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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63 노자 한비 열전 제3

by 최인표 2018. 4. 13.


史記卷六十三

  老子韓非列傳第三

 

老子者[]楚苦縣厲鄉曲仁里人也[]姓李氏[]名耳字聃[]周守藏室之史也[]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이이며, 자는 빙이니 주나라 왕실의 역사를 지키고 보관하는 사관이었다.

[] 正義朱韜玉札及神仙傳云:「老子楚國苦縣瀨鄉曲仁里人姓李名耳字伯陽一名重耳外字聃身長八尺八寸黃色美眉長耳大目廣額疏齒方口厚脣額有三五達理日角月懸鼻有雙柱耳有三門足蹈二五手把十文周時人李母八十一年而生。」又玄妙內篇云:「李母懷胎八十一載逍遙李樹下迺割左腋而生。」又云:「玄妙玉女夢流星入口而有娠七十二年而生老子。」又上元經云:「李母晝夜見五色珠大如彈丸自天下因吞之即有娠。」張君相云:「老子者是號非名考也孳也考教眾理達成聖孳乃孳生萬理善化濟物無遺也。」

[] 正義】 『주도옥찰신선전노자는 초나라 고현 뢰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이 이다. 자는 백양이고 다른 이름은 중이이며 밖의 자는 빙이다. 키가 88치인데 누른 얼굴에 아름다운 눈썹, 긴 귀, 큰 눈에 이마는 넓고 이는 듬성하고 메모 입에 두터운 입술이다. 이마에는 35개의 주름이 있고 이마 한가운데는 도드라지고 코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으며 귀는 세 개의 문이 있고, 발은 10을 뛰고 손은 10문을 잡았다. 주나라 때 사람이니 이씨 어머니가 (임신한지)81년에 낳았다.” 했다. 현묘내편이 씨 어머니가 임심한지 81년에 오얏나무 아래를 산책하다 왼쪽 겨드랑이를 가르고 낳았다.” 하고, 현묘옥녀가 꿈에 유성이 입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임신하여 71년만에 노자를 낳았다.” 한다. 상원경이씨 어머니가 밤낮으로 5색의 구슬을 보았는데 크기는 탄환만하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므로 그것을 삼킴으로 인하여 곧 임신하였다.” 했다. 장군상이 말하기를 노자는 호이고 이름이 아니다. 이고, (부지런하다) 이니 여러 가지 이치를 상고하고 가르쳐서 성인과 부지런함을 통달하고 이루어 이에 부지런히 모든 이치를 내어 변화를 잘 하고 사물을 구제하여 남김이 없었다.” 했다.

[] 集解地理志曰苦縣屬陳國索隱按地理志苦縣屬陳國者誤也苦縣本屬陳春秋時楚滅陳而苦又屬楚故云楚苦縣至高帝十一年立淮陽國陳縣苦縣皆屬焉裴氏所引不明見苦縣在陳縣下因云苦屬陳今檢地理志苦實屬淮陽郡苦音怙正義按年表云淮陽國景帝三年廢至天漢脩史之時楚節王純都彭城相近疑苦此時屬楚國故太史公書之括地志云:「苦縣在亳州谷陽縣界有老子宅及廟廟中有九井尚存在今亳州真源縣也。」厲音賴晉太康地記云:「苦縣城東有瀨鄉祠老子所生地也。」

[] 集解】 「지리지고현은 東國에 속한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지리지에 고현이 동국에 속한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고현은 본래 나라에 속하였다가 춘추시대에 초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켰으므로 고현 또한 초나라에 속하였다. 그러므로 초나라 고현이라 한 것이다. 고제 11년에 이르러 회양국을 세우고 진현, 고현을 모두 여기에 속하게 했다. 배씨가 인용한 바는 분명하지 않다. 고현은 진현아래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고현이 진에 속한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 지리지를 점검해 보니 고현은 실제 회양군에 속한다. 의 음은 이다. 正義연표를 살펴보니 회양국은 경제 3년에 폐하였다.” 天漢(한나라 무제의 연호) 연간 역사를 편찬할 때에 이르러 초나라 절왕 순이 팽성에 도읍하여 서로 가까웠다. 아마도 고현은 이 때 초나라에 속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사공이 그것을 쓴 것이다. 括地志고현은 박주 곡양현 경계에 있는데 노자의 집과 사당이 있고 사당 안에 9개 우물이 있는데 아직도 있으니 지금의 박주 진원현에 있다.” 한다. 의 음은 이다. 진나라 太康地記고현성 동쪽에 뢰향사가 있는데 노자가 태어난 땅이다.” 했다.

[] 索隱按葛玄曰李氏女所生因母姓也。」又云生而指李樹因以為姓」。

[] 索隱살펴보니 갈현은 이씨 여자가 낳은 바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하였고, 나면서 오얏나무를 가리켰기 때문에 성으로 삼았다.”고 했다.

 

[] 索隱按許慎云耳曼也」。故名耳字聃有本字伯陽非正也然老子號伯陽父此傳不稱也正義聃耳漫無輪也神仙傳云:「外字曰聃。」號也疑老子耳漫無輪故世號曰聃

[] 索隱살펴보니 허신은 은 귀가 길다. 그러므로 이름을 라 하고, 자를 이라 하였다.” 하니 본래 자를 백양으로 했다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노자는 백양보라 불렸는데 이는 전에 말하지 않았다. 正義담은 귀가 길고 귓바퀴가 없다. 신선전밖의 자를 이라했다. 살펴보니 자와 호는 아마도 노자의 귀가 길고 귀바퀴가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이라 부른 것일 것이다.

[] 索隱按藏室史周藏書室之史也又張蒼傳老子為柱下史」,蓋即藏室之柱下因以為官名。 正義藏在浪反

[] 索隱살펴보니 藏室史는 주나라 왕실의 역사를 보관하는 곳이다. 장창의 전노자가 주하사가 되었다.” 하니 대개 곧 왕실의 기둥아래 감추기 때문에 官名으 생각한 것이다. 정의이다.

 

孔子適周將問禮於老子[]老子曰:「子所言者其人與骨皆已朽矣獨其言在耳且君子得其時則駕不得其時則蓬累而行[]吾聞之良賈深藏若虛君子盛德容貌若愚[]去子之驕氣與多欲態色與淫志[]是皆無益於子之身吾所以告子若是而已。」孔子去謂弟子曰:「吾知其能飛吾知其能游吾知其能走走者可以為罔游者可以為綸飛者可以為矰至於龍吾不能知其乘風雲而上天吾今日見老子其猶龍邪!」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를 물으려 하였다. 노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것은 그 사람과 뼈가 모두 썩고 그 말만 있을 뿐이다. 또 군자가 그 때를 얻으면 곧 멍에하고 그 때를 얻지 못하면 곧 머리에 물건을 덮고 두 손으로 잡고 간다(사막의 쑥 뭉치처럼 떠돌아다닌다.). 내가 들으니 좋은 장사꾼은 깊이 감추어 마치 빈 듯이 하고, 군자는 성대한 덕과 용모를 마치 어리석은 듯이 한다. 고 한다. 그대의 교만한 기운과 많은 욕심, 姿態容色淫欲의 뜻을 버려야 한다, 이는 모두 그대의 몸에 도움이 없는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했다. 공자가 떠나서 제자에게 말하였다. “까마귀는 내가 날 수 있음을 알고, 물고기는 내가 헤엄칠 수 있음을 알고, 짐승은 애가 달릴 수 있음을 안다. 달리는 것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 줄로 잡을 수 있고, 나는 것은 주살로 잡을 수 있다. 용에 이르러서는 내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것을 말지 못하였다. 나는 오늘 노자를 보고 그가 용과 같구나!” 했다.

[] 索隱大戴記亦云然

索隱】 『大戴記에 또 그렇게 말하였다.

 

[] 索隱劉氏云:「蓬累猶扶持也累音六水反說者云頭戴物兩手扶之而行謂之蓬累也。」蓬者蓋也累者隨也以言若得明君則駕車服冕不遭時則自覆蓋相攜隨而去耳正義蓬沙磧上轉蓬也轉行貌也言君子得明主則駕車而事不遭時則若蓬轉流移而行可止則止也其狀若皤蒿細葉蔓生於沙漠中風吹則根斷隨風轉移也皤蒿江東呼為斜蒿云

[] 索隱유씨가 말하였다. “蓬累扶持와 같다. 의 음은 이다.” 설명하는 자가 말하였다. “ 머리에 물건을 이고서 두 손으로 그것을 잡고 가는 것을 蓬累라고 말한다.” 살펴보니 은 뚜껑이고, 는 따름이다. 만약 명철한 군주를 만나면 곧 수레에 멍에하고 면류관을 쓰고, 때를 만나지 못하면 곧 스스로 뚜껑을 덮고 서로 끌고 따라서 떠날 뿐이다.” 正義은 사막 위에 쑥을 굴리는 것이다. 는 굴러가는 모양이다. 군자가 명철한 군주를 만나면 곧 수레에 멍에 하여 섬기고, 대를 만나지 못하면 곧 쑥이 굴러 흘러다니는 것처럼 가는 것을 말함이니 그만 둘만하면 그만 두는 것이다. 은 그 형상이 마치 皤蒿(흰쑥)와 같고 잎은 가늘며 사막가운데서 넝쿨이 나는데 바람이 불면 곧 뿌리가 끊어져서 바람을 따라 굴러다닌다. 皤蒿은 강동에서 斜蒿라고 부르는 것이다.

[] 索隱良賈謂善貨賣之人賈音古深藏謂隱其寶貨不令人見故云若虛」。而君子之人身有盛德其容貌謙退有若愚魯之人然康高士傳亦載此語文則小異良賈深藏外形若虛君子盛德容貌若不足

索隱良賈는 재화를 잘 파는 사람이다. 의 음은 이다. 深藏은 그 보화를 숨겨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빈 듯이 한다.” 하고 군자의 사람은 몸에 성대한 덕이 있지만 그 용모가 겸손하여 어리석고 노둔 한 사람이 그러함과 같음이 있었다. 한 것이다. 혜강의 高士傳에도 또한 이 말이 실려 있으나 글은 곧 조금 다르다. 말하기를 좋은 장사꾼이 깊이 감추어 외형이 빈 듯이 하고, 군자는 성대한 덕이나 용모는 부족한 듯이 한다.” 하였다.

[] 正義恣態之容色與淫欲之志皆無益於夫子須去除也

[] 正義자태의 모습과 음욕의 뜻은 모두 군자에게 이익됨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老子脩道德其學以自隱無名為務居周久之見周之衰迺遂去至關[]關令尹喜曰:「子將隱矣彊為我著書。」於是老子迺著書上下篇言道德之意五千餘言而去莫知其所終[]

노자가 도덕을 닦고 그 배움으로써 스스로를 숨겨 이름을 없애는데 힘을 썼다. 주아라에 산지 오래되어 주나라가 쇠퇴함을 보고 마침내 떠났다. 에 이르니 관령인 윤희가 말하였다. “그대가 장차 숨으려 하니 힘써 나를 위해 글을 드러내주십시오.” 하니 이에 노자가 저서 상, 하편을 지었는데 도덕의 뜻 5천여언을 말하고 떠났는데 그 마친 바를 알지 못한다.

[] 索隱李尤函谷關銘云尹喜要老子留作二篇, 而崔浩以尹喜又為散關令是也正義抱朴子云:「老子西遊, 遇關令尹喜於散關, 為喜著道德經一卷, 謂之老子。」或以為函谷關括地志云:「散關在岐州陳倉縣東南五十二里函谷關在陝州桃林縣西南十二里。」其兩反為于偽反

[] 索隱이우 함곡관 명에 말하였다. “윤희가 노자에게 머물기를 요청하여 2편을 지었다.” 하고, 최호가 윤희로써 산관령을 삼았다.” 한 것이 이것이다. 正義】 『포박자노자가 서쪽으로 갈 때 관령 윤희를 산관에서 만나서 윤희를 위하여 도덕경1권을 지었는데 이것을 老子라 한다.” 하고 어떤 이는 함곡관이라 한다. 括地志散關은 기주 진창현 동남쪽 52리에 있고, 함곡관은 섬주 도림현 서남쪽 12리에 있다.” 한다. 이다. 이다.

 

[] 集解列仙傳曰:「關令尹喜者周大夫也善內學星宿服精華隱德行仁, 時人莫知老子西游, 喜先見其氣, 知真人當過候物色而跡之果得老子老子亦知其奇為著書與老子俱之流沙之西服臣勝實莫知其所終亦著書九篇名關令子。」 索隱列仙傳是劉向所記物色而跡之謂視其氣物有異色而尋跡之又按列仙傳老子西遊關令尹喜望見有紫氣浮關而老子果乘青牛而過也」。

[] 集解】 『列仙傳관령 윤희는 주나라의 대부이다. 참위설과 별자리를 잘 하고, 정화를 익혔지만 덕을 숨기고 인을 행하였으나 그 때 사람들이 알지 못하였다. 노자가 서쪽을 돌아다닐 때 윤희가 그 기운을 보고 眞人이 지날 것을 알고 사물의 색으로 자취를 관찰하였는데 과연 노자였다. 노자가 또한 그 기이함을 알고 글을 지었다. 노자와 함께 流沙의 서쪽으로 가 服臣勝實(따르는 신하로서 그 실제를 얻을 기회였으나) 그 마친 바를 알지 못한다. 또한 저서 9편을

관령자라 한다. 索隱】 『열선전은 유향이 기록한 것이다. 物色而跡之는 그 기운이 물건마다 다른 색이 있음을 보고는 자취를 찾는 것이다. 또 살펴보니 열선전노자가 서족으로 돌아다녀 관령 윤희가 자색기운이 관에 뜨는 것을 바라보았는데 노자가 과연 푸른 소를 타고 지나갔다.” 고 했다.

 

或曰老萊子亦楚人也[]著書十五篇言道家之用與孔子同時云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老萊子가 또한 초나라 사람으로 저서 15편이 있는데 도가의 쓰임을 말하였으며, 공자와 같은 때라 한다.”

 

[] 正義太史公疑老子或是老萊子故書之列仙傳云:「老萊子楚人當時世亂逃世耕於蒙山之陽莞葭為牆蓬蒿為室杖木為床蓍艾為席菹芰為食墾山播種五穀楚王至門迎之遂去至於江南而止:『鳥獸之解毛可績而衣其遺粒足食也。』」

[] 正義태사공이 노자가 혹 이 노래자일 것이라 의심하여 그것을 기록한 것이다. 열선전노래자는 초나라 사람이다. 당시에 세상이 혼란하자 세상에서 도망하여 몽산의 남쪽에서 농사지으며 왕골과 갈대로 담장을 삼고, 쑥으로 집을 짓고, 나뭇가지로 상을 만들고, 서죽과 쑥으로 자리를 만들며, 젓갈과 마름 풀로 먹을 것으로 삼고 오곡의 종자를 심었다. 초나라 왕이 문에 이르러 맞이하니 드디어 가서 강남에 이르러 머물렀다.” 말하기를 새와 짐승의 흩어진 털로 길쌈하여 옷을 입을 수 있고, 그 버려진 낟알로 먹음이 충분하다.” 했다.

蓋老子百有六十餘歲或言二百餘歲[]以其脩道而養壽也

대개 노자의 나이는 160세라하고, 혹은 200여세라 하는데 아마도 도를 닦아 목숨을 길렀을 것이다.

 

[] 索隱此前古好事者據外傳以老子生年至孔子時故百六十歲或言二百餘歲者即以周太史儋為老子故二百餘歲也正義蓋皆疑辭也世不旳故言玉清云老子以周平王時見衰於是去孔子世家云孔子問禮於老子在周景王時孔子蓋年三十也去平王十二王此傳云儋即老子也秦獻公與烈王同時去平王二十一王說者不一不可知也故葛仙公序云老子體于自然生乎大始之先起乎無因經歷天地終始不可稱載」。

[] 索隱이 지나간 옛 일을 好事者外傳에 근거하여 노자가 살았던 해는 공자가 이를 때까지이기 때문에 160세이다.” 하고, 200여세라고 말한 것은 곧 주나라 태사 담을 노자로 여겼기 때문에 200여세라 한 것이다. 正義’, ‘은 모두 의문사이다. 세상에서 밝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을 말한 것이다. 玉淸노자는 주나라 평왕 때 쇠함을 보고 이에 떠났다.”하였고, 孔子世家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은 것은 주나라 경왕 때 있었다.” 하니 공자의 나이 30세로 평왕과 떨어짐이 12왕이다. 이 전에 담은 곧 노자이다. 진나라 헌공과 열왕이 같은 때라하니 평왕과 떨어짐이 11왕이다. 말하는 것이 한결 같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그러므로 葛仙公 序노자는 자연을 로하고 大始(太初)의 앞에 나고 원인이 없음에서 일어나 하늘과 땅의 마치고 시작함을 겪어내려 오니 말하여 실을 수 없다.

 

自孔子死之後百二十九年[]史記周太史儋見秦獻公曰:「始秦與周合合五百歲而離離七十歲而霸王者出焉。」[]或曰儋即老子或曰非也世莫知其然否老子隱君子也

공자가 죽은 후 129년으로부터 사관의 기록에 주나라 태사 담이 진나라 헌공을 뵙고 말하기를 처음 진과 주가 합하고, 합 한지 500년에 떨어지고, 떨어진지 70년에 霸王이 나왔다.” 하고, 혹은 담이 곧 노자라 하고, 혹은 아니다하니 세상에서 그 그러함을 알지 못하였다. 노자는 숨은 군자이다.

[] 集解徐廣曰:「實百一十九年。」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실제는 119년이다.” 했다.

 

[] 索隱按周秦二本紀並云始周與秦國合而別別五百載又合合七十歲而霸王者出」。然與此傳離合正反尋其意義亦並不相違也

[] 索隱살펴보니 주나라와 진나라 두 본기에 나란히 말하기를 처음 주나라와 진나라가 합하고 떨어지고 떨어진지 500년에 또 합하였고, 합한 70년에 霸王이 나왔다.” 하나 이것과 전의 떨어지고 합한 것이 정반대되니 그 의의를 자세히 살피면 또한 아울러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老子之子名宗宗為魏將封於段干[]宗子注[]注子宮宮玄孫假[]假仕於漢孝文帝而假之子解為膠西王卬太傅因家于齊焉

노자의 아들 이름은 인데 종이 위나라 장수가 되어 段干에 봉해졌다. 의 아들은 이고, 주의 아들은 이며, 궁의 현손이 이니 가 한나라 효문제에게 벼슬하였고, 의 아들 膠西王 卬의 태부가 되었기 때문에 땅에서 살았다.

 

[] 集解此云封於段干段干應是魏邑名也而魏世家有段干木段干子田完世家有段干朋疑此三人是姓段干也本蓋因邑為姓左傳所謂邑亦如之是也風俗通氏姓注云姓段名干木恐或失之矣天下自別有段姓何必段干木邪

[] 集解여기서 말한 段干에 봉하였다.”段干은 위나라 읍의 이름에 해당하고 魏世家段干木, 段干子가 있고, 田完世家段干朋이 있으니 아마도 이 세 사람은 성이 段干일 것이다. 본래 읍을 인하여 성으로 삼았는데 左傳에 이른바 읍이 또한 그것과 같다.” 고 한 것이 이것이다. 風俗通氏姓 주에 성은 단이고, 이름은 干木이라 하니 혹 잘못일 것이다. 천하에 스스로 구별한 段 姓 이 있지만 어찌 반드시 段干木이겠는가!

 

[] 索隱音鑄正義之樹反

[] 索隱음은 이다. 正義의 반이다.

 

[] 索隱音古雅反。 正義作」,音霞

[] 索隱음은 이다. 正義로 썼는데 음은 이다.

 

世之學老子者則絀儒學[]儒學亦絀老子。「道不同不相為謀」,豈謂是邪李耳無為自化清靜自正[]

세상에 노자를 배우는 자는 유학을 물리치고 유학 또한 노자를 물리친다,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하니 어찌 이를 이르는 것이겠는가? 이이가 함이 없이도 스스로 변화하고, 맑고 고요하여 스스로 바루어진다.

 

[] 索隱按絀音黜退而後之也

[] 索隱살펴보니 의 음은 이다. 은 물리치고 그를 뒤로 하는 것이다.

 

[] 索隱此太史公因其行事於當篇之末結以此言亦是贊也老子曰我無為而民自化我好靜而民自正」,此是昔人所評老聃之德故太史公於此引以記之。 正義此都結老子之教也言無所造為而自化清淨不撓而民自歸正也

[] 索隱이는 태사공이 그 일을 행함을 인하여 이편의 끝을 이 말로써 맺었는데 또한 이것을 찬양한 것이다. 살펴보니 노자가 말하기를 내가 함이 없어도 백성들이 저절로 변화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였는데 백성이 스스로 발라졌다.” 고 했다. 이는 옛날 사람들이 노빙의 덕을 평가한 바이다. 그러므로 태사공이 이를 인용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기록한 것이다. 正義여기서 노자의 가르침을 모두 맺었으니 나아가 함이 없어도 스스로 변화하고, 청정하여 소란스럽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바름에 돌아감을 말한 것이다.

莊子者蒙人也[]名周周嘗為蒙漆園吏[]與梁惠王齊宣王同時其學無所不闚然其要本歸於老子之言故其著書十餘萬言大抵率寓言也[]作漁父盜跖[]以詆訿孔子之徒[]以明老子之術畏累虛亢桑子之屬皆空語無事實[]然善屬書離辭[]指事類情用剽剝儒[]雖當世宿學不能自解免也其言洸洋自恣以適己[]故自王公大人不能器之

장자는 蒙人이다. 이름은 주이다. 주가 일찍이 몽현 칠원의 관리가 되었는데 양나라 혜왕, 제나라 선왕과 같은 때이다. 그 배움이 엿보지 않은 바가 없었으나 그 요점과 근본은 노자의 말에 귀결된다. 그러므로 그 저서 10여 만언이 대개 寓言(다른 사물에 빗대어서 의견이나 교훈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을 따랐다. 漁父, 盜跖, 胠篋을 지어 공자의 무리를 헐뜯어서 노자의 방법을 밝혔다. 畏累虛, 亢桑子 등은 모두 헛된 말로 사실이 없었다. 그러나 좋은 편은 글이 말을 떠나고, 사물을 가리켜 보이고 실정을 분류하며,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였다. 비록 당시의 오래 학문하여 덕망이 있는 학자일지라도 스스로 풀고 면하지 못하였다. 그 말이 洋洋하여 스스로 방자함으로써 자기에게 맞추었다. 그러므로 王公, 大人으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 集解地理志蒙縣屬梁國索隱地理志蒙縣屬梁國劉向別錄云宋之蒙人也。 正義郭緣生述征記云蒙縣莊周之本邑也

[] 集解지리지에 몽현은 양국에 속한다. 하였다. 索隱지리지에 몽현은 양국에 속한다. 劉向別錄송나라 몽인이다.” 했다. 正義곽연생의 述征記몽현은 장주의 本邑이다.” 했다.

[] 正義括地志云:「漆園故城在曹州冤句縣北十七里。」此云莊周為漆園吏即此其城古屬蒙縣

[] 正義】 『括地志칠원 옛 성은 조주 원구현 북쪽 17리에 있다.”하고 여기에서 장주가 칠원의 기 되었다.” 말한 것이 곧 이것이다. 살펴보니 그 성은 옛날에 몽현에 속하였다.

 

[] 索隱大抵猶言大略也其書十餘萬言率皆立主客使之相對語故云偶言」。又音寓寄也故別錄云作人姓名使相與語是寄辭於其人故莊子有寓言篇」。正義率音律寓音遇率猶類也寄也

[] 索隱大抵大略이라는 말과 같다. 그 글 10여 만언은 모두 주인과 객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서로 대하여 말하게 하였기 때문에 偶言이라 한 것이다. 또 음은 이니 는 붙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별록에 사람이 성과 이름을 지은 것은 서로 더불어 말하게 하고 이를 그 사람에게 붙어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莊子네 우언편이 있다. 正義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와 같다. 는 붙임이다.

 

[] 索隱胠篋猶言開篋也胠音袪亦音去篋音去劫反正義胠音丘魚反篋音苦頰反開也箱類也此莊子三篇名皆誣毀自古聖君賢臣孔子之徒營求名譽咸以喪身非抱素任真之道也

[] 索隱胠篋은 상자를 연다는 말과 같다. 의 음은 이고, 또한 음은 이다. 正義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는 여는 것이다. 은 상자 류이다. 이는 莊子3편의 이름이니 모두 옛 성스러운 임금으로부터 賢臣, 공자의 무리가 명예를 경영하여 구하고 모두 몸을 망치는 것으로 평소 참됨을 맡은 도를 포괄 한 것이 아니라고 속이고 비방하였다.

 

[] 索隱詆訐也詆音邸訿音紫謂詆訐毀訾孔子也

[] 索隱(꾸짖을 저)(들추어 낼 알) 이다. 는 음이 이다. 訿의 음은 이다. 詆訐은 공자를 비방하고 헐뜯음을 말한다.

 

[] 索隱按莊子畏累虛」,篇名也即老聃弟子畏累鄒氏畏音於鬼反累音壘劉氏畏音烏罪反累路罪反郭象云今東萊也」。亢音庚亢桑子王劭本作庚桑」。司馬彪云庚桑楚人姓名也」。正義莊子云:「庚桑楚者老子弟子北居畏累之山。」:「山在魯亦云在深州。」此篇寄庚桑楚以明至人之德衛生之經若槁木無情死灰無心禍福不至惡有人災言莊子雜篇庚桑楚已下皆空設言語無有實事也

[] 索隱살펴보니 莊子畏累虛는 편명이니 곧 노빙(노자)의 제자 畏累 이다. 추씨는 의 음은 이고, 의 음은 이다.” 했다. 유씨는 의 음은 이고, 이다.” 했다. 의 음은 이다. 은 뽕나무 열매(오디)이니 王劭본에는 庚桑이라 썼다. 사마표는 경상은 초나라 사람의 이름이다.” 했다. 正義】 『莊子庚桑楚는 노자의 제자이니 북쪽 외루의 산에 살았다.” 했다. 산은 노나라에 있는데 또한 심주에 있다. 고 한다.” 했다. 이 편은 경상초에 붙여서 지극한 사람의 덕과 삶을 지키는 법을 밝혔는데, 말라 죽은 나무가 정이 없고, 죽은 재는 마음이 없듯이 화와 복의 이르지 않으면 어찌 사람의 재앙이 있겠는가? 莊子雜篇에 경상초 이하는 모두 공연히 말을 가설하여 실제의 일이 있지 않다.

 

[] 正義屬音燭離辭猶分析其辭句也

[] 正義의 음은 이다. 離辭는 그 말과 구를 분석하는 것과 같다.

 

[] 正義剽疋妙反剽猶攻擊也

[] 正義이다. 는 공격과 같다.

 

[] 索隱洸洋音汪羊二音又音晃養亦有本作正義洋音翔己音紀

[] 索隱洸洋汪洋 두 음이다. 또 다른 음은 晃養이다. 또 어던 본에는 자를 썼다. 正義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楚威王聞莊周賢[]使使厚幣迎之許以為相莊周笑謂楚使者曰:「千金重利卿相尊位也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養食之數歲衣以文繡以入大廟當是之時雖欲為孤豚豈可得乎[]子亟去[]無污我[]我寧游戲污瀆[]之中自快無為有國者所羈終身不仕以快吾志焉。」[]

초나라 위왕이 장주가 어질다는 것을 듣고 사신으로 하여금 후한 폐백으로 맞이하니 재상으로 삼을 것을 허여하였다. 장주가 웃으며 초나라 사자에게 말하기를 천금은 많은 이익이고, 卿相은 높은 자리이다. 그대는 어찌 郊祭에 쓰이는 희생 소를 보지 못하였는가? 여러 해 먹이고 길러서 문양을 수놓은 옷을 입혀 태묘에 들어간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비록 외로운 돼지가 되고자 한들 어찌 될 수 있겠는가? 그대는 빨리 떠나서 나를 더럽히지 말라. 나는 차라리 더러운 도랑 안에서 놀면서 기뻐할지언정 나라를 소유한 자를 위하여 속박 당함은 없을 것이다. 몸을 다하도록 벼슬하지 않는 것으로써 내 뜻을 기쁘게 할 것이다.” 했다.

[] 正義威王當周顯王三十年

[] 正義위왕은 주나라 현왕 30년에 해당한다.

 

[] 索隱孤者小也特也願為小豚不可得也正義不群也小豬臨宰時願為孤小豚不可得也

[] 索隱는 작음이고, 다만 이다. 작은 돼지가 되기를 바랐으되 되지 못하였다. 正義는 무리짓지 않음이다. 은 작은 돼지이다. 재상에 임하였을 때 다만 작은 돼지가 되기를 원하였으나 되지 못하였다.

 

[] 索隱音棘亟猶急也

[] 索隱음은 이다. (빠르게)와 같다.

 

[] 索隱污音烏故反

[] 索隱의 음은 이다.

 

[] 索隱音烏讀二音污瀆污之小渠瀆也

[] 索隱음은 두 음이다. 汚瀆은 더러운 웅덩이의 작은 도랑이다.

[] 正義莊子云:「莊子釣於濮水之上楚王使大夫往:『願以境內累莊子。』 持竿不顧:『吾聞楚有神龜死二千歲矣巾笥藏之廟堂之上此龜寧死為留骨而貴乎寧生曳尾泥中乎?』大夫曰:『寧曳尾塗中。』莊子曰:『往矣吾將曳尾於塗中。』」 與此傳不同也

[] 正義】 『莊子에 말하기를 장자가 복수의 위에서 낚시하는데 초나라 왕이 대부를 가게하여 말하였다. ‘국경 안에 장자를 묶기를 원합니다.’ 낚시대를 지니고 돌아보지도 않고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초나라에 신구가 있었는데 2천세에 죽어 비단을 바른 상자에 넣어 사당의 위에 감추었다 합니다. 이 거북이 죽어 뼈를 남겨서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 편안합니까? 살아서 진흙가운데 꼬리를 끄는 것이 편안하겠습니까?’ 대부가 말하기를 진흙 가운데 꼬리를 끄는 것이 편안합니다.’ 했다. 장자가 말하기를 돌아가시오. 나는 장차 지흙 속에 꼬리를 끌 것입니다.’ 했다.” 하는데 이 과는 같지 않다.

申不害者京人也[]故鄭之賤臣學術以干韓昭侯[]昭侯用為相內脩政教外應諸侯十五年終申子之身國治兵彊無侵韓者[]

신불해는 京人이다. 그러므로 정나라의 천한 신하(하급 신하)이다. 學術(학문과 일)로 한나라 소후에게 (등용될 것을)구하였는데 소후가 등용하여 재상을 삼았다. 안으로 정사와 가르침을 닦고, 밖으로는 제후에게 응한 것이 15년이었다. 申子가 몸을 마치도록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강하게 하여 한나라를 침입하는 자가 없었다.

 

[] 索隱申子名不害別錄云今河南京縣是也」。正義括地志云:「京縣故城在鄭州滎陽縣東南二十里鄭之京邑也。」

[] 索隱申子의 이름은 불해이다. 살펴보니 別錄은 지금의 하남 경현이 이것이다.” 正義】 『括地志경현 옛 성이 정주 영양현 동남쪽 20리에 있으니 정나라의 京邑이다.

 

[] 索隱按術即刑名之法術也

[] 索隱살펴보니 은 곧 형벌 이름의 法術이다.

 

[] 索隱王劭按紀年云韓昭侯之世兵寇屢交」,異乎此言矣

[] 索隱왕소를 살펴보니 紀年한나라 소후의 세대에 군대와 도적이 여러 번 주고받았다.” 하니 이 말과는 다르다.

 

申子之學本於黃老而主刑名著書二篇號曰申子[]

신자(신불해)의 학문은 黃老에 근본하여 刑名을 주장하였다. 저서 2편 있는데 申子라 이름 했다.

 

[] 集解劉向別錄曰:「今民閒所有上下二篇中書六篇皆合二篇已備過於太史公所記也。」索隱今人閒有上下二篇又有中書六篇其篇中之言皆合上下二篇是書已備過於太史公所記也。 正義阮孝緒七略云申子三卷也

[] 集解】 『유향별록지금 민간에 있는 바의 상하 2편과 중서 6편하여 보두 합하여 두 편으로 이미 갖추어진 것이 태사공이 기록한 바에 지나친다.” 한다. 索隱지금 사람들 사이에 상하 두 편이 있고, 또 중서 6편이 있으며 그 폄 가운데 말한 것이 모두 합하여 상하 두 편이니 이는 글이 이미 갖추어져서 태사공이 기록한 바 보다 많다. 正義완효서의 七略申子3권이라했다.

韓非者[]韓之諸公子也喜刑名法術之學[]而其歸本於黃老[]非為人口吃[]不能道說而善著書與李斯俱事荀卿[]斯自以為不如非

한비는 한나라의 공자이다. 형명, 법술의 학문을 좋아하되 그 근본은 황노에 돌아간다. 한비는 사람됨이 말을 더듬어 유세를 잘하지 못하였으나 글로 잘 나타내었다. 이사와 함께 순경을 섬겼는데 이사는 스스로 한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 正義阮孝緒七略云:韓子二十卷。」韓世家云:王安五年非使秦九年虜王安韓遂亡。」

[] 正義완효서의 七略韓子20권이 있다.”하고, 韓世家王安 5에 한비가 진에 사신 갔다. 9년에 왕안이 포로로 잡혀 이 마침내 망했다.”

 

[] 集解新序曰:「申子之書言人主當執術無刑因循以督責臣下其責深刻故號曰』。商鞅所為書號曰』。皆曰刑名』,故號曰刑名法術之書』。」 索隱著書三十餘篇號曰韓子

[] 集解新序신자(신불해)의 글에 임금은 마땅히 을 잡아 형벌이 없으면 오래된 습관을 따라 신하를 독려하고 질책하는데 그 질책이 매우 각박하기 때문에 이라 부른다. 하고, 商鞅이 지은 글에는 이라하니 모두 刑名을 말한다. 그러므로 刑名 法術의 글이라 부른다. 索隱저서 30여편을 韓子라 한다.

 

[] 索隱按劉氏云黃老之法不尚繁華清簡無為君臣自正韓非之論詆駮浮淫法制無私而名實相稱故曰歸於黃老』。」斯未為得其本旨今按韓子書有解老喻老二篇是大抵亦崇黃老之學耳

[] 索隱살펴보니 劉氏가 말하기를 황노의 법은 번잡하고 화려한 것을 숭상하지 않고, 맑고 간략하며 함이 없어도 임금과 신하가 스스로 바르게 된다. 한비의 논의는 떠돌며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을 꾸짖고 논박하고 법과 제도에 사사로움이 없어 이름과 실제가 서로 걸맞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황노에 귀결돤다.이사는 그 본래의 가르침을 터득하지 못하였다. 지금 살펴보니 한자(한비)의 글에 解老’, ‘喩老두 편이 있으니 이는 대개 또한 黃老을 숭상했을 뿐이다.

[] 正義音訖

[] 正義음은 이다.

 

[] 正義孫卿子二十二卷名況趙人楚蘭陵令避漢宣帝諱改姓孫也

[] 正義손경자는 20권이 있다. 이름은 이고, 조나라 사람으로 초나라 난릉의 령을 지냈다. 나라 선제의 이름을 피하여 성을 으로 바꾸었다.

 

非見韓之削弱數以書諫韓王[]韓王不能用於是韓非疾治國不務脩明其法制執勢以御其臣下富國彊兵而以求人任賢反舉浮淫之蠹而加之於功實之上以為儒者用文亂法而俠者以武犯禁寬則寵名譽之人急則用介冑之士[]今者所養非所用[]所用非所養[]悲廉直不容於邪枉之臣[]觀往者得失之變[]故作孤憤五蠹內外儲說林說難十餘萬言[]

한비가 이 깍이고 약해지는 것을 보고 여러 번 글로써 韓王을 간하였으나 韓王이 쓰지 못하였다. 이에 한비가 나라를 다스림에 그 법과 제도를 밝히며, 권세를 잡는 것으로써 그 신하를 다스리며, 사람을 구하고 부국강병하고 어진 사람에게 맡김을 힘쓰지 않고 도리어 부박하고 음란한 좀으로 功實의 위에 그것을 더함을 미워하였다. 儒者들은 문을 써서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은 로써 금함을 범하며, 너그러우면 곧 명예의 사람을 사랑하고 급하면 갑옷입고 투구 쓴 를 등용한다고 여겼다. 지금 기르는 바는 쓸데가 없고, 쓰이는 바는 기르는 바가 없다. 청렴하고 정직한 이는 간사하고 굽은 신하에게 용납되지 못함을 슬퍼하고 지난날 득실의 변화를 관찰하고 孤憤, 五蠹, 內外儲, 說林, 說難 10餘萬言을 지었다.

[] 索隱韓王安也

[] 색은한왕은 안이다.

 

[] 正義介甲也兜鍪也

[] 正義이다. 는 투구이다.

 

[] 索隱言非疾時君以祿養其臣者乃皆安祿養交之臣非勇悍忠鯁及折衝禦侮之人也

[] 索隱급하지 않은 때에 임금이 으로써 그 신하를 기르는 것은 곧 모두 祿과 기름()을 편안히 여기는 사귐의 신하로 용맹하고 사나우며 충성스럽고 바름이 적의 창을 꺽고, 침략에 항거함에 이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 索隱又言人主今臨事任用並非常所祿養之士故難可盡其死力也

[] 索隱또 임금이 지금 일에 임하여 임용하고 아울러 평상시에 祿으로 기르는 바의 가 아니기 때문에 그 죽을힘을 다하기 어려운 것이다.

[] 索隱又悲姦邪諂諛之臣不容廉直之士

[] 索隱또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가 청렴하고 정직한 를 용납하지 못함을 슬퍼하였다.

 

[] 正義韓非見王安不用忠良今國消弱故觀往古有國之君則得失之變異而作韓子二十卷

[] 正義한비가 왕안이 忠良을 등용하지 않아서 지금 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옛날에 나라를 소유하였던 임금으로 득실의 변이를 살펴서 韓子20권을 지었다.

 

[] 索隱此皆非所著書篇名也孤憤孤直不容於時也五蠹蠹政之事有五也內外儲按韓子有內儲外儲篇內儲言明君執術以制臣下制之在己故曰外儲言明君觀聽臣下之言行以斷其賞罰賞罰在彼故曰儲畜二事所謂明君也說林者廣說諸事其多若林故曰說林今韓子有說林上下二篇說難者說前人行事與己不同而詰難之故其書有說難篇

[] 索隱이는 모두 한비가 지은 글의 篇名이다. 孤憤은 홀로 정직함이 그 때에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분노한 것이다. 五蠹는 정사를 좀 먹는 것이 5가지가 있음이다. 內外儲는 살펴보니 韓子內儲外儲編이 있다. 內儲編은 임금이 ()을 잡는(집행하는) 것으로써 신하를 제재하는데, 그들을 제재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음을 밝혔다. 그러므로 라고 한 것이다. 外儲는 임금이 신하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들어서 그 상과 벌을 결단하는데 상과 벌은 그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라 한 것이다. 儲畜 두 가지 일은 이른바 임금을 밝힌 것이다. 說林은 여러 가지 일을 널리 말한 것이 그 많음이 숲과 같기 때문에 說林이라 한 것이다. 지금 韓子說林, 하 두 편이 있다. 說難前人(옛 사람)들이 행한 일을 말한 것이 자기와 같지 않아서 꾸짖기 어렵기 때문에 그 글에 說難편을 둔 것이다.

 

然韓非知說之難為說難書甚具終死於秦不能自脫說難曰[]

그러나 한비는 유세의 어려움을 알아서 說難의 글에 잘 갖추었으나 마침내 진에서 죽임을 당하니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說難에 말하였다.

[] 索隱說音稅難音奴干反言游說之道為難故曰說難其書詞甚高故特載之然此篇亦與韓子微異煩省小大不同劉伯莊亦申其意粗釋其微文幽旨故有劉說也

[] 索隱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유세의 도가 어렵기 때문에 說難이라 말한 것이다.

凡說之難非吾知之有以說之難也[]又非吾辯之難能明吾意之難也[]又非吾敢橫失能盡之難也[]凡說之難在知所說之心可以吾說當之[]

무릇 유세(설득)의 어려움은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서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또 내가 그것을 변론하기 어려움은 내 뜻을 분명하게 하는 어려움이 아니며, 내가 감히 자유롭게 (말을)다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아니다. 무릇 유세의 어려움은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서 내 말을 마땅하게 함에 달려 있다.

[] 正義凡說難識情理不當人主之心恐犯逆鱗說之難知故言非吾知之有以說之乃為難

[] 正義무릇 유세(설득)의 어려움은 실정과 이치를 알아 임금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아 逆鱗을 범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유세(설득)의 어려움을 안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써 설득하는 것이 곧 어려움이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 正義能分明吾意以說之亦又未為難也尚非甚難

[] 正義내 뜻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써 유세하면 또한 어렵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어려운 것은 아니다.

[] 索隱按韓子橫失橫佚」。劉氏云:吾之所言, 無橫無失, 陳辭發策, 能盡說情, 此雖是難, 尚非難也。」正義橫擴孟反又非吾敢有橫失詞理能盡說己之情此雖是難尚非極難

[] 索隱살펴보니 韓子橫失橫佚이라 썼다. 유씨가 말하기를 나의 말한 바는 자유로움도 없고 잘못도 없이 말을 하고 계책을 펴는 것이니 말과 실정을 다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비록 어렵다하나 오히려 어려운 것이 아니다.” 했다. 正義이다. 또 내가 감히 함부로 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말의 조리가 자기의 실정을 모두 말하는 것은 이것이 비록 어려우나 오히려 지극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 索隱劉氏云:「開說之難正在於此也。」所說之心者謂人君之心也言以人臣疏末射尊重之意貴賤隔絕旨趣難知自非高識莫近幾會故曰說之難乃須審明人主之意必以我說合其情故云吾說當之。 正義前者三說並未為難凡說之難者正在於此言深辨知前人意可以吾說當之闇與前人心會說則行乃是難矣

[] 索隱유씨가 말하기를 설득을 여는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했다. 살펴보니 유세(설득) 당하는 바의 마음은 임금의 마음을 말한다. 신하가 상소의 끝에 존중의 뜻과 귀천의 떨어짐과 취향의 알기어려움과 자신의 지식이 높은 것이 아니어서 가까이 할 기회가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說之難이라 말한다. 이에 임금의 뜻을 살피고 밝혀서 반드시 내 말로써 그 실정에 부합해야 한다, 그러므로 吾說當之라 말하는 것이다. 正義앞의 세 가지 말은 함께 어려움이 되지 않으니 무릇 유세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달려있다. 前人의 뜻을 깊이 분별하여 알고 내 말을 합당하게 하는 것으로써 가만히 前人의 마음을 모아 유세하면 곧 행해지니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所說出於為名高者也[]而說之以厚利則見下節而遇卑賤必棄遠矣[]所說出於厚利者也而說之以名高則見無心而遠事情必不收矣[]所說實為厚利而顯為名高者也[]而說之以名高則陽收其身而實疏之若說之以厚利則陰用其言而顯棄其身[]此之不可不知也

이름 높이기를 위하는 자를 유세하면서 두터운 이익으로써 유세하면 곧 등급이 낮아서 비천하게 대우 받는다 여겨 반드시 버려지고 멀어질 것이다. 유세하는 바가 이익을 두터이 하고자하는 자인데 유세하기를 명예를 높이는 것으로써 한다면 마음이 없고 일의 실정에 멀다하여 반드시 거두지 않을 것이다. 유세하는 바가 실제는 두터운 이익을 위하면서 드러내는 것은 명예를 높이고자 하는 자인데 유세하기를 명예를 높이는 것으로써 한다면 곧 겉으로는 그 자신을 거두어 주되 실제는 멀리할 것이다. 만약 그를 유세하기를 두터운 이익으로써 한다면 안으로 그 말을 쓰면서 드러내기는 그 자신을 버릴 것이다. 이것이 알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 索隱按謂所說之主中心本出欲立高名者也。,故劉氏云稽古羲黃祖述堯舜是也

[] 索隱살펴보니 이른바 說之主는 마음속으로는 본래 높은 명예를 세우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유씨가 말하기를 옛날 복희와 황제를 상고하여 요와 순을 본받아 서술한다.”고 한 것이 이것다.

 

[] 索隱謂人主欲立高名說臣乃陳厚利是其見下節也既不會高情故遇卑賤必被遠斥矣

[] 索隱임금이 높은 명예를 세우고자 하는데 유세하는 신하가 두터운 이익을 진술하면 이는 그 등급을 낮춤을 당한다. 이미 높고 귀한 품위를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낮고 천함을 만나 반드시 멀리하고 배척함은 당한다.

[] 索隱亦謂所說之君, 出意本規厚利, 而說臣乃陳名高之節, 則是說者無心, 遠於我之事情, 必不見收用也故劉氏云若秦孝公志於彊國而商鞅說以帝王故怒而不用」。

[] 索隱또 이른바 說之君은 내는 뜻은 본래 두터운 이익을 꾀하는데 유세하는 신하가 명예와 높은 절개를 진술한다면 곧 이는 유세하는 자의 마음이 없어 나의 사정에서 멀어지니 반드시 거두어 씀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유씨가 말하기를 진나라 효공의 경우에 나라를 강하게 함에 뜻을 두었음에도 상앙이 帝王으로써 유세하였기 때문에 노하여 등용하지 않았다.” 한 것과 같다.

[] 索隱按韓子字作」。顯者陽也謂其君實為厚利而詳作欲為名高之節也。 正義前人必欲厚利詐慕名高則陽收其說實疏遠之

[] 索隱살펴보니 韓子자를 이라 썻다. 살펴보니 (겉으로)

 

[] 索隱謂若下文云鄭武公陰欲伐胡而關其思極論深計雖知說當終遭顯戮是也正義前人好利厚詐慕名高說之以厚利則陰用說者之言而顯不收其身說士不可不察

[] 索隱아래 글에 말하기를 정나라 무공이 속으로는 를 정벌하려 하면서 관기사가 깊은 계교를 極論하자 비록 말이 합당함을 알았으나 끝내 도륙을 당함을 만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正義前人이 이익의 두터움을 좋아하면서도 거짓으로 명예의 높음을 사모하는 이에게 유세하기를 두터운 이익으로써 한다면 곧 속으로는 유세하는 자의 말을 쓰면서도 겉으로는 그 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유세하는 선비는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夫事以密成語以泄敗未必其身泄之也而語及其所匿之事[]如是者身危貴人有過端而說者明言善議以推其惡者則身危[]周澤未渥也而語極知說行而有功則德亡[]說不行而有敗則見疑如是者身危[]夫貴人得計而欲自以為功說者與知焉則身危[]彼顯有所出事迺自以為也故說者與知焉則身危[]彊之以其所必不為[]止之以其所不能已者身危[]故曰與之論大人則以為閒己[]與之論細人則以為粥權[]論其所愛則以為借資[一一]論其所憎則以為嘗己[一二]徑省其辭則不知而屈之[一三]汎濫博文則多而久之[一四]順事陳意則曰怯懦而不盡[一五]慮事廣肆則曰草野而倨侮[一六] 說之難不可不知也

대저 일은 비밀로써 이루어지고, 말은 누설되는 것으로써 무너진다. 반드시 그 자신이 누설하지 않아도 말이 그 숨겨진 바의 일에 미치면 이 같은 자는 몸이 위태롭다. 貴人이 허물의 단서가 있는데 유세하는 자가 말을 밝게 하고 잘 토론하는 것으로서 그 악을 미루는 자는 몸이 위태롭다. 두루 지극한 은택이 무젖지 않음에도 지극한 앎을 말하면 유세가 행하여져서 공이 있어도 곧 덕은 없고, 유세가 행해지지 않아 무너짐이 있으면 곧 의심을 당하니 이 같은 자는 몸이 위태롭다. 貴人이 계교를 얻어 스스로 공을 삼고자 하는데 유세하는 자가 그것을 미리 알면 곧 몸이 위태롭다. 그 하지 않을 바를 억지로 하고, 그만두지 못하는 바로 그치게 하면 몸이 위태롭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더불어 大人을 논하면 곧 자기를 이간한다. 여기고, 더불어 細人(小人)을 논하면 권세를 기른다 여긴다. 그 사랑하는 바를 논하면 곧 굽힌다고 여긴다. 널리 펴져 지식이 많고 사리에 맑으면 곧 많고 오래한다. 하고, 일에 따라 뜻을 진술하면 곧 겁내고 나약하여 다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일을 염려하고 널리 함부로 하면 곧 초야에 있어 거만하고 업신여긴다고 말하니 유세의 어려움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 正義事多相類語言或說其相類之事前人覺悟便成漏泄故身危也

[] 正義일에는 서로 비슷한 것이 많아서 언어가 혹 서로 비슷한 류의 일을 말하여 前人이 깨달아서 곧 누설되기 때문에 몸이 위태로운 것이다.

[] 正義人主有過失之端緒而引美善之議以推人主之惡則身危

[] 正義임금이 과실의 단서를 가지고 있는데 아름답고 선함의 논의로써 임금의 악을 미루면 곧 몸이 위태로운 것이다.

 

[] 索隱按謂人臣事上其道未合至周之恩未霑渥於下而輒吐誠極言其說有功則其德亦亡無也韓子作則見忘」,見忘勝於德亡正義渥霑濡也人臣事君未滿周至之恩澤而說事當理事行有功君不以為恩德故德亡

[] 索隱살펴보니 신하가 윗사람을 섬기는데 그 도가 합치하지 않고 두루 은택이 아래에 무젖지 않았는데 문득 정성스럽고 지극한 말을 뱆어 내면 그 설득은 공은 있되 그 덕은 또한 없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없다)이다. 韓子에는 則見忘이라 썼으나 見忘德亡보다 낫다. 正義은 젖음이다. 신하가 임금을 섬김이 전반적이고 지극한 은택이 차지 않았는데 일의 합당한 이치를 유세하면 일이 행해져 공이 있으나 임금은 은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이 없는 것이다.

[] 索隱又若說不行而有敗則見疑如是者身危是恩意未深輒評時政不為所信更致嫌疑若下文所云鄰父以牆壞有盜卻為見疑即其類也正義說事不行或行有敗壞則必致危殆若此者身危也

[] 索隱또 만약 유세가 행해지지 않아 무너짐이 있으면 곧 의심을 당하니 이 같은 자는 몸이 위태롭다. 이는 은혜의 뜻이 아직 깊지 않음에도 문득 時政을 평가하니 믿지 못하여 다시 혐의함에 이르는 것이다. 아래 글에 말한바 이웃 남자가 담장이 무너져 도둑이 들었는데 물리치다가 의심을 당하는 것 같은 것이 곧 그러한 류이다. 正義일을 유세하여 행해지지 않거나 혹은 행하여도 무너짐이 있으면 곧 반드시 위태로움이 이른다. 이 같은 자는 몸이 위태롭다.

[] 正義與音預人主先得其計己功說者知前發其蹤跡身必危亡

[] 正義의 음은 이다. 임금이 그 계교를 얻어 자기의 공을 우선하려는데 유세하는 자가 그 자취를 알고 앞서 말을 하면 몸이 반드시 위태롭고 망한다.

 

 

[] 索隱謂人主明有所出事乃自以為功, 而說者與知是則以為閒故身危也。 正義人主明所出事乃以有所營為說者預知其計而說者身亡危

[] 索隱임금이 밝게 일을 내는 바가 있어 이에 자신의 공으로 삼으려는데 유세하는 자가 미리 알면 이는 곧 이간한다. 여기기 때문에 몸이 위태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正義임금이 밝게 일을 드러내고 이에 경영하는 바가 있는데 유세하는 자가 그 계획을 미리 알면 유세하는 자의 몸은 위태롭다.

[] 索隱劉氏云:「若項羽必欲衣錦東歸, 而說者彊述關中, 違旨忤情自招誅滅也。」 正義彊其兩反人主必不欲有為而說者彊令為之

[] 索隱유씨가 말하였다. “만약 항우가 반드시 비단옷을 입고 동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유세하는 자가 억지로 關中을 말하는 것은 뜻을 어기고 실정을 거스르는 것이니 스스로 죽임을 부르는 것이다.” 正義이다. 임금이 반드시 하고자 하지 않는데도 유세하는 자가 억지로 그것을 하게 하는 것이다.

 

[] 索隱劉氏云:「若漢景帝決廢栗太子, 而周亞夫強欲止之竟不從其言後遂下獄是也。」 正義人主已營為而說者彊止之者身危

[] 索隱유씨가 말하였다. “만일 한나라 경제가 태자를 폐할 것을 결단하였는데 周亞夫가 억지로 그치게 하고자 하다 마침내 그 말을 따르지 않은 후에 마침내 감옥에 들어간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 正義閒音紀莧反說彼大人之短以為竊己之事情乃為刺譏閒也

[正義] 正義의 음은 이다. 저 대인의 단점을 말하여 자기의 사정을 숨긴다고 여기니 곧 풍자하고 기롱하며 이간함이 된다.

 

[]索隱按韓非子粥權賣重」。謂薦彼細微之人言堪大用則疑其挾詐而賣我之權也正義粥音育劉伯莊云:「論則疑其挾詐賣己之權。」

[] 索隱살펴보니 韓非子粥權賣重이라 적었다. 저 형편없는 사람을 추천하면서 크게 쓰임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곧 간사한 마음을 품고서 나의 권세를 판다고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正義의 음은 이다. 유백장이 말하였다. “은 곧 그 속이려는 뜻을 품고서 자기의 권세를 판다고 의심한다.”

[一一] 正義說人主愛行人主以為借己之資籍也

[一一] 正義임금이 사랑하고 행함을 말하면 임금은 자기의 소유함을 빌리려 한다고 여긴다.

 

[一二] 正義論說人主所憎惡人主則以為嘗試於己也

[十二] 正義임금의 미워하는 바를 논하여 말하면 임금은 곧 자기를 시험한다고 여긴다.

 

[一三] 索隱按謂人主意在文華而說者但徑捷省略其辭則以說者為無知而見屈辱也正義省山景反

[一三] 索隱살펴보니 임금의 뜻은 문채나고 화려함에 있는데 말하는 자가 다만 그 말을 빨리하고 생략하면 곧 말하는 자가 아는 것이 없다고 굴욕을 당하게 된다. 正義이다.

 

[一四] 索隱按謂人主志在簡要而說者務於浮辭汎濫博涉文華則君上嫌其多迂誕文而無當者也正義汎濫浮辭也博文廣言句也言浮說廣陳必多詞理時乃永久人主疲倦

[一四] 索隱살펴보니 임금의 뜻이 간략한 요점에 있는데 유세하는 자가 터무니없는 말에 힘쓰고, 여러 가지 책을 읽어 문채가 화려하면 곧 임금이 많이 사리에 맞지 않음을 혐오하여 글만을 하고 마땅함이 없는 자라 할 것이다. 正義汎濫浮辭이다. 博文은 말과 구절을 넓히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말을 널리 진술하면 반드시 말의 이치가 때로 길로 오래 됨이 많아 임금이 피로하고 권태로워 한다.

[一五] 正義懦音乃亂反說者陳言順人主之意則或怯懦而不盡事情也

[一五] 正義의 음은 이다. 유세하는 자가 임금의 뜻을 따라 진술하면 곧 혹 겁내고 나약하여 사정을 다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一六] 正義草野猶鄙陋也廣陳言詞多有鄙陋乃成倨傲侮慢

[一六] 正義草野鄙陋와 같다. 말을 넓게 진술하면 비루함(촌스러움)이 많이 있어 거만하고 오만하며 업신여김을 이룬다.

 

凡說之務在知飾所說之所敬[]而滅其所醜[]彼自知其計則毋以其失窮之[]自勇其斷則毋以其敵怒之[]自多其力則毋以其難概之[]規異事與同計譽異人與同行者則以飾之無傷也[]有與同失者則明飾其無失也[]大忠無所拂悟[]辭言無所擊排[]迺後申其辯知焉此所以親近不疑[]知盡之難也[一一]得曠日彌久[一二]而周澤既渥[一三]深計而不疑交爭而不罪迺明計利害以致其功直指是非以飾其身以此相持此說之成也[一四]

무릇 유세의 일은 유세 대상의 공경하는 바를 꾸밀줄 알아서 그 추함을 없애야 한다. 그가 스스로 그 계책함을 알면 곧 그 실수와 궁함을 없애야 하고, 스스로 용맹하게 결단하면 대적하는 것으로써 노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 그 많이 힘쓴다하면 그 개략적인 것으로 어렵다 해서는 안된다. 다른 일과 계획을 같이 함을 보고 다른 사람과 같이 행함을 칭찬하는 것은 곧 그것을 꾸미는 것으로써 해침이 없어야 한다. 같이 실수를 하는 자가 있으면 곧 그것을 밝게 꾸며서 잘못을 없게 해야 한다. 큰 충성은 어지는 바가 없고, 말을 배격하는 바가 없는 이후에 그 변명하는 말과 지혜를 펼 수 있다. 이는 친근하여야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아는 것을 다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원이 지나 오래된 후에 두루 은택이 무젖어야 깊은 계획에도 의심하지 않고, 서로 다투어도 죄 되지 않는다. 이에 분명하게 이해를 계산하여 그 공을 이루게 하고 곧바로 이 옳고 그름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그 자신을 꾸미며, 이로써 서로 대우하면 이 유세는 이루어진다.

[] 索隱按所說謂所說之主也飾其所敬者說士當知人主之所敬而時以言辭文飾之

索隱살펴보니 所說은 유세하는 바의 임금을 말한다. 飾其所敬(그 공경하는 바를 꾸민다.)은 유세하는 선비가 마땅히 임금을 공경하는 것을 알아서 때로 말로써 문채나게 꾸미는 것이다.

[] 索隱醜謂人主若有所避諱而醜之遊說者當滅其事端而不言也

[] 索隱는 임금이 만약 피하고 꺼리는 바가 있어 그것을 추하게 여긴다면 유세하는 자는 마땅히 그 일의 단서를 없애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 正義前人自知其失誤說士無以失誤窮極之乃為訕上也

[] 正義前人이 스스로 그 잘못을 알면 유세하는 선비는 잘못을 다함이 없어야 하니 곧 윗사람을 꾸짖음이 되기 때문이다.

[] 索隱按謂人主自勇其斷, 說士無以己意而攻閒之, 是以卑下之謀自敵於上, 以致譴怒也正義斷音端亂反劉伯莊云:「貴人斷甲為是, 說者以乙破之, 乙之理難同怒以下敵上也。」

[] 索隱살펴보니 임금이 스스로 그 결단을 용감하게 했다 하면 유세하는 선비는 자기의 뜻으로써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도모함을 낮추어 윗사람에게 대적함으로써 꾸짖음과 노함이 이르기 때문이다. 正義의 음은 이다. 유백장이 말하기를 貴人이 갑을 결단하여 옳다 하는데 유세하는 자가 을로써 그것을 깨트리면 을의 이치를 같이 하기 어렵고 하니 아랫 사람으로서 윗사람을 대적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 索隱按概猶格也劉氏云:「秦昭王決欲攻趙, 白起苦說其難, 遂己之心, 拒格君上故致杜郵之僇。」正義概古代反

[] 索隱살펴보니 (바로잡다)과 같다. 유씨가 말하기를 진아라 소왕이 결단하여 조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백기가 힘들게 그 어려움을 설득하여 마침내 자기의 마음으로 임금을 막아 바로잡았다. 그러므로 杜郵의 욕됨이 이르렀다. 正義이다.

 

[] 正義劉伯莊云:「貴人與甲同計與乙同行者說士陳言無傷甲乙也。」

[] 正義유백장이 말하기를 貴人이 계책을 같이하면서 과 행동을 같이 하는 자는 유세하는 자가 말을 진술하면서 (해치게)하게 함이 없어야야 한다.”고 했다.

[] 索隱按上文言人主規事譽人與某人同計同行今說者之詞不得傷於同計同行之人仍可文飾其類也又若人主與同失者而說者則可以明飾其無失也。 正義人主與甲同失說者文飾甲之無失

[] 索隱살펴보니 윗글의 임금이 일을 꾀하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어떤 사람과 계책을 함께하고 행동을 같이하면 유세하는 자의 말은 계책을 같이 하고 행동을 같이하는 사람을 (해치게)하게 해서는 안되고 그대로 그 를꾸며주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또 만약 임금과 같이 잘못한 자이면 유세하는 자는 곧 그 잘못이 없는 것으로 분명하게 꾸며야 한다. 正義임금과 이 같잘못하면 유세하는 자는 갑이 잘못이 없는 것으로 꾸며야 한다.

[] 索隱拂音佛言大忠之人志在匡君於善君初不從則且退止待君之說而又幾諫即不拂悟於君也正義拂悟當為咈忤」,古字假借耳違也逆也

[] 索隱의 음은 이다. 大忠의 사람은 뜻이 임금을 선으로 바로잡음에 있다. 임금이 처음에는 따르지 않으면 곧 또한 물러나 그치고 임금의 기뻐할 때를 기다려서 또 몇 번 간하여 임금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正義拂悟 는 마땅히 咈忤라고 써야 한다. 古字를 빌렸을 뿐이다. 은 어김이다.

 

[] 索隱謂大忠說諫之辭本欲歸於安人興化而無別有所擊射排擯韓子作擊摩。【색은大忠은 유세하고 간하는 말이다. 본래 사람을 편안히 하고 교화를 일으킴에 돌아가고자 하여 따로 쳐서 배척하는 바가 있지 않다. 살펴보니 韓子擊摩를 지었다.

 

[] 正義言大忠之事擬安民興化事在匡弼君初亦不擊排乃後周澤霑濡君臣道合乃敢辯智說焉此所以親近而不見疑是知盡之難

[0] 正義大忠의 일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교화를 일으키며, 일을 바로잡아 보필함에 달려 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임금이 처음에 또한 배격하지 않다가 후에 두루 은택이 무젖고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하면 감히 말과 지혜로 유세하는 것이다. 이는 친근하여야 의심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이 아는 것을 다하기 어려운 것이다.

[一一] 集解徐廣曰:「一作』。一作』。」 索隱謂人臣盡知事上之道難也徐廣曰一作』,一作』」。今按韓子作得盡之辭正義言說士知談說之難也為能盡此談說之道得當人主之心君臣相合乃是知盡之難也

[一一] 集解徐廣이 말하기를 는 한편으로 이라 쓰고, 은 한편으로 써야한다.”라고 했다. 지금 살펴보니 韓子得盡之難라고 쓰여 있다. 正義유세하는 선비는 말함의 어려움을 알아야 하고, 말의 도를 다할 수 있어야 임금의 마음에 합당함을 얻어 임금과 신하가 서로 합해짐을 말하니 곧 이것이 아는 것을 다함의 어려움이다.

[一二] 索隱謂君臣道合曠日已久是誠著於君也

[一二] 索隱임금과 신하가 도를 합하여 오래 하면 이는 정성이 임금에게 드러난다.

 

[一三] 索隱謂君之渥澤周浹於臣魚水相須鹽梅相和也

[一三] 색은임금의 은택이 두루 신하에게 미침은 물고기와 물이 서로 필요로하고, 소금과 매화가 서로 함을 말한다.

[一四]正義夫知盡之難則君臣道合故得曠日彌久而周澤既渥深計而君不疑與君交爭而不罪而得明計國之利害以致其功直指是非任爵祿於身以此君臣相執持此說之成也

[一四] 正義대저 아는 것을 다함의 어려움은 곧 임금과 신하가 도를 합하기 때문에 오래하여 은택이 두루하고 이미 젖어 깊이 계획하여도 임금이 의심하지 않고, 임금과 서로 다투어도(논쟁하여도) 죄가 되지 않으며 나라를 이롭게 하는 계획으로써 그 공을 이룰 수 있고, 곧바로 옳고 그름을 가리켜 벼슬과 록을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는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잡아 지니는 것으로써 이 유세가 이루어진다.

伊尹為庖[]百里奚為虜[]皆所由干其上也故此二子者皆聖人也猶不能無役身而涉世如此其汙也[]則非能仕之所設也[]

이윤은 요리사가 되었고, 백리해가 사로잡힘이 된 것은 모두가 그 윗사람에게 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모두 성인인데도 오히려 자신을 부리지 않을 수 없어 세상을 사는데 이 같이 그 더러움을 하였던 것이다. 곧 벼슬할 수 있음의 베푸는 바가 아니었다.

[] 正義殷本紀云乃為有莘氏媵臣負鼎俎以滋味說湯致王道是也

[] 正義은 본기에 이르기를 곧 유신씨의 媵臣이 되어 솥과 도마를 지고 좋은 맛으로써 탕이 왕도에 이르도록 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 正義晉世家云襲滅虞公及大夫百里以媵秦穆姬也

[] 正義진 세가에 이르기를 우공을 습격하여 멸한 것과 대부 백리혜로써 진 나라 목희의 잉신으로 하였다.”고 했다.

[] 正義汙音烏故反庖虜是汙

[] 正義의 음은 이다. 가 이 이다.

 

[] 索隱按韓子作非能士之所恥也」。

[] 索隱살펴보니 韓子재능있는 선비의 부끄러워 할 바가 아니다.

 

宋有富人天雨牆壞其子曰不築且有盜」,其鄰人之父亦云暮而果大亡其財其家甚知其子而疑鄰人之父[]昔者鄭武公欲伐胡[]迺以其子妻之因問群臣曰:「吾欲用兵誰可伐者?」關其思曰:「胡可伐。」迺戮關其思:「兄弟之國也子言伐之何也?」胡君聞之以鄭為親己而不備鄭鄭人襲胡取之此二說者其知皆當矣[]然而甚者為戮薄者見疑非知之難也處知則難矣

송나라에 부자가 있었는데 비가 내려 담장이 무너졌다. 그 아들이 말하기를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 하고, 그 이웃 사람의 아버지가 또한 말하였는데 저녁에 과연 크게 그 재물을 잃었다. 그 집은(에서는) 그 아들을 매우 잘 안다하고 이웃의 아버지는 의심하였다. 옛 날에 정 나라 武公나라를 치고자 하여 이에 그 자식으로써 처를 삼게 하였다. 인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 말하기를 내가 군대를 쓰고자 하는데 누구를 정벌하는 것이 옳은가?” 하니 관기사가 발하기를 를 토벌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이에 관기사를 죽이고 말하기를 나라는 현제의 나라이다. 그대가 토벌하라고 말하는 것은 왜인가?” 하였다. 나라 임금이 그것을 듣고는 정나라가 자기를 친히 한다. 여기고는 정나라를 대비하지 않았다. 정나라 사람들이 나라를 습격하여 취하였다. 이 두 이야기는 그 아는 것이 마땅하되 그러하고서도 심한 자는 죽임을 당하고 가벼운 자는 의심을 당하였으니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대처하는 것이 곧 어려운 것이다.

[] 正義其子鄰父說皆當矣而切見疑非處知則難乎

[] 正義그 아들과 이웃 아버지의 말이 모두 마땅하되 몹시 의심을 당한 것은 아는 것을 대처하지 못하면 곧 어려울 것이다.

[] 正義世本云:「歸姓也。」括地志云:「胡城在豫州郾城縣界。」

[] 正義세본에 말하기를 을 따른 것이다.” 했다. 括地志에 말하기를 호나라의 성은 예주 언성현 경계에 있다.”고 했다.

[] 正義當當浪反

[] 正義이다.

 

昔者彌子瑕見愛於衛君衛國之法竊駕君車者罪至刖既而彌子之母病人聞往夜告之彌子矯駕君車而出君聞之而賢之曰:「孝哉為母之故而犯刖罪!」與君游果園彌子食桃而甘不盡而奉君君曰:「愛我哉忘其口而念我!」及彌子色衰而愛弛得罪於君君曰:「是嘗矯駕吾車又嘗食我以其餘桃。」故彌子之行未變於初也前見賢而後獲罪者愛憎之至變也故有愛於主則知當而加親見憎於主則罪當而加疏故諫說之士不可不察愛憎之主而後說之矣

옛날 미자하가 위나라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의 법에 임금의 수레를 훔치는 자는 죄가 刖刑(죄인의 발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이르렀다. 얼마 후에 미자의 어머니가 병이 들자 사람이 듣고 밤에 가서 알렸다. 미자가 속이고 임금의 수레를 멍에하여(타고) 나갔다. 임금이 듣고 어질다하고 말하기를 효성스럽도다. 어머니의 일을 위하여 월형의 죄를 범하는구나!” 했다. 임금과 함께 과일나무 정원에서 노는데 미자가 복숭아를 먹어보니 달아서 다하지 않고(다 먹지 않고) 임금에게 올렸다. 임금이 말하기를 나를 아끼는구나! 그 입을 잊고 나를 생각하도다.” 했다. 미자의 아름다움이 쇠퇴함에 이르러 사랑이 줄었을 때 임금에게 죄를 지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일찍이 속이고 내 수레를 멍에 하였고(탔고) 또 일찍이 나에게 그 남은 복숭아를 먹였다.” 했다. 그러므로 미자의 행동은 처음과 변함이 없었는데 앞에서는 어질게 여겨졌고, 뒤에 죄를 얻었던 것은 사랑과 미워함의 지극한 변화이다. 그러므로 임금에게 사랑이 있으면 곧 지혜가 마땅하여 친함을 더하고 임금에게 미움을 받으면 곧 죄가 마땅하여 소원함을 더한다. 고로 간하는 말을 하는 선비는 사랑과 미워하는 임금을 살핀 후에 유세하지 않으면 안된다.

 

夫龍之為蟲也[]可擾狎而騎也然其喉下有逆鱗徑尺人有嬰則必殺人人主亦有逆鱗說之者能無嬰人主之逆鱗則幾矣[]

대저 용의 동물됨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러나 그 목구멍 아래 지름 한자의 逆鱗이 있는데 사람이 건드리면 곧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임금이 또한 역린이 있어 유세하는 자가 림금의 역린을 건드림이 없으면 곧 (유세의 성공에)가까울 것이다.

[] 正義龍蟲類也故言龍之為蟲」。

[] 正義용은 동물류이다. 그러므로 용의 동물됨이라 한 것이다.

 

[] 索隱按庶也謂庶幾於善諫說也。 正義說者能不犯人主逆鱗則庶幾矣

[] 索隱살펴보니 ()거의 이니 잘 간하고 유세함에 가까움을 말한다. 正義유세하는 자가 임금의 逆鱗을 건드리지 않으면 곧 (유세의 성공에) 가까울 것이다.

人或傳其書至秦秦王見孤憤五蠹之書:「嗟乎寡人得見此人與之游死不恨矣!」李斯曰:「此韓非之所著書也。」秦因急攻韓韓王始不用非及急迺遣非使秦秦王悅之未信用李斯姚賈害之毀之曰:「韓非韓之諸公子也今王欲并諸侯非終為韓不為秦此人之情也今王不用久留而歸之此自遺患也不如以過法誅之。」秦王以為然下吏治非李斯使人遺非藥使自殺韓非欲自陳不得見秦王後悔之使人赦之非已死矣[]

어떤 사람이 그 글을 전하여 진나라에 이르렀다. 진나라 왕이 孤憤五蠹의 글을 보고 말하기를 ! 과인이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았다면 죽어도 한하지 않을 것이다.” 했다. 李斯가 말하기를 이는 한비의 저서이다.”하니 진나라가 인하여 급히 나라를 공격하였다. 나라 왕이 처음에 한비를 등용하지 않다가 급함에 이르러 이에 한비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다. 진나라 왕이 기뻐하되 믿고 등용하지 않았다. 李斯姚賈가 그를 해치고 비방하여 말하기를 한비는 나라의 공자이다. 지금 왕이 제후를 병탄하고자 하고자 하는데 한비는 끝내 나라를 위하고 진나라를 위하지 않는 것이 이 사람의 실정이다.. 지금 왕이 등용하지 말고 오래 머물게 하다 돌려보내는 것은 이는 스스로 근심을 남기는 것이다. 법과 허물로써 죽이는 것만 같지 못하다.” 했다. 진나라 왕이 그렇다 여겨 하금 관리로 하여금 최를 다스리게 하였다. 李斯가 사람을 시켜 한비에게 약을 보내서 스스로 죽도록 하였다. 한비가 스스로 진술하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다. 진나라 왕이 후에 뉘우쳐서 사람을 시켜 그를 용서하게 하였으나 한비는 이미 죽었다.

 

[] 集解戰國策曰:「秦王封姚賈千戶以為上卿韓非短之曰:『梁監門子盜於梁臣於趙而逐取世監門子梁大盜趙逐臣與同社稷之計非所以勵群臣也。』王召賈問之賈答云云迺誅韓非也。」

[] 集解】 『戰國策에 말하기를 진나라 왕이 姚賈千戶에 봉하여 上卿으로 삼았다. 한비가 그의 단점을 말하기를 姚賈는 양나라의 문지기의 아들로 양나라에서 도적질하고 조나라에서 신하노릇하다 축출되었다. 세상이 문지기의 아들이며, 양나라의 큰 도적이고, 조나라의 축출된 신하와 사직을 같이하는 계획을 취하는 것은 여러 신하를 격려하는 까닭이 아닙니다.” 했다. 왕이 姚賈를 불러 물으니 姚賈가 여러 말을 대답했다. 이에 한비를 죽인 것이다.

申子韓子皆著書傳於後世學者多有余獨悲韓子為說難而不能自脫耳

申子(申不害)韓子(韓非子)가 모두 글을 저술하여 후세에 전하고 배우는 자가 많이 있다. 내가 유독 韓子說難(유세의 어려움)을 지었으되 스스로는 벗어나지 못함을 슬퍼할 뿐이다.

太史公曰老子所貴道虛無因應變化於無為故著書辭稱微妙難識莊子散道德放論要亦歸之自然申子卑卑[]施之於名實韓子引繩墨切事情明是非其極慘礉少恩皆原於道德之意而老子深遠矣

태사공이 말하기를 노자가 귀하게 여기는 인데 함이 없음(無爲)에 응하여 변화한다. 하기 때문에 저서의 말이 미묘하고 알기 어렵다. 장자는 도와 덕을 흩어 논함을 생각한 대로 거리낌 없이 하니 또한 자연에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申子는 명목과 실제를 베품에 스스로 면려하였다. 韓子는 먹줄을 이끌어 일의 사정을 절실히 하여 옳고 그름을 밝히니 법을 쓰는 것이 참혹하고 급하며 해석함이 매우 각박하여 은혜로움이 적었다. 모두 도덕에 근원함의 뜻이되 노자가 깊고 원대하다.

[] 集解自勉勵之意也索隱劉氏云:「卑卑自勉勵之意也。」

[] 集解스스로 면려함의 뜻이다. 索隱유씨가 말하기를 卑卑는 스스로 면려함의 뜻이다.

 

[] 集解礉胡革反用法慘急而鞠礉深刻索隱慘七感反胡革反謂用法慘急而鞠礉深刻也

[] 集解이다. 법을 씀이 참혹하고 급하며 묻고 해석함이 깊고 각박하다. 索隱이다. 이다. 살펴보니 법을 씀이 참혹하고 급하며 묻고 해석함이 깊고 각박하다.

 

索隱述贊伯陽立教清淨無為道尊東魯跡竄西垂莊蒙栩栩申害卑卑刑名有術說難極知悲彼周防終亡李斯

索隱述贊백양(노자)이 가르침을 세움은 청정과 무위이다. 도가 동쪽 노아라에 높고, 자취를 숨겨 서쪽에 드리웠도다. 장몽(장자)은 활발하고 생동감이 있고, 신해(신불해)는 면려하였다. 刑名을 두어 유세의 어려움을 지극히 잘 알았다. 슬프다. 두루 막았으되 끝내 이사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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