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
張儀列傳第十
張儀者,魏人也。[一]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學術,蘇秦自以不及張儀。
장의는 魏나라 사람이다. 처음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선생을 섬기면서 術을 배웠는데 소진이 스스로 장의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一] 集解呂氏春秋曰:「儀,魏氏餘子。」 索隱按:晉有大夫張老,又河東有張城,張氏為魏人必也。而呂覽以為魏氏餘子,則蓋魏之支庶也。又書略說餘子謂庶子也。正義左傳晉有公族、餘子、公行。杜預云:「皆官卿之嫡為公族大夫。餘子,嫡子之母弟也。公行,庶子掌公戎行也。」藝文志云張子十篇,在縱橫流。
[一] 【集解】 『呂氏春秋』에 말하기를 “장의는 魏나라 氏族의 餘子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晉나라에 대부 장노가 있고, 또 하동에 장성이 있으니 장씨는 魏나라 사람이 틀림없다. 『呂覽』에 魏나라 씨족의 餘子라 하는 것은 곧 아마도 魏나라의 갈래 서자로 여긴 듯하다. 또 『書略』에 餘子를 설명하여 庶子라 말했다. 【正義】 『左傳』에 晉나라에는 公族, 餘子, 公行이 있다. 杜預가 말하기를 “모두 官卿의 嫡子가 공족과 대부가 된다. 餘子는 嫡子와 어머니를 같이 하는 동생이다. 公行은 庶子로 公적인 군대를 관장한다.” 했다. 「藝文志」에 “張子 10편이 從行類에 있다.” 했다.
張儀已學游說[一]諸侯。嘗從楚相飲,已而楚相亡璧,門下意張儀,曰:「儀貧無行,必此盜相君之璧。」共執張儀,掠笞數百,不服,醳[二]之。其妻曰:「嘻![三]子毋讀書游說,安得此辱乎?」張儀謂其妻曰:「視吾舌尚在不?」其妻笑曰:「舌在也。」儀曰:「足矣。」
장의가 배움을 마치고 제후에게 유세하였다. 일찍이 楚나라 재상을 따라서 마셨는데 楚나라 재상이 구슬을 잊어버리니 문하들이 장의를 생각하고 말하기를 “장의가 가난하고 행실이 없으니 반드시 이 상군(재상님)의 구슬을 훔쳤을 것입니다.”하고는 함께 장의를 잡아 채찍으로 수백 대를 때리며 조사하였는데 자백하지 않자 그를 풀어 주었다. 그 처가 말하기를 “아! 그대는 글을 읽고 유세하지 마시오. 어찌하여 이러한 욕을 받습니까?” 하니 장의가 그 처에게 말하기를 “내 혀를 보시오 아직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였다. 그 처가 웃으며 말하기를 “혀가 있습니다.” 하니 장의가 말하기를 “충분하다.” 했다.
[一] 索隱音稅。
[一] 【索隱】 음은 稅이다.
[二] 集解音釋。索隱古釋字。
[二] 【集解】 음은 釋이다. 【索隱】 옛날의 釋자이다.
[三] 索隱音僖。鄭玄曰:「嘻,悲恨之聲。」
[三] 【索隱】 음은 僖이다. 鄭玄이 말하기를 “嘻는 슬프게 한탄하는 소리이다.” 했다.
蘇秦已說趙王而得相約從親,[一]然恐秦之攻諸侯,敗約後負,念莫可使用於秦者,乃使人微感張儀曰:「子始與蘇秦善,今秦已當路,子何不往游,以求通子之願?」張儀於是之趙,上謁求見蘇秦。蘇秦乃誡門下人不為通,又使不得去者數日。已而見之,坐之堂下,賜僕妾之食。因而數讓之[二]曰:「以子之材能,乃自令困辱至此。吾寧不能言而富貴子,子不足收也。」謝去之。張儀之來也,自以為故人,求益,反見辱,怒,念諸侯莫可事,獨秦能苦趙,乃遂入秦。
소진이 趙나라 왕을 설득하여 서로 맹약하는 합종을 한 후 秦나라가 제후를 공격하여 합종을 무너뜨리고 뒤에 배반할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秦나라에 등용하게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에 사람을 시켜 은근히 장의를 자극하여 말하게 하기를 “그대는 처음에 소진과 사이가 좋았다. 지금 소진은 이미 요직에 있으니 그대는 어찌하여 가서 노닐면서 (아는 자를) 통하여 그대의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는가?” 했다. 장의가 이에 趙나라에 가서 지체 높고 귀한 사람을 통해 소진을 만나고자 했다. 소진이 이에 문하의 사람들을 경계하여 통하지 못하게 하고 또 사람을 시켜 떠나가지도 못하게 한 것이 여러 날이었다. 이윽고 그(장의)를 만나서는 堂下에 앉게 하고는 종의 음식을 내리게 하였다. 때문에 여러 번 질책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재능으로써 곧 스스로 곤궁함과 욕됨이 이에 이르게 하였는가? 나는 차라리 말로 그대를 부귀하게 할 수 있을지언정 그대를 거두어들이지는 못한다.” 하니 하직하고 떠났다. 장의가 온 것은 스스로 옛 친구라 여겨서 이익을 구하고자 해서인데 도리어 욕을 당하니 노하여 생각하니 제후로 섬길만하지 않고, 유독 秦나라만이 趙나라를 괴롭게 할 수 있다 여겨서 이에 마침내 秦나라에 들어갔다.
[一] 索隱從音足容反。
[一] 【索隱】 從의 음은 足과 容의 反이다.
[二] 索隱按:謂數設詞而讓之。讓亦責也。數音朔。
[二] 【索隱】 살펴보니 여러 번 말을 하여 꾸짖음을 말한다. 讓은 또한 질책함이다. 數의 음은 朔이다.
蘇秦已而告其舍人曰:「張儀,天下賢士,吾殆弗如也。今吾幸先用,而能用秦柄者,獨張儀可耳。然貧,無因以進。吾恐其樂小利而不遂,故召辱之,以激其意。子為我陰奉之。」乃言趙王,發金幣車馬,使人微隨張儀,與同宿舍,稍稍近就之,奉以車馬金錢,所欲用,為取給,而弗告。張儀遂得以見秦惠王。惠王以為客卿,與謀伐諸侯。
소진이 이윽고 그 측근에게 말하기를 “장의는 천하의 현명한 선비로 내가 자못 그보다 못하다. 지금 내가 요행히 먼저 등용되었으되 秦나라에 동용되어 권력을 잡을 자는 오직 장의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난하고 인하여 나아갈 수 없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즐거워하여 이루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불러서 욕을 주는 것으로써 그 뜻을 격동시킨 것이다. 그대는 나를 위하여 몰래 그를 받들라.” 하고는 이에 趙나라 왕에게 말하여 금과 비단, 수레와 말을 내고, 사람을 시켜서 몰래 장의를 따르게 하고 함께 집에 머물면서 조금씩 가까이 나아가게 하여 거마와 금전으로써 받들게 하고 쓰고자 하는 바는 취하여 주게 하되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장의가 마침내 秦나라 혜왕을 만났다. 혜왕이 객경으로 삼고 함께 제후를 정벌할 것을 꾀하였다.
蘇秦之舍人乃辭去。張儀曰:「賴子得顯,方且報德,何故去也?」舍人曰:「臣非知君,知君乃蘇君。蘇君憂秦伐趙敗從約,以為非君莫能得秦柄,故感怒君,使臣陰奉給君資,盡蘇君之計謀。今君已用,請歸報。」張儀曰:「嗟乎,此在吾術中而不悟,吾不及蘇君明矣!吾又新用,安能謀趙乎?為吾謝蘇君,蘇君之時,儀何敢言。且蘇君在,儀寧渠能乎!」[一]張儀既相秦,為文檄[二]告楚相曰:「始吾從若飲,[三]我不盜而璧,若笞我。若善守汝國,我顧且盜而城!」
소진의 측근이 이에 하직하고 떠났다. 장의가 말하기를 “그대에게 의지하여 드러날 수 있었으니 바야흐로 또한 덕을 갚아야 하는데 무슨 이유로 떠나는가?” 하였다. (소진의) 측근이 말하기를 “신이 그대를 알아 본 것이 아니라 그대를 알아 본 것은 곧 소군(소진)이다. 소군(소진)이 秦나라가 趙나라를 쳐서 합종의 맹약을 무너뜨리는 것을 근심하였기 때문에 그대가 아니면 秦나라의 권력을 잡을 이가 없다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를 자극하고 노하게 하며, 신으로 하여금 몰래 그대의 자산을 받들고 지급하게 한 것이 모두 소군(소진)의 계책이었습니다. 지금 그대가 이미 등용되었으니 돌아가 보고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장의가 말하기를 “아! 이는 나의 방법가운데 있는 것인데 깨닫지 못하였으니 나는 소군(소진)의 현명함에 미치지 못하구나! 내가 또한 새로이 등용되었으니 어찌 趙나라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하여 소군(소진)에게 사례하고 소군(소진)의(이 살아 있을)때 장의가 무엇을 감히 말하겠는가? 또 소군(소진)이 살아있는 동안은 장의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했다. 장의가 秦나라의 재상이 되고 나서 격문을 지어 楚나라 재상에게 말하기를 “처음에 내가 너를 따라 마시다가 내가 구슬을 훔치지 않았음에도 너는 나를 매질하였다. 너는 너희 나라를 잘 지켜라. 나는 (옛날을)돌아보고 또 성을 훔칠 것이다.” 했다.
[一] 集解渠音詎。索隱渠音詎,古字少,假借耳。
[一] 【集解】 渠의 음은 詎이다. 【索隱】 渠의 음은 詎이다. 옛날 글자는 少이니 빌렸을 분이다.
[二] 集解徐廣曰:「一作『尺一之檄』。」 索隱按:徐廣云一作「丈二檄」。王劭按春秋後語云「丈二尺檄」。許慎云「檄,二尺書」。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尺一之檄이라 쓴 것도 있다.” 【索隱】 살펴보니 서광이 말하기를 “丈二檄이라 쓰기도 한다.” 했다. 왕소가 『春秋』를 살펴본 후에 말하기를 “丈二尺檄”이라 하였고, 허신은“檄,二尺書”라고 했다.
[三] 索隱若者,汝也。下文而亦訓汝。
[三] 【索隱】 若은 汝(너)이다. 아래 글도 또한 뜻은 汝(너) 이다.
苴蜀相攻擊,[一]各來告急於秦。秦惠王欲發兵以伐蜀,以為道險狹難至,而韓又來侵秦,秦惠王欲先伐韓,後伐蜀,恐不利,欲先伐蜀,恐韓襲秦之敝。猶豫未能決。司馬錯[二]與張儀爭論於惠王之前,司馬錯欲伐蜀,張儀曰:「不如伐韓。」王曰:「請聞其說。」
저와 촉이 서로 공격하여 각기 秦나라에 와서 급함을 알렸다. 진나라 혜왕이 군대를 일으켜 촉을 치고자 하였으나 길이 험하고 좁아 이르기 어렵고 한나라가 또한 와서 진나라를 침략할 것이라 여겼다. 진나라 혜왕이 먼저 한나라를 치고 뒤에 촉을 치고자 하였으나 이롭지 못함을 두려워하였고, 먼저 촉을 치고자 하니 한나라가 진나라의 폐를 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늦추어 두고 결단하지 못하였다. 사마착과 장의가 혜왕의 앞에서 다투었는데 사마착은 촉을 치고자 하였다. 장의가 “한나라를 치는 것만 못합니다.” 하니 왕이 “그 말을 듣기를 청한다.” 했다.
[一] 集解徐廣曰:「譙周曰益州『天苴』讀為『包黎』之『包』,音與『巴』相近,以為今之巴郡。」 索隱苴音巴。謂巴、蜀之夷自相攻擊也。今字作「苴」者,按巴苴是草名,今論巴,遂誤作「苴」也。或巴人、巴郡本因芭苴得名,所以其字遂以「苴」為「巴」也。注「益州天苴讀為芭黎」,天苴即巴苴也。譙周,蜀人也,知「天苴」之音讀為「芭黎」之「芭」。按:芭黎即織木葺為葦籬也,今江南亦謂葦籬曰芭籬也。正義華陽國志云:「昔蜀王封其弟于漢中,號曰苴侯,因命之邑曰葭萌。苴侯與巴王為好,巴與蜀為讎,故蜀王怒,伐苴。苴奔巴,求救於秦。秦遣張儀從子午道伐蜀。[蜀]王自葭萌禦之,敗績,走至武陽,為秦軍所害。秦遂滅蜀,因取苴與巴焉。」括地志云:「苴侯都葭萌,今利州益昌縣五十里葭萌故城是。蜀侯都益州巴子城,在合州石鏡縣南五里,故墊江縣也。巴子都江州,在都之北,又峽州界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초주는 익주 ‘天苴’는 읽기를 ‘包黎’의 ‘包’로 읽어야 하는데 음이 ‘巴’와 서로 비슷하여 지금의 ‘巴郡’이 되었다.” 했다. 【索隱】 ‘苴’의 음은 ‘巴’이다. ‘巴’와 ‘蜀’의 오랑캐가 스스로 서로 공격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 글자를 ‘苴’라고 쓴 것은 살펴보니 ‘巴’와 ‘苴’는 풀이름인데 지금 ‘巴’를 논하면서 마침내 잘못 ‘苴’라고 쓴 것이다, 혹은 ‘파인’, ‘파군’은 본래 ‘芭苴’로 인하여 이름을 얻었기 때문에 그 글자가 마침내 ‘苴’로써 ‘巴’라 한 것이다. 注에 “익주 ‘天苴’는 읽기를 ‘芭黎’로 읽는다.” 하니 天苴는 곧 ‘巴苴’이다. 초주는 蜀 사람인데 ‘天苴’의 음을 ‘芭黎’의 ‘芭’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살펴보니 ‘芭黎’는 곧 나무를 겹쳐 엮어서 갈대 울타리를 만든 것이다. 지금 강남에는 또한 ‘葦籬(갈대 울타리)’를 ‘芭籬’라고 한다. 【正義】 『華陽國志』에 “옛날 촉나라 왕이 그 아우를 ‘한중’에 봉하고 ‘苴侯’라 부르고 인하여 (제후를 명한) 읍을 ‘葭萌’이라 했다.” 한다. 苴侯와 巴나라 왕은 和好하고, 巴와 蜀은 원수가 되었다. 그러므로 촉나라 왕이 노하여 苴를 친 것이다. 苴가 巴에 도망하여 秦나라에 구원을 청한 것이다. 秦나라가 장의의 부하 오도를 보내 촉을 치게 했다. [촉]나라 왕이 ‘가맹’에서 그를 막았으나 패하고 달아나 무양에 이르러 秦나락 군대에게 해침을 당하였다. 秦나라가 마침내 촉나라를 멸망시키고 인하여 ‘苴’와 ‘巴’를 취하였다. 『括地志』에 “苴侯의 도읍은 ‘葭萌’인데 지금의 이주 익창현 50리의 옛 성이 이것이다. 蜀侯의 도읍은 익주 ‘파자성’이니 합주 석경현 남쪽 5리에 있으니 옛 점강현이다. 巴子의 도읍은 강주이고, 도읍의 북쪽에 있고, 또 협주의 경계이다.
[二] 索隱七各反,又七故反,二音。
[二] 【索隱】 七과 各의 反이고, 또 七과 故의 反이니 두 음이다.
儀曰:「親魏善楚,下兵三川,塞什谷之口,[一]當屯留之道,[二]魏絕南陽,[三]楚臨南鄭,[四]秦攻新城、[五]宜陽,[六]以臨二周之郊,誅周王之罪,侵楚、魏之地。周自知不能救,九鼎寶器必出。據九鼎,案圖籍,挾天子以令於天下,天下莫敢不聽,此王業也。今夫蜀,西僻之國而戎翟之倫也,敝兵勞眾不足以成名,得其地不足以為利。臣聞爭名者於朝,爭利者於市。今三川、周室,天下之朝市也,而王不爭焉,顧爭於戎翟,去王業遠矣。」[七]
장의가 말하였다. “魏나라와는 친하고, 초나라와는 잘 지내며 군대를 三川에 내려 보내 什谷의 입구를 막고 둔유의 길을 막아 지키면 위나라는 남양이 끊기고 초나라는 남정에서 만납니다. 진나라가 신성, 의양을 치는 것으로써 두 주의 교외에 임하여 주나라 왕의 죄를 베고, 초나라, 위나라의 땅을 침범합니다. 주나라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알고 九鼎과 寶器를 내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九鼎에 의거하고 圖籍(지도와 호적)을 살피고 천자를 끼고서 천하에 명령하면 천하가 감히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王業입니다. 지금 저 촉은 西僻(서쪽 변경)의 나라로 오랑캐의 무리이니 군대를 피폐하게 하고 무리를 수고롭게 하여도 이름을 이루기는 부족하고, 그 땅을 얻어도 이익으로 삼기 부족합니다. 신이 들으니 이름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시장에서 다툰다고 합니다. 지금 삼천과 주나라 왕실은 천하의 조정과 시장으로 왕이 여기에서 다투지 않고 오랑캐를 돌아보고 다투면 왕업과의 거리가 멀어질 것입니다.
[一] 集解徐廣曰:「一作『尋』,成皋鞏縣有尋口。」 索隱一本作「尋谷」,尋什聲相近,故其名惑也。戰國策云「轘轅、緱氏之口」,亦其地相近也。正義括地志云:「溫泉水即尋,源出洛州鞏縣西南四十里。注水經云鄩城水出北山鄩溪。又有故鄩城,在鞏縣西南五十八里。」按:洛州緱氏縣東南四十里,與鄩溪相近之地。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尋’이라 쓰고 성고공현에 ‘심구’가 있다.” 【索隱】 어떤 본에서는 ‘尋谷’이라 썼는데 ‘尋’과 ‘什’은 소리가 서로 비슷하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헛갈린 것이다. 『戰國策』에 “환원은 구씨의 입”이라 하였는데 또한 그 땅이 서로 가깝다. 【正義】 『括地志』에 “온천수를 곧 ‘尋’이라 하는데 근원은 낙주 공현 서남쪽 40에서 나온다. 注 『水經』에 ‘尋城의 물은 북산 심계에서 나온다.’ 하고 또 옛 심성은 공현 서남쪽 58리에 있다.”했다. 살펴보니 낙주 구씨현 동남쪽 40리에 있는데 ‘심계’와는 서로 가가운 땅이다.
[二] 正義屯留,潞州縣也。道即太行羊腸阪道也。
[二] 【正義】 ‘둔유’는 노주의 현이다. ‘도’는 곧 태항산의 ‘양장판도’이다.
[三] 正義南陽,懷州也。是當屯留之道,令魏絕斷壞羊腸、韓上黨之路也。
[三] 【正義】 ‘남양’은 ‘회주이다. 이는 ’둔유‘의 길에 해당하니 위나라로 하여금 양장과 한나라 상당의 길을 끊고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다.
[四] 正義是塞什谷之口也。令楚兵臨鄭南,塞轘轅鄩口,斷韓南陽之兵也。
[四] 【正義】 이는 십곡의 입구를 막는 것이니 초나라 군대가 정나라 남쪽에 임하고, 환원의 심구를 막으며 한 나라 남양의 군대를 끊게 하는 것이다.
[五] 索隱此新城當在河南伊闕之左右。
[五] 【索隱】 이 신성은 마땅히 하남 이궐의 좌우에 있어야 한다.
[六] 正義洛州福昌縣也。
[六] 【正義】 낙주 복창현이다.
[七] 索隱去王遠矣。王音于放反。
[七] 【索隱】 왕 노릇 하는 것과 거리가 멀어진다. 한 것이다. 王의 음은 于와 放의 反이다.
司馬錯曰:「不然。臣聞之,欲富國者務廣其地,欲彊兵者務富其民,欲王者務博其德,三資者備而王隨之矣。今王地小民貧,故臣願先從事於易。夫蜀,西僻之國也,而戎翟之長也,有桀紂之亂。以秦攻之,譬如使豺狼逐群羊。得其地足以廣國,取其財足以富民[一]繕兵, 不傷眾而彼已服焉。[二]拔一國而天下不以為暴,利盡西海[三]而天下不以為貪,是我一舉而名實附也,[四]而又有禁暴止亂之名。今攻韓,劫天子,惡名也,而未必利也,又有不義之名,而攻天下所不欲,危矣。臣請謁其故:[五]周,天下之宗室也;齊,韓之與國也。周自知失九鼎,韓自知亡三川,[六]將二國并力合謀,以因乎齊、趙而求解乎楚、魏,以鼎與楚,以地與魏,王弗能止也。此臣之所謂危也。不如伐蜀完。」
사마착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들으니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그 땅을 넓히는데 힘써야 하고, 군대를 간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그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데 힘써야 하며, 왕 노릇하고자 하는 자는 그 덕을 넓히는데 힘써야 하니 세 가지 자질을 갖추면 왕업은 그것을 따릅니다. 지금 왕은 땅이 작고 백성은 가난합니다. 그러므로 신은 먼저 일을 함에 쉬운 것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저 촉은 서쪽 변경의 나라이고, 오랑캐의 우두머리로 걸왕과 주왕의 어지러움이 있었습니다. 진나라가 공격하는 것은 비유하면 승냥이와 이리로 하여금 여러 양을 몰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땅을 충분히 얻어 나라를 넓게 하고 그 재물을 취하여 백성을 충분히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모아 여러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아도 복종할 것입니다. 한 나라를 공략하는데도 천하가 사납다 여기지 않고, 이익을 서쪽 바다에서 다 취하여도 천하가 탐욕스럽다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한 번 들면 명분과 실제가 부합하고, 또 사나움을 금하고 어지러움을 그치게 하는 명분이 있습니다. 지금 한나라를 공격하고 천자를 겁주는 것은 명분을 나쁘게 하여 반드시 이롭지 않으며, 또 의롭지 않음의 이름이 있으니 천하가 바라지 않는 것을 공격하는 것은 위태로운 것입니다. 신이 그 이유를 말할 것을 청합니다. 주나라는 천하의 종실입니다. 제나라 한나라의 우호국입니다. 주나라는 스스로 九鼎을 잃음을 알고 한나라는 스스로 三川을 잃을 것을 알아 두 나라가 힘을 합하고 꾀를 합하고 제나라, 조나라 일을 인하여 초나라, 위나라에 풀어줄 것을 구하여 鼎을 초나라에 준다면 왕께서는 그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의 이른바 위태롭다는 것이니 촉을 완전히 치는 것만(보다) 못합니다.” 했다.
[一] 索隱遇其財。戰國策「遇」作「得」。
[一] 【索隱】 그 재물을 만나는 것이다. 『戰國策』에는 ‘遇’를 ‘得’이라고 썼다.
[二] 正義繕音膳,同「饍」,具食也。
[二] 【正義】 ‘繕’의 음은 ‘膳’이니 ‘饍’과 같다. 갖추어 먹는 것이다.
[三] 索隱西海謂蜀川也。海者珍藏所聚生,猶謂秦中為「陸海」然也。其實西亦有海也。正義海之言晦也,西夷晦昧無知,故言海也。言利盡西方羌戎。
[三] 【索隱】 西海는 蜀川을 말한다. 바다는 보배를 감추고 모아 생산하는 곳이니 진나라 안을 ‘육지의 바다’라 말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서쪽에 또한 바다가 있다. 【正義】 ‘海(바다)’를 誨(어둡다)라 말한 것은 서쪽 오랑캐가 어둡고 지혜가 없었다. 그러므로 ‘海(바다)’ 라 말한 것이다. 이로움을 서쪽 오랑캐에게서 모두 취함을 말한다.
[四] 索隱按:名謂傳其德也,實謂土地財寶。
[四] 【索隱】 살펴보니 ‘名’은 그 德을 전함을 말한다. ‘實’은 그 土地와 財寶를 말한다.
[五] 索隱謁者,告也,陳也。故,謂陳不宜伐之端由也。
[五] 【索隱】 ‘謁’은 알려 말하고, 진술함을 말한다. ‘故’는 마땅히 쳐서는 안됨을 단서와 이유를 진술함을 말한다.
[六] 正義韓自知亡三川,故與周并力合謀也。
[六] 【正義】 한 나라가 스스로 三川을 잃음을 알기 때문에 주 나라와 함께 힘을 합하고 꼬랄 합하는 것이다.
惠王曰:「善,寡人請聽子。」卒起兵伐蜀,十月,取之,[一]遂定蜀,[二]貶蜀王更號為侯,而使陳莊相蜀。蜀既屬秦,秦以益彊,富厚,輕諸侯。
혜왕이 말하기를 “좋다. 과인은 그대에게서 들을 것을 청한다.” 했다.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촉을 쳤는데 10월에 (촉을)취하여 마침내 촉을 평정하고 촉 왕을 낮추고 號를 고쳐 侯라 하고 진장으로 하여금 촉의 재상으로 하였다. 촉이 진나라에 속한 후 진나라가 더욱 강성하고, 부유해져 제후를 경시하였다.
[一] 索隱六國年表在惠王二十二年十月也。
[一] 【索隱】 六國年表에 혜왕 22년 10월에 있다.
[二] 正義表云秦惠王後元年十月,擊滅之。
[二] 【正義】 六國年表에 혜왕 후 元年 10월에 쳐서 멸망시켰다.
秦惠王十年,使公子華[一]與張儀圍蒲陽,[二]降之。儀因言秦復與魏,而使公子繇質於魏。儀因說魏王曰:「秦王之遇魏甚厚,魏不可以無禮。」魏因入上郡、少梁,謝秦惠王。惠王乃以張儀為相,更名少梁曰夏陽。[三]
진나라 혜왕 10년 공자 華와 張儀로 하여금 포양을 포위하게 하니 항복하였다. 장의가 인하여 진 나라에게 말하여 위나라에 돌려주고 공자 繇를 위나라에 인질로 하게 하였다. 장의가 인하여 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진나라 왕이 위나라를 대우함이 매우 두터우니 위나라가 무레할 수 없습니다.” 했다. 위나라가 인하여 상군, 소양을 들이고(주니) 진나라 혜왕에게 사례하였다. 헤왕이 이에 장의를 재상으로 삼고 이름을 고쳐 ‘소양’을 ‘하양’이라 했다.
[一] 集解徐廣曰:「一作『革』。」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革’이라고도 쓴다.
[二] 索隱魏邑名也。正義在隰州隰州縣,蒲邑故城是也。
[二] 【索隱】 위나라 읍의 이름이다. 【正義】 습주 습주현에 있는데 포읍 옛성이 이것이다.
[三] 集解徐廣曰:「夏陽在梁山龍門。」 索隱音下。夏,山名也,亦曰大夏,是蜀所都。正義少梁城,同州韓城縣南二十三里。夏陽城在縣南二十里。梁山在縣東南十九里。龍門山在縣北五十里。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하양은 양산 용문에 있다.” 했다. 【索隱】 음은 ‘下’이다. ‘夏’는 산이름이다. 또 ‘대하’라 하는데 촉이 도읍한 곳이다. 【正義】 소양성은 동주 한성현 남쪽23리이다. 하양성은 현 남쪽 20리에 있다. 양산은 현 동쪽 19리에 있다. 용문산은 현 북쪽50리에 있다.
儀相秦四歲,立惠王為王。[一]居一歲,為秦將,取陝。築上郡塞。
장의가 진나라 재상이 된지 4년에 혜왕이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 머문지(재상 자리에 있은지) 1년만에 진나라 장수가 되어 섬을 취하고 상군의 요새를 쌓았다.
[一] 正義表云惠王之十三年,周顯王之三十四年也。
[一] 【正義】 表에 “혜왕 13년은 주나라 현왕 34년이다.
其後二年,使與齊、楚之相會齧桑。東還而免相,相魏以為秦,欲令魏先事秦而諸侯效之。魏王不肯聽儀。秦王怒,伐取魏之曲沃、平周,復陰厚張儀益甚。張儀慚,無以歸報。留魏四歲而魏襄王卒,哀王立。張儀復說哀王,哀王不聽。於是張儀陰令秦伐魏。魏與秦戰,敗。
그 후(재상이 된지) 2년에 사신으로 제나라와 초나라의 재상을 설상에서 만났다. 동쪽으로 돌아와 재상을 사임하고 진나라를 위하여 위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나라로 하여금 진나라를 섬기게 하여 제후들이 그것을 본받게 하고자 하였다. 위나라 왕이 장의의 말을 듣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진나라 왕이 노하여 위나라의 곡옥, 평주를 쳐서 취하고, 다시 가만히 장의를 두텁게 함이 더욱 심하였다. 장의가 돌아가 보고할 것이 없음을 부끄러워하였다. 위나라에 머문지 4년만에 위나라 양왕이 죽고, 애왕이 즉위하였다. 장의가 다시 애왕을 설득하였으나 애왕이 듣지 않았다. 이에 장의는 몰래 진나라로 하여금 위나라를 치게 하였다. 위나라와 진나라가 싸워 (위나라가)패하였다.
明年,齊又來敗魏於觀津。[一]秦復欲攻魏,先敗韓申差軍,斬首八萬,諸侯震恐。而張儀復說魏王曰:「魏地方不至千里,卒不過三十萬。地四平,諸侯四通輻湊,無名山大川之限。從鄭至梁二百餘里,車馳人走,不待力而至。梁南與楚境,西與韓境,北與趙境,東與齊境,卒戍四方,守亭鄣者不下十萬。梁之地勢,固戰場也。梁南與楚而不與齊,則齊攻其東;東與齊而不與趙,則趙攻其北;不合於韓,則韓攻其西;不親於楚,則楚攻其南: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다음해 제나라가 또한 와서 관진에서 위나라를 무너뜨렸다. 진나라가 다시 위나라를 공격하고자 하여 먼저 한나라 신차의 군대 무너뜨리고 머리를 자른 것이 8만이었는데 제후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장의가 다시 위나라 왕을 설득하기를 “위나라의 땅이 사방 천리에 이르지 않고, 군대는 30만을 넘지 않습니다. 땅이 사방으로 평평하고 제후는 사방으로 몰려오는데 이름 있는 산과 큰 시시내의 제한이 없습니다. 정으로부터 양에 이르기까지 200여리이니 수레가 치달리고 사람이 달리면 힘씀을 기다리지 않아도 이릅니다. 양나라의 남쪽은 초나라와 경계하고 서쪽은 한나라와 경계하며, 북쪽으로는 조나라와 경계하며,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경계하니 군대가 사방을 지키는데 亭障(국경에 사람의 드나듦을 감시하는 요새)을 지키는 자가 10만 아래가 아닙니다.(10만이 넘습니다.) 양의 지세는 진실로 싸움터입니다. 양의 남쪽은 초나라와 같이하되(접경하고) 제나라와 함께하지 않으면 곧 제나라가 그 동쪽을 공격하고, 동쪽으로 제나라와 함께하고, 조나라와는 함께 하지 않으면 곧 조나라는 그 북쪽을 공격할 것이며, 한나라에 합하지 않으면 곧 한나라가 그 서쪽을 공격한다. 초나라와 친하지 않으면 곧 초나라가 그 남쪽을 공격한다. 이것이 이른바 곧 四分五裂 의 길 이라는 것입다.”
[一] 集解觀音貫。
[一] 【集解】 觀의 음은 貫이다.
「且夫諸侯之為從者,將以安社稷尊主彊兵顯名也。今從者一天下,約為昆弟,刑白馬以盟洹水之上,[一]以相堅也。而親昆弟同父母,尚有爭錢財,而欲恃詐偽反覆蘇秦之餘謀,其不可成亦明矣。
(장의가 말하기를) “또한 저 제후가 합종을 하는 것은 장차 사직을 편안히 하고 임금을 높이며 군대를 강하게 하여 이름을 드러내려 해서입니다. 지금 합종을 한 자는 천하를 하나로 형제가 되기를 약속하고 원수가에서 백마를 죽여 맹약하는 것으로써 서로 굳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같이하는 친한 형제도 오히려 돈과 재물을 다툼이 있는데 속이고 거짓을 반복하는 소진의 도모함을 믿고자 하니 이루어질 수 없음이 또한 분명합니다.”
[一] 集解洹音桓。
[一] 【集解】 洹의 음은 桓이다.
「大王不事秦,秦下兵攻河外,[一]據卷、衍、[燕]、酸棗,[二]劫衛取陽晉,[三]則趙不南,趙不南而梁不北,梁不北則從道絕,從道絕則大王之國欲毋危不可得也。秦折韓而攻梁,[四]韓怯於秦,秦韓為一,梁之亡可立而須也。此臣之所為大王患也。
(장의가 말하기를) “대왕이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진나라가 군대를 내려 보내 (黃)河의 밖을 공격하고 ‘권’, ‘연’, [燕], ‘산조’ 에 근거하여 위나라를 겁주어 양진을 취하면 곧 조나라가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조나라가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면 양이 북으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며, 양이 북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곧 합종은 길이 끊어질 것이며 합종의 길이 끊어지면 곧 대왕의 나라는 위태롭지 않으려 해도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꺽고 양을 공격하고 한나라가 진나라에 겁을 먹고 진나라와 한나라가 하나가 되면 양이 망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는 신이 대왕을 위해 근심하는 바입니다.”
[一] 索隱河之西,即曲沃、平周之邑等。正義河外即卷、衍、燕、酸棗。
[一] 【索隱】 ‘황하’의 서쪽은 곧 ‘곡옥’ 이니 평주의 읍 등이다. 【正義】 河外는 ‘卷’, ‘衍’, ‘燕’, ‘酸棗’이다.
[二] 集解卷,丘權反。衍,以善反。索隱卷縣在河南。衍,地名。正義卷、衍屬鄭州;燕,滑州胙城縣;酸棗屬滑州:皆黃河南岸地。
[二] 【集解】 ‘卷’은 ‘丘’와 ‘權’의 反이다. ‘衍’은 ‘以’와 ‘善’의 反이다. 【索隱】 ‘권현’은 하남에 있다. ‘衍’은 지명이다. 【正義】 ‘卷’과 ‘衍’은 정주에 속한다. ‘燕’은 활주 조성현이다. ‘酸棗’는 활주에 속한다. 모두 황하 남쪽 가의 땅이다.
[三] 正義故城在曹州乘氏縣西北三十七里。
[三] 【正義】 옛 성이 조주 승씨현 서북쪽 37리에 있다.
[四] 索隱戰國策「折」作「挾」也。
[四] 【索隱】 『戰國策』에 ‘折’을 ‘挾’이라 썼다.
「為大王計,莫如事秦。事秦則楚、韓必不敢動;無楚、韓之患,則大王高枕而臥,[一]國必無憂矣。
(장의가 말하기를) “대왕을 위한 계교로는 진나라를 섬기는 것 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진나라를 섬기면 곧 초나라, 한나라가 반드시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초나라, 한나라의 근심이 없을 것이며, 곧 대왕은 베개를 높이하고 누워 자잘 수 있을 것이니 나라는 반드시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一] 正義枕,針鴆反。
[一] 【正義】 ‘枕’의 음은 ‘針’과 ‘鴆’의 反이다.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而能弱楚者莫如梁。楚雖有富大之名而實空虛;其卒雖多,然而輕走易北,不能堅戰。悉梁之兵南面而伐楚,勝之必矣。割楚而益梁,虧楚而適秦,嫁禍安國,此善事也。大王不聽臣,秦下甲士而東伐,雖欲事秦,不可得矣。
(장의가 말하기를) “또 저 진나라의 약하게 하고자 하는 바로는 초나라 같음이 없고 초나라를 약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양과 같음이 없다. 초나라가 비록 부유하고 크다는 명성이 있으나 실제로는 공허하고, 그 군대가 비록 많다하나 달기를 가볍게 하고 쉽게 달아나니 굳건하게 싸우지 못합니다. 모든 양의 군대를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초나라를 치면 틀림없이 이길 것입니다. 초나라를 나누어 양에 더하고 초나라를 이지러뜨려(부수어) 진나라에 돌려주는 것은 재앙을 (초나라에)전가하고 (진)나라를 편안히 하는 것이니 이는 좋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 대왕이 신의 말을 듣지 않으시면 진나라는 갑사(갑옷 입은 군사)를 내려 보내 동쪽으로 정벌 할 것이니 비록 진나라를 섬기고자 하여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說一諸侯而成封侯,是故天下之游談士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以說人主。人主賢其辯而牽其說,豈得無眩哉。「臣聞之,積羽沈舟,群輕折軸,眾口鑠金,積毀銷骨,故願大王審定計議,且賜骸骨辟魏。」
(장의가 말하기를)“또 저 합종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큰소리를 많이 치지만 믿음은 적고, 한 번 제후를 설득하여 후에 봉해짐을 이루려 합니다. 이 때문에 천하를 돌아다니며 이야기하는 선비들이 낮, 밤 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가는 것으로써 합종의 편리함을 말하지 않음이 없고, 이로써 임금을 설득합니다. 임금이 그 변설을 현명하다 여겨서 그 말에 끌리면 어찌 현혹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들으니 깃털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여러 개의 가벼운 것이 수레 축을 부러뜨리고, 여러 입이 쇠를 녹이며, 헐뜯음이 쌓이면 뼈를 녹입니다. 그러므로 원하건데 대왕께서는 자세하게 살펴서 계획을 논의하여 정하십시오. 또 벼슬을 놓고 위나라를 피할 것입니다.
哀王於是乃倍從約而因儀請成於秦。張儀歸,復相秦。三歲而魏復背秦為從。秦攻魏,取曲沃。明年,魏復事秦。
애왕이 이에 곧 합종의 약속을 배반하고 장의로 인하여(장의를 중간에 세워) 진나라에 화친을 청하였다. 장의가 돌아가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3년 후 위나라가 다시 진나라를 배반하고 합종하였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곡옥’을 취하였다. 다음해 위나라가 진나라를 섬겼다.
秦欲伐齊,齊楚從親,於是張儀往相楚。楚懷王聞張儀來,虛上舍而自館之。曰:「此僻陋之國,子何以教之?」儀說楚王曰:「大王誠能聽臣,閉關絕約於齊,臣請獻商於之地六百里,[一]使秦女得為大王箕帚之妾,秦楚娶婦嫁女,長為兄弟之國。此北弱齊而西益秦也,計無便此者。」楚王大說而許之。群臣皆賀,陳軫獨弔之。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고자 하니 제나라가 초나라와 합종하였다. 이에 장의는 초나라에 가서 재상이 되려 하였다. 초나라 회왕이 장의가 온다는 것을 듣고는 좋은 집을 비우고 스스로 館(객사)에 가서 말하기를 “이 궁벽하고 비루한 나라에 그대는 무엇을 가르쳐 주려하시오” 했다. 장의가 초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진실로 신의 말을 듣고 關을 닫고, 제나라와 약속을 끊을 수 있다면 신은 ‘商’과 ‘於’땅 600리를 바치고 진나라 여자로 하여금 대왕의 청소하는 첩으로 삼게 하여 진나라와 초나라가 여자를 시집보내면 길이 형제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는 북으로 제나라를 약하게 하고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니 계책으로 이보다 편리한 것이 없습니다.” 초나라 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축하하였는데 진진만이 홀로 슬퍼하였다.
楚王怒曰:「寡人不興師發兵得六百里地,群臣皆賀,子獨弔,何也?」陳軫對曰:「不然,以臣觀之,商於之地不可得而齊秦合,齊秦合則患必至矣。」楚王曰:「有說乎?」陳軫對曰:「夫秦之所以重楚者,以其有齊也。今閉關絕約於齊,則楚孤。秦奚貪夫孤國,而與之商於之地六百里?
초나라 왕이 노하여 말하기를 “과인이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도 600리의 땅을 얻어서 여러 신하들이 축하하는데 그대만이 홀로 슬퍼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했다. 진진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살펴 보건데 ‘상’과 ‘어’의 땅은 얻지도 못하고, 제나라와 진나라가 합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합하면 곧 근심이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했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말할 거시 있는가?”하니 진진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저 진나라가 초나라를 소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제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關을 닫고 제나라에 약속을 끊으면 곧 초나라는 외로워집니다.(고립됩니다.) 진나라가 어찌 저 외로운(고립된) 나라를 탐하면서 ‘상’과 ‘어’의 땅 600리를 주겠습니까?” 했다.
張儀至秦,必負王,是北絕齊交,西生患於秦也,而兩國之兵必俱至。善為王計者,不若陰合而陽絕於齊,使人隨張儀。苟與吾地,絕齊未晚也;不與吾地,陰合謀計也。」楚王曰:「願陳子閉口毋復言,以待寡人得地。」乃以相印授張儀,厚賂之。於是遂閉關絕約於齊,使一將軍隨張儀。
(진진이 말하기를)“장의가 진나라에 이르면 반드시 왕을 배반할 것입니다. 이는 북으로는 제나라와의 교류를 끊고, 서쪽으로는 근심이 진나라에서 생겨나서 두 나라의 군대가 반드시 함께 이를 것입니다. 임금을 위한 좋은 계책은 안으로는 (제나라와)합하고, 밖으로는 제나라와 끊고 사람을 시켜 장의를 따르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당을 준다면 제나라와 끊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땅을 주지 않는다면 안으로 (제나라와) 합하는 계책입니다.” 하였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진자는 입을 닫고 다시 말하지 말 것을 원한다. 과인은 땅을 얻기를 기대한다.” 했다. 이에 재상의 印을 장의에게 주고 재물을 많이 주었다. 이에 마침내 관문을 닫고 제나라와 약속을 끊고, 한 장군으로 하여금 장의를 따르게 하였다.
[一] 索隱劉氏云:「商即今之商州,有古商城;其西二百餘里有古於城。」
[一] 【索隱】 유씨가 말하기를 “‘商’은 곧 지금의 ‘상주’이니 옛 ‘商城’이 있다. 그 서쪽 200여리에 옛 ‘於城’이 있다.
張儀至秦,詳失綏墮車,[一]不朝三月。楚王聞之,曰:「儀以寡人絕齊未甚邪?」乃使勇士至宋,借宋之符,北罵齊王。齊王大怒,折節而下秦。秦齊之交合,張儀乃朝,謂楚使者曰:「臣有奉邑六里,願以獻大王左右。」楚使者曰:「臣受令於王,以商於之地六百里,不聞六里。」還報楚王,楚王大怒,發兵而攻秦。陳軫曰:「軫可發口言乎?攻之不如割地反以賂秦,與之并兵而攻齊,是我出地於秦,取償於齊也,王國尚可存。」楚王不聽,卒發兵而使將軍屈擊秦。秦齊共攻楚,斬首八萬,殺屈,遂取丹陽、[二]漢中之地。[三]楚又復益發兵而襲秦,至藍田,大戰,楚大敗,於是楚割兩城以與秦平。
장의가 진나라에 이르자 거짓으로 끈을 잃고 수레에서 떨어져서 3개월을 조회하지 않았다. 초나라 왕이 그것을 듣고 말하기를 “장의는 과인이 제나라와 끊은 것이 심(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인가?” 하고는 용사로 하여금 송나라에 이르게 하고 송나라의 부절을 빌려 북으로 제나라 왕을 욕하였다. 제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부절을 부러뜨리고 진나라에 낮추었다. 진나라와 제나라가 사귀고 합하자 장의가 이에 조화하고 초나라 사신에게 말하기를 “신은 奉邑이 6리인데 대왕의 측근에게 바치고자 한다.” 하였다. 초나라 사자가 말하기를 “신이 왕에게 명을 받기를 ‘상’과 ‘於’의 땅 6백리라 하고, 6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는 돌아가 초나라 왕에게 보고하였다. 초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陳軫曰:「軫可發口言乎?攻之不如割地反以賂秦,與之并兵而攻齊,是我出地於秦,取償於齊也,王國尚可存。」楚王不聽,卒發兵而使將軍屈丐擊秦。秦齊共攻楚,斬首八萬,殺屈丐,遂取丹陽、[二]漢中之地。[三]楚又復益發兵而襲秦,至藍田,大戰,楚大敗,於是楚割兩城以與秦平。
진진이 말하기를 “내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공격하는 것은 땅을 떼어서 도리어 진나라에 뇌물로 주고 군대를 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진나라에 땅을 내어주고 제나라에 보상을 취하는 것이니 왕께서 나라를 오히려 보존할 수 있습니다.” 초나라 왕이 듣지 않고 마침내 군대를 내어 장군 굴개로 하여금 진을 치게 하였다. 진나라와 제나라가 같이 초나라를 쳐서 8만의 머리를 베고 굴개를 죽이며, 마침내 ‘단양’과 ‘한중’의 땅을 취하였다.(점령하였다.) 초나라가 또 다시 군대를 내어 진나라를 습격하려 하여 ‘남전’에 이르러 크게 싸웠으나 초나라가 크게 패하였다. 이에 초나라가 두 성을 떼어 진나라에 주고 화평하였다.
[一] 正義詳音羊。
[一] 【正義】 詳은 음이 羊이다.
[二] 集解徐廣曰:「在枝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지강’에 있다.” 했다.
[三] 正義今梁州也,在漢水北。
[三] 【正義】 지금의 ‘양주’이니 ‘한수’북쪽에 있다.
秦要楚[一]欲得黔中地,欲以武關外[二]易之。楚王曰:「不願易地,願得張儀而獻黔中地。」秦王欲遣之,口弗忍言。張儀乃請行。惠王曰:「彼楚王怒子之負以商於之地,是且甘心於子。」
진나라가 초나라에게 요구하여 검중의 땅을 얻고자 하여 무관 밖의 땅과 바꾸고자하였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땅을 바꾸기를 원하지 않고 장의를 얻으면 검중을 바치기를 원한다.” 했다. 진나라 왕이 그를 보내고자 하나 입으로 차마 말하지 못하였다. 장의가 이에 가기를 청하였다. 혜왕이 말하기를 “저 초나라 왕이 그대가 ‘상’, ‘어’(의 땅을 주기로 한 약속)를 저버린 것에 노하여 그대를 기꺼이 원하는 것이다.” 했다.
張儀曰:「秦彊楚弱,臣善靳尚,尚得事楚夫人鄭袖,袖所言皆從。且臣奉王之節使楚,楚何敢加誅。假令誅臣而為秦得黔中之地,臣之上願。」遂使楚。楚懷王至則囚張儀,將殺之。靳尚謂鄭袖曰:「子亦知子之賤於王乎?」鄭袖曰:「何也?」靳尚曰:「秦王甚愛張儀而不欲出之,[三]今將以上庸之地六縣[四]賂楚,美人聘楚,以宮中善歌謳者為媵。楚王重地尊秦,秦女必貴而夫人斥矣。不若為言而出之。」
장의가 말하기를 “진나라는 강하고 초나라는 약합니다. 신이 ‘근상’을 잘 알고 근상이 초나라 부인 정수를 섬기는데 정수가 말한 바를 (초나라 왕이)모두 따릅니다. 또 신이 왕의 부절을 받들고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면 초나라가 어찌 감히 죽일 수 있겠습니까? 가령 신을 죽이더라도 진나라를 위해 검중의 땅을 얻는다면 신이 가장 바라던 것입니다.” 했다. 마침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초나라 회왕이 (장의가)이르자 장의를 가두고 장차 죽이려 했다. 근상이 정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는 또한 그대의 왕에게 천함을 받을 것을 알고 있습니까?” 하니 정수가 말하기를 “무엇 때문인가?” 했다. 근상이 말하기를 “진나라 왕이 장의를 매우 사랑하여 반드시 나오게 하려하여 지금 장차 상용의 땅 6현을 초나라에 뇌물로 주고, 미인을 초나라에 시집가게 하고, 궁중의 노래 잘하는 자로써 잉첩으로 삼게 하고자 합니다. 초나라 왕은 땅을 소중히 하고 진나라를 높이니 진나라의 여자가 반드시 귀하게 되고 부인은 배척될 것입니다. 말을 하여 그(장의)를 내보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했다.
於是鄭袖日夜言懷王曰:「人臣各為其主用。今地未入秦,秦使張儀來,至重王。王未有禮而殺張儀,秦必大怒攻楚。妾請子母俱遷江南,毋為秦所魚肉也。」懷王後悔,赦張儀,厚禮之如故。
이에 정수가 밤낮으로 회왕에게 말하기를 “신하는 각각 그 임금을 위하여 쓰입니다. 지금 땅이 아직 진나라에 들어가지(떼어주지) 않았는데 진나라 사신 장의가 온 것은 왕을 지극히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왕께서 예를 두지 않고 장의를 죽인다면 진나라가 반드시 크게 노하여 초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첩은(저는) 아이들과 어머니가 함께 강남에 옮겨가서 진나라에 의해 물고기 밥이 되지 않기를 청합니다.” 했다. 회왕이 후회하면서 장의를 풀어주고 예우를 두텁게 하기를 옛날과 같이 하였다.
[一] 正義要音腰也。
[一] 【正義】 ‘要’의 음은 ‘腰’이다.
[二] 正義即商於之地。
[二] 【正義】 곧 ‘상’, ‘어’의 땅이다.
[三] 索隱按:「不」字當作「必」。時張儀為楚所囚,故必欲出之也。正義秦王不欲出張儀使楚,若欲自行,今秦欲以上庸地及美人贖儀。
[三] 【索隱】 살펴보니 “‘不’자는 마땅히 ‘必’자로 써야 한다. 이 때 장의가 초나라에 가두어져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나오게 하고자 한 것이다. 【正義】 진나라 왕이 장의를 초나라에 사신으로 내보내려 하지 않았는데, 만약 스스로 갔다면 지금 진나라는 상용의 땅과 미인으로써 장의를 대신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四] 正義今房州也
[四] 【正義】 지금의 ‘방주’이다.
張儀既出,未去,聞蘇秦死,[一]乃說楚王曰:「秦地半天下,兵敵四國,被險帶河,四塞以為固。虎賁之士百餘萬,車千乘,騎萬匹,積粟如丘山。法令既明,士卒安難樂死,主明以嚴,將智以武,雖無出甲,席卷常山之險,必折天下之脊,[二]天下有後服者先亡。且夫為從者,無以異於驅群羊而攻猛虎,虎之與羊不格明矣。今王不與猛虎而與群羊,臣竊以為大王之計過也。
장의가 나와서 아직 떠나가지 않았는데 소진이 죽은 것을 듣고 이에 초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진나라의 땅이 천하의 반이고, 군대는 네 나라를 대적하며, 험함을 입고 河가 둘러쳐져 있으며, 4방의 요새로 견고합니다. 호랑이처럼 날랜 군사가 백여만이고, 수레가 천승이며, 타는 말이 만필이며, 쌓인 곡식이 언덕과 산과 같습니다. 법령은 이미 밝고 사졸은 어려움을 편안히 여기고 죽음을 즐겁게 여기며 임금은 현명하고 엄격하며, 장수는 지혜롭고 용감하여 비록 군대를 내지 않아도 상산의 험함을 돗자리를 마는듯한 기세로 반드시 천하의 등을 꺽을 것이니 천하에 늦게 복종함이 있는 자가 먼저 망할 것입니다. 또 저 합종을 하는 자는 양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호랑이의 양에 함께하는 격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옹께서 사나운 호랑이와 함께 하지 않고 양떼와 함께 한다면 신은 가만히(저으기) 대왕의 계책이 잘 못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一] 索隱按:此時當秦惠王之後元十四年。
[一] 【索隱】 살펴보니 이때는 진나라 혜왕 후원 14년에 해당한다.
[二] 索隱按:常山於天下在北,有若人之背脊也。正義古之帝王多都河北、河東故也。
[二] 【索隱】 살펴보니 천하에서 상산은 북쪽에 있으니 사람의 등뼈와 같음이 있다. 【正義】 옛날의 제왕이 많이 하북과 하동에 도읍하였기 때문이다.
「凡天下彊國,非秦而楚,非楚而秦,兩國交爭,其勢不兩立。大王不與秦,秦下甲據宜陽,韓之上地不通。下河東,取成皋,韓必入臣,梁則從風而動。秦攻楚之西,韓、梁攻其北,社稷安得毋危?
무릇 천하의 강한 나라는 진나라가 아니면 초나라이고, 초나라가 아니면 진나라이니 두 나라가 서로 다투어 그 형세가 兩立하지 못하였습니다. 대왕이 진나라와 함께 하지 않으면 진나라는 갑사를 내려 보내 의양에 근거하여 한나라 상군의 땅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하동을 내려가 ‘성고’를 취하면 한나라는 반드시 (진나라에) 신하로 들어올 것이며, 양은 곧 바람을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진나라가 초나라의 서쪽을 공격하면 한나라와 양은 그 북쪽을 공격할 것이니 사직이 어찌 위태로움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且夫從者聚群弱而攻至彊,不料敵而輕戰,國貧而數舉兵,危亡之術也。臣聞之,兵不如者勿與挑戰,[一]粟不如者勿與持久。夫從人飾辯虛辭,高主之節,言其利不言其害,卒有秦禍,[二]無及為已。是故願大王之孰計之。
또 저 합종하는 자는 여러 약한 것을 모아 지극히 강한 자를 공격하고 적을 헤아리지 않고 가벼이 싸우며, 나라가 가난함에도 여러 번 군대를 일으키니 위태롭고 망함의 방법입니다. 신이 들으니 군대가 같은 자가 아니면 도전하지 말라 하고, 곡식이 같은 자가 아니면 오래 기다리지 말라 하였습니다, 저 합종을 하는 자는 말을 꾸미고 말을 헛되게 하여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것을)임금의 절조라 하여 높이고 그 이로움은 말하지만 그 해로움은 말하지 않아 마침내(갑자기) 진나라의 재앙이 있어도 그치게 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대왕께서는 계책을 숙고할 것을 바랍니다.
[一] 正義挑,田鳥反。
[一] 【正義】 ‘挑’는 음이 ‘田’과 ‘鳥’의 反이다.
[二] 正義卒,悤勿反。
[二] 【正義】 ‘卒’의 음은 ‘悤’과 ‘勿’의 反이다.
「秦西有巴蜀,大船積粟,起於汶山,[一]浮江已下,至楚三千餘里。舫船[二]載卒,一舫載五十人與三月之食,下水而浮,一日行三百餘里,里數雖多,然而不費牛馬之力,不至十日而距扞關。[三]扞關驚,則從境以東盡城守矣,黔中、巫郡非王之有。秦舉甲出武關,南面而伐,則北地絕。[四]秦兵之攻楚也,危難在三月之內,而楚待諸侯之救,在半歲之外,此其勢不相及也。夫(待)[恃]弱國之救,忘彊秦之禍,此臣所以為大王患也。
진나라 서쪽에는 파와 촉이 있는데 큰 배에 곡식을 쌓고 문산에서 일어나 강에 띄워 내려가면 초나라에 이르기까지 삼천리입니다. 한 쌍의 배에 병졸을 싣는데 한 배에 50인과 3개월의 식량을 싣고 물에 떠서 내려가면 하루 가는 것이 300여리입니다. 里수(거리)가 비록 많지만 그러하나 우마의 힘을 허비하지 않고도 10일이 지나지 않아 한관에 이릅니다. 한관이 놀라면 곧 국경을 따라 동쪽으로 모두 성을 지키게 될 것이니 검중과 무군은 왕의 소유가 아니게 됩니다.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문관을 나와 남쪽을 향하여 치면 곧 뷱쪽의 땅이 끊어집니다. 진나라 군대의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위태로움과 어려움이 3개월 안에 있게 되는데 초나라가 제후의 구함을 기다리는 것은 반년이 넘게 있으니 이는 그 형세가 서로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 약한 나라의 구원함을 기다리느라 강한 진나라의 재앙을 잊는 것입니다. 이는 신이 대왕을 위하여 근심하는 까닭입니다.
[一] 正義汶音泯。
[一] 【正義】 ‘汶’의 음은 ‘泯’이다.
[二] 索隱枋船。枋音方,謂並兩船也。亦音舫。
[二] 【索隱】 ‘枋’은 배이다. ‘枋’의 음은 ‘方’이니 두 배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또한 음이 ‘舫’이다.
[三] 集解徐廣曰:「巴郡魚復縣有扞水關。」 索隱扞關在楚之西界。復音伏。按:地理志巴郡有魚復縣。正義在硤州巴山縣界。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파군 어복현에 하수관이 있다.” 했다. 【索隱】 한관은 초나라의 서쪽 경계에 있다. ‘復’의 음은 ‘伏’이다.
[四] 正義楚之北境斷絕。
[四] 【正義】 초나라의 북쪽 국경이 끊어진다.
「大王嘗與吳人戰,五戰而三勝,陣卒盡矣;偏守新城,[一]存民苦矣。臣聞功大者易危,而民敝者怨上。夫守易危之功而逆彊秦之心,臣竊為大王危之。
대왕께서 일찍이 오나라 사람들과 싸웠는데 5번 싸워 3번 이겼으되 진을 친 군사는 다(전멸)하고 궁벽히 신성을 지키며 백성의 괴로움을 보존하였습니다.(남겼습니다.) 신이 들으니 큰 공은 쉽게 위태로워지고, 백성이 해지면(피폐해지면) 윗사람을 원망한다고 합니다. 위태로움을 쉽게 하는 공을 지키고, 강한 진나라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을 신은 가만히 대왕이 위태롭다 여깁니다.
[一] 索隱偏,匹連反。此云「新城」,當在吳楚之閒。正義新攻得之城,未詳所在。
[一] 【索隱】 ‘偏’은 ‘匹’과 ‘連’의 反이다.
「且夫秦之所以不出兵函谷十五年以攻齊、趙者,陰謀有合[一]天下之心。楚嘗與秦構難,戰於漢中,[二]楚人不勝,列侯執珪死者七十餘人,遂亡漢中。楚王大怒,興兵襲秦,戰於藍田。此所謂兩虎相搏[三]者也。夫秦楚相敝而韓魏以全制其後,計無危於此者矣。願大王孰計之。
또 진나라가 함곡관을 나와 15년 동안 제나라와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은 까닭은 몰래 천하를 합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나라가 일찍이 진나라와 어려움을 엮어 한중에서 싸웠는데 초나라 사람들이 이기지 못하고, 열후인 규를 잡고 죽은 자가 70여인이었으며, 마침내 한중을 잃었습니다. 초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여 남전에서 싸웠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두 호랑이가 서로 쳤다는 것입니다. 저 진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피폐해지면 한나라와 위나라가 (세력을)온전히 하여 그 뒤를 제재할 것이니 계책이 이보다 위태로운 것이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계책을 숙고하시길 바랍니다.
[一] 集解徐廣曰:「一作『吞』。」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 ‘呑’이라고도 쓴다.
[二] 索隱其地在秦南山之南,楚之西北,漢水之北,名曰漢中。
[二] 【索隱】 그 땅은 진나라 남산의 남쪽, 초나라의 서북쪽, 한수의 북쪽에 있어서 한중이라 이름한 것이다.
[三] 集解徐廣曰:「或音『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혹 음을 ‘戟’이라 한다.” 했다.
「秦下甲攻衛陽晉,必大關天下之匈。[一]大王悉起兵以攻宋,不至數月而宋可舉,舉宋而東指,則泗上十二諸侯[二]盡王之有也。
진나라가 군대를 내려 보내 위나라 양진을 치면 반드시 천하의 심장을 크게 막는 것입니다. 대왕은 모든 군대를 일으켜 송을 공격하고 몇 개월 되지 않아 송나라를 점령할 수 있고, 송나라를 점령하고 동쪽을 가리키면 곧 사수 가의 12제후는 모두 왕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一] 集解徐廣曰:「關,一作『開』。」 索隱攻衛陽晉,大關天下胸。夫以常山為天下脊,則此衛及陽晉當天下胸,蓋其地是秦、晉、齊、楚之交道也。以言秦兵據陽晉,是大關天下胸,則他國不得動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關’은 한편으로 ‘開’로 쓴다.” 【索隱】 “위나라 양진을 쳐서 천하의 가슴을 크게 막는다.”는 것은 대저 상산이 천하의 척추가 되니 곧 이는 위나라와 양진이 천하의 가슴에 해당하는데 대개 그 땅은 秦나라, 晉나라, 제나라, 초나라가 길을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지고 진나라 군대가 양진에 웅거하여 천하의 가슴을 크게 막으면 곧 다른 나라들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二] 索隱謂邊近泗水之側,當戰國之時有十二諸侯,宋、魯、邾、莒之比也。
[二] 【索隱】 사수의 옆 가까운 곳에 전국시대의 12제후가 있었는데 송나라, 노나라, 주나라, 거나라 등등이다.
「凡天下而以信約從親相堅者蘇秦,封武安君,相燕,即陰與燕王謀伐破齊而分其地;乃詳有罪出走入齊,齊王因受而相之;居二年而覺,齊王大怒,車裂蘇秦於市。夫以一詐偽之蘇秦,而欲經營天下,混一諸侯,[一]其不可成亦明矣。
무릇 천하에 합종의 맹약으로써 서로 굳게 한 자는 소진인데 무안군에 봉해지고, 연나라의 재상이 되어 은밀히 연나라 왕과 제나라를 쳐서 깨트리고 그 땅을 나눌 것을 도모하였다. 이에 거짓으로 죄를 짓고 나와 달려서 제나라에 들어가니 제나라 왕이 인하여 받아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머문지 2년에 발각되니 제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시장에서 소진을 수레로 찢어 죽였습니다. 대저 속이고 거짓을 하는 소진이 천하를 경영하여 제후를 섞어 하나로 하고자 한 것이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또한 분명합니다.
[一] 索隱混,本作「棍」,同胡本反。
[一] 【索隱】 ‘混’은 본래 ‘棍’이라 썼는데 (음은)같이 胡와 本의 반이다.
「今秦與楚接境壤界,固形親之國也。大王誠能聽臣,臣請使秦太子入質於楚,楚太子入質於秦,請以秦女為大王箕帚之妾,效萬室之都以為湯沐之邑,長為昆弟之國,終身無相攻伐。臣以為計無便於此者。」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는 국경과 땅의 경계를 접하여 진실로 형세가 친한 나라입니다. 대왕이 진실로 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신은 진나라 태자가 초나라에 인질로 들어가고 초나라 태자는 진나라에 인질로 들어오게 할 것을 청합니다. 진나라 여자로서 대왕을 위해 잡일을 하는 첩이되게 하며, 만호의 도읍을 주는 것으로써 탕목의 읍을 삼아 길이 형제의 나라가 되어 죽을 때까지 서로 공격하여 치는 일 이 없기를 청합니다. 신은 계책으로 이보다 편리한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於是楚王已得張儀而重出黔中地與秦,欲許之。屈原曰:「前大王見欺於張儀,張儀至,臣以為大王烹之;今縱弗忍殺之,又聽其邪說,不可。」懷王曰:「許儀而得黔中,美利也。後而倍之,不可。」故卒許張儀,與秦親。
이에 초나라 왕이 이미 장의를 얻었으므로 거듭 검중의 땅을 내어 진나라에 주어 허락하고자 했다. 굴원이 말하기를 “앞서 내왕은 장의에게 속임을 당하였는데 장의가 이르렀으니 신은 대왕이 그를 삶아야(烹刑) 한다고 여깁니다. 지금 석방하여 차마 그를 죽이지 않고 또 그 간사한 말을 듣는 것은 불가합니다.” 했다. 회왕이 말하기를 “장의를 허락하여 검중을 얻는 것은 좋은 이익이다. (약속하고서)뒤에 배반하는 것은 옳지 않다.” 했다. 그러므로 마침내 장의를(장의의 말을) 허락하고 진나라와 친교하였다.
張儀去楚,因遂之韓,說韓王曰:「韓地險惡山居,五穀所生,非菽而麥,民之食大抵(飯)菽[飯]藿羹。一歲不收,收不饜糟糠。地不過九百里,無二歲之食。料大王之卒,悉之不過三十萬,而廝徒負養[一]在其中矣。除守徼亭鄣塞,見卒不過二十萬而已矣。秦帶甲百餘萬,車千乘,騎萬匹,虎賁之士跿跔科頭[二]貫頤[三]奮戟者,[四]至不可勝計。
장의가 초나라를 떠나 한나라로 가서 한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한나라는 땅이 험악하고 산에 살아서 생산되는 곡식은 콩 아니면 보리이며, 백성들이 먹는 것은 대개 콩밥에 콩잎 국입니다. 1년을 거두지 못하면 지게미와 쌀겨를 실컷 먹지 못합니다. 땅은 900리에 지나지 않고, 2년의 식량이 없습니다. 대왕의 군대를 헤아려 보면 모두 30만에 지나지 않는데 그 안에 하인의 무리와 잡부들이 있습니다.(포함됩니다.) 徼亭과 鄣塞를 지키는 이를 제하면 보이는 군가가 20만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진나라는 갑옷을 두른 군사가 백여만, 수레가 천대, 타는 말이 만필이며 호랑처럼 날랜 군사가 도약하고 투구를 쓰지 않고 두 손으로 턱을 들어 올리며 곧바로 적에게 들어가 창을 떨치는 자를 이루 헤아리지 못합니다.
秦馬之良,戎兵之眾,探前趹後[五]蹄閒三尋[六]騰者,不可勝數。山東之士被甲蒙冑以會戰,秦人捐甲徒裼[七]以趨敵,左挈人頭,右挾生虜。夫秦卒與山東之卒,猶孟賁之與怯夫;以重力相壓,猶烏獲之與嬰兒。夫戰孟賁、烏獲之士以攻不服之弱國,無異垂千鈞之重於鳥卵之上,必無幸矣。
진나라 말은 좋고, 병사들은 많으며 말의 앞발은 앞을 향하고 뒷발은 뒤에서 땅을 차 빨리 달려서 발굽사이가 三尋(21尺)을 뛰어 오르는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산동의 군사들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싸우지만 진나라 사람들은 갑옷을 벗고, 웃통을 벗어 어깨를 드러내는 것으로써 적에게 달려가 왼 손으로는 사람의 머리를 끊고 오른 손으로는 살아있는 포로를 낍니다. 저 진날의 군사와 산동의 군사는 孟賁과 비겁한 남자에 대해서와 같고, 무거운 힘으로써 서로 누르는 것이 오획과 어린아이에 대해서와 같습니다. 저 맹분과 오획의 군사를 싸우게 하는 것으로써 복종하지 않는 약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천균의 무거움을 새 알의 위에 누르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반드시 요행은 없을 것입니다.
[一] 索隱冢音斯,謂雜役之賤者。負養謂負檐以給養公家,亦賤人也。
[一] 【索隱】 ‘冢’의 음은 ‘斯’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천한 자이다. 부양은 公家를 給養하는 부담을 말하니 또한 천인이다.
[二] 集解跿跔音徒俱,跳躍也。又云偏舉一足曰跿跔。科頭謂不著兜鍪入敵。 索隱跿跔音徒俱二音。跔又音劬。劉氏云「謂跳躍也」。又韻集云「偏舉一足曰跿跔」。戰國策曰「虎之士跿跔」。科頭謂不著兜鍪。
[二] 【集解】 跿跔의 음은 徒俱이니 도약이다. 또한 한쪽 발을 치우쳐 드는 것을 跿跔라고 한다. 과두는 투구를 쓰지 않고 적에게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索隱】 跿跔의 음은 徒俱 두 음이다. ‘跔’는 또 음이 劬이다. 유씨가 말하기를 “도약을 말한다.” 했다. 또 『韻集』에 치우쳐서 “한 쪽 발을 드는 것을 跿跔 라. 한다.” 했다. 『戰國策』에 “범 같은 사나운 사람 용사를 도구라 한다.” 했다. 과두는 투구를 쓰지 않는 것이다.
[三] 索隱謂兩手捧頤而直入敵,言其勇也。
[三] 【索隱】 두 손으로 턱을 받쳐 들고 곧바로 적에게 들어가는 것을 말함이니 그 용맹스러움을 말한다.
[四] 集解執戟奮怒而入陳也。索隱謂又有執戟者奮怒而趨入陣。
[四]【集解】 창을 잡고 분노하여 진에 들어가는 것이다. 【索隱】 또 창을 잡은 자가 분노하면서 진에 달려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五] 索隱謂馬前足探向前,後足趹於後。趹音烏穴反。趹謂後足抉地,言馬之走埶疾也。
[五] 【索隱】 말의 앞발은 앞을 찾아 향하고 뒷발은 뒤에서 차는 것을 말한다. ‘趹’의 음은 ‘烏’와 ‘穴’의 反 이다. 抉은 뒷발이 땅을 파는 것이니 말이 빨리 달리는 것을 말한다.
[六] 索隱按:七尺曰尋。言馬走之疾,前後蹄閒一擲過三尋也。
[六] 【索隱】 살펴보니 일곱 자를 ‘尋’이라 하니 말이 달리기를 빨리 하여 앞과 뒷발굽 사이가 한 번 던지면 三尋을 넘는 것을 말한다.
[七] 索隱徒者,徒跣也。裼,袒也,謂袒而見肉也。
[七] 【索隱】 ‘徒’는 맨발이다, ‘裼’은 袒 이다. 웃통을 벗어 고기를 보이는 것이다.
「夫群臣諸侯不料地之寡,而聽從人之甘言好辭,比周以相飾也,皆奮曰『聽吾計可以彊霸天下』。夫不顧社稷之長利而聽須臾之說,詿誤人主,無過此者。「大王不事秦,秦下甲據宜陽,斷韓之上地,東取成皋、滎陽,則鴻臺之宮、桑林之苑[一]非王之有也。夫塞成皋,絕上地,則王之國分矣。先事秦則安,不事秦則危。夫造禍而求其福報,計淺而怨深,逆秦而順楚,雖欲毋亡,不可得也。
저 뭇 신하와 제후들이 땅의 적음을 헤아리지 않고 합종하는 사람들의 달콤하고 좋은 말을 듣고 두루 가까이하는 것으로써 서로 꾸며서 모두 분연히 말하기를 “내 계교를 들으면 천하에 강하게 하는 것으로써 천하에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합니다. 저 사직의 긴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잠깐의 설득하는 말을 듣는 것은 임금을 그르치고 잘못되게 하는 것이 이보다 지나친 것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진나라가 군대를 내려 보내 의양에 근거하여 한나라의 上地를 끊고 동쪽으로는 성고, 형양을 취하면 곧 홍대의 궁과 상림의 동산(苑)이 왕의 소유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대저 성고를 막고 上地를 끊으면 곧 왕의 나라는 나누어집니다. 먼저 진나라를 섬기면 곧 편안하고,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위태롭습니다. 대저 재앙에 나아가면서 그 복으로 보답받기를 구하는 것은 계책은 얕고 원망은 깊으니 진나라를 거스르고 초나라를 따르면서 비록 망하지 않으려 하나 할 수 없습니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一] 集解徐廣曰:「桑,一作『栗』。」 索隱按:此皆韓之宮苑,亦見戰國策。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桑’은 ‘栗’로도 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이는 모두 한나라의 궁원이니 또한 『戰國策』에 보인다.
「故為大王計,莫如為秦。[一]秦之所欲莫如弱楚,而能弱楚者如韓。非以韓能彊於楚也,其地勢然也。今王西面而事秦以攻楚,秦王必喜。夫攻楚以利其地,轉禍而說秦,計無便於此者。」
그러므로 대왕의 계책은 진나라를 위하는 것만 한 것(진나라를 섬기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진나라의 하고자 하는 바는 초나라를 약하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고, 초나라를 약하게 할 수 있는 자는 한나라입니다. 한나라가 초나라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그 땅의 형세가 그러한 것입니다. 지금 왕께서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고 초나라를 공격하면 진나라 왕은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저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으로써 그 땅을 이롭게 하고 재앙을 굴려서 진나라를 기쁘게 하는 것은 계책으로 이보다 편리한 것이 없습니다.
[一] 集解為,于偽反。
[一] 【集解】 ‘爲’는 ‘于’와 ‘僞’의 反이다.
韓王聽儀計。張儀歸報,秦惠王封儀五邑,號曰武信君。使張儀東說齊湣王曰:「天下彊國無過齊者,大臣父兄殷眾富樂。然而為大王計者,皆為一時之說,不顧百世之利。從人說大王者,必曰『齊西有彊趙,南有韓與梁。齊,負海之國也,地廣民眾,兵彊士勇,雖有百秦,將無柰齊何』。大王賢其說而不計其實。夫從人朋黨比周,莫不以從為可。臣聞之,齊與魯三戰而魯三勝,國以危亡隨其後,雖有戰勝之名,而有亡國之實。是何也?齊大而魯小也。今秦之與齊也,猶齊之與魯也。秦趙戰於河漳之上,再戰而趙再勝秦;戰於番吾[一]之下,再戰又勝秦。四戰之後,趙之亡卒數十萬,邯鄲僅存,雖有戰勝之名而國已破矣。是何也?秦彊而趙弱。
한나라 왕이 장의의 계책을 들었다. 장의가 돌아와 보고하니 진나라 혜왕이 장의를 다섯 개 읍에 봉하고, 호를 주어 무신군이라 했다. 장의로 하여금 동쪽으로 제나라 혼왕을 설득하게 하였다. (장의가 말하기를) “천하의 강한 나라로는 제나라보다 나은 것이 없어 대신과 부형이 크게 많고, 부유하며 즐거워합니다. 그러하나 대왕을 위한 계책은 모두 한 때의 말이고, 백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합종을 따르는 사람들이 대왕에게 말한 것은 반드시 제나라의 서쪽에는 강한 조나라가 있고, 남쪽에는 한나라와 양나라가 있습니다. 제나라는 바다를 지고 있는 나라로 땅이 넓고 백성이 많으며, 군대는 강하고 병사는 용감하니 비록 백 개의 진나라가 있어도 장차 제나라를 어찌할 수 없다.” 했을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그 말을 현명하다 여기면서도 그 실제를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대저 합종을 따르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가까이하면서 합종으로써 가능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신이 들으니 제나라와 노나라가 세 번을 싸워 노나라가 세 번을 이기도 나라는 위태로워 망하는 것으로써 그 뒤를 따라서 비록 전쟁에 이겼다는 이름은 있었으나 나라를 망하게 하는 실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째서 입니까? 제나라는 크고 노나라는 작습니다. 지금 진나라의 제나라와의 관계는 제나라와 노나라의 관계와 같습니다. 진나라와 조나라가 하수와 장수의 가에서 싸우는데 두 번 싸워서 조나라가 진나라를 두 번을 이기고, 번오의 아래에서 싸워서 두 번을 싸워 또 진나라를 이겼습니다. 네 번을 싸운 뒤에 조나라의 죽은 병졸의 수가 10만인데 한단을 겨우 보존하였으니 비록 전쟁에 이김의 명예가 있으나 나라는 이미 깨짐이 있었었습니다. 이는 어째서입니까? 진나라가 강하고 조나라는 약했기 때문입니다.
[一] 索隱上音盤,又音婆,趙之邑也。
[一] 【索隱】 ‘上’의 음은 ‘盤’이니 조나라의 읍이다.
「今秦楚嫁女娶婦,為昆弟之國。韓獻宜陽;梁效河外;[一]趙入朝澠[二]池,割河閒[三]以事秦。大王不事秦,秦驅韓梁攻齊之南地,悉趙兵渡清河,指博關,[四]臨菑、即墨非王之有也。國一日見攻,雖欲事秦,不可得也。是故願大王孰計之也。」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는 딸을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맞아서 형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나라는 의양을 바치고 양은 河의 밖을 주었으며, 조나라는 승지에서 入朝하고 하간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써 진나라를 섬깁니다.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진나라는 한나라와 양을 몰아서 제나라의 남쪽을 공격하고 모든 조나라의 군대가 청하를 건너 박관을 향하면 임치와 즉묵은 왕의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 (제)나라는 하루를 공격당하면 비록 진나라를 섬기고자 하여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시길 원합니다.
[一] 索隱按:河外,河之南邑,若曲沃、平周等也。正義謂同、華州地也。
[一] 【索隱】 살펴보니 ‘河外’는 (黃)河의 남쪽 읍이니 ‘곡옥’, ‘평주’ 등과 같은 것이다. 【正義】 ‘동주’와 ‘화주’의 땅을 말한다.
[二] 集解綿善反。
[二] 【集解】 ‘綿’과 ‘善’의 反이다.
[三] 索隱謂河漳之閒邑,暫割以事秦耳。正義河閒,瀛州縣。
[三] 【索隱】 황하와 장수의 사이 읍을 말하니 잠시 떼어서 진을 섬겼을 뿐이다. 【正義】 ‘하간’은 ‘영주’이다.
[四] 正義博關在博州。趙兵從貝州度黃河,指博關,則漯河南臨淄、即墨危矣。
[四] 【正義】 ‘박관’은 ‘박주’에 있다. 조나라 군대가 ‘패주’로부터 ‘황하’를 건너 ‘박관’을 향하면 곧 ‘탑하’ 남쪽의 ‘임치’, ‘즉금’이 위태로워진다.
齊王曰:「齊僻陋,隱居東海之上,未嘗聞社稷之長利也。」乃許張儀。張儀去,西說趙王曰:「敝邑秦王使使臣效愚計於大王。大王收率天下以賓秦,秦兵不敢出函谷關十五年。大王之威行於山東,敝邑恐懼懾伏,繕甲厲兵,飾車騎,[一]習馳射,力田積粟,守四封之內,愁居懾處,不敢動搖,唯大王有意督過之也。[二]
제나라 왕이 말하기를 “제나라는 치우치고 비루하여 동해가에 숨어살아 일찍이 사직의 오랜 이익을 듣지 못하였다.” 하고는 이에 장의(의 말을)를 허락하였다. 장의가 떠나서 서쪽의 조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우리 진나라 왕이 신을 사신으로 하여 어리석은 계책을 대왕에게 올리게 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천하를 거두어 거느리는 것으로써 진나라를 물리치니 진나라 군대가 감히 함곡관을 나오지 못한 것이 15년이었습니다. 대왕의 위엄이 산동에 행해지니 우리 진나라가 두려워하여 복종하고 갑옷을 수선하고 군대를 훈련시키며, 수레와 말을 꾸미고 말을 타고 달리며 활쏘기를 연습하며, 농사에 힘써 곡식을 저축하면서 사방의 경계 안을 지키고 머무는 것을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던 것은 오직 대왕의 뜻이 허물을 감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一] 正義飾音敕。
[一] 【正義】 ‘飾’의 음은 ‘敕(勅과 同)’이다.
[二] 索隱督者,正其事而責之。督過,是深責其過也。
[二] 【索隱】 ‘督’은 그 일을 바로 잡고 책망하는 것이다. ‘督過’는 깊이 그 허물을 바로잡고 책망하는 것이다.
「今以大王之力,舉巴蜀,并漢中,包兩周,遷九鼎,守白馬之津。秦雖僻遠,然而心忿含怒之日久矣。今秦有敝甲凋兵,軍於澠池,願渡河踰漳,據番吾,會邯鄲之下,願以甲子合戰,以正殷紂之事,敬使使臣先聞左右。
지금 대왕의 힘으로 파촉을 공략하고 한중을 병합하며, 양주를 포용하고 九鼎을 옮기고, 백마의 진을 지켰습니다. 진나라가 비록 궁벽지고 멀다하나 마음에 분함을 품고 노한 날이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진나라가 갑옷이 해지고, 군대가 피로하지만 승지에 진치고 하를 건너고 장수를 넘어 번오를 점거하여 한단의 아래에서 만나 갑자일에 싸우기를 원합니다. (이는)은나라 주왕을 바로잡은 일을 가지고 공경히 사신으로 하여금 먼저 좌우에게 듣게 한 것입니다.
「凡大王之所信為從者恃蘇秦。蘇秦熒惑諸侯,以是為非,以非為是,欲反齊國,而自令車裂於市。夫天下之不可一亦明矣。今楚與秦為昆弟之國,而韓梁稱為東藩之臣,齊獻魚鹽之地,此斷趙之右臂也。夫斷右臂而與人鬥,失其黨而孤居,求欲毋危,豈可得乎?
무릇 대왕이 합종을 하는 자를 믿는 것은 소진을 믿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제후를 미혹하여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하고 제나라를 배반하고 스스로 시장에서 거열형을 받았습니다. 저 저 천하를 하나로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초나라와 진나라는 형제의 나라가 되고, 한나라와 양(위나라)은 동쪽의 藩臣 되었다고 말하였으며,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을 바치는 땅이라 하니 이는 조나라의 오름 팔을 자는 것입니다. 오른 팔을 자르고 다른 사람과 다투면 그 무리를 잃고 외로이 사는 것이니 위태롭지 않으려 해도 어찌 될 수 있겠습니까?
「今秦發三將軍:其一軍塞午道,[一]告齊使興師渡清河,軍於邯鄲之東;一軍軍成皋,驅韓梁軍於河外;[二]一軍軍於澠池。約四國為一以攻趙,趙(服)[破],必四分其地。是故不敢匿意隱情,先以聞於左右。臣竊為大王計,莫如與秦王遇於澠池,面相見而口相結,請案兵無攻。願大王之定計。」
지금 진나라가 세 장군을 내어 한 장군은 오도를 막고 제나라에 말하여 군대를 일으켜 청하를 건너게 하여 한단의 동쪽에 진을 치게 하고, 한 장군은 성고에 진을 치고 한나라와 양(위나라)을 몰아서 하의 밖에 진을 치게 하며, 한 장군은 승지에 진을 치게 합니다. 네 나라를 묶어 하나로 하여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를 복종시키고 캐트리면 반드시 그 땅을 4개로 나눌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감히 뜻을 숨기고 정을 숨기지 않고 우선 좌우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신이 가만히 대왕을 위해 헤아려보니 진나라 왕과 승지에서 만나 서로 얼굴을 서로보고 서로 입을 맺어 군대를 살펴도 공격함이 없도록 할 것을 청합니다. 원하건데 대왕께서는 계책을 정할 것을 바랍니다.
[一] 索隱此午道當在趙之東,齊之西也。午道,地名也。鄭玄云「一縱一橫為午」,謂交道也。
[一] 【索隱】 이 ‘오도’는 마땅히 조나라의 동쪽, 제나라의 서쪽에 있어야 한다. ‘오도’는 지명이다. 정현이 말하기를 “한번 세로로 하고, 한 번 가로로 하는 것을 ‘午’라 하는데 길이 교차하는 것을 말한다.
[二] 正義河外謂鄭、滑州,北臨河。
[二] 【正義】 하외는 정나라, 활주를 말하니 북으로 하에 맞대어 있다.
趙王曰:「先王之時,奉陽君專權擅勢,蔽欺先王,獨擅綰事,寡人居屬師傅,不與國謀計。先王棄群臣,寡人年幼,奉祀之日新,心固竊疑焉,以為一從不事秦,非國之長利也。乃且願變心易慮,割地謝前過以事秦。方將約車趨行,[一]適聞使者之明詔。」趙王許張儀,張儀乃去。
조나라 왕이 말하기를 “선왕 때에 봉양군이 권력을 오로지 하고 세력을 함부로 하여 선왕을 가리고 속이고 독단적으로 일을 얽을 때 과인은 (궁궐에) 머물고 사부에게 속해(공부하고) 있어서 나라를 도모하는 계책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선왕이 여러 신하를 버리자(돌아가시자) 과인은 나이가 어려 제사를 받듦(정사에 참여한)의 날이 새로워(오래되지 않아) 마음에 진실로 가만히 의심이 있었는데 합종하는 것 하나로써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것은 나라의 긴 이익이 아니라 여겨집니다. 이에 도한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어 땅을 나누는 것으로 앞의 허물을 사과하고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바야흐로 장차 수레를 묶고 달려가려는데 마침 使者의 밝은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했다. 조나라 왕이 장의(의 말을) 허락하자 장의가 이에 떠나갔다.
[一] 正義趨音趣。
[一] 【正義】 ‘趨’의 음은 ‘趣’이다.
北之燕,說燕昭王曰:「大王之所親莫如趙。昔趙襄子嘗以其姊為代王妻,欲并代,約與代王遇於句注之塞。[一]乃令工人作為金斗,長其尾,[二]令可以擊人。與代王飲,陰告廚人曰:『即酒酣樂,進熱啜,[三]反斗以擊之。』[四]於是酒酣樂,進熱啜,廚人進斟,因反斗以擊代王,殺之,王腦塗地。其姊聞之,因摩笄以自刺,故至今有摩笄之山。[五]代王之亡,天下莫不聞。
북으로 연나라에 가서 연나라 소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대왕의 친한 바는 조나라 같음이 없습니다. 옛날 조양자가 일찍이 그 누이로써 대왕의 누이로 삼았고 대를 병합하고자 하여 대왕과 구주의 요새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에 장인으로 하여금 쇠 국자 말을 만들게 하고 그 꼬리를 길게 하여 사람을 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대왕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몰래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술을 마시고 마음껏 즐길 때 뜨거운 마실 것을 올리면서 말을 반대로 하여 치라고 했습니다. 이에 술을 마음껏 마시고 즐길 때 뜨거운 마실 것을 올리고,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뜨거운 국을 올리면서 국자를 반대로 하여 대왕을 쳐서 죽이니 왕의 뇌가 땅에 칠해졌다.(뿌려졌다.) 그 누이기 듣고 비녀를 갈아서 스스로 찔렀기 때문에 지금 마계의 산이 있다. 대왕의 망함을 천하가 듣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一] 正義句注山在代州也。上音勾。
[一] 【正義】 ‘句注山’은 ‘대주’에 있다. 위의 음은 ‘広’이다.
[二] 索隱斗音主。凡方者為斗,若安長柄,則名為枓,音主。尾即斗之柄,其形若刀也。
[二] 【索隱】 ‘斗’의 음은 ‘主’이다. 무릇 네모난 것을 ‘斗’라 하고, 만약 편안하게 긴 자루가 있으면 곧 이름을 ‘枓’라 하는데 음은 ‘主 ’이다. 꼬리는 곧 ‘斗’의 자루이고, 그 형태가 칼과 같다.
[三] 索隱音昌悅反。按:謂熱而啜之,是羹也。於下云「廚人進斟」,斟謂羹勺,故因名羹曰斟。左氏「羊羹不斟」是也。
[三] 【索隱】 음은 ‘昌’과 ‘悅’의 ‘反’이다. 살펴보니 뜨거우면서도 마시는 것은 국을 말한다. 아래에서 말한 ‘廚人進斟’의 ‘斟(술을 따르는 것, 잔질)’은 국을 뜨는 것을 이른다. 그러므로 국을 이름하여 ‘斟 ’이라 한다. 좌씨가 “양고기로 끓인 국은 잔질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四] 正義反即倒斗柄擊也。
[四] 【正義】 ‘反’은 곧 국자 자루를 돌려서 (뒤집어서) 치는 것이다.
[五] 集解笄,婦人之首飾,如今象牙擿。正義笄,今簪也。摩笄山在蔚州飛狐縣東北百五十里。
[五] 【集解】 ‘笄’는 부인들의 머리를 꾸미는 것이니 지금의 ‘象牙擿’과 같다. 【正義】 ‘笄’는 지금의 ‘簪(비녀)’이다. ‘마계산’은 울주 호현 동북쪽 150리에 있다.
「夫趙王之很戾無親,大王之所明見,且以趙王為可親乎?趙興兵攻燕,再圍燕都而劫大王,大王割十城以謝。今趙王已入朝澠池,效河閒以事秦。今大王不事秦,秦下甲雲中、九原,驅趙而攻燕,則易水、長城[一]非大王之有也。
저 조나라 왕의 어그러지고 친한 이가 없는 것은 대왕이 분명히 보았으니 또 조나라 왕과 친할 수 있겠습니까? 조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두 번 연나라의 도읍을 둘러싸고 대왕을 겁주니 대왕이 10개성을 떼어 주는 것으로써 사과했습니다. 지금 조나라 왕이 이미 승지에서 입조하여 하간의 땅을 주는 것으로써 진나라를 섬깁니다. 지금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다면 진나라는 군대를 ‘운중’, ‘구원’에 내려 보내고, 조나라를 몰아서 연나라를 공격하면 ‘역수’와 ‘장성’은 대왕의 소유가 아니게 됩니다.
[一] 正義並在易州界。
[一] 【正義】 모두 ‘역주’의 경계에 있다.
「且今時趙之於秦猶郡縣也,不敢妄舉師以攻伐。今王事秦,秦王必喜,趙不敢妄動,是西有彊秦之援,而南無齊趙之患,是故願大王孰計之。」燕王曰:「寡人蠻夷僻處,雖大男子裁[一]如嬰兒,言不足以采正計。今上客幸教之,請西面而事秦,獻恆山之尾[二]五城。」燕王聽儀。儀歸報,未至咸陽而秦惠王卒,武王立。武王自為太子時不說張儀,及即位,群臣多讒張儀曰:「無信,左右賣國以取容。秦必復用之,恐為天下笑。」諸侯聞張儀有卻武王,皆畔衡,復合從。
또 지금 조나라는 진나라의 군현과 같아서 감히 망녕되게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여 치지 못합니다. 지금 왕께서 진나라를 섬기면 진나라 왕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며, 조나라는 감히 망녕되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이는 서쪽으로 강한 진나라의 응원이 있고, 남쪽으로 제나라와 조나라의 근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릴 것을 원합니다. 연나라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오랑캐로(미개하고) 궁벽진 곳에 있어 비록 큰 남자이나 헤아림은 어린아이 같아서 말하는 것이 바른 계책을 채택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지금 上客이 요행히 가르쳐주시니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고 항산 끝의 5개성을 바치기를 청합니다.” 하면서 연나라 왕이 장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장의가 돌아가 보고하려는데 함양에 이르지 않아 진나라 혜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였다. 무왕은 태자가 되었을 때로부터 장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즉위함에 이르러 여러 신하들이 장의를 많이 참소하여 말하기를 “(장의는) 믿을 수 없고 좌우로(여기저기로) 나라를 팔아서 환심을 삽니다. 진나라가 다시 그를 등용한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했다. 제후들이 장의가 무왕에게 물리쳐졌다는 것을 듣고 모두 연횡을 배반하고 다시 합종하였다.
[一] 集解音在。
[一] 【集解】 음은 ‘在’이다.
[二] 索隱尾猶末也。謂獻恆山城以與秦。
[二] 【索隱】 ‘尾’는 ‘末’과 같다. ‘獻’은 항산성을 진나라에 주었다는 것을 말한다.
秦武王元年,群臣日夜惡張儀未已,而齊讓又至。張儀懼誅,乃因謂秦武王曰:「儀有愚計,願效之。」王曰:「柰何?」對曰:「為秦社稷計者,東方有大變,然後王可以多割得地也。今聞齊王甚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齊必興師而伐梁。梁齊之兵連於城下而不能相去,王以其閒伐韓,入三川,出兵函谷而毋伐,以臨周,祭器必出。[一]挾天子,按圖籍,此王業也。」秦王以為然,乃具革車三十乘,入儀之梁。齊果興師伐之。梁哀王恐。張儀曰:「王勿患也,請令罷齊兵。」乃使其舍人馮喜[二]之楚,借使之齊,謂齊王曰:「王甚憎張儀;雖然,亦厚矣王之託儀於秦也!」
진나라 무왕 원년 여러 신하들이 밤낮으로 장의를 미워하기를 그치지 않는데 제나라의 꾸짖음이(제나라에서 장의를 꾸짖는 사신이) 또한 이르렀다. 장의가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진나라 무왕에게 말하기를 “ 장의에게 어리석은 계책(보잘 것 없는 계책)이 있으니 그것을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무엇인가?” 하니 (장의가)대답하여 말하기를 “진나라 사직을 위하는 계책은 동쪽으로 큰 변화가 있은 후에야 왕께서는 땅을 많이 나누어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들으니 제나라 왕은 (장의를)저를 매우 미워하여 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현명하지 못한 몸이나 양나라에 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양나라를 칠 것입니다. 제나라와 양(위나라)의 군대가 성 아래에서 연이어 서로 떠날 수 없을 것이니 왕께서는 그 사이에 한나라를 쳐서 三川을 들어가며 군대로 함곡관을 나오면 침이 없어도 주나라에 임하는 것만으로도 제기가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천자를 끼고서 지도와 호적을 살피는 이것이 왕업입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그렇다 여기고 革車(전투용 수레) 30대를 갖추고 장의를 들여 양나라에 가게 했다. 제나라가 과연 군대를 일으켜 쳤다. 양나라 애왕이 두려워하였다. 장의가 말하기를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나라 군대를 그만두게 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이에 그 측근인 풍희로 하여금 초나라에 가게하고, (초나라) 사신의 이름을 빌어 제나라에 가서 제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왕께서는 장의를 매우 미워합니다. 비록 그러하나 진나라에서 왕께 장의를 부탁함이 또한 두터습니다.” 했다
齊王曰:「寡人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何以託儀?」對曰:「是乃王之託儀也。夫儀之出也,固與秦王約曰:『為王計者,東方有大變,然後王可以多割得地。今齊王甚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齊必興師伐之。齊梁之兵連於城下而不能相去,王以其閒伐韓,入三川,出兵函谷而無伐,以臨周,祭器必出。挾天子,案圖籍,此王業也。』秦王以為然,故具革車三十乘而入之梁也。今儀入梁,王果伐之,是王內罷國而外伐與國,[三]廣鄰敵以內自臨,而信儀於秦王也。此臣之所謂『託儀』也。」齊王曰:「善。」乃使解兵。
제나라 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장의를 미워하여 장의가 있는 곳은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쳤는데 무엇 때문에 장의를 부탁하는가?” 하니 (풍희가)대답하여 말하기를 “이것이 곧 왕이 장의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저 장의가 (양으로)나온 것은 진실로 진나라 왕과 약속하며 말하기를 (진나라)왕을 위한 계책은 동방에 큰 변화가 있은 후에 (진나라)왕이 땅을 많이 나누어 얻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지금 제나라 왕께서 장의를 매우 미워하여 장의가 있는 곳은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장의가 현명하지 못한 몸으로 양에 가면 제나라 왕이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공격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양나라가 성 아래에서 연이어 서로 떠날 수 없을 것이니 (진나라 왕이)그 사이에 한나라를 공격하여 삼천에 들어가고 군대로 함곡관을 나와 주나라에 임하면 제기가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천자를 끼고서 지도와 호적을 살피는 것은 왕업입니다. 하자 진나라 왕이 그렇다 여겨서 혁거 30대를 갖추어 양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지금 장의가 양에 들어가니 과연 왕께서 공격하시니 이는 왕이 안으로는 나라를 피폐하게 하고, 밖으로는 친선의 나라를 치는 것으로 이웃의 적을 넓히는 것으로써 안으로 자임하는 것으로 진나라 왕이 장의를 믿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의 이른바 ‘장의를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하였다. 제나라 왕이 말하기를 ‘훌륭하다.’ 하고는 군대를 풀게 하였다.
[一] 索隱凡王者大祭祀必陳設文物軒車彝器等,因謂此等為祭器也。
[一] 【索隱】 무른 왕 노릇 하는 자의 큰 제사는 반드시 문물과 헌거, 이기 등을 진설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일러 祭器라 한다.
[二] 索隱此與戰國策同。舊本作「憙」者,誤也。
[二] 【索隱】 이는 『戰國策』과 같다. 구분에 ‘憙’라고 쓴 것은 잘못이다.
[三] 索隱謂齊之伐梁也。梁之與齊,先相許與約從為鄰,故云與國也。
[三] 【索隱】 제나라가 양을 친 것을 말한다. 양이 제나라를 동맹국이라 한 것은 앞서 서오 합종을 약속하여 이웃이 되기를 허락하고 하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與國(동맹국)이라 한 것이다.
張儀相魏一歲,卒[一]於魏也。
장의가 위나라의 재상이 된지 1년만에 위나라에서 죽었다.
[一] 索隱年表張儀以安僖王十年卒。紀年云梁安僖王九年五月卒。
[一] 【索隱】 『연표』에 장의는 안희왕 10년에 죽었다 한다. 『기년』에 양 안희왕 9년 5월에 죽었다 한다.
陳軫者,游說之士。與張儀俱事秦惠王,皆貴重,爭寵。張儀惡陳軫於秦王曰:「軫重幣輕使秦楚之閒,將為國交也。今楚不加善於秦而善軫者,軫自為厚而為王薄也。且軫欲去秦而之楚,王胡不聽乎?」王謂陳軫曰:「吾聞子欲去秦之楚,有之乎?」軫曰:「然。」王曰:「儀之言果信矣。」軫曰:「非獨儀知之也,行道之士盡知之矣。昔子胥忠於其君而天下爭以為臣,曾參孝於其親而天下願以為子。故賣僕妾不出閭巷而售者,良僕妾也;出婦嫁於鄉曲者,良婦也。今軫不忠其君,楚亦何以軫為忠乎?忠且見棄,軫不之楚何歸乎?」王以其言為然,遂善待之。
진진은 유세하는 선비였다. 장의와 같이 진나라 혜왕을 섬겼는데 모두 귀중하게 되어 총애를 다투었다. 장의가 진진을 미워하여 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진진은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서 많은 선물을 하면서 가볍게 사신을 다니는 것은 장차 국교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 초나라가 진나라에 좋음을 더하지 않으면서도 진진을 좋게 여기는 것은 진진이 스스로를 두터이 하고 왕을 박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진진이 진능 떠나 초나라로 가고자 하는데 왕께서는 어찌하여 들어주지 않습니까?” 했다. 진나라 왕이 진진에게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그대는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오 가고자 한다 하는데 그 일이 있는가?” 하였다. 진진이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하자 진나라 왕이 말하기를 “장의의 말을 과연 믿을 수 있다.” 했다. 진진이 말하기를 “유독 장의만이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도를 행하는 선비들이 모두 그것을 압니다. 옛날에 자서는 그 임금에게 충성하여 천하가 다투어 신하로 삼으려 하였고, 증삼은 그 어버이에게 효도하여 천하가 아들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종과 첩을 팔기 위해 거리에 나가지 않아도 팔리는 것은 좋은 종과 첩이기 때문입니다. 부인이 나와 향곡에 시집갈 수 있는 것은 좋은 부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진진이 그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초나라가 또한 어찌 진진이 충성한다 여기겠습니까? 충성하고도 또한 버려지니 진진이(제가) 초나라에 가지 않고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하니 진나라 왕이 그 말이 그러하다 여기고 마침내 잘 대우하였다.
居秦期年,秦惠王終相張儀,而陳軫奔楚。楚未之重也,而使陳軫使於秦。過梁,欲見犀首。犀首謝弗見。軫曰:「吾為事來,[一]公不見軫,軫將行,不得待異日。」犀首見之。陳軫曰:「公何好飲也?」犀首曰:「無事也。」曰:「吾請令公厭事[二]可乎?」曰:「柰何?」曰:「田需[三]約諸侯從親,楚王疑之,未信也。公謂於王曰:『臣與燕、趙之王有故,數使人來,曰:「無事何不相見」,願謁行於王。』王雖許公,公請毋多車,以車三十乘,可陳之於庭,明言之燕、趙。」燕、趙客聞之,馳車告其王,使人迎犀首。楚王聞之大怒,曰:「田需與寡人約,而犀首之燕、趙,是欺我也。」怒而不聽其事。齊聞犀首之北,使人以事委焉。犀首遂行,三國相事皆斷於犀首。軫遂至秦。
진나라에 머문지 1년 만에 진나라 혜왕이 마침내 장의를 재상으로 삼으니 진진이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가 중용하지 않고 진진으로 하여금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다. 양나라를 지나면서 서수를 보고자 하였다. 서수가 사절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진진이 말하기를 “내가 일을 위해 왔는데 공이 나를 보지 않으려 하니 제가 장차 가면 다른 날에 (만날 것을)기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서수가 만났다. 진진이 말하기를 “공은 어째서 술 마시기를 좋아합니까?” 하니 서수가 말하기를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진진이 말하기를 “내가 공으로 하여금 일을 싫어하도록 많게 하려 청하는 데 할 수 있겠습니까?” 서수가 말하기를 “어떻게 하니까?” 하니 진진이 말하기를 “(위나라 재상)전수는 제후에게 합종을 약속하는데 초나라 왕은 그것을 의심하여 믿지 않습니다. 공이 왕에게 ‘신과 연나라, 조나라의 왕은 일이 있어서 여러 번 사신이 와서 말하기를 일이 없는데도 어찌하여 서로 만나지 않습니까?’ 하니 ‘원컨대 (연나라, 조나라)왕을 뵈러 가고자 합니다. 하고 말해주시오’”했다. (서수가) “양나라 왕이 비록 공(의 말)을 허락할지라도 공은 많은 수레를 대동하지 말고 수레 30대를 가지고 뜰에 늘어놓고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을 밝혀 말할 수 있습니다.” 했다. 연나라와 조나라의 객이 그것을 듣고는 수레를 달려서 그 왕에게 말하여(보고하여) 사람을 시켜 서수를 맞이하게 하였다. 초나라 왕이 그것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전수와 과인이 약속하였는데 서수가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은 나를 속인 것이다.”하고는 화를 내면서 그 일(합종의 일)을 듣지 않았다. 제나라가 소수가 북쪽으로 간 것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일을 맡게 하였다. 서수가 마침내 가서 삼국의 재상의 일이 모두 서수에게서 결단되었다. 진진이 마침내 진나라에 이르렀다.
[一] 索隱軫語 犀首,言我故來,欲有教汝之事,何不相見。
[一] 【索隱】 진진이 서수에게 말한 것인데 내가 옛날에 와서 너의 일을 가르침이 있고자 하는데 왜 서로 만나주지 않는가? 하고 말한 것이다.
[二] 索隱上一豔反。厭者,飽也,謂欲令其多事也。
[二] 【索隱】 위는 ‘一’과 ‘豔’의 反이다. 厭은 배부름이니 일을 많게 하고자 함을 말한다.
[三] 索隱需時為魏相也。
[三] 【索隱】 전수가 당시에 위나라 재상이었다.
韓魏相攻,期年不解。秦惠王欲救之,問於左右。左右或曰救之便,或曰勿救便,惠王未能為之決。陳軫適至秦,惠王曰:「子去寡人之楚,亦思寡人不?」陳軫對曰:「王聞夫越人莊舄乎?」王曰:「不聞。」曰:「越人莊舄仕楚執珪,有頃而病。楚王曰:『舄故越之鄙細人也,今仕楚執珪,貴富矣,亦思越不?』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공격하여 1년이 지나도 풀지 않았다. 진나라 혜왕이 구원하고자 하여 좌우에게 물었다. 좌우의 어떤 자는 구원함의 편리함을 말하고, 어떤 자는 구원하지 않음의 편리함을 말하니 혜왕이 결단하지 못하였다, 진진이 마침 진나라에 이르자 혜왕이 말하기를 “그대가 과인을 떠나 초나라에 가서 또한 과인을 생각하였는가? 생각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진진이 대답하기를 “왕께서는 저 월나라 사람 장석을 들었습니까?” 하니 왕이 말하기를 “듣지 못하였다.” 했다. 진진이 말하기를 “월나라 사람 장석이 초나라에서 벼슬하여 규를 잡았는데 잠시 있다가 병이 들었습니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장석은 옛날 월나라의 비루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이다. 지금 초나라에 벼슬하여 규를 잡고 신분이 올라가고 부유해졌으니 월나라를 생각할까? 생각하지 않을까?” 했다.
中謝[一]對曰:『凡人之思故,在其病也。彼思越則越聲,不思越則楚聲。』使人往聽之,猶尚越聲也。今臣雖棄逐之楚,豈能無秦聲哉!」惠王曰:「善。今韓魏相攻,期年不解,或謂寡人救之便,或曰勿救便,[二]寡人不能決,願子為子主計[三]之餘,為寡人計之。」陳軫對曰:「亦嘗有以夫卞莊子[四]刺虎聞於王者乎?莊子欲刺虎,館豎子止之,曰:『兩虎方且食牛,食甘必爭,爭則必鬥,鬥則大者傷,小者死,從傷而刺之,一舉必有雙虎之名。』卞莊子以為然,立須之。有頃,兩虎果鬥,大者傷,小者死。莊子從傷者而刺之,一舉果有雙虎之功。今韓魏相攻,期年不解,是必大國傷,小國亡,從傷而伐之,一舉必有兩實。此猶莊子刺虎之類也。臣主與王何異也。」[五]惠王曰:「善。」卒弗救。大國果傷,小國亡,秦興兵而伐,大剋之。此陳軫之計也。
중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무릇 사람들이 옛날을 생각하는 것은 그 병듦에 달려 있습니다. 저 월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초나라의 소리를 낼 것입니다.” 사람을 시켜 가서 들어보게 하니 오히려 아직 월나라의 소리를 내는 듯 했다.고 합니다. “지금 신이 비록 버려지고 축출되어 초나라에 갔지만 어찌 진나라의 소리가 없을 수 있으리오!” 했다. 혜왕이 말하기를 “좋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공격하여 1년이 지나도 풀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나에게 구원함의 편리함을 말하고, 어떤 이는 구원하지 않음의 편리함을 말하여 과인이 결단하지 못한다. 원하건데 그대는 그대의 임금(초나라 왕)을 위한 계책 가운데 남은 것이 있다면 과인을 위하여 헤아려 주시오.” 했다. 진진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또한 왕께서는 일찍이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른 것을 들려 준 자가 있습니까?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고자 하였는데 여관의 더벅머리 아이가 그것을 저지하여 말하기를 ‘두 마리 호랑이가 막 소를 먹으려하는데 먹어서 입에 달면 반드시 다투고, 다투면 곧 반드시 싸우고 싸우면 큰 것은 상처입고, 작은 것은 죽습니다. 상처난 놈을 따라가서 그것을 찌르면 한 번에 반드시 두 호랑이를 잡음의 명예가 있을 것입니다.’ 했다. 변장자가 그렇다 여기고 서서 기다렸습니다. 잠시 있은 후에 두 호랑이 과연 싸워서 큰 것은 상처를 입고, 작은 것은 죽었습니다. 변장자가 상처 입은 놈을 따라가 찔러서 한 번에 과연 두 마리 호랑이를 잡음의 공이 있었습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공격하여 1년이 지나도록 풀지 않으니 이는 반드시 대국은 상처를 입고(피폐해지고) 작은 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상처를 입은 나라부터 치면 한 번에 반드시 두 실익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른 것과 같은 류입니다. 신의 임금(초나라 왕에 드리는 계책)과 왕(진나라 왕에게 드리는 계책)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였다. 혜왕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마침내 구원하지 않았다. 대국이 과연 상처를 입고, 소국은 망하였는데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쳐서 크게 이겼다. 이것은 진진의 계책이었다.
[一] 索隱蓋謂侍御之官。
[一] 【索隱】 아마도 시어(至近에서 모시는)의 관직일 것이다.
[二] 索隱此蓋張儀等之計策。
[二] 【索隱】 이는 아마도 장의 등의 계책일 것이다.
[三] 索隱子指陳軫也。子主謂楚王。
[三] 【索隱】 子는 진진을 가리킨다. 子主는 초나라 왕을 말한다.
[四] 索隱館莊子。謂逆旅舍其人字莊子者,或作「卞莊子」也。
[四] 【索隱】 관장자이다. 여사(여관)에서 맞이하는 그 사람의 字가 장자임을 말함이니 혹 ‘변장자’라고도 쓴다.
[五] 索隱臣主,為軫之主楚王也。王,秦惠王。以言我主與王俱宜待韓、魏之斃而擊之,亦無異也。
[五] 【索隱】 臣主는 진진의 주인인 초나라 왕이다. 王은 진나라 혜왕이다. 우리 임금(초나라 왕)과 왕(진나라 왕)이 함께 마땅히 한나라와 위나라가 넘어지는 것을 기다려서 쳐야 하는 것이 또한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犀首者,魏之陰晉人也,[一]名衍,姓公孫氏。與張儀不善。
서수는 위나라 음진 사람이니 이름은 ‘연’이고, 성은 공손씨이다. 장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一] 集解司馬彪曰:「犀首,魏官名,若今虎牙將軍。」
[一] 【集解】 사마표가 말하기를 “서수는 위나라 관직의 이름이니 지금의 호아장군과 같다.” 했다.
張儀為秦之魏,魏王相張儀。犀首弗利,故令人謂韓公叔曰:「張儀已合秦魏矣,其言曰[一]『魏攻南陽,秦攻三川』。魏王所以貴張子者,欲得韓地也。且韓之南陽已舉矣,子何不少委焉以為衍功,則秦魏之交可錯矣。[二]然則魏必圖秦而棄儀,收韓而相衍。」公叔以為便,因委之犀首以為功。果相魏。張儀去。[三]
장의가 진나라를 위하여 위나라에 가니 위나라 왕이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 서수가 이롭지 않다 하여 사람을 시켜 한나라 공숙에게 말하기를 “장의가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를 합한 후 말하기를 ‘위나라가 남양을 공격하면 진나라는 삼천을 공격한다.’ 하였습니다. 위나라 왕이 장의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한나라 땅을 얻고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나라의 남양이 이미 들어졌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조금 위임하는 것으로써 연(서수)의 공으로 삼지 않습니까? (그리하면) 곧 진나라와 위나라의 교류를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곧 위나라는 반드시 진나라를 도모하여 장의를 버릴 것이니 한나라를 거두고 연(서수)을 재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공숙이 편리하다 여겨서 서수에게 맡기는 것으로써 공을 삼았다. 과연 (서수)는 위나라 재상이 되고, 장의는 떠났다.
[一] 正義此張儀合秦魏之辭也。
[一] 【正義】 이는 장의가 진나라와 위나라를 합하였다는 말이다,.
[二] 索隱錯音措。按:錯,停止也。
[二] 【索隱】 ‘錯’의 음은 ‘措’이다. 살펴보니 ‘錯’은 ‘停止’이다.
[三] 集解徐廣曰:「復相秦。」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된 것이다.” 했다.
義渠君朝於魏。犀首聞張儀復相秦,害之。犀首乃謂義渠君曰:「道遠不得復過,[一]請謁事情。」[二]曰:「中國無事,[三]秦得燒掇焚杅[四]君之國;有事,[五]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六]其後五國伐秦。[七]會陳軫謂秦王曰:「義渠君者,蠻夷之賢君也,不如賂之以撫其志。」秦王曰:「善。」乃以文繡千純,[八]婦女百人遺義渠君。義渠君致群臣而謀曰:「此公孫衍所謂邪?」[九]乃起兵襲秦,大敗秦人李伯之下。[一0]
의거의 임금이 위나라에 조회하였다. 서수는 장의가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는 것을 듣고 그를 해치려 하였다. 서수가 이에 의거의 임금에게 일러 말하기를 “길이 멀어 다시 지나가지(다시 위나라를 방문하지) 못할 것이니 사정을 말하기를 천합니다.” 하고는 (서수가)말하기를 “중국이 무사하면(제후가 진나를 치니 않으면) 진나라는 임금(의거의 임금)의 나라를 불사르고 침략하여 견제할 것이고, (중국에) 일이 있으면(제후가 진나를 치면) 진나라는 장차 가벼운 사신과 후한 폐백(선물)으로 임금의 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하였다. 그 후 5국이 진나라를 쳤다. 때마침 진진이 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의거의 임금은 오랑캐의 어진 임금입니다. 뇌물을 주어 그 뜻을 어루만지는 것만 못합니다.(것이 좋습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좋다.” 하자 이에 무늬를 수놓은 비단 1000단과 부녀 100명을 의거의 임금에게 보냈다. 의거의 임금이 여러 신하를 이르게 하여 도모하여 말하기를 “이것이 공손연(서수)이 말한 것인가?” 하고는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였는데 진나라 사람들이 이백의 아래에서 크게 패하였다.(진나라 사람들을 이백의 아래에서 크게 무너뜨렸다.)
[一] 索隱音戈。言義渠道遠,今日已後,不復得更過相見。
[一] 【索隱】 음은 ‘戈’이다. 의거의 길이 멀어서 오늘 이후로 다시 나마면서 서로 불 수 없다고 말 한 것이다.
[二] 索隱謂欲以秦之緩急告語之也。
[二] 【索隱】 진나라의 느리고 급함(사정)을 알려 말해줄 것을 바란 것이다.
[三] 索隱按:謂山東諸侯齊、魏之大國等。正義中國謂關東六國。無事,不共攻秦。
[三] 【索隱】 살펴보니 산동의 제후인 제나라, 위나라의 큰 나라 등을 말한다. 【正義】 중국은 관동지역의 6국을 말한다. ‘無事’는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四] 集解徐廣曰:「一孤切。」 索隱掇音都活反,謂焚燒而侵掠。焚杅音煩烏二音。按:焚揉而牽制也。戰國策云「秦且燒概君之國」,是說其事也。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一孤切” 했다. 【索隱】 ‘掇’의 음은 ‘都’와 ‘活’의 反이니 불사르고 침략함을 말한다. ‘焚杅’는 음이 ‘煩’과 ‘烏’의 두 음이다. 살펴보니 불사르고 부드럽게 하여 견제하는 것이다. 『戰國策』에 “진나라가 또한 임금의 나라를 불사르고 밀어버린다.”한 것은 그 일을 설명한 것이다.
[五] 索隱謂山東諸國共伐秦也。
[五] 【索隱】 산동의 여러 나라가 함께 진나라를 치는 것을 말한다.
[六] 索隱謂秦求親義渠君也。正義有事謂六國攻秦。秦若被攻伐,則必輕使重幣,事義渠之國,欲令相助。犀首此言,令義渠君勿援秦也。
[六] 【索隱】 진나라가 의거의 임금과 친할 것을 구함을 말한다. 【正義】 ‘有事’는 6국이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진나라가 만약 공격하여 침을 당하면 곧 반드시 가벼운 사신이 많은 폐백을 주면서 의거의 나라를 섬길 것이니 서로 돕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서수가 이를 말한 것은 의거의 임금으로 하여금 진나라를 돕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다.
[七] 索隱按:表秦惠王後元七年,楚、魏、齊、韓、趙五國共攻秦,是其事也。
[七] 【索隱】 살펴보니 ‘表’에 진나라 혜왕 후원 7년에 초나라, 위나라, 제나라, 한나라, 조나라 5국이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이는 그 일이다.
[八] 索隱凡絲綿布帛等一段為一純。純音屯。
[八] 【索隱】 모든 絲綿과 布帛 등의 1段을 1純이라 한다. ‘純’의 음은 ‘屯’이다.
[九] 索隱按:謂上文犀首云「(君之國)有事,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故云「衍之所謂」,因起兵襲秦以傷張儀也。
[九] 【索隱】 살펴보니 윗글에 서수가 말한“(임금의 나라에 일이 있으면 진나라가 장차 사신을 가볍게 하고, 많은 폐백으로 임금의 나라를 섬기게 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연(서수)의 말한바’라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는 것으로써 장의를 해치려 한 것이다.
[一0] 索隱入李伯之下。謂義渠破秦而收軍,而入於李伯之下,則李伯人名或邑號。戰國策「伯」作「帛」。
[一0] 【索隱】 ‘李伯의 아래에 들어갔다.’는 것은 의거가 진나라를 깨트리고 군대를 거두어 이백의 아래에 들어감을 말한 것이니 곧 이백은 사람 이름, 혹은 읍호 이다. 『戰國策』에 ‘伯’은 ‘帛 ’이라 썼다.
儀已卒之後,犀首入相秦。嘗佩五國之相印,為約長。[一]
장의가 죽은 후 서수가 진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일찍이 5국에서 재상의 인수를 차고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一] 索隱佩五國之印,為約長。犀首後相五國,或從或橫,常為約長。
[일] 【索隱】 ‘5국의 인(재상의 인)을 차고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것은 서수가 후에 5국에서 재상이 되어 혹은 합종하고, 혹은 연횡하여 항상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太史公曰:三晉多權變之士,夫言從衡彊秦者大抵皆三晉之人也。夫張儀之行事甚於蘇秦,然世惡蘇秦者,以其先死,而儀振暴[一]其短以扶其說,[二]成其衡道。[三]要之,此兩人真傾危之士哉!
태사공이 말하였다. “三晉에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선비가 많아서 강한 진나라에 대해 합종과 연형을 말한 자는 대개 모두 삼진의 사람이었다. 저 장의의 일을 행함은 소진보다 심하였으나 세상에서 소진을 미워한 것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 단점을 떨쳐 드러내고 그 말을 부축하는 것으로써 그 연형의 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두 사람은 참으로(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태로운 선비였구나!”
[一] 索隱下音步卜反。振謂振揚而暴露其短。
[一] 【索隱】 아래의 음은 ‘步 ’와 ‘卜’의 反이다. ‘振’은 그 단점을 떨치고 휘날려서 드러내는 것이다.
[二] 索隱按:扶謂說彼之非,成我之是,扶會己之說辭。
[二] 【索隱】 살펴보니 ‘扶’는 그의 잘못을 말하여 나의 옳음을 이루는 것이니 자기의 말을 꿰맞추는 것이다.
[三] 索隱張儀說六國,使連衡而事秦,故云「成其衡道」。然山東地形從長,蘇秦相六國,令從親而賓秦也。關西地形衡長,張儀相六國,令破其從而連秦之衡,故謂張儀為連橫矣。
[三] 【索隱】 장의가 6국을 유세하여 연형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 연형의 도를 이루었다’ 한 것이다. 그러나 산동의 지형이 세로(남북으로 길고 소진이 6국의 재상이 되어 합종하여 진나라를 물리게 하였다. 관서의 지형은 가로(동서)가 길고, 장의가 6국의 재상이 되어 그 합종을 깨고 진나라와 연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장의를 평하여 연횡하였다. 한 것이다.
【索隱述贊】儀未遭時,頻被困辱。及相秦惠,先韓後蜀。連衡齊魏,傾危誑惑。陳軫挾權,犀首騁欲。如何三晉,繼有斯德。
【索隱述贊】 장의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하였을 때 자주 곤욕을 입었도다. 진나라 혜왕의 재상이 되어 한나라를 먼저 연횡하고 촉을 뒤로 하였다. 제나라와 진나라를 연형하니 나라를 기울게 하고 위태롭게 하는 거짓과 유혹이로다. 진진은 권세를 꼈고, 서수는 달리고자 하였다. 삼진을 어이할꼬. 이 덕을 이어 소유하였도다.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기권72, 양후열전 제12 (0) | 2018.12.26 |
---|---|
사기권71, 저리자, 감무,감라열전 제11 (0) | 2018.12.21 |
사기 권69 소진열전제9 (0) | 2018.11.29 |
사기권68, 상군열전 제8 (0) | 2018.04.13 |
사기권67, 중니제자 열전 제7 (0) | 2018.04.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