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一
伯夷列傳第一
索隱列傳者,謂敘列入臣事跡,令可傳於後世,故曰列傳。正義其人行跡可序列,故云列傳。
「索隱」에 「列傳」은 신하의 事跡을 차례로 나열하여 들여 후세에 전해지게 하였기 때문에 「열전」이라 하였다. 「正義」에 그 사람의 행적을 차례로 나열하였기 때문에 「列傳」이라 한 것이다.
夫學者載籍極博,猶考信於六蓺。詩書雖缺,[一]然虞夏之文可知也。[二]堯將遜位,讓於虞舜,舜禹之閒,岳牧咸薦,乃試之於位,典職數十年,[三]功用既興,然後授政。示天下重器,[四]王者大統,傳天下若斯之難也。而說者曰堯讓天下於許由,[五]許由不受,恥之逃隱。及夏之時,有卞隨、務光者。此何以稱焉[六]?太史公曰:余登箕山,[七]其上蓋有許由冢云。孔子序列古之仁聖賢人,如吳太伯、伯夷之倫詳矣。余以所聞由、光[八]義至高,[九]其文辭不少概見,何哉?[十]
대저 배우는 자의 서책이 지극히 넓으나 그런데로 六藝(시경, 서경, 예경, 악경, 춘추, 역경)는 상고하여 믿을 수 있다. 『시경』과 『서경』이 비록 빠짐이 있으나 ‘우’와 ‘하’의 글을 볼 수 있다. 堯가 장차 지위를 양보하여 우순에게 양보하였고, 우순의 양위 때는 四岳과 九牧이 모두 천거하여야 이에 자리에서 그를 시험하여 직책을 맡아 수십 년에 공적이 이미 흥기한 후에 정사를 주었다. 천하는 소중한 보물이고, 왕 노릇 하는 자의 큰 법통을 보였으니 천하를 전함이 이 같이 어려운 것이다. 설명하는 자가 말하였다. “요가 천하를 허유에게 양보하였는데 허유가 받지 않고, 그 것을 부끄럽게 여겨 도망하여 숨었다. 하의 때에 이르러는 변수와 무광이 있었다.”하나 이것은 무엇으로써 말한 것인가? 태사공이 말하였다. 내가 기산에 올랐는데 그 위에 허유의 무덤이 있다. 말 하였다. 공자가 옛 날의 仁한이와 聖人과 賢人을 차례로 나열 할 때 오태백, 백이와 같은 이를 자세하게 하였다. 내가 들은 바로는 허유와 무광은 의리가 지극히 높음에도 文辭가 조금의 개략적인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1] 索隱按 孔子系家稱古詩三千餘篇,孔子刪三百五篇為詩,今亡五篇。又書緯稱孔子求得黃帝玄孫帝魁之書,迄秦穆公,凡三千三百三十篇,乃刪以一百篇為尚書,十八篇為中候。今百篇之內見亡四十二篇,是詩書又有缺亡者也。
[1] 【索隱】 살펴보니 공자를 이은 집에서 옛 시가 3천여 편인데 공자가 깍아 350편으로 시경을 만들었는데 지금 5편이 없어졌다. 말 하고, 서위는 공자가 황제의 현손인 帝魁의 글을 구하여 얻었는데 진나라 목공에 이르기까지 무릇 3330편이었다. 이에 깍아 100여 편으로 상서를 만들었는데 18편은 中侯라 한다. 지금 100편의 안에 40편이 보이니 이것이 詩와 書가 또한 빠지고 없어진 것이 있는 것이다.
[二] 索隱按 尚書有堯典、舜典、大禹謨,備言虞夏禪讓之事,故云「虞夏之文可知也」。
[二] 【索隱】 살펴보니 『尙書』 ‘堯典’, ‘舜典’, ‘大禹謨’에 虞와 夏의 禪讓의 일을 갖추어 말하였다. 그러므로 “虞夏의 글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三] 正義舜禹皆典職事二十餘年,然後踐帝位。
[三] 【正義】 “순과 우가 모두 직책의 일을 담당한 지 20여년 한 후에 왕제의 지위에 올랐다.” 했다.
[四] 索隱言天下者是王者之重器,故莊子云「天下大器」是也。則大器亦重器也。
[四] 【索隱】 말하였다. “천하는 왕 노릇하는 자의 소중한 기물이다. 그러므로 장자가 말한 ‘천하의 大器’라는 것이 이것이다.” 하니 곧 大器는 또한 重器이다.
正義皇甫謐高士傳云:「許由字武仲。堯聞致天下而讓焉,乃退而遁於中嶽潁水之陽,箕山之下隱。堯又召為九州長,由不欲聞之,洗耳於潁水濱。時有巢父牽犢欲飲之,見由洗耳,問其故。對曰:『堯欲召我為九州長,惡聞其聲,是故洗耳。』巢父曰:『子若處高岸深谷,人道不通,誰能見子?子故浮游,欲聞求其名譽。污吾犢口。』牽犢上流飲之。許由歿,葬此山,亦名許由山。」在洛州陽城縣南十三里。
[五] 【正義】 황보밀 고사전에 말하였다. “허유의 자는 무중이다. 요가 천하를 지극히 하여 양보한다는 것을 듣고 이에 물러나 중악과 영수의 남쪽에 숨었는데 기산의 아래에 숨은 것이다. 요가 또한 九州의 長을 삼아 부르니 허유가 그것을 듣고자 하지 않아 영수 가에서 귀를 씻었다. 그 때에 소부가 송아지를 끌고 물을 먹이려 하다가 허유가 귀를 씻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대답하여 말하였다. 요가 나를 불러 九州의 장을 삼고자하는데 어찌 그 소리를 듣겠는가? 이 때문에 귀를 씻고 있습니다.” 했다. 소부가 말하였다. “그대가 만약 높은 언덕과 깊은 계곡에 처하여 사람의 길이 통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대를 볼 수 있겠는가? 그 대가 떠돌아다니면서 그 명예를 들음을 구하였기 때문에 내 송아지의 입이 더러워 졌다. 하고는 송아지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 허유가 죽자 이 산에 장례하고 또한 허유산이라 이름 했다.” 하니 낙주 양성현 남쪽 13리에 있다.
[六] 索隱按:「說者」謂諸子雜記也。然堯讓於許由,及夏時有卞隨、務光等,殷湯讓之天下,並不受而逃,事具莊周讓王篇。正義經史唯稱伯夷、叔齊,不及許由、卞隨、務光者,不少概見,何以哉?故言「何以稱焉」,為不稱說之也。
[六] 【索隱】 살펴보니 ‘說者’는 諸子雜記를 말한다. 그러나 요가 허유에게 양보하였고, 夏의 때에 이르러서는 변수, 무광 등이 있었고, 은의 탕이 천하를 양보할 때는 나란히 받지 않고 도망하였던 일은 莊周讓王 편에 갖추어져 있다. 「正義」와 經史는 오직 백이, 숙제만을 말하고, 허유, 변수, 무광을 언급하지 않아 조금도 보이지 않으니 무엇 때문인가? 그러므로 말하였다. “무엇으로써 말할 수 있는가?” 하니 그것을 말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七] 索隱蓋楊惲、東方朔見其文稱「余」,而加「太史公曰」也。
[七] 【索隱】 대개 양운, 동방삭은 그 글에 “予”라 말하고 “太史公曰”을 더하였다.
[八] 索隱謂太史公聞莊周所說許由、務光等。
[八] 【索隱】 태사공이 장주가 말한 바의 허유, 무광 등을 들었다고 말한다.
[九] 索隱謂堯讓天下於許由,由遂逃箕山,洗耳於潁水;卞隨自投於桐水;務光負石自沈於盧水:是義至高。
[九] 【索隱】 말하였다. 요가 허유에게 천하를 양보하고, 허유가 마침내 기산으로 도망하여 영수에 귀를 씻고, 연수는 스스로 동수에 몸을 던졌으며, 무광은 돌을 지고 廬水에 빠졌으니 이 뜻이 지극히 높다.
[十] 索隱按:概是梗概,謂略也。蓋以由、光義至高,而詩書之文辭遂不少梗概載見,何以如此哉?是太史公疑說者之言或非實也。正義概,古代反。
[十] 【索隱】 살펴보니 槪는 梗概(개략적인 내용)이니 생략함을 말한다. 대개 허유와 무광을 지극히 높다 하였는데, 『詩經』, 『書經』의 글은 마침내 조금도 개략적으로 실어 보여주지 않으니 어찌 이 같을 수 있겠는가? 이는 태사공이 설명하는 자의 말을 혹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해서일 것이다.
孔子曰:「伯夷、叔齊,不念舊惡,怨是用希。」「求仁得仁,又何怨乎?」余悲伯夷之意,睹軼詩可異焉。[一]其傳曰: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也。[二]父欲立叔齊,及父卒,叔齊讓伯夷。伯夷曰:「父命也。」遂逃去。叔齊亦不肯立而逃之。國人立其中子。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盍往歸焉。[三]
공자가 말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옛 악을 생각하지 않아 원망이 이에 씀이 드물었다. 仁을 구하여 仁을 얻었는데 또 어찌 원망하겠는가? 내가 백이의 뜻을 슬퍼하고 흩어진 詩를 보니 이것과는 다름이 있다.” 그 傳에 말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임금의 두 아들이다.” 아버지가 숙제를 세우고자 하였는데(임금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아버지가 죽자 숙제가 백이에게 양보하였다. 백이가 말하였다. “아버지의 명이다.” 하고는 마침내 도망하여 갔다. 숙제가 또한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즐겨하지 않아 도망하여 갔다. 나라 사람들이 그 가운데 아들을 (임금으로)세웠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西伯인 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것을 들었으니 어찌 가서 귀의하지 않겠는가?
[一] 索隱謂悲其兄弟相讓,又義不食周粟而餓死。睹音睹。軼音逸。謂見逸詩之文,即下采薇之詩是也。不編入三百篇,故云逸詩也。可異焉者,按論語云「求仁得仁,又何怨乎」。今其詩云「我安適歸矣,于嗟徂兮,命之衰矣」。是怨詞也,故云可異焉。
[一] 【索隱】 “그 형제가 서로 양보하고, 또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굶어 죽음을 슬퍼한다.” 하였다. 睹는 이 睹(도)이다. 軼은 逸(일)이다. 逸詩의 글을 본다고 말한 것은 곧 아래의 ‘고사리를 캔다는 시’가 이것이다. 삼백편에 역어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逸詩라고 한 것이다. 可異焉은 살펴보니 『論語』에 말하였다. “仁을 구하여 仁을 얻었으니 또한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하니 지금 그 시에 말하였다. “내가 어디로 가겠는가. 아! 가리라, 命(천명)이 쇠퇴하였도다.” 하니 이는 원망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다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二] 索隱按:「其傳」蓋韓詩外傳及呂氏春秋也。其傳云孤竹君,是殷湯三月丙寅日所封。相傳至夷、齊之父,名初,字子朝。伯夷名允,字公信。叔齊名致,字公達。解者云夷,齊,謚也;伯,仲,又其長少之字。按:地理志孤竹城在遼西令支縣。應劭云伯夷之國也。其君姓墨胎氏。正義本前注「丙寅」作「殷湯正月三日丙寅」。括地志云:「孤竹古城在盧龍縣南十二里,殷時諸侯孤竹國也。」
[二] 【索隱】 살펴보니 ‘其傳’은 대개 『韓詩外傳』과 『呂氏春秋』이다. 그 전에 말한 고죽군은 이는 은나라 탕왕 3월 병인일에 봉해졌다. 서로 전하여 백이와 숙제의 아버지에 이르니 미름은 初이고, 자는 子朝이다. 백이의 이름은 允이고, 자는 公信이고, 숙제의 이름은 致이고, 자는 功達이다. 해석하는 자가 말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시호이니 伯과 仲은 또한 그 연장과 어림의 자이다.” 살피건데 “「地理志」에 ‘孤竹城’은 요서군 영지현에 있다.”하였고 應劭가 말하기를 “백이의 나라인데 그 임금의 성은 墨胎氏”라 했다. 「正義本前」에 注하기를 “‘丙寅’은 ‘은탕 정월 3일 병인”으로 써야 한다고 한다. 『括地志』에 말하기를 “孤竹古城은 廬龍縣 남쪽 12리에 있는데 은나라 때의 제후인 孤竹國이다.”라 했다.
[三] 索隱劉氏云:「盍者,疑辭。蓋謂其年老歸就西伯也。」
[三] 【索隱】 유씨가 말하였다. “盍은 의문사이다. 대개 그 나이가 늙어 서백에게 감을 말한다.”
及至,西伯卒,武王載木主,號為文王,東伐紂。伯夷、叔齊叩馬而諫曰:「父死不葬,爰及干戈,可謂孝乎?以臣弒君,可謂仁乎?」左右欲兵之。太公曰:「此義人也。」扶而去之。武王已平殷亂,天下宗周,而伯夷、叔齊恥之,義不食周粟,隱於首陽山,[四]采薇而食之。[五]及餓且死,作歌。其辭曰:「登彼西山兮,[六]采其薇矣。以暴易暴兮,不知其非矣。[七]神農、虞、夏忽焉沒兮,我安適歸矣?[八]于嗟徂兮,命之衰矣!」[九]遂餓死於首陽山。由此觀之,怨邪非邪?[十]
(서백에게)이르니 서백이 죽어 무왕이 木主(位牌)를 싣고 文王이라 하고 동쪽으로 紂王을 토벌하려 하였다. 백이와 숙제가 말을 두드리며 간하여 말하였다. “아버지가 죽고 장례하지 않고 이에 干戈(전쟁)에 이르는 것이 어찌 孝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로써 임금을 죽이는 것을 어찌 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신하들이 그를 죽이려 했다. 태공이 말하였다. “이는 의로운 사람이다.”하고는 부축하여 갔다. 무왕이 이미 은나라의 어지러움을 평정하니 천하가 주나라에 조회하였는데 백이와 숙제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숨어서 고사리를 캐 먹다가 주려서 죽었다. 노래를 지었는데 그 가사에 말하였다. “저 서산에 올라 그 고사리를 캐도다. 사나운 것으로써 사나운 것을 바꾸려 하면서 그 잘못을 알지 못한다. 신농, 우, 하가 갑자기 멸망하니 내가 어디로 돌아가겠는가? 아! 가리라 命이 쇠퇴하였음이라!” 하고는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죽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데 눤망한 것인가, 아닌가?
[四] 集解馬融曰:「首陽山在河東蒲阪華山之北,河曲之中。」 正義曹大家注幽通賦云:「夷齊餓於首陽山,在隴西首。」又戴延之西征記云:「洛陽東北首陽山有夷齊祠。」今在偃師縣西北。又孟子云:「夷、齊避紂,居北海之濱。」首陽山,說文云首陽山在遼西。史傳及諸書,夷、齊餓於首陽凡五所,各有案據,先後不詳。莊子云:「伯夷、叔齊西至岐陽,見周武王伐殷,曰:『吾聞古之士,遭治世不避其任,遇亂世不為苟存。今天下闇,周德衰,其並乎周以塗吾身也,不若避之以絜吾行。』二子北至于首陽之山,遂飢餓而死。」又下詩「登彼西山」,是今清源縣首陽山,在岐陽西北,明即夷、齊餓死處也。
【集解】 馬融이 말하였다. “수양산은 하동 蒲阪의 화산 북쪽 하곡의 사이에 있다.”하고, 「正義」 曹大家의 注 幽通賦에서 말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주었는데 隴西의 앞쪽에 있다.” 했고, 또 戴延之의 ‘西征記’에 말하기를 “낙양 동북쪽 수양산에 백이와 숙제의 사당이 있다.” 하니 지금의 언사현 서북쪽에 있다. 또 『맹자』에 “백이와 숙제가 주를 피하여 북해의 바닷가에 살았다.”고 한다. 수양산은 『說文』에 말하기를 “수양산은 요서에 있다.”고 한다. 사에 전하는 것과 여러 글들에서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곳이 무릇 다섯 곳인데 각기 살피고 근거함이 있지만 선후가 자세하지 않다. 장자가 말하였다. “백이와 숙제가 서쪽으로 기양에 이르러 주나라 무왕이 은을 정벌하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옛날의 선비는 다스려지는 세상을 만나면 그 맡음을 피하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면 구차히 보존하지 않는다. 지금 천하가 어지럽고, 주나라의 덕이 쇠퇴하였는데 주나라에 나란히 하는 것으로써 나 자신을 더럽히겠는가. 그를 피하는 것으로써 나의 행실을 깨끗하게 함만 못하다.” 하고는 두 사람이 북쪽으로 수양산에 이르러 마침내 굶어죽었다. 또한 ‘아래의 시 저 서산에 올라’ 는 지금의 청원현 수양산인데 기양 서북에 있으니 백이와 숙제가 굶어 죽은 것을 밝힌 것이다.
[五] 索隱薇,蕨也。爾雅云:「蕨,鱉也。」 正義陸璣毛詩草木疏云:「薇,山菜也。莖葉皆似小豆,蔓生,其味亦如小豆藿,可作羹,亦可生食也。」
[五] 【索隱】 薇는 蕨(고사리)이다. 『詩經』 「爾雅」 편에 蕨은 鱉(금계, 볏이 누른 꿩의 일종)이라 한다. 【正義】 「陸璣毛 詩」 草木 疏에 薇는 산나물인데 줄기와 잎은 모두 작은 콩과 같고, 넝쿨이 나며 그 맛 또한 작은 콩잎 같다. 국을 만들 수 있으며 또 날 것으로 먹을 수 있다.
[六] 索隱按:西山即首陽山也。
[六] 【索隱】 살펴보니 서산은 곧 수양산이다.
[七] 索隱謂以武王之暴臣易殷紂之暴主,而不自知其非矣。
[七] 【索隱】 이르기를 무왕이 사나운 신하로써 은나라 주왕의 사나운 임금을 바꾸었으되 스스로 그 잘못을 알지 못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八] 索隱言羲、農、虞、夏敦樸禪讓之道,超忽久矣,終沒矣。今逢此君臣爭奪, 故我安適歸矣。
[八] 【索隱】 복희, 신농, 우, 하의 도탑고 순박한 禪讓의 도는 아득히 멀고 오래되어 마침내 없어져 지금 이러한 임금과 신하의 다툼과 빼앗음을 만났으니 내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하고 말한 것이라 했다.
[九] 索隱于嗟,嗟嘆之辭也。徂者,往也,死也。言己今日餓死,亦是運命衰薄,不遇大道之時,至幽憂而餓死。
[九] 【索隱】 吁嗟는 탄식하는 말이다. 徂는 감이고, 죽음이다. 자기가 지금 굶어 죽는 것이 또한 운명이 쇠퇴하고 박하여 大道의 때를 만나지 못하여 근심하고 슬퍼하다 굶어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한 것이다. 했다.
[十] 索隱太史公言己觀此詩之情, 夷, 齊之行似是有所怨邪? 又疑其云非是怨邪?
[十] 【索隱】 태사공이 자기가 이 시의 실정을 살펴보니 백이와 숙제의 행동이 원망함이 있는 듯한가? 또 이 원망이 잘 못된 것인지 의심된다고 말 한 것이다.
或曰:「天道無親,常與善人。」若伯夷、叔齊,可謂善人者非邪?[一]積仁絜行如此而餓死!且七十子之徒,仲尼獨薦顏淵為好學。然回也屢空,糟糠不厭,[二]而卒蚤夭。天之報施善人,其何如哉? 盜蹠日殺不辜,[三]肝人之肉,[四]暴戾恣睢,[五]聚黨數千人橫行天下,竟以壽終。[六]是遵何德哉?[七]此其尤大彰明較著者也。[八]若至近世,操行不軌,專犯忌諱,而終身逸樂,[九]富厚累世不絕。或擇地而蹈之,[十]時然後出言,[十一]行不由徑,[一二]非公正不發憤,而遇禍災者,不可勝數也。[一三]余甚惑焉,儻所謂天道,是邪非邪?[一四]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天道는 친함이 없어 항상 善人과 함께 한다.” 하니 만약 백이와 숙제 같은 이는 善人이라 이를 수 있는가? 아닌가? 仁을 쌓고, 행실을 헤아리기를 이 같이 하고도 굶어 죽었구나! 또 七十子의 무리들(공자의 제자?) 중에 중니(공자)가 유독 안연을 천거하여 배움을 좋아한다. 하였다. 그러나 안회는 여러 번 궁핍하여 식량이 떨어졌고, 지게미와 쌀겨로도 배부르지 못하다가 마침내 일찍 죽었다. 하늘이 善人에게 갚음을 베푸는 것이 어떠한가? 도척은 매일 죄 없는 이를 죽이고 (사람의)간과 사람의 고기를 먹고, 잔혹하고 횡포하여도 무리 수 천인을 모아 천하를 횡횡하다 마침내 장수하고 죽었다. 이는 무슨 덕을 따랐는가? 이는 더욱 크고 밝게 드러난 것 중에 비교하여 드러난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 행실은 법과 도리를 따르지 않고 오로지 꺼림을 범하고, 죽을 때까지 편안하고 즐겨 부유하고 두터움이 여러 대 끊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땅을 선택하여 그것을 밟고, 때가 지난 후에 말을 내고, 감에는 지름길을 지나지 않으며, 공정하지 않으면 발분하지 않음에도 재앙을 만나는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니 내가 매우 의혹한다. 만약 이른바 천도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
[一] 索隱又敘論云若夷、齊之行如此,可謂善人者邪,又非善人者邪,亦疑也。
[一] 【索隱】 또 차례로 논하기를 만약 백이와 숙제의 행실이 이와 같다면 善人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또 善人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의심된다. 고 했다.
[二] 索隱厭者,飫也,不厭謂不飽也。糟糠,貧者之所餐也,故曰「糟糠之妻」是也。然顏生簞食瓢飲,亦未見「糟糠」之文也。
[二] 【索隱】 厭은 飫(물리다, 싫컷 먹다.)라 하니 不厭 은 배부르지 않음을 말한다. 糟糠은 가난한 자가 먹는 것이다. 그러므로 “糟糠之妻”라고 하는 말이 이것이다. 그러나 안생(안회)이 대바구니의 밥과 표주박의 물을 마시고도 또한 “糟糠”의 글은 보이지 않는다.
[三] 索隱「蹠」及注作「跖」,並音之石反。按:盜蹠,柳下惠之弟,亦見莊子,為篇名。正義按:蹠者,黃帝時大盜之名。以柳下惠弟為天下大盜,故世放古,號之盜蹠。
[三] 【索隱】 ‘蹠’과 주에 쓴 ‘跖’은 음이 같이(아울러) 石의 反이다. 살피건 데 盜蹠은 유하혜의 동생이니 또한 莊子에 보이고, 篇名이 되었다. 『正義』를 살펴보니 蹠은 황제 때의 큰 도둑의 이름이다. 류하혜의 동생으로서 천하의 큰 도둑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옛날을 모방하여 盜蹠이라 이름 한 것이다.
[四] 索隱劉氏云「謂取人肉為生肝」, 非也。按:莊子云「跖方休卒太山之陽, 膾人肝而餔之」。
[四] 【索隱】 유씨가 말하였다. “인육을 취하여 생간을 만들었다.” 한 것은 잘못이다. 살피건데 『莊子』에 “도척이 바야흐로 부하를 태산의 남쪽에서 쉬게 하고는 사람의 간을 회쳐서 먹었다.”고 한다.
[五] 索隱暴戾謂兇暴而惡戾也。鄒誕生恣音資,睢音千餘反。劉氏恣音如字,睢音休季反。恣睢謂恣行為睢惡之貌也。正義睢,仰白目,怒貌也。言盜蹠兇暴,惡戾,恣性,怒白目也。
[五] 【索隱】 暴戾는 흉포하여 악하고 어긋남을 말한다. 鄒誕生은 恣의 음은 資라하고, 睢의 음은 千과 餘의 反이라 했다. 유씨는 恣의 음이 본래 글자와 같다. 하고, 睢는 음이 休 와 季의 反이라 했다. 恣睢는 행동을 함부로 하여 눈을 부릅뜨고 미워하는 모양이라 한다. 【正義】 睢는 우러러 눈을 희게 하고 성낸 모습이라 하니 도척의 흉포하고 미워하여 어긋나고, 함부로 하는 성품과 성난 흰 눈을 말한다.
[六] 集解皇覽曰:「盜跖冢在河東大陽,臨河曲,直弘農華陰縣潼鄉。」按:盜跖即柳下惠弟也。索隱直音如字。直者,當也。或音值,非也。潼音同。按:潼,水名,因為鄉,今之潼津關是,亦為縣也。正義括地志云:「盜跖冢在陝州河北縣西二十里。河北縣本漢大陽縣也。又今齊州平陵縣有盜跖冢,未詳也。」
[六] 【集解】 황람이 말하였다. “도척의 무덤이 하동의 대양에 있는데 하곡을 임하니 홍농 화음현, 동향에 해당한다.” 살펴보니 “도척은 곧 류하혜의 동생이다.” 索隱에 直의 음은 본래 글자와 같다. 하니 直은 當(해당)이다. 어떤 이는 음이 値라하나 잘못이다. 潼의 음은 同(동)이다. 살펴 보건데 潼은 물 이름이니 인하여 鄕으로 삼았다. 지금의 潼津과 關是가 또한 현이 되었다. 『正義』와 『括地志』에 “도척의 무덤이 섬주 하백현 서쪽 20리에 있다. 하북현은 본래 한나라 대양현이다. 또 지금의 제주 평릉현에 도척의 무덤이 있다 하는데 자세하지 않다.”
[七] 索隱言盜蹠無道,橫行天下,竟以壽終,是其人遵行何德而致此哉?
[七] 【索隱】 도척은 無道하여 천하를 횡행하고도 마침내 장수하고 죽었으니 이는 그 사람이 무슨 덕을 따라 행하였기에 이에 이르렀는가? 하고 말한 것이다.
[八] 索隱按:較,明也。言伯夷有德而餓死,盜蹠暴戾而壽終,是賢不遇而惡道長,尤大著明之證也。
[八] 【索隱】 살펴보니 較는 밝음이다. 백이는 덕이 있었으되 굶어 죽었고, 도척은 사납게 함부로 했지만 장수하고 죽었으니 이는 현인은 불우하고 악의 도가 자람이 더욱 크게 드러나 밝아짐을 증명한 것이다.
[九] 索隱謂若魯桓、楚靈、晉獻、齊襄之比皆是。
[九] 【索隱】 노나라 환공, 초나라 영공, 진나라 헌공, 제나라 양공 같은 이가 모두 여기에 비견된다.
[十] 索隱謂不仕暗君,不飲盜泉,裹足高山之頂,竄跡滄海之濱是也。正義謂北郭駱、鮑焦等是也。
[十] 【索隱】 “暗君에게 벼슬하지 않으며 훔친 샘물을 마시지 않으며, 높은 산의 정상에 나아가지 않으며 창해의 가로 도망하여 숨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했고, 【正義】 “北郭駱, 鮑焦 등이 이것이다.” 했다.
[一一] 索隱按:論語「夫子時然後言」。
[一一] 【索隱】 살펴보니 『論語』에 “선생은 때가 된 후에 말하였다.”가 있다.
[一二] 索隱按:論語澹臺滅明之行也。
[一二] 【索隱】 살펴보니 『論語』의 澹臺滅明의 행실이다.
[一三] 索隱謂人臣之節,非公正之事不感激發憤。或出忠言,或致身命,而卒遇禍災者,不可勝數。謂龍逢、比干、屈平、伍胥之屬是也。
[一三] 【索隱】 “신하된 자의 절개는 공정한 일이 아니면 감격하거나 발분하지 않으며, 혹은 충성스러운 말을 하고, 혹은 목숨을 바치다 마침내 재앙을 마나는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하니 용봉, 굴평, 오자서 등이 이들이다.
[一四] 索隱太史公惑於不軌而逸樂,公正而遇災害,為天道之非而又是邪?深惑之也。蓋天道玄遠,聰聽暫遺,或窮通數會,不由行事,所以行善未必福,行惡未必禍,故先達皆猶昧之也。正義儻音他蕩反。儻,未定之詞也。為天道不敢旳言是非,故云儻也。
[一四] 【索隱】 태사공이 “不軌에 미혹하되 편안하게 즐기고, 공정하되 재앙을 만나는 것을 天道의 잘못인가, 옳은 것인가? 하여 깊이 그것을 의심하였다. 대개 천도는 현묘하고 멀어, 잘 듣고 잠시 남기고, 혹은 침착하게 생각을 깊이하기를 여러 번 하여도 일을 행함에 경유하지 않으니 선을 행하여도 반드시 복을 받는 것은 아니며, 악을 행하여도 반드시 재앙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앞서 통달한 이도 모두 오히려 그것에 어두웠던 것이다. 【正義】 儻의 음은 他와 蕩 의 反이다. 儻은 정해지지 않았다(未定)는 말이다. 천도는 감히 밝게(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儻이라고 말한 것이다.
子曰「道不同不相為謀」,亦各從其志也。[一]故曰「富貴如可求,雖執鞭之士,吾亦為之。[二]如不可求,從吾所好」。[三]「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四]舉世混濁,清士乃見。[五]豈以其重若彼,其輕若此哉?[六]
공자가 말하였다. “도를 같이하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하니 또한 각기 그 뜻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였다. “부귀를 구할 수 있다면 비록 채찍을 잡을지라도 내가 또한 그것을 하겠다. 만일 구할 수 없다면 나는 좋아하는 바를 따를 것이다.”하고,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하고 “온 세상이 혼탁하니 맑은 선비가 이에 드러난다. 어찌 그 重 한 것으로써 그 같이 하고 그 가벼운 것을 이 같이 하는가?” 하였다.
[一] 正義太史公引孔子之言證前事也。言天道人道不同,一任其運遇,亦各從其志意也。
[一] 【正義】 “태사공이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앞의 일을 증명한 것이다. 천도와 인도가 같지 않고, 한 번 그 운행과 만남을 맡김이 또한 그 뜻을 따름을 말한 것이다. 했다.”
[二] 集解鄭玄曰「富貴不可求而得之, 當脩德以得之。若於道可求而得之者, 雖執鞭賤職, 我亦為之。」
[二] 【集解】 정현이 말하였다. “부귀는 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덕을 닦는 것으로써 얻어야 한다. 만일 도를 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잡는 천한 직책이라도 내가 또한 그것을 할 것이다.” 하였다.
[三] 集解孔安國曰:「所好者古人之道。」
[三] 【集解】 공안국이 말하였다. “좋아하는 것이란 옛 사람의 도이다.”
[四] 集解何晏曰 「大寒之歲,眾木皆死, 然後松柏少凋傷 平歲眾木亦有不死者, 故須歲寒然後別之。喻凡人處治世, 亦能自脩整, 與君子同, 在濁世然後知君子之正不苟容也。」
[四] 【集解】 하안이 말하였다. “큰 추위가 있은 해에 여러 나무가 모두 죽은 후 소나무와 잣나무가 조금 시들어 상하였고, 평년에 여러 나무가 또한 죽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구별이 된다. 비유하면 뭇 사람들이 治世(잘 다스려져 태평한 세상)에 처하여 또한 스스로 닦고 정돈하는 것은 군자와 같으나 濁世(도덕, 풍속이 더러워지고 어지러짐)에 있은 후에 군자의 바르고 구차하지 않은 모습을 안다.”
[五] 索隱老子曰:「國家昏亂,始有忠臣」,是舉代混濁,則士之清絜者乃彰見,故上文「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先為此言張本也。正義言天下泯亂,清絜之士不撓,不苟合於盜跖也。
[五] 【索隱】 노자가 말하였다. “나라가 혼란해야 비로소 충신이 있다. 하고, 온 시대가 혼탁하면 곧 선비의 맑고 결백한 자가 이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윗글의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는 먼저 이 말을 근본하여 편 것이다. 【正義】 천하의 질서가 혼란스러워도 맑고 깨끗한 선비는 흔들리지 않고 구차히 도척에 합하지 않는다.
[六] 索隱按 謂伯夷讓德之重若彼, 而采薇餓死之輕若此。又一解云,操行不軌,富厚累代,是其重若彼;公正發憤而遇禍災,是其輕若此也。正義重謂盜跖等也。輕謂夷、齊、由、光等也。
[六] 【索隱】 살펴보니 백이가 양보한 덕의 중함은 그것과 같고, 고사리를 캐다 굶어 죽음의 가벼움도 이와 같다. 또 어떤 해석에 말하였다. “품행과 행실이 도리에 어긋나고 부의 두터움이 여러 대인 이것이 그 중함이 그것과 같고, 공정하고 발분하였으되 재앙을 만난 이것이 그 가벼움이 이 같다. 한 것이다.
【正義】 중함은 도척 등을 말한다고 했다. 가벼운 것은 백이, 숙제, 허유, 광무 등이다.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一] 賈子曰:[二]「貪夫徇財,[三]烈士徇名,夸者死權,[四]眾庶馮生。」[五]「同明相照,[六]同類相求。」[七]「雲從龍,風從虎,[八]聖人作而萬物睹。」[九]伯夷、叔齊雖賢,得夫子而名益彰。[一0]顏淵雖篤學,附驥尾而行益顯。[一一]巖穴之士,趣舍有時若此,類名堙滅而不稱,悲夫![一二]閭巷之人,欲砥行立名者,[一三]非附青雲之士,惡能施于後世哉?
“군자는 죽은 후에 이름이 말해지지 않는 것을 걱정한다.” 賈子가 말하였다. “貪夫는 재물을 따르고, 烈士는 이름을 따르고, 夸者(자랑하는 자)는 죽음을 저울질 하고, 무리들은 삶을 의지한다.” “밝음을 같이하고 서로 비추어 같은 류끼리 서로 구한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며, 성인이 일어남에 만물을 본다.” 백이와 숙제가 비록 현인이나 부자(선생)를 얻어 이름이 더욱 드러났다. 안연이 비록 배움을 도타이 하였으나 천리마 꼬리에 붙여 행함이 더욱 드러났다. 바위 구멍의 선비(은거한 선비)가 나아가고 버림을 때때에 맞게 함이 같음에도 부류의 이름이 사라져 말해지지 않으니 슬프다! 거리의 사람이 행실을 닦아 이름을 세우고자 하면서 청운의 선비에게 기대지 않고 어찌 후세에 베풀 수 있겠는가?
[一] 索隱自此已下,雖論伯夷得夫子而名彰,顏回附驥尾而行著,蓋亦欲微見己之著撰不已,亦是疾沒世而名不稱焉,故引賈子「貪夫徇財,烈士徇名」是也。又引「同明相照,同類相求」,「雲從龍,風從虎」者,言物各以類相求。故太史公言己亦是操行廉直而不用於代,卒陷非罪,與伯夷相類,故寄此而發論也。正義君子疾沒世後懼名堙滅而不稱,若夷、齊、顏回絜行立名,後代稱述,亦太史公欲漸見己立名著述之美也。
[一] 【索隱】 이로부터 이하는 비록 백이가 부자(선생, 공자)를 얻어 이름이 드러나고, 안회는 천리마 꼬리에 기대어 행이 드러났으니 대개 또한 자기를 조금 드러내고자하는 글쓰기를 그치지 않음은 또한 죽어서도 이름이 말해지지 않음을 근심해서이다. 그러므로 賈子의 “탐부는 재물을 자랑하고, 열사는 이름(명예)을 자랑한다.” 한 것을 인용한 것이 이것이다. 또 “밝기를 같이하여 서로 비추고 같은 부류가 서로 구한다.” 한 것과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를 인용한 것은 사물이 각기 부류로써 서로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사공이 말하였다. “자기는 또한 품행이 청렴하고 정직한데 당대에 등용되지 못하고 갑자기 죄가 아님에도 빠졌으니 백이와 더불어 서로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붙여 논하고 발명한 것이다. 【正義】 군자는 죽은 후에 이름이 없어지고 말해지지 않음을 두려워한다. 백이, 숙제, 안회 같은 이가 깨끗한 행실로 이름을 세워 후대에 말해지고 서술되었으니, 또한 태사공도 자기의 이름을 세우는 저술의 아름다움을 점진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二] 索隱賈子,賈誼也。誼作鵩鳥賦云然,故太史公引之而稱「賈子」也。
[二] 【索隱】에 賈子는 “賈誼”이다. 가의가 지은 “鵬鳥賦”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태사공이 그것을 인용하면서 ‘賈子’라고 말한 것이다.
[三] 正義徇,才迅反。徇,求也。瓚云:「以身從物曰徇。」
[三] 【正義】 徇은 才와 迅의 反이니 徇은 구함이다. 瓚에 말하였다. “몸으로써 사물을 따르는 것을 徇이라 말한다.”
[四] 索隱言貪權勢以矜夸者,至死不休,故云「死權」也。
[四] 【索隱】에 貪은 권세로써 자랑하는 자이니 죽어도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死權: 죽음을 저울질 한다.”고 한 것이다.
[五] 索隱馮者, 恃也,音。言眾庶之情,蓋恃矜其生也。鄒誕本作「每生」。每者,冒也,即貪冒之義。正義太史公引賈子譬作史記,若貪夫徇[財,烈士徇]名,夸者死權,眾庶馮生,乃成其史記。
[五] 【索隱】 馮은 믿음이니 음은 □이다. 여러 사람이 실정은 대개 그 삶을 믿고 자랑한다. 鄒誕本에는 “每生”이라 썼다. 每는 무릅쓰는 것이니 곧 욕심내어 무릅쓴다는 뜻이다. 【正義】 태사공이 가자(가의)를 인용하여 『史記』를 씀을 비유하니 貪夫는 재물을 따르고(탐하고), 열사는 이름(명예를)을 따르고(탐하다), 자랑하는 자는 죽음을 저울질하고, 일반인들은 삶을 의지한다. 이에 그 『史記』를 이루었음을 말한 것이다.
[六] 索隱已下並易繫辭文也。
[六] 【索隱】 이하는 아울러 『주역』의 계사의 글이다.
[七] 正義天欲雨而柱礎潤,謂同德者相應。
[七] 【正義】에 하늘이 비를 내리고자 하여 주춧돌이 축축하다. 하고 덕을 같이하는 자가 서로 응함을 말하였다.
[八] 集解王肅曰:「龍舉而景雲屬,虎嘯而谷風興。」張璠曰:「猶言龍從雲,虎從風也。」
[八] 【集解】 王肅이 말하였다. “용이 들면 상서로운 구름이 붙고 호랑이가 부르짖으면 골짜기에 바람이 인다.” 하였고, 張璠이 말하였다. “용은 구름을 따르고 호랑이는 바람을 따른다는 말과 같다.”
[九] 集解馬融曰:「作,起也。」 索隱按:又引此句者,謂聖人起而居位,則萬物之情皆得睹見,故己今日又得著書言世情之輕重也。正義此有識也。聖人有養生之德,萬物有長育之情,故相感應也。此以上至「同明相照」是周易乾象辭也。太史公引此等相感者,欲見述作之意,令萬物有睹也。孔子歿後五百歲而己當之,故作史記,使萬物見睹之也。太史公序傳云:「先人有言:『自周公卒五百歲而有孔子,孔子卒後至於今五百歲,有能紹名世,正易傳,繼春秋,本詩書禮樂之際,意在斯乎!』小子何敢讓焉。」作述六經云:「易著天地陰陽四時五行,故長於變。禮經紀人倫,故長於行。書記先王之事,故長於政。詩記山川谿谷禽獸草木牝牡雌雄,故長於風。樂樂所以立,故長於和。春秋辨是非,故長於治人。是故禮以節人,樂以發和,書以道事,詩以達意,易以道化,春秋以道義。撥亂世反之正,莫近於春秋。」按:述作而萬物睹見。
[九] 【集解】 馬融이 말하였다. “作은 일어남이다.” 하였다. 【索隱】 살펴보니 또한 이 구절을 인용하여 성인이 일어나 지위에 있으면 곧 만물의 실정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또한 저서를 얻어 세상 실정의 경중을 말한다. 【正義】 “이는 식견이 있음이다. 성인은 삶을 기르는 덕이 있고, 만물이 자라고 기름의 정이 있다. 그러므로 서로 감응하는 것이다.” 했다. 이 이상으로부터 “맑음을 같이하여 서로 비춘다(同明相照).”까지는 『周易』 건괘의 象辭이다. 태사공은 이들이 서로 감응한다.를 인용하여 서술하여 지음의 뜻을 나타애고 만물로 하여금 봄이 있게 하고자 한 것이다. 공자가 죽고 500년이 지나 자신이 그것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史記』를 지어서 만물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한 것이다. 태사공 序傳에 말하였다. “先人의 말이 있는데 ‘주공이 죽은 500년 후에 공자가 있고, 공자가 죽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500년이니 이름을 세상에 이어지게 할 수 있고, 易의 傳을 바로잡고 춘추를 이어 『詩經』, 『書經』, 『禮經』, 『樂經』을 근본할 때라하니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 小子(사마천 자신) 어찌 감히 이를 사양하겠는가? 자료를 모아 六經를 저술하고 말하였다. “易은 天地, 陰陽, 四時, 五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변화에 장점이 있다. 『禮經』은 인륜 차례하기 때문에 행실에 장점이 있다. 『書經』은 선왕의 일을 기록하였으니 정사에 장점이 있고, 『詩經』은 산천과 계곡, 금수, 초목, 암 짐승, 숫 짐승, 자웅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풍속에 장점이 있고, 『樂經』은 음악을 확립하였기 때문에 조화에 장점이 있다. 『春秋』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때문에 사람을 다스림에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禮로써 사람을 절제하고 음악으로써 사람을 조화롭게 하며, 『書經』으로써 일을 인도하고 詩로써 뜻을 통달하게 하며, 易으로써 변화를 인도하며, 『春秋』로써 의를 인도한다.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세상을 돌이켜 바르게 하는 것은 『春秋』보다 가까운 것이 없다.” 살피건데 자료를 모아 지어서 만물에 보이는 것이다.
[一0] 正義伯夷、叔齊雖有賢行,得夫子稱揚而名益彰著。萬物雖有生養之性,得太史公作述而世事益睹見。
[一0] 【正義】 백이와 숙제가 비록 어진 행실이 있었다 하나 부자(공자)의 칭찬하고 드날림을 얻어 이름이 더욱 드러날 수 있었고, 만물이 비록 나고 기름의 성품이 있으나 태사공이 자료를 모아 서술함을 얻어 세상의 일이 더욱 보여질 수 있었다.
[一一] 索隱按:蒼蠅附驥尾而致千里,以譬顏回因孔子而名彰也。
[一一] 【索隱】 살펴보니 쉬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에 이른다는 것은 안회가 공자로 인하여 이름이 드러남을 비유한 것이다.
[一二] 正義趣音趨。舍音捨。趣,向也。捨,廢也。言隱處之士,時有附驥尾而名曉達;若堙滅不稱數者,亦可悲痛。
[一二] 【正義】 趣의 음은 趨이다. 舍의 음은 捨이다. 趣는 향함이다. 捨는 廢(버리다.) 이다. 숨어 사는 선비가 때로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이름이 막힘없이 환하게 알려짐이 있다. 만약 인멸되어 여러 번 말해지지 않으면 또한 슬퍼할만 한 것이다.
[一三] 正義砥音旨。礪行脩德在鄉閭者,若不託貴大之士,何得封侯爵賞而名留後代也?
[一三] 【正義】 砥의 음은 旨이다. 행실을 갈고 덕을 닦으면서 시골에 있는 자가 만약 귀하고 큰 선비에게 의탁하지 않는 다면 어찌 후장과 상을 봉하여 이름이 후대에 남겨질 수 있겠는가?
【索隱述贊】 天道平分,與善徒云。賢而餓死,盜且聚群。吉凶倚伏,報施糾紛。子罕言命,得自前聞。嗟彼素士,不附青雲!
【索隱述贊】 천도는 고르게 나누어져 선한 무리에게 주어졌다. 고 한다. 어질면서도 굶어서 죽고, 도둑이지만 또한 무리를 모았다. 길흉은 기대고 숨기며, 어지럽게 얽힘은 갚고 베풀었다. 공자가 천명을 말한 것이 드물지만 앞으로부터 들음이 있었다. 아! 저 덕이 있되 벼슬이 없는 선비들을 청운에 붙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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