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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64 사마양저 열전 제4

by 최인표 2018. 4. 13.

史記卷六十四

司馬穰苴列傳第四 

 

司馬穰苴[]田完之苗裔也齊景公時晉伐阿[]而燕侵河上[]齊師敗績景公患之晏嬰乃薦田穰苴曰:「穰苴雖田氏庶孽然其人文能附眾武能威敵願君試之。」

사마양저는 田完의 후예이다. 제나라 경공 때 나라가 을 정벌하는데 연나라가 황하 남쪽을 침략하여 제나라가 패하였다. 경공이 그것을 근심하였다. 안영이 이에 전양저를 추천하여 말하기를 양저가 비록 전씨의 서얼이나 그 사람의 은 여러 사람을 붙일 만하고 는 적을 두렵게 할수 있으니 임금께서 그를 시험하기를 원합니다.” 했다.

 

[] 索隱按穰苴田氏之族為大司馬故曰司馬穰苴正義穰音若羊反苴音子徐反田穰苴為司馬官主兵

[] 索隱살펴보니 양저는 이름이고, 전씨의 족속이니 대사마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마양저라 한 것이다. 正義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전양저가 사마의 관이 되어 군대를 주관한 것이다.

 

[] 索隱按甄皆齊邑晉太康地記曰阿即東阿也」。地理志云甄城縣屬濟陰也

[] 索隱살펴보니 은 모두 제나라의 읍이다. 나라 太康地記는 곧 東阿이다.” 했다. 地理志견성현은 濟陰에 속한다.” 했다.

 

景公召穰苴與語兵事大說之以為將軍[]將兵扞燕晉之師穰苴曰:「臣素卑賤君擢之閭伍之中加之大夫之上士卒未附百姓不信人微權輕願得君之寵臣國之所尊以監軍乃可。」

경공이 양저를 불러 함께 군대의 일을 말해보고는 크게 기뻐하여 장군으로 삼으니 군대를 거느리고 연나라와 진나라의 군대를 막았다. 양저가 말하기를 신은 평소 비천한데도 임금이 군대의 안에 발탁하여 대부의 윗자리를 더하였는데 사졸은 붙지 않고 백성은 믿지 않으니 사람들은 미미하고 권세는 가볍습니다. 원하건데 임금의 총애하는 신하를 얻고, 나라의 높은 바로써 군대를 감독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했다.

[] 正義河上黃河南岸地即滄德二州北界

[] 正義河上은 황하의 남쪽 물가이니 곧 창주, 덕주 2주의 북쪽 경계이다.

[] 索隱謂命之為將以將軍也將音即匠反遂以將軍為官名故尸子曰十萬之師無將軍則亂」。六國時有其官

[] 索隱장군으로 명하여 장군이 됨을 말한 것이다. 의 음은 이니 마침내 장군으로써 관명을 삼았다. 그러므로 尸子가 말하기를 십만의 군대는 장군이 없으면 곧 어지러워진다.” 했다. 六國시대에 그 관직이 있었다.

 

於是景公許之使莊賈往穰苴既辭與莊賈約曰:「旦日日中會於軍門。」[]穰苴先馳至軍立表下漏[]待賈賈素驕貴以為將己之軍而己為監不甚急[]親戚左右送之留飲日中而賈不至穰苴則仆表決漏[]行軍勒兵申明約束約束既定夕時莊賈乃至

이에 경공이 허락하니 장가로 하여금 가게 했다. 양저가 이미 말을 하고는 장가와 함께 약속하여 말하기를 내일 정오 때 때 군문에서 만나자.”고 했다. 양저가 먼저 말을 달려 군대에 이르러 (시각을 재는)나무를 세우고, 물로 시각을 재어 표시하고는 장가를 기다렸다. 장가가 평소에 교만하고 귀하게 여겨 자기의 군대를 거느리고 자기가 감독한다. 여겨서 매우 급히 하지 않고, 친척과 좌우가 그를 송별하는 자리에 머물러 술을 마셨다. 정오임에도 장가가 이르지 않았다. 양저가 곧 표시한 나무와 물로 시각을 재는 기구를 눕히고 들어가 군대를 움직이고, 병사를 다스려 약속을 거듭 밝혔다. 약속이 이미 정해지고 저녁 때 장가가 이르렀다.

 

[] 索隱按旦日謂明日日中時期會於軍門也

[] 索隱살펴보니 旦日은 다음 날을 말한다. 정오에 군문에서 만나기를 기약한 것이다.

 

[] 索隱按立表謂立木為表以視日景下漏謂下漏水以知刻數也

[] 索隱살펴보니 立表는 나무를 세워 표시하는 것으로써 햇빛을 보는 것이다. 下漏는 물을 아래로 새 나오게 하여 그 시각의 수를 아는 것이다.

[] 正義己音紀甲暫反

[] 正義의 음은 이다. 이다.

 

[] 索隱仆音赴仆者臥其表也決漏謂決去壼中漏水以賈失期過日中故也

[] 索隱의 음은 이다. 살피건데 는 그 표시를 눕히는 것이다. 決漏는 단지 안의 물을 새게하는 것이다. 장가가 약속을 어겨 정오가 지났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穰苴曰:「何後期為?」賈謝曰:「不佞大夫親戚送之故留。」穰苴曰:「將受命之日則忘其家臨軍約束則忘其親援枹[]鼓之急則忘其身今敵國深侵邦內騷動士卒暴露於境君寢不安席食不甘味百姓之命皆懸於君何謂相送乎!」召軍正問曰:「軍法期而後至者云何?」

양저가 어찌하여 기약함에 늦었습니까?” 하니 장가가 사과하며 말하기를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와 친척이 송별하였기 때문에 늦었습니다.” 했다. 양저가 말하기를 장수가 명을 받은 날은 곧 그 집을 잊습니다. 군대에 임하여 약속은 곧 그 어버이를 잊고, 북채를 당겨 북믈 침이 급하면 그 몸을 잊습니다. 지금 적국이 깊이 침략하여 나라 안이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사졸이 경계에 드러났고, 임금은 잠을 펴안한 자리에서 자지 않으며, 밥은 맛이 달지 않고, 백성의 목숨이 모두 그대에게 달려있는데 어찌 서로 송별함을 말하는가!” 하고는 군정을 불러 묻기를 군법에 기약하여 늦게 이르는 자는 어떻게 하는가?” 했다.

[] 索隱上音袁下音孚。 正義援」。枹音孚謂鼓挺也

[] 索隱위의 음은 이고, 아래의 음은 이다. 正義라 썼다. 는 음이 이니 북채를 말한다.

 

對曰:「當斬。」莊賈懼使人馳報景公請救既往未及反於是遂斬莊賈以徇三軍三軍之士皆振慄久之景公遣使者持節赦賈馳入軍中穰苴曰:「將在軍君令有所不受。」[]問軍正曰:「馳三軍法何?」正曰:「當斬。」使者大懼穰苴曰:「君之使不可殺之。」乃斬其僕車之左駙馬之左驂[一一]以徇三軍[一二]遣使者還報然後行

대답하기를 머리를 벰에 해당합니다.” 했다. 장가가 두려워하여 사람을 시켜 말을 달려 경공에게 보고하고 구해 줄 것을 청하였다. 가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에 마침내 장가의 머리를 베어 삼군에 돌렸다. 삼군의 군사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얼마 후 경공이 사자에게 지절을 주어 보내 장가를 용서하게 하니 말을 달려 군중에 들어갔다. 양저가 말하기를 장수가 군대 안에 있을 때 임금의 령도 받지 않는 바가 있다.”하고는 군정에게 물어 말하기를 삼군에서 말을 달리는 법은 어떠한가?” 군정이 말하기를 목을 벰에 해당합니다.” 했다. 사자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양저가 말하기를 임금의 사자를 죽일 수는 없다하고는 그 종과 수레의 양쪽 가장자리에 덧댄 나무와 말의 왼쪽 말을 베고는 삼군을 돌아다니게 하였다. 보낸 사자는 돌아가 보고하게 한 후 갔다.

 

[] 集解魏武帝曰:「苟便於事不拘君命。」

[0] 集解위나라 무제가 말하기를 만일 일에 편하다면 임금의 명에 구애 받지 않는다.” 했다.

 

 

 

[一一] 索隱按謂斬其使者之僕及車之左駙當作」,並音附謂車循外立木承重較之材又斬其馬之左驂以御者在左故也正義軵音附劉伯莊云:「駙者箱外之立木承重校者。」

[一一] 索隱살피건데 그 사자의 종과 수레의 왼쪽에 붙인 것을 베는 것을 말한다. 는 마땅히 라고 써야 하고, 나란히 음은 이니 수레 밖을 따라 세운 나무를 말하니 수레 옆의 가로대 무게를 받치는 재목이다. 또 그 말의 왼쪽 참마를 벤 것은 마부가 왼쪽에 있기 때문이다. 正義의 음은 이다. 유백장이 말하기를 는 상자 밖의 세운 나무로 수레 옆의 가로대 무게를 받치는 것이다.” 했다.

 

[一二] 正義徇行示也

[一二] 正義은 가서 보이는 것이다.

士卒次舍井灶飲食問疾醫藥身自拊循之悉取將軍之資糧享士卒身與士卒平分糧食最比[一三]其羸弱者三日而後勒兵病者皆求行爭奮出為之赴戰晉師聞之為罷去燕師聞之度水而解[一四]於是追擊之遂取所亡封內故境而引兵歸未至國釋兵旅解約束誓盟而後入邑景公與諸大夫郊迎勞師成禮然後反歸寢既見穰苴尊為大司馬田氏日以益尊於齊

막사와 부엌, 음식, 질병의 위문, 의약을 몸소 스스로 어루만지고 따랐다. 모두 장군의 비용과 식량을 취하여 士卒을 대접하고, 자신은 사졸과 양식을 고르게 나누었는데 가장 병약한 자에 견주었다. 삼일이 지난 후 군대를 다스리니 병든 자들이 모두 가기를 구하여 다투어 분발하여 나가 싸움에 달려 나갔다. 진나라 군대가 그것을 듣고 군대를 거두어 갔다. 연나라 군대가 그것을 듣고 물을 건너 풀었다. 이에 추격하여 마침내 잃었던 바의 영역 안의 옛 경계를 취하여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나라에 이르지 않아서 군대를 풀고(해산하고), 약속을 풀어 맹서한 후 읍에 들어갔다. 경공이 여러 대부들과 교외에서 맞이하여 군사들을 위로하는 예를 이룬 후 돌아가 쉬게 했다. 양저를 보고 높여서 대사마를 삼았다. 전씨가 날로 더욱 제나라에서 높아졌다.

[一三] 正義比音必耳反

[一三] 正義의 음은 () 이다.

 

[一四] 正義度黃河水北去而解

[一四] 正義황하의 물을 건너 북쪽으로 가서 푼 것이다.

 

已而大夫鮑氏國之屬害之譖於景公景公退穰苴苴發疾而死田乞田豹之徒由此怨高國等其後及田常殺簡公盡滅高子國子之族至常曾孫和因自立為齊威王,〔用兵行威大放穰苴之法,〔而諸侯朝齊

그 후 대부 포씨, 고씨, 국씨의 등속이 그를 해쳐서 경공에게 참소하였다. 경공이 양저를 물리니 양저가 병이 나서 죽었다. 전걸, 전표의무리가 이로 말미암아 고씨, 국씨 등을 원망하였다. 그 후 정상이 간공을 죽임에 이르러 고자, 국자의 족속을 모두 없앴다. 전상의 증손 화에 이르러 스스로 제 나라 위왕을 세움으로 인하여 군대를 쓰는 것과 위엄을 행하면서 크게 양저의 법을 따라서 제후들이 제나라에 조회하였다.

[] 索隱田乞田僖子也豹亦僖子之族

[] 索隱전걸은 전희의 아들이다. 표가 또한 희의 자식의 피붙이이다.

 

[] 索隱按此文誤也當云田和自立至其孫因號為齊威王故系家云田和自立號太公其孫因齊號為威王

[] 索隱살피건데 이 글은 잘못이다. 마땅히 전화가 스스로 지위에 올랐는데 그 손자에 이르러 제나라 위왕이라 이름하였다.’ 해야 한다. 그러므로 系家에서 전화가 자립하여 태공이라 이름하고 그 손자가 제나라로 인하여 위왕이라 이름 한 것이다.

 

[] 正義放方往反

[] 正義이다.

 

齊威王使大夫追論古者司馬兵法而附穰苴於其中因號曰司馬穰苴兵法

제나라 위왕이 대부로 하여금 옛날 사마병법을 추론하게 하여 그 안에 양저를 붙이고 사마양저병법이라 했다.

太史公曰余讀司馬兵法閎廓深遠雖三代征伐未能竟其義如其文也亦少褒矣[]若夫穰苴區區為小國行師何暇及司馬兵法之揖讓乎世既多司馬兵法以故不論著穰苴之列傳焉

태사공이 말한다. 내가 司馬兵法을 읽어보니 안팎으로 넓고 깊어 비록 삼대의 정벌로도 끝내 그 뜻을 다하지 못하나 그 글은 또한 조금 기릴만 한 듯하다. 만약 저 양저가 사소한 소국을 위하여 군대를 움직였으니 어찌 어느 겨를에 사마병법의 예를 갖추어 양보하는 삼대의 법에 미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이미 사마병법이 많으므로 논평하지 않고, 양저의 열전에 드러내었다.

[] 索隱按謂司馬法說行兵揖讓有三代之法而齊區區小國又當戰國之時故云亦少褒矣」。

[] 索隱살피건데 사마법은 군대를 움직이는 것을 설명한 것을 이른다. 揖讓은 삼대에 있었던 법이고, 제나라는 자질구레한 소국이니 또한 전국시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또한 조금 기릴만하다.”고 한 것이다.

索隱述贊燕侵河上齊師敗績嬰薦穰苴武能威敵斬賈以徇三軍驚惕我卒既彊彼寇退壁法行司馬實賴宗戚

索隱述贊연나라가 항하의 위쪽을 침략하고 제나라는 패하였다. 안영이 양저를 천거하니 무위가 적을 두렵게 하였다. 장가를 베어 돌리니 삼군이 놀라고 두려워 하였다. 우리군대가 이미 강하니 저 도적이 벽에 물러나도다. 사마를 법대로 행하니 실로 종척이 의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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