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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120회 두예를 추천하니 늙은 장수가 새로운 계책을 바치고, 손호가 항복하니 셋으로 나뉘었다 통일로 돌아가다.

by 최인표 2022. 4. 7.

第一二薦杜預老將獻新謀降孫皓三分歸一統

120회 두예를 추천하니 늙은 장수가 새로운 계책을 바치고, 손호가 항복하니 셋으로 나뉘었다 통일로 돌아가다.

 

卻說吳主孫休聞司馬炎已篡魏知其必將伐吳憂慮成疾臥床不起乃召丞相濮陽興入宮中令太子孫上雨下單出拜吳主把興臂手指上雨下單而卒興出與群臣商議欲立太子孫上雨下單為君左典軍萬彧:「(上雨下單幼不能專政不若取烏程侯孫皓立之。」左將軍張布亦曰:「皓才識明斷堪為帝王丞相濮陽興不能決入奏朱太后太后曰:「吾寡婦人耳定知社稷之事卿等斟酌立之可也。」

각설하고 오나라 임금 손휴는 사마염이 이미 위나라를 찬탈하였다는 것을 듣고 그가 반드시 오나라를 정벌할 것을 알아 근심하다 병이 나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였다. 이에 승상 복양흥을 불러 궁중에 들어오자 태자 손만으로 하여금 나와 절하게 하였다. 오나라 임금이 복양흥의 팔을 잡고 손으로 손만을 가리키고는 죽었다. 복양흥이 나와 여러 신하들과 상의하여 태자 손만을 세워 임금으로 삼고자 했다. 좌전군 만욱이 말하기를 손만은 나이가 어려 정사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오정후 손호를 세우는 것이 낫습니다.”했다. 좌장군 장포가 또 말하기를 손호는 재능과 식견이 있어 밝게 결단하니 제왕이 될 수 있습니다.”했다. 승상 복양흥이 결단하지 못하고 태후에게 들어 가 아뢰었다. 태후가 말하기를 나는 과부일 뿐인데 사직의 일을 알겠습니까? 경들이 짐작하여 세우면 됩니다.”했다.

 

興遂迎皓為君皓字元宗大帝孫權太子孫和之子也當年七月即皇帝位改元為元興元年封孫上雨下單為豫章王追諡父和為文皇帝尊母何氏為太后加丁奉為左右大司馬次年改為甘露元年皓凶暴日甚酷溺酒色寵幸中常侍岑昏濮陽興張布諫之皓怒斬二人滅其三族由是廷臣緘口不敢再諫又改寶鼎元年以陸凱萬彧為左右丞相時皓居武昌揚州百姓泝流供給甚苦之又奢侈無度公私匱乏陸凱上疏諫曰

복양흥이 손호를 맞아 임금으로 삼았다. 손호의 자는 원종이고, 대제 손권의 태자 손화의 아들이다. 그 해 칠월 황제 자리에 올라 연호를 고쳐 원흥 원년이라 하고, 손만을 봉해 예장왕으로 삼고, 아버지 손화의 시호를 문황제라 하고, 어머니 하씨를 높여 태후라 하고 정봉을 승진시켜 좌우대사마로 삼았다. 다음 해 연호를 고쳐 감로 원년이라 했다. 손호의 흉포함이 날로 심해지고, 주색에 빠져 중상시 잠혼을 아꼈다. 복양흥과 장포가 간하니 손호가 두 사람을 베어 죽이고 삼족을 없앴다. 이 때문에 조정의 신하들이 입을 닫고 감히 두 번 간하지 못하였다. 또 연호를 고쳐 보정 원년이라 하였다. 육개, 만욱을 좌우 승상으로 삼았다. 그 때 손호는 무창에 있었는데 양주 백성들이 공급(생활물자 등을 바치는 일) 하느라 매우 괴로워하였다. 또 사치가 한도가 없어 공사가 결핍하였다. 육개가 상소해 간하여 말하기를

 

今無災而民命盡無為而國財空臣竊痛之昔漢室既衰三家鼎立今曹劉失道皆為晉有此目前之明驗也臣愚但為陛下惜國家耳武昌土城險瘠非王者之都且童謠云:「寧飲建業水不食武昌魚寧還建業死不止武昌居。」此足明民心與天意也今國無一年之蓄有露根之漸官吏為苛擾莫之或恤大帝時後宮女不滿百景帝以來乃有千數此耗財之甚者也又左右皆非其人群黨相挾害忠隱賢此皆蠹政病民者也願陛下省百役罷苛擾簡出宮女清選百官則天悅民附而國安矣

지금 재앙이 없는데도 백성의 목숨이 다하였고, 함이 없는데도 나라의 재물이 비었으니 신이 그윽이 마음 아프게 여깁니다. 옛날 한나라가 이미 쇠퇴한 뒤 삼가가 정립하였는데 지금 조씨, 유씨가 도를 잃어 모두 진나라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는 눈앞의 분명한 징험입니다. 신은 다만 폐하를 위하여 국가를 애석하게 여길 뿐입니다. 무창 땅은 성이 험하고 척박하여 왕 노릇하는 자의 도읍이 아닙니다. 또 동요에 말하기를 차라리 건업이 물을 마실지언정 무창의 물고기는 먹지 않겠다. 차라리 건업에 돌아가 죽을지언정 무창에 머물러 살지는 않겠다.’합니다. 이로 민심과 하늘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나라에는 일 년의 쌓음이 없어 뿌리가 점차 드러나는데 관리들이 가혹하고 소란스럽게 하여 구휼하지 않습니다. 대제(손권) 때 후궁의 여자는 백 명이 되지 않았지만, 경제 이래로 천 명을 헤아림이 있었으니 이는 재물을 낭비함이 심한 것입니다. 또 좌우가 모두 꼭 알맞은 사람이 아니어서 여러 무리들이 서로 끼고 충성스럽고 숨은 어진 이를 해치니 이는 모두 정사를 좀먹고 백성들을 병들게 하는 자들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 모든 일을 살피시어 가혹하고 소란스러운 것을 그치시게 하고, 궁녀를 가려 내보내며 백관을 맑게 선발하시면 곧 하늘이 기뻐하고 백성들이 귀부하여 나라가 편안해질 것입니다. “했다.

 

疏奏皓不悅又大興土木作昭明宮令文武各官入山採木又召術士尚廣令筮蓍問取天下之事尚對曰:「陛下筮得吉兆庚子歲青蓋當入洛陽。」皓大喜謂中書丞華覈曰:「先帝納卿之言分頭命將沿江一帶屯數百營命老將丁奉總之朕欲兼并漢土以為蜀主復讎當取何地為先?」覈諫曰:「今成都不守社稷傾崩司馬炎必有吞吳之心陛下宜修德以安吳民乃為上計若強動兵甲正猶披麻救火必致自焚也願陛下察之。」皓大怒曰:「朕欲乘時恢復舊業汝出此不利之言若不看汝舊臣之面斬首號令!」叱武士推出殿門華覈出朝歎曰:「可惜錦繡江山不久屬於他人矣!」遂隱居不出於是皓令鎮東將軍陸抗部兵屯江口以圖襄陽

상소가 아뢰어지니 손호가 기뻐하지 않았다. 또 크게 토목공사를 일으켜 소명궁을 짓고, 문무관으로 하여금 각각 산에 들어 가 나무를 채취(벌목)하게 하고, 또 술사 상광을 불러 천하를 취할 일을 점치게 하였다. 상광이 대답해 말하기를 폐하의 점괘를 보니 길한 조짐을 얻었습니다. 경자년에 청개를 쓰고 낙양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했다. 손호가 크게 기뻐하며 중서승 화핵에게 일러 말하기를 선제께서 경의 말을 듣고 일을 나누고 강 일대를 따라 수백 개의 진영을 두고 늙은 장수 정봉으로 하여금 총괄하게 하였습니다. (손호)이 한나라 땅을 겸병하는 것으로서 촉 임금의 원수를 갚으려하는데 어느 땅을 취하는 것을 먼저하는 것이 마땅한가?”했다. 화핵이 간하여 말하기를 지금 성도를 지키지 못하여 사직이 기울어 무너졌으니 사마염은 반드시 오나라를 병탄할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덕을 닦는 것으로서 오나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 만약 억지로 군대를 동원한다면 바로 베옷을 입고 불을 끄려는 것과 같아 반드시 스스로를 태울 것입니다. 페하께서는 살피시기를 원합니다.”했다. 손호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손호)이 때를 타고 옛 기업을 회복하려 하는데 네가 이런 이롭지 않은 말을 하다니! 만약 옛 신하였던 너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머리를 베라고 명령하였을 것이다.”하고는 무사에게 궁전 문으로 끌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화핵이 조정을 나가면서 탄식해 말하기를 애석하다. 금수상산이 오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되겠구나!”하고는 마침내 숨어살면서 나우지 않았다. 이에 손호가 진동장군 육항으로 하여금 부병을 강구에 주둔하게 하는 것으로서 양양을 도모하게 하였다.

 

早有消息報入洛陽近臣報知晉主司馬炎晉主聞陸抗寇襄陽與眾官商議賈充出班奏曰:「臣聞吳國孫皓不修德政專行無道陛下可詔都督羊祜率兵拒之俟其國中有變乘勢攻取東吳反掌可得也。」炎大喜即降詔遣使到襄陽宣諭羊祜祜奉詔整點軍馬預備迎敵自是羊祜鎮守襄陽甚得軍民之心吳人有降而欲去者皆聽之減戍邏之卒用以墾田八百餘頃其初到時軍無百日之糧及至來年軍中有十年之積祜在軍嘗著輕裘繫寬帶不披鎧甲帳前侍衛者不過十餘人

일찍 소식이 낙양에 알려졌다. 근신들이 진나라 임금 사마염에게 알렸다. 진나라 임금은 육항이 양양을 침입했다는 것을 듣고 여러 관리들과 상의하였다. 가충이 반열에서 나와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오나라 손호는 덕으로 정사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고 무도하다 합니다. 폐하께서 도독 양호에게 명령하여 군대를 통솔하여 막으면서 그 나라 안에서 변란이 있기를 기다리다 형세를 타고 공격하면 동오(오나라)는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얻을 수 잇을 것입니다.”했다. 사마염이 크게 기뻐하며 곧 조서를 내려 사자를 보내 양양에 이르게 하여 양호에게 알렸다. 양호가 모칙을 받들고 군마를 점검하여 미리 적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이로부터 양호가 양양을 지키는데 군사와 백성의 마음을 크게 얻었다. 오나라 사람으로 항복하였다가 가고자하는 이가 있으면 모두 들어주었다. 순찰하는 군사를 줄여 써서 밭 팔백여 경을 개간하였다. 그 처음 이르렀을 때 군대에는 백일의 식량도 없었지만 다음해에 이르러서는 군대 안에 십년의 쌓임이 있었다. 양호는 군대에 있을 때 일찍이 가벼운 갓옷을 입고, 띠를 느슨하게 매고 갑옷을 입지 않았고, 군막 앞에서 지키는 자가 십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一日部將入帳稟祜曰:「哨馬來報吳兵皆懈怠可乘其無備而襲之必獲大勝。」祜笑曰:「汝眾人小覷陸抗耶此人足智多謀日前吳主命之攻拔西陵斬了步闡及其將士數十人吾救之無及此人為將我等只可自守候其內有變方可圖取若不審時勢而輕進此取敗之道也。」眾將服其論只自守疆界而已

하루는 부장이 군막에 들어와 양호에게 보고하기를 정찰병이 와 오나라 군대가 모두 해이하다고 보고하니 그 대비가 없음을 타고 습격하면 반드시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양호가 웃으며 말하기를 너희 여러 사람들은 육항을 업신여기는가? 이 사람은 지혜가 많고 꾀가 많다. 얼마 전에 오나라 임금이 명령으로 서릉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보천과 그 장사 수십 명을 베어 죽였는데 내가 구원하려다 미치지 못하였다. 이 사람이 장수가 된 것이니 우리들은 스스로 지키면서 그 안에서 변란이 있기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취할 것을 도모해야 합니다. 만약 때의 형세를 살피지 않고 가벼이 진군하는 것은 패함을 취하는 방법입니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그 논의를 인정하고 다만 스스로 경계를 지킬 뿐이었다.

 

一日羊祜引諸將打獵正值陸抗亦出獵羊祜下令:「我軍不許過界。」眾將得令止於晉地打圍不犯吳境陸抗望見歎曰:「羊將軍兵有紀律不可犯也。」日晚各退

하루는 양호가 여러 장수를 이끌고 사냥을 하다 바로 육항이 또한 사냥을 나온 것을 만났다. 양호가 명령을 내리기를 우리 군대가 경계를 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했다. 여러 장수들이 명령을 받고 다만 진나라 땅에서 사냥할(몰이할 뿐) 뿐 오나라 경계를 범하지 않았다. 육항이 바라보고는 탄식해 말하기를 양장군(양호)의 군대는 기율이 있으니 범할 수 없다.”하고는 날이 저물자 각각 물러났다.

 

祜歸至軍中察問所得禽獸被吳人先射傷者皆送還吳人皆悅來報陸抗抗召來人入問曰:「汝主帥能飲酒否?」來人答曰:「必得佳釀則飲之。」抗笑曰:「吾有斗酒藏之久矣今付與汝持去拜上都督此酒陸某親釀自飲者特奉一勺以表昨日出獵之情。」來人領諾攜酒而去左右問抗曰:「將軍以酒與彼有何主意?」抗曰:「彼既施德於我我豈得無以酬之?」眾皆愕然

양호가 돌아 가 군 중에 이르러 잡은 짐승을 살피고 오나라 사람들이 먼저 쏘아 상처를 입은 것은 모두 돌려보냈다. 오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며 육항에게 가 보고하였다. 육항이 온 사람을 불러 들여 물어 말하기를 너의 주된 장수는 술을 마실 수 있는가?”하니 온 사람이 답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좋은 술을 얻으면 마십니다.”했다. 육항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에게 한 말 술이 있는데 감추어 두기를 오래하였다. 지금 너에게 줄 것이니 가지고 가서 도독에게 올리라. 이 술은 육모(육항)가 직접 빚어 스스로 마시는 것인데 다만 한 잔을 받드는 것으로서 어제 사냥 나갔을 때의 정을 표시할 것이다.”했다. 온 사람이 응락하고 술을 가지고 갔다. 좌우가 육항에게 물어 말하기를 장군께서 술을 그에게 준 것은 어떤 뜻을 주장함이 있습니까?”하니 육항이 말하기를 그가 이미 나에게 덕을 베풀었는데 내가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했다. 무리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卻說來人回見羊祜以抗所問並奉酒事一一陳告祜笑曰:「彼亦知吾能飲乎?」遂命開壺取飲部將陳元曰:「其中恐有奸詐都督且宜慢飲。」祜笑曰:「抗非毒人者也不必疑慮。」竟傾壺飲之自是使人通問常相往來

각설하고 온 사람이 돌아 가 양호를 만나 육항이 물은 바와 술을 받든 일을 일일이 말하였다. 양호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가 또한 내가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을 알았는가?”하고는 마침내 항아리를 열고 마시게 하였다. 부장 진원이 말하기를 그 안에 간사한 속임이 있을까 두려우니 도독께서는 또한 마땅히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했다. 양호가 웃으며 말하기를 육항은 다른 사람에게 독을 먹일 사람이 아니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하고는 마침내 항아리를 기우려 마셨다. 이로부터 사람을 시켜 문안하여 항상 서로 왕래하였다.

 

一日抗遣人候祜祜問曰:「陸將軍安否?」來人曰:「主帥臥病數日未出。」祜曰:「料彼之病與我相同吾已合成熟藥在此可送與服之。」來人持藥回見抗眾將曰:「羊祜乃是吾敵也此藥必非良藥。」抗曰:「豈有酖人羊叔子哉汝眾人勿疑。」遂服之次日病癒眾將皆拜賀抗曰:「彼專以德我專以暴是彼將不戰而服我也今宜各保疆界而已無求細利。」

하루는 육항이 사람을 보내 양호에게 안부를 물었다. 양호가 물어 말하기를 육장군(육항)은 편안하신가?”하니 온 사람이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병으로 누워 몇일 간이나 나오지 않았습니다.”했다. 양호가 말하기를 그의 병은 나와 서로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미 조제하여 달인 약이 여기에 있으니 보내(가지고 가) 마시게 하라.”했다. 온 사람이 약을 가지고 돌아 가 육항을 만났다.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양호는 곧 우리의 적입니다. 이 약은 반드시 좋은 약이 아닐 것입니다.”했다. 육항이 말하기를 어찌 양숙자(양호)가 다른 사람을 독살하겠습니까? 너희 여러 사람들은 의심하지 마시오.”하고는 마침내 마셨다. 다음날 병이 나으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절하며 축하하였다. 육항이 말하기를 그는 오로지 덕으로서 하고, 우리는 오로지 사나움으로서 하니 이는 그들이 장차 싸우지 않고서도 나를 복종시키려는 것이다. 지금은 마땅히 각자 경계를 지킬 뿐 작은 이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했다.

 

眾將領命忽報吳主遣使來到抗接入問之使曰:「天子傳諭將軍作急進兵勿使晉人先入。」抗曰:「汝先回吾隨有疏章上奏。」使人辭去抗即草疏遣人齎到建業近臣呈上皓拆觀其疏疏中備言晉未可伐之狀且勸吳主修德慎罰以安內為念不當以黷武為事吳主覽畢大怒曰:「朕聞抗在邊境與敵人相通今果然矣!」遂遣使罷其兵權降為司馬卻命左將軍孫冀代領其軍群臣皆不敢諫

여러 장수들이 명령을 받았다. 홀연히 오나라 임금이 사신을 보내 이르렀다고 보고하니 육항이 맞아들여 물었다. 사자가 말하기를 천자께서 장군에게 명령하여 급히 진군하여 진나라 군대가 먼저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육항이 말하기를 네가 먼저 돌아가면 내가 따라서 상소하는 글을 올려 아뢸 것이다.”했다. 사자가 하직하고 가니 육항이 곧 상소를 써서 사람을 보내 글을 가지고 건업에 이르게 하였다. 근신이 올리니 손호가 봉투를 뜯어 그 상소를 보았는데 상소문 안에 진나라가 아직 정벌하려는 형상이 없다고 갖추어 말하고, 또 오나라 임금에게 덕을 닦고 벌을 삼가고, 안을 편안히 하는 것을 생각할 것을 권하고, 무력을 남용하는 것으로서 일을 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였다. 오나라 임금이 보기를 마치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짐이 듣기로 육항은 변경에 있으면서 적과 서로 통한다고 하는데 지금 과연 그러하구나!”했다. 마침내 사신을 보내 그 병권을 거두어들이고 강등하여 사마로 삼고, 좌장군 손기로 하여금 그 군대를 대신하게 했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감히 간하지 못하였다.

 

吳主皓自改元建衡至鳳凰元年恣意妄為窮兵屯戍上下無不嗟怨丞相萬彧將軍留平大司農樓玄三人見皓無道直言苦諫皆被所殺前後十餘年殺忠臣四十餘人皓出入常帶鐵騎五萬群臣恐怖莫敢奈何

오나라 임금 손호가 연호를 고쳐 건형으로부터 봉황 원년에 이르기까지 뜻을 방자하게하고 망녕되이 행동하며 군대를 다하여 주둔해 지키게 하니 상하가 원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승상 만욱, 장군 유평, 대사농 누현 등 세 사람이 손호의 무도함을 보고 바로 곧은 말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간하다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앞 위 십여년 동안 중신 사십여 명을 죽였다. 손호는 출입할 때 항상 철기 오만을 데리고 다녔다. 여러 신하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어떻게 하지 못하였다.

 

卻說羊祜聞陸抗罷兵孫皓失德見吳有可乘之機乃作表遣人往洛陽請伐吳其略曰

각설하고 양호는 육항이 병권을 잃고 손호가 덕을 잃었다는 것을 듣고 오나라에 탈만한 기회가 있음을 보고(오나라를 공격할 기회가 있다고 여겨) 곧 표를 지어 사람을 보내 낙양에 가 오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하였다. 그 글을 요약하면

 

夫期運雖由天所授而功業必因人而成今江淮之險不如劍閣孫皓之暴過於劉禪吳人之困甚於巴蜀而大晉兵力盛於往時不於此際平一四海而更阻兵相守使天下困於征戍經歷盛衰不能長久也

대저 기회는 비록 하늘이 주는 바로 말미암으나 공업은 반드시 사람으로 인하여 이루어집니다. 지금 강회의 험함은 검각과 같지 않고, 손호의 사나움은 유선(후주)보다 더하고, 오나라 사람들의 곤궁함은 파촉보다 심합니다. 대 진나라 군대의 힘이 과거보다 성대하니 이런 때 사해를 평정하여 하나로 하지 않고 다시 병권을 쥐고 서로 지키기만 하면 천하로 하여금 정벌과 변경을 지킴에 곤궁하게 되고, 성대함과 쇠퇴함을 겪게 하는 것이니 오래해서는 안 됩니다.” 했다.

 

司馬炎觀表大喜便令興師賈充荀勗馮純三人力言不可炎因此不行祜聞上不允其請歎曰:「天下不如意者十常八九今天與不取豈不大可惜哉!」

사마염이 표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곧 군대를 일으키게 하였다. 가충, 순욱, 빙순 세 사람이 힘써 불가함을 말하니 사마염이 이 때문에 행(정벌)하지 않았다. 양호는 위(조정)에서 그 청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탄식해 말하기를 천하에 뜻과 같지 않은 것이 열 가운데 여덟, 아홉이다. 지금 하늘이 주어도 취하지 않으니 어찌 크게 애석하지 않겠는가?”했다.

 

至咸寧四年羊祜入朝奏辭歸鄉養病炎問曰:「卿有何安邦之策以教寡人?」祜曰:「孫皓暴虐已甚於今可不戰而克若皓不幸而歿更立賢君則吳非陛下所能得也。」炎大悟曰:「卿今便提兵往伐若何?」祜曰:「臣年老多病不堪當此任陛下另選智勇之士可也。」遂辭炎而歸

함녕 사년 양호가 조정에 들어 가 고향에 돌아 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직을 아뢰었다. 사마염이 물어 말하기를 경은 나라를 편안히 할 어떤 계책으로 과인을 가르칠 수 있는가?”하니 양호가 말하기를 손호의 사나움이 이미 심하여 지금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습니다. 만약 불행히도 손호가 죽고, 다시 어진 임금을 세운다면 곧 오나라는 폐하께서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했다. 사마염이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경은 지금 곧 군대를 데리고 가서 정벌하는 것은 어떠한가?”하니 양호가 말하기를 신은 나이가 많고 병이 많아 이 임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지혜와 용맹있는 선비를 뽑아 맡기는 것이 옳습니다.”하고는 마침내 사마염을 하직하고 돌아갔다.

 

是年十一月羊祜病危司馬炎車駕親臨其家問安炎至臥榻前祜下淚曰:「臣萬死不能報陛下也!」炎亦泣曰:「朕悔不能用卿伐吳之事今日誰可繼卿之志?」祜含淚而言曰:「臣死矣不敢不盡愚誠右將軍杜預可任若欲伐吳須當用之。」炎曰:「舉善薦賢乃美事也卿何薦人於朝即自焚其奏稿不令人知耶!」祜曰:「拜官公朝謝恩私門臣所不取也。」

이해 십일월 양호의 병이 위급해지자 사마염이 수레를 타고 직접 그 집에 가 문안하였다. 사마염이 (양호가)누워있는 침상 앞에 이르니 양호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신은 만 번 죽어도 폐하의 은혜를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했다. 사마염이 또한 울면서 말하기를 짐은 경을 등용하여 오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하지 못한 것을 뉘우친다. 오늘 누가 경의 뜻을 이을 수 있겠는가?”하니 양호가 눈물을 머금고 말하기를 신은 죽더라도 가히 어리석은 정성을 다하지 낳을 수 없습니다. 우장군 두예가 맡을만합니다. 만약 오나라를 정벌하려하신다면 반드시 그를 등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했다. 사마염이 말하기를 선하고 어진 이를 천거하니 곧 좋은 일이다. 경은 어찌하여 사람을 조정에 천거하고는 곧 스스로 그 아뢰는 글을 태워버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는가?”했다. 양호가 말하기를 공적인 조정에 관리를 임명하면서 사사로이 가문에 은혜를 사례하게 하는 것은 신하가 취할 바가 아닙니다.”했다.

 

言訖而亡炎大哭回宮敕贈太傅鉅平侯南州百姓聞羊祜死罷市而哭江南守邊將士亦皆哭泣襄陽人思祜存日常遊於峴山遂建廟立碑四時祭之往來人見其碑文者無不流涕故名為墮淚碑」。後人有詩歎曰

말을 마치고 죽었다. 사마염이 크게 곡하고 궁으로 돌아 가 태부거평후를 증직한다고 명했다. 남쪽 주의 백성들이 양호가 죽었다는 것을 듣고 시장을 닫고 곡하였다. 강남 변경을 지키던 장사들이 또한 모두 곡하고 울었고, 양양 사람들은 양호가 살아있던 날 항상 현산에서 노닐었던 것을 생각하여 마침내 사당을 세우고 비를 세우고 사시로 제사를 지냈다. 왕래하는 사람들로 그 비문을 본 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타루비(눈물 흘리는 비)’라 이름하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복해 말하기를

 

曉日登臨感晉臣古碑零落峴山春松間殘露頻頻滴疑是當年墮淚人

새벽에 올라 진나라 신하를 느끼고, 옛 비석은 낡았는데 현산은 봄이로다. 소나무 사이 점점이 떨어지는 이슬은 아마도 그때 사람이 흘린 눈물이리라.

 

晉王以羊祜之言拜杜預為鎮南大將軍都督荊州事杜預為人老成練達好學不倦最喜讀左丘明春秋傳坐臥常自攜每出入必使人持左傳於馬前時人謂之左傳癖」;及奉晉主之命在襄陽撫民養兵準備伐吳

진왕(사마염)은 앙호의 말에 따라 두예에게 벼슬을 주어 진남대장군도독형주사로 삼았다. 두예는 사람됨이 경험을 쌓아 노련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좌구명의 춘추전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여 앉으나 누우나 항상 휴대하여 매번 출입 때마다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좌전을 말 앞에서 지니게 하니 그 때 사람들이 그를 일러 좌전벽이라 하였다. 진나라 임금의 명을 받들어 양양에 있으면서 백성을 보살피고 군대를 길러 오나라 정벌을 준비하였다.

 

此時吳國丁奉陸抗皆死吳主皓每宴群臣皆令沉醉又置黃門郎十人為糾彈官宴罷之後各奏過失有犯者或剝其面或鑿其眼由是國人大懼晉益州刺史王濬上疏請伐吳其疏曰

이 때 오나라는 정봉, 육항이 모두 죽었고, 오나라 임금 손호는 매번 여러 신하들과 연회를 열어 무도 깊이 취하였다. 또 황문랑 십 명을 두어 규탄관으로 삼았다. 연회가 끝난 후에는 각자 과실을 아뢰게 하여 법한 자가 있으면 혹은 그 얼굴을 깍고, 혹은 그 눈을 파내었다. 이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진나라 익주자사 왕준이 오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상소에

 

孫皓荒淫凶逆宜速征伐若一旦皓死更立賢君則張敵也臣造船七年日有朽敗臣年七十死亡無日三者一乖則難圖矣願陛下無失事機

손호가 황음무도하고 불충불효하니 속히 정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약 하루 아침에 손호가 죽어 다시 어진 임금을 세운다면 곧 적을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이 배를 만든 지 칠년이 되어 날로 썩어 무너짐이 있고, 신의 나이 칠십으로 죽을 날이 멀지 않습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나면 곧 도모하기 어렵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일의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했다.

 

晉主覽疏遂與群臣議曰:「王公之論與羊都督暗合朕意決矣。」侍中王渾奏曰:「臣聞孫皓欲北上軍伍已皆整備聲勢正盛難與爭鋒更遲一年以待其疲方可成功。」晉王依其奏乃降詔止兵莫動退入後宮與秘書丞相張華圍棋消遣近臣奏邊庭有表到晉主開視之乃杜預表也表略云

진나라 임금(사마염)이 상소를 보고 마침내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왕공(왕준)의 논의와 양도독(양호)가 합한다. 짐의 뜻이 결정되었다.”했다. 시중 왕혼이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손호가 북상하고자 하여 군대가 이미 모두 정비되어 명성과 형세가 바로 성대하다하니 더불어 다투기 어렵습니다. 다시 일 년을 늦추어 그들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시면 비로소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진왕(사마염)이 그 아룀에 의하여 곧 조서를 내려 군대를 그치게 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물러나 후궁에 들어 가 비서승상 장화위와 바둑을 두면서 시간을 보냈다. 근신이 뜰 가에 서 표기 이른 것이 있다고 아뢰었다. 진왕(사마염)이 열어 보니 곧 두예의 표였다. 표를 요약하면

 

往者羊祜不博謀於朝臣而密與陛下計故令朝臣多異同之議凡事當以利害相較度此舉之利十有八九而其害止於無功耳自秋以來討賊之形頗露今若中止孫皓恐怖徙都武昌完修江南諸城遷其民居城不可攻野無所掠則明年之計亦不及矣

지난번에 양호가 조정 신하들에게 널리 꾀를 말하지 않고 비밀리 폐하와 게책을 논의하였기 때문에 조정의 신하들이 다르고 같은 논의가 많았습니다. 무릇 일은 마땅히 이해로서 서로 비교해야 합니다. 이번 거사의 이로움을 헤아려보면 열에 여덟, 아홉이고, 그 해로움은 다만 공이 없음에 그칠 뿐입니다. 가을 이래로부터 적을 토벌함의 형상이 자못 드러났으니 지금 중도에 그친다면 손호가 두려워하여 도읍을 무창으로 옮기고, 강남의 여러 성을 완전히 수리하고 그 백성을 옮기면 성은 공격할 수 없고, 들에는 약탈할 바가 없을 것이니 곧 내년의 계책은 곧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했다.

 

晉主覽表纔罷張華突然而起推卻棋枰斂手奏曰:「陛下聖武國富民強吳主淫虐民憂國敝今若討之可不勞而定願勿以為疑。」晉主曰:「卿言洞見利害朕復何疑?」即出升殿命鎮南大將軍杜預為大都督引兵十萬出江陵鎮東大將軍瑯琊王司馬伷出滁征東大將軍王渾出橫江建威將軍王戎出武昌平南將軍胡奮出夏口各引兵五萬皆聽預調用又遣龍驤將軍王濬廣武將軍唐彬浮江東下水陸兵二十餘萬戰船數萬艘又令冠軍將軍楊濟出屯襄陽節制諸路人馬

진나라 임금이 표를 살펴보자말자 장화가 갑자기 일어나 바둑판을 밀어내고 소매를 여며 잡고 아뢰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성스러운 무위를 갖추었고,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강합니다. 오나라는 임금은 음란하고 사나우며 백성은 근시하고, 나라는 피폐합니다. 지금 만약 토벌한다면 수고롭지 않아도 평정될 것입니다. 원하건데 의심하지 마십시오.”했다. 진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경이 이해를 통틀어 말하니 짐이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하고는 곧 나가 전가에 올라 진남장군 두예를 대도독으로 삼고 군대 십만을 이끌고 강릉으로 나가게 하고, 진동대장군 낭야왕 사마주는 저중으로 나가게 하였다. 정동대장군 왕혼은 횡강으로 나가게 하고, 건위장군 왕융은 무창으로 나가게 하고, 평남장군 호분은 하구로 나가게 하였는데 각각 군대 오만을 이끌고 모두 두예가 뽑아 쓰는 것을 듣게 하였다.(명령을 듣게 하였다.) 또 용양장군 왕준, 광무장군 당빈을 보내 강에 떠서(배를 타고) 동쪽으로 내려가게 하였다. 수군과 육군 이십여 만과 전선 수만 척이었다. 또 관군장군 양제로 하여금 양양에 나가 주둔하여 여러 결로의 인마를 조절하게 하였다.

 

早有消息報入東吳吳主皓大驚急召丞相張悌司徒何植司空滕修計議退兵之策悌奏曰:「可令車騎將軍伍延為都督進兵江陵迎敵杜預驃騎將軍孫歆進兵拒夏口等處軍馬臣敢為將率領左將軍沈瑩右將軍諸葛靚引兵十萬出屯牛渚接引諸路軍馬。」

일찍이 소식이 동오에 들어 가 알렸다. 오나라 임금 손호가 크게 놀라 급히 승상 장제, 사도 하식, 사공 등수를 불러 군대를 물리칠 계책을 논의하였다. 장제가 말하기를 거기장군 오연을 도독으로 삼아 군대를 강릉으로 진군시켜 두예를 맞아 대적하게 하고, 표기장군 손흠은 군대를 진군하여 하구 등의 군마를 막게 해야 합니다. 신은 감히 장수가 되어 좌장군 심영, 우장군 제갈정을 거느리고 군대 십만을 이끌고 우저에 나가 주둔하여 여러 방향의 군마를 맞아 이끌겠습니다.”했다.

 

皓從之遂令張悌引兵去了皓退入後宮面有憂色幸臣中常侍岑昏問其故皓曰:「晉兵大至諸路已有兵迎之爭奈王濬率兵數萬戰船齊備順流而下其鋒甚銳朕因此憂也。」昏曰:「臣有一計令王濬之舟皆為齏粉。」

손호가 그것에 따라 마침내 장제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떠나게 했다. 손호가 물러나 후궁으로 들어가는데 얼굴에 근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총애하는 신하인 중상시 잠혼이 그 이유를 물었다. 손호가 말하기를 진나라 군대가 크게 이르러 여러 방향에서 이미 군대를 맞이하고 있다. 왕준이 군대 수만을 이끌고 전선을 가지런히 준비해 흐름을 따라 내려와 그 예봉이 매우 날카로우니 짐이 이 때문에 근심하는 것이다.”했다. 잠혼이 말하기를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왕준의 배를 모두 가루로 만들 수 있습니다.”했다.

 

皓大喜遂問其計岑昏奏曰:「江南多鐵可打連環索百餘條長數百丈每環重二三十斤於沿江緊要去處橫截之再造鐵錐數萬長丈餘置於水中苦晉船乘風而來逢錐則破豈能渡江也?」皓大喜傳令撥匠工於江邊連夜造成鐵索鐵錐設立停當

손호가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그 계책을 물었다. 잠혼이 아뢰어 말하기를 강남은 철이 많으니 연환색 백여 개를 만드는데 길이는 수백 장으로 하고, 매 고리 무게를 이삼십 근으로 하여 강을 따라 긴요한 곳에 가로질러 막게 합니다. 다시 철 송곳 수 만 개를 만들되 길이는 한 길 정도로 하여 물속에 둡니다. 진나라 배들이 바람을 타고 오다 송곳을 만나면 곧 부서질 것이니 어찌 강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했다. 손호가 크게 기뻐하며 명령을 내려 장인을 뽑아 강변에서 밤을 이어 철색과 철추를 만들게 하고 적절하게 세우도록 했다.

 

卻說晉都督杜預兵出江陵令牙將周旨引水手八百人乘小舟暗渡長江夜襲樂鄉多立旌旗於山林之處日則放砲擂鼓夜則各處舉火旨領命引眾渡江伏於巴山次日杜預領大軍水陸並進前哨報道:「吳主遣伍延出陸路陸景出水路孫歆為先鋒三路來迎。」

각설하고 진나라 도독 두예는 강릉에서 군대를 내어 아장 주지로 하여금 수군 팔백 명을 이끌고 작은 배를 타고 몰래 장강을 건너 밤에 악향을 습격하게 하고, 산림이 있는 곳에 많은 깃발을 세워 낮에는 곧 포를 놓고 북을 치게 하고, 밤에는 각 곳에 불을 들게 하였다. 주지가 명령을 받아 무리를 이끌고 강을 건너 파산에 숨었다. 다음 날 두예가 대군을 이끌고 물과 육지에서 나란히 전진하게 했다. 전초가 보고해 말하기를 오나라 임금이 군대를 보내 길게 육로에서 나오고, 육경은 수로로 나오고, 손흠을 선봉이 되어 세 길로 맞이해 옵니다.”했다.

 

杜預引兵前進孫歆船早到兩兵初交杜預便退歆引兵上岸迤邐追時不到二十里一聲砲響四面晉兵大至吳兵急回杜預乘勢掩殺吳兵死者不計其數孫歆奔到城邊周旨八百軍混雜於中就城上舉火歆大驚曰:「北來諸軍乃飛渡江也!」急欲退時被周旨大喝一聲斬於馬下

두예는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였다. 손흠의 배가 빨리 이르렀다. 두 군대가 처음 만나자 두예는 곧 물러났다. 손흠이 군대를 이끌고 강 언덕에 올라 길게 추격한 지 이십 리에 이르지 못하여 한 소리 포가 울리며 사방에서 진나라 군대가 크게 이르니 오나라 군대가 급히 돌아갔다. 두예가 형세를 타고 습격하여 죽이니 오나라 군대로 죽은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손흠이 달려 성 가에 이르렀는데 주지의 팔백 군사들이 그 안에 섞여 있다가 성 위에 나아가 불을 들었다. 손흠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북쪽에서 온 여러 군사들이 곧 날아서 강을 건넜단 말인가!”하고는 급히 물러나려할 때 주지가 크게 한 소리 지르면서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陸景在船上望見江南岸上一片火起巴山上風飄出一面大旗上書:「晉鎮南將軍杜預。」陸景大驚欲上岸逃命被晉將張尚馬到斬之伍延見各軍皆敗乃棄城走被伏兵捉住縛見杜預預曰:「留之無用!」叱令武士斬之遂得江陵

육경이 배 위에 있다가 강남의 언덕 위에서 한조각 불이 일어나고, 파산 위에서 바람이 일면서 한 폭의 큰 깃발이 나왔는데 크게 진진남장군두예라 써져 있었다. 육경이 크게 놀라 언덕으로 올라 도망하여 목숨을 구하려하다 진나라 장군 장상의 말이 이르러 그를 베었다. 오연은 각 군대가 모두 패한 것을 보고 이에 성을 버리고 달아나다 복병에게 사로잡혀 묶여 두예에게 끌려갔다. 두예가 말하기를 남겨두어도 쓸모없다.”하고는 무사로 하여금 베어죽이라고 소리쳤다. 마침내 강릉을 얻었다.

 

於是沅湘一帶直抵黃州諸郡守令皆望風齎印而降預令人持節安撫秋毫無犯遂進兵攻武昌武昌亦降杜預軍威大振遂大會諸將共議取建業之策胡奮曰:「百年之寇未可盡服方今春水泛漲難以久住可俟來春更為大舉。」預曰:「昔樂毅濟西一戰而併強齊今兵威大震如破竹之勢數節之後皆迎刃而解無復有著手處也。」遂馳檄約會諸將一齊進兵攻取建業

이에 원, 상 일대와 곧바로 황주 여러 군에 이르기까지 수령들이 바람에 풀 눕듯이 관인을 가지고 항복하였다. 두예가 사람으로 하여금 부절을 가지고 안무하게 하는데 추호도 범함이 없었다. 마침내 군대를 진군하여 무창을 공격하였다. 무창이 또한 항복하였다. 두예는 군대의 위엄을 크게 떨치고, 마침내 크게 여러 장수들을 모아 함께 건업을 취할 계책을 논의하였다. 호분이 말하기를 백년의 도적이 아직도 모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바야흐로 봄의 물이 범람하니 오래 머물기 어렵습니다. 오는 봄을 기다렷다가 다시 크게 일으켜야 합니다.”했다. 두예가 말하기를 옛날 악의가 제수 서쪽에서 한 번 싸워 강한 제나라를 병합하였다. 지금 군대의 위엄이 크게 떨쳐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듯한 형세로 몇 마디를 쪼갠 뒤에는 모두 칼날이 가는대로 쪼개질 것이니 다시 손을 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했다. 마침내 격문을 보내 여러 장들과 만날 날을 정하고 일제히 진군하여 건업을 공격하였다.

 

時龍驤將軍王濬率水兵順流而下前哨報說:「吳人造鐵索沿江橫截又以鐵錐置於水中為準備。」濬大笑遂造大筏數十萬上縛草為人披甲執仗立於週圍順水放下吳兵見之以為活人望風先走暗錐著筏盡提而去又於筏上作火炬長十餘丈大十餘圍以麻油灌之但遇鐵索燃炬燒之須臾皆斷兩路從大江而來所到之處無不克勝

그 때 용양장군 왕준은 수군을 통솔하여 흐름을 따라 내려갔다. 전초가 보고하여 말하기를 오나라 사람들이 철삭을 만들어 강을 따라 가로질러 놓았고, 또 철 송곳을 물속에 놓아 준비하였습니다.”했다. 왕준이 크게 웃으며 마침내 큰 뗏목 수십만 개를 만들고 위에 풀을 묶어 사람을 만들고, 갑옷을 입히고 지팡이를 잡게 한 뒤 둘레에 세우고 물을 따라 놓아 내려가게 하였다. 오나라 군대가 그것을 보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 여겨 바람을 맞은 풀이 먼저 눕듯이 먼저 달아나니 숨겨놓은 송곳이 뗏목에 걸려 모두 끌고 갔다. 또 뗏목 위에 횃불을 붙여 두었는데 길이가 십여 장이고, 크기는 십여 아름이다. 마유(대마 씨앗 기름)를 부어 철삭을 만날 때마다 불타는 횃불로 태우니 잠시간에 모두 끊어졌다. 두 길로 대강을 따라 가니 이르는 곳마다 이기지 못함이 없었다.

 

卻說東吳丞相張悌令左將軍沈瑩右將軍諸葛靚來迎晉兵瑩謂靚曰:「上流諸軍不作提防吾料晉軍必至此宜盡力以敵之若幸得勝江南自安今渡江與戰不幸而敗則大事去矣。」靚曰:「公言是也。」

각설하고 동오(오나라)의 승상 장제는 좌장군 심영, 우장군 제갈정아로 하여금 가서 진나라 군대를 맞이하게 하였다. 심영이 제갈정에게 일러 말하기를 상류의 여러 군사들이 제방을 만들지(막지) 못하였으니 내가 생각하건데 진나라 군대가 반드시 여기에 이를 것입니다. 마땅히 힘을 다하여 대적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다행히 승리할 수 있다면 강남은 저절로 편안해질 것입니다. 지금 강을 건너 싸우다 불행히도 패하게 되면 곧 대사를 그르칠 것입니다.”했다. 제갈정이 말하기를 (심영)의 말이 옳습니다.”했다.

 

言未畢人報晉兵順流而下勢不可當二人大驚慌來見張悌商議靚謂悌曰:「東吳危矣何不遁去?」悌垂泣曰:「吳之將亡賢愚共知今若君臣皆降無一人死於國難不亦辱乎?」諸葛靚亦垂泣而去張悌與沈瑩揮兵抵敵晉兵一齊圍之周旨首先殺入吳營張悌獨奮力搏戰死於亂軍之中沈瑩被周旨所殺吳兵四散敗走後人有詩讚張悌曰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람이 진나라 군대가 흐름을 따라 내려 오는데 형세가 감당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다. 두 사람이 크게 놀라 황급히 가서 장제를 만나 상의하였다. 제갈정이 장제에게 일러 말하기를 동오(오나라)가 위태로운데 어
찌 몸을 피하지 않습니까?”하니 장제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오나라가 장차 망하려하는 것은 현명한 이나 어리석은 이가 모두 아는데 지금 만약 임금과 신하가 모두 항복한다면 한 사람도 나라의 어려움에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또한 욕됨이 아니겠습니까?”했다. 제갈정이 또한 눈물을 흘리며 갔다. 장제와 심영이 군대를 지휘하여 적을 막는데 진나라 군대가 일제히 그들을 포위하였다. 주지가 앞장서서 오나라 진영으로 달려 들어가니 장제가 홀로 힘을 떨쳐 격전을 벌이다 어지러운 군대 안에서 죽었다. 심영은 주지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오나라 군대가 사방으로 흩어져 패주하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장제를 찬양하여 말하기를

 

杜預巴山建大旗江東張悌死忠時已拼王氣南中盡不忍偷生負所知

두예는 파산에 큰 깃발을 세우니 강 동쪽의 장제가 충성으로 죽을 때이다. 이미 왕의 기운이 남쪽에서 다하였는데, 차마 삶을 위해 알아준 바를 저버리지 못하네.”했다.

 

卻說晉兵克了牛渚深入吳境王濬遣人馳報捷音晉主炎聞知大喜賈充奏曰:「吾兵久勞於外不服水土必生疾病宜召軍還再作後圖。」張華曰:「今大兵已入其巢吳人膽落不出一月孫皓必擒矣若輕召還前功盡廢誠可惜也。」晉主未及應賈充叱華曰:「汝不省天時地利欲妄邀功勳困弊士卒雖斬汝不足以謝天下!」炎曰:「此是朕意華但與朕同耳何必爭辯?」

각설하고 진나라 군대는 우저를 이기고 깊이 오나라 국경 안으로 들어갔다. 왕준이 사람을 보내 승리 소식을 전하였다. 진나라 임금 사마염이 듣고 크게 기뻐하니 가충이 아뢰어 말하기를 우리 군대가 오래 동안 밖에서 수고하고, 물과 땅에 맞지 않으니 반드시 병이 생겨날 것입니다. 군대를 돌렸다가 다시 귀에 도모해야 합니다.”했다. 장화가 말하기를 지금 대군이 이미 그 둥지에 들어가 오나라 사람들의 담이 떨어져 한 달을 (오나라에서)나오지 않으면 손호를 반드시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가벼이 소환한다면 앞서의 공이 모두 없어지게 될 것이니 진실로 애석한 것입니다.”했다. 진나라 임금이 대답하기도 전제 가충이 장화를 질책하여 말하기를 너는 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을 살피지 않고 망녕되이 공훈을 구하고자 하여 사졸들을 곤궁하고 피폐하게 하니 비록 너를 베어 죽여도 천하에 사죄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했다. 사마염이 말하기를 이는 짐의 뜻이고, 장화는 다만 짐과 같이할 뿐이다. 어찌 다툴 필요가 있겠는가?”했다.

 

忽報杜預馳表到晉主視表亦言宜急進兵之意晉主遂不復疑竟下征進之命王濬等奉了晉主之命水陸並進風雷鼓動吳人望旗而降吳主皓聞之大驚失色諸臣告曰:「北兵日近江南軍民不戰而降將如之何?」皓曰:「何故不戰?」眾對曰:「今日之禍皆岑昏之罪請陛下誅之臣等出城決一死戰。」皓曰:「量一中貴何能誤國?」眾大叫曰:「陛下豈不見蜀之黃皓乎?」

홀연히 두예가 올린 표가 이르렀다고 알렸다. 진나라 임금이 표를 보니 또한 마땅히 급히 진군해야 한다는 뜻을 말하고 있었다. 진나라 임금이 마침내 다시 의심하지 않고 정벌하는 진군의 명령을 내렸다. 왕준 등이 진나라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수군과 육군을 나란히 전진시키며 바람과 우레처럼 북을 치니 오나라 사람들이 깃발만 바라보고도 항복하였다. 오나라 임금 손호가 듣고 크게 놀라 얼굴색이 변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고하여 말하기를 북쪽 군대가 일로 가까워지니 강남의 군사와 백성들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합니다. 장차 어떻게 해야 합니까?”했다. 손호가 말하기를 무슨 이유로 싸우지 않는가?”하니 무리들이 대답해 말하기를 오늘의 재앙은 모두 잠혼의 죄입니다. 폐하께 그를 죽일 것을 청합니다. 신들이 성을 나가 결사적으로 한 번 싸우겠습니다.”했다. 손호가 말하기를 헤아려보니 조정의 고위관리 한 사람이 어찌 나라를 잘못되게 할 수 있겠는가?”했다. 무리들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어찌 촉의 황호를 보지 못하십니까?”했다.

 

遂不待吳主之命一齊擁入宮中碎割岑昏生啖其肉陶濬奏曰:「臣領戰船皆小願得二萬兵乘大船以戰自足破之。」皓從其言遂撥御林諸軍與陶濬上流迎敵前將軍張象率水兵下江迎敵二人部兵正行不想西北風大起吳兵旗幟皆不能立盡倒豎於舟中兵各不肯下船四散奔走只有張象數十軍待敵

마침내 오나라 임금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일제히 궁중에 거느리고 들어 가 잠혼을 토막 내고 생으로 고기를 씹었다. 도준이 아뢰어 말하기를 신이 거느린 전선이 모두 작으니 원하건데 이만의 군대를 얻어 큰 배에 태우고 싸우면 스스로 그들을 깨트리기에 충분합니다.”했다. 손호가 그 말에 따라 마침내 어림의 여러 군사를 뽑아 도준에게 주어 상류에서 적을 맞이하게 하였다. 전장군 장상도 수군을 통솔하고 강을 내려가 적을 맞이하려 하였다. 두 사람의 부하 군사가 가고 있는데 뜻밖에 북풍이 크게 일어나니 오나라 군대 깃발이 모두 서 있지 못하고 배 안으로 쓰러졌다. 군사들이 각각 기꺼이 배에서 내리려 하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다만 장상은 수십 명 군사들만 데리고 적을 기다릴 뿐이었다.

 

卻說晉將王濬揚帆而行過三山舟師曰:「風波甚急船不能行且待風勢少息行之。」濬大怒拔劍叱之曰:「吾目下欲取石頭城何言住耶!」遂擂鼓大進吳將張象引從軍請降濬曰:「若是真降便為前部立功。」象回本船直至石頭城下叫開城門接入晉兵

각설하고 진나라 장수 왕준은 돛을 휘날리며 행군하여 삼산을 지나는데 수군이 말하기를 바람과 물결이 매우 급하여 배가 갈 수 없습니다. 또 바람의 형세가 조금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가야합니다.”했다. 왕준이 크게 노하여 검을 뽑아 그들을 꾸짖어 말하기를 내가 막 석두성을 취하려하는데 어찌하여 멈추라고 말하는가!”하고는 마침내 북을 울리며 크게 진군하였다. 오나라 장수 장상이 따르는 군사를 이끌고 항복을 청하였다. 왕준이 말하기를 만약 참으로 항복한다면 곧 앞 부대가 되어 공을 세우시오.”했다. 장상이 본선으로 돌아 가 바로 석두성 아래 이르러 소리쳐 성문을 열게 하고, 진나라 군대를 맞아들였다.

 

孫皓聞晉兵入城欲自刎中書令胡沖光祿勳薛瑩奏曰:「陛下何不效安樂公劉禪乎?」皓從之亦輿櫬自縛率諸文武詣王濬軍前歸降濬釋其縛焚其櫬以王禮待之唐人有詩歎曰

손호는 진나라 군대가 성에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려 했다. 중서령 호충, 광록훈 설영이 아뢰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안락공 유선을 본받지 않으십니까?”하니 손호가 그것을 따라 관을 수레에 싣고 스스로를 묶은 후 여러 문무관을 인솔하여 왕준의 군대 앞으로 나아가 항복하였다. 왕준이 그 묶인 것을 풀어주고 그 관을 태워버리고 왕의 예로서 대우하였다. 당 나라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王濬樓船下益州金陵王氣黯然收千尋鐵鎖沉江底一片降旛出石頭人世幾回傷往事山形依舊枕寒流今逢四海為家日故壘蕭蕭蘆狄秋

왕준이 누선이 익주에 내려오니 금릉의 왕기는 빛을 잃고 거두어진다. 천 길 쇠사슬 강 아래 가라앉고, 한 조각 항복하는 깃발은 석두성을 나온다. 인간 세상 지난 일을 서글퍼하는데, 산의 형상은 예전 그대로 차가운 흐름을 베고 있다. 지금 사방이 한 국가 된 날을 만났는데, 옛 보루는 가을 억새 속에 쓸쓸하다.

 

於是東吳四州八十三郡三百一十三縣戶口五十二萬三千軍吏三萬二千兵二十三萬男女老幼二百三十萬米榖二百八十萬斛舟船五千餘艘後宮五千餘人皆歸大晉大事已定出榜安民盡封府庫倉廩次日陶濬兵不戰自潰瑯琊王司馬伷并王戎大兵皆至見王濬成了大功心中忻喜次日杜預亦至大犒三軍開倉賑濟吳民於是吳民安堵惟有建平太守吳彥拒城不下聞吳亡乃降

이에 동오 사주 팔십사군 삼백 일십 삼현, 오십 이만 삼천 호, 군 관리(장교) 삼만 이천 명, 군대 이십 삼만, 남녀노유(백성) 이백삼십만, 곡식 이백팔십만 곡, 배 오천여 척, 후궁 어천여 명이 모두 대진나라에 속하였다. 대사가 정해진 뒤 방을 붙여 백성을 안정시키고 모든 무기고와 창고를 봉하였다. 다음 날 도준의 군대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무너졌다. 낭야왕 사마주와 왕융의 대군이 모두 이르러 왕준이 대공을 이룬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다음 날 두예가 또한 이르러 삼군에게 음식을 먹이고, 창고를 열러 오나라 백성들은 구휼하였다. 이에 오나라 백성들이 안도하였다. 오직 건평태수 오언만이 성을 지키며 항복하지 않다가 오나라가 망한 것을 듣고 항복하였다.

 

王濬上表報捷朝廷聞吳已平君臣皆賀上壽晉主執杯流涕曰:「此羊太傅之功也惜其不親見之耳!」驃騎將軍孫秀退朝向南面哭曰:「昔討逆壯年以一校尉創立基業今孫皓舉江南而棄之悠悠蒼天此何人哉!」

왕준이 표를 올려 승리를 보고하였다 조정에서 오나라를 평정하였다는 것을 듣고 임금과 삼하가 모두 장수를 축하하였다. 진나라 임금이 술잔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이는 양 태부(양호)의 공인데 그 직접 이것을보지 못하는 것이 애석할 뿐이구나!”했다. 표기장군 손수가 조정에서 물러나 남쪽을 향해 크게 곡하며 말하기를 옛날 역적을 토벌하던 장년(전성기)에 한 교위로서 기업(나라를)을 세웠는데 지금 손호가 강남을 들어 버리니 유구한 푸른 하늘이여 이는 어떤 사람인가!”했다.

 

卻說王濬班師還吳主孫皓赴洛陽面君皓登殿稽首以見晉帝帝賜坐曰:「朕設此座以待卿久矣。」皓對曰:「臣於南方亦設此座以待陛下。」帝大笑賈充問皓曰:「聞君在南方每鑿人眼目剝人面皮此何等刑耶?」皓曰:「人臣弒君及奸佞不忠者則加此刑耳。」充默然甚愧帝封皓為歸命侯子孫封中郎隨降宰輔皆封列侯丞相張悌陣亡封其子孫封王濬為輔國大將軍其餘各加封賞

각설하고 왕준이 군대를 돌리는데 와라 임금 손호도 낙양에 가 임금(사마염(을 만났다. 손호가 전각에 올라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서 진나라 황제(사마염)를 뵈었다. 황제가 자리를 내리며 말하기를 짐이 이 자리를 두고 경을 기다린 것이 오래되었다.”하니 손호가 대답하기를 신이 남쪽에서 또한 이 자리를 두는 것으로서 폐하를 기다렸습니다.”했다. 황제가 크게 웃었다. 가충에 손호에게 물어 말하기를 들으니 임금께서는 남쪽에 있을 때 매번 사람이 눈을 파내고,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겼다고 하는데 이는 무슨 죄에 대한 형벌입니까?”했다. 손호가 말하기를 신하로 임금을 죽이는 것과 간사한 말을 잘하고, 충성하지 않는 자에게 곧 이 형벌을 가할 뿐입니다.”했다. 가충이 묵묵히 말없이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황제가 손호를 봉하여 귀명후로 삼고, 자손들은 중랑에 봉하고, 따라 항복한 재상들은 모두 열후에 봉하였다. 승상 장제는 진영 중에서 죽었으므로 그 자손을 봉하였다. 왕준을 봉해 보국대장군으로 삼았다. 그 나머지도 각각 작을 봉하고 상을 주었다.

 

 

自此三國歸於晉帝司馬炎為一統之基矣此所謂天下大勢合久必分分久必合者也

이로부터 세 나라가 진나라 황제 사마염에게 돌아가고, 통일의 나라가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천하 대세는 합함이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지고, 나누어짐이 오래되면 반드시 합한다.”는 것이다.

 

後來後漢皇帝劉禪亡於晉太康七年魏主曹奐亡於太康元年吳主孫皓亡於太康四年皆善終後人有古風一篇以敘其事曰

후에 후한의 황제 유선은 진나라 태강 칠년에 죽었고, 위나라 임금 조환은 태강 원년에 죽었고, 오나라 임금 손호는 태강 사면에 죽었는데 모두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하였다.(천수를 누렸다.) 후세 사람이 고풍 한 편으로 그 일을 서술하였다.

 

高祖提劍入咸陽炎炎紅日升扶桑光武龍興成大統金烏飛上天中央哀哉獻帝紹海宇紅輪西墜咸池傍何進無謀中貴亂涼州董卓居朝堂王允定計誅逆黨李傕郭氾興刀槍四方盜賊如蟻聚六合奸雄皆鷹揚孫堅孫策起江左袁紹袁術興河梁劉焉父子據巴蜀劉表軍旅屯荊襄

한나라 고조가검을 차고 함양에 들어가니 이글거리는 붉은 해가 동쪽에서 떠 올랐다. 광무제가 용이 떠오르듯 성대히 큰 전통을 이루니 금빛 나는 까마귀가 하늘 가운데로 날아올랐다. 슬프구나. 헌제가 천하를 이으니 붉은 태양이 서쪽 함지 옆에 떨어지는구나! 하진이 꾀가 없어 높은 지위 관리들이 난을 일으키고 양주 동탁이 조정에 자리하였다. 왕윤은 계책을 정해 거스르는 무리를 주살하하고, 이각과 곽사는 칼과 창을 들었다. 사방에서 도적이 개미 같이 모이고, 천하의 간사한 영웅이 모두 매처럼 날아올랐다. 손견과 손책은 강좌에서 일어나고, 원소와 원술은 하량에서 흥기하였다. 유언 부자는 파촉을 근거하고, 유표는 군대를 형양에 주둔하였다.

 

張脩張魯霸南鄭馬騰韓遂守西涼陶謙張繡公孫瓚各逞雄才占一方曹操專權居相府牢籠英俊用文武威震天子令諸侯總領貔貅鎮中土樓桑玄德本皇孫義結關張願扶主東西奔走恨無家將寡兵微作羈旅南陽三顧情可深臥龍一見分寰宇先取荊州後取川霸業王圖在天府嗚呼三載逝升遐白帝託孤堪痛楚孔明六出祁山前願以隻手將天補何期歷數到此終長星半夜落山塢姜維獨憑氣力高九伐中原空劬勞鍾會鄧艾分兵進漢室江山盡屬曹髦纔及奐司馬又將天下交受禪臺前雲霧起石頭城下無波濤陳留歸命與安樂王侯公爵從根苗紛紛世事無窮盡天數茫茫不可逃鼎足三分已成夢後人憑弔空牢騷

장수와 장노는 남정에서 으뜸이었고, 마등과 한수는 마침내 서량을 지켰다. 도겸과 장소, 공손찬도 각각 굳센 영웅으로 한 지방을 차지하였다. 조조는 재상 부에 있으면서 권력을 오로지 하고, 교묘한 꾀로 영준한 이를 문무관으로 등용하였다. 위엄이 천자를 진동시키고 제후를 호령하고 용맹한 군대를 거느리고 중토(중국)를 지켰다. 누상촌의 유현덕은 본래 황손으로 관우, 장비와 의리로 결연하여 임금을 도왔다. 동서로 바쁘게 달리나 터전이 없음을 한탄하다 적은 군사를 거느리고 객지를 떠돌았다. 남양을 세 번 돌아보는 정이 깊어 와룡(제갈공명)이 한번 보고 천하를 나누었다. 먼저 형주를 취한 뒤 천()을 취하니 제왕의 패업을 천부에서 도모한다. ! 삼년 만에 돌아가시며 백제성에서 고아를 맡기니 슬프다. 제갈공명이 여섯 번 기산 앞으로 나와 두 손 모아 하늘을 떠받치려했다. 어찌 하늘의 운수를 기약함이 여기에 이르러 끝나고, 장성이 한밤중에 산기슭에 떨어질 줄이야! 강유가 홀로 기운과 힘이 높음을 믿고 아홉 번 중원을 정벌하나 헛된 수고가 되었다. 종회와 등애가 군대를 나누어 나아가니 한나라 강과 산이 조씨에게 속하였다. 조예, 조비, 조방, 조모를 조환이 잇자말자 사마씨가 또 천하를 넘겨받았다. 수선대 앞에서는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고 석두성 아래는 파도가 없다. 진류왕(헌제), 귀명후(손호), 안락공(유선)은 왕, , 공의 작위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어지러운 세상일은 다함이 없고 하늘의 운수는 아득하여 도망할 수 없다. 솥발처럼 셋으로 나뉜 것은 이미 꿈이 되었고, 후세 사람들은 슬퍼한다는 핑계로 공연히 불평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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