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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87 이사열전 제27

by 최인표 2019. 3. 4.

史記卷八十七

  李斯列傳第二十七

 

李斯者楚上蔡人也[]年少時為郡小吏[]見吏舍廁中鼠食不絜近人犬數驚恐之斯入倉觀倉中鼠食積粟居大廡之下不見人犬之憂於是李斯乃歎曰:「人之賢不肖譬如鼠矣在所自處耳!」

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이다. 나이가 어렸을 때 군의 하급 관리가 되었는데 관리의 집무실(관청) 화장실 안의 쥐가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다가 사람과 개가 가까이 가면 여러 번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다. 이사가 창고에 들어가서 창고 안의 쥐들을 보았는데 쌓인 곡식을 먹고 큰 처마 아래 있으면서도 사람과 개의 근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사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사람의 현명하고, 현명하지 못한 것은 비유하면 쥐와 같아서 스스로 있는 바에(환경에) 달려 있을 뿐이다!” 했다.


[] 索隱地理志汝南上蔡縣古蔡國周武王弟叔度所封至十八代平侯徙新蔡」。二蔡皆屬汝南後二代至昭侯徙下蔡屬沛六國時為楚地故曰楚上蔡

[] 索隱】 『지리지에 여남 상채현인데 말하기를 고채국은 주나라 무왕의 동생 숙도가 봉해진 곳으로 18대에 평후에 이르러 신채로 옮겼다.” 했다. 두 채(고채와 신채)는 모두 여남에 속한다. 2대 후인 소후에 이르러 하채로 옮겼는데 패에 속하며 6국 대는 초나라 땅이 된다. 그러므로 초나라 상채라 한 것이다.


[] 索隱鄉小史劉氏云掌鄉文書」。

[] 索隱향의 소사이다. 유씨가 말하기를 향의 문서를 관장한다.” 했다.

 

乃從荀卿學帝王之術學已成度楚王不足事而六國皆弱無可為建功者欲西入秦辭於荀卿曰:「斯聞得時無怠今萬乘方爭時游者主事[]今秦王欲吞天下稱帝而治此布衣馳騖之時而游說者之秋也[]處卑賤之位而計不為者此禽鹿視肉人面而能彊行者耳[]故詬[]莫大於卑賤而悲莫甚於窮困久處卑賤之位困苦之地非世[]而惡利自託於無為此非士之情也[]故斯將西說秦王矣。」

이에 순경을 따라 제왕의 술을 배웠다. 배움이 이루어지자 초나라왕은 섬기기 충분하지 않고 6국이 모두 약하여 공을 세우게 될 만한 자가 없어 서쪽으로 진나라에 들어가고자 하였다. 순경을 하직하며 말하기를 제가 듣기로 때를 얻고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하는데 지금 만승의 나라들이 막 다투는 때로 유세하는 자들이 일을 주장합니다. 지근 진나라 왕이 천하를 삼키려 하고, 제를 일컬으며 다스리니 이는 베옷 입은 선비가 달리는 때로 유세하는 자가 일을 이룰 시기입니다. 비천한 지위에 처하여 계책을 행하지 않는 자는 짐승이 고기를 보는(짐승처럼 먹이만 먹으려는) 것으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억지로 행할 수 있는(살아가는) 자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욕보이는 것으로는 비천한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슬픈 것으로는 궁곤한 것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오래 동안 비천한 지위에 처하여 곤궁하고 괴로운 자리에 머물며 세상을 비난하고 이익을 미워하여 스스로 無爲(아무 일도 하지 않음)’에 맡기는 것은 사의 실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장차 서쪽의 진나라 왕을 유세하려 합니다.” 했다.


[] 索隱言萬乘爭雄之時游說者可以立功成名當得典主事務也劉氏云游歷諸侯當覓彊主以事之」,於文紆迴非也

[] 索隱만승의 나라가 자웅을 다투는 때에 유세하는 자가 공을 세워 이름을 이루면서 마땅히 범으로 사무를 주관할 수 있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유씨가 말하기를 제후를 유세하며 다니다 마땅한 강한 임금을 만나 섬긴다.” 했는데 글이 우회하니(멀리 도니, 차이 나니) 잘못이다.


[] 正義言秋時萬物成熟今爭彊時亦說士成熟時

[] 正義가을에는 만물이 성숙하는데 지금은 강함을 다투는 때이니 또한 유세하는 선비가 성숙하는 때이다.

 

[] 索隱禽鹿猶禽獸也言禽獸但知視肉而食之莊子及蘇子曰:「人而不學譬之視肉而食。」楊子法言曰:「人而不學如禽何異?」言不能游說取榮貴即如禽獸徒有人面而能彊行耳

[] 索隱禽鹿禽獸(짐승)’와 같고, 짐승은 다만 고기를 보고 먹을 줄만 안다. 장자와 소자가 말하기를 사람으로 배우지 않으면 비유하면 고기를 보면 먹기만 한다.” 했다. 양자법언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하니 유세하여 영광과 귀함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곧 금수와 같아서 한갓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억지로 행함이 있을 뿐임을 말한 것이다.

 

[] 正義呼后反恥辱也

[] 正義이니 치욕이다.

 

[] 索隱非者所謂處士橫議也

[] 索隱는 비웃음이니 이른 바 처사가 함부로 논의하는 것이다.


[] 正義言譏世富貴惡其榮利自託於無為者非士人之情實力不能致此也

[] 正義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그 영예와 이익을 싫어하여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맡기는 자는 선비의 실정이 아니어서 실제 힘써도 이에 이르지 못함을 말한다.

 

至秦會莊襄王卒李斯乃求為秦相文信侯呂不韋舍人不韋賢之任以為郎李斯因以得說說秦王曰:「胥人者去其幾也[]成大功者在因瑕釁而遂忍之[]昔者秦穆公之霸終不東并六國者何也諸侯尚眾周德未衰故五伯迭興更尊周室自秦孝公以來周室卑微諸侯相兼關東為六國秦之乘勝役諸侯蓋六世矣[]今諸侯服秦譬若郡縣夫以秦之彊大王之賢由灶上騷[]足以滅諸侯成帝業為天下一統此萬世之一時也今怠而不急就諸侯復彊相聚約從雖有黃帝之賢不能并也。」秦王乃拜斯為長史聽其計陰遣謀士齎持金玉以游說諸侯諸侯名士可下以財者厚遺結之不肯者利劍刺之離其君臣之計秦王乃使其良將隨其後秦王拜斯為客卿

진나라에 이르니 마침 장양왕의 죽음을 만났다. 이사가 이에 진나라 재상 문신후 여불위의 사인이 될 것을 구하였는데 여불위가 현명하다 여겨 낭이 되었다.

이사가 이로 인하여 유세할 기회를 얻어 진나라 왕에게 유세하며 말하기를 소인(평범한 일반인)은 은미한 기미를 놓칩니다. 대공을 이루려는 자는 미세한 틈으로 인하여 이루어 냅니다. 옛날 목공이 패업을 이루었음에도 끝내 동쪽의 6국을 병합하지 못한 것은 왜입니까? 제후가 오히려 많고, 주나라의 덕이 아직 쇠퇴하지 않아 5백이 교대로 일어나 다시 주나라 왕실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효공으로 부터 이래로 주나라 왕실이 낮아지고 미미해져 제후들이 서로 겸병하고, 관동은 6국이 되며, 진나라가 이김을 타서 제후들을 부린 것이 대개 6세대였습니다. 지금 제후들이 진나라에 복종하여 비유하면 군현과 같습니다. 대저 진나라는 강하고 대왕은 현명하니 아궁이 위를 쓸어 제거하듯 하면 충분히 제후를 멸하고 제업을 이루어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만 세대의 한 번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 게으르게 하여 급히 나아가지 않으면 제후들이 다시 강해져서 서로 모여 합종을 약속하면 비록 황제의 현명함이 있을 지라도 아우를 수 없습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이에 이사에게 절하고 장사로 삼고, 그 계책을 들으며 몰래 모사를 보내 금과 옥을 주고 제후에게 유세하게 하였다. 제후와 이름 있는 선비 중에 재물로 낮추게 할 수 있는 자는 후하게 주어 결연하고, 좋아하지 않는 자는 날카로움 검으로 찔러 그 임금과 신하를 이간하는 계책을 쓰고 진나라 왕은 좋은 장수로 하여금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진나라 왕이 이사에게 절하고 객경으로 삼았다.


[] 索隱胥人猶胥吏小人也去猶失也幾者動之微以言君子見幾而作不俟終日小人不識動微之會故每失時也劉氏解幾為彊非也

[] 索隱서인胥吏와 같은데 소인이다. ‘(잃다.)’과 같다. ‘는 움직이는 기미이다.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소인은 움직이는 기미의 만남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매번 때를 잃는다. 유씨는 으로 해석하였으나 아니다.(잘못이다.)

 

[] 索隱言因諸侯有瑕釁則忍心而翦除故我將說秦以并天下正義胥相也幾謂察也言關東六國與秦相敵者君臣機密並有瑕釁可成大功而遂忍之也

[] 索隱제후에게 미세한 틈이 있으면 곧 잔인하게 베어 제거하고 내가 장차 진나라를 유세하여 천하를 병합하겠다. 말한 것이다. 正義(서로)’이다. ‘(살피다.)을 말한다. 관동의 여섯 나라와 진나라가 서로 대적하는데 임금과 신하의 기밀이 함께 틈이 있으면 큰 공을 이룰 수 있도록 그것을 잔인하게 해야 한다.

 

[] 正義秦孝公惠文公武王昭王孝文王莊襄王

[] 正義진나라 효공’, ‘혜문공’, ‘무왕’, ‘소왕’, ‘효문왕’, ‘장양왕이다.

 

[] 集解徐廣曰:「騷音埽。」 索隱騷音埽言秦欲并天下若炊婦埽除灶上之不淨不足為難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의 음은 (쓸 소)’이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병합하고자 하는 것이 마치 밥 짓는 부인이 부뚜막 위의 깨끗하지 못한 것을 쓸어내는 것과 같아서 충분한 어려움이 되지 못한다.

 

會韓人鄭國來閒秦以作注溉渠[]已而覺秦宗室大臣皆言秦王曰:「諸侯人來事秦者大抵為其主游閒於秦耳請一切逐客。」[]李斯議亦在逐中斯乃上書曰[]

마침 한나라 사람 정국이 진나라에 간첩으로 와서 관개에 물을 대는 도랑을 만들다가 발각되었다. 진나라 종실과 대신들이 모두 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제후의 사람이 와서 진나라를 섬기는 자는 대개 주인을 위하여 진나라에서 유세하고 이간할 뿐이니 일체 객을 내보낼 것을 청합니다.” 했다. 이사가 또한 내쫓을 자로 논의되었다. 이사가 이에 글을 올려 말하기를

 

[] 正義鄭國渠首起雍州雲陽縣西南二十五里自中山西邸瓠口為渠傍北山東注洛三百餘里以溉田又曰韓苦秦兵而使水工鄭國閒秦作注溉渠令費人工不東伐也

[] 正義정국이 옹주 운양현 서남쪽 25리에서 관개사업을 일으켜서 중산서쪽 저호 입구로부터 수로를 만들어 북산옆을 지나 동쪽으로 낙에 주입하는데 300여리의 밭에 물을 댄다. 또 말하기를 한나라가 진나라 군대에게 괴로움을 당하여 수공 정국으로 하여금 진나라에서 간첩으로 관개하는 수로를 만들게 하고 사람을 공사에 허비하게 하여 동쪽을 정벌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한다.


[] 索隱一切猶一例言盡逐之也言切者譬若利刀之割一運斤無不斷者解漢書者以一切為權時亦未為得也

[] 索隱一切一例와 같으니 모두 축출하는 것을 말한다. ‘로 말한 것은 비유하면 마치 예리한 칼로 가르는 것과 같이 한번 도끼질하여 끊어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한서를 해설한 자는 一切를 임기응변의 뜻이다 하였는데 또한 적절하지 않다.


[] 正義在始皇十年

[] 正義시환제 10년에 있다.

 

臣聞吏議逐客竊以為過矣昔繆公求士西取由余於戎東得百里奚於宛[]迎蹇叔於宋[]來丕豹公孫支於晉[]此五子者不產於秦而繆公用之并國二十遂霸西戎[]孝公用商鞅之法移風易俗民以殷盛國以富彊百姓樂用諸侯親服獲楚魏之師舉地千里至今治彊惠王用張儀之計拔三川之地西并巴[]北收上郡[]南取漢中[]包九夷制鄢[]東據成皋之險[]割膏腴之壤遂散六國之從使之西面事秦功施到今昭王得范睢廢穰侯逐華陽[]彊公室杜私門蠶食[一一]諸侯使秦成帝業此四君者皆以客之功由此觀之客何負於秦哉向使四君卻客而不內疏士而不用是使國無富利之實而秦無彊大之名也

신이 들으니 관리들이 객을 내쫓을 것을 의논한다 하는데 지나치다 여겨집니다. 옛날 목공이 선비를 구하여 서쪽으로 (오랑캐 융)에서 유여를 얻었고, 동쪽으로 (굽을 완)’에서 백리해를 얻었으며 송나라에서 건숙을 맞이하였고, 비표와 공손지는 진나라에서 왔습니다. 이 다서 사람은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목공이 등용하여 나라 20개를 병합하여 서융에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효공은 상앙의 법을 써서 나쁜 풍속을 좋은 쪽으로 바꾸어 백성들은 성대해지고 나라가 부강해지며 백성은 즐겁게 쓰며, 제후들이 친히 복종하였고, 초나라와 위나라의 군대를 얻고, 땅 천리를 들어 지금까지 다스려지고 강해졌습니다. 혜왕은 장의의 계책을 써서 삼천의 땅을 함락시키고, 서쪽으로 파와 촉을 병합하고 북쪽으로 상군을 거두며 남쪽으로 한중을 취하고 九夷를 싸안았으며, 언과 영을 제압하고, 동쪽으로 성고의 험함에 기대어 고유의 땅을 할양받아 마침내 6국의 합종을 흩어버리고 그들로 하여금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한 공을 베품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소공은 범수를 얻어 양후를 폐하고 화양을 쫒았으며 왕실을 강하게 하고 사사로운 가문을 막아 제후를 잠식하여 진나라로 하여금 제업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 네 임금은 모두 객으로 공을 이루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관찰하면 객이 어지 진나라를 배반했다 하겠습니까! 지난번에 4임금이 객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고, 선비를 멀리하고 등용하지 않았다면 이는 나라의 부유함과 이익의 실제가 없었을 것이며 진나라가 강대하다는 이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 索隱秦本紀云晉獻公以百里奚為秦穆公夫人媵於秦奚亡走宛楚鄙人執之是也正義新序云:「百里奚楚宛人仕於虞虞亡入秦號五羖大夫也。」

[] 索隱】 「진본기진나라 헌공이 백리해를 진나라에서 진나라 목공부인의 잉신이 되게 하니 백리해가 완으로 달아났다가 초나라의 비루한 사람에게 잡혔다.” 한 것이 이것이다. 正義】 「신서백리해는 초나라 완 땅 사람으로 우 나라에서 벼슬하다 우 나라를 도망하여 진나라에 들어갔는데 오고대부라 불렀다.” 했다.


[] 索隱秦紀又云百里奚謂穆公曰:『臣不如臣友蹇叔蹇叔賢而代莫知。』穆公厚幣迎之以為上大夫」。今云於宋」,未詳所出正義括地志云:「蹇叔岐州人也時游宋故迎之於宋。」

[] 索隱】 「진기에 또 백리해가 목공에게 말하기를 신은 신의 벗 건숙만 못하고, 건숙은 어질어서 대신할 이를 알지 못합니다.’ 하니 목공이 후한 폐백으로 맞이하여 상대부로 삼았다.” 했다. 지금 於宋이라 한 것은 나온 곳 자세하지 않다. 正義】 『지리지에 건숙은 기주 사람이다. 당시에 송나라에서 유세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에서 그를 맞이한 것이다.“ 했다.

 

[] 索隱丕豹自晉奔秦左氏傳有明文公孫支所謂子桑也是秦大夫而云自晉來亦未見所出正義括地志云:「公孫支岐州人游晉後歸秦。」

[] 索隱비표는 나라에서 나라로 달아났다. 춘추좌씨전에 명문이 있다. 공손지는 이른 바 자상이라 하는데 이가 진대부로 아라로부터 왔다 하는데 또한 나온 곳이 보이지 않는다. 正義】 『괄지지공손지는 기주 사람으로 나라에서 유세하였는데 후에 나라에 돌아갔다.” 했다.


[] 索隱秦本紀穆公用由余謀伐戎王益國十二開地千里遂霸西戎此都言五子之功故云并國二十」;或易為十二」,誤也

[] 索隱】 「진본기에 목공이 유여의 꾀를 써서 융왕을 치고 12개 나라를 더하며, 천리의 땅을 열어 서융의 패자를 이루었다. 이는 모두 다섯 사람의 공을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幷國二十이라 하고, 혹은 바꾸어 十二라 하나 잘못이다.

 

[] 索隱案惠王時張儀為相請伐韓下兵三川以臨二周司馬錯請伐蜀惠王從之果滅蜀儀死後武王欲通車三川令甘茂拔宜陽今並云張儀者以儀為秦相雖錯滅蜀茂通三川皆歸功於相又三川是儀先請伐故也

[] 索隱살펴보니 혜왕 때 장의가 재상이 되어 한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하여 군대를 삼천에 내려 보내는 것으로서 두 주와 마주하였다. 사마착이 촉을 정벌할 것을 청하자 혜왕이 따랐는데 과연 촉을 멸하였다. 장의가 죽은 후 무왕이 수레가 삼천을 통하게 하고자 하여 감무로 하여금 의양을 점령하게 하였다. 지금 모두 장의를 말하는 자는 장의가 진나라 재상이 되어서 비록 조착이 촉을 멸하고, 감무가 삼천을 통하게 하였을지라도 공이 재상에게 모두 돌아간다.’ 하였는데 또 삼천을 장의가 먼저 정벌할 것을 청한 일 때문이다.


[] 正義惠王十年魏納上郡十五縣

[] 正義혜왕 10년 위나라가 상군 15현을 (진나라에)들였다.

 

[] 正義惠王十三年攻楚漢中取地六百里

[] 正義혜왕 13년 초나라 한중을 공격하여 땅 600리를 취하였다.

 

[] 索隱九夷即屬楚之夷也地理志南郡江陵縣云故楚郢都」,又宜城縣云故鄢正義夷謂并巴蜀收上郡取漢中伐義渠丹犁是也九夷本東夷九種此言者文體然也

[] 索隱九夷는 곧 초나라에 속한 오랑캐이다. 지리지남군 강릉현 조항에 옛 초나라 영의 도읍이었다.” 했고, 또 의성현 조항에 옛 언 땅이다.” 했다. 正義는 파와 촉을 아울러 말하는데 상군을 거두고, 한중을 취하며 의구와 단리를 쳤다. 한 것이 이것이다. ‘九夷는 본래 동이의 아홉 종족인데 여기서 말한 것은 문체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 正義河南府氾水縣也

[] 正義하남부 범수현이다.

 

[] 集解徐廣曰:「一作』。」

[0]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는 한편으로 으로 쓴다.” 했다.

 

[一一] 索隱高誘注淮南子云:「蠶食盡無餘也。」

[一一] 索隱고유가 주석한 회남자“‘蠶食은 모두 하여 남은 것이 없는 것이다.

 

今陛下致昆山之玉[]有隨和之寶[]垂明月之珠服太阿之劍[]乘纖離之馬[]建翠鳳之旗樹靈鼉之鼓[]此數寶者秦不生一焉而陛下說之何也必秦國之所生然後可則是夜光之璧不飾朝廷犀象之器不為玩好衛之女不充後宮而駿良駃騠[]不實外廄江南金錫不為用西蜀丹青不為采所以飾後宮充下陳[]娛心意說耳目者必出於秦然後可則是宛珠之簪傅璣之珥[]阿縞之衣錦繡之飾[]不進於前而隨俗雅化[]佳冶窈窕趙女不立於側也夫擊甕叩缶[一一]彈箏搏髀而歌呼嗚嗚快耳真秦之聲也桑閒象者[一二]異國之樂也今棄擊甕叩缶而就鄭衛退彈箏而取昭虞若是者何也快意當前適觀而已矣今取人則不然不問可否不論曲直非秦者去為客者逐然則是所重者在乎色樂珠玉而所輕者在乎人民也此非所以跨海內制諸侯之術也

지금 폐하께 곤산의 옥이 이르고, 수와 화의 보배를 소유하며 명월의 구슬을 드리우고 태아의 검을 차고 섬리의 말을 타는 것과 취봉의 기를 세우는 것과 신령스러운 악어의 북을 세웁니다. 이 여러 보배들은 진나라에서 하나도 나지 않는 것인데 폐하께서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생산된 후에 하다 한다면 곧 이는 야광의 구슬로 조정을 꾸미지 못하고, 물소 뿔과 코끼리 이빨로 만들어진 그릇을 좋아하지 못할 것이며, 정나라 위나라의 여자로 후궁을 채울 수 없고, 준마인 결제로 밖의 마굿간을 채우지 못하고, 강남의 금과 주석을 사용하지 못하며, 서쪽의 단청으로 채색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후궁을 채워 자리한 이들을 꾸며서 마음과 뜻을 기쁘게 하고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온 후에야 가하다고 한다면 곧 이는 완주의 비녀와 옥을 장신구로 붙인 귀걸이, 아 땅의 비단 옷과 비단으로 수놓아 꾸민 것을 앞에 올리지 못하여 풍속에 따라 아름답게 장식한 조나라의 미녀들을 옆에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대저 항아리를 치고 질그릇을 두드리며, 쟁을 퉁기고 다리를 치고 노래하여 노랫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참된 진나라의 소리이겠습니까? 정나라, 위나라, 상간, , , , 상은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지금 항아리를 치고 질그릇을 두드리는 것을 버리고 정나라와 위나라에 나아가고 쟁을 퉁기는 것을 물리치고 소와 우를 취하는 것은 왜 입니까? 마음에 즐거움이 앞에서 마땅하고 보기에 알맞기 때문일 뿐입니다. 지금 사람을 취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부를 묻지 않고, 곡직을 논하지 않으며 진나라 사람이 아닌 자는 떠나보내고 객이 된 자는 쫓아냅니다. 그러한 즉 중하게 여기는 것은 여색과 음악과 주옥에 있고, 가볍게 여기는 것은 인민에 있습니다. 이는 대륙에 걸쳐서 제후를 제압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 正義昆岡在于闐國東北四百里其岡出玉

[] 正義곤강은 우전국 동북쪽 400리에 있는데 그 산등성이에서 옥이 난다.


[] 正義括地志云:「山一名崑山一名斷蛇丘在隨州隨縣北二十五里說苑云昔隨侯行遇大蛇中斷疑其靈使人以藥封之蛇乃能去因號其處為斷蛇丘歲餘蛇銜明珠徑寸絕白而有光因號隨珠』。」卞和璧始皇以為傳國璽也

[] 正義】 『괄지지분산은 일명 곤산이며, 일명 단사구인데 수주 수현 북쪽 25리에 있다.” 설원옛 날 수후가 길을 가다 큰 뱀을 만나 가운데를 끊었는데 그 신령스러움을 의심하여 사람을 시켜 약으로 봉하였는데(붙였는데) 뱀이 갈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그 곳을 단사구라 불렀다. 몇 년 후 뱀이 명주(빛나는 구슬)를 머금었는데 지름이 한 치로 매우 희고 빛나서 수주라 불렀다.” 했다. 변화의 벽은 시황제가 나라를 전하는 옥새로 만들었다.

 

[] 集解見蘇秦傳索隱越絕書曰:「楚王召歐冶子干將作鐵劍三一曰干將二曰莫邪三曰太阿也。」

[] 集解】 「소진열전에 보인다. 索隱】 『월절서초나라 왕이 구야자를 와 간장을 불러 철검 세 개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간장’, 둘째는 막야’, 셋째는 태아라 했다.

 

[] 集解徐廣曰:「纖離蒲梢皆駿馬名。」 索隱皆馬名徐氏據孫卿子而為說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섬리’, ‘포초는 모두 준마의 이름이다.” 했다. 索隱모두 말 이름이다. 서씨는 손경자에 의거하여 말하였다.


[] 集解鄭玄注月令云:「鼉皮可以冒。」

[] 集解정현이 주석한 월령에 악어가죽은 북을 쒸울 만하다.” 했다.


[] 索隱決提二音周書曰正北以駃騠為獻」。廣雅曰馬屬也」。郭景純注上林賦云生三日而超其母也」。

[] 索隱두 음이다. 주서정북으로 결제를 바친다.” 했고, 광아말의 등속이다.” 했다. 곽경순이 주석한 상림부난지 3일만에 그 어미 말을 뛰어넘었다.” 했다.

 

[] 索隱下陳猶後列也晏子曰有二女願得入身於下陳是也

[] 索隱下陳後列과 같다. 안자두 여자가 있는데 하진에 몸을 들일 수 있기를 원하였다.”한 것이 이것이다.

 

[] 索隱宛音於阮反傅音附宛謂以珠宛轉而裝其簪傅璣者以璣傅著於珥珥者瑱也璣是珠之不圓者或云宛珠隨珠也隨在漢水之南宛亦近漢故云宛傅璣者女飾也言女傅之珥以璣為之並非秦所有物也

[] 索隱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은 구슬로 굽히고 돌려서 그 비녀를 꾸미는 것이고, ‘傅璣는 구슬을 귀걸이에 붙이는 것이다. ‘(귀막이 옥 전, )’이다. ‘는 구슬의 둥글지 않은 것이다. 혹은 완주’, ‘수주라 한다. ‘는 한수의 남쪽에 있고, ‘이 또한 한수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라 한다. ‘부기는 여자의 꾸밈이니 여자가 붙이는 귀고리인 구슬로 만들며 모두 진나라에 있는 물건이 아니다.

 

[] 集解徐廣曰:「齊之東阿縣繒帛所出。」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제나라의 동쪽 아현인데 비단이 나오는 곳이다.”

 

[] 集解徐廣曰:「隨俗一作修使』。」 索隱謂閑雅變化而能通俗也

[0]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수속수사라 쓰기도 한다.” 索隱한가롭고 아름답게 변화하여 풍속과 통할 수 있음을 말한다.

 

[一一] 索隱說文云:「汲缾於貢反瓦器也秦人鼓之以節樂。」□音甫有反

[一一] 索隱】 『설문“‘은 물 긷는 두레박이다. ‘이다. ‘는 질그릇인데 진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두드려 음악을 조절한다.” 의 음은 이다.

 

[一二] 集解徐廣曰:「一作』。」

[一二]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라 쓰기도 한다.” 했다.

 

臣聞地廣者粟多國大者人眾兵彊則士勇是以太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王者不卻眾庶故能明其德[]是以地無四方民無異國四時充美鬼神降福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今乃棄黔首以資敵國[]卻賓客以業諸侯使天下之士退而不敢西向裹足不入秦此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

신이 들으니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병사가 용맹하다. 합니다. 이 때문에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그러므로 그 큼을 이룰 수 있었고, 강과 바다는 작은 흐름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 깊음에 나아갈 수 있고, 왕노릇 하는 자는 무리를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그 덕을 밝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땅은 네 방향이 없고, 백성은 나라를 달리하지 않아 사시로 아름다움을 채우고 귀신이 복을 내립니다. 이는 오제와 삼왕이 대적할 이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지금 곧 검은 머리를 버리는 것으로서 적국에 바탕이 되게 하고, 빈객을 물리치는 것으로써 제후에게 업을 이루게 하면서 천하의 선비로 하여금 물러나게 하여 감히 서쪽을 향하지 못하게 하고 발을 싸서 진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이는 이른 바 도적의 군대에게 짓밟히고도 도적질한 양식을 실어다 준다.’는 것입니다.


[] 索隱管子云:「海不辭水故能成其大;(山不辭土石故能成其高。」文子曰:「聖人不讓負薪之言以廣其名。」

[] 索隱】 『관자바다는 물을 거절하지 않기 때문에 그 큼을 이루고, 태산은 흙과 돌을 거절하지 않기 때문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다.” 했다. 문자가 말하기를 성인은 장작 진 사람의 말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명성을 넓힐 수 있다.” 했다.

 

[] 索隱資猶給也

[] 索隱과 같다.

 

[] 索隱藉音積夜反齎音子奚反說文曰:「持遺也。」齎或為(주다)」,義亦通

[] 索隱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설문“‘는 지닌 것을 버리는 것이다.” 했다. ‘는 혹 라 하는데 뜻이 또한 통한다.

 

夫物不產於秦可寶者多士不產於秦而願忠者眾今逐客以資敵國損民以益讎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求國無危不可得也秦王乃除逐客之令復李斯官[]卒用其計謀官至廷尉二十餘年竟并天下尊主為皇帝以斯為丞相夷郡縣城銷其兵刃示不復用使秦無尺土之封不立子弟為王功臣為諸侯者使後無戰攻之患

대저 사물이 진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 중에 보배로울 만한 것이 많고, 선비 중에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고도 충성하기를 원하는 자가 많다. 지금 객을 축출하여 적국에 주고 백성을 덜어 원수에게 이익 되게 하여 안으로는 스스로 비우고 밖으로는 원한을 제후에게 심어주면서 나라에 위태로움이 없을 것을 구하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했다. 진나라 왕이 이에 객을 쫓아내라는 명령을 거두고 이사의 관직을 회복시키고 마침내 그 계책과 꾀를 썼다. 관직이 정위에 이르렀다. 20여년 후에 마침내 천하를 아우르고 임금을 높여 황제라 하고, 이사를 승상으로 삼았다. 군과 현의 성을 없애고, 그 병기와 칼을 녹여 다시 쓰지 않음을 보였다. 진나라는 한 자의 땅을 봉함도 없었고, 자제를 세워 왕을 삼거나 공신을 제후로 삼지 않아 후에 전쟁과 공격의 근심이 없게 하였다.


[] 集解新序曰:「斯在逐中道上上諫書達始皇始皇使人逐至驪邑得還。」

[] 集解】 「신서이사가 쫓겨나는 중에 길 위에서 간하는 글을 올려 시황제에게 도달하자 시황제가 사람을 시켜 쫓게 하여 여읍에 이르러서 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始皇三十四年置酒咸陽宮博士僕射周青臣等頌始皇威德齊人淳于越進諫曰:「臣聞之殷周之王千餘歲封子弟功臣自為支輔今陛下有海內而子弟為匹夫卒有田常六卿之患臣無輔弼何以相救哉事不師古而能長久者非所聞也今青臣等又面諛以重陛下過[]非忠臣也。」始皇下其議丞相

시황제 34년 함양궁에 술을 두고 박사, 복야, 주청신 등이 시황제의 위엄과 덕을 칭송하였다. 제나라 사람 순우월이 나아가 간하여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은, 주나라 왕은 천여 년 동안 자제, 공신을 봉하여 지보로 삼았다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 천하를 소유하셨으나 자제는 필부가 되니 갑자기 (제나라)전상과 (나라) 6경의 환란이 있을 때 신하들이 보필하지 못하면 어찌 서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일은(사업은) 옛 것을 본받지 않으면서도 오래할 수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청신 등이 또한 면전에서 아첨하는 것으로써 폐하의 허물을 거듭하게 하니 충신이 압니다.” 했다. 시황제는 이 건의를 내려 보내 승상에게 논의하라 하였다.


丞相謬其說其辭乃上書曰:「古者天下散亂莫能相一是以諸侯並作語皆道古以害今飾虛言以亂實人善其所私學以非上所建立今陛下并有天下別白黑[]而定一尊[]而私學乃相與非法教之制聞令下即各以其私學議之入則心非出則巷議非主以為名異趣以為高率群下以造謗如此不禁則主勢降乎上黨與成乎下禁之便臣請諸有文學詩書百家語者除去之令到滿三十日弗去黥為城旦所不去者醫藥卜筮種樹之書若有欲學者以吏為師。」始皇可其議收去詩書百家之語以愚百姓使天下無以古非今明法度定律令皆以始皇起同文書[]治離宮別館周遍天下明年又巡狩外攘四夷斯皆有力焉

승상은 그 말이 잘못되었다. 하여 그 말을 물리치고 곧 글을 올려 말하기를 옛날 천하가 흩어지고 어지러워도 서로 하나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후들이 아울러 일어났고, 말하는 것은 모두 옛 것을 말하여 지금을 해치고, 빈 말을 꾸며 실제를 어지럽히며 사람들이 그 사사로이 배운 바를 좋다하여 위(조정)에서 세운 것을 비난합니다. 지금 폐하께서 천하를 아울러 소유하시고 희고 검은 것을 구별하여 하나의 존귀함을 정하셨는데 사사로운 배움으로 서로 법과 가르침의 제도를 비난하고, 명령을 내림을 들으면 곧 각기 그 사사로이 배은 것으로써 의논하여 들어가면 마음으로 비난하고 나가서는 거리에서 논의하여 잘못된 주장으로서 명예를 삼고, 잘못된 취지를 고상한 것으로 삼으며 여러 무리들을 거느리고 비방을 짓습니다. 이 같음을 금지하지 않으면 곧 임금의 권세가 위에서 떨어지고, 무리들이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금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은 여러 문학과 시경, 서경과 백가의 말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깨끗이 없애도록 할 것을 청합니다. 명령이 이른지 30일 안에 없애지 않으면 이마에 문신을 새기고 성단으로 삼으십시오. 없애지 말아야 할 것으로는 의약, 복서, 종수(농업관련)의 글들입니다. 만약 배우고자하는 자들이 있으면 하급관리로 스승을 삼으십시오.” 했다. 시황제가 논의할만하다 하여 시경, 서경, 백가의 말을 거두어 없애는 것으로써 백성을 어리석어지게 하여 천하로 하여금 옛 것을 가지고 지금을 비난하지 못하게 했다. 법도를 밝히고 율령을 정한 것은 모두 시황제가 일으킨 것이다. 문자를 같게 하고, 이궁과 별관을 천하에 두루 지었다. 다음해 또 巡狩하여 밖으로 四夷를 밖으로 내쫓았는데 이사가 모두 여기에 힘씀이 있었다.

 

[] 索隱重音逐用反重者再也

[] 索隱의 음은 이다. ‘는 거듭이다.

 

[] 索隱劉氏云:「前時國異政家殊俗人造私語莫辨其真今乃分別白黑也。」

[] 索隱유씨가 말하기를 지난 때에는 나라마다 정사를 달리하였고, 가는 풍속이 다르며 사람들이 사사로이 말을 지어 그 참된 뜻을 분별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곧 흰 것과 검은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했다.


[] 索隱謂始皇并六國定天下海內共尊立一帝故云

[] 索隱시황제가 6개 나라를 아우르고 천하를 안정시키며, 천하가 같이 한 황제를 세웠다. 그러므로 말한 것이다.

 

[] 正義六國制令不同今令同之

[] 正義6국의 제령이 같지 않았는데 지금 령이 같아지게 되었다.


斯長男由為三川守諸男皆尚秦公主女悉嫁秦諸公子三川守李由告歸咸陽李斯置酒於家百官長皆前為壽門廷車騎以千數李斯喟然而歎曰:「嗟乎吾聞之荀卿曰物禁大盛』。夫斯乃上蔡布衣閭巷之黔首上不知其駑下遂擢至此當今人臣之位無居臣上者可謂富貴極矣物極則衰吾未知所稅駕!」[]

이사의 장남 는 삼천의 지방관이 되었고, 여러 아들들이 진나라공주와 혼인하고, 딸은 모두 진나라 여러 공자에게 시집갔다. 삼천의 관리 유가 함양에 돌아와 고하니 이사가 집에 술을 두니(연회를 베푸니) 백관의 장들이 모두 앞에 나와 축수하고, 문과 뜰에 수레가 수천 대였다. 이사가 위연히 탄식하여 말하기를 ! 내가 순경의 말을 들었는데 사물이 크게 성대해지는 것을 금하라,’ 했다. 대저 내가 상채의 선비로 거리의 백성이었는데 임금이 그 노둔하고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시고 마침내 발탁하시어 이에 이르렀다.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로 지위가 신하로 위에 있는 이가 없으니 부귀가 지극하다 말할 만하다. 사물이 지극하면 쇠퇴하는데 나는 쉬어야 할 때를 알지 못하겠다.” 했다.


[] 索隱稅駕猶解駕言休息也李斯言己今日富貴已極然未知向後吉凶止泊在何處也

[] 索隱稅駕解駕와 같으니 휴식이라는 말이다. 이사의 말은 자기가 오늘 부귀가 이미 지급한데 향후 길흉과 그치고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지 못한다. 한 것이다.

 

始皇三十七年十月行出游會稽並海上北抵琅邪[]丞相斯中車府令趙高兼行符璽令事皆從始皇有二十餘子長子扶蘇以數直諫上上使監兵上郡[]蒙恬為將少子胡亥愛請從上許之餘子莫從[]

시황제 3710월 행차하여 나가 회계에서 놀고, 바다 위를 아우르고 북쪽으로 낭야에 이르렀다. 숭상 이사, 중거부령과 행부새령사를 겸한 조고가 모두 따랐다. 시황제에게는 20여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 부소가 여러 번 임금에게 바로 간하니 임금이 상군에서 군대를 감독하게 하고 몽념을 장군으로 삼았다. 작은 아들 호해를 사랑하여 따르기를 처하자 임금이 허락하였다. 다른 아들은 따르찌 못하였다.


[] 正義今沂

[] 正義지금의 기주이다.

 

[] 正義上郡故城在綏州上縣東南五十里

[] 正義상군 옛 성은 수주 상현 동남쪽 50리에 있다.

 

[] 集解辯士隱姓名遺秦將章邯書曰李斯為秦王死廢十七兄而立今王然則二世是秦始皇第十八子此書在善文中

[] 集解변사가 성명을 숨기고 진나라 장군 장한에게 보낸 글에 이사는 진나라 왕을 죽게하고, 17명의 형을 폐하고 지금의 왕을 즉위시켰다.” 했다. 그러한 즉 2세는 진나라 시황제의 18번째 아들이다. 이 글은 선문 안에 있다.

 

其年七月始皇帝至沙丘[]病甚令趙高為書賜公子扶蘇曰:「以兵屬蒙恬與喪會咸陽而葬。」書已封未授使者始皇崩書及璽皆在趙高所獨子胡亥丞相李斯趙高及幸宦者五六人知始皇崩餘群臣皆莫知也李斯以為上在外崩無真太子故祕之置始皇居轀輬車[]百官奏事上食如故宦者輒從轀輬車中可諸奏事[]

그 해 7월에 시황제가 사구에 이르렀는데 병이 심해지자 조고 하여금 글을 서서 공자 부소에게 내려 말하기를 군대는 몽념에게 속하게 하고 상을 당하면 함양에 모여 장례하라.” 하였다. 글이 봉해진 후 사자에게 주지 않았는데 시황제가 죽었다. 글과 옥새가 모두 조고에게 있고, 오직 호해, 승상 이사, 조고와 모시는 환관 5,6인만이 시황제가 죽은 것을 알고 나머지 여러 신하들은 알지 못하였다. 이사가 임금이 밖에 있다가 죽었고, 참된 태자가 없었기 때문에 비밀로 하였다. 시황제의 시신을 온량거 안에 두고 백관이 일을 아뢰는 것과 밥을 올리는 것을 전과 같이 하고, 환관이 번번이 온량거 안에서 여러 가지 아뢰는 일을 재가하였다.


[] 正義沙丘臺在邢州

[] 正義사구대는 형주에 있다.

 

[] 集解徐廣曰:「一作輜車』。」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輜車라 하기도 한다.”

 

[] 集解文穎曰:「轀輬車如今喪車也。」孟康曰:「如衣車有窗閉之則溫開之則涼故名之轀輬車。」如淳曰:「轀輬車其形廣大有羽飾也。」

[] 集解문영이 말하기를 “‘온량거는 지금의 와 같다.” 했다. 맹강이 말하기를 “‘의거와 같은데 창이 있고, 그것을 닫으면 곧 따뜻해지고, 열면 서늘해진다. 그러므로 온량거라 이름한 것이다.” 했다. 여순이 말하기를 “‘온량거는 그 형태가 넓고, 크며 깃으로 꾸밈이 있다.” 했다.


趙高因留所賜扶蘇璽書而謂公子胡亥曰:「上崩無詔封王諸子而獨賜長子書長子至即立為皇帝而子無尺寸之地為之柰何?」胡亥曰:「固也吾聞之明君知臣明父知子父捐命不封諸子何可言者!」趙高曰:「不然方今天下之權存亡在子與高及丞相耳願子圖之且夫臣人與見臣於人制人與見制於人豈可同日道哉!」胡亥曰:「廢兄而立弟是不義也不奉父詔而畏死是不孝也能薄而材譾[]彊因人之功是不能也三者逆德天下不服身殆傾危社稷不血食。」

조고가 인하여 부소에게 내릴 옥새가 찍힌 문서를 보류하고(가지고 있으면서) 공자 호해에게 말하기를 임금께서 돌아가셨는데 여러 아들을 왕으로 봉하는 조서는 없고 오직 장자에게 내리는 글뿐입니다. 장자 이르러 즉위하여 황제가 되면 그대에게는 한 자의 땅도 없을 것이니 어찌하렵니까?” 했다. 호해가 말하기를 진실로 그러합니다. 내가 들으니 현명한 군주는 신하를 알아보고, 현명한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본다 합니다. 아버지가 목숨을 버리면서 여러 아들을 봉하지 않는 것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했다. 조고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천하의 권력과 존망이 공자와, (조고), 승상에게 달려있을 뿐이니 공자께서 도모할 것을 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신하로 하는 것, 다른 사람을 제재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제재 당하는 것이 어찌 같은 날에 말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호해가 말하기를 형을 폐하고 동생을 세우는 것은 이는 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명을 받들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효인데 능력이 없고 재주가 얕은데 억지로 다른 사람의 공으로 인하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덕을 거스르고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어서 자신을 위태롭게 하고 사직에 제사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했다.


高曰:「臣聞湯武殺其主天下稱義焉不為不忠衛君殺其父而衛國載其德孔子著之不為不孝夫大行不小謹盛德不辭讓鄉曲各有宜而百官不同功故顧小而忘大後必有害狐疑猶豫後必有悔斷而敢行鬼神避之後有成功願子遂之!」胡亥喟然歎曰:「今大行未發喪禮未終豈宜以此事干丞相哉!」趙高曰:「時乎時乎閒不及謀糧躍馬唯恐後時!」

조고가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탕왕과 무왕은 그 임금을 죽였으나 천하가 의롭다 말하고 충성스럽지 못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위나라 임금은 그 아버지를 죽였으되 위나라는 그 덕을 받들었고 공자가 그것을 드러내어 불효라 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큰 것을 행할 때는 작은 것을 삼가지 않고, 성대한 덕은 사양하지 않는다 합니다. 향과 곡에는 각기 마당함이 있고 백관의 공은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작을 것을 돌아보다 큰 것을 잊으면 후에 반드시 해침이 있을 것입니다. 매사를 의심하여 늦추면 후에 반드시 뉘우침이 있을 것입니다. 결단하여 감행하면 귀신도 그것을 피하니 후에 공을 이룸이 있을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그것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했다. 호해가 위연히 탄식하며 말하기를 지금 큰일(시황제가 죽은 일)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고, 상례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찌 이 일로써 승상의 참여(동의)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겠는가!” 하였다. 조고가 말하기를 때가 때인 만큼 한가롭게 하면 도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식량을 지고 말을 뛰게 하여도 오직 때가 늦을 것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했다.


[] 集解史記音隱宰顯反索隱音義云宰殄反劉氏音將淺反則譾亦淺義古人語自有重輕所以文字有異

[] 集解】 「사기음은“‘이다.” 했다. 索隱】 「음의“‘이다.” 했다. 유씨는 음은 이니 곧 이 또한 (얕을 천)’의 뜻이다. 옛 사람들의 말은 스스로 輕重을 두었기 때문에 문자가 다름이 있다.

 

胡亥既然高之言高曰:「不與丞相謀恐事不能成臣請為子與丞相謀之。」高乃謂丞相斯曰:「上崩賜長子書與喪會咸陽而立為嗣書未行今上崩未有知者也所賜長子書及符璽皆在胡亥所定太子在君侯與高之口耳事將何如?」斯曰:「安得亡國之言此非人臣所當議也!」高曰:「君侯自料能孰與蒙恬功高孰與蒙恬謀遠不失孰與蒙恬無怨於天下孰與蒙恬長子舊而信之孰與蒙恬?」斯曰:「此五者皆不及蒙恬而君責之何深也?」高曰:「高固內官之廝役也幸得以刀筆之文進入秦宮管事二十餘年未嘗見秦免罷丞相功臣有封及二世者也卒皆以誅亡皇帝二十餘子皆君之所知長子剛毅而武勇信人而奮士即位必用蒙恬為丞相君侯終不懷通侯之印歸於鄉里明矣高受詔教習胡亥使學以法事數年矣未嘗見過失慈仁篤厚輕財重士辯於心而詘於口盡禮敬士秦之諸子未有及此者可以為嗣君計而定之。」

 

호해가 조고의 말을 그럴 듯이 여기니 조고가 말하기를 승상과는 서로 도모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질 수 없을 까 두려우니 신이 공자를 위하여 승상과 모의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조고가 이에 승상 이사에게 말하기를 임금이 죽으면서 장자에게 글이 내려 함양에서 장례하고 세워 후사를 삼으라. 했는데 글이 아직 행해지지 않은 채 지금 임금이 죽고 아는 자가 있지 않습니다. 장자에게 내린 글과 부새가 모두 호해에게 있으니 태자를 정하는 것은 그대와 나의 입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장차 어찌하려합니까?” 했다. 이사가 말하기를 어찌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말을 하는가! 이는 신하들이 마땅히 의논해야할 것이 아닌가!” 했다. 조고가 말하기를 그대는 스스로를 헤아리면 능력이 몽념과 비교해 누가 낫습니까? 공의 높기를 몽념과 비교해 누가 낫습니까? 원대한 것을 도모하여 잘 못하지 않는 것은 몽념과 비교해 누가 낫습니까? 천하에 원한이 없기로 몽념과 비교해 누가 낫습니까? 장자가 오래하여 믿음을 받는 것은 몽념과 비교해 누가 낫습니까?” 했다. 이사가 말하기를 이 다섯 가지는 모두 몽념에게 미치지 못하는데 그대가 질책하는 것이 어찌 이리 심한가?” 했다. 조고가 말하기를 저는 진실로 내관(환관)의 하인인데 요행히 기록한 글을 읽을 줄 알아 진나라 궁에 들어서 일을 주관한지 20여년으로 일찍이 진나라에서 파면 당한 승상과 공신이 봉해져 2대에 이른 자를 보지 못하고, 마침내 모두 죽음을 당하고 망하였습니다. 황제의 아들이 20여명인데 모두 그대가 아는 바입니다. 장자는 의지가 굳세고 용맹하니 다른 사람에게 신임을 받고 선비를 떨치게 하니 즉위하면 반드시 몽념을 등용하여 승상으로 삼을 것이니 그대는 끝내 통후의 인을 품지 못하고 향리에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조칙을 받아 호해를 연습시키고 법을 배우게 하기를 여러 해 하였지만 일찍이 잘못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인자하고 도타우며 재물을 가벼이 하고 선비를 중시하며 마음에는 말을 잘 하나 임에서는 어눌하게 하며 예를 다하고 선비를 공경하여 진나라의 여러 공자 등 중에 여기에 미치는 자가 있지 않으니 후사로 삼을 만합니다. 그대는 헤아려 정하십시오.” 했다.


斯曰:「君其反位斯奉主之詔聽天之命何慮之可定也?」高曰:「安可危也危可安也安危不定何以貴聖?」斯曰:「上蔡閭巷布衣也上幸擢為丞相封為通侯子孫皆至尊位重祿者故將以存亡安危屬臣也豈可負哉夫忠臣不避死而庶幾[]孝子不勤勞而見危人臣各守其職而已矣君其勿復言將令斯得罪。」高曰:「蓋聞聖人遷徙無常就變而從時見末而知本觀指而睹歸物固有之安得常法哉方今天下之權命懸於胡亥高能得志焉且夫從外制中謂之惑從下制上謂之賊故秋霜降者草花落水搖動者萬物作[]此必然之效也君何見之晚?」斯曰:「吾聞晉易太子[]三世不安齊桓兄弟爭位[]身死為戮紂殺親戚[]不聽諫者國為丘墟遂危社稷三者逆天宗廟不血食斯其猶人哉[]安足為謀!」高曰:「上下合同可以長久中外若一事無表裏君聽臣之計即長有封侯世世稱孤必有喬松之壽墨之智今釋此而不從禍及子孫足以為寒心善者因禍為福君何處焉?」斯乃仰天而歎垂淚太息曰:「嗟乎獨遭亂世既以不能死安託命哉!」於是斯乃聽高高乃報胡亥曰:「臣請奉太子之明命以報丞相丞相斯敢不奉令!」


이사가 말하기를 그대는 그 자리로 돌아가시오! 나는 임금의 조칙을 받들고, 하늘의 명을 듣는데 어찌 생각하여 정할 수 있는가?” 했다. 조고가 말하기를 편안함은 위태로움이 될 수 있고, 위태로움은 편안함이 될 수 있습니다.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찌 성스러움을 귀하게 할 것입니까?” 했다. 이사가 말하기를 나는 상채의 선비였는데 임금께서 발탁하여 승상이 되고 통후에 봉해졌고, 자손이 모두 높은 지위와 많은 녹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장차 존망과 안위를 신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어찌 배반할 수 있으리오! 대저 충신은 죽을 피하여 바라지 않고, 효자는 부지런히 수고하되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고, 신하는 각기 그 직책을 지킬 뿐입니다. 그대는 다시 말하여 장차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지 마시오.” 했다. 조고가 말하기를 대개 들으니 성인(천명)은 옮겨가는 것이 일정하지 않고 변함에 나아가 때를 따르며, 지엽을 보고 근본을 알며 뜻을 관찰하여 돌아갈 곳을 본다 합니다. 사물은 본래 그런 것인데 어찌 일정한 법칙이 있으리오! 지금 천하의 권세와 명이 호해에게 결려있고, 제가 여기에서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밖을 따라 마음을 제재하는 것을 미혹하다 말하고, 아래를 따라 위를 제재하는 것을 적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풀과 꽃이 떨어지고 물이 움직이면 만물이 일어나니 이는 반드시 그러한 본보기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보는 것이 늦은가?” 했다. 이사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나라는 태자를 바꾸고 3세대가 편안하지 못하였고, 제나라 환공은 형제가 왕위를 다투다가 몸은 죽고 도륙되었으며, 주는 친척을 죽이고 간하는 것을 듣지 않다가 나라가 언덕의 빈터가 되어 마침내 사직이 위태롭게 되었는데 세 가지는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고, 종묘는 제사지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을 것인데 어찌 도모할 수 있겠는가?” 했다. 조고가 말하기를 상하가 같이 하면 오래 할 수 있고, 안과 밖이 하나같아야 일이 표리가 없는 것이다. 그대가 나의 계책을 들으면 곧 길게 후로 봉해져 대대로 를 일컬을 수 있으니 반드시 왕지 교와 적송자의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니 공자와 묵적의 지혜입니다. 지금 이를 해석하고도 따르지 않으면 재앙이 자손에게 미칠 것이니 충분히 마음을 서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잘하는 자는 재앙을 복으로 삼습니다. 그대는 어디에 처하렵니까?” 했다. 이에 이사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크게 한 숨 쉬면서 말하기를 “‘!’ 홀로 난세를 만나 죽지도 못하고 어디에 목숨을 맡겨야 하는가!” 하고는 이에 이사가 곧 조고의 말을 들었다. 조고가 이에 호해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신이 밝은 명을 받들어 승상에게 전하였는데 승상 이사가 감히 명령을 받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했다.

 

[] 索隱斯言忠臣之節本不避死言己今日亦庶幾盡忠不避死也

[] 索隱이사는 충신의 절개와 본분은 죽음을 피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 것이다. 자기가 오늘 또한 충성을 다하고 죽음을 피하지 않을 것을 바란다고 말한 것이다.


[] 索隱水搖者謂冰泮而水動也是春時而萬物皆生也

[] 索隱물이 요동친다는 것은 얼음이 녹으면 물이 움직이는데 이는 봄에 만물이 모두 새로 살아남을 말한 것이다.

 

[] 正義謂廢申生立奚齊也

[] 正義신생을 폐하고 해제를 세운 것을 말한다.

 

[] 正義謂小白與公子糾

[] 正義소백과 공자 규를 말한다.

 

[] 正義謂殺比干囚箕子

[] 正義비간을 죽이고 기자를 옥에 가둔 것을 말한다.

 

[] 索隱言我今日猶是人人道守順豈能為逆謀故下云安足與謀」。

[] 索隱내가 오늘 이 같은 사람으로 인도를 지키고 따라가는데 어찌 역모를 한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아래에서 어찌 더불어 도모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한 것이다.

 

於是乃相與謀詐為受始皇詔丞相立子胡亥為太子更為書賜長子扶蘇曰:「朕巡天下禱祠名山諸神以延壽命今扶蘇與將軍蒙恬將師數十萬以屯邊十有餘年矣不能進而前士卒多秏無尺寸之功乃反數上書直言誹謗我所為以不得罷歸為太子日夜怨望扶蘇為人子不孝其賜劍以自裁將軍恬與扶蘇居外不匡正宜知其謀為人臣不忠其賜死以兵屬裨將王離。」封其書以皇帝璽遣胡亥客奉書賜扶蘇於上郡

이에 서로 모의하여 거짓으로 시황제의 조칙을 승상이 받았다하고 아들 호해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다시 글을 장자 부소에게 내려 말하기를 짐이 천하를 순행하면서 이름 있는 산, 여러 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으로써 수영이 연장되는 것을 기도하였다. 지금 부소와 장군 몽념이 군대 수십만을 거느리고 변경에 주둔한지 10여년인데 능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사졸들을 많이 소모시키며, 한 치의 공이 없는데도 도리어 여러 번 내가 하는 바를 곧바로 비방하여 말하고 (지금의 자리를)그만두고 돌아와 태자가 되지 못한 것을 낮과 밤으로 원망한다. 부소가 사람의 자식으로 효성스럽지 못하므로 검을 내리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장군 몽념은 부소와 밖에 함께 있으면서 바르게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그 꾀를 말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신하로 충성스럽지 못하니 그 죽을 내리고 군대는 비장 왕리에게 맡긴다.” 했다. 그 글을 봉하여 황제의 옥새를 찍고 호해의 객을 시켜 글을 받들고 상군에서 부소에게 내리게 했다.


使者至發書扶蘇泣入內舍欲自殺蒙恬止扶蘇曰:「陛下居外未立太子使臣將三十萬眾守邊公子為監此天下重任也今一使者來即自殺安知其非詐請復請復請而後死未暮也。」使者數趣之扶蘇為人仁謂蒙恬曰:「父而賜子死尚安復請!」即自殺蒙恬不肯死使者即以屬吏繫於陽周[]

사자가 이르러 글을 펴니 부소가 울면서 내사로 들어가 스스로 죽으려 하였다. 몽념이 부소를 저지하며 말하기를 폐하께서 밖에 있었고 아직 태자를 세우지 않았으며 신으로 하여금 30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변경을 지키게 하면서 곶아를 감독으로 삼았는데 이는 천하의 중임입니다. 지금 한 사자가 와서 곧 스스로 죽으라 하니 어찌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간청하고 다시 간청하고, 다시 간청한 후에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 했다. 사자가 여러 번 재촉하였다. 부소의 사람됨이 어질어서 몽념에게 말하기를 아버지이면서 자식에게 죽음을 내리는데 오히려 어지 다시 간청하겠는가?” 하고는 곧 스스로 죽었다. 몽념이 즐겨 죽지 않자 사자가 곧 관리에게 부탁하여 양주에서 매달았다.


[] 集解徐廣曰:「屬上郡。」 正義陽周寧州羅川縣之邑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상군에 속한다.” 했다. 正義양주는 영주 나천현의 읍이다.

 

使者還報胡亥高大喜至咸陽發喪太子立為二世皇帝以趙高為郎中令常侍中用事

사자가 돌아가 보고하니 호해와 이사, 조고가 크게 기뻐하였다. 함양에 이르러 상을 발표하고 태자를 세워 2세황제라 하였다. 조고를 낭중령이 되어 항상 안에서 황제를 모시고 일을 보았다.

 

二世燕居乃召高與謀事謂曰:「夫人生居世閒也譬猶騁六驥過決隙也吾既已臨天下矣欲悉耳目之所好窮心志之所樂以安宗廟而樂萬姓長有天下終吾年壽其道可乎?」高曰:「此賢主之所能行也而昏亂主之所禁也臣請言之不敢避斧鉞之誅願陛下少留意焉夫沙丘之謀諸公子及大臣皆疑焉而諸公子盡帝兄大臣又先帝之所置也今陛下初立此其屬意怏怏皆不服恐為變且蒙恬已死蒙毅將兵居外臣戰戰栗栗唯恐不終且陛下安得為此樂乎?」

2세 황제가 편안히 살면서 조고를 불러 일을 도모하면서 말하기를 대저 사람이 태어나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비유하면 여섯 마리 천리마에 의지하여 갈라진 틈을 지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이미 천하를 대하면서 모든 귀와 눈의 좋아하는 것과 마음과 뜻의 좋아하는 바를 다하는 것으로써 종묘를 편안히 하고 반 백성을 즐겁게 하여 길이 천하를 소유하며 내 하늘이 준 수명을 마치고자 하는데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했다. 조고가 말하기를 이는 현명한 군주가 능히 할 수 있는 것이고, 어둡고 어지러운 군주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이 감히 도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피하지 않고 말하기를 청하니 폐하께서는 뜻을 여기에 머물러 주시기를 원합니다. 대저 사구의 도모는 여러 공자와 대신들이 모두 의심하는데 여러 공자는 모두 황제의 형들이고, 대신은 또한 돌아가신 황제께서 두신 이들입니다. 지금 페하께서 처음 즉위하였으니 이들은 마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두 복종하지 않으니 변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또한 몽념은 이미 죽었지만 몽념의 굳센 장군과 병사들이 밖에 있으니 신은 벌벌 떨면서 조심하여 두려움이 끝이 없습니다. 또한 폐하께서 어찌 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二世曰:「為之柰何?」趙高曰:「嚴法而刻刑令有罪者相坐誅至收族滅大臣而遠骨肉貧者富之賤者貴之盡除去先帝之故臣更置陛下之所親信者近之此則陰德歸陛下害除而姦謀塞群臣莫不被潤澤蒙厚德陛下則高枕肆志寵樂矣計莫出於此。」二世然高之言乃更為法律於是群臣諸公子有罪輒下高令鞠治之殺大臣蒙毅等公子十二人僇死咸陽市十公主矺死於杜[]財物入於縣官相連坐者不可勝數

2세 황제가 말하기를 어찌하여야 합니까?” 하니 조고가 말하기를 법을 엄격하게 하고 형벌을 각박하게 하며 죄가 있는 자는 서로 연좌하여 죽이게 하여 일족을 거두게 하고, 대신을 없애고 골육을 멀리함에 이르게 하며 가난한 자는 부유하게 하고 낮고 천한 자는 귀하게 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황제의 옛 신하를 모두 제거하고 폐하가 친하고 믿는 자를 고쳐두어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이는 곧 숨은 덕은 폐하에게 돌아오고, 해침은 제거되고 간사한 도모를 막는 것이니 여러 신하들이 은택을 입고, 두터운 덕을 입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니 폐하께서는 높은 베개를 베고 뜻을 펴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계책으로 이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했다. 2세황제가 조고의 말을 그러하다 여겨 이에 문득 법률을 삼았다. 이에 여러 신하와 여러 공자들이 죄를 짓게 되면 번번이 조고에게 내려 심문하고 다스리게 하였다. 대신 몽의 등을 죽이고 공자 12명이 함양 시장에서 욕을 당하고 10명의 공주가 두에서 몸이 찢겨 죽었으며, 재물을 관청에 들이고(몰수하고), 서로 연좌된 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 集解史記音隱曰:「矺音貯格反。」 索隱矺音宅古今字異耳磔謂裂其支體而殺之

[] 索隱】 「사기음은의 음은 이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니 과 같고, 옛날과 지금의 글자가 다를 뿐이다. ‘는 그 팔 다리를 찢어서 죽이는 것이다.

 

公子高欲奔恐收族乃上書曰:「先帝無恙臣入則賜食出則乘輿御府之衣臣得賜之中廄之寶馬臣得賜之臣當從死而不能為人子不孝為人臣不忠不忠者無名以立於世臣請從死願葬酈山之足唯上幸哀憐之。」書上胡亥大說召趙高而示之:「此可謂急乎?」趙高曰:「人臣當憂死而不暇何變之得謀!」胡亥可其書賜錢十萬以葬

공자 고가 달아나려 하다가 일족이 거두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글을 올려 말하기를 돌아가신 황제께서 근심이 없을 때 신이 들어가면 곧 음식을 내리시고 나가면 곧 가마를 태워주셨습니다. 어부의 옷을 신에게 내려주셨으며, 궁중 안의 마굿간 보마를 신에게 내려주셨습니다. 신이 마땅히 따라 죽어야 하나 하니 못하였으니 자식으로 효도하지 못하였고, 신하로 충성스럽지 못하였습니다. 충성스럽지 못한 자는 명성으로 세상에 설 수 없으니 신은 따라 죽을 것을 청하여 여산 자락에 장례할 것을 원합니다. 오직 황제께서 불쌍하고 가련히 여기십시오.” 했다. 글을 올리자 호해가 크게 기뻐하며 조고를 불러 보이고 말하기를 이것은 급하다 할 수 있는가?” 하니 조고가 말하기를 신하로 마땅히 죽음을 근심하여 틈이 없으니 어찌 변란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호해가 그 글대로 허락하여 돈 10만을 내리고 장례하여주었다.


法令誅罰日益刻深群臣人人自危欲畔者眾又作阿房之宮治直[]馳道賦斂愈重戍傜無已於是楚戍卒陳勝吳廣等乃作亂起於山東傑俊相立自置為侯王叛秦兵至鴻門而卻李斯數欲請閒諫二世不許而二世責問李斯曰:「吾有私議而有所聞於韓子也堯之有天下也堂高三尺采椽不斲[]茅茨不翦雖逆旅之宿不勤於此矣冬日鹿裘夏日葛衣粢糲之食[]藜藿之羹飯土匭[]啜土鉶[]雖監門之養不觳於此矣[]禹鑿龍門通大夏疏九河曲九防[]決渟水致之海[]而股無胈[]無毛手足胼胝面目黎黑遂以死于外葬於會稽臣虜之勞不烈於此矣』。

법령과 죽이는 벌이 날로 더욱 각박하고 심해지자 여러 신하와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태롭게 여겨 배반하고자 하는 자들이 많았다. 또 아방의 궁을 짓고, 길을 곧게 하고 말이 달리는 길을 닦으며 세금 거두는 것을 더욱 무겁게 하며, 병역과 부역이 그치지 않았다. 이에 초 땅 출신으로 변경을 지키는 군졸 진승과 오광 등이 난을 지어 산동에서 일어나니 호걸과 준재들이 서로 일어나 스스로 두고 후왕이 되어 진나라에 반기를 들어 군대가 홍문에 이르렀다가 물러났다. 이사가 여러 번 한가한 틈에 간언을 청하였으나 2세가 허락하지 않았다. 2세가 이사를 질책하고 묻기를 나에게 사사로운 논의가 있고, 한비자에게 들은 것이 있는데 (한비자가)말하기를 요가 천하를 소유해서는 집의 높이가 3자였고, 서까래를 베어서는 자귀질 하지 않았고, 억새지붕은 베지 않아 비록 여행객을 맞는 집도 이보다 검소하지 않았다. 겨울날에는 사슴 갖옷을 입고, 여름날에는 갈포 옷을 입으며 기장밥과 명아주 잎과 콩잎으로 끓인 국을 흙 상자 위에서 흙 국그릇으로 먹고 마시니 비록 문지기의 기름도 여기에 견주지 못할 것이다. 우임금은 용문을 뚫고, 대하를 통하며 구하를 소통하고 굽이마다 아홉 제방을 쌓으며 막힌 물을 터서 바다에 이르게 하여 다리에는 솜털이 없고, 정강이에 털이 없고, 손과 발에는 굳은살이며 얼굴은 검으며 마침내 밖에서 죽어 회계에서 장례하였는데 신하와 노예의 수고로움도 이보다 치열하지 않을 것이다.’ 했다.

 

然則夫所貴於有天下者豈欲苦形勞神身處逆旅之宿口食監門之養手持臣虜之作哉此不肖人之所勉也非賢者之所務也彼賢人之有天下也專用天下適己而已矣此所貴於有天下也夫所謂賢人者必能安天下而治萬民今身且不能利將惡能治天下哉故吾願賜志廣欲長享天下而無害為之柰何?」李斯子由為三川守群盜吳廣等西略地過去弗能禁章邯以破逐廣等兵使者覆案三川相屬誚讓斯居三公位如何令盜如此李斯恐懼重爵祿不知所出乃阿二世意欲求容以書對曰

그러한 즉 대저 천하를 소유한 자가 귀하다는 것이 어찌 몸을 괴롭게 하고 정신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며, 몸을 나그네를 맞이하는 숙소에 처하는 것이며, 임으로 먹는 음식이 문지기의 기름이며, 손으로 잡는 것이 신하와 노예의 일이겠는가? 이는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 힘쓰는 것으로 현명한 자의 힘스는 것이 아니다. 저 현명한 사람이 천하를 소유한다는 것은 오로지 천하가 자기를 알맞게 함을 쓸 뿐이니 이것이 천하를 소유한 이에게 귀한 것이다. 대저 이른 바 현명한 사람은 반드시 천하를 편안하게 하고 만민을 다스리는 데, 지금 자신도 또한 이롭게 하지 못하면서 장차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뜻을 내리고 욕심을 넓게 하여 길게 천하를 누리되 해침이 없게 할 것인데 그것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했다. 이사의 아들 유가 삼천의 지방관이 되었는데 도적의 무리인 오광 등이 서쪽으로 땅을 침략하며 지나가도 금하지 못하였다. 장한이 오강 등의 군대를 깨트려 쫓아버리자 삼천을 조사하는 사자가 서로 이어지고, 이사가 삼공의 지위에 있으면서 어떻게 도적으로 하여금 이 같게 하는가? 하고 꾸짖었다. 이사가 두려워하면서도 벼슬과 녹을 중시하여 벗어날 바를 알지 못하고 이에 2세에게 아첨하여 용서를 구하고자 해서 글을 올려 대답하기를


[] 集解徐廣曰:「一名櫟一作』。」 索隱采木名即今之櫟木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는 일명 (상수리나무 력())’이다.‘이라고도 쓴다.” 했다. 索隱는 나무이름이니 곧 지금의 상수리나무이다

 

[] 索隱粢音資音郎葛反粢者稷也糲者,□粟飯也

[] 索隱(기장 자)’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는 피이다. ‘곡식 밥이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라 쓰기도 한다.

 

[] 集解音刑

[] 集解음은 이다.

       

[] 集解徐廣曰:「觳音學一作』,推也。」 索隱觳音學爾雅盡也」。言監門下人飯猶不盡此若徐氏云一作』。推也」,則字宜作」。鄒氏音角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의 음은 이다.” ‘이라고도 쓰는데 미루는 것이다. 索隱의 음은 이다. 이아“‘은 다함이다.” 감옥에 있는 사람의 밥이 이보다 심하지 않다는 말이다. 만약 서씨가 말한 “‘으로도 쓰며 응 미루는 것이다.” 한다면 곧 글자는 마땅히 (견줄 교)’라 싸야한다. 추씨는 음을 이라 했다.

 

[] 正義謂河之九曲別為隄防

[] 正義강의 구곡에 별도로 제방을 쌓은 것이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이라고도 쓴다.

 

[] 集解胈膚毳皮

[] 集解(정강이 털 발)’이니 피부의 솜털과 가죽이다.

 

夫賢主者必且能全道而行督責之術者也[]督責之則臣不敢不竭能以徇其主矣此臣主之分定上下之義明則天下賢不肖莫敢不盡力竭任以徇其君矣是故主獨制於天下而無所制也能窮樂之極矣賢明之主也可不察焉

대저 현명한 임금은 반드시 또한 도를 온전히 하여 살피고 질책하는 방법을 행할 수 있습니다. 살피고 질책하면 곧 신하는 감히 능력을 다하는 것으로써 그 임금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신하와 임금의 직분이 정해져 상하의 의리가 명확하면 곧 천하의 현명하고, 현명하지 못한 이가 감히 힘을 다하고 임무를 다하는 것으로써 그 임금을 따르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임금이 홀로 천하를 제재하되 제재 당하지 않습니다. 즐거움의 지극함을 다하여야 현명한 임금이니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索隱督者察也察其罪責之以刑罰也

[] 索隱은 살피는 것이니 그 죄를 살펴서 질책하기를 형벌로 하는 것이다.

 

故申子曰有天下而不恣[]命之曰以天下為桎梏[]無他焉不能督責而顧以其身勞於天下之民若堯禹然故謂之桎梏夫不能修申韓之明術行督責之道專以天下自適也而徒務苦形勞神以身徇百姓則是黔首之役非畜天下者也何足貴哉夫以人徇己則己貴而人賤以己徇人則己賤而人貴故徇人者賤而人所徇者貴自古及今未有不然者也凡古之所為尊賢者為其貴也而所為惡不肖者為其賤也而堯禹以身徇天下者也因隨而尊之則亦失所為尊賢之心矣夫可謂大繆謂之為桎梏」,不亦宜乎不能督責之過也

그러므로 신불해가 말하기를 천하를 소유하고도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명명하여 천하로 형틀로 삼는다.”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살피고 질책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리어 천하의 백성을 위해 그 몸을 수고롭게 하여 요, 우 임금처럼 하면 그것을 질곡이라 하는 것입니다. 저 신불해와 한비자의 밝은 방법을 닦아 살피고 질책을 행하여 오로지 천하를 자신에게 맞추지 못하고 헛되이 힘써 형상을 괴롭게 하고 정신을 수고롭게 하여 몸으로써 백성을 다르면 곧 이는 백성의 역할이지 천하를 기르는 자가 아니니 어찌 충분히 귀하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따르는 자는 천하고, 다른 사람이 따르는 자는 귀한 것이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렇지 않은 자가 있지 않았다. 무릇 옛날에 현명한 이를 높이는 것은 귀하기 때문이고, 현명하지 못한 이를 미워하는 까닭은 천하기 때문입니다. , 우는 몸을 가지고 천하를 따른 이이니 따르고 높이면 곧 또한 어진 이를 높이는 마음을 행하는 것을 잃는 것이니 큰 잘못이라 할만하다. 그것을 桎梏이라 말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살피고 질책을 잘 하지 못한 허물입니다.


[] 索隱上音資二反下音呼季反恣睢猶放縱也謂肆情縱恣也

[] 索隱위의 음은 이고, 아래의 음은 이다. ‘自睢放縱과 같은 것이니 뜻을 펼침에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 正義言有天下不能自縱恣督責乃勞身於天下若堯即以天下為桎梏於身也

[] 正義천하를 소유하고 스스로 마음대로 하고, 살펴 질책하지 못하고 천하에 몸을 수고롭게하기를 요와 우같이 한다면 곧 천하를 자신의 질곡으로 삼는 것이다.


故韓子曰:「慈母有敗子而嚴家無格虜何也[]則能罰之加焉必也故商君之法刑棄灰於道者[]夫棄灰薄罪也而被刑重罰也彼唯明主為能深督輕罪夫罪輕且督深而況有重罪乎故民不敢犯也是故韓子曰布帛尋常庸人不釋[]金百溢盜跖不搏[]非庸人之心重尋常之利深而盜跖之欲淺也又不以盜跖之行為輕百鎰之重也必隨手刑則盜跖不搏百鎰而罰不必行也則庸人不釋尋常是故城高五丈而樓季不輕犯也[]泰山之高百仞而跛牂牧其上[]夫樓季也而難五丈之限豈跛也而易百仞之高哉峭塹之勢異也[]明主聖王之所以能久處尊位長執重勢而獨擅天下之利者非有異道也能獨斷而審督責必深罰故天下不敢犯也今不務所以不犯而事慈母之所以敗子也則亦不察於聖人之論矣夫不能行聖人之術則舍為天下役何事哉可不哀邪[]

그러므로 한비자가 말하기를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무너뜨리는 자식이 있지만 엄격한 가정은 바로잡을 하인이 없다한 것은 왜입니까? 벌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군(상앙)의 법은 길에 재를 버리는 자를 형벌합니다. 대저 재를 버리는 것은 가벼운 죄이나 형벌을 받는 것은 무거운 벌입니다. 그것은 오직 현명한 군주만이 가벼운 죄를 깊이 살필 수 있습니다. 대저 가벼운 죄도 살피기를 깊게 하는데 하물며 무거운 죄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백성들이 감히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한비자가 , 비단의 하찮은 조각은 보통사람이 그것을 취하지만 좋은 금 100일은 도척도 취하지 않는다.” 한 것은 보통사람의 마음이 하찮은 이익을 중요하게 여김이 더 깊거나 도척의 욕심이 얕기 때문이 아니고, 또한 도척의 행위가 100일의 重寶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 아닙니다. 집으면 반드시 형벌이 따르기 때문에 곧 도척도 100일의 좋은 금을 집지 않습니다. 벌이 반드시 행해지지 않으면 곧 보통 사람도 하찮은 것을 버려두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성의 높이가 5장이나 누계가 가볍게 범하지 못하며, 태산의 높이가 100길이나 절름발이 목동이 그 위에서 양을 먹입니다. 저 누계가 5장의 제한을 어렵다하는데 어찌 절름발이가 100길의 높이를 쉽다해서이겠습니까? 가파르고, 완만함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임금과 성스러운 왕이 오래 동안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고, 오래 무거운 권세를 잡으며 홀로 천하의 이익을 천단할 수 있는 까닭은 다른 방법(도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홀로 결단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질책해서 반드시 벌을 깊이하기 때문에 천하가 감히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범하지 않는 까닭을 힘쓰지 않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들을 망치는 까닭을 일삼는다면 곧 또한 성인의 논의를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 대저 성인의 방법을 잘 행하지 못하면 곧 (자기를)버리고 천하를 위해 사역하는 것이니 무슨 일입니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索隱格彊扞也奴隸也言嚴整之家本無格扞奴僕也

[] 索隱은 강하게 막음이다. ‘는 노예이다. 엄정한 집은 본래 엄격하게 막을 노복이 없다는 말이다.


[] 正義棄灰於道者黥也韓子云:「殷之法棄灰於衢者刑子貢以為重問之仲尼曰:『灰棄於衢必燔人必怒怒則鬥鬥則三族雖刑之可也。』。」

[] 正義길에 재를 버리는 자는 黥刑이다. 한비자가 말하기를 은나라의 법은 거리에 재를 버리는 자는 형벌한다. 자공이 무겁다 여겨서 물으니 공자가 말하기를 재를 거리에 버리면 반드시 불타고, 사람은 반드시 노하며, 노하면 곧 싸우고, 싸우면 곧 三族이 멸하게 되니 비록 형벌할지라도 괜찮다.’” 했다.


[] 索隱八尺曰尋倍尋曰常以言其少也庸人弗釋者謂庸人見則取之而不釋以其罪輕故下云罰不必行則庸人弗釋尋常是也

[] 索隱8자를 이라 하고, 심의 배를 이라 하는데 그 작음을 말한다. ‘庸人弗釋은 보통사람이 보면 곧 그것을 취하고 놓아두지 않는 것은 그 죄가 가볍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벌이 반드시 행해지지 않으면 곧 보통사람도 하찮은 것을 놓아두지 않는다.” 한 것이다.


[] 索隱爾雅美也」。言百溢之美金在於地雖有盜跖之行亦不取者為財多而罪重也故下云搏必隨手刑盜跖不搏搏猶攫取也凡鳥翼擊物曰搏足取曰攫故人取物亦謂之搏

[] 索隱】 『이아“‘(빛날 삭)’은 아름다움이다.” 했다. 100일의 좋은 금이 땅에 있으면 비록 도척의 행실이라 하더라도 취하지 않는 것은 재물이 많아 죄가 무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말하기를 집으면 반드시 형벌이 따르므로 도척도 집지 않는다.” 한 것이다. ‘과 같으니 취함이다. 무릇 새가 날개로 물건을 치는 것을 이라 하고, 발로 취하는 것을 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물건을 취하는 것을 또한 이라 말한다.

 

[] 集解許慎曰:「樓季魏文侯之弟。」王孫子曰:「樓季之兄也。」

[] 集解허신이 말하기를 “‘누계는 위나라 문후의 동생이다.” 했다. 왕손자가 말하기를 “‘누계의 형이다.” 했다.

 

[] 集解詩云:「牂羊墳首。」毛傳曰:「牝曰牂。」

[] 集解】 『시경牂羊墳首(암양의 머리는 커다랗고)” 했고, 모전암컷을 이라 한다.” 했다.

 

[] 索隱峭峻也高也七笑反塹音漸以言峭峻則難登故樓季難五丈之限平塹則易涉故跛牂牧於泰山也

[] 索隱(가파를 초)’이니 높음이고, ‘이다. ‘의 음은 이다. 가파른 경사는 곧 오르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계가 5장의 제한을 오르기 어려워하지만 평평한 구덩이는 건너기 쉽다. 그러므로 절름발이도 태산에서 양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 索隱舍猶廢也止也言為人主不能行聖人督責之術則已廢止何為勤身苦心為天下所役是何哉?「可不哀邪」,言其非也

[] 索隱(그만두다, 부서지다)’와 같은데 그침이다. 다른 사람의 임금이 되어 성인이 살피고, 질책하는 방법을 행할 수 없으면 곧 그치고 그만두어야 하는데 어찌 몸을 부지런히 하고, 마음을 괴롭게 하고 천하를 위하여 사역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고 말한 것이다. ‘可不哀邪는 그것이 잘못임을 말한 것이다.

 

且夫儉節仁義之人立於朝則荒肆之樂輟矣諫說論理之臣閒於側則流漫之志詘烈士死節之行顯於世則淫康之虞廢矣故明主能外此三者而獨操主術以制聽從之臣而修其明法故身尊而勢重也凡賢主者必將能拂世磨俗[]而廢其所惡立其所欲故生則有尊重之勢死則有賢明之謚也是以明君獨斷故權不在臣也凡賢主者必將能拂世磨俗[]而廢其所惡立其所欲故生則有尊重之勢死則有賢明之謚也是以明君獨斷故權不在臣也

또 대저 검소하고 절제하는 仁義의 사람을 조정에 세우면 곧 황폐하고 함부로 하는 즐거움은 거두어지고, 간하는 말을 하고, 이치를 논하는 신하가 옆에서 보위하면 곧 흐르고 방종하는 뜻은 내쳐지며, 열사가 절개를 지키다 죽은 행실이 세상에 드러나면 곧 음탕한 즐거움은 그쳐집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임금은 이 세 가지를 벗어나서 홀로 임금의 방법을 잡는 것으로써 (임금의 말을)듣고 따르기만 하는 신하를 제재하고, 그 밝은 법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몸은 높아지고 권세는 무거워집니다. 무릇 현명한 임금은 반드시 장차 세상을 털고 풍속을 갈아낼 수 있어서 그 미워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 그 바라는 것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서는 존중의 권세가 있고, 죽어서는 현명의 시호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홀로 결단하기 때문에 권력이 신하에게 있지 않게 됩니다.


然後能滅仁義之塗掩馳說之口困烈士之行塞聰揜明內獨視聽故外不可傾以仁義烈士之行而內不可奪以諫說忿爭之辯故能犖然獨行恣睢之心而莫之敢逆若此然後可謂能明申韓之術而脩商君之法法脩術明而天下亂者未之聞也故曰王道約而易操唯明主為能行之若此則謂督責之誠則臣無邪臣無邪則天下安天下安則主嚴尊主嚴尊則督責必督責必則所求得所求得則國家富國家富則君樂豐故督責之術設則所欲無不得矣群臣百姓救過不給何變之敢圖若此則帝道備而可謂能明君臣之術矣雖申韓復生不能加也

그런 후에 仁義의 길을 없앨 수 있고, 치달리는 유세의 입을 가리며, 열사의 행실을 곤궁하게 하고, 귀 밝음을 막고 눈 밝음을 막아 안으로는 홀로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밖으로는 인의, 열사의 행실에 기울어지지 않고, 안으로 간하는 말과 성내어 다투는 변명에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명백하게 홀로 함부로 하는 마음을 행하여도 감히 거스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이 한 후에야 신불해와 한비자의 방법을 밝히고 상군(상앙)의 법을 닦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을 닦고 방법을 밝게 하였는데도 천하가 어지러워졌다는 것을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도는 간략하여 조절하기 쉽다.” 하는 것입니다. 오직 현명한 임금만이 그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 같으면 곧 살피고 질책하는 정성이라 말할 수 있고, 곧 신하에게는 간사함이 없을 것이고, 신하에게 간사함이 없으면 곧 천하가 편안하고, 천하가 편안하면 곧 임금은 위엄이 있어 높아지게 되고, 임금이 위엄이 있고 높아지면 곧 살피고 질책함이 틀림이 없어지고, 살피고 질책함이 틀림이 없으면 곧 구하여 얻게 되고 구하여 얻으면 곧 국가가 부유해지고, 국가가 부유해지면 곧 임금의 즐거움은 풍성해집니다. 그러므로 살피고 질책하는 방법이 베풀어지면 곧 하고자하는 것을 얻지 못함이 없습니다. 여러 신하들과 백성은 허물을 구제하기에도 넉넉하지 못하니(자신의 허물을 벗어나기에 급급하니) 어찌 변란을 감히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같으면 곧 황제의 도가 갖추어지고 임금과 신하의 책략을 밝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신불해, 한비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더하지 못할 것입니다.

 

[] 索隱拂音扶弗反磨音莫何反拂世蓋言與代情乖戾磨俗言磨礪於俗使從己

[] 索隱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拂世는 대개 당시의 실정에 어긋남을 말하는 것이다 磨俗은 풍속을 갈아서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이다.

 

書奏二世悅於是行督責益嚴稅民深者為明吏二世曰:「若此則可謂能督責矣。」刑者相半於道而死人日成積於市殺人眾者為忠臣二世曰:「若此則可謂能督責矣。」

글을 올리자 2세가 기뻐하였다. 이에 살피고 질책하기를 더욱 엄격하게 행하고,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는 것을 많이 하는 자를 현명한 관리라 하였다. 2세가 말하기를 이 같으면 곧 잘 살피고 질책한다고 말할 만하다.” 하였다. 길에 다니는 자 중에 반이 형벌을 받는 자였고, 죽은 사람이 날로 시장에 쌓였다. 사람을 죽이는 자를 충신이라 하였다. 2세가 말하기를 이 같으면 곧 잘 살피고 질책한다. 말할 만하다.”했다.


趙高為郎中令所殺及報私怨眾多恐大臣入朝奏事毀惡之乃說二世曰:「天子所以貴者但以聞聲群臣莫得見其面故號曰』。且陛下富於春秋未必盡通諸事[]今坐朝廷譴舉有不當者則見短於大臣非所以示神明於天下也且陛下深拱禁中與臣及侍中習法者待事事來有以揆之[]如此則大臣不敢奏疑事天下稱聖主矣。」二世用其計乃不坐朝廷見大臣居禁中趙高常侍中用事事皆決於趙高

처음에 조고가 낭중령이 되었는데 죽음을 당한 자와 사사로이 원한을 갚은 무리가 많아 대신들이 조정에 들어와 정사를 아뢰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비방하고 미워하였다. 이에 2세에게 말하기를 천자가 귀한 까닭은 다만 소리만 듣고, 여러 신하들이 그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라고 이름 합니다. 또한 폐하께서 나이가 어려서 반드시 여러 가지 일에 모두 통하지 못하니 지금 조정에 앉아 꾸짖고, 천거한 이 중에 마땅하지 않은 자가 있으면 곧 대신들에게 단점을 보이게 되니 천하에 신명을 보이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폐하께서는 궁중에서 깊이 팔짱을 끼고 신과 시중이 법을 익힌 자와 함께 정사를 기다리다가 일을 가지고 오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헤아리십시오. 이 같이 하면 대신들이 감히 의심나는 일을 아뢰지 못할 것이니 천하가 성스러운 임금이라 칭찬할 것입니다. 했다. 2세가 그 계책을 써서 이에 조정에 앉아 대신을 보지 않고, 궁중 안에 있었다. 조고가 항상 시중과 일을 처리하니 일이 모두 조고에게서 결정되었다.


[] 集解徐廣曰:「或宜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은 혹은 라 쓰는 것이 마땅하다. 한다.” 했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는 한편 로 쓰기도 한다.” 했다.

 

高聞李斯以為言乃見丞相曰:「關東群盜多今上急益發繇治阿房宮[]聚狗馬無用之物臣欲諫為位賤此真君侯之事君何不諫?」李斯曰:「固也吾欲言之久矣今時上不坐朝廷上居深宮吾有所言者不可傳也欲見無閒。」趙高謂曰:「君誠能諫請為君候上閒語君。」於是趙高待二世方燕樂婦女居前使人告丞相:「上方閒可奏事。」丞相至宮門上謁如此者三二世怒曰:「吾常多閒日丞相不來吾方燕私丞相輒來請事丞相豈少我哉且固我哉?」[]趙高因曰:「如此殆矣夫沙丘之謀丞相與焉今陛下已立為帝而丞相貴不益此其意亦望裂地而王矣且陛下不問臣臣不敢言丞相長男李由為三川守楚盜陳勝等皆丞相傍縣之子以故楚盜公行[]過三川城守不肯擊高聞其文書相往來未得其審故未敢以聞且丞相居外權重於陛下。」二世以為然欲案丞相恐其不審乃使人案驗三川守與盜通狀李斯聞之

조고가 이사가 한 말을 듣고 이에 승상을 보고 말하기를 관동에 여러 도적이 많고, 지금 임금께서 급하게 더욱 요역을 일으켜 아방궁을 지으시고, , 말의 쓸데없는 물건을 모았습니다. 신이 간하고자 하나 지위가 낮습니다. 이는 참으로 군후의 일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간하지 않습니까?” 했다. 이사가 말하기를 참으로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이 오래입니다. 지금 임금께서 조정에 앉아 있지 않고, 임금께서 깊은 궁중에 있으니 내가 말할 것이 있어도 전할 수가 없으니 보고자하여도 틈이 없습니다.” 했다. 조고가 말하기를 그대가 진실로 간할 수 있다면 군후를 위해 임금께 한가한 틈을 그대에게 말할 것을 청합니다.” 했다.

이에 조고는 2세가 막 연회하고 즐거워하면서 부녀를 앞에 두고 있을 때를 기다려서 사람으로 하여금 승상에게 알리기를 임금께서 바야흐로 한가하시니 일을 아뢸만 합니다.” 했다. 승상이 궁궐 문에 이르러 임금을 알현하여 하기를 3번이나 하였다. 2세가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평소 한가한 날에 승상은 오지 않고 내가 바야흐로 사사로이 연회하려는데 승상이 문득 와서 일을 청합니다. 승상은 왜 나를 어리게 여겨서인가? 또한 나를 어리석다 여기는가?” 했다. 조고가 인하여 말하기를 이 같이 위태롭군요! 대저 사구의 도모함은 승상과 함께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이미 즉위하여 황제가 되었는데도 승상은 귀함을 더하지 않았으니 그 뜻이 또한 땅을 찢어 왕 노릇 할 것을 바란 것입니다. 또한 폐하께서 신에게 묻지 않아 신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승상의 장남 이유가 삼천의 지방관이 되어 초나라 도적 진승 등이 모두 승상 고향 이웃 현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초나라 도적이 공공연히 가서 삼천을 지나는데 성을 지키기만 하고 즐겨 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들으니 그 문서가 서로 왕래하였다 하나 그 자세한 것을 얻지 못하여 감히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승상이 밖에 있으면서 권세가 폐하보다 무겁다고 합니다.” 했다. 2세가 그렇다 여겨서 승상을 살피고자 하였으나 그 자세하지 않음을 우려하여 이에 사람을 시켜 삼천의 지방관과 도적이 통한 장계를 살피고 징험하게 하였다. 이사가 그것을 들었다.


[] 索隱房音旁一如字

[] 索隱의 음은 인데 같은 글자이다.

 

[] 索隱謂以我幼故輕我也固我一云以我為短少且固陋於我也於義為疏

[] 索隱내가 어리기 때문에 나를 가벼이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固我라고 말한 것은 한편 내가 작고 어려서 또한 나를 고루하다. 한 것이라 하나 듯에서 소략하다.

 

[] 集解徐廣曰:「一作』,音松。」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은 한편 이라 쓰는데 음은 이다.

 

是時二世在甘泉方作觳抵優俳之觀[]李斯不得見因上書言趙高之短曰:「臣聞之臣疑其君無不危國妾疑其夫無不危家今有大臣於陛下擅利擅害與陛下無異此甚不便昔者司城子罕相宋身行刑罰以威行之期年遂劫其君田常為簡公臣爵列無敵於國私家之富與公家均布惠施德下得百姓上得群臣陰取齊國殺宰予於庭即弒簡公於朝遂有齊國此天下所明知也今高有邪佚之志危反之行如子罕相宋也私家之富若田氏之於齊也兼行田常子罕之逆道而劫陛下之威信其志若韓玘為韓安相也[]陛下不圖臣恐其為變也。」

이 때 2세는 감천에 있으면서 곡저(각저)와 광대의 놀이를 보고 있었다. 이사가 뵙지 못하고 글을 올려 조고의 단점을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신하가 임금을 의심하며 나라를 위태롭게 하지 않음이 없고, 첩이 그 지아비를 의심하면 집을 위태롭게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폐하에게 대신이 있어 이익을 천단하고 해침을 천단하는 것이 페하와 다름이 없으니 이는 매우 적절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사성자한이 송나라의 재상이 되어 자신이 형벌을 행하는 것으로써 위엄을 행하다 1년 만에 마침내 그 임금을 겁주었습니다. 전상은 간공의 신하가 되어 벼슬의 반열이 나라에서 대적할 이가 없어 개인 집의 부유함이 공가(제후의 집)와 같았고, 은혜를 펴고 덕을 베풀어 아래로 백성을 얻고(신임을 얻고) 위로는 여러 신하들을 (신망을)얻어 몰래 제나라를 취하고 재여를 뜰에서 죽이며, 간공을 조정에서 죽여 마침내 제나라를 소유하였습니다. 이는 천하가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지금 조고가 간사하고 방탕한 뜻이 있어 위태롭고 반란의 행동을 하니 자한이 송나라의 재상이 된 것과 같고, 개인 집안의 부유함은 전씨(전상)의 제나라에 대해서와 같습니다. 행실은 전상과 자한의 도를 거스르는 것을 겸하였고, 폐하의 위엄과 신망을 겁주는 것은 그 뜻은 한나라 왕 안의 재상이 되었던 한기와 같습니다. 페하께서 도모하지 않으시니 신은 변란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했다.


二世曰:「何哉夫高故宦人也然不為安肆志不以危易心絜行脩善自使至此以忠得進以信守位朕實賢之而君疑之何也且朕少失先人無所識知不習治民而君又老恐與天下絕矣朕非屬趙君當誰任哉且趙君為人精廉彊力下知人情上能適朕君其勿疑。」李斯曰:「不然夫高故賤人也無識於理貪欲無厭求利不止列勢次主求欲無窮臣故曰殆。」二世已前信趙高恐李斯殺之乃私告趙高高曰:「丞相所患者獨高高已死丞相即欲為田常所為。」於是二世曰:「其以李斯屬郎中令!」

2세가 말하기를 어째서인가? 저 조고는 옛 환관으로 편안하고 방자한 생각을 하지 않고 위태로움으로써 마음을 바꾸지 않으며, 행실을 깨끗하게 하고 선을 닦아 스스로 이에 이르게 하였고, 충성으로써 나아가고 믿음으로써 지위를 지키니 짐이 실로 어질다 여기는데 그대가 의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또 짐이 어려서 선인을 잃고 아는 것과 지혜가 없고, 백성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였는데 그대가 또한 늙어 천하와 끊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짐이 조고에게 부탁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또 조고의 사람됨이 정밀하고 청렴하며 강건하여 아래로는 사람의 실정을 알고 위로는 짐에게 알맞으니 그대는 의심하지 말라.” 했다. 이사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저 조고는 옛날의 천한 사람인데 이치를 아는 것이 없고, 탐하는 욕심이 싫어함이 없으며 이익을 구하는 것이 그치지 않고, 서열과 권세가 임금의 다음으로 바라는 것을 구하는 것이 끝이 없으니 신이 그러므로 위태롭다 하는 것입니다.” 했다. 2세가 이미 앞서 조고를 신임하였으므로 이사가 그를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개인적으로 조고에게 알려주었다. 조고가 말하기를 승상이 근심하는 것은 단지 저 조고일 뿐이니 제가 죽고 나면 승상이 전상이 한 것을 하고자 할 것입니다.” 했다. 이에 2세가 말하기를 이사를 낭중령에게 맡기게 하라!” 했다.

 

[] 集解應劭曰:「戰國之時稍增講武之禮以為戲樂用相夸示而秦更名曰角抵角者角材也抵者相抵觸也。」文穎曰:「秦名此樂為角抵兩兩相當角力角伎蓺射御故曰角抵也。」駰案觳抵即角抵也

[] 集解응소가 말하기를 전국시대에 점점 강무의 예를 더하여 희롱하는 즐거움을 삼고, 서로 과시하는데 썼는데 진나라가 이름을 바꾸어 角抵라 했다. ‘角材(네모난 재목)’이다. ‘는 서로 충돌하여 부딪침이다.” 했다. 문영이 말하기를 살펴보니 진나라에서는 이 즐거움을 이름하여 角抵라 하고, 둘씩 서로 마주하여 힘과 기예, 활쏘기, 말 타기를 겨루었기 때문에 角抵 ’”라 한 것이다. 배인이 살펴보니 “‘觳抵는 곧 角抵이다.” 했다.

 

[] 索隱玘亦作」,並音怡韓大夫弒其君悼公者然韓無悼公或鄭之嗣君案表韓玘事昭侯昭侯已下四代至王安其說非也

[] 索隱는 또한 라고도 쓰니 음은 모두 이다. 한나라 대부이니 그 임금인 도공을 죽인 자이다. 그러나 한나라에는 도공이 없으니 혹 정나라의 이은 임금일 것이다. 를 살펴보니 한나라 기가 소후를 섬겼는데 소후 이하 4대에 왕안에 이르니 그 말은 잘못이다.

 

趙高案治李斯李斯拘執束縛居囹圄仰天而歎曰:「嗟乎悲夫不道之君何可為計哉昔者桀殺關龍逢紂殺王子比干吳王夫差殺伍子胥此三臣者豈不忠哉然而不免於死身死而所忠者非也今吾智不及三子而二世之無道過於桀夫差吾以忠死宜矣且二世之治豈不亂哉日者夷其兄弟而自立也殺忠臣而貴賤人作為阿房之宮賦斂天下吾非不諫也而不吾聽也凡古聖王飲食有節車器有數宮室有度出令造事加費而無益於民利者禁故能長久治安今行逆於昆弟不顧其咎侵殺忠臣不思其殃大為宮室厚賦天下不愛其費三者已行天下不聽今反者已有天下之半矣而心尚未寤也而以趙高為佐吾必見寇至咸陽麋鹿游於朝也。」

조고가 이사를 징치하였다. 이사가 잡혀 얽어 매여 감옥 안에 있으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아 슬프다! 부도한 임금에게 무슨 계책을 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걸이 관용봉을 죽였고, 주는 왕자 비간을 죽였고, 오나라 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충성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면서도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몸은 죽어도 충성할만한 임금이 아니었다. 지금 내 지혜가 세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고 2세의 무도함이 걸, , 부차보다 지나치니 내가 충성을 다하다 죽는 것은 마땅하다. 예전에 그 형제를 해치고 스스로 즉위하였는데 충신을 죽이고 천인을 귀하게 하며 아방의 궁을 지으며 천하에 부세를 거두었다. 내가 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릇 옛날의 성스러운 왕은 먹고 마시는 것이 절제가 있었고, 거기에 수가 있었으며, 궁실은 법도가 있고, 영을 내고 일을 지음은 비용을 더하되 백성의 이익에 더함이 없으면 금하였다. 그러므로 오래 동안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었다. 지금 형제를 거스르고, 그 허물을 돌아보지 않으며, 충신을 침략하고 죽이면서도 그 재앙을 생각하지 않으며, 크게 궁실을 짓고, 천하에 부세를 많이 거두면서도 그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3가지가 이미 행해져 천하가 듣지 않는다.(복종하지 않는다.) 지금 배반한 자들이 이미 천하의 반을 소유하였는데 마음은 오히려 깨어나지 못하고 조고를 보좌로 삼으니 내가 반드시 도적이 함양에 이르고, 미록(노루와 사슴)이 조정에서 노니는 것을 볼 것이다.” 했다.

 

於是二世乃使高案丞相獄治罪責斯與子由謀反狀皆收捕宗族賓客趙高治斯榜掠千餘不勝痛自誣服斯所以不死者自負其辯有功實無反心幸得上書自陳幸二世之寤而赦之李斯乃從獄中上書曰:「臣為丞相治民三十餘年矣秦地之陝隘先王之時秦地不過千里兵數十萬臣盡薄材謹奉法令陰行謀臣資之金玉使游說諸侯陰脩甲兵飾政教官鬥士尊功臣盛其爵祿故終以脅韓弱魏破燕夷齊卒兼六國虜其王立秦為天子罪一矣地非不廣又北逐胡南定百越以見秦之彊罪二矣尊大臣盛其爵位以固其親罪三矣立社稷脩宗廟以明主之賢罪四矣更剋平斗斛度量文章布之天下以樹秦之名罪五矣治馳道興游觀以見主之得意罪六矣緩刑罰薄賦斂以遂主得眾之心萬民戴主死而不忘罪七矣若斯之為臣者罪足以死固久矣上幸盡其能力乃得至今願陛下察之!」書上趙高使吏棄去不奏:「囚安得上書!」

이에 2세가 이에 조고로 하여금 승상의 옥을 살펴 죄를 다스리게 하고, 이사와 아들 유가 모반한 상황을 질책하고 종족과 빈객을 모두 거두어 잡게 하였다. 조고가 이사를 다스리는데 천여 명을 매질하고 고문하니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거짓으로 실토하였다. 이사가 죽지 않은 까닭은 스스로 그 변론에 힘입고, 공이 있으며 실로 배반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요행히도 글을 올려 스스로 진술할 수 있었고, 요행히 2세가 깨달아 용서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사가 이에 옥중에서 글을 올려 말하기를 신이 승상이 되어 백성을 다스린지 30여년입니다. 진나라 땅이 좁고 막혀 선왕의 때에 진나라 땅이 천리에 지나지 않고, 군대의 수는 10만이었습니다. 신이 작은 재주를 다하고 법령을 삼가 받들며, 몰래 꾀 있는 신하를 보내 금옥을 자금 삼아 제후에게 유세하게 하며, 몰래 갑병을 닦으며 정사와 교육을 꾸미고 투사를 관직에 등용하며 공신을 높이고 그 작과 녹을 성대하게 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한나라를 위협하여 위나라를 약하게 하고, 연나라, 조나라를 깨트리고 제나라, 초나라를 멸하여 마침내 6국을 겸병하고 그 왕을 포로로 잡고 진나라를 세워 천자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죄의 하나입니다. 땅을 넓히지 않은 것이 아니어서 또한 호, 맥을 내쫓고, 남쪽으로 백월을 안정시켜 진나라의 강함을 보여주었으니 두 번째 죄입니다. 대신을 높이고 그 작위를 성대히 하는 것으로서 그 친함을 견고히 한 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여 임금의 현명함을 밝혔으니 네 번째 죄입니다. 눈금을 고쳐 두, , , , 문장을 평준화시켜 천하에 공포하는 것으로써 진나라의 이름을 세웠으니 다섯 번째 죄입니다. 말이 달리는 길을 정비하여 유람과 관광을 일으키는 것으로써 임금의 뜻을 나타내었으니 여섯 번째 죄입니다. 형벌을 완화하고 부세 거두는 것을 가볍게 하는 것으로써 임금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얻게 하여 만민이 임금을 받들게 하여 죽어도 잊지 않게 한 것이 일곱 번째 죄입니다. 저 같은 신하된 자는 죄가 충분히 죽을 만함이 진실로 오래입니다. 임금께서 그 능력을 다하게 하여 지금에 이를 수 있었으니 폐하께서는 살피시기를 원합니다! 했다. 글을 올리자 조고가 관리로 하여금 버리고 아뢰지 않고 말하기를 죄인이 어찌 글을 올릴 수 있겠는가!” 했다.

 

趙高使其客十餘輩詐為御史謁者侍中更往覆訊斯斯更以其實對輒使人復榜後二世使人驗斯斯以為如前終不敢更言辭服奏當二世喜曰:「微趙君幾為丞相所賣。」及二世所使案三川之守至則項梁已擊殺之使者來會丞相下吏趙高皆妄為反辭

조고가 그 객 10여 무리로 하여금 거짓으로 어사, 알자, 시중으로 삼아 다시 가서 이사를 반복하여 심문하게 하였다. 이사가 다시 그 실제로 대답하면 문득 사람을 시켜 다시 매질하게 하였다. 후에 2세가 사람을 시켜 이사를 징험하니 이사가 전과 같다 여기고 끝내 감히 말을 바꾸지 않고 죄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주당을 올리자 2세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조고가 아니었다면 거의 승상에게 속았을 것이다.” 했다. 2세가 사람을 시켜 삼천의 지방관을 조사하게 하여 이르니 곧 항량이 이미 쳐서 죽였다. 사자가 왔을 때 승상은 옥리에게 내려졌고, 조고가 모두 망령되이 모반한다는 말을 하였다.


二世二年七月具斯五刑論腰斬咸陽市斯出獄與其中子俱執顧謂其中子曰:「吾欲與若復牽黃犬俱出上蔡東門逐狡兔豈可得乎!」遂父子相哭而夷三族李斯已死二世拜趙高為中丞相事無大小輒決於高高自知權重乃獻鹿謂之馬二世問左右:「此乃鹿也?」左右皆曰馬也」。二世驚自以為惑乃召太卜令卦之太卜曰:「陛下春秋郊祀奉宗廟鬼神齋戒不明故至于此可依盛德而明齋戒。」於是乃入上林齋戒日游弋獵有行人入上林中二世自射殺之趙高教其女婿咸陽令閻樂劾不知何人賊殺人移上林高乃諫二世曰:「天子無故賊殺不辜人此上帝之禁也鬼神不享天且降殃當遠避宮以禳。」二世乃出居望夷之宮

227월 이사의 五刑 갖추어 함양 시장에서 허리를 베어 죽일 것을 판결하였다. 이사가 감옥을 나와 그 둘째 아들과 함께 집행되는데 그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다시 누른 개를 이끌고 함께 상채의 동문을 나와 교활한 토끼를 쫓고자 하나 어찌 할 수 있겠는가!” 했다. 드디어 두 부자가 서로 곡하였는데 삼족을 멸하였다. 이사가 죽고 난 후 2세가 조고를 중승상으로 삼고, 정사는 크고 작음이 없이 문득 조고에게서 경정되었다. 조고가 스스로 권세가 무거움을 알고 이에 사슴을 올리고 말이라 말하였다. 2세가 좌우에 묻기를 이것은 곧 사슴인가?” 했다. 좌우가 모두 말하기를 말입니다.” 했다. 2세가 놀라서 스스로 미혹하다 여기고 이에 태복을 불러 점을 치게 하니 태복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봄, 가을로 교사하고, 종묘의 귀신을 받드는데 재계가 밝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이르렀습니다. 성대한 덕에 의지하여 재계를 밝게 해야 합니다.” 했다. 이에 곧 상림에 들어가 재계하였다. 매일 사냥하여 활로 쏘아 잡고 길가는 삶이 상림 안에 들어가면 2세가 스스로 활로 쏘아 죽였다. 조고가 그 사위인 함양령 염락을 시켜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사람을 해치고 죽여 상림에 옮겨 놓았다고 탄핵하게 하였다. 조고가 이에 2세를 간하여 말하기를 천자는 일없이 죄짓지 않은 사람을 죽였는데 이는 상제가 금하는 것이며, 귀신도 흠향하지 않고, 하늘 또한 재앙을 내릴 것이니 마땅히 멀리 궁을 피하는 것으로써 물리쳐야 합니다.” 했다. 2세가 이에 나와 망이의 궁에 머물렀다.


留三日趙高詐詔衛士令士皆素服持兵內鄉入告二世曰:「山東群盜兵大至!」二世上觀而見之恐懼高既因劫令自殺引璽而佩之左右百官莫從上殿殿欲壞者三高自知天弗與群臣弗許乃召始皇弟授之璽[]

3일을 머물렀는데 조고가 거짓으로 위사를 불러 위사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병기를 지니고 궁궐 안을 향하게 하고 궁에 들어가 2세에게 말하기를 산동의 여러 도적의 군대가 크게 이르렀습니다!” 하였다. 2세가 올라가 살펴보고 두려워하니 조고가 인하여 겁을 주어 자살하게 했다. 옥새를 이끌어 그것을 찼는데 좌우와 백관이 따르지, 않고 전에 오르려 하니 전이 무너지려 한 것이 3번이었다. 조고가 스스로 하늘이 허여하지 않고 여러 신하들이 허락하지 않음을 알고는 이에 시황제의 동생을 불러 옥새를 주었다.


[] 集解徐廣曰:「一本曰召始皇弟子嬰授之璽』。秦本紀云子嬰者二世之兄子也』。」 索隱劉氏云:『字誤當為』。子嬰二世兄子。」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어떤 본에 시황제의 동생 자영을 불러 옥새를 주었다.’하였고, 진본기에는 자영은 2세의 형의 아들이다.’ 했다.” 索隱유씨가 말하기를 “‘자는 잘못이고, 마땅히 이라 해야 한다. ‘자영2세 형의 아들이다.” 했다.

 

子嬰既位患之乃稱疾不聽事與宦者韓談及其子謀殺高高上謁請病因召入令韓談刺殺之夷其三族子嬰立三月沛公兵從武關入至咸陽群臣百官皆畔不適[]子嬰與妻子自係其頸以組降軹道旁[]沛公因以屬吏項王至而斬之遂以亡天下

자영이 즉위하고 나서 근심하여 이에 병을 핑계하고 정사를 듣지 않고 환관 한담과 그 아들이 조고를 죽일 것을 모의하였다. 조고가 황제를 뵙고 문병을 청함으로 인하여 불러서 들어가는데 한담으로 하여금 찔러 죽이게 하고 그 삼족을 멸하였다. 자영이 즉위한지 3개월 만에 패공의 군대가 무관으로부터 들어와 함양에 이르니 여러 신하와 배관이 모두 배반하여 맞서지 않았다. 자영과 처자가 스스로 그 목에 실로 짠 끈을 메고 지도 옆에서 항복하였다. 패공이 인하여 관리에게 맡겼다. 항왕이 이르러 머리를 베었다. 마침내 천하를 잃었다.


[] 集解徐廣曰:「適音敵。」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의 음은 이다.”

 

[] 正義軹道在萬年縣東北十六里

[] 正義軹道는 만년현 동북쪽 16리에 있다.

 

太史公曰李斯以閭閻歷諸侯入事秦因以瑕釁以輔始皇卒成帝業斯為三公可謂尊用矣斯知六蓺之歸不務明政以補主上之缺持爵祿之重阿順苟合嚴威酷刑聽高邪說廢適立庶諸侯已畔斯乃欲諫爭不亦末乎人皆以斯極忠而被五刑死察其本乃與俗議之異不然斯之功且與周召列矣

태사공이 말하기를 이사가 여염에서 나서 제후를 유세하다가 들어가 진나라를 섬기면서 인하여 열국의 틈을 타서 시황제를 보좌하여 마침내 제업을 이루었는데 이사가 삼공이 되었으니 높이 쓰였다고 말할 만하다. 이사가 六藝의 돌아감을 알면서도 임금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으로서 밝은 정사를 힘쓰지 않고 벼슬과 녹의 중함을 지니고 아첨하고 따라서 구차히 합하며, 엄격한 위엄으로 형벌을 가혹하게 하고 조고의 삿된 말을 듣고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웠다.

 

諸侯已畔斯乃欲諫爭不亦末乎人皆以斯極忠而被五刑死察其本乃與俗議之異不然斯之功且與周召列矣

제후가 이미 배반하자 이사가 이에 간쟁하고자 하였으나 또한 지난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이사가 지극히 충성하고도 오형을 입어 죽었다 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곧 세속의 논의와는 다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사의 공은 또한 주공, 소공과 더불어 나열되었을 것이다.


索隱述贊鼠在所居人固擇地斯效智力功立名遂置酒咸陽人臣極位一夫誑惑變易神器國喪身誅本同末異

索隱述贊쥐는 살고 있는 환경에 달려 있고, 사람은 땅을 가린다. 이사가 지혜와 힘을 배워 공을 세우고 명성을 이루었다. 함양에 술을 두고 다른 사람의 신하로 지위를 지극히 하였다. 한 사나이가 속이고 미혹하게 하여 임금의 자리를 변하여 바꾸었다. 나라를 잃고 자신은 죽었으니 근본은 같았으나 지엽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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