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八十八
蒙恬列傳第二十八
蒙恬者,其先齊人也。恬大父蒙驁,[一]自齊事秦昭王,官至上卿。秦莊襄王元年,蒙驁為秦將,伐韓,取成皋、滎陽,作置三川郡。二年,蒙驁攻趙,取三十七城。始皇三年,蒙驁攻韓,取十三城。五年,蒙驁攻魏,取二十城,作置東郡。始皇七年,蒙驁卒。驁子曰武,武子曰恬。恬嘗書獄典文學。[二]始皇二十三年,蒙武為秦裨將軍,與王翦攻楚,大破之,殺項燕。二十四年,蒙武攻楚,虜楚王。蒙恬弟毅。
몽념은 그 선조가 제나라 사람이다. 몽념의 할아버지는 몽오인데 제나라로부터 와서 진나라 소왕을 섬겨 관직이 상경에 이르렀다. 진나라 장양왕 1년 몽오가 장군이 되어 한나라를 쳐서 성고, 형양을 취하여 삼천군을 두었다. 2년에 몽오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37개성을 취하였다. 시황제 3년 몽오가 한나라를 공격하여 13개성을 취하였다. 5년에 몽오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20개 성을 취하고 동군을 두었다. 시황제 7년 몽오가 죽었다. 몽오의 아들은 몽무이고, 몽무의 아들이 몽념이다. 몽념은 일찍이 옥전문학을 지었다. 시황제 23년 몽무가 진나라 비장군이 되어 왕전과 초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깨트리고 항연을 죽였다. 24년 몽무가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 왕을 포로로 잡았다. 몽념의 동생은 몽의이다.
[一] 索隱音敖。又鄒氏音五到反。
[一] 【索隱】 음은 ‘敖’이다. 또 추씨는 “음이 ‘五’와 ‘到’의 反이다.
[二] 索隱謂恬嘗學獄法,遂作獄官,典文學。
[二] 【索隱】 몽념이 일찍이 옥법을 배워 마침내 ‘옥관’과 ‘전문학’을 지었다.
始皇二十六年,蒙恬因家世得為秦將,攻齊,大破之,拜為內史。秦已并天下,乃使蒙恬將三十萬眾北逐戎狄,收河南。[一]築長城,因地形,用制險塞,起臨洮,[二]至遼東,[三]延袤萬餘里。於是渡河,據陽山,[四]逶蛇而北。暴師於外十餘年,居上郡。是時蒙恬威振匈奴。始皇甚尊寵蒙氏,信任賢之。而親近蒙毅,位至上卿,出則參乘,入則御前。恬任外事而毅常為內謀,名為忠信,故雖諸將相莫敢與之爭焉。
시황제 26년 몽념이 가문으로 인하여 진나라 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깨트리고 내사가 되었다. 진나라가 천하를 병합한 후 몽념으로 하여금 30만 무리를 거느리고 북쪽의 융적을 내쫓고, 하남을 거두었다. 장성을 쌓았는데 지형을 따르고 험한 요새를 이용하여 지었는데 임조에서 시작하여 요동에 이르며 뻗은 길이가 만여리였다. 이에 하를 건너 양산을 근거로 하여 뱀처럼 구불구불 북쪽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밖에서 원정하는 10여년 동안 상군에 머물렀다. 이때 몽념의 위엄이 흉노에 떨쳤다. 시황제가 몽씨를 매우 높이고 사랑하여 신임하고 어질게 여겼다. 몽의를 가까이하여 지위가 상경에 이르러 나가면 수레 옆에 탔고, 들어가면 임금의 앞에 있게 하였다. 몽념은 밖의 일을 맡았고, 몽의는 항상 안에서 도모하니 충성과 신의로 이름났다. 그러므로 비록 여러 장수와 재상이 감히 함께 다투지 못하였다.
[一] 正義謂靈、勝等州。
[一] 【正義】 영주, 승주 등이다.
[二] 集解徐廣曰:「屬隴西。」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농서에 속한다.” 했다.
[三] 正義遼東郡在遼水東,始皇築長城東至遼水,西南至海(之上)。
[三] 【正義】 요동군은 요수 동쪽에 있는데 시황제가 쌓은 장성이 동쪽으로 요수에 이르고, 서남쪽으로 바다에 이르렀다.
[四] 集解徐廣曰:「五原西安陽縣北有陰山。陰山在河南,陽山在河北。」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오원 서쪽 안양현 북쪽에 음산에 있다. 음산은 하남에 있고, 양산은 하북에 있다.” 했다.
趙高者,諸趙疏遠屬也。趙高昆弟數人,皆生隱宮,[一]其母被刑僇,世世卑賤。秦王聞高彊力,通於獄法,舉以為中車府令。高既私事公子胡亥,喻之決獄。高有大罪,秦王令蒙毅法治之。毅不敢阿法,當高罪死,除其宦籍。帝以高之敦於事也,[二]赦之,復其官爵。
조고는 조씨의 먼 친척이다. 조고의 형제 여러 사람들이 모두 은궁에서 태어났는데 그 어머니가 형벌로 죽음을 당하였고, 대대로 비천하였다. 진나라 왕이 조고가 힘이 세고, 옥법에 통하였다 하여 천거하여 중거부령을 삼았다. 조고가 사사로이 공자 호해를 섬기면서 옥사를 결단하는 것을 가르쳤다. 조고가 큰 죄를 짓자 진나라 왕이 몽의로 하여금 법으로 다스리게 하였다. 몽의가 감히 법 조문을 어길 수 없어 조고의 죄가 죽음에 해당한다하고 그 환관의 명부에서 삭제하였다. 황제가 조고는 일을 함이 도탑다 하여 용서하여 그 관작을 회복하였다.
[一] 集解徐廣曰:「為宦者。」 索隱劉氏云:「蓋其父犯宮刑,妻子沒為官奴婢,妻後野合所生子皆承趙姓,並宮之,故云『兄弟生隱宮』。謂『隱宮』者,宦之謂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환관이 되는 것이다.” 했다. 【索隱】 유씨가 말하기를 “그 아버지가 궁형을 받고, 처자는 몰수되어 관노비가 되었는데 처가 후에 야합하여 낳은 아들이 모두 조씨 성을 이었으니 모두 환관이 되었다. 그러므로 ‘형제가 은궁에서 태어났다.’ 한 것이다. ‘은궁’은 환관을 말하는 것이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敦,一作『敏』。」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敦’은 한편 ‘敏’으로도 쓴다.” 했다.
始皇欲游天下,道九原,[一]直抵甘泉,[二]迺使蒙恬通道,自九原抵甘泉,塹山堙谷,千八百里。道未就。
시황제가 천하를 유람하고자 구원에 길을 내어 곧바로 감천에 닿게 하려하여 이에 몽념으로 하여금 길을 통하게 하였는데 구원으로부터 감천에 닿기까지 산을 파고, 골짜기를 메꾸며 1800리를 하였는데 길이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다.
[一] 正義九原郡,今勝州連谷縣是。
[一] 【正義】 구원군은 지금의 승주 연곡현이 이것이다.
[二] 正義宮在雍州。
[二] 【正義】 궁은 옹주에 있다.
始皇三十七年冬,行出游會稽,並海上,[一]北走琅邪。[二]道病,使蒙毅還禱山川,未反。
시황제 37년 겨울에 행차에 나서 회계에 유람하고, 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낭야에 갔다. 도중에 병이 나자 몽의로 하여금 돌아가 산천에 기도하게 하였으나 돌아가지 못하였다.
[一] 索隱並音白浪反。
[一] 【索隱】 모두 음이 ‘白’과 ‘浪’의 反이다.
[二] 索隱走音奏。走猶向也。鄒氏音趨,趨亦向義,於字則乖。
[二] 【索隱】 ‘走’의 음은 ‘奏’이다. ‘走’는 ‘向’과 같다. 추씨는 “음이 ‘趨’인데 ‘趨’가 또한 ‘向(향함)’의 뜻이다. ‘於’자는 곧 ‘乖(어그러짐)’이다.
始皇至沙丘崩,祕之,群臣莫知。是時丞相李斯、公子胡亥、中車府令趙高常從。高雅得幸於胡亥,欲立之,又怨蒙毅法治之而不為己也。因有賊心,迺與丞相李斯、公子胡亥陰謀,立胡亥為太子。太子已立,遣使者以罪賜公子扶蘇、蒙恬死。扶蘇已死,蒙恬疑而復請之。使者以蒙恬屬吏,更置。胡亥以李斯舍人為護軍。使者還報,胡亥已聞扶蘇死,即欲釋蒙恬。趙高恐蒙氏復貴而用事,怨之。毅還至,趙高因為胡亥忠計,欲以滅蒙氏,乃言曰:「臣聞先帝欲舉賢立太子久矣,而毅諫曰『不可』。若知賢而俞弗立,則是不忠而惑主也。[一]以臣愚意,不若誅之。」胡亥聽而繫蒙毅於代。[二]前已囚蒙恬於陽周。喪至咸陽,已葬,太子立為二世皇帝,而趙高親近,日夜毀惡蒙氏,求其罪過,舉劾之。
시황제가 사구에 이르러 죽었으나 비밀로 하여 여러 신하들이 알지 못하였다. 이 때 승상 이사, 공자 호해, 중거부령 조고가 항상 따랐다. 조고가 본디 호해에게 사랑을 받아 세우고자 하였고, 또 몽의가 법으로 그를 다스리고 자기를 위하지 않은 것을 원망하였다. 때문에 해치려는 마음이 있어 이에 승상 이사, 공자 호해와 함께 몰래 모의하여 호해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태자가 즉위한 후 사자를 보내 죄로써 공자 부소와 몽념에게 죽음을 내렸다. 부소가 죽은 후에도 몽념이 의심하여 다시 청하였다. 사자가 몽념을 관리에게 맡기고 그 자리에 다른 이를 두었다. 호해가 이사의 사인으로 호위군을 삼았다.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니 호해가 이미 부소가 죽은 것을 듣고는 곧 몽념을 풀어주고자 하였다. 조고가 몽씨가 다시 귀해져서 정사에 쓰여져 원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몽의가 돌아와 이르자 조고가 호해를 위한 충실한 계책으로 몽씨를 없애고자 하여 이에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선제께서 현명한 이(호해를 현명하다 하여)를 천거하여 태자로 세우고자 한 것이 오래되었는데 몽의가 간하여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했습니다. 만약 현명함을 알고서 세울 수 없다 대답하였다면 곧 이는 불충이며 임금을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죽이는 것만 못합니다.” 했다. 호해가 듣고 몽의를 대에서 잡아매었다. 앞서 이미 몽념을 양주에서 가두었다. 상이 함양에 이르고 장례를 마친 후 태자가 즉위하여 2세 황제가 되고, 조고는 측근이 되어 밤낮으로 몽씨를 비방하고 미워하여 그 죄과를 찾아 탄핵하고자 하였다.
[一] 索隱俞即踰也,音臾。謂知太子賢而踰久不立,是不忠也。
[一] 【索隱】 ‘兪’는 곧 ‘踰(넘을 유)’이니 음은 ‘臾(잠깐 유’)이다. 태자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넘고 오래 동안 세우지 않으면 이는 불충이다.
[二] 正義今代州也。因禱山川至代而繫之。
[二] 【正義】 지금 대주이다. 산천에 기도하면서 대 땅에 이르러 그를 옭아 맨 것이다.
子嬰進諫曰:「臣聞故趙王遷殺其良臣李牧而用顏聚,燕王喜陰用荊軻之謀而倍秦之約,齊王建殺其故世忠臣而用后勝之議。此三君者,皆各以變古者失其國而殃及其身。
자영이 나아가 간하여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옛 날 조나라 왕 천은 그 선한 신하 이목을 죽이고 안취를 등용하였고, 연나라 왕 희는 형가의 모의를 써서 진나라와의 약속을 배반하였고, 제나라 왕 건은 옛 대대로 충신을 죽이고 후승의 논의를 썼습니다. 이 세 임금은 모두 각기 옛 것을 바꾸는 것으로써 그 나라를 잃고 재앙이 그 자신에게 미쳤다.” 합니다.
今蒙氏,秦之大臣謀士也,而主欲一旦棄去之,臣竊以為不可。臣聞輕慮者不可以治國,獨智者不可以存君。[一]誅殺忠臣而立無節行之人,是內使群臣不相信而外使鬥士之意離也,臣竊以為不可。」
지금 몽씨는 진나라의 대신이고 모사인데 임금께서 하루아침에 그들을 버리고자 하시니 신은 마음속으로 불가하다고 여깁니다. 신이 들으니 “얕은 생각을 하는 자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혼자만의 지혜는 임금을 보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충신을 죽이고 절개 있는 행실이 없는 사람을 세우는 것은 이는 안으로 여러 신하들이 서로 믿지 못하게 하고, 밖으로는 투사가 떠날 생각을 하게하므로 신은 마음속으로 불가하다고 여깁니다.
[一] 集解徐廣曰:「一無此字。」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어떤 본에는 이 글자가 없다.” 했다.
胡亥不聽。而遣御史曲宮乘傳之代,[一]令蒙毅曰:「先主欲立太子而卿難之。今丞相以卿為不忠,罪及其宗。朕不忍,乃賜卿死,亦甚幸矣。卿其圖之!」毅對曰:「以臣不能得先主之意,則臣少宦,順幸沒世。可謂知意矣。[二]以臣不知太子之能,則太子獨從,周旋天下,去諸公子絕遠,臣無所疑矣。夫先主之舉用太子,數年之積也,臣乃何言之敢諫,何慮之敢謀!非敢飾辭以避死也,為羞累先主之名,願大夫為慮焉,使臣得死情實。且夫順成全者,道之所貴也;刑殺者,道之所卒也。昔者秦穆公殺三良而死,罪百里奚而非其罪也,故立號曰『繆』。昭襄王殺武安君白起。楚平王殺伍奢。吳王夫差殺伍子胥。此四君者,皆為大失,而天下非之,以其君為不明,以是籍於諸侯。[三]故曰『用道治者不殺無罪,而罰不加於無辜』。唯大夫留心!」使者知胡亥之意,不聽蒙毅之言,遂殺之。
호해가 듣지 않았다. 어사 곡궁을 전령으로 삼아 대 땅으로 보내 몽의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선주(시황제)가 태자를 세우고자 하였을 때 경은 그것을 어렵다 하였다. 지금 승상이 경이 충성스럽지 못하다 하니 죄가 그 종족에 미친다. 짐이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이에 경에게 죽음을 내리니 또한 매우 요행스럽다. 경은 그것을 도모하라!” 했다. 몽의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선주(시황제)의 뜻을 잘 얻지 못하였다 하지만 곧 신이 어려서부터 벼슬하여 (선제께서)세상을 마칠 때까지 순종하고 사랑받았으니 뜻을 알았다. 말할 만합니다. 신이 태자의 능력을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곧 태자만이 홀로 (선제를:시황제)따라서 천하를 두루 돌고, (능력이)여러 공자와 크게 차이나는 것을 신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선주(시황제)께서 태자를 천거하여 등용한 것은 여러 해의 쌓임이 있었을 것이니 신이 곧 무슨 말로 감히 간하고, 무슨 생각을 꾀하겠습니까! 감히 말을 꾸며서 죽음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주(시황제)의 명성에 누가 될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대부께서는 생각하시어 신으로 하여금 신으로 하여금 죽음의 정실을 얻을 수 있게 하실 것을 원합니다. 또한 저 이치를 따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은 도의 귀한 것이고, 형벌로 죽이는 것은 도의 마지막입니다. 옛날 진나라 목공은 3명의 어진 이를 죽이고 백리해에게 죽을죄를 내렸으나 그 죄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호를 세울 때 ‘繆’이라 하였던 것이다. 소양왕은 무안군 백기를 죽였습니다. 초나라 평왕은 오사를 죽였고, 오나라 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습니다. 이 네 임금은 모두 크게 잘못하여 천하가 그를 비난하였고, 그 임금이 밝지 못하다 여겨져 이 때문에 제후에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써서 다스리는 자는 죄 없는 이를 죽이지 않고, 무고한 이에게 벌을 주지 않는다.’ 했습니다. 대부께서는 마음을 두소서!” 했다. 사자가 호해의 뜻을 알아 몽의의 말을 듣지 않고 마침내 그를 죽였다.
[一] 索隱曲,姓;宮,名。
[一] 【索隱】 ‘曲’은 성이고, ‘宮’은 이름이다.
[二] 索隱蒙毅言己少事始皇,順意因蒙幸,至始皇沒世,可謂知上意。
[二] 【索隱】 몽의가 말한 것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시황제를 섬겼고, 뜻을 따랐기 때문에 사랑을 받았으며 시황제가 죽음에 이르러 임금의 뜻을 알았다고 말할 만하다.’는 것이다.
[三] 索隱言其惡聲狼籍,布於諸國。而劉氏曰「諸侯皆記其惡於史籍」,非也。
[三] 【索隱】 그 나쁜 소문이 어지럽게 흩어져 여러 나라에 펴졌다. 유씨가 말하기를 “제후가 모두 그 나쁜 것을 역사책에 기록하였다.”하나 아니다.
二世又遣使者之陽周,令蒙恬曰:「君之過多矣,而卿弟毅有大罪,法及內史。」恬曰:「自吾先人,及至子孫,積功信於秦三世矣。今臣將兵三十餘萬,身雖囚繫,其勢足以倍畔,然自知必死而守義者,不敢辱先人之教,以不忘先主也。昔周成王初立,未離襁緥,周公旦負王以朝,卒定天下。
2세가 또 사자를 양주에 가게 하여 몽념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허물이 많다. 경의 동생 몽의가 큰 죄가 있어 법이 내사에 미쳤다.” 했다. 몽념이 말하기를 “우리 선조로부터 자손에 이르기까지 진나라 3대에 공과 신임을 쌓았습니다. 지금 신이 군대 30여만명을 거느리고 있어 몸이 비록 가두어져 있으나 그 형세가 충분히 배반할 수 있으나 스스로 반드시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의를 지키고 있는 것은 감히 선조의 가르침을 욕보일 수 없고, 선주(시황제)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주나라 성왕이 처음 즉위하였으나 아직 포대기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주공 단이 왕을 업고, 조정에 나와 마침내 천하를 안정시켰습니다.
及成王有病甚殆,公旦自揃其爪以沈於河,曰:『王未有識,是旦執事。有罪殃,旦受其不祥。』乃書而藏之記府,可謂信矣。及王能治國,有賊臣言:『周公旦欲為亂久矣,王若不備,必有大事。』王乃大怒,周公旦走而奔於楚。成王觀於記府,得周公旦沈書,乃流涕曰:『孰謂周公旦欲為亂乎!』殺言之者而反周公旦。故周書曰『必參而伍之』。[一]今恬之宗,世無二心,而事卒如此,是必孽臣逆亂,[二]內陵之道也。夫成王失而復振則卒昌;桀殺關龍逢,紂殺王子比干而不悔,身死則國亡。臣故曰過可振而諫可覺也。[三]察於參伍,上聖之法也。凡臣之言,非以求免於咎也,將以諫而死,願陛下為萬民思從道也。」使者曰:「臣受詔行法於將軍,不敢以將軍言聞於上也。」蒙恬喟然太息曰:「我何罪於天,無過而死乎?」良久,徐曰:「恬罪固當死矣。起臨洮屬之遼東,城塹萬餘里,此其中不能無絕地脈哉?此乃恬之罪也。」乃吞藥自殺。
성왕이 병이 들어 매우 위태로움에 이르자 주공 단이 스스로 그 손톱을 잘라 황하에 잠기게 하면서 말하기를 ‘왕이 아직 아는 것이 없어 내가 일을 집행했으니 죄와 재앙이 있다면 내가 그 상서롭지 않음을 받겠습니다.’ 하고는 이에 글로 써서 기부에 감추었으니 믿을 만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성왕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되자 적신들이 말하기를 ‘주공 단이 난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 오래되었으니 왕께서 만약 준비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큰 일이 있을 것입니다.’ 했다. 왕이 크게 노하니 주공 단이 달아나 초나라로 달아났습니다. 성왕이 기부에서 주공 단이 황하에 던진 글을 얻어 보고는 이에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누가 주공 단이 난을 일으키려 한다고 말하였는가!’ 하고는 그것을 말한 자를 죽이고 주공 단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서』에 ‘반드시 세 번 묻고 다섯 번 살피라.’ 한 것입니다. 지금 저의 종족이 대대로 두 마음이 없었는데도 일이 끝내 이 같은 것은 이는 반드시 충성하지 않는 신하가 거슬러 어지럽히고 안으로 가벼이 여기는 말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성왕은 잘못 하였으나 다시 바로잡아서 마침내 번성하였고, 걸은 관룡봉을 죽이고, 주는 왕자 비간을 죽였으되 뉘우치지 않아 자신을 죽이고 나라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신은 그러므로 말하기를 ‘허물은 떨쳐 낼 수 있고, 간언은 깨달아야 합니다. 세 번이고 다섯 번이고 살피는 것은 성인을 본 받는 것입니다. 무릇 신의 말은 허물에서 면할 것을 구하려 해서가 아니라 장차 간언을 하다 죽어도 폐하께서 만민을 위하여 도를 생각하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했다. 사자가 말하기를 “신은 조서를 받아 장군에게 법을 집행할 뿐 감히 장군의 말을 임금에게 전할 수 없습니다.” 했다. 몽념이 위연히 크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어떤 죄를 지었기에 허물없이 죽게 하는가?” 하고는 오래 지난 후 천천히 말하기를 “나의 죄는 진실로 죽음에 해당한다. 임조에서 일으켜 요동에 닿기까지 성을 쌓은 것이 만여리이니 이는 그 가운데 지맥을 끊은 것이 없다 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바로 내의 죄이다.” 하고는 곧 약을 삼키고 스스로 죽었다.
[一] 索隱參謂三卿,伍即五大夫。欲參伍更議。
[一] 【索隱】 ‘參’은 ‘三卿’이고, ‘伍’는 곧 ‘五大夫’인데 세 번, 다섯 번, 다시 논의하고자 함을 말한다.
[二] 集解徐廣曰:「一作『辭』。」
[二] 【索隱】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辭’라고도 쓴다.
[三] 索隱此「故曰」者,必先志有此言,蒙恬引之以成說也,今不知出何書耳。振者,救也。然語亦倒,以言前人受諫可覺,則其過乃可救。
[三] 【索隱】 여기의 ‘故曰’은 반드시 먼저 이 말을 생각한 이가 있었는데 몽념이 그것을 인용하여 말을 이루었다. 지금 어느 글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할 뿐이다. ‘振’은 구함이다. 그러나 말이 또한 도치되어 있으니 옛 사람이 간하는 말을 듣고 깨달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니 곧 그 허물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太史公曰:吾適北邊,自直道歸,行觀蒙恬所為秦築長城亭障,塹山堙谷,通直道,固輕百姓力矣。夫秦之初滅諸侯,天下之心未定,痍傷者未瘳,而恬為名將,不以此時彊諫,振百姓之急,養老存孤,務修眾庶之和,而阿意興功,此其兄弟遇誅,不亦宜乎!何乃罪地脈哉?
태사공이 말하기를 “내가 북쪽 변경에 갔다가 직도로 돌아 왔는데 길을 가면서 몽렴이 진나라를 위하여 쌓은 장성과 요새를 보니 산을 깍고 골짜기를 메워 길을 바로 내어 통하게 하니 진실로 백성의 힘을 가볍게 여긴 것이다. 대저 진나라 초에 제후를 없애고, 천하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상처를 입은 자들이 낫지 않았는데 몽념이 명장이 되어 이 때 강하게 간하고, 백성의 급함을 떨쳐내고, 늙은이를 봉양하고 외로운 이를 보존하며 무리의 화합을 힘서 닦지 않고 뜻에 영합하여 공을 일으켰으니 이는 그 형제가 죽음을 당한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어찌 곧 죄가 지맥 때문이겠는가?
【索隱述贊】蒙氏秦將,內史忠賢。長城首築,萬里安邊。趙高矯制,扶蘇死焉。絕地何罪?勞人是愆。呼天欲訴,三代良然。
【索隱述贊】 몽념은 진나라 장군이 되고 몽의는 내사가 되어 충성을 다하고 현명하였다. 장성을 쌓아 만리의 변경을 편안히 하였다. 조고가 거짓을 지어 부소가 죽었다. 지맥을 끊은 것이 무슨 죄인가? 사람을 수고롭게 한 것이 허물이다. 크게 하늘을 불러 삼대가 선하였다고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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