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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66, 오자서 열전 제6

by 최인표 2018. 4. 13.

史記卷六十六

  伍子胥列傳第六

 

伍子胥者楚人也名員員父曰伍奢員兄曰伍尚其先曰伍舉以直諫事楚莊王[]有顯故其後世有名於楚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니 이름은 이다. 의 아버지는 오사이며, 원의 형은 오상이다. 그 선조는 오거인데 곧게 간하는 것으로써 초나라 장왕을 섬겼는데 (이름이) 드러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후예들이 초나라에 명망이 있었다.

 

[] 索隱按舉直諫見左氏楚系家

[] 索隱살펴보니 直諫임은 좌씨와 楚系家에 보인다.

 

楚平王有太子名曰建使伍奢為太傅費無忌[]為少傅無忌不忠於太子建平王使無忌為太子取婦於秦秦女好無忌馳歸報平王曰:「秦女絕美王可自取而更為太子取婦。」平王遂自取秦女而絕愛幸之生子軫更為太子取婦

초나라 평왕의 태자 이름은 건인데 오사로 하여금 태부를 삼고, 비무기를 소부로 삼았다. 비무기가 태자 건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평왕이 비무기로 하여금 태자를 위해 진나라에서 부인(며느리)을 취하게(데려오게) 하였는데, 진아라 여자가 훌륭하였다.(미인이었다.) 비무기가 말을 달려 돌아와 평왕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진나라 여자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왕께서 스스로 취하고 다시 태자 건을 위해 부인을 취할 수 있습니다.” 했다. 평왕이 마침내 스스로 진나라 여자를 취하여 매우 사랑하였는데 아들 을 낳았다. 다시 태자를 위해 부인을 취하였다.

[] 索隱按左傳作費無極」。

[] 索隱살펴보니 좌전에는 費無極이라고 썼다.

 

無忌既以秦女自媚於平王因去太子而事平王恐一旦平王卒而太子立殺己乃因讒太子建建母蔡女也無寵於平王平王稍益疏建使建守城父[]備邊兵

비무기가 이미 진나라 여자로써 스스로 평왕에게 아첨하고 인하여 태자를 떠나 평왕을 섬겼다. 하루아침에(언제고) 평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면 자신을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태자 건을 참소하였다. 건의 어머니는 채나라 여자였는데 평왕에게 사랑받지 못하였다. 평왕이 점점 더 건을 멀리하여 건으로 하여금 城父(성보)를 지키게 하고 변경의 군대를 대비하게 하였다.

[] 集解地理志潁川有城父縣索隱本陳邑楚伐陳而有之地理志潁川有城父縣

[] 集解】 「地理志潁川城父縣이 있다. 索隱본래 나라의 읍인데 초나라가 진나라를 정벌하고 그것을 소유 하였다. 地理志潁川城父縣이 있다고 한다.

頃之無忌又日夜言太子短於王曰:「太子以秦女之故不能無怨望願王少自備也自太子居城父將兵外交諸侯且欲入為亂矣。」平王乃召其太傅伍奢考問之伍奢知無忌讒太子於平王因曰:「王獨柰何以讒賊小臣疏骨肉之親乎?」無忌曰:「王今不制其事成矣王且見禽。」於是平王怒囚伍奢而使城父司馬奮揚[]往殺太子行未至奮揚使人先告太子:「太子急去不然將誅。」太子建亡奔宋

얼마 후 비무기가 또 밤낮으로 태자의 단점을 평왕에게 말하기를 태자가 진나라 여자의 일 때문에 원망이 업을 수 없습니다. 왕께서는 조금 스스로 배비하기를 원합니다. 태자가 성보에 살면서부터 군대를 거느리고, 밖의 제후들과 사귀고, 또 들어와 난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했다. 평왕이 이에 그 태부 오사를 불러서 자세히 물었다. 오사는 비무기가 태자를 평왕에게 참소했음을 알고는 말하기를 왕께서는 유독 어찌하여 참적인 소신 때문에 骨肉을 멀리하십니까?” 했다. 비무기가 말하기를 왕께서 지금 제제하지 않으면 그 일(난을 일으키는 일)이 이루어져서 왕께서는 또한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했다. 이에 평왕 노하여 오사를 가두고 성보의 司馬奮揚으로 하여금 가서 태자를 죽이게 했다. 가는 것이 이르지 않아서 사마분양이 사람을 시켜 먼저 태자에게 알리기를 태자가 급하게 떠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했다. 태자 건이 도망하여 송나라로 달아났다.

[] 索隱城父司馬之姓名也

[] 索隱성보의 司馬의 성명이다.

 

無忌言於平王曰:「伍奢有二子皆賢不誅且為楚憂可以其父質而召之不然且為楚患。」王使使謂伍奢曰:「能致汝二子則生不能則死。」伍奢曰:「尚為人仁呼必來員為人剛戾忍卼[]能成大事彼見來之并禽其勢必不來。」王不聽使人召二子曰:「吾生汝父不來今殺奢也。」伍尚欲往員曰:「楚之召我兄弟非欲以生我父也恐有脫者後生患故以父為質詐召二子二子到則父子俱死何益父之死往而令讎不得報耳不如奔他國借力以雪父之恥俱滅無為也。」

비무기가 평왕에게 말하기를 오사는 두 아들이 있는데 모두 현명하니 죽이지 않으면 또한 초나라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그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를 부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또한 초나라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했다. 왕이 사자를 시켜 오사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의 두 아들을 이르게 할 수 있으면 살 것이고, 하지 못하면 죽을 것이다.” 했다. 오사가 말하기를 오상은 사람됨이 어질어 부르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원은 사람됨이 강건하고 사나우며, 위태로움을 참아서 大事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는 오면 나란히(함께) 잡힘을 알 것이니 그 형세가 반드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왕이 듣지 않고 사람을 시켜 두 아들을 부르면서 말하기를 오면 너의 아버지를 살려 줄 것이고, 오지 않으면 지금 오사를 죽일 것이다.” 했다. 오상이 가고자 하니 오원이 말하기를 초나라가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벗어나는(도망하는 자가 있어) 자가 있어 후에 근심을 낳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거짓으로 두 아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했다. 두 아들이 이르면 곧 함께 죽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도움이 있겠습니까? 가면 원수를 갚지 못할 뿐입니다. 다른 나라로 달아나서 힘을 빌려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씻는 것이 모두 죽어 (아무것도)할 수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 集解音火候反。 索隱鄒氏云:「一作』,罵也音逅。」劉氏音火候反

[] 集解음은 이다. 索隱추씨가 말하기를 한편으로 라 적었으니 꾸짖음이다. 음은 ()이다.”했다. 유씨는 음은 이다.” 했다.

 

伍尚曰:「我知往終不能全父命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後不能雪恥終為天下笑耳。」謂員:「可去矣汝能報殺父之讎我將歸死。」尚既就執使者捕伍胥伍胥貫弓[]執矢嚮使者使者不敢進伍胥遂亡聞太子建之在宋往從之奢聞子胥之亡也:「楚國君臣且苦兵矣。」伍尚至楚楚并殺奢與尚也

오상이 말하기를 나는 가서 아버지의 목숨을 온전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자. 그러나 원통(억울)한 아버지가 나를 불러서 삶을 구하려는데 가지 않는다면 뒤에 복수할 수 없어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하고는 오원(오자서)에게 말하기를 가라! 너는 아버지를 죽임의 원수를 갚아라. 나는 돌아가 죽을 것이다.” 했다. 오상이 잡히자 사자가 오서를 잡으려 했다. 오서가 활을 잡아당겨 화살을 재우고 사자를 향하자(겨누자) 사자가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오서가 마침내 도망하였다. 태자 건이 송나라에 있음을 듣고는 가서 그를 따랐다. 오사가 오자서의 도망함을 듣고 말하기를 노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또한 군사를 괴로워해야 할(전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했다. 오상이 노나라에 이르자 초나라가 오사와 오상을 함께 죽였다.

 

[] 集解貫烏還反索隱劉氏音貫為彎又音古患反貫謂滿張弓

[] 集解이다. 索隱유씨는 을 발음하여 이라 하고, 또 음을 이라 했다. 은 활을 가득 잡아당기는 것을 말한다.

伍胥既至宋宋有華氏之亂[]乃與太子建俱奔於鄭鄭人甚善之太子建又適晉晉頃公曰:「太子既善鄭鄭信太子太子能為我內應而我攻其外滅鄭必矣滅鄭而封太子。」太子乃還鄭事未會會自私欲殺其從者從者知其謀乃告之於鄭鄭定公與子產誅殺太子建建有子名勝伍胥懼乃與勝俱奔吳到昭關[]昭關欲執之伍胥遂與勝獨身步走幾不得脫追者在後至江江上有一漁父乘船知伍胥之急乃渡伍胥伍胥既渡解其劍曰:「此劍直百金以與父。」父曰:「楚國之法得伍胥者賜粟五萬石爵執珪豈徒百金劍邪!」不受伍胥未至吳而疾止中道乞食[]至於吳吳王僚方用事公子光為將伍胥乃因公子光以求見吳王

 

오서가 송나라에 이르렀는데 송나라에 화씨의 난이 있어 태자 건과 함께 정나라로 달아났다. 정나라 사람들이 매 우 잘 대해 주었다. 태자 건이 또 나라에 가니 진나라 경공이 말하기를 태자는 곧 정나라가 잘 대우(친하고)하고 정나라는 태자를 믿습니다. 태자는 나를 위하여 안에서 응하고 나는 밖에서 공격하면 정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정나라를 멸망시키고 태자를 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태자가 이에 정나라로 돌아갔다. 일을 만나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사사로이 그 따르는 자를 죽이고자 함을 만나 종자가 그 꾀함을 알고는 정나라에 그것을 알렸다. 정나라 정공과 자산이 태자 건을 죽였다. 건에게는 아들 명승이 있었다. 오서가 두려워하여 명승과 함께 오나라로 달아났다. 소관에 이르자 소관이 그들을 잡고자 했다. 오서가 명승과 함께 홀몸으로 걸어 달아났으나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추격하는 자가 뒤에 있었다. 강에 이르자 강 위에 한 어부가 배를 타고 있다가 오서의 급함을 알고 이에 오서를 건너게 해 주었다. 오서가 강을 건너고는 그 검을 풀어 말하기를 이 검이 바로 백금인데 아버지가 준 것입니다.” 어부가 말하기를 초나라의 법에 오서를 얻은(잡은) 자는 곡식 오만 석과 를 잡은 을 준다고 하였는데 어찌 한갓 백금 검이겠는가?” 하고는 받지 않았다. 오서가 오나라에 이르지 않아서 병이 나니 중간에 머물러 먹을 것을 구걸하였다. 오나라에 이르니 오왕 료가 막 일을 쓰면서 공자 광을 장군에 임명하였다. 오서가 이에 공자 광을 통하여 오나라 왕을 알현할 것을 구하였다.

[] 索隱春秋昭二十年宋華亥向寧華定與君爭而出奔是也

[] 索隱】 『춘추에 소왕 20년에 송나라 화해, 향녕, 화정과 임금이 다투다 나가 달아난 것이 이것이다.

[] 索隱其關在江西乃吳楚之境也

[] 索隱그 관은 강서에 있으니 곧 오나라와 초나라의 경계이다.

 

[] 集解張勃曰:「子胥乞食處在丹陽溧陽縣。」 索隱按張勃晉人吳鴻臚嚴之子也作吳錄裴氏注引之是也溧音栗水名也

[] 集解장발이 말하기를 자서가 걸식했던 곳은 단양 표양현에 있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장발은 나라 사람이니 오나라 홍려엄의 아들이다. 吳錄을 지었는데 배씨가 주에 인용한 것이 이것이다. 의 음은 인데 물 이름이다.

 

久之楚平王以其邊邑鍾離與吳邊邑卑梁氏俱蠶兩女子爭桑相攻乃大怒至於兩國舉兵相伐吳使公子光伐楚拔其鍾離居巢而歸[]伍子胥說吳王僚曰:「楚可破也願復遣公子光。」公子光謂吳王曰:「彼伍胥父兄為戮於楚而勸王伐楚者欲以自報其讎耳伐楚未可破也。」伍胥知公子光有內志欲殺王而自立未可說以外事乃進專諸[]於公子光退而與太子建之子勝耕於野

얼마 후 초나라 평왕 때 그 변경의 읍인 종리와 오나라 변경의 읍인 비양씨가 함께 누에를 쳤는데 두 여자가 뽕을 다투어 서로 공격하니 (평왕이)크게 노하여 두 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서로 정벌함에 이르렀다. 오나라가 공자 광으로 하여금 초나라를 치게 하여 종리와 거소를 함락시키고 돌아갔다. 오자서가 오나라 왕 료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초나라는 깨트릴 수 있습니다. 다시 공자 광을 보내기를 원합니다.” 했다. 공자 광이 노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저 오서의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에서 죽음을 당하여 왕에게 초나라를 정벌하라고 권하여 스스로 그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것일 뿐이니 초나라를 정벌하여도 깨트릴 수 없습니다.” 했다. 오서가 공자 광이 안으로 뜻이 왕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고자하는데 있고, 밖의 일로 설득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에 전저를 공자 광에게 올리고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들에서 밭을 갈았다.

[] 索隱二邑楚縣也鍾離縣在六安古鍾離子之國系本謂之終犁」,嬴姓之國居巢亦國也桀奔南巢其國蓋遠尚書序巢伯來朝」,蓋因居之於淮南楚地也

[] 索隱두 읍은 초나라의 현이다. 살펴보니 종리현육안에 있는데 옛날 종리자의 나라이다. 系本에서 그것을 종려라 하고, 嬴姓의 나라라고 했다. 거소는 또한 나라이다. 걸이 남소로 도망하였는데 그 나라가 대개 멀다. 尙書의 서문에 의 제후가 와서 조회 했다.”하니 대개 머물기를 회수 남쪽의 초나라 땅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 索隱左傳謂之專設諸」。

[] 索隱】 『左傳에는 專設諸라 고 말한다.

 

五年而楚平王卒平王所奪太子建秦女生子軫及平王卒軫竟立為後是為昭王吳王僚因楚喪使二公子將兵往襲楚楚發兵絕吳兵之後不得歸吳國內空而公子光乃令專諸襲刺吳王僚而自立是為吳王闔廬闔廬既立得志乃召伍員以為行人而與謀國事

5년 후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 처음에 평왕이 태자 건에게 빼앗은 진나라 여자가 아들 진을 낳았는데 평왕이 죽음에 이르러 진을 세워 후사로 하니 이가 소왕이 된다. 오나라 왕 료는 초나라에 상이 남으로 인하여 두 공자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초나라를 습격하게 하였다. 초나라가 군대를 발동하여 오나라 군대의 뒤를 끊어 돌아갈 수 없게 하였다. 오나라 안이 비자 공자 광이 이에 전저를 시켜 오나라 왕 료를 습격하여 찌르게 하고 스스로 즉위하니 이가 오나라 왕 합려이다. 합려가 즉위하여 뜻을 이루자 이에 오원을 불러 행인을 삼고 함께 국사를 도모하였다.

楚誅其大臣郤宛伯州犁伯州犁之孫伯嚭亡奔吳[]吳亦以嚭為大夫前王僚所遣二公子將兵[]伐楚者道絕不得歸後聞闔廬弒王僚自立遂以其兵降楚楚封之於舒闔廬立三年乃興師與伍胥伯嚭伐楚拔舒遂禽故吳反二將軍因欲至郢將軍孫武曰:「民勞未可且待之。」乃歸

초나라가 그 대신 극완, 백주려와 백주려의 손자 백비가 오나라에 도망하여 달아나니 오나라가 또한 백비를 대부로 삼았다. 전왕 료가 보낸 두 공자는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정벌하다 길이 끊어져 돌아가지 못하였다. 후에 합려가 왕 료를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였다는 것을 듣고 마침내 그 군대를 데리고 초나라에 항복하니 초나라가 그들을 에 봉하였다. 합려가 즉위한 지 3년에 군대를 일으켜서 오서와 백비와 함께 초나라를 정벌하여 서를 함락시키고 마침내 옛날에 오나라를 배반한 두 장군을 잡았다. 인하여 에 이르고자 하는데 장군 손무가 말하기를 백성이 수고로워 아직 할 수 없고, 또한 기다려야 합니다.” 했다. 이에 돌아왔다.

[] 集解徐廣曰:「伯州犁者晉伯宗之子也伯州犁之子曰郤宛郤宛之子曰伯嚭宛亦姓伯又別氏郤楚世家云殺郤宛宛之宗姓伯氏子曰嚭吳世家云楚誅伯州犁其孫伯嚭奔吳也。」 索隱按州犁伯宗子也州犁子伯嚭宛子嚭音喜伯氏別姓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백주려는 나라 백종의 아들이다. 백주려의 아들을 각완이라 하고, 각완의 아들을 백비라 한다. 각완이 또한 성이 백이고, 또 따로 씨를 각이라 했다. 초 세가각완을 죽였다 하고, 각완의 종성인 백씨의 아들을 비라 한다.’ 하고 오 세가초나라가 백주려를 죽이니 그 손자 백비가 오나라로 달아났다.’” 고 했다. 索隱살펴보니 주려는 백종의 아들이다. 완은 주려의 아들이다. 백비는 각완의 아들이다. 의 음은 이다. 백씨는 별도의 성이다.

 

[] 索隱公子燭庸及蓋餘也

[] 索隱공자 촉용과 개여이다.

 

四年吳伐楚取六與灊[]五年伐越敗之六年楚昭王使公子囊瓦[]將兵伐吳吳使伍員迎擊大破楚軍於豫章[]取楚之居巢

4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쳐서 (, )을 취하였다. 5년에 월나라를 쳐서 무너뜨렸다. 6년에 초나라 소왕이 공자 낭와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오나라를 치게 하였다. 오나라가 오원으로 하여금 맞아 치게 하여 초나라 군을 예장에서 깨트리고 초나라의 거소를 취하였다.

[] 集解六古國陶之後所封灊縣有天柱山索隱六古國也皋陶之後所封灊縣有天柱山

[] 集解은 옛 나라인데 皐陶(고요)의 후예가 봉해진 곳이다. 灊縣은 천주산에 있다. 索隱은 옛 나라인데 고요의 후예가 봉해진 곳이다. 첨현은 천주산에 있다.

 

[] 集解案左傳楚公子貞字子囊其孫名瓦字子常此言公子又兼稱囊瓦誤也索隱按左氏楚公子貞字子囊其孫名瓦字子常此言公子又兼稱囊瓦蓋誤

[] 集解살펴보니 左傳에 초나라 공자 정자의 아들은 낭이고, 그 손자의 이름은 와이니 는 자상이다. 여기서 공자를 말하고 또 겸하여 낭와를 말한 것인데 잘못이다. 索隱살펴보니 좌씨는 초나라 공자 정자의 아들은 낭이고, 그 손자의 이름은 와이니 자는 자상이다. 하고 여기서 공자를 말하고 또 겸하여 낭와라 말하니 대개 잘못된 것이다.

 

[] 集解豫章在江南索隱按杜預云昔豫章在江北蓋分後徙之於江南也」。

[] 集解예장은 강남에 있다. 索隱살펴보니 두예가 말하기를 옛날에 예장은 강북에 있었는데 나뉘어진 후 강남에 옮겼다.”고 했다.

 

九年吳王闔廬謂子胥孫武曰:「始子言郢未可入今果何如?」二子對曰:「楚將囊瓦貪而唐蔡皆怨之王必欲大伐之必先得唐蔡乃可。」闔廬聽之悉興師與唐蔡伐楚與楚夾漢水而陳吳王之弟夫概[]將兵請從王不聽遂以其屬五千人擊楚將子常[]子常敗走奔鄭於是吳乘勝而前五戰遂至郢[]己卯楚昭王出奔庚辰吳王入郢

9년에 오나라 왕 합려가 자서와 손무에게 말하기를 처음에 그대가 에 아직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과연 어떠한가?” 하니 두 사람이 말하기를 초나라 장수 낭와는 탐욕스러워 가 모두 원망합니다. 왕께서는 반드시 크게 쳐서 반드시 먼저 를 얻고자 한다면 가능합니다.” 했다. 합려가 그것을 듣고는 모든 군대를 일으켜 , 와 함께 초나라를 쳐서 초나라와 한수를 끼고 진늘 쳤다. 오나왕의 동생 부개가 군대를 거느리고 따르기를 청하니 왕이 듣지 않고, 마침내 그에 속한 5천인으로써 초나라 장군 자상을 쳤다. 자상이 패하여 달아나 정나라로 도망하였다. 이네 오나라가 승세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 다섯 번 싸워서 마침내 에 이르렀다. 기묘일에 초나라 소왕이 나와 도망하였다. 경진일에 오나라 왕이 에 들어갔다.

[] 索隱古賚反

[] 索隱이다.

 

[] 集解子常公孫瓦。 索隱公孫瓦也

[] 集解자상과 공손와이다. 索隱공손와이다.

 

[] 集解郢楚都索隱郢楚都也音以正反又一音以井反

[] 集解은 초나라의 도읍이다. 索隱은 초나라 도읍이다. 음은 이다. 또 한 음은 이다.

 

昭王出亡入雲夢盜擊王王走鄖[]鄖公弟懷曰:「平王殺我父我殺其子不亦可乎!」鄖公恐其弟殺王與王奔隨[]吳兵圍隨謂隨人曰:「周之子孫在漢川者楚盡滅之。」隨人欲殺王王子綦匿王己自為王以當之隨人卜與王於吳不吉乃謝吳不與王

소왕이 나와 도망하여 운몽에 들어갔는데 도적이 왕을 치니 왕이 을 향해 갔다. 운공의 동생 회가 말하기를 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내가 그 아들을 죽이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하였다. 운공이 그 동생이 왕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왕과 함께 지역으로 갔다. 오나라 군대가 를 포위하니 수 지역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나라의 자손으로 漢川에 있던 자들을 초나라가 모두 없앴다.” 하고는 수 지역의 사람들이 왕을 죽이고자 하니 왕자 기가 왕을 숨기고 자기가 스스로 왕인 척하였다. 수 지역 사람들이 왕을 오나라에 주는 것으로써 점을 치니 길하지 않다하여 이에 거절하고 오나라에 왕을 주지 않았다.

[] 集解音云國名索隱奏雲二音向也國名

[] 集解음은 이니 아라 이름이다. 索隱두 음이다. 는 향함이다. 은 아라 이름이다.

 

[] 正義今有楚昭王故城昭王奔隨之處宮之北城即是

[] 正義지금 초나라 소왕의 옛 성이 있고, 소왕이 달아난 지역은 궁의 북쪽 이 이것이다.

 

始伍員與申包胥為交員之亡也謂包胥曰:「我必覆楚。」包胥曰:「我必存之。」及吳兵入郢伍子胥求昭王既不得乃掘楚平王墓出其尸鞭之三百然後已申包胥亡於山中使人謂子胥曰:「子之報讎其以甚乎吾聞之人眾者勝天天定亦能破人[]今子故平王之臣親北面而事之今至於僇死人此豈其無天道之極乎!」 伍子胥曰:「為我謝申包胥曰吾日莫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於是申包胥走秦告急求救於秦秦不許包胥立於秦廷晝夜哭七日七夜不絕其聲秦哀公憐之:「楚雖無道有臣若是可無存乎!」乃遣車五百乘救楚擊吳六月敗吳兵於稷[]會吳王久留楚求昭王而闔廬弟夫概乃亡歸自立為王闔廬聞之乃釋楚而歸擊其弟夫概夫概敗走遂奔楚楚昭王見吳有內亂乃復入郢封夫概於堂谿[]為堂谿氏楚復與吳戰敗吳吳王乃歸

처음 오원(오자서)과 신포서가 서로 사귀었는데 오원이 도망하면서 신포서에게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뒤엎겠다.” 하니 신포서가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보존하겠다.”고 했다. 오나라 군대가 영에 들어오고 오자서가 소왕을 찾음에 이르렀다. (오자서는 소왕을) 찾지 못하자 이에 평왕의 무덤을 파서 그 시체를 꺼내어 채찍 300대를 친 후에 그만 두었다. 신포서가 산중에 도망하여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원수 갚음이 참으로 심하구나! 내가 들으니 사람들은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뜻을 정하면 또한 사람을 깨트릴 수 있다. 지금 그대가 옛 평왕의 신하로서 친히 북쪽을 향하여 그를 섬기다가 지금 죽은 사람을 욕보임에 이르렀으니 이 것이 어찌 천도의 지극함이 없을 것인가! ” 했다. 오자서가 말하기를 나를 위해 신포서에게 사례하고 말하시오. 나에게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서 내가 그러므로 거꾸로 행하고 거슬러 베푸는 것입니다.” 했다. 이에 신포서가 으로 달아나 급함을 알리고 진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나라가 허락하지 않았다. 신포서가 진나라 조정에 서서 밤낮으로 곡하여 7일 낮, 7일 밤을 하여 그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진나라 애공이 불쌍히 여겨 말하기를 초나라가 비록 무도하지만 이 같은 신하기 있으니 보존하지 못할 것인가!” 하고는 이에 수레 500대를 보내 초나라를 구하고 오나라를 쳤다. 6월에 오나라 군대를 에서 패하게 하였다. 오나라 왕은 초나라에 오래 머물면서 소왕을 찾았는데 합려의 동생 부개가 도망하여 돌아가 스스로 왕이 됨을 만났다. 합려가 그것을 듣고는 이에 초나라의 (포위를 ) 풀고는 돌아가 그 동생 부개를 쳤다. 부개가 패하여 달아나 드디어 초나라로 도망하였다. 초나라 소왕이 오나라에 내란이 있음을 보고는 돌아가 영에 들어가 부개를 당계에 봉하니 당계씨로 하였다. 초나라가 다시 노나라와 싸워서 오나라를 패하게 하니 오나라 왕이 돌아갔다.

 

[] 正義申包胥言聞人眾者雖一時凶暴勝天及天降其凶亦破於彊暴之人

[] 正義신포서는 사람들이 비록 한때의 흉포함으로 하늘을 이길 수 잇을 지라도 하늘이 그 흉함을 내림에 이르러서는 또한 강포한 사람을 깨트린다고 들었음을 말한 것이다.

[] 索隱按倒音丁老反施音如字子胥言志在復讎常恐且死不遂本心今幸而報豈論理乎譬如人行前途尚遠而日勢已莫其在顛倒疾行逆理施事何得責吾順理乎

[] 索隱살펴보니 의 음은 이다. 의 음은 본래 글자와 같다. 오자서는 뜻이 복수함에 있어 항상 또한 죽을 것을 두려워하고 본래 마음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지금 요행히 갚을 수 있게 되었는데 어찌 이치를 논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한 것이다. 사람이 길을 가는데 비유하면 앞길(가야 할 길)은 오히려 멀고, 해의 형세가 이미 저물면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빨리 가야 하는 것처럼 이치를 거스르고 일을 행하는 것에 대하여 어찌 나에게 이치를 따르지 않는다고 꾸짖는가? 한 것이다.

[] 集解稷丘地名在郊外。 索隱按左傳作稷丘」。杜預云稷丘地名在郊外」。

[] 집해稷丘는 땅이름이니 교외에 있다. 索隱살펴보니 左傳에는 稷丘라고 썼다. 두예가 말하기를 “‘稷丘는 땅이름이니 교외에 있다.” 고 했다.

 

[] 集解徐廣曰:「在慎縣。」駰案地理志汝南有吳房縣應劭曰夫概奔楚封於堂谿本房子國以封吳故曰吳房」,然則不得在慎縣也正義案今豫州吳房縣在州西北九十里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愼縣에 있다.” 하고, 裵駰이 살펴보니 地理志에 여남에 오방현이 있다.” 하고 응소가 말하기를 부개가 초나라로 도망하여 당계에 봉해졌는데 본래 방자국으로 오에 봉해졌기 때문에 吳房이라 한다.” 했다. 그러한 즉 愼縣에 있을 수 없다. 正義살펴보니 지금의 예주 오방현은 주의 서북쪽 90리에 있다.

 

後二歲闔廬使太子夫差將兵伐楚取番[]楚懼吳復大來乃去郢徙於鄀[]當是時吳以伍子胥孫武之謀西破彊楚北威齊晉南服越人

2년 후 합려는 태자 부차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치게하여 을 취하였다. 초나라는 오나라가 다시 크게 올 것을 두려워하여 영을 떠나 ()으로 옮겼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도모함으로써 서쪽으로는 강한 초나라를 깨트리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나라를 위협하고, 남쪽으로는 월나라 사람들을 복종시켰다.

[] 集解音普寒反又音婆。 索隱音普寒反又音婆蓋鄱陽也

[] 集解음은 인데, 또 음을 라 한다. 索隱음은 이고, 또 음을 라 한다, 鄱陽이다.

 

[] 集解楚地音若索隱音若楚地今闕

[] 集解초나라 땅이니 음은 이다. 索隱음은 이다. 은 초나라 땅인데 지금은 빠졌다.

 

其後四年孔子相魯

그 후 4년에 공자가 노나라 재상이 되었다.

 

後五年伐越越王句踐迎擊敗吳於姑蘇傷闔廬指[]軍卻闔廬病創[]將死謂太子夫差曰:「爾忘句踐殺爾父乎?」夫差對曰:「不敢忘。」是夕闔廬死夫差既立為王以伯嚭為太宰習戰射二年後伐越敗越於夫湫[]越王句踐乃以餘兵五千人棲於會稽之上[]使大夫種[]厚幣遺吳太宰嚭以請和求委國為臣妾吳王將許之伍子胥諫曰:「越王為人能辛苦今王不滅後必悔之。」吳王不聽用太宰嚭計與越平

5년 후 월나라를 쳤다. 월나라 왕 구천이 맞아 싸워 부소에서 오나라를 패하게 하여(이기고) 합려의 손가락을 상하게 하고 군대를 물렸다. 합려가 병과 상처로 죽으려할 때 태자 부차를 불러 말하기를 너는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 하니 부차가 대답하기를 감히 잊겠습니까?” 했다. 이날 저녁 합려가 죽었다. 부차가 즉위하여 왕이 되고 백비로써 태재를 삼고 싸움과 활쏘기를 연습하였다. 2년 후 월나라를 쳐서 월나라를 부추에서 패퇴시켰다. 월나라 왕 구천이 이에 남은 군대 5천인으로써 회계의 위에 머물면서 대부 종으로 하여금 많은 폐백으로 오나라 태재 백비에게 주고 화의를 청하면서 나라를 맡기고 신첩이 될 것을 구하였다. 오나라 왕이 장차 허락하려 하였다. 오자서가 간하여 말하기를 월나라 왕은 사람됨이 어려움을 견딜 수 있습니다. 지금 왕께서 멸망시키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했다. 오나라 왕이 듣지 않고 태재 백비의 계책을 써서 월나라와 화평했다.

[] 正義姑蘇當作檇李」,乃文誤也左傳云戰檇李傷將指卒於陘是也解在吳世家

[] 正義고소는 마땅히 欈李로 써야 하는데 글의 잘못이다. 좌전취리에서 싸우다 손가락을 다쳤는데 에서 죽었다.” 한 것이 이것이다.

 

[] 集解楚良反索隱音瘡

[] 集解이다. 索隱음은 이다.

 

[] 集解音椒索隱音椒又如字正義太湖中椒山也解在吳世家

[] 集解음은 이다. 索隱음은 이니 또한 같은 자이다. 正義태호 안의 초산이다. 풀이가 吳世家에 있다.

 

[] 正義土地名在越州會稽縣東南十二里

[] 正義토지 이름인데 월주 회계현 동남쪽 12리에 있다.

 

[] 索隱劉氏云大夫姓種名」,非也今吳南有文種埭則種姓文為大夫官也正義高誘云:「大夫種姓文氏字子禽楚之郢人。」

[] 索隱윴기 말하기를 대부는 성이도 종츤 이름이다.” 하는데 잘 못이다. 살펴보니 지금의 남쪽에 文種埭가 있는데 곧 이고 대부는 관직이 된다. 正義고유가 말하기를 대부 종은 성이 문씨이고, 자는 금이며 초나라 지역 사람이다.

 

其後五年而吳王聞齊景公死而大臣爭寵新君弱乃興師北伐齊伍子胥諫曰:「句踐食不重味弔死問疾且欲有所用之也此人不死必為吳患今吳之有越猶人之有腹心疾也而王不先越而乃務齊不亦謬乎!」吳王不聽伐齊大敗齊師於艾陵[]遂威鄒魯之君以歸[]益疏子胥之謀

그 후 5년에 오나라 왕이 제나라 경공이 죽고, 대신이 총애를 다투며 새 임금이 약하다는 것을 듣고 이에 군대를 일으켜 북쪽으로 제나라를 쳤다. 오자서가 간하여 말하기를 구천이 맛있는 것을 거듭 먹지 않고(한 가지만 먹고) 죽은 이를 조문하고 병 있는 이를 위문하는 것은 또한 쓸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오나라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지금 오나라의 월나라의 월나라는 마치 사람의 배 속 심장에 병이 잇는 것과 같습니다. 왕께서 월나라를 우선하지 않고 이에 제나라를 힘쓰는 것은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오나라 왕이 듣지 않고 제나라를 토벌하다 제나라 군대를 애릉에서 크게 패하게 하고 마침내 나라와 나라의 임금을 위협하는 것으로써(복속시키고) 돌아왔다. 더욱 오자서의 도모함을 멀리 하였다.

[] 正義括地志云:「艾山在兗州博城縣南百六十里本齊博邑。」

[] 正義】 『括地志艾山은 연주 박성현 남쪽 160리에 있는데 본래 제나라 박읍이었다.”

 

[] 正義鄒君居兗州鄒縣曲阜縣

[] 正義추의 임금은 연주 추현에 살았다. 노는 곡부현이다.

 

其後四年吳王將北伐齊越王句踐用子貢之謀乃率其眾以助吳而重寶以獻遺太宰嚭太宰嚭既數受越賂其愛信越殊甚日夜為言於吳王吳王信用嚭之計伍子胥諫曰:「夫越腹心之病今信其浮辭詐偽而貪齊破齊譬猶石田無所用之且盤庚之誥曰:『有顛越不恭劓殄滅之俾無遺育無使易種于茲邑。』此商之所以興願王釋齊而先越若不然後將悔之無及。」而吳王不聽使子胥於齊子胥臨行謂其子曰:「吾數諫王王不用吾今見吳之亡矣汝與吳俱亡無益也。」乃屬其子於齊鮑牧而還報吳

구 후 4년에 오나라 왕이 북쪽으로 제나라를 토벌하려는데 월 왕 구천이 자공의 꾀를 써서 그 무리를 거느리고 오나라 왕을 돕고 좋은 보배로써 태재 비에게 바쳤다. 태재 비가 이미 여러 번 월나라의 뇌물을 받아 월나라를 사랑하고 믿는 것이 심하여 밤낮으로 오나라 왕에게 말을 하였다. 오나라 왕이 비의 계교를 믿고 썼다. 오자서가 간하여 말하기를 저 월나라는 腹心의 병폐입니다. 지금 그 허튼 소리와 속이는 말을 듣고 제나라를 탐합니다. 제나라를 깨트리는 것은 돌밭과 같아서 쓸 수 없습니다. 또한 반경의 가르침에 예의에 벗어나고 공손하지 않는 자는 모두 코를 베어 모두 죽여 없애서 남은 기름이 없게 하여 이 읍에 살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상나라가 흥성한 이유입니다. 원하건데 왕께서는 제나라를 풀어두고 월나라를 우선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후에 장차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오나라 왕이 듣지 않고 오자서를 제나라에 사신가게 하였다. 오자서가 갈 때에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여러 번 왕을 간하였으나 왕이 쓰지 않으니 내가 지금 오나라의 망함을 본다. 너와 오나라 왕이 함께 망하는 것은 이익 됨이 없다.” 하고는 그 아들을 제나라의 대부 포목에게 부탁하고는 오나라에 돌아와 보고하였다.

 

吳太宰嚭既與子胥有隙因讒曰:「子胥為人剛暴少恩猜賊其怨望恐為深禍也前日王欲伐齊子胥以為不可王卒伐之而有大功子胥恥其計謀不用乃反怨望而今王又復伐齊子胥專愎[]彊諫[]毀用事徒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今王自行悉國中武力以伐齊而子胥諫不用因輟謝詳病不行王不可不備此起禍不難且嚭使人微伺之其使於齊也乃屬其子於齊之鮑氏夫為人臣內不得意外倚諸侯自以為先王之謀臣今不見用常鞅鞅怨望願王早圖之。」

오나라 태재 비가 이미 오자서와 틈이 있어 참소하여 말하기를 오자서는 사람됨이 강폭하고 은혜를 베픔이 적으며 시기하고 해치며 (왕이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원망하여 깊은 화가 될 것이 두렵습니다. 지난날에 왕께서 제나라를 토벌하려 할 때에 오자서는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큰 공이 있었습니다. 오자서가 그 계책이 쓰여지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이에 도리어 원망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또 다시 제나라를 정벌하려하는데 오자서가 제 멋대로 거역하고 굳게 간하고, 일을 씀을 막고 무너뜨리며 오나라의 패배를 요행으로 여김으로써 자신의 계책이 나음을 도모할 뿐입니다. 지금 왕께서 (정벌을)감으로부터 모든 나라 안의 무력이 제나라를 정벌하려는데 오자서는 간함이 쓰여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말을 그치고 거짓 병으로 가지 않습니다. 왕께서 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화가 일어나기 어렵지 않습니다.(화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또 제가 사람을 시켜서 은밀히 엿보니 제나라에 사신 가서 아들을 제나라 포씨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대저 신하 된 자가 안으로 뜻을 얻지 못하여 밖으로 제후에게 의지하면서 스스로 선왕의 謀臣(뛰어난 신하)여기고 지금 쓰임을 받지 못하였다고 항상 앙앙하고 원망합니다. 원하건데 왕께서는 빨리 도모하십시오.” 했다.

 

[] 索隱皮逼反

[] 索隱이다.

 

[] 集解自呂反

[] 集解이다.

 

吳王曰:「微子之言吾亦疑之。」乃使使賜伍子胥屬鏤[]之劍:「子以此死。」伍子胥仰天歎曰:「嗟乎讒臣嚭為亂矣王乃反誅我我令若父霸自若未立時諸公子爭立我以死爭之於先王幾不得立[]若既得立欲分吳國予我我顧不敢望也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乃告其舍人曰:「必樹吾墓上以梓令可以為器[]而抉[]吾眼縣吳東門之上[]以觀越寇之入滅吳也。」乃自剄吳王聞之大怒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浮之江中[]吳人憐之為立祠於江上[]因命曰胥山[一一]

오나라 왕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아니더라도 내가 또한 의심하였다.” 하고는 이에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촉루의 검을 내리고는 말하기를 그대는 이것으로써 죽으라.” 했다. 오자서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면 말하기를 ! 참소하는 신하 백비가 (나라를)어지럽히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인다. 내가 너의 아버지를 패왕으로 만들었고, 네가 후계자에 오르지 않았을 때부터 여러 공자가 후계자 자리를 다툴 때 내가 죽음으로써 선왕에게 그것을 간쟁하지 않았다면 거의 즉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네가 즉위하고 나서 오나라를 나누어 나게 주고자 했을 때 나는 돌아보고 감히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네가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 長子(어른, 우두머리?)를 죽인다.” 하고는 그 사인(집안사람)에게 말려 말하기를 반드시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서 (오나라 왕을 위한)기물()이 될 수 있게 하고, 내 눈을 도려내어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 두라. 월나라 도적이 오나라에 들어와 멸망시키는 것을 볼 것이다.” 하고는 스스로 목을 베고는 죽었다. 오나라 왕이 그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오자서의 시체를 취하여 가죽 부대에 넣어서 강에 뛰웠다. 오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불쌍하게 여겨 강가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고 胥山이라 이름 하였다.

[] 集解錄于反

[] 集解이다.

 

[] 正義幾音祈

[] 正義의 음은 이다.

 

[] 正義器謂棺也以吳必亡也左傳云:「樹吾墓檟檟可材也吳其亡乎!」

[] 正義이니 오나라가 반드시 망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左傳내 무덤에 개오동나무를 심으라. 개오동나무는 재목으로 쓸 수 있다. 오나라가 망하는 구나!” 했다.

[] 索隱烏穴反抉亦決也

[] 索隱이다. 은 도한 이다.

 

[] 正義東門䲕門謂䱐門也今名葑門䲕音普姑反䱐音覆浮反越軍開示浦子胥濤羅城開此門有䲕䱐隨濤入故以名門顧野王云䲕魚一名江豚欲風則涌

[] 正義東門은 보문이니 부문을 말하는데 지금 이름은 봉문이다. 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월나라 군대가 시포를 열자 자서도(파도, 강과 바다의 신)羅城에 부딪쳤는데 이 문을 열 때 䲕䱐(고래)가 파도를 따라 들어왔으므로 문의 이름으로 했다. 고야왕이 말하기를 보어는 일명 江豚이라 하는데 바람을 따라 솟구친다.”고 했다.

[] 集解應劭曰:「取馬革為鴟夷鴟夷榼形。」 正義盛音成古曷反

[] 集解응소가 말하기를 말가죽을 취하여 鴟夷(말가죽으로 만든 자루)를 만드는데 치이는 통모양이다.” 했다. 正義의 음은 이다. (통 합)이다.

 

[] 集解徐廣曰:「魯哀公十一年。」 正義案年表云吳王夫差十一年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노아라 애공 11이라 했다. 正義살펴보니 연표에 이르기를 오나라 왕 부차 11년이다.

 

[] 正義吳地記曰:「越軍於蘇州東南三十里三江口又向下三里臨江北岸立壇殺白馬祭子胥杯動酒盡後因立廟於此江上今其側有浦名上壇浦至晉會稽太守麋豹移廟吳郭東門內道南今廟見在。」

[0] 正義】 『吳地記월나라 군대가 소주 동남쪽 30三江口에서 또 하류로 3리를 내려와 강북쪽 언덕에 단을 세우고 백마를 밥아 오자서에게 제사하는데 잔이 움직여 술이 다하였다. 후에 (이로) 인하여 이 강 가에 사당을 세웠다. 지금 그 옆에 있는 포구를 上壇浦라 한다. 나라 회계태수 미표에 이르러 사당을 오나라 성곽 동문 안 길 쪽에 옮겼는데 지금도 사당이 있음을 볼 수 있다.

[一一]集解張晏曰:「胥山在太湖邊去江不遠百里故云江上。」 正義吳地記云:「胥山太湖邊胥湖東岸山西臨胥湖山有古丞胥二王廟。」其廟不干子胥事太史誤矣張注又非

[一一]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胥山은 태호 가에 있는데 강으로부터 100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江上’”이라 했다.” 正義】 『吳地記胥山은 채호가 胥湖 동쪽 가의 산이다. 서쪽으로 胥湖에 붙어 있는데 산에는 옛날 丞胥 두 왕의 사당이 있다.” 했다. 살펴보니 그 사당은 오자서의 일에 간여되지 않으니 太史의 잘못이다. 장안의 주석 또한 잘못이다.

吳王既誅伍子胥遂伐齊齊鮑氏殺其君悼公而立陽生吳王欲討其賊不勝而去其後二年吳王召魯衛之君會之橐[]其明年因北大會諸侯於黃池[]以令周室越王句踐襲殺吳太子[]破吳兵吳王聞之乃歸使使厚幣與越平後九年越王句踐遂滅吳殺王夫差而誅太宰嚭以不忠於其君而外受重賂與己比[]周也

오나라 왕이 오자서를 죽이고 마침내 제나라를 쳤다. 제나라 포씨가 그 임금인 도공을 죽이고 양생을 세웠다. 오나라 왕이 그 적을 성토하고자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갔다. 그 후 2년에 오나라 왕이 노나라와 위나라의 임금을 불러 槖皐(탁고)에서 회맹하였다. 그 다음해 인하여 황지 북쪽에서 크게 제후를 모아서 주나라 왕실의 령을 전하였다.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태자를 숩격하여 죽이고 오나라 군대를 깨트렸다. 오나라 왕이 그것을 듣고 돌아가 사자로 하여금 많은 선물을 주고 월나라와 화평하였다. 9년에 월나라 왕 구천이 드디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왕 부차를 죽이고, 태재 백비도 죽였는데 그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고 밖으로 많은 뇌물을 받았으며 자기와 결당하였다 하였기 때문이다.

 

[] 索隱音拓皋二音杜預云:「地名在淮南逡遒縣東南。」 正義橐皋故縣在廬州巢縣西北五十六里

[] 索隱음은 의 두 음이다. 두예가 말하기를 지명이니 회남 준주현 동남쪽에 있다고 했다.” 正義橐姑 옛 현은 여주 소현 북쪽 56리에 있다.

[] 正義在汴州封丘縣南七里

[] 正義변주 봉구현 남쪽 7리에 있다.

 

[] 索隱左傳太子名友

[索隱] 左傳에 태자의 이름은 라 했다.

 

[] 正義紀鼻二音

[] 正義의 두 음이다.

 

伍子胥初所與俱亡故楚太子建之子勝者在於吳吳王夫差之時楚惠王欲召勝歸楚葉公[]諫曰:「勝好勇而陰求死士殆有私乎!」惠王不聽遂召勝使居楚之邊邑鄢[]號為白公[]白公歸楚三年而吳誅子胥

오자서가 처음에 함께 도망하였던 초나라 태자 건의 아들 승은 오나라에 있었다. 오나라 왕 부차의 때에 초나라 혜왕이 승을 불러 초나라로 돌아오게하고자 하였다. 섭공이 간하여 말하기를 승은 용맹함을 좋아하고 뒤로 死士(결사대)를 구하여 거의 사사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했으나 혜왕이 듣지 않았다. 드디어 승을 불러 초나라의 변경 읍인 언에서 살게 하고는 이름하여 백공이라 하였다. 백공이 초나라에 돌아 온지 3년 만에 오나라가 오자서를 죽였다.

[] 正義上式涉反杜預云:「子高沈諸梁。」

[] 正義, , 이다. 두예가 말하기를 자고는 심제량이다.” 했다.

 

[] 集解徐廣曰:「潁川鄢陵是。」 正義鄢音偃括地志云:「故郾城在豫州郾城縣南五里與褒信白亭相近。」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영천 언릉이 이것이다.” 했다. 正義의 음은 이다. 括地志옛 언성은 예주 郾城縣 남쪽 5리에 있는데 포신의 백정과 서로 가깝다.” 했다.

 

 

 

[] 集解徐廣曰:「汝南褒信縣有白亭。」 正義括地志云:「白亭在豫州褒信縣南四十二里又有白公故城又許州扶溝縣北四十五里北又有白亭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여남 포신현에 자정이 있다.” 했다. 正義】 『括地志에 자정은 예주 포신현 남쪽 40리에 있고, 또 백공 고성이 있다. 또 허주 부구현 북쪽 45리인데 북쪽에 또 백정이 있다.

白公勝既歸楚怨鄭之殺其父乃陰養死士求報鄭歸楚五年請伐鄭楚令尹子西許之兵未發而晉伐鄭鄭請救於楚楚使子西往救與盟而還白公勝怒曰:「非鄭之仇乃子西也。」勝自礪劍人問曰[]何以為?」勝曰:「欲以殺子西。」子西聞之笑曰:「勝如卵耳何能為也。」

백공 승이 초나라로 돌아가서 정나라가 그 아버지를 죽인 것을 원망하여 뒤로 死士를 길러 정나라에 복수하려 했다. 초나라에 돌아 간지 5년에 정나라를 칠 것을 청하니 초나라 영윤 자서가 허락하였다. 군대를 출발하지 않았는데 나라가 정나라를 치니 정나라가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초나라가 자서로 하여금 가서 구원하게 하니 동맹을 맺고 돌아왔다. 백공 승이 노하여 말하기를 정나라가 원수가 아니라 자서이다.” 했다. 승이 스스로 검을 갈자 사람들이 물어 말하기를 무엇을 합니까?” 했다. 승이 말하기를 자서를 죽이고자 합니다.” 했다. 자서가 그것을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승은 알과 같을 뿐이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했다.

 

[] 索隱左傳作子期之子平見曰王孫何自礪也』」。

[] 索隱】 『左傳자기의 아들 평견이 말하기를 왕손이 어찌 스스로 (검을)가는가’” 라고 썼다.

 

其後四歲白公勝與石乞襲殺楚令尹子西司馬子綦[]於朝石乞曰:「不殺王不可。」乃劫王如高府[]石乞從者屈固[]負楚惠王亡走昭夫人之宮[]葉公聞白公為亂率其國人攻白公白公之徒敗亡走山中自殺[]而虜石乞而問白公尸處不言將亨石乞曰:「事成為卿不成而亨固其職也。」終不肯告其尸處遂亨石乞而求惠王復立之

그 후 4년에 백공 승과 석걸이 초나라 영윤 자서와 사마자기를 조정에서 습하여 죽였다. 석걸이 말하기를 왕을 죽이지 않는 것은 불가하다.” 하고는 왕을 (죽이러) 고부로 갔다. 석걸의 종자 굴고가 초나라 혜왕을 업고 소부인으 궁으로 도망하였다. 섭공이 백공이 난을 일으켰음을 듣고 그 國人을 거느리고 백공을 공격하였다. 백공의 무리가 패하여 산 속으로 도망하였다가 자살하였다. 백공을 사로잡아 백공의 시체가 있는 곳을 물으면서 말하지 않으면 장차 (솥에) 삶겠다고 했다. 석걸이 말하기를 일이 이루어지면 이 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삶기는 것은 진실로 직분(당연하다)이다.” 하고는 끝내 그 시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 마침내 석걸을 삶고는 혜왕을 찾아 다시 세웠다.

[] 索隱左傳作子期

[] 索隱】 『左傳子期라고 썼다.

 

[] 索隱杜預云:「楚之別府也。」

[] 索隱두예가 말하기를 초나라의 별부이다.” 했다.

 

[] 集解徐廣曰:「一作惠王從者屈固』。楚世家亦云王從者』。」 索隱按徐廣曰一作惠王從者屈固」,蓋此本為得而左傳云石乞尹門圉公陽穴宮負王以如昭夫人之宮」,則公陽是楚之大夫王之從者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혜왕의 종자 굴고라고 썼다.”고 했다. 초나라 세가에 또한 왕의 종자라 했다. 索隱살펴보니 서광이 말한 한편으로 혜왕의 종자 굴고 라고 쓴다.”는 것은 이를 근본으로 하여 얻은 것이다. 左傳에 말하기를 석걸이 문을 다스리자(지키자) 마부 공양이 궁의 구멍으로 왕을 업고 소부인의 궁으로 갔다.”고 했다. 곧 공양은 초나라의 대부이면서 왕의 종자이다.

[] 索隱昭王夫人即惠王母越女也

[] 索隱소왕의 부인이니 곧 혜왕의 어머니로 월나라 여자이다.

[] 正義左傳云白公奔而縊

[] 正義】 『左傳에 백공이 달아나 목매어 죽었다.

太史公曰怨毒之於人甚矣哉王者尚不能行之於臣下況同列乎向令伍子胥從奢俱死何異螻蟻棄小義雪大恥名垂於後世悲夫方子胥窘於江上[]道乞食志豈嘗須臾忘郢邪故隱忍就功名非烈丈夫孰能致此哉白公如不自立為君者其功謀亦不可勝道者哉

태사공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에게 끼친 해독을 원망함이 심하구나! 왕 노릇하는 자도 오히려 신하에 대해 행할 수 없는데(원한을 사서는 안되는 데) 하물며 같은 반열이겠는가! 지난번에 오자서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무엇이 땅강아지, 개미와 다르겠는가?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부끄러움을 씻어 이름이 천하에 드리워졌다. 슬프다 오자서가 강가에 궁색함을 당하여 길에서 빌어먹었지만 뜻을 어찌 잠시라도 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숨고 참아 功名에 나아갔으니 열열한 장부가 아니면 누가 여기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백공이 스스로 즉위하여 임금이 되려 하지 않았다면 그 공과 꾀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 索隱窘音求殞反

[一索] 索隱의 음은 이다.

 

索隱述贊讒人罔極交亂四國嗟彼伍氏被茲凶慝員獨忍詬志復冤毒霸吳起師伐楚逐北鞭尸雪恥抉眼棄德

索隱述贊참소하는 사람 끝이 없어 네 나라를 번갈아 어지럽힌다. ! 저 오씨는 이 흉악하고 사특함에 당하였구나! 홀로 치욕을 참고 뜻을 원통하고 해침을 회복함에 두었다.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우두머리로 하고, 초나라를 쳐 북으로 쫒았다. 시체를 채찍질 하여 부끄러움을 씻었으되 눈을 뽑히고 덕을 버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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