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八十二
田單列傳第二十二
田單者,[一]齊諸田疏屬也。湣王時,單為臨菑市掾,不見知。及燕使樂毅伐破齊,齊湣王出奔,已而保莒城。燕師長驅平齊,而田單走安平,[二]令其宗人盡斷其車軸末[三]而傅鐵籠。[四]已而燕軍攻安平,城壞,齊人走,爭塗,以折車敗,[五]為燕所虜,唯田單宗人以鐵籠故得脫,東保即墨。燕既盡降齊城,唯獨莒、即墨不下。燕軍聞齊王在莒,并兵攻之。淖齒[六]既殺湣王於莒,因堅守,距燕軍,數年不下。燕引兵東圍即墨,即墨大夫出與戰,敗死。城中相與推田單,曰:「安平之戰,田單宗人以鐵籠得全,習兵。」立以為將軍,以即墨距燕。
전단은 제나라 여러 전씨의 먼 친척이다. 제나라 민왕 때 전단이 임치의 시장을 관리하는 하급관리였는데 지혜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연나라가 악의로 하여금 제나라를 쳐서 깨트리자 제나라 민왕이 나와 달아나서 거 땅을 지켰다. 연나라 군대가 멀리까지 치달려서 제나라를 평정하자 전단이 안평으로 달아나서 그 집안사람들에게 모두 그 수레 축 끝을 끊고 철 덮개를 덮게 하였다. 이윽고 연나라 군대가 안평을 공격하자 성이 무너지고 제나라 사람들이 달아나며 길을 다투었는데 수레 축이 꺽이고 무너져 연나라에 포로로 잡혔으나 오직 전단의 집안사람들만 철 덮개 때문에 탈출하여 동쪽의 즉묵 땅을 지켰다. 연나라가 모든 제나라 성에게 항복받았으나 오직 거 땅과 즉묵 땅만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나라 군대가 제나라 왕이 꺼 땅에 있다는 것을 듣고 군대를 합하여 공격하였다. 도치가 민왕을 거 땅에서 죽이고 굳게 지키며 연나라 군대와 대치하여 여러 해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연나라가 군대를 이끌고 동쪽의 즉묵 땅을 포위하니 즉묵 땅 대부가 나와 함께 싸우다 패하여 죽었다. 성 안이 서로 전단을 추천하며 말하기를 “안평의 싸움에서 전단의 집안사람들만 철 덮개를 덮어 온전함을 얻었으니 병법을 익혔을 것이다.”하고는 세워 장군으로 삼고, 즉묵 땅에서 연나라와 대치하였다.
[一] 索隱單音丹。
[一] 【索隱】 ‘單’의 음은 ‘丹(단)’이다.
[二] 集解徐廣曰:「今之東安平也,在青州臨菑縣東十九里。古紀之酅邑,齊改為安平,秦滅齊,改為東安平縣,屬齊郡,以定州有安平,故加『東』字。」 索隱按:地理志東安平屬淄川國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지금의 동안평이니 청주 임치현 동쪽 19리에 있다. 옛 기록의 휴읍인데 제나라가 고쳐서 안평이라 하였고, 진나라가 제나라를 멸망시키고 고쳐 동안평현으로 하여 제군에 속하게 하였는데 정주에 안평이 있기 때문에 ‘東’자를 붙였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地理志』에 “동안평은 치천국에 속한다.”했다.
[三] 索隱斷音都緩反。斷其軸,恐長相撥也。以鐵裹軸頭,堅而易進也。
[三] 【索隱】 ‘斷’의 음은 ‘都’와 ‘緩’의 反이다. 그 축을 끊은 것은 길어서 서로 휘어질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철을 가지고 축의 머리를 싸 견고하게해서 쉽게 나아가게 한 것이다.
[四] 集解徐廣曰:「傅音附。」 索隱傅音附。按:截其軸與轂齊,以鐵鍱附軸末,施轄於鐵中以制轂也。又方言曰「車轊,齊謂之籠」。郭璞云「車軸也」。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傅’의 음은 ‘附’이다.” 했다. 【索隱】 ‘傅’의 음은 ‘附’이다. 살펴보니 그 굴대와 바퀴통을 잘라 가지런히 하고 철 조각으로 굴대 끝에 붙이고 철 가운데에 비녀장을 붙여 바퀴통을 제어하는 것이다. 또 방언에 “‘車轊(수레 굴대 끝)’을 제나라에서는 籠(대그릇 롱)이라 한다.”했다. 곽복은 “車軸(수레 굴대)”라 했다.
[五] 集解徐廣曰:「轊,車軸頭也。音衛。」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轊’는 수레 굴 대 머리인데 음은 ‘衛’이다.” 했다.
[六] 集解徐廣曰:「多作『悼齒』也。」
[六]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悼齒’라고 많이 쓴다.” 했다.
頃之,燕昭王卒,惠王立,與樂毅有隙。田單聞之,乃縱反閒於燕,宣言曰:「齊王已死,城之不拔者二耳。樂毅畏誅而不敢歸,以伐齊為名,實欲連兵南面而王齊。齊人未附,故且緩攻即墨以待其事。齊人所懼,唯恐他將之來,即墨殘矣。」燕王以為然,使騎劫代樂毅。
얼마 후 연나라 소왕이 죽고 혜왕이 즉위하면서 악의와 틈이 있었다. 전단이 듣고 이에 연나라에 반간계를 써서 소문을 퍼트려 말하기를 “제나라 왕이 이미 죽고 성의 두 개만이 함락되지 않았을 뿐이다. 악의가 죽음을 당할 것을 두려워 하여 감히 돌아가지 못하고 제나라를 치는 것으로써 명분을 삼으나 실제로는 군대를 이어서(전쟁을 끌어서) 南面하여 제나라에서 왕 노릇 하려한다. 제나라 사람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또한 즉묵 땅을 공격하는 것을 늦추면서 그 일을 기다리고 있다. 제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다른 장수가 와서 즉묵 땅을 멸하는 것이다.” 했다. 연나라 왕이 그러하다고 여겨 기겁으로 하여금 악의를 대신하게 했다.
樂毅因歸趙,燕人士卒忿。而田單乃令城中人食必祭其先祖於庭,飛鳥悉翔舞城中下食。燕人怪之。田單因宣言曰:「神來下教我。」乃令城中人曰:「當有神人為我師。」有一卒曰:「臣可以為師乎?」因反走。田單乃起,引還,東鄉坐,師事之。卒曰:「臣欺君,誠無能也。」田單曰:「子勿言也!」因師之。
악의가 때문에 조나라로 돌아가니 연나라 사람들과 군사들이 분노하였다. 전단이 이에 성 안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그 선조를 뜰에서 제사하게 하였는데 나는 새들이 모두 날개로 춤추면서 성안에 내려와 먹었다. 연나라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겼다. 전단이 소문을 퍼트려 말하기를 “신이 와서 나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하고는 곧 성안 사람들에게 명령하기를 “神人이 있으니 나의 스승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한 병졸이 있어 말하기를 “신이(제가) 스승이 될 수 있습니까?”하고는 돌아 달아났다. 전단이 이에 일어나 이끌고 돌아와 동쪽을 향하여 앉게 하고는 스승으로 섬겼다. 병졸이 말하기를 “제가 그대(전단)를 속였으니 진실로 잘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했다. 전단이 말하기를 “그 대는 말하지 말라!”하고는 스승으로 하였다.
每出約束,必稱神師。乃宣言曰:「吾唯懼燕軍之劓所得齊卒,置之前行,[一]與我戰,即墨敗矣。」燕人聞之,如其言。城中人見齊諸降者盡劓,皆怒,堅守,唯恐見得。單又縱反閒曰:「吾懼燕人掘吾城外冢墓,僇先人,可為寒心。」燕軍盡掘壟墓,燒死人。即墨人從城上望見,皆涕泣,俱欲出戰,怒自十倍。
매번 약속(명령)을 낼 때마다 반드시 神師를 일컬었다. 이에 소문을 퍼트려 말하기를 “내가 오직 연나라 군대가 포로로 잡은 제나라 병졸의 코를 베고 앞에 행군하게하고 우리와 싸워 즉묵 땅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했다. 연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그 말과 같이 하였다. 성안의 사람들이 제나라의 여러 항복한 자들이 모두 코를 베인 것을 보고는 모두 노하여 굳게 지키고 오직 포로가 되는 것만을 두려워하였다. 전단이 또한 반간계를 서서 말하기를 “나는 연나라 사람들이 우리 성 밖의 무덤들을 파헤쳐 先人들을 욕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마음을 차갑게 할 만하다.(오싹하게 할 만하다.)” 했다. 연나라 군대가 묘를 모두 파헤치고 죽은 사람(시체를)을 불살랐다. 즉묵 땅 사람들이 성위에서 바라보며 모두 눈물을 흘리며 모두 나가 싸우려하는데 분노가 10배였다.
[一] 正義胡郎反。
[一] 【正義】 ‘胡’와 ‘郞’의 反이다.
田單知士卒之可用,乃身操版插,[一]與士卒分功,妻妾編於行伍之閒,盡散飲食饗士。令甲卒皆伏,使老弱女子乘城,遣使約降於燕,燕軍皆呼萬歲。田單又收民金,得千溢,令即墨富豪遺燕將,曰:「即墨即降,願無虜掠吾族家妻妾,令安堵。」燕將大喜,許之。燕軍由此益懈。
전단이 군사들을 슬만함을 알고는 이에 자신이(직접) 판과 삽을 잡고는 병사들과 함께 일을 나누며 처첩들을 군대의 사이에 엮고, 음식을 모두 흩어(나누어) 군사에게 먹였다. 갑옷 입은 병졸은 모두 매복하게 하고 늘고 악한 이와 여자들로 하여금 성을 타게하고 사자를 보내 연나라에 항복을 약속하게 하니 연나라 군대가 모두 만세를 불렀다. 전단이 또한 백성의 금을 거두어 千溢을 얻어 즉묵 땅의 부호로 하여금 연나라 장수에게 보내면서 말하기를 “즉묵 땅은 곧 항복하니 우리 친족과 처첩들을 노략질 하지 말아서 안도하게 할 것을 원합니다.” 했다. 연나라 장수가 크게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연나라 군대가 이로 말미암아 더욱 나태해졌다.
[一] 索隱操音七高反 插音初洽反。正義古之軍行,常負版插也。
[一] 【索隱】 ‘操’의 은은 ‘七’과 ‘高’의 反이다. ‘揷’의 음은 ‘初’와 ‘洽’의 反이다. 【正義】 옛 날의 군대 행렬은 항상 판과 삽을 진다.
田單乃收城中得千餘牛,為絳繒衣,畫以五彩龍文,束兵刃於其角,而灌脂束葦於尾,燒其端。鑿城數十穴,夜縱牛,壯士五千人隨其後。牛尾熱,怒而奔燕軍,燕軍夜大驚。牛尾炬火光明炫燿,燕軍視之皆龍文,所觸盡死傷。五千人因銜枚擊之,而城中鼓譟從之,老弱皆擊銅器為聲,聲動天地。燕軍大駭,敗走。齊人遂夷殺其將騎劫。燕軍擾亂奔走,齊人追亡逐北,所過城邑皆畔燕而歸田單,兵日益多,乘勝,燕日敗亡,卒至河上,[一]而齊七十餘城皆復為齊。乃迎襄王於莒,入臨菑而聽政。
전단이 이에 성안의 소 천여 마리를 거두고, 붉은 색 비단 옷을 입히고, 다섯 가지 색으로 용의 문양을 그리고, 병기를 그 뿔에 묶으며, 꼬리에 기름을 부은 갈대를 묶어 그 끝을 불로 살랐다. 성에 수십 개의 구멍을 파고 밤에 소를 풀어 놓으며 장사 5첨 명으로 그 뒤를 따르게 했다. 소는 꼬리가 뜨거워지자 노하여 연나라 군대에 달려가니 연나라 군대가 밤에 크게 놀랐다. 소꼬리의 횃불이 밝게 빛나니 연나라 군대가 모두 용 무늬를 보았는데 부딪치는 것은 모두 죽거나 다쳤다. 천 명의 사람들이 하무를 물고 조용히 치고, 성 낭에서는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따랐으며 노약자들은 모두 구리 그릇을 두드리며 소리를 내니 소리가 천지를 움직이게 하였다. 연나라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지면서 무너져 달아났다. 제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그 장수 기겁을 죽였다. 연나라 군대가 요란하게 달아나니 제나라 사람들이 도망하는 것을 뒤 쫓아 북쪽으로 쫓아내었는데 지나는 성읍이 모두 연나라를 배반하여 전단에게 돌아오므로 군대가 날로 많아져 이김을 타고, 연나라는 날로 무너져 도망하여 병졸이 황하 가에 이르고 제나라 70여 성을 모두 제나라에 수복되었다. 이에 거 땅에서 양왕을 맞이하여 임치에 들어가 정사를 듣게 하였다.
[一] 索隱河上即齊之北界,近河東,齊之舊地。
[一] 【索隱】 ‘河上’은 곧 제나라의 북쪽 경계인데 하동에서 가까운 제나라의 옛 땅이다.
襄王封田單,號曰安平君。[一]
제나라 양왕이 전단을 봉하여 한평군이라 불렀다.
[一] 索隱以單初起安平,故以為號。
[一] 【索隱】 전단이 처음 안평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호를 삼은 것이다.
太史公曰:兵以正合,以奇勝。[一]善之者,[二]出奇無窮。[三]奇正還相生,[四]如環之無端。[五]夫始如處女,[六]適人開戶;[七]後如脫兔,適不及距:[八]其田單之謂邪!
태사공이 말하기를 “군대로써 먼저 나가 맞붙어 싸우고 기이한 계책으로 이긴다. 잘하는 자는 기이한 계책을 내는 것이 끝이 없다. 기이한 계책과 먼저 나가 사우는 것이 돌아 서로 생겨나는 것이 마치 고리의 끝이 없는 것과 같다. 대저 처음에는 처녀처럼 적의 문을 열고, 뒤에는 토끼가 달아나는 것처럼 적이 대적하지 못하게 하니 전단을 말하는 것이다!
[一] 集解魏武帝曰:「先出合戰為正,後出為奇也。正者當敵,奇兵擊不備。」 索隱按:奇謂權詐也。注引魏武,蓋亦軍令也。
【集解】 위나라 무제가 말하기를 “먼저 나가 맞붙어 싸우는 것을 ‘正’이라 하고, 뒤에 나가는 것을 ‘奇’라 한다. ‘正’은 적을 맞이하는 것이고 ‘奇’는 군대로 대비하지 않은 것을 치는 것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奇’는 임시방편과 속이는 것이다. 주가 인용한 위나라 무제의 말은 대개 또한 군령이다.
[二] 索隱兵不厭詐,故云「善之」。
[二] 【索隱】 병법은 속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善之(잘 하는 것)’이라 말한 것이다.
[三] 索隱謂權變多也。
[三] 【索隱】 임시방편으로 변하는 것이 많음을 말한다.
[四] 正義猶當合也。言正兵當陣,張左右翼掩其不備,則奇正合敗敵也。
[四] 【正義】 ‘當合,공격하는 것과 기이한 계책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군대를 내어 나가 진을 대적하여 좌우의 날개를 펴고 그 준비되지 않은 것을 갑자기 치면 곧 기이한 계책과 군대로 맞부딪쳐 대적하여 적을 무너뜨리는 것을 말한다.
[五] 索隱言用兵之術,或用正法,或用奇計,使前敵不可測量,如尋環中不知端際也。
[五] 【索隱】 군대를 쓰는 기술은 혹은 군대로 맞부딪쳐 사우는 법을 쓰고, 혹은 기이한 계책을 써서 앞의 적으로 하여금 헤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치 고리 가운데 알지 못하는 끝을 찾는 것과 같다.
[六] 索隱言兵之始,如處女之軟弱也。
[六] 【索隱】 병법의 시작이 마치 처녀의 연약함과 같음을 말한다.
[七] 集解徐廣曰:「適音敵。」 索隱適音敵。若我如處女之弱,則敵人輕侮,開戶不為備也。正義敵人謂燕軍也。言燕軍被田單反閒,易將及劓卒燒壟墓,而令齊卒甚怒,是敵人為單開門戶也。
[七]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適’의 음은 ‘敵’이다.” 했다. 【索隱】 ‘適’의 음은 ‘敵’이다. 만약 내가 처녀의 약함과 같다면 곧 적이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겨서 문을 열고 대비하지 않다. 【正義】 ‘敵人’은 연나라 군대를 말한다. 연나라 군대가 전단의 반간을 당하여 장수를 바꾸는 것과 병졸의 코를 베는 것과 무덤을 불살라서 제나라 병졸로 하여금 매우 노하게 하였으니 이는 적들이 전단을 위하여 문을 열어준 것임을 말한 것이다.
[八] 集解魏武帝曰:「如女示弱,脫兔往疾也。」 索隱言克敵之後,卷甲而趨,如兔之得脫而走疾也。敵不及距者,若脫兔忽過,而敵忘其所距也。
[八] 【集解】 위나라 무제가 말하기를 “여자 같이 약해 보이다 벗어나면 토기처럼 발리 달려가라.” 했다. 【索隱】 적을 이긴 후에는 갑옷을 말아서(벗고서) 발리 달리기를 마치 토끼가 벗어나서 달리기를 빨리 하는 것과 탙음을 말한 것이다. 적이 대항하지 못하는 것은 벗어난 토끼가 갑자기 지나가서 적이 그 대항할 바를 잊은 것과 같다.
初,淖齒之殺湣王也,莒人求湣王子法章,得之太史嬓之家[一],為人灌園。嬓女憐而善遇之。後法章私以情告女,女遂與通。及莒人共立法章為齊王,以莒距燕,而太史氏女遂為后,所謂「君王后」也。
처음에 도치가 민왕을 시해하자 거 땅의 사람들이 민왕의 아들 법장을 찾았는데 찾고 보니 태사 교의 집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다. 교의 딸이 불쌍하게 여겨 잘 대우하였다. 후에 법장이 사사로운 실정을 여자에게 말하였는데 여자와 마침내 정을 통하였다. 거 땅 사람들이 함께 법장을 세워 제나라 왕으로 삼고 거 땅에서 연나라와 대적하는데 태사씨의 딸이 마침내 왕후가 되니 이른바 ‘군왕후’이다.
[一] 正義嬓音皎。
[一] 【正義】 ‘嬓’의 음은 ‘皎’이다.
燕之初入齊,聞畫邑人王蠋賢,[一]令軍中曰「環畫邑三十里無入」,以王蠋之故。已而使人謂蠋曰:「齊人多高子之義,吾以子為將,封子萬家。」蠋固謝。燕人曰:「子不聽,吾引三軍而屠畫邑。」王蠋曰:「忠臣不事二君,貞女不更二夫。齊王不聽吾諫,故退而耕於野。
연나라가 처음 제나라에 들어갔을 때 황읍 땅 사람인 왕촉이 현명하다는 것을 듣고 군중에 명령하여 말하기를 “화읍을 둘러 30리 안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였는데 왕촉 때문이었다. 사자를 시켜 왕촉에게 말하기를 “제나라 사람들이 많이 그대의 의리를 높이 여기니 우리가 그대를 장수로 삼고, 그대를 萬家에 봉하겠다.” 하니 왕촉이 굳게 사양하였다. 연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가 듣지 않으면 우리는 3군을 이끌고 화읍을 도륙할 것이다.” 했다. 왕촉이 말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숙한 여자는 두 지아비를 바꾸지 않습니다. 제나라 왕께서 내 간하는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물러났으니 들에서 밭을 갈 것입니다.
國既破亡,吾不能存;今又劫之以兵為君將,是助桀為暴也。與其生而無義,固不如烹!」遂經其頸[二]於樹枝,自奮絕脰而死。[三]齊亡大夫聞之,曰:「王蠋,布衣也,義不北面於燕,況在位食祿者乎!」乃相聚如莒,求諸子,立為襄王。
나라가 이미 깨트려지고 망하였으니 나는 살 수 없는데 지금 또한 군대로 겁을 주어 그대의 장수로 삼으려하니 이는 걸왕을 돕는 사나움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서 의롭지 못한 것은 진실로 솥에 삶기는 것보다 못하다! 하고는 마침내 나뭇가지에 그 목을 메고 스스로 움직이고 어긋나게 하여 죽었다. 제나라의 도망하던 대부가 듣고 말하기를 “왕촉은 일반 백성이나 의리상 연나라에 北面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지위에 있고 녹을 먹는 자에 있어서랴!” 하고는 이에 서로 무리를 모아 거 땅에 가서 (민왕의)여러 아들을 찾아 세워 양왕이라 했다.
[一] 集解劉熙曰:「齊西南近邑。畫音獲。」 索隱畫,一音獲,又音胡卦反。劉熙云:「齊西南近邑。」蠋音觸,又音歜。正義括地志云:「戟里城在臨淄西北三十里,春秋時棘邑,又云澅邑。」蠋所居即此邑,因澅水為名也。
[一] 【集解】 유희가 말하기를 “제나라 서남쪽의 가까운 읍이다. ‘畵’의 음은 ‘獲’이다.” 했다. 【索隱】 ‘畵’의 첫 번째 음은 ‘獲’이고, 또 다른 음은 ‘胡’와 ‘卦’의 反이다. 유희가 말하기를 “제나라 서남쪽 가까운 읍이다.” 했다. ‘蠋’의 음은 ‘觸’이고, 또 다른 음은 ‘歜’이다. 『括地志』에 “극리성은 임치 서북쪽 30리에 있는데 춘추시대에는 ‘棘邑’이었고, 또 ‘澅(물 끌어 올릴 훼)邑’”이라 했다. 왕촉이 살던 곳이 곧 이 읍이었는데 澅水 때문에 이름 삼은 것이다.
[二] 索隱按:經猶繫也。
[二] 【索隱】 살펴보니 ‘經’은 ‘繫(맬 계)’와 같다.
[三] 索隱何休云:「脰,頸,齊語也。音豆。」
[三] 【索隱】 하휴가 말하기를 “‘脰(머리 두)’와 ‘頸(목 경)’은 제나라 말리다. 음은 ‘豆’이다.
【索隱述贊】軍法以正,實尚奇兵。斷軸自免,反閒先行。群鳥或眾,五牛揚旌。卒破騎劫,皆復齊城。襄王嗣位,乃封安平。
【索隱述贊】 군대를 움직이는 법은 맞부딪쳐 싸우는 것을 바름으로 여기나 실제는 기이한 병법을 숭상한다. 굴대 끝을 끊고 스스로 모면하고 반간계책을 먼저 행하였다. 뭇 새들이 혹 많지만 다섯 소가 깃발을 휘날렸다. 마침내 기겁을 깨트리고 제나라 성을 모두 수복하였다. 양왕이 왕위를 이으니 이에 안평에 봉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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