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六
伍子胥列傳第六
伍子胥者,楚人也,名員。員父曰伍奢。員兄曰伍尚。其先曰伍舉,以直諫事楚莊王,[一]有顯,故其後世有名於楚。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니 이름은 員이다. 員의 아버지는 오사이며, 원의 형은 오상이다. 그 선조는 오거인데 곧게 간하는 것으로써 초나라 장왕을 섬겼는데 (이름이) 드러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후예들이 초나라에 명망이 있었다.
[一] 索隱按:舉直諫,見左氏、楚系家。
[一] 【索隱】 살펴보니 擧는 直諫임은 좌씨와 楚系家에 보인다.
楚平王有太子名曰建,使伍奢為太傅,費無忌[一]為少傅。無忌不忠於太子建。平王使無忌為太子取婦於秦,秦女好,無忌馳歸報平王曰:「秦女絕美,王可自取,而更為太子取婦。」平王遂自取秦女而絕愛幸之,生子軫。更為太子取婦。
초나라 평왕의 태자 이름은 건인데 오사로 하여금 태부를 삼고, 비무기를 소부로 삼았다. 비무기가 태자 건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평왕이 비무기로 하여금 태자를 위해 진나라에서 부인(며느리)을 취하게(데려오게) 하였는데, 진아라 여자가 훌륭하였다.(미인이었다.) 비무기가 말을 달려 돌아와 평왕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진나라 여자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왕께서 스스로 취하고 다시 태자 건을 위해 부인을 취할 수 있습니다.” 했다. 평왕이 마침내 스스로 진나라 여자를 취하여 매우 사랑하였는데 아들 軫을 낳았다. 다시 태자를 위해 부인을 취하였다.
[一] 索隱按:左傳作「費無極」。
[一] 【索隱】 살펴보니 좌전에는 “費無極”이라고 썼다.
無忌既以秦女自媚於平王,因去太子而事平王。恐一旦平王卒而太子立,殺己,乃因讒太子建。建母,蔡女也,無寵於平王。平王稍益疏建,使建守城父,[一]備邊兵。
비무기가 이미 진나라 여자로써 스스로 평왕에게 아첨하고 인하여 태자를 떠나 평왕을 섬겼다. 하루아침에(언제고) 평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면 자신을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태자 건을 참소하였다. 건의 어머니는 채나라 여자였는데 평왕에게 사랑받지 못하였다. 평왕이 점점 더 건을 멀리하여 건으로 하여금 城父(성보)를 지키게 하고 변경의 군대를 대비하게 하였다.
[一] 集解地理志潁川有城父縣。索隱本陳邑,楚伐陳而有之。地理志潁川有城父縣。
[一] 【集解】 「地理志」에 潁川에 城父縣이 있다. 【索隱】 본래 陳 나라의 읍인데 초나라가 진나라를 정벌하고 그것을 소유 하였다. 「地理志」에 潁川에 城父縣이 있다고 한다.
頃之,無忌又日夜言太子短於王曰:「太子以秦女之故,不能無怨望,願王少自備也。自太子居城父,將兵,外交諸侯,且欲入為亂矣。」平王乃召其太傅伍奢考問之。伍奢知無忌讒太子於平王,因曰:「王獨柰何以讒賊小臣疏骨肉之親乎?」無忌曰:「王今不制,其事成矣。王且見禽。」於是平王怒,囚伍奢,而使城父司馬奮揚[一]往殺太子。行未至,奮揚使人先告太子:「太子急去,不然將誅。」太子建亡奔宋。
얼마 후 비무기가 또 밤낮으로 태자의 단점을 평왕에게 말하기를 “태자가 진나라 여자의 일 때문에 원망이 업을 수 없습니다. 왕께서는 조금 스스로 배비하기를 원합니다. 태자가 성보에 살면서부터 군대를 거느리고, 밖의 제후들과 사귀고, 또 들어와 난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했다. 평왕이 이에 그 태부 오사를 불러서 자세히 물었다. 오사는 비무기가 태자를 평왕에게 참소했음을 알고는 말하기를 “왕께서는 유독 어찌하여 참적인 소신 때문에 骨肉의 親을 멀리하십니까?” 했다. 비무기가 말하기를 “왕께서 지금 제제하지 않으면 그 일(난을 일으키는 일)이 이루어져서 왕께서는 또한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했다. 이에 평왕 노하여 오사를 가두고 성보의 司馬奮揚으로 하여금 가서 태자를 죽이게 했다. 가는 것이 이르지 않아서 사마분양이 사람을 시켜 먼저 태자에게 알리기를 “태자가 급하게 떠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했다. 태자 건이 도망하여 송나라로 달아났다.
[一] 索隱城父司馬之姓名也。
[一] 【索隱】 성보의 司馬의 성명이다.
無忌言於平王曰:「伍奢有二子,皆賢,不誅且為楚憂。可以其父質而召之,不然且為楚患。」王使使謂伍奢曰:「能致汝二子則生,不能則死。」伍奢曰:「尚為人仁,呼必來。員為人剛戾忍卼,[一]能成大事,彼見來之并禽,其勢必不來。」王不聽,使人召二子曰:「來,吾生汝父;不來,今殺奢也。」伍尚欲往,員曰:「楚之召我兄弟,非欲以生我父也,恐有脫者後生患,故以父為質,詐召二子。二子到,則父子俱死。何益父之死?往而令讎不得報耳。不如奔他國,借力以雪父之恥,俱滅,無為也。」
비무기가 평왕에게 말하기를 “오사는 두 아들이 있는데 모두 현명하니 죽이지 않으면 또한 초나라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그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를 부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또한 초나라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했다. 왕이 사자를 시켜 오사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의 두 아들을 이르게 할 수 있으면 살 것이고, 하지 못하면 죽을 것이다.” 했다. 오사가 말하기를 “오상은 사람됨이 어질어 부르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원은 사람됨이 강건하고 사나우며, 위태로움을 참아서 大事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는 오면 나란히(함께) 잡힘을 알 것이니 그 형세가 반드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왕이 듣지 않고 사람을 시켜 두 아들을 부르면서 말하기를 “오면 너의 아버지를 살려 줄 것이고, 오지 않으면 지금 오사를 죽일 것이다.” 했다. 오상이 가고자 하니 오원이 말하기를 “초나라가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벗어나는(도망하는 자가 있어) 자가 있어 후에 근심을 낳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거짓으로 두 아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했다. 두 아들이 이르면 곧 함께 죽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도움이 있겠습니까? 가면 원수를 갚지 못할 뿐입니다. 다른 나라로 달아나서 힘을 빌려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씻는 것이 모두 죽어 (아무것도)할 수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一] 集解音火候反。 索隱鄒氏云:「一作『詬』,罵也,音逅。」劉氏音火候反。
[一] 【集解】 음은 火와 候의 反이다. 【索隱】 추씨가 말하기를 “한편으로 ‘詬’라 적었으니 꾸짖음이다. 음은 逅(후)이다.”했다. 유씨는 음은 “火와 候의 反이다.” 했다.
伍尚曰:「我知往終不能全父命。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後不能雪恥,終為天下笑耳。」謂員:「可去矣!汝能報殺父之讎,我將歸死。」尚既就執,使者捕伍胥。伍胥貫弓[二]執矢嚮使者,使者不敢進,伍胥遂亡。聞太子建之在宋,往從之。奢聞子胥之亡也,曰:「楚國君臣且苦兵矣。」伍尚至楚,楚并殺奢與尚也。
오상이 말하기를 “나는 가서 아버지의 목숨을 온전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자. 그러나 원통(억울)한 아버지가 나를 불러서 삶을 구하려는데 가지 않는다면 뒤에 복수할 수 없어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하고는 오원(오자서)에게 말하기를 “가라! 너는 아버지를 죽임의 원수를 갚아라. 나는 돌아가 죽을 것이다.” 했다. 오상이 잡히자 사자가 오서를 잡으려 했다. 오서가 활을 잡아당겨 화살을 재우고 사자를 향하자(겨누자) 사자가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오서가 마침내 도망하였다. 태자 건이 송나라에 있음을 듣고는 가서 그를 따랐다. 오사가 오자서의 도망함을 듣고 말하기를 “노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또한 군사를 괴로워해야 할(전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했다. 오상이 노나라에 이르자 초나라가 오사와 오상을 함께 죽였다.
[二] 集解貫,烏還反。索隱劉氏音貫為彎,又音古患反。貫謂滿張弓。
[二] 【集解】 貫은 烏와 還의 反이다. 【索隱】 유씨는 貫을 발음하여 彎이라 하고, 또 음을 古와 患의 反이라 했다. 貫은 활을 가득 잡아당기는 것을 말한다.
伍胥既至宋,宋有華氏之亂,[一]乃與太子建俱奔於鄭。鄭人甚善之。太子建又適晉,晉頃公曰:「太子既善鄭,鄭信太子。太子能為我內應,而我攻其外,滅鄭必矣。滅鄭而封太子。」太子乃還鄭。事未會,會自私欲殺其從者,從者知其謀,乃告之於鄭。鄭定公與子產誅殺太子建。建有子名勝。伍胥懼,乃與勝俱奔吳。到昭關[二],昭關欲執之。伍胥遂與勝獨身步走,幾不得脫。追者在後。至江,江上有一漁父乘船,知伍胥之急,乃渡伍胥。伍胥既渡,解其劍曰:「此劍直百金,以與父。」父曰:「楚國之法,得伍胥者賜粟五萬石,爵執珪,豈徒百金劍邪!」不受。伍胥未至吳而疾,止中道,乞食。[三]至於吳,吳王僚方用事,公子光為將。伍胥乃因公子光以求見吳王。
오서가 송나라에 이르렀는데 송나라에 화씨의 난이 있어 태자 건과 함께 정나라로 달아났다. 정나라 사람들이 매 우 잘 대해 주었다. 태자 건이 또 晉나라에 가니 진나라 경공이 말하기를 “태자는 곧 정나라가 잘 대우(친하고)하고 정나라는 태자를 믿습니다. 태자는 나를 위하여 안에서 응하고 나는 밖에서 공격하면 정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정나라를 멸망시키고 태자를 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태자가 이에 정나라로 돌아갔다. 일을 만나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사사로이 그 따르는 자를 죽이고자 함을 만나 종자가 그 꾀함을 알고는 정나라에 그것을 알렸다. 정나라 정공과 자산이 태자 건을 죽였다. 건에게는 아들 명승이 있었다. 오서가 두려워하여 명승과 함께 오나라로 달아났다. 소관에 이르자 소관이 그들을 잡고자 했다. 오서가 명승과 함께 홀몸으로 걸어 달아났으나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추격하는 자가 뒤에 있었다. 강에 이르자 강 위에 한 어부가 배를 타고 있다가 오서의 급함을 알고 이에 오서를 건너게 해 주었다. 오서가 강을 건너고는 그 검을 풀어 말하기를 “이 검이 바로 백금인데 아버지가 준 것입니다.” 어부가 말하기를 “초나라의 법에 오서를 얻은(잡은) 자는 곡식 오만 석과 珪를 잡은 爵을 준다고 하였는데 어찌 한갓 백금 검이겠는가?” 하고는 받지 않았다. 오서가 오나라에 이르지 않아서 병이 나니 중간에 머물러 먹을 것을 구걸하였다. 오나라에 이르니 오왕 료가 막 일을 쓰면서 공자 광을 장군에 임명하였다. 오서가 이에 공자 광을 통하여 오나라 왕을 알현할 것을 구하였다.
[一] 索隱春秋昭二十年,宋華亥、向寧、華定與君爭而出奔是也。
[一] 【索隱】 『춘추』에 소왕 20년에 송나라 화해, 향녕, 화정과 임금이 다투다 나가 달아난 것이 이것이다.
[二] 索隱其關在江西、乃吳楚之境也。
[二] 【索隱】 그 관은 강서에 있으니 곧 오나라와 초나라의 경계이다.
[三] 集解張勃曰:「子胥乞食處在丹陽溧陽縣。」 索隱按:張勃,晉人,吳鴻臚嚴之子也,作吳錄,裴氏注引之是也。溧音栗,水名也。
[三] 【集解】 장발이 말하기를 “자서가 걸식했던 곳은 단양 표양현에 있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장발은 晉나라 사람이니 오나라 홍려엄의 아들이다. 『吳錄』을 지었는데 배씨가 주에 인용한 것이 이것이다. 溧의 음은 栗인데 물 이름이다.
久之,楚平王以其邊邑鍾離與吳邊邑卑梁氏俱蠶,兩女子爭桑相攻,乃大怒,至於兩國舉兵相伐。吳使公子光伐楚,拔其鍾離、居巢而歸。[一]伍子胥說吳王僚曰:「楚可破也。願復遣公子光。」公子光謂吳王曰:「彼伍胥父兄為戮於楚,而勸王伐楚者,欲以自報其讎耳。伐楚未可破也。」伍胥知公子光有內志,欲殺王而自立,未可說以外事,乃進專諸[二]於公子光,退而與太子建之子勝耕於野。
얼마 후 초나라 평왕 때 그 변경의 읍인 종리와 오나라 변경의 읍인 비양씨가 함께 누에를 쳤는데 두 여자가 뽕을 다투어 서로 공격하니 (평왕이)크게 노하여 두 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서로 정벌함에 이르렀다. 오나라가 공자 광으로 하여금 초나라를 치게 하여 종리와 거소를 함락시키고 돌아갔다. 오자서가 오나라 왕 료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초나라는 깨트릴 수 있습니다. 다시 공자 광을 보내기를 원합니다.” 했다. 공자 광이 노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저 오서의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에서 죽음을 당하여 왕에게 초나라를 정벌하라고 권하여 스스로 그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것일 뿐이니 초나라를 정벌하여도 깨트릴 수 없습니다.” 했다. 오서가 공자 광이 안으로 뜻이 왕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고자하는데 있고, 밖의 일로 설득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에 전저를 공자 광에게 올리고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들에서 밭을 갈았다.
[一] 索隱二邑,楚縣也。按:鍾離縣在六安,古鍾離子之國,系本謂之「終犁」,嬴姓之國。居巢亦國也。桀奔南巢,其國蓋遠。尚書序「巢伯來朝」,蓋因居之於淮南楚地也。
[一] 【索隱】 두 읍은 초나라의 현이다. 살펴보니 ‘종리현’은 ‘육안’에 있는데 옛날 종리자의 나라이다. 系本에서 그것을 ‘종려’라 하고, 嬴姓의 나라라고 했다. 거소는 또한 나라이다. 걸이 남소로 도망하였는데 그 나라가 대개 멀다. 『尙書』의 서문에 “巢의 제후가 와서 조회 했다.”하니 대개 머물기를 회수 남쪽의 초나라 땅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二] 索隱左傳謂之「專設諸」。
[二] 【索隱】 『左傳』에는 ‘專設諸’라 고 말한다.
五年而楚平王卒。初,平王所奪太子建秦女生子軫,及平王卒,軫竟立為後,是為昭王。吳王僚因楚喪,使二公子將兵往襲楚。楚發兵絕吳兵之後,不得歸。吳國內空,而公子光乃令專諸襲刺吳王僚而自立,是為吳王闔廬。闔廬既立,得志,乃召伍員以為行人,而與謀國事。
5년 후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 처음에 평왕이 태자 건에게 빼앗은 진나라 여자가 아들 진을 낳았는데 평왕이 죽음에 이르러 진을 세워 후사로 하니 이가 소왕이 된다. 오나라 왕 료는 초나라에 상이 남으로 인하여 두 공자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초나라를 습격하게 하였다. 초나라가 군대를 발동하여 오나라 군대의 뒤를 끊어 돌아갈 수 없게 하였다. 오나라 안이 비자 공자 광이 이에 전저를 시켜 오나라 왕 료를 습격하여 찌르게 하고 스스로 즉위하니 이가 오나라 왕 합려이다. 합려가 즉위하여 뜻을 이루자 이에 오원을 불러 행인을 삼고 함께 국사를 도모하였다.
楚誅其大臣郤宛、伯州犁,伯州犁之孫伯嚭亡奔吳,[一]吳亦以嚭為大夫。前王僚所遣二公子將兵[二]伐楚者,道絕不得歸。後聞闔廬弒王僚自立,遂以其兵降楚,楚封之於舒。闔廬立三年,乃興師與伍胥、伯嚭伐楚,拔舒,遂禽故吳反二將軍。因欲至郢,將軍孫武曰:「民勞,未可,且待之。」乃歸。
초나라가 그 대신 극완, 백주려와 백주려의 손자 백비가 오나라에 도망하여 달아나니 오나라가 또한 백비를 대부로 삼았다. 전왕 료가 보낸 두 공자는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정벌하다 길이 끊어져 돌아가지 못하였다. 후에 합려가 왕 료를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였다는 것을 듣고 마침내 그 군대를 데리고 초나라에 항복하니 초나라가 그들을 舒에 봉하였다. 합려가 즉위한 지 3년에 군대를 일으켜서 오서와 백비와 함께 초나라를 정벌하여 서를 함락시키고 마침내 옛날에 오나라를 배반한 두 장군을 잡았다. 인하여 郢에 이르고자 하는데 장군 손무가 말하기를 “백성이 수고로워 아직 할 수 없고, 또한 기다려야 합니다.” 했다. 이에 돌아왔다.
[一] 集解徐廣曰:「伯州犁者,晉伯宗之子也。伯州犁之子曰郤宛,郤宛之子曰伯嚭。宛亦姓伯,又別氏郤。楚世家云殺郤宛,宛之宗姓伯氏子曰嚭。吳世家云楚誅伯州犁,其孫伯嚭奔吳也。」 索隱按:州犁,伯宗子也。宛,州犁子。伯嚭宛子。嚭音喜。伯氏別姓。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백주려는 晉나라 백종의 아들이다. 백주려의 아들을 각완이라 하고, 각완의 아들을 백비라 한다. 각완이 또한 성이 백이고, 또 따로 씨를 각이라 했다. 「초 세가」에 ‘각완을 죽였다 하고, 각완의 종성인 백씨의 아들을 비라 한다.’ 하고 「오 세가」에 ‘초나라가 백주려를 죽이니 그 손자 백비가 오나라로 달아났다.’” 고 했다. 【索隱】 살펴보니 주려는 백종의 아들이다. 완은 주려의 아들이다. 백비는 각완의 아들이다. 嚭의 음은 喜이다. 백씨는 별도의 성이다.
[二] 索隱公子燭庸及蓋餘也。
[二] 【索隱】 공자 촉용과 개여이다.
四年,吳伐楚,取六與灊。[一]五年,伐越,敗之。六年,楚昭王使公子囊瓦[二]將兵伐吳。吳使伍員迎擊,大破楚軍於豫章,[三]取楚之居巢。
4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쳐서 六과 灊(잠, 첨)을 취하였다. 5년에 월나라를 쳐서 무너뜨렸다. 6년에 초나라 소왕이 공자 낭와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오나라를 치게 하였다. 오나라가 오원으로 하여금 맞아 치게 하여 초나라 군을 예장에서 깨트리고 초나라의 거소를 취하였다.
[一] 集解六,古國,皋陶之後所封。灊縣有天柱山。索隱六,古國也,皋陶之後所封。灊縣有天柱山。
[一] 【集解】 六은 옛 나라인데 皐陶(고요)의 후예가 봉해진 곳이다. 灊縣은 천주산에 있다. 【索隱】 六은 옛 나라인데 고요의 후예가 봉해진 곳이다. 첨현은 천주산에 있다.
[二] 集解案:左傳楚公子貞字子囊,其孫名瓦,字子常。此言公子,又兼稱囊瓦,誤也。索隱按:左氏楚公子貞字子囊,其孫名瓦,字子常。此言公子,又兼稱囊瓦,蓋誤。
[二] 【集解】 살펴보니 『左傳』에 초나라 공자 정자의 아들은 낭이고, 그 손자의 이름은 와이니 字는 자상이다. 여기서 공자를 말하고 또 겸하여 낭와를 말한 것인데 잘못이다. 【索隱】 살펴보니 좌씨는 초나라 공자 정자의 아들은 낭이고, 그 손자의 이름은 와이니 자는 자상이다. 하고 여기서 공자를 말하고 또 겸하여 낭와라 말하니 대개 잘못된 것이다.
[三] 集解豫章在江南。索隱按:杜預云「昔豫章在江北,蓋分後徙之於江南也」。
[三] 【集解】 예장은 강남에 있다. 【索隱】 살펴보니 두예가 말하기를 “옛날에 예장은 강북에 있었는데 나뉘어진 후 강남에 옮겼다.”고 했다.
九年,吳王闔廬謂子胥、孫武曰:「始子言郢未可入,今果何如?」二子對曰:「楚將囊瓦貪,而唐、蔡皆怨之。王必欲大伐之,必先得唐、蔡乃可。」闔廬聽之,悉興師與唐、蔡伐楚,與楚夾漢水而陳。吳王之弟夫概[一]將兵請從,王不聽,遂以其屬五千人擊楚將子常。[二]子常敗走,奔鄭。於是吳乘勝而前,五戰,遂至郢[三]。己卯,楚昭王出奔。庚辰,吳王入郢。
9년에 오나라 왕 합려가 자서와 손무에게 말하기를 “처음에 그대가 郢에 아직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과연 어떠한가?” 하니 두 사람이 말하기를 “초나라 장수 낭와는 탐욕스러워 唐과 蔡가 모두 원망합니다. 왕께서는 반드시 크게 쳐서 반드시 먼저 唐과 蔡를 얻고자 한다면 가능합니다.” 했다. 합려가 그것을 듣고는 모든 군대를 일으켜 唐, 蔡와 함께 초나라를 쳐서 초나라와 한수를 끼고 진늘 쳤다. 오나왕의 동생 부개가 군대를 거느리고 따르기를 청하니 왕이 듣지 않고, 마침내 그에 속한 5천인으로써 초나라 장군 자상을 쳤다. 자상이 패하여 달아나 정나라로 도망하였다. 이네 오나라가 승세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 다섯 번 싸워서 마침내 郢에 이르렀다. 기묘일에 초나라 소왕이 나와 도망하였다. 경진일에 오나라 왕이 郢에 들어갔다.
[一] 索隱古賚反。
[一] 【索隱】 古와 賚의 反이다.
[二] 集解子常,公孫瓦。 索隱公孫瓦也。
[二] 【集解】 자상과 공손와이다. 【索隱】 공손와이다.
[三] 集解郢,楚都。索隱郢,楚都也。音以正反,又一音以井反。
[三] 【集解】 郢은 초나라의 도읍이다. 【索隱】 郢은 초나라 도읍이다. 음은 以와 正의 反이다. 또 한 음은 以와 井의 反이다.
昭王出亡,入雲夢;盜擊王,王走鄖。[一]鄖公弟懷曰:「平王殺我父,我殺其子,不亦可乎!」鄖公恐其弟殺王,與王奔隨[二]。吳兵圍隨,謂隨人曰:「周之子孫在漢川者,楚盡滅之。」隨人欲殺王,王子綦匿王,己自為王以當之。隨人卜與王於吳,不吉,乃謝吳不與王。
소왕이 나와 도망하여 운몽에 들어갔는데 도적이 왕을 치니 왕이 鄖을 향해 갔다. 운공의 동생 회가 말하기를 “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내가 그 아들을 죽이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하였다. 운공이 그 동생이 왕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왕과 함께 隨 지역으로 갔다. 오나라 군대가 隨를 포위하니 수 지역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나라의 자손으로 漢川에 있던 자들을 초나라가 모두 없앴다.” 하고는 수 지역의 사람들이 왕을 죽이고자 하니 왕자 기가 왕을 숨기고 자기가 스스로 왕인 척하였다. 수 지역 사람들이 왕을 오나라에 주는 것으로써 점을 치니 길하지 않다하여 이에 거절하고 오나라에 왕을 주지 않았다.
[一] 集解音云,國名。索隱奏雲二音。走,向也。鄖,國名。
[一] 【集解】 음은 云이니 아라 이름이다. 【索隱】 奏와 雲 두 음이다. 走는 향함이다. 鄖은 아라 이름이다.
[二] 正義今有楚昭王故城,昭王奔隨之處,宮之北城即是。
[二] 【正義】 지금 초나라 소왕의 옛 성이 있고, 소왕이 달아난 隨 지역은 궁의 북쪽 城이 이것이다.
始伍員與申包胥為交,員之亡也,謂包胥曰:「我必覆楚。」包胥曰:「我必存之。」及吳兵入郢,伍子胥求昭王。既不得,乃掘楚平王墓,出其尸,鞭之三百,然後已。申包胥亡於山中,使人謂子胥曰:「子之報讎,其以甚乎!吾聞之,人眾者勝天,天定亦能破人。[一]今子故平王之臣,親北面而事之,今至於僇死人,此豈其無天道之極乎!」 伍子胥曰:「為我謝申包胥曰,吾日莫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二]於是申包胥走秦告急,求救於秦。秦不許。包胥立於秦廷,晝夜哭,七日七夜不絕其聲。秦哀公憐之,曰:「楚雖無道,有臣若是,可無存乎!」乃遣車五百乘救楚擊吳。六月,敗吳兵於稷。[三]會吳王久留楚求昭王,而闔廬弟夫概乃亡歸,自立為王。闔廬聞之,乃釋楚而歸,擊其弟夫概。夫概敗走,遂奔楚。楚昭王見吳有內亂,乃復入郢。封夫概於堂谿,[四]為堂谿氏。楚復與吳戰,敗吳,吳王乃歸。
처음 오원(오자서)과 신포서가 서로 사귀었는데 오원이 도망하면서 신포서에게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뒤엎겠다.” 하니 신포서가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보존하겠다.”고 했다. 오나라 군대가 영에 들어오고 오자서가 소왕을 찾음에 이르렀다. (오자서는 소왕을) 찾지 못하자 이에 평왕의 무덤을 파서 그 시체를 꺼내어 채찍 300대를 친 후에 그만 두었다. 신포서가 산중에 도망하여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원수 갚음이 참으로 심하구나! 내가 들으니 사람들은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뜻을 정하면 또한 사람을 깨트릴 수 있다. 지금 그대가 옛 평왕의 신하로서 친히 북쪽을 향하여 그를 섬기다가 지금 죽은 사람을 욕보임에 이르렀으니 이 것이 어찌 천도의 지극함이 없을 것인가! ” 했다. 오자서가 말하기를 “나를 위해 신포서에게 사례하고 말하시오. 나에게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서 내가 그러므로 거꾸로 행하고 거슬러 베푸는 것입니다.” 했다. 이에 신포서가 秦으로 달아나 급함을 알리고 진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秦 나라가 허락하지 않았다. 신포서가 진나라 조정에 서서 밤낮으로 곡하여 7일 낮, 7일 밤을 하여 그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진나라 애공이 불쌍히 여겨 말하기를 “초나라가 비록 무도하지만 이 같은 신하기 있으니 보존하지 못할 것인가!” 하고는 이에 수레 500대를 보내 초나라를 구하고 오나라를 쳤다. 6월에 오나라 군대를 稷에서 패하게 하였다. 오나라 왕은 초나라에 오래 머물면서 소왕을 찾았는데 합려의 동생 부개가 도망하여 돌아가 스스로 왕이 됨을 만났다. 합려가 그것을 듣고는 이에 초나라의 (포위를 ) 풀고는 돌아가 그 동생 부개를 쳤다. 부개가 패하여 달아나 드디어 초나라로 도망하였다. 초나라 소왕이 오나라에 내란이 있음을 보고는 돌아가 영에 들어가 부개를 당계에 봉하니 당계씨로 하였다. 초나라가 다시 노나라와 싸워서 오나라를 패하게 하니 오나라 왕이 돌아갔다.
[一] 正義申包胥言聞人眾者雖一時凶暴勝天,及天降其凶,亦破於彊暴之人。
[一] 【正義】 신포서는 사람들이 비록 한때의 흉포함으로 하늘을 이길 수 잇을 지라도 하늘이 그 흉함을 내림에 이르러서는 또한 강포한 사람을 깨트린다고 들었음을 말한 것이다.
[二] 索隱按:倒音丁老反。施音如字。子胥言志在復讎,常恐且死,不遂本心,今幸而報,豈論理乎!譬如人行,前途尚遠,而日勢已莫,其在顛倒疾行,逆理施事,何得責吾順理乎!
[二] 【索隱】 살펴보니 倒의 음은 丁과 老의 反이다. 施의 음은 본래 글자와 같다. 오자서는 뜻이 복수함에 있어 항상 또한 죽을 것을 두려워하고 본래 마음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지금 요행히 갚을 수 있게 되었는데 어찌 이치를 논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한 것이다. 사람이 길을 가는데 비유하면 앞길(가야 할 길)은 오히려 멀고, 해의 형세가 이미 저물면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빨리 가야 하는 것처럼 이치를 거스르고 일을 행하는 것에 대하여 어찌 나에게 이치를 따르지 않는다고 꾸짖는가? 한 것이다.
[三] 集解稷丘,地名,在郊外。 索隱按:左傳作「稷丘」。杜預云「稷丘,地名,在郊外」。
[三] 【집해】 稷丘는 땅이름이니 교외에 있다. 【索隱】 살펴보니 『左傳』에는 ‘稷丘’라고 썼다. 두예가 말하기를 “‘稷丘’는 땅이름이니 교외에 있다.” 고 했다.
[四] 集解徐廣曰:「在慎縣。」駰案:地理志汝南有吳房縣。應劭曰「夫概奔楚,封於堂谿,本房子國,以封吳,故曰吳房」,然則不得在慎縣也。正義案:今豫州吳房縣在州西北九十里。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愼縣에 있다.” 하고, 裵駰이 살펴보니 “「地理志」에 여남에 오방현이 있다.” 하고 응소가 말하기를 “부개가 초나라로 도망하여 당계에 봉해졌는데 본래 ‘방자국’으로 오에 봉해졌기 때문에 ‘吳房’이라 한다.” 했다. 그러한 즉 愼縣에 있을 수 없다. 【正義】 살펴보니 지금의 예주 오방현은 주의 서북쪽 90리에 있다.
後二歲,闔廬使太子夫差將兵伐楚,取番。[一]楚懼吳復大來,乃去郢,徙於鄀。[二]當是時,吳以伍子胥、孫武之謀,西破彊楚,北威齊晉,南服越人。
2년 후 합려는 태자 부차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치게하여 番을 취하였다. 초나라는 오나라가 다시 크게 올 것을 두려워하여 영을 떠나 鄀(약)으로 옮겼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도모함으로써 서쪽으로는 강한 초나라를 깨트리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秦나라를 위협하고, 남쪽으로는 월나라 사람들을 복종시켰다.
[一] 集解音普寒反,又音婆。 索隱音普寒反,又音婆。蓋鄱陽也。
[一] 【集解】 음은 普와 寒의 反인데, 또 음을 婆라 한다. 【索隱】 음은 普와 寒의 反이고, 또 음을 婆라 한다, 鄱陽이다.
[二] 集解楚地,音若。索隱音若。鄀,楚地,今闕。
[二] 【集解】 초나라 땅이니 음은 若이다. 【索隱】 음은 若이다. 鄀은 초나라 땅인데 지금은 빠졌다.
其後四年,孔子相魯。
그 후 4년에 공자가 노나라 재상이 되었다.
後五年,伐越。越王句踐迎擊,敗吳於姑蘇,傷闔廬指,[一]軍卻。闔廬病創[二]將死,謂太子夫差曰:「爾忘句踐殺爾父乎?」夫差對曰:「不敢忘。」是夕,闔廬死。夫差既立為王,以伯嚭為太宰,習戰射。二年後伐越,敗越於夫湫。[三]越王句踐乃以餘兵五千人棲於會稽之上,[四]使大夫種[五]厚幣遺吳太宰嚭以請和,求委國為臣妾。吳王將許之。伍子胥諫曰:「越王為人能辛苦。今王不滅,後必悔之。」吳王不聽,用太宰嚭計,與越平。
5년 후 월나라를 쳤다. 월나라 왕 구천이 맞아 싸워 부소에서 오나라를 패하게 하여(이기고) 합려의 손가락을 상하게 하고 군대를 물렸다. 합려가 병과 상처로 죽으려할 때 태자 부차를 불러 말하기를 “너는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 하니 부차가 대답하기를 “감히 잊겠습니까?” 했다. 이날 저녁 합려가 죽었다. 부차가 즉위하여 왕이 되고 백비로써 태재를 삼고 싸움과 활쏘기를 연습하였다. 2년 후 월나라를 쳐서 월나라를 부추에서 패퇴시켰다. 월나라 왕 구천이 이에 남은 군대 5천인으로써 회계의 위에 머물면서 대부 종으로 하여금 많은 폐백으로 오나라 태재 백비에게 주고 화의를 청하면서 나라를 맡기고 신첩이 될 것을 구하였다. 오나라 왕이 장차 허락하려 하였다. 오자서가 간하여 말하기를 “월나라 왕은 사람됨이 어려움을 견딜 수 있습니다. 지금 왕께서 멸망시키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했다. 오나라 왕이 듣지 않고 태재 백비의 계책을 써서 월나라와 화평했다.
[一] 正義姑蘇當作「檇李」,乃文誤也。左傳云「戰檇李,傷將指,卒於陘」是也。解在吳世家。
[一] 【正義】 고소는 마땅히 ‘欈李’로 써야 하는데 글의 잘못이다. 『좌전』에 “취리에서 싸우다 손가락을 다쳤는데 陘에서 죽었다.” 한 것이 이것이다.
[二] 集解楚良反。索隱音瘡。
[二] 【集解】 楚와 良의 反이다. 【索隱】 음은 瘡이다.
[三] 集解音椒。索隱音椒,又如字。正義太湖中椒山也。解在吳世家。
[三] 【集解】 음은 椒이다. 【索隱】 음은 椒이니 또한 같은 자이다. 【正義】 태호 안의 초산이다. 풀이가 「吳世家」에 있다.
[四] 正義土地名,在越州會稽縣東南十二里。
[四] 【正義】 토지 이름인데 월주 회계현 동남쪽 12리에 있다.
[五] 索隱劉氏云「大夫姓,種名」,非也。按:今吳南有文種埭,則種姓文,為大夫官也。正義高誘云:「大夫種,姓文氏,字子禽,楚之郢人。」
[五] 【索隱】 윴기 말하기를 “대부는 성이도 종츤 이름이다.” 하는데 잘 못이다. 살펴보니 지금의 吳 남쪽에 文種埭가 있는데 곧 種의 姓이 文이고 대부는 관직이 된다. 【正義】 고유가 말하기를 “대부 종은 성이 문씨이고, 자는 금이며 초나라 郢지역 사람이다.
其後五年,而吳王聞齊景公死而大臣爭寵,新君弱,乃興師北伐齊。伍子胥諫曰:「句踐食不重味,弔死問疾,且欲有所用之也。此人不死,必為吳患。今吳之有越,猶人之有腹心疾也。而王不先越而乃務齊,不亦謬乎!」吳王不聽,伐齊,大敗齊師於艾陵,[一]遂威鄒魯之君以歸。[二]益疏子胥之謀。
그 후 5년에 오나라 왕이 제나라 경공이 죽고, 대신이 총애를 다투며 새 임금이 약하다는 것을 듣고 이에 군대를 일으켜 북쪽으로 제나라를 쳤다. 오자서가 간하여 말하기를 “구천이 맛있는 것을 거듭 먹지 않고(한 가지만 먹고) 죽은 이를 조문하고 병 있는 이를 위문하는 것은 또한 쓸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오나라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지금 오나라의 월나라의 월나라는 마치 사람의 배 속 심장에 병이 잇는 것과 같습니다. 왕께서 월나라를 우선하지 않고 이에 제나라를 힘쓰는 것은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오나라 왕이 듣지 않고 제나라를 토벌하다 제나라 군대를 애릉에서 크게 패하게 하고 마침내 鄒나라와 魯나라의 임금을 위협하는 것으로써(복속시키고) 돌아왔다. 더욱 오자서의 도모함을 멀리 하였다.
[一] 正義括地志云:「艾山在兗州博城縣南百六十里,本齊博邑。」
[一] 【正義】 『括地志』에 “艾山은 연주 박성현 남쪽 160리에 있는데 본래 제나라 박읍이었다.”
[二] 正義鄒君居兗州鄒縣。魯,曲阜縣。
[二] 【正義】 추의 임금은 연주 추현에 살았다. 노는 곡부현이다.
其後四年,吳王將北伐齊,越王句踐用子貢之謀,乃率其眾以助吳,而重寶以獻遺太宰嚭。太宰嚭既數受越賂,其愛信越殊甚,日夜為言於吳王。吳王信用嚭之計。伍子胥諫曰:「夫越,腹心之病,今信其浮辭詐偽而貪齊。破齊,譬猶石田,無所用之。且盤庚之誥曰:『有顛越不恭,劓殄滅之,俾無遺育,無使易種于茲邑。』此商之所以興。願王釋齊而先越;若不然,後將悔之無及。」而吳王不聽,使子胥於齊。子胥臨行,謂其子曰:「吾數諫王,王不用,吾今見吳之亡矣。汝與吳俱亡,無益也。」乃屬其子於齊鮑牧,而還報吳。
구 후 4년에 오나라 왕이 북쪽으로 제나라를 토벌하려는데 월 왕 구천이 자공의 꾀를 써서 그 무리를 거느리고 오나라 왕을 돕고 좋은 보배로써 태재 비에게 바쳤다. 태재 비가 이미 여러 번 월나라의 뇌물을 받아 월나라를 사랑하고 믿는 것이 심하여 밤낮으로 오나라 왕에게 말을 하였다. 오나라 왕이 비의 계교를 믿고 썼다. 오자서가 간하여 말하기를 “저 월나라는 腹心의 병폐입니다. 지금 그 허튼 소리와 속이는 말을 듣고 제나라를 탐합니다. 제나라를 깨트리는 것은 돌밭과 같아서 쓸 수 없습니다. 또한 반경의 가르침에 ‘예의에 벗어나고 공손하지 않는 자는 모두 코를 베어 모두 죽여 없애서 남은 기름이 없게 하여 이 읍에 살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상나라가 흥성한 이유입니다. 원하건데 왕께서는 제나라를 풀어두고 월나라를 우선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후에 장차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오나라 왕이 듣지 않고 오자서를 제나라에 사신가게 하였다. 오자서가 갈 때에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여러 번 왕을 간하였으나 왕이 쓰지 않으니 내가 지금 오나라의 망함을 본다. 너와 오나라 왕이 함께 망하는 것은 이익 됨이 없다.” 하고는 그 아들을 제나라의 대부 포목에게 부탁하고는 오나라에 돌아와 보고하였다.
吳太宰嚭既與子胥有隙,因讒曰:「子胥為人剛暴,少恩,猜賊,其怨望恐為深禍也。前日王欲伐齊,子胥以為不可,王卒伐之而有大功。子胥恥其計謀不用,乃反怨望。而今王又復伐齊,子胥專愎[一]彊諫,沮[二]毀用事,徒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今王自行,悉國中武力以伐齊,而子胥諫不用,因輟謝,詳病不行。王不可不備,此起禍不難。且嚭使人微伺之,其使於齊也,乃屬其子於齊之鮑氏。夫為人臣,內不得意,外倚諸侯,自以為先王之謀臣,今不見用,常鞅鞅怨望。願王早圖之。」
오나라 태재 비가 이미 오자서와 틈이 있어 참소하여 말하기를 “오자서는 사람됨이 강폭하고 은혜를 베픔이 적으며 시기하고 해치며 (왕이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원망하여 깊은 화가 될 것이 두렵습니다. 지난날에 왕께서 제나라를 토벌하려 할 때에 오자서는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큰 공이 있었습니다. 오자서가 그 계책이 쓰여지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이에 도리어 원망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또 다시 제나라를 정벌하려하는데 오자서가 제 멋대로 거역하고 굳게 간하고, 일을 씀을 막고 무너뜨리며 오나라의 패배를 요행으로 여김으로써 자신의 계책이 나음을 도모할 뿐입니다. 지금 왕께서 (정벌을)감으로부터 모든 나라 안의 무력이 제나라를 정벌하려는데 오자서는 간함이 쓰여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말을 그치고 거짓 병으로 가지 않습니다. 왕께서 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화가 일어나기 어렵지 않습니다.(화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또 제가 사람을 시켜서 은밀히 엿보니 제나라에 사신 가서 아들을 제나라 포씨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대저 신하 된 자가 안으로 뜻을 얻지 못하여 밖으로 제후에게 의지하면서 스스로 선왕의 謀臣(뛰어난 신하)여기고 지금 쓰임을 받지 못하였다고 항상 앙앙하고 원망합니다. 원하건데 왕께서는 빨리 도모하십시오.” 했다.
[一] 索隱皮逼反。
[一] 【索隱】 皮와 逼의 反이다.
[二] 集解自呂反。
[二] 【集解】 自와 呂의 反이다.
吳王曰:「微子之言,吾亦疑之。」乃使使賜伍子胥屬鏤[三]之劍,曰:「子以此死。」伍子胥仰天歎曰:「嗟乎!讒臣嚭為亂矣,王乃反誅我。我令若父霸。自若未立時,諸公子爭立,我以死爭之於先王,幾不得立。[四]若既得立,欲分吳國予我,我顧不敢望也。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乃告其舍人曰:「必樹吾墓上以梓,令可以為器;[五]而抉[六]吾眼縣吳東門之上,[七]以觀越寇之入滅吳也。」乃自剄死。吳王聞之大怒,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八]浮之江中。[九]吳人憐之,為立祠於江上,[一0]因命曰胥山。[一一]
오나라 왕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아니더라도 내가 또한 의심하였다.” 하고는 이에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촉루의 검을 내리고는 말하기를 “그대는 이것으로써 죽으라.” 했다. 오자서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면 말하기를 “아! 참소하는 신하 백비가 (나라를)어지럽히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인다. 내가 너의 아버지를 패왕으로 만들었고, 네가 후계자에 오르지 않았을 때부터 여러 공자가 후계자 자리를 다툴 때 내가 죽음으로써 선왕에게 그것을 간쟁하지 않았다면 거의 즉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네가 즉위하고 나서 오나라를 나누어 나게 주고자 했을 때 나는 돌아보고 감히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네가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 長子(어른, 우두머리?)를 죽인다.” 하고는 그 사인(집안사람)에게 말려 말하기를 “반드시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서 (오나라 왕을 위한)기물(관)이 될 수 있게 하고, 내 눈을 도려내어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 두라. 월나라 도적이 오나라에 들어와 멸망시키는 것을 볼 것이다.” 하고는 스스로 목을 베고는 죽었다. 오나라 왕이 그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오자서의 시체를 취하여 가죽 부대에 넣어서 강에 뛰웠다. 오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불쌍하게 여겨 강가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고 胥山이라 이름 하였다.
[三] 集解錄于反。
[三] 【集解】 錄과 于의 反이다.
[四] 正義幾音祈。
[四] 【正義】 幾의 음은 祈이다.
[五] 正義器謂棺也,以吳必亡也。左傳云:「樹吾墓檟,檟可材也,吳其亡乎!」
[五] 【正義】 器는 棺이니 오나라가 반드시 망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左傳』에 “내 무덤에 개오동나무를 심으라. 개오동나무는 재목으로 쓸 수 있다. 오나라가 망하는 구나!” 했다.
[六] 索隱烏穴反。抉亦決也。
[六] 【索隱】 烏와 穴의 反이다. 抉은 도한 決이다.
[七] 正義東門,䲕門,謂䱐門也,今名葑門。䲕音普姑反。䱐音覆浮反。越軍開示浦,子胥濤盪羅城,開此門,有䲕䱐隨濤入,故以名門。顧野王云「䲕魚一名江豚,欲風則涌」也。
[七] 【正義】 東門은 보문이니 부문을 말하는데 지금 이름은 봉문이다. 䲕의 음은 普와 姑의 反이다. 䱐의 음은 覆과 浮의 反이다. 월나라 군대가 시포를 열자 자서도(파도, 강과 바다의 신)가 羅城에 부딪쳤는데 이 문을 열 때 䲕䱐(고래)가 파도를 따라 들어왔으므로 문의 이름으로 했다. 고야왕이 말하기를 “보어는 일명 江豚이라 하는데 바람을 따라 솟구친다.”고 했다.
[八] 集解應劭曰:「取馬革為鴟夷,鴟夷,榼形。」 正義盛音成。榼,古曷反。
[八] 【集解】 응소가 말하기를 “말가죽을 취하여 鴟夷(말가죽으로 만든 자루)를 만드는데 치이는 통모양이다.” 했다. 【正義】 盛의 음은 成이다. 榼(통 합)은 古 와 曷의 反이다.
[九] 集解徐廣曰:「魯哀公十一年。」 正義案:年表云吳王夫差十一年也。
[九]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노아라 애공 11년”이라 했다. 【正義】 살펴보니 연표에 이르기를 오나라 왕 부차 11년이다.
[一0] 正義吳地記曰:「越軍於蘇州東南三十里三江口,又向下三里,臨江北岸立壇,殺白馬祭子胥,杯動酒盡,後因立廟於此江上。今其側有浦名上壇浦。至晉會稽太守麋豹,移廟吳郭東門內道南,今廟見在。」
[一0] 【正義】 『吳地記』에 “월나라 군대가 소주 동남쪽 30리 三江口에서 또 하류로 3리를 내려와 강북쪽 언덕에 단을 세우고 백마를 밥아 오자서에게 제사하는데 잔이 움직여 술이 다하였다. 후에 (이로) 인하여 이 강 가에 사당을 세웠다. 지금 그 옆에 있는 포구를 上壇浦라 한다. 晉나라 회계태수 미표에 이르러 사당을 오나라 성곽 동문 안 길 쪽에 옮겼는데 지금도 사당이 있음을 볼 수 있다.
[一一]集解張晏曰:「胥山在太湖邊,去江不遠百里,故云江上。」 正義吳地記云:「胥山,太湖邊胥湖東岸山,西臨胥湖,山有古丞胥二王廟。」按:其廟不干子胥事,太史誤矣,張注又非。
[一一]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胥山은 태호 가에 있는데 강으로부터 100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江上’”이라 했다.” 【正義】 『吳地記』에 “胥山은 채호가 胥湖 동쪽 가의 산이다. 서쪽으로 胥湖에 붙어 있는데 산에는 옛날 丞胥 두 왕의 사당이 있다.” 했다. 살펴보니 그 사당은 오자서의 일에 간여되지 않으니 太史의 잘못이다. 장안의 주석 또한 잘못이다.
吳王既誅伍子胥,遂伐齊。齊鮑氏殺其君悼公而立陽生。吳王欲討其賊,不勝而去。其後二年,吳王召魯衛之君會之橐皋。[一]其明年,因北大會諸侯於黃池,[二]以令周室。越王句踐襲殺吳太子,[三]破吳兵。吳王聞之,乃歸,使使厚幣與越平。後九年,越王句踐遂滅吳,殺王夫差;而誅太宰嚭,以不忠於其君,而外受重賂,與己比[四]周也。
오나라 왕이 오자서를 죽이고 마침내 제나라를 쳤다. 제나라 포씨가 그 임금인 도공을 죽이고 양생을 세웠다. 오나라 왕이 그 적을 성토하고자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갔다. 그 후 2년에 오나라 왕이 노나라와 위나라의 임금을 불러 槖皐(탁고)에서 회맹하였다. 그 다음해 인하여 황지 북쪽에서 크게 제후를 모아서 주나라 왕실의 령을 전하였다.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태자를 숩격하여 죽이고 오나라 군대를 깨트렸다. 오나라 왕이 그것을 듣고 돌아가 사자로 하여금 많은 선물을 주고 월나라와 화평하였다. 뒤 9년에 월나라 왕 구천이 드디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왕 부차를 죽이고, 태재 백비도 죽였는데 그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고 밖으로 많은 뇌물을 받았으며 자기와 결당하였다 하였기 때문이다.
[一] 索隱音拓皋二音。杜預云:「地名,在淮南逡遒縣東南。」 正義橐皋故縣在廬州巢縣西北五十六里。
[一] 【索隱】 음은 拓과 皐의 두 음이다. 두예가 말하기를 “지명이니 회남 준주현 동남쪽에 있다고 했다.” 【正義】 橐姑 옛 현은 여주 소현 북쪽 56리에 있다.
[二] 正義在汴州封丘縣南七里。
[二] 【正義】 변주 봉구현 남쪽 7리에 있다.
[三] 索隱左傳太子名友。
[索隱] 『左傳』에 태자의 이름은 友라 했다.
[四] 正義紀鼻二音。
[四] 【正義】 紀와 鼻의 두 음이다.
伍子胥初所與俱亡故楚太子建之子勝者,在於吳。吳王夫差之時,楚惠王欲召勝歸楚。葉公[一]諫曰:「勝好勇而陰求死士,殆有私乎!」惠王不聽。遂召勝,使居楚之邊邑鄢,[二]號為白公[三]。白公歸楚三年而吳誅子胥。
오자서가 처음에 함께 도망하였던 초나라 태자 건의 아들 승은 오나라에 있었다. 오나라 왕 부차의 때에 초나라 혜왕이 승을 불러 초나라로 돌아오게하고자 하였다. 섭공이 간하여 말하기를 “승은 용맹함을 좋아하고 뒤로 死士(결사대)를 구하여 거의 사사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했으나 혜왕이 듣지 않았다. 드디어 승을 불러 초나라의 변경 읍인 언에서 살게 하고는 이름하여 백공이라 하였다. 백공이 초나라에 돌아 온지 3년 만에 오나라가 오자서를 죽였다.
[一] 正義上式涉反。杜預云:「子高,沈諸梁。」
[一] 【正義】 上, 式, 涉의 反이다. 두예가 말하기를 “자고는 심제량이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潁川鄢陵是。」 正義鄢音偃。括地志云:「故郾城在豫州郾城縣南五里,與褒信白亭相近。」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영천 언릉이 이것이다.” 했다. 【正義】 鄢의 음은 偃이다. 『括地志』에 “옛 언성은 예주 郾城縣 남쪽 5리에 있는데 포신의 백정과 서로 가깝다.” 했다.
[三] 集解徐廣曰:「汝南褒信縣有白亭。」 正義括地志云:「白亭在豫州褒信縣南四十二里,又有白公故城。又許州扶溝縣北四十五里北又有白亭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여남 포신현에 자정이 있다.” 했다. 【正義】 『括地志』 에 자정은 예주 포신현 남쪽 40리에 있고, 또 백공 고성이 있다. 또 허주 부구현 북쪽 45리인데 북쪽에 또 백정이 있다.
白公勝既歸楚,怨鄭之殺其父,乃陰養死士求報鄭。歸楚五年,請伐鄭,楚令尹子西許之。兵未發而晉伐鄭,鄭請救於楚。楚使子西往救,與盟而還。白公勝怒曰:「非鄭之仇,乃子西也。」勝自礪劍,人問曰:[一]「何以為?」勝曰:「欲以殺子西。」子西聞之,笑曰:「勝如卵耳,何能為也。」
백공 승이 초나라로 돌아가서 정나라가 그 아버지를 죽인 것을 원망하여 뒤로 死士를 길러 정나라에 복수하려 했다. 초나라에 돌아 간지 5년에 정나라를 칠 것을 청하니 초나라 영윤 자서가 허락하였다. 군대를 출발하지 않았는데 晉나라가 정나라를 치니 정나라가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초나라가 자서로 하여금 가서 구원하게 하니 동맹을 맺고 돌아왔다. 백공 승이 노하여 말하기를 “정나라가 원수가 아니라 자서이다.” 했다. 승이 스스로 검을 갈자 사람들이 물어 말하기를 “무엇을 합니까?” 했다. 승이 말하기를 “자서를 죽이고자 합니다.” 했다. 자서가 그것을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승은 알과 같을 뿐이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했다.
[一] 索隱左傳作「子期之子平見曰『王孫何自礪也』」。
[一] 【索隱】 『左傳』 에 “자기의 아들 평견이 말하기를 ‘왕손이 어찌 스스로 (검을)가는가’” 라고 썼다.
其後四歲,白公勝與石乞襲殺楚令尹子西、司馬子綦[一]於朝。石乞曰:「不殺王,不可。」乃劫(之)王如高府。[二]石乞從者屈固[三]負楚惠王亡走昭夫人之宮。[四]葉公聞白公為亂,率其國人攻白公。白公之徒敗,亡走山中,自殺。[五]而虜石乞,而問白公尸處,不言將亨。石乞曰:「事成為卿,不成而亨,固其職也。」終不肯告其尸處。遂亨石乞,而求惠王復立之。
그 후 4년에 백공 승과 석걸이 초나라 영윤 자서와 사마자기를 조정에서 습하여 죽였다. 석걸이 말하기를 “왕을 죽이지 않는 것은 불가하다.” 하고는 왕을 (죽이러) 고부로 갔다. 석걸의 종자 굴고가 초나라 혜왕을 업고 소부인으 궁으로 도망하였다. 섭공이 백공이 난을 일으켰음을 듣고 그 國人을 거느리고 백공을 공격하였다. 백공의 무리가 패하여 산 속으로 도망하였다가 자살하였다. 백공을 사로잡아 백공의 시체가 있는 곳을 물으면서 말하지 않으면 장차 (솥에) 삶겠다고 했다. 석걸이 말하기를 “일이 이루어지면 卿이 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삶기는 것은 진실로 직분(당연하다)이다.” 하고는 끝내 그 시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 마침내 석걸을 삶고는 혜왕을 찾아 다시 세웠다.
[一] 索隱左傳作「子期」也。
[一] 【索隱】 『左傳』에 “子期”라고 썼다.
[二] 索隱杜預云:「楚之別府也。」
[二] 【索隱】 두예가 말하기를 “초나라의 별부이다.” 했다.
[三] 集解徐廣曰:「一作『惠王從者屈固』。楚世家亦云『王從者』。」 索隱按:徐廣曰一作「惠王從者屈固」,蓋此本為得。而左傳云「石乞尹門,圉公陽穴宮,負王以如昭夫人之宮」,則公陽是楚之大夫,王之從者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혜왕의 종자 굴고’라고 썼다.”고 했다. 초나라 세가에 또한 “왕의 종자”라 했다. 【索隱】 살펴보니 서광이 말한 “한편으로 혜왕의 종자 굴고 라고 쓴다.”는 것은 이를 근본으로 하여 얻은 것이다. 『左傳』에 말하기를 “석걸이 문을 다스리자(지키자) 마부 공양이 궁의 구멍으로 왕을 업고 소부인의 궁으로 갔다.”고 했다. 곧 공양은 초나라의 대부이면서 왕의 종자이다.
[四] 索隱昭王夫人即惠王母,越女也。
[四] 【索隱】 소왕의 부인이니 곧 혜왕의 어머니로 월나라 여자이다.
[五] 正義左傳云白公奔而縊。
[五] 【正義】 『左傳』에 백공이 달아나 목매어 죽었다.
太史公曰:怨毒之於人甚矣哉!王者尚不能行之於臣下,況同列乎!向令伍子胥從奢俱死,何異螻蟻。棄小義,雪大恥,名垂於後世,悲夫!方子胥窘於江上,[一]道乞食,志豈嘗須臾忘郢邪?故隱忍就功名,非烈丈夫孰能致此哉?白公如不自立為君者,其功謀亦不可勝道者哉!
태사공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에게 끼친 해독을 원망함이 심하구나! 왕 노릇하는 자도 오히려 신하에 대해 행할 수 없는데(원한을 사서는 안되는 데) 하물며 같은 반열이겠는가! 지난번에 오자서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무엇이 땅강아지, 개미와 다르겠는가?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부끄러움을 씻어 이름이 천하에 드리워졌다. 슬프다 오자서가 강가에 궁색함을 당하여 길에서 빌어먹었지만 뜻을 어찌 잠시라도 郢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숨고 참아 功名에 나아갔으니 열열한 장부가 아니면 누가 여기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백공이 스스로 즉위하여 임금이 되려 하지 않았다면 그 공과 꾀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一] 索隱窘音求殞反。
[一索] 【索隱】 窘의 음은 求와 殞의 反이다.
【索隱述贊】 讒人罔極,交亂四國。嗟彼伍氏,被茲凶慝!員獨忍詬,志復冤毒。霸吳起師,伐楚逐北。鞭尸雪恥,抉眼棄德。
【索隱述贊】 참소하는 사람 끝이 없어 네 나라를 번갈아 어지럽힌다. 아! 저 오씨는 이 흉악하고 사특함에 당하였구나! 홀로 치욕을 참고 뜻을 원통하고 해침을 회복함에 두었다.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우두머리로 하고, 초나라를 쳐 북으로 쫒았다. 시체를 채찍질 하여 부끄러움을 씻었으되 눈을 뽑히고 덕을 버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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