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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107회 위나라 임금은 정사를 사마씨에게 돌리고(맡기고), 강유의 군대는 우두산에서 패하다.

by 최인표 2022. 2. 16.

第一七回魏主政歸司馬氏姜維兵敗牛頭山

107회 위나라 임금은 정사를 사마씨에게 돌리고(맡기고), 강유의 군대는 우두산에서 패하다.

 

卻說司馬懿聞曹爽同弟曹羲曹訓曹彥並心腹何晏鄧颺丁謐畢範李勝等及御林軍隨魏主曹芳出城謁明帝墓就去畋獵懿大喜即到省中令司徒高柔假以節鉞行大將軍事先據曹爽營又令太僕王觀行中領軍事據曹羲營懿引舊官入後宮奏郭太后言爽背先帝託孤之恩奸邪亂國其罪當廢郭太后大驚曰:「天子在外如之奈何?」懿曰:「臣有奏天子之表誅奸臣之計太后勿憂。」太后懼怕只得從之懿急令太尉蔣濟尚書令司馬孚一同寫表遣黃門齎出城外逕至帝前申奏懿自引大軍據武庫

각설하고 사마의는 조상이 동생 조희, 조훈, 조온이 심복 하안, 등양, 정밀, 필범, 이승 등이 어림군과 함께 위나라 임금 조방을 따라 성을 나와 명제의 묘를 뵙고, 사냥을 하기위해 성을 나왔다는 것을 들었다.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곧 성(관청)에 이르러 사도 고유로 하여금 가짜 절월(절부월)을 가지고 대장군의 일을 행하여 먼저 조상의 진영을 점거하게 하였다. 도 태부 왕관으로 하여금 중령군사의 일을 행하여 조희의 진영을 점거하게 하였다. 사마의는 옛 관료들을 이끌고 후궁에 들어 가 곽태후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조상이 선제의 탁고의 은혜를 저버리고 간사하게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그 죄가 폐함에 마땅하다고 말하였다. 곽태후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천자께서 밖에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사마의)이 천자께 아뢸 표와 간사한 신하를 죽일 계책이 있으니 태후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했다. 태후가 두려워하여 다만 따를 뿐이었다. 사마의가 급히 태위 장제, 상서령 사마부로 하여금 함께 표를 쓰게 하고, 환관을 보내 표를 가지고 성을 나가 빨리 황제의 앞에 이르러 아뢰게 하였다. 사마의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무고(무기창고)를 점거하였다.

 

早有人報知曹爽家其妻劉氏急出廳前喚守府官問曰:「今主公在外仲達起兵何意?」守門將潘舉曰:「夫人勿驚我去問來。」乃引弓弩手數十人登門樓雍之正見司馬懿引兵過府前舉令人亂箭射下懿不得過偏將孫謙在後止之曰:「太傅為國家大事休得放箭。」連止三次舉方不射司馬昭護父司馬懿而過引兵出城屯於洛河守住浮橋

재빨리 어떤 사람이 조상의 집에 보고하였다. 그 처 유씨가 급히 대청 앞에 나와 부를 지키는 관리를 불러 물어 말하기를 지금 주공께서 밖에 있는데 중달(사마의)이 군대를 일으킨 것을 무슨 뜻입니까?”했다. 수문장 장번거가 말하기를 부인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하고는 곧 궁노수 수십 명을 이끌고 문루에 올라 막았다. 바로 사마의가 군대를 이끌고 부(조상의 집 앞)을 지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장심거가 사람을 시켜 화살을 어지럽게 쏘아내리니 사마의가 지나갈 수 없었다. 편장 손겸이 뒤에 있다가 막으며 말하기를 태부께서는 국가 대사를 위하는 것이니 화살을 쏘지 마시오.”하고는 연이어 세 번을 막으니 장심거가 비로소 쏘지 않았다. 사마소가 아버지 사마의를 호위하고 지나가 군대를 이끌고 성을 나가 낙하에 주둔하여 부교를 막아 지켰다.

 

且說曹爽手下司馬魯芝見城中事變來與參軍辛敞商議曰:「今仲達如此變亂將如之何?」敞曰:「可引本部兵出城去見天子。」

각설하고 조상의 부하 사마노지는 성안의 일이 사변을 보고는 가서 참군 신창과 함께 의논하여 말하기를 지금 중달(사마의)이 이 같이 변란을 일으켰으니 장차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지 신창이 말하기를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성을 나가 천자를 죄어야 합니다.”했다.

 

芝然其言敞急入後堂其姊辛憲英見之問曰:「汝有何事慌速如此?」敞告曰:「天子在外太傅閉了城門必將謀逆。」憲英曰:「司馬公未必謀逆特欲殺曹將軍耳。」敞驚曰:「此事未知如何?」憲英曰:「曹將軍非司馬公之對手必然敗矣。」敞曰:「那日司馬教我同去未知可去否憲英曰:「職守人之大義也凡人在難猶或卹之執鞭而棄其事不祥莫大焉。」敞從其言乃與魯芝引數十騎斬關奪門而出人報知司馬懿懿恐桓範亦走急令人召之範與其子商議其子曰:「車駕在外不如南出。」

사마노지가 그 말을 따랐다. 신창이 급히 후당에 들어갔다. 그 누이 신헌영이 그를 보고 물어 말하기를 너에게 무슨 일이 있기에 당황하고 급히 하는 것이 이와 같은가?”하니 신창이 고하여 말하기를 천자께서 밖에 있는데 태부가 성문을 닫았으니 반드시 장차 모역하려는 것이다.”했다. 신헌영이 말하기를 사마공(사마의)은 모역하지 않늘 것이 틀림없다. 다만 조 장군을 죽이려 할 뿐이다.”하니 신창이 놀라 말하기를 이 일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했다. 신헌영이 말하기를 조 장군은 사마공(사마의)의 맞수가 아니니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했다. 신창이 말하기를 어느 날 사마(사마노지)가 나에게 함께 가자고 하는데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하니 신헌영이 말하기를 직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대의이다. 무릇 사람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오히려 그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채찍을 잡고서 그 일을 버리는 것은 상서롭지 못함이 이 보다 큼이 없는 것입니다.”했다. 시창이 그 말을 따라 곧 사마노지와 함께 수 십 기를 이끌고 관문을 지키는 이를 죽이고 문을 빼앗고 나갔다. 사람이 사마의에게 보고하였다. 사마의는 환범이 또 달아날 것을 두려워하여 급히 사람을 시켜 불렀다. 환범이 그 아들과 상의하였다. 그 아들이 말하기를 거가(천자의 수레)가 밖에 있으니 남쪽으로 나가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範從其言乃上馬至平昌門城門已閉把門將乃桓範舊吏司蕃也範袖中取出一竹版曰:「太后有詔可即開門。」司蕃曰:「請詔驗之。」範叱曰:「汝是吾故吏何敢如此!」司蕃只得開門放出範出至城外喚司蕃曰:「太傅造反汝可速隨我去。」

환범이 그 말을 따라 곧 말에 올라 평창문에 이르렀는데 성문이 이미 닫혀 있었다. 문을 지키는 장수는 곧 환범의 옛 아전이었던 사번이었다. 환범이 소매 안에서 하나의 대나무판을 꺼내며 말하기를 태후의 조서가 있으니 곧 문을 여는 것이 옳을 것이다.”했다. 사번이 말하기를 조서를 보기를 청합니다.”하니 환범이 질책하며 말하기를 너는 나의 옛 아전이었는데 어찌 감히 이 같이 할 수 있는가!”하니 삽이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게 하였다. 환범이 나가 성 밖에 이르러 사번을 물러 말하기를 태부(사마의)가 모반하였으니 너는 빨리 나를 따라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했다.

 

蕃大驚追之不及人報知司馬懿懿大驚曰:「智囊洩矣如之奈何?」蔣濟曰:「駑馬戀棧豆必不能用也。」懿乃召許允陳泰曰:「汝去見曹爽說太傅別無他事只是削汝兄弟兵權而已。」

사번이 크게 놀라 그(환범)를 따랐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사람이 사마의에게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지낭(꾀주머니)이 새었구나!(놓쳤구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장제가 말하기를 둔하고 느린 말은 여물 콩만 생각한다 하니 반드시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했다. 사마의가 이에 허윤, 진태를 불러 말하기를 너희들이 조상에게 가서 태부는 별 다른 일이 없고, 다만 너희 형제의 병권만 없애려 할 뿐이라고 말하라.”했다.

 

陳二人去了又召殿中校尉尹大目至令戡(?)濟作書與目持去見爽懿分付曰:「汝與爽厚可領此任汝見爽說吾與蔣濟指洛水為誓只因兵權之事別無他意。」尹大目依令而去

허윤과 진태 두 사람이 갔다. 또 전중교위 윤대목을 불러 이르게 하고, 장제로 하여금 글을 짓게하여 윤대목으로 하여금 가지고 조상에게 가게 하였다. 사마의가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는 조상과 신분이 두터우니 이 임무를 맡을 수 있다. 너는 조상을 만나 나와 장제는 낙수를 걸고 맹서하건데 다만 병권의 일 때문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말하라.”했다. 윤대목이 명령을 받아 갔다.

 

卻說曹爽正飛鷹走犬之際忽報城內有變太傅有表爽大驚幾乎落馬黃門官捧表跪於天子之前爽接表拆封令近臣讀之表略曰

각설하고 조상이 매를 날리고 개를 달리게 하고 있을 때 홀연히 성안에서 변란이 있고, 태부가 표를 올렸다고 보고하였다. 조상이 크게 놀라 거의 말에서 떨어질 뻔하였다. 황문관이 표를 받들고 천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상이 표를 받아 봉투를 찢고 근신으로 하여금 읽게 하였다. 표를 요약하면

 

征西大都督太傅臣司馬懿誠惶誠恐頓首謹表臣昔從遼東還先帝詔陛下與秦王及臣等升御床把臣臂深以後事為念今大將軍曹爽背棄顧命敗亂國典內則僭擬外專威權以黃門張當為都監專共交關看察至尊伺候神器離間二宮傷害骨肉又下洶洶人懷危懼此非先帝詔陛下及囑臣之本意也臣雖朽邁敢忘往言太尉臣濟尚書臣孚等皆以爽為有無君之心兄弟不宜典兵宿衛今奏永寧宮皇太后令敕臣表奏施行臣輒敕主者及黃門令罷爽訓吏兵以侯就第不得逗遛以稽車駕敢有稽留便以軍法從治臣輒力疾將兵屯於洛水浮橋伺察非常謹此上聞伏干聖聽。」

정서대도독 태부 신 사마의는 진실로 황공하옵게도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표를 올립니다. 신이 지난날 요동에서 돌아 왔을 때 선제(돌아가신 천자)께서 폐하와 진왕, 신 등에게 어상(천자의 침상)에 오르게 하시고 신의 팔을 잡으며 깊이 후사를 깊이 생각(걱정)하셨습니다. 지금 대장군 조상은 고명(선제의 유언)을 져버리고 나라의 법을 무너뜨리고 어지럽혔습니다. 안으로는 분수에 넘치게 윗사람인체 하고 밖으로는 위엄과 권세를 오로지 하여 황문(환관) 장당을 도감을 삼고, 함께 서로 왕래하면서 지존(천자)을 살피며(감시하며) 신기(국가권력)를 엿보았으며, 두 궁을 이간하여 골육(친족)을 해쳤습니다. 또 아래는 인심이 흉흉하니 사람들이 위태로움과 두려움을 품었습니다. 이는 선제께서 페하께 명하신 것과 신(사마의)에게 부탁하신 본래 뜻이 아닙니다. 신이 비록 늙었으나 어찌 옛 말씀을 잊겠습니까? 태위 신 장제, 상서 신 사마부 등은 모두 조상은 임금을 섬기는 마음이 없으니 형제가 병권을 가지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지금 영녕궁 황태후에게 아뢰었더니 신으로 하여금 표에 아뢴대로 시행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신이 문득 일을 주관하는 자와 황문령을 시켜 조상과 조희, 조훈의 병권을 파면하는 것으로서 후로 집에 돌아가 머물게 하는 것으로서 거가(천자의 수레)를 살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감히 머무름이 있다면 곧 군법으로서 다스리게 하고, 신은 곧바로 힘서 군대를 거느리고 낙수 부교에 주둔하여 비상한 상황을 살피고 있습니다. 삼가 이를 올리고 엎드려 성스러운 덕을 청합니다.” 했다.

 

魏主曹芳聽畢乃喚曹爽曰:「太傅之言若此卿如何裁處?」爽手足失措回顧二弟曰:「為之奈何?」羲曰:「劣弟亦曾諫兄兄執迷不聽致有今日司馬懿譎詐無比孔明尚不能勝況我兄弟乎不如自縳見之以免一死。」

위나라 임금 조방이 듣기를 마치고 곧 조상을 불러 말하기를 태부의 말이 이와 같으니 경을 판하고 처리해야 하겠는가?”하니 조상이 손발을 어떻게 하지 못하며 두 동생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했다. 조희가 말하기를 제가 또한 일찍이 형을 간하였는데 형이 미혹함에 잡혀 듣지 않다가 오늘이 있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마의는 남을 속이는 간사한 꾀가 짝이 없어 제갈공명이 오히려 이기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우리 형제이겠습니까? 스스로를 묶고 만나는 것으로서 죽음을 면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言未畢參軍辛敞司馬魯芝到爽問之二人告曰:「城中把得鐵桶相似太傅引兵屯洛水浮橋勢將不可復歸宜早定大計。」

말을 마치기도 전에 참군 신창, 사마노지가 이르렀다. 조상이 물으니 두 사람이 고하여 말하기를 성 안을 쇠통처럼 장악하고 태부가 군대를 이끌고 낙수 부교에 주둔하였으니 형세가 장차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마땅히 빨리 큰 계책을 정해야 합니다.”했다.

 

正言間司農桓範驟馬而至謂爽曰:「太傅已變將軍何不請天子幸許都調外兵以討司馬懿耶?」爽曰:」吾等全家皆在城中豈可投他處求援?」範曰:「匹夫臨難尚欲望活今主公身隨天子號令天下誰敢不應豈可自投死地乎?」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사마환범이 말을 몰라 이르러 조상에게 일러 말하기를 태부가 이미 변란을 일으켰는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천자께 허도로 돌아 가 밖의 군사를 동원하는 것으로서 사마의를 토벌할 것을 청하지 않습니까?”했다. 조상이 말하기를 우리들의 전 가족이 성 안에 있는데 어찌 다른 곳에 나아가 도움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하니 사마환범이 말하기를 필부가 어려움을 대하여 오히려 살기를 바라는구나! 지금 주공이 직접 천자를 수행하여 천하에 명령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어찌 스스로 죽을 땅에 들어가지 않습니까?”했다.

 

爽聞言不決惟流涕而已範又曰:「此去許都不過中宿城中糧草足支數載今主公別營兵馬近在關南呼之即至大司馬之印某將在此主公可急行遲則休矣。」爽曰:「多官勿太催逼待吾細細思之。」

조상은 말을 듣고도 결단하지 못하고 오직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사마환범이 또 말하기를 여기서 허도까지 거리가 이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 안의 식량과 말먹이 풀은 충분히 몇 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지금 주공의 다른 군영 군마가 가까운 관남에 있으니 그들을 부르면 곧 즉시 이를 것입니다. 대사마의 직인은 제가 가지고 여기에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급히 가야하고 늦으면 곧 안 됩니다.”했다. 조상이 말하기를 여럿이서 너무 심하게 재촉하지 말고 내가 자세히 생각할 것을 기다리시오.”했다.

 

少頃侍中許允尚書令陳泰至二人告曰:「太傅只為將軍權重不過要削去兵權別無他意將軍可早歸城中。」爽默然不語又只見殿中校尉尹大目至目曰:「太傅指洛水為誓並無他意有蔣太尉書在此將軍可削去兵權早歸相府。」爽信為良言桓範又告曰:「事急矣休聽外言而就死地!」

잠시 후 시중 허윤, 상서령 진태가 이르렀다. 두 사람이 고하여 말하기를 태부(사마의)께서는 다만 장군의 권한이 중하다여겨 병권을 없애려는 것을 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다른 뜻은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빨리 성 안으로 돌아 가야만 합니다.”했다. 조상이 묵묵히 말을 하지 않았다. 또 전중교위 윤대목이 이르렀다. 윤대목이 말하기를 태부가 낙수를 가리키며 맹서하기를 다른 뜻은 없습니다. 태위(사마의)의 글을 여기에 가져 왔습니다. 장군께서는 병권을 없애고 빨리 상부(제상부)로 돌아가야 합니다.”하니 조상이 믿고 좋은 말이라 여겼다. 사마환범이 또 고하여 말하기를 일이 급하니 외부의 말을 듣고 죽을 땅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했다.

 

是夜曹爽意不能決乃拔劍在手嗟歎尋思自黃昏直流涕到曉終是狐疑不定桓範入帳催之曰:「主公思慮一晝夜何尚不能決?」爽擲劍而歎曰:「我不起兵請願棄官但為富家翁足矣!」範大哭出帳曰:「曹子丹以智謀自矜今兄弟三人真豚犢耳!」痛哭不已許允陳泰令爽先納印綬與司馬懿爽令將印送去主簿楊綜扯住印綬而哭曰:「主公今日捨兵權自縛去降不免東市受戮也。」爽曰:「太傅必不失信於我。」

이날 밤 조상은 뜻을 결정하지 못하고 검을 뽑아 손에 쥐고, 탄식하며 깊이 생각하였는데 저녁 무렵부터 눈물을 흘리며 새벽에 이르렀는데도 끝내 여우의 의심으로 결정하지 못하니 사마환범이 군막으로 들어 가 재촉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하루 밤 낮을 생각하셨는데 어찌하여 오히려 결단하지 못하십니까?”하니 조상이 검을 뽑아 던지고 탄식해 말하기를 나는 군대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관직을 버릴 것을 청하고 다만 부유한 가문의 늙은이가 면 충분하다!”했다. 사마환범이 크게 소리 내어 울며 군막을 나와 말하기를 조자단(조진)은 지혜와 꾀로서 자부심을 가졌는데 지금 형제 세 사람은 참으로 돼지나 송아지일 뿐이구나!” 통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허윤과 진태는 조상으로 하여금 먼저 인수를 바쳐 사마의에게 주게 하였다. 사마상이 장군의 인수를 가지고 가게 하였다. 주부 양종이 인수를 붙잡고 소리 내어 울며 말하기를 주공이 오늘 병권을 버리고 스스로를 묶고 가서 항복한다면 동시에서 죽음을 받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했다. 조상이 말하기를 태부께서는 반드시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於是曹爽將印將綬與許陳二人先齎與司馬懿眾軍見無將印盡皆四散爽手下只有數騎官僚到浮橋時懿傳令教曹爽兄弟三人且回私宅餘皆發監聽候敕旨爽等入城時並無一人侍從桓範至浮橋邊懿在馬上以鞭指之曰:「桓大夫何故如此?」範低頭不語入城而去

이에 조상이 인수를 가져다 허윤, 진태 두 사람에게 주고, 먼저 가서 사마의에게 주게 하였다. 여러 군사들이 장군의 인이 없는 것을 보고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다. 조상의 수하들은 다만 몇 기의 관료들뿐이었다. 부교에 이르렀을 때 사마의가 명령을 내려 조상 형제 세 사람으로 하여금 사택으로 돌아가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감옥에 가두고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게 하였다. 조상 등이 성에 들어 갈 때 한 사람의 시종도 없었다. 사마환범이 부교 가에 이르렀을 때 사마의는 말 위에 있으면서 채찍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환대부(환범)가 이 같은 것은 무슨 이유때문인가?”하니 사마환범이 머리를 숙이고 말 없이 성에 들어 갔다.

 

於是司馬懿請駕拔營入洛陽曹爽兄弟三人回家之後懿用大鎖鎖門令居民八百人圍守其宅曹爽心中憂悶羲謂爽曰:「今家中乏糧兄可作書與太傅借糧如肯以糧借我必無相害之心。」爽乃作書令人持去司馬懿覽書遂遣人送糧一百斛運至曹爽府內爽大喜:「司馬公本無害我之心也!」遂不以為憂

이에 사마는 수레를 청하고 진영을 거두어 낙양에 들어갔다. 조상 형제 세 사람이 집에 들어 간 후 사마의는 큰 쇠사슬을 써서 문을 잠그고 살고 있는 백성 팔백 명으로 하여금 그 집을 둘러싸고 지키게 하였다. 조상은 마음속으로 근심하고 번민하였다. 조희가 조상에게 일러 말하기를 지금 집 안에 식량이 결핍하니 형님은 글을 써서 태부에게 주어 식량을 빌려 달라고 하십시오, 만일 흔쾌히 식량을 우리에게 빌려준다면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 틀림없습니다.”했다. 조상이 이에 글을 써서 사람을 시켜 가지고 가게 하였다. 사마의는 글을 보고 마침내 사람을 보내 식량 일백 곡을 보내 조상의 부에 운반하여 이르게 하였다. 조상이 크게 기뻐하며 사마공(사마의)은 본래 우리를 해치려는 마음이 없구나!”하고는 마침내 근심하지 않았다.

 

原來司馬懿先將黃門張當捉下獄中問罪當曰:「非我一人更有何晏鄧颺李勝畢範丁謐等五人同謀篡逆。」懿取了張當供詞卻捉何晏等勘問明白皆稱三月間欲反懿用長枷釘城門守將司蕃告稱桓範矯詔出城口稱太傅謀反懿曰:「誣人反情抵罪反坐。」亦將桓範等皆下獄然後押曹爽兄弟三人並一干(?)人犯皆斬於市曹滅其三族其家產財物盡抄入庫

알고 보니 사마의는 앞서 황문(환관) 장당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죄를 물었다. 장당이 말하기를 나 한 사람뿐만 아니라 다시 하안, 등양, 이승, 필범, 정밀 등 다섯 사람이 함께 찬역(황제의 자리를 빼앗는 일)을 꾀하였습니다.”했다. 사마의는 장당의 자백에 의지하여 하안 등을 체포하여 심문하여 분명히 하니 모두 삼월 사이에 배반하고자 했다고 말하였다. 사마의가 긴 칼을 채우게 했다. 성문을 지키는 장수 사번이 사마환범이 거짓 조서를 가지고 성을 나가 태부가 모반하였다 말하려 했다고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사람을 속여 실정을 반대로 하면 죄가 배반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했다. 또 사마환범 등을 모두 데려다 옥에 가둔 후 조상 형제 세 사람과 일천 명의 범인을 압송하여 모두 거리에서 죽이고 그 삼족을 없애고, 그 집안의 재산과 재물을 모두 약탈하여 창고에 들이게 하였다.

 

時有曹爽從弟文叔之妻乃夏侯令女也早寡而無子其父欲改嫁之女截耳自誓及爽被誅其父復將嫁之女又斷去其鼻其家驚惶謂之曰:「人生世間如輕塵棲弱草何至自苦如此且大家又被司馬氏誅戮已盡守此欲誰為哉?」女泣曰:「吾聞:『仁者不以盛衰改節義者不以存亡易心。』曹氏盛時尚欲保終況今滅亡何忍棄之此禽獸之行吾豈為乎!」懿聞而賢之聽使乞子自養為曹氏後後人有詩曰

그 때 조상의 사촌 동생 문숙의 처가 있었으니 곧 하후령의 딸이다. 일찍 과부가 되었고 자식도 없었다. 그 아버지가 개가시키려 하였으나 여자는 귀를 자르고 스스로 맹서하였다. 조상이 죽음을 당함에 이르러 그 아버지가 다시 시집보내려 하니 여자가 또 그 코를 잘라버렸다. 그 집안이 놀라고 당황하여 일러 말하기를 사람이 사는 세상은 가벼운 먼지가 약한 풀에 붙은 것과 같은데 어찌하여 이 같은 괴로움에 이르려 하는가? 또 대가(큰 집, 시집)가 또한 사마씨에게 죽음을 당하여 이미 다하였는데 이를 지키는(수절하는) 것은 누구를 위하고자 하는 것인가?”했다. 여자가 물며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어진 자는 성대하고 쇠퇴함을 이유로 절개를 바꾸지 않고, 의로운 자는 죽고 사는 것으로서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씨가 성대할 때도 오히려 목숨을 걸고 보존하려 하였는데 하물며 지금 멸망하였으니 어찌 차마 버리겠습니까? 이는 짐승의 행동이니 내가 어찌 할 수 있으리오!”했다. 사마의가 듣고 어질게 여겨 사람을 시켜 아들을 입양하여 조씨의 후예로 삼을 것을 청하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弱草微塵盡達觀夏侯有女義如山丈夫不及裙釵節自顧鬚眉亦汗顏

덧없는 인생 체념하는데 하후씨 여자 의리는 산과 같다. 대장부도 여인의 절개에 미치지 못하니 사내들도 또한 얼굴에 땀 흘린다.

 

卻說司馬懿斬了曹爽太尉蔣濟曰:「尚有魯芝辛敞斬關奪門而出楊綜奪印不與皆不可縱。」懿曰:「彼各為其主乃義人也遂復各人舊職辛敞歎曰:「吾若不問於姊失大義矣!」後人有詩讚辛憲英曰

각설하고 사마의가 조상 태위를 죽이니 장제가 말하기를 오히려 노지, 신창은 성문을 지키는 이를 죽인 후 성문을 열어 나갔고, 양종은 인수를 빼앗고 주지 않았으니 모두 놓아주면 안 됩니다.”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그들은 각각 그 주인을 위한 것이니 곧 의로운 사람이다. 마침내 각각 사람들의 옛 관직을 회복시키라.”했다. 신창이 탄식해 말하기를 내가 만약 누님에게 묻지 않았다면 큰 의리를 잃을 뻔 하였구나!”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신헌영을 기려 말하기를

 

為臣食祿當思報事主臨危合盡忠辛氏憲英曾勸弟古今千載頌高風

남의 신하가 되어 녹을 먹으면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고, 임금을 섬기다 위태로움을 만나면 충성을 다하는 것이 합당하다. 신헌영은 일찍이 동생에게 권하였으니 고금 천년이 지나도 뛰어난 인덕을 칭송한다.

 

司馬懿饒了辛敞等乃出榜曉諭但有曹爽門下一應人等盡皆免死有官者照舊復職軍民和守家業內外安堵鄧二人死於非命果應管輅之言後人有詩讚管輅曰

사마의는 신창 등을 용서한 뒤 곧 방을 내어 깨우치고, 조상의 문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면하였고, 관직에 있던 자들은 옛 날에 비추어 관직을 회복하였다. 군사와 백성들이 같이 가업을 지키니 내외가 안도하였다. 하안과 등양 두 사람이 비명에 죽으니 과연 관락의 말이 맞았다. 후세 사람이 관락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傳得聖賢真妙訣平原管輅相通神。「鬼幽」、「鬼躁分何鄧未喪先知是死人

전하는 말에 성현은 참으로 묘결을 얻었다 하더니 평원 땅 관락은 신과 통하였구나. ‘귀유’, ‘귀조로 하안과 등락을 분별하니 아직 초상 치르지 않았는데도 죽을 사람을 먼저 알았다.” 했다.

 

卻說魏主曹芳封司馬懿為丞相加九鍚懿固辭不肯受芳不淮令父子三人同領國事懿忽然想起:「曹爽全家雖誅尚有夏侯霸守備雍州等處係爽親族倘驟然作亂如何提備必當處置。」即下詔使往雍州取征西將軍夏侯霸赴洛陽議事

각설하고 위나라 임금 조방은 사마의를 봉하여 승상으로 삼고, 구석(아홉 개의 상징물)의 지위를 더하였다. 사마의는 굳게 사양하고 기꺼이 받지 않았다. 조방은 듣지 않고 (사마의)부자 세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국사를 돌보게 하였다. 사마의가 홀연히 생각하기를 조상의 전 가문을 모두 죽였으나 아직도 하후패가 옹주 등지를 지키고 있으니 조상의 친족들이 연계하여 만약 모여 난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대비하겠는가? 반드시 처치하는 것이 마땅하다.”하고는 곧 명령을 내려 옹주로 가 정서장군 하후패에게 의논할 것이 있다고 낙양으로 오라고 했다.

 

夏侯霸聽知大驚便引本部三千兵造反有鎮守雍州剌史郭淮聽知夏侯霸反即率本部兵來與夏侯霸交戰淮出馬大罵曰:「汝既是大魏皇族天子又不曾虧汝何故背反?」霸亦罵曰:「吾祖父於國家多建勳勞今司馬懿何等人滅吾曹氏宗族又來取我早晚必思篡位吾仗義討賊何反之有?」

하후패가 듣고는 크게 놀라 곧 본부의 군대 삼천 명을 이끌고 배반하였다. 옹주를 지키고 있던 곽회는 하후패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듣고 곧 본부의 군대를 통솔하고 와 하후패와 서로 싸웠다. 곽회가 말을 타고나와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대위나라 황족이고, 천자가 또 일찍이 소홀히 대하지 않았는데 무슨 이유로 배반하였는가?”했다. 하후패가 또한 욕하여 말하기를 나의 조부가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웠는데 지금 사마의 등 몇 사람이 우리 조씨 종족을 멸하고, 또 와서 나를 잡으려 하니 조만간 반드시 황제의 지위를 빼앗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의리에 의하여 적을 토벌하는 것인데 어찌 배반했다고 하는가?”했다.

 

淮大怒挺槍驟馬直取夏侯霸霸揮刀縱馬來迎戰不十合淮敗走霸隨後趕來忽聽得後軍吶喊霸急回馬時陳泰引兵殺來郭淮復回兩路夾攻霸大敗而走折兵大半尋思無計遂投漢中來降後主

곽회가 크게 노하여 창을 내밀고 말을 달려 곧바로 하후패를 취하려 하였다. 하후패가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가서 맞이하였다. 싸운 지 십 합이 되지 않아 곽회가 패하여 달아나니 하후패가 뒤를 쫓아가는데 홀연히 후군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것을 듣고 하후패가 급히 말을 돌릴 때 진패가 군대를 이끌고 쇄도해 왔다. 곽회가 다시 돌아와 두 길로 협공하니 하후패가 크게 패하여 군대의 태반이 죽었다. (하후패가)깊이 생각하여도 계책이 없어 마침내 한중으로 들어 가 후주에게 항복하였다.

 

有人報與姜維維心不信令人體訪得實方教入城霸拜見畢哭告前事維曰:「昔微子去周成萬古之名公能匡扶漢室無愧古人也。」遂設宴相待維就席問曰:「今司馬懿父子掌握重權有窺我國之志否?」霸曰:「老賊方圖謀逆未暇及外但魏國新有二人正在妙齡之際若使領兵馬實吳蜀之大患也。」

어떤 사람이 강유에게 보고하였다. 강유가 마음속으로 믿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직접 실정을 살펴보게 한 뒤 비로소 성에 들어오게 하였다. 하후패가 만나는 예를 마친 후 크게 울면서 앞의 일을 말하였다. 강유가 말하기를 옛날 미자는 주나라에 가서 만고의 명예를 이루었습니다. (하후패)은 한나라를 바로잡고 도우신다면 옛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마침내 연회를 베풀고 서로 대작하였다. 강유가 자리에 나아가 물어 말하기를 지금 사마의 부자가 중대한 권력을 장악하고 우리나라를 엿보려는(침입하려는) 뜻이 있습니까?”하니 하후패가 말하기를 늙은 도적이 바야흐로 모역을 도모하려 하고 있으니 밖의 일에 미칠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위나라에 새로운 두 사람이 있는데 바로 묘령의 나이이지만 만약 병마를 거느리게 한다면 진실로 오, 촉의 큰 근심이 될 것입니다.”했다.

 

維問:「二人是誰?」霸告曰:「一人現為秘書郎乃潁川長社人姓鍾名會字士季太傅鍾繇之子幼有膽智繇嘗率二子見文帝會時年七歲其兄毓年八歲毓見帝惶懼汗流滿面帝問毓曰:『卿何以汗?』毓對曰:『戰戰惶惶汗出如漿。』帝問會曰:『卿何以不汗?』會對曰:『戰戰慄慄汗不敢出。』帝獨奇之及稍長喜讀兵書深明韜略司馬懿與蔣濟皆稱其才

강유가 묻기를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하니 하후패가 고하여 말하기를 한 사람은 현재 비서랑이 되었는데 곧 영천 장사 사람으로 성은 종, 이름은 회이고, 자는 사계인데 태부 종요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담력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종요가 일찍이 두 아들을 데리고 문제를 뵈었습니다. 종회의 그 때 나이 일곱 살이었고, 그 형 종육은 여덟 살이었습니다. 종육은 황제를 보자 당황하고 두려워하여 얼굴 가득 땀을 흘렸습니다. 황제가 종육에게 물어 말하기를 경은무슨 이유로 땀을 흘리는가?’하니 종육이 대답해 말하기를 놀라고 두려워 땅이 나오는 것이 장과 같습니다.’ 했습니다. 황제가 종회에게 물어 말하기를 경은 어찌하여 땀을 흘리지 않는가?’하니 종회가 대답해 말하기를 두렵고 떨려 땀이 감히 나오지 못합니다.’하니 환제가 그를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점차 자라면서 병서(병법서) 읽기를 좋아하여 병법에 깊이 밝습니다. 사마의와 장제가 모두 그 재능을 칭찬하였습니다.

 

一人現為掾吏乃義陽人也姓鄧名艾字士載幼年失父素有大志但見高山大澤輒窺度指畫何處可以屯兵何處可以積糧何處可以埋伏人皆笑之獨司馬懿奇其才遂令參贊軍機艾為人口吃每奏事必稱懿戲謂曰:『卿稱艾艾當有幾艾?』應聲曰:『鳳兮鳳兮故是一鳳。』其資性敏捷大抵如此二人深可畏也維笑曰:「量此孺子何足道哉!」

한 사람은 현재 연리(하급관리)가 되었으니 곧 의양 사람입니다. 성은 등, 이름은 애이고 자는 사재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평소 큰 뜻이 있어 높은 산과 큰 못을 보면 문득 (계책을) 짐작하고, 어느 곳에 군대를 주둔하고, 어느 곳에 식량을 쌓으며, 어느 곳에 매복해야 할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사마의가 그 재능을 기이하게 여겨 마침내 참여하여 군사의 일을 돕게 하였습니다. 등애는 사람됨이 말을 더듬어 매번 일을 아뢸 때마다 , 하자 사마의가 희롱(농담)하여 말하기를 경이 애, 애 하니 몇의 등애가 있는 것이오?’하니 대답해 말하기를 봉이여 봉이여 하여도 한 마리 봉일 뿐입니다.’했습니다. 그 자질과 성품이 민첩하기가 대개 이와 같습니다. 두 사람은 깊이 두려워할만 합니다. 했다. 강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이 어린아이들을 어찌 말할 수 있겠오!” 했다.

 

於是姜維引夏侯霸至成都入見後主維奏曰:「司馬懿謀殺曹爽又來賺夏侯霸霸因此投降目今司馬懿父子專權曹芳懦弱魏國將危臣在漢中有年兵精糧足臣願領王師即以霸為鄉導官進取中原重興漢室以報陛下之恩以終丞相之志。」尚書令費褘諫曰:「近者蔣琬董允皆相繼而亡內治無人伯約只宜待時不宜輕動。」維曰:「不然人生如白駒過隙似此遷延歲月何日恢復中原乎?」褘又曰:「孫子云:『知彼知己百戰百勝。』我等皆不如丞相遠甚丞相尚不能恢復中原何況我等?」維曰:「吾久居隴上深知羌人之心今若結羌人為援雖未能克復中原自隴而西可斷而有也。」後主曰:「卿既欲伐魏可盡忠竭力勿墮銳氣以負朕命。」

이에 강유가 하후패를 인도하여 성도에 이르러 들어 가 후주를 뵈었다. 강유가 아뢰어 말하기를 사마의가 조상을 죽이고 또 와서 하후패를 속이므로 하후패가 이 때문에 등러와 항복하였습니다. 지금 사마의 부자가 권력을 오로지하고, 조방은 유약하여 위나라가 장차 위태로워졌습니다. 신이 한중에 있은 지 일년여에 군대는 정에롭고 양식은 풍족합니다. 신은 왕의 군대를 거느리고 곧 하후패를 향도관(길잡이)로 삼아 진격하여 중원을 취하여 한나라를 중흥시키는 것으로서 페하의 은혜를 갚고 승상의 뜻을 이루려합니다.”합니다. 상서령 비위가 간하여 말하기를 최근에 장완, 동윤이 모두 서로 이어 죽고, 안을 다스림 사람이 없습니다. 백약(강유)은 다만 때를 기다려야 하고, 가벼이 움직이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은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는 것과 같아서 이처럼 세원을 지연시키면 어느 날 중원을 회복하겠습니까?”했다. 비위가 또 말하기를 손자(손빈)가 말하기를 남을 악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백 번 이긴다.’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승상의 심원함 같지 못합니다. 승상도 오히려 중원을 회복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오래 동안 농산서쪽지역(감숙성)에 살라 강족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지금 만약 강족 사람들과 맺어 원군으로 삼는다면 비록 중원을 회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농서를 끊어 소유할 수 있습니다.”했다. 후주가 말하기를 경이 이미 위나라를 정벌하고자 하니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날카로운 기운을 떨어뜨리는 것으로서 짐의 명을 저버리지 말라.”했다.

 

於是姜維領敕辭朝同夏侯霸逕到漢中計議起兵維曰:「可先遣使去羌人處通盟然後出西平近雍州先築二城於麴山之下令兵守之以為犄角之勢我等盡發糧草於川口依丞相舊制次第進兵。」是年秋八月先差蜀將句安李歆同引一萬五千兵往麴山前連築二城句安守東城李歆守西城

이에 강유가 후주의 명을 받고, 하후패와 함께 빠르게 한중에 이르러 군대를 일으킬 계책을 의논하였다. 강유가 말하기를 먼저 사자를 강족 사람들이 있는 곳에 보내 동맹을 맺은 후에 서평을 나가 옹주에 접근해야겠습니다. 먼저 국산 아래 두 개의 성을 쌓고 군대로 하여금 지키게 하는 것으로서 사슴뿔의 형세를 삼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식량과 말먹이 풀을 천(서천)의 입구에 운반하고 승상의 옛 제도에 의거하여 차례로 군대를 진군시킵니다.”했다. 이 해 가을 팔월 먼저 촉의 장수 구안, 이흠을 보내 함께 일 만 오 천의 군대를 이끌고 국산 앞으로 가 두 개의 성을 이어 쌓게 하고, 구안은 동쪽 성을 지키고 이흠은 서쪽 성을 지키게 했다.

 

早有細作報與雍州剌史郭淮淮一面申報洛陽一面遣副將陳泰引兵五萬來麴山與蜀兵交戰句安李歆各引一軍出迎因兵少不能抵敵退入城中泰令兵四面圍住攻打又以兵斷其漢中糧道句安李歆城中糧缺郭淮自引兵亦到看了地勢忻然而喜回到寨中乃與陳泰計議曰:「此城山勢高阜必然水少須出城取水若斷其上流蜀兵皆渴死矣。」

세작(첩자)이 재빨리 옹주자사 곽회에게 보고하였다. 곽회는 한 편으로는 낙양에 보고하고, 한 편으로는 부장 진태를 보내 군대 오 만을 이끌고 국산으로 가 촉의 군대와 서로 싸우게 하였다. 구안, 이흠은 각각 일 일 군씩을 이끌고 나가 맞이하였으나 군대가 적어 적을 막을 수 없자 물러나 성 안으로 들어 갔다. 진태가 군대를 이끌고 사면을 포위하고 공격하고, 또한 군대로 한중의 식량 운반 길(보급로)을 끊었다. 구안과 이흠은 성 안에 식량이 떨어졌다. 곽회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또한 이르러 지세를 보고 기뻐하며 돌아 가 영채 안에 이르러 진태와 계책을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 성은 산세가 높은 언덕에 있으니 반드시 물이 부족하여 성을 나와 물을 길을 것이다. 만약 그 상류를 끊으면 촉의 군대는 모두 목말라 죽을 것이다.”했다.

 

遂令軍士掘土堰斷上流城中果然無水李歆引兵出城取水雍州兵圍困甚急歆死戰不能出只得退入城去句安城中亦無水乃會了李歆引兵出城併在一處大戰良久又敗入城去軍士沽渴安與歆曰:「姜都督之兵至今未到不知何故。」歆曰:「我當捨命殺出求救。」遂引數十騎開了城門殺將出來雍州兵四面圍合歆奮死衝突方纔得脫只落得獨自一人身帶重傷餘皆死於亂軍之中是夜北風大起陰雲布合天降大雪因此城內蜀兵分糧化雪而食

마침내 군사로 하여금 땅을 파 제방을 만들어 상류를 끊었다. 성 안이 과연 물이 없어졌다. 이흠이 군대를 이끌고 성을 나와 물을 길으려할 때 옹주의 군대가 겹겹이 포위하니 (촉 군대의)곤궁함이 위급하였다. 이흠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도 탈출 할 수 없어 다만 물러나 성으로 들어갔다. 구안이 성안에 또한 물이 없어 이에 이흠을 만나 군대를 이끌고 성을 나가 한 곳에서 합하여 크게 싸우기를 오래하였으나 또한 패하여 성으로 들어갔다. 군사들이 마실 물이 다하여 목말라 하였다. 구안이 이흠에게 말하기를 강유 도독의 군대가 지금까지 이르지 않으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하니 이흠이 말하기를 내가 목숨을 걸고 쇄도해 나가 구원을 청하겠습니다.”하고는 마침내 수십 기를 이끌고 성문을 열고 쇄도해 나갔다. 옹주 군사들이 사방에서 포위하니 이흠이 죽음을 무릅쓰고 치고나가 비로소 겨우 벗어날 수 있었으나 다만 벗어난 이는 이흠 자신 혼자뿐으로 이흠 자신도 중상을 입었고, 나머지는 모두 어지러운 군대 안에서 죽었다. 이날 밤 북풍이 크게 불면서 먹구름이 끼면서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다. 이로 인하여 성 안의 촉 군사들이 식량을 나누고 눈을 녹여 먹었다.

 

卻說李歆殺出重圍從西山小路行了兩日正迎著姜維人馬歆下馬伏地告曰:「麴山二城皆被魏兵圍困絕了水道幸得天降大雪因此化雪度日甚是危急。」維曰:「吾非救遲為聚羌兵未到因此誤了。」

각설하고 이흠은 두터운 포위를 벗어나 사산의 작은 길을 따라 이틀을 가 강유의 인마를 만났다. 이흠이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보고해 말하기를 국산의 두 성이 모두 위나라 군대에게 포위당하여 물길이 끊어졌습니다. 다행히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기 때문에 눈을 녹여 어렵게 지내고 있으나 매우 위급합니다.”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내가 구원을 늦춘 것이 아니라 강족의 군대를 모으려 하였으나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착오가 생긴 것입니다.” 했다.

 

遂令人送李歆入川養病維問夏侯霸曰:「羌兵未到魏兵圍困麴山甚急將軍有何高見?」霸曰:「若等羌兵到麴山二城皆陷矣吾料雍州兵盡來麴山攻打雍州城定然空虛將軍可引兵逕往牛頭山抄在雍州之後郭淮陳泰必回救雍州則麴山之圍自解矣。」維大喜曰:「此計最善!」於是姜維引兵望牛頭山而去

마침내 사람을 시켜 천(서천, )에 들어 가 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강유가 하후패에게 물어 말하기를 강족 군대는 이르지 않고, 위나라 군대는 국산을 포위하여 매우 위급하니 장군께서는 어떤 훌륭한 견해가 있습니까?”하니 하후패가 말하기를 강족 군대가 국산에 이르기를 기다리다가는 두 성이 모두 함락될 것입니다. 내가 옹주의 군대를 생각해보니 모두 국산을 공격하러 갔으니 옹주성은 비었을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군대를 이끌고 재빨리 우두산으로 가서 습격하여 옹주의 뒤에 있으면 곽회와 진태는 반드시 돌아 와 옹주를 구원할 것이니 국산의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했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 계책이 가장 좋습니다.”했다. 이에 강유는 군대를 이끌고 우두산을 향해 갔다.

 

卻說陳泰見李歆殺出城去了乃謂郭淮曰:「李歆若告急於姜維姜維料吾大兵皆在麴山必抄牛頭山襲吾之後將軍可引一軍去取洮水斷絕蜀兵糧道吾分兵一半逕往牛頭山擊之彼若知糧道已絕必然自走矣。」郭淮從之遂引一軍暗取洮水陳泰引一軍逕往牛頭山來

각설하고 진태는 이흠이 성을 쇄도해 나오는 것을 보고 곽회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흠이 만약 강유에게 위급함을 고한다면 강유는 우리의 큰 군대가 모두 국산에 있다 생각하고 반드시 우두산을 선택하여 우리의 뒤를 습격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일 군을 이끌고 가 조수를 취하여 촉 군대의 식량 보급로를 끊어야 하고, 군대의 반을 나누어 지름길로 우두산에 가 공격해야 합니다. 그들이 만약 식량 보급로가 끊긴 것을 안다면 반드시 스스로 달아날 것입니다.”했다. 곽회가 그 말을 따라 마침내 일 군을 이끌고 몰래 조수를 취하였다. 진태는 일 군을 이끌고 우두산으로 갔다.

 

卻說姜維兵至牛頭山忽聽得前軍發喊報說魏兵截住去路維慌忙自到軍前視之陳泰大喝曰:「汝欲襲吾雍州吾已等候多時了!」維怒挺槍縱馬直取陳泰泰揮刀而迎戰不三合泰敗走維揮兵掩殺雍州兵退回占住山頭維收兵就牛頭山下寨維每日令兵搦戰不分勝負夏侯霸謂姜維曰:「此處不是久停之所連日交戰不分勝負乃誘兵之計耳必有異謀不如暫退再作良圖。」

각설하고 강유의 군대가 우두산에 이르렀을 때 홀연히 군대 앞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것을 들었는데 위나라 군대가 가는 길을 끊었다고 보고하였다. 강유가 황망히 스스로 군대 앞에 이르러 보았다. 진태가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기를 너는 우리 옹주를 습격하려 하는구나! 내가 이미 기다린 지 오래되었다.”했다. 강유가 노하여 창을 내밀고 말을 달려 바로 진태에게 달려들었다. 진태가 칼을 휘두르며 맞이하였다. 싸운 지 삼합이 되지 않아 진태가 패하여 달아났다. 강유가 군대를 지휘하여 습격해 죽였다. 옹주의 군대가 물러나 돌아 가 우두산을 점령하였다. 강유가 군대를 거두어 우두산에 나아가 영채를 세웠다. 강유가 매일 군대로 하여금 도전하였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하후패가 강유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곳은 오래 머물만한 곳이 아닙니다. 연일 서로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은 군대를 유인하는 계책일 뿐이니 반드시 다른 꾀가 있을 것입니다. 잠시 물러 나 다시 좋은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正言間忽報郭淮引一軍取洮水斷了糧道維大驚急令夏侯霸先退維自斷後陳泰分兵五路趕來, 維獨拒五路總口戰住魏兵泰勒兵上山矢石如雨維急退到洮水之時郭淮引兵殺來維引兵往來衝突魏兵阻其去路密如鐵桶維奮死殺出折兵大半飛奔上陽平關來

말 하는 사이에 홀연히 곽회가 일 군을 이끌고 조수를 취하여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고 보고하였다. 강유가 크게 놀라 급히 하후패로 하여금 먼저 물러나게 하고, 강유 자신은 뒤를 끊었다. 진태가 군대를 다섯 길로 나누어 쫒으니 강유가 홀로 다섯 길이 만나는 입구를 막고 위나라 군대와 싸워 막았다. 진태가 군대를 돌려 산에 올라 화살과 돌을 비 오듯 날려 보냈다. 강유가 급히 물러나 조수에 이르렀을 때 곽회가 군대를 이끌고 쇄도해 왔다. 강유가 군대를 이끌고 왕래하며 충돌하였다. 위나라 군대가 가는 길을 막은 것이 빽빽한 것이 마치 쇠 통과 같았다. 강유가 죽음을 무릅쓰고 벗어났는데 태반의 군대가 죽고 다친 채 날듯이 양평관으로 들어갔다.

 

前面又一軍殺到為首一員大將縱馬棋(?)刀而出那人生得圓面大耳方口厚脣左目下生個黑瘤瘤上生數十根黑毛乃司馬懿長子驃騎將軍司馬師也維大怒曰:「孺子焉敢阻吾歸路!」拍馬挺槍直來刺師師揮刀相迎只三合殺敗了司馬師維脫身逕奔陽平關來城上人開門放入姜維司馬師也來搶關兩邊伏弩齊發一弩發十矢乃武侯臨終時所遺連弩之法也正是難支此日三軍敗獨賴當年十矢傳未知司馬師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앞쪽에서 또 일 군이 쇄도해오는데 우두머리 되는 한 명의 대장이 말을 달리며 칼을 휘두르며 나왔다. 람의 모습은 얼굴이 둥글고 귀는 크며 네모 난 입에 입술이 두터웠다. 왼쪽 눈 아래에 한 개의 검은 점이 있고, 점 위에 십여 가닥의 검은 털이 났으니 곧 사마의의 장자 표기장군 사마사였다. 강유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어린아이가 어찌 감히 내가 돌아가는 길을 막는가!”하고는 말에 박차를 가하여 가서 곧바로 사마사를 찔렀다. 사마사가 칼을 휘두르며 맞이하였다. 삼합 만에 사마사를 패하게 하고 강유가 재빨리 양평관으로 달려갔다. 성 위의 사람이 문을 열고 강유를 들어오게 하였다. 사마사가 양평관을 빼앗으려 하자 양 쪽에 숨어 있던 쇠뇌를 일제히 발사하였는데 하나의 쇠뇌로 열 개의 화살을 발사하니 곧 무후(제갈공명)가 임종 때 남긴 연노의 법이었다. 바로 이러하다. 이 날 삼군이 패하여 지탱하기 어려운데 오직 지난 날 전해진 열 개 화살에 의지할 뿐이구나. 사마사의 생명이 어찌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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