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一六回:鍾會分兵漢中道,武侯顯聖定軍山
제116회 종회는 군대를 나누어 한중으로 나가고, 무후(제갈공명)의 신령이 정군산에 나타나다.
卻說司馬昭謂西曹掾邵悌曰:「朝臣皆言蜀未可伐,是其心怯:若使強戰,必敗之道也。今鍾會獨建伐蜀之策,是其心不怯:心不怯,則破蜀必矣;蜀既破,則蜀人心膽已裂。『敗軍之將,不可以言勇;亡國之大夫,不可以圖存。』會即有異志,蜀人安能助之乎?至若魏人得勝思歸,必不從會而反,更不足慮耳。此言乃吾與汝知之,切不可泄漏。」邵悌拜服。
각설하고 사마소가 서조의 하급관리 소제에게 일러 말하기를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촉을 정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 마음에 겁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억지로 싸우게 한다면 반드시 패할 방법이다. 지금 종회가 홀로 촉을 정벌할 계책을 세웠는데 이는 마음에 겁을 내지 않기 때문이니 곧 촉을 깨트릴 것이 틀림없다. 촉을 깨트리면 곧 촉 사람들의 마음과 담이 찢어질 것이다. ‘패한 장수는 용맹을 말할 수 없고, 망한 나라의 대부는 생존을 도모할 수 없다.’한다. 종회는 곧 다른 뜻이 있으니 촉 사람들이 어찌 그를 도울 수 있겠는가? 만약 위나라 사람들이 승리하면 돌아갈 것을 생각할 터이니 반드시 종회를 따르지 않고 반대할 것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 말은 곧 나와 너만 알고 절대로 누설해서는 안 된다.”하니 소제가 절하며 인정하였다.
卻說鍾會下寨已畢,升帳大集諸將聽令。時有監軍衛瓘,護軍胡烈;大將田續,龐會,田章,爰(左青右為「影」的右邊),丘建,夏侯咸,王賈,皇甫闓,句安,等八十餘員。會曰:「必須一大將為先鋒,逢山開路,遇水疊橋。誰敢當之?」一人應聲曰:「某願往。」
각설하고 종회는 영채 설치를 마치고 군막에 올라 여러 장수를 모아 명령을 내렸다. 그때 감군 위관, 호군 호열, 대장 전속, 방회, 전장, 원?(정), 구건, 하후함, 왕가, 황보개, 구안 등 팔십여 명이 있었다. 종회가 말하기를 “반드시 한 대장이 선봉이 되어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쌓아야 합니다.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는가?”하니 한 사람이 대답해 말하기를 “제가 가기를 원합니다.”했다.
會視之,乃虎將許褚之子許儀也。眾皆曰:「非此人不可為先鋒。」會喚許儀曰:「汝乃虎體猿臂之將,父子有名:今眾將亦皆保汝,汝可掛先鋒印,領五千馬軍,一千步軍,徑取漢中。分兵三路:汝領中路,出斜谷:左軍出駱谷;右軍出子午谷。此皆崎嶇山險之地,當令軍填平道路,修理橋梁,鑿山破石,勿使阻礙;如違必按軍法。」許儀受命,領兵而進。鍾會隨後提十萬餘眾,星夜起程。
종회가 그를 보니 곧 범 같은 장수 허저의 아들 허의였다. 무리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 사람이 아니면 선봉이 될 수 없습니다.”하니 종회가 허의를 불러 말하기를 “너는 곧 몸은 범과 같고, 팔은 원숭이 같은 장수로 부자간에 명성이 있다. 지금 여러 장수들이 또한 모두 너를 보증하니 너는 선봉의 인수를 걸고 오천의 기병과 일천의 보병을 거느리고 빠르게 한중을 취하시오. 군대를 세 길로 나누되 너는 가운데 길로 사곡으로 나가고 좌군은 낙곡으로 나가고, 우군은 자오곡으로 나아시오. 이는 모두 험한 산의 땅으로 마땅히 군대로 하여금 도로를 메꾸어 평평하게 하고, 다리를 수리하는데 산을 뚫고 돌을 깨 막히게 하지 마시오. 만일 어긴다면 반드시 군법을 적용할 것입니다.”했다. 허의가 명령을 받고 군대를 거느리고 전진하였다. 종회는 뒤를 따라 십만의 남은 무리를 제리고 밤을 세워 행군하였다.
卻說鄧艾在隴西,既受伐蜀之詔,一面令司馬望往遏羌人。又遣雍州刺史諸葛緒,天水太守王頎,隴西太守牽弘,金城太守楊欣,各調本部兵前來聽令。比及軍馬雲集,鄧艾夜作一夢,夢見登高山,望漢中,忽於腳下迸出一泉,水勢上湧;須臾驚覺,渾身汗流,遂坐而待旦,乃召護衛邵緩問之。緩素明周易。艾備言其夢。緩答曰:「易云:『山上有水曰蹇。蹇卦者,利西南不利東北。』孔子云:『蹇利西南。往有功也;不利東北,其道窮也。』將軍此行必然克蜀。但可惜蹇滯不能還。」
각설하고 등애는 농서에 있다가 촉을 정벌하라는 조서를 받은 후 한편으로 사마망으로 하여금 가서 강족 사람을 막게 하였다. 또 옹주자사 제갈서를 보내 천수태수 왕기, 농서태수 견홍, 금성태수 양흔에게 보내 각각 본부의 군대를 뽑아 앞으로 와 명령을 듣게 하였다. 군마가 모일 때에 이르러 등애는 밤에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꿈에 높은 산에 올라 한중을 바라보는데 홀연히 발아래서 하나의 샘이 솟아나는데 물의 형세가 위로 치솟았다. 잠시 후 꿈에서 깨니 온 몸에 땀이 흘렀다. 마침내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다. 곧 호위 소완을 불러 물었다. 소완은 평소 주역에 밝았다. 등애가 그 꿈을 모두 말하였다. 소완이 대답해 말하기를 “주역에 ‘산위에 물이 있는 것을 蹇卦(건괘)라 하고, 건괘는 서남쪽이 이롭고, 동북쪽은 이롭지 않다.’고 했는데 공자가 말하기를 ‘건은 서남쪽이 이롭다. 가면 공이 있을 것이다. 동북쪽은 이롭지 않아 그 길이 막힌다.’했습니다. 장군께서 이번에 가시면 반드시 촉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애석하게도 곤경에 처해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했다.
艾聞言,愀然不樂。忽鍾會檄文至,約艾起兵,於漢中取齊。艾遂遣雍州刺史諸葛緒,引兵一萬五千,先斷姜維歸路;次遣天水太守王頎,引兵一萬五千,從左攻沓中;隴西太守牽弘,引一萬五千人,從右攻沓中:又遣金城太守楊欣,引一萬五千人,於甘松邀姜維之後。艾自引兵三萬,往來接應。
등애가 말을 듣고 두려워하고 즐거워하지 않았다. 홀연히 종회의 격문(명령서)이 이르자 등애는 군대를 일으켜 한중에서 모이기로 기약하였다. 등애가 마침내 옹주자사 제갈서를 보내 군대 일만 오천을 이끌고 먼저 강유가 돌아오는 길을 끊게 하고, 다음으로 천수태수 왕기를 보내 군대 일만 오천을 이끌고 왼쪽에서 답중을 공격하게 하고, 농서태수 견홍은 일만 오천을 이끌고 오른쪽에서 답중을 공격하게 하고, 또 금성태수 양흔을 보내 일만오천을 이끌고 감송에서 강유의 뒤를 맞이하게 하였다. 등애는 스스로 군대 삼만을 이끌고 오가면서 상황에 맞게 대응하였다.
卻說鍾會出師之時,有百官送出城外,旌旗蔽日,鎧甲凝霜;人強馬壯;威風凜凜,人皆稱羨;惟有相國參軍劉實,微笑不語。太尉王祥,見實冷笑,就馬上握其手而問曰:「鍾,鄧二人,此去可平蜀乎?」實曰:「破蜀必矣:但恐皆不得還都耳。」王祥問其故,劉實但笑而不答。祥遂不復問。
각설하고 종회가 군대를 낼 때 백관이 성 밖에 나가 환송하는데 깃발은 해를 가리고 투구와 갑옷은 서리가 엉긴 듯하고, 사람과 말은 굳세어 위풍이 늠늠하니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고 부러워하였으나 오직 상국참군 유실만은 냉소를 지으며 말하지 않았다. 태위 왕상은 유실이 비웃는 것을 보고 말 위에서 나아가 그 손을 잡고 물어 말하기를 “종회, 등애 두 사람이 이번에 가서 촉을 평정할 수 있겠습니까?”하니 유실이 말하기를 “반드시 촉을 깨트릴 것입니다. 다만 모두 도읍에 돌아오지 못할까 두렵습니다.”했다. 왕상이 그 이유를 물으니 유실은 그저 웃기만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왕상도 마침내 다시 묻지 않았다.
卻說魏兵既發,早有細作入沓中報知姜維。維即具表申奏後主,請降詔,遣左車騎將軍張翼領兵守護陽平關,右車騎將軍廖化領兵守陰平橋:「這二處最為要緊。若失二處,漢中不保矣。一面當遣使入吳求救。臣一面自起沓中之兵拒敵。」
각설하고 위나라 군대가 출발한 후 바로 세작(첩자)이 답중에 들어 가 강유에게 보고하였다. 강유는 곧 표를 갖추어 후주에게 아뢰어 조서를 내려 좌거기장군장익을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양평관을 지키게 하고, 우거기장군 요화는 군대를 거느리고 음평교를 지키게 하도록 청하고, 이 두 곳이 가장 중요합니다. 만약 두 곳을 잃으면 한중도 보존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사자를 보내 오나라에 들어 가 구원을 청해야 합니다. 신은 한편으로 직접 답중의 군대를 일으켜 적을 막겠습니다. 했다.
時後主改景耀五年,為炎興元年,日與宦官黃皓在宮中遊樂。忽接姜維之表,即召黃皓問曰:「今魏國遣鍾會,鄧艾大起人馬,分道而來,如之奈何?」皓奏曰:「此乃姜維欲立功名故上此表。陸下寬心,勿生疑慮。臣聞城中有一師婆,供奉一神,能知吉凶,可召來問之。」後主從其言,於後殿陳設香花紙燭享祭禮物,令黃皓用小車請人宮中,坐於龍床之上。後主焚香祝畢。師婆忽然披髮跣足,就殿上跳躍數十遍,盤旋於案上。皓日(曰):「此神人降矣。陞(陛)下可退左右親禱之。」
그 때 후주는 경요 오년을 고쳐 염흥 원년이라 하였다. 하루는 환관 황호와 궁중에서 놀고 있었다. 홀연히 강유의 표를 받고 곧 황호를 불러 물어 말하기를 “지금 위나라가 종회와 등애를 보내 크게 인마를 일으켜 길을 나누어 온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니 황호가 아뢰어 말하기를 “이는 곧 강유가 공명을 세우려하여 이 표를 올린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마음 놓으시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신이 들으니 성 안에 한 무당이 있는데 한 신을 받들어 길흉을 알 수 있다하니 불러 물어보십시오.”했다. 후주가 그 말을 따라 후전에 향, 꽃, 종이, 촛불, 제사를 지낼 예물을 진설하고 황호로 하여금 작은 수레를 써 궁중으로 청해 용상의 위에 앉게 하였다. 후주가 향을 사르고 축원을 마쳤다. 무당이 홀연히 머리를 풀고, 신을 벗은 채 전에 올라 수십 번을 뛰고 탁자 위를 돌았다. 황호가 말하기를 “이는 시인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좌우를 물리치고 직접 기도하십시오.”했다.
後主盡退侍臣,再拜祝之。師婆大叫曰;「吾乃西川土神也。陞下欣樂太平,何為求問他事?數年之後,魏國疆土亦歸陞下矣。陛下切勿憂慮。」言訖,昏倒於地,半晌方甦。後主大喜,重加賞賜。自此深信師婆之說,遂不聽姜維之言,每日只在宮中飲宴歡樂。姜維履申告急表文,皆被黃皓隱匿,因此誤了大事。卻說鍾會大軍,迆邐望漢中進發。前軍先鋒許儀,要立頭功,先領兵至南鄭關。儀謂部將曰:「過此關即漢中矣。關上不多人馬,我等便可奮力搶關。」眾將領命,一齊併力向前。原來守關蜀將盧遜,早知魏兵將到,先於關前木橋左右,伏下軍士,裝起武侯所遺十矢連弩:比及許儀兵來搶關時,一聲梆子響處,矢石如雨。儀急退時。早射倒數十騎。魏兵大敗。
후주가 모시고 있던 신하들을 모두 물러가게 한 뒤 두 번 절하고 기도하였다. 무당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나는 곧 서천의 토지신이다. 폐하께서는 즐겁고 태평한데 어찌하여 다른 일을 묻습니까? 몇 년 후 위나라 강토가 폐하께 돌아갈 것입니다.(폐하의 것이 될 것입니다.)”하는 말을 마친 뒤 정신을 잃고 땅에 엎어졌다가 반나절 후 비로소 깨어났다. 후주가 크게 기뻐하며 많은 상을 주었다. 이로부터 깊이 무당의 말을 믿고 마침내 강유의 말을 듣지 않고 매일 다만 궁중에서 술을 마시며 환락에 빠져 있었다. 강유가 여러 번 위급을 알리는 표문을 올렸으나 모두 황호가 감추니 이 때문에 대사가 잘못 되었다. 각설하고 종회의 대군은 구불구불 길게 한중으로 진군하였다. 전군 선봉 허의는 최고의 공을 세우려 먼저 군대를 거느리고 남정관에 이르렀다. 허의가 부장(부하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관을 지나면 곧 한중이다. 관 위에 인마가 많지 않으니 우리들은 곧 힘을 떨쳐 관을 빼앗아야 한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명을 받고 일제히 힘을 합쳐 앞으로 향하였다. 원래 관을 지키는 촉의 장수 노손은 일찍이 위나라 군대가 이를 것을 알고 먼저 관 앞 나무다리 좌우에 군사를 매복시키고, 무후(제갈공명)가 남긴 십시연노(화살 열 개를 연속 발사할 수 있는 활)로 무장시켰다. 허의의 군대가 관을 빼앗으러 왔을 때 한 소리 징이 울리며 화살과 돌이 비 같이 쏟아졌다. 허의가 급히 물러났을 때 수 십기가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위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儀回報鍾會。會自提帳下甲士百餘騎來看,果然箭弩一齊射下。會撥馬便回,關上盧遜引五百軍殺下來。會拍馬過橋,橋上土塌,陷住馬蹄,險些兒掀下馬來。馬掙不起,會棄馬步行:跑下橋時,盧遜趕上,一槍刺來,卻被魏軍中荀愷回身一箭,射盧遜落馬。鍾會麾眾乘勢搶關,關上軍士因有蜀兵在關前,不敢放箭。被鐘會殺散,奪了山關,即以荀愷為護軍,以全副鞍馬鎧甲賜之。
허의가 돌아 와 종회에게 보고하였다. 종회가 부하 갑사 백여 기를 데리고 가 보니 과연 화살이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종회가 말을 돌려 돌아오니 관 위 노손이 오백을 이끌고 달려 내려왔다. 종회가 말에 박차를 가해 다리를 지나는데 다리 위의 흙이 무너지면서 말발굽이 빠지자 펄쩍 뛰어 말에서 내렸다. 말이 일어나지 못하자 종회는 말을 버리고 걸어 가 다리에서 뛰어 내려왔을 때 노손이 쫒아와 창으로 찔렀다. 그러나 위나라 군 안에서 순개가 몸을 돌려 하나의 화살을 쏘았다. 노손이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종회 휘하 무리들이 형세를 타고 관을 빼앗으려하나, 관 위의 군사들은 관 앞에 있는 촉 군사 때문에 감히 화살을 쏠 수 없었다. 종회가 죽이고 흩어버린 후 산관을 빼앗고는 곧 순개로서 호군을 삼고 말안장, 투구, 갑옷 한 벌을 내렸다.
會喚許儀至帳下,責之曰:「汝為先鋒,理合逢山開路,遇水疊橋,專一修理橋梁道路,以便行軍。吾方纔到橋上,陷住馬蹄,幾乎墮橋:若非荀愷,吾已被殺矣!汝既違軍令,當按軍法!」叱左右推出斬之。諸將告曰:「其父許褚有功於朝廷,望都督恕之。」會怒曰:「軍法不明,何以令眾?」遂令斬首示眾。眾將無不駭然。
종회가 허의를 불러 군막에 이르자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선봉이 되어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쌓아 한결같이 교량과 도로를 수리하는 것으로서 행군을 편하게 하는 것이 이치상 합당한 것이다. 내가 바야흐로 겨우 다리 위에 이르러 말발굽이 빠져 거의 다리에서 떨어졌다. 만약 순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죽음을 당하였을 것이다. 너는 군령을 어겼으니 마땅히 군법에 따를 것이다.”하고는 좌우에 끌어 내 베어죽이라 소리쳤다. 여러 장수들이 고하여 말하기를 “그 아버지 허저가 조정에 공이 있으니 도독께서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했다. 종회가 노하여 말하기를 “군법이 분명하지 않다면 어떻게 무리에 명령하겠는가?”하고는 마침내 머리를 베어 무리에게 보이게 했다. 여러 장수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時蜀將王含守樂城,蔣斌守漢城,見魏兵勢大,不敢出戰,只閉門自守。鍾會下令曰:「兵貴神速,不可少停。」乃令前軍李輔圍樂城,護軍荀愷圍漢城,自引大軍取陽平關。守關蜀將傅僉與副將蔣舒商議戰守之策:舒曰:「魏兵甚眾,勢不可當;不如堅守為上。」僉曰:「不然。魏兵遠來,必然疲乏,雖多不足懼。我等若不下關戰時,漢,樂二城休矣。」蔣舒默然不答。
그 때 촉의 장수 왕함은 낙성을 지키고, 장빈은 한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위나라 군사의 형세가 큼을 보고 감히 나가 싸우지 못하고 다만 성문을 닫고 지킬 뿐이었다. 종회가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군대는 빠름을 귀하게 여기니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하고는 곧 전군 이보로 하여금 낙성을 포위하게 하고, 호군 순개는 한성을 포위하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양평관을 취하려 하였다. 관을 지키던 장수 부첨은 부 장수 장서와 싸워 지킬 계책을 상의하였다. 장서가 말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매우 많으니 형세로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굳게 지키는 것으로 상책을 삼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부첨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위나라 군대는 멀리서 왔기 때문에 반드시 피로할 것이니 비록 많다하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이 만약 관을 내려가 싸우지 않는다면 한성과 낙성이 잘못될 것이다.”했다. 장서가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忽報魏兵大隊已至關前,蔣,傅二人至關上視之。鍾會揚鞭大叫:「吾今統十萬之眾到此,如早早出降,各依品級陞用;如執迷不降,打破關隘,玉石俱焚!」傅僉大怒,令蔣舒把關,自引三千兵殺下關來。鍾會便走,魏兵盡退。僉乘勢追之,魏兵復合。僉欲退入關時,關上已豎起魏家旗號。只見蔣舒叫曰:「吾已降了魏也!」
홀연히 위나라 군대의 큰 부대가 이미 관 앞에 이르렀다고 보고하니 장서와 부첨 두 장수가 관 위에 이르러 그것을 보았다. 종회가 채찍을 흔들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내가 지금 십만의 무리를 통솔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만약 빨리 나와 항복한다면 각각 품계에 의거하여 올려 쓸 것이다. 만약 고집하여 항복하지 않는다면 관애를 쳐서 깨트려 옥석이 함께 불탈 것이다.”했다. 부첨이 크게노하여 장서로 하여금 관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관에서 달려내려갔다. 종회가 곧 달아나니 위나라 군대가 모두 물러났다. 부첨이 형세를 타고 추격하니 위나라 군대가 다시 합하였다. (다시 싸웠다.) 부첨이 물러나 관에 들어가려할 때 관 위에는 이미 위나라라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장서가 (부첨을)보고 말하기를 “내가 이니 위나라에 항복하였다.”했다.
僉大怒,厲聲罵曰:「忘恩背義之賊,有何面目見天子乎!」撥回馬復與魏兵接戰。魏兵四面合來,將傅僉圍在垓心。僉左衝右突,往來死戰,不能得脫;所領蜀兵,十傷八九。僉乃仰天歎曰:「吾生為蜀臣,死亦當為蜀鬼!」乃復拍馬衝殺,身被數鎗,血盈袍鎧,坐下馬倒,僉自刎而死。後人有詩歎曰:
부첨이 크게 노하여 성남 소리로 욕하여 말하기를 “은혜를 잊고 의리를 배반한 도적아 무슨 면목으로 천자를 뵈려하는가!”하고는 말을 돌려 다시 위나라 군대와 싸웠다. 위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합해 와 부첨을 포위하였다. 부첨이 좌충우돌 왕래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거느렸던 촉의 군대 열 명 중 팔, 구 명이 다쳤다. 부첨이 이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 말하기를 “내가 살아서는 촉의 신하였고, 죽어서는 또한 마땅히 촉의 귀신이 될 것이다.”하고는 이에 다시 말에 박차를 가해 쳐서 죽였는데 몸에 몇 번이나 창에 찔려 피가 포와 갑옷에 가득하여 그 자리서 말에서 떨어져 엎어졌다. 부첨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해(기려) 말하기를
一日抒忠憤,千秋仰義名。寧為傅僉死,不作蔣舒生。
어느 날 충의로 말미암은 분노를 펴니, 천년에 의로운 이름 우러른다. 차라리 부첨이 되어 죽을지언정 장서의 삶을 짓지는 않으리.
鍾會得了陽平關,關內所積糧草軍器極多,大喜,遂犒三軍。是夜魏兵宿於陽平城中,忽聞西南上喊聲大震。鍾會慌忙出帳視之,絕無動靜。魏軍一夜不敢睡。次夜二更,西南上喊聲又起。鍾會驚疑,向曉,使人探之。回報曰:「遠哨十餘里並無一人,」會驚疑不定,乃自引數百騎,俱全裝貫帶,望西南巡哨。前至一山,只見殺氣四面突起,愁雲布合,霧鎖山頭。會勒住馬,間(問)鄉導官曰:「此何山也?」答曰:「此乃定軍山,昔日夏侯淵歿於此處。」會聞之,悵然不樂,遂勒馬而回。轉過山坡,忽然狂風大作,背後數千騎突出,隨風殺來。會大驚,引眾縱馬而走。諸將墜馬者,不計其數。及奔到陽平關時,不曾折一人一騎,只跌損面目,失了頭盔。皆言曰:「但見陰雲中人馬殺來,比及近身,卻不傷人,只是一陣旋風而已。」會問降將蔣舒曰:「定軍山有神廟乎?」舒曰:「並無神廟,惟有諸葛武侯之墓。」會驚曰:「此必武侯顯聖也。吾當親往祭之。」
종회가 양평관을 얻었는데(점령하였는데) 관 안에 쌓여있는 식량, 말먹이 풀, 무기가 지극히 많아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삼군에 음식을 많이 내렸다. 이날 밤 위나라 군대가 양평성 안에서 잠을 자는데 홀연히 서남쪽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하였다. 종회가 황망히 군막을 나와 보았으나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위나라 군대가 하루 밤 동안 감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 날 이경에 서남쪽에서 함성이 도 일어났다. 종회가 놀라고 의심하여 새벽녘에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하기를 “멀리 십여 리를 정찰하였는데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했다. 종회가 놀라고 의심하여 안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수백 기를 이끌고 완전한 부장을 하고 서남쪽을 향해 순찰하였다. 앞에 한 산에 이르렀는데 살기가 사방에서 튀어나오고, 먹구름이 펼쳐져 있고, 안개가 산꼭대기를 덮고 있었다. 종회가 말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향도관에게 물어 말하기를 “이는 무슨 산인가?”하니 (향도관이) 대답해 말하기를 “이는 곧 정군산인데 옛날 하후연이 이곳에서 죽었습니다.”했다. 종회가 그것을 듣고 슬퍼하며 즐겁게 여기지 않고, 마침내 말고삐를 당겨 돌아왔다. 산언덕을 돌아 지나는데 홀연히 광풍이 크게 일어고 뒤에서 수천 기가 갑자기 나와 바람을 따라 달려왔다. 종회가 크게 놀라 무리를 이끌고 말을 달려 달아났다. 여러 장수들 중 말에서 떨어진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달려 양평관에 이르렀을 때 한 사람, 한 마리 말도 잃지 않았고, 다만 넘어져 얼굴을 다치고, 머리에 투구를 잃었을 뿐이었다. 모두 말하기를 “다만 먹구름 속에서 인마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을 뿐 몸 가까이 이르렀을 뿐 사람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으니 한바탕 돌개바람일 뿐이었습니다.”했다. 송회가 항복한 장서에게 물어 말하기를 “정군산에 신묘가 있는가?”하니 장서가 말하기를 “신묘는 없고 오직 제갈무후(제갈공명)의 묘가 있을 뿐입니다.”했다. 종회가 놀라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무후(제갈공명)의 신령이 나타난 것이다. 내가 마땅히 직접 가서 제사해야겠다.”했다.
次日,鍾會備祭禮,宰太牢,自到武侯墓前再拜致祭。祭畢,狂風頓息,愁雲四散。忽然清風習習,細雨紛紛。一陣過後,天色晴朗。魏兵大喜,皆拜謝回營。是夜鍾會在帳中伏几而寢,忽然一陣清風過處,只見一人綸巾羽扇,身衣鶴氅,素履皂,面如冠玉,脣若塗硃,眉清目朗,身長八尺,飄飄然有神仙之概。其人步入帳中。會起身迎之曰:「公何人也?」其人曰:「今早重承見顧,吾有片言相告。雖漢祚已衰,天命難違,然兩川生靈,橫罹兵革,誠可憐憫。汝入境之後,萬勿妄殺生靈。」
다음 날 종회가 제물과 태뢰(희생 동물)를 갖추어 스스로 무후(제갈공명)의 묘 앞에 이르러 두 번 절하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치니 광풍이 갑자기 그치고 먹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홀연히 맑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가랑비가 어지럽게 내렸다. 한 바탕 지나간 후 하늘이 맑고 밝아졌다. 위나라 군대가 크게 기뻐하며 모두 절하고, 사례한 후 진영으로 돌아갔다. 이날 밤 종회가 군막 안에서 안석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홀연히 한바탕 맑은 바람이 지나가는 곳에 한 사람이 윤건을 쓰고 우선을 들고, 몸에 학창의를 입고 흰신을 신고, 검은 띠를 묵었다. 얼굴은 관옥과 같고 입술은 주칠을 한 듯하고, 눈썹은 선명하고 눈은 밝고 키는 아홉 자로 바람에 날리는 듯한 신선의 풍모가 있었다. 그 사람이 걸어서 군막 안으로 들어왔다. 종회가 몸을 일으켜 맞이하며 말하기를 “공은 누구입니까?”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 아침 돌아보아 줌을 거듭 공경하여 내가 한 마디 말로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비록 한나라가 이미 쇠퇴하여 천명을 어기기 어려우나 양천의 백성들이 전쟁의 재앙을 입어 진실로 불쌍합니다. 당신이 국경에 들어 간 후 만에 하나라도 망녕되이 백성을 죽이지는 마십시오.”했다.
言訖,拂袖而去。會欲挽留之,忽然驚醒,乃是一夢。會知是武侯之靈,不勝驚異。於是傳令前軍,立一白旗,上書「保國安民」四字;所到之處,如妄殺一人者償命。於是漢中人民,盡皆出城拜迎。會一一撫慰,秋毫無犯。後人有詩讚曰:
말을 마치고 소매를 떨치며 갔다. 종회가 당겨 머물게 하려다 홀연히 놀라서 깨니 곧 하나의 꿈이었다. 종회닌 이가 무후(제갈공명)의 신령임을 알고 놀라고 기이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에 전군에 명령하여 하나의 흰 깃발을 세우게 하였는데 ‘보국안민’ 네 글자를 쓰게 하였다. 이르는 곳마다 만일 망년되니 한 사람이라도 죽이는 자는 목숨을 갚게 하였다. 이에 한중의 백성들이 모두 성을 나와 절하며 맞이하였다. 종회가 일일이 위무(위로)하고 추호도 범함이 없게 하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數萬陰兵遶定軍,致令鍾會拜靈神。生能決策扶劉氏,死尚遺言保蜀民。
“수만 음병(신병, 귀신 군대)이 정군산을 돌아, 종회로 하여금 신령한 신에게 절하게 하였다. 살아서는 계책을 결단하여 유씨를 도왔고, 죽어서도 말을 남겨 촉 백성을 보호하네.”했다.
卻說姜維在沓中,聽知魏兵大至,傳檄廖化,張翼,董厥提兵接應;一面自分兵列將以待之。忽報魏兵至。維引兵出迎。魏陣中為首大將乃天水太守王頎也。頎出馬大呼曰:「吾今大兵百萬,上將千員,分二十路而進,已到成都。汝不思早降,猶欲抗拒,何不知天命耶!」
각설하고 강유는 답중에 있다가 위나라 군대가 크게 이른다는 것을 듣고 요화, 장익, 동궐에게 명령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대응하게 하는 한편으로 스스로 군대를 나누어 대열을 지휘하는 장수들과 기다렸다. 홀연히 위나라 군대가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강유가 군대를 이끌고 나가 맞이하였다. 위나라의 진 중의 우두머리 대장은 곧 천수태수 왕기였다. 왕기가 말을 타고 나와 크게 외쳐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 큰 군대 백만, 훌륭한 장수 천 명으로 이십 개의 길로 진군하여 이미 성도에 이르렀다.” 너는 빨리 항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항거하려 하는데 어찌 천명을 알지 못하는가!“했다.
維大怒,挺槍縱馬,直取王頎。戰不三合。頎大敗而走。姜維驅兵追殺,至二十里,只聽得金鼓齊鳴,一枝兵擺開,旗上大書「隴西太守牽弘」字樣。維笑曰:「此等鼠輩,非吾敵手!」遂催兵追之。又趕到十里,卻遇鄧艾領兵殺到。兩軍混戰。維抖擻精神,與艾戰有十餘合,不分勝負,後面鑼鼓又鳴。維急退時,後軍報說:「甘松諸寨,盡被金城太守楊欣燒燬了。」
강유가 크게 노하여 창을 겨누고 곧바로 왕기를 취하려 했다. 싸운 지 삼합이 되지 않아 왕기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강유가 군대를 몰아 추격하여 이십 리에 이르러 금고가 일제히 울리는 것을 들리고, 한 떼의 군대가 열을 지었는데 깃발 위에 크게 ‘농서태수견홍’이라 쓰여 있었다. 강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이들은 쥐새끼이니 나의 적수가 아니다!”하고는 군대를 재촉하여 추격하였다. 또 뒤를 쫓아 십리에 이르렀을 때 등애가 군대를 거느리고 달려오는 것을 만났다. 두 군대가 섞여 싸웠다. 강유가 정신을 집중하여 등애와 십여 합을 싸웠는데 승부가 갈리지 않았는데 뒤쪽에서 징과 북이 또 울렸다. 강유가 급히 물러나려할 때 후군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감송의 여러 영채가 모두 금성태수 양흔에게 불타 없어졌습니다.”했다.
維大驚,急令副將虛立旗號,與鄧艾相拒,維自撤後軍,星夜來救甘松,正遇楊欣。欣不敢交戰,望山路而走。維隨後趕來。將至山巖下,巖上木石如雨,維不能前進。比及回到半路,蜀兵已被鄧艾殺敗,魏兵大隊而來,將姜維圍住。維引眾騎殺出重圍,奔入大寨,堅守以待救兵。忽然流星馬到,報說:「鐘會打破陽平關,守將蔣舒歸降,傅僉戰死,漢中已屬魏矣。樂城守將王含,漢城守將蔣斌,知漢中已矢,亦開門而降。胡濟抵敵不住,逃回成都求援去了。」
강유가 크게 놀라 급히 부장으로 하여금 깃발 신호를 세워 등애를 막게 하고, 강유 자신은 후군을 거두어 밤을 새우며 감송을 구하러 가다가 바로 양흔을 만났다. 양흔이 감히 싸우지 못하고 산길을 향해 달아났다. 강유가 뒤를 따라 갔다. 산 낭떠러지 아래에 이르렀는데 낭떠러지 위에서 나무와 돌이 비처럼 쏟아지니 강유가 전빈할 수 없었다. 중간에 돌아가는데 촉의 군대가 이미 등애에게 패하고 위나라 군대 큰 부대가 와 강유를 포위하였다. 강유가 여러 기병을 이끌고 포위를 뚫고 달려 큰 영채로 들어 가 굳게 지키며 구원병을 기다렸다. 홀연히 전령이 이르러 보고해 말하기를 “종회가 양평관을 쳐 깨트렸고, 지키던 장수 장서는 항복하였고 부첨은 싸우다 죽어 한중이 이미 위나라에 속하였습니다. 낙성을 지키던 장수 왕함, 한성을 지키던 장수 장빈은 한중을 이미 잃었다는 것을 알고 또한 성문을 열어 항복하였습니다. 호제는 적을 막다가 막지 못하고 도망하여 성도로 구원을 청하러 돌아갔습니다.”했다.
維大驚,即傳令拔寨。是夜兵至疆川口,前面一軍擺開,為首魏將,乃是金城太守楊欣。維大怒,縱馬交鋒:只一合,楊欣敗走,維拈弓射之;連射三箭皆不中。維轉怒,自折其弓,挺鎗趕來,戰馬前失;姜維跌在地上,楊欣拍回馬來殺姜維。維躍起身,一槍刺去,正中楊欣馬腦。背後魏兵驟至,救欣去了。
강유가 크게 놀라 명령을 내려 영채를 철수하게 하였다. 이날 밤 군대가 강천구에 이르렀을 때 앞쪽에서 일 군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우두머리 위나라 장수는 곧 금성태수 양흔이었다. 강유가 크게 노하여 말을 몰아 싸웠는데 단지 일합 만에 양흔이 패하여 달아나니 강유가 활을 들어 쏘았다. 연이어 세 개의 화살을 쏘았는데 모두 적중하지 않았다. 강유가 더욱 노하여 그 활을 꺽어 버리고 창을 꼬나들고 쫓아가는데 말이 앞으로 고꾸라져 다리가 부러졌다. 강유가 땅 위에 넘어지자 양흔이 말에 박차를 가해 돌아와 강유를 죽이려 했다. 강유가 몸을 뛰어 일으켜 한 창으로 찔렀는데 바로 양흔의 말 뇌에 적중하였다. 뒤에서 위나라 군대가 모려와 양흔을 구원해 갔다.
維騎上戰馬欲待追時,忽報後面鄧艾兵到。維首尾不能相顧,遂收兵要奪漢中。哨馬報說:「雍州刺史諸葛緒已斷了歸路。」維據山險下寨。魏兵屯於陰平橋頭。維進退無路,長歎曰:「天喪我也!」副將甯隨曰:「魏兵雖斷陰平橋,雍州必然兵少,將軍若從孔函谷,逕取雍州,諸葛緒必撤陰平之兵救雍州,將軍卻引兵奔劍閣守之,則漢中可復矣。」
강유가 말에 올라 추격을 추격하려 하는데 홀연히 뒤쪽에서 등애의 군대가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강유는 군대의 머리와 꼬리(앞과 뒤)를 서로 돌아볼 수 없어 마침내 군대를 거두어 한중을 빼앗으려 하였다. 정찰병이 보고해 말하기를 “옹주자사 제갈서가 이미 돌아가는 길을 끊었습니다.”했다. 강유가 산의 험한 곳에 의지하여 영채를 세웠다. 위나라 군대가 음평교 머리에 주둔하였다. 강유는 전진하거나 물러날 수 있는 길이 없어 길게 탄식해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죽이려하는구나!”하니 부장 녕수가 말하기를 “위나라 군대가 비록 음평교를 끊었으나 옹주는 반드시 군대가 적을 것이니 장군께서 만약 공함곡을 따라 빠르게 옹주를 취하려하면 제갈서는 반드시 음평의 군대를 거두어 옹주를 구원하려 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군대를 이끌고 달려가 검각을 지키시면 곧 한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維從之,即發兵入孔函谷,詐取雍州。細作報知諸葛緒。緒大驚曰:「雍州是吾合兵之地,倘若疏矢,朝廷必然問罪。」急撤大兵從南路去救雍州,只留一枝兵守橋頭。
강유가 그것을 따라 곧 군대를 내어 공함곡으로 들어 가 거짓으로 옹주를 취하려는 척 하였다. 세작(첩자)이 제갈서에게 보고하였다. 제갈서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옹주는 내가 군대를 모으는 땅인데 만약 잘못된다면 조정에서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다.”하고는 급히 대군을 거두어 남쪽 길을 따라 옹주를 구원하러 가고, 다만 한 떼의 군대만 남겨 다리 머리를 지키게 하였다.
姜維入北道,約行三十里,料知魏兵起行,乃勒回兵,後隊作前隊,逕到橋頭,果然魏兵大隊已去,只有些小兵把守:被維一陣殺散。盡燒其寨柵。諸葛緒聽知橋頭火起,復引兵回。姜維兵已過半日了,因此不敢追趕。
강유가 북쪽 길로 들어 가 약 삼십 리를 행군하였는데 위나라 군대가 일어난 것을 알고는 곧 군대를 돌려 뒤 부대가 앞 부대가 되어 빠르게 다리 머리에 이르니 과연 위나라 군대 큰 부대는 이니 떠났고, 다만 작은 군대만 지키고 있었다. 강유가 한바탕 죽여 흩어버리고는 그 영채와 책을 모두 불태웠다. 제갈서가 다리 머리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다시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강유의 군대가 떠난 지 이미 한나절이나 지났기 때문에 감히 뒤를 쫓지 못하였다.
卻說姜維引兵過了橋頭,正行之間,前面一軍來到,乃左將軍張翼,右將軍廖化也。維問之。翼曰:「黃皓聽信師巫之言,不肯發兵。翼聞漢中已危,自起兵來,時陽平關已被鍾會所取。今聞將軍受困,特來接應。」遂合兵一處。化曰:「今四面受敵,糧道不通,不如退守劍閣,再作良圖。」
각설하고 강유가 군대를 이끌고 다리머리를 지나가는 사이에 앞쪽에서 일 군이 이르렀는데 곧 좌장군 장익과 우장군 요화였다. 강유가 물으니 장익이 말하기를 “황호가 무당의 말을 듣고 군대를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중이 이미 위태롭다는 것을 듣고 스스로 군대를 일으켜 오고 있었는데 양평관은 이미 종회에게 빼앗긴 뒤였습니다. 지금 장군께서 곤궁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듣고 특히 와서 대응하는 것입니다.”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한 곳에 합하였다. 요화가 말하기를 “지금 사방에서 적을 맞아 식량 (운반)길이 통하지 않으니 물러나 검각을 지키면서 다시 좋은 꾀를 짓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維疑慮未決。忽報鍾會,鄧艾分兵十餘路殺來。維欲與翼,化分兵迎之。化曰:「白水地狹路多,非爭戰之所,不如且退,去救劍閣可也。若劍閣一失,是絕路矣。」維從之,遂引兵來投劍閣。將近關前,忽報鼓角齊鳴,喊聲大起,旌旗遍豎,一枝軍把住關口。正是:漢中險峻已無有。劍閣風波又忽生。未知何處之兵,且看下文分解。
강유가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종회와 등애가 군대를 십여 길로 나누어 달려온다고 보고하였다. 강유가 장익과 요화에게 군대를 나누어 맞이하려 하였다. 요화가 말하기를 “백수는 땅이 좁고 길이 많으니 싸울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 또한 물러나 검각을 구원하러 가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검각을 한 번 잃게 되면 이는 길이 끊어지는 것입니다.”했다. 강유가 그것을 따라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가 검각으로 들어갔다. 검각 앞에 가까워졌을 때 홀연히 고각이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크게 일어나고 깃발이 두루 세워지며 한 갈래 군대가 검각 입구를 지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한중의 험준함 이미 있지 않으니, 검각에 풍파가 갑자기 생긴다. 어느 곳의 군대인지 알지 못하겠다.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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