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五
孫子吳起列傳第五
孫子武者,齊人也。[一]以兵法見於吳王闔廬。闔廬曰:「子之十三篇,[二]吾盡觀之矣,可以小試勒兵乎?」對曰:「可。」闔廬曰:「可試以婦人乎?」曰:「可。」於是許之,出宮中美女,得百八十人。孫子分為二隊,以王之寵姬二人各為隊長,[三]皆令持戟。
손자 무는 제나라 사람이다. 병법으로써 오나라 왕 합려를 보았다. 합려가 말하기를 “그대의 13편을 내가 모두 보았다. 시험 삼아 조금 군대의 대오를 정돈하여 점검할 수 있는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했다. 합려가 말하기를 “부인으로 시험할 수 있는가?” 하니 “할 수 있습니다.” 했다. 이에 허락하고 궁중의 미녀를 내어 180명을 얻었다. 손자가 나누어 두 부대를 만들고 왕이 사랑하는 여자 2사람을 각 부대의 대장으로 삼고 모두 창을 지니게 했다.
[一] 正義魏武帝云:「孫子者,齊人。事於吳王闔閭,為吳將,作兵法十三篇。」
[一] 【正義】 위나라 무제가 말하기를 “손자는 제나라 사람이다. 오나라 왕 합려를 섬겨 오나라 장군이 되었는데 병법 13편을 지었다.
[二] 正義七錄云孫子兵法三卷。案:十三篇為上卷,又有中下二卷。
[二] 【正義】 『七錄』에 말하기를 “『孫子兵法』은 3권이다.” 했다. 살펴보니 13편은 상권이 되고 또 중, 하 2권이 있다.
[三] 索隱上音徒對反。下音竹兩反。
[三 【索隱】 위의 음은 徒와 對의 反이다. 아래의 음은 竹과 兩의 反이다.
令之曰:「汝知而心與左右手背乎?」婦人曰:「知之。」孫子曰:「前,則視心;左,視左手;右,視右手;後,即視背。」婦人曰:「諾。」約束既布,乃設鈇鉞,即三令五申之。於是鼓之右,婦人大笑。孫子曰:「約束不明,申令不熟,將之罪也。」復三令五申而鼓之左,婦人復大笑。孫子曰:「約束不明,申令不熟,將之罪也;既已明而不如法者,吏士之罪也。」乃欲斬左古隊長。吳王從臺上觀,見且斬愛姬,大駭。趣使使[四]
그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너는 가운데와 왼쪽, 오른쪽 손과 (손)등을 아는 가?” 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압니다.” 했다. 손자가 말하기를 “前하면 곧 가운데를 보고, 左하면 왼손을 보고, 右하면 오른 손을 보고 後하면 곧 (손)등을 보라.” 하니 부인이 “예” 했다. 약속을 펴고 이에 鈇鉞을 베풀고(들고) 곧 세 명령을 5번 거듭하였다. 이에 북을 치고 右하니 부인이 크게 웃었다. 손자가 말하기를 “약속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을 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이다.” 하고는 다시 세 명령을 5번 거듭하고 북을 치고 左 하니 부인이 다시 크게 웃었다. 손자가 말하기를 “약속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을 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음은 장수의 죄이나 이미 분명히 하였음에도 법과 같이 하지 않음은 吏士의 죄이다.”하고는 곧 왼쪽 古隊長을 목 베려 하였다. 오나라 왕이 臺에 올라 보고 있었는데 또한 사랑하는 여인을 목 베려는 것을 보았다. 크게 놀라 사자로 하여금 달려가게 하여
[四] 索隱趣音促,謂急也。下「使」音色吏反。
[四] 【索隱】 趣의 음은 促이니 급함을 이른다. 아래 ‘使’의 음은 色과 吏의 反이다.
下令曰:「寡人已知將軍能用兵矣。寡人非此二姬,食不甘味,願勿斬也。」孫子曰:「臣既已受命為將,將在軍,君命有所不受。」遂斬隊長二人以徇。用其次為隊長,於是復鼓之。婦人左右前後跪起皆中規矩繩墨,無敢出聲。於是孫子使使報王曰:「兵既整齊,王可試下觀之,唯王所欲用之,雖赴水火猶可也。」吳王曰:「將軍罷休就舍,寡人不願下觀。」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과인이 이미 장군이 군대를 운용할 수 있음을 보았다. 과인은 이 두 여자가 아니면 밥을 먹어도 맛이 달지 않으니 죽이지 말 것을 원한다.” 했다. 손자가 말하기를 “신이 이미 명을 받아 장수가 되었고, 장수는 군대에 있으면 임금의 명령도 받지 않는 바가 있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대장 두 사람의 목을 베어 돌렸다. 그 다음을 써서 대장으로 삼고 다시 북을 쳤다. 부인이 좌, 우, 전, 후, 꿇고, 일어나는 것이 모두 規矩(동그라미를 그리는 도구와 네모를 그리는 도구)와, 먹줄처럼 알맞아 감히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에 손자가 사자를 시켜 왕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군대가 이미 전돈되어 가지런해 졌습니다. 왕께서 시험해 볼만하니 왕께서 하고자 하는 바대로 쓸 수 있습니다. 비록 물과 불로 나아가라 하더라도 오히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오 나라 왕이 말하기를 “장군은 (군대)를 파하고 집에 나아가 쉬시오 과인은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했다.
孫子曰:「王徒好其言,不能用其實。」於是闔廬知孫子能用兵,卒以為將。西破彊楚,入郢,北威齊晉,顯名諸侯,孫子與有力焉。
손자가 말하기를 “왕은 한갓 그 말을 좋아하고 그 실제를 쓰지 못합니다.” 하니 이네 합려가 손자가 군대를 잘 운영하는 것을 알고 마침내 장군으로 삼았다. 서쪽으로는 초나라를 깨트리고 郢(초나라 수도)에 들어가고, 북쪽으로 제나라와 진나라를 위협하여 이름을 제후들 가운데 드러낸 것은 손자가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孫武既死,[一]後百餘歲有孫臏。臏生阿鄄之閒,臏亦孫武之後世子孫也。孫臏嘗與龐涓[二]俱學兵法。龐涓既事魏,得為惠王將軍,而自以為能不及孫臏,乃陰使召孫臏。臏至,龐涓恐其賢於己,疾之,則以法刑斷其兩足而黥之,欲隱勿見。
손무가 죽고 난 후 100여년에 손빈이 있다. 손빈은 阿와 鄄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손빈이 또한 손무의 후세 자손이다. 손빈이 일찍이 방연과 함께 병법을 배웠는데 방연이 이미 위나라를 섬겨서 혜왕의 장군이 되었으되 스스로 손빈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이에 몰래 사람을 시켜 손빈을 불렀다. 손빈이 이르자 방연은 그가 자기보다 현명함을 두려워하고, 그를 미워하여 법형으로써 그의 두 발을 자르고 黥刑을 가하고 숨어서 보고자 하지 않았다.
[一] 集解越絕書曰:「吳縣巫門外大冢,孫武冢也,去縣十里。」 索隱按:越絕書云是子貢所著,恐非也。其書多記吳越亡後土地,或後人所錄。 正義七錄云越絕十六卷,或云伍子胥撰。
[一] 【集解】 『越絶書』에 말하였다. “오현 무문 밖에 큰 무덤이 손무의 무덤인데 현에서 거리가 10리이다.” 【索隱】 살펴보니 『越絶書』에 이르기를 “이는 자공이 지은 바이다.” 하나 아마 잘못일 것이다, 그 글은 오나라와 월나라가 망한 후의 토지를 많이 기록하고 있어 혹 후세의 사람의 기록일 것이다. 【正義】 『七錄』에 말하기를 “『越絶』은 16권인데 혹 오자서가 편찬한 것이라 한다.”
[二] 索隱臏,頻忍反。龐,皮江反。涓,古玄反。
[二] 【索隱】 臏은 頻과 忍의 反이다. 龐은 皮와 江의 反이다. 涓은 古와 玄의 反이다.
齊使者如梁,[一]孫臏以刑徒陰見,說齊使。齊使以為奇,竊載與之齊。齊將田忌善而客待之。忌數與齊諸公子馳逐重射。孫子見其馬足不甚相遠,馬有上、中、下、輩。於是孫子謂田忌曰:「君弟重射,[二]臣能令君勝。」田忌信然之,與王及諸公子逐射千金。[三]及臨質,[四]孫子曰:「今以君之下駟與彼上駟,取君上駟與彼中駟,取君中駟與彼下駟。」既馳三輩畢,而田忌一不勝而再勝,卒得王千金。於是忌進孫子於威王。威王問兵法,遂以為師。
제나라의 사신이 양나라에 갔는데 손빈이 刑徒(형벌 받는 죄수)로써 몰래 보고 제나라 사신을 설득하였다. 제나라 사신이 기이하게 여겨 몰래 태우고 함께 제나라에 갔다. 제나라 장군 전기가 좋아하여 客으로 대우하였다. 전기가 여러 번 제나라의 여러 공자와 함께 말을 달리면서 화살을 연속으로 발사하였다. 손자가 그 말의 발이 매우 서로 멀지 않음을 보았으나, 말은 상, 중, 하의 무리가 있었다. 이에 손자가 전기에게 일러 말하기를 “임금의 동생이 활쏘기를 잘 하여도 신은 그대로 하여금 이기게 할 수 있습니다.” 했다. 전기가 믿고 그렇게 여겼다. 왕과 여러 공자가 활쏘기로 천금을 쫒았다. 맞섬(質)에 임하여 손자가 말하기를 “지금 그대의 하급 말들로써 저들의 상급 말과 함께하고, 그대의 상급 말을 취하여 그들의 중급 말과 함께하며, 그대의 중급 말과 저들의 하급 말을 함께 하게 하시오. 세 무리가 치달리기를 마치고 전기는 한 번을 이기지 못하고 두 번을 이겨 마침내 왕의 천금을 얻었다. 이에 전기가 손자를 위왕에게 천거하였다. 위왕이 병법을 묻고는 마침내 師로 삼았다.
[一] 正義今汴州。
[一] 【正義】 지금의 변주이다.
[二] 索隱弟,但也。重射謂好射也。
[二] 【索隱】 弟는 但이다. 重射는 활쏘기를 좋아함을 말한다.
[三] 正義射音石。隨逐而射賭千金。
[三] 【正義】 射의 음은 石이다. 따르고 쫒아서 활쏘기 하여 千金을 애기하는 것이다.
[四] 索隱按:質猶對也。將欲對射之時也。一云質謂堋,非也。
[四] 【索隱】 살펴보니 質은 對(상대하다)와 같다. 장차 활쏘기를 대적할 때이다. 한편 質은 堋(활터)이라 하나 아니다.
其後魏伐趙,趙急,請救於齊。齊威王欲將孫臏,臏辭謝曰:「刑餘之人不可。」於是乃以田忌為將,而孫子為師,居輜車中,坐為計謀。田忌欲引兵之趙,孫子曰:「夫解雜亂紛糾者[一]不控捲,[二]救鬥者不搏撠,[三]批亢擣虛,[四]形格勢禁,則自為解耳。[五]今梁趙相攻,輕兵銳卒必竭於外,老弱罷於內。君不若引兵疾走大梁,據其街路,衝其方虛,彼必釋趙而自救。是我一舉解趙之圍而收獘於魏也。」[六]田忌從之,魏果去邯鄲,與齊戰於桂陵,大破梁軍。
그 후 위나라다 조나라를 정벌하니 조나라가 급히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나라 위왕이 손빈을 장수로 하고자 하니 손빈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전에 형벌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안됩니다.” 했다. 이에 전기로써 장수로 삼고, 손자를 師로 삼아 치중거(군수품 실은 수레) 안에 있으면서 앉아서 계책을 내었다. 전기가 군래를 이끌고 조나라에 가고자 하니(공격하고자 하니) 손자가 말하기를 “섞여 어지럽고 시끄러운 것을 푸는 것은 당기고 말지 말아야 하고, 싸우는 자를 구하는(말리는) 것은 잡고 있어서는 안되고, 적의 요충지나 빈틈을 공격하여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하면 곧 저절로 풀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양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공격하여 가벼운 군대와 예리한 군대는 반드시 밖에서 다하고 노약자는 안에서 고달프고 지쳐 있습니다. 그대는 군대를 거느리고 빠르게 大梁으로 달려 가 그 街路를 점거하고 그 빈곳을 치면 그들이 반드시 조나라를 풀고 스스로 구원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한 번 들어 조나라의 포위를 풀고 위나라를 피폐하게(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따랐더니 위나라가 과연 邯鄲을 떠났으며, 제나라가 계릉에서 싸워 크게 위나라 군대를 깨트렸다.
[一] 索隱按:謂事之雜亂紛糾擊挐也。
[一] 【索隱】 살펴보니 일이 섞여 어지럽고, 시끄러우며, 부딪고 방해되는 것이다.
[二] 索隱按:謂解雜亂紛糾者,當善以手解之,不可控捲而擊之。捲即拳也。劉氏云「控,綜;捲,縮」,非也。
[二] 【索隱】 살펴보니 어지럽고 시끄러운 것을 푸는 것은 마땅히 손으로 그것을 푸는 것이 좋으며 잡아당기거나 쳐서는 안된다. 捲은 곧 拳이다. 유씨가 말하기를 “控(잡아당기다.)과 綜(통괄하다.)은 捲(주먹)과 縮(다스리다)이다.” 하나 잘못이다.
[三] 索隱博戟二音。按:謂救鬥者當善撝解之,無以手助相搏撠,則其怒益熾矣。按:撠,以手撠刺人。
[三] 【索隱】 博戟은 두 개(二音)의 音이다. 살펴보니 “싸움을 말리는 자는 마땅히 잘 도와서 풀어야 하고, 손으로써 서로 치고 받음을 도우면 그 노함이 더욱 치열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살펴보니 撠은 손으로써 다른 사람을 치고 찌르는 것이다.
[四] 索隱批音白結反。亢音苦浪反。按:批者,相排批也。音白滅反。亢者,敵人相亢拒也。擣者,擊也,衝也。虛者,空也。按:謂前人相亢,必須批之。彼兵若虛,則衝擣之。欲令擊梁之虛也。此當是古語,故孫子以言之也。
[四] 【索隱】 批의 음은 白과 結의 反이다. 亢의 음은 苦와 浪의 反이다. 살펴보니 批는 서로 밀치고 치는 것이니 음은 白과 滅의 反이다. 亢은 다른 사람을 대적하여 서로 막는 것이다. 擣는 치고 뒤엉키는 것이다. 虛는 빔이다. 살펴보니 “앞의 사람이 서로 밀치고 치면 반드시 그를 밀친다. 저 군대가 만액 비었다면 곧 그를 밀치고 친다. 梁의 빈 곳을 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마땅히 옛날에 이런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손자가 말한 것이다.
[五] 索隱謂若批其相亢,擊擣彼虛,則是事形相格而其勢自禁止,則彼自為解兵也。
[五] 【索隱】 만약에 서로 목구멍(급소)을(를) 치고, 그 빈 곳을 치면 곧 이 일이 형상화 되고, 서로 겨루어 그 형세가 스스로 금하고 그치니 곧 그들이 스스로 군대를 풀 것이다.
[六] 索隱謂齊今引兵據大梁之衝,是衝其方虛之時,梁必釋趙而自救,是一舉釋趙而斃魏。
[六] 【索隱】 제나라가 지금 군대를 이끌고 大梁의 요충에 의지는 것은 곧 비어있는 때를 치는 것이니 梁이 반드시 조나라(의 포위)를 풀고 스로 구할 것이니 이것이 한 번 들어 조나라(의 포위)를 풀고 위나라를 피폐하게 하는 것이다.
後十三歲,[一]魏與趙攻韓,韓告急於齊。齊使田忌將而往,直走大梁。魏將龐涓聞之,去韓而歸,齊軍既已過而西矣。孫子謂田忌曰:「彼三晉之兵素悍勇而輕齊,齊號為怯,善戰者因其勢而利導之。兵法,百里而趣利者蹶上將,[二]
그 후 13년에 위나라와 조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니 한나라가 네나라에 급함을 알렸다. 제나라가 전기를 장수로 삼아 가게 하여 곧바로 大梁에 달려가게 하였다. 위나라 장수 방연이 그것을 듣고 한나라를 떠나 돌아갔는데 제나라 군대는 이미 지나서 서쪽으로 갔다. 손자가 전기에게 말하기를 “저 三晉의 군대는 평소 사납고 용맹하여 제나라를 가볍게 여겨서 제나라가 겁낸다고 합니다. 싸움을 잘하는 자는 그 형세로 인하여 이로움을 인도합니다. 병법에 100리로 이익을 목표로 하는 자는 상장군이 꺽인다.”고 합니다.
[一] 索隱王劭〔按〕:紀年云「梁惠王十七年,齊田忌敗梁于桂陵,至二十七年十二月,齊田敗梁於馬陵」,計相去無十三歲。
[一] 【索隱】 王劭[按] 왕소를 살펴보니 『紀年』에 말하기를 “양 혜왕 17년 제나라의 전기가 양을 계릉에서 패하게 했고, 27년 12월에 이르러 제나라 전□가 마릉에서 양을 패게 했다.” 하니 서로 떨어짐을 계산하면 13년이 없다.
[二] 集解魏武帝曰:「蹶猶挫也。」 索隱蹶音巨月反。劉氏云:「蹶猶斃也。」
[二] 【集解】 위나라 무제가 말하기를 “蹶은 挫(꺽다)와 같다.” 했다. 【索隱】 蹶의 음은 巨와 月의 反이다. 유씨가 말하기를 “蹶은 斃(넘어지다, 쓰러지다)와 같다.”고 했다.
五十里而趣利者軍半至。使齊軍入魏地為十萬灶,明日為五萬灶,又明日為三萬灶。」龐涓行三日,大喜,曰:「我固知齊軍怯,入吾地三日,士卒亡者過半矣。」乃棄其步軍,與其輕銳倍日并行逐之。
50리로 이익을 따르는 자는 군대의 반이 이른다.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 땅에 들어가 10만개의 부엌을 만들게 하고 다음날에는 5만개의 부엌을 만들고 또 다음날에는 3만개를 만들게 했다. 방연이 행군한지 3일에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진실로 제나라군대가 겁내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땅에 들어간지 3일에 사졸의 도망한자가 반을 넘었다.”하고는 그 보병을 두고 그 가볍고 날랜 군대로 날을 배로 하여 쫒았다.
孫子度其行,暮當至馬陵。馬陵道陝,而旁多阻隘,可伏兵,乃斫大樹白而書之曰「龐涓死于此樹之下」。於是令齊軍善射者萬弩,夾道而伏,期曰「暮見火舉而俱發」。龐涓果夜至斫木下,見白書,乃鑽火燭之。讀其書未畢,齊軍萬弩俱發,魏軍大亂相失。龐涓自知智窮兵敗,乃自剄,曰:「遂成豎子之名!」[三]齊因乘勝盡破其軍,虜魏太子申以歸。孫臏以此名顯天下,世傳其兵法。
손자가 그 행군을 헤아리니 저녁 쯤 마릉에 이르는 것에 해당되었다. 마릉은 길이 좁고 옆이 많이 막혀서 군대를 숨겨둘만 했다. 이에 큰 마무를 베어 흰 글을 썼는데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 했다. 이에 제나라 군사 중 활을 잘 소는 자인 萬弩를 길옆에 숨기고는 약속하여 말하기를 “저녁에 불을 드는 것이 보이면 모두 (활을)쏘라.” 했다. 방연이 과연 밤에 벤 나무 아래에 이르러서 흰 글을 보고는 이에 부시로 불을 켜 비추어 보았다. 그 글을 읽기를 마치지 않아서 제나라 군대인 만노가 모두 활을 발사하니 위나라 군대가 크케 어지러워져서 서로 잃었다. 방연이 스스로 지혜는 다하고, 군대는 무너졌음을 알고 스스로 목을 찌르고는 말하기를 “마침내 豎子(孫臏)의 이름을 이루는 구나!” 했다. 제나라가 이김을 타고 그 군대를 모두 깨트리고 위나라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 돌아갔다. 손빈이 이로써 이름이 천하에 드러났으니 세상에 그의 병법이 전한다.
[三] 索隱豎子謂孫臏。
[三] 【索隱】 豎子는 孫臏을 말한다.
吳起者,衛人也,好用兵。嘗學於曾子,事魯君。齊人攻魯,魯欲將吳起,吳起取齊女為妻,而魯疑之。吳起於是欲就名,遂殺其妻,以明不與齊也。魯卒以為將。將而攻齊,大破之。
오기는 위나라 사람인데 군대 운용하기를 좋아하였다. 일찍이 증자에게서 배우고 노나라 임금을 섬겼다. 제나라 사람들이 노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가 오기를 장수로 삼고자 했는데 오기가 제나라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은 것을 노나라가 의심하였다. 오기가 이에 명예를 나아가고자 하여 마침내 그 아내를 죽여서 제나라와 함께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다. 노나라가 마침내 장군을 삼앗다. 장군으로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제나라 군대를 ) 깨트렸다.
魯人或惡吳起曰:「起之為人,猜忍人也。其少時,家累千金,游仕不遂,遂破其家,鄉黨笑之,吳起殺其謗己者三十餘人,而東出衛郭門。與其母訣,齧臂而盟曰:『起不為卿相,不復入衛。』遂事曾子。居頃之,其母死,起終不歸。曾子薄之,而與起絕。起乃之魯,學兵法以事魯君。魯君疑之,起殺妻以求將。夫魯小國,而有戰勝之名,則諸侯圖魯矣。且魯衛兄弟之國也,而君用起,則是棄衛。」魯君疑之,謝吳起。
노나라 사람 중에 어떤 이가 오기를 미워하여 말하기를 “오기의 사람됨은 의심이 많고 잔인하다. 하고 어렸을 때 집에 千金을 쌓고 다니며 벼슬하려하나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그 집을 깨트리니 마을 사람들이 그를 비웃으니 오기가 자기 옆에 있는 자 30여 사람을 죽이고 동쪽으로 위나라 성곽문을 나갔다. 그 어머니와 더불어 이별할 때 팔을 씹으면서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오기) 卿相이 되지 않으면 다시 위나라에 들어오지 않겠다.” 하고는 마침내 증자를 섬겼다. 머문지 얼마 후에 그 어머니가 죽었는데 오기가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증자가 박절하다 하여 오기와 절연하였다. 오기가 이에 노나라에 가서 병법을 배우고 노나라 임금을 섬겼다. 노나라 임금이 그를 의심하니 오기가 처를 죽이는 것으로써 장수를 구하였다. “저 노나라는 작은 나라로 전쟁에 이김의 이름이 있으면 곧 제후들이 노나라를 도모할 것이며, 또한 노나라는 위나라와 형제의 나라인데 임금이 오기를 등용하면 곧 이는 위나라를 버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했다. 노나라 임금이 그것을 의심하여 오기를 거절하였다.
吳起於是聞魏文侯賢,欲事之。文侯問李克曰:「吳起何如人哉?」李克曰:「起貪而好色,[一]然用兵司馬穰苴不能過也。」於是魏文候以為將,擊秦,拔五城。
오기가 이에 魏나라 문후가 어질다는 것을 듣고 그를 섬기고자 하였다. 문후가 이극에게 물어 말하기를 “오기는 어떠한 사람인가?” 하자 이극이 말하기를 “오기는 탐욕스럽고 여색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군대를 운용함에 는 사마양저 보다 낫습니다.” 했다. 이에 魏나라 문후가 장수로 삼고 진나라를 치게 하였는데 5개성을 함락시켰다.
[一]索隱按:王劭云:「此李克言吳起貪。下文云『魏文侯知起廉,盡能得士心』,又公叔之僕稱起『為人節廉』,豈前貪而後廉,何言之相反也?」今按:李克言起貪者,起本家累千金,破產求仕,非實貪也;蓋言貪者,是貪榮名耳,故母死不赴,殺妻將魯是也。或者起未委質於魏,猶有貪跡,及其見用,則盡廉能,亦何異乎陳平之為人也。
[一] 【索隱】 살펴보니 왕소가 말하기를 “이는 이극이 오기가 탐욕하다고 말한 것이다. 아래 글에 이르기를 ‘위나라 문후가 오기가 청렴하여 모두 병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하고 또 공숙을 따르는 이가 ‘오기를 사람됨이 절개가 있고 청렴하다.’ 말하니 어찌 앞에서는 탐욕스럽다 하고 뒤에는 청렴하다하고 어찌 말이 서로 반대되는가?” 지금 살펴보니 이극이 어기가 탐욕하다고 말한 것은 오기의 본가가 천금을 쌓았으나 벼슬을 구하다 파산하였으니 실로 탐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대개 탐욕스럽다고 하는 말은 이는 영예와 명예를 탐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죽었을 때 달려가지 않았고 아내를 죽이고 노나라의 장군이 된 것이 이것이다. 어떤 사람이 오기가 아직 위나라에 선물하지 않은 것으로 오히려 탐욕의 자취라 하였는데 그 등용됨에 이르러서는 곧 모두 청렴과 능함을 다하였으니 또한 어찌 진평의 사람됨을 다르다 할 수 있겠는가.
起之為將,與士卒最下者同衣食。臥不設席,行不騎乘,親裹贏糧,與士卒分勞苦。卒有病疽者,起為吮之。[一]卒母聞而哭之。人曰:「子卒也,而將軍自吮其疽,何哭為?」母曰:「非然也。往年吳公吮其父,其父戰不旋踵,遂死於敵。吳公今又吮其子,妾不知其死所矣。是以哭之。」
오기는 장수가 되어 사졸과 함께 옷과 음식을 같이하고 갈 때는 수레를 타지 않으며, 직접 식량을 싸서 지고 가서 사졸과 수고로움과 괴로움을 나누었다. 병졸 가운데 등창을 앓는 자가 있어 오기가 그것을 빨았다.[一] 병졸의 어머니가 듣고 곡을 하여 울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들은 병졸이고, 장군이 스스로 그 등창을 빨았는데 어찌하여 우는가?”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나간 해에 오공(오기)이 그 아버지(의 종기를) 빨았는데 그 아버지가 전투에서 발길을 돌리지(후퇴하지) 않아 마침내 적에게 죽었다. 오공이 지금 또 그 아들(의 등창을)을 빨았으니 첩(내가)이 그 죽는 장소를 날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곡하는 것이다.” 했다.
[一] 索隱吮,鄒氏音弋軟反,又才軟反。
[一] 【索隱】 吮은 추씨가 음이 弋과 軟의 反이라 하고 또한 才와 吮의 反이라 했다.
文侯以吳起善用兵,廉平,盡能得士心,乃以為西河守,以拒秦、韓。魏文侯既卒,起事其子武侯。武侯浮西河而下,中流,顧而謂吳起曰:「美哉乎山河之固,此魏國之寶也!」起對曰:「在德不在險。昔三苗氏左洞庭,右彭蠡,德義不修,禹滅之。夏桀之居,左河濟,右泰華,伊闕在其南,羊腸在其北,[一]修政不仁,湯放之。殷紂之國,左孟門,[二]右太行,常山在其北,大河經其南,修政不德,武王殺之。由此觀之,在德不在險。若君不修德,舟中之人盡為敵國也。」[三]武侯曰:「善。」
문후가 오기가 군대를 잘 운용하고, 청렴하고 공평하며, 병졸의 마음을 다 얻었다 하여 서하의 수령으로 삼아 秦과 韓나라를 막게 하였다. 魏나라 문후가 죽자 오기는 그 아들 武侯를 섬겼다. 무후가 서하에 배를 타고 내려가다 중류쯤에서 오기에게 말하기를 “아름답구나! 산하의 견고함이여 이것이 위나라의 보배이다.” 했다. 오기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덕에 달려있고 험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옛날 삼묘씨는 왼쪽에 동정이 있고, 오른 쪽에 팽려가 있었으나 덕과 의를 닦지 않아 우에게 멸망하였습니다. 하나라 걸이 사는 곳은 왼쪽에 황하와 제수가 있고, 오른 쪽에 태산과 화산이 있었고, 이수와 궐수가 그 남쪽에 있으며 양장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정사를 닦음을 덕으로 하지 않아 무왕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관찰해 보면 덕에 달려있는 것이지 험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면 배안의 사람이 모두 적국일 것입니다.” 하니 무후가 말하기를 “좋다”고 했다.
[一] 集解瓚曰:「今河南城為直之。」皇甫謐曰:「壺關有羊腸阪,在太原晉陽西北九十里。」
[一] 【集解】에 瓚이 말하기를 “지금의 하남성이 直之가 된다.” 했고, 황보밀이 말하기를 “호관에 양장판이 있으니 태원 진양 서북쪽 90리에 있다.” 고 했다.
[二] 索隱劉氏按:紂都朝歌,今孟山在其西。今言左,則東邊別有孟門也。
[二] 【索隱】 유씨를 살펴보니 “紂의 도읍은 朝歌이니 지금의 맹산이 그 서쪽에 있다. 지금 왼쪽이라 말한 것은 곧 동쪽 가에 따로 孟門이 있기 때문이다.
[三] 集解楊子法言曰:「美哉言乎!使起之用兵每若斯,則太公何以加諸!」
[三] 【集解】 양자 법언에 말하기를 “아름답구나 말이여! 오기로 하여금 군대를 운용하게 함이 매번 이 같으면 곧 태공이 무엇으로써 여기에 더할 것이 있겠는가!
(即封)吳起為西河守,甚有聲名。魏置相,相田文。[一]吳起不悅,謂田文曰:「請與子論功,可乎?」田文曰:「可。」起曰:「將三軍,使士卒樂死,敵國不敢謀,子孰與起?」文曰:「不如子。」起曰:「治百官,親萬民,實府庫,子孰與起?」文曰:「不如子。」起曰:「守西河而秦兵不敢東鄉,韓趙賓從,子孰與起?」文曰:「不如子。」起曰:「此三者,子皆出吾下,而位加吾上,何也?」
오기를 서하의 수령으로 삼으니 매우 명성이 있었다. 위나라가 재상을 두고 전문을 재상으로 삼았다. 오기가 기뻐하지 않고 전문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와 공을 논하기를 청하는데 할 수 있습니까?” 전문이 말하기를 “할 수 있다.” 했다. 오기가 말하기를 “三軍을 거느리고 士卒로 하여금 죽기를 즐겨하게 하며, 적국이 감히 도모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대와 나는 누가 나은가?” 하니 전문이 “(나는) 그대와 같지 못하다.(그대보다 못하다.)” 했다. 오기가 말하기를 “배관을 다스리고 만백성과 친하며 창고를 채움에 있어서 그대 와 나는 누가 나은 가?” 하니 전문이 말하기를 “그대만 못하다.” 했다. 오기가 말하기를 “서하를 지켜서 진나라 군대가 감히 동쪽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 조나라가 복종하게 하였으니 그대 와 나는 누가 나은가?” 전문이 말하기를 “그대보다 못하다.” 하였다. 오기가 말하기를 “이 3가지는 그대가 모두 내 아래에서 나왔으되 지위는 내 위를 더하였으니 왜인가?” 하였다.
文曰:「主少國疑,大臣未附,百姓不信,方是之時,屬之於子乎?屬之於我乎?」起默然良久,曰:「屬之子矣。」文曰:「此乃吾所以居子之上也。」吳起乃自知弗如田文。
전문이 말하기를 “임금이 어려 나라는 의심받고, 대신은 붙지 않으며, 백성은 믿지 않는 이러한 때를 당하여 그대에게 부탁하겠는가? 나에게 부탁하겠는가?” 하니 오기가 말없이 오래 그렀게 있다가 말하기를 “그대에게 부탁할 것이다.” 했다. 전문이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그대의 위에 있는 이유이다.” 했다. 오기가 이에 자신이 전문보다 못함을 알았다.
[一] 索隱按:呂氏春秋作「商文」。
[一] 【索隱】 살펴보니 『呂氏春秋』에는 ‘商文’이라고 썼다.
田文既死,公叔為相,[一]尚魏公主,而害吳起。公叔之僕曰:「起易去也。」公叔曰:「柰何?」其僕曰:「吳起為人節廉而自喜名也。君因先與武侯言曰:『夫吳起賢人也,而侯之國小,又與彊秦壤界,臣竊恐起之無留心也。』武侯即曰:『柰何?』君因謂武侯曰:『試延以公主,起有留心則必受之。無留心則必辭矣。以此卜之。』君因召吳起而與歸,即令公主怒而輕君。吳起見公主之賤君也,則必辭。」於是吳起見公主之賤魏相,果辭魏武侯。武侯疑之而弗信也。吳起懼得罪,遂去,即之楚。
전문이 죽고 공숙이 재상이 되어 위나라 공주와 혼인하고 오기를 해치려 하였다. 공숙의 종(아랫 사람)이 말하기를 “오기는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했다. 공숙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는가?” 하자 그 종이 말하기를 “오기의 사람됨은 절개가 있고 청렴하여 스스로 명예를 기뻐(좋아)합니다.” 그대가 인하여 먼저 무후에게 말하기를 “오기는 賢人입니다. 무후의 나라가 적고 또 강한 秦과 땅을 경계하였으니 신은 저으기 오기의 마음을 머물게 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하면 무후가 곧 말하기를 “어떻게 하는가?” 할 것이니 그대는 무후에게 말하기를 “시험 삼아 공주로써 혼인하게 하면 오기가 머물 마음이 있으면 곧 반드시 받을 것이고 머물 마음이 없으면 곧 반드시 사양할 것이니 이것으로써 점칠 수 있습니다.” 하고는 오기를 불러서 같이 돌아가 공주를 노하게 하여 그대를 경시하게 합니다. 오기는 공주가 군대를 천대하는 것을 본다면 곧 반드시 사양할 것입니다. 이에 오기가 위나라 재상을 천시하는 것을 보고는 과연 위나라 무후를 사양하였다. 무후가 그것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다. 오기가 죄를 얻을 거을 두려워 하여 마침내 떠나 곧 초나라로 갔다.
[一] 索隱韓之公族。
[一] 【索隱】 한나라의 공족이다.
楚悼王素聞起賢,至則相楚。明法審令,捐不急之官,廢公族疏遠者,以撫養戰鬥之士。要在彊兵,破馳說之言從橫者。於是南平百越;北并陳蔡,卻三晉;西伐秦。諸侯患楚之彊。故楚之貴戚盡欲害吳起。及悼王死,宗室大臣作亂而攻吳起,吳起走之王尸而伏之。擊起之徒因射刺吳起,并中悼王。[一]悼王既葬,太子立,[二]乃使令尹盡誅射吳起而并中王尸者。坐射起而夷宗死者七十餘家。
초나라 도왕이 평소 오기가 현명하다는 것을 들었는데 (오기가) 이르자 초나라를 돕게 했다. 법을 밝히고 명령을 자세히 하며, 급하지 않음 관직을 버리고(폐지하고) 公族 가운데 소원한 자를 폐하며, 전투에 참여한 병사를 어루만지고 길렀다. 요점은 강한 군대와 달려와 유세의 말을 종횡으로 하는 자를 물리치는 것에 있다. 이에 남쪽으로 백월을 평정하고, 북쪽으로 陳과 蔡나라를 아우르고, 三晉을 물리치며 서쪽으로는 秦을 치는 것이었다. 제후들이 초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 하였다. 그러므로 초나라의 貴戚(벼슬이 높은 이와 임금의 인척)이 모두 오기를 해치려하였다. 도왕이 죽음에 이르러 종실과 대신들이 난을 이으켜 오기를 공격하니 오기가 달아나 왕의 시신에게 가서 숨었다. 오기를 치는 무리들이 인하여 오기에게 활을 쏘고 찔렀는데 아울러 도왕에게 적중되었다. 도왕을 장례하고 태자가 즉위하여 영윤으로 오기를 쏘면서 왕의 시신을 적중시킨 자를 모두 죽이게 했다. 오기를 쏘는 것에 연루되어 宗族을 멸하고 죽음을 당한 자가 70여 家였다.
[一] 索隱楚系家悼王名疑也。
[一] 【索隱】 초나라 가계에 도왕의 이름은 疑이다.
[二] 索隱肅王臧也。
[二] 【索隱】 숙왕 장이다.
太史公曰:世俗所稱師旅,皆道孫子十三篇,吳起兵法,世多有,故弗論,論其行事所施設者。語曰:「能行之者未必能言,能言之者未必能行。」孫子籌策龐涓明矣,然不能蚤救患於被刑。吳起說武侯以形勢不如德,然行之於楚,以刻暴少恩亡其軀。悲夫!
태사공이 말하였다. “세속에서 말하는 바의 군대는 『孫子』 13편을 말하고, 오기의 병법은 세상에 많이 있다. 그러므로 논하지 않고, 그 일을 행하여 베푸는 바를 논하였다.” 『論語』에 말하기를 “잘 행하는 자가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 하는 자가 반드시 잘 행하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 孫子가 방연에게 계책을 꾀하였던 것은 밝은 것이다. 그러나 형벌을 당함에 일찍이 구할 수 없었다. 오기가 무후에게 유세하기를 형세로써 하는 것은 德보다 못하였으면서 초나라에서 그것을 행함에는 각박하고 사납게 하고 은혜를 베품이 적어 그 몸을 망쳤으니 슬프다!
【索隱述贊】孫子兵法,一十三篇。美人既斬,良將得焉。其孫臏腳,籌策龐涓。吳起相魏,西河稱賢;慘礉事楚,死後留權。
【索隱述贊】 손자병법은 13편이다. 미인을 베고 좋은 장수를 얻었다. 손빈은 다리를 잃고 방연을 죽일 계책을 썼다. 오기는 위나라를 돕고 서하는 어짐을 칭찬하였는데 참혹하고 단단하게 초나라를 섬기다 죽은 후에 권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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