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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사사조서양함표

by 최인표 2024. 4. 23.

謝賜詔書兩函表

조서 두 함 내린 것을 사례하는 표

 

臣某言臣亡兄故國王臣晸先差陪臣試殿中監金僅等奉表慶賀先皇帝西幸鑾駕歸闕仍別付表稱賀斬梟賊黃巢伏蒙聖恩許降勑書兩函別賜奬飾烏輪上處鸞綍飛來分輝絶域之榮感化激佳城之恨中謝

신 아무개가 말씀드립니다. 신의 돌아가신 형인 고 국왕 신 정(헌강왕)이 앞서 陪臣 시전중감 김근 등을 보내 표를 받들어 선황제(돌아가신 황제)께서 서쪽으로 갔다가 황제의 수레가 궁궐로 돌아 온 것을 축하드립니다. 따로 표를 붙여 어지럽히던 도적 황소를 목 베어 죽인 것을 축하드렸더니, 성은을 입어 칙서 두 함을 내리시는 것을 허락하시고, 별도로 칭찬을 내리시어 해 뜨는 곳에 칙서를 날려 보내 빛을 나누어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영예를 더하시니 교화를 느낌이 무덤의 한을 심하게 합니다.(중사)

 

臣以當國昔者周秦質燕趙多虞佳人猶合浦珠移壯士若延津劒化來興邑落助守藩隅是以辰韓誤秦韓之名樂浪擬澮浪之字但屬焚書餘弊猶隨避地之徒師古成規久昧移風之𧗱是處銜十尋之髮何人傳五色之毫

신이 나라를 맡아(생각하건대) 옛날에 주나라와 진나라가 교체되고, 연나라와 조나라가 근심이 많았을 때 佳人은 합포의 구슬을 옮기듯이 하였고(떠나갔고), 장사는 연진의 검이 변화하듯이 와서 읍락을 일으켜 번방(번국)의 모퉁이 지키는 것을 도왔습니다. 이 때문에 辰韓秦韓의 이름을 잘못 쓴 것이며, 樂浪澮浪의 글자에 견준 것인데 다만 글을 불태운 남은 폐단에 속했던 것이 오히려 땅을 피하는 무리를 따랐을 뿐입니다. 옛 것을 본받는 것이 법을 이루어 오래 동안 풍속을 고치는 방법(학술)에 어두워 이에 열 길의 머리털을 머금음에 처하였으니 어떤 사람이 오색의 터럭()을 전하겠습니까?

 

國語孝經殊難化俗床頭周易罕見知名而乃臣亡兄贈大傅臣晸生知老敎雅善秦言茂才則何趐錚錚嘉話則實餘袞袞故得身文耀俗心畫超倫每慙爲屛外之臣唯願逐壺中之客形于歌詠深所歎嗟至如虞松五守之難免求於鍾會谷永萬條之易見賞於王充未遇己知頗希自試

국어, 효경으로는 풍속을 교화하기 매우 어렵고, 상 머리의 주역은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의 돌아가신 형으로 대()부를 증직 받은 신 정(헌강왕)은 나면서 老敎(도교?)를 알았고, 秦言(중국어를)을 잘하였으니 풍성한 재능이 곧 어찌 쟁쟁할 뿐이었겠습니까? 아름다운 말솜씨는 곧 실로 수두룩하여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몸의 문채는 범속함에서 빛날 수 있었고, 글씨는 보통보다 뛰어났습니다. 매 번(항상) 울타리 밖의 신하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여 오직 항아리 속의 객을 쫓기를 원하고, 노래와 시로 형상하여 깊이 탄식하고 슬퍼하였습니다. 虞松이 어려워하다가 鍾會로부터 다섯 글자의 자문을 받았던 것도 면할 수 있을 정도였고, 곡영이 만 가지 조항의 역을 보이고 왕충에게 상찬을 받았던 수준에 이르렀는데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하였다 여겨 자못 스스로 시험하기를 바랐습니다.

 

頃者仰承先皇帝罷狩錦川言歸絳闕又聞東諸侯齊驅虎豹顯戮鯨鯢難勝拊之歡寫由衷之懇手成草奏口絶技詞雖粗殊西北之流能期至海且未擅東南之美敢望動天而仰蒙睿慈俯念忠欵遠飛還詔特越常規鸞鳳雙函影指鼇山之路虬龍一札聯行入鰈水之鄕是乃自天降無價之珠擧國爲不枯之草

지난번에 선황제께서 금천을 순수하시기를 그치시고, 궁궐에 돌아오셨다는 말씀을 우러러 받들었고, 또 동쪽의 제후들이 일제히 범과 표범을 몰아오는 鯨鯢를 죽여 여러 사람에게 보였다는 것을 듣고, 다리를 치는 기쁨을 이기기 어려워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마음을 베끼기를 바라서 손수 표문의 초안을 이루고 입으로 좋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비록 서북쪽으로의 흐름이 거칠고 달라도 바다에 이르기를 기약할 수 있으나, 또한 동남쪽의 아름다움을 함부로 하지 못하니 감히 하늘을 움직이게 하기를(하늘이 감동하기를) 바라겠습니까? 우러러 황제의 사랑을 입히시고, 충성과 정성을 굽어 생각하시어 멀리서 회답하는 조서를 날리시되, 특히 떳떳한 법을 넘어 난봉 두 함이 그림자를 나란히 하여 오산의 길을 가리키고, 규룡의 한 통 문서가 줄을 이어 접수의 지역으로 들어왔으니 이는 곧 하늘에서 값을 매길 수 없는 구슬이 내려온 것이고, 온 나라가 마르지 않음의 풀이 되었습니다.

 

伏覩詔旨節文曰必在秉心彌固服義不忘勉修正朔之儀用契車書之美兾使赫曦之績首冠於他方霶霈之恩常霑於爾土者。。

엎드려 詔旨를 살펴보건대, 그 대략에 이르기를 반드시 마음을 더욱 굳게 잡고, 의에 순종하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정삭의 의례를 닦고, 車書의 아름다움에 맞게 하는데 힘써 눈부시게 빛나는 공적을 세워 다른 지방에서 으뜸(모범)이 되게 하고, 큰 비가 쏟아지는 듯한 은혜가 항상 너의 땅에 젖기를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臣聞昔第五倫每見漢光武詔書卽顧等輩而歎曰是眞聖主也恨不得見之耶臣今奉聖君詔旨若承慈父誨言其於聖之深懷德之切倍萬伯魚矣有以見天上之詔惟照也能委照於日邊日邊之人謂仁乎永歸仁於天上且臣蕃途程踰二萬里朝貢僅三百年許申父事之儀繼獻子來之款每奉詔勑皆成義方先祖旣奉以周旋裔孫固服之無斁

신이 듣건대 옛날 第五倫이 매번 한나라 광무제의 조서를 볼 때마다 곧 동료를 돌아보고 탄식해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거룩한 임금(聖主)이로다. 뵙지 못한 것이 한이로다.”하였다 하는데, 신이 지금 거룩한 임금(聖君)詔旨를 받드니 마치 자애로운 아버지의 가르치고 타이르는 말을 받드는 듯하고, 그 거룩함의 깊음에 덕을 생각함이 간절한 것이 伯魚(孔鯉)보다 만 배였습니다. 천상의 조서가 비추어짐이 있으면 해 가를 비출 수 있고, 해 가의 사람을 어질다 말하면서, 길이 천상에 어짊을 돌립니다. 또한 신의 번국은 (중국과)길이 이만리가 넘고, 조공은 겨우 300년인데 아버지로 섬김의 예의 펴는 것을 허여하시고, 자식처럼 와서 정성을 바치는 것을 잇게하여 매번 조칙을 받들 때마다 모두 義方을 이루게 하시니 선조가 이미 받들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힘썼으니 후손이 진실로 따라서 싫어함이 없을 것입니다.

 

至如開元御㝢海不揚波頻錫王言誕敷文德仍以臣先祖興光憲英父子但能慕善累賜八分御札莫不龍騰鳳飜綵牋由是益光神筆至今猶潤分寶玉於伯叔之國則甞聞之賜銀鉤於夷狄之鄕所未見也

개원황제가 다스림에 이르러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을 때에는 자주 王言을 내려 문적을 크게 펴셨고, 신의 선조 흥광(성덕왕), 헌영(경덕왕) 부자가 다만 을 사모한다 하여 여러 번 팔분체의 어찰을 내리셨는데 (글씨가)용이 날고 이 나는 듯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채색된 편지지가 이로 말미암아 더욱 빛났고, 神筆은 지금에도 오히려 윤기가 납니다. 백부와 숙부의 나라에 寶玉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은 곧 일찍이 들었습니다만 이적(오랑캐)의 시골에 銀鉤를 내렸다는 것은 아직 보지 못한 바입니다.

 

其詔旨則曰殆比卿於魯衛豈復同於蕃服又至大曆年中降天語曰在九州之外可比諸侯於萬國之中乃爲君子此皆愛忘譽過小國之所不堪伏惟聖文睿德光武弘孝皇帝陛下丕承列聖光宅群方擧典謨訓誥之宗警戎狄蠻夷之輩行看萬國合作一家

詔旨에 대략적으로 말하기를 경은 노나라와 위나라에 거의 견줄 수 있으니 어찌 다시 藩服과 같을 수 있겠는가? 또 내력 연간에 이르러 황제가 말씀을 내려 말하기를 구주의 밖에 있으면서 제후에 견줄 수 있으니 모든 나라 가운데네 군자가 된다.’하시니 이는 모두 사랑으로 잊으시고, 칭찬을 지나치게 하신 것이니 작은 나라가 감당하지 못할 바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성문예덕광무홍효황제폐하(昭宗)께서 크게 列聖을 이으시고, 여러 지방을 빛나게 다스릴 때 백대에 행할 도를 기록한 글과 계책 등과 訓誥宗旨를 들어 융적과 적만의 무리를 경계하시니 만국(모든 나라가)이 함하여 한 집안이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臣所痛傷亡兄臣晸先晞薤露阻奉芝泥生爲飮化之身歿作負恩之魄其所賜誡勑臣謹已緘諸玉笥護以金函授姪男嶢俾傳國寶嶢當銘于瑗座書在師紳入則勖勵三卿出則撫柔百姓粗成功於式遏仰裨化於時雍臣今者殷樹辭春孔匏繫遠道之云阻魂飛截海之鷹天不可升目斷凌雲之鶴不獲奔波詣闕稱謝殿庭(東文選33, 表箋)

신이 몹시 슬퍼하는 바는 돌아가신 형 정(헌강왕)이 먼저 풀잎의 이슬처럼 말라(돌아가시어) 지니(조서)를 받들지 못하여 살아서는 교화에 젖었던 몸이 죽어서 은혜를 저버리는 혼백이 되었습니다. 그 내린 바의 계칙은 신이 삼가 이미 옥사에 봉하였고, 금함으로 보호하여 조카 요(효공왕)에게 주어 나라의 보배로 전하게 하였더니 요가 마땅히 瑗座에 새기고, 師紳에 써서 들어가서는 三卿을 격려하고, 나가서는 곧 백성을 어루만져 온순하게 하여 반역을 막는 공을 조금 이루고 時雍을 우러러 교화하게 할 것입니다. 신은 지금 무성했던 나무가 봄을 하직하고, 뒤웅박처럼 멀리 매달려 있으므로 길은 막혔다고 말하나 혼은 바다를 건너는 매처럼 날아가고, 하늘에는 오를 수 없었으나 눈은 구름 위로 치솟는 학을 따라갑니다. 급히 대궐로 달려 가 전정에서 사례 드리지는 못합니다. 신은 두려운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동문선33, 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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