었다. 본부의 군대를 거느리고 대 영채를 떠나 와서 촉의 군대를 맞이하였다.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대군을 이끌고 이미 익주의 경계에 이르고 있었다. 앞 부대의 선봉 위연과 부장 장익, 왕평이 겨우 경계에 들어가다 바로 악환의 군마를 만났다. 두 진영이 둥글게 마주하자 위연이 말을 타고 나와 크게 꾸짖으며 말하기를 “배반한 도적아 빨리 항복하라!”하니 악환이 말에 박차을 가하며 위연과 서로 싸웠다.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위연이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자 악환이 위를 따라 쫓아 왔다. 달아난 지 몇 리 되지 않아 함성이 크게 진동하였다. 당익과 왕평 두 길의 군대가 쇄도해 그 뒤의 길을 끊었다. 위연이 다시 돌아 왔다.
三員將併力拒戰,生擒鄂煥,解到大寨,入見孔明。孔明令去其縛,以酒食待之。問曰:「汝是何人部將?」煥曰:「某是高定部將。」孔明曰:「吾知高定乃忠義之士,今為雍闓所惑,以致如此。吾今放汝回去,令高太守早早歸降,免遭大禍。」鄂煥拜謝而去,回見高定,說孔明之德。定亦感激不已。次曰,雍闓至寨。禮畢,闓曰:「如何得鄂煥回也?」定曰:「諸葛亮以義放之。」闓曰:「此乃諸葛亮反間計;欲令我兩人不和,故施此謀也。」定半信半疑,心中猶豫。忽報蜀將搦戰,闓自引三萬兵出迎。戰不數合,闓撥馬便走。魏延率兵,追殺二十餘里。次日,雍闓又起兵來迎。孔明一連三日不出。至第四日,雍闓、高定分兵兩路,來取蜀寨。
세 명의 장수가 힘을 합쳐 막아 싸워 악환을 사로잡아 대채(큰 영채)에 압송하여 들어가 제갈공명을 만났다. 제갈공명은 그 묶은 것을 제거하게 하고 술과 음식을 내어 대접하였다. (제갈공명이)물어 말하기를 “너는 어떤 사람의 부장인가?”하니 악환이 말하기를 “저는 고정의 부장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는 고정이 충의의 선비라 알고 있는데 지금 옹개에게 어지럽힘을 당하여 이 같은 에 이르렀다. 내가 지금 너를 놓아 돌아가게 할 것이니 고태수로 하여금 빨리 항복하게 하여 큰 재앙을 면하도록 하라.”했다. 악환이 저라며 감사하고 가서 고정을 만나 제갈공명의 덕을 말하였다. 고정이 또한 감격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옹개가 영채에 이르렀다. 예를 마치고 옹개가 말하기를 “어떻게 악환이 돌아올 수 있었는가?”하니 고정이 말하기를 “제갈량(제갈공명)이 의리로 놓아 주었습니다.”했다. 옹개가 말하기를 “이는 곧 제갈량(제갈공명)의 반간계이다. 우리 두 사람이 불화하게 하려고 이 꾀를 쓴 것이다.”했다. 고정이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여 마음속으로 머뭇거렸다. 홀연히 족의 장수가 도전하니 옹개가 삼만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 맞이하였다. 싸운지 몇 합 되지 않아 옹개가 몸을 빼 달아났다.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이십여리를 쫓아갔다. 다음 날 옹개가 또한 군대를 일으켜 와서 맞이하였다. 제갈공명은 계속해서 삼일을 이어 나오지 않았다. 사일 째에 이르러 옹개와 고정이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촉의 영채(주둔지)를 취하러 왔다.
卻說孔明令魏延兩路伺候;果然雍闓、高定兩路兵來,被伏兵殺傷大半,生擒者無數,都解到大寨來。雍闓的人,囚在一邊;高定的人,囚在一邊。卻令軍士稱說:「但是高定的人免死,雍闓的人盡殺。」眾軍皆聞此言。少時,孔明令取雍闓的人到帳前,問曰:「汝等皆是何人部從?」眾偽曰:「高定部下人也。」孔明教皆免其死,與酒食賞勞,令人送出界首,縱放回寨。孔明又喚高定的人問之。眾皆告曰:「吾等實是高定部下軍士。」孔明亦皆免其死,賜以酒食;卻揚言曰:「雍闓今日使人投降,要獻汝主並朱褒首級以為功勞,吾甚不忍。汝等既是高定部下軍,吾放汝等回去,再不可背反。若再擒來,決不輕恕。」
각설하고 제갈공명은 위연으로 하여금 두 길로 엿보게 하였더니 과연 옹개, 고정의 군대가 두 길로 오다가 복병에 걸려 죽고 다친 이가 태반이었고, 사로잡은 자는 헤아릴 수 없었는데 모두 대채에 압송하여 왔다. 옹개의 사람(부하)들이 한 쪽 가에 수감되어 있었고, 고정의 사람(부하)들이 한 쪽 가에 수감되어 있었다. 군사로 하여금 말하게 하기를 “다만 이 고정이 사람들만 죽음을 면하고, 옹개의 사람(부하)은 모두 죽인다.”하게 했다. 여러 군사들이 모두 이 말을 들었다. 조금 지나 제갈공명은 옹개의 사람(부하)를 데려오게 하여 군막 앞에 이르자 물어 말하기를 “너희들은 모두 누구의 부하인가?”하니 무리들이 거짓으로 말하기를 “고정의 부하들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모두 그 죽음을 면하게 하고, 술과 음식을 주고 상을 주어 위로한 후 사람을 시켜 경계 밖으로 나가 놓아주고 영채로 돌아오게 하였다. 제갈공명이 또 고정의 사람을 불러 물었다. 무리들이 모두 고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이 진실로 고정의 부하 군사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또한 모두 그 죽음을 면해주고 술과 음식을 내리며 큰 소리로 말하기를 “옹개가 오늘 사람을 시켜 항복하러 들어 올 것인데, 너의 주인(고정)과 주포의 수급을 바쳐 공로로 삼기를 요청하였으나 내가 차마 하지 못하겠다. 너희들은 고정의 부하군사로 내가 너희들을 돌려보낼 것이니 다시 배반해서는 안 된다. 만약 두시 사로잡혀 온다면 결단코 가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했다.
眾皆拜謝而去;回到本寨,入見高定,說知此事。定乃密遣人去雍闓寨中探聽,卻有一半放回的人,言說孔明之德;因此雍闓部軍,多有歸順高定之心。雖然如此,高定心中不穩,又令一人來孔明寨中探聽虛實;被伏路軍捉來見孔明。孔明故意認做雍闓的人,喚入帳中問曰:「汝元帥既約下獻高定、朱褒二人首級,因何誤了日期?汝這廝不精細,如何做得細作!」軍士含糊答應。孔明以酒食賜之,修密書一封,付軍士曰:「汝持此書付雍闓,教他早早下手,休得誤事。」
무리들이 모두 절하며 감사하고 갔다. 돌아가 본채에 이르러 들어가 고정을 만나 이 일을 말하여 알렸다. 고정이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옹개의 진영에 가서 탐지하게 하였더니 한 떼의 놓아주어 돌아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제갈공명의 덕을 말하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옹개의 부하 군사들이 많이 고정에게 귀순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비록 이 같으나 고정은 마음속으로 대립하지 못하고, 또 한 사람을 시켜 제갈공명의 영채 안에 가서 허실을 탐지하게 하였는데 길에 매복하고 있던 군사들에게 잡혀 가 제갈공명을 만났다. 제갈공명은 고의로 옹개의 사람(부하)이라 여기는 척하며 군막 안으로 불러들여 물어 말하기를 “너희 원수가 이미 고정과 주포 두 사람의 수급을 바치기로 약속하였는데 어떤 이유로 기일을 어기는가? 너희들이 이렇게 정밀하고 자세하지 않으니 어떻게 세작의 일을 할 수 있겠는가?”했다. 군사들이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제갈공명은 술과 음식을 내리고 밀서 한 통을 써서 군사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너는 이 글을 가지고 옹개에게 주고 그로 하여금 빨리 손을 쓰게 하여 일이 잘못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했다.
細作拜謝而去,回見高定,呈上孔明之書,說雍闓如此如此。定看書畢,大怒曰:「吾以真心待之,彼反欲害吾,情理難容!」便喚鄂煥商議。煥曰:「孔明乃仁人,背之不祥。我等謀反作惡,皆雍闓之故;不如殺闓以投孔明。」定曰:「如何下手?」煥曰:「可設一席,令人去請雍闓。彼若無異心,必坦然而來;若其不來,必有異心。我主可攻其前,某伏於寨後小路候之,闓可擒矣。」高定從其言,設席請雍闓。闓果疑前日放回軍士之言,懼而不來。是夜高定引兵殺投雍闓中。原來有孔明放回免死的人,皆想高定之德,乘時助戰。雍闓軍不戰自亂,闓上馬望山路而走。行不二里,鼓聲響處,一彪軍出,乃鄂煥也;挺方天戟驟馬當先。
세작이 절하며 감사하고 가서 돌아 가 고정을 만나 제갈공명의 글을 올리며 옹개가 이러저러 했다고 말하였다. 고정이 글을 보기를 마치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진심으로 그를 대하였는데 그가 도리어 나를 해치려하니 도리 상 받아들이기 어렵다.”하고는 곧 악환을 불러 상의하였다. 악환이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곧 인인(어진 사람)이니 그를 등지는 것은 상서롭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모반하여 악을 행한 것은 모두 옹개 때문입니다. 옹개를 죽여 제갈공명에게 들어가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고정이 말하기를 “어떻게 손을 써야 하는가?”하니 악환이 말하기를 “한 자리를 만들고 사름을 시켜 가서 옹개를 청하게 해야 합니다. 그가 만약 다른 마음이 없다면 반드시 거리낄 것 없이 올 것이고, 만약 그가 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다른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인(고정)이 그 앞을 치시면 제가 영채 뒤 작은 길에 숨어 기다리고 있으면 옹개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고정이 그 말을 따라 자리를 마련하고 옹개를 청하였다. 옹개는 앞서 놓아주어 돌아 온 군사의 말을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오지 않았다. 이날 밤 고정이 군대를 이끌고 옹개의 진영안에 들어 가 (옹개를)죽였다. 알고 보니 제갈공명이 놓아 돌려보내 죽음을 면한 사람들이 모두 고정의 덕이라 생각하여 때를 따고 싸움을 도왔기 때문이었다. 옹개의 군대가 싸우지도 못한 채 스스로 어지러워지자 옹개가 말에 올라 산 길을 향해 달아났다. 이리를 가지 못하여 북소리가 울리는 곳에서 한 떼의 군대가 나오니 곧 악환으로 방천극을 내밀고 말을 달려 앞장섰다.
雍闓措手不及,被煥一戟刺於馬下,就梟其首級。闓部下軍士皆降高定。定引兩部軍來降孔明,獻雍闓首於帳下。孔明高坐於帳上,喝令左右推轉高定,斬首報來。定曰:「某感丞相大恩,今將雍闓首級來降,何故斬也?」孔明大笑曰:「汝來詐降,敢瞞吾耶!」定曰:「丞相何以知吾詐降?」孔明於匣中取出一緘,與高定曰:「朱褒已使人密獻降書,說你與雍闓結生死之交,豈肯一日便殺此人?吾故知汝詐也。」定叫屈曰:「朱褒乃反間之計也,丞相切不可信!」孔明曰:「吾亦難憑一面之詞。汝若捉得朱褒,方表真心。」定曰;「丞相休疑。某去擒朱褒來見丞相,若何?」孔明曰:「若如此,吾疑心方息也。」
옹개는 미쳐 손을 쓰지 못하고 악환의 한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지니 (악환이) 그 머리를 베어 매 달았다. 옹개의 부하 군사들이 모두 고정에게 항복하였다. 고정이 두 부대의 군사를 이끌고 제갈공명에게 가 항복하였다. 제갈공명이 군막에 높이 앉아 좌우에 큰 소리로 명을 내려 고정을 끌어내어 머리를 베어 오라고 했다. 고정이 말하기를 “제가 승상의 큰 은혜를 느끼고, 지금 옹개의 수습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는데 무슨 이유로 머리를 벱니까?”하니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네가 거짓으로 항복하러 오고서 감히 나를 속이려 하는가?”했다. 고정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어떻게 내가 거짓 항복한 것을 알았습니까?”하니 제갈공명이 상자 안에서 한 문서함을 꺼내 고정엑 주며 말하기를 “주포가 이미 사람을 시켜 항복하는 글을 바쳤는데 너와 옹개는 삶과 죽음을 같이 하는 사귐을 맺었다고 말하였으니 어찌 기꺼이 하루 만에 이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내가 너의 거짓임을 알았다.”했다. 고정이 억울함을 호소하여 말하기를 “주포의 반간계입니다. 승상께서는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한편의 말에만 의지하는 것은 어렵다. 네가 만약 주포를 잡는다면 비로소 진심이 나타날 것이다.”했다. 고정이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서 주포를 사로잡아 승상을 뵈려하는데 어떻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만약 이 같다면 나의 의심이 비로소 그칠 것이다.”했다.
高定即部將鄂煥并本部兵,殺奔朱褒營來。比及離寨約有十里,山後一彪軍到,乃朱褒也。褒見高定軍來,慌忙與高定答話。定大罵曰:「汝如何寫與諸葛丞相處,使反間之計害吾耶?」褒目瞪口呆,不能回答。忽然鄂煥於馬後轉過,刺朱褒於馬下。定厲聲而言曰:「如不順者皆戮之!」於是眾軍一齊拜降。定引兩部軍來見孔明,獻朱褒首級於帳下。孔明大笑曰:「吾故使汝殺此二賊,以表忠心。」遂命高定為益州太守,總攝三郡;令鄂煥為牙將。三路軍馬已平。
고정이 곧 부장 악환과 본부의 군대를 데리고 주포의 진영으로 쐐도해 갔다. (주포의)영채에서 약 이십리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산 뒤에서 한 떼의 군사가 이르니 곧 주포였다. 주포가 고정의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황망히 고정과 말을 주고받았다. 고정이 크게 욕하여 말하기를 “너는 무슨 이유로 글을 써서 제갈승상(제갈공명)에게 주어 반간계를 써서 나를 해치게 하였는가?”했다. 주포는 눈을 부릅뜨고 입이 붙어 대답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악환이 말 뒤로 돌아가 주포를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고정이 노한 소리로 말하기를 “만약 순종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이라!”했다. 이에 여러 군사들이 일제히 절하며 항복하였다. 고정이 두 부대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제갈공명을 뵙고 주포의 수급을 군막아래에 바쳤다.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일부러 너로 하여금 이 두 도적을 죽이게 하여 충심을 표시하게 한 것이다.”했다. 마침내 고종을 익주 태수로 삼아 삼군을 총괄 하게 하고, 악환을 아장으로 삼았다. 삼로의 군마가 평정되었다.
於是永昌太守王伉出城迎孔明。孔明入城已畢,問曰:「誰與公守此城,以保無虞?」伉曰:「某今日得此郡無危者,皆賴永昌不韋人:姓呂,名凱,字季平:皆此人之力。」孔明遂請呂凱至。凱入見,禮畢。孔明曰:「久聞公乃永昌高士,多虧公保守此城。今欲平蠻方,公有何高見?」呂凱遂取一圖,呈與孔明曰:「某自歷仕以來,知南人欲反久矣;故密遣人入其境,察看可屯兵交戰之處,書成一圖,名曰『平蠻指掌圖』。今敢獻與明公。明公試觀之,可為征蠻之一助也。」孔明大喜,就用呂凱為行軍教授,兼鄉導官。於是孔明提兵大進,深入南蠻之境。
이에 영창태수 왕항이 성을 나와 제갈공명을 맞았다. 제갈공명이 성을 들어가 물어 말하기를 “누가 공(왕항태수)과 함께 이 성을 지켜서 확실히 근심이 없게 하였습니까?”하니 왕항이 말하기를 “내가 오늘 이 군에 위태로움이 없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영창 불위 사람에게 기대었으니 성은 여이고, 이름은 개이며, 자는 계평으로 모두 이 사람의 힘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마침내 여개를 청해 이르게 하였다. 여개가 들어 가 뵙는 예를 마쳤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공(여개)이 곧 영창의 고명한 선비라는 것을 들은 지 오래 되었는데 다행히 공 덕분에 이 성을 지켰습니다. 지금 남쪽 오랑캐를 평정하려 하는데 공(여개)은 어떤 고명한 견해가 있습니까?”했다. 여개가 마침내 한 지도를 가져다 제갈공명에게 올리고 말하기를 “제가 벼슬 한 이래로 남쪽 사람들이 배반하려 하는 것을 안 것이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밀리 사람을 보내 그 경계에 들어 가 군대를 주둔하고 서로 싸울만한 곳을 살펴보게 하여 그려서 하나의 지도를 이루었으니 ‘평만지장도’라 합니다. 지금 감히 명공(제갈공명)에게 바칩니다. 명공(제갈공명)께서는 시험삼아 보시면 남쪽 오랑캐를 정벌하는데 한 도움이 도리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여개를 등용하여 행군교수로 삼아 향도관을 겸하게 하였다.
正行軍之次,忽報天子差使命至。孔明請入中軍,但見一人素袍白衣而進,乃馬謖也;為兄馬良新亡,因此挂孝。謖曰:「奉主上敕命,賜眾軍酒帛。」孔明接詔已畢,依命一一給散,遂留馬謖在帳敘話。孔明問曰:「吾奉天子詔,削平蠻方,久聞幼常高見,望乞賜教。」謖曰:「愚有片言,望丞相察之。南螿恃其地遠山險,不服久矣;雖今日破之,明日復叛。丞相大軍到彼,必然平服;但班師之日,必用北伐曹丕:蠻兵若知內虛,其反必速。夫用兵之道:『攻心為上,攻城為下;心戰為上,兵戰為下。』願丞相但服其心足矣。」孔明歎曰:「幼常足知吾肺腑也!」於是孔明遂令馬謖為參軍,即統大兵前進。
행군하던 중에 홀연히 천자가 보낸 사신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공명이 청하여 중군으로 들게 하였는데 한 사람이 흰포와 흰 옷을 입고 오는데 곧 마속이었다. (마속의)형 마량이 죽었기 때문에 상복을 입은 것이었다. 마속이 말하기를 “주상(후주)의 명을 받들어 여러 군사들에게 술과 비단을 내립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조서를 접수하기를 마치고 명에 의하여 일일이 나누어 주고, 마침내 마속을 머물게하여 군막에 있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제갈공명이 물어 말하기를 “내가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만방(남쪽)을 깍아 평정하려는데 유상에게 뛰어난 견해가 있다는 것을 들은 지 오래 되었으니 가르침을 내려주기를 바랍니다.”했다. 마속이 말하기를 “저에게 단편적인 말이 있으니 승상께서는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남쪽 오랑캐들은 그 땅이 멀고, 산이 험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비록 오늘 깨트릴지라도 내일 다시 배반할 것입니다. 승상의 대군이 그들에게 이르면 반드시 평정하여 복종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군대를 거두어 북쪽으로 조비를 치는 날 만병(남쪽 오랑캐)이 안이 빈 것을 안다면 그들은 재빨리 배반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대저 군대를 쓰는 방법은 ‘마음을 치는 것을 상책으로 삼고, 성을 치는 것을 하책으로 삼습니다. 마음으로 싸우는 것을 상책으로 삼고, 군대로 싸우는 것을 하책으로 삼는다.’ 원하건데 승상께서는 그 마음을 복종시킨다면 충분할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탄복하여 말하기를 “유상(마속)이 내 마음 속을 잘 알고 있구나!”했다. 이에 제갈공명은 마침내 마속에게 명하여 참군을 삼고는 큰 군대를 통솔하여 진군하였다.
卻說蠻王孟獲,聽知孔明智破雍闓等,遂聚三洞元帥商議:第一洞乃金環三結元帥,第二洞乃董荼那元帥,第三洞乃阿會喃元帥。三洞元帥入見孟獲,獲曰:「今諸葛丞相領大軍來侵我境界,不得不併力敵之。汝三人可分兵三路而進。如得勝者,便為洞主。」於是分金環三結取中路,董荼那取左路,阿會喃取右路:各引五萬蠻兵,依令而行。卻說孔明正在寨中議事,忽哨馬飛報,說三洞元帥分兵三路到來。
각설하고 만왕 맹획은 제갈공명이 지혜로 옹개 등을 깨트린 것을 듣고 마침내 삼동원수를 모아 상의하였다. 제 일동은 곧 김환삼결 원수이고, 제 이동은 곧 동도나 원수이고, 제 삼동은 곧 아회남 원수였다. 삼동의 원수가 들어가 맹획을 뵈니 맹획이 말하기를 “지금 제갈승상(제갈공명)이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우리 경계를 침범하니 부득이 힘을 합쳐 대적해야 한다. 너희 세 사람은 군대를 나누어 세 길로 가서 나아가라. 만약 승리하는 자는 곧 동주가 될 것이다.”했다. 이에 나누어 금환삼결은 중로를 취하고, 동도나는 왼쪽 길을 취하고, 아회남은 오른 쪽 길을 취하여 각각 오만의 만병을 이끌고 명령에 의거하여 갔다. 각설하고 제갈공명이 바로 영채 안에서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홀연히 정찰병이 보고하여 삼동원수가 군대를 나누어 세 길로 온다고 보고하였다.
孔明聽畢,即喚趙雲、魏延至,卻都不分付;更喚王平、馬忠至,囑之曰:「今蠻兵三路而來,吾欲令子龍、文長去;此二人不識地理,未敢用之。王平可往左路迎敵,馬忠可往右路迎敵。吾卻使子龍、文長隨後接應。今日整頓軍馬,來日平明進發。」二人聽令而去。又喚張嶷、張翼分付曰:「汝二人同領一軍,往中路迎敵。今日整點軍馬,來日與王平、馬忠約會而進。吾欲令子龍、文長去取,二人不識地理,故未敢用之。」張嶷、張翼聽令去了。
제갈공명이 듣기를 마치고 곧 조운(조자룡)과 위연을 불러 이르렀으나 모두 분부하지 않고, 다시 왕평, 마충을 불러 이르자 부탁하여 말하기를 “지금 만(남쪽 오랑캐)의 군대가 세 길로 오고 있으므로 내가 자룡(조자룡), 문장(위연)으로 하여금 가게 하려하였으나 이 두 사람은 지리를 알지 못하니 감히 쓰지 못하겠다. 왕평은 왼쪽 길로 가서 적을 맞고, 마충은 오른쪽 길로 가서 적을 맞으라. 내가 자룡(조자룡)과 문장(위연)으로 하여금 뒤를 따라 상황에 맞게 대은하게 할 것이다. 오늘 군마를 정돈하였다가 내일 날이 밝으면 출발하라.”했다. 두 사람이 명령을 듣고 갔다. 또 장의, 장익을 불러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함께 일군을 거느리고 가운데 길로 가서 적을 맞이하라. 오늘 군마를 점검 점검하였다가 내릴 왕평, 마충과 함께 만날 것을 약속하고 진군하라. 내가 자룡(조자룡)과 문장(위연)으로 하여금 가서 취하rp 하려하나 두 사람은 지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감히 쓰지 못하겠다.”했다. 장의와 장익이 명령을 듣고 갔다.
趙雲、魏延見孔明不用,各有慍色。孔明曰:「吾非不用汝二人,但恐涉險入深,為蠻人所算,失其銳氣耳。」趙雲曰:「倘我等識地理,若何?」孔明曰:「汝二人只宜小心,休得妄動。」二人快快而退。趙雲請魏延到自已寨內商議曰;「吾二人為先鋒,卻說不識地理而不肯用。今用此後輩,吾等豈不羞乎?」延曰:「吾二人只今就上馬,親去探之;捉住土人,便教引進,以敵蠻兵,大事可成。」雲從之,遂上馬逕取中路而來。方行不數里,遠遠望見塵頭大起。二人上山坡看時,果見數十騎蠻兵,縱馬而來。二人兩路衝出。蠻兵見了,大驚而走。
조운(조자룡)과 위연은 제갈공명이 쓰지 않는 것을 보고 각각 노여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 두 사람을 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험함을 건너 깊이 들어가다 만인(남쪽 오랑캐)에게 헤아려져 그 예기를 잃을까 두려워했을 뿐이다.”했다. 조운(조자룡)이 말하기를 “만약 우리들이 지리를 안다면 어떠합니까?”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은 마땅히 조심하고 망녕되이 움직여서는 안 될 것이다.”했다. 두 사람이 민첩하고 빠르게 물러갔다. 조운(조자룡)이 위연을 청해 자기의 영채 안에 이르러 상의하여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은 선봉이 되었으나 지리를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기꺼이 쓰여지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이 후배를 쓰시니 우리들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했다. 위연이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이 지금 말에 올라 직접 가서 탐지하고, 토인(현지인)을 잡아 곧 진군을 인도하게 하는 것으로서 만병(남쪽 오랑캐 군대)을 대적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조운(조자룡)이 그것을 따라 마침내 말에 올라 재빨리 가운데 길을 위하여 갔다. 바야흐로 몇 리 가지 못하여 멀리 먼지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산기슭에 올라 보니 과연 수 십기의 만병(오랑캐 군대)이 말을 몰라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이 두 길로 치고 나갔다. 만병(오랑캐 군대)가 보고 크게 놀라 달아났다.
趙雲、魏延各生擒幾人,回到本寨,以酒食待之,卻細問其故。蠻兵告曰:「前面是金環三結元帥大寨,正在山口。寨邊東西兩路,卻通五溪洞并董荼那、阿會喃各寨之後。」趙雲、魏延聽知此話,遂點精兵五千,教擒來蠻兵引路。比及起身時,已是二更天氣;月明星朗,趁著月色而行。剛到金環三結大寨之時,約有四更,蠻兵方起造飯,準備天明廝殺。
조운(조자룡)과 위연이 각각 몇 사람을 사로잡아 본채(본 영채)에 돌아와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고 그 일(지리)을 자세히 물었다. 만병(남쪽 오랑캐 병사)이 고하여 말하기를 “앞 쪽은 금환삼결원수의 큰 영채인데 바로 산 입구에 있습니다. 영채는 동서 두 길에 붙어 있는데 오계동과 동도나, 아회남 각각의 영채 뒤로 통한다.”했다. 조운(조자룡)과 위연이 이 이야기를 들어 알고 마침내 정예군대 오천을 점검하고 사로잡아 온 만병(남쪽 오랑캐 병사)로 하여금 길을 인도하게 하였다. 가까이 이르러 몸을 일으킬 때는 이미 이경으로 하늘에 달은 밝고 별은 맑아 달빛을 따라 갔다. 바야흐로 금환삼결의 큰 영채에 이르렀을 때는 대략 사경으로 남쪽 오랑캐 군대가 막 일어나 밥을 지으며 날이 밝으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忽然趙雲、魏延兩路殺入,蠻兵大亂。趙雲直殺入中軍,正逢金環三結元帥;交馬只一合,被雲一鎗刺落馬下,就梟其首級。餘軍潰散。魏延便分兵一半,望東路抄董荼那寨來。趙雲分兵一半,望西路抄阿會喃寨來。比及殺到蠻兵大寨之時,天已平明。先說魏延殺奔董荼那寨來;董荼那聽知寨後有軍殺至,便引兵出寨拒敵。忽然寨前門一聲喊起,蠻兵大亂。原來王平軍馬早已到了。兩下夾攻,蠻兵大敗。董荼那奪路走脫,魏延追趕不上。
홀연히 조운(조자룡), 위연이 두 길로 쇄도해 들어가니 남쪽 오랑캐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조운(조자룡)이 곧바로 중군에 쇄도해 들어가서 바로 금환삼결 원수를 만났다. 말이 서로 엇갈린 지 일합에 조운(조자룡)이 한 창에 찔러 말에서 떨어뜨리고 (머리를 베어)그 수급을 장대에 매달았다. 나머지 군사들이 무너지고 흩어졌다. 위연은 곧 군대를 반으로 나누어 동쪽 길을 향해 동도나의 영채를 치러 갔다. 조운은 군대 반을 나누어 서쪽 길을 향해 아회남의 영채를 치러 갔다. 가까이 이르러 남쪽 오랑캐 군대의 큰 영채에 쇄도해 이르렀을 때는 하늘이 이미 밝았다. 앞서 말한 위연이 동도나의 영채에 쇄도해 갔다. 동도나는 영채의 뒤에 어떤 군대가 쇄도해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곧 군대를 이끌고 영채를 나와 막아 대적하였다. 홀연히 영채 앞문에서 한 소리 함성이 일어나면서 남쪽 오랑캐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알고 보니 왕평의 군마가 일찍 이미 이르러 있었다. 양 쪽에서 협공하니 남쪽 오랑캐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동도나가 길을 찾아 달아나는데 위연이 뒤를 쫓아가지 못하였다.
卻說趙雲引兵殺到阿會喃寨後之時,馬忠已殺至寨前。兩下夾攻,,蠻兵大敗。阿會喃乘亂走脫,各自收軍,回見孔明。孔明問曰:「三洞蠻兵,走了兩洞之主,金環三結元帥首級安在?」趙雲將首級獻功。眾皆言曰:「董荼那、阿會喃皆棄馬越嶺而去,因此趕他不上。」孔明大笑曰:「二人吾已擒下了。」趙、魏二人並諸將皆不信。少頃,張嶷解董荼那到,張翼解阿會喃到。眾皆驚訝。孔明曰:「吾觀呂凱圖本,已知他各人下的寨子,故以言激子龍、文長之銳氣,故教深入重地,先破金環三結,隨即分兵左右寨後抄出,以王平、馬忠應之。非子龍、文長不可當此任也。吾料董荼那、阿會喃必從便徑往山路而走,故遣張嶷、張翼以伏兵待之,令關索以兵接應,擒此二人。」
각설하고 조운(조자룡)이 군대를 이끌고 아회남의 영채 뒤에 쇄도해 이르럿을 때는 마충이 이미 영채 앞에 쇄도해 이른 뒤였다. 양 쪽에서 협공하니 동쪽 오랑캐가 크게 패하였다. 아회남이 혼란을 타고 달아나자 각각 군대를 거두어 돌아 가 제갈공명을 만났다. 제갈공명이 물어 말하기를 “삼동의 남쪽 오랑캐 군대 중에 두 동의 주인은 달아났고, 금환삼결 원수의 수급은 어디에 있는가?”하니 조운(조자룡)이 수급을 가져다 바쳤다. 무리들이 모두 말하기를 “동도나, 아회남은 모두 말을 버리고 고개를 넘어 갔기 때문에 그들을 쫓을 수 없었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두 사람은 내가 이미 사로잡았습니다.”했다. 조자룡, 위연 두 사람과 여러 장수들이 믿지 않았다. 잠시 후 장의가 동도나를 압송하여 이르고, 장익은 아회남을 압송하여 이르렀다. 무리들이 모두 놀랐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여개의 지도를 보고 이미 그들이 각각 영채를 세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룡(조자룡)과 문장(위연)의 예기를 격동시키는 말을 하는 것으로서 깊이 중요한 땅으로 들어가 먼저 금환삼결을 깨트리게 하고, 이어 군대를 나누어 왼쪽 오른쪽의 영채 뒤를 치고 나오면 왕충과 마충이 대응하게 한 것이다. 자룡(조자룡), 문장(위연)이 아니면 이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가 동도나, 아회남이 반드시 지름길로 산길을 따라 달아날 것을 헤아렸기 때문에 장의, 장익을 보내 군대를 숨기고 기다리게 하고, 관색으로 하여금 군대로서 상황에 맞게 대응하게 하여 이 두 사람을 사로잡게 한 것이다.”했다.
諸將皆拜伏曰:「丞相機算,神鬼莫測!」孔明令押過董荼那,阿會喃至帳下,盡去其縛,以酒食衣服賜之;令各自歸洞,勿得助惡。二人泣拜,各投小路而去。孔明謂諸將曰:「來日孟獲必然親自引兵廝殺,便可就此擒之。」乃喚趙雲,魏延至,付與計策,各引五千兵去了。又喚王平,關索,同引一軍,授計而去。孔明分撥已畢,坐於帳上待之。
여러 장수들이 모두 절하며 엎드려 말하기를 “승상의 신묘한 계산은 귀신도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동도나, 아회남을 끌고 오게 하여 군막에 이르자 모두 그 결박을 제거하고 술과 음식, 의복을 내리고, 각각 동으로 돌아가 악을 돕지 말라고 했다. 두 사람이 울면서 절하고 각각 작은 길로 갔다. 제갈공명이 여러 장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일 맹획이 반드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싸우러 올 것이니 곧 이에 사로잡아야 할 것이다.”하고는 이에 조운(조자룡), 위연을 불러 이르자 계책을 주어 각각 오천의 군대를 이끌고 가게 했다. 또 왕평, 관색을 불러 같이 한 부대를 이끌고 계책을 주어 가게 했다. 제갈공명이 나누어 다스리기를 마치고 군막 안에 앉아 기다렸다.
卻說蠻王孟獲在帳中正坐,忽哨馬報來,說三洞元帥,俱被孔明捉將去了;部下之兵,各自潰散。獲大怒,遂起蠻兵迤邐進發,正遇王平軍馬。兩陣對圓,王平出馬橫刀望之。只見門旗開處,數百南蠻騎將兩勢擺開。中間孟獲出馬:頭頂嵌寶紫金冠,身披纓絡紅錦袍,腰繫碾玉獅子帶,腳穿鷹嘴抹綠靴,騎一匹捲毛赤兔馬,懸兩口松紋鑲寶劍,昂然觀望,回顧左右蠻將曰:「人每說諸葛亮善能用兵;今觀此陣,旌旗雜亂,隊伍交錯;刀鎗器械,無一可能勝吾者。始知前日之言謬也。早知如此,吾反多時矣。誰敢去擒蜀將,以振軍威?」言末盡,一將應聲而出,名喚忙牙長;使一口截頭大刀,騎一匹黃驃馬,來取王平。二將交鋒,戰不數合,王平便走。孟獲驅兵大進,迤邐追趕。關索略戰又走,約退二十餘里。孟獲正追殺之間,忽然喊聲大起,左有張嶷,右有張翼,兩路兵殺出,截斷歸路。王平,關索,復引兵殺回。前後夾攻,蠻兵大敗。孟獲引部將死戰得脫,望錦帶山而逃。背後三路兵追殺將來。
각설하고 남쪽 오랑캐 왕 맹획이 군막 안에 바로 앉아 있는데 홀연히 정찰병이 와 삼동의 원수가 모두 제갈공명에게 잡혀 가고, 부하 군사들은 각각 무너져 흩어졌다고 보고하였다. 맹획이 크게 노하여 마침내 남쪽 오랑캐 군대를 일으켜 연이어 진군하게 하였는데 바로 왕평의 군마를 만났다. 두 진영이 둥글게 대치하니 왕평이 말을 타고 나와 칼을 빗겨들고 바라보니 문기가 열린 곳에 남만의 말 탄 장수 수백 명이 양쪽에 도열한 것을 보았다. 가운데에서 맹획이 말을 타고 나오는데 머리에는 감보자금관(보배를 새겨 넣은 자줏빛 금관) 을 쓰고, 몸에는 영락홍금포(보석(옥)으로 꾸민 붉은 색 비단 포)를 입고 허리에는 옥돌에 사자를 새긴 띠를 둘렀다. 다리에는 독수리 부리처럼 뾰족한 가죽신을 신고, 한 필의 털이 곱슬곱슬한 적토마를 탔으며, 두 개의 소나무 문양을 새긴 보검을 차고 당당하게 바라보다 좌우의 남쪽 오랑캐 장수들은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매번 제갈공명이 군대 쓰는 것을 잘한다고 말하는데 지금 이 진을 보니 정기가 어지러이 섞여 있고, 군대의 대오가 서로 엇갈려 어지러우며 칼과 창, 병기가 하나도 우리를 이길만한 것이 없다. 비로소 전 날의 말(제갈공명이 군대를 잘 운용한다는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일찍 이 같음을 알았다면 내가 오래전에 배반하는 것이다. 누가 감히 가서 촉의 장수를 사로잡는 것으로서 우리 군대의 위엄을 떨치겠는가?” 했다. 말을 다하기도 전에 한 장수가 대답하며 나오는데 이름은 환망아장으로 하나의 절두대도를 사용하고, 한 필의 황표마를 타고 왕평을 취하러 갔다. 두 장수가 서로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왕평이 곧 달아났다. 맹획이 군대를 몰아 크게 진군하여 구불구불 이어 뒤를 쫒았다. 관색이 대충 싸우다 또 달아나 약 이십여 리를 달아났다. 맹획이 바로 쫓아 가 죽이려 하는데 홀연히 함성이 크게 일어나며 왼쪽에는 장의가 있고, 오른 쪽에는 장익이 있어 두 길의 군대가 쇄도해 나와 돌아가는 길을 끊었다. 왕평, 관색이 다시 군대를 이끌고 돌아 쇄도해 앞뒤에서 협공하니 남쪽 오랑캐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맹획은 부장들을 이끌고 죽을힘을 다해 싸워 벗어나 금대산을 향해 달아나니 뒤에서 세 길의 군대가 쫓아갔다.
獲正奔走之間,前面喊聲大起,一彪軍攔住:為首大將乃常山趙子龍也。獲見了大驚,慌忙奔錦帶山小路而走。子龍衝殺一陣,蠻兵大敗,生擒者無數。孟獲止與數十騎奔入山谷之中,背後追兵至近,前面路狹,馬不能行,乃棄了馬匹,爬山越嶺而逃。忽然山谷中一聲鼓響,乃是魏延受孔明計策,引五百步軍,伏於此處。孟獲抵敵不住,被魏延生擒活捉了,從騎皆降。
맹획이 달아날 때 앞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며 한 떼의 군대가 막았는데 우두머리되는 장수는 곧 상산조자룡이었다. 맹획이 보고 크게 놀라 황망히 금대산의 작은 길을 달려 달아났다. 조자룡이 한바탕 치고 죽이니 남쪽 오랑캐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사로잡힌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맹획은 다만 수십 기를 데리고 산골짜기 안으로 달려 들어갔는데 뒤에는 쫓는 군대가 가까이 이르고 앞 쪽 길은 좁아 말이 잘 가지 못하니 곧 말을 버리고 산을 기어 고개를 넘어 달아났다. 홀연히 산골짜기 안에서 한 소리 북이 울렸는데, 곧 위연이 제갈공명의 계책을 받아 보병 오백 명을 이끌고 이곳에 매복하고 있었다. 맹획은 대적하여 막지 못하고 위연에게 산채로 사로잡히고 따르던 기병도 모두 항복하였다.
魏延解孟獲到大寨來見孔明。孔明早已殺牛宰馬,設宴在寨;卻教帳中排開七重圍子手,刀鎗劍戟,燦若霜雪;又執御賜黃金鉞斧,曲柄傘蓋,前後羽葆鼓吹,左右排開御林軍,布列得十分嚴整。孔明端坐於帳上,只見蠻兵紛紛攘攘。解到無數。孔明喚到帳中,盡寸其縛,撫諭曰:「汝等皆是好百姓,不幸被孟獲所拘,今受驚嚇,吾想汝等父母兄弟妻子必倚門而望;若聽知陣敗,定然割肚牽腸,眼中流血。吾今盡放汝等回去,以安各人父母兄弟妻子之心。」言訖,各賜酒食米糧而遣之。
위연이 맹획을 압송하여 큰 영채에 이르러 제갈공명을 뵈었다. 제갈공명은 일찍이 이미 소와 말을 잡아 영채 안에서 연회를 준비하고 군막 안에 일곱겹으로 자수가 둘러싸게 하였는데 칼과 창, 검과 창의 빛남이 서리와 눈과 같았다. 또 천자가 내린 황금부월과 굽은 자루의 햇빛 가리개와 앞뒤에는 우보를 세우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불게 하고 좌우에는 어림군을 벌여 세웠는데 완전히 엄정하게 열을 지어 섰다. 제갈공명은 군막 안에 단정히 앉아 남쪽 오랑캐 군사들이 잇달아 어지럽게 헤아릴 수 없이 압송되어 오는 것을 보았다. 제갈공명이 군막 안으로 불러 이르자 모두 그 결박을 풀고 위로하고 깨우쳐 말하기를 “너희들은 모두 좋은 백성인데 불행히도 맹획에게 구속된 바 되어 지금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보니 너희들의 부모와 형제, 처자는 반드시 문에 기대어 (돌아오기를)바랄 것인데 만약 진(군대)이 패하였다는 것을 듣는다면 배를 갈라 창자를 끌며 눈 안에서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내가 지금 너희들을 모두 놓아 돌려보내는 것으로서 각자의 부모형제, 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라는 말을 마치고 각각 술과 음식, 식량을 내리고 보냈다.
蠻兵深感其恩,泣拜而去。孔明教喚武士押過孟獲來。不移時,前推後擁,縛至帳前。獲跪於帳下。孔明曰:「先帝待汝不薄,汝何敢背反?」獲曰:「兩川之地,皆是他人所占地土;汝主倚強奪之,自稱為帝。吾世居此處,汝等無禮,侵我土地,何為反耶?」孔明曰:「吾今擒汝,汝心服否?」獲曰:「山僻路狹,誤遭汝手,如何肯服?」孔明曰:「汝既不服,吾放汝去,若何?」獲曰:「汝放我回去,再整軍馬,共決雌雄;若能再擒吾,吾方服也。」孔明即令去其縛,與衣服穿了,賜以酒食,給與鞍馬,差人送出路徑,望本寨而去。正是:寇入掌中還放去,人居化外未能降。未知再來交戰若何,且看下文分解。
남쪽 오랑캐 병사들이 그 은혜에 깊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절하고 갔다. 제갈공명이 무사를 불러 맹획을 압송해 오게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앞으로 밀고 뒤에서 잡아 결박한 채 군막 앞에 이르렀다. 맹획이 군막에서 무릎을 끓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선제(유현덕)께서 너희를 대하기를 박절하게 하지 않았는데 너는 어찌 감히 배반하였는가?”하니 맹획이 말하기를 “양천(동천과 서천)의 땅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점령했던 땅이었는데 너희 임금이 강제로 빼앗아 자칭 황제라 하였고, 우리가 대대로 이곳에 살아왔는데 너희들이 무례하게 우리 땅을 침범하고서 어찌하여 배반했다고 하는가?”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너를 사로잡았으니 너는 마음으로 복종하는가?”하니 맹획이 말하기를 “산이 후미지고 길이 좁아 잘못 너의 손을 만났으니(잡혔으니)어찌 기꺼이 복종할 수 있겠는가?”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복종하지 않으니 내가 너를 놓아 가게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했다. 맹획이 말하기를 “네가 나를 놓아주어 돌아가게 한다면 다시 군마를 정비하여 함께 자웅을 결정할 것이다. 만약 다시 나를 사로잡는다면 내가 바야흐로 복종할 것이다.”했다. 제갈공명이 곧 그 결박을 풀게 하고, 의복을 주어 입게 하고, 술과 음식을 내리며 말과 안장을 주고 사람을 보내 길을 나가는 것을 환송하게 하니 (맹획)이 본 영채를 향해 갔다. 바로 이러하다. 도적이 손 안에 들어왔는데 놓아 돌아가게 하고, 사람들이 외방에 살아 아직 항복하지 않는다. 다시 와서 서로 싸울지 어떻게 할지 알지 못하겠다.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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