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六
平原君虞卿列傳第十六
平原君趙勝者,[一]趙之諸公子也。[二]諸子中勝最賢,喜賓客,賓客蓋至者數千人。平原君相趙惠文王及孝成王,三去相,三復位,封於東武城。[三]
평원군 조승은 조나라의 여러 공자 중 하나이다. 여러 공자 가운데 조승이 가장 현명하고, 빈객을 좋아하여 빈객으로 이른 자가 수천 명이었다. 평원군은 조나라 혜문왕과 효성왕을 도왔는데 3번 재상의 자리를 떠났다가 3번 자리를 회복하였으며 동무성에 봉해졌다.
[一] 正義勝,式證反。
[一] 【正義】 ‘勝’은 ‘式’과 ‘證’의 反이다.
[二] 集解徐廣曰:「魏公子傳曰趙惠文王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위 공자전에 ‘조나라 혜문왕의 동생이다’” 했다.
[三] 集解徐廣曰:「屬清河。」 正義今貝州武城縣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청하에 속한다.” 했다. 【正義】 지금의 패주 무성현이다.
平原君家樓臨民家。民家有躄者,槃散[一]行汲。平原君美人居樓上,臨見,大笑之。明日,躄者至平原君門,請曰:「臣聞君之喜士,士不遠千里而至者,以君能貴士而賤妾也。臣不幸有罷癃之病,[二]而君之後宮臨而笑臣,臣願得笑臣者頭。」平原君笑應曰:「諾。」躄者去,平原君笑曰:「觀此豎子,乃欲以一笑之故殺吾美人,不亦甚乎!」終不殺。居歲餘,賓客門下舍人稍稍引去者過半。平原君怪之,曰:「勝所以待諸君者未嘗敢失禮,而去者何多也?」門下一人前對曰:「以君之不殺笑躄者,以君為愛色而賤士,士即去耳。」於是平原君乃斬笑躄者美人頭,自造門進躄者,因謝焉。其後門下乃復稍稍來。是時齊有孟嘗,魏有信陵,楚有春申,故爭相傾以待士。[三]
평원군의 집 다락이 민가와 붙어 있었다. 민가에 절름발이가 있었는데 절뚝거리며(비틀거리며) 물을 깃고 있었다. 평원군의 미인(아름다운 여인, 첩)이 다락 위에 있다가 보고는 크게 웃었다. 다음날 절름발이가 평원군의 문에 이르러 청하여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평원군께서 선비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선비들이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이르는 것은 평원군께서 선비를 귀하게 여기고 첩을 천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신은 불행하게도 곱사등이 병을 지니고 있는데 평원군의 후궁(첩)이 임하여 신을 비웃었으니 신은 신을 비웃은 자의 머리를 원합니다.” 했다. 평원군이 웃으며 대답하여 말하기를 “예”하였다. 절름발이가 떠나자 평원군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 비루한 자를 보니 바로 한번 비웃었다는 이유로 내 첩을 죽이고자 하니 도한 심한 것이 아닌가!” 하고는 끝내 죽이지 않았다. 1년이 지나자 빈객과 문하의 사인들이 점차 이끌고 떠난 자가 반을 넘었다. 평원군이 괴이하게 여겨서 말하기를 “내가 여러분을 대우하는 것이 일찍이 감히 예를 잃지 않았는데 떠나는 자가 어찌 이리도 많은가?” 했다. 문하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평원군이 절름발이를 비웃은 자를 죽이지 않은 것은 평원군께서 여색을 사랑하고 선비를 천하게 여긴다 생각하기 때문에 선비들이 떠났을 뿐입니다.” 했다. 이에 평원군이 바로 절름발이를 비웃은 첩의 머리를 베고 스스로 문에 나아가 절름발이에게 (머리를) 올리고 사과하였다. 그 후 문하가 곧 다시 점점 왔다. 니 때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었고,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었으며, 초나라에는 춘신군이 있어서 서로 다투어 선비를 대우하였다.
[一] 集解亦作「跚」。索隱躄音壁。散音先寒反,亦作「跚」,同音。正義躄,跛也。
[一] 【集解】 또 ‘跚’이라고도 쓴다. 【索隱】 ‘躄’의 음은 ‘壁’이다. ‘散’의 음은 ‘先’과 ‘寒’의 反이다. 또 ‘跚’이라고도 쓰는데 같은 음이다. 【正義】 ‘躄’은 ‘跛’이다.
[二] 集解徐廣曰:「癃音隆。癃,病也。」 索隱罷音皮。癃音呂宮反。罷癃謂背疾,言腰曲而背隆高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癃’의 음은 ‘隆’이다. ‘癃’은 병이다.” 했다. 【索隱】 ‘罷’의 음은 ‘皮’이다. ‘癃’의 음은 ‘呂’와 ‘宮’의 反이다. 罷癃은 등에 있는 병이니 허리가 굽고 등이 높은 것을 말한다.
[三] 集解徐廣曰:「待,一作『得』。」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待’는 ‘得’이라고도 쓴다.
秦之圍邯鄲,[一]趙使平原君求救,合從於楚,約與食客門下有勇力文武備具者二十人偕。平原君曰:「使文能取勝,則善矣。文不能取勝,則歃血於華屋之下,必得定從而還。士不外索,取於食客門下足矣。」得十九人,餘無可取者,無以滿二十人。門下有毛遂者,前,自贊於平原君曰:「遂聞君將合從於楚,約與食客門下二十人偕,不外索。今少一人,願君即以遂備員而行矣。」
진나라가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가 평원군으로 하여금 구원을 구하게 하여 초나라와 합종하게 하였는데 식객과 문하에 용력이 있고, 문무를 갖춘 자 20명을 뽑아 함께 가기로 하였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글로 이김을 취할 수 있다면 곧 좋을 것입니다. 글로 이김을 취할 수 없다면 곧 화옥의 아래서 삽혈하며 반드시 합종을 정하고 돌아올 것입니다. 선비는 밖에서 찾지 않고 식객과 문하에서 취하여도 충분합니다.” 하고는 19명을 얻으니 나머지는 취할만한 자가 없어 20명을 채울 수 없었다. 문하에 모수라는 자가 있었는데 앞으로 나오며 스스로를 평원군에게 추천하며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평원군께서 장차 초나라와 합종하기 위해 식객과 문하 20명과 함께 가려하는데 밖에서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한 사람이 적으니 평원군께서는 곧 나로써 구성원을 갖추어 가기를 원합니다.” 했다.
平原君曰:「先生處勝之門下幾年於此矣?」毛遂曰:「三年於此矣。」平原君曰:「夫賢士之處世也,譬若錐之處囊中,其末立見。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左右未有所稱誦,勝未有所聞,是先生無所有也。先生不能,先生留。」毛遂曰:「臣乃今日請處囊中耳。使遂蚤得處囊中,乃穎脫而出,[二]非特其末見而已。」平原君竟與毛遂偕。十九人相與目笑之而未廢也。[三]
평원군이 말하기를 “선생은 나의 문하인 이곳에서 몇 년을 머물렀습니까?” 했다. 모수가 말하기를 “여기에서 3년입니다.” 했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저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처하는 것은 비유하면 송곳이 주머니 안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서고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선생이 나의 문하인 여기에 3년을 머물렀지만 좌우가 칭송하는 바가 있지 않고, 나도 들은 바가 있지 않습니다. 이는 선생이 소유한 바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은 잘하는 것이 없으니 선생은 남으시오.” 했다. 모수가 말하기를 “신은 오늘에야 곧 주머니 속에 있기를 청합니다. 나를 일찍이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다면 곧 자루까지 벗어나와 다만 그 끝만 나타날 뿐만은 아닙니다.” 했다. 평원군이 마침내 모수와 함께 갔다. 19명이 서로 함께 지목하여 그를 비웃었으나 폐하지는 못하였다.
[一] 正義趙惠文王九年,秦昭王十五年。
[一] 【正義】 조나라 혜문왕 9년, 진나라 소왕15년 이다.
[二] 索隱按:鄭玄曰「穎,環也」。脫音吐活反。
[二] 【索隱】 살펴보니 정현이 말하기를 “‘穎’은 ‘環’이다.” 했다. ‘脫’의 음은 ‘吐’와 ‘活’의 反이다.
[三] 索隱按:鄭玄曰「皆目視而輕笑之,未能即廢棄之也」。
[三] 【索隱】 살펴보니 정현이 말하기를 “모두 눈으로 보고 가벼이 여기고 비웃었지만 폐기시킬 수는 없었다.” 했다.
毛遂比至楚,與十九人論議,十九人皆服。平原君與楚合從,言其利害,日出而言之,日中不決。十九人謂毛遂曰:「先生上。」毛遂按劍歷階而上,謂平原君曰:「從之利害,兩言而決耳。今日出而言從,日中不決,何也?」楚王謂平原君曰:「客何為者也?」平原君曰:「是勝之舍人也。」楚王叱曰:「胡不下!吾乃與而君言,汝何為者也!」毛遂按劍而前曰:「王之所以叱遂者,以楚國之眾也。今十步之內,王不得恃楚國之眾也,王之命縣於遂手。吾君在前,叱者何也?且遂聞湯以七十里之地王天下,文王以百里之壤而臣諸侯,豈其士卒眾多哉,誠能據其勢而奮其威。今楚地方五千里,持戟百萬,此霸王之資也。以楚之彊,天下弗能當。白起,小豎子耳,率數萬之眾,興師以與楚戰,一戰而舉鄢郢,再戰而燒夷陵,三戰而辱王之先人。此百世之怨而趙之所羞,而王弗知惡焉。[一]合從者為楚,非為趙也。吾君在前,叱者何也?」楚王曰:「唯唯,誠若先生之言,謹奉社稷而以從。」毛遂曰:「從定乎?」楚王曰:「定矣。」毛遂謂楚王之左右曰:「取雞狗馬之血來。」[二]毛遂奉銅槃[三]而跪進之楚王曰:「王當歃血而定從,次者吾君,次者遂。」遂定從於殿上。毛遂左手持槃血而右手招十九人曰:「公相與歃此血於堂下。[四]公等錄錄,[五]所謂因人成事者也。」
모수가 초나라에 가까이 이르자 19명과 함께 논의하였는데 19사람이 모두 승복하였다. 평원군이 초나라와 합종을 위해 그 이로움과 해로움을 말하였는데 해가 뜰 때 그것을 말하여 한낮이 되어도 결단하지 못하엿다. 19사람이 모수에게 말하기를 “선생이 올라가 보시오.” 하니 모수가 검을 안고 계단을 지나 올라가서 평원군에게 말하기를 “합종의 이해관계는 두 마디 말로 결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해가 뜰 때부터 합종을 말하여 한 낮이 되어도 결단하지 못하는 것은 왜 입니까?” 했다. 초나라 왕이 평원군에게 말하기를 “객은 무엇을 하는 자입니까?(누구요)” 했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이는 저의 사인입니다.” 했다. 초나라 왕이 꾸짖어 말하기를 “어찌 내려가지 않는가? 내가 너의 임금과 말하고 있는데 너는 무엇을 하는 자인가?” 했다. 모수가 검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오며 말하기를 “왕께서 저를 꾸짖는 이유는 초나라의 많음 때문입니다. 지금 10보 안은 왕께서 초나라의 많음을 믿을 수 없으니 왕의 생명은 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임금이 앞에 있는데 질책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또한 제가 들으니 탕왕은 70리의 땅을 가지고 천하에 왕 노릇 하셨고, 문왕은 100리의 땅을 가지고서 제후를 신하로 하였으니 어찌 그 사졸의 많음 때문이겠습니까? 진실로 그 형세에 의거하여 그 위엄을 떨쳤기 때문입니다. 지 금 초나라 땅이 사방 5천리이고, 창을 지닌 군대가 100만이니 이는 패왕의 자산입니다. 초나라의 강성함 때문에 천하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백기라는 비루한 이가 수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와 싸웠는데 한 번 싸워 ‘언’과 ‘영’을 점거하고 두 번 싸워 이릉을 불살랐으며, 세 번 싸워 (초나라)왕의 선조를 욕보였습니다. 이는 100세대에 걸친 원한으로 조나라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인데 왕께서는 부끄러워 할 줄 모릅니다.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것이지 조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주인이 앞에 있는데도 질책하는 것은 왜입니까? 했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예 예, 진실로 선생의 말과 같으니 삼가 사직을 받들어 합종하겠습니다.” 했다. 모수가 말하기를 “합종을 정하였습니까?” 하니 초나라 왕이 “정하였습니다.” 했다. 모수가 초나라 왕의 좌우에게 말하기를 “닭, 개, 말의 피를 취하여 오시오.” 하고는 모수가 구리 쟁반을 받들고 무릎을 꿇고 초나라 왕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왕께서는 마땅히 피를 마셔서 합종을 정하시고, 다음은 우리 주인, 다음은 제가 할 것입니다.” 했다. 마침내 궁전에서 합종이 정하여졌다. 모수가 왼 손으로 쟁반을 잡고 오른 손으로 19사람을 불러 말하기를 “공들은 서로 함께 당 아래에서 이 피를 마십시오. 공들은 보잘 것 없는 이들로(따르는 이들로) 이른바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일을 이룬 자들입니다.” 했다.
[一] 正義惡,烏故反。
[一] 【正義】 ‘惡’의 음은 ‘烏’와 ‘故’의 反이다.
[二] 索隱按:盟之所用牲貴賤不同,天子用牛及馬,諸侯用犬及豭,大夫已下用雞。今此總言盟之用血,故云「取雞狗馬之血來」耳。
[二] 【索隱】 살펴보니 盟에 쓰는 희생은 귀천이 같지 않다. 천자는 소와 말을 쓰고, 제후는 개와 돼지를 쓰며, 대부이하는 닭을 쓴다. 지금 여기서는 총괄하여 盟에 피를 쓴다 말하였기 때문에 “닭, 개, 말의 피를 취하여 오라”했을 뿐이다.
[三] 索隱奉,敷奉反。若周禮則用珠盤也。
[三] 【索隱】 ‘奉’은 ‘敷’와 ‘奉’의 反이다. 『周禮』의 경우에는 곧 珠槃을 쓴다.
[四] 索隱啑此血。音所甲反。
[四] 【索隱】 이 피를 훌쩍 마시는 것이다. 음은 ‘所’와 ‘甲’의 反 이다.
[五] 集解音祿。索隱音祿。按:王劭云「錄,借字耳」。又說文云「錄錄,隨從之貌」。
[五] 【集解】 음은 ‘祿’이다. 【索隱】 음은 ‘祿’이다. 살펴보니 왕소가 말하기를 “‘錄’은 빌린 글자일 뿐이다.” 했다. 또 『설문』에 “錄錄은 따르는 모양이다.” 했다.
平原君已定從而歸,歸至於趙,曰:「勝不敢復相士。勝相士多者千人,寡者百數,自以為不失天下之士,今乃於毛先生而失之也。毛先生一至楚,而使趙重於九鼎大呂。[一]毛先生以三寸之舌,彊於百萬之師。勝不敢復相士。」遂以為上客。
평원군이 이미 합종을 정하고 나서 돌아갔는데 돌아가다 조나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나는 감히 다시는 선비를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선비를 가린 것이 많게는 1000명이고, 적게는 백 수십 명인데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지 않았다고 여겼으나 지금 모 선생에게서 그를 잃을 뻔하였습니다. 모 선생이 한 번 초나라에 이르러 조나라로 하여금 九鼎과 大呂보다 중요하게 하였습니다. 모 선생은 3치 혀는 백만의 군사보다 강합니다. 나는 감히 다시 선비를 가리지 않겠습니다.” 했다. 모수가 상객이 되었다.
[一] 索隱九鼎大呂,國之寶器。言毛遂至楚,使趙重於九鼎大呂,言為天下所重也。正義大呂,周廟大鍾。
[一] 【索隱】 九鼎과 大呂는 나라의 보배로운 기물이다. 모수가 초나라에 이르러 조나라를 구정과 대려보다 소중하게 하였다고 말한 것은 천하에게 소중함을 받았다는 말이다. 【正義】 ‘大呂’는 주나라 사당의 큰 종이다.
平原君既返趙,楚使春申君將兵赴救趙,魏信陵君亦矯奪晉鄙軍往救趙,皆未至。秦急圍邯鄲,邯鄲急,且降,平原君甚患之。邯鄲傳舍吏子李同[一]說平原君曰:「君不憂趙亡邪?」平原君曰:「趙亡則勝為虜,何為不憂乎?」李同曰:「邯鄲之民,炊骨易子而食,可謂急矣,而君之後宮以百數,婢妾被綺縠,餘粱肉,而民褐衣不完,糟糠不厭。民困兵盡,或剡木為矛矢,而君器物鍾磬自若。使秦破趙,君安得有此?使趙得全,君何患無有?今君誠能令夫人以下編於士卒之閒,分功而作,家之所有盡散以饗士,士方其危苦之時,易德耳。」[二]
평원군이 조나라에 돌아가자 초나라가 춘신군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나아가 조나라를 구원하게 하니 위나라 신릉군이 또한 진비군을 속여 빼앗아 가서 조나라를 구하게 하였으나 모두 이르지 못하였다. 진나라가 급히 한단을 포위하니 한단이 급하여 또한 항복하였는데 평원군이 매우 근심하였다. 한단의 전사리의 아들 이동이 평원군을 유세하여 말하기를 “평원군께서는 조나라가 망하는 것을 근심하지 않습니까?” 하니 평원군이 말하기를 “조나라가 망하면 내가 포로가 되니 어찌 근심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동이 말하기를 “한단의 백성은 뼈를 불 때고, 자식을 바꾸어 먹으니 급하다 이를 하되 평원군의 후궁은 백 수십 명이고, 비첩이 비단 옷을 입으며, 정제된 곡식과 고기를 남기는데 백성 갈옷이 완전하지 못하고 지게미와 쌀겨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백성은 곤궁하고 무기를 다하여 혹은 나무를 날카롭게 깍아 창과 화살로 삼는데 평원군의 기물과 종과 경쇠는 그대로입니다. 가령 진나라가 조나라를 깨트린다면 평원군께서는 어찌 이를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가령 조나라가 온전함을 얻을 수 있다면 평원군께서는 어찌 소유함이 없음을 근심하겠습니까? 지금 평원군께서 진실로 부인 이하로 하여금 사졸의 사이에 편성하여 일을 나누어 하게하고, 집에 있는 바를 모두 흩어서 군사를 먹이면 군사는 그 위태롭고 괴로운 때를 당하여 덕에 화답할 것입니다.” 했다.
於是平原君從之,得敢死之士三千人。李同遂與三千人赴秦軍,秦軍為之卻三十里。亦會楚、魏救至,秦兵遂罷,邯鄲復存。李同戰死,封其父為李侯。[三]
이에 평원군이 따르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사 3천을 얻었다. 이동이 마침내 3000명과 함께 진나라 군대에 나아가니 진나라 군대가 30리를 물러났다. 또한 초나라와 위나라의 구원이 이름을 만나니 진나라 군대는 마침내 물러가고 한단은 다시 보존하였다. 이동이 싸우다 죽었으므로 그 아버지를 봉하여 이후로 삼았다.
[一] 正義名談,太史公諱改也。
[一] 【正義】 이음은 ‘談’인데 태사공이 꺼려서 고쳤다.
[二] 正義言士方危苦之時,易有恩德。
[二] 【正義】 군사가 위태롭고 괴로운 때를 당하여 쉽게 은덕을 소유함을 말한 것이다.
[三] 集解徐廣曰:「河內成皋有李城。」 正義懷州溫縣,本李城也,李同父所封。隋煬帝從故溫城移縣於此。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하내 성고에 이성이 있다.” 했다. 【正義】 회주 온현이 본래 이성이니 이동의 아버지가 봉해진 곳이다. 수나라 양제가 옛 온성으로부터 여기로 현을 옮겼다.
虞卿欲以信陵君之存邯鄲為平原君請封。公孫龍聞之,夜駕見平原君曰:「龍聞虞卿欲以信陵君之存邯鄲為君請封,有之乎?」平原君曰:「然。」龍曰:「此甚不可。且王舉君而相趙者,非以君之智能為趙國無有也。割東武城而封君者,非以君為有功也,而以國人無勳,乃以君為親戚故也。君受相印不辭無能,割地不言無功者,亦自以為親戚故也。今信陵君存邯鄲而請封,是親戚受城而國人計功也。[一]此甚不可。且虞卿操其兩權,事成,操右券以責;[二]事不成,以虛名德君。君必勿聽也。」平原君遂不聽虞卿。
우경이 신릉군의 한단을 보존한 것으로써 평원군을 위해 封地를 청하려 하였다. 공손룡이 그것을 듣고 밤에 수레를 타고 가 평원군을 뵙고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우경이 신릉군의 한단을 보존한 것으로서 평원군을 위해 봉지를 더할 것을 청하려 한다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했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하니 공손룡이 말하기를 “이는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또한 왕이 평원군을 발탁하여 조나라의 재상으로 한 것은 평원군 같은 지혜와 능력을 지닌 이가 조나라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동무성을 떼어(나누어) 평원군을 봉한 것은 평원군이 공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라 사람으로서 공훈은 없지만 곧 평원군이 친척이기 때문입니다. 평원군께서는 재상의 인을 받으면서 능력이 없다고 사양하지 않았고, 땅을 나눔에도 공이 없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또한 스스로 친척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릉군이 한단을 보존하였다 하여 봉지를 청하는 것은 이는 친척으로 성을 받고, 나라 사람으로 공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우경은 두 권세를 잡고 있는데 일이 이루어지면 右券으로써 책임지울 것이고(보답을 요구할 것이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봉지를 청하였다는)헛된 이름으로써 평원군에게 덕을 베풀었다고 할 것입니다. 평원군께서는 반드시 들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했다. 평원군이 마침내 우경의 말을 듣지 않았다.
[一] 集解徐廣曰:「一本『是親戚受城而以國許人』。」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어떤 책에는 ‘이는 친척으로 성을 받고 나라로서 다른 사람을 허여한 것이다.’” 했다.
[二] 索隱言虞卿論平原君取封事成,則操其右券以責其報德也。
[二] 【索隱】 우경이 평원군을 논하여 봉지를 취하는 일을 이루면 곧 그 우권을 잡는 것으로써 그 덕을 갚을 것을 책임지우는 것을 말한다.
平原君以趙孝成王十五年卒。[一]子孫代,後竟與趙俱亡。
평원군은 조나라 효성왕 15년에 죽었다. 자손이 대를 이었으나 후에 마침내 조나라와 함께 같이 망하였다.
[一] 索隱按:六國年表及世家並云十四年卒,與此不同。
[一] 【索隱】 살펴보니 六國年表와 世家에 같이 14년에 죽었다하니 이와는 같지 않다.
平原君厚待公孫龍。公孫龍善為堅白之辯,及鄒衍過趙[一]言至道,乃絀公孫龍。[二]
평원군은 공손룡을 두터이 대우하였다. 공손룡은 견백의 말(堅白同異)을 잘하였는데 추연이 조나라를 지나갈 때 至道를 말하자 이에 공손룡을 내쳤다.
[一] 索隱過音戈。
[一] 【索隱】 ‘過’의 음은 ‘戈’이다.
[二] 集解劉向別錄曰:「齊使鄒衍過趙,平原君見公孫龍及其徒綦毋子之屬,論『白馬非馬』之辯,以問鄒子。鄒子曰:『不可。彼天下之辯有五勝三至,而辭正為下。辯者,別殊類使不相害,序異端使不相亂,杼意通指,明其所謂,使人與知焉,不務相迷也。故勝者不失其所守,不勝者得其所求。若是,故辯可為也。及至煩文以相假,飾辭以相惇,巧譬以相移,引人聲使不得及其意。如此,害大道。夫繳紛爭言而競後息,不能無害君子。』坐皆稱善。」 索隱杼音墅。杼者,舒也。繳音叫。謂繳繞紛亂,爭言而競後息,不能無害也。
[二] 【集解】 『劉向別錄』에 “제나라 사신 추연이 조나라를 지나가자 평원군이 공손룡과 그 무리인 기무자 등이 논한 ‘白馬非馬(백마는 말이 아니다.)’의 변론을 보고 추자(연)에게 물었다. 추자(연)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저 천하의 변론에는 五勝(승변:우월한 논변으로 5등급이 있고)과 三至(지변: 가장 우수한 논변 으로 3등급이 있고)가 있고, 사변(말로 하는 논변)은 하급이 됩니다. 論辯은 종류를 별개로 하여 서로 해치지 않아야 하고, 이단을 차례하여 서로 어지럽지 않게 해야 하며, 뜻을 말하고 가르침을 통하여 그 말하는 바를 밝히며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여 힘써 서로 미혹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세한 자는 그 지키는 바를 잃지 않고 우세하지 못한 자는 그 구하는 것을 얻어야 합니다. 이 같이 하였기 때문에 변론할 수 있습니다. 번잡한 글로써 서로 속임에 이르고, 말을 꾸미는 것으로써 서로 도타워지며, 교묘한 비유로써 서로 옮기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이끌어서 그 뜻에 이를 수 없게 합니다. 이 같이 하면 큰 도를 해칩니다. 어지럽게 말을 다투고, 경쟁한 후에 그친다면 군자를 해침이 없다 못할 것입니다.’ 했다. 앉은 이들이 모두 좋다고 칭찬하였다.” 했다. 【索隱】 ‘杼’는 펴는 것이다. ‘繳’은 음이 ‘叫’이다. 얽혀서 분란을 일으켜 어지럽히고 말을 다투고 경쟁한 후에 그치면 해침이 없을 수 없다.
虞卿者,游說之士也。躡蹻檐簦[一]說趙孝成王。一見,賜黃金百鎰,白璧一雙;再見,為趙上卿,故號為虞卿。[二]
우경은 유세하는 선비이다. 짚신을 싣고 긴 자루가 있는 우산을 어깨까지 드리우고 조나라 효성왕을 유세하였다. 한 번 보고 황금 100일, 흰 구슬 한 쌍을 내렸고, 두 번 보고 조나라의 상경이 되었기 때문에 ‘우경’이라 한 것이다.
[一] 集解徐廣曰:「蹻,草履也。簦,長柄笠,音登。笠有柄者謂之簦。」 索隱蹻,亦作「繑」,音腳。徐廣云:「繑,草履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蹻’는 짚신이다. ‘簦’은 긴 자루가 있는 우산이니 음은 ‘登’이다. 삿갓으로 자루가 있는 것을 ‘簦’이라 말한다.” 했다. 【索隱】 ‘蹻’는 또한 ‘繑(바지 끈 교)’라고도 쓰는데 음은 ‘腳(脚:다리 각)’이다. 서광이 말하기를 “‘繑’는 짚 신이다.” 했다.
[二] 集解譙周曰:「食邑於虞。」 索隱趙之虞在河東大陽縣,今之虞鄉縣是也。
[二] 【集解】 초주가 말하기를 “우 땅을 식읍으로 하였다.” 【索隱】 조나라의 우 당은 하동 대양현에 있었는데 지금의 우향현이 이것이다.
秦趙戰於長平,趙不勝,亡一都尉。趙王召樓昌與虞卿曰:「軍戰不勝,尉復死,[一]寡人使束甲而趨之,何如?」樓昌曰:「無益也,不如發重使為媾。」[二]虞卿曰:「昌言媾者,以為不媾軍必破也。而制媾者在秦。且王之論秦也,欲破趙之軍乎,不邪?」王曰:「秦不遺餘力矣,必且欲破趙軍。」虞卿曰:「王聽臣,發使出重寶以附楚、魏,楚、魏欲得王之重寶,必內吾使。趙使入楚、魏,秦必疑天下之合從,且必恐。如此,則媾乃可為也。」趙王不聽,與平陽君為媾,發鄭朱入秦。秦內之。趙王召虞卿曰:「寡人使平陽君為媾於秦,秦已內鄭朱矣,卿之為奚如?」虞卿對曰:「王不得媾,軍必破矣。天下賀戰者皆在秦矣。鄭朱,貴人也,入秦,秦王與應侯必顯重以示天下。楚、魏以趙為媾,必不救王。秦知天下不救王,則媾不可得成也。」應侯果顯鄭朱以示天下賀戰勝者,終不肯媾。長平大敗,遂圍邯鄲,為天下笑。
진나라와 조나라가 장평에서 싸웠는데 조나라가 이기지 못하고 한 명의 도위를 잃었다. 조나라 왕이 누창과 우경을 불러 말하기를 “군대가 싸워 이기지 못하고 다시 도위가 죽었으니 과인이 군대로 하여금 다르게 하고자 하는데 어떠합니까?” 했다. 누창이 말하기를 “이익이 없습니다. 거듭 사신을 보내 화친하는 것만 못합니다.” 했다. 우경이 말하기를 “누창이 말한 화친은 화친하지 않으면 반드시 깨트려질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화친을 조절하는 것은 진나라에 달려있습니다. 또 왕께서 진나라를 평가할 때 (진나라는)조나라의 군대를 깨트리고자 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까?” 했다. 왕이 말하기를 “진나라는 남은 힘을 남겨두지 않고, 반드시 또한 조나라 군대를 깨트리고자 할 것입니다.” 했다. 우경이 말하기를 “왕께서 신의 말을 들어주신다면 사신을 내어 많은 보배를 내어 초나라, 위나라에 붙이게 한다면 초나라와 위나라는 왕의 많은 보배를 얻고자 하여 반드시 우리 사신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조나라 사신이 초나라, 위나라에 들어간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천하의 합종을 의심하고 또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이 같으면 곧 화친하는 것이 옳다 할 것입니다.” 했다. 조나라 왕이 듣지 않고 평양군과 화친하여 정주를 출발시켜 진나라에 들어가게 하니 진나라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조나라 왕이 우경을 불러 말하기를 “과인이 평양군으로 하여금 진나라와 화친하게 하였더니 진나라가 이미 정주를 받아들였는데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했다. 우경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왕께서는 화친할 수 없고, 군대는 반드시 깨트려질 것입니다. 천하의 전쟁을(승리를) 축하하는 자가 모두 진나라에 있습니다. 정주는 귀한 사람인데 진나라에 들어가면 진나라 왕과 응후가 반드시 중요함을 드러내는 것으로써 천하에 보일 것입니다. 초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가 (진나라와)화친하면 반드시 왕을 구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천하가 왕을 구원하지 않을 것을 안다면 곧 화친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했다. 응후가 과연 정주를 드러내는 것으로써 천하에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것을 보이고 끝내 즐겨 화친하지 않았다. (조나라는)장평에서 크게 무너지고 마침내 한단을 포위당하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一] 集解徐廣曰:「復,一作『係』。」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復’은 ‘係’라고도 쓴다.” 했다.
[二] 集解古后反。求和曰媾。索隱古候反。按:求和曰媾。媾亦講,講亦和也。
[二] 【集解】 ‘古’와 ‘后’의 反이다. 화친을 구하는 것을 ‘媾’라 한다. 【索隱】 ‘古’와 ‘候’의 反이다. 살펴보니 화친을 구하는 것을 ‘媾’라고 한다, ‘媾’가 또한 ‘講’이고 ‘講’이 또한 화친하는 것이다.
秦既解邯鄲圍,而趙王入朝,使趙郝[一]約事於秦,割六縣而媾。虞卿謂趙王曰:「秦之攻王也,倦而歸乎?王以其力尚能進,愛王而弗攻乎?」王曰:「秦之攻我也,不遺餘力矣,必以倦而歸也。」虞卿曰:「秦以其力攻其所不能取,倦而歸,王又以其力之所不能取以送之,是助秦自攻也。來年秦復攻王,王無救矣。」王以虞卿之言趙郝。趙郝曰:「虞卿誠能盡秦力之所至乎?誠知秦力之所不能進,此彈丸之地弗予,令秦來年復攻王,王得無割其內而媾乎?」王曰:「請聽子割,子能必使來年秦之不復攻我乎?」趙郝對曰:「此非臣之所敢任也。他日三晉之交於秦,相善也。今秦善韓、魏而攻王,王之所以事秦必不如韓、魏也。今臣為足下解負親之攻,[二]開關通幣,齊交韓、魏,至來年而王獨取攻於秦,此王之所以事秦必在韓、魏之後也。此非臣之所敢任也。」
진나라가 한단의 포위를 풀면서 조나라 왕이 들어가 조회할 것을 바라자 조학으로 하여금 진나라를 섬길 것을 약속하게 하고 6개현을 떼어 주고 화친하였다. 우경이 조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진나라가 왕을 공격하다 지쳐서 돌아갑니까? 왕은 그 힘이 아직도 나아갈 수 있는데 왕을 사랑하여 공격하지 않는 것입니까?” 했다. 왕이 말하기를 “진나라가 나를 공격하다 남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아 반드시 지쳐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했다. 우경이 말하기를 “진나라가 그 힘으로써 취할 수 없는 것을 공격하다 지쳐서 돌아가면 왕께서는 또한 그 힘의 취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그를 보내니 이는 진나라를 도와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왕을 공격하면 왕께서는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했다. 왕이 우경을 말을 조학에게 하였다. 조학이 말하기를 “우경은 진실로 진나라 힘의 이르는 바를 다할 수 있습니까? 진실로 진나라 힘의 나아가지 못하는 곳을 안다면 이는 탄환의 (탄환만한 작은)땅도 주지 못하나 진나라가 내년에 다시 왕을 공격하면 왕께서는 그 안을 떼어주지 않고도 화친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왕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을 듣고 떼어 줄 것을 청하면 그대는 반드시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나를 공격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했다. 조학이 대답하기를 “이는 신이 감히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날에 三晉이 진나라와 사귈 때는 서로 좋게 지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한나라와 위나라와는 잘 지내면서 왕을 공격하니 왕이 진나라를 섬기는 까닭이 반드시 한나라, 위나라와는 같지 않습니다. 지금 신이 足下를 위하여 친함을 저버림의 공격을 풀어 관을 열고 폐백을 통하게 하여 똑 같이 한나라, 위나라와 교류하는데도 내년에 이르러 왕깻 홀로 진나라에게 공격 받는 다면 이는 왕이 진나라를 섬기는 까닭이 반드시 한나라와 위나라의 뒤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신이 감히 맡을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했다.
[一] 集解音釋。徐廣曰:「一作『赦』。」 索隱音釋。
[一] 【集解】 음은 ‘釋’이다. 서광이 말하기를 “‘赦’라고도 쓴다.” 했다. 【索隱】 음은 ‘釋’이다.
[二] 索隱言為足下解其負檐,而親自攻之也。
[二] 【索隱】 족하를 위하여 그 부담을 풀고 친히 스스로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王以告虞卿。虞卿對曰:「郝言『不媾,來年秦復攻王,王得無割其內而媾乎』。今媾,郝又以不能必秦之不復攻也。今雖割六城,何益!來年復攻,又割其力之所不能取而媾,此自盡之術也,不如無媾。秦雖善攻,不能取六縣;趙雖不能守,終不失六城。秦倦而歸,兵必罷。我以六城收天下以攻罷秦,是我失之於天下而取償於秦也。吾國尚利,孰與坐而割地,自弱以彊秦哉?今郝曰『秦善韓、魏而攻趙者,必(以為韓魏不救趙也而王之軍必孤有以)王之事秦不如韓、魏也』,是使王歲以六城事秦也,即坐而城盡。來年秦復求割地,王將與之乎?弗與,是棄前功而挑秦禍也;與之,則無地而給之。語曰『彊者善攻,弱者不能守』。今坐而聽秦,秦兵不獘而多得地,是彊秦而弱趙也。以益彊之秦而割愈弱之趙,其計故不止矣。且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以有盡之地而給無已之求,其勢必無趙矣。」趙王計未定,樓緩從秦來,趙王與樓緩計之,曰:「予秦地(何)如毋予,孰吉?」緩辭讓曰:「此非臣之所能知也。」王曰:「雖然,試言公之私。」[一]樓緩對曰:「王亦聞夫公甫文伯母乎[二]?公甫文伯仕於魯,病死,女子為自殺於房中者二人。其母聞之,弗哭也。其相室曰:[三]『焉有子死而弗哭者乎?』其母曰:『孔子,賢人也,逐於魯,而是人不隨也。今死而婦人為之自殺者二人,若是者必其於長者薄而於婦人厚也。』故從母言之,是為賢母;從妻言之,是必不免為妒妻。故其言一也,言者異則人心變矣。今臣新從秦來而言勿予,則非計也;言予之,恐王以臣為為秦也:故不敢對。使臣得為大王計,不如予之。」王曰:「諾。」
왕이 우경에게 알렸다. 우경이 대답하기를 “‘조학이 화친하지 않으면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와서 왕을 공격할 것이니 왕께서 그 안을 떼어줌이 없어도 화친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지금 화친하여도 조학은 또한 반드시 진나라가 다시 공격하지 않게 하지 못한다 했습니다. 지금 비로 6개성을 떼어주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내년에 다시 공격하면 또한 그 힘(진나라의 힘)으로 취할 수 없는 것으로 떼어주고 화친하면 이는 스스로 다하는 방법이니 화친하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진나라가 비록 공격을 잘 하나 6개현을 취할 수 없고, 조나라가 비록 지킬 수 없으나 끝내 6개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진나라가 지쳐서 돌아갔으니 군대는 반드시 지쳐 있을 것입니다.” 했다. 우리는 6개성으로 천하를 거두어서 지친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이는 우리가 천하에 그것을 잃고, 진나라에게서 보상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오히려 이로운 것이니 어떻게 앉아서 땅을 떼어주어 스스로 약하게 하는 것으로써 진나라를 강하게 하려는 것입니까? 지금 조학이 말하기를 “진나라가 한나라, 위나라와 잘 지내면서 조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반드시(한나라와 위나라가 조나라를 구원하지 않아서 왕의 군대가 반드시 외로워질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왕이 진나라를 섬기는 것이 한나라, 위나라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하고 말했는데 이는 왕으로 하여금 해마다 6개성을 주는 것으로써 진나라를 섬기게 하는 것이니 곧 앉아서 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땅을 떼어 줄 것을 요구하면 왕께서는 장차 그것을 주시렵니까? 주지 않으면 이는 앞서의 공(땅을 떼어준 일)을 버리고 진나라의 재앙을 취하는 것이고, 주면 곧 줄 땅이 없어질 것입니다. 말에 “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잘 지키지 못한다.” 했습니다. 지금 앉아서 진나라의 요구를 들어주면 진나라 군대는 지치지 않고도 땅을 많이 얻을 것이니 이는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조나라를 약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욱 강해진 진나라가 더욱 약해지는 조나라 땅을 떼어 받는 것이니 그 이유를 헤아려서 그치지 앉을 것입니다. 또한 왕의 당은 다함이 있고, 진나라의 구함은 다함이 없으니 다함이 있는 땅으로써 그침이 없는 요구를 주면 그 형세가 반드시 조나라를 없애게 될 것이다. 조나라 왕이 계책을 정하지 않았는데 누완이 진나라로부터 오니 조나라 왕이 누완과 상의하며 말하기를 “진나라에 땅을 주는 것과 주지 않는 것이 어떠하며, 어느 것이 길한가?” 했다. 누완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이는 신이 알 수 잇는 것이 아닙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비록 그러하나 시험 삼아 공의 사견을 말해 보시오.” 했다. 누완이 대답하기를 “왕께서는 또한 저 공보문백의 어머니를 아십니까? 공보문백이 노나라에서 벼슬하다 병들어 죽으니 여자로 방안에서 자살한 자가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듣고도 곡하지(울지) 않았습니다. 그 집안일을 살피는 자(相室)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아들의 죽었는데도 곡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공자는 현인인데도 노나라에서 쫒겨 날 때 이 사람은 따르지 않았다. 지금 죽으니 부인으로 그를 위해 스스로 죽은 자가 두 사람이었다. 이 같은 자는 반드시 윗사람에게는 박하고, 부인에게는 후하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말하면 이는 賢母가 되고, 처가 말하면 이는 반드시 질투하는 처라 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은 한가지이지만 말하는 자가 다르면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것입니다. 지금 신이 새로 진나라에서 와서 주지 말라 하면 계책이 아니라할 것이고, 주라 말하면 왕께서는 신이 진나라를 위한다고 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감히 대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으로 하여금 대왕을 위한 계책을 말하게 한다면 주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예” 했다.
[一] 索隱按:私謂私心也。
[一] 【索隱】 살펴보니 ‘私’는 私心(사사로운 마음)이다.
[二] 正義季康子從祖母。文伯名歜,康子從父昆弟。
[二] 【正義】 계강자의 종조모이다. 문백은 이름이 ‘촉’이니 계강자의 堂叔(從叔)이다.
[三] 正義謂傅姆之類也。
[三] 【正義】 傅姆(부모)의 류를 말한다.
虞卿聞之,入見王曰:「此飾說也,王愼[一]勿予!」樓緩聞之,往見王。王又以虞卿之言告樓緩。樓緩對曰:「不然。虞卿得其一,不得其二。夫秦趙構難而天下皆說,何也?曰『吾且因彊而乘弱矣』。今趙兵困於秦,天下之賀戰勝者則必盡在於秦矣。故不如亟割地為和,以疑天下而慰秦之心。不然,天下將因秦之(彊)怒,乘趙之獘,瓜分之。趙且亡,何秦之圖乎?故曰虞卿得其一,不得其二。願王以此決之,勿復計也。」
우경이 그것을 듣고는 들어가 왕을 뵙고 말하기를 “이는 꾸민 말입니다. 왕께서는 신중히 하시어 (땅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했다. 누완이 듣고는 가서 왕을 뵈었다. 왕이 또한 우경의 말을 누완에게 말하였다. 누완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우경은 그 하나를 얻었으나(그 하나만 알고) 그 둘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그 둘은 알지 못합니다.) 저 진나라와 조나라가 어려움을 엮으면(싸우면) 천하가 모두 기뻐하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말하자면 “내가 또한 강함으로 인하여 약함을 탔기 때문이다. 지금 조나라 군대가 진나라에게 곤궁을 당하므로 천하가 싸움에 승리한 자를 축하하는 것은 곧 모두 진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땅을 떼어주고 화친하여 천하를 의혹(당황)하게 하는 것으로써 진나라를 위로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가 장차 진나라의 감함과 노함으로 인하여 조나라의 피폐함을 타고 외를 쪼개듯이 (조나라를) 나눌 것입니다. 조나라가 또한 망하면 어찌 진나라를 도모할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경이 하나를 알고 둘은 알지 못한다. 한 것입니다. 원하건데 왕께서는 이로써 결단하시고 다시 헤아림이 없게 하소서” 했다.
[一] 集解徐廣曰:「音慎。」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음은 ‘愼’이다.” 했다.
虞卿聞之,往見王曰:「危哉樓子之所以為秦者,是愈疑天下,而何慰秦之心哉?獨不言其示天下弱乎?且臣言勿予者,非固勿予而已也。秦索六城於王,而王以六城賂齊。齊,秦之深讎也,得王之六城,并力西擊秦,齊之聽王,不待辭之畢也。則是王失之於齊而取償於秦也。而齊、趙之深讎可以報矣,而示天下有能為也。王以此發聲,兵未窺於境,臣見秦之重賂至趙而反媾於王也。從秦為媾,韓、魏聞之,必盡重王;重王,必出重寶以先於王。則是王一舉而結三國之親,而與秦易道也。」[一]趙王曰:「善。」則使虞卿東見齊王,與之謀秦。虞卿未返,秦使者已在趙矣。樓緩聞之,亡去。趙於是封虞卿以一城。
우경이 듣고는 가서 왕을 뵙고 말하기를 “위험합니다. 누자(누완)의 진나라를 위한 것이니 이는 더욱 천하를(천하가 조나라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인데 어찌 진나라의 마음을 위로하겠습니까? 어찌하여 천하에 (조나라가) 약하게 보임을 말하지 않습니까? 도한 신이 주지 말라고 말한 것은 단지 주지 않을 뿐만이 아닙니다. 진나라가 왕에게 6개성을 원하면 왕께서는 6개성을 제나라에 주십시오. 제나라는 진나라의 깊은 원수이니 왕의 6개성을 얻으면 (조나라와)힘을 합쳐 서쪽으로 진나라를 칠 것입니다. 제나라가 왕의 말을 듣는 것은 말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곧 이는 왕께서 제나라에 그것을 잃고 진나라에서 보상을 취하는 것이며, 제나라와 조나라의 깊은 원한을 갚을 수 있으니 천하에 할 수 있음(유능함)을 보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왕께서 이로써 소리를 내시면(선언하시면) 군대가 국경을 엿보지 못할 것이고, 신은 진나라의 많은 재물이 조나라에 이르고 도리어 왕에게 화친을 청하는 것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진나라가 화친을 요구하면 한나라, 위나라가 그것을 듣고 반드시 왕을 귀중하게 여길 것이고, 왕을 귀중하게 여기면 반드시 많은 보배를 내어 왕을 우선하게 될 것입니다. 곧 이는 왕이 한 번 들어 삼국이 친함을 맺고, 진나라와 길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했다. 조나라 왕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고는 곧 우경을 사신으로 동쪽으로 보내 제나라 왕을 뵙고 그와 더불어 진나라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우경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진나라 사신이 이미 조나라에 있었다. 누완이 그것을 듣고 도망하여 갔다. 조나라가 이에 우경을 한 성에 봉하였다.
[一] 正義前取秦攻,今得賂,是易道也。易音亦。
[一] 【正義】 앞서는 진나라의 공격을 받았고, 지금은 재물을 얻었으니 이것이 길을 바꾼 것이다. ‘易’은 음이 ‘亦’이다.
居頃之,而魏請為從。趙孝成王召虞卿謀。過平原君,[一]平原君曰:「願卿之論從也。」虞卿入見王。王曰:「魏請為從。」對曰:「魏過。」[二]王曰:「寡人固未之許。」對曰:「王過。」王曰:「魏請從,卿曰魏過,寡人未之許,又曰寡人過,然則從終不可乎?」對曰:「臣聞小國之與大國從事也,有利則大國受其福,有敗則小國受其禍。今魏以小國請其禍,而王以大國辭其福,臣故曰王過,魏亦過。竊以為從便。」王曰:「善。」乃合魏為從。
얼마 후 위나라가 합종을 청하였다. 조나라 효성왕이 우경을 불렀다. (우경이) 평원군을 지나는데(가는 길에 방문하자)평원군이 말하기를 “경의 논의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했다. 우경이 들어가 왕을 뵈었다. 왕이 말하기를 “위나라가 합종을 청합니다.”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위나라가 지나칩니다.(위나라의 잘못입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진실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니 대답하기를 “왕의 잘못입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위나라가 합종을 청하니 경은 위나라의 잘못이라 하고, 과인이 아직 허락하지 않았다 하니 또한 과인 이 잘못했다. 하니 그러하면 합종은 끝내 할 수 없는 것입니까?” 했다. 대답하기를 “신이 들으니 소국과 대국의 관계는 일을 따르기 때문에 이로움이 있으면 대국이 복을 받고, 무너짐이 있으면 곧 소국이 재앙을 받는다고 합니다. 지금 위나라는 소국으로서 그 재앙을 청하고 왕께서는 대국으로서 그 복을 사양(거절)하시니 신이 그 때문에 왕의 허물이라 하고, 위나라 또한 잘못이라 한 것입니다. 가만히(조용히) 합종이 편하게 여겨집니다.” 했다. 왕이 “좋습니다.”하고는 이에 위나라와 합종하였다.
[一] 索隱過音戈。
[一] 【索隱】 ‘過’의 음은 ‘戈’이다.
[二] 集解光臥反。
[二] 【集解】 ‘光’과 ‘臥’의 反이다.
虞卿既以魏齊之故,不重萬戶侯卿相之印,與魏齊閒行,卒去趙,困於梁。魏齊已死,不得意,乃著書,[一]上採春秋,下觀近世,曰節義、稱號、揣摩、政謀,凡八篇。以刺譏國家得失,世傳之曰虞氏春秋。[二]
우경이 위제의 일 때문에 만호후의 지위와 경상의인을 중하게 여기지 않고 위제와 함께 한가로이 다니다 마침내 조나라를 떠났는데 양에서 곤궁하였다. 위제가 죽고 나서 이루지 못한 뜻을 이에 글을 써서 위로는 『春秋』에서 캐고, 아래로는 근세를 살펴서 「節義」, 「稱號」, 「揣摩」, 「政謀」 등 모두 8편을 지어서 국가의 득실을 풍자하고 꾸짖었으니(비판하였는데) 세상에서 그것을 전하여 『虞氏春秋』라 했다.
[一] 索隱魏齊,魏相,與應侯有仇,秦求之急,乃抵虞卿。卿棄相印,乃與齊閒行亡歸梁,以託信陵君。信陵君疑未決,齊自殺。故虞卿失相,乃窮愁而著書也。
[一] 【索隱】 위제는 위나라 재상인데 응후와 원한이 있어 진나라가 급하게 구하니 이에 우경에게 의지하였다. 우경이 재상의 인을 버리고 위제와 함께 한가로이 거닐다 양에 도망하여 신릉군에게 의지하였다. 신릉군이 결단하지 않음을 의심하여 위제가 자살하였다. 그러므로 우경이 재상을 잃고 이에 궁군함을 슬퍼하며 글을 썼다.
[二] 正義蓺文志云十五篇。
[二] 【正義】 「藝文志」에 15편이라 했다.
太史公曰:平原君,翩翩濁世之佳公子也,然未睹大體。鄙語曰「利令智昏」,平原君貪馮亭邪說,使趙陷長平兵四十餘萬眾,邯鄲幾亡。[一]虞卿料事揣情,為趙畫策,何其工也!及不忍魏齊,卒困於大梁,庸夫且知其不可,況賢人乎?然虞卿非窮愁,亦不能著書以自見於後世云。
태사공이 말하였다. 평원군은 펄펄 나는 새 같은 혼탁한 세상으 아름다운 공자였으나 大體(기본이 되는 큰 줄거리)를 보지 못하였다. 속된 말에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한다.” 하였는데 평원군은 풍정의 삿된 말을 탐하다가 조나라로 하여금 장평의 전쟁에서 군대 40여만을 함정에 밀어 넣고 한단을 거의 잃을 뻔하였다. 우경은 일을 헤아리고 정을 헤아려 조나라를 위한 계책을 그리니 어찌도 그리 공교로운가! 위제를 차마 버리지 못함에 이르러 마침내 대량에서 곤궁하였으니 평범한 사람도 또 할 수 없을 알았는데 하물며 현명한 사람에게 있어서이겠는가? 그러나 우경이 궁곤하고 근심하지 않았다면 또한 저서로서 스스로 후세에 드러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一] 集解譙周曰:「長平之陷,乃趙王信閒易將之咎,何怨平原受馮亭哉?」
[一] 【集解】 초주가 말하기를 ‘장평의 몰살은 바로 조나라 왕이 이간하는 말을 믿고 장수를 바꾼 허물 때문이니 어찌 평원군이 풍(빙)정을 받은 것을 원망하겠는가?
【索隱述贊】翩翩公子,天下奇器。笑姬從戮,義士增氣。兵解李同,盟定毛遂。虞卿躡蹻,受賞料事。及困魏齊,著書見意。
【索隱述贊】 새처럼 나는 공자는 천하의 기이한 그릇이로다. 웃음 짓는 여자를 죽여 의로운 선비의 기를 더하였도다. 군대는 이동에게 풀려지고, 맹은 무수에게 정하여졌도다. 우경이 짚신 신고 우산 쓰고 상을 받고 일을 헤아렸도다. 위제의 곤궁함에 이르러 글을 써 뜻을 나타내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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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권74, 맹자, 순경열전 제 14 (0) | 2019.01.04 |
사기권73, 백기 왕전 왕리 열전 제13 (0) | 2018.1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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