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기열전

사기권80 악의열전 제20

by 최인표 2019. 1. 31.

史記卷八十

  樂毅列傳第二十

 

樂毅者其先祖曰樂羊樂羊為魏文侯將伐取中山[]魏文侯封樂羊以靈壽[]樂羊死葬於靈壽其後子孫因家焉中山復國至趙武靈王時復滅中山[]而樂氏後有樂毅

악의는 그 선조는 악양이다. 악양은 위나라 무후 때 장수가 되어 중산을 쳐서 취하였는데 위나라 문후가 악양을 영수 땅에 봉하였다. 악양이 죽자 영수 땅에 장례하고 그 후 자손들이 여기를 로 하였다. 중산이 나라를 수복하였다가 조나라 무령왕 대에 이르러 다시 중산을 멸망시켰는데 악씨의 후예 중에 악의가 있다.

 

[] 正義今定州

[] 正義지금의 정주이다.

 

[] 集解徐廣曰:「屬常山。」 索隱地理志常山有靈壽縣中山桓公所都也。 正義今鎮州靈壽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상산에 속한다.” 했다. 索隱】 『地理志에 상산은 영수현에 있고, 중산은 환공이 도읍한 곳이다.

 

[] 索隱中山魏雖滅之尚不絕祀故後更復國至趙武靈王又滅之也

[] 索隱중산은 위나라가 비록 멸망시켰으나 오히려 제사가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나라를 수복하였다가 조나라 무령왕 때 또한 멸망시켰다.

 

樂毅賢好兵趙人舉之及武靈王有沙丘之亂[]乃去趙適魏聞燕昭王以子之之亂而齊大敗燕燕昭王怨齊未嘗一日而忘報齊也燕國小辟遠力不能制於是屈身下士先禮郭隗[]以招賢者樂毅於是為魏昭王使於燕燕王以客禮待之樂毅辭讓遂委質為臣燕昭王以為亞卿久之

악의는 어질고(현명하고) 병법을 좋아하였는데 조나라 사람이 천거하였다. 무령왕 때에 이르러 사구의 난이 일어나자 이에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에 갔다. 연나라 소왕이 자지의 난 때문에 제나라가 연나라를 크게 무너뜨린 것에 대해 연나라 소왕이 제나라를 원망하여 일찍이 하루도 제나라에 보복할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연나라는 작고, 궁벽한 곳에 치우치고 멀리 있어 힘으로 (제나라를)제압할 수 없어 이에 몸을 굽히고 선비에게 낮추었으며 먼저 곽외를 예로 대우하고 현명한 자를 불렀다. 악의가 이에 위나라 소왕을 위하여 연나라에 사신으로 가니 연나라 왕이 빈객의 예로써 대우하였다. 악의가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인질로 신하가 되었는데 연나라 소왕이 아경으로 삼은 것이 오래되었다.

 

[] 集解徐廣曰:「趙有沙丘宮近鉅鹿。」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조나라에 사구궁이 있는데 거록과 가깝다.” 했다.

 

[] 正義說苑云:「燕昭王問於隗曰:『寡人地狹民寡齊人取薊八城匈奴驅馳樓煩之下以孤之不肖得承宗廟恐社稷危存之有道乎?』隗曰:『帝者之臣其名臣其實師王者之臣其名臣其實友霸者之臣其名臣其實僕危困國之臣其名臣其實虜今王將自東面目指氣使以求臣則冢役之才至矣南面聽朝不失揖讓之理以求臣則人臣之才至矣北面等禮不乘之以勢以求臣則朋友之才至矣西面逡巡以求臣則師傅之才至矣誠欲與王霸同道隗請為天下之士開路。』於是常置隗為上客。」

[] 正義】 『說苑연나라 소왕이 곽외에게 묻기를 관인은 땅이 좁고 백성은 적은데 제나라 사람들은 계팔성을 취하고, 흉노는 말을 달려 여러 번 내려왔습니다. (나의:소왕)가 현명하지 못함에도 종묘를 계승하였으나 사직을 위태롭게 할까 두려우니 그것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곽외가 말하기를 황제의 신하는 그 이름을 신하라 하나 실제는 스승이고, 왕의 신하는 그 이름을 신하라 하나 실제는 벗이며, 패자의 신하는 그 이름을 신하라 하나 그 실제는 종이고, 위태롭고 곤궁한 나라의 신하는 그 이름을 신하라 하나 그 실제는 포로입이다. 지금 왕께서 장차 스스로 동쪽을 향하여 눈으로 가리키고, 기세로 신하를 찾으면 곧 무덤에서 부리는 재질의 인재가 이를 것이고, 남쪽을 향하고 조정의 정사를 들으며 공손하고 겸양하는 이치를 잃지 않고 신하를 찾으면 곧 다른 사람의 신하 노릇하는 인재가 이를 것이며, 북쪽을 향하고 예를 같게 하고 형세를 타지 않는 것으로써 신하를 찾으면 벗할 인재가 이를 것이며, 서쪽을 향하고 머뭇거리고 돌아다니며 신하를 찾으면 사부의 인재가 이를 것입니다. 진실로 왕을 패자로 만드는 것과 길을 같이하고자 한다면 천하의 선비를 위하여 길을 열어줄 것을 청합니다.’ 했다. 이에 늘 곽외를 상객으로 삼아 대우하였다.

 

當是時齊湣王彊南敗楚相唐眛[]於重丘[]西摧三晉於觀津[]遂與三晉擊秦助趙滅中山破宋廣地千餘里與秦昭王爭重為帝已而復歸之諸侯皆欲背秦而服於齊湣王自矜百姓弗堪於是燕昭王問伐齊之事樂毅對曰:「霸國之餘業也地大人眾未易獨攻也王必欲伐之莫如與趙及楚。」於是使樂毅約趙惠文王別使連楚令趙嚪說秦[]以伐齊之利諸侯害齊湣王之驕暴皆爭合從與燕伐齊樂毅還報燕昭王悉起兵使樂毅為上將軍趙惠文王以相國印授樂毅樂毅於是并護[]燕之兵以伐齊破之濟西諸侯兵罷歸而燕軍樂毅獨追至于臨菑齊湣王之敗濟西亡走保於莒樂毅獨留徇齊皆城守樂毅攻入臨菑盡取齊寶財物祭器輸之燕燕昭王大說親至濟上勞軍行賞饗士封樂毅於昌國[]號為昌國君於是燕昭王收齊鹵獲以歸而使樂毅復以兵平齊城之不下者

이러한 때를 당하여 제나라 민왕이 강해서 남쪽으로 초나라 재상 당매를 중구에서 무너뜨리고 서쪽으로 삼진을 관진에서 꺽어 마침내 삼진과 함께 진나라를 치고 조나라를 도와 중산을 멸망시키며, 송나라를 깨트려 천 여리의 땅을 넓혔다. 진나라 소왕과 함께 거듭 황제가 되기를 다투다 얼마 후 다시 왕으로 되돌렸다. 제후들이 모두 진나라를 배반하고 제나라에 복종하고자 하였다. 민왕이 스스로 자랑하였으나 백성들은 견디지 못하였다. 이에 연나라 소왕이 제나라를 치는 일을 물었다. 악의가 대답하기를 제나라는 패업을 이루었던 나라여서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 쉽게 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왕께서 반드시 제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조나라, 초나라, 위나라와 함께하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이에 악의로 하여금 조나라 혜문왕과 약속하게 하고 별도로 초나라, 위나라와 잇게 하며, 조담에게 명하여 제나라를 치는 이익으로써 진나라를 설득하게 하였다. 제후들이 제나라 민왕의 교만함과 사나움을 미워하여 모두 다투어 합종하여 연나라와 제나라를 치려하였다. 악의가 돌아와 보고하니 연나라 소왕이 모든 군대를 일으키고 악의로 하여금 상장군이 되게 하니 조나라 혜문왕도 상국의 관인을 악의에게 주었다. 악의가 이에 조나라, 초나라, 한나라, 연나라의 군대를 아우르고 통합하여 거느리고 제나라를 쳐서 제나라의 서쪽을 깨트렸다. 제후들이 군대를 파하고 돌아갔는데 연나라 군대의 악의만이 홀로 추격하여 임치에 이르렀다. 제나라 민왕이 제나라 서쪽이 무너지자 도망하여 달아나 거 땅을 지켰다. 악의가 홀로 머물며 제나라를 쫓자 제나라의 모든 성이 지키기만 하였다. 악의가 임치를 공격하고 들어가 제나라의 보배와 재물, 제기를 모두 취하여 연나라로 실어갔다. 연나라 소왕이 크게 기뻐하며 직접 제수 가에 이르러 군사를 위로하고 상을 주며 군사들을 먹이고, 악의를 창국에 봉하여 부르기를 창국군이라 했다. 이에 연나라 소왕은 제나라의 전리품을 거두어 돌아가고 악의로 하여금 다시 군대로써 제나라 성의 함락하지 않은 것을 평정하게 하였다.


[] 索隱莫葛反

[] 索隱이다.

 

[] 索隱地理志縣名屬平原正義在冀州城武縣界

[] 索隱】 『地理志현의 이름인데 평원에 속한다.”했다. 正義기주성 무현 경계에 있다.


[] 索隱地理志觀津縣名屬信都漢初屬清河也正義在冀州武邑縣東南二十五里

索隱】 『地理志“‘관진은 현의 이름이니 신도에 속하는데 한나라 초에는 청하에 속하였다. 正義기주 무읍현 동남쪽 25리에 있다.

 

[] 集解徐廣曰:「進說之意。」 索隱嚪音田濫反字與字同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은 말을 올린다는 뜻이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인에 글자는 (먹일 담)’자와 같다.

 

[] 索隱護謂總領之也

[] 索隱總領(모든 것을 통틀어 거느림)을 말한다.

 

[] 集解徐廣曰:「屬齊。」 索隱地理志縣名屬齊郡正義故昌城在淄州淄川縣東北四十里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屬齊이다.” 했다. 索隱】 『地理志현의 이름인데 제나라 군에 속한다.” 했다. 正義옛 창성은 치주 치천현 동북쪽 40리에 있다.

 

樂毅留徇齊五歲下齊七十餘城皆為郡縣以屬燕唯獨莒即墨未服[]會燕昭王死子立為燕惠王惠王自為太子時嘗不快於樂毅及即位齊之田單聞之乃縱反閒於燕:「齊城不下者兩城耳然所以不早拔者聞樂毅與燕新王有隙欲連兵且留齊南面而王齊齊之所患唯恐他將之來。」於是燕惠王固已疑樂毅得齊反閒乃使騎劫[]代將而召樂毅樂毅知燕惠王之不善代之畏誅遂西降趙趙封樂毅於觀津號曰望諸君[]尊寵樂毅以警動於燕

악의가 제나라에 머물면서 쫓은 지 5년 만에 제나라 70여개 성을 함락시키고 모두 군현으로 삼아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는데 오직 거 땅과 즉묵 땅만은 항복하지 않았다. 연나라 소왕이 죽자 아들이 즉위하여 연나라 혜왕이 되었다. 혜왕이 태자된 일찍부터 악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즉위하자 제나라 전단이 듣고 연나라에 반간계를 써서 말하기를 제나라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것은 두 성 뿐이다. 그런데 빠르게 함락시키지 못한 까닭은 악의와 연나라의 새로운 왕이 틈이 있어서 군대를 한데 아우르고 또한 제나라에 머물면서 남쪽을 향해 앉아 제나라에서 왕 노릇하고자 해서라고 들었다. 제나라가 근심하는 것은 오직 다른 장수가 오는 것뿐이다.” 했다. 이에 연나라 혜왕이 진실로 이미 악의를 의심하다가 제나라의 이간하는 말을 듣고는 이에 기겁으로 하여금 장수를 대신하게 하고 악의를 불렀다. 악의가 연나라 혜왕의 좋지 않게 여겨 대신하게 하려는 것을 알고는 죽음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서족으로 가서 조나라에 항복하였다. 조나라가 악의을 관진 땅에 봉하고 부르기를 망제군이라 했다. 악의를 높이고 총애하자 연나라와 제나라가 놀라 동요하였다.

 

[] 正義即墨今萊州

[] 正義즉묵은 지금의 래주이다.

 

[] 索隱燕將姓名也

[] 索隱연나라 장수의 성과 이름이다.

 

[] 索隱望諸澤名在齊蓋趙有之故號焉戰國策

[] 索隱망저는 습지의 이름인데 제나라에 있다. 대개 조나라가 그것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 戰國策“‘이라 썼다.” 했다.

 

齊田單後與騎劫戰果設詐誑燕軍遂破騎劫於即墨下而轉戰逐燕北至河上[]盡復得齊城而迎襄王於莒入于臨菑

제나라 전단이 후에 기겁과 싸우는데 과연 거짓을 베풀고 연나라를 속여서 마침내 기겁을 즉묵 땅 아래에서 깨트리고 싸움을 돌려 연나라를 축출하고 황하 가에 이르렀는데 제나라 성을 모두 다시 얻었으므로 제나라 양왕을 거 땅에서 맞이하여 임치에 들어갔다.


[] 正義滄德二州之北河

[] 正義, 덕 두 주의 북쪽 강이다.

 

燕惠王後悔使騎劫代樂毅以故破軍亡將失齊又怨樂毅之降趙恐趙用樂毅而乘燕之獘以伐燕燕惠王乃使人讓樂毅且謝之曰:「先王舉國而委將軍將軍為燕破齊報先王之讎天下莫不震動寡人豈敢一日而忘將軍之功哉會先王棄群臣寡人新即位左右誤寡人寡人之使騎劫代將軍為將軍久暴露於外故召將軍且休計事將軍過聽以與寡人有隙遂捐燕歸趙將軍自為計則可矣而亦何以報先王之所以遇將軍之意乎?」

연나라 혜왕이 기겁으로 하여금 악의를 대신하게 하였기 때문에 군대는 깨트려지고 장수는 죽고 제나라를 잃은 것을 후회하고, 또한 악의가 조나라에 항복한 것을 원망하며, 조나라가 악의를 등용하여 연나라의 피폐함을 타고 연나라를 칠 것을 두려워하였다. 연나라 혜왕이 이에 사람을 시켜 악의를 꾸짖고 또한 사과하며 말하기를 선왕이 나라를 들어서 장군에게 맡겨서 장군은 연나라를 위하여 제나라를 깨트리고 선왕의 원수를 갚으니 천하가 진동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과인이 어찌 감히 하루라도 장군의 공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선왕이 여러 신하를 버리시고 과인이 새로이 즉위하여 좌우 측근들이 과인을 잘못하게 하였습니다. 과인이 기겁으로 하여금 장군을 대신하게 한 것은 장군이 오래 동안 밖에서 이슬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장군을 불러 또한 쉬게 하고 일을 계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장군이 듣기를 지나치게 하여 과인과 틈이 있다 여겨 마침내 연나를 버리고 조나라에 돌아갔습니다. 장군이 스스로 계획하면 곧 옳을 것이나 또한 무엇으로서 선왕이 장군을 대우한 뜻을 갚을 것입니까?” 했다.

 

樂毅報遺燕惠王書曰臣不佞不能奉承王命以順左右之心恐傷先王之明有害足下之義故遁逃走趙今足下使人數之以罪臣恐侍御者不察先王之所以畜幸臣之理又不白臣之所以事先王之心故敢以書對

악의가 연나라 혜왕이 보낸 글에 답장하여 말하기를 신은 재주가 없어 왕명을 받들어 잇는 것으로써 좌우의 마음을 따르지 못하여 선왕의 밝음을 해치고 족하(그대)의 의로움을 해침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조나라로 도망한 것입니다. 지금 족하가 사람을 시켜 여러 번 죄를 꾸짖으시나 신은 왕을 가까이 모시는 자들이 선왕의 신을 기르고 사랑하는 까닭의 이치를 살피지 못하고, 또한 신이 선왕을 섬기는 까닭의 마음을 명백하게 밝히지 못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글로서 대답합니다.


臣聞賢聖之君不以祿私親其功多者賞之其能當者處之故察能而授官者成功之君也論行而結交者立名之士也臣竊觀先王之舉也見有高世主之心[]故假節於魏以身得察於燕先王過舉廁之賓客之中立之群臣之上不謀父兄[]以為亞卿臣竊不自知自以為奉令承教可幸無罪故受令而不辭

신이 들으니 현명하고 성스러운 임금은 사사로이 친한 것으로써 녹을 주지 않으며 그 공이 많은 자는 상을 주고, 그 능력에 마땅한 자는 (지위에)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을 살펴서 관직을 주면 공을 이루는 임금입니다. 행실을 평가하여 사귐을 맺는 자가 이름을 세우는 선비입니다. 신이 가만히 선왕의 천거를 살펴보았는데 세상 사람을 높이는 임금의 마음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위나라에서 부절을 빌려 스스로 연나라를(연나라에 들어가) 살필 수 있었습니다. 선왕께서 저를 분에 지나치게 천거하여 빈객의 가운데 섞이게 하고 여러 신하의 위에 세우고 (선왕의)부형과 도모하지(의논하지) 않고 아경을 삼았습니다. 신은 스스로를 알지 못하나 스스로 명령을 받들고 가르침을 이으면 요행히도 죄가 없을만하다 여겼기 때문에 명령을 받고도 사양하지 않은 것입니다.


[] 正義樂毅見燕昭王有自高尊世上人主之心故假魏節使燕

[] 正義악의가 연나라 소왕이 스스로 세상 사람을 높이는 임금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위나라의 부절을 빌려 연나라에 사신을 간 것이다.


[] 正義杜預云:「父兄同姓群臣也。」

[] 正義두예가 말하기를 “‘부형은 같은 성의 여러 신하들이다.” 했다.

 

先王命之曰:「我有積怨深怒於齊不量輕弱而欲以齊為事。」臣曰:「夫齊霸國之餘業而最勝之遺事也練於兵甲習於戰攻王若欲伐之必與天下圖之與天下圖之莫若結於趙且又淮北宋地楚魏之所欲也趙若許而約四國攻之齊可大破也。」先王以為然具符節南使臣於趙顧反命起兵擊齊以天之道先王之靈河北之地隨先王而舉之濟上[]濟上之軍受命擊齊大敗齊人輕卒銳兵長驅至國齊王遁而走莒僅以身免珠玉財寶車甲珍器盡收入于燕齊器設於寧臺[]大呂陳於元英[]故鼎反乎磿室[]丘之植植於汶篁[]自五伯已來功未有及先王者也先王以為慊於志[]故裂地而封之使得比小國諸侯臣竊不自知自以為奉命承教可幸無罪是以受命不辭

선왕이 명하여 말하기를 나는 제나라에 원한을 쌓아 깊은 노여움이 있는데 가볍고 약함을 헤아리지 않고 제나라로써 일을 삼고자 한다.” 하셨으므로 신이 대저 제나라는 패업을 이루었던 나라여서 남은 일들이 모두 이겼던 것입니다. 병기와 갑옷이 단련되고 싸우고 공격하는 것이 익숙합니다. 왕께서 만약 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천하와 함께 도모해야 합니다. 천하와 함께 도모한다면 조나라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또 회수 북쪽과 송나라 당은 초나라와 위나라가 바라는 것인데 조나라가 만약 허락한다면 네 나라가 약속하고 공격한다면 제나라를 크게 깨트릴 수 있습니다.” 했습니다. 선왕께서 그렇다 여기시고 부절을 갖추어 남쪽으로 신을 조나라에 사신 보내시었습니다. 돌아와 복명하니 군대를 일으켜 제나라를 치셨습니다. 하늘의 도리와 선왕의 신령스러움으로 하북의 땅들이 선왕을 따라 제수 가에 모였습니다. 제수 가에 모인 군대가 명을 받고 제나라를 치자 제나라 사람들이 크게 무너졌습니다. 가벼운 군대와 날카로운 병기로 멀리 달려가 나라에 이르렀습니다. 제나라 왕이 물러나 거 땅으로 달아나 겨우 자신만 (잡히는 것을)면하였는데 주옥과 재물, 보물, 수레와 병기, 보배로운 그릇을 모두 연나라에 거두어 들였습니다. 제나라의 기물은 영대에 진열하고, 大呂는 원영에 진열하고, 옛 솥은 마실에 되돌려 놓고 문수의 대나무를 계 땅의 언덕에 옮겨 심고, 5백으로부터 이래로 공이 선왕에게 미친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공이 선왕보다 나은 자가 없었습니다.) 선왕이 뜻을 이룬 것에 만족하였기 때문에 땅을 찢어 봉하고 작은 나라의 제후에 비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신이 스스로를(저의 능력을) 알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명령을 받들고 가르침을 이어 요행히도 죄가 없을 수 있었기(죄를 짓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명령을 받아도 사양하지 않은 것입니다.


[] 正義濟上在濟水之上

[] 正義제상은 제수의 가에 있다.

 

[] 索隱燕臺也正義括地志云:「燕元英磿室二宮皆燕宮在幽州薊縣西四里寧臺之下。」

[] 索隱연나라 대이다. 正義】 『括地志“‘연원영마실두 궁은 모두 연나라 궁인데 유주 삽현 서쪽 4리 영대의 아래에 있다.


[] 索隱大呂齊鍾名元英燕宮殿名也

[] 索隱대려는 제나라 종 이름이다. ‘원영은 연나라 궁전의 이름이다.

 

[] 集解徐廣曰:「歷也。」 索隱燕鼎前輸於齊今反入於磿室磿室亦宮名戰國策作歷室正義括地志云:「歷室燕宮名也。」高誘云:「燕噲齊伐燕殺噲得鼎今反歸燕故鼎。」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이다.” 했다. 索隱燕鼎은 앞서 제나라에 옮겨졌다가 지금 돌려 마실에 들여 온 것이다. 마실은 또한 궁의 이름인데 戰國策에는 “‘歷室로 썼다.” 正義】 『括地志“‘室歷은 연나라 궁의 이름이다.” 했다. 고유가 말하기를 연나라 쾌의 난 때 제나라가 연나라를 쳐서 쾌를 죽이고 솥을 얻었는데 지금 연나라의 옛 솥을 되돌리게 한 것이다.” 했다.


[] 集解徐廣曰:「竹田曰篁謂燕之疆界移於齊之汶水。」 索隱薊丘燕所都之地也言燕之薊丘所植皆植齊王汶上之竹也徐注非也正義幽州薊地西北隅有薊丘又汶水源出兗州博城縣東北原山西南入泲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죽전(대나무 밭)이라 한다. 연나라의 경계가 제나라 문수에 옮겨진 것을 말한다.” 했다. 索隱계구는 연나라가 도읍한 땅이다. 또 문수의 근원은 연주 박성현 동북쪽 원산에서 나와서 서남쪽으로 제수에 들어간다.


[] 索隱按慊音苦簟」,常慊然而不愜其志也

[] 索隱살펴보니 의 음은 이다. ‘이라 쓴 것은 항상 모자라서 그 뜻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다.


臣聞賢聖之君功立而不廢故著於春秋知之士名成而不毀故稱於後世若先王之報怨雪恥萬乘之彊國收八百歲之蓄積及至棄群臣之日餘教未衰執政任事之臣脩法令慎庶孽施及乎萌皆可以教後世

신이 들으니 현명하고 성스러운 임금은 공을 세우면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춘추에 드러나고 일찍 아는 선비(선견지명의 선비)가 이름을 이루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후세에 일컬어진다.’ 합니다. 만약 선왕처럼 원수를 갚고 부끄러움을 씻어 만승의 강한 나라를 멸망시키고 800년의 쌓음을 거두었으니 여러 신하들을 버리는 날에 이르기까지 남은 가르침이 쇠퇴하지 않아 정사를 잡고 일을 맡은 신하들이 법령을 닦고 서얼을 삼가게 하며 백성들에게 까지 베풀어 모두 후세에 가르칠 만합니다.

 

臣聞之善作者不必善成善始者不必善終昔伍子胥說聽於闔閭而吳王遠跡至郢夫差弗是也賜之鴟夷而浮之江吳王不寤先論之可以立功故沈子胥而不悔子胥不蚤見主之不同量是以至於入江而不化[]

신이 들으니 일을 잘 하는 자가 반드시 잘 이루는 것은 아니며, 처음을 잘 한 자가 반드시 끝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합니다. 옛날에 오자서의 말을 합려가 받아들여서 오나라 왕의 자취는 멀리 영 땅에 이르렀으나 부차는 이를 듣지 않고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강에 띄워 죽였습니다. 오나라 왕은 앞 선 논의가 공을 세울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자서를 빠트리고도 뉘우치지 않았으니 오자서는 일찍 임금의 도량이 같지 않음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강에 들어감(던져짐)에 이르러도 변화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 索隱言子胥懷恨故雖投江而神不化猶為波濤之神也

[] 索隱오자서가 원한을 품었기 때문에 비록 강에 던져졌어도 정신은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파도의 신이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夫免身立功以明先王之跡臣之上計也離毀辱之誹謗[]墮先王之名[]臣之所大恐也臨不測之罪以幸為利義之所不敢出也[]

대저 자신은 화를 면하고 공을 세우는 것으로써 선왕의 자취를 밝히는 것은 신의 으뜸 되는 계책입니다. 헐뜯고 치욕스러운 비방을 떠나 선왕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것을 신이 크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죄에 임하여서도 요행히 이로움을 삼는 것은 의리상 감히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 索隱誹音方味反

[] 索隱의 음은 이다.

 

[] 索隱墮音許規反

[] 索隱의 음은 이다.

 

[] 索隱謂既臨不測之罪以幸免為利今我仍義先王之恩雖身託外國而心亦不敢出也

[] 索隱이미 예측할 수 없는 죄에() 임하였(지었는)는데도 요행히 면하고 이로움으로 삼았는데 지금 내가 선왕의 은혜를 입은 의리상 비록 몸은 외국에 의탁하였어도 마음은 또한 감히 나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臣聞古之君子交絕不出惡聲[]忠臣去國不絜其名[]臣雖不佞[]數奉教於君子矣[]恐侍御者之親左右之說不察疏遠之行故敢獻書以聞唯君王之留意焉[]

신이 들으니 옛 날의 군자는 사귐이 끊어져도 나쁜 소리(말을)를 내지 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그 명성을 헤아리지(명성을 위해 임금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 합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여러 번 군자에게서 가르침을 받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모시는 자들의 측근의 말을 가까이하여 멀리 쫓겨난 (신의)행실을 살피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감히 글을 올리는 것으로서 오직 임금의 남긴 뜻을 들을 뿐입니다. 했다.

 

[] 正義言君子之人交絕不說己長而談彼短

[] 正義군자 된 사람은 사귐이(교류가) 끊어져도 자기의 장점을 말하고 그의(다른 사람의) 단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는 말이다.


[] 索隱言忠臣去離本國不自絜其名云己無罪故禮曰大夫去其國不說人以無罪是也正義言不絜己名行而咎於君若箕子不忍言殷惡是也

[] 索隱충신은 본국을 떠나가더라도 스스로 그 이름을 결백하다 하여 자기의 죄 없음을 말하지 않는다. 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기곡례 하에 대부는 그 나라를 떠나면 다른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 것이 이것이다. 正義자기의 이름과 행실을 결백하다 하면서 임금을 허물하지 않음을 말한 것으로 기자가 차마 은나라의 나쁜 점을 말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 索隱不佞猶不才也

[] 索隱不佞不才(재능이 없다.)’와 같다.

 

[] 索隱上音朔言我已數經奉教令於君子君子即識禮之人謂己在外猶云己罪不說王之有非故下云不察疏遠之行」,斯亦忠臣之節也

[] 索隱위의 는 음이 이다. 자기가 이미 여러 번 군자의 교령을 다스리고 받들었음을 말한 것이다. 군자는 곧 예를 아는 사람이다. 자기가 밖에(외국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기의 죄를 말하고, 왕의 죄 있음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에서 말한 멀리하는 행실을 살피지 않았다,’ 한 이것이 또한 충신의 절개임을 말한 것이다.

 

[] 集解夏侯玄曰:「觀樂生遺燕惠王書其殆庶乎知機合道以禮始終者與又其喻昭王曰:『伊尹放太甲而不疑太甲受放而不怨是存大業於至公而以天下為心者也。』夫欲極道德之量務以天下為心者必致其主於盛隆合其趣於先王苟君臣同符則大業定矣于斯時也樂生之志千載一遇夫千載一遇之世亦將行千載一隆之道豈其局跡當時止於兼并而已哉夫兼并者非樂生之所屑彊燕而廢道又非樂生之所求不屑苟利心無近事不求小成斯意兼天下者也則舉齊之事所以運其機而動四海也夫討齊以明燕王之義此兵不興於為利矣圍城而害不加於百姓此仁心著於遐邇矣舉國不謀其功除暴不以威力此至德全於天下矣邁全德以率列國則幾於湯武之事矣樂生方恢大綱以縱二城收民明信以待其獘將使即墨莒人顧仇其上願釋干戈賴我猶親善守之智無所施之然則求仁得仁即墨大夫之義仕窮則徙微子適周之道開彌廣之路以待田單之徒長容善之風以申齊士之志使夫忠者遂節勇者義著昭之東海屬之華裔我澤如春民應如草道光宇宙賢智託心鄰國傾慕四海延頸思戴燕主仰望風聲二城必從則王業隆矣雖淹留於兩邑乃致速於天下也不幸之變世所不圖敗於垂成時運固然若乃逼之以威劫之以兵攻取之事求欲速之功使燕齊之士流血於二城之下殺傷之殘以示四海之人是縱暴易亂以成其私鄰國望之其猶豺虎既大墮稱兵之義而喪濟溺之仁且虧齊士之節廢廉善之風掩宏通之度棄王德之隆雖二城幾於可拔霸王之事逝其遠矣然則燕雖兼齊其與世主何以殊哉其與鄰國可以相傾樂生豈不知拔二城之速了哉顧城拔而業乖也豈不慮不速之致變哉顧業乖與變同是觀之樂生之不屠二城未可量也。」

[] 集解하후현이 말하기를 악의가 연나라 혜왕에게 보낸 글을 살펴보면 거의 기틀을 알고 도에 부합함에 가깝고, 예로써 시작하고 마친 것이구나! 또 그 소왕을 깨우쳐 말하기를 이윤이 태갑을 놓아주면서 의심하지 않았고, 태갑은 풀려나면서 (이윤을)원망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대업을 지극히 공정함으로 보존하고 천하로써 마음을 삼은 것이다.’ 대저 도덕의 헤아림을 지극히 하고자 해서 천하로써 마음을 삼기를 힘쓰는 자는 반드시 그 임금을 융성하게 하고, 합하여(함께) 그 선왕에게 달려 나가는 것이 마치 군신이 부절을 같이 하듯이 하면 곧 대업이 안정됨에 이를 것이다. 이때는 악의의 뜻을 펼 천년에 한 번 만나는 기회였다. 저 천년에 한 번 만나는 세상은 또한 장차 천년에 한 번 융성함의 도를 행할 기회이니 어찌 국면의 자취가 (제나라를 ) 겸병하는데 그칠 뿐이었겠는가! 대개 겸병하는 것은 악의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연나라를 강하게 하는 것으로 도를 무너뜨리는 것은 또한 악의가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구차한 이익을 하찮게 여기고 마음을 가까운 일에 두지 않고, 작은 이룸을 구하지 않았으니 이는 천하를 겸병하는 것에 뜻을 둔 것이다. 곧 제나라의 일을 든 것은 그 기틀을 운행하여 4해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대저 제나라를 토벌하는 것으로써 연나라 왕의 의리를 밝힌 것은 이는 군대를 이익을 위해 일으킨 것이 아니다. 성을 포위하면서도 해침을 백성에게 가하지 않았으니 이는 어진 마음이 멀고 가까운 곳에 드러난 것이다. 남의 나라를 점령하면서도 그 공을 도모하지 않고, 사나움을 제거하되 위력을 쓰지 않은 것은 이는 지극한 덕으로 천하를 온전히 한 것이다. 덕을 힘써 온전히 하는 것으로써 열국을 거느렸으니 곧 거의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의 일에 가깝다. 악의가 바야흐로 기본 적인 것은 넓히되 두 성을 버려두어 백성을 거두고 믿음을 밝히는 것으로써 그 피폐해짐을 기다려 장차 즉묵 땅과 거 땅 사람들이 그 위에 원수를 돌아보게 하고 방패와 창을 풀고 나에게 의지하기를 원하는 것이 마치 가까이하고 잘 지키는 이들의 지혜가 베풀 바가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러한 즉 인을 구하면 인을 얻는 것이 즉묵 땅 대부의 의로움인데 벼슬하다 궁곤하면 곧 옮겨가는 것은 미자가 주나라로 가는 길이었다. 널리 길을 열고 전단의 무리를 기다리는 것은 선한 자를 포용하는 풍속의 장점으로써 제나라 선비의 뜻을 펴게 하였다. 저 충성스러운 자는 절개를 이루게 하고 용감한 자는 의리를 드러내어 동해 가를 밝게 하며, 중화의 후예에 속하게 하니 우리의 은택은 봄과 같고, 백성들이 답하는 것은 풀과 같으며 도는 우주에 빛나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는 마음을 의탁하고 이웃 나라가 다투어 사모하여 사해가 목을 늘이고 연나라 임금을 생각하고 받들며, 바람 같은 명성을 우러러 바라보니 두 성이 반드시 복종하여 곧 왕업이 융성할 것이다. 두 읍에 오래 머물다 이에 빠르게 천하에 이르렀다. 불행한 변고가 세상이 도모하지 않아도 드리운 이룸을 무너뜨리는 것은 때의 운수가 그러한 것이다. 만약 곧 위엄으로써 그것을 핍박하고, 군대로써 위협하며, 공격하고 취하는 일로 빠르게 공을 세우고자 하여 연나라와 제나라의 군사로 하여금 두 성의 아래에서 피를 흘리게 하고 지나치게 죽이고 다치게 하는 것을 4해의 사람들에게 보이면 이는 사나움을 놓고 난을 쉽게 하는 것으로써 그 사사로움을 이루는 것이니 이웃 나라가 그것을 바라보고 승냥이와 범으로 여길 것이다. 이미 군대를 일으킬 뜻이 크게 떨어졌고, 제수와 약수의 인을 잃었으며, 또한 제나라 군사의 절개를 이지러지게 하였으며, 청렴하고 선한 기풍을 무너뜨렸고, 널리 통하는 법도를 가렸으며, 왕이 덕을 베푸는 융성함을 버렸으니 비록 두 성을 거의 함락시킬 수 있어도 패왕의 일은 떠나서 멀어졌습니다. 그러하다면 연나라가 제나라를 겸병할지라도 그것이 당대의 임금과 무엇이 다르다 하겠습니까? 그 이웃 나라와 서로 다툴 수 있겠습니까? 악의가 어찌 두 성을 빨리 함락시키는 것을 알지 못하였겠는가? 성을 함락시켰으되 패업이 어그러지는 것을 돌아보았던 것이다. 어찌 빨리하지 낳으면 변고가 이를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겠는가? 패업이 어그러지는 것과 변고가 같이할 것을 돌아본 것이다. 요가 이를 보건데 악의가 두 성을 도륙하지 않은 것은 헤아리지 못해서가 아니다.

 

於是燕王復以樂毅子樂閒[]為昌國君而樂毅往來復通燕趙以為客卿樂毅卒於趙[]

이에 연나라 왕이 다시 악의의 아들 악간을 창국군으로 삼았는데 악의가 왕래하면서 다시 연나라와 통하니 연나라와 조나라가 객경으로 삼았다. 악의는 조나라에서 죽었다.

 

[] 索隱音紀閑反樂毅之子也

[] 索隱음은 이다.

 

[] 集解張華曰:「望諸君冢在邯鄲西數里。」

[] 集解장화가 말하기를 망제군의 무덤은 한단 서쪽 數里에 있다.


樂閒居燕三十餘年燕王喜用其相栗腹之計[]欲攻趙而問昌國君樂閒樂閒曰:「四戰之國也[]其民習兵伐之不可。」燕王不聽遂伐趙趙使廉頗擊之大破栗腹之軍於鄗禽栗腹樂乘樂乘者樂閒之宗也於是樂閒奔趙趙遂圍燕燕重割地以與趙和趙乃解而去

악간이 연나라에 산지 30여년에 연나라 왕 희가 그 재상 율복의 계책을 써서 조나라를 공격하고자 하여 창국군 악간에게 의견을 물었다. 악간이 말하기를 조나라는 사방의 적과 싸우는 나라인데 그 백성들은 군대에 익숙하니 그것을 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했다. 연나라 왕이 듣지 않고 마침내 조나라를 쳤다. 조나라가 염파로 하여금 연나라 군대를 치게 하여 율복의 군대를 호 땅에서 크게 무너뜨리고 율복과 악승을 사로잡았다. 악승은 악간의 일족이다. 이에 악간이 조나라로 달아나니 조나라가 마침내 연나라를 포위하였다. 연나라가 거듭 땅을 떼어서 조나라에 주고 화친하자 조나라가 이에 포위를 풀고 갔다.


[] 索隱栗名也漢有栗姬

[] 索隱은 성이고, ‘은 이름이다. 한나라에 율희가 있다.

 

[] 索隱言趙數距四方之敵故云四戰之國」。正義東鄰燕西邊秦樓煩南界韓北迫匈奴

[] 索隱조나라가 여러 번 4방의 적을 물리쳤기 때문에 四戰之國이라 말한 것이다. 正義동쪽으로 연나라 제나라와 이웃하고, 서쪽 변경은 진나라 루번이고, 남쪽으로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경계하고, 북쪽으로는 흉노가 압박하였다.


燕王恨不用樂閒樂閒既在趙乃遺樂閒書曰:「紂之時箕子不用犯諫不怠以冀其聽商容不達身祇辱焉以冀其變及民志不入獄囚自出[]然後二子退隱故紂負桀暴之累二子不失忠聖之名何者其憂患之盡矣今寡人雖愚不若紂之暴也燕民雖亂不若殷民之甚也室有語不相盡以告鄰里[]二者寡人不為君取也。」[]

연나라 왕이 악간을 쓰지 않은 것을 한탄하였으나 악간은 이미 조나라에 있었다. 이에 악간에게 글을 보내 말하기를 주왕 때 기자는 쓰이지 않았음에도 임금을 속이지 않고 간언하기를 태만히 하지 않고 하여 들어줄 것을 바랐고, 상용은 그 말이 왕에게 도달하지 않아(받아들여지지 않아) 몸에 다만 치욕을 당하면서도 주왕이 변하기를 바랐습니다. 백성의 뜻이 들여지지 않고 옥에 갇혔던 죄수가 스스로 나옴에 이른 후에야 두 사람은 물러나 숨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왕은 걸왕의 포악함에 연루되었음을 졌으나 두 사람은 충성스럽고 성스럽다는 이름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나라를 위한)근심을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근 관인은 어리석지만 주왕처럼 사납지 않고 연나라 백성들이 비록 어지러우나 은나라 백성들처럼 심하지는 않습니다. 집에 할 말이 있음에도 서로 다하지 못하면 이웃마을에 말합니다. 이 두 가지는 과인은 그대가 취하지 않은 것이라 여긴다.” 했다.


[] 索隱民志不入謂國亂而人離心向外故云不入」。又獄囚自出是政亂而士師不為守法也

[] 索隱民志不入은 나라가 어지러워 사람들이 마음이 떠나 밖으로 향하였기 때문에 不入이라고 말한 것이다. 獄囚自出은 이는 정사가 어지러워 관리가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 正義言家室有忿爭不決必告鄰里今故以書相告也

[] 正義진에 분쟁이 있는데 결단하지 못하면 반드시 이웃마을에 말하는데 지금 이 때문에 글로써 서로 말하는 것이다.


[] 正義二者謂燕君未如紂燕民未如殷民復相告子反燕以疑君民之惡是寡人不為君取之

[] 正義二者는 연나라 임금이 주왕과 같지 않다는 것과 연나라 백성이 은나라 백성과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서로 말하여 그대가 연나라를 배반하여 임금과 백성의 악을 의심하게 하는 것은 과인은 그대가 취하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한 것이다.


樂閒樂乘怨燕不聽其計二人卒留趙趙封樂乘為武襄君[]

악간과 악승는 연나라가 그 계책을 듣지 않은 것을 원망하였는데 두 사람은 끝내 조나라에 머물렀다. 조나라는 악승을 봉하여 무양군으로 삼았다.

 

[] 索隱樂乘樂毅之宗人也

[] 索隱악승은 악의의 일족이다.

 

其明年樂乘廉頗為趙圍燕燕重禮以和乃解後五歲趙孝成王卒襄王使樂乘代廉頗廉頗攻樂乘樂乘走廉頗亡入魏其後十六年而秦滅趙其後二十餘年高帝過趙:「樂毅有後世乎?」對曰:「有樂叔。」高帝封之樂卿[]號曰華成君華成君樂毅之孫也而樂氏之族有樂瑕公樂臣公[]趙且為秦所滅亡之齊高密樂臣公善修黃帝老子之言顯聞於齊稱賢師

그 다음해 악승과 염파가 조나라를 위하여 연나라를 포위하니 연나라가 중한 예로 화친하니 이에 포위를 풀었다. 5년 후 조나라 효성왕이 죽었다. 양왕이 악승으로 하여금 염파를 대신하게 하였다. 염파가 악승을 공격하니 악승이 달아나자 염파는 도망하여 위나라에 들어갔다. 16년 후 진나라가 조나라를 멸망시켰다. 20년 후 한나라 고제가 조나라 지역을 지나다 묻기를 악의는 후손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악숙이 있습니다.” 했다. 고제가 그를 악경에 봉하고 화성군이라 불렀다. 화성군은 악의의 손자이다. 악씨의 종족 중에 악하공, 악신공이 있는데 조나라가 진나라에 멸망당하자 도망하여 제나라 고밀로 갔다. 악신공은 황제와 노자의 말을 잘 닦아 제나라에 명성이 드러나 어진 스승이라 불려졌다.


[] 集解徐廣曰:「在北新城。」 正義地理志云信都有樂卿縣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북신성에 있다.” 했다. 正義】 『地理志신도는 악경현에 있다.” 했다.]

 

[] 集解一作巨公」。

[] 集解巨公이라고도 쓴다.

 

太史公曰始齊之蒯通及主父偃讀樂毅之報燕王書未嘗不廢書而泣也樂臣公學黃帝老子其本師號曰河上丈人不知其所出河上丈人教安期生安期生教毛翕公毛翕公教樂瑕公樂瑕公教樂臣公[]樂臣公教蓋公[]蓋公教於齊高密膠西為曹相國師

태사공이 말하기를 처음 제나라 괴통()과 주보언이 악의가 연나라 왕에게 답장하는 글을 읽고 일찍이 글을 덮고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악신공은 황제와 노자를 배웠는데 그 스승을 하상장인이라 불렀는데 그 나온 바는 알지 못한다. 하상장인은 안기생을 가르치고, 안기생은 모흡공을 가르치고, 모흡공은 악하공을 가르치고, 악하공은 악신공을 가르치고, 악신공은 개공을 가르쳤다. 개공은 제나라에서 고밀 땅과 교서 땅에서 가르쳤는데 조참 상국의 스승이 되었다.


[] 索隱本亦作巨公

[] 索隱은 또한 巨公이라고도 쓴다.

 

[] 索隱蓋音古闔反蓋公史不記名

[] 索隱음은 이다. 개공은 역사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

 

索隱述贊昌國忠讜人臣所無連兵五國濟西為墟燕王受閒空聞報書義士慷慨明君軾閭乘繼將芳規不渝

索隱述贊창국공의 충성과 직언은 다른 사람의 신하에 비교할 이가 없다. 다섯 나라의 군대를 연합하여 제나라 서쪽을 빈터로 만들었다. 연나라 왕의 한가한 틈을 받아 빈 답서를 들었다. 의로운 선비는 강개하고 밝은 임금은 몸을 굽혀 경의를 표하였다. 간과 승이 장수를 이어 아름다운 법이 변하지 않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