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一四回:曹髦驅車死南闕,姜維棄糧勝魏兵
제114회 조모는 수레를 타고가다 남궐에서 죽고, 강유는 식량을 버려 위나라 군대에게 이기다.
卻說姜維傳令退兵。廖化曰:「『將在外,君命有所不受。』今雖有詔,未可動也。」張翼曰:「蜀人為大將軍連年動兵,皆有怨望;不如乘此得勝之時,收回人馬,以安民心,再作良圖。」維曰:「善。」令各軍依法而退。命廖化,張翼斷後,以防魏兵追襲。
각설하고 강유가 군대를 물릴 것을 명령하였다. 요화가 말하기를 “‘장수가 밖에 있으면(전쟁 중에 있으면) 임금의 명을 받지 않을 수 있다.’합니다. 지금 비록 황제의 명이 있으나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했다. 장익이 말하기를 “촉 사람들이 대장군께서 매년 군대를 동원하는 것에 대해 모두 원망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승리한 때를 타고 인마를 거두어 돌아가는 것으로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다시 좋은 계책을 만드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좋다.”하고는 각 군으로 하여금 법에 의하여 물러나게 하고, 요화, 장익으로 하여금 뒤를 끊는 것으로서 위나라 군대의 추격을 막게 하였다.
卻說鄧艾引兵追趕,只見前面蜀兵旗幟整齊,人馬徐徐而退。艾歎曰:「姜維深得武侯之法也!」因此不敢追趕,勒軍回祁山寨去了。
각설하고 등애가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면서 앞의 촉 군대의 기치가 정제되어 있고, 인마가 천천히 물러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등애가 탄복하여 말하기를 “강유가 깊이 무후(제갈공명)의 법을 얻었구나!”했다. 이 때문에 감히 추격하지 못하고 군대를 돌려 기산의 영채로 돌아갔다.
且說姜維至成都,入見後主,問召回之故。後主曰:「朕為卿在邊庭,久不還師,恐勞軍士,故詔卿回朝,別無他意。」維曰:「臣已得祁山之寨,正欲收功,不期半途而廢。此必中鄧艾反間之計矣。」後主默然不語。姜維又奏曰:「臣誓討賊,以報國恩。陛下休聽小人之言,致生疑慮。」後主良久乃曰:「朕不疑卿;卿且回漢中,矣魏國有變,再伐之可也。」姜維歎息出朝,自投漢中去訖。
각설하고 강유가 성도에 이르러 궁궐에 들어 가 후주를 뵙고 불러 돌아오게 한 이유를 물었다. 후주가 말하기를 “짐은 경이 변경에 있으면서 오래동안 군대를 돌리지 않아 군사들이 수고로울 것을 걱정하여 경에게 조서를 내려 조정으로 돌아오게 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신이 이미 기산의 영채를 얻어 바로 공을 거두려 하는데 뜻하지 않게 중도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는 반드시 등애의 반간계에 빠진 것입니다.”했다. 후주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강유가 또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적을 토벌하는 것으로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맹서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소인의 말을 듣고 의심하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했다. 후주가 오래 한 후에 말하기를 “짐이 경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니 경은 또한 함중으로 돌아가시오. 위나라에 변란이 있으니 다시 정벌하시오.”했다. 강유가 탄식하며 조정을 나와 한중으로 들어 갔다.
卻說黨均回到祁山寨中,報知此事。鄧艾與司馬望曰:「君臣不和,必有內變。」就令黨軍入洛陽,報知司馬昭。昭大喜,便有圖蜀之心,乃問中護軍賈充曰:「吾今伐蜀,如何?」充曰:「未可伐也:天子方疑主公,若一但輕出,內難必作矣。舊年黃龍兩見於寧陵井中,群臣表賀,以為祥瑞;天子曰:「非祥瑞也:龍者君象,乃上不在天,下不在田,而在井中,是幽囚之兆也。」遂作潛龍師一首。師中之意,明明道著主公。其詩曰:「傷哉龍受困,不能躍深淵。上不飛天漢,下不見於田。蟠居於井底,鰍鱔舞其前。藏牙伏爪甲,嗟我亦同然!」
각설하고 당균이 기산의 영채로 돌아와 이 일을 보고하였다. 등애가 사마망에게 말하기를 “인금과 신하가 화합하지 않으니 반드시 안으로 변란이 있으 것입니다.”하고는 당균으로 하여금 낙양에 들어 가 사마소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여 촉을 도모하려는 마음이 있어 중호군 가충에게 물어 말하기를 “내가 지금 촉을 정벌하려 하는데 어떠합니까?”했다. 가충이 말하기를 “정벌해서는 안 됩니다. 천자께서 바야흐로 주공을 의심하고 있는데 만약 가벼이 나가시면 안에 어려움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지난 해 황룡이 영릉정 안에 나타나니 여러 신하들이 표를 올려 상서롭다고 축하하였다. 천자가 말하기를 ‘상서가 아니다. 용은 임금의 상인데 위로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 밭이 있지 않고 우물 속에 있으니 이는 유수(가두어짐)의 징조이다.’하고는 마침내 잠룡사 한 수를 지었습니다. 사의 뜻은 명백히 주공을 말한 것입니다. 그 시에
‘서글프다. 용이 곤궁함을 받아 깊은 못에서 뛰지 못하는구나. 위로 은하수에 날지 못하고, 아래로는 밭에 나타나지 못하였다. 우물 아래 또아리 트고 있으니 미구라지 뱀장어가 그 앞에서 춤춘다. 이빨을 감추고 발톱 감추니 아! 나와 같구나!’”했다.
司馬昭聞知大怒,謂賈充曰:「此人欲效曹芳也!若不早圖,彼必害我。」充曰:「某願為主公早晚圖之。」時魏甘露五年夏四月,司馬昭帶劍上殿,髦起迎之。群臣皆奏曰:「大將軍功德巍巍,合為晉公,加九錫。」髦低頭不答。昭厲聲曰:「吾父子兄弟三人有大功於魏,今為晉公,得毋不宜耶?」髦乃應曰:「敢不從命?』昭曰:「潛龍之詩,視吾等如鰍鱔,是何禮也?」髦不能答。昭冷笑下殿。眾官凜然。髦歸後宮,召伺中王沉,尚書王經、散騎常伺王業,三人入內計議。
사마소가 듣고 크게 노하여 가충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사람이 조방을 본 받으려 하는구나!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는다면 그가 반드시 나를 해칠 것이다.”했다. 가충이 말하기를 “제가 주공을 위하여 조만간에 도모하기를 원합니다.”했다. 때는 위나라 감로 오년 여름 사월이었다. 사마소가 검을 차고 전에 오르니 조모가 일어나 맞이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아뢰어 말하기를 “대장군의 공덕이 높고 크니 합하여 진공을 삼고 황제가 신하를 대하는 더하십시오.”했다. 조모가 머리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사마소가 성난 소리로 말하기를 “우리 부자 형제 세 사람은 위나라에 큰 공이 있는데 지금 진공이 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것입니까?”했다. 조모가 이에 대답 해 말하기를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했다. 사마소가 말하기를 “잠룡의 시는 우리들을 미꾸라지와 뱀장어 같이 본 것은 어찌 예라 할 수 있겠습니까?”하니 조모가 대답하지 못하였다. 사마소가 비웃으며 전에서 내려갔다. 여러 관리들이 두려워하였다. 조고가 후궁으로 돌아 가 사중 왕침, 상서 왕경, 산기상사 왕업 세 사람을 불러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자 계책을 의논하였다.
髦泣曰:「司馬昭將懷篡逆,人所共知!朕不坐受廢辱,卿等可助朕討之!」王經奏曰:「不可:昔魯昭公不忍季氏,敗走失國;今重權已歸司馬氏久矣,內外公卿,不顧順逆之理,阿附奸賊,非一人也。且陛下宿位寡弱,無用命之人。陛下若不隱忍,禍莫大焉。且宜緩圖,不可造次。」髦曰:「是可忍也,孰不可忍也!朕意已決,便死何懼!」言訖,即入告太后。王沉、王業謂王經曰:「事已急矣,我等不可自取滅族之禍。當往司馬公府下出首,以免一死。」經大怒曰:「主憂臣辱,主辱臣死,敢懷二心乎?」王沉,王業見經不從,逕自往報司馬昭去了。
조모가 눈물을 흘리며 “사마소가 찬역의 뜻을 품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바이다. 짐이 앉아서 폐해지는 욕을 받을 수 없으니 경들은 나를 도와 그를 토벌하시오.”했다. 왕경이 아뢰어 말하기를 “안 됩니다. 옛날 노나라 소공이 계씨를 참지 못하였지만 패하여 나라를 잃었습니다. 지금 중요한 권력이 이미 사마씨에게 돌아 간 것이 오래되어 내외 공경이 순역(따르고 거스름)의 도리를 돌아보지 않고 간사한 도적에게 아부(아첨)하는 이가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폐하의 숙위(호위)는 적고 약하여 명을 받들 사람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만약 숨기고 참아내지 못하신다면 화(재앙)가 이보다 큼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마땅히 천천히 도모하고 급히 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조모가 말하기를 “이것이 참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입니까? 짐의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곧 죽더라도 무엇이 두렵겠습니까?”하는 말을 마치고 곧 들어 가 태후에게 고하였다. 왕침과 왕법이 왕경에게 일러 말하기를 “일이 이미 위급하니 우리들은 멸족의 화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사마공부에 가서 자수하는 것으로서 죽음을 면해야 합니다.”했다. 왕경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임금의 근심은 신하의 욕이고, 임금의 욕은 신하의 죽음인데 감히 두 마음을 품겠는가?”했다. 왕침과 왕업은 왕경이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재빨리 직접 사마소에게 가서 알렸다.
少頃,魏主曹髦出內,令護衛焦伯,聚集殿中宿衛蒼頭官童三百餘人,鼓譟而出。髦仗劍升輦,叱左右逕出南闕。王經伏於車前,大哭而諫曰:「今陛下領數百人伐昭,是驅羊而入虎口耳,空死無益。臣非惜命,實見事不可行也。」髦曰:「吾軍已行,卿無阻當。」遂望龍門而來。
잠시 후 위나라 임금 조모가 안에서 나와 호위 초백으로 하여금 전중 숙위창두와 관동 삼백여 명을 모아 북을 울리며 나갔다. 조모가 검을 잡고 연(가마, 수레)에 올라 좌우에 소리치며 재빠르게 남궐에서 나갔다. 왕경이 수레 앞에 엎드려 크게 울면서 간하여 말하기를 “지금 폐하께서 수백 명을 거느리고 사마소를 정벌하는 것은 양을 몰아 범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일 뿐으로 헛되이 죽어 이익이 없습니다. 신이 목숨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실로 일이 행해질 수 없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했다. 조모가 말하기를 “내 군대가 이미 갔으니 경은 막지 마시오.”했다. 마침내 용문을 향해 갔다.
只見賈充戎服乘馬,左有成倅,右有成濟,引數千鐵甲禁兵,吶喊殺來。髦仗劍大喝曰:「吾乃天子也!汝等突入宮庭,欲弒君耶?」禁兵見了曹髦,皆不敢動。賈充呼成濟曰:「司馬公養你何用?-正為今日之事也。』濟乃棹戟在手,回顧充曰:「當殺耶?當搏耶?」充曰:「司馬公有令,只要死的。』成濟挺戟直奔車前。髦大喝曰:「匹夫敢無禮乎!」言未訖,被成濟一戟刺中髦前胸,撞出輦來;再一戟,刃從背上透出,死於輦旁。焦伯挺槍來迎,被成濟一戟刺死。眾皆逃走。
얼핏 가충이 융복을 입고 말을 타고, 왼쪽에는 성졸, 오른쪽에 성제가 있는데 수천의 철갑옷을 입은 금병을 이끌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조모가 검을 잡고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내가 곧 천자이다. 너희들이 궁궐에 치고 들어오는 것은 임금을 죽이려는 것인가?”하니 금병들이 조모를 보고는 모두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가충이 성제를 불러 말하기를 “사마공이 너를 길러 어디에 쓰려하였겠는가? 바로 오늘의 일이다.(오늘의 일에 쓰려던 것이었다.)”했다. 성제가 창을 손에 잡고 가충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죽이는 것이 마땅합니까? 포박하는 것이 마땅합니까?”했다. 가충이 말하기를 “사마공의 명령이 있었는데 다만 죽이려 하였을 뿐이다.”했다. 성제가 창(극)을 내밀고 바로 수레 앞으로 달려갔다. 조모가 크게 외쳐 말하기를 “필부가 어찌 예가 없는가?”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성제가 한 창(극)으로 조모의 앞가슴을 찌르니 (조모가) 부딪혀 수레에서 튀어나왔다. 다시 한 번 창(극)으로 찌르니 칼날이 등에서 위로 뚫고 나와 수레(가마) 옆에서 죽었다. 초백이 창을 내밀고 와 맞이하다 성제의 한 창에 찔려 죽었다. 무리들이 모두 도망갔다.
王經隨後敢來,大罵賈充曰:「逆賊安敢弒君耶!」充大怒,叱左右縛定,報知司馬昭。昭入內,見髦已死,乃佯作大驚之狀,以頭輦車而哭,令人報知各大臣。時太傅司馬孚入內,見髦屍首,枕其股而哭曰:「弒陛下者,臣之罪也!遂將髦屍用棺槨盛貯,停於偏殿之西。昭入殿中,召群臣會議。群臣皆至,獨有尚書僕射陳泰不至。昭令泰之舅尚書荀顗召之。泰大哭曰:「論者以泰比舅,今舅實不如泰也。」乃披麻帶孝而入,哭拜於靈前。
왕경이 뒤를 물러나지 않고 가충을 크게 욕하여 말하기를 “역적은 어찌 감히 임금을 죽이는가!”하니 가충이 크게 노하여 좌우에 소리쳐 묶게 하고는 사마소에게 보고하였다. 사마소가 안으로 들어가 조모가 이미 죽어있는 것을 보고 거짓으로 크게 놀라는 모양을 짓고, 수레 앞에서 울며 사람을 시켜 각 대신들에게 알리게 하였다. 그 때 태부 사마부가 안으로 들어와 조모의 시신을 보고는 (조모의 시신을)그 다리에 눕히고 곡하며 말하기를 “폐하를 죽게 한 것은 신의 죄입니다.”하고는 마침내 조모의 시신을 가져다 관곽을 써 담고, 편전의 서쪽에 두었다. 사마소가 전에 들어와 여러 신하를 불러 의논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이르렀는데 유독 상서복야 진태만 이르지 않았다. 사마소가 진태의 외삼촌(장인)인 상서 순의로 하여금 부르게 하였다. 진태가 크게 소리 내어 울며 말하기를 “논하는 자들은 나를 외삼촌(장인)에 견주지만 지금 외삼촌(장인)은 나보다 못하구나”하고는 곧 상복을 입고 들어가 (조모의)관곽 앞에서 곡하며 절하였다.
昭亦佯哭而問曰:「今日之事,何法處之?」泰曰:「獨斬賈充,少可以謝天下耳。」昭沉吟良久,又問曰:「再思其次。」泰曰:「惟有進於此者,不知其次。」昭曰:「成濟大逆不道,可剮之,滅其三族。」濟大罵昭曰:「非我之罪,是賈充傳汝之命!」昭令先割其舌。濟至死叫屈不絕。弟成倅亦斬於市,盡滅三族。後人有詩歎曰:
사마소가 거짓으로 곡하며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어떤 법으로 처리해야 합니까?”하니 진태가 말하기를 “오직 가충을 베어 죽이는 것만이 조금 천하에 사죄할 수 있습니다.(것으로는 천하에 사죄하기에 부족합니다.)”했다. 사마소가 침묵하기를 오래하다가 또 물어 말하기를 “그 다음을 다시 생각하라.”하니 진태가 말하기를 “이 보다 나아감이 있을 뿐(이 보다 더함이 있을 뿐) 그 다음은 알지 못합니다.”했다. 사마소가 말하기를 “성제가 대역부도하니 그를 죽이고 그 삼족을 멸하겠습니다.”했다. 성제가 크게 사마소를 욕하여 말하기를 “나의 죄가 아니라 이는 가충이 너의 명을 전하였기 때문이다.”했다. 사마소가 먼저 그 혀를 베게 하였다. 성제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억울함을 그치지 않았다. 동생 성졸 또한 거리에서 베어 죽이고 삼족을 모두 멸하게 하니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해 말하기를
司馬當年命賈充,弒君南闕袍紅。卻將成濟誅三族,只道軍民盡耳聾。
“사마소가 그해 가충에게 명하여 임금을 남궐에서 죽이니 옷이 붉게 물들었다. 성제와 삼족을 죽여 군대와 백성들을 모두 귀머거리로 아는구나.”했다.
昭又使人收王經全家下獄。王經正在廷尉廳下,忽見縛其母至。經叩頭大哭曰:「不孝子累及慈母矣!」母大笑曰:「人誰不死?正恐不死所耳。以此棄命,何恨之有?」次曰(日),王經全家皆押赴東市。王經母子含笑受刑。滿城士庶,無不垂淚。後人有詩曰:
사마소가 또 사람을 시켜 왕경의 모든 가족을 거두어 옥에 가두었다. 왕경이 바로 정위청 아래 있었는데 홀연히 그 어미가 묶여 이르는 것을 보았다. 왕경이 머리를 두드리며 크게 소리 내어 울며 말하기를 “불효자의 허물이 어머니께 미쳤구나!”하니 (왕경의)어머니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사람으로 누가 죽지 않겠는가? 바로 죽을 자리가 아님을 두려워할 뿐이다. 이 때문에 목숨을 버린다 한들 무슨 한이 있겠는가?”했다. 다음날 왕경의 전 가족이 모두 동시에 끌려갔다. 왕경 모자는 웃음을 머금고 형을 받았다. 성에 가득한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은 것이 있다.
漢初誇伏劍,漢末見王經:真烈心無異,堅剛志更清。節如泰華重,命羽毛輕。母子聲名在,應同天地傾。
“한나라 초에 (왕릉의 어미가) 검으로 자살하더니 한 말에는 왕경을 보는구나. 참으로 굳세고 바란 마음 다르지 않고, 굳은 의지 다시 맑다. 절개는 태산과 화산과 같고, 목숨은 깃털보다 가볍다. 모자의 명성이 보존되어 마땅히 천지의 기울어짐과 같이할 것이다.”했다.
太傅司馬孚請以王禮葬曹髦,昭許之。賈充等勸司馬昭受魏禪,即天子位。昭曰:「昔文王三分天下有其二,以服事殷,故聖人稱為至德。魏武帝不肯禪於漢,猶吾之不肯禪於魏也。」賈充等言,已知司馬昭留意於子司馬炎矣,遂不復勸進。是年六月,司馬昭立常道鄉公曹璜為帝,改元景元元年。璜改名曹奐,字景召—乃武帝曹操之孫,燕王曹宇之子也。奐封昭為丞相晉公,賜錢十萬、絹萬疋。其文武多官,各有封賞。
태부 사마부가 왕의 예로 조모를 장례할 것을 청하니 사마소가 허락하였다. 가충 등이 사마소에게 위나라의 선양을 받아 천자의 자리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사마소가 말하기를 “옛날 주나라 문왕은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드 둘을 소유하였는데도 은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성인이 지극한 덕이라 말하였습니다. 위나라 무제도 한나라에 기꺼이 선양을 받지 않으려 했으니 내가 위나라에게 기꺼이 선을 받지 않으려는 것과 같습니다.”했다. 가충 등은 사마소가 뜻이 아들 사마염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다시 천자의 위에 나아갈 것을 권하지 않았다. 이해 유월 사마소가 상도향공 조황을 세워 황제로 삼고 연호를 고쳐 경원 원년이라 했다. 조황은 이름을 조환이라 고쳤는데 자는 경소이니 곧 무제 조조의 손자로 연왕 조우의 아들이다. 조환은 사마소를 봉해 승상 진공이라 하고 돈 십만, 비단 만 필을 내렸다. 문무관의 많은 관리들에게 각각 작을 봉하고 상을 주었다.
早有細卒報入蜀中。姜維聞司馬昭弒了曹髦,立了曹奐,喜曰:「吾今日伐魏,又有名矣。」遂發書入吳,令起兵問司馬昭弒君之罪;一面奏准後主,起兵十五萬,車乘數千輛,皆置板箱於上;令廖化、張翼為先鋒。一化取子午谷,翼取駱谷,一維自取斜谷,皆要出祁山之前取齊。三路兵並起,殺奔祁山而來。
재빨리 세작(첩자)이 촉에 들어 가 보고하였다. 강유는 사마소가 조모를 죽이고 조환을 세웠다는 것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오늘 위나라를 정벌하여 또한 공을 세울 것이다.(위나라를 정벌할 명분이 있다.)”하고는 마침내 오나라에 글을 보내 군대를 일으켜 사마소가 임금을 죽인 죄를 묻는 한편으로 후주에게 아뢰어 군대 십오만, 수레 주천 대를 일으켜 모두 나무 상자를 (수레)위에 설치하게 하는 한편으로 요화, 장익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였다. 요화는 자오곡을 취하고 장익은 낙곡을 취하게 하고 강유 자신은 사곡을 취려 하였는데 모두 기산 앞으로 나가 일제히 취하려는 것이었다. 세 길로 군대를 나란히 일으켜 기산으로 달려 나갔다.
時鄧艾在山寨中,訓練人馬,聞報蜀兵三路殺到,乃聚諸將計議。參軍王瓘曰:「吾有一計,不可明言。見寫在此,謹呈將軍台覽。」艾接來展看畢,笑曰:「此計雖妙,只怕瞞不過姜維。」瓘曰:「某願捨命前去。」艾曰:「公志若堅,必能成功。」
그 때 등애는 산채 안에 있으면서 인마를 훈련시키고 있다가 촉의 군대가 세 길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듣고 여러 장수를 모아 계책을 논의하였다. 참군 왕관이 말하기를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는데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글로 쓴 것이 여기에 있으니 삼가 장군께 올리니 살피십시오.”했다. 등애가 받아 펼쳐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이 계책이 비록 현묘하나 다만 강유를 속이는데 지나지 않는다.”했다. 왕관이 말하기를 “제가 목숨을 버리고 앞에서 가겠습니다.”했다. 등애가 말하기를 “공의 뜻이 굳은듯하니 반드시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遂撥五千兵與瓘。瓘連夜從斜谷迎來,正撞蜀兵前隊哨馬。瓘叫曰:「我魏國降兵,可報於主帥。」
드디어 오천의 군대를 뽑아 왕관에게 주었다. 왕관이 밤을 이어 비스듬한 골짜기를 따라 (강유를)맞이하러 가다 촉 군대 앞 부대의 정찰병과 맞닥트렸다. 왕관이 외쳐 말하기를 “우리는 위나라의 항ㅂ hr한 군대인데 주수(우두머리 장수)에게 보고해 주시오.”했다.
哨軍報知姜維,維令攔住餘兵,只叫為首的將來見。瓘拜伏於地曰:「某乃(不)王經之姪王瓘也。近見司馬昭弒君,將叔父一門皆戮,某痛恨入骨。今幸將軍興師問罪,故特引本部兵五千來降。願從調遣,剿除奸黨,以報叔父之恨。」
정찰군이 강유에게 보고하니 강유가 남은 군대는 막게 하고 우두머리 장수만 만나러 오게 하였다. 왕관이 절하며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저는 곧 왕경의 조카 왕관입니다. 최근에 사마소가 임금을 죽이고, 숙부 일 가문이 모두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 제가 원통한 한이 뼈에 사무쳤습니다. 지금 다행히 장군이 군대를 일으켜 죄를 묻기 때문에 특히 본부 군대 오천을 이끌고 와서 항복하는 것입니다. 지시를 따라 간사한 무리를 쓸어 제거하는 것으로서 숙부의 한(원수)을 갚기를 원합니다.”했다.
維大喜,謂瓘曰:「汝既誠心來降,吾不誠心相待;吾軍中所患者,不過糧耳。今有糧草,現在川口。汝可運赴祁山。吾只今去取祁山寨也。」瓘心中大喜,以為中計,忻然領諾。姜維曰:「汝去運糧,不必用五千人,但引三千人去,留下二千人引路,以打祁山。」瓘恐維疑惑,乃引三千兵去了。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왕관에게 일러 말하기를 “네가 이미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와서 항복하는데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대접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군대의 근심은 식량이 부족한 것입니다. 지금 식량과 말먹이 풀이 지금 천(양천)의 입구에 있습니다. 네가 기산으로 운반해 주시오. 나는 지금 가서 기산의 영채를 취할 것입니다.”했다. 왕관이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계책에 빠졌다 여기고 기쁘게 응락하였다. 강유가 말하기를 “네가 가서 식량을 운반하는데 오천 명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삼천 명만 이끌고 가고 이천 명은 남겨 길을 인도하여 기산을 치시오.”했다. 왕관이 강유가 의심할가 두려워하여 이에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갔다.
維令傅僉引二千魏兵隨征聽用。忽報夏侯霸到。霸曰:「都督何故准信王瓘之言也?吾在魏,雖不知備細,未聞王瓘是王經之姪:其中多詐,請將軍察之。」維大笑曰:「我已知王瓘之詐,故分其兵勢,將計就計而行。」霸曰:「公試言之。」維曰:「司馬昭奸雄比於曹操,既殺王經,滅其三族,安肯存親姪於關外領兵?知其詐也。仲權之見與我暗合。」
강유가 부첨으로 하여금 이천의 위나라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는 군대를 따르며 명을 받게 하였다. 홀연히 하후패가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하후패가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어떤 이유로 왕관의 말을 믿으십니까? 내가 위나라에 있을 때 비록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왕관이 왕환의 조카라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안(말)에 속임이 많으니 장군께서는 살피시기를 청합니다.”했다. 강유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이미 왕관의 거짓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군대의 세력을 나누어 장계취계 하려던 것이었습니다.”했다. 하후패가 말하기를 “공은 말해 주십시오.”했다. 사마소는 간웅으로 조조에게 비견되는데 이미 왕경을 죽이고 그 삼족을 멸하였으니 어찌 기꺼이 친척인 조카에게 관 밖에서 군대를 거느리게 하겠습니까? 이것으로 거짓임을 안 것입니다. 중권(하후패)의 견해가 나와 일치합니다.“했다.
於是姜維不出斜谷,卻令人於路暗伏,以防王瓘奸細。不旬日,果然伏兵捉得王瓘回報鄧艾下書人來見。維問了情節,搜出私書,書中約於八月二十日,從小路運糧送歸大寨,卻教鄧艾遣兵於壇山谷中接應。維將下書人殺了,卻將書中之意,改作八月十五日,約鄧艾自率大兵於壇山谷中接應。一面令人扮作魏軍往魏營下書;一面令人將現有糧草數百輛卸了糧米,裝載乾柴茅草引火之物,用青布罩了,令傅僉引二千原降魏兵,執打著運糧旗號。維卻與夏侯霸各引一軍,去山谷中埋伏。令蔣舒出斜谷,廖化,張翼俱各進兵,來取祁山。
이에 강유는 사곡을 나가지 않고 사람을 시켜 길에 매복하게 하는 것으로서 왕관의 간세(첩자)를 막게 하였다. 십일이 되지 않아 과연 복병이 왕관이 등애에게 보고하는 글을 가진 사람을 잡아왔다. 강유가 일의 정황을 묻고 사서(비밀문서)를 찾아내었다. 글은 대략 팔월 이십일 작은 길을 따라 식량을 운반하여 큰 영채로 돌아가니 등애로 하여금 군대를 보내 단산의 골짜기 안에서 상황에 맞게 대응하라는 것이었다. 강유가 글을 가졌던 사람을 죽이고는 글 안의 뜻을 팔월 십오일 등애가 스스로 대군을 통솔하여 단산의 골짜기 안에서 상황에 맞게 대응하라고 고쳐 썼다.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위나라 군사로 가장하여 위나라 진영에 가 글을 전하게 하였다.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식량과 말 먹이풀을 운반하는 수레 수백 대에 실려 있던 쌀을 내리고 마른 섶과 띠풀 등의 불붙는 물건을 싣고 푸름 포를 써 덮게 하고 부첨으로 하여금 이천의 월래 항복하였던 군대를 이끌고 식량을 운반하는 깃발을 달게 하였다. 강유는 하후패와 각각 일 군을 이끌고 산골짜기로 가 매복하였다. 장서로 하여금 사곡을 나오게 하고, 요화, 장익은 군대를 모두 진군시켜 기산을 취하게 했다.
卻說鄧艾得了王瓘書信,大喜,急寫回書,令來人回報。至八月十五日,鄧艾引五萬精兵逕往壇山谷中來,遠遠使人憑高眺望,只見無數糧車,接連不斸,從山凹中而行。艾勒馬望之,果然皆是魏兵。左右曰:「天已昏暮,可速接應王瓘出谷口。」艾曰:「前面山勢掩映,倘有伏兵,急難退步;只可在此等候。」正言間,忽兩騎馬驟至,報曰:「王將軍因將糧草過界,背後人馬趕來,望早救應。」艾大驚,急催兵前進。時值初更,月明如晝。只聽得山後吶喊,只道王瓘在山後廝殺。逕奔過山後時,忽樹林一彪軍撞出,為首蜀將傅僉,縱馬大叫曰:「鄧艾匹夫!已中吾主將之計!何不早早下馬死!」
등애가 왕관의 서신을 받고 크게 기뻐하며 급히 답장을 써서 온 사람으로 하여금 돌아 가 알리게 했다. 팔월 십오일에 이르러 등애가 오만의 정병을 이끌고 재빨리 단산의 골짜기 안으로 갔다. 멀리멀리 사람을 시켜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게 하였더니 헤아릴 수 없는 식량을 실은 수레가 연속하여 끊어지지 않고, 산 오목한 곳을 따라 가고 있었다. 등애가 말을 돌려 바라보니 과연 모두 위나라 군대였다. 좌우가 말하기를 “하늘이 이미 어두워졌으니 속히 왕관을 맞아 골짜기 입구로 나가야 합니다.”했다. 등애가 말하기를 “앞쪽의 산 형세가 그림자에 가려졌으니 만약 복병이 있다면 급히 물러나기 어려우니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했다. 말하는 사이에 홀연히 두 기병이 말을 달려 이르러 보고해 말하기를 “왕장군(왕관)이 식량과 말먹이 풀을 싣고 경계를 지나는데 뒤에서 인마가 쫒아오기 때문에 빨리 구원해 줄 것을 바랍니다.”했다. 등애가 크게 놀라 급히 군대를 재촉하여 전진하였다. 그 때는 초경 무렵으로 달이 밝기가 낮과 같았다. 산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것을 들으니 왕관이 산 뒤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듯하였다. 재빨리 달려 산 뒤를 지날 때 홀연히 숲 안에서 한 떼의 군대가 치고 나오는데 우두머리 되는 촉이 장수는 부첨으로 말을 달리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등애 필부야! 이미 우리의 주된 장수의 계책에 빠졌구나! 어찌하여 빨리 말에서 내려 목숨을 내놓지 않는가!” 했다.
艾大驚,勒回馬便走。車上火盡著—那火便是號火。兩山下蜀兵盡出,殺得魏兵七斸八續,但聞山下山上只叫:「拏住鄧艾的,賞千金,封萬戶侯!」嚇得鄧艾棄甲丟盔,撇了坐下馬雜在步之中,爬山越嶺而逃。姜維、夏侯霸只望馬上為首逕來捉擒,不想鄧艾步行走脫,維領得勝兵去接王瓘糧車。
등애가 크게 놀라 말고삐를 당겨 말을 달려 달아났다. 수레 위에 불이 모두 붙는 것이 신호불이 되었다. 두 산 아래서 촉의 군대가 모두 나와 위나라 군대를 열에 일고여덟을 베어 죽이는데 산 위아래서 “등애를 잡으면 천금을 상주고, 만호 후에 봉할 것이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겁먹은 등애가 갑옷과 투구를 버리고 타고 있던 말을 버리고 보병 가운데 섞여 산에 올라 고개를 넘어 도망하였다. 강유, 하후패는 다만 말 위에 우두머리가 타고 있다 여기고 재빨리 사로잡으러 갔으나 등애가 걸어서 벗어났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강유가 승리한 군대를 이끌고 왕관의 식량수레를 맞으러 갔다.
卻說王瓘密約鄧艾,先期將糧草車仗,整備停當,專候舉事。忽有心腹人報:「事己洩漏,鄧將軍大敗,不知性命如何。」瓘大驚,令人哨探,回報三路兵圍殺將來,背後又有塵土大起,鈿(四)下無路。瓘叱左右令放火,盡燒糧草車輛。一霎時,火光突起,烈火燒空。瓘大叫曰:「事已急矣!汝宜死戰!」乃提兵望西殺出。背後姜維三路追趕。維只道王瓘捨撞回魏國,不想反殺入漢中而去。瓘因兵少,只恐追兵趕上,遂將棧道並各關隘盡皆燒燬。姜維恐漢中有失,遂不追鄧艾,提兵連夜抄小路來追殺王瓘。瓘被四面蜀兵攻擊,投黑龍江而死。餘兵盡被姜維坑之。
각설하고 왕관은 등애와 비밀리 약속하고 먼저 기일에 앞서 식량과 말 먹이풀을 실은 수레를 정비한 채 거사를 기다렸다. 홀연히 심복이 보고하기를 “일이 이미 누설되어 등장군(등애)이 크게 패하여 목숨이 어떠한지 알지 못합니다.”했다. 왕관이 크게 놀라 사람을 시켜 정탐하게 하였더니 돌아 와 세 길의 군대가 둘러싸고 달려오는데 뒤에 또한 먼지가 크게 일어나 사방에 길이 없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왕관이 좌우에게 불을 질러 식량과 말먹이 풀 수레를 모두 태우라고 소리쳤다. 삽시간에 불빛이 치솟아 뜨거운 불이 공중을 태웠다. 왕관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일이 이미 급하구나! 너희들은 마땅히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야 할 것이다!”하고는 군대를 데리고 서쪽을 향해 달려갔다. 뒤에서 강유가 세 길로 추격하였다. 강유는 왕관이 위나라로 달아나는 것으로 알았으나 생각지 않게 한중으로 달려 들어갔다. 왕관은 군대가 적었기 때문에 추격하는 군대가 뒤쫓아 올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잔도와 각 관을 모두 불태웠다. 강유는 한중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등애를 추격하지 않고 군대를 거느리고 밤을 이어 작은 길을 찾아 왕관을 추격하였다. 왕관은 사방에서 촉의 군대가 공격하자 흑룡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강유가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땅에 묻었다.
維雖然勝了鄧艾,卻折了許多糧草,又毀了棧道,乃引兵還漢中。鄧艾引部下敗兵,逃回祁山寨內,上表請罪,自貶其職。司馬昭見艾數有大功,不忍貶之,復加厚賜。艾將原賜財物,盡分給被害將士之家。昭恐蜀兵又出,遂添兵五萬,與艾守禦。姜維連夜修了棧道,又議出師。正是:連修棧道兵連出,不伐中原死不休。未知負如何,且看下文分解。
강유가 비록 등애에게 이겼으나 허다한 식량과 말먹이 풀을 잃었고, 또 잔도가 파괴되었으므로 군대를 이끌고 한중으로 돌아갔다. 등애는 부하 패한 군대를 이끌고 도망하여 기산 영채 안으로 돌아 가 표를 올려 죄를 청하고 스스로 그 관직을 낮출 것을 청하였다. 사마소는 등애가 여러 번 큰 공이 있음을 보고 차마 낮추지 못하고 다시 후하게 내려 주었다. 등애가 내려 준 재물을 모두 해를 입은 장사의 집에 나누어 주었다. 사마소는 촉 군대가 또 나울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군대 오만을 더하여 등애에게 주고 지키게 했다. 강유가 밤을 이어 잔도를 수리하고 또 군대 내는 것을 상의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연이어 잔도를 수리하고, 군대를 연이어 내니 중원을 정벌하지 못하면 그치지 않으리라. 승부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다.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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