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蘇秦者,東周雒陽人也。[一]東事師於齊,而習之於鬼谷先生。[二]
소진은 동주 낙양인이다. 동쪽으로 가서 제나라에서 스승을 섬기고, 귀곡선생에게서 그것을 익혔다.
[一] 索隱蘇秦字季子,蓋蘇忿生之後,己姓也。譙周云:「秦兄弟五人,秦最少。兄代,代弟厲及辟、鵠,並為游說之士。」此下云「秦弟代,代弟厲」也。正義戰國策云:「蘇秦,雒陽乘軒里人也。」藝文志云蘇子三十一篇,在縱橫流。敬王以子朝之亂從王城東遷雒陽故城,乃號東周,以王城為西周。
[一] 【索隱】 소진의 자는 계자이니 소분생의 후예로 성는 己이다. 초주가 말하기를 “소진의 형제가 다섯인데 소진이 가장 어리다. 형 대, 대의 동생 려와 벽, 곡이 모두 유세하는 선비가 되었다.” 했다. 이 아래에 말하기를 “소진의 동생은 대이고, 대의 동생은 려이다.” 했다. 【正義】 『戰國策』에 “소진은 락양 승헌리 사람이다.” 했다. 「藝文志」에 “『蘇子』31편은 종횡류에 속한다. 경왕이 자조의 난 때문에 왕성으로부터 동쪽 락양의 옛 성으로 옮기고 이에 東周라 부르고, 왕성을 西周로 했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潁川陽城有鬼谷,蓋是其人所居,因為號。」駰案:風俗通義曰「鬼谷先生,六國時從橫家」。索隱按:鬼谷,地名也。扶風池陽、潁川陽城並有鬼谷墟,蓋是其人所居,因為號。又樂壹注鬼谷子書云「蘇秦欲神祕其道,故假名鬼谷」。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영천 양성에 귀곡이 있는데 대개 그 사람이 거처하던 곳이니 이름으로 삼았다.” 했다. 【駰案】 『風俗通義』에 “귀곡선생은 六國時代의 종횡가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귀곡은 지명이다. 부풍 지양, 영천 양성이 모두 귀곡의 옛 터에 있으니 이는 그 사람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이름으로 삼았다.” 했다. 또 樂臺가 『鬼谷子書』에 주석하기를 “소진이 그 도를 신비스럽게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빌려 귀곡이라 했다.” 하였다.
出游數歲,大困而歸。[一]兄弟嫂妹妻妾竊皆笑之,曰:「周人之俗,治產業,力工商,逐什二以為務。今子釋本而事口舌,困,不亦宜乎!」蘇秦聞之而慚,自傷,乃閉室不出,出其書遍觀[二]之。曰:「夫士業已屈首受書,[三]而不能以取尊榮,雖多亦奚以為!」於是得周書陰符,伏而讀之。期年,以出揣摩,[四]曰:「此可以說當世之君矣。」求說周顯王。顯王左右素習知蘇秦,皆少之。[五]弗信。
나가서 유력한지 여러 해에 크게 곤궁하여 돌아왔다. 형제와 형수, 제수, 처첩들이 몰래 모두 비웃으며 말하기를 “周나라 사람들의 풍속에 산업을 다스리고 工商에 힘써서 열에 둘로써 일을 삼는다. 지금 그대는 근본을 풀고, 입과 혀(말)를 섬기다 곤궁하였으니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했다. 소진이 그것을 듣고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여 이에 방을 닫아 나가지 않고, 그 글을 내어 두루 살펴보았다. (소진이)말하기를 “대저 선비가 이미 머리를 숙이고 글을 받아서 (지위의)높음과 영예로움을 취하지 못한다면 비록 많다한들 또한 어디에 쓰겠는가?” 하였다. 이에 『周書陰符』를 얻어 숨어서 그것을 읽었다. 1년이 지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리는 것을 터득하고 말하기를 “ 이는 지금 세상의 임금을 설득할 수 있다.”하고는 周 나라 현왕을 설득할 것을 구하였다. 현왕과 좌우(신하)들이 평소 익히 소진을 알아 모두 그를 하찮게 여겨 믿지 않았다.
[一] 索隱按:戰國策此語在說秦王之後。
[一]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 이 말이 秦나라 왕을 설득한 뒤에 있다.
[二] 索隱音遍官二音。按:謂盡觀覽其書也。
[二] 【索隱】 음은 遍과 官 두 음이다. 살펴보니 그 글을 모두 열람한 것을 말한다.
[三] 索隱按:謂士之立操。業者,素也,本也。言本已屈首低頭,受書於師也。
[三] 【索隱】 살펴보니 선비가 절조를 세움을 말한다. 業은 바탕이며 근본이다. 본래 이미 머리를 숙이고, 머리를 낮게 숙여서 수승에게 글을 받음을 말한 것이다.
[四] 集解戰國策曰:「乃發書,陳篋數十,得太公陰符之謀,伏而誦之,簡練以為揣摩。讀書欲睡,引錐自刺其股,血流至踵。曰:『安有說人主不能出其金玉錦繡,取卿相之尊者乎?』期年,揣摩成。」鬼谷子有揣摩篇也。索隱戰國策云「得太公陰符之謀」,則陰符是太公之兵符也。揣音初委反,摩音姥何反。鄒誕本作「揣靡」,靡讀亦為摩。王劭云「揣情、摩意是鬼谷之二章名,非為一篇也」。高誘曰「揣,定也。摩,合也。定諸侯使讎其術,以成六國之從也」。江邃曰「揣人主之情,摩而近之」,其意當矣。
[四] 【集解】 『戰國策』에 “글을 내고, 상자 수십 개를 늘어놓고는 태공의 음부의 꾀를 얻어서 숨어 그것을 외우고, 간결하고 세련되게 하는 것으로써 다름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리는 것으로 삼았다. 글을 읽다가 잠이 오면 송곳을 이끌어 그 다리를 찌르니 피가 흘러 발뒤꿈치에 이르렀다. (소진이)말하기를 어찌 임금이 그 금옥과 수놓은 비단을 내게 하고, 卿相의 높음을 취하지 못하는 자를 유세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했다. 1년이 지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림을 이루었으니 『귀곡자』 췌마편에 있다. 【索隱】 『戰國策』에 “태공의 음부의 꾀를 얻었다.”하였는데 곧 음부는 이 태공의 兵符이다. 揣의 음은 初와 委의 反이고, 摩의 음은 姥와 何의 反이다. 추탄본에는 ‘揣靡’라고 썼는데 靡는 읽기를 또한 摩로 한다. 왕소가 말하기를 “揣는 실정이고, 摩는 뜻이니 이는 귀곡의 두 번째 장의 이름이니 한 편이 되는 것이 아니다.”했다. 고유가 말하기를 “揣는 定함이고 摩는 合함이다. 제후가 그 방법을 원수에게 사용하게 하는 것으로써 6국의 합종을 이루어 안정시키는 것이다.” 했다. 강수가 말하기를 “揣는 임금의 實情이니 어루만지고 가까이하는 것이다.”하니 그 뜻이 마땅하다.(옳다.)
[五] 索隱謂王之左右素慣習知秦浮說,多不中當世,而以為蘇秦智識淺,故云「少之」。劉氏云:「少謂輕之也。」
[五] 【索隱】 왕의 좌우(신하)들이 평소에 관습적으로 소진의 헛소리를 알았는데, 현재 세상에 알맞지 않음이 많았기 때문에 소진의 지식이 얕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少之(부족하다.)’라 한 것이다. 유씨는 “少는 가벼이 여기다.”라 했다.
乃西至秦。秦孝公卒。說惠王曰:「秦四塞之國,被山帶渭,東有關河,[一]西有漢中,南有巴蜀,北有代馬,[二]此天府也。[三]以秦士民之眾,兵法之教,可以吞天下,稱帝而治。」秦王曰:「毛羽未成,不可以高蜚;文理未明,不可以并兼。」方誅商鞅,疾辯士,弗用。
이에 서쪽으로 秦에 이르렀다. 秦나라 효공이 죽었다. 혜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秦나라는 사방이 막힌 나라로 산에 둘러싸이고, 위수를 두르며 동쪽으로 關(함곡관)과 河(황하)가 있고, 서쪽으로 한중이 있고, 남쪽으로 파촉이 있으며, 북쪽으로 대마가 있으니 이는 天府입니다. 秦나라 사민의 많음으로써 병법을 가르치면 천하를 삼키고, 帝를 일컬으며 다스릴 수 있습니다.” 했다. 秦나라 왕이 말하기를 “터럭과 깃이(날개가) 이루어지지 않아(다 자라지 않아) 높이 날 수 없고, 文理가 밝지 않아 아우를 수 없다.” 하고는 막 상앙을 죽이려 하고, 변사(말 잘하는 선비)를 미워하여 등용하지 않았다.
[一] 正義東有黃河,有函谷、蒲津、龍門、合河等關;南山及武關、嶢關;西有大隴山及隴山關、大震、烏蘭等關;北有黃河南塞:是四塞之國,被山帶渭(又)[以]為界。地里。江(渭)[謂]岷江,[西從]渭州隴山之西南流入蜀,東至荊陽入海也。河謂黃河,從同州小積石山東北流,至勝州即南流,至華州又東北流,經魏、滄等州入海。各是萬里已下。
[一] 【正義】 동쪽에 황하가 있고, 함곡, 포진, 용문, 합하 등의 關이 있고, 남쪽으로 산이 무관, 효관에 미친다. 서쪽으로 롱산관과 농서관, 대진, 오란 등의 관이 있다. 북쪽으로 황하와 남색이 있으니 이것이 사방이 막힌 나라로 산에 둘러싸이고 위수를 둘러 경계로 삼은 것이다. 지리적으로 강(위)는 민강를 이르는데 위주 농산의 서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흘러 촉에 들어가고, 동쪽으로 형양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 河는 黃河를 이르는데 동주 소적석산으로부터 동북으로 흘러 승주에 이르면 곧 남쪽으로 흐르다가 화주에 이르러 또 동북으로 흐르다 위주, 창주 등을 지나 바다에 들어간다. 각각 만리에 이른다.
[二] 索隱按:謂代郡馬邑也。地理志代郡又有馬城縣。一云代馬,謂代郡兼有胡馬之利。
[二] 【索隱】 살펴보니 위군 마읍을 말한다. 『地理志』에 대군에 또 마성현이 있다. 한편으로 대마라 말하며, 대군은 胡馬(북방 지역에서 나는 말)의 이로움을 겸한 일컬음이다.
[三] 索隱按:周禮春官有天府。鄭玄曰:「府,物所藏。言天,尊此所藏若天府然。」
【索隱】 살펴보니 『周禮』 春官에 天府가 있다. 정현이 말하기를 “府는 물건을 저장하는 곳이다. 天이라고 말한 것은 이곳에 여기에 저장한 것을 높여 하늘의 곳간 같다고 한 것이다.
乃東之趙。趙肅侯令其弟成為相,號奉陽君。奉陽君弗說之。
이에 동쪽의 趙나라에 갔다. 趙 숙후가 그 동생 성을 명하여 재상으로 삼았는데 호를 봉양군이라 하였다. 봉양군이 말하려 하지 않았다.
去游燕,歲餘而後得見。說燕文侯[一]曰:「燕東有朝鮮[二]、遼東,北有林胡、樓煩,[三]西有雲中、九原,[四]南有呼沱、易水,[五]地方二千餘里,帶甲數十萬,車六百乘,騎六千匹,粟支數年。[六]南有碣石、[七]鴈門之饒,[八]北有棗栗之利,民雖不佃作而足於棗栗矣。此所謂天府者也。
떠나 燕나라를 떠돌다 1년이 지난 후 만날 수 있었다. 燕나라 문후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燕나라는 동쪽에 조선, 요동이 있고, 북쪽에 임호, 루번이 있고, 서족에 운중, 구원이 있으며, 남쪽에 호타. 역수가 있고, 땅은 사방 이천여리이며, 갑옷을 입은 군사가 수십만이며, 수레가 600승, 말리 6천필, 곡식(군량)은 여러해를 지탱할 수 있습니다. 남쪽으로 갈석과 안문의 풍요로움이 있으며, 북쪽으로 대추와 밤이 잘 자라는 이로움이 있어서 백성이 비록 佃作(농사지음) 하지 않아도 대추와 밤을 풍족히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天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一] 索隱說音稅,下並同。燕文侯,史失名。
[一] 【索隱】 說의 음은 稅이니 아래도 같다. 燕나라 문후는 역사에서 이름을 잊어버렸다.
[二] 索隱潮仙二音,水名。
[二] 【索隱】 潮, 仙 두 음이니 물 이름이다.
[三] 索隱地理志樓煩屬鴈門郡。正義二胡國名,朔、嵐已北。
[三] 【索隱】 『地理志』에 “루번은 안문군에 속한다.” 했다. 【正義】 二胡는 나라 이름인데 朔과 嵐의 북쪽이다.
[四] 索隱按:地理志雲中、九原二郡名。秦曰九原,漢武帝改曰五原郡。正義二郡並在勝州也。雲中郡城在榆林縣東北四十里。九原郡城在榆林縣西界。
[四] 【索隱】 살펴보니 『地理志』에 “운중, 구원은 두 군의 이름이다. 秦나라는 구원이라 하고, 漢나라 무제가 고쳐서 오원군이라 했다.” 【正義】 두 군은 모두 승주에 있다. 운중군 성이 유림현 동북쪽 40리에 있다. 구원군 성은 유림현 서북 쪽 경계에 있다.
[五] 集解周禮曰:「正北曰并州,其川呼沱。」鄭玄曰:「呼沱出鹵城。」 索隱按:滹遝,水名,并州之川也,音呼沱。又地理志鹵城,縣名,屬代郡。滹遝河自縣東至參合,又東至文安入海也。正義呼沱出代州繁畤縣,東南流經五臺山北,東南流過定州,流入海。易水出易州易縣,東流過幽州歸義縣,東與呼沱河合也。
[五] 【集解】 『周禮』에 “正北을 병주라 하고, 그 川을 호타라 한다.”했다. 정현이 말하기를 “호타는 로성에서 나온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호답은 물이름이니 병주의 川이다. 음은 호타이다. 또 『地理志』에 “로성은 현이 이름이이 대군에 속한다. 호타(답)하는 현의 동쪽으로부터 동쪽으로 參合에 이르고, 또 동쪽으로 문안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 했다. 【正義】 호타는 대주 번치현에서 나와 동쪽으로 유주 귀의현을 흘러지나 동쪽의 호타와 함께 황하에 합한다.
[六] 索隱按:戰國策「車七百乘,粟支十年」。
[六]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 “수레 700대이고, 곡식은 10년을 지탱할 수 있다.” 했다.
[七] 索隱(戰國策)碣石山在常山九門縣。地理志大碣石山在右北平驪城縣西南。
[七] 【索隱】 (『戰國策』에)“갈석산은 상산 구문현에 있다.” 했다. 『地理志』에 “대갈석산은 우북평 여성현 서남쪽에 있다.” 했다.
[八] 正義鴈門山在代,燕西門。
[八] 【正義】 안문산은 대에 있으니 연나라 서쪽 문이다.
「夫安樂無事,不見覆軍殺將,無過燕者。大王知其所以然乎?夫燕之所以不犯寇被甲兵者,以趙之為蔽其南也。秦趙五戰,秦再勝而趙三勝。秦趙相斃,而王以全燕制其後,此燕之所以不犯寇也。且夫秦之攻燕也,踰雲中、九原,過代、上谷,彌地數千里,雖得燕城,秦計固不能守也。秦之不能害燕亦明矣。今趙之攻燕也,發號出令,不至十日而數十萬之軍軍於東垣矣。[一]渡滹沱,涉易水,不至四五日而距國都矣。故曰秦之攻燕也,戰於千里之外;趙之攻燕也,戰於百里之內。夫不憂百里之患而重千里之外,計無過於此者。是故願大王與趙從親,天下為一,則燕國必無患矣。」
(소진이)“안락하고 일이 없으며, 군대를 엎고, 장수들이 죽을 당하지 않은 것으로는 燕나라 보다 더 나은 나라가 없습니다. 대왕은 그 이유를 압니까? 대저 燕나라를 도적이 범하거나, 갑병(군대, 전쟁)을 입지 않는 것은 趙나라가 그 남쪽을 가리기(막아주기) 때문입니다. 秦나라와 趙나라가 5번 전쟁하여 秦나라가 두 번 이기고 趙나라가 세 번 이겼습니다. 秦나라와 趙나라가 서로 넘어졌으므로 왕이 燕나라를 온전히 하고 그 뒤를 제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燕나라를 도적들이 범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또 저 秦나라가 燕나라를 공격하려면 운중, 구원을 넘고, 대, 상곡을 지나는 땅 수 천리를 두루 미쳐야 하니 비록 燕나라의 성을 얻었다 할지라도 秦나라는 진실로 지킬 수 없음을 헤아립니다. 秦나라의 燕나라를 해칠 수 없는 것이 또한 분명합니다. 지근 趙나라가 燕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호령(명령)을 내면 10일을 지나지 않아 수십만의 군대가 동원에 진을 칠 것입니다. 호타를 건너고, 역수를 건너면 4, 5일에 이르지 않아 國都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秦나라가 燕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1000리의 밖에서 싸우고, 趙나라가 燕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100리의 안에서 싸운다고 한 것입니다. 저 100리의 근심을 걱정하지 않고, 1000리의 밖을 중시하는 것은 계책이 이보다 잘못됨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대왕은 趙나라와 더불어 남북으로 친하여 천하가 하나 되기를 원한다면 燕나라는 반드시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했다.
[一] 索隱地理志高帝改曰真定也。正義趙之東邑,在恆州真定縣南八里,故常山城是也。
[一] 【索隱】 『地理志』에 “고제가 고쳐 진정이라 했다.” 한다. 【正義】 趙나라의 동쪽 읍이니 항주 진정현 남쪽 8리에 있는데 옛 상산성이 이것이다.
文侯曰:「子言則可,然吾國小,西迫彊趙,[一]南近齊[二],齊、趙彊國也。子必欲合從以安燕,寡人請以國從。」
문후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곧 옳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그마하고, 서쪽으로 강한 趙나라에 핍박 받고, 남쪽으로 齊나라에 가까운데 齊나라와 趙나라는 강한 나라이다. 그대가 반드시 합종으로써 燕나라를 편안하게 하고자 하니 과인이 나라로써 따를 것을 청합니다.” 했다.
[一] 正義貝、冀、深、趙四州,七國時屬趙,即燕西界。
[一] 【正義】 패, 기, 심, 조의 네 주는 7국 때 趙나라에 속하였으니 곧 燕나라의 서쪽 경계이다.
[二] 正義河北博、滄、德三州,齊地北境,與燕相接,隔黃河。
[二] 【正義】 황하 북쪽의 박, 창, 덕의 세 주는 齊나라 땅의 북쪽 경계인데 燕나라와 서로 접하고 황하와는 떨어져 있다.
於是資蘇秦車馬金帛以至趙。而奉陽君已死,即因說趙肅侯[一]曰:「天下卿相人臣及布衣之士,皆高賢君之行義,皆願奉教陳忠於前之日久矣。[二]雖然,奉陽君妒而君不任事,是以賓客游士莫敢自盡於前者。今奉陽君捐館舍,君乃今復與士民相親也,臣故敢進其愚慮。
이에 소진에게 수레, 말, 금, 비단을 주어 趙나라에 이르게 하였는데 봉양군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趙나라 숙후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천하의 재상과 신하 된 자, 벼슬하지 않는 선비가 모두 임금이 의를 행하는, 것을 높고 어질다 여기겨서 모두 가르침을 받들어 앞에서 충성을 펴는 날이 오래기를 원합니다. 비록 그러하나 봉양군은 시기하여 임금(숙후)께 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빈객과 유사가 감히 스스로 앞에서 다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지금 봉양군이 館舍를 버려서(죽어서) 임금(숙후)이 이제 다시 사민과 서로 친하게 되었습니다. 臣이 감히 어리석은 생각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했다.
[一] 索隱按:世本云肅侯名言。
[一] 【索隱】 살펴보니 世本(世家本紀?)에 “숙후는 이름을 말한다.” 했다.
[二] 正義奉,符用反。
[二] 【正義】 奉은 符와 用의 反이다.
「竊為君計者,莫若安民無事,且無庸有事於民也。安民之本,在於擇交,擇交而得則民安,擇交而不得則民終身不安。請言外患:齊秦為兩敵而民不得安,倚秦攻齊而民不得安,倚齊攻秦而民不得安。故夫謀人之主,伐人之國,常苦出辭斷絕人之交也。願君慎勿出於口。請別白黑所以異,陰陽而已矣。[一] 君誠能聽臣,燕必致旃裘狗馬之地,齊必致魚鹽之海,楚必致橘柚之園,韓、魏、中山皆可使致湯沐之奉,而貴戚父兄皆可以受封侯。夫割地包利,五伯之所以覆軍禽將而求也;封侯貴戚,湯武之所以放弒而爭也。今君高拱而兩有之,此臣之所以為君願也。
가만히 임금을 위해 헤아려 보면 백성을 편안히 하고, 일을 없게 하는 것 만한 것이 없고, 또 백성에게 일(전쟁, 부역)을 있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근본은 사귐을 가림에 있고, 사귐을 가려서 사귈 수 있으면 곧 백성이 편안하고, 사귐을 가리되 사귐을 가리지 못하면 곧 백성은 몸을 다하도록(죽을 때까지) 편안하지 못합니다. 외환을 말하기를 청합니다. 하고는 “齊나라와 秦나라는 두 적이 되어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하고, 秦나라에 의지하여 齊나라를 공격하여도 편안하지 못하고, 齊나라에 의지하여 秦나라를 공격하여도 백성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임금과 도모하여 다른 사람의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항상 말이 나와(비밀이 누설되어) 다른 사람의 사귐을 끊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원하건데 임금께서는 삼가 입에서 말을 내지 마십시오. 희고 검은 것이 다른 까닭을 구별하기를 청합니다. (일은) 음양일 뿐입니다.” 했다. 임금께서 진실로 신의 말을 들으시면 燕나라는 반드시 모직물, 가죽, 개, 말이 생산되는 땅에 이르고, 齊나라는 반드시 물고기와 소금이 생산되는 바다에 이를 것이며, 楚나라는 반드시 귤과 유자가 생산되는 동산에 이를 것이고, 韓나라 魏나라, 中山은 모두 湯沐(황실과 왕족들이 사용하는 경비)의 받듦에 이르고, 부형과 귀척이 모두 후에 봉해짐에 이를 것입니다. 땅을 갈라(뻬앗아) 이익을 포함(취함?)함은 五伯(춘추시대 五霸)의 군대를 덮고 장수를 사로잡아 구함입니다. 귀척(왕족)을 제후로 봉하던 것은 湯王과 武王이 임금을 죽인 이를 추방하고 다투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임금께서 높이 팔짱을 낀 채 소유하게 하는 것이 이 신하가 임금을 위해 원하던 것입니다.
[一] 索隱按:戰國策云「請屏左右,白言所以異陰陽」,其說異此。然言別白黑者,蘇秦言己今論趙國之利,必使分明,有如白黑分別,陰陽殊異也。
[一]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 “좌우를 물리치면 음양아 더른 까닭을 발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 말이 이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흰색과 검은 색을 구별하라 말한 것은 소진이 자기가 지금 논하는 趙나라의 이로움이 반드시 흰색과 흑색을 분별하는 것처럼 음과 양이 다름이 있음을 분명함을 말한 것이다.
「今大王與秦,則秦必弱韓、魏;與齊,則齊必弱楚、魏。[一]魏弱則割河外,韓弱則效宜陽,宜陽效則上郡絕,[二]河外割則道不通,[三]楚弱則無援。此三策者,不可不孰計也。
지금 대왕이 秦나라와 함께하면 秦나라는 반드시 韓나라와 魏나라를 약하게 하고, 齊나라와 함께하면 곧 반드시 齊나라는 반드시 楚나라를 약하게 할 것입니다. 魏나라가 약해지면 곧 河外를 빼앗을 것이며, 韓나라가 약해지면 곧 의양을 줄 것이고, 의양이 주어지면 곧 상군이 끊어지고 河外를 빼앗기면 길이 통하지 않고, 楚나라가 약해지면 곧 응원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계책은 익숙히(깊이) 헤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一] 正義楚東淮泗之上,與齊接境。
[一] 【正義】 楚나라 동쪽은 회수와 사수의 상류로 齊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二] 正義宜陽即韓城也,在洛州西,韓大郡也。上郡在同州西北。言韓弱,與秦宜陽城,則上郡路絕矣。
[二] 【正義】 의양은 곧 韓나라의 성이니 낙주 서쪽에 있은데 韓나라의 큰 읍니다. 상군은 동부 서북쪽에 있다. 韓나라가 약해져서 秦나라에 의양성을 주면 곧 상군의 길이 끊어짐을 말한 것이다.
[三] 正義河外,同、華等地也。言魏弱,與秦河外地,則道路不通上郡矣。華山記云:「此山分秦晉之境,晉之西鄙則曰陰晉,秦之東邑則曰寧秦。」
[三] 【正義】 河外는 동주 화주 등지이다. 魏나라가 약해져서 秦나라에게 河外의 땅을 주면 곧 도로가 상군에 통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華山記』에 “이 산은 秦나라와 晉나라의 국경을 나누는데 晉나라의 서족 변경을 곧 陰晉이라 하고, 秦나라의 동읍은 곧 寧秦이라 한다.
「夫秦下軹道,[一]則南陽危;[二]劫韓包周,[三]則趙氏自操兵;[四]據衛取卷,[五]則齊必入朝秦。秦欲已得乎山東,則必舉兵而嚮趙矣。秦甲渡河踰漳,據番吾,[六]則兵必戰於邯鄲之下矣。此臣之所為君患也。
대저 秦나라가 지도로 내려오면 곧 남양이 위태로워지고, 韓나라를 겁주고 周나라 도읍을 포위하면 곧 조씨는 스스로 병기를 잡아야 하며, 衛나라에 기대어 卷을 취하면 齊나라는 반드시 秦나라에 入朝(들어가 조공)할 것입니다. 秦나라가 이미 산동을 얻고자 하면 곧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趙나라를 향할 것입니다. 秦나라 군대가 황하를 건너고 장수를 넘어 파오를 근거지로 하면 곧 군대반드시 한단의 아래에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신이 임금을 위해 근심하는 까닭입니다.
[一] 正義軹音止。故亭在雍州萬年縣東北十六里苑中。
[一] 【正義】 軹의 음은 止이다. 옛 정이 옹주 만년현 동북쪽 16리 동산 안에 있다.
[二] 正義南陽,懷州河南也,七國時屬韓。言秦兵下軹道,從東渭橋歷北道過蒲津攻韓,即南陽危矣。
[二] 【正義】 남양은 회주 하남이다. 7국 때 韓나라에 속하였다. 秦나라 군대가 지도로 내려오면 동쪽으로 渭橋로부터 북도를 거쳐 포진을 지나 韓을 공격할 것이니 곧 남양이 위태로운 것이다.
[三] 正義周都洛陽,秦若劫取韓南陽,是包裹周都也。趙邯鄲危,故須起兵自守。
[三] 【正義】 주나라의 도읍 낙양이다. 秦나라가 만약 겁을 주어 韓나라의 남양을 취하면 이는 周나라 도읍을 포위하는 것이니 趙나라 한단이 위태롭다. 그러므로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四] 索隱戰國策作「自銷鑠」。
[四] 【索隱】 『戰國策』에 “自銷鑠(스스로 녹임, 쇠를 녹여 병기를 만들었다?)”이라 썼다.
[五] 集解丘權反。索隱地理志卷縣屬河南。按:戰國策云「取淇」。正義衛地濮陽也。卷城在鄭州武原縣西北七里。言秦守衛得卷,則齊必來朝秦。
[五] 【集解】 丘와 權의 反이다. 【索隱】 『地理志』에 “권현은 하남에 속한다.” 했다. 살펴보니 『戰國策』에 “기수를 취하였다.” 했다. 【正義】 衛나라 땅인 ㅂ복양이다. 권성은 정주 무원현 서북쪽 7리에 있다. 秦나라가 衛나라를 지키고, 권성을 얻으면 곧 齊나라는 반드시 와서 秦나라에 조공할 것이라는 말이다.
[六] 集解徐廣曰:「常山有蒲吾縣。」 索隱按:徐氏所引,據地理志云然也。 正義番音婆,又音蒲,又音盤。疑古番吾公邑也。括地志云:「蒲吾故城在鎮州常山縣東二十里。」漳水在潞州。言秦兵渡河,歷南陽,入羊腸,經澤、潞,渡漳水,守蒲吾城,則與趙戰於都城下矣。
[六]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상산에 포오현이 있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서씨가 인용한 것은 『地理志』에 말한 것이 그러하다. 【正義】 番읜 음은 婆이다. 또 음이 蒲이고, 음이 盤이다. 아마도 옛날의 파오는 공읍일 것이다. 『括地志』에 “포오의 옛 성은 진주 상산현 동쪽 20리에 있다.” 했다. 장수는 로주에 있다. 秦나라 군대가 河를 건너고, 안양을 거쳐 양장, 경택, 로를 지나고, 장수를 건너 포오성을 지키면 곧 趙나라와 都城 아래서 싸우게 됨을 말한 것이다.
「當今之時,山東之建國莫彊於趙。趙地方二千餘里,帶甲數十萬,車千乘,騎萬匹,粟支數年。西有常山,[一]南有河漳,[二]東有清河,[三]北有燕國。[四]燕固弱國,不足畏也。秦之所害於天下者莫如趙,然而秦不敢舉兵伐趙者,何也?畏韓、魏之議其後也。然則韓、魏,趙之南蔽也。秦之攻韓、魏也,無有名山大川之限,稍蠶食之,傅[五]國都而止。韓、魏不能支秦,必入臣於秦。秦無韓、魏之規,則禍必中於趙矣。此臣之所為君患也。
지금의 시대에 산동에 세운 나라 가운데 趙나라 보다 강함이 없습니다. 趙나라는 국토가 사방 2000여리이고, 갑옷 입은 군대가 수십만이고, 수레가 천대, 군마가 10000마리이며 곡식은 여러 해를 지탱할 수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상산이 있고, 남쪽으로 황하와 장수가 있고, 동쪽으로는 청하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燕나라가 있습니다. 燕나라는 진실로 약한 나라이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秦나라에 해를 끼치는 나라는 천하에 趙나라 같음이 없습니다. 그러하되 秦나라가 감히 군대를 들어 趙나라를 치지 못하는 것은 왜입니까? 韓나라와 魏나라가 그 뒤(배후)를 의논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즉 韓나라와 위나라는 趙나라의 남쪽을 가려줍니다. 秦나라가 韓나라와 魏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이름 있는 산과 큰 강의 제한이 없어 점점 잠식하여 國都에 이르고서야 그칠 것입니다. 韓나라와 魏나라는 秦나라를 지탱하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秦나라에 들어가 신하노릇 할 것입니다. 秦나라는 韓나라와 魏나라의 제한이 없으면 곧 禍가 반드시 趙나라에 집중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임금을 위해 근심하는 바입니다.
[一] 正義在鎮州西。
[一] 【正義】 진주 서쪽에 있다.
[二] 正義「河」字一作「清」,即漳河也,在潞州。地理志濁漳出長子鹿谷山,東至鄴,入清漳。
[二] 【正義】 ‘河’자는 ‘淸’이라 쓰기도 하니 곧 漳河로 로주에 있다. 『地理志』에 “濁漳은 장자록곡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鄴에 이르러 淸漳에 들어간다.” 했다.
[三] 正義清河,今貝州也。
[三] 【正義】 淸河는 지금의 貝州이다.
[四] 正義然三家分晉,趙得晉陽,襄子又伐戎取代。既云「西有常山者」,趙都邯鄲近北燕也。
[四] 【正義】 그러나 三家가 晉나라를 나누었을 때 趙나라는 진양을 얻었고, 양자가 또한 오랑캐(戎)를 쳐서 代를 얻었다. 이미 말하기를 “서쪽에 상산이 있다.” 하였으니 趙나라 도읍인 한단은 북쪽의 燕나라와 가깝다.
[五] 集解音附。
[五] 【集解】 음은 附이다.
「臣聞堯無三夫之分,舜無咫尺之地,以有天下;禹無百人之聚,以王諸侯;湯武之士不過三千,車不過三百乘,卒不過三萬,立為天子:誠得其道也。是故明主外料其敵之彊弱,內度其士卒賢不肖,不待兩軍相當而勝敗存亡之機固已形於胸中矣,豈揜於眾人之言而以冥冥決事哉! 「臣竊以天下之地圖案之,諸侯之地五倍於秦,料度諸侯之卒十倍於秦,六國為一,并力西鄉而攻秦,秦必破矣。今西面而事之,見臣於秦。夫破人之與破於人也,〔一〕臣人之與臣於人也,〔二〕豈可同日而論哉!
신이 듣기를 “요는 세 장정의 몫(의 토지)이 없었고, 순은 지척의 땅이 없었음에도 천하를 소유하였다. 우는 100명의 모임이 없었음에도 제후의 왕이 되었다. 탕왕과 무왕의 선비는 3000을 지나지 않았고 수레는 300대를 지나지 않았으며, 병졸은 3만을 지나지 않았음에도 즉위하여 천자가 되었으니 진실로 그 도를 얻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현명한 임금은 밖으로 그 적이 강약을 헤아리고 안으로는 그 사졸의 현명함과 현명하지 못함을 헤아려 두 군대가 서로 감당함을 기다리지 않아도 승패와 존망의 기미가 진실로 이미 가슴 속에 형상됩니다. 어찌 여러 사람의 말에 (자기의 현명함을)가리고서 어둡고 어두움으로써 일을 결단하여 하십니까? 신이 가만히 천하의 지도를 가지고 보건데 제후의 땅은 秦나라 보다 5배이고, 제후의 군대를 헤아려보니 秦나라보다 10배이니 6국이 하나가 되어 힘을 나란히 하여 서쪽을 향하여 秦나라를 공격한다면 秦나라를 반드시 깨트릴 수 있습니다. 지금 서쪽을 향하여 그를 섬긴다면 秦나라에 신하 노릇하는 것입니다. 대저 다른 사람을 깨트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깨트려지는 것, 다른 사람을 신하로 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신하 노릇하는 것을 어떻게 같은 날에 논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一] 正義破人謂破前敵也。破於人,為被前敵破。
[一] 【正義】 破人은 앞의 적을 깨트리는 것이다. 破於人은 앞의 적에게 깨트림을 당하는 것이다.
[二] 索隱按:臣人謂己為彼臣也。臣於人者,謂我為主,使彼臣己也。正義臣人謂己得人為臣。臣於人謂己事他人。
[二] 【索隱】 살펴보니 臣人은 자기가 그를 신하로 삼는 것을 말하고, 臣於人은 내가 임금이 되어 그가 자기에게 신하노릇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正義】 臣人는 자기가 사람을 얻어 신하로 삼는 것을 말하고, 臣於人은 자기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夫衡人者,[一]皆欲割諸侯之地以予秦。秦成,則高臺榭,美宮室,聽竽瑟之音,前有樓闕軒轅,[二]後有長姣[三]美人,國被秦患而不與其憂。是故夫衡人日夜務以秦權恐愒諸侯[四]以求割地,故願大王孰計之也。
대저 연횡을 말하는 자는 모두 제후의 땅을 갈라 秦나라에 주고자 합니다. 秦나라가 이루어지면 곧 누각을 높이하고, 궁실을 아름답게 하며, 우슬의 연주소리를 들으며, 앞에는 누궐과 수레를 두고 뒤에는 키가 크고 아름다운 미인을 두고, 나라가 秦나라의 근심(화를)을 입을 지라도 그 근심을 더불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 영횡론 자는 낮과 밤으로 힘쓰기를 秦나라의 권세로써 제후를 겁주고 두렵게 하는 것으로써 땅을 가를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원하건대 대왕께서는 계책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一] 索隱按:衡人即游說從橫之士也。東西為橫,南北為從。秦地形東西橫長,故張儀相秦,為秦連橫。正義衡音橫。謂為秦人。
[一] 【索隱】 살펴보니 衡人은 곧 유세하는 從橫의 선비들이다. 동서를 橫이라 하고, 남북을 從이라 한다. 秦나라 땅의 형상이 동쪽과 서쪽의 가로로 길다. 그러므로 장의가 秦나라의 재상이 되어 秦나라를 위해 連橫(동서를 잇다) 하였다. 【正義】 衡의 음은 橫이다. 진을 위하는 사람을 말한다.
[二] 索隱戰國策云「前有軒轅」。又史記俗本亦有作「軒冕」者,非本文也。
[二] 【索隱】 『戰國策』에 “前有軒轅(앞에 軒轅(수레가)이 있다.)” 했다. 또 『史記』 俗本에 또한 “軒冕(가마와 면류관)”으로 쓴 것이 있는데 본문이 아니다.
[三] 索隱音交。說文云:「姣,美也。」
[三] 【索隱】 음은 交이다. 『說文』에 “姣는 아름다움이다.” 했다.
[四] 集解愒音呼曷反。索隱恐,起拱反。愒,許曷反。謂相恐脅也。鄒氏愒音憩,其意疏。
[四] 【集解】 愒의 음은 呼와 曷의 反이다. 【索隱】 恐은 起와 拱의 反이다. 愒는 許와 曷의 反이다. 서로 두려워하고 위협함을 말한다. 추씨는 “愒의 음은 憩이니 그 뜻은 疏(트이다)이다.” 했다.
「臣聞明主絕疑去讒,屏流言之跡,塞朋黨之門,故尊主廣地彊兵之計臣得陳忠於前矣。故竊為大王計,莫如一韓、魏、齊、楚、燕、趙以從親,以畔秦。令天下之將相會於洹水之上,[一]通質[二],刳白馬而盟。要約曰:『秦攻楚,齊、魏各出銳師以佐之,韓絕其糧道,[三]趙涉河漳,[四]燕守常山之北。秦攻韓魏,[五] 則楚絕其後,[六]齊出銳師而佐之,趙涉河漳,燕守雲中。秦攻齊,則楚絕其後,韓守城皋,[七]魏塞其道,[八]趙涉河漳、博關,[九]燕出銳師以佐之。秦攻燕,則趙守常山,楚軍武關,齊涉勃海,[一0]韓、魏皆出銳師以佐之。秦攻趙,則韓軍宜陽,楚軍武關,魏軍河外,[一一]齊涉清河,[一二]燕出銳師以佐之。諸侯有不如約者,以五國之兵共伐之。』六國從親以賓秦,[一三]則秦甲必不敢出於函谷以害山東矣。如此,則霸王之業成矣。」
신이 들으니 현명한 군주는 의심을 끊고, 참소를 제거하고, 유언비어의 자취를 막으며, 붕당의 문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임금을 높이고 땅을 넓히며 군대를 강하게 하는 계책을 신이 앞에서 진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대왕을 위한 계책은 韓나라, 魏나라, 齊나라, 楚나라, 燕나라, 趙나라를 하나로 하여 從(남북)으로 친하고, 秦나라를 적대하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천하의 장수와 재상이 원수 가에 모여 인질을 통하고, 백마를 잡아 맹약하게 하십시오. 약속하기를 “秦나라가 楚나라를 공격하면 齊나라와 魏나라는 각각 날카로운 군대를 내어 그들을 돕고, 韓나라는 그 식량 길(보급로)을 끊으며, 趙나라는 河와 漳을 건너며 燕나라는 상산의 북쪽을 지킵니다. 秦나라가 韓나라와 魏나라를 공격하면 곧 楚나라가 그 뒤를 끊고 齊나라는 날카로운 군대를 내어 그를 돕고, 趙나라는 河와 漳을 건너며 燕나라는 운중을 지킵니다. 秦나라가 齊나라를 공격하면 곧 楚나라가 그 뒤를 끊고 韓나라는 성고를 지키고 魏나라는 그 길을 막으며, 趙나라는 河, 漳, 박관을 건어며, 燕나라는 날카로운 군대를 내어 그를 돕습니다. 秦나라가 燕나라를 공격하면 곧 趙나라는 상산을 지키고, 楚나라는 무관에 진치고, 齊나라는 발해를 건너고, 韓나라 魏나라는 모두 날카로운 군대를 내어 돕습니다. 秦나라가 趙나라를 공격하면 곧 韓나라는 의양에 진치고, 楚나라는 무관에 진을 치며, 魏나라는 河外에 진을 치고, 齊나라는 청하를 건너고 燕나라는 날카로운 군대를 내어 돕습니다. 제후들 중 약속과 같이 하지 않는 자는 5국의 군대로써 함께 정벌합니다.” 6국이 합종(남북)으로 친한 것으로써 秦나라를 버리면 곧 반드시 秦나라 군대는 감히 함곡관을 나와 산동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 같으면 곧 霸王의 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一] 集解徐廣曰:「洹水出汲郡林慮縣。」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원수는 급군 임로현에서 나온다.
[二] 索隱音如字,又音躓。以言通其交質之情。
[二] 【索隱】 음은 같은 자이다. 말로써 그 인질을 교환함의 정을 통한 것이다.
[三] 索隱謂擁兵於嶢關之外,又守宜陽也。
[三] 【索隱】 군대를 요관의 밖에서 지키고, 또한 의양을 지킴을 말한 것이다.
[四] 索隱謂趙亦涉河漳而西,欲與韓作援,以阻秦軍。
[四] 【索隱】 趙나라가 또한 황하와 장수를 건너고 서|쪽으로 韓나라와 함께 응원하여 秦나라 군대를 막고자 함을 말한다.
[五] 正義謂道蒲津之東攻之。
[五] 【正義】 포진의 동쪽을 공격하는 길을 말한다.
[六] 索隱謂出兵武關,以絕秦兵之後。
[六] 【索隱】 군대가 무관을 나와 秦나라 군대의 뒤를 끊음을 말한다.
[七] 正義在洛州氾水縣。
【正義】 낙주 범수현에 있다.
[八] 索隱按:其道即河內之道。戰國策「其」作「午」。
[八] 【索隱】 살펴보니 그 길은 곧 河內의 길이다. 『戰國策』에 ‘其’를 ‘午’로 썼다.
[九] 集解徐廣曰:「齊威王六年,晉伐齊到博陵。東郡有博平縣。」
[九]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齊나라 위왕 6년 晉나라가 齊나라를 쳐서 박릉에 이르렀다. 동군은 박평현에 있다.” 했다.
[一0] 正義齊從滄州渡河至瀛州。
[一0] 【正義】 齊나라는 창주로부터 河를 건너 영주에 이른다.
[一一] 索隱河外謂陝及曲沃等處也。正義謂同、華州。
[一一] 【索隱】 河外는 섬과 곡옥 등의 것을 말한다. 【正義】 동주와 화주를 말한다.
[一二] 正義齊從貝州過河而西。
[一二] 【正義】 齊나라는 패주로부터 河를 지나는 서|쪽지역이다.
[一三] 索隱謂六國之軍共為合從相親,獨以秦為賓而共伐之。
[一三] 【索隱】 6국의 군대가 함께 합종하여 서로 친하여 오직 秦나라만을 물리치고 함께 치는 것을 말한다.
趙王曰:「寡人年少,立國日淺,未嘗得聞社稷之長計也。今上客有意存天下,安諸侯 寡人敬以國從。」乃飾車百乘,黃金千溢[一],白璧百雙,錦繡千純,[二]以約諸侯。
趙나라 왕이 말하기를 “과인의 나이가 적고, 나라를 세운 날이 얼마 되지 않아 일찍이 사직의 긴 계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上客은 뜻이 천하를 보존하고, 제후를 편안히 하는데 있으니 과인은 공경히 나라로써 따르겠습니다.” 했다. 이에 장식한 수레 100대와 황금 천일, 흰 구슬 100개, 수놓은 비단 1000純으로써 제후를 맹약하게 하였다.
[一] 索隱戰國策作「萬溢」。一溢為一金,則二十兩曰一溢,為米二升。鄭玄以一溢為二十四分之一,其說異也。
[一] 【索隱】 『戰國策』에 “‘萬溢’이라 썼다. 一溢은 一金이 되니 곧 20兩을 一 溢이라 하는데 쌀 두되이다.” 정현은 一溢로써 1/24라 하니 그 말이 다르다.
[二] 集解純,匹端名。周禮曰:「純帛不過五兩。」 索隱音淳。裴氏云「純,端疋名」。高誘注戰國策音屯。屯,束也。又禮鄉射云「某賢於某若干純」。純,數也,音旋。
[二] 【集解】 純은 비단(실마리)의 이름이다. 『周禮』에 “純帛이 5냥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索隱】 음은 淳이다. 배씨가 말하기를 “純은 端疋의 이름이다.” 하고, 고유가 주석한 『戰國策』에 “음은 屯이다. 屯은 묶음이다.” 하고, 또 『禮記』 鄕射에 “아무개가 아무개 보다 약간 純을 많이 맞추었다.” 하니 純 은 數이고, 음은 旋이다.
是時周天子致文武之胙於秦惠王。惠王使犀首攻魏,禽將龍賈,取魏之雕陰,[一]且欲東兵。蘇秦恐秦兵之至趙也,乃激怒張儀,入之于秦。
이 때 周나라 천자에게서 문왕과 무왕의 제사에 쓰인 고기가 秦나라 혜왕에게 이르렀다. 혜왕이 서수로 하여금 魏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장군 용고를 사로잡고 魏나라의 조음을 취하고, 또 동쪽으로 군대를 진군하고자 했다. 소진이 秦나라 군대가 趙나라에 이를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장의를 격노하게 하여 秦나라에 들여보냈다.
[一] 索隱魏地也。劉氏曰「在龍門河之西北」。按:地理志雕陰屬上郡。正義在鄜州洛交縣北三十四里。
[一] 【索隱】 魏地이다. 유씨가 말하기를 “용문은 하의 서북쪽에 있다.” 했다. 살펴보니 『地理志』에 조음은 상군에 속한다. 【正義】 부주 낙교현 북쪽 34리에 있다.
於是說韓宣王[一]曰:「韓北有鞏、成皋[二]之固,西有宜陽、商阪之塞,[三]東有宛、穰、[四]洧水,[五]南有陘山,[六]地方九百餘里,帶甲數十萬,天下之彊弓勁弩皆從韓出。谿子、[七]少府時力、距來者,[八]皆射六百步之外。韓卒超足而射,〔九〕百發不暇止,遠者括蔽洞胸,近者鏑弇心。韓卒之劍戟皆出於冥山、[一0]棠谿、[一一]墨陽、[一二]合賻、[一三]鄧師、[一四]宛馮、[一五]龍淵、太阿,[一六]皆陸斷牛馬,水截鵠鴈,當敵則斬堅甲鐵幕,[一七]革抉[一八]簠(㕹)芮,[一九]無不畢具。以韓卒之勇,被堅甲,蹠勁弩,帶利劍,一人當百,不足言也。夫以韓之勁與大王之賢,乃西面事秦,交臂而服,羞社稷而為天下笑,無大於此者矣。是故願大王孰計之。
이에 韓나라 선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韓나라는 북쪽으로 공, 성고의 견고함이 있고, 서쪽으로 의양, 상판의 막힘이 있으며, 동쪽으로 완, 양, 유수가 있으며, 남쪽으로 경산이 있습니다. 땅은 4방 900여리이고 군대는 수십만이며 천하의 강궁과 굳센 쇠뇌가 韓나라로부터 나옵니다. 계자, 소부, 시력(소부 지역의 시력), 거래는 모두 600보 밖에서 쏩니다. 韓나라 병졸은 발로 쇠뇌를 밟고 쏘아서 백번 발사하기를 그치지 않고, 멀리서 쏘아도 싸고 가린 가슴을 뚫고, 가까이서 쏜 것은 화살촉이 깊이 심장에 박힙니다. 韓 나라 병졸의 검과 창은 모두 명산, 당계, 묵양, 합부, 등사, 완빙, 용연, 태아에서 나오는데 모두 땅에서는 소와 말을 자르고, 물에서는 고니와 기러기를 자르며, 적을 맞으면 곧 단단한 갑옷과 쇠 방패를 베며, 가죽 깍지, 방패를 매는 끈이 모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습니다. 韓나라 병졸의 용맹으로써 단단한 갑옷을 입고, 굳센 쇠뇌를 밟으며, 날카로운 검을 차고 한 사람이 100명을 감당하여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대저 韓나라의 굳셈과 대왕의 어짐(현명함)으로 서쪽으로 秦나라를 섬기고 팔을 맞잡으면서 복종하는 것은 사직의 수치이며,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부끄러움이)이보다 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왕께서는 계책을 숙고하실 것을 원합니다.
[一] 索隱按:世本韓宣王,昭侯之子也。
[一] 【索隱】 살펴보니 세가 본기에 韓나랏 ᅟᅥᆫ왕은 소후의 아들이라 했다.
[二] 索隱二邑本屬東周,後為韓邑。地理志二縣並屬河南。
[二] 【索隱】 두 읍은 본래 東周에 속하였는데 후에 韓나라 읍이 되었다. 『地理志』에 “두 현은 나란히 하남에 속한다.”고 했다.
[三] 集解徐廣曰:「商,一作『常』。」 索隱劉氏云「蓋在商洛之閒,適秦楚之險塞」是也。正義宜陽在洛州福昌縣東十四里。商阪即商山也,在商洛縣南一里,亦曰楚山,武關在焉。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商’은 ‘常’으로 쓰기도 한다.” 했다. 【索隱】 유씨가 말하기를 “商과 洛의 사이에 있고, 秦나라와 楚로 가는 험한 요새이다. 한 것이 이것이다.” 했다. 【正義】 의양은 낙주 복창현 동쪽 14리에 있다. 商阪 은 곧 商山이니 상락현 남쪽 1리에 있으며, 또한 초산이라 하기도 한다. 무관이 여기에 있다.
[四] 集解宛,於袁反。索隱地理志宛、穰二縣名,並屬南陽。
[四] 【集解】 宛은 於와 袁의 反이다. 【索隱】 『地理志』에 “완과 양은 현의 이름인데 같이 남양에 속한다.” 했다.
[五] 集解洧,于鬼反。索隱音于軌反,水名,出南方。正義在新鄭東南,流入潁。
[五] 【集解】 洧는 于와 鬼의 反이다. 【索隱】 음은 于와 軌의 反이다. 물이름으로 남방에서 나온다. 【正義】 新鄭 동남쪽에 있으며 흘러 영수로 들어간다.
[六] 集解徐廣曰:「召陵有陘亭。密縣有陘山。」 正義在新鄭西南三十里。
[六]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소릉은 형정에 있고, 밀현은 형산에 있다.” 했다. 【正義】 신정 서남쪽 30리에 있다.
[七] 集解許慎云:「南方谿子蠻夷柘弩,皆善材。」 索隱按:許慎注淮南子,以為南方谿子蠻出柘弩及竹弩。
[七] 【集解】 허신이 말하기를 “남방 쇠뇌와 蠻夷의 자노는 모두 좋은 재료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허신이 『淮南子』에 주를 달기를 “남방의 계자(쇠뇌)는 蠻에서 나오는 자노와 죽노이다.” 했다.
[八] 集解韓有谿子弩,又有少府所造二種之弩。案:時力者,謂作之得時,力倍於常,故名時力也。距來者,謂弩埶勁利,足以距來敵也。索隱韓又有少府所造時力、距來二種之弩。按:時力者,謂作之得時則力倍於常,故有時力也。距來者,謂以弩埶勁利,足以距於來敵也。其名並見淮南子。
[八] 【集解】 韓나라에는 계자노가 있고, 또 소부에서 만든 두 종류의 쇠뇌가 있다. 살펴보니 時力은 조작할 때는 힘을 평상보다 배로하기 때문에 이름을 時力이라 말한 것이다. 距來는 쇠뇌가 잘 만들어져서 단단하고 날카로워 떨어져 오는 적을 막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索隱】 韓나라는 또 少府가 있어서 時力과 距來 두 종류의 쇠뇌를 만들었다. 살펴보니 時力은 조작할 때에는 곧 힘쓰기를 평상보다 두 배로 하였기 때문에 時力이 있음을 말하였다. 距來는 쇠뇌가 잘 만들어져서 굳세고 날카로워 떨어져 오는 적을 막기에 충분함을 말한 것이다. 그 이름이 모두 『淮南子』에 보인다.
[九] 索隱按:超足謂超騰用埶,蓋起足蹋之而射也,故下云「蹠勁弩」是也。正義超足,齊足也。夫欲放弩,皆坐,舉足踏弩,兩手引揍機,然始發之。
[九] 【索隱】 超足은 이리저리 재주를 써서 발을 올려서 밟고 손다. 그러므로 아래에 말한 “단단한 쇠뇌를 밟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一0]集解徐廣曰:「莊子云南行至郢,北面而不見冥山。」駰案:司馬彪曰「冥山
在朔州北」。索隱莊子云「南行至郢,北面而不見冥山」。司馬彪云「冥山在朔州北」。郭象云「冥山在乎太極」。李軌云「在韓國」。
[一0]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莊子』에 ‘남쪽으로 가서 郢에 이르고, 북쪽을 향하여 冥山을 볼 수 없다.’” 하였다. 【駰案】 사마표가 말하기를 “冥山은 삭주 북쪽에 있다.” 했다. 【索隱】 『莊子』에 “남쪽으로 가서 郢에 이르고 북쪽을 향하여 冥山을 보지 못한다.”하고 사마표가 말하기를 “冥山은 삭주 북쪽에 있다.”하였으며, 곽상이 말하기를 “冥山은 태극에 있다.”하고, 이궤가 말하기를 “韓나라에 있다.” 하였다.
[一一] 集解徐廣曰:「汝南吳房有棠谿亭。」 索隱地理志棠谿亭在汝南吳房縣。 正義故城在豫州偃城縣西八十里。鹽鐵論云「有棠谿之劍」是。
[一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여남 오방현에 당계정이 있다.” 했다. 【索隱】 『地理志』에 “당계정은 여남 오방현에 있다.” 했다.
[一二] 集解淮南子曰:「墨陽之莫邪也。」 索隱淮南子云「服劍者貴於剡利,而不期於墨陽莫邪」,則墨陽匠名也。
[一二] 【集解】 『淮南子』에 “묵양의 막야이다.” 했다. 【索隱】 『淮南子』에 “검을 찬자는 날카로운 것을 귀하게 여기고, 묵양의 막야를 기약하지 않는다.”하니 곧 묵양은 장인의 이름이다.
[一三] 集解音附。徐廣曰:「一作『伯』。」 索隱按:戰國策作「合伯」,春秋後語作「合相」。
[一三] 【集解】 음은 附이다. 서광이 말하기를 ‘伯’이라 쓰기도 한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는 ‘合伯’이라 썼고, 『春秋後語』에는 ‘合相’이라 썼다.
[一四] 索隱鄧國有工鑄劍,而師名焉。
[一四] 【索隱】 鄧나라에 검을 주물한 장인이 있었는데 이름을 師라 한 것이다.
[一五] 集解徐廣曰:「滎陽有馮池。」 索隱徐廣云「滎陽有馮池」,謂宛人於馮池鑄劍,故號宛馮。
[一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형양은 빙지에 있다.” 했다. 【索隱】 서광이 말하기를 “형양은 빙지에 있다.”하였는데 宛人이 빙지에서 검을 주조하였기 때문에 宛馮이라 부른 것이다. 라는 말이다.
[一六] 集解吳越春秋曰:「楚王召風胡子而告之曰:『寡人聞吳有干將,越有歐冶,寡人欲因子請此二人作劍,可乎?』風胡子曰:『可。』乃往見二人,作劍,一曰龍淵,二曰太阿。」 索隱按:吳越春秋楚王令風胡子請請吳干將、越歐冶作劍二,其一曰龍泉,二曰太阿。又太康地記曰「汝南西平有龍泉水,可以淬刀劍,特堅利,故有龍泉之劍,楚之寶劍也。以特堅利,故有堅白之論云:『黃,所以為堅也;白,所以為利也。』齊辨之曰:『白,所以為不堅;黃,所以為不利也。』故天下之寶劍韓為眾,一曰棠谿,二曰墨陽,三曰合伯,四曰鄧師,五曰宛馮,六曰龍泉,七曰太阿,八曰莫邪,九曰干將也」。然干將、莫邪匠名也,其劍皆出西平縣,今有鐵官令一,別領戶,是古鑄劍之地也。
[一六] 【集解】 『吳越春秋』에 “楚나라 왕이 풍호자를 불러 말하기를 ‘과인이 들으니 吳나라에 干將이 있고, 越나라에는 歐冶가 있다 한다. 과인이 그대를 통하여 이 두 사람이 검을 만들도록 청하고자 하는데 할 수 있겠는가?’ 했다. 풍호자가 말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하고는 이에 가서 두 사람을 만나 검을 만들고는 하나를 龍淵이라 하고 다른 하나를 太阿라 했다.” 한다. 【索隱】 살펴보니 『吳越春秋』에 “楚나라 왕이 풍호자로 하여금 吳나라 干將과 越나라 歐冶에게 청하여 검 두개를 만들도록 청하였는데 그 하나를 龍泉이라하고, 다른 하나를 太阿라 했다.” 한다. 또 『太康地記』에 “여남의 서평현에 용천수가 있는데 칼과 검을 담금질함으로써 특히 굳고 예리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龍泉의 검이 있었으니 楚나라의 보검이다.” 했다. 특히 굳고 예리하기 때문에 「堅白之論」이 있었다. (여기에) 말하기를 “누른 것은 굳음을 위한 때문이고, 흰 것은 예리함을 위한 때문이다.” 하였고, 제변지가 말하기를 “휜 것은 굳지 않음을 위한 때문이고, 누른 것은 예리하지 않음을 위한 때문이다” 했다. 그러므로 천하의 보검은 韓 나라에 많으니 棠谿, 墨陽, 合伯, 鄧師, 宛馮, 龍泉, 太阿, 莫邪, 干將 이다. 그러나 간장과 막야는 장인의 이름이고, 그 검은 모두 서평현에서 나왔으며 지금에도 철관령일, 별령호가 있으니 이는 옛날 검을 주조하던 땅이다.
[一七] 集解徐廣曰:「陽城出鐵。」 索隱按:戰國策云「當敵則斬甲盾鞮鍪鐵幕」也。鄒誕幕一作「陌」。劉云:「謂以鐵為臂脛之衣。言其劍利,能斬之也。」
[一七]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양성은 철이 난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 “적을 맞으면 곧 갑옷, 방패, 가죽신, 투구, 철막을 벤다.”고 했다. 【鄒誕】 幕은 陌이라 쓰기도 한다. 劉가 말하기를 “철로써 팔과 정강이의 옷을 만드는 것을 말함이니 그 검이 예리하여 벨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했다.
[一八] 集解徐廣曰:「一作『決』。」 索隱音決。謂以革為射決。決,射韝也。
[一八]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決’이라 쓰기도 한다.” 했다. 【索隱】 음은 決이다. 가죽으로써 射決을 만든다. 決은 射韝이다.
[一九] 集解跋音伐。索隱跋與「瞂」同,音伐,謂楯也。芮音如字,謂繫楯之綬也。正義方言云:「盾,自關東謂之瞂,關西謂之盾。」
[一九] 【集解】 跋의 음은 伐이다. 【索隱】 跋과 瞂은 같고, 음은 伐이다. 芮의 음은 같은 글자이니 방패를 묶는 끈이다. 【正義】 방언에 “盾은 관동에서는 瞂이라 하고, 관서에서는 盾이라 한다.
「大王事秦,秦必求宜陽、成皋。今茲效之,[一]明年又復求割地。與則無地以給之,不與則棄前功而受後禍。且大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此所謂市怨結禍者也,不戰而地已削矣。臣聞鄙諺曰:『寧為雞口,無為牛後。』[二]今西面交臂而臣事秦,何異於牛後乎?夫以大王之賢,挾彊韓之兵,而有牛後之名,臣竊為大王羞之。」
대왕이 秦나라를 섬긴다면 秦나라는 반드시 의양, 성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지금 이에 그것을 주면 다음 해에는 또한 다시 당을 갈라 줄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주면 곧 줄 땅이 없고, 주지 않으면 곧 앞의 공을 버리고 뒤의 재앙을 받습니다. 또 대왕의 땅은 다함이 있고, 秦나라의 요구는 멈춤이 없을 것이니 다함이 있는 땅으로 멈춤이 없는 요구를 맞이하면 이것이 이른 바 원망을 펴서 재앙을 맺는 것이고, 싸우지 않고 땅을 자기가 깍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 비루한 말(거리의 말)에 “차라리 닭대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서쪽을 향하여 팔을 맞잡고 신하 노릇하여 秦나라를 섬기는 것이 어찌 소의 꼬리가 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저 대왕의 현명함으로써 강한 韓나라의 군대를 끼고 소의 꼬리가 되었다는 이름이 있을 것이니 신은 가만히 대왕의 부끄러움으로 여깁니다.
[一] 索隱按:鄭玄注禮云「效猶呈也,見也」。
[一] 【索隱】 살펴보니 정현의 『禮記』 주석에 “效는 呈과 같다. 한 것이 보인다.” 했다.
[二] 索隱按;戰國策云「寧為雞尸,不為牛從」。延篤注云「尸,雞中主也。從謂牛子也。言寧為雞中之主,不為牛之從後也」。正義雞口雖小,猶進食;牛後雖大,乃出糞也。
[二]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 “차라리 鷄尸가 될지언정 牛從이 되지 말라.” 했다. 연독의 주에 “尸는 닭 가운데 우두머리이고, 종은 송아지를 말한다.” 하니 차라리 닭 가운데 우두머리가 될지언정 소의 뒤를 따르지 말라는 말이다. 【正義】 닭의 부리가 비록 적으나 오히려 먹음에 나아가고, 소의 뒤는 비록 크나 똥을 낸다.
於是韓王勃然作色,攘臂瞋目,按劍仰天太息[一]曰;「寡人雖不肖,必不能事秦。今主君[二]詔以趙王之教,敬奉社稷以從。」
이에 韓나라 왕이 갑자기 얼굴색을(이) 지으며(변하며) 팔을 흔들고 성난 눈으로 검을 어루만지며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말하기를 “과인이 비록 현명하지 못하나 秦나라를 섬길 필요가 없다. 지금 그대가(소진) 趙나라 왕의 교서로써 말하니 공경히 사직을 받드는 것으로써 따를 것이다.” 했다.
[一] 索隱太息謂久蓄氣而大吁也。
[一] 【索隱】 太息은 오래 동안 공기를 쌓았다가 크게 숨을 내 쉬는 것이다.
[二] 索隱指蘇秦也。禮,卿大夫稱主。今嘉蘇子合從諸侯,褒而美之,故稱曰主。
[二] 【索隱】 소진을 가리킨다. 『禮記』에 경, 대부를 主라 일컫는다. 지금 蘇子(蘇秦)가 제후를 합종하는 것을 가상하게 여겨 기리고 찬미하였다. 그러므로 主라고 말한 것이다.
又說魏襄王[一]曰:「大王之地,南有鴻溝、[二]陳、汝南、許、郾、[三]昆陽、召陵、舞陽、新都、新郪,[四]東有淮、潁、[五]煮棗、[六]無胥,[七]西有長城之界,北有河外[八]、卷、衍、酸棗,[九]地方千里。地名雖小,然而田舍廬廡之數,曾無所芻牧。人民之眾,車馬之多,日夜行不絕,輷輷殷殷,[一0]若有三軍之眾。臣竊量大王之國不下楚。然衡人怵王[一一]交彊虎狼之秦以侵天下,卒有秦患,[一二]不顧其禍。夫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罪無過此者。魏,天下之彊國也;王,天下之賢王也。今乃有意西面而事秦,稱東藩,築帝宮,[一三]受冠帶,[一四]祠春秋,[一五]臣竊為大王恥之。
또 魏나라 양왕을 유세하여 말하기를 “대왕의 땅은 남쪽으로 홍구, 진, 여남, 허, 언, 곤양, 소릉, 무양, 신도, 신처가 있고, 동쪽으로 회수, 영수, 자조, 무서가 있고, 서쪽으로 장성의 경계가 있고, 북쪽으로 하외, 권, 연, 산조가 있으며, 땅이 4방 1000리입니다. 땅의 이름으로는 비록 적다하나 집들의 수가 많아 일찍이 꼴 베고 기르는 바가 없었습니다.(놀리는 땅이 없었습니다.) 백성이 많고 수레와 말이 많아 낮과 밤으로 다님이 끊이지 않고,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요란하여 마치 三軍의 무리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신이 헤아려보니 대왕의 나라는 楚나라에 비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횡하는 사람들은 왕이 강한 호랑이와 승냥이 같은 秦나라와 교류하는 것으로 천하를 침범하도록 꾀고는 마침내 秦나라의 근심이 있어도 그 禍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대저 간한 秦나라의 형세를 끼고서 안으로 그 임금을 겁주는 것은 죄가 이보다 큼이 없습니다. 魏나라는 천하의 강국이고, (魏나라의)왕은 천하의 현명한 왕입니다. 지금 뜻이 서쪽을 향하여 秦나라를 섬기는 데 있어 東藩(동쪽의 제후국)을 일컫고, 帝宮(황제의 궁전)을 쌓고, 冠帶를 받아 춘추로 제사하는 것을 신은 대왕의 부끄러움으로 생각합니다.
[一] 索隱世本惠王子名嗣。
[一] 【索隱】 세가 본기에 혜왕의 아들이니 미름은 嗣이다.
[二] 集解徐廣曰:「在滎陽。」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형양에 있다.”
[三] 集解徐廣曰:「在潁川。於幰切。」 索隱音偃,又於建反。戰國策作「鄢」。按:地理志潁川有許、郾二縣,又有傿陵縣,故所稱惑也。傿音焉。正義陳、汝南,今汝州、豫州縣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영천은 헌절에 있다.” 했다. 【索隱】 음은 偃인데 또한 於와 建의 反이다. 『戰國策』에는 “焉”이라 썼다. 살펴보니 『地理志』에 “영천은 許에 있다.”고 했다. 郾은 두 개 현이니 또한 언릉현이 있다. 그러므로 일컫는 바가 의혹이 있다. 傿의 음은 焉이다. 【正義】 陳나라, 여남은 지금의 여주 예주현이다.
[四] 集解地理志潁川有昆陽、舞陽縣,汝南有新郪縣,南陽有新都縣。索隱地理志昆陽、舞陽屬潁川,召陵、新郪屬汝南。按:新郪即郪丘,章帝以封殷後於宋。新都屬南陽。按:戰國策直云新郪,無「新都」二字。 正義召陵在豫州,舞陽在許州。
[四] 【集解】 『地理志』에 “영천은 곤양, 무양현에 있고, 여남은 신처현에 있으며, 남양은 신도현에 있다. 【索隱】 『地理志』에 곤양과 무양은 영천에 속하고, 소릉, 신처는 여남에 속한다. 살펴보니 ‘신처’는 곧 ‘처구’인데 장제가 殷나라의 후손인 宋나라에 봉하였다. ‘신도’는 남양에 속한다. 살펴보니 『戰國策』에 곧바로 ‘신처’라 말하고, ‘신도’ 두 글자가 없다. 【正義】 소릉은 예주에 있고, 무양은 허주에 있다.
[五] 正義淮陽、穎川二郡。
[五] 【正義】 회양 영천 두 군이다.
[六] 集解徐廣曰:「在宛句。」 正義在宛朐。按:宛朐,曹州縣也。
[六]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완구에 있다.” 했다. 【正義】 완구에 있다. 살펴보니 완구는 조주현이다.
[七] 索隱按;其地闕。
[七] 【索隱】 살펴보니 그 땅이 빠졌다.
[八] 正義謂河南地。
[八] 【正義】 하남의 땅을 말한다.
[九] 集解徐廣曰:「滎陽卷縣有長城,經陽武到密。衍,地名。索隱徐廣云「滎陽卷縣有長城」,蓋據地險為說也。正義卷在鄭州原武縣北七里。酸棗在滑州。衍,徐云地名。
[九]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형양 권현에 장성이 있는데 양주와 무주를 지나 밀주에 이른다.” 했다. 衍은 지명이다. 【索隱】 서광이 말하기를 “형양 권현에 장성이 있다. 한 것은 대개 지리가 험함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했다. 【正義】 권현은 정주 원무현 북쪽 7리에 있다. 산조는 활주에 있다. 연주와 서주는 지명을 말한다.
[一0] 正義輷,麾宏反。殷音隱。
[一0] 【正義】 輷은 麾와 宏의 反이다. 殷의 음은 隱이다.
[一一] 正義衡音橫。怵音卹。
[一一] 【正義】 衡의 음은 橫이다. 怵의 음은 卹이다.
[一二] 正義卒音□忽反。
[一二] 【正義】 卒의 음은 □와 忽의 反이다.
[一三] 索隱謂為秦築宮,備其巡狩而舍之,故謂之「帝宮」。
[一三] 【索隱】 秦나라를 위해 궁궐을 짓고, 그 순수에 대비하여 집을 지었기 때문에 ‘帝宮’이라 한 것이다.
[一四] 索隱謂冠帶制度皆受秦法。
[一四] 【索隱】 冠帶(관복), 制度가 모두 秦나라의 법을 받음을 말한다.
[一五] 索隱言春秋貢奉,以助秦祭祀。
[一五] 【索隱】 봄과 가을에 조공을 받드는 것으로써 秦나라의 제사를 돕는 것을 말한다.
「臣聞越王句踐戰敝卒三千人,禽夫差於干遂;[一]武王卒三千人,革車三百乘,制紂於牧野:[二]豈其士卒眾哉,誠能奮其威也。今竊聞大王之卒,武士二十萬,[三]蒼頭二十萬,[四]奮擊二十萬,廝徒十萬,[五]車六百乘,騎五千匹。此其過越王句踐、武王遠矣,今乃聽於群臣之說而欲臣事秦。夫事秦必割地以效實[六],故兵未用而國已虧矣。凡群臣之言事秦者,皆姦人,非忠臣也。夫為人臣,割其主之地以求外交,偷取一時之功而不顧其後,破公家而成私門,外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以求割地,願大王孰察之。
신이 들으니 越나라 왕 구천은 싸움으로 피폐해진 군사 3000명으로 간수에서 부차를 사로잡았고, 무왕은 군사 3000명, 수레 300대로 목야에서 주를 제압한 것이 어찌 군사가 많아서이겠습니까? 진실로 그 위엄을 떨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들으니 대왕의 군사는 武士 20만, 蒼頭 20만, 奮擊 20만, 廝徒 10만, 수레 600대, 말 5000필 이라 합니다. 이는 越나라 왕 구천보다 낫고, 무왕보다 많습니다. 지금 여러 신하들의 말을 들으니 신하 노릇하여 秦나라를 섬기고자 합니다. 대저 秦나라를 섬기면 반드시 땅을 가르는 것으로써 실제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군대를 쓰지 않음에도 이미 이지러집니다. 무릇 여러 신하가 秦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간사한 사람이요 충신이 아닙니다. 대저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 그 임금의 땅을 가르는 것으로써 밖으로 교류를 구하는 것은 한 때의 공을 훔쳐 취하고 그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며, 公家를 깨트리고 사사로운 문중을 이루는 것이며, 밖으로 강성한 秦나라의 세력을 끼고서 안으로 그 임금을 겁주어 땅을 가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니 대왕께서는 잘 살피기를 바랍니다.
[一] 索隱按:干遂,地名,不知所在。然按干是水旁之高地,故有「江干」「河干」是也。又左思吳都賦云「長干延屬」,是干為江旁之地。遂者,道也。於干有道,因為地名。正義在蘇州吳縣西北四十餘里萬安山西南一里太湖。夫差敗於姑蘇,禽於干遂,相去四十餘里。
[一] 【索隱】 살펴보니 간수는 지명인데 있는 바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干을 살펴보니 이는 물가의 높은 곳이다. 그러므로 ‘江干’, ‘河干’이라 한 ㄱ서이 이것이다. 또 좌사의 ‘吳都賦’에 “긴 강가가 이어진다.”하니 이는 干이 강가의 땅이 된다. 遂는 길이다. 干에 길이 있기 때문에 지명으로 삼은 것이다. 【正義】 소주 오현 서북쪽 40여리 만안산 서남쪽 1리에 태호가 있다.부차가 고소에서 패하고 간수에서 사로잡힌 곳은 서로 40여리 떨어져 있다.
[二] 正義今衛州城是也。周武王伐紂於牧野,築之。
[二] 【正義】 지금의 위주성이 이것이다. 周나라 무왕이 목야에서 주를 토벌하고 쌓았다.
[三] 集解漢書刑法志曰:「魏氏武卒衣三屬之甲,操十二石之弩,負矢五十,置戈其上,冠冑帶劍,贏三日之糧,日中而趨百里,中試則復其戶,利其田宅。」 索隱衣音意。屬音燭。按:三屬謂甲衣也。覆膊,一也;甲裳,二也;脛衣,三也。甲之有裳,見左傳也。贏音盈。謂齎糗糧。中音竹仲反。謂其筋力能負重,所以得中試也。復音福。謂中試之人,國家當優復,賜之上田宅,故云「利其田宅」也。
[四] 【集解】 『漢書』 형법지에 “위씨(위나라)는 무장한 병졸에게 三屬의 갑옷을 입히고, 12석의 쇠뇌를 잡으며, 화살 50개를 지고, 그 위에 창을 두며, 투구를 쓰고 검을 차고, 3일 치의 식량을 휴대하고 하루에 100리를 달리며 시험에 알맞게 하면(합격하면) 그 집을 우대하여 밭과 집을 주어 그 밭과 집을 이롭게 한다.” 했다. 【索隱】 衣의 음은 意이다. 屬의 음은 燭이다. 살펴보니 ‘三屬’은 갑옷을 말하는데 ‘覆膊’이 一이요, ‘甲裳’이 둘이요, ‘脛衣’가 셋이다. 갑옷의 裳이 있는 것은 『左傳』에 보인다. 嬴의 음은 盈이다. 齎는 마른 식량을 말한다. 中의 음은 竹과 仲의 反이다. 그 근력이 무거운 것을 질 수 있기 때문에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復은 음이 福이다.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국가가 마땅히 우대하여 좋은 田宅을 내리기 때문에 ‘그 전택으로 이롭게 한다.’ 한 것이다.
[四] 索隱謂以青巾裹頭,以異於眾。荀卿「魏有蒼頭二十萬」是也。
[四] 【索隱】 푸른 건으로써 머리를 싸서 무리와 달리 한 것이다. 荀卿이 “魏나라에 蒼頭 20만 명이 있다.” 한 것이 이것이다.
[五] 索隱廝音斯。謂廝養之卒。斯,養馬之賤者,今起為之卒。正義廝音斯。謂炊烹供養雜役。
[五] 【索隱】 厮는 음이 斯이니 밥 짓거나, 잡일을 하는 병졸이다. 斯는 말을 기르는 천한 자이니 지금 일으켜 병졸로 한 것이다. 【正義】 廝의 음은 斯이니 불 때 삶고, 공양하는 잡역이다.
[六] 索隱謂割地獻秦,以效己之誠實。
[六] 【索隱】 땅을 갈라 秦나라에 바치는 것으로써 자기의 성실함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周書曰:『綿綿不絕,蔓蔓柰何?豪(毫?)氂不伐,將用斧柯。』前慮不定,後有大患,將柰之何?大王誠能聽臣,六國從親,專心并力壹意,則必無彊秦之患。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一]奉明約,在大王之詔詔之。」
『周書』에 “끊임없이 이어진 넝쿨 어떻게 할까? 조그만 할 때 베지 않으면 장차 도끼자루를 쓸 것이다.” 하니 앞서 생각을 정하지 않으면 후에 큰 근심이 있으니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왕이 진실로 신의 말을 듣고 6국이 따라 친하고, 마음을 오로지하고 힘을 합하며 뜻을 하나로 하면 곧 반드시 강한 秦나라의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폐읍(우리나라)인 趙나라 왕이 신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계책을 나타내게 하여 밝은 약속을 받들게 하였으니 대왕의 조서로 알림에 달려있습니다.
[一] 索隱此「效」猶呈也,見也。
[一] 【索隱】 여기의 效는 나타냄이며, 보이는 것이다.
魏王曰:「寡人不肖,未嘗得聞明教。今主君以趙王之詔詔之,敬以國從。」因東說齊宣王[一]曰:「齊南有泰山,東有琅邪,西有清河,[二]北有勃海,北所謂四塞之國也。齊地方二千餘里,帶甲數十萬,粟如丘山。三軍之良,五家之兵,[三]進如鋒矢,[四]戰如雷霆,解如風雨。即有軍役,未嘗倍泰山,絕清河,涉勃海也。[五]臨菑之中七萬戶,臣竊度之,不下戶三男子,三七二十一萬,不待發於遠縣,而臨菑之卒固已二十一萬矣。臨菑甚富而實,其民無不吹竽鼓瑟,彈琴擊筑,[六]鬥雞走狗,六博[七]蹋鞠[八]者。臨菑之塗,車轂擊,人肩摩,連衽成帷,舉袂成幕,揮汗成雨,家殷人足,志高氣揚。夫以大王之賢與齊之彊,天下莫能當。今乃西面而事秦,臣竊為大王羞之。
魏나라 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현명하지 못하여 일찍이 밝은 가르침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주군인 趙나라 왕이 조서로 알리니 공경히 나라로써 따를 것입니다.” 했다. 동쪽으로 齊나라 선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齊나라의 남쪽에는 태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낭야가 있고, 서쪽으로는 청하가 있고, 북쪽으로는 발해가 있고 북쪽으로 있어 이른바 4방이 막힌 나라입니다. 齊나라는 땅이 4방 2천여리이고, 갑옷 입은 군사가 수십만이며, 곡식이 언덕과 산과 같습니다. 三軍의 좋음과 五家의 군대는 나아가는 것이 날카롭게 나아가는 화살과 같고, 싸우는 것은 번개와 우레와 같으며, 풀기는 바람과 비와 같습니다. 곧 軍役이 있어도 일찍이 태산을 등지고 청하와 발해를 건너지 않았습니다. 임치의 안에 7만호가 있는데 신이 가만히 헤아려보니 戶에(당) 세 남자를 내려가지 않아도(만 하여도) 三七 21만으로 멀리 있는 현에서 발병함을 기다리자 않아도 임치의 병졸이 진실로 이미 21만입니다. 임치는 매우 부유하고 차 있어서 그 백성들이 피리를 불고, 비파를 연주하며 거문고를 튕기고 축을 치며, 닭싸움과 개 경주, 六博(윷놀이), 蹋鞠(공차기)을 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임치의 길은 수레바퀴가 치고, 사람의 어깨가 맞부딪치며, 옷깃이 연이어 휘장을 이루며, 소매를 들어 막을 이루고, 땀을 훔치면 비를 이루고, 집은 성대하고 사람은 풍족하여 뜻이 높고 기개를 드날립니다. 대왕의 현명함과 齊나라의 강성함으로써 하면 천하가 감당하지 못합니다. 지금 서족을 향하여 秦나라를 섬기는 것에 대하여 신은 대왕의 수치로 여깁니다.
[一] 索隱世本名辟彊,威王之子也。
[一] 【索隱】 세가 본기에 이름을 벽강이라 하였는데 위왕의 아들이다.
[二] 正義即貝州。
[二] 【正義】 곧 패주이다.
[三] 索隱按:高誘注戰國策云「五家即五國也」。
[三] 【索隱】 살펴보니 고유가 주석한 『戰國策』에 “五家는 곧 五國이다.” 했다.
[四] 索隱按;戰國策作「疾如錐矢」。高誘曰「錐矢,小矢,喻徑疾也」。呂氏春秋曰「所貴錐矢者,為應聲而至」。正義齊軍之進,若鋒芒之刀,良弓之矢,用之有進而無退。
[四]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는 “疾如錐矢(빠르기가 화살 같았다.)”라 썼다. 고유가 말하기를 “錐矢는 작은 화살이니 빠름을 비유한 것이다.” 했다. 『呂氏春秋』에 “ 錐矢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소리에 응하여 이르기 때문이다.” 했다. 【正義】 齊나라 군대의 나아감은 마치 깔 끝의 도와 좋은 활의 화살 같아서 나아감만 있고, 물러남이 없다.
[五] 正義言臨淄自足也。絕,涉,皆度也。勃海,滄州也。齊有軍役,不用度河取二部。
[五] 【正義】 임치가 스스로 풍족함을 말한 것이다. 絶, 涉은 모두 건넘이다. 발해는 창주이다. 齊나라에 군역이 있으면 河를 건너지 않아도 두 군을 취한다.
[六] 正義筑似琴而大,頭圓,五弦,擊之不鼓。
[六] 【正義】 筑은 가야금과 비슷한데 크고, 머리가 둥글며, 현이 5개로 그것을 치고, 타지 않는다.
[七] 索隱按:王逸注楚詞云「博,著也。行六棋,故曰六博」。
[七] 【索隱】 살펴보니 왕일이 주석한 楚詞에 “博은 드러냄이다. 여섯 번 장기를 두기 때문에 六博이라고 한다.
[八] 集解劉向別錄曰:「蹴鞠者,傳言黃帝所作,或曰起戰國之時。蹋鞠,兵勢也,所以練武士,知有材也,皆因嬉戲而講練之。」蹋,徒獵反。鞠,求六反。 索隱上徒臘反,下居六反。別錄注云:「蹴踘,促六反。蹴亦蹋也。」
崔豹云:「起黃帝時,習兵之埶。」
[八] 【集解】 유향의 『別錄』에 “축국은 전하기를 黃帝가 만든 것이라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는 때에 답국은 병사의 형세이니 무사를 훈련하여 재질이 있을 알 수 있고, 모두 인하여 즐겁게 놀면서 훈련한다.” 했다. 蹋은 徒와 獵의 反이다. 鞠은 求와 六의 反이다. 【索隱】 위는 徒와 獵 의 反이고 아래는 居와 六의 反이다. 『別錄』 주석에 “蹴踘(축국)은 促과 六의 반이다. 蹴은 또한 蹋이다.” 최표가 말하기를 “黃帝 때 비롯하여 병사의 기예를 연습한다.” 했다.
「且夫韓、魏之所以重畏秦者,為與秦接境壤界也。兵出而相當,不出十日而戰勝存亡之機決矣。韓、魏戰而勝秦,則兵半折,四境不守;戰而不勝,則國已危亡隨其後。是故韓、魏之所以重與秦戰,而輕為之臣也。今秦之攻齊則不然。倍韓、魏之地,過衛陽晉之道,[一]徑乎亢父之險,[二]車不得方軌,[三]騎不得比行,百人守險,千人不敢過也。秦雖欲深入,則狼顧,[四]恐韓、魏之議其後也。是故恫疑[五]虛猲,[六]驕矜而不敢進,[七]則秦之不能害齊亦明矣。
또한 저 韓, 魏나라가 秦나라를 중하게 여기고 두려워하는 것은 秦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를 내어 서로 대적하면 10일이 지나지 않아 전쟁의 이김과 존망의 기틀이 결정된다. 韓, 魏가 싸워 秦나라를 이기면 곧 군대의 반이 꺽이고 4방의 국경을 지키지 못합니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곧 나라는 이미 위태로워지고 망하는 것이 그 뒤를 따릅니다. 이 때문에 韓과 魏나라는 秦나라와의 싸움을 꺼려하고 신하됨을 가벼이 여깁니다. 지금 秦나라의 齊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韓과 魏나라의 당을 등지고, 魏나라 양진의 길을 지나 강보의 험함을 건너야 하며, 수레는 여러 수레가 가지 못하고 말은 나란히 갈 수 없으니 100명이 험함을 지키면 1000사람이 감히 지나지 못합니다. 秦나라가 비록 깊이 들어가고자 할지라도 곧 뒤를 돌아보고 韓 과 魏나라가 그 뒤를 의논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 때문에 상심하여 의심하며, 두려워하고, 위협하면서 교만하게 과시하되 감히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니 곧 秦나라가 齊나라를 해칠 수 없는 것이 또한 분명합니다.
[一] 集解徐廣曰:「魏哀王十六年,秦拔魏蒲阪、陽晉、封陵。」 索隱按:陽晉,魏邑也。魏系家「哀王十六年,秦拔魏蒲阪、陽晉、封陵」是也。劉氏云「陽晉,地名,蓋適齊之道,衛國之西南也」。正義言秦伐齊,背韓、魏地而與齊戰。徐說陽晉非也,乃是晉陽耳。衛地曹、濮等州也。杜預云「曹,衛下邑也」。陽晉故城在曹州乘氏縣西北三十七里。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魏나라 애왕 16년 秦나라가 魏나라의 포판, 진양, 궤릉을 빼앗았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양진은 魏나라의 읍니다. 魏나라 系家에 “애왕 16년 秦나라가 포판, 양진, 궤릉을 빼앗았다.” 한 것이 이것이다. 유씨가 말하기를 “양진은 지명이니 대개 齊나라로 가는 길인데 衛나라의 서남쪽이다.” 했다. 【正義】 秦나라가 齊나라를 치려면 韓, 魏나라 당을 등지고 齊나라와 싸워야 함을 말한 것이다. 서광이 말한 陽晉이 아니다. 곧 이는 晉陽일 뿐이다. 衛나라 땅인 曹, 복 등의 주이다. 두예가 말하기를 “曹는 衛나라의 하급 읍이다.” 했다. 陽晉의 옛 성은 조주 승씨현 서북쪽 37리에 있다.
[二] 索隱亢音剛,又苦浪反。地理志縣名,屬梁國也。正義故縣在兗州任城縣南五十一里。
[二] 【索隱】 亢의 음은 剛이다. 또 苦와 浪의 反이다. 『地理志』에 현의 이름이고, 梁나라에 속한다. 【正義】 옛 현이 예주 임성현 남쪽 51리에 있다.
[三] 正義言不得兩車並行。
[三] 【正義】 두 수레가 나란히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四] 正義狼性怯,走常還顧。
[四] 【正義】 이리의 성질은 겁이 많아서 달아나면서 항상 뒤를 돌아본다.
[五] 索隱上音通,一音洞。恐懼也。
[五] 【索隱】 위의 음과 통한다. 한 음은 洞이니 두려워하는 것이다.
[六] 集解呼葛反。 索隱猲,本一作「喝」,並呼葛反。高誘曰:「虛猲,喘息懼貌也。」劉氏云:「秦自疑懼,不敢進兵,虛作恐怯之詞,以脅韓、魏也。」
[六] 【集解】 呼와 葛의 反이다. 【索隱】 猲은 ‘喝’이라 쓴 판본도 있는데 아울러 呼와 葛의 反이다. 고유가 말하기를 “虛猲은 헐떡거리며 숨 쉬며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했다. 유씨가 말하기를 “秦나라가 스스로 의심하고 두려워 마여 감 히 군대를 나아가게 하지 못하고 헛되이 두려움과 겁을 주는 말을 하는 것으로써 韓, 魏나라를 위협하는 것이다.” 했다.
[七] 正義言秦雖至亢父,猶恐懼狼顧,虛作喝罵,驕溢矜誇,不敢進伐齊明矣。
[七] 【正義】 秦나라가 비록 강보에 이를지라도 오히려 이리가 돌아보는 것처럼 두려워하여 헛되이 꾸짖고, 교만함이 넘치고 과시하되 감히 나아가 齊나라를 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夫不深料秦之無柰齊何,而欲西面而事之,是群臣之計過也。今無臣事秦之名而有彊國之實,臣是故願大王少留意計之。」 齊王曰:「寡人不敏,僻遠守海,窮道東境之國也,未嘗得聞餘教。今足下以趙王詔詔之,敬以國從。」 乃西南說楚威王[一]曰:「楚,天下之彊國也;王,天下之賢王也。西有黔中、[二]巫郡,[三]東有夏州、[四]海陽,[五]南有洞庭、[六]蒼梧,[七]北有陘塞、郇陽,[八]地方五千餘里,帶甲百萬,車千乘,騎萬匹,粟支十年。此霸王之資也。夫以楚之彊與王之賢,天下莫能當也。今乃欲西面而事秦,則諸侯莫不西面而朝於章臺之下矣。
“저 秦나라가 齊나라를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깊이 살피지 않고 서쪽을 향하여 그를 섬기고자 하는 것은 신하들의 계책이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신이 秦나라를 섬긴다는 이름을 없이 하면서도 나라를 강하게 하는 실제가 있습니다. 신이 이 때문에 대왕이 계책에 뜻을 둘 것을 원합니다.” 하였다. 齊 나라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민첩하지 못하고, 후미지고 먼 곳에서 바다를 지키는 길이 막힌 동쪽 변경의 나라로 일찍이 가르침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그대가 趙나라왕의 조서로써 가르치시니 공경히 나라로써 따르겠습니다.” 했다. 이에 서남쪽으로 가서 楚나라 위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楚나라는 천하의 강국이고, 왕은 천하의 현명한 왕입니다. 서쪽으로 검중, 무군이 있고, 동쪽에 하주, 해양이 있고, 남쪽으로 동정, 창오가 있으며 북쪽으로 형세와 순양이 있으며 땅은 4방 5천여리이고, 군대는 100만이며 수레 1000대, 말 10000필이며 곡식응 10년을 지탱합니다. 이는 패왕의 자산입입니다. 저 楚나라의 강성함과 왕의 현명함은 천하에 당할 이가 없습니다. 지금 서쪽을 향하여 진을 섬기고자 하면 곧 제후들로 서쪽을 향하여 장대의 아래에 조회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했다.
[一] 索隱威王名商,宣王之子。
[一] 【索隱】 위왕은 이름이 상이니 선왕의 아들이다.
[二] 集解徐廣曰:「今之武陵也。」 正義今朗州,楚黔中郡,其故城在辰州西二十里,皆盤瓠後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지금의 무릉이다.” 했다. 【正義】 지금의 낭주이니 楚나라의 검중군으로 옛 성이 진주 서쪽 20리에 있는데 모두 반호의 후예이다.
[三] 集解徐廣曰:「巫郡者,南郡之西界。」 正義巫郡,夔州巫山縣是。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무군은 남군의 서쪽 경계이다.” 했다. 【正義】 무군은 기주 무산현이 이것이다.
[四] 集解徐廣曰:「楚考烈王元年,秦取夏州。」駰案:左傳「楚莊王伐陳,鄉取一人焉以歸,謂之夏州」。而注者不說夏州所在。車胤撰桓溫集云:「夏口城上數里有洲,名夏州。」「東有夏州」謂此也。索隱裴駰據左氏及車胤說夏州,其文甚明,而劉伯莊以為夏州侯之本國,亦未為得也。正義大江中州也。夏水口在荊州江陵縣東南二十五里。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楚나라 고열왕 원년 秦나라가 하주를 취하였다.” 했다. 【駰案】 『左傳』에 “楚나라 장왕이 陳. 鄕을 쳐서 한 사름을 취하여 돌아갔다. 하는데 하주를 이른다.” 하였는데 주석하는 자가 하주의 있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 거윤이 편찬한 『桓溫集』에 “하구성 위 수리에 모래톱이 있는데 하주라 이름 한다.” 했다. “동쪽에 하주가 있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索隱】 배인은 좌씨(좌씨전)와 거윤이 말한 하주에 근거하여 그 글이 매우 분명하다 하고, 유백장은 하주를 제후의 본래 나라로 여겼는데 또한 옳다고 하지 못한다. 【正義】 큰 강 가운데의 주이다. 하수의 입구는 형주 강릉현 동남쪽 25리에 있다.
[五] 索隱按:地理志無海陽。劉氏云「楚之東境」。
[五] 【索隱】 살펴보니 『地理志』에 해양이 없다. 유씨가 말하기를 “楚나라의 동쪽 경계이다.” 했다.
[六] 索隱今之青草湖是也,在岳州界也。
[六] 【索隱】 지금의 청초호가 이것이니 악주 경계에 있다.
[七] 索隱地名。地理志有蒼梧郡。正義蒼梧山在道州南。
[七] 【索隱】 지명이다. 『地理志』에 창오군이 있다. 【正義】 창오산이 도주 남쪽에 있다.
[八] 集解徐廣曰:「春秋曰『遂伐楚,次于陘』。楚威王十一年,魏敗楚陘山。析縣有鈞水,或者郇陽今之順陽乎?一本『北有汾、陘之塞』也。」 索隱陘山在楚北境,威王十一年,魏敗楚陘山是也。郇音荀。北有郇陽,其地當在汝南、潁川之界。檢地理志及太康地記,北境並無郇邑。郇邑在河東,晉地。計郇陽當是新陽,聲相近字變耳。汝南有新陽縣,應劭云「在新水之陽」,猶豳邑變為栒,亦當然也。徐氏云「郇陽當是慎陽」,蓋其疏也。正義陘山在鄭州新鄭縣西南三十里。順陽故城在鄭州穰縣西百四十里。
[八]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春秋』에 ‘드디어 楚나라를 정벌하고 陘(형)에 행차하였다.’ 하고, 楚나라 위왕 11년에 魏나라가 楚나라 형산에서 패하였다. 석현에 균수가 있다하고, 어떤 사람은 郇陽이 지금의 順陽일까? 하고 어떤 책에는 ‘북쪽에 분수와 형의 막힘이 있다.’ 하였다.” 【索隱】 형산은 楚나라 북쪽 경계이 있는데 위왕11년 魏나라가 楚나라 형산에서 패하였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郇의 음은 荀이다. 북쪽에 순양이 있다면 그 땅은 마땅히 여남과 영천의 경계에 있어야 한다. 『地理志』와 『太康地記』를 검토해 보니 북쪽 경계 모두에 郇邑이 없다. 순읍은 하동 晉나라 땅에 있다. 순양을 헤아려 보면 마땅히 이 신양이 소리가 서로 비슷하되 글자가 변하였을 뿐이다. 여남에 신양현이 있다. 응소가 말하기를 “‘신수의 남쪽에 있다.’ 하니 빈읍이 변하여 栒邑이 된 것과 같은 것이 또한 마땅히 그러하다.” 서씨가 말하기를 “순양은 마땅히 이 신양이다.”대개 통한다. 【正義】 형산은 정주 신정현 서남쪽 30리에 있다. 순양 엣 성은 정주 양현 서쪽 140리에 있다.
「秦之所害莫如楚,楚彊則秦弱,秦彊則楚弱,其勢不兩立。故為大王計,莫如從親以孤秦。大王不從[親],秦必起兩軍,一軍出武關,一軍下黔中,則鄢郢動矣。[一]
秦나라의 해침을 당하는 것은 楚나라 보다 더함이 없어 楚나라가 강해지면 秦나라가 약해지고, 秦나라가 강해지면 楚나라가 약해져서 그 형세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왕을 위한 계책은 합종을 친하게 하는 것으로써 秦나라를 고립시키는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합종과 (친)하지 않는다면 秦나라는 반드시 兩軍을 일으켜 一軍은 무관을 나오고, 一軍은 검중을 내려오면 곧 郾과 郢이 동요할 것입니다.
[一] 集解徐廣曰:「今南郡宜城。」 正義鄢鄉故城在襄州率道縣南九里。安郢城在荊州江陵縣東北六里。秦兵出武關,則臨鄢矣;兵下黔中,則臨郢矣。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지금의 남군 의성이다.” 했다. 【正義】 언향의 엣 성은 양주 솔도현 남쪽 9리에 있다. 안영성은 형주 강릉현 동북쪽 6리에 있다. 秦나라 군대가 무관을 나오면 곧 언을 치게 되고, 군대가 검중을 내려오면 곧 영을 치게 된다.
「臣聞治之其未亂也,為之其未有也。患至而后憂之,則無及已。故願大王蚤孰計之。「大王誠能聽臣,臣請令山東之國奉四時之獻,以承大王之明詔,委社稷,奉宗廟,練士厲兵,在大王之所用之。大王誠能用臣之愚計,則韓、魏、齊、燕、趙、衛之妙音美人必充後宮,燕、代橐駝良馬必實外廄。故從合則楚王,衡成則秦帝。今釋霸王之業,而有事人之名,臣竊為大王不取也。
신이 들으니 그 어지럽지 않을 때 다스리고, 그 (일이)있지 않을 때 행(조치)한다 하였습니다. 근심이 이른 후에 걱정하면 곧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 계책을 깊이 생각할 것을 원합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계책을) 들으신다면 신은 산동의 나라들로 하여금 4時로 조공을 받고, 대왕의 밝은 가르침을 받들고, 사직을 위임받으며, 종묘를 받들고 士(선비)를 훈련하고 군대를 격려하기를 대왕이 쓰는바에 달려 있게 할 것을 청합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어리석은 계책을 쓸 수 있다면 韓, 魏, 齊, 燕, 趙, 衛나라의 아름다운 음악과 미인이 반드시 후궁에 채워질 것이며, 燕과 代의 낙타와 좋은 말이 반드시 밖의 마굿간을 채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종을 따르면 곧 楚나라는 왕이 되고, 연횡이 이루어지면 곧 秦나라는 황제가 됩니다. 지금 패왕의 업을 풀어놓아버리고(버리고) 다른 사람을 섬긴다는 이름을 소유하는 것을 신은 대왕을 위해 취할 수 없습니다.
「夫秦,虎狼之國也,有吞天下之心。秦,天下之仇讎也。衡人皆欲割諸侯之地以事秦,此所謂養仇而奉讎者也。夫為人臣,割其主之地以外交彊虎狼之秦,以侵天下,卒有秦患,不顧其禍。夫外挾彊秦之威以內劫其主,以求割地,大逆不忠,無過此者。故從親則諸侯割地以事楚,衡合則楚割地以事秦,此兩策者相去遠矣,二者大王何居焉?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奉明約,在大王詔之。」
저 秦나라는 호랑이와 이리의 나라여서 천하를 삼키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秦나르는 천하의 원수입니다. 연횡론자는 모두 제후의 땅을 가르는 것으로써 秦나를 섬기고자 하니 이것은 이른바 원수를 길러서 원수를 받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가 그 주인의 땅을 가르는 것으로써 밖으로 강하고 호랑이와 이리 같은 秦나라와 사귀고 천하를 침략하여 끝내 秦나라의 근심을 있게 하고도 그 재앙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밖으로 강한 秦나라의 위협을 끼고 안으로 그 임금을 겁주는 것으로써 땅을 가를 것을 요구하는 것은 크게 충성하지 않음을 맞는 것이 이보다 지나침(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합종을 친하게 하면 제후가 땅을 가르는 것으로써 楚나라를 섬길 것이고, 연횡에 합하면 곧 楚나라가 땅을 가르는 것으로써 秦나라를 섬길 것이니 이 두 계책은 서로 떨어짐이 멀리 있습니다. 두 가지 중 대왕께서는 어느 것을 채택할 것입니까? 그러므로 폐읍의 趙나라 왕께서 신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계책을 보여 밝은 약속을 받들게 하시니 대왕의 가르침에 달려 있습니다.
楚王曰:「寡人之國西與秦接境,秦有舉巴蜀并漢中之心。秦,虎狼之國,不可親也。而韓、魏迫於秦患,不可與深謀,與深謀恐反人以入於秦,故謀未發而國已危矣。寡人自料以楚當秦,不見勝也;內與群臣謀,不足恃也。寡人臥不安席,食不甘味,心搖搖然如縣旌而無所終薄。[一]今主君欲一天下,收諸侯,存危國,寡人謹奉社稷以從。」
楚나라 왕이 말하기를 “과인의 나라는 서쪽으로 秦나라와 경계를 접하였고, 秦나라는 파, 촉을 점렬하고 한중을 병탄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秦나라는 호랑이와 이리의 나라이니 친할 수 없습니다. 韓나라와 魏나라가 秦나라의 근심을 핍박받아 더불어 깊이 도모할 수 없고, 더불어 깊이 도모할지라도 사람을 배반하고 秦나라에 들어갈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도모함을 발명하기 전에 나라가 이미 위태로울 것입니다. 과인이 스스로 楚나라가 秦나라를 당해낼 수 있을 지를 헤아려 보니 이길 수 없습니다. 안으로 여러 신하와 함께 도모하여도 믿을 수 없습니다. 과인은 누워도 자리가 편안하지 않고 먹어도 단 맛이 아니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깃발을 걸어놓은 것과 같아서 끝내 줄일 수 없습니다. 지금 주군께서 천하를 통일하고자 한다면 제후를 거두고 위태로운 나라를 보존하니 과인이 삼가 사직을 받드는 것으로써 따를 것입니다.” 했다.
[一] 集解白洛反。
[一] 【集解】 自와 洛의 反이다.
於是六國從合而并力焉。蘇秦為從約長,并相六國。北報趙王,乃行過雒陽,車騎輜重,諸侯各發使送之甚眾,疑於王者。[一]周顯王聞之恐懼,除道,使人郊勞。[二]蘇秦之昆弟妻嫂側目不敢仰視,俯伏侍取食。蘇秦笑謂其嫂曰:「何前倨而後恭也?」嫂委蛇蒲服,[三]以面掩地而謝曰:「見季子位高金多也。」[四]蘇秦喟然歎曰:「此一人之身,富貴則親戚畏懼之,貧賤則輕易之,況眾人乎!且使我有雒陽負郭田二頃,[五]吾豈能佩六國相印乎!」於是散千金以賜宗族朋友。初,蘇秦之燕,貸人百錢為資,乃得富貴,以百金償之。遍報諸所嘗見德者。其從者有一人獨未得報,乃前自言。蘇秦曰:「我非忘子。子之與我至燕,再三欲去我易水之上,方是時,我困,故望子深,是以後子, 子今亦得矣
이에 6국이 합종하여 힘을 합하였다. 소진이 從約長이 되어 6국의 재상을 겸하였다. 북쪽으로 趙나라 왕에게 보고하러 가면서 낙양을 지나는데 수레와 말, 짐은 제후들이 각기 사신을 내어 보낸 것이 매우 많아 왕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周나라 현왕이 듣고 두려워하여 길을 깨끗이 하고 사람을 시켜 교외에서 위로하였다. 소진의 형과 동생, 처, 형수 등이 눈을 옆으로 하여 감히 우러러 보지 못하고, 엎드려서 모시고 밥을 먹었다. 소진이 그 형수에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전에는 거만하더니 후에는 공손한가?” 하니 형수가 뱀처럼 구불거리며 엎드려 기면서 얼굴로 땅을 덮고 사과하여 말하기를 “季子가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했다. 소진이 위연히 탄식하기를 “이는 한 사람의 몸인데 富貴하면 친척이 두려워하고 貧賤하면 가벼이 여기는데 하물며 일반 사람에게 있어서랴! 또 나로 하여금 낙양의 부곽전 2경을 소유하게 하였다면 내가 어찌 6국의 재상 인수를 찰 수 있었겠는가?” 했다. 이에 千金을 흩어서 종족과 벗에게 나누어 주었다. 처음 소진이 燕나라에 갈 때 다른 사람에게 100전을 빌려서 여행비로 하였는데 富貴를 얻고서는 100금으로써 갚고, 두루 여러 곳에서 일찍이 덕을 보인자들에게도 갚았다. 종자(따르는 사람) 한 사람이 유독 갚음을 얻지 못하였다고 앞에서 스스로 말하였다. 소진이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잊은 것이 아니다, 그대는 나와 함께 燕나라에 이르렀을 때 두 번, 세 번 역수 가에서 나를 떠나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때를 당하여 내가 곤궁하였기 때문에 그대를 원망함이 깊었다. 이 때문에 그대를 뒤로 한 것인데 그대도 지금 또한 (보상을)얻을 것이다.” 했다.
[一] 索隱疑作「擬」讀。
[一] 【索隱】 疑라 쓰고, 擬라 읽는다.
[二] 集解儀禮曰:「賓至近郊,君使卿朝服用束帛勞。」
[二] 【集解】 『儀禮』 에 “빈객이 郊에 이르면 임금이 경으로 하여금 조복을 입고 비단을 묶은 것을 써서 위로한다.” 했다.
[三] 索隱委蛇謂以面掩地而進,若蛇行也。蒲服即匍匐,並音蒲仆。
[三] 【索隱】 委蛇는 얼굴을 땅에 대고 나아가는 것이 마치 뱀이 가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蒲服은 곧 匍匐이니 모두 음은 蒲仆이다.
[四] 集解譙周曰:「蘇秦字季子。」 索隱按:其嫂呼小叔為季子耳,未必即其字。允南即以為字,未之得也。
[四] 【集解】 초조가 말하기를 “소진의 자가 계자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그 형수가 소숙을 부르기를 季子라 했을 뿐이니 반드시 곧 그 자는 아니다. 允南은 곧 字로 여겼는데 옳지 않다.
[五] 索隱負者,背也,枕也。近城之地,沃潤流澤,最為膏腴,故曰「負郭」也。
[五] 【索隱】 負는 등이고, 베개이다. 성에 가까운 땅이 비옥하고, 물이 넉넉하니 가장 기름지다. 그러므로 ‘負郭’이라 한 것이다.
蘇秦既約六國從親,歸趙,趙肅侯封為武安君,乃投從約書於秦。[一]秦兵不敢闚函谷關十五年。
소진이 이미 6국이 합종으로 친할 것을 맹약한 후 趙나라에 돌아가니 趙나라 숙후가 봉하여 무안군으로 삼고, 합종을 맹약하는 글을 秦나라에 보냈다. 秦나라 군대가 감히 함곡관을 엿보지 못한 것이 15년이었다.
[一] 索隱乃設從約書。案:諸本作「投」。言設者,謂宣布其從約六國之事以告於秦。若作「投」,亦為易解。
[一] 【索隱】 합종을 맹약하는 글을 늘어놓은 것이다. 살펴보니 여러 본에서 ‘投’라고 썼다. 말을 베픈 자가 그 합종을 맹약한 6국의 일을 선포하는 것으로써 秦나라에 알린 것이다. 만약 ‘投’라 써도 또한 쉽게 이해 된다.
其後秦使犀首欺齊、魏,與共伐趙,欲敗從約。齊、魏伐趙,趙王讓蘇秦。蘇秦恐,請使燕,必報齊。蘇秦去趙[一]而從約皆解。
그 후 秦나라가 서수를 시켜 齊나라, 魏나라를 속여 함께 趙나라를 쳐서 합종의 맹약을 무너뜨리고자 하였다. 齊나라와 魏나라가 趙나라를 치니 趙나라 왕이 소진을 꾸짖었다. 소진이 두려워하여 燕나라에 사신 가서 반드시 齊에 보복할 것을 청하였다. 소진이 趙나라를 떠나면서 합종의 맹약은 모두 풀어졌다.
[一] 集解徐廣曰:「自初說燕至此三年。」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처음 燕나라 왕알 유세함으로부터 이에 이르기까지 3년이었다.
秦惠王以其女為燕太子婦。是歲,文侯卒,太子立,是為燕易王。易王初立,齊宣王因燕喪伐燕,取十城。易王謂蘇秦曰:「往日先生至燕,而先王資先生見趙,遂約六國從。今齊先伐趙,次至燕,以先生之故為天下笑,先生能為燕得侵地乎?」蘇秦大慚,曰:「請為王取之。」
秦나라 혜왕이 그 딸로써 燕나라 태자의 부인으로 삼았다. 이 해에 문후가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燕나라 易王이 된다. 역왕이 즉위한 초에 齊나라 선왕이 燕나라가 상을 당함으로 인하여(상을 당한 틈을 타서) 燕나라를 쳐서 10성을 취하였다. 역왕이 소진에게 말하기를 “지난 날 선생이 燕나라에 왔을 때 선왕이 선생에게 여비를 주어 趙나라(왕을)를 보게 하여 6국이 합종을 맹약함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齊나라가 먼저 趙나라를 치고 다음으로 燕나라에 이르는 것으로서 선생의 옛 일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선생은 燕나라를 위하여 침략당한 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소진이 크게 부끄러워 하며 말하기를 “왕을 위하여 취하기를 청합니다.” 했다.
蘇秦見齊王,再拜,俯而慶,仰而弔。[一]齊王曰:「是何慶弔相隨之速也?」蘇秦曰:「臣聞飢人所以飢而不食烏喙者,[二]為其愈充腹而與餓死同患也。[三]今燕雖弱小,即秦王之少婿也。大王利其十城而長與彊秦為仇。今使弱燕為鴈行而彊秦敝其後,以招天下之精兵,是食烏喙之類也。」 齊王愀然變色[四]曰:「然則柰何?」蘇秦曰:「臣聞古之善制事者,轉禍為福,因敗為功。大王誠能聽臣計,即歸燕之十城。燕無故而得十城,必喜;秦王知以己之故而歸燕之十城,亦必喜。此所謂棄仇讎而得石交者也。夫燕、秦俱事齊,則大王號令天下,莫敢不聽。是王以虛辭附秦,以十城取天下。此霸王之業也。」王曰:「善。」於是乃歸燕之十城。
소진이 齊나라 왕을 뵙고 두 번 절하고 굽혀서 축하하고 우러러 위문하였다. 齊나라 왕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축하하고, 위문하는 것이 서로 따라 빠르게 합니까?” 했다. 소진이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배고픈 사람이 배가 고프더라도 烏喙(오훼, 독초)를 먹지 않는 것은 점점 배를 채우는 근심이 굶어 죽는 것과 같은 금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燕나라가 비록 약하고 적으나 秦나라 왕의 젊은 사위입니다. 대왕께서는 그 10성의 이로움으로 오래 동안 강한 秦나라와 원수가 됩니다. 지금 지금 약한 燕나라로 하여금 기러기가 열을 지어 가는 것처럼(선봉이 되고) 하게하고 강한 秦나라가 그 뒤를 지치게 하는 것으로써 천하의 정예군대를 부르게 하는 것은 이는 오훼를 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齊나라 왕이 두려워하여 얼굴색이 변하면서 말하기를 “그러하면 곧 어떻게 할까?” 했다. 소진이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옛날에 일을 잘 제어하는 자는 재앙을 돌려 복을 삼고, 무너짐으로 인하여 공을 삼는다 합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계책을 들으시면 곧 燕나라의 10성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燕나라는 이유 없이 10성을 얻으니 반드시 기뻐할 것이고, 秦나라 왕은 자기의 일로써 燕나라의 10성을 돌려주게 된 것을 만다면 또한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원수를 버리고 굳은 사귐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대저 燕나라와 秦나라가 함께 齊나라를 섬기면 곧 대왕이 천하를 호령하여도 감히 듣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왕이 빈말로써 秦나라에 붙임이며, 10성으로써 천하를 취하는 것이니 이는 패왕의 도입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좋다” 했다. 이에 燕나라의 10성을 돌려주었다.
[一] 索隱劉氏云:「當時慶弔應有其詞,但史家不錄耳。」
[一] 【索隱】 유씨가 말하기를 “당시에 慶弔에는 마땅히 그 말이 있었을 것이나 사관이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
[二] 集解本草經曰:「烏頭,一名烏喙。」 索隱烏啄,音卓,又音許穢反。今之毒藥烏頭是。正義廣雅云:「岁(歲)奚,毒附子也。一歲為烏啄,三歲為附子,四歲為烏頭,五歲為天雄。」
[二] 【集解】 『本草經』에 “烏頭는 일명 烏喙이다.” 【索隱】 烏喙는 음이 卓이고, 도한 음이 許와 穢의 反이다. 지금 독약을 烏頭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正義】 『廣雅』에 “세해는 독부자이다. 1년된 것을 烏喙라 하고, 3년 된 것을 附子라 하고, 4년 된 것을 烏頭라 하고 5년 된 것을 天雄이라 한다.” 했다.
[三] 索隱劉氏以愈猶暫,非也。謂食烏頭為其暫愈飢而充腹,少時毒發而死,亦與飢死同患也。
[三] 【索隱】 유씨는 愈는 暫과 같다고 하나 잘못이다. 烏頭를 먹는 것은 잠시 배고픔을 낫게 하여 배를 채움이 되나 조금 지나 독이 발작하여 죽으니 또한 배고픔과 죽음이 근심을 같이하는 것이다.
[四] 索隱愀音自酋反,又七小反。
[四] 【索隱】 愀의 음은 自와 酋의 反이고, 또한 七과 小의 反이다.
人有毀蘇秦者曰:「左右賣國反覆之臣也,將作亂。」蘇秦恐得罪歸,而燕王不復官也。蘇秦見燕王曰:「臣,東周之鄙人也,無有分寸之功,而王親拜之於廟而禮之於廷。今臣為王卻齊之兵而(攻)得十城,宜以益親。今來而王不官臣者,人必有以不信傷臣於王者。臣之不信,王之福也。臣聞忠信者,所以自為也;進取者,所以為人也。且臣之說齊王,曾非欺之也。
어떤 사람이 소진을 비방하여 말하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 여기저기 나라 팔기를 반복하는 신하로 장차 亂을 일으킬 것이다.” 했다. 소진이 죄를 얻을 것을 두려워하여 돌아왔는데 燕나라 왕이 관직을 회복시키지 않았다. 소진이 燕 나라 왕을 뵙고 말하기를 “신은 동주의 촌구석 사람으로 작은 공도 있지 않음에도 왕께서 친히 사당에서 절하고 조정에서 예로 대우하였습니다. 지금 신이 齊나라의 군대를 물리치고 10성을 얻어 마땅히 더욱 친하여야 합니다. 지금 돌아 왔는데도 왕께서 신을 관직에 회복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반드시 신을 믿지 못하도록 왕에게 훼손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신의 믿을 수 없음은 왕의 복입니다. 신이 듣기로 忠信은 스스로 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취함은 다른 사람을 위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또 신이 齊나라 왕을 유세하면서 일찍이 그들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臣棄老母於東周,固去自為而行進取也。今有孝如曾參,廉如伯夷,信如尾生。得此三人者以事大王,何若?」王曰:「足矣。」蘇秦曰:「孝如曾參,義不離其親一宿於外,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事弱燕之危王哉?廉如伯夷,義不為孤竹君之嗣,不肯為武王臣,不受封侯而餓死首陽山下。有廉如此,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行進取於齊哉?信如尾生,與女子期於梁下,女子不來,水至不去,抱柱而死。有信如此,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卻齊之彊兵哉?臣所謂以忠信得罪於上者也。」
(소진이 말하기를) “신이 동주에 노모를 버려 둔 것은 진실로 스스로 함을 떠나 나아가 취함을 행한 것입니다. 지금 孝로는 증참(증자)와 같고, 청렴하기로는 백이와 같으며, 믿음으로 미생과 같은 이가 있습니다. 이 세 사람으로서 대왕을 섬기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왕이 말하기를 “만족할 것이다.” 했다. 소진이 말하기를 “孝는 증참(증자)와 같지만 의리상 그 부모를 떠나 밖에서 하룻밤을 묵지 못한다면 왕께서는 또한 어떻게 천리를 걸어가게 하여 약한 燕나라의 위태로운 왕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청렴하기로는 백이와 같으나 의리상 고죽군의 후사가 되지 않고, 무왕의 신하되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제후로 봉함을 받지 않고 수양산 아래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청렴함이 이와 같은데 왕께서 또한 어떻게 그로 하여금 천리를 걸어가게 하여 齊나라에서 나아가 취함을 행하게 할 수 있게 하겠습니까? 믿음으로는 미생과 같으나 여자와 더불어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를)약속하고 여자가 오지 않았다하여 물이 이름에도 떠나지 않고 기둥을 껴 앉고서 죽었으니 믿음이 이와 같음이 있습니다. 왕께서 또한 어떻게 천리를 걸어가게 하여 齊나라의 강병을 물리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른바 忠信으로써 윗사람(임금)에게 죄를 얻은 것입니다.” 했다.
燕王曰:「若不忠信耳,豈有以忠信而得罪者乎?」蘇秦曰:「不然。臣聞客有遠為吏而其妻私於人者,其夫將來,其私者憂之,妻曰『勿憂,吾已作藥酒待之矣』。居三日,其夫果至,妻使妾舉藥酒進之。妾欲言酒之有藥,則恐其逐主母也,欲勿言乎,則恐其殺主父也。於是乎詳僵而棄酒。[一]主父大怒,笞之五十。故妾一僵而覆酒,上存主父,下存主母,然而不免於笞,惡在乎忠信之無罪也?夫臣之過,不幸而類是乎!」燕王曰:「先生復就故官。」益厚遇之。
燕나라 왕이 말하기를 “당신이 忠信하지 않을 뿐이니 어찌 忠信 때문에 죄를 얻는 자가 있겠는가?” 하니 소진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들으니 객이 멀리서 관리가 되었는데 그 처가 다른 사람과 사통하였습니다. 그 지아비가 장차 오려하자 그 사통한 남자가 근심하니 처가 말하기를 ‘근심하지 말라. 내가 이미 (독)약주를 만들어 기다리고 있다.’ 했다. 3일이 지나 그 남편이 과연 이르니 본처가 첩을 시켜 약주를 들어 올렸다. 첩이 술에 약이 있음을 말하면 그 처가 쫒겨 날 것을 두렵고, 말하지 않으면 그 남편을 죽이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에 거짓으로 쓰러져 술을 쏟았다. 남편이 크게 성내어 회초리로 50대를 때렸다. 그러므로 첩이 한번 넘어져 술을 엎어서 위로는 남편을 살리고, 아래로는 본처를 살렸으나 회초리로 맞음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어찌 忠信이 죄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대저 신의 허물은 불행하게도 이 같습니다.” 燕나라 왕이 말하기를 “선생을 다시 옛 관직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하고 더욱 두터이 대우하였다.
[一] 索隱詳音羊。詳,詐也。僵,仆也,音薑。
[一] 【索隱】 詳은 음이 羊이다. 詳은 詐(거짓)이다. 僵은 엎어짐이니 음은 薑이다.
易王母,文侯夫人也,與蘇秦私通。燕王知之,而事之加厚。蘇秦恐誅,乃說燕王曰:「臣居燕不能使燕重,而在齊則燕必重。」燕王曰:「唯先生之所為。」於是蘇秦詳為得罪於燕而亡走齊,齊宣王以為客卿。[一]
역광의 모는 무후의 부인인데 소진과 사통하였다. 燕나라 왕이 그것을 알았으되 그를 섬기기를 더욱 두터이 하였다. 소진이 죽음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燕나라 왕을 유세하여 말하기를 “신이 燕나라에 머물면 燕나라를 중요하게 할 수 없고, 齊나라에있으면 곧 燕나라는 반드시 중요해질 것입니다.” 하니 燕나라 왕이 말하기를 “오직 선생이 할 바일 뿐입니다.” 했다. 이에 소진이 거짓으로 燕나라에 죄를 지은 채하고 齊나라로 도망하니 齊나라 선왕이 客卿으로 삼았다.
[一] 集解徐廣曰:「燕易王之十年時。」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燕나라 역왕 10년 때이다.” 했다.
齊宣王卒,湣王即位,說湣王厚葬以明孝,高宮室大苑囿以明得意,欲破敝齊而為燕。燕易王卒,[一]燕噲立為王。其後齊大夫多與蘇秦爭寵者,而使人刺蘇秦,不死,殊而走。[二]齊王使人求賊,不得。蘇秦且死,乃謂齊王曰:「臣即死,車裂臣以徇於市,曰『蘇秦為燕作亂於齊』,如此則臣之賊必得矣。」於是如其言,而殺蘇秦者果自出,齊王因而誅之。燕聞之曰:「甚矣,齊之為蘇生[三]報仇也!」
齊나라 선왕이 죽고 민왕이 즉위하자 민왕을 설득하여 두터이 장례하는 것으로써 효를 밝히고, 궁실을 높이하고 정원을 크게 하여 뜻을 얻음을 밝혀서 齊나라를 깨트리고 피폐하게 하여 燕나라를 위하고자 하였다. 燕나라 역왕이 죽자 燕나라가 쾌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그 후 齊 나라 대부 중에 소진과 총애를 다투는 자가 많아서 사람을 시켜 소진을 찌르게 하였는데 죽지 않았으나 거의 죽게 하고는 달아났다. 齊 나라 왕이 사람을 시켜 적을 찾돌고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소진이 또한 죽으면서 齊나라 왕에게 일러 말하기를 “신은 곧 죽으면 신을 車裂刑으로써 하여 시장을 돌리면서 말하기를 ‘소진이 燕나라를 위하여 齊나라에서 난을 일으켰다.’ 하십시오. 이 같이 하면 곧 신을 해친 자를 반드시 밥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이에 그 말과 같이 하니 소진을 죽인자가 과연 스스로 나왔다. 齊나라 왕이 인하여 죽였다. 燕나라 왕이 말하기를 “심하다. 齊나라의 소진을 위한 원수 갚음이여!” 했다.
[一] 集解徐廣曰:「易王十二年卒。」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역왕은 12년에 죽었다.”
[二] 集解風俗通義稱漢令「蠻夷戎狄有罪當殊」。殊者,死也,與誅同指。而此云「不死,殊而走」者,蘇秦時雖不即死,然是死創,故云「殊」。
[二] 【集解】 『風俗通義』 漢令에 “만이와 융적으로 죄가 있으면 마땅히 죽여야 한다.” 하는데 殊는 죽이는 것으로 誅와 뜻을 같이 한다. 여기서 말하기를 ‘不死,殊而走’는 소진이 그 때 비록 죽지는 않았으나 이는 죽을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殊’라고 말한 것이다.
[三] 集解徐廣曰:「一作『先』。」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先’이라 쓰기도 한다.” 했다.
蘇秦既死,其事大泄。齊後聞之,乃恨怒燕。燕甚恐。蘇秦之弟曰代,代弟蘇厲,見兄遂,亦皆學。及蘇秦死,代乃求見燕王,欲襲故事。曰:「臣,東周之鄙人也。竊聞大王義甚高,鄙人不敏,釋鉏耨而干大王。至於邯鄲,所見者絀於所聞於東周,臣竊負其志。及至燕廷,觀王之群臣下吏,王,天下之明王也。」燕王曰:「子所謂明王者何如也?」對曰:「臣聞明王務聞其過,不欲聞其善,臣請謁王之過。夫齊、趙者,燕之仇讎也;楚、魏者,燕之援國也。今王奉仇讎以伐援國,非所以利燕也。王自慮之,此則計過,無以聞者,非忠臣也。」
소진이 죽은 후 그 일이 크게 누설되었다. 齊나라가 후에 그것을 듣고 燕나라를 원망하고 크게 성내었다. 燕나라가 매우 두려워하였다. 소진의 동생을 代라 하고, 代의 동생은 소려인데 형이 이룸을 보고는 모두 학문하였다. 소진이 죽음에 이르러 代가 燕나라 왕을 뵙고 옛일을 잇고자 하였다. (소대가)말하기를 “신은 동주의 시골 사람입니다. 대왕의 의로움이 매우 높음 듣고 저는 (鄙人, 촌사람, 남자가 스스로를 부르는 겸손한 말) 민첩(뛰어나지)하지 못함에도 호미로 김매는 것을 던져버리고 대왕을 뵙기를 구하였습니다. 한단에 이르러 본 바는 동주에서 들은 바보다 부족하여 신은 가만히 그 뜻을 등졌습니다.(접었습니다.) 燕나라 조정에 이르러 왕의 여러 신하와 관리들을 관찰 해보니 왕은 천하의 밝은(현명한) 왕이었습니다.” 했다. 燕나라 왕이 말하기를 “그대가 말한 明王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명왕은 그 허물을 듣기를 힘쓰고, 그 善을 듣고자 하지 않습니다. 신이 왕의 허물을 알릴 것을 청합니다. 대저 齊, 趙나라는 燕나라의 원수이고, 楚, 魏나라는 燕나라의 후원국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원수를 받드는 것으로써 후원국을 치려하니 燕나라에 이롭지 않습니다. 왕께서 스스로 생각하시면 이것이 곧 계책이 지나친(지나친 것을 알) 것이니 들려주는 자가 없었다면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닙니다.
王曰:「夫齊者固寡人之讎,所欲伐也,直患國敝力不足也。子能以燕伐齊,則寡人舉國委子。」對曰:「凡天下戰國七,燕處弱焉。獨戰則不能,有所附則無不重。南附楚,楚重;西附秦,秦重;中附韓、魏,韓、魏重。且苟所附之國重,此必使王重矣。[一]今夫齊,長主[二]而自用也。南攻楚五年,畜聚竭;西困秦三年,士卒罷敝;北與燕人戰,覆三軍,得二將。[三]然而以其餘兵南面舉五千乘之大宋,[四]而包十二諸侯。此其君欲得,其民力竭,惡足取乎!
왕이 말하기를 “저 齊나라는 진실로 과인의 원수로 치고자 하는 바입니다. 다만 나라가 피폐해지고, 힘이 부족함을 근심할 뿐입니다. 그대가 능히 燕나라가 齊나라를 칠 수 있으면 곧 과인이 나라를 들어 그대에게 맡길 것입니다.” 했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무릇 천하에 戰國이 7개인데 燕나라는 이 가운데 약합니다. 홀로 싸우면 곧 잘할 수 없지만 합하는 바가 있으면 곧 중요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남쪽으로 楚나라를 합하면 곧 楚나라가 중요하고, 서쪽으로 秦를 합하면 秦나라가 중요하며, 가운데로 韓, 魏나라와 합하면 곧 韓, 魏나라가 중요합니다. 또 만약 합하는 바의 나라가 중요하다면 이는 반드시 왕으로 하여금 중요하게 할 것입니다. 지금 저 齊나라는 임금이 스스로 (계책을)쓰기를 오래하였습니다. 남쪽으로 楚나라를 공격한 것이 5년이어서 쌓고 모은 것이 다하였고, 서쪽으로 秦나라에게 3년을 곤궁하여 士卒이 흩어지고 피폐하였고, 북쪽으로는 燕나라 사람과 싸워 三軍을 뒤집고 두 장수를 얻었습니다. 그러하되 그 나머지 군대로써 남쪽을 향하여 수레 5천대의 큰 宋나라를 들고 12제후를 포괄(병합)하였습니다. 이는 그 임금이 얻고자 하면 그 백성들은 힘이 다함이니 어찌 취할 수 있겠습니까?
[一] 正義言附諸國,諸國重燕而燕尊重。
[一] 【正義】 여러 나라에 붙인다는 것은 여러 나라가 燕나라를 중요하게 여기면 燕나라가 존중받음을 말한 것이다.
[二] 索隱按:謂齊王年長也。或作「齊彊,故言長主」。
[二] 【索隱】 살펴보니 齊나라 왕이 나이가 많음을 말한다. 혹은“齊나라가 강하기 때문에 長主라고 말하였다.”고 썼다.
[三] 集解徐廣曰:「齊覆三而燕失二將。」 索隱按:徐廣云「齊覆三軍而燕失二將」。又戰國策云「獲二將」,亦謂燕之二將,是燕之失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齊나라가 3군을 무너뜨렸고, 燕나라는 두 장수를 잃었다.”고 했다. 【索隱】 살펴보니 서광이 이르기를 “齊나라가 3군을 무너뜨리고 燕나라는 두 장수를 잃었다.”고 했다. 또 『戰國策』에 이르기를 “두 장수를 잡았다.”하고 또 燕나라의 두 장수는 燕나라가 잃은 것을 말한다.
[四] 正義齊表云「齊湣王三十八年滅宋」,乃當赧王二十九年。此說乃燕噲之時,當周慎王之時,齊〔滅〕宋在前三十餘年,恐文誤矣。
[四] 【正義】 齊表에 “齊나라 민왕 38년에 宋나라를 멸망시켰다.”했는데 난왕 29년에 해당한다. 이 말은 곧 燕나라 쾌왕의 때이니 周나라 신왕의 떼에 해당하는데 齊나라가 宋나라를 멸망시키기 30년 전이어서 아마도 글이 잘못되었을 것이다.
且臣聞之,數戰則民勞,久師則兵敝矣。」燕王曰:「吾聞齊有清濟、濁河[五]可以為固,長城、鉅防[六]足以為塞,誠有之乎?」對曰:「天時不與,雖有清濟、濁河,惡足以為固!民力罷敝,雖有長城、鉅防,惡足以為塞!且異日濟西不師,[七]所以備趙也;河北不師,[八]所以備燕也。
“또 신이 들으니 여러 번 싸우면 곧 백성들이 수고롭고, 군대를(전쟁을) 오래하면 곧 군대가 피폐해진다고 합니다.” 했다. 燕나라 왕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齊나라에는 맑은 제수와 탁한 황하로 견고하게 함이 있고, 장성과 높은 방벽이 塞가 되기에 충분하다 하니 진실로 있습니까?”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天時(하늘의 뜻)가 주어지지 않으니 비록 맑은 제수와 흐린 황하가 있다 한들 어찌 견고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의 힘이 흩어지고 파폐해 졌으니 비록 장성과 거방이 있다한들 어찌 塞가 될 수 있겠으며, 또한 다른 날에 齊나라가 서쪽에서 군대를 동원하지 않은 것은 趙나라를 대비하기 때문이고, 하북에서 군대를 동원하지 않은 것은 燕나라를 대비하기 때문입니다.
[五] 正義濟、漯二水上承黃河,並淄、青之北流入海。黃河又一源從洛、魏二州界北流入海,亦齊西北界。
[五] 【正義】 제와 탑 두 물이 위에서 황하로 이어지고, 치, 청의 북쪽 흐름을 아울러(합하여) 바다에 들어간다. 황하가 또한 한 근원이 洛과 魏 두 주의 경계를 따라 북쪽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 또 齊나라의 서북쪽 경계이다.
[六] 集解徐廣曰:「濟北盧縣有防門,又有長城東至海。正義長城西頭在濟州平陰縣界。竹書紀年云:「梁惠王二十年,齊閔王築防以為長城。」太山記云:「太山西有長城,緣河經太山,餘一千里,至琅邪臺入海。」
[六]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濟水 북쪽 노현에 防門이 있고, 또 장성이 있어 동쪽으로 바다에 이른다.” 했다. 【正義】 장성 서쪽 머리는 제주 평음현 경계에 있다. 『竹書紀年』에 “梁나라 혜왕 20년 齊나라 민왕이 防(방:둑)을 장성으로 하였다.” 『太山記』에 “태산 서족에 장성이 있고, 연하가 태산을 지나는데 천리가 넘으며, 낭야대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 했다.
[七] 正義濟州已西也。
[七] 【正義】 濟州 西쪽이다.
[八] 正義謂滄、博等州,在漯河之北。
[八] 【正義】 창, 박 등의 주를 말하는데 탑하의 북쪽에 있다.
今濟西河北盡已役矣,封內敝矣。夫驕君必好利,而亡國之臣必貪於財。王誠能無羞從子母弟[九]以為質,[一0]寶珠玉帛以事左右,彼將有德燕而輕亡宋,則齊可亡已。」燕王曰:「吾終以子受命於天矣。」燕乃使一子質於齊。而蘇厲因燕質子而求見齊王。齊王怨蘇秦,欲囚蘇厲。燕質子為謝,已遂委質為齊臣。[一一]
濟水의 서쪽과 황하의 북쪽이 이미 役에 동원되어 경계 안이 피폐해 졌습니다. 교만한 임금은 반드시 이익을 좋아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신하는 반드시 재물을 탐합니다. 왕께서 진실로 조카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생을 (제나라에)인질로 삼아 보배와 구슬, 비단으로써 (제나라 왕의) 좌우(측근)를 섬기게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저들은 장차 燕나라를 은혜롭게 여기고 宋나라를 경시하여 망하게 함이 있을 것이니 곧 齊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燕나라 왕이 말하기를 “내가 마침내 그대 때문에 하늘에서 命을 받았다.”하고는 燕나라가 이에 한 아들로 하여금 齊나라에 보내 인질로 삼게 하였는데 蘇厲가 燕나라의 인질을 핑계로 齊나라 왕을 뵙기를 구하였다. 齊나라 왕이 소진을 원망하여 소려를 가두고자 하니 燕나라에서 인질로 온 이가 사과하고 자기가 마침내 몸을 바쳐 齊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九] 索隱戰國策「從」作「寵」。
[九] 【索隱】 『戰國策』에 ‘從’은 ‘寵’이라 썼다.
[一0] 正義音致。
[一0] 【正義】 은음 致이다.
[一一] 正義質,真栗反。
[一一] 【正義】 質은 眞과 栗의 反이다.
燕相子之與蘇代婚,而欲得燕權,乃使蘇代侍質子於齊。齊使代報燕,燕王噲問曰:「齊王其霸乎?」曰:「不能。」曰:「何也?」曰:「不信其臣。」於是燕王專任子之,已而讓位,燕大亂。齊伐燕,殺王噲、子之。[一]燕立昭王,而蘇代、蘇厲遂不敢入燕,皆終歸齊,齊善待之。
燕나라 재상 자지가 소대와 혼인하여 燕나라의 권세를 얻고자 하여 소대로 하여금 齊나라에서 인질을 모시게 하였다. 齊나라의 사신이 대신하여 燕나라에 알리니 燕나라 왕 묻기를 “齊나라 왕은 覇자가 되겠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하지 못합니다.” 했다. “왜입니까?” 말하기를 “그 신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했다. 이에 燕나라 왕이 오로지 자지에게 맡겼다가 이윽고 왕위를 양보하니 燕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齊나라가 燕나라를 쳐서 왕 쾌와 자지를 죽였다. 燕나라가 소왕을 즉위시키니 소대와 소려가 마침내 감히 燕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마침내 齊나라로 돌아가니 齊나라가 잘 대우하였다.
[一] 集解徐廣曰:「是周赧王之元年時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이는 周나라 난왕 원년 때이다.
蘇代過魏,魏為燕執代。齊使人謂魏王曰:「齊請以宋地封涇陽君,[一]秦必不受。秦非不利有齊而得宋地也,[二]不信齊王與蘇子也。今齊魏不和如此其甚,則齊不欺秦。秦信齊,齊秦合,涇陽君有宋地,非魏之利也。故王不如東蘇子,秦必疑齊而不信蘇子矣。齊秦不合,天下無變,伐齊之形成矣。」於是出蘇代。代之宋,宋善待之。
소대가 魏나라를 지날 때 魏나라가 燕나라를 위해 대를 붙잡았다. 齊나라가 사람을 시켜 魏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齊나라가 宋나라 땅으로써 경양군에 봉하기를 청하면 秦나라는 반드시 받지 않을 것입니다. 秦나라는 齊나라가 소유한 宋나라 땅을 얻은 것이 이롭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齊나라 왕과 소자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齊나라와 魏나라가 화합하지 못함이 이같이 심하면 곧 齊나라는 秦나라를 속이지 못할 것입니다. 秦나라가 齊나라를 믿고, 齊나라와 秦나라가 합하고, 경양군이 宋나라 땅을 소유하는 것은 魏나라의 이로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소자를 동쪽으로 보내는 것만 못합니다. (그리하면) 秦나라는 반드시 齊나라를 의심하여 소자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齊나라와 秦나라가 합하지 않으면 천하는 변함없이 齊나라를 공격함의 모양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했다. 이에 소대를 내보냈다. 대가 宋나라에 가니 宋나라가 그를 잘 대우하였다.
[一] 正義涇陽君,秦王弟,名悝也。涇陽,雍州縣也。齊蘇子告秦共伐宋以封涇陽君,然齊假設此策以救蘇代。
[一] 【正義】 경양군은 秦나라 왕의 동생이니 이름이 회이다. 경양은 옹주현이다. 齊나라의 소자가 秦나라에 함께 宋나라를 쳐서 경양군을 봉하자고 말하였으나 齊나라가 이 계책을 빌리는 것으로써 소대를 구한 것이다.
[二] 正義齊言秦相親共伐宋,秦得宋地,又得齊事秦,不信齊及蘇代,恐為不成也。
[二] 【正義】 齊나라가 秦나라와 서로 직접 함께 宋나라를 치면 秦나라가 宋나라 땅을 얻고, 또한 齊나라가 秦을 섬길 수 있고, 齊나라와 소자를 믿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음을 두려워하였다는 말이다.
齊伐宋,宋急,蘇代乃遺燕昭王書曰:[一]
齊나라가 宋나라를 치니 宋나라가 위급하니 소대가 이에 燕나라 소왕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一] 正義此書為宋說燕,令莫助齊、梁。
[一] 【正義】 이 글은 宋나라를 위하여 燕나라를 설득하여 齊나라와 梁나라를 돕지 않도록 한 것이다.
夫列在萬乘而寄質於齊,[一]名卑而權輕;奉萬乘助齊伐宋,民勞而實費;夫破宋,殘楚淮北,肥大齊,讎彊而國害:此三者皆國之大敗也。然且王行之者,將以取信於齊也。齊加不信於王,而忌燕愈甚,是王之計過矣。夫以宋加之淮北,強萬乘之國也,而齊并之,是益一齊也。[二]北夷方七百里,[三]加之以魯、衛,彊萬乘之國也,而齊并之,是益二齊也。夫一齊之彊,燕猶狼顧而不能支,今以三齊臨燕,其禍必大矣。
대저 제후의 반별에 있으면서도 齊나라에 인질을 보내 명예는 낮아지고, 권세는 가벼워졌으며, 만 대의 수레를 받들고 齊나라를 도와 宋나라를 치니 백성은 수고롭고, 실질(물자)을 허비합니다. 대저 宋나라를 깨트리고 楚나라의 회수 이북지역을 해치면 큰 齊나라를 살찌게 하여 원수는 강해지고 나라는 해를 입습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나라의 큰 재앙입니다. 그러나 또한 왕께서 그것을 행하는 것은 장차 齊나라의 신임을 취하려는 것입니다. 齊나라가 왕을 믿지 않음을 더하고 燕나라를 꺼림이 더욱 심하니 이는 왕의 계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저 宋나라가 회수 북쪽을 더하면 굳센 만승의 나라(큰 제후국)가 될 것이고, 齊나라가 그것을 병합하면 이는 하나의 齊나라를 더하는 것입니다. 北夷는 4방 700리인데 (여기에)魯, 衛나라를 더하면 굳센 만승의 나라가 되고, 齊나라가 병합하면 이는 두 개의 齊나라를 더하는 것입니다. 대저 한 개 齊나라의 굳셈으로도 燕나라가 이리가 돌아보듯 두려워하고 잘 지탱하지 못하는 데 지금 세 개의 齊나라가 燕나라를 대하면 그 화가 반드시 클 것입니다.
[一] 正義燕前有一子質於齊。
[一] 【正義】 燕나라가 앞서 한 아들을 齊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二] 正義更以淮北之地加於齊都,是強萬乘之國而齊總并之,是益一齊。
[二] 【正義】 문득 회수 이북의 땅을 齊나라 도읍에 더하는 것은 굳센 萬乘(수레 10,000대를 낼 수 있는 규모의 제후국)의 나라가 되고, 齊나라가 모아 병합하는 것은 이는 하나의 齊나라를 더하는 것이다.
[三] 索隱謂山戎、北狄附齊者。正義齊桓公伐山戎、令支,斬孤竹而南歸海濱,諸侯莫不來服。
[三] 【索隱】 山戎과 北狄을 齊나라에 붙임을 말한다. 【正義】 齊나라 환공이 산융과 영지를 치고, 고죽을 죽이고 남쪽 바닷가로 돌아오니 제후들 중에 와서 복정하지 않음이 없었다.
雖然,智者舉事,因禍為福,轉敗為功。齊紫,敗素也[一],而賈十倍;[二]越王句踐棲於會稽,復殘彊吳而霸天下:此皆因禍為福,轉敗為功者也。
비록 그러하나 지혜로운 자는 일을 거행함에 화를 인하여 복을 얻고, 실패를 돌려 공으로 삼습니다. 齊나라의 자주색 천은 거칠고 흰 비단을 물들인 것으로 (물들이기 전보다)값이 10배가 된다. 越나라 왕 구천이 회계에서 살았는데 다시 굳센 吳나라를 해치고(멸망시키고) 천하의 霸者(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禍로 인하여 복으로 삼고 구르고 무너짐을 공으로 삼은 것입니다.
[一] 集解徐廣曰:「取敗素染以為紫。」 正義齊君好紫,故齊俗尚之。取惡素帛染為紫,其價十倍貴於餘。喻齊雖有大名,而國中以困弊也。韓子云:「齊桓公好服紫,一國盡服紫,當時十素不得一紫,公患之。管仲曰:『君欲止之,何不試勿衣也?』公謂左右曰:『惡紫扼。』公語三日,境內莫有衣紫者。」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敗素(거칠고 흰 비단)를 취하여 물들여서 자색으로 하는 것이다.” 했다. 【正義】 齊나라 임금이 자색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齊나라 풍속이 그것을 숭상하였다. 거칠고 흰 비단을 취하여 자색으로 물들이면 그 값이 다른 것보다 10배로 귀해진다. 齊나라가 비록 크다는 이름이 있으나 나라 안은 곤궁하고 피폐함을 비유한 것이다. 한자가 말하기를 “齊나라 환공이 자색의 옷을 좋아하니 나라 전체가 자색을 입어서 당시에 10개의 흰 비단으로 하나의 자색 비단을 얻지 못하였다. 환공이 그것을 근심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임금이 그만두게 하고자 한다면 어찌 시험 옷을 입지 않음을 시험하지 않습니까?(옷을 입지 않으면 됩니다.)’ 했다. 환공이 측근에게 말하기를 ‘자색의 옷을 입는 것을 싫어한다.’ 했다. 환공이 말을 한지 3일 만에 나라안에서 자색의 옷을 입는 이가 있지 않았다.” 했다.
[二] 索隱按:謂紫色價貴於帛十倍,而本是敗素。以喻齊雖有大名,而其國中困斃也。
[二] 【索隱】 살펴보니 자색(비단)의 값이 흰 비단 10배보다 귀하였으나 본래 이것은 거칠고 흰 비단이었으니 齊나라가 비록 크다는 이름이 있었으되 그 나라 안은 곤궁하고 피폐함을 비유한 것이다.
今王若欲因禍為福,轉敗為功,則莫若挑霸齊而尊之,[一]使使盟於周室,焚秦符,曰[二]「其大上計,破秦;其次,必長賓之」。[三]秦挾賓以待破,秦王必患之。秦五世伐諸侯,今為齊下,秦王之志苟得窮齊,不憚以國為功。然則王何不使辯士以此言說秦王曰:「燕、趙破宋肥齊,尊之為之下者,燕、趙非利之也。燕、趙不利而勢為之者,以不信秦王也。然則王何不使可信者接收燕、趙,令涇陽君、高陵君[四]先於燕、趙?秦有變,因以為質,則燕、趙信秦。秦為西帝,燕為北帝,趙為中帝,立三帝以令於天下。韓、魏不聽則秦伐之,齊不聽則燕、趙伐之,天下孰敢不聽?天下服聽,因驅韓、魏以伐齊,曰『必反宋地,歸楚淮北』。反宋地,歸楚淮北,燕、趙之所利也;並立三帝,燕、趙之所願也。夫實得所利,尊得所願,燕、趙棄齊如脫躧矣。今不收燕、趙,齊霸必成。諸侯贊齊而王不從,是國伐也;諸侯贊齊而王從之,是名卑也。今收燕、趙,國安而名尊;不收燕、趙,國危而名卑。夫去尊安而取危卑,智者不為也。」秦王聞若說,必若刺心然。則王何不使辯士以此若言說秦?秦必取,齊必伐矣。
지금 왕께서 만약 禍를 인하여 복을 얻고, 실패를 돌려 공으로 삼고자 한다면 곧 齊나라를 북돋우어 으뜸으로 하여 높이고, 사신으로 하여금 周나라에 맹서하게 하며, 秦나라의 符信을 불사르고 (周나라에) 말하기를 “그 크고 최고의 계책은 秦나라를 깨트리고 그 다음으로는 반드시 오래 (秦나라를)물리치는 것입니다.”하십시오. 秦나라를 끼고 물리치는 것으로써 깨트리기를 기다리면 秦나라 왕이 반드시 그것을 근심할 것입니다. 秦나라가 5세에 걸쳐 제후를 쳤으되 지금 齊나라의 아래가 되었습니다. 秦나라 왕의 뜻이 만약 齊나라를 곤궁하게 할 수 있다면 나라로써 공을 삼음을 꺼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즉 왕께서는 어찌하여 말 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말로써 秦나라 왕을 설득하는 말을 않습니까? “燕, 趙나라가 宋나라를 깨트리고 齊나라를 살찌우고 그들을 높이고 아래가 되는 것은 燕, 趙나라가 그것을 이롭게 여기기 때문이 아닙니다. 燕, 趙나라가 이롭지 않음에도 형세로 그것을 하는 것은 秦나라 왕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데도 왕께서는 어찌하여 믿을 만한 자로 하여금 燕, 趙나라를 받아들이게 하지 않으며, 경양군, 고릉군을 燕, 趙나라에 우선 보내(먼저 보내) 秦나라가 변동이 있을 때 인질로 삼게 하면 곧 燕, 趙나라가 秦나라를 믿을 것입니다. 秦나라를 서쪽 임금으로 삼고, 燕나라를 북쪽 임금으로 삼으며, 趙나라를 중앙의 임금으로 삼아 세 임금을 세우는 것으로써 천하에 호령합니다. 韓, 魏나라가 따르지 않으면 곧 秦나라가 치고, 齊나라가 따르지 않으면 곧 燕, 趙나라가 치면 천하에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천하가 복종하고 따르면 韓, 魏나라를 몰아서 齊나라를 치게 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宋나라 땅을 돌리고, 楚나라 회수 북쪽을 돌려 달라” 합니다. 宋나라의 땅을 돌리고, 楚나라의 회수 북쪽을 돌려보내는 것은 燕, 趙나라에 이로운 것이며, 아울러 세 임금을 세우는 것은 趙나라가 바라던 것입니다. 대저 실제는 이로운 것을 얻고, 높임으로는 원하던 것을 얻으니 燕나라와 趙나라가 齊나라를 버리는 것은 마치 신발을 벗는(헌 신짝을 버리는)것과 같을 것입니다. 지금 (秦나라가)燕나라와 趙나라를 거두지 않으면, 齊나라가 패업을 이룸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제후가 齊나라를 돕고 (秦나라)왕이 따르지 않으면 이는 나라가 다른 사람(제후)에게 정벌 당하게 될 것이며, 제후가 齊나라를 돕고 (秦나라)왕이 그것을 따르면 이는 명분이 비천한 것입니다. 지금 燕, 趙나라를 거두면 나라는 편안하고, 명예는 높아질 것이나, 燕, 趙나를 거두지 않으면 나라는 위태롭고, 명예는 비천해질 것입니다. 대저 높음과 편안함을 떠나고 위태로움과 비천함을 취하는 것을 지혜로운 자는 하지 않습니다. 秦나라 왕이 만약 이 유세를 들으면 반드시 마음에 찔리는 듯 함이 있을 것이니 곧 왕께서는 어찌하여 말잘 하는 선비로 하여금 이 같은 말로써 秦나라를 설득하지 않습니까? 秦나라는 반드시 취할 것이고, 齊나라는 반드시 정벌 당할 것입니다.
[一] 正義挑,田鳥反,執持也。
[一] 【正義】 挑는 田과 鳥의 反이니 잡아 지님이다.
[二] 正義符,徵兆也。
[二] 【正義】 符는 징조이다.
[三] 索隱長音如字。賓為「擯」。正義大好上計策,破秦;次計,長擯棄關西。
[三] 【索隱】 長의 음은 본래의 글자와 같다. 賓은 ‘擯’이 된다. 【正義】 크게 좋은 상책은 秦나라를 깨트리는 것이고, 다음 계책은 오래도록 물리쳐서 關西를 버리는 것이다.
[四] 集解徐廣曰馮翊高陵縣。索隱二人,秦王母弟也。高陵君名顯。涇陽君名悝。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馮翊은 고릉현이다. 【索隱】 두 사람은 秦나라 왕과 같은 어머니가 낳은 동생이다.
夫取秦,厚交也;伐齊,正利也。尊厚交,務正利,聖王之事也。燕昭王善其書,曰:「先人嘗有德蘇氏,子之之亂而蘇氏去燕。燕欲報仇於齊,非蘇氏莫可。」乃召蘇代,復善待之,與謀伐齊。竟破齊,湣王出走。久之,秦召燕王,燕王欲往,蘇代約燕王曰:「楚得枳[一]而國亡,[二]齊得宋而國亡,[三]齊、楚不得以有枳、宋而事秦者,何也?則有功者,秦之深讎也。秦取天下,非行義也,暴也。秦之行暴,正告天下。[四]
대저 秦나라를 취하는 것은 사귐을 두터이 하는 것이고, 齊나라를 치는 것은 이로움을 바로 하는 것이다. 두터이 사귐을 높이고, 바른 이로움을 힘쓰는 것은 성스러운 왕의 일이다. 燕나라 소왕이 그 글을 좋게 여겨 말하기를 “先人이 일찍이 소씨에게 덕을 베풀었는데 子之의 난으로 소씨가 燕나라를 떠났다. 燕나라가 齊나라에 원수를 갚고자 하되 소씨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하고는 소대를 불러 다시 그를 잘 대우하고, 함께 齊나라를 칠 것을 꾀하였다. 마침내 齊나라를 깨트리니 민왕이 나와 달아났다. 얼마 후 秦나라가 燕나라 왕을 부르므로 燕나라가 가고자 하니 소대가 燕나라 왕을 만류하여 말하기를 “楚나라는 枳를 얻고 나라가 망하였고, 齊나라는 宋을 얻고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齊, 楚나라가 枳와 宋나라를 소유할 수 있었지만 秦나라를 섬긴 것은 왜입니까? 곧 공이 있는 자는 秦나라의 깊은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秦나라가 천하를 취하는 것은 義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나움입니다. 秦나라가 사나움을 행할 때는 바로 천하에 알려야 합니다.”
[一] 集解徐廣曰:「巴郡有枳縣。」 正義枳,支是反,今涪州城。在秦,枳縣在江南。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파군에 지현이 있다.” 했다. 【正義】 枳는 支와 是의 反이니 지금의 부주성이니 秦나라에 있었다. 지현은 강남에 있다.
[二] 集解徐廣曰:「燕昭王三十三年,秦拔楚鄢、西陵。」 正義按:西陵在黃州。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燕나라 소왕 33년에 秦나라가 楚나라의 鄢과 서릉을 함락시켰다. 【正義】 서릉은 황주에 있다.
[三] 正義年表云齊湣王三十八年,滅宋。四十年,五國共擊湣王,王走莒。
[三] 【正義】 연표에 이르기를 “齊나라 민왕 38년에 宋나라를 멸망시켰다. 40년에 다섯 나라가 민왕을 치니 왕이 莒로 달아났다.
[四] 索隱正告謂顯然而告天下也。
[四] 【索隱】 正告는 드러내어 천하에 알림을 말한다.
「告楚曰:『蜀地之甲,乘船浮於汶,[一]乘夏水[二]而下江,五日而至郢。漢中之甲,乘船出於巴,[三]乘夏水而下漢,四日而至五渚。[四]寡人積甲宛東下隨,[五]智者不及謀,勇土不及怒,寡人如射隼矣。[六]王乃欲待天下之攻函谷,不亦遠乎!』楚王為是故,十七年事秦。
楚나라에 알려 말하기를 “蜀땅의 갑병(군대)가 배를 타고 문수에 띄우고, 하수를 타고 강을 내려가 5일에 郢에 이른다. 한중의 갑병(군대)은 배를 타고 巴에서 나와 하수를 타고 한수를 내려가 4일에 오저에 이른다. 과인이 갑병(군대)싣고 宛의 동쪽으로 따라 내려가면 지혜로운 자도 도모하지 못하고, 용감한 선비가 노함에 이르지 못할 것이니 과인이 새매를 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왕이 이에 천하(의 제후가)가 함곡관을 공격하는 것을 기다리고자하는 것이 또한 멀지 않겠는가.” 했다. 楚나라 왕이 이 때문에 17년간 秦나라를 섬겼다.
[一] 集解眉貧反。索隱音旻。即江所出之岷山也。
[一] 【集解】 眉와 貪의 反이다. 【索隱】 음은 旻(민)이니 곧 강이 나오는 바의 민산이다.
[二] 索隱夏音暇。謂夏潦之水盛長時也。
[二] 【索隱】 夏의 음은 暇(가)이다. 하수와 요수의 물이 성대하게 불어나는 때이다.
[三] 索隱巴,水名,與漢水近。正義巴嶺山在梁州南一百九十里。周地志云:「南渡老子水,登巴嶺山。南回(記)大江。此南是古巴國,因以名山。」
[三] 【索隱】 巴는 물 이름이니 한수와 가깝다. 【正義】 파령산은 양주 남쪽 190리에 있다. 周 『地志』에 “남쪽으로 노자수를 건너 파령산에 오른다.” 했다. 남회는 대강이다. 여기의 남은 옛날의 巴國이기 때문에 산 이름으로 하였다.
[四] 集解戰國策曰「秦與荊人戰,大破荊,襲郢,取洞庭、五渚」。然則五渚在洞庭。索隱按:五渚,五處洲渚也,劉氏以為宛鄧之閒,臨漢水,不得在洞庭。或說五渚即五湖,益與劉說不同也。
[四] 【集解】 『戰國策』에 “秦나라와 荊나라가 싸워서 크게 荊나라를 깨트리고 郢을 습격하여 동정과 오저를 취하였다.”했다. 그러한 즉 오저는 동정에 있다. 【索隱】 살펴보니 오저는 다섯 군데의 모래톱이다. 유씨는 완과 등의 사이로 한수에 임한다 여겨서 동정에 있음을 얻지(알지) 못하였다. 어떤 말에는 오저는 곧 오호라 하니 더욱 유씨의 설과는 같지 않다.
[五] 索隱宛縣之東而下隨邑。
[五] 【索隱】 완현의 동쪽으로 가서 아래가 수읍이다.
[六] 索隱按:易曰「射隼于高墉之上,獲之,無不利」。秦王言我今伐楚,必當捷獲也。正義隼若今之鶻。
[六] 【索隱】 살펴보니 『周易』에 “높은 담장의 위에서 새매를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했다. 秦나라왕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楚나라를 치면 반드시 마땅히 승리할 것이다.” 한 것이다. 【正義】 隼은 지금의 鶻(송골매 골)과 같은 것이다.
「秦正告韓曰:『我起乎少曲,[一]一日而斷大行。[二]我起乎宜陽而觸平陽,[三]二日而莫不盡繇。[四]我離兩周而觸鄭,五日而國舉。』[五]韓氏以為然,故事秦。
秦正이 韓나라에 알려 말하기를 “내가 소곡에서 일어나면 하루에 태행을 끊고, 내가 선양에서 일으키면 평양에 닿아 이틀 만에 따르지 않음이 없다. 내가 두 周를 떠나 鄭나라에 닿으면 5일에 나라를 들 수 있다.” 하니 한씨가 그렇다 여겨 秦나라를 섬겼다.
[一] 索隱地名,近宜陽也。正義在懷州河陽縣西北,解在范睢傳。
[一] 【索隱】 지명이니 의양에 가깝다. 【正義】 회주 하양현 서북쪽에 있는데 풀이가 범휴전에 있다.
[二] 正義太行山羊腸阪道,北過韓上黨也。
[二] 【正義】 태행산 양장판도이니 북쪽으로 韓나라 상당을 지난다.
[三] 正義宜陽、平陽皆韓大都也,隔河也。
[三] 【正義】 의양, 평양은 모두 韓나라의 큰 도회이니 황하를 사이한다.
[四] 索隱音搖。搖,動也。
[四] 【索隱】 음은 搖(요)이다. 搖는 흔들리는 것이다.
[五] 索隱離,如字。謂屯兵以罹二周也,而乃觸擊于鄭,故五日國舉。舉猶拔也。正義離,歷也。歷二周而東觸新鄭州,韓國都拔矣。
[五] 【索隱】 離는 본래의 음이다. 군대를 주둔하는 것으로써 두 주나라를 걸리게 하여 정나라를 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5일에 나라를 함락시킬 수 있다고 한 것이다. 擧는 拔(공략하다.)과 같다. 【正義】 離는 차례로 지남이다. 두 주나라를 지나 동쪽으로 신주와 정주를 부딪혀 韓나라의 국도를 공략한다.
「秦正告魏曰:『我舉安邑,塞女戟,[一]韓氏太原卷。[二]我下軹道南陽,封冀,[三]包兩周。[四]乘夏水,浮輕舟,彊弩在前,錟[五]戈在後,決滎口,魏無大梁;[六]決白馬之口,魏無外黃、濟陽;[七]決宿胥之口,[八]魏無虛、頓丘。[九]陸攻則擊河內,水攻則滅大梁。』魏氏以為然,故事秦。
秦나라가 바로 魏나라에 말하기를 “내가 안읍을 들고 여극을 막으면 한씨(韓나라)의 태원이 단절된다.(고립된다.) 우리 하지도와 남양이 冀를 막으면 兩州가 포위된다. 하수(여름철의 불어난 물)를 타고 가벼운 배를 띄워 강한 쇠뇌를 앞에 두고, 창은 뒤에 두며 형수의 입구를 트면 위나라의 대량은 없어질 것이며, 백마의 입구를 트면 위나라는 외황, 제양이 없어질 것이며, 숙서의 입구를 트면 위나라는 허와 돈구가 없어질 것이다. 육지에서 공격하면 곧 하내를 치고 물에서 공격하면 대량을 멸할 것이다.” 하니 위씨(魏나라)가 그렇다 여겨서 秦나라를 섬겼다.
[一] 索隱女戟,地名,蓋在太行山之西。
[一] 【索隱】 여극은 지명이니 태항산의 서쪽에 있다.
[二] 索隱劉氏卷音軌免反也。按:舉安邑,塞女戟,及至韓氏之韓國宜陽也。太原者,魏地不至太原,亦無別名太原者,蓋「太」衍字也。原當為「京」。京及卷皆屬滎陽,是魏境。又下軹道是河內軹縣,言「道」者,亦衍字。徐廣云「霸陵有軹道亭」,非魏之境,其疏謬如此。 正義卷,軌免反。劉伯莊云:「太原當為太行。卷猶斷絕。」
[二] 【索隱】 유씨는 “卷의 음은 軌와 免의 反이다.” 했다. 살펴보니 안읍을 들고(함락시키고) 여극을 막으면 한씨의 韓나라 의양에 이른다. 태원은 魏나라 땅인 태원에 이르지 않으니 또한 따로 태원을 이름한 것이 없으므로 아마도 ‘太’ 는 덧붙인 글자일 것이다. ‘原’은 마땅히 ‘京’이 되어야 하고 京과 卷은 모두 형양에 속하는데 이는 魏나라의 경계이다. 또한 하지도는 하내의 지현이니 道를 말한 것은 또한 덧붙인 글자이다. 또한 서광이 말하기를 “패릉에 지도정이 있다.” 하였으나 魏나라의 경계가 아니니 그 간략하고 잘못된 것이 이와 같다. 【正義】 卷은 軌와 免의 反이다. 유백장이 말하기를 “태원은 마땅히 태행(항)이 되어야 한다. 卷은 斷絶이란 말과 같다.” 했다.
[三] 集解徐廣曰:「霸陵有軹道亭,河東皮氏有冀亭也。」 索隱按:魏之南陽即河內也。封,封陵也。冀,冀邑。皆在魏境,故徐廣云「河東皮氏縣有冀亭」。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패릉에 지도정이 있으니 하동 피씨에 기정이 있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魏나라의 남양은 곧 하내이다. 封은 봉릉이다. 冀는 기읍이다. 모두 魏나라 경계에 있다. 그러므로 서광이 이르기를 “하동 피시현에 기정이 있다.” 한 것이다.
[四] 集解徐廣曰:「張儀曰『下河東,取成皋』也。」 正義兩周,王城及鞏。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장의가 말하기를 ‘하동을 내려가 성고를 취한다.’ 하였다.” 했다. 【正義】 두 周나라는 왕성이 공에 미친다.
[五] 集解徐廣曰:「由冉反。」 正義劉伯莊云:「音四廉反,利也。」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由와 冉의 反이다.” 했다. 【正義】 유백장이 이르기를 “음은 四와 廉의 反으로 利이다.” 했다.
[六] 索隱滎澤之口與今汴河口通,其水深,可以灌大梁,故云「無大梁」也。
[六] 【索隱】 형택의 입구는 지금 변하의 입구와 통하는데 그물이 깊어서 대량에 물댈 수 있다. 그러므로 “대량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七] 索隱白馬河津在東郡,決其流以灌外黃及濟陽。正義故黃城在曹州考城縣東二十四里。濟陽故城在曹州冤朐縣西南三十五里。
[七] 【索隱】 백마하 진은 동군에 있으니 그 흐름을 터서 외황과 제양에 관개(물을 댄다.)한다. 【正義】 옛 황성은 조주 고성현 동쪽 24리에 있다. 제양 옛성은 조주 원구현 서남쪽 35리에 있다.
[八] 集解徐廣曰:「紀年云魏救山塞集胥口。」 索隱按:紀年作「胥」,蓋亦津之名,今其地不知所在也。正義淇水出衛州淇縣界之淇口,東至黎陽入河。魏志云:「武帝於清淇口東 因宿胥故瀆開白溝,道清淇二水入焉。」
[八]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紀年』에 ‘魏나라가 산색을 구하려 서구에 모였다.’한다고” 했다.” 【索隱】 살펴보니 『紀年』에 ‘胥’라 썼으니 아마도 또한 나루의 이름일 것이다. 지금 그 땅이 (어디에)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正義】 기수는 위주 기현 경계의 기구에서 나와 동쪽으로 여양에 이르러 황하에 들어간다. 『魏志』에 ‘무제는 청수와 기수가 입구에서 동쪽으로 흐르게 하고 宿胥의 옛 도랑으로 인하여 白溝를 열고 청수와 기수 두 물을 인도하여 여기로 들어가게 하였다.’ 했다.
[九] 集解徐廣曰:「秦始皇五年,取魏酸棗,燕虛、長平。」 索隱虛,邑名,地與酸棗相近。正義虛謂殷墟,今相州所理是。頓丘故城在魏州頓兵縣東北二十里。括地志云:「二國地時屬魏。」
[九]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진나라 시황제5년 魏나라 酸棗, 燕許, 長平을 취하였다.” 했다. 【索隱】 虛는 읍의 이름이니 땅이 산조와 서로 가깝다. 【正義】 虛는 殷墟를 말하니 지금의 상주 所理(治所)가 이것이다. 頓丘 옛 성은 위주 돈구현 동북쪽 20리에 있다. 『括地志』에 말하기를 “두 나라의 당은 이 때 魏나라에 속하였다.” 했다.
「秦欲攻安邑,恐齊救之,則以宋委於齊。曰:『宋王無道,為木人以(寫)[象]寡人,射其面。寡人地絕兵遠,不能攻也。王苟能破宋有之,寡人如自得之。』已得安邑,塞女戟,因以破宋為齊罪。[一]
秦나라가 安邑을 공격하고자 하나 齊나라가 구원하면 곧 宋나라로서 齊나라에 맡길 것을 두려워하였다. 말하기를 “宋나라 왕이 도가 없어 木人(허수아비)을 만들어 과인을 형상하여 그 얼굴을 쏘았다. 과인은 땅이 끊어지고 군대가 멀어 공격할 수 없다. 왕이 만약 宋나라를 깨트리고 소유할 수 있다면 과인은 스스로 얻은 듯이 할 것이다.” 했다. 이미 안읍을 얻고, 여극을 막고는 宋나라를 깨트리는 것을 齊나라의 죄라 하였다.
[一] 索隱秦令齊滅宋,仍以破宋為齊之罪名。
[一] 【索隱】 秦나라가 齊나라로 하여금 宋나라를 멸하게 하고는 宋나라를 깨트림 것으로써 齊나라의 죄명으로 한 것이다.
「秦欲攻韓,恐天下救之,則以齊委於天下。曰:『齊王四與寡人約,四欺寡人,必率天下以攻寡人者三。有齊無秦,有秦無齊,必伐之,必亡之。』已得宜陽、少曲,致藺、〔離〕石,因以破齊為天下罪。「秦欲攻魏重楚,[一]則以南陽委於楚。曰:[二]『寡人固與韓且絕矣。殘均陵,塞鄳阨,[三]苟利於楚,寡人如自有之。』魏棄與國而合於秦,因以塞鄳阨為楚罪。
秦나라가 韓나라를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천하가 구원할 것을 두려워하여 곧 齊나라를 천하(제후)에 맡기고 말하기를 “齊나라 왕이 네 번 과인과 약속하고도 네 번 과인을 속였고, 반드시 천하를 거느리고 과인을 공격한 것이 세 번이었다. 齊나락 있으면 秦나라가 없고, 秦나라가 있으면 齊나라가 없을 것이니 (齊나라를)반드시 정벌하여 반드시 망하게 해야 한다.” 했다. 이미 의양, 소곡, 치린, 이와 석을 얻고는 제나라를 깨트린 것을 천하 제후의 죄라 했다. 秦나라가 魏나라를 공격하려 하면 楚나라를 꺼려하여 남양을 楚나라에 맡겼다. 말하기를 “과인은 진실로 韓나라와 또한 끊을 것이다. (楚나라가 韓나라의) 균릉을 장악하고 맹의 험한 곳을 막아 진실로 楚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과인은 스스로 소유한 듯이 할 것입니다.” 했다. 魏나라가 與國 을 버리고 秦나라에 합하였다. 맹의 험한 곳을 막은 것을 楚나라의 죄라 하였다.
[一] 索隱重猶附也,尊也。正義畏楚救魏。
[一] 【索隱】 重은 附(붙다, 기대다)와 같으니 尊(높이다.)이다. 【正義】 楚나라가 魏나라를 구원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二] 正義南陽鄧州地,本韓地也。韓先事秦,今楚取南陽,故言「與韓且絕矣」。
[二] 【正義】 남양은 등주의 땅이니 본래 韓나라 땅이다. 韓나라가 먼저 秦나라를 섬기니 지금 楚나라가 남양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韓나라와 또한 끊었다.” 한 것이다.
[三] 集解鄳音盲。徐廣曰:「鄳,江夏鄳縣。均,一作『灼』。」 索隱均陵在南陽,蓋今之均州。黽音盲,縣名,在江夏。正義均州故城在隨州西南五十里,蓋均陵也。又申州羅山縣本漢鄳縣。申州有平清關,蓋古鄳縣之阨塞。
[三] 【集解】 鄳(땅이름 맹)은 음이 盲이다. 서광이 말하기를 “맹은 강하의 맹현이다. 均은 ‘灼’이라 쓰기도 한다.” 했다. 【索隱】 均陵은 남양에 있는데 지금의 균주이다. 黽(힘쓸 민)은 음이 盲이니 현의 이름으로 강하에 있다. 【正義】 균주의 옛 성은 수주 서남쪽 50리에 있으니 균릉이다. 도 신주 나산현은 본래 漢나라 鄳縣이다. 신주에 평청관이 있으니 옛날 맹현의 阨塞(애새)이다.
「兵困於林中,[一]重燕、趙,以膠東委於燕,以濟西委於趙。已得講於魏,[二]至公子延,[三]因犀首屬行[四]而攻趙。
군대가 임중에서 곤궁하였는데 燕나라와 趙나라를 꺼려하여 교동을 燕나라에 맡기고 齊西를 趙나라에 맡겼다. 이미 魏나라에게서 화친함을 얻고는 공자 연을 인질로 하고 서수에게 행군을 재촉하여 趙나라를 공격하였다.
[一] 集解徐廣曰:「河南苑陵有林鄉。」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하남의 원릉에 임향이 있다.” 했다.
[二] 索隱講,和也,解也。秦與魏和也。
[二] 【索隱】 講은 和이고, 解이다. 秦나라와 魏나라가 和好한 것이다.
[三] 索隱至當為「質」,謂以公子延為質也。
[三] 【索隱】 ‘至’는 마땅히 ‘質’이 되어야 한다. 공자 연을 인질로 삼은 것이다.
[四] 索隱犀首、公孫衍本魏將,因之以屬軍行。行音胡郎反,謂連兵相續也。
[四] 【索隱】 서수와 공손연은 본래 魏나라 장수인데 인하여 군대의 행군을 맡긴 서이다. 行의 음은 胡와 郞의 反인데 이어진 군대가 서로 잇는 것을 말한다.
「兵傷於譙石,而遇敗於陽馬,[一]而重魏,則以葉、蔡委於魏。已得講於趙,則劫魏,[魏]不為割。困則使太后弟穰侯為和,嬴則兼欺舅與母。[二]
군대가 초석에서 상하고 양마에서 패하였는데 魏나라를 꺼려하여 葉과 蔡를 魏나라에 맡겼다. 趙와 강화하고 나서는 곧 魏나라를 겁주었는데 [魏나라]는 (섭과 채)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곤궁하면 곧 대후의 동생 양후로 하여금 和好하게 하고, 이기면 舅와 母를 함께 속였다.
[一] 索隱按:譙石、陽馬並趙地名,非縣邑也。
[一] 【索隱】 살펴보니 초석과 양마는 같이 趙나라의 땅이름인데 현의 이름은 아니다.
[二] 索隱按:嬴猶勝也。舅,穰侯魏冉也。母,太后也。
[二] 【索隱】 살펴보니 嬴은 勝과 같다. 舅는 양후 위염이다. 母는 태후이다.
「適燕者[一]曰『以膠東』,適趙者曰『以濟西』,適魏者曰『以葉、蔡』,適楚者曰『以塞鄳阨』,適齊者曰『以宋』,此必令言如循環,用兵如刺蜚,母不能制,舅不能約。
燕나라를 꾸짖는 자는 “교동으로써” 말하고, 趙나라를 꾸짖는 자는 “제서로써” 말하고, 魏나라를 꾸짖는 자는 “섭과 채로써” 말하고, 楚나라를 꾸짖는 자는 “맹의 요새지를 막은 것으로써” 말하고, 齊나라를 꾸짖는 자는 “宋나라로써” 말하니 이는 반드시 명령하는 말을 고리를 따르듯이 하였고, 군대를 운용하기를 바퀴벌레 자르듯이 하여 母(태후)도 제제할 수 없으며 舅(양후)도 약속할 수 없었다.
[一] 索隱適音宅。適者,責也。下同。
[一] 【索隱】 適의 음은 宅이다. 適은 꾸짖음이니 아래도 같다.
「龍賈之戰,[一]岸門之戰,[二]封陵之戰,[三]高商之戰,[四]趙莊之戰,[五]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西河之外,上雒之地,三川晉國之禍,三晉之半,秦禍如此其大也。[六]而燕、趙之秦者,[七]皆以爭事秦說其主,此臣之所大患也。」
위나라와 용가의 싸움, 한나라와 안문의 싸움, 위나라와 봉릉의 싸움과 고상의 싸움, 조나라왕 조장의 싸움에서 秦나라에게 죽임을 당한 백성이 수백만이고, 지금 살아있는 자는 모두 秦나라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의 고아이다. 서하의 밖 상락의 땅과 삼천, 진국의 화는 삼진의 반이니 秦나라의 화가 이 같이 크다. 燕, 趙나라에서 秦나라로 가는 자는 모두 다투어 秦나라를 섬기는 것으로써 그 임금을 설득하니 이는 臣(제가)이 그게 근심하는 바입니다.
[一] 集解魏襄王五年,秦敗我龍賈軍。
[一] 【集解】 魏나라 양왕 5년 秦나라가 우리 용가군에게 패하였다.
[二] 集解韓宣惠王十九年,秦大破我岸門。
[二] 【集解】 韓나라 선혜왕 19년 秦나라가 우리 안문을 깨트렸다.
[三] 集解魏哀王十六年,秦敗我封陵。
[三] 【集解】 魏나라 애왕 16년 秦나라가 우리 봉릉에서 패하였다.
[四] 集解此戰事不見。
[四] 【集解】 이 싸움은 일이 보이지 않는다.
[五] 集解趙肅侯二十二年,趙莊與秦戰敗,秦殺趙莊河西。
[五] 【集解】 趙나라 숙후 22년 조장과 秦나라가 싸워 패하여 秦나라가 조장을 서하에서 죽였다.
[六] 索隱以言西河之外,上雒之地及三川晉國,皆是秦與魏戰之處,秦兵禍敗我三晉之半,是秦禍如此其大者乎。
[六] 【索隱】 서하의 밖, 상락의 땅, 삼천과 진국은 모두 이것이 秦나라와 魏나라가 싸운 곳으로 秦나라 군대의 재앙과 실패가 우리 三晉의 반이어서 秦나라의 화가 이 같이 큰 것이었던가? 한 것이다.
[七] 索隱燕、趙之人往秦者,謂游說之士也。
[七] 【索隱】 燕, 趙나라의 사람으로 秦나라에 간자는 遊說의 士를 말한다.
燕昭王不行。蘇代復重於燕。燕使約諸侯從親如蘇秦時,或從或不,而天下由此宗蘇氏之從約。代、厲皆以壽死,名顯諸侯。
燕나라 소왕은 가지 않았다. 소대는 다시 燕나라에 중용되었다. 燕나라가 제후에게 소진의 때와 같이 친함을 따를 것을 맹약하게 하니 혹은 따르고 혹은 따르지 않으니 천하가 이로 말미암아 소씨의 합종의 약속을 중하게 여겼다. 소대와 소려는 천수를 누리고 죽고 이름이 제후에게 드러났다.
太史公曰:蘇秦兄弟三人,[一]皆游說諸侯以顯名,其術長於權變。而蘇秦被反閒以死,天下共笑之,諱學其術。然世言蘇秦多異,異時事有類之者皆附之蘇秦。夫蘇秦起閭閻,連六國從親,此其智有過人者。吾故列其行事,次其時序,毋令獨蒙惡聲焉。
태사공이 말하였다. 소진의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제후에게 유세하는 것으로써 이름을 드러내었는데 그 방법은 임시방편과 변화에 장점이 있었다. 소진은 도리어 이간에 죽음을 당하고 천하가 같이 비웃고 그 방법 배우기를 꺼려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소진을 말하는 것이 다른 거시 많으니 다른 때의 일 가운데 비슷한 것이 있으면 모두 소진에게 붙였기 때문이다. 저 소진은 여염에서 일어나 六國을 이어 합종하여 친하게 하였으니 이는 그 지혜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이 있는 것이다. 내가 때문에 그 행한 일을 나열하고 다음으로 그 때를 차례하여 홀로 나쁜 소리를 입지 않게 하고자 하였다.
[一] 索隱按:譙允南以為蘇氏兄弟五人,更有蘇辟、蘇鵠,典略亦同其說。按:蘇氏譜云然。
[一] 【索隱】 살펴보니 초윤남은 소씨가 형제가 5인이라 하면서 다시 소벽, 소곡 있다 하였는데, 전략이 또한 그 말을 같이 한다. 살펴보니 소씨의 족보에서 말한 것이 그러하다.
【索隱述贊】季子周人,師事鬼谷。揣摩既就,陰符伏讀。合從離衡,佩印者六。天王除道,家人扶服。賢哉代、厲,繼榮黨族。
【索隱述贊】 둘째아들인 주나라 사람이 스승으로 귀곡을 섬겼다. 헤아리고 연마하여 이미 나아가서는 陰符를 엎드려 읽었다. 합종하여 연횡을 이반시키니 관인을 찬 것이 여섯 개였다. 天王이 길을 소제하니 家人이 부축하여 복종하였다. 어질도다. 代, 厲여! 영광을 黨族들이 이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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