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九十
魏豹彭越列傳第三十
魏豹者,故魏諸公子也。其兄魏咎,[一]故魏時封為寧陵君。[二]秦滅魏,遷咎為家人。陳勝之起王也,[三]咎往從之。陳王使魏人周市徇魏地,魏地已下,欲相與立周市為魏王。周市曰:「天下昏亂,忠臣乃見。[四]今天下共畔秦,其義必立魏王後乃可。」齊、趙使車各五十乘,立周市為魏王。市辭不受,迎魏咎於陳。五反,陳王乃遣立咎為魏王。[五]
위표는 옛 위나라의 공자이다. 그 형 위구는 옛 위나라 때 봉해져 영릉군이 되었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없애고 위구를 좌천시켜 家人이 되었다. 진승이 봉기하여 왕 노릇하자 위구가 가서 그를 따랐다. 진왕이 위나라 사람 주시를 시켜 위나라 땅을 빼앗게 하였는데 위나라 땅이 이미 함락되어 서로 주시를 세워 위나라 왕을 삼고자 하였다. 주시가 말하기를 “천하가 어둡고 혼란하니 충신이 곧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천하가 같이 진나라를 배반하니 그 의리상 위왕을 세운 후에 하는 것이 괜찮습니다.” 했다. 제나라와 조나라가 각기 수레 50대를 보내 주시를 세워 위왕을 삼게 하였다. 주시가 사양하고 받지 않고 위구를 진나라에서 맞이하려 하였다. 다섯 번 돌려보내자 진왕이 이에 위구를 보내 세워 위왕으로 삼았다.
[一] 索隱案:彭越傳云「魏豹,魏王咎從弟,真魏後也」。
[一] 【索隱】 살펴보니 「팽월전」에 “위표는 위왕 구의 종제(4촌)인데 참된 위나라의 후예이다.” 했다.
[二] 索隱案:晉灼云「寧陵,梁國縣也,即今寧陵是」。
[二] 【索隱】 살펴보니 진작이 “영른은 양국현인데 곧 지금의 영릉이 이것이다.” 했다.
[三] 正義王,于放反。
[三] 【正義】 왕은 ‘于’와 ‘放’의 反이다.
[四] 索隱老子曰「國家昏亂有忠臣」,此取以為說也。
[四] 【索隱】 『노자』에 “국가가 어둡고 혼란하면 충신이 있다.” 했는데 이것을 취하여 말하였다.
[五] 集解徐廣曰:「元年十二月也。」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1년 12월이다.” 했다.
章邯已破陳王,乃進兵擊魏王於臨濟。[一]魏王乃使周市出請救於齊、楚。齊、楚遣項它、田巴[二]將兵隨市救魏。章邯遂擊破殺周市等軍,圍臨濟。咎為其民約降。約定,咎自燒殺。
장한이 이미 진왕을 깨트리고, 이에 군대를 나아가게 하여 위왕을 임제에서 쳤다. 위왕이 이에 주시로 하여금 나가 제와 초에게 구원을 청하게 했다. 제와 초가 항타, 전파를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주시를 따라 위를 구원하였다. 장한이 마침내 주시 등의 군대를 쳐서 깨트리고 임제를 포위하였다. 위구가 그 백성들을 위해 항복을 약속하였는데 약속이 정해지자 위구는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一] 正義故城在淄州高苑縣北二里,本漢縣。
[一] 【正義】 옛 성이 치주 고원현 북쪽 2리에 있는데 본래 한의 현이다.
[二] 索隱案:項它,楚將;田巴,齊將也。正義它,徒多反。
[二] 【索隱】 살펴보니 항타는 초나라 장군이고, 전파는 제나라 장군이다. 【正義】 ‘它’는 ‘徒’와 ‘多’의 反이다.
魏豹亡走楚。[一]楚懷王予魏豹數千人,復徇魏地。項羽已破秦,降章邯。豹下魏二十餘城,立豹為魏王。豹引精兵從項羽入關。漢元年,項羽封諸侯,欲有梁地,乃徙魏王豹於河東,都平陽,[二]為西魏王。
위표가 도망하여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 회왕이 위표에게 수천 명을 주어 다시 위나라 땅을 빼앗게 했다. 항우가 이미 진나라를 깨트리고 장한을 항복시켰다. 위표가 위의 20여개 성을 함락시키자 위표를 세워 위왕으로 삼았다. 위표가 정예 군대를 거느리고 항우를 따라 함곡관을 들어왔다. 한나라 원녀 항우가 제후를 봉하는데 양의 땅을 소유하고자 하자 이에 위왕 위표를 하동에 옮기고 평양에 도읍하고 서위왕이라 하였다.
[一] 集解徐廣曰:「二年六月。」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2년 6월”이라 했다.
[二] 正義今晉州。
[二] 【正義】 지금의 진주이다.
漢王還定三秦,渡臨晉,[一]魏王豹以國屬焉,遂從擊楚於彭城。漢敗,還至滎陽,豹請歸視親病,至國,即絕河津畔漢。漢王聞魏豹反,方東憂楚,未及擊,謂酈生曰:「緩頰往說魏豹,能下之,吾以萬戶封若。」酈生說豹。豹謝曰:「人生一世閒,如白駒過隙耳。[二]今漢王慢而侮人,罵詈諸侯群臣如罵奴耳,非有上下禮節也,吾不忍復見也。」於是漢王遣韓信擊虜豹於河東,[三]傳詣滎陽,以豹國為郡。[四]漢王令豹守滎陽。楚圍之急,周苛遂殺魏豹。
한왕이 삼진을 평정하고 돌아가다 임진에서 (황하를)건널 때 위왕 위표가 나라를 여기에 속하게 하고, 마침내 따라가서 팽성에서 초나라를 쳤다. 한이 패하고 돌아가다 형양에 이르러 위표는 돌아가 부모의 병을 돌볼 것을 청하고, 나라에 이르자 곧 하수의 나루를 끊고 한을 배반하였다. 한왕이 위표가 배반하였다는 것을 들었으나 바야흐로 동쪽의 초를 걱정하여 미처 치지 못하였는데 역생에게 말하기를 “가서 온화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위표를 설득하여 항복시키면 내가 너를 만호로 봉하겠다.” 했다. 역생이 위표를 설득하였다. 위표가 거절한서 말하기를 “사람이 한 세상 사이에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지금 한왕이 오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제후와 여러 신하들을 꾸짖고 욕하는 것이 마치 종을 꾸짖듯이 할 뿐으로 상하의 예절이 있지 않느니 내가 차마 다시 볼 수 없습니다.” 했다. 이에 한왕이 한신을 보내 위표를 하동에서 쳐 포로로 하고, 형양에 전갈을 보내 위표의 나라를 군으로 하였다. 한왕이 위표로 하여금 형양을 지키게 하였다. 초나라가 포위하여 급해지자 주가가 마침내 위표를 죽였다.
[一] 正義臨晉在同州朝邑縣界。
[一] 【正義】 임진은 동주 호읍 경계에 있다.
[二] 索隱莊子云「無異騏驥之馳過隙」,則謂馬也。小顏云「白駒謂日影也。隙,壁隙也」。以言速疾,若日影過壁隙也。
[二] 【索隱】 『장자』에 “준마가 치달려 틈을 지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니 곧 말을 말하는 것이다. 소안이 말하기를 “‘白駒’는 해의 그림자이다. ‘隙’은 벽 틈이다.” 했다. 빨라서 마치 해 그림자가 벽의 틈을 지나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三] 集解徐廣曰:「二年九月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길르 “2년 9월이다.” 했다.
[四] 集解高祖本紀曰:「置三郡,河東、太原、上黨。」
[四] 【集解】 「고조본기」에 “3군을 두었으니 ‘하동’, ‘태원’, ‘상당’이다.” 했다.
彭越者,昌邑人也,[一]字仲。常漁鉅野澤中,為群盜。陳勝、項梁之起,少年或謂越曰:「諸豪桀相立畔秦,仲可以來,亦效之。」彭越曰:「兩龍方鬥,且待之。」
팽월은 창읍 사람인데 자는 ‘중’이다. 평소 거야의 못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무리지어 도적이 되었다. 진승과 항량이 봉기하자 소년들이 혹 팽원에게 말하기를 “여러 호걸들이 서로 세워 진나라를 배반하는데 팽중(월)도 와서 또한 따를 수 있다.” 했다. 팽월이 말하기를 “두 용이 바야흐로 싸우니 또한 기다리고 있다.” 했다.
[一] 正義漢武更山陽為昌邑國,有梁丘鄉。梁兵故城在曹州城武縣東北三十三里。
[一] 【正義】 한나라 무제가 산양을 바꾸어 창읍국이라 했는데 양구향에 있다. 양의 군대 옛 성이 조주성 무현 동북쪽 33리에 있다.
居歲餘,澤閒少年相聚百餘人,往從彭越,曰:「請仲為長。」越謝曰:「臣不願與諸君。」少年彊請,乃許。與期旦日日出[一]會,後期者斬。旦日日出,十餘人後,後者至日中。於是越謝曰:「臣老,諸君彊以為長。今期而多後,不可盡誅,誅最後者一人。」令校長斬之。皆笑曰:「何至是?請後不敢。」於是越乃引一人斬之,設壇祭,乃令徒屬。徒屬皆大驚,畏越,莫敢仰視。乃行略地,收諸侯散卒,得千餘人。
몇 해가 지나자 못 사이에 소년들 100여명이 서로 모여 가서 팽월을 따르며 말하기를 “팽중이 우두머리가 될 것을 청합니다.” 했다. 팽월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했다. 소년들이 억지로 청하니 이에 허락하였다. 더불어 다음날 해 뜰 때 만나기로 기일을 정하고 기일에 늦는 자는 목을 베어 죽이기로 하였다. 다음 날 해가 뜰 때 10여명이 늦었는데 늦은 자는 한낮에 이르렀다. 이에 팽월이 사과하며 말하기를 “나는 늙었는데 여러 분들이 억지로 우두머리로 삼았다. 지금 많이 늦었다. 모두 죽일 수는 없고, 가장 늦은 자 한 사람을 죽이려 한다.” 하고는 교장으로 하여금 목을 베어 죽이게 하였다. 모두 웃으며 말하기를 “어찌 이에 이르렀는가? 후에는 감히 늦지 않을 것을 청합니다.” 했다. 이에 팽월이 한 사람을 끌어내어 목을 베어 죽여 단에 머리를 올리고 제사하고 곧 무리에게 명령하였다. 무리들이 크게 놀라고 팽월을 두려워하여 감히 쳐다보지 못하였다. 이에 행군하여 땅을 빼앗고 제후의 흩어진 군사를 거두어 천여 명을 얻었다.
[一] 索隱旦日謂明日之朝日出時也。
[一] 【索隱】 ‘旦日’은 다음날 아침 해 뜰 때를 말한다.
沛公之從碭北[一]擊昌邑,彭越助之。昌邑未下,沛公引兵西。彭越亦將其眾居鉅野中,收魏散卒。項籍入關,王諸侯,還歸,彭越眾萬餘人毋所屬。漢元年秋,齊王田榮畔項王,(漢)乃使人賜彭越將軍印,使下濟陰以擊楚。楚命蕭公角[二]將兵擊越,越大破楚軍。漢王二年春,與魏王豹及諸侯東擊楚,彭越將其兵三萬餘人歸漢於外黃。漢王曰:「彭將軍收魏地得十餘城,欲急立魏後。今西魏王豹亦魏王咎從弟也,真魏後。」乃拜彭越為魏相國,擅將其兵,[三]略定梁地。
패공이 탕북으로부터 가서 창읍을 치는데 팽월이 도왔다. 창음이 함락되지 않자 패공이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갔다. 팽월이 또한 그 무리를 거느리고 겨야 안에 머물면서 위나라의 흩어진 병졸을 거두었다. 항적이 함곡관에 들어오자 왕과 제후들이 돌아가는데 팽월의 무리가 만여 명이나 속하는 곳이 없었다. 한 나라 원년 가을에 제왕 전영이 항왕을 배반하니 한이 이에 사람을 시켜 팽월에게 장군의 인을 내리게 하고, 제음으로 내려가 초나라를 치게 하였다. 초나라가 소현의 령인 각에게 명령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팽월을 치게 하였는데 팽월이 초나라 군대를 크게 깨트렸다. 한왕 2년 봄에 위왕 위표와 제후들이 함께 동쪽으로 초나라를 치는데 팽월이 그 군대 3만여 명을 거느리고 외황에서 한나라에 귀의하였다. 한왕이 말하기를 “팽장군은 위나라 땅을 거두어 10여성을 얻어 급히 위의 후예를 세우고자 한다. 지금 서쪽의 위왕 위표는 또한 위왕 위구의 종제로 참된 위나라의 후예이다.” 했다. 이에 팽월을 위의 상국으로 삼아 그 군대를 마음대로 거느리고 양의 땅을 빼앗고 평정하게 했다.
[一] 正義碭音徒郎反。宋州碭山縣。
[一] 【正義】 ‘碭’의 음은 ‘徒’와 ‘郞’의 反이다. 송주 탕산현이다.
[二] 正義蕭縣令。楚縣令稱公;角,名。
[二] 【正義】 소현의 령이다. 초나라는 현령을 공이라 말하였고, ‘角’은 이름이다.
[三] 索隱擅猶專也。
[三] 【索隱】 ‘擅’은 ‘專’과 같다.
漢王之敗彭城解而西也,彭越皆復亡其所下城,獨將其兵北居河上。[一]漢王三年,彭越常往來為漢游兵,擊楚,絕其後糧於梁地。漢四年冬,項王與漢王相距滎陽,彭越攻下睢陽、外黃十七城[二]。項王聞之,乃使曹咎守成皋,[三]自東收彭越所下城邑,皆復為楚。[四]越將其兵北走穀城。[五]漢五年秋,項王之南走陽夏,[六]彭越復下昌邑旁二十餘城,得穀十餘萬斛,以給漢王食。
한왕이 팽성에서 패하여 흩어져 서쪽으로 가니 팽월이 함락시켰던 성을 모두 다시 잃고, 홀로 그 군대를 거느리고 북쪽의 하상에 주둔하였다. 한왕 3년 팽월이 평소 왕래하면서 한나라 유격대가 되어 초나라를 치고, 양 땅에서 그 뒤의 식량을 끊었다. 한 4년 겨울 항왕과 한왕이 서로 형양에서 서로 대치하였는데 팽월이 휴양, 외황 등 17개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항왕이 그것을 듣고 조구로 하여금 성고를 지키게 하고 동쪽으로부터 팽월이 함락한 성읍을 거두어 모두 초나라에 회복시켰다. 팽월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북쪽의 곡성으로 달아났다. 한 5년 가을에 항왕이 남쪽으로 달아나 양하로 가니 팽월이 다시 창읍 옆 20여개 성을 함락시키고, 곡식 10여만 곡을 얻어 한왕의 식량으로 공급하였다.
[一] 正義滑州河上。
[一] 【正義】 활주 하상이다.
[二] 正義睢陽,宋州宋城也。外黃在汴州雍丘縣東。
[二] ‘휴양’은 송주 송성이다. 외황은 변주 옹구현 동쪽에 있다.
[三] 正義河南府氾水是。
[三] 【正義】 하남부 범수가 이것이다.
[四] 正義為,于偽反。
[四] 【正義】 ‘爲’는 ‘于’와 ‘僞’의 反이다.
[五] 正義在齊州東阿縣東二十六里是。
[五] 【正義】 제주 동아현 동쪽 26리에 있는 것이 이것이다.
[六] 正義夏,古雅反。陳州太康縣也。
[六] 【正義】 ‘夏’는 ‘古’와 ‘雅’의 反이다. 빈주 태강현이다.
漢王敗,使使召彭越并力擊楚。越曰:「魏地初定,尚畏楚,未可去。」漢王追楚,為項籍所敗固陵。[一]乃謂留侯曰:「諸侯兵不從,為之柰何?」留侯曰:「齊王信之立,非君王之意,信亦不自堅。彭越本定梁地,功多,始君王以魏豹故,拜彭越為魏相國。今豹死毋後,且越亦欲王,而君王不蚤定。與此兩國約:即勝楚,睢陽以北至穀城,[二]皆以王彭相國;從陳以東傅海,[三]與齊王信。齊王信家在楚,此其意欲復得故邑。君王能出捐此地許二人,二人今可致;即不能,事未可知也。」於是漢王乃發使使彭越,如留侯策。使者至,彭越乃悉引兵會垓下,[四]遂破楚。(五年)項籍已死。春,立彭越為梁王,都定陶。[五]
한왕이 패하자 사람을 시켜 팽월을 불러 함께 초나라를 치게 하였다. 팽월이 말하기를 “위나라 땅이 처음으로 안정되었으나 오히려 초나라를 두려워하여 갈 수 없습니다.” 했다. 한왕이 초나라를 쫓았으나 항적에게 고릉에서 패하였다. 이에 유후에게 말하기를 “제후들의 군대가 따르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하니 유후가 말하기를 “제왕 한신이 즉위한 것은 군왕의 뜻이 아니니 한신 또한 스스로 견고하지 못합니다. 팽월이 본래 양 땅을 평정하여 공이 많고, 처음 군왕이 위표의 일로 팽월을 위의 상국으로 삼았습니다. 지금 위표가 죽고 후예가 없고, 또 팽월이 왕이 되고자 하는데 군왕께서는 빨리 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나라를 주기로 약속하면 곧 초나라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니 휴양 이북 곡성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팽상국(팽월)로 왕 노릇하게하고, 진 이동 부해로 부터는 제왕 한신에게 주어야 합니다. 제왕 한신의 집이 초나라에 있으니 이는 그 뜻이 다시 옛 읍을 얻고자 함입니다. 군왕이 이 땅을 내버리고 두 사람을 허여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이 지금 이를 수 있고, 할 수 없다면 일은 알 수 없습니다.” 했다. 이에 한왕이 곧 사람을 출발시켜 팽월로 하여금 유후의 계책과 같이하게 하였다. 사자가 이르자 팽월이 이에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해하에 모이니 마침내 초나라를 깨트렸다. (5년) 항적이 죽었다. 봄에 팽월을 세워 양왕이라 하고, 도읍을 도 땅에 정하였다.
[一] 正義固陵,地名,在陳州宛丘縣西北三十二里。
[一] 【正義】 ‘고릉’은 지명인데 진주 완구현 서북쪽 32리에 있다.
[二] 正義從宋州已北至鄆州以西,曹、濮、汴、滑並與彭越。
[二] 【正義】 송주 이북부터 운주 이서, 조, 복, 변, 활주 모두를 팽월에게 주었다.
[三] 集解傅音附。 索隱傅音附。 正義從陳、潁州北以東,亳、泗、徐、淮北之地,東至海,并淮南、淮陰之邑,盡與韓信。韓信又先有故齊舊地。
[三] 【集解】 ‘傅’의 음은 ‘附’이다. 【索隱】 ‘傅’의 음은 ‘附’이다. 【正義】 진, 영주 북쪽부터 이동은 박, 사, 서, 회북의 땅으로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아울러 회남, 회음의 읍을 모두 한신에게 주었다. 한신이 또 먼저 옛 제나라의 옛 땅을 소유하였다.
[四] 正義在亳州也。
[四] 【正義】 박주에 있다.
[五] 正義曹州。
[五] 【正義】 조주이다.
六年,朝陳。九年,十年,皆來朝長安。
6년 진이 조회하고, 9년, 10년에 모두 장안에 와서 조회하였다.
十年秋,陳豨反代地,高帝自往擊,至邯鄲,徵兵梁王。梁王稱病,使將將兵詣邯鄲。高帝怒,使人讓梁王。梁王恐,欲自往謝。其將扈輒曰:「王始不往,見讓而往,往則為禽矣。不如遂發兵反。」梁王不聽,稱病。
10년 가을 진희가 대 땅에서 모반하니 고제가 스스로 가서 쳐서 한단에 이르러 양왕의 군대를 징발하였다. 양왕이 병을 핑계로 장군을 시켜 군대를 거느리고 한단에 이르게 했다. 고제가 노하여 사람을 시켜 양왕을 꾸짖었다. 양왕이 두려워하여 스스로 가서 사죄하려 했다. 그 장군 호첩이 말하기를 “왕이 처음에 가지 않다가 꾸짖음을 받고 가면 곧 사로잡히게 됩니다. 차라리 군대를 일으켜 모반하는 것만 못합니다.” 했다. 양왕이 듣지 않고 병을 핑계 댔다.
梁王怒其太僕,欲斬之。太僕亡走漢,告梁王與扈輒謀反。於是上使使掩梁王,梁王不覺,捕梁王,囚之雒陽。有司治反形己具,[一]請論如法。上赦以為庶人,傳處蜀青衣。[二]西至鄭,[三]逢呂后從長安來,欲之雒陽,道見彭王。彭王為呂后泣涕,自言無罪,願處故昌邑。呂后許諾,與俱東至雒陽。呂后白上曰:「彭王壯士,今徙之蜀,此自遺患,[四]不如遂誅之。妾謹與俱來。」於是呂后乃令其舍人彭越復謀反。廷尉王恬開奏請族之。上乃可,遂夷越宗族,國除。
양왕이 그의 태복에게 노하여 목을 베어 죽이려 하였다. 태복이 도망하여 한나로 달아나 양왕이 호첩과 모반한다고 알렸다. 이에 고제가 사람을 시켜 양왕을 갑자기 습격하게 하니 양왕이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양왕을 잡아 나양에 가두었다. 담당 관청에서 조사하여 모반의 형태 이미 갖추어졌으니 법과 같이 죄를 논할 것을 청하였다. 고제가 용서하여 서인(평민)을 만들고 촉의 청의에 머물라고 전하였다. 서쪽으로 정에 이르러 장안으로부터 와서 낙양으로 가고자 하는 여후를 만났는데 길에서 팽왕을 보았다. 팽왕이 여후에게 울면서 스스로 죄가 없음을 말하고, 옛 창읍에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여후가 허락하니 모두 함께 낙양에 이르렀다. 여후가 고제에게 말하기를 “팽왕는 장사인데 지급 촉으로 옮겨 가게 하는 것은 이는 스스로 근심을 남기는 것이니 차라리 죽이는 것만 못합니다. 내가 삼가 함께 옵니다.” 했다. 이에 여후가 곧 그 사인으로 하여금 팽월이 다시 모반한다. 하게 했다. 정위 왕념개가 족을 멸할 것을 아뢰어 청하였다. 고제가 곧 옳다하고 마침내 팽월의 종족을 죽이고 나라를 없앴다.
[一] 集解張晏曰:「扈輒勸越反,不聽,而云『反形已見』,有司非也。」瓚曰:「扈輒勸越反,而越不誅輒,是反形已具。」
[一]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호첩이 팽월에게 모반할 것을 권하는 것을 듣지 않았는데 말하기를 ‘모반의 형태가 이미 나타났다.’ 한 것은 담당관청의 잘못이다.” 했다. 찬이 말하기를 “호첩이 팽월의 모반을 권하였는데 팽월이 호첩을 죽이지 않은 이것이 모반의 형태가 이미 갖추어진 것이다.” 했다.
[二] 集解文穎曰:「青衣,縣名,在蜀。」瓚曰:「今漢嘉是也。」 索隱蘇林曰:「縣名,今為臨邛。」瓚曰:「今漢嘉是也。」
[二] 【集解】 문영이 말하기를 “‘청의’는 현 이름인데 촉에 있다.” 했다. 찬이 말하기를 “지금의 ‘한가’가 이것이다.” 했다. 【索隱】 소림이 말하기를 “현의 이름이니 지금의 임공이다.” 하고, 찬에 말하기를 “지금의 한가가 이것이다.” 했다.
[三] 索隱地理地鄭屬京兆。正義華州。
[三] 【索隱】 『지리지』에 “정은 경조에 속한다.” 했다. 【正義】 화주이다.
[四] 正義上唯季反。
[四] 【正義】 위는 ‘唯’와 ‘季’의 反이다.
太史公曰:魏豹、彭越雖故賤,然已席卷千里,[一]南面稱孤,喋血[二]乘勝日有聞矣。懷畔逆之意,及敗,不死而虜囚,身被刑戮,何哉?中材已上且羞其行,況王者乎!彼無異故,智略絕人,獨患無身耳。得攝尺寸之柄,其雲蒸龍變,欲有所會其度,以故幽囚而不辭云。
태사공이 말하기를 “위표, 팽월이 비록 옛날에 천하였으나 이미 천리를 석권하여 남쪽을 향하여 ‘孤’를 일컬었고, 피를 밟고 이김을 타서 날로 명성이 들림이 있었다. 반역의 뜻을 품고 패함에 이르렀으나 죽지 않고 감옥에 갇혀서 몸이 형벌과 죽임을 당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중간 재질 이상이 또한 그 행실을 부끄러워하는데 하물며 왕 노릇하는 자에 있어서이겠는가! 그것은 다른 이유가 없고, 지략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유독 몸을 보존하는 것을 근심하였기 때문일 뿐이다. 한 자 한 치의(조그마한) 자루를 잡으면 구름이 피어오르고 용이 변하는 것처럼 때를 만나 그 헤아림을 만나는 바가 있고자 했기 때문에 갇히는 것도 사양하지 못한 것이다.
[一] 正義言魏地闊千里,如席卷舒。
[一] 【正義】 위나라 땅이 넓어 천리가 마치 자리를 말고 펴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二] 集解徐廣曰:「喋,一作『唼』。韓傳亦有『喋血』語也。」 索隱音牒。喋猶踐也。殺敵踐血而行,孝文紀「喋血京師」是也。
[二] 서광이 말하기를 “‘喋’은 한편 ‘唼’으로도 쓴다. 「한전」에 또한 ‘喋血’이란 말이 있다.” 했다. 【索隱】 음은 ‘牒’이다. ‘喋’은 ‘踐’과 같다. 적을 죽이고 피를 밟으며 간다는 것이니 「효문기」에 ‘喋血京師’ 라 한 것이 이것이다.
【索隱述贊】 魏咎兄弟,因時而王。豹後屬楚,其國遂亡。仲起昌邑,歸漢外黃。往來聲援,再續軍糧。徵兵不往,葅醢何傷。
【索隱述贊】 위구 형제가 때를 따라 왕 노릇하였다. 위표는 뒤에 초나라에 속하였다가 그 나라가 마침내 망하였다. 팽월이 창읍에서 일어나 한나라 외황에서 귀의하였다. 오가는 성원으로 두 번 군량을 이었다. 군대를 징발하는데도 가지 않다가 소금에 절여졌으니 어찌 불쌍하게 여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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