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八
春申君列傳第十八
春申君者,楚人也,名歇,姓黃氏。游學博聞,事楚頃襄王[一]。頃襄王以歇為辯,使於秦。秦昭王使白起攻韓、魏,敗之於華陽,禽魏將芒卯,韓、魏服而事秦。秦昭王方令白起與韓、魏共伐楚,未行,而楚使黃歇適至於秦,聞秦之計。當是之時,秦已前使白起攻楚,取巫、黔中之郡,拔鄢郢,東至竟陵,[二]楚頃襄王東徙治於陳縣。[三]黃歇見楚懷王之為秦所誘而入朝,遂見欺,留死於秦。頃襄王,其子也,秦輕之,恐壹舉兵而滅楚。歇乃上書說秦昭王曰:
춘신군은 초나라 사람인데 이름은 ‘헐’이고 성은 황씨이다. 돌아다니며 배우고 들음을 넓게 하였으며, 초나라 경양왕을 섬겼다. 경양왕이 헐이 말을 잘 한다하여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진나라 소왕이 백기로 하여금 한나라, 위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화양에서 무너뜨리고 위나라 장수 망묘를 사로잡으니 한나라와 위나라가 복종하고 진나라를 섬겼다. 진나라 소왕이 바야흐로 백기와 한나라, 위나라가 함께 초나라를 치게 하였는데 실행되지 않았을 때 초나라 사신 황헐이 마침 진나라에 이르러 진나라의 계책을 들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진나라가 이미 앞서 백기로 하여금 초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무’와 ‘검중’의 군을 취하고, ‘언’과 ‘영’을 함락시켜 동쪽으로 경릉에 이르니 초나라 경양왕이 동쪽으로 진현에 옮겨 다스렸었다. 황헐은 초나라 회왕이 진나라에게 유인되어 진나라 조정에 들어갔다가 마침내 속임을 당하고 진나라에 억류되었다가 죽는 것을 보았다. 경양왕은 그 아들이다. 진나라가 그들을 가볍게 여기고 한 번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멸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황헐이 글을 올려 진나라 소왕을 유세하여 말하기를
[一] 索隱名橫,考烈王完之父。
[一] 【索隱】 이름은 ‘橫’이니 고열왕 완의 아버지이다.
[二] 正義竟陵屬江夏郡也。
[二] 【正義】 경릉은 강하군에 속한다.
[三] 正義今陳州也。
[三] 【正義】 지금의 진주이다.
天下莫彊於秦、楚。今聞大王欲伐楚,此猶兩虎相與鬥。兩虎相與鬥而駑犬受其獘,[一]不如善楚。臣請言其說:臣聞物至則反,冬夏是也;[二]致至則危,[三]累棋是也。今大國之地,遍天下有其二垂,[四]此從生民已來,萬乘之地未嘗有也。先帝文王、莊王之身,三世不妄接地於齊,以絕從親之要。[五]今王使盛橋守事於韓,[六]盛橋以其地入秦,是王不用甲,不信威,[七]而得百里之地。王可謂能矣。王又舉甲而攻魏,杜大梁之門,舉河內,拔燕、酸棗、虛、[八]桃,入邢,[九]魏之兵雲翔而不敢捄。王之功亦多矣。王休甲息眾,二年而後復之;又并蒲、衍、首、垣[一0],以臨仁、平丘,[一一]黃、濟陽嬰城[一二]而魏氏服;王又割濮磿之北,[一三]注齊秦之要,絕楚趙之脊,[一四]天下五合六聚而不敢救。王之威亦單矣。[一五]
“천하에 진나라와 초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지금 들으니 대왕께서 초나라를 치고자 한다 하는데 이는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면 둔한 개가 그 지침을 이용하여 이익을 받을 것이니 초나라와 잘 지내는 것만 못합니다. 신이 그 설명을 말할 것을 청합니다. 신이 들으니 사물이 지극하면 곧 돌아오는데 겨울과 여름이 이것입니다. 지극함에 아르면 곧 위태로워지는데 바둑돌을 쌓는 것이 이것입니다. 지근 대국의 땅이 천하를 두루하여 그 두 가장자리를 소유하였는데 이는 백성이 생겨남으로부터 이래로 萬乘의 땅을 일찍이 소유한 적이 없었습니다. 선제인 혜문왕과 장왕, 대왕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망녕되이 땅을 제나라에 접하는 것으로써 합종하고 친하게 하는 요점을 끊지 않았습니다. 지금 왕께서 성교로 하여금 한나라에서 벼슬하게 하고 성교가 그 땅을 진나라에 들이게 하였으니 이는 왕께서 군사를 쓰지도 위엄을 펴지 않고도 백리의 땅을 얻었습니다. 왕께서는 능력이 있다고 말 할 만합니다. 왕께서 또한 군대를 들어 위나라를 공격하시고 대량의 문을 막으시며 하내를 얻으시고, 연나라, 산자, 허, 도를 공략하시고 형에 들어가시자 위나라의 군대가 구름이 날아오르듯 흩어져서 감히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의 공이 또한 많습니다. 왕께서 군대를 쉬게 하고 무리들을 휴식하게 한지 2년이 지난 후에 다시 하여(군대를 일으켜) 또한 포, 연, 수, 원을 병합하시고 인과 평구, 황, 제양, 영성에 임하시니 위나라가 복종하였고, 왕께서는 또한 복수와 마산의 북쪽을 분할하여 제나라와 진나라의 요충에 붙이고 초나라와 조나라의 척추를 끊었어도 천하의 제후들이 5번 합하고 6번 모여도 감히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의 위엄이 또한 극에 도달하였습니다.
[一] 索隱按:謂兩虎鬥乃受獘於駑犬也。劉氏云受猶承也。
[一] 【索隱】 살펴보니 두 범이 싸우면 곧 어리석은 개에게 넘어짐을 받는 것을 말한다. 유씨는 “‘受’는 ‘承’과 같다.
[二] 正義至,極也,極則反也。冬至,陰之極;夏至,陽之極。
[二] 【正義】 ‘至’는 ‘極’이다. 極(한계에 이르면)하면 곧 돌아온다. 동지는 음의 지극한 것이고, 하지는 양의 지극한 것이다.
[三] 集解徐廣曰:「致,或作『安』。」
[三] 【集解】 서광은 “‘致’는 혹 ‘安’이라고도 쓴다.” 했다.
[四] 正義言極東西。
[四] 【正義】 동쪽과 서쪽을 다하였음을 말한다.
[五] 索隱音腰。以言山東從,韓、魏是其腰。
[五] 【索隱】 음은 ‘腰’이다. 산동이 한나라, 위나라를 합종한다고 말하면 이는 그 허리가 되기 때문이다.
[六] 索隱按:秦使盛橋守事於韓,亦如楚使召滑相趙然也。並內行章義之難。
[六] 【索隱】 살펴보니 진나라 사신 성교가 한나라에서 관리가 되니 또한 초나라 사신 소활로 하여금 조나라의 재상이 되게 한 것과 같다. 더불어 안으로 장의의 난이 행해졌다.
[七] 索隱信音申。
[七] 【索隱】 ‘信’의 음은 ‘申’이다.
[八] 集解徐廣曰:「秦始皇五年,取酸棗、燕、虛。蘇代曰『決宿胥之口,魏無虛、頓丘』。」
[八] 【集解】 서광이 “진나라 시황제 5년 산조, 연, 허를 취하였다. 소대가 말하기를 ‘숙서의 입구를 트면 위나라는 허와 돈구가 없어진다.’” 했다.
[九] 集解徐廣曰:「燕縣有桃城,平皋有邢丘。」 正義邢丘在懷州武德縣東南二十里。
[九]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연나라의 현 중에 도성이 있고, 평고는 형구에 있다.” 한다. 【正義】 형구는 회주 무덕현 동남쪽 20리에 있다.
[一0] 集解徐廣曰:「蘇秦云『北有河外、卷、衍』。長垣縣有蒲鄉。」 索隱此蒲在衛之長垣蒲鄉也。衍在河南,與卷相近。首蓋牛首,垣即長垣,非河東之垣也。垣音圓。
[一0]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소진은 ‘북쪽에 하외, 권, 연이 있다.’ 하고, 장원현은 포향에 있다.” 했다. 【索隱】 이 포는 위나라의 장원 포향에 있다. 연은 하남에 있는데 권과 서로 가깝다. 수는 아마도 우수일 것이고, 원은 곧 장원인데 하동의 원이 아니다. ‘垣’의 음은 ‘圓’이다.
[一一] 集解徐廣曰:「屬陳留。」 索隱仁及平丘二縣名。謂以兵臨此二縣,則黃及濟陽等自嬰城而守也。按:地理志平丘屬陳留,今不知所在。
[一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진류에 속한다.” 했다. 【索隱】 인과 평구는 두 현 이름이다. 군대를 가지고 이 두 현에 임하는 것으로써 황과 제양 등이 영성으로부터 지키는 것을 말한다. 살펴보니 평구는 진류에 속하는데 지금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一二] 集解徐廣曰:「蘇代云『決白馬之口,魏無黃、濟陽』。」 正義故黃城在曹州考城縣東。濟陽故城在曹州宛句縣西南。嬰城,未詳。
[一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소대가 백마의 입구를 트면 위나라는 황과 제양이 없어지게 된다.’ 했다고” 한다. 【正義】 옛 황성은 조주 고성현 동쪽에 있다. 제양 옛 성은 조주 완구현 서남쪽에 있다. 영성은 자세하지 않다.
[一三] 集解徐廣曰:「濮水北於鉅野入濟。」 索隱地名,蓋地近濮也。
[一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복수는 북쪽으로 흐르다 거야에서 제수로 들어간다. 【索隱】 지명이니 대개 땅이 복수에 가깝다.
[一四] 正義劉伯莊云:「言秦得魏地,楚趙之(絕)從[絕]。」
[一四] 【正義】 유백장이 “진나라가 위나라의 땅을 얻고 초나라와 조나라의 합종을 끊었다.
[一五] 集解徐廣曰:「單,亦作『殫』。」 索隱單音丹。單者,盡也。言王之威盡行矣。
[一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單은 또한 ‘殫’이라고도 쓴다.” 했다. 【索隱】 ‘單’의 음은 ‘丹’이다. ‘單’은 ‘盡(다함)’이다. 왕의 위엄이 행함을 다하였다는 말이다.
王若能持功守威,絀攻取之心而肥仁義之地,使無後患,三王不足四,五伯不足六也。王若負人徒之眾,仗兵革之彊,乘毀魏之威,而欲以力臣天下之主,臣恐其有後患也。詩曰「靡不有初,鮮克有終」。易曰「狐涉水,濡其尾」。[一]此言始之易,終之難也。何以知其然也?昔智氏見伐趙之利而不知榆次之禍,[二]吳見伐齊之便而不知干隧之敗。[三]此二國者,非無大功也,沒利於前而易患於後也。[四]吳之信越也,從而伐齊,[五]既勝齊人於艾陵,[六]還為越王禽三渚之浦。[七]智氏之信韓、魏也,從而伐趙,攻晉陽城,[八]勝有日矣,韓、魏叛之,殺智伯瑤於鑿臺之下[九]。今王妒楚之不毀也,而忘毀楚之彊韓、魏也,臣為王慮而不取也。
왕께서 만약에 공을 지니고 위엄을 지키고, 공격하여 취려는 마음을 물리치고 인의의 자리를 살찌워 뒷날의 근심을 없게 할 수 있다면 三王은 충분하지 않아 四王이 될 것이며, 五伯은 충분하지 않아 6伯이 될 것입니다.(삼왕: 우왕, 탕왕, 문왕에 이은 네 번째 훌륭한 왕이 될 것이며, 춘추 5패에 이은 6번째 패왕이 될 것입니다.) 왕께서 만약 사람 누리의 많음을 지고, 군대의 강함에 의지하여 위나라를 무너뜨린 위엄을 타고 힘써 천하의 임금을 신하로 하고자 한다면 신은 그 뒷날의 근심이 있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시경』에 “처음에는 잘하는 이가 있지만 능히 끝을 잘 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하였고, 『주역』 에 “여우가 물을 건너면 그 꼬리를 적신다.” 하였습니다. 이는 시작의 쉬움과 끝맺음의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 무엇으로써 그것을 아는가? 옛날 지씨는 조나라를 치는 이로움만 보고 유차의 재앙을 알지 못하였고, 오나라가 제나라를 치는 편의만을 보고 간수의 패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 두 나라는 큰 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이익에 빠져서 뒤에 있는 근심을 쉽게 여겼습니다. 오나라가 월나라를 믿고 (군대를)거느리고여 제나라를 쳐서 애릉에서 제나라 사람들을 이겼으나 돌아오다 월나라 왕에게 삼저의 물가에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지씨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믿고 (군대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쳐서 진양성을 공격하다 이길 날이 있었는데(다가오는데) 한나라와 위나라가 배반하고 지백요를 착대의 아래서 죽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초나라의 무너지지 않음을 질시할 뿐 초나라를 무너뜨리면 한나라와 위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을 잊으시니 신은 왕을 위해 염려하여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했다.
[一] 正義言狐惜其尾,每涉水,舉尾不令濕,比至極困,則濡之。譬不可力臣之。
[一] 【正義】 여우가 그 꼬리를 아껴서 매번 물을 건널 때 꼬리를 들어서 젖지 않게 하는데 지극히 궁곤하면 곧 그것을 젖게 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힘으로 신하 삼을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二] 索隱智伯敗於榆次也。地理志屬太原,有梗陽鄉。正義榆次,并州縣也。注水經云:「榆次縣南洞渦水側有鑿臺。」
[二] 【索隱】 지백이 유차에서 패함 것이다. 『地理志』에 태원에 속하고, 경양향에 있다. 【正義】 유차는 병주현이다. 『주수경』에 “유차현 남쪽 동와수 옆에 착대가 있다.
[三] 索隱干隧,吳之敗處,地名。干,水邊也。隧,道路也。正義干隧,吳地名也。出萬安山西南一里太湖,即吳王夫差自剄處,在蘇州西北四十里。
[三] 【索隱】 간수는 오나라가 패한 곳이니 지명이다. ‘干’은 물가이다. ‘隧’는 도로이다. 【正義】 간수는 오나라의 지명이다. 만안산 서남쪽 1리 태호에서 나오니 곧 오나라 왕 부차가 자살 한 곳으로 소주 서북쪽 40리에 있다.
[四] 索隱謂智伯及吳王沒伐趙及伐齊之利於前,而自易其患於後。後即榆次、干隧之難也。
[四] 【索隱】 지백과 오나라 왕이 조나라를 치는 것과 제나라를 치는 것의 이로움의 앞에 빠져 스스로 그 뒤에 있는 근심을 쉽게 여겼다. 후에 유차에 유차와 간수의 어려움에 나아갔다.
[五] 索隱從音絕用反。劉氏云:「從猶領也。」
[五] 【索隱】 ‘從’의 음은 ‘絶’과 ‘用’의 反이다. 유씨는 “‘從’은 ‘領’과 같다.”고 했다.
[六] 正義艾山在兗州博縣南六十里也。
[六] 【正義】 애산은 연주 박현 남쪽 60리에 있다.
[七] 集解戰國策曰「三江之浦」。正義吳俗傳云:「越軍得子胥夢,從東入伐吳,越王即從三江北岸立壇,殺白馬祭子胥,杯動酒盡,乃開渠曰示浦,入破吳王於姑蘇,敗干隧也。」
[七] 【集解】 『戰國策』에는 “三江之浦”라 했다. 【正義】 오나라 세속에서는 “월나라 군대가 오자서의 꿈을 얻어 동쪽으로부터 들어가 오나라를 쳤는데 월나라 왕이 三江의 북쪽 언덕에 나아가 단을 세우고 백마를 죽여 오자서에게 제사하고 술잔을 움직여 술을 다하고 이에 도랑을 열어 ‘시포’라하고는 들어가 고소에서 오나라 왕을 깨트리고 간수에서 무너뜨렸다.”고 했다.
[八] 正義并州城。
[八] 【正義】 병주성이다.
[九] 集解徐廣曰:「鑿臺在榆次。」
[九]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착대는 유차에 있다.” 했다.
詩曰「大武遠宅而不涉」。[一]從此觀之,楚國,援也;鄰國,敵也。詩云「趯趯毚免,還犬獲之。[二]他人有心,余忖度之」。今王中道而信韓、魏之善王也,此正吳之信越也。臣聞之,敵不可假,時不可失。臣恐韓、魏卑辭除患而實欲欺大國也。[三]何則?王無重世之德[四]於韓、魏,而有累世之怨焉。夫韓、魏父子兄弟接踵而死於秦者將十世矣。本國殘,社稷壞,宗廟毀。刳腹絕腸,折頸摺頤,[五]首身分離,暴骸骨於草澤,頭顱僵仆,相望於境,父子老弱係脰束手為群虜者相及於路。鬼神孤傷,無所血食。人民不聊生,族類離散,流亡為僕妾者,盈滿海內矣。故韓、魏之不亡,秦社稷之憂也,今王資之與攻楚,不亦過乎!
『시경』에 “큰 군대는 집을 멀리하고 물을 건너지 않는다.(대군을 거느리고 멀리가서 정벌하지 않는다.)” 합니다. 이로부터 관찰하면 초나라는 원조하는 나라이고 이웃나라(한나라, 위나라)는 적입니다. 『시경』에 “깡충깡충 뛰는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잡힌다. 다른 사람이 마음을 두면 내가 그것을 헤아릴 수 있다.” 합니다, 지금 왕께서 (한나라 위나라를 치는) 도중에 한나라, 위나라가 왕에게 잘한다고 믿는 것은 이는 바로 오나라가 월나라를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적은 용서할 수 없고, 때는 잃을 수 없다. 합니다. 신은 한나라와 위나라가 말을 낮추어 근심 없게 하나 실제로는 대국을 속이고자 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째서 일까요? 왕께서 대대로 한나라와 위나라에 덕을 베품은 없고, 여러 대의 원망은 있었습니다. 대저 한나라와 위나라는 부자형제가 발뒤꿈치를 맞대고 진나라에서(진나라와 싸워) 죽은 자가 10세대입니다, 본국은 황폐해지고, 사직은 무너졌으며, 종묘는 헐어졌습니다. 배를 가르고 창자를 끊으며, 목을 꺽고 턱을 접으며,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고 풀밭과 늪지에 해골이 드러나고, 머리뼈는 쓰러지고 엎어져 서로 경계에 마주보이고, 아비와 아들, 노인과 어린이의 머리를 묶고 손을 묶은 여러 포로들이 길에 서로 이었습니다. 귀신은 외로이 서글퍼하고 제사할 이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살지 못하고 친척은 떨어지고 흩어져 흘러 다니다 종과 첩이 된 자가 나라 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나라 위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진나라사직의 근심인데 지금 왕께서 의지하여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니 또한 지나치지 않습니까?
[一] 正義言大軍不遠跋涉攻伐。
[一] 【正義】 대군은 멀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攻伐(공격하여 정벌함)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二] 集解韓嬰章句曰:「趯趯,往來貌。獲,得也。言趯趯之毚兔。謂狡兔數往來逃匿其跡,有時遇犬得之。」毛傳曰:「毚兔,狡兔也。」鄭玄曰:「遇犬,犬之馴者,謂田犬。」 索隱「趯」作「躍」。躍,天歷反。毚音讒。
[二] 【集解】 「한영장구」에 “‘趯趯(적적)’은 가고 오는 모양이다. ‘獲’은 ‘得(얻다)’이다. ‘趯趯之毚兔’라는 말은 교활한 토끼가 여러 번 가고 오면서 도망하여 그 자취를 숨겨도 때때로 개를 만나 잡히는 일이 있음을 말한다. 「모전」에 ‘毚兎는 교활한 토끼이다.’ 했고, 정현은 ‘遇犬은 개의 길들여진 것으로 사냥개를 이른다.’ 했다.” 【索隱】 ‘趯’은 ‘躍’이라고도 쓴다. ‘躍’은 ‘天’과 ‘歷’의 反이다. ‘毚’의 음은 ‘讒(참)’이다.
[三] 索隱大國謂秦也。
[三] 【索隱】 대국은 진나라를 말한다.
[四] 索隱重世猶累世也。
[四] 【索隱】 ‘重世’는 ‘累世(여러 세대)’와 같다.
[五] 集解徐廣曰:「一作『顛』。」 索隱上音拉,下音夷。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顚’이라고도 쓴다.” 했다. 【索隱】 위의 음은 ‘拉(납)’이고, 아래의 음은 ‘夷(이)’이다.
且王攻楚將惡出兵?[一]王將借路於仇讎之韓、魏乎?兵出之日而王憂其不返也,是王以兵資於仇讎之韓、魏也。王若不借路於仇讎之韓、魏,必攻隨水右壤。隨水右壤,此皆廣川大水,山林谿谷,不食之地也,[二]王雖有之,不為得地。是王有毀楚之名而無得地之實也。
또한 왕께서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장차 어디서 군대를 내시겠습니까? 왕께서 원수인 한나라와 위나라에서 길을 빌리겠습니까? 군대를 내는 날에 왕께서는 그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는 것은 이는 왕께서 군대를 가지고 원수의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를 돕는 것입니다. 왕께서 만약 원수의 나라인 한나라, 위나라에서 길을 빌리지 않으시면 반드시 隨水의 오른쪽 땅을 공격해야 합니다. 수수의 오른쪽 땅은 이는 모두 넓고 큰 강물과 신림계곡으로 먹지 못하는 (농사지을 수 없는 땅)땅이니 왕께서 비록 그것을 소유할지라도 땅을 얻은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이는 왕께서 초나라의 명예를 무너뜨리면서도 땅의 실제를 얻음은 없는 것입니다.
[一] 正義惡音烏。
[一] 【正義】 ‘惡’의 음은 ‘烏(오)’이다.
[二] 索隱楚都陳,隨水之右壤蓋在隨之西,即今鄧州之西,其地多山林者矣。
[二] 【索隱】 초나라는 진수와 수수의 오른쪽 땅에 도읍하여 대개 수수의 서쪽에 있었으니 곧 지금의 등주 서쪽인데 그 땅은 산림이 많다.
且王攻楚之日,四國必悉起兵以應王。秦、楚之兵構而不離,魏氏將出而攻留、方與、銍、湖陵、碭、蕭、相,故宋必盡。[一]齊人南面攻楚,泗上必舉。[二]此皆平原四達,膏腴之地,而使獨攻。[三]王破楚以肥韓、魏於中國而勁齊。韓、魏之彊,足以校於秦。[四]齊南以泗水為境,東負海,北倚河,而無後患,天下之國莫彊於齊、魏,齊、魏得地葆利而詳事下吏,一年之後,為帝未能,其於禁王之為帝有餘矣。[五]
또한 왕께서 초나라를 공격하는 날 네 나라는 반드시 모두 군대를 일으켜 왕께 대항할 것입니다. 진나라와 초나라 군대가 얽혀서(싸워) 떨어지지 않으면 위씨(위나라)가 장차 나와 유, 방여, 질, 호릉, 탕, 소, 상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송나라는 반드시 다할(모두 차지할) 것입니다. 제나라 사람들이 남쪽을 향하여 초나라를 공격하면 사수 위쪽이 반드시 점거당할 것입니다. 이는 모두 평원으로 사방으로 통하는 기름진 땅이어서 홀로 공격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초나라를 깨트리는 것으로써 중국에서 한나라, 위나라를 살찌우는 것이고 제나라를 굳세게 하는 것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강해지는 것은 진나라에게 견주기에 충분합니다. 제나라가 남쪽으로 사수를 경계로 삼고, 동쪽으로 바다를 등지고 북으로 하(황하)에 의지하여 뒤의 근심을 없애면 천하의 나라 중에 제나라와 위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을 것이니 제나라와 위나라가 땅을 얻고 이익을 넓히면서 거짓으로 하급관리가 섬기듯이 한다면 1년이 지난 후 황제를 하는 것은 할 수 없을 지라도 왕의 황제가 되는 것을 막는 데는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一] 正義徐州西,宋州東,兗州南,並故宋地。
[一] 【正義】 서주 서쪽, 송주 동쪽, 연주 남쪽은 모두 옛 송나라 땅이다.
[二] 正義此時徐、泗屬齊也。
[二] 【正義】 이 때 서주와 사수는 제나라에 속하였다.
[三] 索隱若秦楚構兵不休,則魏盡故宋,齊取泗上,是使齊魏獨攻伐而得其利也。
[三] 【索隱】 만약 진나라와 초나라가 군대가 얽혀(싸우고) 쉬지 않는다면 곧 위나라는 예 송나라를 다하고(모두 차지하고) 제나라는 사수 위쪽을 차지할 것이니 이는 제나라와 위나라로 하여금 홀로 공격하고 정벌하게 하여 그 이로움을 얻게 할 것이다.
[四] 索隱校音教。謂足以與秦為敵也。一云校者,報也,言力能報秦。
[四] 【索隱】 ‘校’의 음은 ‘敎’이다. 진나라와 적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한편 ‘校’는 갚는 것이니 힘써 진나라에 갚을 수 있다는 말이다.
[五] 索隱言齊一年之後,未即能為帝,而能禁秦為帝有餘力矣。然「禁」字作「楚」者,誤也。
[五] 【索隱】 제나라가 1년 후 황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진나라가 황제가 되는 것을 막는 것에는 남은 힘이 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禁’자는 ‘楚’로 쓴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夫以王壤土之博,人徒之眾,兵革之彊,壹舉事而樹怨於楚,遲令[一]韓、魏歸帝重於齊,是王失計也。[二]臣為王慮,莫若善楚。秦、楚合而為一以臨韓,韓必斂手。王施以東山之險,帶以曲河之利,韓必為關內之侯。若是而王以十萬戍鄭,梁氏寒心,許、鄢陵嬰城,而上蔡、召陵不往來也,如此而魏亦關內侯矣。王壹善楚,而關內兩萬乘之主注地於齊,[三]齊右壤可拱手而取也。[四]王之地一經兩海,[五]要約天下,是燕、趙無齊、楚,齊、楚無燕、趙也。然後危動燕、趙,直搖齊、楚,此四國者不待痛而服矣。
대저 왕께서 땅이 넓고, 사람의 무리가 많은 것, 군대의 강함을 가지고 한 번 일을 들면 원망을 초나라에 심는 것이니 이에 한나라 위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에 황제의 지위를 돌리게 하는 것은 이는 왕의 잘못된 계책입니다. 신이 왕을 위하여 생각해 보니 초나라와 좋게 지내는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으로써 한나라에 임하면 한나라는 반드시 손을 거둘 것입니다. 왕께서 동쪽 산의 험함에 기대고 굽은 하의 이로움을 두르면 한나라는 반드시 관내의 제후가 될 것입니다. 이 같이 하고서 왕께서 10만의 군대를 가지고 정(한나라의 수도)을 지키면 양씨의 마음을 서늘하게 할 것이며 허, 언릉을 농성하여 굳게 지키면 상채, 소릉이 오고가지 못할 것이니 이 같이 하면 위나라가 또한 관내의 제후가 될 것입니다. 왕께서 한 번 초나라와 잘 지내시면 관내의 두 만승의 임금을 관내 제후로 할 것이고, 제나라에 땅을 군대로 끊으면 제나라 오른 쪽(서쪽) 땅을 두 손을 맞잡고도(팔짱을 끼고도) 취할 수 있습니다. 왕의 땅은 하나로 두 바다를 지나게 되어 천하를 묶는 것이니 이는 연나라 조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의 (도움이) 없고, 제나라와 초나라는 연나라와 조나라의 (도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연나라와 조나라를 위태롭게 하여 움직이게 하고, 곧바로 제나라와 초나라를 흔들면 이 네 나라는 아픔을 기다리지 않아도 복종할 것입니다.
[一] 集解徐廣曰:「遲,一作『還』。」 索隱遲音值。值猶乃也。今音力呈反。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遲’는 한편으로 ‘還’이라 쓴다.” 했다. 【索隱】 ‘遲’으 음은 ‘値(치)’이다. ‘値’는 ‘乃’와 같다. 지금의 음은 ‘力’과 ‘呈’의 反이다.
[二] 索隱謂韓、魏重齊,令歸帝號,此秦之計失。
[二] 【索隱】 한나라와 위나라가 제나라를 중요하게 여겨 황제의 호를 돌리게 하면 이는 진나라의 계책이 잘못된 것이다.
[三] 索隱注謂以兵裁之也。
[三] 【索隱】 ‘注’는 군대로써 끊는 것을 말한다.
[四] 正義右壤謂濟州之南北也。
[四] 【正義】 右壤은 제주의 남북을 말한다.
[五] 索隱謂西海至東海皆是秦地。正義廣言橫度中國東西也。
[五] 【索隱】 서해에서 동해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진나라의 땅이 됨을 말한다. 【正義】 넓게말하면 중국의 동서를 가로로 건너는 것을 말한다.
昭王曰:「善。」於是乃止白起而謝韓、魏。發使賂楚,約為與國。
黃歇受約歸楚,楚使歇與太子完入質於秦,秦留之數年。楚頃襄王病,太子不得歸。而楚太子與秦相應侯善,於是黃歇乃說應侯曰:「相國誠善楚太子乎?」應侯曰:「然。」歇曰:「今楚王恐不起疾,秦不如歸其太子。太子得立,其事秦必重而德相國無窮,是親與國而得儲萬乘也。若不歸,則咸陽一布衣耳;楚更立太子,必不事秦。夫失與國而絕萬乘之和,非計也。願相國孰慮之。」應侯以聞秦王。秦王曰:「令楚太子之傅先往問楚王之疾,返而後圖之。」黃歇為楚太子計曰:「秦之留太子也,欲以求利也。
소왕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이에 백기를 그치게 하고 한나라와 위나라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사신을 출발시켜 초나라에 재물을 주고 동맹국이 될 것을 약속하였다. 황헐이 약속을 받고 초나라로 돌아가 초나라 사신 황헐과 태자 완을 진나라에 들여보내 인질로 삼았는데 진나라에 여러 해 머물렀다. 초나라 경양왕이 병들었는데도 태자가 돌아가지 못하였다. 초나라 태자와 진나라 재상 응후가 잘 지내서 이에 황헐이 응후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상국이 진실로 초나라 태자를 좋아합니까?” 하니 응후가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황헐이 말하기를 “지금 초나라 왕이 병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데 진나라가 그 태자를 돌아가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돌아가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태자가 즉위하면 진나라 섬기기를 반드시 중요하게 여기고 상국이 덕을 베푼 것이 끝이 없다 할 것이니 이는 동맹국을 친하게 여기는 것이며 만승의 나라에 덕을 쌓는 것입니다. 만약 돌려보내지 않으면 곧 (태자는)함양의 한 布衣(지위가 없는 백성)가 될 뿐이고 초나라는 다시 태자를 세울 것이니 반드시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대저 동맹국을 잃고 만승의 나라와의 화친을 끊는 것은 계책이 아닙니다. 원하건데 상국은 깊이 고려하십시오. 했다. 응후가 진나라 왕에게 아뢰었다. 진나라 왕이 말하기를 “초나라 태자의 사부로 하여금 먼저 가서 초나라 왕의 병을 묻게 하고 돌아 온 후에 도모하겠다.” 했다. 황헐이 초나라 태자를 위한 계책을 말하기를 “진나라가 태자를 머물게 하는 것은(억류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고자하기 때문입니다.
今太子力未能有以利秦也,歇憂之甚。而陽文君子二人在中,王若卒大命,太子不在,陽文君子必立為後,太子不得奉宗廟矣。不如亡秦,與使者俱出;臣請止,以死當之。」楚太子因變衣服為楚使者御以出關,而黃歇守舍,常為謝病。度太子已遠,秦不能追,歇乃自言秦昭王曰:「楚太子已歸,出遠矣。歇當死,願賜死。」昭王大怒,欲聽其自殺也。應侯曰:「歇為人臣,出身以徇其主,太子立,必用歇,故不如無罪而歸之,以親楚。」秦因遣黃歇。
지금 태자의 힘이 진나라에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저는 근심함이 심합니다. 나라 안에 양문군의 아들 두 사람이 있는데 왕이 만약 大命을 마치고(왕이 죽었는데) 태자가 있지 않으면 양문군의 아들이 반드시 즉위하여 뒤를 이을 것이니 태자께서는 종묘를 받들 수 없습니다. 진나라를 도망하여 사자와 함께 나가는 것이 좋으며, 신은 머물러 죽음으로써 감당하기를 청합니다. 했다. 초나라 태자가 인하여 의복을 바꾸어 입고 초나라 사자의 마부가 되어 관을 나가고 황헐이 집을 지켰는데 항상 병을 핑계로 하였다. 태자가 이미 멀리 가서 진나라가 축격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는 황헐이 이에 스스로 진나라 소왕에게 말하기를 “초나라 태자는 이미 돌아가서 멀리 나갔습니다. 저는 마땅히 죽어야 하니 죽음을 내려주실 것을 원합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크게 노하여 그 스스로 죽는 것을 들어주고자 하였다. 응후가 말하기를 “황헐은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 몸을 내는 것으로써 그 주인을 따랐으니 태자가 즉위하면 반드시 황헐을 등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없애고 돌아가게 하여 초나라와 친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했다. 진나라가 황헐을 보내주었다.
歇至楚三月,楚頃襄王卒,[一]太子完立,是為考烈王。考烈王元年,以黃歇為相,封為春申君,[二]賜淮北地十二縣。後十五歲,黃歇言之楚王曰:「淮北地邊齊,其事急,請以為郡便。」因并獻淮北十二縣。請封於江東。考烈王許之。春申君因城故吳墟,以自為都邑。
황헐이 초나라에 이른지 3개월만에 초나라 경양왕이 죽으니 태자 완이 즉위하였는데 이가 고열왕이 된다. 고열왕 1년 황헐을 재상으로 삼고 봉하여 춘신군이라 하고 회수 북쪽 12개 현을 내렸다. 15년 후 황헐이 초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회수 북쪽 땅은 제나라와 국경으로 그 일이 급하니 청하건데 군으로 삼는 것이 편합니다.” 했다. 인하여 아울러 회수 북쪽 12개 현을 바쳤다. 강동에 봉해 줄 것을 청하니 고열왕이 허락하였다. 춘신군이 인하여 옛 오나라 터에 성을 쌓고 자신의 도읍을 삼았다.
[一] 集解徐廣曰:「三十六年。」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36년”이라 했다.
[二] 正義然四君封邑檢皆不獲,唯平原有地,又非趙境,並蓋號謚,而孟嘗是謚。
[二] 【正義】 그러나 네 임금이 봉한 읍을 검토해 보면 모두 얻지 않고 오직 평원군의 땅만을 소유했을 뿐으로 또한 조나라 국경은 아니었고 모두 시호인데 맹상도 시호이다.
[三] 正義墟音虛。(闔閭)今蘇州也。[闔閭]於城內小城西北別築城居之,今圮毀也。又大內北瀆,四從五橫,至今猶存。又改破楚門為昌門。
[三] 【正義】 ‘墟’의 음은 ‘虛’이다. (합려)는 지금의 소주이다. [합려]는 성안에 작은 성을 서북쪽에 별도로 쌓고 성에 살았는데 지금은 허물어졌다. 또 궁궐 북쪽에 도랑이 네 개의 세로 물줄기와 5개의 가로 물줄기가 있었는데 지금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또 초문을 고쳐 깨트리고 창문을 만들었다.
春申君既相楚,是時齊有孟嘗君,趙有平原君,魏有信陵君,方爭下士,招致賓客,以相傾奪,輔國持權。春申君為楚相四年,秦破趙之長平軍四十餘萬。五年,圍邯鄲。邯鄲告急於楚,楚使春申君將兵往救之,秦兵亦去,春申君歸。春申君相楚八年,為楚北伐滅魯,[一]以荀卿為蘭陵令。當是時,楚復彊。
춘신군이 초나라 재상이 되고나서 이 때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었고, 조나라에는 평원군이 있었으며,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어 바야흐로 선비에게 낮추고 빈객을 불러 이르게 하는 것으로써 (선비와 빈객을)서로 다투어 빼앗아 나라를 돕고 권력을 지탱하게 했다. 춘신군이 초나라 재상이 된지 4년에 진나라가 조나라의 장평군 40만을 깨트렸다. 5년에 한단을 포위하니 한단이 초나라에 다급함을 알리자 초나라가 춘신군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하니 진나라 군대가 또한 떠나가고 춘신군이 돌아왔다. 춘신군이 초나라의 재상이 된지 8년에 초나라가 북벌하여 노나라를 멸망시키고, 순경을 난릉의 령으로 삼았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초나라가 당시 강해졌다.
[一] 索隱按:年表云八年取魯,封魯君於莒,十四年而滅也。
[一] 【索隱】 살펴보니 「年表」에 “8년에 노나라를 취하고 노나라 임금을 거 땅에 봉하고, 14년에 멸망시켰다.” 했다.
趙平原君使人於春申君,春申君舍之於上舍。趙使欲夸楚,為玳瑁簪,刀劍室以珠玉飾之,請命春申君客。春申君客三千餘人,其上客皆躡珠履以見趙使,趙使大慚。春申君相十四年,秦莊襄王立,以呂不韋為相,封為文信侯。取東周。春申君相二十二年,諸侯患秦攻伐無已時,乃相與合從,西伐秦,[一]而楚王為從長,春申君用事。至函谷關,秦出兵攻,諸侯兵皆敗走。楚考烈王以咎春申君,春申君以此益疏。
조나라 평원군이 춘신군에게 사신을 보내니 춘신군이 上舍(좋은 숙소)에 머물게 했다. 조나라 사신이 초나라에 자랑하고자 하여 대모(옥으로)로 만든 비녀를 꼿고, 칼집을 구슬과 옥으로 꾸미고 춘신군의 빈객과 만나기를 청하였다. 춘신군은 빈객이 3천여 명인데 그 중 상객이 모두 구슬로 장식한 신을 신고 조나라 사신을 만나니 조나라 사신이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지 14년에 진나라 장양왕이 즉위하여 여불위를 재상으로 삼고, 봉하여 문신후라 하였고, 동주를 취하였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지 22년에 제후들이 진나라의 공격과 정벌이 그치는 때가 없음을 근심하여 이에 서로 합종하여 서족으로 진나라를 정벌하였는데 초나라 왕이 합종의 우두머리가 되고, 춘신군이 일을 담당하였다. 함곡관에 이르러 진나라 군대가 나와 공격하니 제후의 군대가 모두 패하여 달아났다. 초나라 고열왕이 춘신군을 허물하였는데(춘신국의 책임으로 삼았는데) 춘신군이 이 때문에 더욱 소원해졌다.(고열왕과 더욱 멀어졌다.)
[一] 集解徐廣曰:「始皇六年。」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시황제 6년 이다.” 했다.
客有觀津人朱英,[一]謂春申君曰:「人皆以楚為彊而君用之弱,其於英不然。先君時善秦二十年而不攻楚,何也?秦踰黽隘之塞而攻楚,[二]不便;假道於兩周,背韓、魏而攻楚,不可。今則不然,魏旦暮亡,不能愛許、鄢陵,其許魏割以與秦。秦兵去陳百六十里,[三]臣之所觀者,見秦、楚之日鬥也。」楚於是去陳徙壽春;而秦徙衛野王,作置東郡。[四]春申君由此就封於吳,行相事。
빈객 중에 관진 사람 주영이 있었는데 (주영이)춘신군에게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초나라가 강하였는데 군(춘신군)이 등용되고 약해졌다.(임금이 춘신군을 등용하고 나서 약해졌다.) 하는데 저는(주영) 그렇지 않습니다.(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임금 때 진나라와 잘 지낸 20년 동안 초나라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진나라가 민애의 요새(평정관)를 넘어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편하지 않고, 두 주나라에서 길을 빌리고 한나라와 위나라를 배후에 두고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곧 그렇지 않아서 위나라는 아침, 저녁에 망하여(조만간 망할 것 같아) 허와 언릉을 아까워하지 않고 (위나라의) 허를 분할하여 진나라에 줄 것입니다. 진나라 군대가 진나라에 떨어진 것이 160리이니 신이 관찰한 바는 진나라와 초나라가 날로 다툼을 보게 될 것입니다.(매일 싸울 것입니다.)” 했다. 초나라가 이에 진나라를 더나 수춘으로 옮기고 진나라는 위나라 야왕으로 동군을 두었다. 춘신군이 이로 말미암아 봉토인 오나라에 나아가 재상의 일을 행하였다.
[一] 正義觀音館。今魏州觀城縣也。
[一] 【正義】 ‘觀’의 음은 ‘館’이다. 지금의 위주 관성현이다.
[二] 正義黽隘之塞在申州。黽音盲也。
[二] 【正義】 민애의 요새는 신주에 있다. ‘黽’의 음은 ‘盲’이다.
[三] 集解徐廣曰:「在許東南。」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허 동남쪽에 있다.” 했다.
[四] 正義濮、滑州兼河北置東郡。濮州本衛都,而徙野王也。
[四] 【正義】 ‘복주, ‘활주’, 하북을 아울러 동군을 두었다. 복주는 본리 위나라 도읍 이었는데 야왕으로 옮겼다.
楚考烈王無子,春申君患之,求婦人宜子者進之,甚眾,卒無子。趙人李園持其女弟,欲進之楚王,聞其不宜子,恐久毋寵。李園求事春申君為舍人,已而謁歸,故失期。還謁,春申君問之狀,對曰:「齊王使使求臣之女弟,與其使者飲,故失期。」春申君曰:「娉入乎?」對曰:「未也。」春申君曰:「可得見乎?」曰:「可。」於是李園乃進其女弟,即幸於春申君。知其有身,李園乃與其女弟謀。園女弟承閒以說春申君曰:「楚王之貴幸君,雖兄弟不如也。今君相楚二十餘年,而王無子,即百歲後將更立兄弟,則楚更立君後,亦各貴其故所親,君又安得長有寵乎?非徒然也,君貴用事久,多失禮於王兄弟,兄弟誠立,禍且及身,何以保相印江東之封乎?今妾自知有身矣,而人莫知。妾幸君未久,誠以君之重而進妾於楚王,王必幸妾;妾賴天有子男,則是君之子為王也,楚國盡可得,孰與身臨不測之罪乎?」春申君大然之,乃出李園女弟,謹舍而言之楚王。楚王召入幸之,遂生子男,立為太子,以李園女弟為王后。楚王貴李園,園用事。
초나라 고열왕은 아들이 없어 춘신군이 그것을 근심하여 아들을 낳기에 마땅한 부인을 구하여 올리기를 매우 많이 하였는데 끝내 자식이 없었다. 조나라 사암 이원이 그 여동생을 데리고 초나라 왕에게 올리고자 하였으나 그가(고열왕)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것을 듣고 오래도록 사랑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하였다. 이원이 춘신군을 섬기기를 구하여 사인이 되었는데 그 후 문안을 위해 돌아갔다가 고의로 기일을 어겼다. 문안을 마치고 돌아오니 춘신군이 사정을 물었다. 이원이 대답하기를 “제나라 왕이 사신을 시켜 신의 여동생을 구하였는데 그 사신과 술을 마시다 기일을 어겼습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정혼하였는가?”하니 이원이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볼 수 있겠는가?”하니 “볼 수 있습니다.” 했다. 이에 이원이 그 여동생을 나아가게 하여 곧 춘신군에게 총애를 받았다. 그 임신함을 알고 이원이 그 여동생과 모의하였다. 이원의 여동생이 한가한 틈을 이어 춘신군에게 말하기를 “초나라 왕이 그대를 (춘신군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나 비록 형제와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춘신군이 초나라 재상이 된지 20여년으로 왕이 아들이 없으니 곧 100년 후에 장차 바꾸어 형제를 세우면 곧 초나라가 다시 임금을 세운 후 또한 각기 그 옛날에 친한 이를 귀하게 여길 것이니 춘신군께서 또한 어찌 오래도록 사랑받음이 있겠습니까? 한갓 그렇게 되지 않을 지라도 춘신군께서 귀하게 되고 정사에 등용된 것이 오래되어 왕의 형제에게 예를 잃은 것이 오래되었으니 형제가 진실로 즉위한다면 재앙이 도한 몸에 이를 것인데 어찌 재상의 인(직인)과 강동의 봉지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첩이 스스로는 임심함을 알지만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첩이 춘신군의 사랑을 받은 것이 오래지 않으니 진실로 춘신군의 중요함으로써 첩을 초나라 왕에게 바친다면 왕께서는 반드시 사랑할 것이고, 첩은 하늘에 의지하여(하늘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는다면 곧 이는 춘신군의 아들이 왕이 되어 초나라를 모두 얻을 수 있는데 자신이 헤아릴 수 없는 죄(예측할 수 없는 재앙)에 임하는(맞닥뜨리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 했다. 춘신군이 크게 그렇다 여기고 이에 이원의 여동생을 내보내 집을 삼가고 초나라 왕에게 말하였다. 초나라 왕이 불러들여 사랑하였는데 마침내 아들을 낳으니 세워 태자를 삼고, 이원의 여동생을 왕후로 삼았다. 초나라 왕이 이원을 귀하게 여겨 이원을 정사에 등용하였다.
李園既入其女弟,立為王后,子為太子,恐春申君語泄而益驕,陰養死士,欲殺春申君以滅口,而國人頗有知之者。春申君相二十五年,楚考烈王病。朱英謂春申君曰:「世有毋望之福,[一]又有毋望之禍。[二]今君處毋望之世,[三]事毋望之主,[四]安可以無毋望之人乎?」[五]春申君曰:「何謂毋望之福?」曰:「君相楚二十餘年矣,雖名相國,實楚王也。今楚王病,旦暮且卒,而君相少主,因而代立當國,如伊尹、周公,王長而反政,不即遂南面稱孤而有楚國?此所謂毋望之福也。」春申君曰:「何謂毋望之禍?」曰:「李園不治國而君之仇也,[六]不為兵而養死士之日久矣,楚王卒,李園必先入據權而殺君以滅口。此所謂毋望之禍也。」春申君曰:「何謂毋望之人?」對曰:「君置臣郎中,楚王卒,李園必先入,臣為君殺李園。此所謂毋望之人也。」春申君曰:「足下置之,李園,弱人也,僕又善之,且又何至此!」朱英[七]知言不用,恐禍及身,乃亡去。
이원이 그 여동생을 들여보내고 나서 세워 왕후가 되고, 아들이 태자가 되자 춘신군이 말을 누설하거나 더욱 교만할 것을 두려워하여 몰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군사를 길러 춘신군을 죽여 입을 막고자 하니 자못 나라 사람들 가운데 그것을 아는 자가 있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지 25년에 초나라 고열왕이 병들었다. 주영이 춘신군에게 말하기를 “세상에는 뜻밖의 복이 있고, 또 뜻밖의 재앙이 있습니다. 지금 춘신군께서 예상할 수 없는 세상에 처하여 예상할 수 없는 임금을 섬기니 어찌 뜻밖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무엇을 뜻밖의 복이라 하는가?” 하니 주영이 말하기를 “춘신군께서 초나라 재상이 된지 20여년이 지났으니 비록 이름은 나라의 재상이라 하나 실제는 초나라의 왕입니다. 지금 초나라 왕이 병들어 아침저녁에(멀지 않아) 또한 죽고 춘신군이 어린 임금을 도울 것이며, 인하여 대신서서 나라를 감당할 터인데 이는 이윤, 주공과 같고, 왕이 장성하여 정사를 돌려주거나 아니면 곧 마침내 남쪽을 향하여 孤(고)를 칭하면서 초나라를 소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뜻밖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무엇을 뜻밖의 재앙이라 말하는가?” 하니 주영이 말하기를 “이원은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여 춘신군을 원수로 여기고 있으며 군대를 다스리지 못하여도 죽음을 각오한 군사를 기른 날이 오래되었으니 초나라 왕이 죽으면 이원은 반드시 먼저 들어가 권력에 기대의 춘신군을 죽이는 것으로써 입을 막으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뜻밖의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뜻밖에 구원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니 주영이 대답하기를 “춘신군께서 신을 낭중에 둔다면(임명한다면) 초나라 왕이 죽고, 이원이 반드시 먼저 들어올 때 신이 춘신군을 위하여 이원을 죽일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뜻밖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했다. 춘신군이 말하기를 “족하는 그것을 그냥 두시오. 이원은 약한 사람이고, 내가 또한 좋게 여기니 또한 어찌 이에 이르겠는가!” 했다. 주영이 말이 쓰이지 않을 것을 알고는 재앙이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도망하여 갔다.
[一] 正義無望謂不望而忽至也。
[一] 【正義】 ‘無望’은 바라지 않아도 갑자기 이르는 것을 말한다.
[二] 索隱周易有无妄卦,其義殊也。
[二] 【索隱】 『周易』에 있는 무망괘와는 그 뜻이 다르다.
[三] 正義謂生死無常。
[三] 【正義】 살고 죽는 것이 항상 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
[四] 正義謂喜怒不節也。
[四] 【正義】 喜怒가 절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五] 正義謂吉凶忽(為)[焉]。
[五] 【正義】 길흉이 갑자기 하는 것이다.
[六] 索隱言園是春申之仇也。戰國策作「君之舅也」,謂為王之舅,意異也。
[六] 【索隱】 이원이 춘신군의 원수임을 말한 것이다. 『戰國策』에 ‘君之舅也’라 한 것은 왕의 처남을 말 한 것이니 뜻이 다르다.
[七] 索隱朱亥。即上之朱英也。作「亥」者,史因趙有朱亥誤也。
[七] 【索隱】 주해이다. 곧 위의 주영이다. ‘亥’라고 쓴 것은 『사기』에 조나라에 주해가 있기 때문인데 잘못 쓴 것이다.
後十七日,楚考烈王卒,李園果先入,伏死士於棘門之內。[一]春申君入棘門,園死士俠刺春申君,斬其頭,投之棘門外。[二]於是遂使吏盡滅春申君之家。而李園女弟初幸春申君有身而入之王所生子者遂立,是為楚幽王。[三]
그 후 17일 만에 고열왕이 죽으니 이원이 과연 먼저 궁궐에 들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사를 극문 안에 매복시켰다. 춘신군이 극문에 들어노니 이원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사들이 춘신군을 옆에서 찌르고 그 머리를 베어 극문 밖으로 던졌다. 이에 마침내 관리를 시켜서 춘신군의 집을 모두 없앴다. 이원의 여동생이 처음에 춘신군의 사랑을 받아 임신하고 왕에게 들어가 낳은 아들이 마침내 즉위하니 이가 초나라 유왕이 된다.
[一] 正義壽州城門。
[二] 【正義】 수주의 성문이다.
[二] 正義楚考烈王二十五年,秦始皇九年。
[二] 【正義】 초나라 고열왕 25년, 진나라 시황제 9년이다.
[三] 索隱按:楚捍有母弟猶,猶有庶兄負芻及昌平君,是楚君完非無子,而上文云考烈王無子,誤也。
[三] 【索隱】 살펴보니 초나라는 ‘捍 ’은 같은 어머니가 낳은 아우가 ‘猶’가 있으며, ‘猶’는 서형인 부추와 창평군이 있었다. 이는 초나라 임금 完에게 아들이 없는 것이 아니니 윗글에 고열왕이 아들이 없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是歲也,秦始皇帝立九年矣。嫪毐亦為亂於秦,覺,夷其三族,而呂不韋廢。
이해는 진나라 시황제가 즉위한지 9년이다. 노애가 또한 진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발각되어 그 삼족이 죽음을 당하고, 여불위가 쫓겨났다.
太史公曰:吾適楚,觀春申君故城,宮室盛矣哉!初,春申君之說秦昭王,及出身遣楚太子歸,何其智之明也!後制於李園,旄矣。[一]語曰:「當斷不斷,反受其亂。」春申君失朱英之謂邪?
태사공이 말하기를 “내가 초나라에 가서 춘신군의 옛 성을 보았는데 궁실이 성대하였다! 처음에 춘신군이 진나라 소왕을 설득하여 몸을 빼어 초나라 태자를 보내 돌아가게 한 것이 어찌나 지혜가 밝은지! 후에 이원에게 제압된 것은 늙었기 때문이다. 옛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함에도 결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어지러움을 받는다.’ 하니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잃었기(듣지 않았기) 때문인가?” 했다.
[一] 集解徐廣曰:「旄音耄。」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旄(모)’의 음은 ‘耄(모)’이다.
【索隱述贊】黃歇辯智,權略秦、楚。太子獲歸,身作宰輔。珠炫趙客,邑開吳土。烈王寡胤,李園獻女。無妄成災,朱英徒語。
【索隱述贊】 황헐이 말 잘하고 지혜로워 진나라와 초나라를 형편에 따라 모략을 폈다. 태자는 돌아가고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조나라 객을 구슬처럼 빛나게 하여 오나라 땅에 읍을 열었다. 고열왕이 자식이 적어 이원이 여동생을 바쳤다. 뜻하지 않은 재앙을 받으니 주영의 말은 헛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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