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九
范睢蔡澤列傳第十九
范睢者,魏人也,字叔。游說諸侯,欲事魏王,家貧無以自資,乃先事魏中大夫[一]須賈。[二]
범수는 위나라 사람인데 자는 숙이다. 제후를 유세하고 위나라 왕을 섬기고자 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스스로를 의지할 곳이(스스로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에 먼저 위나라 중대부 수가를 섬겼다.
[一] 索隱按:漢書百官表中大夫,秦官。此魏有中大夫,蓋古官也。
[一] 【索隱】 살펴보니 『한서』 백관표 중대부에는 진나라 관직이라 했다. 여기에서는 위나라에 중대부가 있는데 대개 예 관직이다.
[二] 索隱須,姓;賈,名也。須氏蓋密須之後。
[二] 【索隱】 ‘수’는 성이고, ‘가’는 이름이다. 수씨는 아마도 밀수의 후예일 것이다.
須賈為魏昭王[一]使於齊,范睢從。留數月,未得報。齊襄王[二]聞睢辯口,乃使人賜睢金十斤及牛酒,睢辭謝不敢受。須賈知之,大怒,以為睢持魏國陰事告齊,故得此饋,令睢受其牛酒,還其金。既歸,心怒睢,以告魏相。魏相,魏之諸公子,曰魏齊。魏齊大怒,使舍人笞擊睢,折脅摺齒。[三]睢詳死,即卷以簀,[四]置廁中。賓客飲者醉,更溺睢,[五]故僇辱以懲後,令無妄言者。睢從簀中謂守者曰:「公能出我,我必厚謝公。」守者乃請出棄簀中死人。魏齊醉,曰:「可矣。」范睢得出。後魏齊悔,復召求之。魏人鄭安平聞之,乃遂操范睢亡,伏匿,更名姓曰張祿
수가가 위나라 소왕을 위해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데 범수가 따라갔다. 여러 달을 머물러도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제나라 양왕이 범수가 말을 잘 한다는 것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범수에게 금 10근과 소, 술을 내렸는데 범수가 사양하고 감히 받지 못하였다. 수가가 그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범수가 위나라의 비밀스러운 일을 가지고 제나라에 말하였기 때문에 이 음식을 얻었다 여기고 범수로 하여금 그 소와 술을 받게 하고 그 금은 돌려주게 하였다. 돌아와서 마음속으로 노여움을 품고 위나라 재상에게 알렸다. 위나라 재상은 위나라의 여러 공자 중 위제라 하였다. 위제가 크게 노하여 사인을 시켜 범수를 회초리로 치게 하였는데 옆구리(늑골)가 부러지고 이가 부러졌다. 범수가 거짓으로 죽은 척하니 곧 대자리로 말아서 뒷간 안에 두었다. 빈객 중에 술을 마시다 취한 자는 범수에게 오줌을 누었는데 욕보이는 것으로써 징계하여 후에 망녕된 말을 하는 자가 없게 하고자 해서였다. 범수가 대자리 안에 누워서 지키는 자에게 말하기를 “공이 나를 나가게 할 수 있으면 내가 반드시 공에게 두터이 사례할 것입니다.” 했다. 지키는 자가 이에 대자리 안의 죽은 사람을 내다 버릴 것을 청하였다. 위제가 취하여 말하기를 “좋다.” 했다. 범수가 나올 수 있었다.후에 위제가 뉘우치고 다시 불러 찾았다. 위나라 사람 정안평이 듣고 이에 마침내 범수를 잡아(데리고) 도망쳐 숨어살면서 이름과 성을 바꾸어 장록이라 했다.
[一] 索隱按:系本昭王名遫,襄王之子也。
[一] 【索隱】 살펴보니 「계본」에 “소왕의 이름은 ‘칙’인데 양왕의 아들다.” 했다.
[二] 索隱名法章。
[二] 【索隱】 이름은 법장이다.
[三] 索隱摺音力答反。謂打折其脅而又拉折其齒也。
[三] 【索隱】 摺(접)의 음은 ‘力’과 ‘答’의 反이다. 쳐서 그 늑골을 부러뜨리고 또 그 이를 당겨 부러뜨린 것이다.
[四] 索隱簀謂葦荻之薄也,用之以裹屍也。
[四] 【索隱】 ‘책’은 갈대와 갈잎의 얇은 것인데 시체를 사는데 그것을 쓴다.
[五] 索隱更音羹。溺即溲也。溺音年弔反。溲音所留反。正義溺,古「尿」字。
[五] 【索隱】 ‘更’의 음은 ‘羹(갱)’이다. ‘溺(닉)’은 곧 ‘溲’이다. ‘溺’의 음은 ‘年’과 ‘弔’의 反이다. ‘溲’의 음은 ‘所’와 ‘留’의 反이다. 【正義】 ‘溺’은 옛날의 ‘尿’자이다.
當此時,秦昭王使謁者王稽於魏。鄭安平詐為卒,侍王稽。[一]王稽問:「魏有賢人可與俱西游者乎?」鄭安平曰:「臣里中有張祿先生,欲見君,言天下事。其人有仇,不敢晝見。」王稽曰:「夜與俱來。」鄭安平夜與張祿見王稽。語未究,王稽知范睢賢,謂曰:「先生待我於三亭之南。」[二]與私約而去。
이러한 때를 당하여 진나라 소왕이 위나라에 알자 왕계를 사신으로 보냈다. 정안평이 속이고 병졸이 되어 왕계를 모셨다. 왕계가 묻기를 “위나라에는 현인(현명한 사람)으로 함께 서쪽에 유세할 수 있는 이가 있는가?” 했다. 정안평이 말하기를 “신의 마을 안에 장록선생이 있는데 그대를 뵙고 천하의 일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원수가 있어서 감히 낮에 보지는 못합니다.” 했다. 왕계가 말하기를 “밤에 함께 오라.”하니 정안평이 밤에 장록과 함께 왕계를 만났다. 말을 연구하지 않아도(끝나기도 전에) 왕계는 범수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말하기를 “선생은 삼정의 남쪽에서 기다리시오.” 하고는 사적(은밀하게)으로 약속하고 갔다.
[一] 正義卒,祖律反。
[一] 【正義】 ‘祖’와 ‘律’의 反이다.
[二] 索隱按:三亭,亭名,在魏境之邊,道亭也,今無其處。一云魏之郊境,總有三亭,皆祖餞之處。與期三亭之南,蓋送餞已畢,無人處。正義括地志云:「三亭岡在汴州尉氏縣西南三十七里。」按:三亭岡在山部中名也,蓋「岡」字誤為「南」。
[二] 【索隱】 살펴보니 ‘삼정’은 정자의 이름이니 위나라의 변경에 있는 길의 정자인데 지금은 그 자리에 없다. 한편 위나라의 교외 경계에는 모두 세 개의 정자가 있는데 모두 멀리 떠나는 사람을 작별하는 곳이다. 삼정의 남쪽에서 약속한 것은 대개 전별을 이미 마쳐서 사람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正義】 『括地志』에 “삼정강은 변주 위씨현 서남쪽에 있다.” 했다. 살펴보니 삼정강은 산 안에 있는 이름이다. 아마도 ‘강’자는 ‘남’자를 잘못 쓴 듯하다.
王稽辭魏去,過載范睢入秦。至湖,[一]望見車騎從西來。范睢曰:「彼來者為誰?」王稽曰:「秦相穰侯東行縣邑。」范睢曰:「吾聞穰侯專秦權,惡內諸侯客,[二]此恐辱我,我寧且匿車中。」有頃,穰侯果至,勞王稽,因立車而語曰:「關東有何變?」曰:「無有。」又謂王稽曰:「謁君得無與諸侯客子俱來乎?無益,徒亂人國耳。」王稽曰:「不敢。」即別去。范睢曰:「吾聞穰侯智士也,其見事遲,鄉者疑車中有人,忘索之。」[三]於是范睢下車走,曰:「此必悔之。」行十餘里,果使騎還索車中,無客,乃已。王稽遂與范睢入咸陽。
왕계가 위나라를 하직하고 떠나서 지나면서 범수를 태우고 진나라에 들어갔다. 호에 이르러 서쪽에서 오는 수레와 말 탄 사람을 바라보았다. 범수가 말하기를 “저기서 오는 자는 누구인가?” 하니 왕계가 말하기를 “진나라의 재상 양후가 동쪽으로 현읍에 가는 것이다.” 했다. 범수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양후는 진나라의 권력을 오로지하면서 제후의 객을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하는데 이는 나를 욕보일까 두려우니 나는 차라리 또한 수레 안에 숨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했다. 잠시 후 양후가 과연 이르러 왕계를 위로하고 인하여 수레를 세우고 말하기를 “관동에 무슨 변화가 있습니까?” 했다. 왕계가 말하기를 “없습니다.” 하니 또 왕계에게 말하기를 “알군은 제후의 객과 함께 오지 않습니까? 이익은 없고 한갓 사람들과 나라를 어지럽힐 뿐입니다.” 했다. 왕계가 말하기를 “감히 하지 않습니다.” 하고는 작별하고 떠났다. 범수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양후는 지혜로운 선비라 하는데 그 일을 보는 것이 느리고 방금 수레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의심하면서도 찿는 것을 잊었습니다.” 했다. 이에 범수가 수레를 내려 달려가면서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뉘우침이 있을 것입니다.” 했다. 10여리를 갔는데 과연 말탄 사람이 돌아와 수레 안을 수색하게 하였는데 객이 없자 이에 그쳤다. 왕계가 마침내 범수와 함께 함양에 들어갔다.
[一] 索隱按:地理志京兆有湖縣,本名胡,武帝更名湖,即今湖城縣也。正義今虢州湖城縣也。
[一] 【索隱】 살펴보니 『地理志』에 “경조에 호현이 있는데 본래 이름은 ‘胡’인데 무제 때 이름을 바꾸어 ‘湖’라 하니 곧 지금의 호성현이다.” 한다. 【正義】 지금의 괵주 호성현이다.
[二] 索隱內音納,亦如字。內者亦猶入也。
[二] 【索隱】 ‘內’의 음은 ‘納’인데 또한 본래 글자와 같다. ‘內’는 또한 ‘入’과 같다.
[三] 索隱索猶搜也。音柵,又先格反。
[三] 【索隱】 ‘索’은 ‘搜’와 같다. 음은 ‘柵’이니 또한 ‘先’과 ‘格’의 反이다.
已報使,因言曰:「魏有張祿先生,天下辯士也。曰『秦王之國危於累卵,[一]得臣則安。然不可以書傳也』。臣故載來。」秦王弗信,使舍食草具。[二]待命歲餘。
(왕계가)사신 간 일을 보고하고 말하기를 “위나라에 장록선생이 있는데 천하의 말 잘하는 선비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진나라 왕의 나라가 위태롭기가 알을 쌓아 놓은 것 같은데 신은 곧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로써 전할 수는 없습니다.’ 합니다. 신이 그래서 수레에 태워 왔습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믿지 않고 숙소에 머물게 하고 맛없는 거친 음식을 먹게 했다. 명을 기다린지 1년이 지났다.
[一] 正義按:說苑云「晉靈公造九層之臺,費用千金,謂左右曰:『敢有諫者斬。』荀息聞之,上書求見。靈公張弩持矢見之。曰:『臣不敢諫也。臣能累十二博棋,加九雞子其上。』公曰:『子為寡人作之。』荀息正顏色,定志意,以棋子置下,加九雞子其上。左右懼慴息,靈公氣息不續。公曰:『危哉,危哉!』荀息曰:『此殆不危也,復有危於此者。』公曰:『願見之。』荀息曰:『九層之臺三年不成,男不耕,女不織,國用空虛,鄰國謀議將興,社稷亡滅,君欲何望?』靈公曰:『寡人之過也乃至於此!』即壞九層臺也」。
[一] 【正義】 살펴보니 『說苑』에 “진나라 영공이 9층의 대를 만들었는데 비용이 천금이어서 좌우에 말하기를 ‘감히 간하는 자는 목을 벤다.’ 하였다. 순식이 그것을 듣고 글을 올려 뵙기를 구하였다. 영공이 쇠뇌를 당기고 화살을 가지고 만났다. (순식이) 말하기를 ‘신이 감히 간하려 하지 않습니다. 신은 12개의 장기와 바둑알을 쌓고, 계란을 그 위에 더할 수 있습니다.’했다. 영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과인을 위하여 그것을 지어보라.’ 하니 순식이 얼굴색을 바로 하고 뜻을 안정시키고는 바둑알을 그 아래에 두고 9개의 계란을 그 위에 더하였다. 좌우가 두려워하여 숨을 죽이고, 영공도 숨기운이 이어지지 않았다. 영공이 말하기를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했다. 순식이 말하기를 ‘이 위태로움은 위태로운 것이 아닙니다. 다시 이 보다 위태로운 것이 있습니다.’ 하니 영공이 말하기를 ‘보기를 원한다.’ 했다. 순식이 말하기를 ‘9층의 대가 3년이 지나도 완성되지 못하여 남자는 농사짓지 못하고 여자는 길쌈하지 못하여 나라의 쓰임이 비었으며, 이웃 나라는 장차 흥기할 것을 모의하여 사직이 망하여 없어지려는데 임금께서는 무엇을 바라보고자 합니까?’ 했다. 영공이 말하기를 ‘과인의 허물이 여기에 이르렀구나!’하고는 곧 9층의 대를 허물었다.” 했다.
[二] 索隱謂亦舍之,而食以下客之具。然草具謂食草萊之饌具。
[二] 【索隱】 머물게 하고 하객의 갖춤으로써 먹게 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초구는 명아주 나물의 반찬을 먹게 하는 것이다.
當是時,昭王已立三十六年。南拔楚之鄢郢,楚懷王幽死於秦。秦東破齊。湣王嘗稱帝,後去之。數困三晉。厭天下辯士,無所信。
이러한 때를 당하여 소왕이 즉위한지 이미 36년이었다. 남쪽으로 초나라의 언과 영 땅을 점령하였고, 초나라 회왕이 진나라에서 유폐되었다 죽었다. 진나라가 동쪽으로 제나라를 깨트렸다. 민왕이 일찍이 황제를 칭하다 후에 그것을 버렸다. 여러 번 삼진을 곤란하게 하였다. 천하의 말 잘하는 선비를 싫어하여 믿지 않았다.
穰侯,華陽君,[一]昭王母宣太后之弟也;而涇陽君、高陵君皆昭王同母弟也。穰侯相,三人者更將,有封邑,以太后故,私家富重於王室。及穰侯為秦將,且欲越韓、魏而伐齊綱壽,欲以廣其陶封。范睢乃上書曰:
양후와 화양군은 소왕의 어머니인 선태후의 동생이고, 경양군과 고릉군은 모두 소왕과 어머니를 같이하는 동생이다. 양후가 재상이 되니 세 사람이 다시 장수가 되고 봉읍이 있었는데 태후 때문에 개인 집의 부유함이 왕실보다 더 하였다. 양후가 진나라 장수가 됨에 이르러 또한 한나라와 위나라를 넘어 제나라의 강 땅과 수 땅을 쳐서 도 땅의 봉읍을 넓히고자 하였다. 범수가 이에 글을 올려 말하기를
[一] 集解徐廣曰:「華,一作『葉』。」 索隱穰侯謂魏冉,宣太后之異父弟。穰,縣,在南陽。華陽君,羋戎,宣太后之同父弟,亦號為新城君是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華’는 ‘葉’이라고도 쓴다.” 했다. 【索隱】 양후는 위염을 말하는데 선태후의 이부제(아버지가 다른 동생)이다. ‘양’은 현으로 남양에 있다. 화양군과 미융은 선태후의 아버지를 같이하는 동생이니 또한 신성군이라 불리운 이가 이 사람이다.
臣聞明主立政,[一]有功者不得不賞,有能者不得不官,勞大者其祿厚,功多者其爵尊,能治眾者其官大。故無能者不敢當職焉,有能者亦不得蔽隱。使以臣之言為可,願行而益利其道;以臣之言為不可,久留臣無為也。語曰:「庸主賞所愛而罰所惡;明主則不然,賞必加於有功,而刑必斷於有罪。」今臣之胸不足以當椹質[二],而要不足以待斧鉞,豈敢以疑事嘗試於王哉!雖以臣為賤人而輕辱,獨不重任臣者之無反復於王邪?
“신(범수)이 들으니 현명한 군주는 정사를 세우면 공이 있는 자가 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고, 능력이 있는 자가 관직을 얻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수고로움이 큰 자는 그 녹봉을 후하게 하며 공이 많은 자는 그 작위가 높으며, 무리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는 그 관직이 크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능력이 없는 자가 감히 직책을 담당하지 않고, 능력 있는 자가 또한 가려지고 숨겨질 수 없습니다. 가령 신의 말이 옳다고 여기시면 행하여 그 도를 더욱 이롭게 하시고, 신의 말이 옳지 않다고 여기시면 오래 신을 머물게 하셔도 함이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용렬한 군주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며, 현명한 군주는 곧 그렇지 않아서 상은 반드시 공이 있는 자에게 더해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가 있는 이에게 결단한다.’고 합니다. 지금 신의 가슴은 여물받침에 잘리기에 부족하고(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허리는 도끼질을 기다리기에 부족하니(도끼질을 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 어찌 감히 의심스러운 일을 가지고 왕을 시험할 수 있으리오! 비록 신을 천인이라 하여 가벼이 여기고 욕보일 수 있지만 어찌 신에게 맡긴 자(신을 추천 한 자)가 왕을 배반함이 없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一] 索隱按:戰國策「立」作「蒞」也。
[一]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 “‘立’은 ‘蒞’”라고 썼다.
[二] 索隱椹音陟林反。按:椹者,莝椹也。質者,剉刃也。腰斬者當椹質也。
[二] 【索隱】 ‘椹’은 음이 ‘陟(척)’과 ‘林’의 反이다. 살펴보니 ‘椹’은 여물을 써는 바탕(모탕)이다. ‘質’은 자르는 칼날이다. 허리를 베는 것은 마땅히 여물을 써는 바탕에서 한다.
且臣聞周有砥砨,宋有結綠,梁有縣藜,[一]楚有和朴,[二]此四寶者,土之所生,良工之所失也,而為天下名器。然則聖王之所棄者,獨不足以厚國家乎?
또 신이 들으니 “주나라에는 ‘지액’이 있고, 송나라에는 ‘결록’이 있으며, 양나라에는 ‘현려’가 있으며, 초나라에는 ‘화박’이 있는데 이 네 가지 보배는 땅에서 나는 것이나 좋은 장인의 잃은바 되었으되(가치를 몰랐지만) 천하의 이름 있는 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즉 성스러운 왕의 버림을 받은 자가 어찌 나라를 두터이(부강하게) 하기에 부족하다 하겠습니까?
[一] 集解薛綜曰:「縣藜一曰美玉。」
[一] 【集解】 설종이 말하기를 “‘縣藜’는 ‘美玉’이라고도 한다.” 했다.
[二] 正義縣音玄。劉伯莊云珍玉朴也。
[二] 【正義】 ‘縣’의 음은 ‘玄’이다. 유백장이 말하기를 “진귀한 옥덩어리 이다.” 했다.
臣聞善厚家者取之於國,善厚國者取之於諸侯。天下有明主則諸侯不得擅厚者,何也?為其割榮也。[一]良醫知病人之死生,而聖主明於成敗之事,利則行之,害則舍之,疑則少嘗之,雖舜禹復生,弗能改已。語之至者,臣不敢載之於書,其淺者又不足聽也。意者臣愚而不概[二]於王心邪?亡其言[三]臣者賤而不可用乎?自非然者,臣願得少賜游觀之閒,望見顏色。一語無效,請伏斧質。
신이 들으니 “가문(대부의 집)을 잘 두텁게(번창하게) 할 자는 나라에서 그것을 취하고, 나라를 잘 두텁게(부강하게) 할 자는 제후에게서 취한다. 합니다. 천하에 현명한 군주가 있으면 곧 제후가 두터이(부강하게) 할 자를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왜입니까? 영예로움을 떼어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의원은 병든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을 알고, 성스러운 군주는 일의 성패에 밝아 이로우면 그것을 행하고, 해로우면 곧 그것을 버리며, 의심스러우면 조금 그것을 시험하여 비록 요 임금과 우 임금이 다시 살아나도 고칠 수 없습니다. 말의 지극한 것은 신이 감히 글에 싣지 못하고 그 얕은 것은 또한 듣기에 부족합니다. 등용하지 않고 내버려둔 것은) 신이 어리석어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생각해서 입니까? 신을 말해 준 자가 천하여(지위가 낮아)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겨 등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까? 스스로 그러한 것이 아니면 신은 유람 다니는 한가한 틈을 조금만 내리셔서 얼굴을 뵐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마디 말이라도 효험(본받음)이 없다면 도끼 받침에 엎드릴 것을 청합니다.(형벌을 청합니다.)” 했다.
[一] 索隱割榮即上之擅厚,謂擅權也。
[一] 【索隱】 ‘割榮’은 곧 위의 ‘擅厚’이니 ‘擅權(권력을 마음대로 부림)’을 말한다.
[二] 集解徐廣曰:「一作『溉』,音同。」 索隱按:戰國策「概」作「關」,謂關涉於於王心也。徐注「音同」,非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 ‘漑’라고도 쓰는데 음은 같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 ‘慨’는 ‘關’이라 썼는데 ‘關涉於於王心也 왕의 마음에 참경하고 간섭한다.’는 말이다. 서주에 음이 같다고 하나 잘못이다.
[三] 索隱亡猶輕蔑也。
[三] 【索隱】 ‘亡’은 ‘輕蔑(깔보아 업신여김)’과 같다.
於是秦昭王大說,乃謝王稽,使以傳車[一]召范睢。於是范睢乃得見於離宮,[二]詳為不知永巷而入其中。[三]王來而宦者怒,逐之,曰:「王至!」范睢繆為曰:「秦安得王?秦獨有太后、穰侯耳。」欲以感怒昭王。昭王至,聞其與宦者爭言,遂延迎,謝曰:「寡人宜以身受命久矣,會義渠之事急,寡人旦暮自請太后;今義渠之事已,寡人乃得受命。竊閔然不敏,[四]敬執賓主之禮。」范睢辭讓。是日觀范睢之見者,群臣莫不洒然[五]變色易容者。
이에 진나라 소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곧 왕계에게 사례하고 수레를 가지고 범수를 부르게 하였다. 이에 범수가 곧 이궁에서 (소왕을) 뵐 수 있었는데 거짓으로 영항을 알지 못한다. 하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왕이 오니 내시들이 노하여 그(범수)를 내쫒으며 말하기를 “왕이 이르렀다!” 하였다. 범수가 짐짓 말하기를 “진나라에 어찌 왕이 있을 수 있는가 진나라에는 오직 태후와 양후만 있을 분이다.” 하여 진나라 소왕을 느끼고 노하게 하고자 했다. 진나라 소왕이 이르자 그 내시들과 다투는 소리를 듣고 마침내 글어 맞이하여 사과하면서 말하기를 “과인이 마땅히 몸으로써 명을 받는 것을 오래 전에 해야 했습니다만 의거의 일의 다급함을 만나 과인이 아침저녁으로 태후를(태후의 명을) 청하여야 했는데 지금 의거의 일을 마쳤으니 과인이 곧 명을 받을 있습니다.”
[一] 集解徐廣曰:「一云『使持車』。」 索隱「使持車」,戰國策之文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 ‘使持車’라 한다.”고 했다. 【索隱】 ‘使持車’는 『戰國策』의 글이다.
[二] 正義長安故城本秦離宮,在雍州長安北十三里也。
[二] 【正義】 장안의 옛 성이 본래의 진나라 이궁인데 옹주 장안 북쪽 13리에 있다.
[三] 正義永巷,宮中獄也。
[三] 【正義】 ‘永巷’은 궁중의 옥이다.
[四] 索隱鄒誕本作「然」,音昏。又云一作「閔」,音敏。閔猶昏闇也。
[四] 【索隱】 추연본에는 ‘惛然’이라 쓰였는데 음은 ‘昏’이다. 또 한편으로 ‘閔’이라고도 쓰는데 음은 ‘敏’이다. ‘閔’은 ‘昏闇(아둔하고 사리에 어두움)’과 같다.
[五] 集解徐廣曰:「洒,先典反。」 索隱鄭玄曰「灑然,肅敬之貌」也。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洒(물 뿌릴 쇄)’는 ‘先’과 ‘典’의 反이다.” 했다. 【索隱】 정현이 말하기를 “‘灑(부릴 쇄)然’은 엄숙하고 공경하는 모양이다.” 했다.
秦王屏左右,宮中虛無人。秦王跽[一]而請曰:「先生何以幸教寡人?」范睢曰:「唯唯。」有閒,秦王復跽而請曰:「先生何以幸教寡人?」范睢曰:「唯唯。」若是者三。秦王跽曰:「先生卒不幸教寡人邪?」范睢曰:「非敢然也。臣聞昔者呂尚之遇文王也,身為漁父而釣於渭濱耳。若是者,交疏也。已說而立為太師,載與俱歸者,其言深也。故文王遂收功於呂尚而卒王天下。鄉使文王疏呂尚而不與深言,是周無天子之德,而文武無與成其王業也。今臣羈旅之臣也,交疏於王,而所願陳者皆匡君之事,處人骨肉之閒,願效愚忠而未知王之心也。此所以王三問而不敢對者也。臣非有畏而不敢言也。臣知今日言之於前而明日伏誅於後,然臣不敢避也。大王信行臣之言,死不足以為臣患,亡不足以為臣憂,漆身為厲[二]被髮為狂不足以為臣恥。且以五帝之聖焉而死,三王之仁焉而死,五伯之賢焉而死,烏獲、任鄙之力焉而死,成荊、[三]孟賁、[四]王慶忌、[五]夏育之勇焉而死。[六]死者,人之所必不免也。處必然之勢,可以少有補於秦,此臣之所大願也,臣又何患哉!伍子胥橐載而出昭關,夜行晝伏,至於陵水,[七]無以餬其口,膝行蒲伏,稽首肉袒,鼓腹吹篪,[八]乞食於吳市,卒興吳國,闔閭為伯。使臣得盡謀如伍子胥,加之以幽囚,終身不復見,是臣之說行也,臣又何憂?箕子、接輿漆身為厲,被髮為狂,無益於主。假使臣得同行於箕子,可以有補於所賢之主,是臣之大榮也,臣有何恥?臣之所恐者,獨恐臣死之後,天下見臣之盡忠而身死,因以是杜口裹足,莫肯鄉秦耳。足下上畏太后之嚴,下惑於姦臣之態,[九]居深宮之中,不離阿保之手,終身迷惑,無與昭姦。[一0]大者宗廟滅覆,小者身以孤危,此臣之所恐耳。若夫窮辱之事,死亡之患,臣不敢畏也。臣死而秦治,是臣死賢於生。」秦王跽曰:「先生是何言也!夫秦國辟遠,寡人愚不肖,先生乃幸辱至於此,是天以寡人慁先生[一一]而存先王之宗廟也。寡人得受命於先生,是天所以幸先王,而不棄其孤也。先生柰何而言若是!事無小大,上及太后,下至大臣,願先生悉以教寡人,無疑寡人也。」范睢拜,秦王亦拜。
진나라 왕이 좌우를 물리치니 궁중이 비고 사람이 없었다. 진나라 왕이 무릎을 꿇고 청하여 말하기를 “선생은 무엇 때문에 과인을 가르치기를 바랍니까?” 했다. 범수가 말하기를 “예, 예” 하고는 잠시 사이를 두니 진나라 왕이 다시 무릎을 꿇고 천하여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무엇 때문에 과인을 가르치기를 바랍니까?” 하니 범수가 말하기를 “예, 예” 했다. 이 같이 하기를 3번을 하였다. 진나라 왕이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끝내 과인을 가르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하니 범수가 말하기를 “감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이 옛날에 여상(강태공)이 문왕을 만난 것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어부가 되어 위수 가에서 낚시하였을 뿐입니다. 이 같을 때 서로 소원하였습니다. 이미 말을 듣고는 세워서 태사로 삼고, 수레에 태워 함께 돌아 온 것은 (여상의)말이 깊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왕은 마침내 여상에게서 공을 거두고 마침내 천하에 왕 노릇 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문왕으로 하여금 여상을 멀리하게 하였다면 함께 깊이 잇는 말을 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이는 주나라가 천자의 덕이 없어 문왕과 무왕이 함께 그 왕업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신이 객지에 머물고 있는 신하로 왕과 서로 소원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임금을 바로잡는 일이고, 다른 사람의 골육의 사이에 처하는 것인데 제가(어리석은) 忠을 본받기를 원하지만 왕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왕께서 3번을 물어도 감히 대답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이 두려워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히 말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이 오늘 앞에서 말하고 내일 뒤에서 죽음을 당하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신은 감히 피하지 않겠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말을 행한다면 죽음도 신의 근심이 될 수 없고, 도망하여도(떠돌더라도) 신의 근심이 될 수는 없을 것이며 몸에 옷칠을 하고, 문둥병이 들고 머리를 풀어헤치며, 미친 사람이 될지라도 신의 부끄러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五帝같은 성인도 죽었고, 三王과 같은 어진자도 죽었으며, 五伯 같은 현명한자도 죽었고, 오획, 임비 같은 역사도 죽었으며 성형, 맹분, 왕경기, 하육 같은 용맹한 이도 죽었습니다. 죽음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반드시 그러한 형세에 처하여 진나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있을 수 있다면 이는 신이 크게 원하는 것입니다. 신이 또한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오자서는 전대에 들어가 숨어 소관을 나와 밤에는 가고 낮에는 숨으면서 능수에 이르렀으나 험한 음식도 먹을 수 없어 무릎으로 기어가고, 머리를 조아리고 웃통을 벋은 맨몸으로 배를 두드리고 저를 불면서 오나라 시장에서 먹을 것을 구걸하다 마침내 오나라를 흥기시켜 합려를 伯(패자로)으로 만들었습니다. 신으로 하여금 오자서 같은 계책을 다할 수 있게 하여준다면 옥에 갇히고 죽을 때까지 다시 뵙지 못할 지라도 이는 신이 기쁘게 행할 수 있는 것이니 신이 또한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기자와 접여는 몸에 옻칠하고 문둥병이 걸린 것처럼 하고, 머리를 풀어헤쳐 광인처럼 하였지만 임금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가령 신이 기자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현명한 임금을 도울 수 있다면 이는 신의 큰 영예이니 신에게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습니까? 단지 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신이 죽은 후에 천하가 신이 충성을 다하다 몸이 죽는 것을 보고서 이 때문에 입을 닫고(말하는 것을 멈추고) 발을 싸서(발길을 멈추어) 즐겁게 진나라로 향하지(가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족하(왕)께서는 위로는 태후의 엄격함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간신의 태도에 미혹하며 깊은 궁 안에 살면서 유모의 손을 떠나지(벗어나지) 못하여 죽을 때까지 흐려지고 홀려서 밝은 자와 간사한 자를 구분하지 못할 것입니다. 크게는 종묘가 없어지고 엎어지고 작게는 몸이 외롭고 위태로워질 것이니 신은 이것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저 가난하고 욕되는 일과 죽고 떠도는 근심과 같은 것은 신이 감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이 죽더라도 진나라가 다스려진다면 이는 신이 죽음이 사는 것보다 현명합니다.(낫습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선생은 어찌 그런 말을 하시오! 대저 진나라는 구석지고 멀리 있고, 과인은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데 선생께서 곧 요행히 욕됨에도 여기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늘이 과인에게 선생을 곤란하게 하는 것으로써 선왕의 종묘를 보존하게 한 것입니다. 과인이 선생에게서 명을 받을 수(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는 하늘이 선왕을 사랑하여 그 외로운 이(나를)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은 어찌하여 말을 이같이 합니까! 일은 적고 큼이 없이 위로는 태후에게 미치고 아래로는 대신에게 이르니 선생께서는 모든 것을 과인에게 가르치시고 과인을 의심하지 말기를 원합니다.(바랍니다.)” 했다. 범수가 절하니 진나라 왕이 또한 절하였다.
[一] 索隱音其紀反。跽者,長跪,兩膝枝地。
[一] 【索隱】 음은 ‘其’와 ‘紀’의 反이다. ‘跽’는 몸을 똑바로 세운 채 오른 쪽 무릎을 꿇거나 두 무릎을 땅에 대고 허리를 세운 채 꿇어앉는 것이다.
[二] 索隱音賴,癩病也。言漆塗身,生瘡如病癩。
[二] 【索隱】 음은 ‘賴(뢰)’인데 ‘癩病(문둥병)’이다. 몸에 옻칠하여 생긴 부스럼이 문둥병에 걸린 것과 같다.
[三] 集解徐廣曰:「一作『羌』。」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 ‘羌’이라고도 쓴다.” 했다.
[四] 集解許慎曰:「成荊,古勇士。孟賁,衛人。」
[四] 【集解】 허신이 말하기를 “성형은 옛날의 용사이고, 맹분은 위나라 사람이다.” 했다.
[五] 集解吳越春秋曰:「吳王僚子慶忌。」
[五] 【集解】 『오월춘추』에 “오나라 왕 僚의 아들 慶忌이다.” 했다.
[六] 集解漢書音義曰:「或云夏育,衛人,力舉千鈞。」
[六] 【集解】 『한서』 「음의」에 “혹은 하육은 위나라 사람인데 힘이 천균을 들 수 있다.” 했다.
[七] 索隱劉氏云:「陵水即栗水也。」按:陵栗聲相近,故惑也。
[칠] 【索隱】 유씨가 말하기를 “능수는 곧 율수이다.” 했다. 살펴보니 ‘능’과 ‘율’은 음이 서로 가깝기(비슷하기) 때문에 헛갈린다.
[八] 集解徐廣曰:「一作『簫』。」
[八]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簫(퉁소 소)라고도 쓴다.” 했다.
[九] 索隱按:態謂姦臣諂詐之志也。
[九] 【集解】 살펴보니 ‘態’는 간신이 모함하고 속이려는 뜻을 말한다.
[一0] 正義昭,明也。無與明其姦惡。
[一0] 【正義】 昭는 밝은이니 그 간악함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다.
[一一] 集解徐廣曰:「亂先生也。音溷。」 索隱慁及注「溷」字並胡困反。慁猶汨亂之意。
[一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선생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음은 ‘溷’이다.” 했다. 【索隱】 ‘혼’과 주는 “‘溷’자는 같이 ‘胡’와 ‘困’의 反이다. ‘溷’은 汨亂(빠지고 혼란함)의 뜻과 같다.
范睢曰:「大王之國,四塞以為固,北有甘泉、谷口,[一]南帶涇、渭,右隴、蜀,左關、阪,奮擊百萬,戰車千乘,利則出攻,不利則入守,此王者之地也。民怯於私鬥而勇於公戰,此王者之民也。王并此二者而有之。夫以秦卒之勇,車騎之眾,以治諸侯,譬若施韓盧而搏蹇兔也,[二]霸王之業可致也,而群臣莫當其位。至今閉關十五年,不敢窺兵於山東者,是穰侯為秦謀不忠,而大王之計有所失也。」秦王跽曰:「寡人願聞失計。」
범수가 말하기를 “대왕의 나라는 사방이 요새로 경고하고, 북쪽으로 감천과 곡구가 있으며, 남쪽으로 경수와 위수가 둘러 쳐지고 오른 쪽으로 농 땅과 촉 땅, 왼쪽으로 함곡관과 상판이 있으며 용감한 군대가 100만이고, 전투용 수레가 1000대인데 이로우면 곧 나가 공격하고 이롭지 않으면 곧 들어가 지키면 되니 이는 왕업을 이룰 땅입니다. 백성들은 사사로운 싸움에는 겁을 내지만 공공의 싸움에는 용맹하니 이는 왕업을 이루기 좋은 백성입니다. 왕께서는 이 두가지를 아울러 소유하셨습니다. 대저 진나라 병졸이 용맹함과 車騎의 많음으로써 제후를 다스리니 비유하면 마치 韓盧(사냥개)를 풀어서 절름발이 토끼를 치는 것과 같으니 패왕의 업을 이룰 수 있지만 여러 신하들은 그 지위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관을 폐쇄한 것이 15년 동안 감히 산동을 군대가 엿보지 못하니 이는 양후가 진나라를 위하여 도모함이 충성스럽지 한고 대왕의 계책이 잘못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과인이 잘못된 계책을 듣기를 원합니다.” 했다.
[一] 正義括地志云:「甘泉山一名鼓原,俗名磨石嶺,在雍州雲陽縣西北九十里。關中記云『甘泉宮在甘泉山上,年代永久,無復甘泉之名,失其實也。宮北云有連山,土人為磨石嶺』。郊祀志公孫卿言黃帝得仙寒門,寒門者,谷口也。按:九嵕山西謂之谷口,即古寒門也。在雍州醴泉縣東北四十里。」
[一] 【正義】 『括地志』에 “감천산은 일명 고원이라 하는데 민간에서는 마석령이라 한다. 옹주 운양현 서부쪽 90리에 있다.” 했다. 『관중기』에 “감천궁은 감천산 위에 있는데 연대가 오래되어 다시 감천의 이름이 없어져서 그 실제를 잃었다. 궁궐 북쪽에 연산이 있는데 현지 사람들이 마석령이라 한다.” 했다. 「교사지」에 “공손경이 말하기를 ‘황제가 선한문을 얻었는데 한문은 곡구이다. 살펴보니 구종산 서쪽을 곡구라고 말하니 곧 옛 한문이다. 옹주 예천현 동북쪽 40리에 있다.” 했다.
[二] 索隱戰國策云:「韓盧者,天下之壯犬也。」是韓呼盧為犬,謂施韓盧而搏蹇兔,以喻秦彊,言取諸侯之易。
[二] 【索隱】 『戰國策』에 “‘韓盧’는 천하의 강건한 개이다.” 했다. 이는 한나라에서는 盧를 불러 개라 하였는데 韓盧를 풀어서 절름발이 토끼를 치는 것을 말한 것이니 진나라의 강함을 비유한 것으로 제후를 취함의 쉬움을 말한 것이다.
然左右多竊聽者,范睢恐,未敢言內,先言外事,以觀秦王之俯仰。因進曰:「夫穰侯越韓、魏而攻齊綱壽,非計也。少出師則不足以傷齊,多出師則害於秦。臣意王之計,欲少出師而悉韓、魏之兵也,則不義矣。今見與國之不親也,越人之國而攻,可乎?其於計疏矣。且昔齊湣王南攻楚,破軍殺將,再辟地千里,[一]而齊尺寸之地無得焉者,豈不欲得地哉,形勢不能有也。諸侯見齊之罷獘,君臣之不和也,興兵而伐齊,大破之。士辱兵頓,皆咎其王,曰:『誰為此計者乎?』王曰:『文子為之。』[二]大臣作亂,文子出走。攻齊所以大破者,以其伐楚而肥韓、魏也。此所謂借賊兵[三]而齎盜糧者也。[四]王不如遠交而近攻,得寸則王之寸也,得尺亦王之尺也。今釋此而遠攻,不亦繆乎!且昔者中山之國地方五百里,趙獨吞之,功成名立而利附焉,天下莫之能害也。今夫韓、魏,中國之處而天下之樞也,王其欲霸,必親中國以為天下樞,以威楚、趙。楚彊則附趙,趙彊則附楚,楚、趙皆附,齊必懼矣。齊懼,必卑辭重幣以事秦。齊附而韓、魏因可虜也。」昭王曰:「吾欲親魏久矣,而魏多變之國也,寡人不能親。請問親魏柰何?」對曰:「王卑詞重幣以事之;不可,則割地而賂之;不可,因舉兵而伐之。」王曰:「寡人敬聞命矣。」乃拜范睢為客卿,謀兵事。卒聽范睢謀,使五大夫綰伐魏,拔懷。[五]後二歲,拔邢丘。
그러나 좌우가(측근으로) 훔쳐(몰래)듣는 이가 많았으므로 범수가 두려워하여 감히 안의 일을 말하지 못하고 먼저 밖의 일을 말하는 것으로써 진나라 왕의 아래를 굽어보고 위로 우러르는 것(행동)을 관찰하였다. 나아가 말하기를 “대저 양후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넘어 제나라의 강 땅과 수 땅을 공격하는 것은 잘못된 계책입니다. 군대를 조금 내면 제나라를 상하게 하기에 부족하고 군대를 많이 내면 곧 진나라에 해롭습니다. 신이 생각하기로 왕의 계책은 군대를 조금 내고 한나라와 위나라의 군대를 다 갖추고자 하는 것은(한나라와 위나라 군대로 다 채우고자 하는 것은) 곧 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보니 이웃 나라와 친하지 않은데 다른 사람의 나라를 넘어 공격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그것은 계책이 성긴(부족한) 것입니다. 또 옛 날에 제나라 민왕이 남쪽으로 초나라를 공격하여 군대를 깨트리고 장수를 죽이며 다시 천리의 땅을 개척하려 하였으되 제나라는 한 자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하였던 것이 어찌 땅을 얻으려하지 않아서이겠습니까? 형세가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후들이 제나라의 피폐함과 임금과 신하들이 화합하지 못한 것을 보고는 군대를 일으켜 제나라를 쳐서 크게 깨트렸습니다. 군사는 욕되고 군대는 꺽이니 모두 허물을 왕에게 돌려 말하기를 ‘누가 이 계책을 만들었습니까(세웠습니까)?’ 하니 민왕이 말하기를 ‘문자(전문)가 그것을 만들었다.’ 하였으므로 대신들이 난을 일으키자 문자(전무)가 나와 달아났습니다.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깨트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초나라를 쳐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살찌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도적의 군대를 빌려서 도둑에게 양식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왕께서 멀리 있는 나라와 교류하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만 못하니 얻은 땅이 한 치면 곧 왕의 한 치이며, 한 자를 얻으면 또한 왕의 한 자입니다. 지금 이를 풀어서 멀리 있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또한 잘못된 거시 아닌가! 또한 엣 날에 중산의 나라는 땅이 사방 500리인데 조나라가 단독으로 그것을 삼켜서 공을 이루고 이름을 세워 이익을 여기에 붙였는(얻었는)데도 천하가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저 한나라와 위나라는 중국에 자리 잡아 천하의 중추입니다. 왕께서 패왕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중국(중원)을 친히(가까이) 하는 것으로써 천하의 중추가 되어 초나라와 조나라를 위세로 눌러야 합니다. 초나라가 강하면 곧 조나라를 가까이 하고, 조나라가 강하면 초나라를 가까이하면 초나라와 조나라를 모두 가까이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두려우면 반드시 말을 낮추고 많은 폐백으로써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제나라를 가까이하면 한나라와 위나라는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했다. 소왕이 말하기를 “나는 위나라와 친하게 지내고자 한 것이 오래였으나 위나라는 많이 변하는 나라여서 과인이 친할 수 없습니다. 위나라와 친하려면 djejg게 해야 하는 지 물음을 청합니다.” 했다. 범수가 대답하기를 “왕께서 말을 낮추고 폐백을 많이 하는 것으로써 그들을 섬기고, 안되면 곧 땅을 떼어 주고 재물을 주고, 안 되면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을 쳐야 합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공경히 가르침을 듣고자 합니다.” 이에 범수를 객경으로 삼아 군대의 일을 도모하게 했다. 마침내 범수의 계략을 받아들여 오대부 관으로 하여금 위나라를 쳐서 회 땅을 함락시켰다. 2년이 지난 후 형구를 함락시켰다.
[一] 正義辟,(尺)[疋]亦反。
[一] 【正義】 ‘辟’은 (尺) [疋]과 赤의 反이다.
[二] 索隱謂田文,即孟嘗君也。猶戰國策謂田聁、田嬰為聁子、嬰子然也。
[二] 【索隱】 전문을 이르니 곧 맹상군이다. 『戰國策』에 전분으로 되어 있는데 전영은 전분의 아들이니 영자라 해야 한다.
[三] 索隱借音子夜反。一作「籍」,音亦同。
[三] 【索隱】 ‘借’는 음이 ‘子’와 ‘夜’의 反이다. 한편 ‘籍’이라고도 쓰는데 음은 또한 같다.
[四] 索隱齎音側奚反。言為盜齎糧也。
[四] 【索隱】 ‘齎’의 음은 ‘側’과 ‘亥’의 反이다. 도둑질한 식량을 가져다 주는 것을 말한다.
[五] 集解徐廣曰:「昭王三十九年。」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소왕 39년이다.” 했다.
客卿范睢復說昭王曰:「秦韓之地形,相錯如繡。秦之有韓也,譬如木之有蠹也,[一]人之有心腹之病也。天下無變則已,天下有變,其為秦患者孰大於韓乎?王不如收韓。」昭王曰:「吾固欲收韓,韓不聽,為之柰何?」對曰:「韓安得無聽乎?王下兵而攻滎陽,則鞏、成皋之道不通;[二]北斷太行之道,則上黨之師不下。[三]王一興兵而攻滎陽,則其國斷而為三。[四]夫韓見必亡,安得不聽乎?若韓聽,而霸事因可慮矣。」王曰:「善。」且欲發使於韓。
객경 범수가 다시 소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진나라와 한나라의 지형은 서로 섞인 것이 수를 놓은 것 같습니다. 진나라에 한나라가 있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나무에 좀이 있는 것과 같고, 사람의 심장과 배에 병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천하가 변함이 없으면 곧 그만이지만 천하에 변함이 있으면 진나라에 군심이 되는 것으로 무엇이 한나라보다 크겠습니까? 왕께서는 한나라를 거두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소왕이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한나라를 거두고자 하나 한나라가 듣지 않으니 그것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니 법수가 대답하기를 “한나라가 어찌 듣지 않겠습니까? 왕께서 군대를 내려 보내 형양을 공격하면 곧 공 땅과 성고의 길이 통하지 않고, 북쪽으로 태행의 길이 단절되면 곧 상당의 군대가 내려오지 못합니다. 왕께서 한번 군대를 일으켜 형양을 공격하면 곧 그 나라가 단절되어 셋이 됩니다. 대저 한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니 어지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한나라가 들으면(받아들이면) 패왕의 일을 생각해 볼만 합니다.” 했다. 소왕이 말하기를 “좋습니다.”하고 또한 한나라에 사신을 보내고자 하였다.
[一] 正義音妒,(石)[蝕]柱蟲。
[一] 【正義】 음은 ‘투’이고, 기둥을 좀 먹는 벌레이다.
[二] 正義言宜陽、陝、虢之師不得下相救。
[二] 【正義】 의양, 섬, 괵의 군대가 내려와 서로 구원할 수 없다는 말이다.
[三] 正義言澤、潞之師不得下太行相救。
[三] 【正義】 택 땅과 로 땅의 군대가 태행을 내려와 서로 구원할 수 없음을 말한다.
[四] 正義新鄭已南一,宜陽二,澤、潞三。
[四] 【正義】 신정 이남이 하나이고, 의양이 둘이며, 택과 로가 셋이다.
范睢日益親,復說用數年矣,因請閒說曰:[一]「臣居山東時,聞齊之有田文,不聞其有王也;聞秦之有太后、穰侯、華陽、高陵、涇陽,不聞其有王也。夫擅國之謂王,能利害之謂王,制殺生之威之謂王。今太后擅行不顧,穰侯出使不報,華陽、涇陽等擊斷無諱,[二]高陵進退不請。四貴備而國不危者,未之有也。
범수가 날로 가까워져 다시 유세하고 등용 된지 여러 해였다. 한가한 때 말할 것을 청하여 말하기 “신이 산동에 살 때 ㅈ나라에 전문이 있다는 것을 들었으나 왕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진나라에는 태후, 양후, 화양, 고릉, 경양이 있다는 것을 들었으나 그 왕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대저 나라를 오로지 하는 자를 왕이라 하고 이롭게 하고 해롭게 할 수 있는 자를 왕이라 하고, 죽이고 살리는 위엄이 있는 자를 왕이라 합니다. 지금 태후께서 독단적으로 행하여도 돌아보지 않고, 양후가 사신을 내보내도 보고하지 않으며, 화양과 경양 등은 치고 결단하여도 꺼림이 없으며 고릉군은 나아가고 물러감을 청하지 않습니다. 네 명의 귀한 사람을 갖추고도 위태롭지 않은 것은 있지 않습니다.
為此四貴者下,乃所謂無王也。然則權安得不傾,令安得從王出乎?臣聞善治國者,乃內固其威而外重其權。穰侯使者操王之重,決制於諸侯,剖符於天下,政適[三]伐國,莫敢不聽。戰勝攻取則利歸於陶,國獘御於諸侯;[四]戰敗則結怨於百姓,而禍歸於社稷。詩曰『木實繁者披其枝,[五]披其枝者傷其心;大其都者危其國,尊其臣者卑其主』。崔杼、淖齒管齊,[六]射王股,擢王筋,[七]縣之於廟梁,宿昔而死。李兌管趙,囚主父於沙丘,[八]百日而餓死。今臣聞秦太后、穰侯用事,高陵、華陽、涇陽佐之,卒無秦王,此亦淖齒、李兌之類也。且夫三代所以亡國者,君專授政,縱酒馳騁弋獵,不聽政事。其所授者,妒賢嫉能,御下蔽上,以成其私,不為主計,而主不覺悟,故失其國。今自有秩以上至諸大吏,下及王左右,無非相國之人者。見王獨立於朝,臣竊為王恐,萬世之後,有秦國者非王子孫也。」昭王聞之大懼,曰:「善。」於是廢太后,逐穰侯、高陵、華陽、涇陽君於關外。秦王乃拜范睢為相。收穰侯之印,使歸陶,因使縣官給車牛以徙,千乘有餘。到關,關閱其寶器,寶器珍怪多於王室。
이 네 가지 귀한 자를 신하로 삼는 것이 곧 이른 바 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즉 권력이 어찌 기울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권력이) 왕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들으니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곧 안으로는 그 위엄을 견고히 하고 밖으로는 그 권력을 무겁게 한다고 합니다. 양후의 사자는 왕의 귀중함을 잡고 제후를 결단하고 제재하며, 천하에 부절을 갈라 적을 치고 나라를 정벌하여 감히 듣지 않음이 없습니다. 싸워서 이기고 공격하여 취하면 곧 이로움을 도 땅에 돌리고 나라가 피폐해지면 제후를 다스리고, 싸움에 패하면 곧 백성에게 원망을 엮어서 재앙을 사직에 돌립니다. 『시경』에 “나무의 열매가 많으면 그 가지를 부러뜨리고, 그 가지가 부러지면 그 심장을(근본을) 해친다. 그 도읍을 크게 하는 자는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그 신하를 높이는 자는 그 임금을 낮춘다.” 합니다. 최저와 요치는 제나라를 관리하였는데 왕의 최저는 왕의 넓적다리를 쏘고 요치는 왕의 힘줄을 뽑아 사당 대들보에 걸어 오래지 않아 죽게 하였습니다. 이태는 조나라를 관리하면서 사구 땅에서 주보(보)를 가두어 백일이 지나 굶어 죽었습니다. 지금 신이 들으니 진나라 태후와 양후가 정사를 처리하고, 고릉과 화양, 경양이 그들을 도와 마침내 진나라 왕을 없게 한다하니 이들이 또한 요치와 이태의 무리들입니다. 또한 三代에 나라를 망하게 한 까닭은 임금이 오로지 정사를 (신하에게)주고 술에 빠지거나 말을 달리고, 사냥하며 정사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정사를 받은 자가 현명한 이를 질투하고, 능력 있는 이를 질투하며, 아래 사람은 다스리고 윗사람을 가리는 것으로써 그 사사로운 이익을 이루며, 임금을 위한 계책을 하지 않아도 임금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 나라를 잃은 것입니다. 지금 지금 대부이상(5000호 이상의 봉읍 소유자)으로부터 여러 높은 관리에 이르기까지와 아래로 왕의 측근이 상국의 사람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왕께서 홀로 조정에 서는 것을 보면 신은 몰래 왕을 위하여 두려워하는데 만세의 뒤에 진나라를 소유한 자는 왕의 자손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했다. 소왕이 그것을 듣고 크게 두려워 하면서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고는 이에 태후를 폐하고, 양후, 고릉, 화양, 경양군을 관 밖으로 축출하였다. 진나라 왕이 이에 범수에게 절하고 재상으로 삼았다. 양후의 관인을 거두고 도 땅으로 돌아가게 하였는데 현관으로 하여금 수레와 소를 주어 옮겨가게 하였는데 천대가 넘었다. 관에 이르니 관에서 그 보배로운 기물을 점검하니 보배로운 기물과 진기하고 괴이한 것이 왕실보다 많았다.
[一] 正義閒音閑。
[一] 【正義】 ‘閒’의 음은 ‘閑(한)’이다.
[二] 集解諱,畏也。索隱無諱猶無畏也。
[二] 【集解】 ‘諱’는 두려워함이다. 【索隱】 ‘無諱’는 두려워함이 없다. 이다.
[三] 集解徐廣曰:「音征敵。」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음은 征敵이다.” 했다.
[四] 索隱按:獘者,斷也。御,制也。言穰侯執權,以制御主斷於諸侯也。
[四] 【索隱】 살펴보니 ‘獘’는 끊음이다. ‘御’는 제재함이다. 양후가 권세를 잡고 임금을 제재하는 것으로써 제후를 끊는 것을 말한다.
[五] 正義披音片被反。
[五] 【正義】 ‘披’의 음은 ‘片’과 ‘被’의 反이다.
[六] 索隱淖,姓也,音泥教反,漢有淖姬是也。高誘曰「管,典也」。言二人典齊權而行弒逆也。正義淖齒,楚人,齊湣王臣。
[六] 【索隱】 ‘淖’는 성인데 음은 ‘泥’와 ‘敎’의 反이다. 한나라에 요희가 있었는데 이것이다. 고유가 말하기를 “管은 법이다.” 했다. 두 사람이 제나라의 권세를 관장하여 임금을 죽이는 거스름을 행하였다는 말이다. 【正義】 요치는 초나라 사람이니 제나라 민왕의 신하이다.
[七] 索隱按:言「射王股」,誤也。崔杼射莊公之股,淖齒擢湣王之筋,是說二君事也。
[七] 【索隱】 살펴보니 “왕의 넓적다리를 쏘았다.”는 말은 잘못이다. 최저가 장공의 넓적다리를 쏘았고, 요치가 민왕의 힘줄을 뽑았다는 이 두 임금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八] 正義沙丘臺在邢州平鄉縣東北三十里。
[八] 【正義】 사구대는 형주 평향현 동북쪽 30리에 있다.
秦封范睢以應,[一]號為應侯。當是時,秦昭王四十一年也。
진나라가 범수를 응 땅에 봉하고 응후라 불렀다. 이러한 때가 진나라 소왕 41년이다.
[一] 索隱封范睢於應。案:劉氏云「河東臨晉縣有應亭」,則秦地有應也。又案:本紀以應為太后養地,解者云「在潁川之應鄉」,未知孰是。正義括地志云:「故應城,在汝州魯山縣東四十里也。」
[一] 【索隱】 범수를 응 당에 봉하였다. 살펴보니 유씨가 말하기를 “하동 임진현에 응정이 있다.”하니 곧 진나라 땅에 응 땅이 있었다. 또 살펴보니 본기에 “응 땅으로써 태후를 봉양하였다.” 하였는데 해설하는 자가 “영천에 응향이 있다.” 하니 어느것이 옳은지 알지 못하겠다. 【正義】 『括地志』에 “옛 응성은 여주 노산현 동쪽 40리에 있다.” 했다.
范睢既相秦,秦號曰張祿,而魏不知,以為范睢已死久矣。魏聞秦且東伐韓、魏,魏使須賈於秦。范睢聞之,為微行,敝衣閒步之邸,[一]見須賈。須賈見之而驚曰:「范叔固無恙乎!」范睢曰:「然。」須賈笑曰:「范叔有說於秦邪?」曰:「不也。睢前日得過於魏相,故亡逃至此,安敢說乎!」須賈曰:「今叔何事?」范睢曰:「臣為人庸賃。」須賈意哀之,留與坐飲食,曰:「范叔一寒如此哉!」乃取其一綈袍以賜之。[二]須賈因問曰:「秦相張君,公知之乎?吾聞幸於王,天下之事皆決於相君。今吾事之去留在張君。孺子[三]豈有客習於相君者哉?」范睢曰:「主人翁習知之。唯睢亦得謁,睢請為見君於張君。」須賈曰:「吾馬病,車軸折,非大車駟馬,吾固不出。」范睢曰:「願為君借大車駟馬於主人翁。」
범수가 진나라 재상이 되고나서 진나라에서는 장록이라 불렀는데 위나라에서는 알지 못하고 범수가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다고 여겼다. 위나라는 진나라가 또한 동쪽으로 한나라와 위나라를 친다는 것을 듣자 위나라가 수가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했다. 범수가 그것을 듣고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몰래 해진 옷을 입고 한가한 걸음으로 여관에 가서 수가를 만났다. 수가는 그를 보고 놀라 말하기를 “범숙이 진실로 근심함이 없구나!”하니 범수가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했다. 수가가 웃으며 말하기를 “범숙은 진나라에서 유세합니까?” 하니 범수가 “아닙니다. 저는 전날에 위나라 재상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도망하여 여기에 이르렀는데 어찌 감히 유세하겠습니까!” 했다. 수가가 말하기를 “지금 범숙은 어떤 일을 합니까?” 하니 범수가 말하기를 “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품팔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니 수가가 그것을 슬퍼하고 머물며 함께 앉아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말하기를 “범숙이 매우 가난하기가 이와 같구나!” 하고 이에 두꺼운 비단으로 만든 솜옷 한 벌을 가져다 내려 주었다. 수가가 묻기를 “진나라 재상인 장군(장록)을 공은 아십니까? 내가 들으니 (진나라)왕에게 사랑을 받아 천하의 일을 모두 재상에게서 결정된다. 합니다. 지금 나의 일의 떠나고 머무르는 것은 장군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대는 혹 객으로 재상에게 익숙한 이가 있습니까?(재상을 잘 아는 이를 압니까?)” 하였다. 범수가 말하기를 “주인이 익숙하게 압니다.(잘 압니다.) 오직 저만이 또한 뵐 수 있고, 저만이 그대에게 장군(장록)을 뵐 수 있게 청할 수 있습니다.” 했다. 수가가 말하기를 “내말은 병들었고, 수레 축은 부러졌으므로 말 네 마리가 끄는 큰 수레가 아니면 나는 진실로 나갈 수 없습니다.” 했다. 범수가 말하기를 “그대를 위해 말 네 마리가 끄는 큰 수레를 주인옹에게 빌릴 것을 원합니다.” 했다.
[一] 正義劉云「諸國客館」。
[一] 【正義】 유운이 “여러 나라의 객관(여관)”이라 했다.
[二] 索隱按:綈,厚繒也,音啼,蓋今之絁也。正義今之麤袍。
[二] 【索隱】 살펴보니 ‘綈’는 두터운 비단이다. 음은 ‘啼’이니 지금의 絁이다. 【正義】 지금의 麤袍(추포)이다.
[三] 索隱劉氏云:「蓋謂睢為小子也。」
[三] 【索隱】 유씨가 말하기를 “아마도 범수를 일러 小子라 한 것일 것이다.
范睢歸取大車駟馬,為須賈御之,入秦相府。府中望見,有識者皆避匿。須賈怪之。至相舍門,謂須賈曰:「待我,我為君先入通於相君。」須賈待門下,持車良久,問門下曰:「范叔不出,何也?」門下曰:「無范叔。」須賈曰:「鄉者與我載而入者。」門下曰:「乃吾相張君也。」須賈大驚,自知見賣,乃肉袒膝行,因門下人謝罪。於是范睢盛帷帳,待者甚眾,見之。須賈頓首言死罪,曰:「賈不意君能自致於青雲之上,賈不敢復讀天下之書,不敢復與天下之事。賈有湯鑊之罪,請自屏於胡貉之地,唯君死生之!」范睢曰:「汝罪有幾?」曰:「擢賈之髮以續賈之罪,尚未足。」范睢曰:「汝罪有三耳。昔者楚昭王時而申包胥為楚卻吳軍,楚王封之以荊五千戶,包胥辭不受,為丘墓之寄於荊也。今睢之先人丘墓亦在魏,公前以睢為有外心於齊而惡睢於魏齊,公之罪一也。當魏齊辱我於廁中,公不止,罪二也。更醉而溺我,公其何忍乎?罪三矣。然公之所以得無死者,以綈袍戀戀,有故人之意,故釋公。」乃謝罷。入言之昭王,罷歸須賈。須賈辭於范睢,范睢大供具,盡請諸侯使,與坐堂上,食飲甚設。而坐須賈於堂下,置莝豆其前,令兩黥徒夾而馬食之。數曰:「為我告魏王,急持魏齊頭來!不然者,我且屠大梁。」須賈歸,以告魏齊。魏齊恐,亡走趙。匿平原君所。范睢既相,王稽謂范睢曰:「事有不可知者三,有不柰何者亦三。宮車一日晏駕,[一]是事之不可知者一也。君卒然捐館舍,是事之不可知者二也。使臣卒然填溝壑,是事之不可知者三也。宮車一日晏駕,君雖恨於臣,無可柰何。君卒然捐館舍,君雖恨於臣,亦無可柰何。使臣卒然填溝壑,君雖恨於臣,亦無可柰何。」范睢不懌,乃入言於王曰:「非王稽之忠,莫能內臣於函谷關;非大王之賢聖,莫能貴臣。今臣官至於相,爵在列侯,王稽之官尚止於謁者,非其內臣之意也。」昭王召王稽,拜為河東守,三歲不上計。[二]又任鄭安平,昭王以為將軍。范睢於是散家財物,盡以報所嘗困厄者。一飯之德必償,睚眥之怨必報。[三]
범수가 돌아와 말 네 마리가 그는 큰 수레를 가져다 수가를 위해 마부가 되어 진나라 재상부에 들어갔다. 부 안에서 바라보더니 아는 자는 모두 피하고 숨었다. 수가가 괴이하게 여겼다. 재상의 집 문에 이르자 (범수가)수가에게 말하기를 “나를 기다리십시오. 내가 그대를 위하여 먼저 들어가서 재상에게 통하겠습니다.(알리겠습니다.)” 했다. 수가가 문 아래에서 기다리는데 수레를 지니고 있기를 오래 하였으므로 문지기에게 묻기를 “범숙이 나오지 않는데 어찌된 것인가?” 했다. 문지기가 말하기를 “범숙은 없습니다.”하니 수가가 말하기를 “지난 번에 나와 함께 수레를 타고 들어간 자이다.” 했다. 문지기가 말하기를 “곧 우리의 재상인 장군(장록)입니다.” 했다. 수가가 크게 놀라 속임을 당했음을 알고 이에 웃통을 벗어 팔을 드러내고 무릎으로 기어가서 문지기를 통하여 사죄하였다. 이에 범수가 휘장을 치고 매우 많은 사람을 데리고 만났다. 수가가 머리를 땅에 닿도록 절하고 죽을 죄를 지었다며 말하기를 “저는 그대가 스스로 푸른 구름의 위(높은 자리)에 이를 것을 생가지 못하였고, 저는 감히 다시는 천하의 글을 읽지 않을 것이며, 감히 다시 천하의 일에 참여치 않을 것입니다. 저는 큰 솥에 끓여질 큰 죄가 있으니 스스로 오랑캐의 땅에 숨을 것이니 오지 그대만이 죽이고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범수가 말하기를 “너의 죄가 몇 개나 있는가?” 하니 수가 말하기를 “저의머리카락을 뽑는 것으로써 저의 죄를 대신하여도 오히려 충분하지 않습니다.” 했다. 범수가 말하기를 “너의 죄는 3가지가 있을 뿐이다. 옛날에 초나라 소왕 때 신포서가 초나라를 위하여 오나라 군대를 물리치자 초나라 왕이 형 땅 5천호로써 봉하였는데 신포서가 사양하고 받지 않았는데 조상의 무덤이 형 땅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돌아가신 조상의 무덤이 또한 위나라 땅에 있는데 공이 전에 내가 제나라에 마음이 벗어남이 있다.(나쁜 마음이 있다.) 여기고 위제에게 나를 나쁘게 말한 것이 공의 첫 번째 죄이다. 위제가 나를 화장실에서 욕보일 때 공이 저지하지 않았으니 두 번째 죄이다. 다시 술에 취하여 나에게 오줌을 눌 때 공이 어지 차마 할 수 있었는가?(어찌 모른 척하였는가?) 세 번째 조이다. 그러나 공이 죽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두터운 비단 옷으로써 (옛 정을) 그리워하는 옛 사람의 뜻이 있기 때문에 공을 풀어준다.” 하고는 이에 말을 마쳤다.(물러나게 하였다.) 궁궐에 들어가 소왕에게 말하여 수가를 돌아가게 하였다. 수가가 범수를 하직하니 범수가 크게 음식을 갖추어 올리고(잔치를 열어) 제후의 사신들을 모두 청하여 함께 대청 위에 앉게 하고 음식을 매우 잘 베풀었지만 수가는 대청 아래 앉게 하고 그 앞에 마소의 여물인 짚과 콩을 두고 두 사람의 묵형을 받은 사람 사이에 끼어서 말처럼 먹게 하였다. (범수가)여러 번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위나라 왕에게 말하여 급히 위제의 머리를 가지고 오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또한 대량 땅을 도륙할(모두 죽일) 것이다.” 했다. 수가가 돌아가 위제에게 말하였다. 위제가 두려워하여 도망하여 조나라로 달아나 평원군이 있는 곳에 숨었다. 범수가 재상이 되고나서 왕계가 범수에게 말하기를 “일에는 알 수 없는 것이 3가지가 있고,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또한 3가지가 있습니다. 임금이 하루아침에 돌아가시는 것 이것이 일의 알 수 없는 것 중의 첫 번째입니다. 그대가 갑자기 館舍를 버리는 것 이것이 알 수 없는 두 번째입니다. 신이 갑자기 구렁을 빠져 죽는 것 이것이 일의 알 수 없는 세 번째입니다. 임금이 하루아침에 죽었을 때 그대가 비록 신을 (왕에게 천거하지 않은 일로) 한탄하여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대(범수)가 갑자기 관사를 버릴 때 그대가 신을(왕에게 천거하지 않은 일로) 한탄하여도 또한 어찌할 수 없습니다. 신이 갑자기 구렁에 빠져죽을 때 그대가 신을(왕에게 천거하지 않은 일로) 한탄하여도 또한 어찌할 수 없습니다. 했다. 범수가 기뻐하지 않고 곧 궁궐에 들어가 왕에게 말하기를 “왕계의 충성이 아니었다면 신이 함곡관에 들어오지 못하였을 것이고, 대왕의 현명함과 성스러움이 아니었으면 귀한(관직이 높은) 신하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신의 관직이 재상에 이르렀고, 작위는 제후에 반열하고 있는데 왕계의 관직이 오히려 알자에 그치고 있으니 그것은 신을 들이게(진나라에 데리고 들어온) 한 뜻이 아닐 것입니다.” 했다. 소왕이 왕계를 불러 하동의 지방관으로 삼고 3년간 계책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또 정안평에게 맡기자(정안평을 천거하자) 소왕이 장군으로 삼았다. 범수가 이에 집안의 재물을 흩어서 모두 일찍이 곤궁하고 재액을 당한 사람에게 주었다.(갚았다.) 한 술 밥으로 덕을 베푼 이에게도 반드시 보상하였고, 흘겨보는 눈초리의 원한도 반드시 갚았다.
[一] 集解應劭曰;「天子當晨起早作,如方崩殞,故稱晏駕。」韋昭曰:「凡初崩為『晏駕』者,臣子之心猶謂宮車當駕而晚出。」
[一] 【集解】 응소가 말하기를 “천자는 마땅히 새벽에 일어나고 일찍 일하여 마치 막 죽는 것처럼 하기 때문에 ‘晏駕’라 한다.”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무릇 천자가 죽는 것을 ‘晏駕’라 하는 것은 신하된 마음에 임금이 죽으면 마땅히 멍에지우고 늦게 나간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二] 集解司馬彪曰:「凡郡掌治民,進賢,勸功,決訟,檢姦。常以春行所至縣,勸民農桑,振救乏絕;秋冬遣無害吏案訊問諸囚,平其罪法,論課殿最;歲盡遣吏上計。」
[二] 【集解】 사마표가 말하기를 “무릇 군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 현명한 이를 천거하는 것, 일을 권면하는 것, 송사를 결단하는 것, 간사함을 검속하는 일을 관장한다. 항상 봄에 가서 현에 이르면 백성에게 옹사와 누에치기를 권하고, 양식이 떨어진 이를 구휼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해침이 있는 관리를 내보내 없애고, 여러 죄수를 살피고 심문하여 그 죄를 법에 비추어 공평하게 하며 고과를 논하여 고과 점수를 매기며, 해가 다하면 관리를 보내 상계한다.” 고 했다.
[三] 索隱睚音崖賣反,眥音土賣反。又音崖債二音。睚眥謂相嗔而怒目切齒。
[三] 【索隱】 ‘睚’의 음은 ‘崖’와 ‘賣’의 反이고, ‘眥’의 음은 ‘土’와 ‘賣’의 反이다. 또 음은 ‘崖’와 ‘債’의 두 음이다. ‘睚眥(眦)는 서로 성내고, 노한 눈으로 이를 가는 것을 말한다.
范睢相秦二年,秦昭王之四十二年,東伐韓少曲、[一]高平,拔之。[二]
범수가 진나라 재상이 된지 2년은 진나라 소왕 42년인데 동쪽으로 한나라 소곡, 고평을 쳐서 함락시켰다.
[一] 集解徐廣曰:「蘇代曰『起少曲,一日而斷大行』。」 索隱按:蘇云「起少曲,一日而斷太行」,故劉氏以為蓋在太行西南。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소대가 말하기를 ‘소곡을 일으킨지 하루 만에 대행을 끊었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소대가 말한 “소곡에서 일으켜 하루만에 태행을 끊었다.” 했기 때문에 유씨는 아마도 태행의 서남쪽에 있었을 것이라 여겼다.
[二] 正義括地志云:「南韓王故城在懷州河陽縣北四十里。俗謂之韓王城,非也。春秋時周桓王以與鄭。紀年云『鄭侯使辰歸晉陽向,更名高平,拔之』。則少曲當與高平相近。」
[二] 【正義】 『括地志』에 “남한왕 옛성은 회주 하양현 북쪽 40리에 있다. 세상에서는 한왕성이라 하는데 아니다. 춘추시대에는 주나라 환왕이 정나라에 주었다. 『紀年』에 정나라 제후가 辰으로 하여금 진나라 양향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이름을 고평으로 고쳐 점령하였다.” 하니 곧 소곡은 마땅히 고평과 서로 가까워야 한다.
秦昭王聞魏齊在平原君所,欲為范睢必報其仇,乃詳為好書遺平原君曰;「寡人聞君之高義,願與君為布衣之友,君幸過寡人,寡人願與君為十日之飲。」平原君畏秦,且以為然,而入秦見昭王。昭王與平原君飲數日,昭王謂平原君曰:「昔周文王得呂尚以為太公,齊桓公得管夷吾以為仲父,今范君亦寡人之叔父也。范君之仇在君之家,願使人歸取其頭來;不然,吾不出君於關。」平原君曰:「貴而為交者,為賤也;富而為交者,為貧也。[一]夫魏齊者,勝之友也,在,固不出也,今又不在臣所。」昭王乃遺趙王書曰:「王之弟在秦,范君之仇魏齊在平原君之家。王使人疾持其頭來;不然,吾舉兵而伐趙,又不出王之弟於關。」趙孝成王乃發卒圍平原君家,急,魏齊夜亡出,見趙相虞卿。虞卿度趙王終不可說,乃解其相印,與魏齊亡,閒行,念諸侯莫可以急抵者,乃復走大梁,欲因信陵君以走楚。信陵君聞之,畏秦,猶豫未肯見,曰:「虞卿何如人也?」時侯嬴在旁,曰:「人固未易知,知人亦未易也。夫虞卿躡屩檐簦,一見趙王,賜白璧一雙,黃金百鎰;再見,拜為上卿;三見,卒受相印,封萬戶侯。當此之時,天下爭知之。夫魏齊窮困過虞卿,虞卿不敢重爵祿之尊,解相印,捐萬戶侯而閒行。急士之窮而歸公子,公子曰『何如人』。人固不易知,知人亦未易也!」信陵君大慚,駕如野迎之。魏齊聞信陵君之初難見之,怒而自剄。趙王聞之,卒取其頭予秦。秦昭王乃出平原君歸趙。
진나라 소왕이 위제가 평원군이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을 듣고 범수를 위하여 반드시 그 원수를 갚고자 하여 이에 거짓으로 좋은 글을 평원군에게 보내 말하기를 “과인이 높은 의기를 들었으니 그대와 함께 布衣의 벗이 되기를 원하였는데 그대가 과인을 지나간다 하니 과인은 그대와 함께 10일을 술 마시기를 원한다.” 했다. 평원군이 진나라를 두려워하면서도 또한 그렇다 여겨서 진나라에 들어가 소왕을 뵈었다. 소왕과 평원군이 함께 술 마시기를 여러 날 하였는데 소왕이 평원군에게 말하기를 “옛 날에 주나라 문왕은 여상을 얻어 태공으로 삼았고, 제나라 환공은 관이오를 얻어 중부로 삼았는데 지금 범수가 또한 과인의 숙부가 되었다. 범수의 원수가 그대의 집에 있는데 사람을 시켜 돌아가 그 머리를 베어 오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그대를 관을 나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했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귀한(벼슬이 높은) 것으로 사귀는 자는 천하게 되었을 때를 위함이고, 부유함으로 사귀는 자는 가난해졌을 때를 위한 것입니다. 대저 위제는 저(평원군 승)의 벗이니 있다하여도 진실로 내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 또한 신이 있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였다. 소왕이 이에 조나라 왕에게 글을 보내 말하기를 “왕의 동생이 진나라에 있는데 범수의 원수 위제가 평원군의 집에 있습니다. 왕께서는 사람을 시켜 빨리 그 머리를 가지고 오게 하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군대를 동원하여 조나라를 칠 것이며, 또한 옹의 동생을 관에서 나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했다. 조나라 효성왕이 이에 군대를 풀어 평원군의 집을 포위하니 다급해진 위제가 밤에 도망 나와 조나라 재상 우경을 만났다. 우경이 조나라 왕을 끝내 설득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는 이에 그 재상의 관인을 풀어놓고 위제와 함께 도망하여 가는 틈에 제후들 중에 급히 의지할만한 자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에 다시 대량으로 달아나 신릉군을 통하여 조나라로 달아나고자 하였다. 신릉군이 그것을 듣고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오히려 미리 즐겨 만나지 않으려 하면서 말하기를 “우경은 어떤 사람인가?” 하였다. 그 때 영후가 옆에 있다가 말하기를 “사람은 진실로 쉽게 말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아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저 우경은 집신 한 켤레와 우산 한 자루를 가지고 한 번 조나라 왕을 만나자 흰 구슬 한 쌍과 황금 100일을 내렸고, 두 번째 만나자 상경을 삼았고, 세 번째 만나서는 마침내 재상의 관인을 받고 만호후에 봉해졌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천하가 다투어 알고자 했습니다. 저 위제가 궁곤하여 우경에게 의지하자 우경이 감히 작록의 높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재상의 관인을 풀고, 만호후를 버리고 틈을 타 떠나 간 것입니다. 선비의 궁곤함을 다급하게 여겨서 공자에게 돌아오려는데 공자께서 ‘어떤 사람인가?’ 하십니다. 사람은 진실로 쉽게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을 아는 것 또한 쉽지 않구나!” 하였다. 신릉군이 크게 부끄러워하면서 수레에 멍에를 지우고 들에 나가 맞이하였다. 위제는 신릉군이 처음에 만나는 것을 어렵게 여겼다는 것을 듣고는 노하여 스스로 목을 매었다. 조나라 왕이 그것을 듣고 마침내 그 머리를 취하여 진나라에 주었다. 진나라 소왕이 이에 평원군을 내보내 조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
[一] 索隱上「為」音如字,下「為」音于偽反。以言富貴而結交情深者,為有貧賤之時,不可忘之也。
[一] 【索隱】 위의 ‘爲’는 음이 본래 글자와 같고, 아래의 ‘爲’는 음이 ‘于’와 ‘僞’의 反이다. 부귀함을 말하는 것으로 사귀는 정을 깊이 맺은 자는 빈천한 때가 되어도 잊지 못한다.
昭王四十三年,秦攻韓汾陘,[一]拔之,因城河上[二]廣武。
진나라 소왕 43년 진나라가 한나라의 분수와 형 땅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황하 근처인 광무에 성을 쌓았다.
[一] 索隱陘音刑。陘蓋在韓之西界,與汾相近也。正義按:陘庭故城在絳州曲沃縣西北二十里汾水之陽。
[一] 【索隱】 ‘陘’의 음은 ‘刑’이다. ‘陘’은 대개 한나라의 서쪽 경계에 있는데 분수와 서로 가깝다. 【正義】 살펴보니 형정의 옛 성은 강주 곡옥현 서북쪽 20리 분수의 남쪽에 있다.
[二] 索隱劉氏云:「此河上蓋近河之地,本屬韓,今秦得而城。」
[二] 【索隱】 유시가 말하기를 “여기의 하상은 대개 황하에서 가까운 땅인데 본래는 한나라에 속하였으나 지그 진나라가 얻어 성을 쌓은 것이다.
後五年,昭王用應侯謀,縱反閒賣趙,趙以其故,令馬服子[一]代廉頗[二]將。秦大破趙於長平,遂圍邯鄲。已而與武安君白起有隙,言而殺之。[三]任鄭安平,使擊趙。鄭安平為趙所圍,急,以兵二萬人降趙。應侯席稿請罪。秦之法,任人而所任不善者,各以其罪罪之。於是應侯罪當收三族。秦昭王恐傷應侯之意,乃下令國中:「有敢言鄭安平事者,以其罪罪之。」而加賜相國應侯食物日益厚,以順適其意。後二歲,王稽為河東守,與諸侯通,坐法誅。[四]而應侯日益以不懌。
5년 뒤 소왕이 응후의 계책을 써서 반간계로 조나라를 속이자 조나라가 그 일 때문에 마복의 아들로 하여금 염파 장군을 대신하게 하였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장평에서 크게 깨트리고 마침내 한단을 포위하였다. 이 때 무안군 백기와 틈이 있어 말로(이간하여) 말로(모함하여) 죽였다. 정안평을 천거하여 조나라를 치게 하였다. 정안평이 조나라에게 포위당하여 위급해지자 군대 2만 명이 조나라에 항복하였다. 응후가 자리를 깔고 죄를 청하였다. 진나라의 법에 사람을 천거하여 천거 받은 자가 잘 하지 못하면 각기 그 죄를 가지고 벌을 주었다. 이에 응후는 벌이 3족을 거는 것에 해당하였다. 진나라 소왕이 응후의 뜻을 해칠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나라 안에 명령을 내려 “감히 정안평의 일을 말하는 자는 그 죄를 가지고 벌을 주겠다.” 하고, 상국 응후에게 식물을 더하여 내리는 것이 날로 더욱 두터이 하여 그 뜻에 잘 맞게 하였다. 2년 후 왕계를 하동의 관리로 삼았는데 제후와 내통하다 법에 연좌되어 죽었다. 응후는 날로 더욱 기쁘지 않았다.(불안해졌다.)
[一] 索隱趙括之號也。故虞喜志林云「馬,兵之首也。號曰『馬服』者,言能服馬也」。
[一] 【索隱】 조괄의 호이다. 그러므로 『우희지림』에 “말은 병기의 우두머리이니 ‘마복’이라 부르는 것은 말을 잘 복종시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한다.
[二] 索隱鄒氏音匹波反。
[二] 【索隱】 추씨는 “음이 ‘匹’과 ‘波’의 反이라 했다.”
[三] 集解徐廣曰:「在五十年。」 索隱注徐云五十年,據秦本紀及年表而知之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50년에 있었다.” 했다. 【索隱】 주에 서광이 말한 50년은 진나라 본기와 연표에 근거하여 그것을 알았다.
[四] 集解徐廣曰:「五十二年。」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52년”이라 했다.
昭王臨朝歎息,應侯進曰:「臣聞『主憂臣辱,主辱臣死』。今大王中朝而憂,臣敢請其罪。」昭王曰:「吾聞楚之鐵劍利而倡優拙。[一]夫鐵劍利則士勇,倡優拙則思慮遠。夫以遠思慮而御勇士,吾恐楚之圖秦也。夫物不素具,不可以應卒,今武安君既死,而鄭安平等畔,內無良將而外多敵國,吾是以憂。」欲以激勵應侯。[二]應侯懼,不知所出。蔡澤聞之,往入秦也。
소왕이 조정에 임하여 탄식하니 응후가 나아가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임금의 근심은 신하의 욕이고, 임금으 욕은 신하의 죽음’이라 합니다. 지금 대왕이 조정안에서 근심하시니 신은 감히 그 죄를 청합니다.” 했다. 소왕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초나라의 철검은 날카롭지만 배우는 졸렬하다.’ 합니다. 대저 철검이 날카로우면 곧 병사가 용감하고, 배우가 졸렬하면 곧 생각이 원대합니다. 대저 원대한 생각으로서 용감한 병사를 다스리니 나는 초나라가 진나라를 도모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대저 사물이 평소에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급작스러움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지금 무안군이 죽고 난 후 정안평 등이 배반하고, 안으로 좋은 장수가 없고 밖으로 적국이 많으니 나는 이 때문에 근심하는 것입니다.” 하여 응후를 격려하고자 하였다. 응후가 두려워하여 나오는 곳을 알지 못하였다. 채택이 그것을 듣고 가서 진나라에 들어왔다.
[一] 正義論士能善卒不戰。
[一] 【正義】 선비는 능통하고 잘하나 병졸은 싸우려하지 않음을 논하고 있다.
[二] 索隱激音擊。
[二] 【索隱】 ‘激’의 음은 ‘擊’이다.
蔡澤者,燕人也。游學干諸侯[一]小大甚眾,不遇。而從唐舉相,[二]曰:「吾聞先生相李兌,曰『百日之內持國秉』,有之乎?」[三]曰:「有之。」曰:「若臣者何如?」唐舉孰視而笑曰:「先生曷鼻,巨肩,[四]魋顏,蹙齃,[五]膝攣。[六]吾聞聖人不相,殆先生乎?」蔡澤知唐舉戲之,乃曰:「富貴吾所自有,吾所不知者壽也,願聞之。」唐舉曰:「先生之壽,從今以往者四十三歲。」蔡澤笑謝而去,謂其御者曰:「吾持粱刺齒肥,[七]躍馬疾驅,懷黃金之印,結紫綬於要,揖讓人主之前,食肉富貴,四十三年足矣。」去之趙,見逐。之[八]韓、魏,遇奪釜鬲[九]於塗。聞應侯任鄭安平、王稽皆負重罪於秦,應侯內慚,蔡澤乃西入秦。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배움을 유세하며 작고 큰 제후에게 구한 것이 매우 많았지만 만나지 못하였다. 당거를 따라 관상을 보면서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선생은 이태의 관상을 보고서 ‘100일 안에 권력을 쥘 것이다.’ 하였다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니 당거가 말하기를 “있었습니다.” 했다. 채택이 말하기를 “신은 어떤 것 같습니까?” 당거가 자세히 보고서 웃으며 말하기를 “선생은 전갈 모양의 코, 큰 어깨, 이마가 튀어나온 얼굴, 찌그러진 콧대, 휘어진 무릎입니다. 내가 들으니 ‘성인은 관상은 보아도 알지 못한다 하는데 자못 선생인 것 같습니다.’” 했다. 채택은 당거가 희롱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말하기를 “부귀는 스스로 소유하는 바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수명이니 그것을 듣기를 원합니다.” 했다. 당거가 말하기를 “선생의 수명은 지금으로부터 43년을 더 살 것입니다.” 했다. 채택이 웃으면서 사례하고 갔는데 그 마부에게 말하기를 “내가 쌀밥을 먹고 살찐 고기를 씹으며, 도약하는 말을 타고 빨리 달리며 황금으로 만든 인을 품고 자주 빛의 관인 줄을 허리에 묶고 군주의 앞에서 읍하고 겸손하며 고기를 먹으며 부귀할 수 있다면 43년이면 충분하다.” 하고는 떠나 조나라에 갔으나 쫓겨났다. 한나라와 위나라에 갔으나 길에서 도적을 만나 솥을 빼앗겼다. 응후가 정안평과 왕계를 천거하였으나 모두 진나라에서 죄를 지어서 응후가 안으로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듣고 채택이 이에 서쪽으로 진나라에 들어갔다.
[一] 正義不待禮曰干。
[一] 【正義】 예로 대우하지 않는 것을 干이라 한다.
[二] 集解荀卿曰:「梁有唐舉。」 索隱荀卿書作「唐莒」。
[二] 【集解】 순경이 말하기를 “‘梁’에 당거가 있었다.” 했다. 【索隱】 순경의 글에는 ‘唐莒’라고 썼다.
[三] 索隱按:左傳「國子實執齊秉」,服虔曰:「秉,權柄也」。
[三] 【索隱】 살펴보니 『左傳』에 “국자가 실제로 제나라의 권력을 잡았다.” 했는데 복건은 “‘秉’은 권력을 잡아 사람을 마음대로 하는 힘.”이라 했다.
[四] 集解徐廣曰:「曷,一作『偈』。偈,一作『仰』。巨,一作『渠』。」 索隱曷鼻謂鼻如蝎蟲也;巨肩謂肩巨於項也:蓋項低而肩豎。偈音其例反。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曷’은 한편으로 ‘偈’라고도 쓰며, ‘偈’는 한편으로 ‘仰’이라고도 쓴다. ‘巨’는 한편으로 ‘渠’라고도 쓴다.” 했다. 【索隱】 曷鼻는 코가 蝎蟲(전갈과 같은 벌레)과 같은 것이고, 巨肩은 어깨가 목에서 큰 것인데 대개 목이 낮고 어깨가 선 것을 말한다. ‘偈’의 음은 ‘其’와 ‘例’의 反이다.
[五] 索隱(上)魋音徒回反。魋顏謂顏貌魋回,若魋梧然也。齃音烏曷反。蹙齃謂鼻蹙眉。
[五] 【索隱】 위의 ‘魋(몽치 퇴)’의 음은 ‘徒’와 ‘回’의 反이다. ‘魋顔’은 얼굴 모양이 몽치처럼 둥글어서 마치 오동나무 몽치와 같은 것을 말한다. 齃(콧대 알)의 음은 ‘烏’와 ‘曷’의 反이다. ‘蹙齃’은 코가 민간에서 쭈그러진 것을 말한다.
[六] 集解攣,兩膝曲也。徐廣曰:「一作『率』。」 索隱謂兩膝又攣曲也。
[六] 【集解】 ‘攣(걸릴 련)’은 두 무릎이 굽은 것이다.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 ‘率’이라고 쓴다.”했다. 【索隱】 두 무릎이 또한 굽은 것을 말한다.
[七] 集解持粱,作飯也。刺齒二字當作「齧」,又作「齕」也。索隱持梁謂作梁米飯而持其器以食也。按:刺齒二字字誤,當為「齧」字也。齧肥謂食肥肉也。
[七] 【集解】 ‘持粱’은 밥을 짓는 것이다. ‘刺齒’ 두 글자는 마땅히 ‘齧’ 또는 ‘齕’로 써야 한다. 【索隱】 ‘持粱’은 기장쌀로 밥을 지어 그릇에 담아 먹는 것이다. 살펴보니 ‘刺齒’ 두 글자는 글자가 잘못이니 ‘齧’로 쓰는 것이 마땅하다. ‘齧肥’는 살찐 고기를 먹는 것을 말한다.
[八] 集解之,一作「入」。
[八] 【集解】 ‘之’는 한편으로 ‘入’이라 쓴다.
[九] 集解爾雅曰:「款足者謂鬲。」郭璞曰:「鼎曲腳。」 索隱父歷二音。款者,空也。空足是曲足,云見爾雅,郭氏云「鼎曲腳」也。按:以款訓曲,故云「曲腳」也。
[九] 【集解】 『시경』 「이아」 편에 “‘款足(발이 없는 솥)’을 ‘鬲(솥 력)’이라 말한다.” 했다. 곽복이 말하기를 “솥의 굽은 다리.”라 했다. 살펴보니 ‘款’은 ‘曲’으로 訓하기 때문에 ‘曲腳(脚)’이라 한 것이다.
將見昭王,使人宣言以感怒應侯曰:「燕客蔡澤,天下雄俊弘辯智士也。彼一見秦王,秦王必困君而奪君之位。」應侯聞,曰:「五帝三代之事,百家之說,吾既知之,眾口之辯,吾皆摧之,是惡能困我而奪我位乎?」使人召蔡澤。蔡澤入,則揖應。應侯固不快,及見之,又倨,應侯因讓之曰:「子嘗宣言欲代我相秦,寧有之乎?」對曰:「然。」應侯曰:「請聞其說。」
장차 소왕을 뵙기 위해 사람을 시켜 응후를 느끼고 노하게 하는 말을 퍼트려 말하기를 “연나라 갱인 채택은 천하에 크고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며 말을 잘 하는 지혜로운 선비이다. 그가 한 번 진나라 왕을 뵈면 진나라 왕은 반드시 군(응후)를 어렵게 하고 근(응후)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했다. 응후가 듣고 말하기를 “五帝와 三代의 일과 백가의 학설(춘추전국시대의 여러 사상)을 내가 이미 알았고, 여러 사람의 주장을 내가 모두 꺽었는데(눌렀는데) 이것이 어찌 나를 어렵게 하고 나의 지위를 빼앗을 수 있겠는가?” 하고는 사람을 시켜 채택을 부르게 하였다. 채택이 들어가서 곧 응후에게 읍하였다. 응후가 본래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를 만나자 또한 거만하니 응후가 (앞의 이유) 때문에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가 일찍이 나를 대신하여 진나라 재상이 되고자 한다하니 정년 그런 일이 있었는가?” 하였다. 채택이 대답하기를 “그러합니다.” 했다. 응후가 말하기를 “그 말을 듣기를 청한다.” 했다.
蔡澤曰:「吁,君何見之晚也!夫四時之序,成功者去。夫人生百體堅彊,手足便利,耳目聰明而心聖智,豈非士之願與?」應侯曰:「然。」蔡澤曰:「質仁秉義,行道施德,得志於天下,天下懷樂敬愛而尊慕之,皆願以為君王,豈不辯智之期與?」應侯曰:「然。」蔡澤復曰:「富貴顯榮,成理萬物,使各得其所;性命壽長,終其天年而不夭傷;天下繼其統,守其業,傳之無窮;名實純粹,澤流千里,[一]世世稱之而無絕,與天地終始:豈道德之符而聖人所謂吉祥善事者與?」應侯曰:「然。」
채택이 말하기를 “아 군(응후)을 만나는 것이 어찌 이리도 늦었는지! 대저 四時의 질서는 공을 이룬 자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대저 사람이 태어나 신체가 굳고 강건하며, 손과 발이 편리하고, 눈과 귀는 밝고 마음은 성스럽고 지혜로운 것을 어찌 선비가 원하지 않겠습니까?” 응후가 말하기를 “그러하다.” 하니 채택이 말하기를 “仁에 바탕하고 義를 잡으며, 도를 행하고 덕을 베풀며, 천하에 뜻을 얻어 천하가 즐거워하고 공경하고 사랑함을 품어 높이고 사모하여 모두 군왕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어찌 말 잘하고, 지혜로운 이가 기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응후가 말하기를 “그러하다.” 했다. 채택이 다시 말하기를 “부귀로 영예를 드러내고 만물을 이루고 다스려 각기 그 자리(제 자리)를 얻게 하는 것과 인성과 천명을 받아 수명을 길게 하여 하늘이 준 목숨을 마쳐서 요절하지 않으며 천하가 그 전통을 잇고, 그 업을 지켜서 끝없이 전하며, 명분과 실제가 순수하고 물처럼 천리를 대대로 그것을 일컬어 끊어짐이 없으며, 천지와 더불어 끝나고 시작하는 것이 도덕에 알맞고 성인이 말한 길상의 좋은 일을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응후가 말하기를 “그러하다.” 했다.
[一] 集解徐廣曰:「一本無此字。」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어던 본에는 이 글자가 없다.” 했다.
蔡澤曰:「若夫秦之商君,楚之吳起,越之大夫種,其卒然亦可願與?」應侯知蔡澤之欲困己以說,[一]復謬曰:「何為不可?夫公孫鞅之事孝公也,極身無貳慮,盡公而不顧私;設刀鋸以禁姦邪,信賞罰以致治;披腹心,示情素,蒙怨咎,欺舊友,奪魏公子卬,安秦社稷,利百姓,卒為秦禽將破敵,攘地千里。吳起之事悼王也,使私不得害公,讒不得蔽忠,言不取苟合,行不取苟容,不為危易行,行義不辟難,[二]然為霸主強國,不辭禍凶。大夫種之事越王也,主雖困辱,悉忠而不解,主雖絕亡,盡能而弗離,成功而弗矜,貴富而不驕怠。若此三子者,固義之至也,忠之節也。是故君子以義死難,視死如歸;生而辱不如死而榮。士固有殺身以成名,雖義之所在,雖死無所恨。何為不可哉?」讒不得蔽忠,言不取苟合,行不取苟容,不為危易行,行義不辟難,[二]然為霸主強國,不辭禍凶。大夫種之事越王也,主雖困辱,悉忠而不解,主雖絕亡,盡能而弗離,成功而弗矜,貴富而不驕怠。若此三子者,固義之至也,忠之節也。是故君子以義死難,視死如歸;生而辱不如死而榮。士固有殺身以成名,雖義之所在,雖死無所恨。何為不可哉?」
채택이 말하기를 “저 진나라의 상군, 초나라의 오기, 월나라의 대부 문종 같은 이가 불의에 당한 것이 또한 원해서이겠습니까?” 했다. 응후가 채택이 자기를 곤궁하게 하는 것으로써 유세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다시 거짓으로 말하기를 “어찌하여 할 수 없다 여기는가? 대저 공손앙은 효공을 섬겼는데 자신을 지극히 하여 두 마음(생각)이 없었고, 공적인 일을 다하여 사사로운 것을 돌아보지 않았고, 형벌을 베푸는 것으로써 간사함을 금하고 상과 벌을 진실 되게 하는 것으로써 다스림에 이르고, 마음속을 열어 감정을 보이고, 원망과 허물을 무릅쓰고 옛 친구를 속여 위나라 공자 앙을 빼앗고, 사직을 편안히 하며, 백성을 이롭게 하고 마침내는 진나라를 위하여 장수를 사로잡고 적을 깨트리고 땅 천리를 빼앗았습니다. 오기는 초나라 도왕을 섬겼는데 사사로움으로 하여금 공적인 것을 해치지 못하게 하였고, 참소가 충을 가릴 수 없게 하고 말에는 구차하게 부합함을 취하지 않았으며 행실은 구차히 용납함을 취하지 않았으며 위태로움 때문에 행동을 바꾸지 않았으며, 의로움을 행하고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으며 임금을 패자로 만들고 나라를 강하게 하려 하여 재앙과 흉함을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대부 문종은 월나라 임금을 섬겼는데 임금이 비록 곤궁하고 욕되어도 충성을 다하여 게으르지 않았으며 임금이 비록 끊고 도망할지라도 능력을 다하고 떠나지 않았으며, 공을 이루어도 자랑하지 않았으며 귀하고 부유해져도 교만하고 태만히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세 사람 같으면 진실로 의리의 지극함이요 충성의 모범이라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의리 때문에 어려움 가운데서 죽고, 죽음 보기를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기며, 살아서 욕을 당하는 것이 죽어서 영예로운 것 만 못합니다. 선비는 진실로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써 이름를 이루며(남기며) 비록 의리의 있는 바에 비록 죽임이 있을 지라도 한탄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어찌 (이들처럼)될 수 없다고(되어서는 안 된다) 하십니까?
[一] 集解式絀反。
[一] 【集解】 ‘式’과 ‘絀’의 反이다.
[二] 集解徐廣曰:「一云『不困毀訾』。」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 ‘不困毁眥’라 하기도 한다.”했다.
蔡澤曰:「主聖臣賢,天下之盛福也;君明臣直,國之福也;父慈子孝,夫信妻貞,家之福也。故比干忠而不能存殷,子胥智而不能完吳,申生孝而晉國亂。是皆有忠臣孝子,而國家滅亂者,何也?無明君賢父以聽之,故天下以其君父為僇辱而憐其臣子。[一]今商君、吳起、大夫種之為人臣,是也;其君,非也。故世稱三子致功而不見德,豈慕不遇世死乎?夫待死而後可以立忠成名,是微子不足仁,孔子不足聖,管仲不足大也。夫人之立功,豈不期於成全邪?身與名俱全者,上也。名可法而身死者,其次也。名在僇辱而身全者,下也。」於是應侯稱善。
채택이 말하기를 “임금은 성스럽고 신하가 현명한 것은 천하의 성대한 복이고, 임금은 밝고 신하가 정직한 것은 나라의 복이며, 아버지는 자애롭고 자식이 효도하고 지아비는 진실 되고 아내가 정숙한 것은 집안의 복입니다. 옛날에 비간의 충성으로도 은나라를 보존하지 못하였고, 오자서의 지혜로도 오나라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며, 신생의 효도로도 진나라는 어지러워졌습니다. 이들 모두 충신과 효자가 있었으되 나라가 멸망하고 어지러워진 것은 왜입니까? 현명한 임금과 현명한 아비가 그것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천하는 그 임금과 아비를 욕보이고 그 신하와 자식을 불쌍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상군과 오기, 대부 문종이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된 것은 옳은 것이나 그 임금은 잘 못입니다.(신하 노릇은 잘 하였으나 임금 노릇은 잘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세 사람이 공을 이루었으면서도 덕을 드러내지 못한 것을 칭찬하는 것이지 어찌 세상을 잘못 만나 죽은 것을 사모하는 것이겠습니까? 대저 죽기를 기다린 후에야 충성을 세우는 것으로써 이름을 이룰 수 있다면 이는 미자는 인이 충분하지 않고, 공자는 성스러움이 충분하지 않으며, 관중은 큰 위대하다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저 사람이 공을 세우는 것이 어찌 완전함을 이루기를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몸과 이름(명예)을 모두 온전히 한 자가 제일입니다. 이름은 본 받을만하지만 몸이 죽은 자는 그 다음입니다. 이름(명예)가 욕을 받음에 있으면서 몸을 온전히 한자는 낮습니다.” 했다. 이에 응후가 좋다고 칭찬했다.
[一] 索隱言以比干、子胥、申生皆以至忠孝而見誅放,故天下言為其君父之所僇而憐其臣子也。
[一] 【索隱】 비간, 오자서, 신생은 모두 지극한 충효로써 죽임과 추방을 당하였기 때문에 천하가 그 임금과 아비의 욕되는 바를 말하고 그 신하와 자식됨을 불쌍하게 여김을 말한 것이다.
蔡澤少得閒,因曰:「夫商君、吳起、大夫種,其為人臣盡忠致功則可願矣,閎夭事文王,周公輔成王也,豈不亦忠聖乎?以君臣論之,商君、吳起、大夫種其可願孰與閎夭、周公哉?」應侯曰:「商君、吳起、大夫種弗若也。」蔡澤曰:「然則君之主慈仁任忠,惇厚舊故,其賢智與有道之士為膠漆,義不倍功臣,孰與秦孝公、楚悼王、越王乎?」應侯曰:「未知何如也。」蔡澤曰:「今主親忠臣,不過秦孝公、楚悼王、越王,君之設智,能為主安危修政,治亂彊兵,批患折難,[一]廣地殖穀,富國足家,彊主,尊社稷,顯宗廟,天下莫敢欺犯其主,主之威蓋震海內,功彰萬里之外,聲名光輝傳於千世,君孰與商君、吳起、大夫種?」應侯曰:「不若。」
채택이 잠시 틈을 두었다가 말하기를 “대저 상군, 오기, 대부 문종은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 충성을 다하고 공을 이룬 것을 원할 수 있지만 광요는 문왕을 섬겼고, 주공은 성왕을 섬겼는데 어찌 또한 충성스럽지 않겠습니까? 군신으로써 논하면 상군, 오기, 대부 종과 광요, 주공 중에 어느 쪽을 원합니까?” 했다. 응후가 말하기를 “상군, 오기, 대부 문종은 (광요, 주공과)같지(보다) 못합니다.” 했다. 채택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대(응후)의 임금이 자애롭고 어질어 충신을 신임하고 옛 벗을 도타이 대하며 그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 도가 있는 선비와 친밀하며 의리상 공신을 배반하지 않는 것과 진나라 효공, 초나라 도왕, 월나라 왕은 누가 낫습니까?” 했다. 응후가 말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누가 나은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했다.
蔡澤曰:「今主親忠臣,不過秦孝公、楚悼王、越王,君之設智,能為主安危修政,治亂彊兵,批患折難,[一]廣地殖穀,富國足家,彊主,尊社稷,顯宗廟,天下莫敢欺犯其主,主之威蓋震海內,功彰萬里之外,聲名光輝傳於千世,君孰與商君、吳起、大夫種?」應侯曰:「不若。」
채택이 말하기를 “지금의 임금은 충신을 친밀히 대함에는 진나라 효공, 초나라 도왕, 월나라 왕만 못하지만, 그대가 지혜를 베풀고 임금을 위하여 위태로움을 편안히 하고 정사를 닦고,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군대를 강하게 하고, 근심을 물리치고 어려움을 꺽고, 땅을 넓히고 곡식을 늘리며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집안(백성)을 풍족하게 하며, 임금을 강하게 하고 사직을 높이며 종묘를 드러내면 천하에 감히 그 임금을 속이고 범하는 이가 없어 임금의 위엄이 천하를 덮고 진동시키고 공이 만리의 밖에 밝아져서 명성의 빛남이 천세에 전해질 것이니 그대(응후)와 상군, 오기, 대부 문종 중 누가 났습니까?” 하니 응후가 말하기를 “(그들)과 같지 않다.(그들보다 못하다.)” 했다.
蔡澤曰:「今主之親忠臣不忘舊故不若孝公、悼王、句踐,而君之功績愛信親幸又不若商君、吳起、大夫種,然而君之祿位貴盛,私家之富過於三子,而身不退者,恐患之甚於三子,竊為君危之。語曰『日中則移,月滿則虧』。物盛則衰,天地之常數也。進退盈縮,與時變化,聖人之常道也。故『國有道則仕,國無道則隱』。聖人曰『飛龍在天,利見大人』。『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今君之怨已讎而德已報,意欲至矣,而無變計,竊為君不取也。且夫翠、鵠、犀、象,其處勢非不遠死也,而所以死者,惑於餌也。蘇秦、智伯之智,非不足以辟辱遠死也,而所以死者,惑於貪利不止也。是以聖人制禮節欲,取於民有度,使之以時,用之有止,故志不溢,行不驕,常與道俱而不失,故天下承而不絕。昔者齊桓公九合諸侯,一匡天下,至於葵丘之會,有驕矜之志,畔者九國。吳王夫差兵無敵於天下,勇彊以輕諸侯,陵齊晉,故遂以殺身亡國。夏育、太史噭[二]叱呼[三]駭三軍,然而身死於庸夫。[四]此皆乘至盛而不返道理,不居卑退處儉約之患也。夫商君為秦孝公明法令,禁姦本,尊爵必賞,有罪必罰,平權衡,正度量,調輕重,決裂阡陌,以靜生民之業而一其俗,勸民耕農利土,一室無二事,力田蓄積,習戰陳之事,是以兵動而地廣,兵休而國富,故秦無敵於天下,立威諸侯,成秦國之業。功已成矣,而遂以車裂。楚地方數千里,持戟百萬,白起率數萬之師以與楚戰,一戰舉鄢郢以燒夷陵,再戰南并蜀漢。
채택이 말하기를 “지금 임금이 충신을 친밀히 하고, 옛 벗을 잊지 않는 것은 효공, 도왕, 구천(월나라 왕)과 같지 않지만 그대(응후)의 공적, 사랑하고 믿음, 친하고 종애하는 것이 또한 상군, 오기, 대부 문종과 같지 않다. 그러하지만 그대(응후)의 녹과 지위의 높고 성대함과 私家의 부는 세 사람(상군, 오기, 대부 문종) 보다 많음에도 몸은 물러나지 않고 있어 두려움과 근심이 세 사람보다 심하니 그대(응후)를 위하여 위태롭게 생각합니다. 옛말에 ‘해가 하늘 가운데 있으면 곧 옮겨가고, 달이 차면 곧 이지러진다.’ 합니다. 사물이 성하면 곧 쇠퇴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나며 가득차고 쭈그러지는 것은 때와 더불어 변화하는 것은 성인의 떳떳한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에 도가 있으면 곧 나아가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곧 물러나 숨는다.’ 하였습니다. 성인이 말하기를 ‘나는 용이 하늘이 있어 대인을 봄이 이롭다.’ 하였고, ‘의롭지 않은 부(경제적인 풍요로움)와 귀(높은 관직)는 나에게 든 구름과 같다.’ 하였습니다. 지금 그대(응후)의 원한은 이미 원수를 갚았고, 은인에게는 덕을 베풀어 이미 갚았으니 뜻이 하고자하는 것에 이르렀으되 계책을 바꾸지 않으니 군(응후를)을 위해 (변하지 않은 계책은)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저 물총새, 코뿔소, 코끼리가 사는 형세가 죽음을 멀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죽는 까닭은 먹이에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소진과 지백의 지혜가 욕을 피하고 죽음을 멀리하기에 부족한 것이 아니지만 죽은 까닭은 이익을 탐함에 미혹되어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성인이 예를 지어 욕심을 절제하고 백성에게 취하는(세금을 거두는) 것을 한도가 있게 하며, 그들(백성을)을 부리는 것을 때에 따라 하며, 쓰는 것은 멈춤이 있게 하였기 때문에 뜻은 넘치지 않고, 행동은 고만하지 않으며 항상 도와함께하여 잘못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하를 계승하여 끊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옛날에 제나라 환공이 9번 제후를 모아, 한번 천하를 바로잡았는데 계구의 모임에 이르러 교만하고 자랑하는 뜻이 있자 9개 나라가 등을 돌렸습니다. 오나라 왕 부차는 군대가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었는데 용맹하고 강함으로서 제후를 가벼이 여기고 진나라와 제나라를 업신여겼기 때문에 마침내 자신을 죽이고 마라는 망하였습니다. 하육과 태사 교는 고함을 질러 삼군을 놀라게 하였으나 자신은 평범한 사내에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지극히 성대함을 타고 도리에 돌아가지 않고 낮추고 물러나 검소하고 절약함에 머물지 않은 근심입니다. 대저 상군은 진나라 효공을 위하여 법령을 공정하고 밝게 하여 간사함의 근본을 금하며, (공이 있으면) 벼슬을 높이고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주며, 저울을 공평하게 하고 도량(말과 되)을 바로잡으며, 가볍고 무거운 것을 조절하고, 밭 사이의 길을 트고 찢어 백성의 업을 안정시키고 그 풍속을 통일하며, 백성들에게 농사를 권면하여 당을 이롭게 하며 한 집에 두 일을 하지 못하게 하며 논사에 힘써 비축하게 하며 싸우고 진치는 법을 익히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분다가 움직이면 땅이 넓어지고 군대가 쉬면 나라가 부유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에 진나라를 대적할 이가 없어 제후에게 위엄을 세워 진나라의 업을 이루었습니다. 공이 이미 이루어졌음에도 마침내 거열형(수레에 사지를 묶어 잡아당겨서 신체를 찢어 죽이는 형벌)을 당하였습니다. 초나라의 땅이 4방 수 천리이고, 창을 잡은 군대가 백만이나 되었는데도 백기는 수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와 싸웠는데 한 번 싸움에 언, 영을 함락시키는 것으로써 이릉을 불태웠고, 두 번 싸워 남쪽으로 촉과 한중 땅을 병합하였습니다.(아울렀습니다.)
又越韓、魏而攻彊趙,北阬馬服,誅屠四十餘萬之眾,盡之于長平之下,流血成川,沸聲若雷,遂入圍邯鄲,使秦有帝業。楚、趙天下之彊國而秦之仇敵也,自是之後,楚、趙皆懾伏不敢攻秦者,白起之勢也。身所服者七十餘城,功已成矣,而遂賜劍死於杜郵。吳起為楚悼王立法,卑減大臣之威重,罷無能,廢無用,損不急之官,塞私門之請,一楚國之俗,禁游客之民,精耕戰之士,南收楊越,北并陳、蔡,破橫散從,使馳說之士無所開其口,禁朋黨以勵百姓,定楚國之政,兵震天下,威服諸侯。功已成矣,而卒枝解。
또한 한나라와 위나라를 넘어 강한 조나라를 공격하여 북쪽으로 마복을 묻어버리고 40여만의 무리를 죽이는데 장평의 아래에서 다하니(장평의 아래서 모두 죽이니)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고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으며 마침내 들어가 한단을 포위하여 진나라로 하여금 帝業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초나라와 조나라는 천하의 강한 나라로 진나라와 원수가 되어서 이로부터 이후로 초나라와 조나라가 모두 두려워하여 엎드려서 감히 진나라를 공격하지 못한 것은 백기의 기세 때문이었습니다. 백기 자신이 복종시킨 것이 70여개 성으로 공이 이미 이루어졌지만 마침내는 검을 내려 두우에서 죽게 했습니다. 오기는 초나라의 도왕을 위해 법을 세우고 대신의 위엄의 무거움을 낮추고 줄이고, 능력 없는 이를 파면하고 씀이 없는 것은 없애며 급하지 않은 관직은 버리고 사사로운 가문의 청을 막아 초나라의 풍속을 통일하고 떠도는 백성을 금지하며 농사짓는 이와 싸우는 군사를 훈련시켜 남쪽으로는 양월을 거두고, 북쪽으로는 진나라와 채나라를 아우르고 연횡을 깨트리고 합종을 흩어 치달리며 유세하는 선비들로 하여금 그 입을 열 곳이 없게 하며 붕당(무리 짓다.)을 금지하고 백성을 권면하는 것으로써 초나라의 정사를 안정시키고, 군대로 천하를 진동시켜 위엄으로 제후를 복종시켰습니다. 공이 이미 이루어졌음에도 끝내 사지가 찢어졌습니다.
[一] 索隱批,白結反,又音豐雞反。批患謂擊而卻之。折音之列反。
[一] 【索隱】 ‘批’는 ‘伯’과 ‘結’의 反이다. 또 음은 ‘豊’과 ‘雞’의 반이다. ‘批患’은 쳐서 물리치는 것을 말한다. ‘折’의 음은 ‘之’와 ‘列’의 反이다.
[二] 索隱二人勇者,夏育、賁育也。噭音皎。
[二] 【索隱】 두 사람의 용맹한 자이니 하육과 분육이다, ‘噭’의 음은 ‘皎’이다.
[三] 集解徐廣曰:「呼,一作『喑』。」 正義呼,火故反。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呼’는 한편 ‘喑’이라고도 쓴다.” 했다. ‘呼’는 ‘火’와 ‘故’의 反이다.
[四] 索隱按:高誘云「夏育為田搏所殺」。然太史噭未知為誰所殺,恐非齊襄王時太史也。
[四] 【索隱】 살펴보니 고유가 말하기를 “하육은 전박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했다. 그러나 태사 교는 누구에게 죽음을 당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제나라 양왕 때의 태사는 아닐 것이다.
大夫種為越王深謀遠計,免會稽之危,以亡為存,因辱為榮,墾草入邑,[一]辟地殖穀,率四方之士,專上下之力,輔句踐之賢,報夫差之讎,卒擒勁吳。令越成霸。功已彰而信矣,句踐終負而殺之。此四子者,功成不去,禍至於此。此所謂信而不能詘[二],往而不能返者也。范蠡知之,超然辟世,長為陶朱公。君獨不觀夫博者乎?或欲大投,或欲分功,[三]此皆君之所明知也。今君相秦,計不下席,謀不出廊廟,坐制諸侯,利施三川,以實宜陽,[四]決羊腸之險,塞太行之道,又斬范、中行之塗,六國不得合從,棧道千里,通於蜀漢,使天下皆畏秦,秦之欲得矣,君之功極矣,此亦秦之分功之時也。如是而不退,則商君、白公、[五]吳起、大夫種是也。吾聞之,『鑒於水者見面之容,鑒於人者知吉與凶』。書曰『成功之下,不可久處』。四子之禍,君何居焉?君何不以此時歸相印,讓賢者而授之,退而巖居川觀,必有伯夷之廉,長為應侯。世世稱孤,而有許由、延陵季子之讓,喬松之壽,孰與以禍終哉?即君何居焉?忍不能自離,疑不能自決,必有四子之禍矣。易曰『亢龍有悔』,此言上而不能下,信而不能詘,往而不能自返者也。願君孰計之!」應侯曰:「善。吾聞『欲而不知(止)[足],失其所以欲;有而不知(足)[止],失其所以有』。先生幸教,睢敬受命。』於是乃延入坐,為上客。
대부 문종은 월나라 왕을 위하여 깊은 꾀와 원대한 계책으로 회계의 위태로움을 면하게 하고 망하는 것을 보존하였으며, 욕을 돌려 영예로 삼으며, 땅을 개간하고 읍에 들어가 채우며 땅을 개척하고 곡식을 늘리며 사방의 군사를 거느리고 상하의 힘을 오로지 하고, 구천의 현명함을 보좌하여 부차의 원수를 갚고 끝내 굳센 오나라를 잡았습니다. 월나라로 하여금 패업을 이루게 하였으니 공이 이미 드러나고 믿어졌으나 구천이 끝내 저버리고 그를 죽였습니다. 이 네 사람은 공이 이루어졌는데도 떠나지 않아 재앙이 이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펼치기만 하고 굽히지 않고,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범려는 그것을 알고 초연히 세상을 피해 오래 동안 도주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대(응후)는 어찌하여 저 도박꾼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혹은 크게 던지고, 혹은 공을 나누고자 하는데 이는 모두 군(응후께서)께서 밝게 아는 것입니다. 지금 그대(응후)께서 진나라 재상이 되어 계책을 세우고 자리를 낮추지 않고, 도모하여 낭묘를 나오지 않으며, 앉아서 제후를 제재하며 이익을 삼천에 베푸는 것으로 의양을 채우며 양 창자 같은 험함을 끊어 태행의 길을 막고, 또 범씨와 중행씨의 길을 끊고 6국이 합종하지 못하게 하며 천리의 잔도를 놓아 촉 땅과 한중 땅을 통하게 하여 천하로 하여금 모두 진나라를 두려워하게 하며 진나라의 하고자 하는 것을 얻어서 그대(응후)의 공이 지극하니 이것이 또한 진나라의 공을 나눌 때입니다. 이 같이 하고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상군, 백기, 오기, 대부 문종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물을 거울삼는 자는 얼굴의 모습을 보고, 사람을 거울삼는 자는 길과 흉을 안다.’ 하고, 『서경』에 ‘공을 이룬 아래에는 오래 머물러서 안 된다.’ 하였습니다. 네 사람이 재앙을 입었는데 그대(응후)께서는 어디에 머물 것입니까? 그대(응후)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때에 재상의 관인을 돌려주는 것으로써 현명한(어진) 자에게 사양하고 그것(재상의 관인)을 주는 것으로 물러나 바위아래 머물면서 내를 구경하지 않지요. 반드시 백이의 청렴함으로 오래 응후가 될 것입니다. 대대로 고를 말하고, 허유와 연릉 계자의 겸양을 얻고 왕자 교와 적송자의 수명을 얻을 것이니 재앙으로써 마치는 것과 어느 것이 낫습니까? 곧 그대는(응후께서는) 어디에 머물 것입니까? 차마 스스로 떠나지 못하고 의심하여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면 반드시 네 사람의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易에 말하기를 ‘높이 있는 용은 뉘우침이 있다.’ 하니 이는 위에 있으면서 내려오지 않고, 펴기만 하고 굽히지 않으며, 가기만 하고 스스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대(응후)께서는 깊이 헤아리소서! 했다. 응후가 말하기를 “좋습니다. 내가 들으니 ‘욕심을 부기만 하고 그침(만족할)줄 알지 못하면 그 욕심 때문에 잘못되고, 소유한 것으로 만족할 줄 모르면 그 있는 것을 잃는다.’합니다. 선생께서 다행히도 가르쳐주시니 내가(응후) 공경히 명을 받을 것입니다.” 했다. 이에 바로 들어가 앉게 하고 상객을 삼았다.
[一] 索隱劉氏云:「入猶充也。謂招攜離散,充滿城邑也。」
[一] 【索隱】 유씨가 말하기를 “‘入’은 ‘充(채우다,)’와 같다. 떠나 흩어진 것을 불러 이끌어서 성읍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二] 索隱信音申。詘音屈。謂志已展而不退。
[二] 【索隱】 ‘信’의 음은 ‘申’이다. ‘詘’의 은 ‘屈’이다, 뜻과 몸을 펴고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三] 集解班固弈指曰:「博縣於投,不必在行。」駰謂投,投瓊也。索隱言夫博弈,或欲大投其瓊以致勝,或欲分功者,謂觀其勢弱,則投地而分功以遠救也,事具小爾雅也。按:方言云「所以投博謂之枰」。音平,局也。
[三] 【集解】 반고가 「혁지」에서 “도박은 던짐에서 드러나니 반드시 행마에 있는 것은 아니다.” 했다. ‘駰’은 던지는 것을 말하니 옥을 던지는 것이다. 【索隱】 대저 장기와 바둑은 혹 크게 그 옥을 던지는 것으로써 이김에 이르고자 하고, 혹 공을 나누고자 하는데 그 형세의 약함을 관찰하면 곧 땅에 던져 공을 나누는 것으로써 멀리서 돕는 것이다. 일이 「소이아」에 갖추어져 있다. 살펴보니 방언에 “장기 알을 던지기 때문에 ‘枰(바둑판 평)’”이라 한다. 음은 ‘平’이니 ‘局(판, 벌어지는 형편)’이다.
[四] 正義施猶展也,言伐得三川之地。以實宜陽,言展開三川,實宜陽。
[四] 【正義】 ‘施’는 ‘展(펼 전)’과 같으니 쳐서 삼천의 땅을 얻은 것을 말한다. 의양을 채우는 것으로써 삼천을 펴 열고 의양을 채운 것을 말한 것이다.
[五] 集解徐廣曰:「白起。」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백기이다.” 했다.
後數日,入朝,言於秦昭王曰:「客新有從山東來者曰蔡澤,其人辯士,明於三王之事,五伯之業,世俗之變,足以寄秦國之政。臣之見人甚眾,莫及,臣不如也。臣敢以聞。」秦昭王召見,與語,大說之,拜為客卿。應侯因謝病請歸相印。昭王彊起應侯,應侯遂稱病篤。范睢免相,昭王新說蔡澤計畫,遂拜為秦相,東收周室。
몇일 후 (응후가)조정에 들어가 진나라 소왕에게 말하기를 “객 가운데 새로이 산동에서 온 채택이라 하는 이가 있는데 그 사람은 말 잘하는 선비로 삼왕의 일과 5백의 업과 세속의 변화에 밝아 충분히 진나라의 정사를 맡길 수 있습니다. 신이 사람을 만난 것이 매우 많은데도 (다른 이가)미치지 못하고 신보다 낫습니다. 신이 감히 (채택의 말을)들어주기를 청합니다.” 했다. 진나라 소왕이 불러 보고 함께 말해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객경으로 삼았다. 응후가 인하여 병을 핑계하고 재상의 관인을 돌려줄 것을(재상 직을 사직할 것을) 청하였다. 소왕이 억지로 응후를 일어나게(머물게) 하였으나 응후가 마침내 병이 깊어졌다고 핑계하였다. 범수가 재상의 직을 면하니 소왕이 새롭게 채택의 계획을 말하게 하고 마침내 진나라 재상을 삼고 동쪽으로 주나라 왕실을 거두게 하였다.
蔡澤相秦數月,人或惡之,懼誅,乃謝病歸相印,號為綱成君。居秦十餘年,事昭王、孝文王、莊襄王。卒事始皇帝,為秦使於燕,三年而燕使太子丹入質於秦。
채택이 진나라 재상이 된지 몇 개월 동안 사람들이 혹 그를 미워하니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병을 핑계하고 재상의 관인을 돌려주니 부르기를 강성군이라 하였다. 진나라에 머문지 10년 동안 소왕, 효문왕, 장양왕을 섬겼다. 마지막으로 시황제를 섬기고 진나라를 위하여 연나라에 사신 가서 삼년 후에 연나라 태자 단으로 하여금 진나라에 들어와 인질이 되게 하였다.
太史公曰:韓子稱「長袖善舞,多錢善賈」,信哉是言也!范睢、蔡澤世所謂一切辯士,然游說諸侯至白首無所遇者,非計策之拙,所為說力少也。及二人羈旅入秦,繼踵取卿相,垂功於天下者,固彊弱之勢異也。然士亦有偶合,賢者多如此二子,不得盡意,豈可勝道哉!然二子不困厄,惡能激乎?[一]
태사공이 말하기를 “한비자가 말하기를 ‘긴 옷소매는 춤추기에 좋고, 많은 돈은 물건을 사기에 좋다.’ 하였는데 신실로 옳은 말이구나! 범수와 채택은 세상에 이른바 일체변사였으나 제후를 유세하여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한 것은 계책이 졸렬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세하는 나라의 힘이 적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떠돌이로 진나라에 들어가 서로 이어 경상의 지위를 얻어 천하에 공을 드리울 수 있었던 것은 진실로 강약의 형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비는 또한 우연히 합하는 것이 있지만 현명한 자로 이 두 사람과 같은 이가 많아도 모두 뜻을 얻은 것은 아니니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두 사람이 곤액을 당하지 않았다면 어찌 격동할 수 있었겠는가?
[一] 索隱二子,范睢、蔡澤也。睢厄於魏齊,折脅摺齒;澤困於趙,被逐棄鬲是也。惡音烏,激音擊也。
[一] 【索隱】 ‘二子’는 범수와 채택이다. 범수는 위나라와 제나라에서 곤액을 당하여 갈비 벼가 부러지고 이가 부러졌으며, 채택은 조나라에서 곤궁하였는데 쫒김을 당하면서 솥을 잃은 것이 이것이다. ‘惡’의 음은 ‘烏’이고, ‘激’의 음은 ‘擊’이다.
【索隱述贊】應侯始困,託載而西,說行計立,貴平寵稽。倚秦市趙,卒報魏齊。綱成辯智,范睢招攜。勢利傾奪,一言成蹊。
【索隱述贊】 응후는 처음에 곤궁하고 수레에 의탁하여 서쪽으로 갔다. 유세를 행하고 계책을 세워 귀함을 공평히 하고 총애를 살폈다. 진나라에 의지하여 조나라에서 장사하여 마침내 위나라와 제나라에 갚았다. 말 잘하고 지혜를 이루어 범수를 불러 함께 하였다. 형세가 이로우니 다투어 빼앗아 한마디 말로 지름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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