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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78 춘신군열전 제18

by 최인표 2019. 1. 22.

史記卷七十八

  春申君列傳第十八

 

春申君者楚人也名歇姓黃氏游學博聞事楚頃襄王[]頃襄王以歇為辯使於秦秦昭王使白起攻韓敗之於華陽禽魏將芒卯魏服而事秦秦昭王方令白起與韓魏共伐楚未行而楚使黃歇適至於秦聞秦之計當是之時秦已前使白起攻楚取巫黔中之郡拔鄢郢東至竟陵[]楚頃襄王東徙治於陳縣[]黃歇見楚懷王之為秦所誘而入朝遂見欺留死於秦頃襄王其子也秦輕之恐壹舉兵而滅楚歇乃上書說秦昭王曰

춘신군은 초나라 사람인데 이름은 이고 성은 황씨이다. 돌아다니며 배우고 들음을 넓게 하였으며, 초나라 경양왕을 섬겼다. 경양왕이 헐이 말을 잘 한다하여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진나라 소왕이 백기로 하여금 한나라, 위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화양에서 무너뜨리고 위나라 장수 망묘를 사로잡으니 한나라와 위나라가 복종하고 진나라를 섬겼다. 진나라 소왕이 바야흐로 백기와 한나라, 위나라가 함께 초나라를 치게 하였는데 실행되지 않았을 때 초나라 사신 황헐이 마침 진나라에 이르러 진나라의 계책을 들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진나라가 이미 앞서 백기로 하여금 초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검중의 군을 취하고, ‘을 함락시켜 동쪽으로 경릉에 이르니 초나라 경양왕이 동쪽으로 진현에 옮겨 다스렸었다. 황헐은 초나라 회왕이 진나라에게 유인되어 진나라 조정에 들어갔다가 마침내 속임을 당하고 진나라에 억류되었다가 죽는 것을 보았다. 경양왕은 그 아들이다. 진나라가 그들을 가볍게 여기고 한 번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멸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황헐이 글을 올려 진나라 소왕을 유세하여 말하기를


[] 索隱名橫考烈王完之父

[] 索隱이름은 이니 고열왕 완의 아버지이다.

 

[] 正義竟陵屬江夏郡也

[] 正義경릉은 강하군에 속한다.

 

[] 正義今陳州也

[] 正義지금의 진주이다.

 

天下莫彊於秦今聞大王欲伐楚此猶兩虎相與鬥兩虎相與鬥而駑犬受其獘[]不如善楚臣請言其說臣聞物至則反冬夏是也[]致至則危[]累棋是也今大國之地遍天下有其二垂[]此從生民已來萬乘之地未嘗有也先帝文王莊王之身三世不妄接地於齊以絕從親之要[]今王使盛橋守事於韓[]盛橋以其地入秦是王不用甲不信威[]而得百里之地王可謂能矣王又舉甲而攻魏大梁之門舉河內拔燕酸棗[]入邢[]魏之兵雲翔而不敢捄王之功亦多矣王休甲息眾二年而後復之又并蒲[]以臨仁平丘[一一]濟陽嬰[一二]而魏氏服王又割濮磿之北[一三]注齊秦之要絕楚趙之脊[一四]天下五合六聚而不敢救王之威亦單[一五]

천하에 진나라와 초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지금 들으니 대왕께서 초나라를 치고자 한다 하는데 이는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면 둔한 개가 그 지침을 이용하여 이익을 받을 것이니 초나라와 잘 지내는 것만 못합니다. 신이 그 설명을 말할 것을 청합니다. 신이 들으니 사물이 지극하면 곧 돌아오는데 겨울과 여름이 이것입니다. 지극함에 아르면 곧 위태로워지는데 바둑돌을 쌓는 것이 이것입니다. 지근 대국의 땅이 천하를 두루하여 그 두 가장자리를 소유하였는데 이는 백성이 생겨남으로부터 이래로 萬乘의 땅을 일찍이 소유한 적이 없었습니다. 선제인 혜문왕과 장왕, 대왕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망녕되이 땅을 제나라에 접하는 것으로써 합종하고 친하게 하는 요점을 끊지 않았습니다. 지금 왕께서 성교로 하여금 한나라에서 벼슬하게 하고 성교가 그 땅을 진나라에 들이게 하였으니 이는 왕께서 군사를 쓰지도 위엄을 펴지 않고도 백리의 땅을 얻었습니다. 왕께서는 능력이 있다고 말 할 만합니다. 왕께서 또한 군대를 들어 위나라를 공격하시고 대량의 문을 막으시며 하내를 얻으시고, 연나라, 산자, , 도를 공략하시고 형에 들어가시자 위나라의 군대가 구름이 날아오르듯 흩어져서 감히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의 공이 또한 많습니다. 왕께서 군대를 쉬게 하고 무리들을 휴식하게 한지 2년이 지난 후에 다시 하여(군대를 일으켜) 또한 포, , , 원을 병합하시고 인과 평구, , 제양, 영성에 임하시니 위나라가 복종하였고, 왕께서는 또한 복수와 마산의 북쪽을 분할하여 제나라와 진나라의 요충에 붙이고 초나라와 조나라의 척추를 끊었어도 천하의 제후들이 5번 합하고 6번 모여도 감히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의 위엄이 또한 극에 도달하였습니다.


[] 索隱按謂兩虎鬥乃受獘於駑犬也劉氏云受猶承也

[] 索隱살펴보니 두 범이 싸우면 곧 어리석은 개에게 넘어짐을 받는 것을 말한다. 유씨는 “‘과 같다.


[] 正義至極也極則反也冬至陰之極夏至陽之極

[] 正義이다. (한계에 이르면)하면 곧 돌아온다. 동지는 음의 지극한 것이고, 하지는 양의 지극한 것이다.


[] 集解徐廣曰:「或作』。」

[] 集解서광은 “‘는 혹 이라고도 쓴다.” 했다.

 

[] 正義言極東西

[] 正義동쪽과 서쪽을 다하였음을 말한다.


[] 索隱音腰以言山東從魏是其腰

[] 索隱음은 이다. 산동이 한나라, 위나라를 합종한다고 말하면 이는 그 허리가 되기 때문이다.

 

[] 索隱按秦使盛橋守事於韓亦如楚使召滑相趙然也並內行章義之難

[] 索隱살펴보니 진나라 사신 성교가 한나라에서 관리가 되니 또한 초나라 사신 소활로 하여금 조나라의 재상이 되게 한 것과 같다. 더불어 안으로 장의의 난이 행해졌다.


[] 索隱信音申

[] 索隱의 음은 이다.

 

[] 集解徐廣曰:「秦始皇五年取酸棗蘇代曰決宿胥之口魏無虛頓丘』。」

[] 集解서광이 진나라 시황제 5년 산조, , 허를 취하였다. 소대가 말하기를 숙서의 입구를 트면 위나라는 허와 돈구가 없어진다.’” 했다.


[] 集解徐廣曰:「燕縣有桃城平皋有邢丘。」 正義邢丘在懷州武德縣東南二十里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연나라의 현 중에 도성이 있고, 평고는 형구에 있다.” 한다. 正義형구는 회주 무덕현 동남쪽 20리에 있다.

 

[] 集解徐廣曰:「蘇秦云北有河外』。長垣縣有蒲鄉。」 索隱此蒲在衛之長垣蒲鄉也衍在河南與卷相近首蓋牛首垣即長垣非河東之垣也垣音圓

[0]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소진은 북쪽에 하외, , 연이 있다.’ 하고, 장원현은 포향에 있다.” 했다. 索隱이 포는 위나라의 장원 포향에 있다. 연은 하남에 있는데 권과 서로 가깝다. 수는 아마도 우수일 것이고, 원은 곧 장원인데 하동의 원이 아니다. ‘의 음은 이다.

 

[一一] 集解徐廣曰:「屬陳留。」 索隱仁及平丘二縣名謂以兵臨此二縣則黃及濟陽等自嬰城而守也地理志平丘屬陳留今不知所在

[一一]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진류에 속한다.” 했다. 索隱인과 평구는 두 현 이름이다. 군대를 가지고 이 두 현에 임하는 것으로써 황과 제양 등이 영성으로부터 지키는 것을 말한다. 살펴보니 평구는 진류에 속하는데 지금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一二] 集解徐廣曰:「蘇代云決白馬之口魏無黃濟陽』。」 正義故黃城在曹州考城縣東濟陽故城在曹州宛句縣西南嬰城未詳

[一二]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소대가 백마의 입구를 트면 위나라는 황과 제양이 없어지게 된다.’ 했다고한다. 正義옛 황성은 조주 고성현 동쪽에 있다. 제양 옛 성은 조주 완구현 서남쪽에 있다. 영성은 자세하지 않다.

 

[一三] 集解徐廣曰:「濮水北於鉅野入濟。」 索隱地名蓋地近濮也

[一三]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복수는 북쪽으로 흐르다 거야에서 제수로 들어간다. 索隱지명이니 대개 땅이 복수에 가깝다.


[一四] 正義劉伯莊云:「言秦得魏地楚趙之[]。」

[一四] 正義유백장이 진나라가 위나라의 땅을 얻고 초나라와 조나라의 합종을 끊었다.

 

[一五] 集解徐廣曰:「亦作』。」 索隱單音丹單者盡也言王之威盡行矣

[一五]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은 또한 이라고도 쓴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다. ‘(다함)’이다. 왕의 위엄이 행함을 다하였다는 말이다.

 

王若能持功守威攻取之心而肥仁義之地使無後患三王不足四五伯不足六也王若負人徒之眾仗兵革之彊乘毀魏之威而欲以力臣天下之主臣恐其有後患也詩曰靡不有初鮮克有終」。易曰狐涉水濡其尾」。[]此言始之易終之難也何以知其然也昔智氏見伐趙之利而不知榆次之禍[]吳見伐齊之便而不知干隧之敗[]此二國者非無大功也沒利於前而易患於後也[]吳之信越也從而伐齊[]既勝齊人於艾陵[]還為越王禽三渚之浦[]智氏之信韓魏也從而伐趙攻晉陽城[]勝有日矣魏叛之殺智伯瑤於鑿臺之下[]今王妒楚之不毀也而忘毀楚之彊韓魏也臣為王慮而不取也

왕께서 만약에 공을 지니고 위엄을 지키고, 공격하여 취려는 마음을 물리치고 인의의 자리를 살찌워 뒷날의 근심을 없게 할 수 있다면 三王은 충분하지 않아 四王이 될 것이며, 五伯은 충분하지 않아 6이 될 것입니다.(삼왕: 우왕, 탕왕, 문왕에 이은 네 번째 훌륭한 왕이 될 것이며, 춘추 5패에 이은 6번째 패왕이 될 것입니다.) 왕께서 만약 사람 누리의 많음을 지고, 군대의 강함에 의지하여 위나라를 무너뜨린 위엄을 타고 힘써 천하의 임금을 신하로 하고자 한다면 신은 그 뒷날의 근심이 있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시경처음에는 잘하는 이가 있지만 능히 끝을 잘 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하였고, 주역여우가 물을 건너면 그 꼬리를 적신다.” 하였습니다. 이는 시작의 쉬움과 끝맺음의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 무엇으로써 그것을 아는가? 옛날 지씨는 조나라를 치는 이로움만 보고 유차의 재앙을 알지 못하였고, 오나라가 제나라를 치는 편의만을 보고 간수의 패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 두 나라는 큰 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이익에 빠져서 뒤에 있는 근심을 쉽게 여겼습니다. 오나라가 월나라를 믿고 (군대를)거느리고여 제나라를 쳐서 애릉에서 제나라 사람들을 이겼으나 돌아오다 월나라 왕에게 삼저의 물가에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지씨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믿고 (군대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쳐서 진양성을 공격하다 이길 날이 있었는데(다가오는데) 한나라와 위나라가 배반하고 지백요를 착대의 아래서 죽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초나라의 무너지지 않음을 질시할 뿐 초나라를 무너뜨리면 한나라와 위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을 잊으시니 신은 왕을 위해 염려하여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했다.


[] 正義言狐惜其尾每涉水舉尾不令濕比至極困則濡之譬不可力臣之

[] 正義여우가 그 꼬리를 아껴서 매번 물을 건널 때 꼬리를 들어서 젖지 않게 하는데 지극히 궁곤하면 곧 그것을 젖게 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힘으로 신하 삼을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 索隱智伯敗於榆次也地理志屬太原有梗陽鄉正義榆次并州縣也注水經云:「榆次縣南洞渦水側有鑿臺。」

[] 索隱지백이 유차에서 패함 것이다. 地理志에 태원에 속하고, 경양향에 있다. 正義유차는 병주현이다. 주수경유차현 남쪽 동와수 옆에 착대가 있다.

 

[] 索隱干隧吳之敗處地名水邊也道路也正義干隧吳地名也出萬安山西南一里太湖即吳王夫差自剄處在蘇州西北四十里

[] 索隱간수는 오나라가 패한 곳이니 지명이다. ‘은 물가이다. ‘는 도로이다. 正義간수는 오나라의 지명이다. 만안산 서남쪽 1리 태호에서 나오니 곧 오나라 왕 부차가 자살 한 곳으로 소주 서북쪽 40리에 있다.

 

[] 索隱謂智伯及吳王沒伐趙及伐齊之利於前而自易其患於後後即榆次干隧之難也

[] 索隱지백과 오나라 왕이 조나라를 치는 것과 제나라를 치는 것의 이로움의 앞에 빠져 스스로 그 뒤에 있는 근심을 쉽게 여겼다. 후에 유차에 유차와 간수의 어려움에 나아갔다.


[] 索隱從音絕用反劉氏云:「從猶領也。」

[] 索隱의 음은 이다. 유씨는 “‘과 같다.”고 했다.

 

[] 正義艾山在兗州博縣南六十里也

[] 正義애산은 연주 박현 남쪽 60리에 있다.

 

[] 集解戰國策曰三江之浦」。正義吳俗傳云:「越軍得子胥夢從東入伐吳越王即從三江北岸立壇殺白馬祭子胥杯動酒盡乃開渠曰示浦入破吳王於姑蘇敗干隧也。」

[] 集解】 『戰國策에는 三江之浦라 했다. 正義오나라 세속에서는 월나라 군대가 오자서의 꿈을 얻어 동쪽으로부터 들어가 오나라를 쳤는데 월나라 왕이 三江의 북쪽 언덕에 나아가 단을 세우고 백마를 죽여 오자서에게 제사하고 술잔을 움직여 술을 다하고 이에 도랑을 열어 시포라하고는 들어가 고소에서 오나라 왕을 깨트리고 간수에서 무너뜨렸다.”고 했다.

 

[] 正義并州城

[] 正義병주성이다.

 

[] 集解徐廣曰:「鑿臺在榆次。」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착대는 유차에 있다.” 했다.

 

詩曰大武遠宅而不涉」。[]從此觀之楚國援也鄰國敵也詩云趯毚免還犬獲之[]他人有心余忖度之」。今王中道而信韓魏之善王也此正吳之信越也臣聞之敵不可假時不可失臣恐韓魏卑辭除患而實欲欺大國也[]何則王無重世之德[]於韓而有累世之怨焉夫韓魏父子兄弟接踵而死於秦者將十世矣本國殘社稷壞宗廟毀腹絕腸折頸[]首身分離暴骸骨於草澤頭顱相望於境父子老弱係脰束手為群虜者相及於路鬼神孤傷無所血食人民不聊生族類離散流亡為僕妾者盈滿海內矣故韓魏之不亡秦社稷之憂也今王資之與攻楚不亦過乎

시경큰 군대는 집을 멀리하고 물을 건너지 않는다.(대군을 거느리고 멀리가서 정벌하지 않는다.)” 합니다. 이로부터 관찰하면 초나라는 원조하는 나라이고 이웃나라(한나라, 위나라)는 적입니다. 시경깡충깡충 뛰는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잡힌다. 다른 사람이 마음을 두면 내가 그것을 헤아릴 수 있다.” 합니다, 지금 왕께서 (한나라 위나라를 치는) 도중에 한나라, 위나라가 왕에게 잘한다고 믿는 것은 이는 바로 오나라가 월나라를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적은 용서할 수 없고, 때는 잃을 수 없다. 합니다. 신은 한나라와 위나라가 말을 낮추어 근심 없게 하나 실제로는 대국을 속이고자 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째서 일까요? 왕께서 대대로 한나라와 위나라에 덕을 베품은 없고, 여러 대의 원망은 있었습니다. 대저 한나라와 위나라는 부자형제가 발뒤꿈치를 맞대고 진나라에서(진나라와 싸워) 죽은 자가 10세대입니다, 본국은 황폐해지고, 사직은 무너졌으며, 종묘는 헐어졌습니다. 배를 가르고 창자를 끊으며, 목을 꺽고 턱을 접으며,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고 풀밭과 늪지에 해골이 드러나고, 머리뼈는 쓰러지고 엎어져 서로 경계에 마주보이고, 아비와 아들, 노인과 어린이의 머리를 묶고 손을 묶은 여러 포로들이 길에 서로 이었습니다. 귀신은 외로이 서글퍼하고 제사할 이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살지 못하고 친척은 떨어지고 흩어져 흘러 다니다 종과 첩이 된 자가 나라 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나라 위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진나라사직의 근심인데 지금 왕께서 의지하여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니 또한 지나치지 않습니까?


[] 正義言大軍不遠跋涉攻伐

[] 正義대군은 멀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攻伐(공격하여 정벌함)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集解韓嬰章句曰:「趯趯往來貌得也言趯趯之毚兔謂狡兔數往來逃匿其跡有時遇犬得之。」毛傳曰:「毚兔狡兔也。」鄭玄曰:「遇犬犬之馴謂田犬。」 索隱」。天歷反毚音讒

[] 集解】 「한영장구“‘趯趯(적적)’은 가고 오는 모양이다. ‘(얻다)’이다. ‘趯趯之毚兔라는 말은 교활한 토끼가 여러 번 가고 오면서 도망하여 그 자취를 숨겨도 때때로 개를 만나 잡히는 일이 있음을 말한다. 모전毚兎는 교활한 토끼이다.’ 했고, 정현은 遇犬은 개의 길들여진 것으로 사냥개를 이른다.’ 했다.” 索隱이라고도 쓴다. ‘이다. ‘의 음은 ()’이다.

 

[] 索隱大國謂秦也

[] 索隱대국은 진나라를 말한다.

 

[] 索隱重世猶累世也

[] 索隱重世累世(여러 세대)’와 같다.

 

[] 集解徐廣曰:「一作』。」 索隱上音拉下音夷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이라고도 쓴다.” 했다. 索隱위의 음은 ()’이고, 아래의 음은 ()’이다.

 

且王攻楚將惡出兵[]王將借路於仇讎之韓魏乎兵出之日而王憂其不返也是王以兵資於仇讎之韓魏也王若不借路於仇讎之韓必攻隨水右壤隨水右壤此皆廣川大水山林谿谷不食之地也[]王雖有之不為得地是王有毀楚之名而無得地之實也

또한 왕께서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장차 어디서 군대를 내시겠습니까? 왕께서 원수인 한나라와 위나라에서 길을 빌리겠습니까? 군대를 내는 날에 왕께서는 그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는 것은 이는 왕께서 군대를 가지고 원수의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를 돕는 것입니다. 왕께서 만약 원수의 나라인 한나라, 위나라에서 길을 빌리지 않으시면 반드시 隨水의 오른쪽 땅을 공격해야 합니다. 수수의 오른쪽 땅은 이는 모두 넓고 큰 강물과 신림계곡으로 먹지 못하는 (농사지을 수 없는 땅)땅이니 왕께서 비록 그것을 소유할지라도 땅을 얻은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이는 왕께서 초나라의 명예를 무너뜨리면서도 땅의 실제를 얻음은 없는 것입니다.


[] 正義惡音烏

[] 正義의 음은 ()’이다.

 

[] 索隱楚都陳隨水之右壤蓋在隨之西即今鄧州之西其地多山林者矣

[] 索隱초나라는 진수와 수수의 오른쪽 땅에 도읍하여 대개 수수의 서쪽에 있었으니 곧 지금의 등주 서쪽인데 그 땅은 산림이 많다.


且王攻楚之日四國必悉起兵以應王楚之兵構而不離魏氏將出而攻留方與湖陵故宋必盡[]齊人南面攻楚泗上必舉[]此皆平原四達膏腴之地而使獨攻[]王破楚以肥韓魏於中國而勁齊魏之彊足以校於秦[]齊南以泗水為境東負海北倚河而無後患天下之國莫彊於齊魏得地葆利而詳事下吏一年之後為帝未能其於禁王之為帝有餘矣[]

또한 왕께서 초나라를 공격하는 날 네 나라는 반드시 모두 군대를 일으켜 왕께 대항할 것입니다. 진나라와 초나라 군대가 얽혀서(싸워) 떨어지지 않으면 위씨(위나라)가 장차 나와 유, 방여, , 호릉, , , 상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송나라는 반드시 다할(모두 차지할) 것입니다. 제나라 사람들이 남쪽을 향하여 초나라를 공격하면 사수 위쪽이 반드시 점거당할 것입니다. 이는 모두 평원으로 사방으로 통하는 기름진 땅이어서 홀로 공격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초나라를 깨트리는 것으로써 중국에서 한나라, 위나라를 살찌우는 것이고 제나라를 굳세게 하는 것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강해지는 것은 진나라에게 견주기에 충분합니다. 제나라가 남쪽으로 사수를 경계로 삼고, 동쪽으로 바다를 등지고 북으로 하(황하)에 의지하여 뒤의 근심을 없애면 천하의 나라 중에 제나라와 위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을 것이니 제나라와 위나라가 땅을 얻고 이익을 넓히면서 거짓으로 하급관리가 섬기듯이 한다면 1년이 지난 후 황제를 하는 것은 할 수 없을 지라도 왕의 황제가 되는 것을 막는 데는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 正義徐州西宋州東兗州南並故宋地

[] 正義서주 서쪽, 송주 동쪽, 연주 남쪽은 모두 옛 송나라 땅이다.

 

[] 正義此時徐泗屬齊也

[] 正義이 때 서주와 사수는 제나라에 속하였다.

 

[] 索隱若秦楚構兵不休則魏盡故宋齊取泗上是使齊魏獨攻伐而得其利也

[] 索隱만약 진나라와 초나라가 군대가 얽혀(싸우고) 쉬지 않는다면 곧 위나라는 예 송나라를 다하고(모두 차지하고) 제나라는 사수 위쪽을 차지할 것이니 이는 제나라와 위나라로 하여금 홀로 공격하고 정벌하게 하여 그 이로움을 얻게 할 것이다.


[] 索隱校音教謂足以與秦為敵也一云校者報也言力能報秦

[] 索隱의 음은 이다. 진나라와 적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한편 는 갚는 것이니 힘써 진나라에 갚을 수 있다는 말이다.

 

[] 索隱言齊一年之後未即能為帝而能禁秦為帝有餘力矣字作誤也

[] 索隱제나라가 1년 후 황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진나라가 황제가 되는 것을 막는 것에는 남은 힘이 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자는 로 쓴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夫以王壤土之博人徒之眾兵革之彊壹舉事而樹怨於楚[]魏歸帝重於齊是王失計也[]臣為王慮莫若善楚楚合而為一以臨韓韓必斂王施以東山之險帶以曲河之利韓必為關內之侯若是而王以十萬戍鄭梁氏寒心鄢陵嬰城而上蔡召陵不往來也如此而魏亦關內侯矣王壹善楚而關內兩萬乘之主注地於齊[]齊右壤可拱手而取也[]王之地一經兩海[]要約天下是燕趙無齊楚無燕趙也然後危動燕直搖此四國者不待痛而服矣

대저 왕께서 땅이 넓고, 사람의 무리가 많은 것, 군대의 강함을 가지고 한 번 일을 들면 원망을 초나라에 심는 것이니 이에 한나라 위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에 황제의 지위를 돌리게 하는 것은 이는 왕의 잘못된 계책입니다. 신이 왕을 위하여 생각해 보니 초나라와 좋게 지내는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으로써 한나라에 임하면 한나라는 반드시 손을 거둘 것입니다. 왕께서 동쪽 산의 험함에 기대고 굽은 하의 이로움을 두르면 한나라는 반드시 관내의 제후가 될 것입니다. 이 같이 하고서 왕께서 10만의 군대를 가지고 정(한나라의 수도)을 지키면 양씨의 마음을 서늘하게 할 것이며 허, 언릉을 농성하여 굳게 지키면 상채, 소릉이 오고가지 못할 것이니 이 같이 하면 위나라가 또한 관내의 제후가 될 것입니다. 왕께서 한 번 초나라와 잘 지내시면 관내의 두 만승의 임금을 관내 제후로 할 것이고, 제나라에 땅을 군대로 끊으면 제나라 오른 쪽(서쪽) 땅을 두 손을 맞잡고도(팔짱을 끼고도) 취할 수 있습니다. 왕의 땅은 하나로 두 바다를 지나게 되어 천하를 묶는 것이니 이는 연나라 조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의 (도움이) 없고, 제나라와 초나라는 연나라와 조나라의 (도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연나라와 조나라를 위태롭게 하여 움직이게 하고, 곧바로 제나라와 초나라를 흔들면 이 네 나라는 아픔을 기다리지 않아도 복종할 것입니다.

 

[] 集解徐廣曰:「一作』。」 索隱遲音值值猶乃也今音力呈反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는 한편으로 이라 쓴다.” 했다. 索隱으 음은 ()’이다. ‘와 같다. 지금의 음은 이다.

 

[] 索隱謂韓魏重齊令歸帝號此秦之計失

[] 索隱한나라와 위나라가 제나라를 중요하게 여겨 황제의 호를 돌리게 하면 이는 진나라의 계책이 잘못된 것이다.

 

[] 索隱注謂以兵裁之也

[] 索隱는 군대로써 끊는 것을 말한다.

 

[] 正義右壤謂濟州之南北也

[] 正義右壤은 제주의 남북을 말한다.

 

[] 索隱謂西海至東海皆是秦地正義廣言橫度中國東西也

[] 索隱서해에서 동해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진나라의 땅이 됨을 말한다. 正義넓게말하면 중국의 동서를 가로로 건너는 것을 말한다.

 

昭王曰:「。」於是乃止白起而謝韓發使賂楚約為與國

黃歇受約歸楚楚使歇與太子完入質於秦秦留之數年楚頃襄王病太子不得歸而楚太子與秦相應侯善於是黃歇乃說應侯曰:「相國誠善楚太子乎?」應侯曰:「。」歇曰:「今楚王恐不起疾秦不如歸其太子太子得立其事秦必重而德相國無窮是親與國而得儲萬乘也若不歸則咸陽一布衣耳楚更立太子必不事秦夫失與國而絕萬乘之和非計也願相國孰慮之。」應侯以聞秦王秦王曰:「令楚太子之傅先往問楚王之疾返而後圖之。」黃歇為楚太子計曰:「秦之留太子也欲以求利也

소왕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이에 백기를 그치게 하고 한나라와 위나라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사신을 출발시켜 초나라에 재물을 주고 동맹국이 될 것을 약속하였다. 황헐이 약속을 받고 초나라로 돌아가 초나라 사신 황헐과 태자 완을 진나라에 들여보내 인질로 삼았는데 진나라에 여러 해 머물렀다. 초나라 경양왕이 병들었는데도 태자가 돌아가지 못하였다. 초나라 태자와 진나라 재상 응후가 잘 지내서 이에 황헐이 응후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상국이 진실로 초나라 태자를 좋아합니까?” 하니 응후가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황헐이 말하기를 지금 초나라 왕이 병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데 진나라가 그 태자를 돌아가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돌아가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태자가 즉위하면 진나라 섬기기를 반드시 중요하게 여기고 상국이 덕을 베푼 것이 끝이 없다 할 것이니 이는 동맹국을 친하게 여기는 것이며 만승의 나라에 덕을 쌓는 것입니다. 만약 돌려보내지 않으면 곧 (태자는)함양의 한 布衣(지위가 없는 백성)가 될 뿐이고 초나라는 다시 태자를 세울 것이니 반드시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대저 동맹국을 잃고 만승의 나라와의 화친을 끊는 것은 계책이 아닙니다. 원하건데 상국은 깊이 고려하십시오. 했다. 응후가 진나라 왕에게 아뢰었다. 진나라 왕이 말하기를 초나라 태자의 사부로 하여금 먼저 가서 초나라 왕의 병을 묻게 하고 돌아 온 후에 도모하겠다.” 했다. 황헐이 초나라 태자를 위한 계책을 말하기를 진나라가 태자를 머물게 하는 것은(억류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고자하기 때문입니다.

今太子力未能有以利秦也歇憂之甚而陽文君子二人在中王若卒大命太子不在陽文君子必立為後太子不得奉宗廟矣不如亡秦與使者俱出臣請止以死當之。」楚太子因變衣服為楚使者御以出關而黃歇守舍常為謝病度太子已遠秦不能追歇乃自言秦昭王曰:「楚太子已歸出遠矣歇當死願賜死。」昭王大怒欲聽其自殺也應侯曰:「歇為人臣出身以徇其主太子立必用歇故不如無罪而歸之以親楚。」秦因遣黃歇

지금 태자의 힘이 진나라에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저는 근심함이 심합니다. 나라 안에 양문군의 아들 두 사람이 있는데 왕이 만약 大命을 마치고(왕이 죽었는데) 태자가 있지 않으면 양문군의 아들이 반드시 즉위하여 뒤를 이을 것이니 태자께서는 종묘를 받들 수 없습니다. 진나라를 도망하여 사자와 함께 나가는 것이 좋으며, 신은 머물러 죽음으로써 감당하기를 청합니다. 했다. 초나라 태자가 인하여 의복을 바꾸어 입고 초나라 사자의 마부가 되어 관을 나가고 황헐이 집을 지켰는데 항상 병을 핑계로 하였다. 태자가 이미 멀리 가서 진나라가 축격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는 황헐이 이에 스스로 진나라 소왕에게 말하기를 초나라 태자는 이미 돌아가서 멀리 나갔습니다. 저는 마땅히 죽어야 하니 죽음을 내려주실 것을 원합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그 스스로 죽는 것을 들어주고자 하였다. 응후가 말하기를 황헐은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 몸을 내는 것으로써 그 주인을 따랐으니 태자가 즉위하면 반드시 황헐을 등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없애고 돌아가게 하여 초나라와 친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했다. 진나라가 황헐을 보내주었다.

 

歇至楚三月楚頃襄王卒[]太子完立是為考烈王考烈王元年以黃歇為相封為春申君[]賜淮北地十二縣後十五歲黃歇言之楚王曰:「淮北地邊齊其事急請以為郡便。」因并獻淮北十二縣請封於江東考烈王許之春申君因城故吳墟以自為都邑

황헐이 초나라에 이른지 3개월만에 초나라 경양왕이 죽으니 태자 완이 즉위하였는데 이가 고열왕이 된다. 고열왕 1년 황헐을 재상으로 삼고 봉하여 춘신군이라 하고 회수 북쪽 12개 현을 내렸다. 15년 후 황헐이 초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회수 북쪽 땅은 제나라와 국경으로 그 일이 급하니 청하건데 군으로 삼는 것이 편합니다.” 했다. 인하여 아울러 회수 북쪽 12개 현을 바쳤다. 강동에 봉해 줄 것을 청하니 고열왕이 허락하였다. 춘신군이 인하여 옛 오나라 터에 성을 쌓고 자신의 도읍을 삼았다.


[] 集解徐廣曰:「三十六年。」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36이라 했다.

 

[] 正義然四君封邑檢皆不獲唯平原有地又非趙境並蓋號謚而孟嘗是謚

[] 正義그러나 네 임금이 봉한 읍을 검토해 보면 모두 얻지 않고 오직 평원군의 땅만을 소유했을 뿐으로 또한 조나라 국경은 아니었고 모두 시호인데 맹상도 시호이다.


[] 正義墟音虛。(闔閭今蘇州也[闔閭]於城內小城西北別築城居之今圮毀也又大內北瀆四從五橫至今猶存又改破楚門為昌門

[] 正義의 음은 이다. (합려)는 지금의 소주이다. [합려]는 성안에 작은 성을 서북쪽에 별도로 쌓고 성에 살았는데 지금은 허물어졌다. 또 궁궐 북쪽에 도랑이 네 개의 세로 물줄기와 5개의 가로 물줄기가 있었는데 지금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또 초문을 고쳐 깨트리고 창문을 만들었다.

 

春申君既相楚是時齊有孟嘗君趙有平原君魏有信陵君方爭下士招致賓客以相傾奪輔國持權春申君為楚相四年秦破趙之長平軍四十餘萬五年圍邯鄲邯鄲告急於楚楚使春申君將兵往救之秦兵亦去春申君歸春申君相楚八年為楚北伐滅魯[]以荀卿為蘭陵令當是時楚復彊

춘신군이 초나라 재상이 되고나서 이 때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었고, 조나라에는 평원군이 있었으며,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어 바야흐로 선비에게 낮추고 빈객을 불러 이르게 하는 것으로써 (선비와 빈객을)서로 다투어 빼앗아 나라를 돕고 권력을 지탱하게 했다. 춘신군이 초나라 재상이 된지 4년에 진나라가 조나라의 장평군 40만을 깨트렸다. 5년에 한단을 포위하니 한단이 초나라에 다급함을 알리자 초나라가 춘신군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하니 진나라 군대가 또한 떠나가고 춘신군이 돌아왔다. 춘신군이 초나라의 재상이 된지 8년에 초나라가 북벌하여 노나라를 멸망시키고, 순경을 난릉의 령으로 삼았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초나라가 당시 강해졌다.


[] 索隱按年表云八年取魯封魯君於莒十四年而滅也

[] 索隱살펴보니 年表“8년에 노나라를 취하고 노나라 임금을 거 땅에 봉하고, 14년에 멸망시켰다.” 했다.

趙平原君使人於春申君春申君舍之於上舍趙使欲夸為玳刀劍室以珠玉飾之請命春申君客春申君客三千餘人其上客皆躡珠履以見趙使趙使大慚春申君相十四年秦莊襄王立以呂不韋為相封為文信侯取東周春申君相二十二年諸侯患秦攻伐無已時乃相與合從西伐秦[]而楚王為從長春申君用事至函谷關秦出兵攻諸侯兵皆敗走楚考烈王以咎春申君春申君以此益疏

조나라 평원군이 춘신군에게 사신을 보내니 춘신군이 上舍(좋은 숙소)에 머물게 했다. 조나라 사신이 초나라에 자랑하고자 하여 대모(옥으로)로 만든 비녀를 꼿고, 칼집을 구슬과 옥으로 꾸미고 춘신군의 빈객과 만나기를 청하였다. 춘신군은 빈객이 3천여 명인데 그 중 상객이 모두 구슬로 장식한 신을 신고 조나라 사신을 만나니 조나라 사신이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지 14년에 진나라 장양왕이 즉위하여 여불위를 재상으로 삼고, 봉하여 문신후라 하였고, 동주를 취하였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지 22년에 제후들이 진나라의 공격과 정벌이 그치는 때가 없음을 근심하여 이에 서로 합종하여 서족으로 진나라를 정벌하였는데 초나라 왕이 합종의 우두머리가 되고, 춘신군이 일을 담당하였다. 함곡관에 이르러 진나라 군대가 나와 공격하니 제후의 군대가 모두 패하여 달아났다. 초나라 고열왕이 춘신군을 허물하였는데(춘신국의 책임으로 삼았는데) 춘신군이 이 때문에 더욱 소원해졌다.(고열왕과 더욱 멀어졌다.)


[] 集解徐廣曰:「始皇六年。」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시황제 6년 이다.” 했다.

 

客有觀津人朱英[]謂春申君曰:「人皆以楚為彊而君用之弱其於英不然先君時善秦二十年而不攻楚何也秦踰黽隘之塞而攻楚[]不便假道於兩周背韓魏而攻楚不可今則不然魏旦暮亡不能愛許鄢陵其許魏割以與秦秦兵去陳百六十里[]臣之所觀者見秦楚之日鬥也。」楚於是去陳徙壽春而秦徙衛野王作置東郡[]春申君由此就封於吳行相事

빈객 중에 관진 사람 주영이 있었는데 (주영이)춘신군에게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초나라가 강하였는데 군(춘신군)이 등용되고 약해졌다.(임금이 춘신군을 등용하고 나서 약해졌다.) 하는데 저는(주영) 그렇지 않습니다.(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임금 때 진나라와 잘 지낸 20년 동안 초나라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진나라가 민애의 요새(평정관)를 넘어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편하지 않고, 두 주나라에서 길을 빌리고 한나라와 위나라를 배후에 두고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곧 그렇지 않아서 위나라는 아침, 저녁에 망하여(조만간 망할 것 같아) 허와 언릉을 아까워하지 않고 (위나라의) 허를 분할하여 진나라에 줄 것입니다. 진나라 군대가 진나라에 떨어진 것이 160리이니 신이 관찰한 바는 진나라와 초나라가 날로 다툼을 보게 될 것입니다.(매일 싸울 것입니다.)” 했다. 초나라가 이에 진나라를 더나 수춘으로 옮기고 진나라는 위나라 야왕으로 동군을 두었다. 춘신군이 이로 말미암아 봉토인 오나라에 나아가 재상의 일을 행하였다.


[] 正義觀音館今魏州觀城縣也

[] 正義의 음은 이다. 지금의 위주 관성현이다.

 

[] 正義黽隘之塞在申州黽音盲也

[] 正義민애의 요새는 신주에 있다. ‘의 음은 이다.

 

[] 集解徐廣曰:「在許東南。」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허 동남쪽에 있다.” 했다.

 

[] 正義濮滑州兼河北置東郡濮州本衛都而徙野王也

[] 正義복주, ‘활주’, 하북을 아울러 동군을 두었다. 복주는 본리 위나라 도읍 이었는데 야왕으로 옮겼다.


楚考烈王無子春申君患之求婦人宜子者進之甚眾卒無子趙人李園持其女弟欲進之楚王聞其不宜子恐久毋寵李園求事春申君為舍人已而謁歸故失期還謁春申君問之狀對曰:「齊王使使求臣之女弟與其使者飲故失期。」春申君曰:「入乎?」對曰:「未也。」春申君曰:「可得見乎?」:「。」於是李園乃進其女弟即幸於春申君知其有身李園乃與其女弟謀園女弟承閒以說春申君曰:「楚王之貴幸君雖兄弟不如也今君相楚二十餘年而王無子即百歲後將更立兄弟則楚更立君後亦各貴其故所親君又安得長有寵乎非徒然也君貴用事久多失禮於王兄弟兄弟誠立禍且及身何以保相印江東之封乎今妾自知有身矣而人莫知妾幸君未久誠以君之重而進妾於楚王王必幸妾妾賴天有子男則是君之子為王也楚國盡可得孰與身臨不測之罪乎?」春申君大然之乃出李園女弟謹舍而言之楚王楚王召入幸之遂生子男立為太子以李園女弟為王后楚王貴李園園用事

초나라 고열왕은 아들이 없어 춘신군이 그것을 근심하여 아들을 낳기에 마땅한 부인을 구하여 올리기를 매우 많이 하였는데 끝내 자식이 없었다. 조나라 사암 이원이 그 여동생을 데리고 초나라 왕에게 올리고자 하였으나 그가(고열왕)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것을 듣고 오래도록 사랑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하였다. 이원이 춘신군을 섬기기를 구하여 사인이 되었는데 그 후 문안을 위해 돌아갔다가 고의로 기일을 어겼다. 문안을 마치고 돌아오니 춘신군이 사정을 물었다. 이원이 대답하기를 제나라 왕이 사신을 시켜 신의 여동생을 구하였는데 그 사신과 술을 마시다 기일을 어겼습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정혼하였는가?”하니 이원이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볼 수 있겠는가?”하니 볼 수 있습니다.” 했다. 이에 이원이 그 여동생을 나아가게 하여 곧 춘신군에게 총애를 받았다. 그 임신함을 알고 이원이 그 여동생과 모의하였다. 이원의 여동생이 한가한 틈을 이어 춘신군에게 말하기를 초나라 왕이 그대를 (춘신군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나 비록 형제와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춘신군이 초나라 재상이 된지 20여년으로 왕이 아들이 없으니 곧 100년 후에 장차 바꾸어 형제를 세우면 곧 초나라가 다시 임금을 세운 후 또한 각기 그 옛날에 친한 이를 귀하게 여길 것이니 춘신군께서 또한 어찌 오래도록 사랑받음이 있겠습니까? 한갓 그렇게 되지 않을 지라도 춘신군께서 귀하게 되고 정사에 등용된 것이 오래되어 왕의 형제에게 예를 잃은 것이 오래되었으니 형제가 진실로 즉위한다면 재앙이 도한 몸에 이를 것인데 어찌 재상의 인(직인)과 강동의 봉지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첩이 스스로는 임심함을 알지만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첩이 춘신군의 사랑을 받은 것이 오래지 않으니 진실로 춘신군의 중요함으로써 첩을 초나라 왕에게 바친다면 왕께서는 반드시 사랑할 것이고, 첩은 하늘에 의지하여(하늘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는다면 곧 이는 춘신군의 아들이 왕이 되어 초나라를 모두 얻을 수 있는데 자신이 헤아릴 수 없는 죄(예측할 수 없는 재앙)에 임하는(맞닥뜨리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 했다. 춘신군이 크게 그렇다 여기고 이에 이원의 여동생을 내보내 집을 삼가고 초나라 왕에게 말하였다. 초나라 왕이 불러들여 사랑하였는데 마침내 아들을 낳으니 세워 태자를 삼고, 이원의 여동생을 왕후로 삼았다. 초나라 왕이 이원을 귀하게 여겨 이원을 정사에 등용하였다.

 

李園既入其女弟立為王后子為太子恐春申君語泄而益驕陰養死士欲殺春申君以滅口而國人頗有知之者春申君相二十五年楚考烈王病朱英謂春申君曰:「世有毋望之福[]又有毋望之禍[]今君處毋望之世[]事毋望之主[]安可以無毋望之人?」[]春申君曰:「何謂毋望之福?」:「君相楚二十餘年矣雖名相國實楚王也今楚王病旦暮且卒而君相少主因而代立當國如伊尹周公王長而反政不即遂南面稱孤而有楚國此所謂毋望之福也。」春申君曰:「何謂毋望之禍?」:「李園不治國而君之仇也[]不為兵而養死士之日久矣楚王卒李園必先入據權而殺君以滅口此所謂毋望之禍也。」春申君曰:「何謂毋望之人?」對曰:「君置臣郎中楚王卒李園必先入臣為君殺李園此所謂毋望之人也。」春申君曰:「足下置之李園弱人也僕又善之且又何至此!」朱英[]知言不用恐禍及身乃亡去

이원이 그 여동생을 들여보내고 나서 세워 왕후가 되고, 아들이 태자가 되자 춘신군이 말을 누설하거나 더욱 교만할 것을 두려워하여 몰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군사를 길러 춘신군을 죽여 입을 막고자 하니 자못 나라 사람들 가운데 그것을 아는 자가 있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지 25년에 초나라 고열왕이 병들었다. 주영이 춘신군에게 말하기를 세상에는 뜻밖의 복이 있고, 또 뜻밖의 재앙이 있습니다. 지금 춘신군께서 예상할 수 없는 세상에 처하여 예상할 수 없는 임금을 섬기니 어찌 뜻밖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무엇을 뜻밖의 복이라 하는가?” 하니 주영이 말하기를 춘신군께서 초나라 재상이 된지 20여년이 지났으니 비록 이름은 나라의 재상이라 하나 실제는 초나라의 왕입니다. 지금 초나라 왕이 병들어 아침저녁에(멀지 않아) 또한 죽고 춘신군이 어린 임금을 도울 것이며, 인하여 대신서서 나라를 감당할 터인데 이는 이윤, 주공과 같고, 왕이 장성하여 정사를 돌려주거나 아니면 곧 마침내 남쪽을 향하여 ()를 칭하면서 초나라를 소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뜻밖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무엇을 뜻밖의 재앙이라 말하는가?” 하니 주영이 말하기를 이원은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여 춘신군을 원수로 여기고 있으며 군대를 다스리지 못하여도 죽음을 각오한 군사를 기른 날이 오래되었으니 초나라 왕이 죽으면 이원은 반드시 먼저 들어가 권력에 기대의 춘신군을 죽이는 것으로써 입을 막으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뜻밖의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뜻밖에 구원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니 주영이 대답하기를 춘신군께서 신을 낭중에 둔다면(임명한다면) 초나라 왕이 죽고, 이원이 반드시 먼저 들어올 때 신이 춘신군을 위하여 이원을 죽일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뜻밖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족하는 그것을 그냥 두시오. 이원은 약한 사람이고, 내가 또한 좋게 여기니 또한 어찌 이에 이르겠는가!” 했다. 주영이 말이 쓰이지 않을 것을 알고는 재앙이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도망하여 갔다.


[] 正義無望謂不望而忽至也

[] 正義無望은 바라지 않아도 갑자기 이르는 것을 말한다.

 

[] 索隱周易有无妄卦其義殊也

[] 索隱】 『周易에 있는 무망괘와는 그 뜻이 다르다.

 

[] 正義謂生死無常

[] 正義살고 죽는 것이 항상 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

 

[] 正義謂喜怒不節也

[] 正義喜怒가 절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正義謂吉凶忽[]

[] 正義길흉이 갑자기 하는 것이다.


[] 索隱言園是春申之仇也戰國策作君之舅也」,謂為王之舅意異也

[] 索隱이원이 춘신군의 원수임을 말한 것이다. 戰國策君之舅也라 한 것은 왕의 처남을 말 한 것이니 뜻이 다르다.


[] 索隱朱亥即上之朱英也史因趙有朱亥誤也

[] 索隱주해이다. 곧 위의 주영이다. ‘라고 쓴 것은 사기에 조나라에 주해가 있기 때문인데 잘못 쓴 것이다.


後十七日楚考烈王卒李園果先入伏死士於棘門之內[]春申君入棘門園死士俠刺春申君斬其頭投之棘門外[]於是遂使吏盡滅春申君之家而李園女弟初幸春申君有身而入之王所生子者遂立是為楚幽王[]

그 후 17일 만에 고열왕이 죽으니 이원이 과연 먼저 궁궐에 들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사를 극문 안에 매복시켰다. 춘신군이 극문에 들어노니 이원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사들이 춘신군을 옆에서 찌르고 그 머리를 베어 극문 밖으로 던졌다. 이에 마침내 관리를 시켜서 춘신군의 집을 모두 없앴다. 이원의 여동생이 처음에 춘신군의 사랑을 받아 임신하고 왕에게 들어가 낳은 아들이 마침내 즉위하니 이가 초나라 유왕이 된다.


[] 正義壽州城門

[] 正義수주의 성문이다.

 

[] 正義楚考烈王二十五年秦始皇九年

[] 正義초나라 고열왕 25, 진나라 시황제 9년이다.

 

[] 索隱按楚捍有母弟猶猶有庶兄負芻及昌平君是楚君完非無子而上文云考烈王無子誤也

[] 索隱살펴보니 초나라는 은 같은 어머니가 낳은 아우가 가 있으며, ‘는 서형인 부추와 창평군이 있었다. 이는 초나라 임금 에게 아들이 없는 것이 아니니 윗글에 고열왕이 아들이 없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是歲也秦始皇帝立九年矣亦為亂於秦夷其三族而呂不韋廢

이해는 진나라 시황제가 즉위한지 9년이다. 노애가 또한 진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발각되어 그 삼족이 죽음을 당하고, 여불위가 쫓겨났다.

 

太史公曰吾適楚觀春申君故城宮室盛矣哉春申君之說秦昭王及出身遣楚太子歸何其智之明也後制於李園[]語曰:「當斷不斷反受其亂。」春申君失朱英之謂邪

태사공이 말하기를 내가 초나라에 가서 춘신군의 옛 성을 보았는데 궁실이 성대하였다! 처음에 춘신군이 진나라 소왕을 설득하여 몸을 빼어 초나라 태자를 보내 돌아가게 한 것이 어찌나 지혜가 밝은지! 후에 이원에게 제압된 것은 늙었기 때문이다. 옛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함에도 결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어지러움을 받는다.’ 하니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잃었기(듣지 않았기) 때문인가?” 했다.


[] 集解徐廣曰:「旄音耄。」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의 음은 ()’이다.

 

索隱述贊黃歇辯智權略秦太子獲歸身作宰輔珠炫趙客邑開吳土烈王寡胤李園獻女無妄成災朱英徒語

索隱述贊황헐이 말 잘하고 지혜로워 진나라와 초나라를 형편에 따라 모략을 폈다. 태자는 돌아가고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조나라 객을 구슬처럼 빛나게 하여 오나라 땅에 읍을 열었다. 고열왕이 자식이 적어 이원이 여동생을 바쳤다. 뜻하지 않은 재앙을 받으니 주영의 말은 헛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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