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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70, 장의열전 제10, 부 진진, 서수

by 최인표 2018. 12. 14.

史記卷七十

  張儀列傳第十

 

張儀者魏人也[]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學術蘇秦自以不及張儀

장의는 나라 사람이다. 처음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선생을 섬기면서 을 배웠는데 소진이 스스로 장의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 集解呂氏春秋曰:「魏氏餘子。」 索隱按晉有大夫張老又河東有張城張氏為魏人必也而呂覽以為魏氏餘子則蓋魏之支庶也又書略說餘子謂庶子也正義左傳晉有公族餘子公行杜預云:「皆官卿之嫡為公族大夫餘子嫡子之母弟也公行庶子掌公戎行也。」藝文志云張子十篇在縱橫流

[] 集解】 『呂氏春秋에 말하기를 장의는 나라 氏族餘子이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나라에 대부 장노가 있고, 또 하동에 장성이 있으니 장씨는 나라 사람이 틀림없다. 呂覽나라 씨족의 餘子라 하는 것은 곧 아마도 나라의 갈래 서자로 여긴 듯하다. 書略餘子를 설명하여 庶子라 말했다. 正義】 『左傳나라에는 公族, 餘子, 公行이 있다. 杜預가 말하기를 모두 官卿嫡子가 공족과 대부가 된다. 餘子嫡子와 어머니를 같이 하는 동생이다. 公行庶子적인 군대를 관장한다.” 했다. 藝文志張子 10편이 從行類에 있다.” 했다.

 

張儀已學游說[]諸侯嘗從楚相飲已而楚相亡璧門下意張儀:「儀貧無行必此盜相君之璧。」共執張儀掠笞數百不服[]其妻曰:「[]子毋讀書游說安得此辱乎?」張儀謂其妻曰:「視吾舌尚在不?」其妻笑曰:「舌在也。」儀曰:「足矣。」

장의가 배움을 마치고 제후에게 유세하였다. 일찍이 나라 재상을 따라서 마셨는데 나라 재상이 구슬을 잊어버리니 문하들이 장의를 생각하고 말하기를 장의가 가난하고 행실이 없으니 반드시 이 상군(재상님)의 구슬을 훔쳤을 것입니다.”하고는 함께 장의를 잡아 채찍으로 수백 대를 때리며 조사하였는데 자백하지 않자 그를 풀어 주었다. 그 처가 말하기를 ! 그대는 글을 읽고 유세하지 마시오. 어찌하여 이러한 욕을 받습니까?” 하니 장의가 그 처에게 말하기를 내 혀를 보시오 아직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였다. 그 처가 웃으며 말하기를 혀가 있습니다.” 하니 장의가 말하기를 충분하다.” 했다.


[] 索隱音稅

[] 索隱음은 이다.

 

[] 集解音釋索隱古釋字

[] 集解음은 이다. 索隱옛날의 자이다.

 

[] 索隱音僖鄭玄曰:「悲恨之聲。」

[] 索隱음은 이다. 鄭玄이 말하기를 는 슬프게 한탄하는 소리이다.” 했다.

 

蘇秦已說趙王而得相約從親[]然恐秦之攻諸侯敗約後負念莫可使用於秦者乃使人微感張儀曰:「子始與蘇秦善今秦已當路子何不往游以求通子之願?」張儀於是之趙上謁求見蘇秦蘇秦乃誡門下人不為通又使不得去者數日已而見之坐之堂下賜僕妾之食因而數讓之[]:「以子之材能乃自令困辱至此吾寧不能言而富貴子子不足收也。」謝去之張儀之來也自以為故人求益反見辱念諸侯莫可事獨秦能苦趙乃遂入秦

소진이 나라 왕을 설득하여 서로 맹약하는 합종을 한 후 나라가 제후를 공격하여 합종을 무너뜨리고 뒤에 배반할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나라에 등용하게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에 사람을 시켜 은근히 장의를 자극하여 말하게 하기를 그대는 처음에 소진과 사이가 좋았다. 지금 소진은 이미 요직에 있으니 그대는 어찌하여 가서 노닐면서 (아는 자를) 통하여 그대의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는가?” 했다. 장의가 이에 나라에 가서 지체 높고 귀한 사람을 통해 소진을 만나고자 했다. 소진이 이에 문하의 사람들을 경계하여 통하지 못하게 하고 또 사람을 시켜 떠나가지도 못하게 한 것이 여러 날이었다. 이윽고 그(장의)를 만나서는 堂下에 앉게 하고는 종의 음식을 내리게 하였다. 때문에 여러 번 질책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재능으로써 곧 스스로 곤궁함과 욕됨이 이에 이르게 하였는가? 나는 차라리 말로 그대를 부귀하게 할 수 있을지언정 그대를 거두어들이지는 못한다.” 하니 하직하고 떠났다. 장의가 온 것은 스스로 옛 친구라 여겨서 이익을 구하고자 해서인데 도리어 욕을 당하니 노하여 생각하니 제후로 섬길만하지 않고, 유독 나라만이 나라를 괴롭게 할 수 있다 여겨서 이에 마침내 나라에 들어갔다.


[] 索隱從音足容反

[] 索隱의 음은 이다.

 

[] 索隱按謂數設詞而讓之讓亦責也數音朔

[] 索隱살펴보니 여러 번 말을 하여 꾸짖음을 말한다. 은 또한 질책함이다. 의 음은 이다.

    

蘇秦已而告其舍人:「張儀天下賢士吾殆弗如也今吾幸先用而能用秦柄者獨張儀可耳然貧無因以進吾恐其樂小利而不遂故召辱之以激其意子為我陰奉之。」乃言趙王發金幣車馬使人微隨張儀與同宿舍稍稍近就之奉以車馬金錢所欲用為取給而弗告張儀遂得以見秦惠王惠王以為客卿與謀伐諸侯

소진이 이윽고 그 측근에게 말하기를 장의는 천하의 현명한 선비로 내가 자못 그보다 못하다. 지금 내가 요행히 먼저 등용되었으되 나라에 동용되어 권력을 잡을 자는 오직 장의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난하고 인하여 나아갈 수 없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즐거워하여 이루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불러서 욕을 주는 것으로써 그 뜻을 격동시킨 것이다. 그대는 나를 위하여 몰래 그를 받들라.” 하고는 이에 나라 왕에게 말하여 금과 비단, 수레와 말을 내고, 사람을 시켜서 몰래 장의를 따르게 하고 함께 집에 머물면서 조금씩 가까이 나아가게 하여 거마와 금전으로써 받들게 하고 쓰고자 하는 바는 취하여 주게 하되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장의가 마침내 나라 혜왕을 만났다. 혜왕이 객경으로 삼고 함께 제후를 정벌할 것을 꾀하였다.


蘇秦之舍人乃辭去張儀曰:「賴子得顯方且報德何故去也?」舍人曰:「臣非知君知君乃蘇君蘇君憂秦伐趙敗從約以為非君莫能得秦柄故感怒君使臣陰奉給君資盡蘇君之計謀今君已用請歸報。」張儀曰:「嗟乎此在吾術中而不悟吾不及蘇君明矣吾又新用安能謀趙乎為吾謝蘇君蘇君之時儀何敢言且蘇君在儀寧渠能乎!」[]張儀既相秦為文檄[]告楚相曰:「始吾從若飲[]我不盜而璧若笞我若善守汝國我顧且盜而城!」

소진의 측근이 이에 하직하고 떠났다. 장의가 말하기를 그대에게 의지하여 드러날 수 있었으니 바야흐로 또한 덕을 갚아야 하는데 무슨 이유로 떠나는가?” 하였다. (소진의) 측근이 말하기를 신이 그대를 알아 본 것이 아니라 그대를 알아 본 것은 곧 소군(소진)이다. 소군(소진)나라가 나라를 쳐서 합종의 맹약을 무너뜨리는 것을 근심하였기 때문에 그대가 아니면 나라의 권력을 잡을 이가 없다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를 자극하고 노하게 하며, 신으로 하여금 몰래 그대의 자산을 받들고 지급하게 한 것이 모두 소군(소진)의 계책이었습니다. 지금 그대가 이미 등용되었으니 돌아가 보고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장의가 말하기를 ! 이는 나의 방법가운데 있는 것인데 깨닫지 못하였으니 나는 소군(소진)의 현명함에 미치지 못하구나! 내가 또한 새로이 등용되었으니 어찌 나라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하여 소군(소진)에게 사례하고 소군(소진)(이 살아 있을)때 장의가 무엇을 감히 말하겠는가? 또 소군(소진)이 살아있는 동안은 장의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했다. 장의가 나라의 재상이 되고 나서 격문을 지어 나라 재상에게 말하기를 처음에 내가 너를 따라 마시다가 내가 구슬을 훔치지 않았음에도 너는 나를 매질하였다. 너는 너희 나라를 잘 지켜라. 나는 (옛날을)돌아보고 또 성을 훔칠 것이다.” 했다.


[] 集解渠音詎索隱渠音詎古字少假借耳

[] 集解의 음은 이다. 索隱의 음은 이다. 옛날 글자는 이니 빌렸을 분이다.

 

[] 集解徐廣曰:「一作尺一之檄』。」 索隱按徐廣云一作丈二檄」。王劭按春秋後語云丈二尺檄」。許慎云二尺書」。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尺一之檄이라 쓴 것도 있다.” 索隱살펴보니 서광이 말하기를 丈二檄이라 쓰기도 한다.” 했다. 왕소가 春秋를 살펴본 후에 말하기를 丈二尺檄이라 하였고, 허신은二尺書라고 했다.


[] 索隱若者汝也下文而亦訓汝

[] 索隱()이다. 아래 글도 또한 뜻은 () 이다.

 

苴蜀相攻擊[]各來告急於秦秦惠王欲發兵以伐蜀以為道險狹難至而韓又來侵秦秦惠王欲先伐韓後伐蜀恐不利欲先伐蜀恐韓襲秦之敝猶豫未能決司馬錯[]與張儀爭論於惠王之前司馬錯欲伐蜀張儀曰:「不如伐韓。」王曰:「請聞其說。」

저와 촉이 서로 공격하여 각기 나라에 와서 급함을 알렸다. 진나라 혜왕이 군대를 일으켜 촉을 치고자 하였으나 길이 험하고 좁아 이르기 어렵고 한나라가 또한 와서 진나라를 침략할 것이라 여겼다. 진나라 혜왕이 먼저 한나라를 치고 뒤에 촉을 치고자 하였으나 이롭지 못함을 두려워하였고, 먼저 촉을 치고자 하니 한나라가 진나라의 폐를 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늦추어 두고 결단하지 못하였다. 사마착과 장의가 혜왕의 앞에서 다투었는데 사마착은 촉을 치고자 하였다. 장의가 한나라를 치는 것만 못합니다.” 하니 왕이 그 말을 듣기를 청한다.” 했다.

 

[] 集解徐廣曰:「譙周曰益州天苴讀為包黎』,音與相近以為今之巴郡。」 索隱苴音巴謂巴蜀之夷自相攻擊也今字作按巴苴是草名今論巴遂誤作或巴人巴郡本因芭苴得名所以其字遂以益州天苴讀為芭黎」,天苴即巴苴也譙周蜀人也天苴之音讀為芭黎」。芭黎即織木葺為葦籬也今江南亦謂葦籬曰芭籬也正義華陽國志云:「昔蜀王封其弟于漢中號曰苴侯因命之邑曰葭萌苴侯與巴王為好巴與蜀為讎故蜀王怒伐苴苴奔巴求救於秦秦遣張儀從子午道伐蜀[]王自葭萌禦之敗績走至武陽為秦軍所害秦遂滅蜀因取苴與巴焉。」括地志云:「苴侯都葭萌今利州益昌縣五十里葭萌故城是蜀侯都益州巴子城在合州石鏡縣南五里故墊江縣也巴子都江州在都之北又峽州界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초주는 익주 天苴는 읽기를 包黎로 읽어야 하는데 음이 와 서로 비슷하여 지금의 巴郡이 되었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다. ‘의 오랑캐가 스스로 서로 공격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 글자를 라고 쓴 것은 살펴보니 는 풀이름인데 지금 를 논하면서 마침내 잘못 라고 쓴 것이다, 혹은 파인’, ‘파군은 본래 芭苴로 인하여 이름을 얻었기 때문에 그 글자가 마침내 로써 라 한 것이다. 익주 天苴는 읽기를 芭黎로 읽는다.” 하니 天苴는 곧 巴苴이다. 초주는 사람인데 天苴의 음을 芭黎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살펴보니 芭黎는 곧 나무를 겹쳐 엮어서 갈대 울타리를 만든 것이다. 지금 강남에는 또한 葦籬(갈대 울타리)’芭籬라고 한다. 正義】 『華陽國志옛날 촉나라 왕이 그 아우를 한중에 봉하고 苴侯라 부르고 인하여 (제후를 명한) 읍을 葭萌이라 했다.” 한다. 苴侯나라 왕은 和好하고, 은 원수가 되었다. 그러므로 촉나라 왕이 노하여 를 친 것이다. 에 도망하여 나라에 구원을 청한 것이다. 나라가 장의의 부하 오도를 보내 촉을 치게 했다. []나라 왕이 가맹에서 그를 막았으나 패하고 달아나 무양에 이르러 나락 군대에게 해침을 당하였다. 나라가 마침내 촉나라를 멸망시키고 인하여 를 취하였다. 括地志苴侯의 도읍은 葭萌인데 지금의 이주 익창현 50리의 옛 성이 이것이다. 蜀侯의 도읍은 익주 파자성이니 합주 석경현 남쪽 5리에 있으니 옛 점강현이다. 巴子의 도읍은 강주이고, 도읍의 북쪽에 있고, 또 협주의 경계이다.

[] 索隱七各反又七故反二音

[] 索隱이고, 이니 두 음이다.

 

 儀曰:「親魏善楚下兵三川塞什谷之口[]當屯留之道[]魏絕南陽[]楚臨南鄭[]秦攻新城[]宜陽[]以臨二周之郊誅周王之罪侵楚魏之地周自知不能救九鼎寶器必出據九鼎案圖籍挾天子以令於天下天下莫敢不聽此王業也今夫蜀西僻之國而戎翟之倫也敝兵勞眾不足以成名得其地不足以為利臣聞爭名者於朝爭利者於市今三川周室天下之朝市也而王不爭焉顧爭於戎翟去王業遠矣。」[]

장의가 말하였다. “나라와는 친하고, 초나라와는 잘 지내며 군대를 三川에 내려 보내 什谷의 입구를 막고 둔유의 길을 막아 지키면 위나라는 남양이 끊기고 초나라는 남정에서 만납니다. 진나라가 신성, 의양을 치는 것으로써 두 주의 교외에 임하여 주나라 왕의 죄를 베고, 초나라, 위나라의 땅을 침범합니다. 주나라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알고 九鼎寶器를 내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九鼎에 의거하고 圖籍(지도와 호적)을 살피고 천자를 끼고서 천하에 명령하면 천하가 감히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王業입니다. 지금 저 촉은 西僻(서쪽 변경)의 나라로 오랑캐의 무리이니 군대를 피폐하게 하고 무리를 수고롭게 하여도 이름을 이루기는 부족하고, 그 땅을 얻어도 이익으로 삼기 부족합니다. 신이 들으니 이름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시장에서 다툰다고 합니다. 지금 삼천과 주나라 왕실은 천하의 조정과 시장으로 왕이 여기에서 다투지 않고 오랑캐를 돌아보고 다투면 왕업과의 거리가 멀어질 것입니다.


[] 集解徐廣曰:「一作』,成皋鞏縣有尋口。」 索隱一本作尋谷」,尋什聲相近故其名惑也戰國策云轘轅緱氏之口」,亦其地相近也正義括地志云:「溫泉水即尋出洛州鞏縣西南四十里注水經云鄩城水出北山鄩溪又有故鄩城在鞏縣西南五十八里。」洛州緱氏縣東南四十里與鄩溪相近之地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이라 쓰고 성고공현에 심구가 있다.” 索隱어떤 본에서는 尋谷이라 썼는데 은 소리가 서로 비슷하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헛갈린 것이다. 戰國策환원은 구씨의 입이라 하였는데 또한 그 땅이 서로 가깝다. 正義】 『括地志온천수를 곧 이라 하는데 근원은 낙주 공현 서남쪽 40에서 나온다. 水經尋城의 물은 북산 심계에서 나온다.’ 하고 또 옛 심성은 공현 서남쪽 58리에 있다.”했다. 살펴보니 낙주 구씨현 동남쪽 40리에 있는데 심계와는 서로 가가운 땅이다.


[] 正義屯留潞州縣也道即太行羊腸阪道也

[] 正義둔유는 노주의 현이다. ‘는 곧 태항산의 양장판도이다.

 

[] 正義南陽懷州也是當屯留之道令魏絕斷壞羊腸韓上黨之路也

[] 正義남양회주이다. 이는 둔유의 길에 해당하니 위나라로 하여금 양장과 한나라 상당의 길을 끊고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다.


[] 正義是塞什谷之口也令楚兵臨鄭南塞轘轅鄩口斷韓南陽之兵也

[] 正義이는 십곡의 입구를 막는 것이니 초나라 군대가 정나라 남쪽에 임하고, 환원의 심구를 막으며 한 나라 남양의 군대를 끊게 하는 것이다.


[] 索隱此新城當在河南伊闕之左右

[] 索隱이 신성은 마땅히 하남 이궐의 좌우에 있어야 한다.

 

[] 正義洛州福昌縣也

[] 正義낙주 복창현이다.

 

[] 索隱去王遠矣王音于放反

[] 索隱왕 노릇 하는 것과 거리가 멀어진다. 한 것이다. 의 음은 이다.

 

司馬錯曰:「不然臣聞之欲富國者務廣其地欲彊兵者務富其民欲王者務博其德三資者備而王隨之矣今王地小民貧故臣願先從事於易夫蜀西僻之國也而戎翟之長也有桀紂之亂以秦攻之譬如使豺狼逐群羊得其地足以廣國取其財足以富民[], 不傷眾而彼已服焉[]一國而天下不以為暴利盡西海[]而天下不以為貪是我一舉而名實附也[]而又有禁暴止亂之名今攻韓劫天子惡名也而未必利也又有不義之名而攻天下所不欲危矣臣請謁其故[]天下之宗室也韓之與國也周自知失九鼎韓自知亡三川[]將二國并力合謀以因乎齊趙而求解乎楚以鼎與楚以地與魏王弗能止也此臣之所謂危也不如伐蜀完。」

사마착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들으니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그 땅을 넓히는데 힘써야 하고, 군대를 간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그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데 힘써야 하며, 왕 노릇하고자 하는 자는 그 덕을 넓히는데 힘써야 하니 세 가지 자질을 갖추면 왕업은 그것을 따릅니다. 지금 왕은 땅이 작고 백성은 가난합니다. 그러므로 신은 먼저 일을 함에 쉬운 것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저 촉은 서쪽 변경의 나라이고, 오랑캐의 우두머리로 걸왕과 주왕의 어지러움이 있었습니다. 진나라가 공격하는 것은 비유하면 승냥이와 이리로 하여금 여러 양을 몰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땅을 충분히 얻어 나라를 넓게 하고 그 재물을 취하여 백성을 충분히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모아 여러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아도 복종할 것입니다. 한 나라를 공략하는데도 천하가 사납다 여기지 않고, 이익을 서쪽 바다에서 다 취하여도 천하가 탐욕스럽다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한 번 들면 명분과 실제가 부합하고, 또 사나움을 금하고 어지러움을 그치게 하는 명분이 있습니다. 지금 한나라를 공격하고 천자를 겁주는 것은 명분을 나쁘게 하여 반드시 이롭지 않으며, 또 의롭지 않음의 이름이 있으니 천하가 바라지 않는 것을 공격하는 것은 위태로운 것입니다. 신이 그 이유를 말할 것을 청합니다. 주나라는 천하의 종실입니다. 제나라 한나라의 우호국입니다. 주나라는 스스로 九鼎을 잃음을 알고 한나라는 스스로 三川을 잃을 것을 알아 두 나라가 힘을 합하고 꾀를 합하고 제나라, 조나라 일을 인하여 초나라, 위나라에 풀어줄 것을 구하여 을 초나라에 준다면 왕께서는 그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의 이른바 위태롭다는 것이니 촉을 완전히 치는 것만(보다) 못합니다.” 했다.


[] 索隱遇其財戰國策」。

[] 索隱그 재물을 만나는 것이다. 戰國策에는 이라고 썼다.

 

[] 正義繕音膳」,具食也

[] 正義의 음은 이니 과 같다. 갖추어 먹는 것이다.

 

[] 索隱西海謂蜀川也海者珍藏所聚生猶謂秦中為陸海然也其實西亦有海也正義海之言晦也西夷晦昧無知故言海也言利盡西方羌戎

[] 索隱西海蜀川을 말한다. 바다는 보배를 감추고 모아 생산하는 곳이니 진나라 안을 육지의 바다라 말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서쪽에 또한 바다가 있다. 正義(바다)’(어둡다)라 말한 것은 서쪽 오랑캐가 어둡고 지혜가 없었다. 그러므로 (바다)’ 라 말한 것이다. 이로움을 서쪽 오랑캐에게서 모두 취함을 말한다.


[] 索隱按名謂傳其德也實謂土地財寶

[] 索隱살펴보니 은 그 을 전함을 말한다. ‘은 그 土地財寶를 말한다.

 

[] 索隱謁者告也陳也謂陳不宜伐之端由也

[] 索隱은 알려 말하고, 진술함을 말한다. ‘는 마땅히 쳐서는 안됨을 단서와 이유를 진술함을 말한다.

 

[] 正義韓自知亡三川故與周并力合謀也

[] 正義한 나라가 스스로 三川을 잃음을 알기 때문에 주 나라와 함께 힘을 합하고 꼬랄 합하는 것이다.

 

惠王曰:「寡人請聽子。」卒起兵伐蜀十月取之[]遂定蜀[]貶蜀王更號為侯而使陳莊相蜀蜀既屬秦秦以益彊富厚輕諸侯

혜왕이 말하기를 좋다. 과인은 그대에게서 들을 것을 청한다.” 했다.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촉을 쳤는데 10월에 (촉을)취하여 마침내 촉을 평정하고 촉 왕을 낮추고 를 고쳐 라 하고 진장으로 하여금 촉의 재상으로 하였다. 촉이 진나라에 속한 후 진나라가 더욱 강성하고, 부유해져 제후를 경시하였다.


[] 索隱六國年表在惠王二十二年十月也

[] 索隱六國年表에 혜왕 2210월에 있다.

 

[] 正義表云秦惠王後元年十月擊滅之

[] 正義六國年表에 혜왕 후 元年 10월에 쳐서 멸망시켰다.

 

秦惠王十年使公子華[]與張儀圍蒲陽[]降之儀因言秦復與魏而使公子繇質於魏儀因說魏王曰:「秦王之遇魏甚厚魏不可以無禮。」魏因入上郡少梁謝秦惠王惠王乃以張儀為相更名少梁曰夏陽[]

진나라 혜왕 10년 공자 張儀로 하여금 포양을 포위하게 하니 항복하였다. 장의가 인하여 진 나라에게 말하여 위나라에 돌려주고 공자 를 위나라에 인질로 하게 하였다. 장의가 인하여 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진나라 왕이 위나라를 대우함이 매우 두터우니 위나라가 무레할 수 없습니다.” 했다. 위나라가 인하여 상군, 소양을 들이고(주니) 진나라 혜왕에게 사례하였다. 헤왕이 이에 장의를 재상으로 삼고 이름을 고쳐 소양하양이라 했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이라고도 쓴다.

 

[] 索隱魏邑名也正義在隰州隰州縣蒲邑故城是也

[] 索隱위나라 읍의 이름이다. 正義습주 습주현에 있는데 포읍 옛성이 이것이다.

 

[] 集解徐廣曰:「夏陽在梁山龍門。」 索隱音下山名也亦曰大夏是蜀所都正義少梁城同州韓城縣南二十三里夏陽城在縣南二十里梁山在縣東南十九里龍門山在縣北五十里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하양은 양산 용문에 있다.” 했다. 索隱음은 이다. ‘는 산이름이다. 대하라 하는데 촉이 도읍한 곳이다. 正義소양성은 동주 한성현 남쪽23리이다. 하양성은 현 남쪽 20리에 있다. 양산은 현 동쪽 19리에 있다. 용문산은 현 북쪽50리에 있다.


儀相秦四歲立惠王為王[]居一歲為秦將取陝築上郡塞

장의가 진나라 재상이 된지 4년에 혜왕이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 머문지(재상 자리에 있은지) 1년만에 진나라 장수가 되어 섬을 취하고 상군의 요새를 쌓았다.

 

[] 正義表云惠王之十三年周顯王之三十四年也

[] 正義혜왕 13년은 주나라 현왕 34년이다.

 

其後二年使與齊楚之相會齧桑東還而免相相魏以為秦欲令魏先事秦而諸侯效之魏王不肯聽儀秦王怒伐取魏之曲沃平周復陰厚張儀益甚張儀慚無以歸報留魏四歲而魏襄王卒哀王立張儀復說哀王哀王不聽於是張儀陰令秦伐魏魏與秦戰

그 후(재상이 된지) 2년에 사신으로 제나라와 초나라의 재상을 설상에서 만났다. 동쪽으로 돌아와 재상을 사임하고 진나라를 위하여 위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나라로 하여금 진나라를 섬기게 하여 제후들이 그것을 본받게 하고자 하였다. 위나라 왕이 장의의 말을 듣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진나라 왕이 노하여 위나라의 곡옥, 평주를 쳐서 취하고, 다시 가만히 장의를 두텁게 함이 더욱 심하였다. 장의가 돌아가 보고할 것이 없음을 부끄러워하였다. 위나라에 머문지 4년만에 위나라 양왕이 죽고, 애왕이 즉위하였다. 장의가 다시 애왕을 설득하였으나 애왕이 듣지 않았다. 이에 장의는 몰래 진나라로 하여금 위나라를 치게 하였다. 위나라와 진나라가 싸워 (위나라가)패하였다.

 

明年齊又來敗魏於觀津[]秦復欲攻魏先敗韓申差軍斬首八萬諸侯震恐而張儀復說魏王曰:「魏地方不至千里卒不過三十萬地四平諸侯四通輻湊無名山大川之限從鄭至梁二百餘里車馳人走不待力而至梁南與楚境西與韓境北與趙境東與齊境卒戍四方守亭鄣者不下十萬梁之地勢固戰場也梁南與楚而不與齊則齊攻其東東與齊而不與趙則趙攻其北不合於韓則韓攻其西不親於楚則楚攻其南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다음해 제나라가 또한 와서 관진에서 위나라를 무너뜨렸다. 진나라가 다시 위나라를 공격하고자 하여 먼저 한나라 신차의 군대 무너뜨리고 머리를 자른 것이 8만이었는데 제후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장의가 다시 위나라 왕을 설득하기를 위나라의 땅이 사방 천리에 이르지 않고, 군대는 30만을 넘지 않습니다. 땅이 사방으로 평평하고 제후는 사방으로 몰려오는데 이름 있는 산과 큰 시시내의 제한이 없습니다. 정으로부터 양에 이르기까지 200여리이니 수레가 치달리고 사람이 달리면 힘씀을 기다리지 않아도 이릅니다. 양나라의 남쪽은 초나라와 경계하고 서쪽은 한나라와 경계하며, 북쪽으로는 조나라와 경계하며,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경계하니 군대가 사방을 지키는데 亭障(국경에 사람의 드나듦을 감시하는 요새)을 지키는 자가 10만 아래가 아닙니다.(10만이 넘습니다.) 양의 지세는 진실로 싸움터입니다. 양의 남쪽은 초나라와 같이하되(접경하고) 제나라와 함께하지 않으면 곧 제나라가 그 동쪽을 공격하고, 동쪽으로 제나라와 함께하고, 조나라와는 함께 하지 않으면 곧 조나라는 그 북쪽을 공격할 것이며, 한나라에 합하지 않으면 곧 한나라가 그 서쪽을 공격한다. 초나라와 친하지 않으면 곧 초나라가 그 남쪽을 공격한다. 이것이 이른바 곧 四分五裂 의 길 이라는 것입다.”


[] 集解觀音貫

[] 集解의 음은 이다.

 

且夫諸侯之為從者將以安社稷尊主彊兵顯名也今從者一天下約為昆弟刑白馬以盟洹水之上[]以相堅也而親昆弟同父母尚有爭錢財而欲恃詐偽反覆蘇秦之餘謀其不可成亦明矣

(장의가 말하기를) “또한 저 제후가 합종을 하는 것은 장차 사직을 편안히 하고 임금을 높이며 군대를 강하게 하여 이름을 드러내려 해서입니다. 지금 합종을 한 자는 천하를 하나로 형제가 되기를 약속하고 원수가에서 백마를 죽여 맹약하는 것으로써 서로 굳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같이하는 친한 형제도 오히려 돈과 재물을 다툼이 있는데 속이고 거짓을 반복하는 소진의 도모함을 믿고자 하니 이루어질 수 없음이 또한 분명합니다.”


[] 集解洹音桓

[] 集解의 음은 이다.

 

大王不事秦秦下兵攻河外[]據卷[]酸棗[]劫衛取陽晉[]則趙不南趙不南而梁不北梁不北則從道絕從道絕則大王之國欲毋危不可得也秦折韓而攻梁[]韓怯於秦秦韓為一梁之亡可立而須也此臣之所為大王患也

(장의가 말하기를) “대왕이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진나라가 군대를 내려 보내 ()의 밖을 공격하고 ’, ‘’, [], ‘산조에 근거하여 위나라를 겁주어 양진을 취하면 곧 조나라가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조나라가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면 양이 북으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며, 양이 북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곧 합종은 길이 끊어질 것이며 합종의 길이 끊어지면 곧 대왕의 나라는 위태롭지 않으려 해도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꺽고 양을 공격하고 한나라가 진나라에 겁을 먹고 진나라와 한나라가 하나가 되면 양이 망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는 신이 대왕을 위해 근심하는 바입니다.”


[] 索隱河之西即曲沃平周之邑等正義河外即卷酸棗

[] 索隱황하의 서쪽은 곧 곡옥이니 평주의 읍 등이다. 正義河外’, ‘’, ‘’, ‘酸棗이다.


[] 集解卷丘權反以善反索隱卷縣在河南地名正義卷衍屬鄭州滑州胙城縣酸棗屬滑州皆黃河南岸地

[] 集解이다. ‘이다. 索隱권현은 하남에 있다. ‘은 지명이다. 正義은 정주에 속한다. ‘은 활주 조성현이다. ‘酸棗는 활주에 속한다. 모두 황하 남쪽 가의 땅이다.

 

[] 正義故城在曹州乘氏縣西北三十七里

[] 正義옛 성이 조주 승씨현 서북쪽 37리에 있다.

 

[] 索隱戰國策

[] 索隱】 『戰國策이라 썼다.

 

為大王計莫如事秦事秦則楚韓必不敢動無楚韓之患則大王高枕而臥[]國必無憂矣

(장의가 말하기를) “대왕을 위한 계교로는 진나라를 섬기는 것 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진나라를 섬기면 곧 초나라, 한나라가 반드시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초나라, 한나라의 근심이 없을 것이며, 곧 대왕은 베개를 높이하고 누워 자잘 수 있을 것이니 나라는 반드시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 正義枕針鴆反

[] 正義의 음은 이다.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而能弱楚者莫如梁楚雖有富大之名而實空虛其卒雖多然而輕走易北不能堅戰悉梁之兵南面而伐楚勝之必矣割楚而益梁虧楚而適秦嫁禍安國此善事也大王不聽臣秦下甲士而東伐雖欲事秦不可得矣

(장의가 말하기를) “또 저 진나라의 약하게 하고자 하는 바로는 초나라 같음이 없고 초나라를 약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양과 같음이 없다. 초나라가 비록 부유하고 크다는 명성이 있으나 실제로는 공허하고, 그 군대가 비록 많다하나 달기를 가볍게 하고 쉽게 달아나니 굳건하게 싸우지 못합니다. 모든 양의 군대를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초나라를 치면 틀림없이 이길 것입니다. 초나라를 나누어 양에 더하고 초나라를 이지러뜨려(부수어) 진나라에 돌려주는 것은 재앙을 (초나라에)전가하고 ()나라를 편안히 하는 것이니 이는 좋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 대왕이 신의 말을 듣지 않으시면 진나라는 갑사(갑옷 입은 군사)를 내려 보내 동쪽으로 정벌 할 것이니 비록 진나라를 섬기고자 하여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說一諸侯而成封侯是故天下之游談士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以說人主人主賢其辯而牽其說豈得無眩。「臣聞之積羽沈舟群輕折軸眾口鑠金積毀銷故願大王審定計議且賜骸骨辟魏。」

(장의가 말하기를)“또 저 합종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큰소리를 많이 치지만 믿음은 적고, 한 번 제후를 설득하여 후에 봉해짐을 이루려 합니다. 이 때문에 천하를 돌아다니며 이야기하는 선비들이 낮, 밤 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가는 것으로써 합종의 편리함을 말하지 않음이 없고, 이로써 임금을 설득합니다. 임금이 그 변설을 현명하다 여겨서 그 말에 끌리면 어찌 현혹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들으니 깃털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여러 개의 가벼운 것이 수레 축을 부러뜨리고, 여러 입이 쇠를 녹이며, 헐뜯음이 쌓이면 뼈를 녹입니다. 그러므로 원하건데 대왕께서는 자세하게 살펴서 계획을 논의하여 정하십시오. 또 벼슬을 놓고 위나라를 피할 것입니다.


哀王於是乃倍從約而因儀請成於秦張儀歸復相秦三歲而魏復背秦為從秦攻魏取曲沃明年魏復事秦

애왕이 이에 곧 합종의 약속을 배반하고 장의로 인하여(장의를 중간에 세워) 진나라에 화친을 청하였다. 장의가 돌아가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3년 후 위나라가 다시 진나라를 배반하고 합종하였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곡옥을 취하였다. 다음해 위나라가 진나라를 섬겼다.

 

秦欲伐齊齊楚從親於是張儀往相楚楚懷王聞張儀來虛上舍而自館之:「此僻陋之國子何以教之?」儀說楚王曰:「大王誠能聽臣閉關絕約於齊臣請獻商於之地六百里[]使秦女得為大王箕之妾秦楚娶婦嫁女長為兄弟之國此北弱齊而西益秦也計無便此者。」楚王大說而許之群臣皆賀陳軫獨弔之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고자 하니 제나라가 초나라와 합종하였다. 이에 장의는 초나라에 가서 재상이 되려 하였다. 초나라 회왕이 장의가 온다는 것을 듣고는 좋은 집을 비우고 스스로 (객사)에 가서 말하기를 이 궁벽하고 비루한 나라에 그대는 무엇을 가르쳐 주려하시오했다. 장의가 초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진실로 신의 말을 듣고 을 닫고, 제나라와 약속을 끊을 수 있다면 신은 600리를 바치고 진나라 여자로 하여금 대왕의 청소하는 첩으로 삼게 하여 진나라와 초나라가 여자를 시집보내면 길이 형제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는 북으로 제나라를 약하게 하고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니 계책으로 이보다 편리한 것이 없습니다.” 초나라 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축하하였는데 진진만이 홀로 슬퍼하였다.


楚王怒曰:「寡人不興師發兵得六百里地群臣皆賀子獨弔何也?」陳軫對曰:「不然以臣觀之商於之地不可得而齊秦合齊秦合則患必至矣。」楚王曰:「有說乎?」陳軫對曰:「夫秦之所以重楚者以其有齊也今閉關絕約於齊則楚孤秦奚貪夫孤國而與之商於之地六百里

초나라 왕이 노하여 말하기를 과인이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도 600리의 땅을 얻어서 여러 신하들이 축하하는데 그대만이 홀로 슬퍼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했다. 진진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살펴 보건데 의 땅은 얻지도 못하고, 제나라와 진나라가 합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합하면 곧 근심이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했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말할 거시 있는가?”하니 진진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저 진나라가 초나라를 소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제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을 닫고 제나라에 약속을 끊으면 곧 초나라는 외로워집니다.(고립됩니다.) 진나라가 어찌 저 외로운(고립된) 나라를 탐하면서 의 땅 600리를 주겠습니까?” 했다.

 

張儀至秦必負王是北絕齊交西生患於秦也而兩國之兵必俱至善為王計者不若陰合而陽絕於齊使人隨張儀苟與吾地絕齊未晚也不與吾地陰合謀計也。」楚王曰:「願陳子閉口毋復言以待寡人得地。」乃以相印授張儀厚賂之於是遂閉關絕約於齊使一將軍隨張儀

(진진이 말하기를)“장의가 진나라에 이르면 반드시 왕을 배반할 것입니다. 이는 북으로는 제나라와의 교류를 끊고, 서쪽으로는 근심이 진나라에서 생겨나서 두 나라의 군대가 반드시 함께 이를 것입니다. 임금을 위한 좋은 계책은 안으로는 (제나라와)합하고, 밖으로는 제나라와 끊고 사람을 시켜 장의를 따르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당을 준다면 제나라와 끊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땅을 주지 않는다면 안으로 (제나라와) 합하는 계책입니다.” 하였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진자는 입을 닫고 다시 말하지 말 것을 원한다. 과인은 땅을 얻기를 기대한다.” 했다. 이에 재상의 을 장의에게 주고 재물을 많이 주었다. 이에 마침내 관문을 닫고 제나라와 약속을 끊고, 한 장군으로 하여금 장의를 따르게 하였다.

 

[] 索隱劉氏云:「商即今之商州有古商城其西二百餘里有古於城。」

[] 索隱유씨가 말하기를 “‘은 곧 지금의 상주이니 옛 商城이 있다. 그 서쪽 200여리에 옛 於城이 있다.

 

張儀至秦詳失綏墮車[]不朝三月楚王聞之:「儀以寡人絕齊未甚邪?」乃使勇士至宋借宋之符北罵齊王齊王大怒折節而下秦秦齊之交合張儀乃朝謂楚使者曰:「臣有奉邑六里願以獻大王左右。」楚使者曰:「臣受令於王以商於之地六百里不聞六里。」還報楚王楚王大怒發兵而攻秦陳軫曰:「軫可發口言乎攻之不如割地反以賂秦與之并兵而攻齊是我出地於秦取償於齊也王國尚可存。」楚王不聽卒發兵而使將軍屈擊秦秦齊共攻楚斬首八萬殺屈遂取丹陽[]漢中之地[]楚又復益發兵而襲秦至藍田大戰楚大敗於是楚割兩城以與秦平

장의가 진나라에 이르자 거짓으로 끈을 잃고 수레에서 떨어져서 3개월을 조회하지 않았다. 초나라 왕이 그것을 듣고 말하기를 장의는 과인이 제나라와 끊은 것이 심(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인가?” 하고는 용사로 하여금 송나라에 이르게 하고 송나라의 부절을 빌려 북으로 제나라 왕을 욕하였다. 제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부절을 부러뜨리고 진나라에 낮추었다. 진나라와 제나라가 사귀고 합하자 장의가 이에 조화하고 초나라 사신에게 말하기를 신은 奉邑6리인데 대왕의 측근에게 바치고자 한다.” 하였다. 초나라 사자가 말하기를 신이 왕에게 명을 받기를 의 땅 6백리라 하고, 6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는 돌아가 초나라 왕에게 보고하였다. 초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陳軫曰:「軫可發口言乎攻之不如割地反以賂秦與之并兵而攻齊是我出地於秦取償於齊也王國尚可存。」楚王不聽卒發兵而使將軍屈丐擊秦秦齊共攻楚斬首八萬殺屈丐遂取丹陽[]漢中之地[]楚又復益發兵而襲秦至藍田大戰楚大敗於是楚割兩城以與秦平

진진이 말하기를 내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공격하는 것은 땅을 떼어서 도리어 진나라에 뇌물로 주고 군대를 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진나라에 땅을 내어주고 제나라에 보상을 취하는 것이니 왕께서 나라를 오히려 보존할 수 있습니다.” 초나라 왕이 듣지 않고 마침내 군대를 내어 장군 굴개로 하여금 진을 치게 하였다. 진나라와 제나라가 같이 초나라를 쳐서 8만의 머리를 베고 굴개를 죽이며, 마침내 단양한중의 땅을 취하였다.(점령하였다.) 초나라가 또 다시 군대를 내어 진나라를 습격하려 하여 남전에 이르러 크게 싸웠으나 초나라가 크게 패하였다. 이에 초나라가 두 성을 떼어 진나라에 주고 화평하였다.

 

[] 正義詳音羊

[] 正義은 음이 이다.

 

[] 集解徐廣曰:「在枝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지강에 있다.” 했다.

 

[] 正義今梁州也在漢水北

[] 正義지금의 양주이니 한수북쪽에 있다.

 

秦要楚[]欲得黔中地欲以武關外[]易之楚王曰:「不願易地願得張儀而獻黔中地。」秦王欲遣之口弗忍言張儀乃請行惠王曰:「彼楚王怒子之負以商於之地是且甘心於子。」

진나라가 초나라에게 요구하여 검중의 땅을 얻고자 하여 무관 밖의 땅과 바꾸고자하였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땅을 바꾸기를 원하지 않고 장의를 얻으면 검중을 바치기를 원한다.” 했다. 진나라 왕이 그를 보내고자 하나 입으로 차마 말하지 못하였다. 장의가 이에 가기를 청하였다. 혜왕이 말하기를 저 초나라 왕이 그대가 ’, ‘’(의 땅을 주기로 한 약속)를 저버린 것에 노하여 그대를 기꺼이 원하는 것이다.” 했다.


張儀曰:「秦彊楚弱臣善靳尚得事楚夫人鄭袖袖所言皆從且臣奉王之節使楚楚何敢加誅假令誅臣而為秦得黔中之地臣之上願。」遂使楚楚懷王至則囚張儀將殺之靳尚謂鄭袖曰:「子亦知子之賤於王乎?」鄭袖曰:「何也?」靳尚曰:「秦王甚愛張儀而不欲出之[]今將以上庸之地六縣[]賂楚美人聘以宮中善歌謳者為媵楚王重地尊秦秦女必貴而夫人斥矣不若為言而出之。」

장의가 말하기를 진나라는 강하고 초나라는 약합니다. 신이 근상을 잘 알고 근상이 초나라 부인 정수를 섬기는데 정수가 말한 바를 (초나라 왕이)모두 따릅니다. 또 신이 왕의 부절을 받들고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면 초나라가 어찌 감히 죽일 수 있겠습니까? 가령 신을 죽이더라도 진나라를 위해 검중의 땅을 얻는다면 신이 가장 바라던 것입니다.” 했다. 마침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초나라 회왕이 (장의가)이르자 장의를 가두고 장차 죽이려 했다. 근상이 정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는 또한 그대의 왕에게 천함을 받을 것을 알고 있습니까?” 하니 정수가 말하기를 무엇 때문인가?” 했다. 근상이 말하기를 진나라 왕이 장의를 매우 사랑하여 반드시 나오게 하려하여 지금 장차 상용의 땅 6현을 초나라에 뇌물로 주고, 미인을 초나라에 시집가게 하고, 궁중의 노래 잘하는 자로써 잉첩으로 삼게 하고자 합니다. 초나라 왕은 땅을 소중히 하고 진나라를 높이니 진나라의 여자가 반드시 귀하게 되고 부인은 배척될 것입니다. 말을 하여 그(장의)를 내보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했다.

 

於是鄭袖日夜言懷王曰:「人臣各為其主用今地未入秦秦使張儀來至重王王未有禮而殺張儀秦必大怒攻楚妾請子母俱遷江南毋為秦所魚肉也。」懷王後悔赦張儀厚禮之如故

이에 정수가 밤낮으로 회왕에게 말하기를 신하는 각각 그 임금을 위하여 쓰입니다. 지금 땅이 아직 진나라에 들어가지(떼어주지) 않았는데 진나라 사신 장의가 온 것은 왕을 지극히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왕께서 예를 두지 않고 장의를 죽인다면 진나라가 반드시 크게 노하여 초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첩은(저는) 아이들과 어머니가 함께 강남에 옮겨가서 진나라에 의해 물고기 밥이 되지 않기를 청합니다.” 했다. 회왕이 후회하면서 장의를 풀어주고 예우를 두텁게 하기를 옛날과 같이 하였다.


[] 正義要音腰也

[] 正義의 음은 이다.

 

[] 正義即商於之地

[] 正義’, ‘의 땅이다.

 

[] 索隱按:「字當作」。時張儀為楚所囚故必欲出之也正義秦王不欲出張儀使楚若欲自行今秦欲以上庸地及美人贖儀

[] 索隱살펴보니 “‘자는 마땅히 자로 써야 한다. 이 때 장의가 초나라에 가두어져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나오게 하고자 한 것이다. 正義진나라 왕이 장의를 초나라에 사신으로 내보내려 하지 않았는데, 만약 스스로 갔다면 지금 진나라는 상용의 땅과 미인으로써 장의를 대신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 正義今房州也

[] 正義지금의 방주이다.

 

張儀既出未去聞蘇秦死[]乃說楚王曰:「秦地半天下兵敵四國被險帶河四塞以為固虎賁之士百餘萬車千乘騎萬匹積粟如丘山法令既明士卒安難樂死主明以嚴將智以武雖無出甲席卷常山之險必折天下之脊[]天下有後服者先亡且夫為從者無以異於驅群羊而攻猛虎虎之與羊不格明矣今王不與猛虎而與群羊臣竊以為大王之計過也

장의가 나와서 아직 떠나가지 않았는데 소진이 죽은 것을 듣고 이에 초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진나라의 땅이 천하의 반이고, 군대는 네 나라를 대적하며, 험함을 입고 가 둘러쳐져 있으며, 4방의 요새로 견고합니다. 호랑이처럼 날랜 군사가 백여만이고, 수레가 천승이며, 타는 말이 만필이며, 쌓인 곡식이 언덕과 산과 같습니다. 법령은 이미 밝고 사졸은 어려움을 편안히 여기고 죽음을 즐겁게 여기며 임금은 현명하고 엄격하며, 장수는 지혜롭고 용감하여 비록 군대를 내지 않아도 상산의 험함을 돗자리를 마는듯한 기세로 반드시 천하의 등을 꺽을 것이니 천하에 늦게 복종함이 있는 자가 먼저 망할 것입니다. 또 저 합종을 하는 자는 양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호랑이의 양에 함께하는 격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옹께서 사나운 호랑이와 함께 하지 않고 양떼와 함께 한다면 신은 가만히(저으기) 대왕의 계책이 잘 못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 索隱按此時當秦惠王之後元十四年

[] 索隱살펴보니 이때는 진나라 혜왕 후원 14년에 해당한다.

 

[] 索隱按常山於天下在北有若人之背脊也正義古之帝王多都河北河東故也

[] 索隱살펴보니 천하에서 상산은 북쪽에 있으니 사람의 등뼈와 같음이 있다. 正義옛날의 제왕이 많이 하북과 하동에 도읍하였기 때문이다.


凡天下彊國非秦而楚非楚而秦兩國交爭其勢不兩立大王不與秦秦下甲據宜陽韓之上地不通下河東取成皋韓必入臣梁則從風而動秦攻楚之西梁攻其北社稷安得毋危

무릇 천하의 강한 나라는 진나라가 아니면 초나라이고, 초나라가 아니면 진나라이니 두 나라가 서로 다투어 그 형세가 兩立하지 못하였습니다. 대왕이 진나라와 함께 하지 않으면 진나라는 갑사를 내려 보내 의양에 근거하여 한나라 상군의 땅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하동을 내려가 성고를 취하면 한나라는 반드시 (진나라에) 신하로 들어올 것이며, 양은 곧 바람을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진나라가 초나라의 서쪽을 공격하면 한나라와 양은 그 북쪽을 공격할 것이니 사직이 어찌 위태로움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且夫從者聚群弱而攻至彊不料敵而輕戰國貧而數舉兵危亡之術也臣聞之兵不如者勿與挑戰[]粟不如者勿與持久夫從人飾辯虛辭高主之節言其利不言其害卒有秦禍[]無及為已是故願大王之孰計之

또 저 합종하는 자는 여러 약한 것을 모아 지극히 강한 자를 공격하고 적을 헤아리지 않고 가벼이 싸우며, 나라가 가난함에도 여러 번 군대를 일으키니 위태롭고 망함의 방법입니다. 신이 들으니 군대가 같은 자가 아니면 도전하지 말라 하고, 곡식이 같은 자가 아니면 오래 기다리지 말라 하였습니다, 저 합종을 하는 자는 말을 꾸미고 말을 헛되게 하여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것을)임금의 절조라 하여 높이고 그 이로움은 말하지만 그 해로움은 말하지 않아 마침내(갑자기) 진나라의 재앙이 있어도 그치게 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대왕께서는 계책을 숙고할 것을 바랍니다.


[] 正義挑田鳥反

[] 正義는 음이 이다.

 

[] 正義卒悤勿反

[] 正義의 음은 이다.

 

秦西有巴蜀大船積粟起於汶山[]浮江已下至楚三千餘里舫船[]載卒一舫載五十人與三月之食下水而浮一日行三百餘里里數雖多然而不費牛馬之力不至十日而距扞關[]扞關驚則從境以東盡城守矣黔中巫郡非王之有秦舉甲出武關南面而伐則北地絕[]秦兵之攻楚也危難在三月之內而楚待諸侯之救在半歲之外此其勢不相及也[]弱國之救忘彊秦之禍此臣所以為大王患也

진나라 서쪽에는 파와 촉이 있는데 큰 배에 곡식을 쌓고 문산에서 일어나 강에 띄워 내려가면 초나라에 이르기까지 삼천리입니다. 한 쌍의 배에 병졸을 싣는데 한 배에 50인과 3개월의 식량을 싣고 물에 떠서 내려가면 하루 가는 것이 300여리입니다. (거리)가 비록 많지만 그러하나 우마의 힘을 허비하지 않고도 10일이 지나지 않아 한관에 이릅니다. 한관이 놀라면 곧 국경을 따라 동쪽으로 모두 성을 지키게 될 것이니 검중과 무군은 왕의 소유가 아니게 됩니다.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문관을 나와 남쪽을 향하여 치면 곧 뷱쪽의 땅이 끊어집니다. 진나라 군대의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위태로움과 어려움이 3개월 안에 있게 되는데 초나라가 제후의 구함을 기다리는 것은 반년이 넘게 있으니 이는 그 형세가 서로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 약한 나라의 구원함을 기다리느라 강한 진나라의 재앙을 잊는 것입니다. 이는 신이 대왕을 위하여 근심하는 까닭입니다.

 

[] 正義汶音泯

[] 正義의 음은 이다.

 

[] 索隱枋船枋音方謂並兩船也亦音舫

[] 索隱은 배이다. ‘의 음은 이니 두 배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또한 음이 이다.

 

[] 集解徐廣曰:「巴郡魚復縣有扞水關。」 索隱扞關在楚之西界復音伏地理志巴郡有魚復縣正義在硤州巴山縣界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파군 어복현에 하수관이 있다.” 했다. 索隱한관은 초나라의 서쪽 경계에 있다. ‘의 음은 이다.

 

[] 正義楚之北境斷絕

[] 正義초나라의 북쪽 국경이 끊어진다.

 

大王嘗與吳人戰五戰而三勝陣卒盡矣偏守新城[]存民苦矣臣聞功大者易危而民敝者怨上夫守易危之功而逆彊秦之心臣竊為大王危之

대왕께서 일찍이 오나라 사람들과 싸웠는데 5번 싸워 3번 이겼으되 진을 친 군사는 다(전멸)하고 궁벽히 신성을 지키며 백성의 괴로움을 보존하였습니다.(남겼습니다.) 신이 들으니 큰 공은 쉽게 위태로워지고, 백성이 해지면(피폐해지면) 윗사람을 원망한다고 합니다. 위태로움을 쉽게 하는 공을 지키고, 강한 진나라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을 신은 가만히 대왕이 위태롭다 여깁니다.


[] 索隱偏匹連反此云新城」,當在吳楚之閒正義新攻得之城未詳所在

[] 索隱이다.

 

且夫秦之所以不出兵函谷十五年以攻齊趙者陰謀有合[]天下之心楚嘗與秦構難戰於漢中[]楚人不勝列侯執珪死者七十餘人遂亡漢中楚王大怒興兵襲秦戰於藍田此所謂兩虎相搏[]者也夫秦楚相敝而韓魏以全制其後計無危於此者矣願大王孰計之

또 진나라가 함곡관을 나와 15년 동안 제나라와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은 까닭은 몰래 천하를 합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나라가 일찍이 진나라와 어려움을 엮어 한중에서 싸웠는데 초나라 사람들이 이기지 못하고, 열후인 규를 잡고 죽은 자가 70여인이었으며, 마침내 한중을 잃었습니다. 초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여 남전에서 싸웠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두 호랑이가 서로 쳤다는 것입니다. 저 진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피폐해지면 한나라와 위나라가 (세력을)온전히 하여 그 뒤를 제재할 것이니 계책이 이보다 위태로운 것이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계책을 숙고하시길 바랍니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 이라고도 쓴다.

 

[] 索隱其地在秦南山之南楚之西北漢水之北名曰漢中

[] 索隱그 땅은 진나라 남산의 남쪽, 초나라의 서북쪽, 한수의 북쪽에 있어서 한중이라 이름한 것이다.

 

[] 集解徐廣曰:「或音』。」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혹 음을 이라 한다.” 했다.

 

秦下甲攻衛陽晉必大關天下之匈[]大王悉起兵以攻宋不至數月而宋可舉舉宋而東指則泗上十二諸侯[]盡王之有也

진나라가 군대를 내려 보내 위나라 양진을 치면 반드시 천하의 심장을 크게 막는 것입니다. 대왕은 모든 군대를 일으켜 송을 공격하고 몇 개월 되지 않아 송나라를 점령할 수 있고, 송나라를 점령하고 동쪽을 가리키면 곧 사수 가의 12제후는 모두 왕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 集解徐廣曰:「一作』。」 索隱攻衛陽晉大關天下胸夫以常山為天下脊則此衛及陽晉當天下胸蓋其地是秦楚之交道也以言秦兵據陽晉是大關天下胸則他國不得動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은 한편으로 로 쓴다.” 索隱위나라 양진을 쳐서 천하의 가슴을 크게 막는다.”는 것은 대저 상산이 천하의 척추가 되니 곧 이는 위나라와 양진이 천하의 가슴에 해당하는데 대개 그 땅은 나라, 나라, 제나라, 초나라가 길을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지고 진나라 군대가 양진에 웅거하여 천하의 가슴을 크게 막으면 곧 다른 나라들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 索隱謂邊近泗水之側當戰國之時有十二諸侯莒之比也

[] 索隱사수의 옆 가까운 곳에 전국시대의 12제후가 있었는데 송나라, 노나라, 주나라, 거나라 등등이다.

 

凡天下而以信約從親相堅者蘇秦封武安君相燕即陰與燕王謀伐破齊而分其地乃詳有罪出走入齊齊王因受而相之居二年而覺齊王大怒車裂蘇秦於市夫以一詐偽之蘇秦而欲經營天下混一諸侯[]其不可成亦明矣

무릇 천하에 합종의 맹약으로써 서로 굳게 한 자는 소진인데 무안군에 봉해지고, 연나라의 재상이 되어 은밀히 연나라 왕과 제나라를 쳐서 깨트리고 그 땅을 나눌 것을 도모하였다. 이에 거짓으로 죄를 짓고 나와 달려서 제나라에 들어가니 제나라 왕이 인하여 받아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머문지 2년에 발각되니 제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시장에서 소진을 수레로 찢어 죽였습니다. 대저 속이고 거짓을 하는 소진이 천하를 경영하여 제후를 섞어 하나로 하고자 한 것이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또한 분명합니다.


[] 索隱混本作」,同胡本反

[] 索隱은 본래 이라 썼는데 (음은)같이 의 반이다.

 

今秦與楚接境壤界固形親之國也大王誠能聽臣臣請使秦太子入質於楚楚太子入質於秦請以秦女為大王箕帚之妾萬室之都以為湯沐之邑長為昆弟之國終身無相攻伐臣以為計無便於此者。」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는 국경과 땅의 경계를 접하여 진실로 형세가 친한 나라입니다. 대왕이 진실로 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신은 진나라 태자가 초나라에 인질로 들어가고 초나라 태자는 진나라에 인질로 들어오게 할 것을 청합니다. 진나라 여자로서 대왕을 위해 잡일을 하는 첩이되게 하며, 만호의 도읍을 주는 것으로써 탕목의 읍을 삼아 길이 형제의 나라가 되어 죽을 때까지 서로 공격하여 치는 일 이 없기를 청합니다. 신은 계책으로 이보다 편리한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於是楚王已得張儀而重出黔中地與秦欲許之屈原曰:「前大王見欺於張儀張儀至臣以為大王烹之今縱弗忍殺之又聽其邪說不可。」懷王曰:「許儀而得黔中美利也後而倍之不可。」故卒許張儀與秦親

이에 초나라 왕이 이미 장의를 얻었으므로 거듭 검중의 땅을 내어 진나라에 주어 허락하고자 했다. 굴원이 말하기를 앞서 내왕은 장의에게 속임을 당하였는데 장의가 이르렀으니 신은 대왕이 그를 삶아야(烹刑) 한다고 여깁니다. 지금 석방하여 차마 그를 죽이지 않고 또 그 간사한 말을 듣는 것은 불가합니다.” 했다. 회왕이 말하기를 장의를 허락하여 검중을 얻는 것은 좋은 이익이다. (약속하고서)뒤에 배반하는 것은 옳지 않다.” 했다. 그러므로 마침내 장의를(장의의 말을) 허락하고 진나라와 친교하였다.

     

張儀去楚因遂之韓說韓王曰:「韓地險惡山居五穀所生非菽而麥民之食大抵[]藿羹一歲不收收不饜糟糠地不過九百里無二歲之食料大王之卒悉之不過三十萬而廝徒負養[]在其中矣除守徼亭鄣塞見卒不過二十萬而已矣秦帶甲百餘萬車千乘騎萬匹虎賁之士跿科頭[]貫頤[]奮戟者[]至不可勝計

장의가 초나라를 떠나 한나라로 가서 한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한나라는 땅이 험악하고 산에 살아서 생산되는 곡식은 콩 아니면 보리이며, 백성들이 먹는 것은 대개 콩밥에 콩잎 국입니다. 1년을 거두지 못하면 지게미와 쌀겨를 실컷 먹지 못합니다. 땅은 900리에 지나지 않고, 2년의 식량이 없습니다. 대왕의 군대를 헤아려 보면 모두 30만에 지나지 않는데 그 안에 하인의 무리와 잡부들이 있습니다.(포함됩니다.) 徼亭鄣塞를 지키는 이를 제하면 보이는 군가가 20만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진나라는 갑옷을 두른 군사가 백여만, 수레가 천대, 타는 말이 만필이며 호랑처럼 날랜 군사가 도약하고 투구를 쓰지 않고 두 손으로 턱을 들어 올리며 곧바로 적에게 들어가 창을 떨치는 자를 이루 헤아리지 못합니다. 

  

秦馬之良戎兵之眾探前趹[]蹄閒三尋[]騰者不可勝數山東之士被甲蒙冑以會戰秦人捐甲徒裼[]以趨敵左挈人頭右挾生虜夫秦卒與山東之卒猶孟賁之與怯夫以重力相壓猶烏獲之與嬰兒夫戰孟賁烏獲之士以攻不服之弱國無異垂千鈞之重於鳥卵之上必無幸矣

진나라 말은 좋고, 병사들은 많으며 말의 앞발은 앞을 향하고 뒷발은 뒤에서 땅을 차 빨리 달려서 발굽사이가 三尋(21)을 뛰어 오르는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산동의 군사들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싸우지만 진나라 사람들은 갑옷을 벗고, 웃통을 벗어 어깨를 드러내는 것으로써 적에게 달려가 왼 손으로는 사람의 머리를 끊고 오른 손으로는 살아있는 포로를 낍니다. 저 진날의 군사와 산동의 군사는 孟賁과 비겁한 남자에 대해서와 같고, 무거운 힘으로써 서로 누르는 것이 오획과 어린아이에 대해서와 같습니다. 저 맹분과 오획의 군사를 싸우게 하는 것으로써 복종하지 않는 약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천균의 무거움을 새 알의 위에 누르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반드시 요행은 없을 것입니다.


[] 索隱冢音斯謂雜役之賤者負養謂負檐以給養公家亦賤人也

[] 索隱의 음은 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천한 자이다. 부양은 公家給養하는 부담을 말하니 또한 천인이다.

 

[] 集解跿跔音徒俱跳躍也又云偏舉一足曰跿跔科頭謂不著兜鍪入敵。 索隱跿跔音徒俱二音跔又音劬劉氏云謂跳躍也」。又韻集云偏舉一足曰跿跔」。戰國策曰虎之士跿跔」。科頭謂不著兜鍪

[] 集解跿跔의 음은 徒俱이니 도약이다. 또한 한쪽 발을 치우쳐 드는 것을 跿跔라고 한다. 과두는 투구를 쓰지 않고 적에게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索隱跿跔의 음은 徒俱 두 음이다. ‘는 또 음이 이다. 유씨가 말하기를 도약을 말한다.” 했다. 韻集에 치우쳐서 한 쪽 발을 드는 것을 跿跔 . 한다.” 했다. 戰國策범 같은 사나운 사람 용사를 도구라 한다.” 했다. 과두는 투구를 쓰지 않는 것이다.

 

[] 索隱謂兩手捧頤而直入敵言其勇也

[] 索隱두 손으로 턱을 받쳐 들고 곧바로 적에게 들어가는 것을 말함이니 그 용맹스러움을 말한다.

 

[] 集解執戟奮怒而入陳也索隱謂又有執戟者奮怒而趨入陣

[]集解창을 잡고 분노하여 진에 들어가는 것이다. 索隱또 창을 잡은 자가 분노하면서 진에 달려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 索隱謂馬前足探向前後足趹於後趹音烏穴反趹謂後足抉言馬之走埶疾也

[] 索隱말의 앞발은 앞을 찾아 향하고 뒷발은 뒤에서 차는 것을 말한다. ‘의 음은 이다. 은 뒷발이 땅을 파는 것이니 말이 빨리 달리는 것을 말한다.


[] 索隱按七尺曰尋言馬走之疾前後蹄閒一擲過三尋也

[] 索隱살펴보니 일곱 자를 이라 하니 말이 달리기를 빨리 하여 앞과 뒷발굽 사이가 한 번 던지면 三尋을 넘는 것을 말한다.

 

[] 索隱徒者徒跣也袒也謂袒而見肉也

[] 索隱는 맨발이다, ‘이다. 웃통을 벗어 고기를 보이는 것이다.

 

夫群臣諸侯不料地之寡而聽從人之甘言好辭比周以相飾也皆奮曰聽吾計可以彊霸天下』。夫不顧社稷之長利而聽須臾之說詿誤人主無過此者。「大王不事秦秦下甲據宜陽斷韓之上地東取成皋則鴻臺之宮桑林之苑[]非王之有也夫塞成皋絕上地則王之國分矣先事秦則安不事秦則危夫造禍而求其福報計淺而怨深逆秦而順楚雖欲毋亡不可得也

저 뭇 신하와 제후들이 땅의 적음을 헤아리지 않고 합종하는 사람들의 달콤하고 좋은 말을 듣고 두루 가까이하는 것으로써 서로 꾸며서 모두 분연히 말하기를 내 계교를 들으면 천하에 강하게 하는 것으로써 천하에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합니다. 저 사직의 긴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잠깐의 설득하는 말을 듣는 것은 임금을 그르치고 잘못되게 하는 것이 이보다 지나친 것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진나라가 군대를 내려 보내 의양에 근거하여 한나라의 上地를 끊고 동쪽으로는 성고, 형양을 취하면 곧 홍대의 궁과 상림의 동산()이 왕의 소유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대저 성고를 막고 上地를 끊으면 곧 왕의 나라는 나누어집니다. 먼저 진나라를 섬기면 곧 편안하고,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위태롭습니다. 대저 재앙에 나아가면서 그 복으로 보답받기를 구하는 것은 계책은 얕고 원망은 깊으니 진나라를 거스르고 초나라를 따르면서 비록 망하지 않으려 하나 할 수 없습니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集解徐廣曰:「一作』。」 索隱按此皆韓之宮苑亦見戰國策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로도 쓴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이는 모두 한나라의 궁원이니 또한 戰國策에 보인다.

 

故為大王計莫如為秦[]秦之所欲莫如弱楚而能弱楚者如韓非以韓能彊於楚也其地勢然也今王西面而事秦以攻楚秦王必喜夫攻楚以利其地轉禍而說秦計無便於此者。」

그러므로 대왕의 계책은 진나라를 위하는 것만 한 것(진나라를 섬기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진나라의 하고자 하는 바는 초나라를 약하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고, 초나라를 약하게 할 수 있는 자는 한나라입니다. 한나라가 초나라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그 땅의 형세가 그러한 것입니다. 지금 왕께서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고 초나라를 공격하면 진나라 왕은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저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으로써 그 땅을 이롭게 하고 재앙을 굴려서 진나라를 기쁘게 하는 것은 계책으로 이보다 편리한 것이 없습니다.


[] 集解為于偽反

[] 集解이다.

 

韓王聽儀計張儀歸報秦惠王封儀五邑號曰武信君使張儀東說齊湣王曰:「天下彊國無過齊者大臣父兄殷眾富樂然而為大王計者皆為一時之說不顧百世之利從人說大王者必曰齊西有彊趙南有韓與梁負海之國也地廣民眾兵彊士勇雖有百秦將無柰齊何』。大王賢其說而不計其實夫從人朋黨比周莫不以從為可臣聞之齊與魯三戰而魯三勝國以危亡隨其後雖有戰勝之名而有亡國之實是何也齊大而魯小也今秦之與齊也猶齊之與魯也秦趙戰於河漳之上再戰而趙再勝秦戰於番吾[]之下再戰又勝秦四戰之後趙之亡卒數十萬邯鄲僅存雖有戰勝之名而國已破矣是何也秦彊而趙弱

한나라 왕이 장의의 계책을 들었다. 장의가 돌아와 보고하니 진나라 혜왕이 장의를 다섯 개 읍에 봉하고, 호를 주어 무신군이라 했다. 장의로 하여금 동쪽으로 제나라 혼왕을 설득하게 하였다. (장의가 말하기를) “천하의 강한 나라로는 제나라보다 나은 것이 없어 대신과 부형이 크게 많고, 부유하며 즐거워합니다. 그러하나 대왕을 위한 계책은 모두 한 때의 말이고, 백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합종을 따르는 사람들이 대왕에게 말한 것은 반드시 제나라의 서쪽에는 강한 조나라가 있고, 남쪽에는 한나라와 양나라가 있습니다. 제나라는 바다를 지고 있는 나라로 땅이 넓고 백성이 많으며, 군대는 강하고 병사는 용감하니 비록 백 개의 진나라가 있어도 장차 제나라를 어찌할 수 없다.” 했을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그 말을 현명하다 여기면서도 그 실제를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대저 합종을 따르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가까이하면서 합종으로써 가능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신이 들으니 제나라와 노나라가 세 번을 싸워 노나라가 세 번을 이기도 나라는 위태로워 망하는 것으로써 그 뒤를 따라서 비록 전쟁에 이겼다는 이름은 있었으나 나라를 망하게 하는 실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째서 입니까? 제나라는 크고 노나라는 작습니다. 지금 진나라의 제나라와의 관계는 제나라와 노나라의 관계와 같습니다. 진나라와 조나라가 하수와 장수의 가에서 싸우는데 두 번 싸워서 조나라가 진나라를 두 번을 이기고, 번오의 아래에서 싸워서 두 번을 싸워 또 진나라를 이겼습니다. 네 번을 싸운 뒤에 조나라의 죽은 병졸의 수가 10만인데 한단을 겨우 보존하였으니 비록 전쟁에 이김의 명예가 있으나 나라는 이미 깨짐이 있었었습니다. 이는 어째서입니까? 진나라가 강하고 조나라는 약했기 때문입니다.


[] 索隱上音盤又音婆趙之邑也

[] 索隱의 음은 이니 조나라의 읍이다.

 

今秦楚嫁女娶婦為昆弟之國韓獻宜陽梁效河外[]趙入朝澠[]割河閒[]以事秦大王不事秦秦驅韓梁攻齊之南地悉趙兵渡清河指博關[]臨菑即墨非王之有也國一日見攻雖欲事秦不可得也是故願大王孰計之也。」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는 딸을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맞아서 형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나라는 의양을 바치고 양은 의 밖을 주었으며, 조나라는 승지에서 入朝하고 하간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써 진나라를 섬깁니다.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진나라는 한나라와 양을 몰아서 제나라의 남쪽을 공격하고 모든 조나라의 군대가 청하를 건너 박관을 향하면 임치와 즉묵은 왕의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 ()나라는 하루를 공격당하면 비록 진나라를 섬기고자 하여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시길 원합니다.

[] 索隱按河外河之南邑若曲沃平周等也正義謂同華州地也

[] 索隱살펴보니 河外()의 남쪽 읍이니 곡옥’, ‘평주등과 같은 것이다. 正義동주화주의 땅을 말한다.

 

[] 集解綿善反

[] 集解綿이다.

 

[] 索隱謂河漳之閒邑暫割以事秦耳正義河閒瀛州縣

[] 索隱황하와 장수의 사이 읍을 말하니 잠시 떼어서 진을 섬겼을 뿐이다. 正義하간영주이다.


[] 正義博關在博州趙兵從貝州度黃河指博關則漯河南臨淄即墨危矣

[] 正義박관박주에 있다. 조나라 군대가 패주로부터 황하를 건너 박관을 향하면 곧 탑하남쪽의 임치’, ‘즉금이 위태로워진다.

齊王曰:「齊僻陋隱居東海之上未嘗聞社稷之長利也。」乃許張儀張儀去西說趙王曰:「敝邑秦王使使臣效愚計於大王大王收率天下以賓秦兵不敢出函谷關十五年大王之威行於山東敝邑恐懼懾甲厲兵飾車騎[]馳射力田積粟守四封之內愁居懾處不敢動搖唯大王有意督過之也[]

제나라 왕이 말하기를 제나라는 치우치고 비루하여 동해가에 숨어살아 일찍이 사직의 오랜 이익을 듣지 못하였다.” 하고는 이에 장의(의 말을)를 허락하였다. 장의가 떠나서 서쪽의 조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우리 진나라 왕이 신을 사신으로 하여 어리석은 계책을 대왕에게 올리게 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천하를 거두어 거느리는 것으로써 진나라를 물리치니 진나라 군대가 감히 함곡관을 나오지 못한 것이 15년이었습니다. 대왕의 위엄이 산동에 행해지니 우리 진나라가 두려워하여 복종하고 갑옷을 수선하고 군대를 훈련시키며, 수레와 말을 꾸미고 말을 타고 달리며 활쏘기를 연습하며, 농사에 힘써 곡식을 저축하면서 사방의 경계 안을 지키고 머무는 것을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던 것은 오직 대왕의 뜻이 허물을 감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正義飾音敕

[] 正義의 음은 ()’이다.

 

[] 索隱督者正其事而責之督過是深責其過也

[] 索隱은 그 일을 바로 잡고 책망하는 것이다. ‘督過는 깊이 그 허물을 바로잡고 책망하는 것이다.

 

今以大王之力舉巴蜀并漢中包兩周遷九鼎守白馬之津秦雖僻遠然而心忿含怒之日久矣今秦有敝甲凋兵軍於澠池願渡河踰漳據番吾會邯鄲之下願以甲子合戰以正殷紂之事敬使使臣先聞左右

지금 대왕의 힘으로 파촉을 공략하고 한중을 병합하며, 양주를 포용하고 九鼎을 옮기고, 백마의 진을 지켰습니다. 진나라가 비록 궁벽지고 멀다하나 마음에 분함을 품고 노한 날이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진나라가 갑옷이 해지고, 군대가 피로하지만 승지에 진치고 하를 건너고 장수를 넘어 번오를 점거하여 한단의 아래에서 만나 갑자일에 싸우기를 원합니다. (이는)은나라 주왕을 바로잡은 일을 가지고 공경히 사신으로 하여금 먼저 좌우에게 듣게 한 것입니다.

凡大王之所信為從者恃蘇秦蘇秦熒惑諸侯以是為非以非為是欲反齊國而自令車裂於市夫天下之不可一亦明矣今楚與秦為昆弟之國而韓梁稱為東藩之臣齊獻魚鹽之地此斷趙之右臂也夫斷右臂而與人鬥失其黨而孤居求欲毋危豈可得乎

무릇 대왕이 합종을 하는 자를 믿는 것은 소진을 믿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제후를 미혹하여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하고 제나라를 배반하고 스스로 시장에서 거열형을 받았습니다. 저 저 천하를 하나로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초나라와 진나라는 형제의 나라가 되고, 한나라와 양(위나라)은 동쪽의 藩臣 되었다고 말하였으며,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을 바치는 땅이라 하니 이는 조나라의 오름 팔을 자는 것입니다. 오른 팔을 자르고 다른 사람과 다투면 그 무리를 잃고 외로이 사는 것이니 위태롭지 않으려 해도 어찌 될 수 있겠습니까?

 

今秦發三將軍其一軍塞午道[]告齊使興師渡清河軍於邯鄲之東一軍軍成皋驅韓梁軍於河外[]一軍軍於澠池約四國為一以攻趙[]必四分其地是故不敢匿意隱情先以聞於左右臣竊為大王計莫如與秦王遇於澠池面相見而口相結請案兵無攻願大王之定計。」

지금 진나라가 세 장군을 내어 한 장군은 오도를 막고 제나라에 말하여 군대를 일으켜 청하를 건너게 하여 한단의 동쪽에 진을 치게 하고, 한 장군은 성고에 진을 치고 한나라와 양(위나라)을 몰아서 하의 밖에 진을 치게 하며, 한 장군은 승지에 진을 치게 합니다. 네 나라를 묶어 하나로 하여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를 복종시키고 캐트리면 반드시 그 땅을 4개로 나눌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감히 뜻을 숨기고 정을 숨기지 않고 우선 좌우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신이 가만히 대왕을 위해 헤아려보니 진나라 왕과 승지에서 만나 서로 얼굴을 서로보고 서로 입을 맺어 군대를 살펴도 공격함이 없도록 할 것을 청합니다. 원하건데 대왕께서는 계책을 정할 것을 바랍니다.

[] 索隱此午道當在趙之東齊之西也午道地名也鄭玄云一縱一橫為午」,謂交道也

[] 索隱오도는 마땅히 조나라의 동쪽, 제나라의 서쪽에 있어야 한다. ‘오도는 지명이다. 정현이 말하기를 한번 세로로 하고, 한 번 가로로 하는 것을 라 하는데 길이 교차하는 것을 말한다.

 

[] 正義河外謂鄭滑州北臨河

[] 正義하외는 정나라, 활주를 말하니 북으로 하에 맞대어 있다.

 

趙王曰:「先王之時奉陽君專權擅勢蔽欺先王獨擅綰寡人居屬師傅不與國謀計先王棄群臣寡人年幼奉祀之日新心固竊疑焉以為一從不事秦非國之長利也乃且願變心易慮割地謝前過以事秦方將約車趨行[]適聞使者之明詔。」趙王許張儀張儀乃去

조나라 왕이 말하기를 선왕 때에 봉양군이 권력을 오로지 하고 세력을 함부로 하여 선왕을 가리고 속이고 독단적으로 일을 얽을 때 과인은 (궁궐에) 머물고 사부에게 속해(공부하고) 있어서 나라를 도모하는 계책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선왕이 여러 신하를 버리자(돌아가시자) 과인은 나이가 어려 제사를 받듦(정사에 참여한)의 날이 새로워(오래되지 않아) 마음에 진실로 가만히 의심이 있었는데 합종하는 것 하나로써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것은 나라의 긴 이익이 아니라 여겨집니다. 이에 도한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어 땅을 나누는 것으로 앞의 허물을 사과하고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바야흐로 장차 수레를 묶고 달려가려는데 마침 使者의 밝은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했다. 조나라 왕이 장의(의 말을) 허락하자 장의가 이에 떠나갔다.


[] 正義趨音趣

[] 正義의 음은 이다.

 

北之燕說燕昭王曰:「大王之所親莫如趙昔趙襄子嘗以其姊為代王妻欲并代約與代王遇於句注之塞[]乃令工人作為金斗長其尾[]令可以擊人與代王飲陰告廚人曰:『即酒酣樂進熱啜[]反斗以擊之。』[]於是酒酣樂進熱啜廚人進斟因反斗以擊代王殺之王腦塗地其姊聞之因摩笄以自刺故至今有摩笄之山[]代王之亡天下莫不聞

북으로 연나라에 가서 연나라 소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대왕의 친한 바는 조나라 같음이 없습니다. 옛날 조양자가 일찍이 그 누이로써 대왕의 누이로 삼았고 대를 병합하고자 하여 대왕과 구주의 요새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에 장인으로 하여금 쇠 국자 말을 만들게 하고 그 꼬리를 길게 하여 사람을 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대왕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몰래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술을 마시고 마음껏 즐길 때 뜨거운 마실 것을 올리면서 말을 반대로 하여 치라고 했습니다. 이에 술을 마음껏 마시고 즐길 때 뜨거운 마실 것을 올리고,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뜨거운 국을 올리면서 국자를 반대로 하여 대왕을 쳐서 죽이니 왕의 뇌가 땅에 칠해졌다.(뿌려졌다.) 그 누이기 듣고 비녀를 갈아서 스스로 찔렀기 때문에 지금 마계의 산이 있다. 대왕의 망함을 천하가 듣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 正義句注山在代州也上音勾

[] 正義句注山대주에 있다. 위의 음은 이다.

 

[] 索隱斗音主凡方者為斗若安長柄則名為枓音主尾即斗之柄其形若刀也

[] 索隱의 음은 이다. 무릇 네모난 것을 라 하고, 만약 편안하게 긴 자루가 있으면 곧 이름을 라 하는데 음은 이다. 꼬리는 곧 의 자루이고, 그 형태가 칼과 같다.


[] 索隱音昌悅反謂熱而啜之是羹也於下云廚人進斟」,斟謂羹勺故因名羹曰斟左氏羊羹不斟是也

[] 索隱음은 이다. 살펴보니 뜨거우면서도 마시는 것은 국을 말한다. 아래에서 말한 廚人進斟(술을 따르는 것, 잔질)’은 국을 뜨는 것을 이른다. 그러므로 국을 이름하여 이라 한다. 좌씨가 양고기로 끓인 국은 잔질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 正義反即倒斗柄擊也

[] 正義은 곧 국자 자루를 돌려서 (뒤집어서) 치는 것이다.

 

[] 集解笄婦人之首飾如今象牙擿正義笄今簪也摩笄山在蔚州飛狐縣東北百五十里

[] 集解는 부인들의 머리를 꾸미는 것이니 지금의 象牙擿과 같다. 正義는 지금의 (비녀)’이다. ‘마계산은 울주 호현 동북쪽 150리에 있다.

 

夫趙王之很戾無親大王之所明見且以趙王為可親乎趙興兵攻燕再圍燕都而劫大王大王割十城以謝今趙王已入朝澠池效河閒以事秦今大王不事秦秦下甲雲中九原驅趙而攻燕則易水長城[]非大王之有也

저 조나라 왕의 어그러지고 친한 이가 없는 것은 대왕이 분명히 보았으니 또 조나라 왕과 친할 수 있겠습니까? 조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두 번 연나라의 도읍을 둘러싸고 대왕을 겁주니 대왕이 10개성을 떼어 주는 것으로써 사과했습니다. 지금 조나라 왕이 이미 승지에서 입조하여 하간의 땅을 주는 것으로써 진나라를 섬깁니다. 지금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다면 진나라는 군대를 운중’, ‘구원에 내려 보내고, 조나라를 몰아서 연나라를 공격하면 역수장성은 대왕의 소유가 아니게 됩니다.

 

[] 正義並在易州界

[] 正義모두 역주의 경계에 있다.

 

且今時趙之於秦猶郡縣也不敢妄舉師以攻伐今王事秦秦王必喜趙不敢妄動是西有彊秦之援而南無齊趙之患是故願大王孰計之。」燕王曰:「寡人蠻夷僻處雖大男子裁[]如嬰兒言不足以采正計今上客幸教之請西面而事秦獻恆山之尾[]五城。」燕王聽儀儀歸報未至咸陽而秦惠王卒武王立武王自為太子時不說張儀及即位群臣多讒張儀曰:「無信左右賣國以取容秦必復用之恐為天下笑。」諸侯聞張儀有卻武王皆畔衡復合從

또 지금 조나라는 진나라의 군현과 같아서 감히 망녕되게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여 치지 못합니다. 지금 왕께서 진나라를 섬기면 진나라 왕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며, 조나라는 감히 망녕되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이는 서쪽으로 강한 진나라의 응원이 있고, 남쪽으로 제나라와 조나라의 근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릴 것을 원합니다. 연나라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오랑캐로(미개하고) 궁벽진 곳에 있어 비록 큰 남자이나 헤아림은 어린아이 같아서 말하는 것이 바른 계책을 채택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지금 上客이 요행히 가르쳐주시니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고 항산 끝의 5개성을 바치기를 청합니다.” 하면서 연나라 왕이 장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장의가 돌아가 보고하려는데 함양에 이르지 않아 진나라 혜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였다. 무왕은 태자가 되었을 때로부터 장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즉위함에 이르러 여러 신하들이 장의를 많이 참소하여 말하기를 “(장의는) 믿을 수 없고 좌우로(여기저기로) 나라를 팔아서 환심을 삽니다. 진나라가 다시 그를 등용한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했다. 제후들이 장의가 무왕에게 물리쳐졌다는 것을 듣고 모두 연횡을 배반하고 다시 합종하였다.


[] 集解音在

[] 集解음은 이다.

 

[] 索隱尾猶末也謂獻恆山城以與秦

[] 索隱과 같다. ‘은 항산성을 진나라에 주었다는 것을 말한다.

 

秦武王元年群臣日夜惡張儀未已而齊讓又至張儀懼誅乃因謂秦武王曰:「儀有愚計願效之。」王曰:「柰何?」對曰:「為秦社稷計者東方有大變然後王可以多割得地也今聞齊王甚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齊必興師而伐梁梁齊之兵連於城下而不能相去王以其閒伐韓入三川出兵函谷而毋伐以臨周祭器必出[]挾天子按圖籍此王業也。」秦王以為然乃具革車三十乘入儀之梁齊果興師伐之梁哀王恐張儀曰:「王勿患也請令罷齊兵。」乃使其舍人馮喜[]之楚借使之齊謂齊王曰:「王甚憎張儀雖然亦厚矣王之託儀於秦也!」

진나라 무왕 원년 여러 신하들이 밤낮으로 장의를 미워하기를 그치지 않는데 제나라의 꾸짖음이(제나라에서 장의를 꾸짖는 사신이) 또한 이르렀다. 장의가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진나라 무왕에게 말하기를 장의에게 어리석은 계책(보잘 것 없는 계책)이 있으니 그것을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무엇인가?” 하니 (장의가)대답하여 말하기를 진나라 사직을 위하는 계책은 동쪽으로 큰 변화가 있은 후에야 왕께서는 땅을 많이 나누어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들으니 제나라 왕은 (장의를)저를 매우 미워하여 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현명하지 못한 몸이나 양나라에 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양나라를 칠 것입니다. 제나라와 양(위나라)의 군대가 성 아래에서 연이어 서로 떠날 수 없을 것이니 왕께서는 그 사이에 한나라를 쳐서 三川을 들어가며 군대로 함곡관을 나오면 침이 없어도 주나라에 임하는 것만으로도 제기가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천자를 끼고서 지도와 호적을 살피는 이것이 왕업입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그렇다 여기고 革車(전투용 수레) 30대를 갖추고 장의를 들여 양나라에 가게 했다. 제나라가 과연 군대를 일으켜 쳤다. 양나라 애왕이 두려워하였다. 장의가 말하기를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나라 군대를 그만두게 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이에 그 측근인 풍희로 하여금 초나라에 가게하고, (초나라) 사신의 이름을 빌어 제나라에 가서 제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왕께서는 장의를 매우 미워합니다. 비록 그러하나 진나라에서 왕께 장의를 부탁함이 또한 두터습니다.” 했다

 

齊王曰:「寡人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何以託儀?」對曰:「是乃王之託儀也夫儀之出也固與秦王約曰:『為王計者東方有大變然後王可以多割得地今齊王甚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齊必興師伐之齊梁之兵連於城下而不能相去王以其閒伐韓入三川出兵函谷而無伐以臨周祭器必出挾天子案圖籍此王業也。』秦王以為然故具革車三十乘而入之梁也今儀入梁王果伐之是王內罷國而外伐與國[]廣鄰敵以內自臨而信儀於秦王也此臣之所謂託儀。」齊王曰:「。」乃使解兵

제나라 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장의를 미워하여 장의가 있는 곳은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쳤는데 무엇 때문에 장의를 부탁하는가?” 하니 (풍희가)대답하여 말하기를 이것이 곧 왕이 장의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저 장의가 (양으로)나온 것은 진실로 진나라 왕과 약속하며 말하기를 (진나라)왕을 위한 계책은 동방에 큰 변화가 있은 후에 (진나라)왕이 땅을 많이 나누어 얻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지금 제나라 왕께서 장의를 매우 미워하여 장의가 있는 곳은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장의가 현명하지 못한 몸으로 양에 가면 제나라 왕이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공격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양나라가 성 아래에서 연이어 서로 떠날 수 없을 것이니 (진나라 왕이)그 사이에 한나라를 공격하여 삼천에 들어가고 군대로 함곡관을 나와 주나라에 임하면 제기가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천자를 끼고서 지도와 호적을 살피는 것은 왕업입니다. 하자 진나라 왕이 그렇다 여겨서 혁거 30대를 갖추어 양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지금 장의가 양에 들어가니 과연 왕께서 공격하시니 이는 왕이 안으로는 나라를 피폐하게 하고, 밖으로는 친선의 나라를 치는 것으로 이웃의 적을 넓히는 것으로써 안으로 자임하는 것으로 진나라 왕이 장의를 믿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의 이른바 장의를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하였다. 제나라 왕이 말하기를 훌륭하다.’ 하고는 군대를 풀게 하였다.

[] 索隱凡王者大祭祀必陳設文物軒車彝器等因謂此等為祭器也

[] 索隱무른 왕 노릇 하는 자의 큰 제사는 반드시 문물과 헌거, 이기 등을 진설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일러 祭器라 한다.


[] 索隱此與戰國策同舊本作誤也

[] 索隱이는 戰國策과 같다. 구분에 라고 쓴 것은 잘못이다.

 

[] 索隱謂齊之伐梁也梁之與齊先相許與約從為鄰故云與國也

[] 索隱제나라가 양을 친 것을 말한다. 양이 제나라를 동맹국이라 한 것은 앞서 서오 합종을 약속하여 이웃이 되기를 허락하고 하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與國(동맹국)이라 한 것이다.

 

張儀相魏一歲[]於魏也

장의가 위나라의 재상이 된지 1년만에 위나라에서 죽었다.

 

[] 索隱年表張儀以安僖王十年卒紀年云梁安僖王九年五月卒

[] 索隱】 『연표에 장의는 안희왕 10년에 죽었다 한다. 기년에 양 안희왕 95월에 죽었다 한다.

 

陳軫者游說之士與張儀俱事秦惠王皆貴重爭寵張儀惡陳軫於秦王曰:「軫重幣輕使秦楚之閒將為國交也今楚不加善於秦而善軫者軫自為厚而為王薄也且軫欲去秦而之楚王胡不聽乎?」王謂陳軫曰:「吾聞子欲去秦之楚有之乎?」軫曰:「。」王曰:「儀之言果信矣。」軫曰:「非獨儀知之也行道之士盡知之矣昔子胥忠於其君而天下爭以為臣曾參孝於其親而天下願以為子故賣僕妾不出閭巷而售良僕妾也出婦嫁於鄉曲者良婦也今軫不忠其君楚亦何以軫為忠乎忠且見棄軫不之楚何歸乎?」王以其言為然遂善待之

진진은 유세하는 선비였다. 장의와 같이 진나라 혜왕을 섬겼는데 모두 귀중하게 되어 총애를 다투었다. 장의가 진진을 미워하여 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진진은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서 많은 선물을 하면서 가볍게 사신을 다니는 것은 장차 국교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 초나라가 진나라에 좋음을 더하지 않으면서도 진진을 좋게 여기는 것은 진진이 스스로를 두터이 하고 왕을 박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진진이 진능 떠나 초나라로 가고자 하는데 왕께서는 어찌하여 들어주지 않습니까?” 했다. 진나라 왕이 진진에게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그대는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오 가고자 한다 하는데 그 일이 있는가?” 하였다. 진진이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하자 진나라 왕이 말하기를 장의의 말을 과연 믿을 수 있다.” 했다. 진진이 말하기를 유독 장의만이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도를 행하는 선비들이 모두 그것을 압니다. 옛날에 자서는 그 임금에게 충성하여 천하가 다투어 신하로 삼으려 하였고, 증삼은 그 어버이에게 효도하여 천하가 아들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종과 첩을 팔기 위해 거리에 나가지 않아도 팔리는 것은 좋은 종과 첩이기 때문입니다. 부인이 나와 향곡에 시집갈 수 있는 것은 좋은 부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진진이 그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초나라가 또한 어찌 진진이 충성한다 여기겠습니까? 충성하고도 또한 버려지니 진진이(제가) 초나라에 가지 않고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하니 진나라 왕이 그 말이 그러하다 여기고 마침내 잘 대우하였다.

 

居秦期年秦惠王終相張儀而陳軫奔楚楚未之重也而使陳軫使於秦過梁欲見犀首犀首謝弗見軫曰:「吾為事來[]公不見軫軫將行不得待異日。」犀首見之陳軫曰:「公何好飲也?」犀首曰:「無事也。」:「吾請令公厭事[]可乎?」:「柰何?」:「田需[]約諸侯從親楚王疑之未信也公謂於王曰:『臣與燕趙之王有故數使人來:「無事何不相見」,願謁行於王。』王雖許公公請毋多車以車三十乘可陳之於庭明言之燕。」趙客聞之馳車告其王使人迎犀首楚王聞之大怒:「田需與寡人約而犀首之燕是欺我也。」怒而不聽其事齊聞犀首之北使人以事委焉犀首遂行三國相事皆斷於犀首軫遂至秦

진나라에 머문지 1년 만에 진나라 혜왕이 마침내 장의를 재상으로 삼으니 진진이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가 중용하지 않고 진진으로 하여금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다. 양나라를 지나면서 서수를 보고자 하였다. 서수가 사절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진진이 말하기를 내가 일을 위해 왔는데 공이 나를 보지 않으려 하니 제가 장차 가면 다른 날에 (만날 것을)기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서수가 만났다. 진진이 말하기를 공은 어째서 술 마시기를 좋아합니까?” 하니 서수가 말하기를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진진이 말하기를 내가 공으로 하여금 일을 싫어하도록 많게 하려 청하는 데 할 수 있겠습니까?” 서수가 말하기를 어떻게 하니까?” 하니 진진이 말하기를 “(위나라 재상)전수는 제후에게 합종을 약속하는데 초나라 왕은 그것을 의심하여 믿지 않습니다. 공이 왕에게 신과 연나라, 조나라의 왕은 일이 있어서 여러 번 사신이 와서 말하기를 일이 없는데도 어찌하여 서로 만나지 않습니까?’ 하니 원컨대 (연나라, 조나라)왕을 뵈러 가고자 합니다. 하고 말해주시오’”했다. (서수가) “양나라 왕이 비록 공(의 말)을 허락할지라도 공은 많은 수레를 대동하지 말고 수레 30대를 가지고 뜰에 늘어놓고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을 밝혀 말할 수 있습니다.” 했다. 연나라와 조나라의 객이 그것을 듣고는 수레를 달려서 그 왕에게 말하여(보고하여) 사람을 시켜 서수를 맞이하게 하였다. 초나라 왕이 그것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전수와 과인이 약속하였는데 서수가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은 나를 속인 것이다.”하고는 화를 내면서 그 일(합종의 일)을 듣지 않았다. 제나라가 소수가 북쪽으로 간 것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일을 맡게 하였다. 서수가 마침내 가서 삼국의 재상의 일이 모두 서수에게서 결단되었다. 진진이 마침내 진나라에 이르렀다.


[] 索隱軫語 犀首言我故來欲有教汝之事何不相見

[] 索隱진진이 서수에게 말한 것인데 내가 옛날에 와서 너의 일을 가르침이 있고자 하는데 왜 서로 만나주지 않는가? 하고 말한 것이다.

 

[] 索隱上一豔反厭者飽也謂欲令其多事也

[] 索隱위는 이다. 은 배부름이니 일을 많게 하고자 함을 말한다.


[] 索隱需時為魏相也

[] 索隱전수가 당시에 위나라 재상이었다.

 

韓魏相攻期年不解秦惠王欲救之問於左右左右或曰救之便或曰勿救便惠王未能為之決陳軫適至秦惠王曰:「子去寡人之楚亦思寡人不?」陳軫對曰:「王聞夫越人莊舄?」王曰:「不聞。」:「越人莊舄仕楚執珪有頃而病楚王曰:『舄故越之鄙細人也今仕楚執珪貴富矣亦思越不?』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공격하여 1년이 지나도 풀지 않았다. 진나라 혜왕이 구원하고자 하여 좌우에게 물었다. 좌우의 어떤 자는 구원함의 편리함을 말하고, 어떤 자는 구원하지 않음의 편리함을 말하니 혜왕이 결단하지 못하였다, 진진이 마침 진나라에 이르자 혜왕이 말하기를 그대가 과인을 떠나 초나라에 가서 또한 과인을 생각하였는가? 생각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진진이 대답하기를 왕께서는 저 월나라 사람 장석을 들었습니까?” 하니 왕이 말하기를 듣지 못하였다.” 했다. 진진이 말하기를 월나라 사람 장석이 초나라에서 벼슬하여 규를 잡았는데 잠시 있다가 병이 들었습니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장석은 옛날 월나라의 비루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이다. 지금 초나라에 벼슬하여 규를 잡고 신분이 올라가고 부유해졌으니 월나라를 생각할까? 생각하지 않을까?” 했다.

 

中謝[]對曰:『凡人之思故在其病也彼思越則越聲不思越則楚聲。』使人往聽之猶尚越聲也今臣雖棄逐之楚豈能無秦聲哉!」惠王曰:「今韓魏相攻期年不解或謂寡人救之便或曰勿救便[]寡人不能決願子為子主計[]之餘為寡人計之。」陳軫對曰:「亦嘗有以夫卞莊子[]刺虎聞於王者乎莊子欲刺虎館豎子止之:『兩虎方且食牛食甘必爭爭則必鬥鬥則大者傷小者死從傷而刺之一舉必有雙虎之名。』卞莊子以為然立須之有頃兩虎果鬥大者傷小者死莊子從傷者而刺之一舉果有雙虎之功今韓魏相攻期年不解是必大國傷小國亡從傷而伐之一舉必有兩實此猶莊子刺虎之類也臣主與王何異也。」[]惠王曰:「。」卒弗救大國果傷小國亡秦興兵而伐大剋之此陳軫之計也

중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무릇 사람들이 옛날을 생각하는 것은 그 병듦에 달려 있습니다. 저 월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초나라의 소리를 낼 것입니다.” 사람을 시켜 가서 들어보게 하니 오히려 아직 월나라의 소리를 내는 듯 했다.고 합니다. “지금 신이 비록 버려지고 축출되어 초나라에 갔지만 어찌 진나라의 소리가 없을 수 있으리오!” 했다. 혜왕이 말하기를 좋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공격하여 1년이 지나도 풀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나에게 구원함의 편리함을 말하고, 어떤 이는 구원하지 않음의 편리함을 말하여 과인이 결단하지 못한다. 원하건데 그대는 그대의 임금(초나라 왕)을 위한 계책 가운데 남은 것이 있다면 과인을 위하여 헤아려 주시오.” 했다. 진진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또한 왕께서는 일찍이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른 것을 들려 준 자가 있습니까?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고자 하였는데 여관의 더벅머리 아이가 그것을 저지하여 말하기를 두 마리 호랑이가 막 소를 먹으려하는데 먹어서 입에 달면 반드시 다투고, 다투면 곧 반드시 싸우고 싸우면 큰 것은 상처입고, 작은 것은 죽습니다. 상처난 놈을 따라가서 그것을 찌르면 한 번에 반드시 두 호랑이를 잡음의 명예가 있을 것입니다.’ 했다. 변장자가 그렇다 여기고 서서 기다렸습니다. 잠시 있은 후에 두 호랑이 과연 싸워서 큰 것은 상처를 입고, 작은 것은 죽었습니다. 변장자가 상처 입은 놈을 따라가 찔러서 한 번에 과연 두 마리 호랑이를 잡음의 공이 있었습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공격하여 1년이 지나도록 풀지 않으니 이는 반드시 대국은 상처를 입고(피폐해지고) 작은 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상처를 입은 나라부터 치면 한 번에 반드시 두 실익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른 것과 같은 류입니다. 신의 임금(초나라 왕에 드리는 계책)과 왕(진나라 왕에게 드리는 계책)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였다. 혜왕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마침내 구원하지 않았다. 대국이 과연 상처를 입고, 소국은 망하였는데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쳐서 크게 이겼다. 이것은 진진의 계책이었다.


[] 索隱蓋謂侍御之官

[] 索隱아마도 시어(至近에서 모시는)의 관직일 것이다.

 

[] 索隱此蓋張儀等之計策

[] 索隱이는 아마도 장의 등의 계책일 것이다.


[] 索隱子指陳軫也子主謂楚王

[] 索隱는 진진을 가리킨다. 子主는 초나라 왕을 말한다.

 

[] 索隱館莊子謂逆旅舍其人字莊子者或作卞莊子

[] 索隱관장자이다. 여사(여관)에서 맞이하는 그 사람의 가 장자임을 말함이니 혹 변장자라고도 쓴다.


[] 索隱臣主為軫之主楚王也秦惠王以言我主與王俱宜待韓魏之斃而擊之亦無異也

[] 索隱臣主는 진진의 주인인 초나라 왕이다. 은 진나라 혜왕이다. 우리 임금(초나라 왕)과 왕(진나라 왕)이 함께 마땅히 한나라와 위나라가 넘어지는 것을 기다려서 쳐야 하는 것이 또한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犀首者魏之陰晉人也[]名衍姓公孫氏與張儀不善

서수는 위나라 음진 사람이니 이름은 이고, 성은 공손씨이다. 장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 集解司馬彪曰:「犀首魏官名若今虎牙將軍。」

[] 集解사마표가 말하기를 서수는 위나라 관직의 이름이니 지금의 호아장군과 같다.” 했다.

 

張儀為秦之魏魏王相張儀犀首弗利故令人謂韓公叔曰:「張儀已合秦魏矣其言曰[]魏攻南陽秦攻三川』。魏王所以貴張子者欲得韓地也且韓之南陽已舉矣子何不少委焉以為衍功則秦魏之交可錯矣[]然則魏必圖秦而棄儀收韓而相衍。」公叔以為便因委之犀首以為功果相魏張儀去[]

장의가 진나라를 위하여 위나라에 가니 위나라 왕이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 서수가 이롭지 않다 하여 사람을 시켜 한나라 공숙에게 말하기를 장의가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를 합한 후 말하기를 위나라가 남양을 공격하면 진나라는 삼천을 공격한다.’ 하였습니다. 위나라 왕이 장의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한나라 땅을 얻고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나라의 남양이 이미 들어졌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조금 위임하는 것으로써 연(서수)의 공으로 삼지 않습니까? (그리하면) 곧 진나라와 위나라의 교류를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곧 위나라는 반드시 진나라를 도모하여 장의를 버릴 것이니 한나라를 거두고 연(서수)을 재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공숙이 편리하다 여겨서 서수에게 맡기는 것으로써 공을 삼았다. 과연 (서수)는 위나라 재상이 되고, 장의는 떠났다.


[] 正義此張儀合秦魏之辭也

[] 正義이는 장의가 진나라와 위나라를 합하였다는 말이다,.

 

[] 索隱錯音措停止也

[] 索隱의 음은 이다. 살펴보니 停止이다.

 

[] 集解徐廣曰:「復相秦。」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된 것이다.” 했다.

 

義渠君朝於魏犀首聞張儀復相秦害之犀首乃謂義渠君曰:「道遠不得復過[]請謁事情。」[]:「中國無事[]秦得燒掇焚杅[]君之國有事[]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其後五國伐秦[]會陳軫謂秦王曰:「義渠君者蠻夷之賢君也不如賂之以撫其志。」秦王曰:「。」乃以文繡千純[]婦女百人遺義渠君義渠君致群臣而謀曰:「此公孫衍所謂邪?」[]乃起兵襲秦大敗秦人李伯之下[]

의거의 임금이 위나라에 조회하였다. 서수는 장의가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는 것을 듣고 그를 해치려 하였다. 서수가 이에 의거의 임금에게 일러 말하기를 길이 멀어 다시 지나가지(다시 위나라를 방문하지) 못할 것이니 사정을 말하기를 천합니다.” 하고는 (서수가)말하기를 중국이 무사하면(제후가 진나를 치니 않으면) 진나라는 임금(의거의 임금)의 나라를 불사르고 침략하여 견제할 것이고, (중국에) 일이 있으면(제후가 진나를 치면) 진나라는 장차 가벼운 사신과 후한 폐백(선물)으로 임금의 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하였다. 그 후 5국이 진나라를 쳤다. 때마침 진진이 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의거의 임금은 오랑캐의 어진 임금입니다. 뇌물을 주어 그 뜻을 어루만지는 것만 못합니다.(것이 좋습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좋다.” 하자 이에 무늬를 수놓은 비단 1000단과 부녀 100명을 의거의 임금에게 보냈다. 의거의 임금이 여러 신하를 이르게 하여 도모하여 말하기를 이것이 공손연(서수)이 말한 것인가?” 하고는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였는데 진나라 사람들이 이백의 아래에서 크게 패하였다.(진나라 사람들을 이백의 아래에서 크게 무너뜨렸다.)


[] 索隱音戈言義渠道遠今日已後不復得更過相見

[] 索隱음은 이다. 의거의 길이 멀어서 오늘 이후로 다시 나마면서 서로 불 수 없다고 말 한 것이다.

 

[] 索隱謂欲以秦之緩急告語之也

[] 索隱진나라의 느리고 급함(사정)을 알려 말해줄 것을 바란 것이다.

 

[] 索隱按謂山東諸侯齊魏之大國等正義中國謂關東六國無事不共攻秦

[] 索隱살펴보니 산동의 제후인 제나라, 위나라의 큰 나라 등을 말한다. 正義중국은 관동지역의 6국을 말한다. ‘無事는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 集解徐廣曰:「一孤切。」 索隱掇音都活反謂焚燒而侵掠焚杅音煩烏二音焚揉而牽制也戰國策云秦且燒概君之國」,是說其事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一孤切했다. 索隱의 음은 이니 불사르고 침략함을 말한다. ‘焚杅는 음이 의 두 음이다. 살펴보니 불사르고 부드럽게 하여 견제하는 것이다. 戰國策진나라가 또한 임금의 나라를 불사르고 밀어버린다.”한 것은 그 일을 설명한 것이다.


[] 索隱謂山東諸國共伐秦也

[] 索隱산동의 여러 나라가 함께 진나라를 치는 것을 말한다.

 

[] 索隱謂秦求親義渠君也正義有事謂六國攻秦秦若被攻伐則必輕使重幣事義渠之國欲令相助犀首此言令義渠君勿援秦也

[] 索隱진나라가 의거의 임금과 친할 것을 구함을 말한다. 正義有事6국이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진나라가 만약 공격하여 침을 당하면 곧 반드시 가벼운 사신이 많은 폐백을 주면서 의거의 나라를 섬길 것이니 서로 돕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서수가 이를 말한 것은 의거의 임금으로 하여금 진나라를 돕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다.

 

[] 索隱按表秦惠王後元七年趙五國共攻秦是其事也

[] 索隱살펴보니 에 진나라 혜왕 후원 7년에 초나라, 위나라, 제나라, 한나라, 조나라 5국이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이는 그 일이다.


[] 索隱凡絲綿布帛等一段為一純純音屯

[] 索隱모든 絲綿布帛 등의 11이라 한다. ‘의 음은 이다.


[] 索隱按謂上文犀首云「(君之國有事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故云衍之所謂」,因起兵襲秦以傷張儀也

[] 索隱살펴보니 윗글에 서수가 말한“(임금의 나라에 일이 있으면 진나라가 장차 사신을 가볍게 하고, 많은 폐백으로 임금의 나라를 섬기게 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서수)의 말한바라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는 것으로써 장의를 해치려 한 것이다.


[] 索隱入李伯之下謂義渠破秦而收軍而入於李伯之下則李伯人名或邑號戰國策」。

[0] 索隱李伯의 아래에 들어갔다.’는 것은 의거가 진나라를 깨트리고 군대를 거두어 이백의 아래에 들어감을 말한 것이니 곧 이백은 사람 이름, 혹은 읍호 이다. 戰國策이라 썼다.

儀已卒之後犀首入相秦嘗佩五國之相印為約長[]

장의가 죽은 후 서수가 진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일찍이 5국에서 재상의 인수를 차고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 索隱佩五國之印為約長犀首後相五國或從或橫常為約長

[] 索隱‘5국의 인(재상의 인)을 차고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것은 서수가 후에 5국에서 재상이 되어 혹은 합종하고, 혹은 연횡하여 항상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太史公曰三晉多權變之士夫言從衡彊秦者大抵皆三晉之人也夫張儀之行事甚於蘇秦然世惡蘇秦者以其先死而儀振暴[]其短以扶其說[]成其衡道[]要之此兩人真傾危之士哉

태사공이 말하였다. “三晉에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선비가 많아서 강한 진나라에 대해 합종과 연형을 말한 자는 대개 모두 삼진의 사람이었다. 저 장의의 일을 행함은 소진보다 심하였으나 세상에서 소진을 미워한 것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 단점을 떨쳐 드러내고 그 말을 부축하는 것으로써 그 연형의 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두 사람은 참으로(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태로운 선비였구나!”

 

[] 索隱下音步卜反振謂振揚而暴露其短

[] 索隱아래의 음은 이다. ‘은 그 단점을 떨치고 휘날려서 드러내는 것이다.


[] 索隱按扶謂說彼之非成我之是扶會己之說辭

[] 索隱살펴보니 는 그의 잘못을 말하여 나의 옳음을 이루는 것이니 자기의 말을 꿰맞추는 것이다.

 

[] 索隱張儀說六國使連衡而事秦故云成其衡道」。然山東地形從長蘇秦相六國令從親而賓秦也關西地形衡長張儀相六國令破其從而連秦之衡故謂張儀為連橫矣

[] 索隱장의가 6국을 유세하여 연형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 연형의 도를 이루었다한 것이다. 그러나 산동의 지형이 세로(남북으로 길고 소진이 6국의 재상이 되어 합종하여 진나라를 물리게 하였다. 관서의 지형은 가로(동서)가 길고, 장의가 6국의 재상이 되어 그 합종을 깨고 진나라와 연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장의를 평하여 연횡하였다. 한 것이다.


索隱述贊儀未遭時頻被困辱及相秦惠先韓後蜀連衡齊魏傾危誑惑陳軫挾權犀首騁欲如何三晉繼有斯德

索隱述贊장의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하였을 때 자주 곤욕을 입었도다. 진나라 혜왕의 재상이 되어 한나라를 먼저 연횡하고 촉을 뒤로 하였다. 제나라와 진나라를 연형하니 나라를 기울게 하고 위태롭게 하는 거짓과 유혹이로다. 진진은 권세를 꼈고, 서수는 달리고자 하였다. 삼진을 어이할꼬. 이 덕을 이어 소유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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