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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106회 공손연은 양평에서 군대가 패하여 죽고, 사마의는 꾀병으로 조상을 속이다.

by 최인표 2022. 1. 28.

第一六回公孫淵兵敗死襄平司馬懿詐病賺曹爽

106회 공손연은 양평에서 군대가 패하여 죽고, 사마의는 꾀병으로 조상을 속이다.

 

卻說公孫淵乃遼東公孫度之孫公孫康之子也建安十二年曹操追袁尚未到遼東康斬尚首級獻操操封康為襄平侯後康死有二子長曰晃次曰淵一皆幼康弟公孫恭繼職曹丕時封恭為車騎將軍襄平侯太和二年淵長大文武兼備性剛好鬥奪其叔公孫恭之位曹叡封淵為揚烈將軍遼東太守後孫權遺張彌許宴齎金寶珍玉赴遼東封淵為燕王淵懼中原乃斬張許二人送首與曹叡叡封淵為大司馬樂浪公淵心不足與眾商議自號為燕王改元紹漢元年副將賈範諫曰:「中原待主公以上公之爵不為卑賤今若背反實為不順更兼司馬懿善能用兵西蜀諸葛武侯且不能取勝何況主公呼?」

각설하고 공손연은 곧 요동 공손도의 손자로 공손강의 아들이다. 건안 십 이년 조조가 원상을 추격하는데 요동에 이르기 전에 공손강이 원삼을 죽이고 수급을 조조에게 바치니 조조가 공손강을 봉해 평양후로 삼았다. 후에 공손강이 죽었을 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이는 공손황이고, 둘째는 공손연으로 모두 어렸다. 공손강의 동생 공손공이 직책을 이었다. 조비 때 공손공을 봉해 거기장군 평양후로 삼았다. 태화 이 년 공손연이 자라 문무를 겸비하였는데 성품이 굳세고 싸우기를 좋아하였고, 그 숙부 공손공의 지위를 빼앗으니 조예가 공손연을 봉해 양열장군 요동태수로 삼았다. 후에 손권이 장미, 허연을 보내 금과 지기한 옥을 가지고 요동에 가 공손연을 봉해 연왕으로 삼게 하였다. 공순연은 중원을 두려워하여 곧 장미, 허연 두 사람을 죽여 머리를 조예에게 보냈다. 공손연은 마음으로 충분하지 않다 여겨 무리와 상의하고 스스로 연왕이라 하고, 연호를 고쳐 소한 원년이라 하였다. 부장 가범이 간하여 말하기를 중원이 주공을 상공(공손공)의 작으로 대우하였는데 비천하지 않습니다. 지금 만약 배반한다면 진실로 불순함이 됩니다. 다시 겸하여 사마의는 군대를 잘 운용하여 서촉의 제갈무후(제갈공명)도 또한 이기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주공이겠습니까?(하물며 주공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淵大怒叱左右縳賈範將斬之參軍倫直諫曰:「賈範之言是也聖人云:『國家將亡必有妖孽。』今國中屢見怪異之事近有犬戴巾幘身披紅衣上屋作人行又城南鄉民造飯飯甑之中忽有一小兒蒸死於內襄平北市中地忽陷一穴湧出一塊肉周圍數尺頭面眼耳口鼻都具獨無手足刀箭不能傷不知何物卜者占之曰:『有形不成有口不聲國家亡滅故現其形。』一有此三者皆不祥之兆也主公宜避凶就吉不可輕舉妄動。」淵勃然大怒叱武士綁倫直並賈範同斬於市令大將軍卑衍為元帥楊祚為先鋒起遼兵十五萬殺奔中原來

공손연이 크게 노하여 죄우를 질책하여 가범을 묶게하고 장차 죽이려 하였다. 참군 윤직이 간하여 말하기를 가범의 말이 옳습니다. 성인이 말하기를 국가가 장차 망하려 할 때는 반드시 괴이하고 불길한 징조가 있다.’하였는데 지금 나라 안에 여러 번 괴이하고 이상한 일이 보였습니다. 최근에 개가 건책(두건)을 쓰고 몸에는 붉은 옷을 입고 지붕 위에서 일어 서 사람의 걸음으로 갔습니다. 또 성 남쪽의 백성이 밥을 짓는데 홀연히 한 작은 아이가 ()안에서 삶겨 죽어 있었습니다. 양평 북쪽 저자 안에 갑자기 한 구멍이 생기고 한 덩이 고기가 솟아나왔는데 둘레가 여러 자이고, 머리, 얼굴, , , 코를 갖추었으나 오직 손발만 없으며, 칼과 화살로 상처 낼 수도 없었는데 무슨 물건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점쟁이가 점을 치고 말하기를 형상은 있으나 이루어지지 완성되지 못하였고, 입은 있으나 소리 내지 못하니 국가가 망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 형상이 나타난 것이다.’ 했습니다. 이런 세 가지는 모두 상서롭지 못한 징조입니다. 주공께서는 마땅히 흉함은 피하고 길함에 나아가야 하고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공손연이 발연 크게 노하여 무사를 질책하여 윤직을 묶고 가범과 함께 거리에서 죽이게 하고 대장군 비연을 원수로 삼고, 요동의 군대 십오만을 일으켜 중원으로 쇄도해 갔다.

 

邊官報知魏主曹叡叡大驚乃召司馬懿入朝計議懿奏曰:「臣部下馬步官軍四萬足可破賊。」叡曰:「卿兵少路遠恐難收復。」懿曰:「兵不在多在能設奇用智耳臣託陛下洪福必擒公孫淵以獻陛下。」叡曰:「卿料公孫淵作何舉動?」懿曰:「淵若棄城預走是上計也守遼東拒大軍是中計也坐守襄平是為下計必被臣所擒矣。」叡曰:「此去往復幾時?」懿曰:「四千里之地往百日攻百日休息六十日大約一年足矣。」叡曰:「倘吳蜀入寇如之奈何?」懿曰:「臣已定下守禦之策陛下勿憂。」

변경의 관리가 위나라 임금 조예에게 보고하였다. 조예가 크게 놀라 곧 사마의를 조정에 들어오도록 불러 계책을 의논하였다. 사마의가 아뢰어 말하기를 신의 부하 중에 기마병 보병 관군이 사만인데 충분히 적을 깨트릴 수 있습니다.”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경의 군대는 적고 길은 머니 수복하기 어려울 것을 두려워합니다.”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군대는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기이한 계책을 베풀고 지혜를 쓰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신이 폐하의 넓은 복을 받았으니 반드시 공손연을 사로잡아 폐하께 바치겠습니다.”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경은 공손연이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생각합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공손연이 만약 성을 버리고 미리 달아난다면 이는 상등의 계책입니다. 요동을 지키며 대군을 막는다면 중등 계책입니다. 앉아서 양평을 지킨다면 이는 하등의 계책이니 반드시 신이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여기서 왕복하는데 얼마나 걸립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사천 리의 땅이니 가는데 백일, 공격하는데 백일, 휴식 육십일이니 대략 일 년이면 충분합니다.”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만약 오와 촉이 침략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신이 이미 방어할 계책을 정해 두었으니 폐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했다.

 

叡大喜即命司馬懿興師往討公孫淵懿辭朝出城令胡遵為先鋒引前部兵先到遼東下寨哨馬飛報公孫淵淵令卑衍楊祚分八萬兵屯於遼隊圍塹二十餘里環遶鹿角甚是嚴密胡遵今()人報知司馬懿懿笑曰:「賊不與我戰欲老我兵耳我料賊眾大半在此其巢穴空虛不若棄卻此處逕奔襄平賊必往救卻於中途擊之必獲全功。」於是勒兵從小路向襄平進發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곧 사마의로 하여금 군대를 일으켜 가서 공손연을 토벌하게 하였다. 사마의는 조정을 하직하고 성을 나가 호준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고, 전부병을 이끌고 먼저 요동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다. 정찰병이 공손연에게 보고하였다. 공손연은 비연, 양조로 하여금 팔만의 군대를 나누어 요대에 주둔하게 하고, 이십여리의 참호를 파고, 둘레에 녹각을 둘러 매우 엄밀하게 하였다. 호준이 사람을 시켜 사마의에게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적이 나와 싸우려하지 않고, 우리군대를 피곤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나는 적의 무리 태반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니 그 둥지는 비어 있을 것이다. 이곳을 버리고 양평으로 달려간다면 적은 반드시 가서 구원할 것이니 도중에 그들을 친다면 반드시 완전한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했다. 이에 군대를 돌려 작은 길을 다라 양평을 향해 진군하였다.

 

卻說卑衍與楊祚商議曰:「若魏兵來攻休與交戰彼千里而來糧草不繼難以持久糧盡必退待他退時然後出奇兵擊之司馬懿可擒也昔司馬懿與蜀兵相拒堅守渭南孔明竟卒於軍中今日正與此理相同。」

각설하고 비연은 양조와 상의하여 말하기를 만약 위나라 군대가 와서 공격한다면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천리를 왔기 때문에 식량과 말먹이 풀이 이어지지 않을 것이니 오래 버티기 어려워 식량이 다하면 반드시 물러날 것입니다. 그들이 물러날 때를 기다렸다가 나가 기병으로 공격하면 사마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사마의와 촉 군대가 서로 싸울 때 (사마의가)굳게 위수 남쪽을 지켰는데 제갈공명은 마침내 군 중에서 죽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이런 이치와 서로 같습니다.”했다.

 

二人正商議間忽報魏兵往南去了。」卑衍大驚曰:「彼知吾襄平軍少去襲老營也若襄平有失我等守此處無益矣。」遂拔寨隨後而起

두 사람이 의논하고 있을 때 홀연히 우나라 군대가 남쪽으로 갔습니다.”하고 보고했다. 비연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그가 우리 양평의 군대가 적은 것을 알고 노영을 습격하러 간 것이다. 만약 양평을 잃게 되면 우리들이 이곳을 지키는 것이 이익 됨이 없을 것입니다.”하고는 마침내 영채를 거두어 뒤를 따라 일어났다.

 

早有探馬飛報司馬懿懿笑曰:「中吾計矣!」令夏侯霸夏侯威各引一軍伏於濟水之濱:「如遼兵到兩下齊出。」二人受計而往早望見卑衍楊祚引兵前來一聲砲響兩邊鼓譟搖旗左有夏侯霸右有夏侯威一齊殺出楊二人無心戀戰奪路而走奔至首山正逢公孫淵兵到合兵一處回馬再與魏兵交戰卑衍出馬罵曰:「賊將休使詭計汝敢出戰否?」夏侯霸縱馬揮刀來迎戰不數合被夏侯霸一刀斬卑衍於馬下遼兵大亂霸驅兵掩殺公孫淵引敗兵奔入襄平城去閉門堅守不出魏兵四面圍合

즉시 정찰병이 사마의에게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나의 계책에 빠졌구나!”하고는 하후패, 하후위로 하여금 각각 일 군씩을 이끌고 제수 가에 매복하게 하고 만약 요동의 군사가 이르면 양쪽에서 일제히 나오라.”했다.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갔다. 아침에 비연, 양조가 군대를 이끌고 앞에 오는 것을 보았다. 한 소리 포가 울리고 양 쪽에서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왼쪽에는 하후패가, 오른 쪽에는 하후위가 일제히 쇄도해 나왔다. 비연과 양조 두 사람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어 길을 뚫고 달아났다. 달려 수산에 이르러 공손연의 군대가 이르는 것을 만나 군대를 한 곳에 합하고 말을 돌려 다시 위나라 군대와 싸웠다. 비연이 말 타고 나와 욕해 말하기를 적장은 속이는 계책을 쓰지 말라! 너는 감히 나와 싸울 수 있는가?”하니 하후패가 말을 몰아 칼을 휘두르며 맞이해 왔다. 싸운지 몇 합되지 않아 하후패의 한 칼에 비연을 죽여 말에서 떨어뜨리니 요동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하후패가 군대를 몰아 엄살하니 공손연이 패함 군대를 이끌고 달아나 양평성으로 들어 가 성문을 닫은 채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위나라 군대가 사방으로 포위하였다.

 

時值秋雨連綿一月不止平地水深三尺運糧船自遼河口直至襄平城下魏兵皆在水中行坐不安左都督裴景入帳告曰:「(?)水不住營中泥濘軍不可停請移於前面山上。」懿怒曰:「捉公孫淵只在旦夕安可移營如有再言移營者斬!」裴景喏喏而退

그 때 마침 가을비가 계속 내려 한 달이 되어도 그치지 않으니 평지에 물의 깊이가 세 자나 되어 식량을 운반하는 배가 요하 어귀로부터 곧바로 양평성 아래에 이를 수 있었다. 위나라 군대가 모두 물속에 있어 가나 앉으나 편안하지 못하였다. 좌도독 배경이 군막에 들어 와 말하기를 비가 그치지 않아 진영 안이 질퍽하여 군사들이 머물 수 없으니 앞 쪽의 산 위로 옮길 것을 청합니다.”했다. 사마의가 노하여 말하기를 공손연을 잡는 것이 단지 아침저녁에 달려 있는데 어찌 진영을 옮기려 하는가? 만약 다시 진영을 옮기는 것을 말하는 자는 죽일 것이다!”했다. 배경이 예, 예 하며 물러났다.

 

少頃右都督仇連又來告曰:「軍士苦水乞太尉移營高處。」懿大怒曰:「吾軍令己發汝何敢故違!」即命推出斬之懸首於南門外於是軍心震懾

얼마 후 우도독 구련이 또 와서 고하여 말하기를 군사들이 물을 괴로워하니 태위께서는 진영을 높은 곳으로 옮길 것을 청합니다.”했다. 사마의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미 명령을 내렸는데 너는 무엇 때문에 어기는가!”하고는 곧 끌고 나가 죽이고 머리를 성문 밖에 걸게 명령하였다. 이에 군사들이 두려워 떨었다.

 

懿令兩寨人馬暫退二十里城內軍民出城樵採柴薪牧放牛馬司馬陳群問曰:「前太尉攻上庸之時兵分八路八日趕至城下遂生擒孟達而成大功今帶甲四萬數千里而來不令攻打城池卻使久居泥濘之中又縱賊眾樵牧不知太尉是何主意。」懿笑曰:「公不知兵法耶昔孟達糧多兵少我糧少兵多故不可不速戰出其不意突然攻之方可取勝今遼兵多我兵少賊飢我飽何必力攻正當任彼自走然後乘機擊之我今放開一條路不絕彼之樵牧是容彼自走也。」陳群拜服

사마의는 두 영채의 인마를 잠시 이십 리를 물리게 하니 자유로이 성 안의 군사와 백성들이 성을 나와 장작과 섶을 채취하고 우마를 놓아길렀다. 사마진군이 물어 말하기를 앞서 태위께서 상용을 공격할 때 군대를 여덟 길로 나누어 팔일 만에 쫓아 성 아래에 이르러 마침내 맹달을 사로잡는 큰 공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갑사 사 만을 데리고 수 천리를 와서도 성지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시어 오래 동안 진흙탕에 머물게 하시고, 또 자유로이 땔감을 채취하고 소와 말을 길게 하시니 태위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했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공은 병법을 알지 못합니까? 옛날에 맹달은 양식은 많고 군대는 적었고, 우리는 양식은 적고 군대는 많았기 때문에 속히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불의에 나와 갑자기 그들을 공격하여 비로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요동의 군대는 많고 우리는 군다가 적고, 적은 굶주리고 우리는 배부르니 어찌 반드시 힘으로 공격하겠습니까? 마땅히 그들이 스스로 달아난 후에 기회를 타고 공격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한 갈래 길을 열고 그들이 땔감을 채취하고 말을 놓아기르는 것을 끊지 않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달아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했다. 진군이 절하며 인정하였다.

 

於是司馬懿遣人赴洛陽催糧魏主曹叡設朝群臣皆奏曰:「近日秋雨連綿一月不止人馬疲勞可召回司馬懿權且罷兵。」叡曰:「司馬太尉善能用兵臨危制變多有良謀捉公孫淵計日而待卿等何必憂也?」遂不聽群臣之諫使人運糧解至司馬懿軍前

이에 사마의가 사람을 보내 낙양에 가 식량을 재촉하게 하였다. 위나라 임금 조예가 조회를 열었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아뢰어 말하기를 최근 가을비가 연속으로 이어져 한 달 동안 그치지 않아 인마가 피로하니 사마의를 불러 돌아오게 하여 임시로 군대를 거두어야 합니다.”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사마태위는 군대를 잘 운용하여 위태로움에 임하면 제도를 변경하고, 좋은 꾀가 많이 있을 것이니 공손연을 잡는 것도 날을 헤아리며 기다리면 될 것입니다. 경들은 어찌 근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했다. 마침내 여러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사람으로 하여금 식량을 운반하여 사마의 군대 앞에 이르게 하였다.

 

懿在寨中又過數日雨止天晴是夜懿出帳外仰觀天文忽見一星其大如斗流光數丈自首出東北墜於襄平東南各營將士無不驚駭懿見之大喜乃謂眾將曰:「五日之後星落處必斬公孫淵矣來日可併力攻城。」

사마의가 영채 안에 있으면서 또 며칠이 지나자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었다. 이 날 밤 사마의가 군막을 나와 우러러 천문을 살펴보니 홀연히 한 별이 보이는데 크기가 말과 같고, 흐르는 빛이 몇 장이나 되는데 머리가 동북쪽에서 나와 양평 동남쪽에 떨어졌다. 각 진영의 장사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마의가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곧 여러 장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오일 후 별이 떨어진 곳에서 반드시 공손연을 죽일 것이다. 내일 힘을 합쳐 성을 공격할 것이다.”했다.

 

眾將得令次日侵晨引兵四面圍合築土山掘地道立砲架裝雲梯日夜攻打不息箭如急雨射入城去公孫淵在城中糧盡皆宰牛馬為食人人怨恨各無守心欲斬淵首獻城歸降淵聞之甚是驚憂慌令相國王建御史大夫柳甫往魏寨請降二人自城上繫下來告司馬懿曰:「請太尉退二十里我君臣自來投降。」懿大怒曰:「公孫淵何不自來為無理!」叱武士推出斬之將首級付與從人

여러 장수들이 명을 받고 다음 날 새벽에 군대를 이끌고 사방을 포위한 채 토산을 쌓고 땅에 길을 닦고, 포가를 세우고, 운제(사다리)를 설치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공격하는데 소나기처럼 화살을 쏘아 성으로 들어가게 했다. 공손연은 성 안의 양식이 다하자 모두 우마를 잡아 식량으로 삼았다. 사람들이 원망하여 각각 지키려는 마음이 없어 공손연의 머리를 베고, 성을 바치며 항복하려 하였다. 공손연이 그것을 듣고 매우 놀라고 근심하여 황망히 상국(재상) 왕건, 어사대부 류보로 하여금 위나라 영채로 가 항복을 청하게 했다. 두 사람이 성 위에서 줄을 타고 내려가 사마의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태위께서 이 십리를 물러나시면 우리 군신이 스스로 와서 항복할 것을 청합니다.”했다. 사마의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공손연은 어찌하여 스스로 오지 않는가? 죽이는 것이 정도에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하고는 무사를 질책하여 끌어내 베어 죽이게 하고 머리를 종인(수행한 사람)에게 주었다.

 

從人回報公孫淵大驚又遣侍中衛演來到魏營司馬懿升帳聚眾將立於兩邊演膝行而進跪於帳下告曰:「願太尉息雷霆之怒剋日先送世子公孫修為質當然後君臣自縳來降。」懿曰:「軍事大要有五:『能戰當戰不能戰當守不能守當走不能走當降不能降當死耳何必送子為質當?」叱衛演回報公孫淵

수행원이 돌아 가 보고하니 공손연이 크게 놀라 또 시중 위연을 보내 위나라 영채에 가게 했다. 사마의는 군막에 오르고 여러 장수들을 모아 양 쪽에 세웠다. 위연이 무릎으로 기어 나아가 군막 앞에 꿇고 고하여 말하기를 태위께서는 벽력같은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날을 정해 먼저 세자 공손수를 보내 인질이 되게 한 후 군신이 스스로를 묶고 와서 항복하겠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군사의 큰 요체로 다섯 가지가 있는데 싸울 수 있으면 싸우는 것이 마땅하고, 싸울 수 없으면 지키는 것이 마땅하고, 지킬 수 없으면 달아나는 것이 마땅하고, 달아날 수 없으면 항복하는 것이 마땅하고, 항복할 수 없다면 죽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 자식을 보내 인질로 삼을 필요가 있으리오!”하고는 위연을 질책하여 돌아 가 공손연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演抱頭鼠竄而去歸告公孫淵淵大驚乃與子公孫修密議停當選下一千人馬當夜二更時分開了南門往東南而走淵見無人中暗喜行不到十里忽聽得山上一聲砲響鼓角齊鳴一枝兵攔住中央乃司馬懿左有司馬師右有司馬昭二人大叫曰:「反賊休走!」淵大驚急撥馬尋路奔逃早有胡遵兵到左有夏侯霸夏侯威右有張虎樂綝四面圍得鐵桶相似公孫淵父子只得下馬納降懿在馬上顧諸將曰:「吾前夜丙寅日見大星落於此處今夜壬申日應矣。」眾將稱賀曰:「太尉真神機也!」

위연이 머리를 감싸고 쥐새끼처럼 가서 공손연에게 돌아가 보고하였다. 공손연이 크게 놀라 곧 아들 공손수와 함께 몰래 마땅한 것을 의논하고는 일천의 인마를 선발하고 그날 밤 이경 때 쯤 남문을 열고 동남쪽으로 달아났다. 공손연은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속으로 기뻐하였다. 십리를 가지 못해 홀연히 산 위에서 한 소리 포와 고각이 일제히 울리고 한 갈래의 군대가 막아섰으니 중앙은 곧 사마이고, 왼쪽에 사마사, 오른쪽에 사마소가 있었다. 두 사람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반적은 달아나지 말라!”했다. 공손연이 크게 놀라 급히 말을 돌려 길을 찾아 달아났다. 재빨리 호준의 군대가 이르렀는데 왼쪽에 하후패와 하후위가 있고, 오른쪽에는 장호와 악침이 있어 사방으로 둘러싼 것이 쇠통과 같았다. 공손연 부자가 말에서 내려 항복하였다. 사마의가 말위에서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지난 밤 병인일에 큰 별이 이곳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 밤 임신일에 조짐이 맞았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축하하여 말하기를 태위께서는 참으로 신 같은 재능을 가지셨습니다.”했다.

 

懿傳今()斬之公孫淵父子對面受戮司馬懿遂勒兵來取襄平未及到城下時胡遵早引兵入城中人民焚香拜迎魏兵盡皆入城懿坐於衙上將公孫淵宗族並同謀官僚人等俱殺之計首級七十餘顆出榜安民人告懿曰:「賈範倫直苦諫淵不可反叛俱被淵所殺。」懿遂封其墓而榮其子孫就將庫內財物賞勞三軍班師回洛陽

사마의가 명령을 내려 죽이게 했다. 공손연 부자가 얼굴을 마주보고 죽음을 받았다. 사마의가 마침내 군대를 돌려 가서 양평을 취하였다. 아직 성 아래에 이르지 않았는데 호준이 재빨리 군대를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 왔다. 백성들이 향을 피우고 절하며 맞이하였다. 위나라 군대가 모두 성에 들어갔다. 사마의가 관아에 앉아 공손연의 종족과 함께 꾀한 관료들을 잡아 모두 죽이게 하였는데 머리를 헤아려보니 칠십여 개였다. 방을 붙여 백성을 펀안하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사마의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가범, 윤직은 공손연에게 배반해서는 안됨을 굳게 간하다 공손연에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했다. 사마의가 마침내 그 묘를 봉하여 그 자손을 영예롭게 하고, 창고 안의 재물을 가져다 삼군의 수고로움을 상주고 군사를 돌려 낙양으로 돌아갔다.

 

卻說魏主在宮中夜至三更忽然一陣陰風吹滅燈光只見毛皇后引數十個宮人哭至座前索命叡因此得病病漸沉重命侍中光祿大夫劉放孫資掌樞密院一切事務又召文帝子燕王曹宇為大將軍佐太子曹芳攝政宇為人恭儉溫和不肯當此大任堅辭不受叡召劉放孫資問曰:「宗族之內何人可在?」二人久得曹真之惠乃保奏曰:「惟曹子丹之子曹爽可也。」叡從之

각설하고 위나라 임금이 궁중에 있었는데 밤 삼경에 이르러 홀연히 한 바탕 서늘한 바람이 불어 등불이 꺼지고, 모 황후가 수십명의 궁인을 이끌고 자리 앞에 이르러 목숨을 내놓으라 하는 것을 보았다. 조예가 이 때문에 병을 얻었다. 병이 점점 깊고 중해지자 시중 광록대부 유방, 손자로 하여금 추밀원의 모든 사무를 맡게 하고, 또 문제의 아들 연왕 조우를 불러 대장군을 삼아 태자 조방을 도와 정사를 대신하게 하였다. 조우는 사람됨이 검소하고 온화하여 이 큰 임무를 맡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조예가 유방, 손자를 불러 물어 말하기를 종족 중에 어떤 사람이 좋은가?”하니 두 사람은 오래 동안 조진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이에 추천하여 아뢰어 말하기를 오직 조자단(조진)의 아들 조상이 있습니다.”하니 조예가 그것을 따랐다.

 

二人又奏曰:「欲用曹爽當遣燕王歸國。」叡然其言二人遂請叡降詔齎出諭燕王曰:「有天子手詔命燕王歸國限即日就行若無詔不許入朝。」燕王涕泣而去遂封曹爽為大將軍總攝朝政叡病漸危急令使持節詔司馬懿還朝懿受命逕到許昌入見魏主叡曰:「朕惟恐不得見卿今日得見死無恨矣。」懿頓首奏曰:「臣在途中聞陛下聖體不安恨不助生兩翼飛至闕下今日得見龍顏臣之幸也。」

두 사람이 또 아뢰어 말하기를 조상을 등용하시려면 마땅히 연왕을 (연 지역에)보내 귀국시키십시오.” 했다. 조에가 그 말을 따랐다. 두 사람이 마침내 조예에게 조서를 내려 줄 것을 청하여 (조서를)가지고 나가 연왕을 깨우쳐 말하기를 천자(조예)가 손으로 쓴 조서가 있었으니 연왕은 귀국하시되 즉시 가십시오. 조서가 없으면 조정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했다. 연왕이 눈물을 흘리며 갔다. 마침내 조상을 봉하여 대장군을 삼고 조정의 정사를 총괄하게 했다. 조예는 병이 점점 위태로워지자 급히 사신을 시켜 지절을 가지고 사마의에게 조칙을 내려 조정으로 돌아 올 것을 명령하였다.“사마의가 명을 받고 빠르게 허창에 이르러 위나라 임금을 뵈었다. 조예가 말하기를 짐이 경을 보니 못할까 걱정하였는데 오늘 만났으니 죽어도 안이 없다.“했다. 사마의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오는 중에 폐하의 성스러운 몸이 편안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두 날개가 나 날아서 궁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한 하였습니다. 오늘 다시 용안(천자의 얼굴)을 뵈었으니 신의 행운입니다.“했다.

 

叡宣太子曹芳大將軍曹爽侍中劉放孫資等皆至御榻之前叡執司馬懿之手曰:「昔劉玄德在白帝城病危以幼子劉禪託孤於諸葛孔明孔明因此竭盡忠誠至死方休,:偏邦尚然如此何況大國乎朕幼子曹芳年纔八歲不堪掌理社稷幸太尉及宗兄元勳舊臣竭力相輔無負朕心!」又喚芳曰:「仲達與朕一體爾宜敬禮之。」遂命懿攜芳近前芳抱懿頸不放叡曰:「太尉勿忘幼子今日相戀之情!」言訖潸然淚下懿頓首流涕魏主昏沉口不能言只以手指太子須臾而卒在位十三年壽三十六歲時魏景初三年春正月下旬也

조예가 태자 조방, 대장군 조상, 시중 유방, 손자 등을 불러들이니 모두 임금의 자리 앞에 이르렀다. 조예가 사마의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옛날 유현덕이 백제성에서 병이 위태로울 때 어린 아들 유선을 제갈공명에게 부탁하였는데 제갈공명이 이 때문에 충성을 다하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쳤습니다. 구석의 나라도 오히려 이 같은데 하물며 대국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짐의 어린 아들 조방은 나이가 겨우 여덟살이라 사직을 담당하여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태위와 종족 형, 큰 공이 있는 대신들이 힘을 다해 보필하고 짐의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주시오!”하고, 또 조방을 불러 말하기를 중달(사마의)과 짐은 한 몸이니 너는 마땅히 공경하고 예로 대우해야 할 것이다.”했다. 마침내 사마의로 하여금 조방을 데리고 가까이 오게 하였다. 조방이 사마의의 목을 껴안고 놓지 않았다. 조예가 말하기를 태위는 어린 아들이 오늘 서로 그리워하는 정을 잊지 마시오!”했다.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렸다. 사마의가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렸다. 위나라 임금이 혼절하여 입으로는 말할 수 없고, 다만 손으로 태자를 가리키다 잠시 후 죽었다. 황제의 지위에 있은 지는 십삼 년이고 나이는 삼십육 세였다. 때는 위나라 경초 삼년 봄 정월 하순이다.

 

當下司馬懿曹爽扶太子曹芳即皇帝位芳字蘭卿乃叡乞養之子秘在宮中人莫知其所由來於是曹芳諡叡為明帝葬於高平陵尊郭皇后為皇太后改元正始元年司馬懿與曹爽輔政爽事懿甚謹一應大事必先啟知爽字昭伯自幼出入宮中明帝見爽謹慎甚是愛敬爽門下有客五百人內有五人以浮華相尚一是何晏字平叔一是鄧颺字玄茂乃鄧羽之後一是李勝字公昭一是丁謐字彥靜一是畢範字昭先又有大司農桓範字元則頗有智謀人多稱為智囊』。此數人皆爽所信任

그 자리에서 사마의, 조상이 태자 조방을 부축하여 황제 위에 오르게 했다. 조방의 자는 난경이니 곧 조예가 입양하여 기른 아들이니 비밀리 궁중에 있어서 사람들이 그 말미암아 온 바를 알지 못하였다. 이에 조방은 조에를 시호하여 명제라 하고, 고평릉에 장례하고 곽황후를 높여 황태후라 하고, 연호를 고쳐 정시 원년이라 했다. 사마의와 조상이 정사를 도왔다. 조상은 사마의 섬기기를 매우 삼가 하나의 대사라도 반드시 먼저 알렸다. 조상의 자는 소백으로 어려서부터 궁중을 출입하였는데 명제가 조상을 만나면 삼가 매우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조상에게는 문객 오백여 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다섯 사람이 내실은 없이 겉만 화려함으로써 서로 높였다. 하나는 하안이니 자는 평숙이고, 하나는 등양으로 자는 현무이니 곧 등우의 후예이고, 하나는 이승이니 자는 공소이고, 하나는 정밀로 자는 언정이고, 하나는 필범이니 자는 소선이다. 또 대사농 환범은 자가 원칙으로 자못 지모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지낭(꾀주머니)’라 불렀다. 이 몇 사람은 모두 조상이 신임하였다.

 

何晏告爽曰:「主公大權不可委託他人恐生後患。」爽曰:「司馬公與我同先帝託孤之命安忍背之?」晏曰:「昔日先公與仲達破蜀兵之時累受此人之氣因而致死主公何不察也?」爽猛然省悟遂與多官計議停當入奏魏主曹芳曰:「司馬懿功高德重可加為太傅。」芳從之自是兵權皆歸於爽爽命弟曹羲為中領軍曹訓為武衛將軍曹彥為散騎常侍各引三千御林軍任其出入禁宮又用何晏鄧颺丁謐為尚書畢軌為司隸校尉李勝為河南尹此五人日夜與曹爽議事

하안이 조상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대권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했다. 조상이 말하기를 사마공(사마의)과 나는 같이 돌아가신 황제께 탁고(후사를 부탁하는 유언)의 명을 받았는데 어찌 차마 그것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했다. 하안이 말하기를 옛 날 선공(조상의 아버지 조진)과 중달(사마의)이 촉의 군대를 깨트릴 때 여러 번 이 사람(사마의)의 기세를 받아 이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렀는데 주공께서는 어찌 살피지 않으십니까?”했다. 조상이 문득 깨닫고 마침내 많은 관리들과 합당한 처리책에 대한 계책을 논의하고 조정에 들어가 위나라 임금 조예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사마의는 공이 높고, 덕이 두터워 태부로 삼을 만합니다.”했다. 조방이 그것을 따라 이로부터 병권이 모두 조상에게 돌아갔다. 조상이 동생 조희로 하여금 중령군이 되게하고, 조훈을 무위장군이 되게하고, 조언을 산기상시가 되게 하여 각각 삼천의 어림군을 이끌고 금궁(궁궐)을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또 하안, 등양, 정밀을 등용하여 상서를 삼고 필궤를 사예교위, 이승을 하남 윤을 삼았다. 이 다섯 사람은 밤낮으로 조상과 일(조상)을 의논하였다.

 

於是曹爽門下賓客日盛司馬懿推病不出二子亦皆退職閒居爽每日與何晏等飲酒作樂凡用衣服器皿與朝廷無異各處進貢玩好珍奇之物先取上等者入己然後進宮佳人美女充滿府院黃門張當諂事曹爽私選先帝侍妾七八人送入府中爽又選善歌舞良家子女三四十人為家樂又建重樓畫閣造金銀器皿用巧匠數百人晝夜工作

이에 조상의 문하 빈객들이 날로 성대해졌다. 사마의는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고 두 아들 또한 모두 관직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살았다. 조상은 매일 하안 등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음악을 연주하였는데 무릇 의복과 기명(그릇)을 조정과 다름없이 썼다. 여러 곳에서 좋고 진귀한 물건을 바치면 먼저 상등의 물건을 취하여 자기에게 들인 후 궁궐에 올리고, 아름다운 여자가 집에 가득하였다. 황문 장당이 조상에게 아첨하여 사사로이 돌아가신 황제를 모시던 여자 칠, 팔인을 부중에 보내 들였고, 조상이 또한 노래와 춤을 잘하는 양가의 자녀 삼십 사명을 선발하여 가악(사사로이 두는 기녀)을 삼았다. 또 여러 층의 누각을 세우고, 그릇을 금과 은으로 만들고 재주 있는 장인 수백 명을 써 밤낮으로 작업하게 하였다.

 

卻說何晏聞平原管輅明數術請與論易時鄧颺在座問輅曰:「君自謂善易而語不及易中詞義何也?」輅曰:「夫善易者不言易也。」晏笑而讚之曰:「可謂要言不煩。」因謂輅曰:「試為我卜一卦可至三公否?」又問:「連夢青蠅數十來集鼻上此是何兆?」輅曰:「元愷輔舜周公佐周皆以和惠謙恭享有多福今君侯位尊勢重而懷德者鮮畏威者眾殊非小心求福之道且鼻者山也山高而不危所以長守貴也今青蠅臭惡而集焉位峻者顛可不懼乎願君侯裒多益寡非禮勿履然後三公可至青蠅可驅也。」鄧颺怒曰:「此老生之常談耳!」輅曰:「老生者見不生常談者見不談。」遂拂袖而去二人大笑曰:「真狂士也!」

각설하고 하안은 평원 지역의 관락이 수술(술수: 음양오행)에 밝다(능숙하다)는 것을 듣고 청하여 함께 역을 논하였다. 그 때 등양이 자리에 있다가 관락에게 물어 말하기를 그대는 스스로 역을 잘 한다(안다)고 말하는데 말하는 것은 역 안의 말의 뜻에는 미치지(말하지) 않으니 왜 인가?”했다. 관락이 말하기를 대저 역을 장 아는 자는 역을 말하지 않습니다.”하니 하안이 웃으며 칭찬해 말하기를 말이 간단하고 명료하여 번잡스럽지 않다 할 만합니다.”하고는 관락에게 말하기를 시험 삼아 나를 위해 한 괘를 점쳐 주시오. (내가)삼공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하고, 또 물어 말하기를 연이은 꿈에 푸른 파리 수십 마리가 코 위에 와 모이는데 이는 무슨 조짐입니까?”했다. 관락이 말하기를 원개가 순을 돕고, 주공은 주나라를 도왔는데 모두 화합과 은혜, 겸손, 공경으로서 하여 많은 복을 누렸습니다. 지금 군후(하안)는 지위가 높고 권세가 중하나 (군후의)덕을 생각하는 자는 적고, 위엄을 두려워하는 자가 많으니 아무래도 조심하는 것이 복을 구하는 도(방법)일 것입니다. 또 코는 산입니다. 산은 높아도 위험하지 않아야 오래 동안 귀함을 지킬 수 있는 까닭이 됩니다. 지금 푸른 파리는 악취를 따라 모이고, 지위가 높은 것은 엎어지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군후께서는 많은 것을 덜어 적은 것에 더하고, 예가 아니면 밟지 않은 후에야 삼공에 이를 수 있고, 푸른 파리를 몰아낼 수 있습니다.”했다. 등양이 노하여 말하기를 이 늙은이가 항상하는 말일 뿐이다!”했다. 관락이 말하기를 늙은이들은 생겨나지 않은 것을 보고, 항상하는 말은 (사람들이)말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하고는 마침내 소매를 떨치고 갔다. 두 사람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참으로 광사로다!”했다.

 

輅到家與舅言之舅大驚曰:「鄧二人權甚重汝奈何犯之?」輅曰:「吾與死人語何所畏耶?」舅問其故輅曰:「鄧颺行步筋不束骨派不制肉起立傾倚若無手足此為鬼躁之相何晏視候魂不守宅血不華色精爽煙浮容若槁木此為鬼幽之相二人早晚必有殺身之禍何足畏也?」其舅不(?)罵輅為狂子而去

관락이 집에 이르러 외삼촌(처남)과 그것을 말하였다. 외삼촌(처남)이 크게 놀라 하안과 등양 두 사람은 권세가 매우 중한데 너는 어찌하여 그들을 범하였는가?”하니 관락이 말하기를 내가 죽을 사람들과 말하였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했다. 외삼촌(처남)이 그 이유를 물었다. 관락이 말하기를 등양은 걷는 것을 보니 근육이 뼈를 묶지 못하고, 맥이 살을 제어하지 못하여 일어서면 기울어 의지하니 손과 발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귀조(귀신같은 태도와 행실)’의 상이라 합니다. 하안의 점을 보니 넋은 집()을 지키지 못하고, 피는 붉은 색이 아니며 정상(정령)이 연기처럼 떠다니고, 얼굴은 고목과 같으니 이를 귀유(죽기 직전 병든 모습)’의 상이라 합니다. 두 사람은 조만간에 반드시 자신을 죽이는 화가 있을 것이니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했다. 그 외삼촌(처남)이 관락을 미친놈이라 쿠게 꾸짖고는 갔다.

 

卻說曹爽嘗與何晏鄧颺等畋獵其弟曹羲諫曰:「兄威權太甚而好出外游獵倘為人所算悔之無及。」爽叱曰:「兵權在吾手中何懼之有?」司農桓範亦諫不聽時魏主曹芳改正始十年為嘉平元年曹爽一向專權不知仲達虛實適魏主除李勝為荊州刺史即令李勝往辭仲達就探消息勝逕到太傳府下早有門吏報入司馬懿謂二子曰:「此乃曹爽使來探吾病之虛實也。」乃去冠散髮上擁被而坐又令二婢夫策方請李勝入府

각설하고 조상은 일찍이 하안, 등양 등과 사냥하였다. 그 동생 조희가 간하여 말하기를 형님은 권세가 매우 큰데 밖에 나가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니 만약 다른 사람이 계책을 쓰게 된다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했다. 조상이 질책하여 말하기를 병권이 내 손 안에 있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했다. 사농 환범이 또 간하여 말하였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그 때 위나라 임금 조방은 정시 십년을 고쳐 가편 원년으로 하였다. 조상이 한편으로는 권세를 오로지 하고, 중달(사마의)은 허실을 알지 못합니다. 마침 위나라 임금이 이승을 형주자사로 삼아 이승으로 하여금 중달(사마의)에게 가 하직하면서 소식을 탐지하게 하니 이승이 바로 태부(사마의) 부에 이르니 문지기가 즉시 들어 가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두 아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는 곧 조상이 내 병의 허실을 탐지하게 한 것이다.”하고는 곧 관을 벗고, 머리를 풀어헤친 뒤 침상에 올라가 이불을 두른 채 앉았다. 또 두 여종으로 하여금 부축하게 한 뒤 비로소 이승이 부에 들어오도록 청하였다.

 

勝至前拜曰:「一向不見太傅誰想如此病重今天子命某為荊州刺史特來拜辭。」懿佯答曰:「井州近朔方好為之備。」勝曰:「除荊州刺史非并州也。「懿笑曰:「你方從并州來?」勝曰:「山東青州耳。」懿大笑曰:「你從青州來也!」勝曰:「太傅如何病得這等了?」左右曰:「太傅耳聾。」勝曰:「乞紙筆一用。」 左右取紙筆與勝勝寫畢呈上懿看之笑曰:「吾病的耳聾了此去保重。」言訖以手指口侍婢進湯懿將口就之湯流滿襟乃作哽噎之聲曰:「吾今衰老病篤死在旦夕矣二子不肖望君教之若見大將軍千萬看覷二子!」言訖倒在床上聲嘶氣喘李勝拜辭仲達回見曹爽細言其事爽大喜曰:「此老若死吾無憂矣!」

이승이 앞에 이르러 절하며 말하기를 그동안 태부(사마의)를 뵙지 못하였는데 누가 이 같이 병이 중할 줄 생각했겠습니까? 지금 천자께서 저에게 명하여 형주자사를 삼으셨으므로 특히 와서 하직하는 것입니다.”했다. 사마의가 거짓으로 담하여 말하기를 정주는 삭방과 가까우니 잘 준비하시오.”하니 이승이 말하기를 형주자사를 제수 받았고, 병주가 아닙니다.”했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너는 청주에서 왔구나!”했다. 이승이 말하기를 태부께서는 어쩌다 병이 이렇게 되었습니까?”하니 좌우가 말하기를 태부의 귀가 먹었습니다.”했다. 이승이 말하기를 종이와 붓을 한 번 쓸 것을 청합니다.”했다. 좌우가 종이와 붓을 가져다 이승에게 주었다. 이승이 쓰기를 마치고 바쳤다. 사마의가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병이 들어 귀를 먹었습니다. 이제 가면 보중하시오.”하는 말을 마치고 손으로 입을 가리켰다. 시비가 탕약을 올리니 사마의가 입으로 가져가면서 탕약을 흘려 소매를 가득 적셨다. 이에 음식이 목에 걸린 소리로 말하기를 내가 지금 노쇠하고 병이 깊으니 죽음이 아침저녁에 달려있습니다. 두 아들이 현명하지 못하니 그대가 가르쳐주기를 바랍니다. 만약 대장군(조상)을 만난다면 천만 번 두 아들을 보살펴달라고 해 주시오!”했다. 말을 마치고 참상 위에 쓰러지는데 목이 쉬고 기침을 하였다. 이승이 중달(사마의)에게 절하며 하직하고 돌아 가 조상을 만나 그 일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조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가 늙어 죽을 듯하니 나는 근심할 것이 없다.”했다.

 

司馬懿見李勝去了遂起身謂二子曰:「李勝此去回報消息曹爽必不忌我矣只待他出城畋獵之時方可圖之。」

사마의는 이승이 떠난 것을 보고 드디어 몸을 일으켜 두 아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승이 여기를 떠나 돌아가 소식을 보고하면 조상은 반드시 나를 꺼려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가 성을 나가 사냥할 때를 기다렸다가 바야흐로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했다.

 

不一日曹爽請魏主曹芳去謁高平陵祭祀先帝大小官僚皆隨駕出城爽引三弟并心腹人何晏等及御林軍護駕正行司農桓範叩馬諫曰:「主公總典禁兵不宜兄弟皆出倘城中有變如之奈何?」爽以鞭指而叱之曰:「誰敢為變再勿亂言!」

하루가 되지 않아 조상은 위나라 임금 조방에게 고평릉에 가 선제에게 제사할 것을 청하였다. 대소 관료들이 모두 황제의 가마를 따라 성을 나갔다. 조상이 세 동생과 심복 하안 등과 어림군을 이끌고 황제의 수레를 호위하여 가는데 사농 환범이 말을 두드리며 간해 말하기를 주공께서 금병(황제의 호위군대)을 총괄 지휘하고, 형제가 모두 나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만약 성 안에 변란이 있게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했다. 조상이 채찍으로 가리키며 질책하여 말하기를 누가 감히 변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다시 어지러운 말을 하지 말라!”했다.

 

當日司馬懿見爽出城心中大喜即起舊日手下破敵之人并家將數十引二子上馬逕來謀殺曹爽

그날 사마의는 조상이 성을 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곧 옛날 수하로 적을 깨트리던 사람들과 가장 수십 명을 일으키고, 두 아들을 이끌고 말에 올라 빠른 길로 가 조상을 죽이려 하였다.

 

正是閉戶必然有起色驅兵自此逞雄風

바로 이러하다. 문을 닫아걸고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다 군대를 몰아 이로부터 위풍당당하게 나선다.

 

未知曹爽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조상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구나!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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