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八回:丁奉雪中奮短兵,孫峻席間施密計
제108회 정봉은 눈 속에서 짧은 병기로 떨쳐 싸우고, 손준은 연회에서 비밀 계책을 쓰다.
卻說姜維正走,遇著司馬師引兵攔截。原來姜維取雍州之時,郭淮飛報入朝。魏主與司馬懿商議停當。懿遣長子司馬師引兵五萬,前來雍州助戰。師聽知郭淮敵退蜀兵,師料蜀兵勢弱,就來半路擊之;直趕到陽平關,卻被姜維用武侯所傳連弩法,於兩邊暗伏連弩百餘張,一弩發十矢,皆是藥箭。兩邊弩箭齊發,前軍連人帶馬射死不知其數。司馬師於亂軍之中,逃命而回。
각설하고 강유는 달아나다 우연히 사마사가 군대를 이끌고 가는 것을 만났다. 알고 보니 강유가 옹주를 취하였을 때 곽회가 조정에 들어 가 보고하였다. 위나라 임금이 사마의와 처리(막을 것)를 상의하였다. 사마의가 장자 사마사를 보내 군대 오만을 이끌고 앞서 옹주에 가 사움을 돕게 하였다. 사마사는 곽회가 촉의 군대를 물리쳤다는 것을 들었다. 사마사는 촉의 군대 형세가 약하다 여기고 나아가 중간에서 공격하려하여 바로 쫓아 양평관에 이르렀다. 그러나 강유는 무후(제갈공명)가 전해 준 연노법을 사용하였다. 양 쪽에 숨겨둔 연노가 백여 개로 한 연노가 열 개의 화살을 발사하는데 모두 약전(독화살)이었다. 양 쪽의 연노의 화살을 일제히 발사하니 앞의 군대가 연이어 사람들이 말과 함께 화살에 맞아 죽었는데 그 수를 알지 못하였다. 사마사가 환란 중에 목숨을 구해 도망하여 돌아갔다.
卻說麴山城中,蜀將句安見援兵不至,乃開門降魏。姜維折兵數萬,領敗兵回漢中屯紮。司馬師自還洛陽。至嘉平三年秋八月,司馬懿染病,漸漸沈重,乃喚二子至榻前囑曰:「吾事魏歷年,官授太傅,人臣之位極矣;人皆疑吾有異志,吾嘗懷恐懼。吾死之後,汝二人善理國政。慎之!慎之!」言訖而亡。長子司馬師,次子司馬昭,二人申奏魏主曹芳。芳厚加祭葬,優錫贈諡。封師為大將軍,總領尚書機密大事;昭為驃騎上將軍。
각설하고 국산 성 안에서 촉의 장수 구안은 구원병이 이르지 않는 것을 보고 이에 성문을 열고 위나라에 항복하였다. 강유는 수 만의 군대를 잃고 패한 군대를 거느리고 한중으로 돌아 가 주둔하였다. 사마사는 낙양으로 돌아갔다. 가평 삼년 가을 팔월에 이르러 사마의가 병에 덜려 점점 깊어졌다. 이에 두 아들을 침상 앞으로 불러 부탁해 말하기를 “내가 위나라를 섬긴 지 여러 해로 관직이 태부에 이르렀으니 다른 사람의 신하로 지위가 지극하니 사람들이 모두 내가 다른 뜻이 있다고 의심하여 내가 늘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내가 죽은 후 너희 두 사람은 나라의 정사를 잘 다스리라. 삼가고 삼가라!”하는 말을 마치고 죽었다. 장자 사마사, 차자 사마소 두 사람이 위나라 임금 조방에게 보고해 아뢰었다. 조방(위나라 임금)이 후하게 제사와 장례를 도와주게 하고 좋은 시호를 내렸다. 사마사를 봉하여 대장군을 삼아 상서와 기밀대사를 총괄하게 하게 하고, 사마소를 표기상장군을 삼았다.
卻說吳主孫權,先有太子孫登,乃徐夫人所生,於吳赤烏四年身亡,遂立次子孫和為太子,乃瑯琊王夫人所生。和因與金公主不睦,被公主所譖,權廢之。和憂恨而死。又立三子孫亮為太子,乃潘夫人所生。此時陸遜、諸葛瑾皆亡,一應大小事務,皆歸於諸葛恪。
각설하고 오나라 임금 손권은 앞 서 태자 손등이 있었으니 곧 서 부인이 낳았고, 오나라 적오 사년에 죽자 마침내 차자 손화를 세워 태자로 삼으니 곧 난야왕부인이 낳았다. 손화는 금 공주와 화목하지 못하여 공주의 참소로 손권이 그를 폐하였다. 손화가 근심하고 원망하다 죽었다. 또 셋째 아들 손량을 세워 태자로 삼았는데 곧 번 부인이 낳았다. 이 때 육손, 제갈근은 모두 죽었고, 일체의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제갈각에게 돌아갔다.
太和元年,秋八月初一日,忽起大風,江海湧濤,平地水深八尺。吳主先後所種松柏,盡皆拔起,直飛到建業城南門外,倒插在道上。權因此受驚成病。至年八月內,病勢沈重,乃召太傅諸葛恪、大司馬呂岱至榻前囑以後事。囑訖而薨。在位二十四年,壽七十一歲。乃蜀漢延熙十五年也。後人有詩曰:紫髯碧眼號英雄,能使臣僚肯盡忠。二十四年興大業,龍盤虎踞在江東。
태화 원년(1년) 가을 팔월 초 일일에 홀연히 큰 바람이 일고 강가 바다에 파도가 치솟아 평지에 물 깊이가 여덟 자였다. 오나라 임금이 앞뒤에 심은 송백이 모두 뽑혀 곧 바로 날아 건업성 남문 밖에 이르러 거꾸로 길 위에 꼿혔다. 손권이 이 때문에 놀라 병이 들었다. 그 해 팔월에 이르러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 이에 태부 제갈각, 대사마 여대를 불러 침상 앞에 이르게 하고 뒤의 일을 부탁하였다. 부탁을 마치고 죽었다. 위(황제 자리)에 있은 지는 이십사년이고, 나이는 칠십일세였다. 촉한 연희 십오년이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는데 “자줏빛 수염에 푸른 눈의 영웅이라 불려 신하들이 모두 기꺼이 충성을 다하게 하였네. 이십사년간 대업을 일으켜 강동에 용처럼 서리고 범처럼 걸터앉았다.” 했다.
孫權既亡,諸葛恪立孫亮為帝,大赦天下,改元大興元年;諡權曰大皇帝,葬於蔣陵。早有細作探知其事,報入洛陽。司馬師聞孫權已死,遂議起兵伐吳。尚書傅嘏曰:「吳有長江之險,先帝屢次征伐,皆不遂意;不如各守邊疆,乃為上策。」師曰:「天道三十年一變,豈皇帝為鼎峙乎?吾欲伐吳。」昭曰:「今孫權新亡,孫亮幼懦,其隙正可乘也。」遂令征南大將軍王昶,引兵十萬攻東興;鎮南都督毋丘儉,引兵十萬攻武昌;三路進發。又遣弟司馬昭為大都督,總領三路軍馬。
손권이 죽고난 뒤 제갈각이 손량을 세워 황제로 삼고 천하의 죄수를 크게 풀어주고 연호를 고쳐 대흥 원년이라 하였다. 손권의 시호를 대황제라 하고 장릉에 장례하였다. 재빨리 세작(첩자)이 그 일을 탐지하고는 낙양에 보고하였다. 사마사는 손권이 죽었다는 것을 듣고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정벌할 것을 의논하였다. 상서 부하가 말하기를 “오나라는 장강의 험준함이 있어 선제(죽은 황제)가 여러 차례 정벌하려 하였으나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각자 변강(국경)을 지키는 것으로 상책을 삼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사마사가 말하기를 “하늘의 도도 삼십년에 한 번 변하는데 어찌 황제가 솥발처럼 대치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오나라를 정벌하려 합니다.”했다. 사마소가 말하기를 “지금 손권이 죽었고, 손량은 어리고 유약하니 그 틈을 바로 타야 합니다.”했다. 마침내 정남장군 왕창으로 하여금 군대 십만을 이끌고 동흥을 공격하게 하고, 진남도독 무구검(관구검)으로 하여금 군대 십만을 이끌고 무창을 공격하게 하고 세 길로 나누어 출발하였다. 또 동생 사마소를 보내 대도독으로 삼아 세 길의 군마를 총괄하게 하였다.
是年冬十月,司馬昭兵至東吳邊界,屯住人馬,喚王昶、胡遵、毋丘儉到帳中計議曰:「東吳最緊要處,惟東興郡也。今他築起大堤,左右又築兩城,以防巢湖後面攻擊,諸公須要仔細。」遂令王昶、毋丘儉各引一萬兵,列在左右,且勿進發;待取了東興郡,那時一齊進兵。」昶、儉二人受令而去,昭又令胡遵為先鋒,總領三路兵前去,先搭浮橋,取東興大堤;若奪得左右二城,便是大功。遵領兵來搭浮橋。
이 해 겨울 시월 사마소는 군대가 동오의 국경에 이르자 인마를 주둔하고 왕창, 호준, 무구검(관구검)을 불러 군막에 이르자 계책을 의논하여 말하기를 “동오의 가장 긴요한 곳은 오직 동흥군일 뿐입니다. 지금 그들이 큰 둑을 쌓고, 좌우에 또 두 개의 성을 쌓는 것으로서 소호의 뒤 공격을 방비하니 여러 공들께서는 반드시 꼼꼼하게 해야 합니다.”했다. 마침내 왕창, 무구검(관구검)이 각각 일만의 군대를 이끌고 좌우에 벌려 서 있으면서 또한 출발하지 않고, 동흥군을 취하기를 기다리면서 그 때 일제히 진군하려 하였다. 왕창과 무구검(관구검) 두 사람이 명령을 받고 갔다. 사마소가 또 호준으로 하여금 선봉을 삼아 세 길의 군대를 모두 거느리고 전진하여 먼저 부교를 설치하여 동흥군의 큰 뚝을 취하고, 만약 좌우의 두 성을 빼앗을 수 있다면 곧 이는 큰 공을 세우는 것이라 했다. 호준이 군대를 지휘해 가서 부교를 설치하였다.
卻說吳太傅諸葛恪,聽知魏兵三路而來,聚眾商議。平北將軍丁奉曰:「東興乃東吳緊要處所,若有失,則南郡、武昌危矣。」恪曰:「此論正合吾意。公可就引三千水兵從江中去。吾隨後令呂據、唐咨、劉纂各引一萬步兵,分三路來接應。但聽連珠砲響,一齊進兵,吾自引大兵後至。」丁奉得令,即引三千水兵,分作三十隻船,望東興而來。
각설하고 오나라 태부 제갈각은 위나라 군대가 세 길로 온다는 것을 듣고 무리를 모아 상의하였다. 평북장군 정봉이 말하기를 “동흥군은 동오의 긴요한 곳이니 만약 잃게 된다면 곧 남군, 무창이 위태로워집니다.”했다. 제갈각이 말하기를 “이 논의가 바로 내 뜻과 부합합니다. 공(정봉)이 삼천의 수군을 이끌고 나가 강을 따라 가십시오. 내가 위를 따라 여거, 당자, 유찬으로 하여금 각각 일만의 보병을 이끌고 세 길로 나누어 가 상황에 맞게 대응하겠습니다. 다만 연주포가 울리는 것을 듣고 일제히 진군하면 내가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뒤에 이를 것입니다.”했다. 정봉이 명령을 받고 곧 삼천의 수군을 이끌고 삼십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동흥군을 향해 갔다.
卻說胡遵渡過浮橋,屯軍於堤上,差桓嘉、韓綜攻打二城。左城中乃吳將全懌把守,右城中乃吳將劉略守把。此二城高峻堅固,急切攻打不下。全、劉二人見魏兵勢大,不敢出戰,死守城池。
각설하고 호준은 부교를 건너 군대를 제방 위에 주둔하고, 환가, 한종을 보내 두 성을 치게 하였다. 왼쪽 성 안에는 곧 오나라 장수 전택이 지키고 있었고, 로른 쪽 성에는 곧 오나라 장수 유략이 지키고 있었다. 이 두 성은 높고 험준하여 급하고 맹렬히 공격하여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전택과 유략 두 장수는 위나라 군대의 형세가 큼을 보고 감히 나가 싸우지 못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성지를 지켰다.
胡遵在徐州下寨。時值嚴寒,天降大雪,胡遵與眾將設席高會,忽報水上有三十隻戰船來到。遵出寨視之,見船將次傍岸,每船上約有百人。遂還帳中,謂諸將曰:「不過三千人耳,何足懼哉!」只令部將哨探!仍前飲酒。丁奉將船一字兒拋在水上,乃謂部將曰:「大丈夫立功名,正在今日!」遂令眾軍脫去衣甲,卸了頭盔,不用長槍大戟,止帶短刀。魏兵見之大笑,更不準備。
호준은 서주에 영채를 세웠다. 그 때는 매우 추운 겨울로 하늘에서 큰 눈이 내리니 호준과 여러 장수들과 성대한 연회를 열고 있는데 홀연히 물 위에 삼십 척의 전성이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호준이 영채를 나가 보니 배가 장차 강가에 오는데 배마다 약 백여 명의 사람이 타고 잇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군막 안으로 돌아 와 여러 장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삼천 명에 지나지 않으니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하고는 다만 부장들로 하여금 정탐하게 하고 앞과 같이 그대로 술을 마셨다. 정봉이 강 위에 배를 일자(一字)로 벌리게 하고 부장에게 일러 말하기를 “대장부가 공명을 세우는 것은 바로 오늘에 달려 있구나!”하고는 마침내 여러 군사들과 함께 갑옷을 벗고 투구를 벗은 뒤 긴 창과 큰 극을 쓰지 말고 다만 짧은 칼만 휴대하게 했다. 위나라 군대가 그것을 보고 크게 웃으며 다시 대비하지 않았다.
忽然連珠砲響了三聲,丁奉扯刀當先,一躍上岸。眾軍皆拔短刀,隨奉上岸,砍入魏寨。魏兵措手不及,韓綜急拔帳前大戟迎之,早被丁奉搶入懷內,手起刀落,砍翻在地。桓嘉從左邊轉出,忙綽鎗刺丁奉,被奉挾住槍桿。嘉棄槍而走,奉一刀飛去,正中左肩,嘉望後便倒。奉趕上,就以槍刺之。三千吳兵,在魏寨中左衝右突。胡遵急上馬奪路而走。魏兵齊奔上浮橋,浮橋己斷,大半落水而死;殺倒在雪地者,不知其數。車仗馬匹軍器,皆被吳兵所獲。司馬昭、王昶、毋丘儉聽知東興兵敗,亦勒兵而退。
홀연히 연주포가 세 번 울리자 정봉이 칼을 가지고 앞장 서 하번에 뛰어 언덕에 올랐다. 여러 군사들이 모두 짧은 칼을 뽑아 정봉을 따라 언덕에 올라 위나라 영채에 베며 들어 왔다. 위나라 군대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데 한종이 급히 군막 앞의 큰 극을 뽑아 그들을 맞이하였으나 정봉이 창으로 찌르고 손으로 칼을 들어 내리치니 베어져 땅에 쓰러졌다. 환가가 왼쪽으로부터 돌아 나와 황망히 창으로 정봉을 찔렀으나 정봉이 창을 옆구리에 끼고 막았다. 환가가 창을 버리고 달아나니 정봉이 하나의 칼을 던져 왼쪽 어깨에 맞추었다. 환가가 뒤로 쓰러졌다. 정봉이 쫓아 가 창으로 찔렀다. 삼천 명의 오나라 군대가 위나라 영채 안에서 좌충우돌하였다. 호준이 급히 말에 올라 길을 뚫고 달아났다. 위나라 군대가 일제히 부교 위로 달아나니 부교가 끊어지면서 태반이 물에 떨어져 죽었는데 눈 위에 엎어져 죽은 자들이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수레, 말, 무기를 모두 오나라 군대에게 빼앗겼다. 사마소, 왕창, 무구검(관구검)은 동흥군의 군대가 패하였다는 것을 듣고 또한 군대를 돌려 물러났다.
卻說諸葛恪引兵至東興,收兵賞勞已畢,乃聚諸將曰:「司馬昭兵敗北歸,正好乘勢進取中原。」遂一面遣人齎看入蜀,求姜維進兵攻其北,許以平分天下;一面起大兵二十萬,來伐中原。
각설하고 제갈간은 군대를 이끌고 동흥군에 이르러 군대를 거두고 공로에 대해 상 주기를 마치고 여러 장수를 모아 말하기를 “사마소의 군대가 패하고 북쪽으로 돌아갔으니 바로 형세를 타고 중원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하고는 마침내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 촉에 들어 가 강유에게 군대를 진군시켜 그 북쪽을 공격할 것을 청하고, 공평하게 천하를 나눌 것을 제안하고, 한편으로는 대군 이십만을 일으켜 가서 중원을 정벌하러 갔다.
臨行時,忽見一道白氣,從地而起,遮斷三軍,對面不見。蔣延曰:「此氣乃白虹也,主喪兵之兆。太傅只可回朝,不可伐魏。」恪大怒曰:「汝安敢出不利之言,以慢吾軍心!」叱武士斬之。眾皆告免,恪乃貶蔣延為庶人。仍催兵前進。丁奉曰:「魏以新城為總隘口,若先取得此城,司馬昭破膽矣。」
행군하려 할 때 홀연히 한 줄기 흰 기운이 땅에서 일어나 삼군을 막는 것을 보았는데 얼굴을 마주하면 보이지 않았다. 장연이 말하기를 “이 기운은 곧 흰 무지개로 군대를 잃을 조짐을 주관합니다. 태부께서는 조정에 돌아가야 하고 위나라를 정벌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제갈각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어찌 감히 이롭지 안흔 말을 하여 군대의 마음을 태만하게 하는가!”하고는 무사에게 그를 죽이라고 소리쳤다. 무리들이 모두 면할 것을 말하니 제갈각이 장연을 내쫓아 서인으로 만들었다. 그대로 군대를 재촉하여 전진하였다. 정봉이 말하기를 “위나라는 신성을 험하고 좁은(모든 요해처) 목으로 삼고 있으니 만약 먼저 이 신성을 얻을 수 있으면 사마소는 담(쓸개)이 깨질 것입니다.”했다.
恪大喜,即趲兵直至新城。守城牙門將軍張特,見吳兵大至,閉門堅守,恪令兵四面圍定。早有流星馬報入洛陽。主簿虞松告司馬師曰:「今諸葛恪困新城,且未可與戰:吳兵遠來,人多糧少,糧盡自走矣。待其將走,然後擊之,必得全勝。但恐蜀兵犯境,不可不防。」師然其言,遂令司馬昭引一軍助郭淮防姜維;毋丘儉、胡遵拒住吳兵。
제갈각이 크게 기뻐하며 곧 군대를 내닫게 하여 곧바로 신성에 이르렀다. 성을 지키는 아문장군 장특은 오나라 군대가 크게 이르는 것을 보고는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니 제갈각이 군대로 하여금 사방으로 포위하였다. 재|빨리 전령이 낙양에 들어 가 보고하였다. 주부 우송이 사마사에게 알려 말하기를 “지금 제갈각이 신성을 어렵게 하고(포위하였으나) 있으나 또한 싸워서는 안 됩니다. 오나라 군대는 멀리서 와 사람은 많으나 식량은 적으니 식량이 다하면 스스로 달아나게 될 것입니다. 달아나기를 기다린 후 공격하면 반드시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촉의 군대가 국경을 침범할까 두려우니 방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했다. 사마사가 그 말을 그렇다 여기고 마침내 사마소로 하여금 일 군을 이끌고 곽회를 도와 강유를 방비하게 하고, 무구검(관구검), 호준은 오나라 군대를 막게 하였다.
卻說諸葛恪連月攻打新城不下,令眾將併力攻城,怠慢者立斬。於是諸將奮力攻打,城東北角將陷。張特在城中定下一計,乃令一舌辯士,齎捧冊籍,赴吳寨見諸葛恪,告曰:「魏國之法:若敵人困城,守城將堅守一百日,而無救兵至,然後出城降敵者,家族不坐罪。今將軍圍城已九十餘日;望乞再容數日,某主將盡率軍民出城投降,今先具冊籍呈上。」
각설하고 제갈각이 달을 연이어 신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자 여러 장수로 하여금 힘을 합쳐 성을 공격하게 하면서 태만히 하는 자는 그 자리서 죽이게 했다. 이에 여러 장수들이 힘을 떨쳐 공격하니 성의 동북쪽 모퉁이가 무너지려 하였다. 장특이 성 안에 있다가 한 계책으로 말 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적(호적대장)을 가지고 오나라 영채로 가 제갈각을 만나 말하기를 “위나라의 법에 만약 적이 성을 포위하면 성을 지키는 장수는 백일을 지켜도 구원병이 이르지 않은 후에 성을 나가 적에게 항복하는 자는 가족을 죄에 연루시키지 않습니다. 지금 장군이 성을 포위한지 이미 구십여 일이 지났으니 다시 몇일을 허용해 주신다면 저의 주장(장특)이 모든 군대와 백성을 거느리고 성을 나와 항복할 것입니다. 지금 먼저 책적을 갖추어 올립니다.”하게 했다.
恪深信之,收了軍馬,遂不攻城。原來張特用緩兵之計,哄退吳兵,遂拆城中房屋,於破城處,修補完備,乃登城大罵曰:「吾城中尚有半年之糧,豈肯降吳狗耶!儘戰無妨!」恪大怒,催兵攻城。城下亂箭射下。恪額上正中一箭,翻身落馬,諸將救起還寨,金瘡舉發。眾軍皆無戰心;又因天氣亢炎,軍士多病。恪金瘡稍可,欲催兵攻城。營吏告曰:「人人皆病,安能戰乎?」恪大怒曰:「再說病者斬之!」眾軍聞知,逃者無數。
제갈각이 깊이 그것을 믿고 군마를 거두고 마침내 성을 공격하지 않았다. 알고보니 장특이 군대를 늦추는 계책을 쓴 것이었다. 오나라 군대가 떠들썩하게 물러나니 마침내 성 안의 집들을 뜯어 성이 부서진 곳을 보수를 완료하고 성에 올라 크게 욕하며 말하기를 “우리 성 안에는 오히려 반년의 식량이 있는데 어찌 기꺼이 오나라 개에게 항복하리오! 끝까지 싸워도 괜찮다.”했다. 제갈각이 크게 노하여 군대를 재촉해 성을 공격하였다. 성 아래로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제갈각의 이마 위에 하나의 화살이 적중하니 몸이 뒤집어져 말에서 떨어졌다. 여러 장수들이 구원해 일으켜 영채로 돌아갔으나 금창(쇠붙이에 입은 상처)이 터졌다. 여러 군사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고, 또 날씨가 매우 무더웠기 때문에 많은 군사들이 병들었다. 제갈각은 상처가 조금 나아지자 군대를 재촉하여 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진영의 관리가 고하여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병들었는데 어찌 싸울 수 있겠습니까?”하니 제갈각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다시 병을 말하는 자는 죽일 것이다!”하니 여러 군사들이 들어 알고 도망하는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忽報都督蔡林引于部軍投魏去了。恪大驚,自乘馬遍視各營,果見軍士面色黃腫,各帶病容,遂勒兵還吳。早有細作報知毋丘儉。儉盡起大兵,隨後掩殺。吳兵大敗而歸。恪甚羞慚,託病不朝。吳主孫亮,自幸其宅問安。文武官僚,皆來拜見。恪恐人議論,先搜求眾官將過失,輕則發遺邊方,重則斬首示眾。於是內外官僚,無不悚懼。又今(令?)心腹將張約、朱恩管御林軍,以為牙爪。
홀연히 도독 채림이 우부군을 이끌고 위나라로 들어갔다고 보고하였다. 제갈각이 크게 놀라 스스로 말을 타고 두루 돌아보니 과연 군사들의 얼굴색이 누런 병색의 각각 병든 얼굴을 보고는 마침내 군대를 돌려 오나라로 돌아갔다. 세작(첩자)이 있다가 무구검(관구검)에게 보고하였다. 무구검(관구검)이 대군을 모두 일으켜 뒤를 따라 습격하여 죽였다. 오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고 돌아갔다. 제갈각이 매우 부끄러워하여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오나라 임금 손량이 직접 그 집에 가서 안부를 물었다. 문무 관료들이 모두 와서 절하고 뵈었다. 제갈각이 사람들의 의논(평가)을 두려워하여 먼저 여러 관리들의 잘못을 조사하여 잘못이 가벼우면 곧 변방으로 보내고, 잘못이 무거우면 곧 머리를 베어 사람들에게 보였다. 이에 내외 관료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또 심복 장수 장약, 주은으로 하여금 어림군을 관장하게 하는 것으로서 아조(앞잡이)로 삼았다.
卻說孫峻字子遠,乃孫堅弟孫靜曾孫,孫恭之子也。孫權在日,甚愛之,命掌御林軍馬。今聞諸葛恪令張約、朱恩二人掌御林軍,奪其權,心中大怒。太常卿滕胤,素與諸葛恪有隙,乃乘間說峻曰:「諸葛恪專權恣虐,殺害公卿,將有不臣之心。公係宗室,何不早圖之?」峻曰:「我有是心久矣。今當即奏天子,請旨誅之。」
각설하고 손준의 자는 자원이니 곧 손견의 동생 손정의 증손으로 손공의 아들이다. 손권이 살아 있을 때 매우 그를 아껴서 어림군마를 관장하게 하였다. 지금 제갈각이 장약, 주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어림군을 관장하게 하여 그 권한을 빼앗은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였다. 태상경 등윤은 평소 제갈각과 틈이 있었는데 이 틈을 타 손준에게 말하기를 “제갈각이 군력을 오로지하고 방자하고 사납게 해 공경을 살해하니 장차 신하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공은 종실과 연결되는데 어찌하여 일찍 도모하지 않으십니까?”하니 손준이 말하기를 “내가 이 마음을 가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마땅히 천자께 아뢰어 그를 죽일 것을 청하겠습니다.”했다.
於是孫峻、滕胤入見吳主孫亮,密奏其事。亮曰:「朕見此人,亦甚恐怖;常欲除之,未得其便。今卿等果有忠義,可密圖之。」胤曰:「陛下可設席召恪,暗伏武士於壁衣中,擲盃為號,就席間殺之,以絕後患。」亮從之。
이에 손준, 등윤이 들어 가 오나라 임금 손준을 뵙고 비밀히 그 일을 아뢰었다. 손량이 말하기를 “짐이 이 사람을 보니 또한 매우 두렵다. 항상 그를 제거하려하였으나 아직 그 일을 하지 못하였다. 지금 경들이 과연 충의가 있으니 비밀리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했다. 등윤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연회를 열고 제갈각을 부르시고 몰래 무사를 벽의 안에 숨겨 두었다가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하시면 연회석에 사이에 나가 그를 죽이는 것으로서 후환을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하니 손량이 그것을 따랐다.
卻說諸葛恪自兵敗回朝,託病居家,心神恍惚。一日偶出中堂,忽見一人麻衣掛孝而入。恪叱問之,其人大驚無措。恪今拏下拷問,其人告曰:「某因新喪父親,入城請僧追薦;初見是寺院而入,卻不想是太傅之府。卻怎生來到此處也!」恪怒,召守門軍士問之。軍士告曰:「某等數十人,皆荷戈把門,未嘗暫離,並不見一人入來。」恪大怒,盡數斬之。
각설하고 제갈각은 군대가 패하고 조정에 돌아 온 후부터 병을 핑계로 집에 있었는데 마음과 정신이 혼미하였다. 하루는 우연히 중당에 나가니 홀연히 한 사람이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고 들어왔다. 제갈각이 질책하여 물으니 그 사람이 크게 놀라 허둥거렸다. 제갈각이 부하로 하여금 잡아 고문하니 그 사람이 고하여 말하기를 “제가 부친상을 당하였기 때문에 성에 들어 가 승려에게 명복을 비는 일을 청하려 하였습니다. 처음에 이곳이 사원으로 알고 들어왔으나 생각지 못하게 태부의 부였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이곳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했다. 제갈각이 노하여 문을 지키는 군사를 불러 물었다. 군사가 고하여 말하기를 “저희들 수 십명이 모두 창을 들고 문을 지켰는데 잠시도 떠나지 않았는데 한 사람도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했다. 제갈각이 크게 노하여 모두 죽이게 하였다.
是夜恪睡臥不安,忽聽得正堂中聲響如霹靂。恪自出視之,見中樑折為兩段。恪驚歸寢室,忽然一陣陰風起處,見所殺披麻人與守門軍士數十人,各提頭索命。恪驚倒在地,良久方甦。次早洗面,聞水甚血臭。恪叱侍婢,連換數十盆,皆臭無異。
이날 밤 제갈각이 자려 누워도 편안하지 않았다. 홀연히 집 안에서 소리가 울리는데 벼락이 치는 것과 같았다. 제갈각이 나가 보니 중간 대들보가 부러져 두 조각 나 있었다. 제갈각이 놀라 침실로 돌아 왔는데 홀연히 한 줄기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는 곳에 죽음을 당한 삼베 상복을 입은 사람과 문을 지키던 군사 수 십명이 나타났는데 각각 머리를 들고 원수를 갚으러 왔다고 하였다. 제갈각이 놀라 땅에 엎어져 오래 지난 후 깨어났다. 다음날 일찍 얼굴을 씻는데 물에서 심한 피 냄새가 났다. 제갈각이 시비를 꾸짖고 연이어 수십 동이를 바꾸었으나 모두 냄새가 다르지 않았다.(모두 피 냄새가 났다.)
恪正驚疑間,忽報天子有使至,宣太傅赴宴。恪令安排車仗;方欲出府,有黃犬啣住衣服,嚶嚶作聲,如哭之狀。恪怒曰:「犬戲我也?」叱左右逐去之,遂乘車出府。行不數步,見車前一道白虹,自地而起,如白練沖天而去。恪甚驚怪。心腹將張約進車前密告曰:「今日宮中設宴,未知好歹,主公不可輕入。」恪聽罷,使令回車,行不到十餘步,孫峻、滕胤乘馬至車前曰:「太傳何故便回?」恪曰:「吾忽然腹痛,不可見天子。」
제갈각이 놀라고 의아해 하고 있는데 홀연히 천자의 사자가 이르러 태부는 연회에 참석하라는 명이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제각각이 수레를 배치하게 하고 막 부를 나가려 하는데 누런 개가 옷을 물어 막으며 새가 우는 소리를 내었는데 마치 곡을 하는 형상과 같았다. 제갈각이 노하여 말하기를 “개가 나를 희롱하는가?”하고는 좌우를 불러 끌고 가게하고는 마침내 수레를 타고 부를 나섰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수레 앞의 한 줄기 흰 무지개가 땅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흰 비단이 하늘로 치솟아 가는 것 같았다. 제갈각이 매우 놀라고 괴이하게 여겼다. 심복 장수 장약이 수레 앞으로 나와 비밀리 고하여 말하기를 “오늘 궁중에서 여는 연회는 아직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알지 못하니 주공께서는 가벼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했다. 제갈각이 듣기를 마치고 수레를 돌리게 하였는데 걸음이 십여 보를 이르지 않아 손준, 등윤이 말을 타고 수레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태부께서는 무슨 이유로 돌아갑니까?”하니 제갈각이 말하기를 “내가 갑자기 배가 아파 천자를 뵐 수 없습니다.”했다.
胤曰:「朝廷為太傅軍回,不曾面敘,故特設宴相召,兼議大事。太傅雖感貴恙,還當勉強一行。」恪從其言,遂同孫峻、滕胤入宮。張約亦隨入。恪見吳主孫亮,施禮畢,就席而坐。亮命進酒,恪心疑,辭曰:「病軀不勝盃酌。」孫峻曰:「太傳府中常服藥酒,可取飲乎?」恪曰:「可也。」遂令從人回府取自製藥酒到,恪方纔放心飲之。
등윤이 말하기를 “조정에서는 태부께서 군대서 돌아 온 후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특히 연회를 열고 서로 부르고 겸하여 대사를 의논하려 합니다. 태부께서 비록 병환을 앓으시나 돌아 함께 가기를 권합니다.”했다. 제갈각이 그 말을 다라 마침내 손준, 등윤과 함께 궁에 들어갔다. 장약도 또한 따라 들어갔다. 제갈각이 오나라 임금 손량을 뵙고 예를 마친 후 자리에 나아가 앉았다. 손량이 술을 올리게 하니 제갈각이 마음속으로 의심하여 사양해 말하기를 “몸에 병이 있어 술잔을 감당하지 못합니다.”했다. 손준이 말하기를 “태부는 부중에서 항상 약주를 마신다하니 가져다 마시면 되지 않겠습니까?”했다. 제갈각이 말하기를 “좋습니다.”하고는 마침내 따르는 사람을 시켜 부에 돌아 가 스스로 만든 약주를 가져 오게 하니 제갈각이 비로서 겨우 마음을 놓고 그것을 마셨다.
酒至數巡,吳主孫亮託事先起。孫峻下殿,脫了長服,著短衣,內披環甲,手提利刃上殿大呼曰:「天子有詔誅逆賊!」諸葛恪大驚,擲盃於地,欲拔劍迎之,頭已落地。張約見峻斬恪,揮刀來迎。峻急閃過刀尖,傷其左指。峻轉身一刀,砍中張約右臂。武士一齊擁出,砍倒張約,剁為肉泥。孫峻一面令武士收恪家眷,一面令人將張約並諸葛恪屍首,用蘆蓆包裹,以小車載出,棄於城南門外石子崗亂塚坑內。
술이 몇 번 돌자 오나라 임금 손량이 일을 핑계로 먼저 일어났다. 손준은 전을내려가 긴 옷을 벗고 짧은 옷을 입고, 안에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전에 올라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천자께서 역적을 죽이라 명하셨다.”했다. 제갈각이 크게 놀라 잔을 땅에 던지고 검을 뽑아 맞이하려 하는데 머리는 이미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장약 손준이 제갈각을 죽이는 것을 보고는 칼을 휘둘러 맞이하였다. 손준이 급히 번개처럼 칼끝을 피하였으나 그 왼 손가락을 베였다. 손준이 몸을 돌려 한 칼로 장약의 오른 쪽 팔을 베었다.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 나와 장약을 베어 엎어지게 하고 고기를 다지듯이 하였다. 손준은 한편으로 무사들로 하여금 제갈각의 가권(가족)을 거두고(잡고),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장약과 제갈각의 시체와 머리를 가져다 띠 자리로 싸서 작은 수레에 실어 내어 성 남문 밖 석자강의 여러 무덤구덩이 안에 버리게 하였다.
卻說諸葛恪之妻,正在房中,心神恍忽,動止不寧。忽一婢女入房,恪妻問曰:「汝遍身如何血臭?」其婢忽然反目切齒,飛身跳躍,頭撞屋樑,口中大叫:「吾乃諸葛恪也!被奸賊孫峻謀殺!」恪合家老幼,驚惶號哭。不一時,軍馬至,圍住府第,將恪全家老幼,俱縛至市曹斬首。時吳建興二年冬十月也。昔諸葛瑾在日,見恪聰明盡顯於外,歎曰:「此子非保家之主也!」又魏光祿大夫張緝,曾對司馬師曰:「諸葛恪不久死矣!」師問其故,緝曰:「威震其主,何能久乎?」至此果中其言。
각설하고 제갈격의 처는 방에 있다가 심신이 황홀하여 동작이 편안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한 여종이 방에 들어오니 제갈격의 처가 물어 말하기를 “너의 몸에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은 어째서인가?”했다. 그 여종이 홀연히 눈을 뒤집고 이를 갈면서 몸을 날려 뛰어올라 머리를 집 대들보에 부딪히면서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내가 곧 제갈격이다. 간적 손준에게 죽음을 당하였다.”하니 제갈격의 집 늙은이에서 어린아이까지 놀라고 당황하여 소리내어 울었다. 한 때가 되지 않아 군마가 이르러 부의 집들을 둘러싸고 지갈격 전 집안의 늙은이에서 어린아이까지 모두 묶어 거리에서 베어 죽였다. 때는 오나라 건흥 이년 겨울 십월이었다. 옛날 제갈근이 살아 있을 때 제갈격이 총명하여 밖으로 드러나자 탄식하여 말하기를 “이 아이는 집안을 보존할 주인(주체)이 아니구나!”했고, 또 위나라 광록대부 장집이 일찍이 사마사를 대면하였을 때 “제갈격은 오래지 않아 죽을 것입니다.”했다. 사마사가 그 이유를 물으니 장집이 말하기를 “위엄이 그 주인(오나라 임금)을 진동시키니 어찌 오래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이에 이르러 그 말이 맞았다.
卻說孫峻殺了諸葛恪,吳主孫亮封峻為丞相大將軍富春侯,總督中外諸軍事。自此權柄盡歸孫峻矣。且說姜維在成都,接得諸葛恪書,欲求相助伐魏,遂入朝,奏准後主,復起大兵,北伐中原。正是:一度興師未奏績,兩番討賊欲成功。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각설하고 손준은 제갈격을 죽이자 오나라 임금 손량은 손준을 봉하여 승상 대장군 부춘후를 삼고 중외의 여러 군사의 일을 총 감독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권력이 모두 손준에게 돌아갔다. 각설하고 강유는 성도에 있다가 제갈각의 글을 받고는 서로 도와 위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하고자 하여 마침내 조정에 들어가 후주에게 아뢰어 다시 대군을 일으켜 북으로 중원을 정벌하려 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첫 번째 군대를 일으켜 공적을 일으키지 못하자(공을 세우지 못하자), 두 번 째 적을 토벌하여 공을 이루고자 하는구나. 승부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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