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九十二
淮陰侯列傳第三十二
淮陰侯韓信者,淮陰人也。[一]始為布衣時,貧無行,不得推擇為吏,[二]又不能治生商賈,常從人寄食飲,人多厭之者,常數從其下鄉[三]南昌亭長[四]寄食,數月,亭長妻患之,乃晨炊蓐食。[五]食時信往,不為具食。信亦知其意,怒,竟絕去。
회음후 한신은 회음 사람이다. 처음 포의 벼슬 없는 선비였을 때 가난하여 행함이 없어 추천받아 관리가 될 수 없었고, 또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지도 못하야 항상 다른 사람을 따라다니며 먹고 마시 사람들이 싫어하는 자가 많고, 평소에 자주 그 하향인 남창정장을 따라 집에 머물며 밥을 얻어먹기를 여러 달하자 정장의 처가 근심하여 이에 새벽에 밥을 하여 요 위에서 먹었다.(방안에서 먹었다.) 밥 먹을 때 한신이 가니 밥을 갖추지 많았다. 한신이 또한 그 뜻을 알고 노하여 마침내 끊고 떠났다.
[一] 正義楚州淮陰縣也。
[一] 【正義】 초주 회음현이다.
[二] 集解李奇曰:「無善行可推舉選擇。」
[二] 【集解】 이기가 말하기를 “추천하여 선택할만한 선행이 없었다.”
[三] 集解張晏曰:「下鄉,縣,屬淮陰也。」 索隱案:下鄉,鄉名,屬淮陰郡。
[三]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하향은 현이니 회음에 속한다.” 【索隱】 살펴보니 하향은 향의 이름인데 회음군에 속한다.
[四] 索隱案:楚漢春秋作「新昌亭長」。
[四] 【索隱】 『초한춘추』에 “新昌亭長”이라 썼다.
[五] 集解張晏曰:「未起而床蓐中食。」
[五]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요 위에 상을 두고 밥 먹는 것이다.
信釣於城下,[一]諸母漂,[二]有一母見信飢,飯信,竟漂數十日。信喜,謂漂母曰:「吾必有以重報母。」母怒曰:「大丈夫不能自食,[三]吾哀王孫而進食,[四]豈望報乎!」
한신이 성 아래서 낚시할 때 여러 늙은 여자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가 있어 한신이 주린 것을 보고는 한신에게 밥을 주는데 빨래를 마칠 때까지 수십 일을 하였다. 한신이 기뻐하며 빨래하는 여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무겁게 갚음이 있을 것이다,” 했다. 여자가 노하여 말하기를 “대장부가 스스로 먹을 수 없으니 내가 왕손을 불쌍하게 여겨 밥을 올린 것이지 어찌 갚음을 바라겠는가!” 했다.
[一] 正義淮陰城北臨淮水,昔信去下鄉而釣於此。
[一] 【正義】 회음성은 북쪽으로 회수를 마주하는데 옛날 한신이 하향에 갔을 때 여기서 낚시하였다.
[二] 集解韋昭曰:「以水擊絮為漂,故曰漂母。」
[二]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물로 솜옷을 치는 것을 ‘漂’라 한다. 그러므로 ‘漂母’라 한 것이다.” 했다.
[三] 正義音寺。
[三] 【正義】 음은 ‘寺’이다.
[四] 集解蘇林曰:「如言公子也。」 索隱劉德曰:「秦末多失國,言王孫、公子,尊之也。」蘇林亦同。張晏云「字王孫」,非也。
[四] 【集解】 소림이 말하기를 “‘공자’라는 말과 같다.” 했다. 【索隱】 유덕이 말하기를 “진나라 말에 나라를 잃은 이가 많았는데 ‘王孫’, ‘公子’라고 말하는 것은 높이는 것이다.” 하였는데 소림이 또한 같다. 장안이 말하기를 “자가 왕손”이라한 것은 잘못이다.
淮陰屠中少年有侮信者,曰:「若雖長大,好帶刀劍,中情怯耳。」眾辱之曰:「信能死,刺我;不能死,出我袴下。」[一]於是信孰視之,俛出袴下蒲伏。[二]一市人皆笑信,以為怯。
회음의 백정 중에 소년이 한신을 업신여기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네가 비록 장대하고, 도검을 차기를 좋아하지만 마음속의 실정은 겁낼 뿐이다.” 했다. 무리가 그를 욕하며 말하기를 “한신이 죽을 수 있으면 나를 찌르고, 죽을 수 없으면 내 사타구니 아래로 나가라.” 했다. 이에 한신이 누구인지를 보고 고개를 숙이고 사타구니 아래로 기어나갔다. 한 시장의 사람들이 모두 한신을 비웃으며 겁을 낸다고 여겼다.
[一] 集解徐廣曰:「袴,一作『胯』。胯,股也,音同。」又云漢書作「跨」,同耳。 索隱袴,漢書作「胯」。胯,股也,音枯化反。然尋此文作「袴」,欲依字讀,何為不通?袴下即胯下也,亦何必須作「胯」。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袴’는 한편 ‘胯’라 쓰는데 ‘胯’는 넓적다리로 음은 같다.” 했다. 또 『한서』에는 ‘跨(타넘을 과)’로 썼다. 같다. 【索隱】 ‘袴’는 『한서』에 ‘胯’라 썼는데 ‘胯’는 넓적다리로 음은 ‘枯’와 ‘化’의 反이다. 그러나 이 글을 자세히 보면 ‘袴’라 쓰고 글자에 의하여 읽고자 했는데 어찌 통하지 않겠는가? ‘袴下(사타구니 아래)’는 곧 ‘胯下(넓적다리 아래)’이니 또한 어찌 반드시 ‘胯’로 쓸 것인가?
[二] 正義俛音俯。伏,蒲北反。
[二] 【正義】 ‘俛’은 음이 ‘俯’이다. ‘伏’은 ‘蒲’와 ‘北’의 反이다.
及項梁渡淮,信杖劍從之,居戲下,[一]無所知名。項梁敗,又屬項羽,羽以為郎中。數以策干項羽,羽不用。漢王之入蜀,信亡楚歸漢,未得知名,為連敖。[二]坐法當斬,其輩十三人皆已斬,次至信,信乃仰視,適見滕公,曰:「上不欲就天下乎?何為斬壯士!」滕公奇其言,壯其貌,釋而不斬。與語,大說之。言於上,上拜以為治粟都尉,上未之奇也。
항양이 회수를 건너자 한신이 검을 가지고 따라서 휘하에 머물렀는데 이름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항양이 패하니 또 항우에게 속하였는데 항우가 낭중으로 삼았다. 여러 번 계책으로 항우에게 구하였으나 항우가 쓰지 않았다. 한왕이 촉에 들어가니 한신이 촉에서 도망하여 한에 귀의하였는데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연오가 되었다. 법에 연좌되었는데 머리를 베는 것에 해당하여 그 무리 13명이 머리를 베어 죽임을 당하고 차례가 한신에 이르러 한신이 이에 쳐다보는데 마침 등공을 보았다. 말하기를 “왕께서는 천하에 나아가려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장사를 목 베어 죽이는가!” 했다. 등공이 그 말을 기이하게 여기고, 건장한 그 모습에 풀어주고 목 베지 않았다. 함께 말해보고는 크게 기뻐하였다. 왕에게 말하니 왕이 치속도위를 삼았으나 기이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一] 集解徐廣曰:「戲,一作『麾』。」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戲’는 한편 ‘麾’로 쓴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典客也。」 索隱李奇云:「楚官名。」張晏云:「司馬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전객”이라 했다. 【索隱】 이기가 말하기를 “초의 관직 이름이다.” 했다. 장안은 “사마이다” 했다.
信數與蕭何語,何奇之。至南鄭,諸將行道亡者數十人,信度何等已數言上,上不我用,即亡。何聞信亡,不及以聞,自追之。人有言上曰:「丞相何亡。」上大怒,如失左右手。居一二日,何來謁上,上且怒且喜,罵何曰:「若亡,何也?」何曰:「臣不敢亡也,臣追亡者。」上曰:「若所追者誰何?」曰:「韓信也。」上復罵曰:「諸將亡者以十數,公無所追;追信,詐也。」何曰:「諸將易得耳。至如信者,國士無雙。王必欲長王漢中,無所事信;[一]必欲爭天下,非信無所與計事者。顧王策安所決耳。」王曰:「吾亦欲東耳,安能鬱鬱久居此乎?」何曰:「王計必欲東,能用信,信即留;不能用,信終亡耳。」王曰:「吾為公以為將。」何曰:「雖為將,信必不留。」王曰:「以為大將。」何曰:「幸甚。」於是王欲召信拜之。何曰:「王素慢無禮,今拜大將如呼小兒耳,此乃信所以去也。王必欲拜之,擇良日,齋戒,設壇場,具禮,乃可耳。」王許之。諸將皆喜,人人各自以為得大將。至拜大將,乃韓信也,一軍皆驚。
한신이 여러 번 소하와 말을 나누었는데 소하가 기이하게 여겼다. 남정에 이르렀는데 여러 장군들이 길을 행군하는 중에 도망한 자가 수 십명이었는 데 한신이 소하 등이 이미 여러 번 말한 것을 헤아렸으나 왕이 나를 등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헤아리고는 곧 도망하였다. 소하가 한신이 도망하였다는 것을 듣고 미처 아뢰지 못하고 스스로 뒤쫓았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말하기를 “승상 소하가 도망하였습니다.” 하니 왕이 크게 노하여 좌우의 손을 잃은 듯이 하였다. 하루 이틀 후 소하가 와서 왕을 알현하니 황제가 또한 노하고, 또한 기뻐하여 소하를 욕하면서 말하기를 “네가 도망하다니 어째서인가?” 했다. 소하가 말하기를 “신은 감히 도망하지 못합니다. 신은 도망한 자를 쫓았습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네가 쫓은 자가 누구냐?”하니 “한신입니다.” 했다. 왕이 다시 욕을 하며 말하기를 “여러 장군들로 도망한 자가 10여명인데 공이 쫓지 않았는데 한신을 쫓았다는 것은 속인 것이다.”했다. 소하가 말하기를 “여러 장군들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한신과 같은 이는 국사로 둘아 없습니다. 왕께서 반드시 길이 한중에서 왕 노릇하고자 하신다면 한신을 쓸 것이 없지만 반드시 천하를 다투고자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면 함께 일을 헤아릴만한 이가 없습니다. 다만 왕께서 계책을 어떻게 결정하느냐 일뿐입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동쪽으로 가고자 할 뿐으로 어찌 답답하게 오래동안 이곳에 머물겠는가?” 했다. 소하가 말하기를 “왕의 계책이 반드시 동쪽으로 가고자 하여 한신을 등용할 수 있으면 한신은 곧 머물 것이고, 등용할 수 없으면 한신은 끝내 도망할 뿐입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공을 장군으로 삼겠다.” 했다. 소하가 말하기를 “비록 장군이 되었으나 한신은 반드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왕이 말하기를 “대장군으로 하겠다.” 했다. 소하가 말하기를 “매우 다행입니다.”했다. 이에 왕이 한신을 불러 벼슬을 내리고자 하였다. 소하가 말하기를 “왕께서는 평소에 오만하고 무례하시니 지금 대장군을 내리면서 어린아이 부르듯이 할 뿐이라면 이는 곧 한신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반드시 벼슬을 내리고자 하신다면 좋은 날을 가려서 재계하고 단과 마등을 마련하고 예를 갖추어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했다. 왕이 허락하였다. 여러 장군들이 모두 기뻐하고, 사람들이 각기 스스로 대장군을 얻을 것으로 여겼다. 대장군을 내림에 이르니 곧 한신이어서 군대가 하나 같이 놀랐다.
[一] 集解文穎曰:「事猶業也。」張晏曰:「無事用信。」
[一] 【集解】 문영이 말하기를 “‘事’는 ‘業’과 같다.” 했다. 장안이 말하기를 “한신을 일삼아 씀이 없다.” 했다.
信拜禮畢,上坐。王曰:「丞相數言將軍,將軍何以教寡人計策?」信謝,因問王曰:「今東鄉爭權天下,豈非項王邪?」漢王曰:「然。」曰:「大王自料勇悍仁彊孰與項王?」漢王默然良久,曰:「不如也。」信再拜賀曰:「惟信亦為大王不如也。然臣嘗事之,請言項王之為人也。項王喑噁[一]叱吒,[二]千人皆廢,[三]然不能任屬賢將,此特匹夫之勇耳。項王見人恭敬慈愛,言語嘔嘔[四],人有疾病,涕泣分食飲,至使人有功當封爵者,印刓敝,忍不能予,[五]此所謂婦人之仁也。項王雖霸天下而臣諸侯,不居關中而都彭城。有背義帝之約,而以親愛王,諸侯不平。諸侯之見項王遷逐義帝置江南,亦皆歸逐其主而自王善地。項王所過無不殘滅者,天下多怨,百姓不親附,特劫於威彊耳。名雖為霸,實失天下心。故曰其彊易弱。今大王誠能反其道:任天下武勇,何所不誅![六]以天下城邑封功臣,何所不服!以義兵從思東歸之士,何所不散![七]且三秦王為秦將,將秦子弟數歲矣,所殺亡不可勝計,又欺其眾降諸侯,至新安,項王詐阬秦降卒二十餘萬,唯獨邯、欣、翳得脫,秦父兄怨此三人,痛入骨髓。今楚彊以威王此三人,秦民莫愛也。大王之入武關,秋豪無所害,[八]除秦苛法,與秦民約,法三章耳,秦民無不欲得大王王秦者。於諸侯之約,大王當王關中,關中民咸知之。大王失職入漢中,秦民無不恨者。今大王舉而東,三秦可傳檄而定也。」[九]於是漢王大喜,自以為得信晚。遂聽信計,部署諸將所擊。
한신이 벼슬을 받는 예가 끝나고 왕이 앉았다. 왕이 말하기를 “승상이 여러 번 장군을 말하였는데 장군은 무슨 계책으로 과인을 가르치려 합니까?”하니 한신이 사례하고 왕에게 물어 말하기를 “지금 동쪽을 향하여 패권과 천하를 다투는 것이 어찌 항왕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한왕이 “그러하다.” 했다. 한신이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용감하고, 어질고, 강함이 항왕과 비교하여 누가 낫습니까?” 하니 한왕이 말없이 오래 있다가 말하기를 “그보다 못합니다.” 했다. 한신이 두 번 절하고 축하하고 말하기를 “저도 또한 대왕께서 그와 같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신이 일찍이 그를 섬겼으니 항왕의 사람됨을 말하기를 청합니다.” 했다. 항왕이 소리 지르고 꾸짖으면 천 명이 모두 무너지지만 그러나 어진 장군을 임명하여 맡기지 못하니 이는 다만 평범한 남자의 용기일 뿐입니다. 항왕이 사람을 공경과 자애로움으로 만나고, 말하기를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 병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고 음식을 나누며, 사람을 부리다 공이 있어서 마땅히 작을 봉함에 이르러서는 인이 닳아 없어지고 헤져도 차마 주지 못하니 이는 이른바 부인의 仁입니다. 항왕이 비록 천하를 제패하여 제후를 신하로 하지만 관중에 있지 않고 팽성에 도읍하였습니다. 의제의 약속을 배반하고 왕에게 친하고 아끼는 것으로 제후를 삼으니 공평하지 못합니다. 제후들이 항왕이 의제를 옮겨서 강남에 두는 것을 보고는 또한 모두 돌아가 그 주인을 쫓아내고 스스로 좋은 땅에서 왕 노릇합니다. 항왕이 지나는 곳을 잔인하게 멸하지 않음이 없으니 천하가 만리 원망하고 백성은 친하게 따르지 않고 다만 위엄과 강함에 겁 낼 뿐입니다. 이름은 비록 제패하였다하나 실제는 천하의 마음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강함은 쉽게 약해진다. 합니다. 지금 대왕께서 진실로 그 방법을 돌이킬 수 있고, 천하의 위엄과 용감한 이에게 맡기시면 어찌 죽이지 못할 것이며! 천하의 성읍으로써 공신을 봉하는데 어찌 복종하지 않을 것이며! 의로운 군사로써 동쪽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는 군사를 따른다면 어찌 흩어지지 않을 것인가! 또 삼 진왕은 진나라 장군이 되어 진나라 자제를 여러 해 거느리면서 죽이고 도망하게 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또 그 무리를 속여 제후에게 항복하고 신안에 이르러 항왕이 진나라의 항복한 군졸 20여만명을 속여 구덩이에 묻었는데 모직 장한, 사마흔, 동예 만이 탈출 할 수 있었을 뿐으로 진나라 부형이 이 세 사람을 원망하는 고통이 골수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초가 강하여 위엄으로 이 세 사람을 왕 노릇하게 하였으나 진나라 백성들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대왕이 무관에 들어가 조금도 해를 끼친 것이 없고,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없애고 진나라 백성과 약속한 법이 3조목뿐이니 진나라 백성으로 대왕이 진나라에서 왕 노릇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제후들과의 약속에 대왕이 마땅히 관중에서 왕 노릇하는 것을 관중 백성들이 모두 그것을 압니다. 대왕이 직을 잃고 한중에 들어간 것에 대해 진나라 백성들이 한탄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일으켜 동쪽으로 가시면 삼진에 격문을 전하여 평정될 것입니다. 이에 한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스스로 한신을 얻음이 늦었다고 여겼다. 마침내 한신의 계책을 받아들여 여러 장군들을 칠 곳에 따라 배치하였다.
[一] 索隱上於金反,下烏路反。喑啞,懷怒氣。
[一] 【索隱】 위는 ‘於’와 ‘金’의 反이다. ‘喑啞’는 노한 기운을 품는 것이다.
[二] 索隱「咤」字或作「吒」。上昌栗反,下卓嫁反。叱吒,發怒聲。
[二] 【索隱】 ‘咤’자는 혹 ‘吒’라 쓴다. 위는 ‘昌’과 ‘栗’의 反이고, 아래는 ‘卓’과 ‘嫁’의 反이다. ‘叱吒’는 노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三] 集解晉灼曰:「廢,不收也。」 索隱孟康曰:「廢,伏也。」張晏曰「廢,偃也。」
[三] 【集解】 진작이 말하기를 “‘廢’는 거두지 않음이다.” 했다. 【索隱】 맹강이 말하기를 “‘廢’는 엎드림이다.” 했다. 장안이 말하기를 “‘廢’는 눕는 것이다.” 했다.
[四] 集解音凶于反。索隱音吁。嘔嘔猶區區也。漢書作「姁姁」。鄧展曰「姁姁,好也」。張晏音吁。
[四] 【集解】 음은 ‘凶’과 ‘于’의 反이다. 【索隱】 음은 ‘吁’이다. ‘嘔嘔’는 ‘區區’와 같다. 등전이 말하기를 “‘姁姁’는 좋아함이다,” 했다. 장안은 음이 ‘吁’라 했다.
[五] 集解漢書音義曰:「不忍授。」
[五] 【集解】 『한서음의』에 “不忍授(차마 주지 못하였다.)” 라 하였다.
[六] 索隱何不誅。按:劉氏云「言何所不誅也」。
[六] 【索隱】 何不誅(어찌 죽이지 않겠는가)는 살펴보니 유씨가 ‘어딘들 죽이지 못할 것인가’ 라는 말이라 하였다.
[七] 索隱何不散。劉氏云:「用東歸之兵擊東方之敵,此敵無不散敗也。」
[七] 【索隱】 何不散(어찌 흩어지지 않을 것인가)은 유씨가 “동쪽으로 돌아가려는 군대를 써서 동쪽의 적을 치면 이는 적이 흩어지고 무너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했다.
[八] 索隱案:豪秋乃成。又王逸注楚詞云「銳毛為豪,夏落秋生也」。
[八] 【索隱】 살펴보니 터럭은 가르이 되면 곧 이루어 진다. 또 왕일이 주석한 「초사」에 “가는 털을 ‘豪’라 하는데 여름에 떨어지고 가을에 난다.”
[九] 索隱案:說文云「檄,二尺書也」。此云「傳檄」,謂為檄書以責所伐者。
[九] 【索隱】 살펴보니 『설문』에 “‘檄’은 두 자의 글이다.” 했다. 여기서 말한 ‘傳檄’은 격서를 써서 정벌할 자를 질책하는 것이다.
八月,漢王舉兵東出陳倉,[一]定三秦。漢二年,出關,[二]收魏、河南,韓、殷王皆降。合齊、趙共擊楚。四月,至彭城,漢兵敗散而還。信復收兵與漢王會滎陽,復擊破楚京、索之閒,以故楚兵卒不能西。
8월에 한왕이 군대를 들어 동쪽으로 진창에 나가 삼진을 평정하였다. 한 2년 함곡관을 나와 위, 하남을 거두니 한, 은의 왕이 모두 항복했다. 제, 조를 합하고 함께 초를 쳤다. 4월에 팽성에 이르렀는데 한의 군대가 무너져 흩어져서 돌아왔다. 한신이 다시 군대를 거두어 한왕과 형양에서 만나 다시 초의 서울과 색의 사이를 쳐서 깨트리니 초의 군사들이 서쪽으로 가지 못하였다.
[一] 正義漢王從關北出岐州陳倉縣。
[一] 【正義】 한왕이 관북에서 기주 동창현으로 나왔다.
[二] 正義出函谷關。
[二] 【正義】 함곡관을 나오는 것이다.
漢之敗卻彭城,[一]塞王欣、翟王翳亡漢降楚,齊、趙亦反漢與楚和。六月,魏王豹謁歸視親疾,至國,即絕河關[二]反漢,與楚約和。漢王使酈生說豹,不下。其八月,以信為左丞相,擊魏。魏王盛兵蒲阪,塞臨晉,[三]信乃益為疑兵,[四]陳船欲度臨晉,[五]而伏兵從夏陽以木罌缶渡軍,[六]襲安邑。[七]魏王豹驚,引兵迎信,信遂虜豹,[八]定魏為河東郡。[九]漢王遣張耳與信俱,引兵東,北擊趙、代。後九月,破代兵,禽夏說閼與。[一0]信之下魏破代,漢輒使人收其精兵,詣滎陽以距楚。
한이 팽성에서 패하여 물러나니 색왕 흔과 적왕 예가 한을 도망하여 초에 항복하고, 제와 조가 또한 한을 배반하고 초와 화친하였다. 6월 위왕 표가 돌아가 어버이의 병을 살필 것이라 알리고는 나라에 이르자 곧 하관을 끊고 한을 배반하고 초와 화친을 약속하였다. 한왕이 역생으로 하여금 표를 설득하게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8월에 한신을 좌승상으로 삼고 위를 치게 했다. 위왕이 군대를 포판에 성대히 하여 임진을 막으니 한신이 이에 가짜 군대를 만들어 더하고, 배를 진열하여 임진을 건너려는 듯이 하면서 군대를 하양에 숨기고 목앵부로 군대를 건너게 하여 안읍을 습격하였다. 위왕 표가 놀라 군대를 이끌고 한신을 맞이하였는데 한신이 마침내 표를 포로로 잡고 위를 평정하여 하동군이라 하였다. 한왕이 장이를 보내 한신과 함께 군댈르 이끌고 동쪽으로 가 북쪽의 조, 대를 쳤다. 그 뒤 9월에 대의 군대를 깨트리고 알여에서 하열을 사로잡았다. 한신이 위를 함락하고 대를 깨트리니 한이 곧 사람을 시켜 그 정예군대를 거두게 하고 형양에 나아가 초를 막게 하였다.
[一] 正義兵敗散彭城而卻退。
[一] 【正義】 군대가 팽성에서 패하여 흩어지니 물러났다.
[二] 索隱:謂今蒲津關。
[二] 【索隱】 지금의 포진관을 말한다.
[三] 索隱塞音先得反。臨晉,縣名,在河東之東岸,對舊關也。
[三] 【索隱】 ‘塞’의 음은 ‘先’과 ‘得’의 殘이다. ‘임진’은 현 이름이니 하동 동쪽 물가에 있는데 옛 관을 마주한다.
[四] 集解漢書音義曰:「益張旍旗,以疑敵者。」
[四] 【集解】 『한서음의』에 “깃발을 늘여 펴 적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했다.
[五] 索隱劉氏云:「陳船,地名,在舊關之西,今之朝邑是也。」案:京兆有船司空縣,不名「陳船」。陳船者,陳列船艘欲渡河也。
[五] 【索隱】 유씨가 말하기를 “‘陳船’은 지명이니 예 관의 서족에 있는데 지금의 조읍이 이것이다.” 했다. 살펴보니 경조에 선사공현이 있는데 ‘진선’이라 이름 하지 않았다. ‘진선’은 배를 진열하여 하를 건너고자 하는 것이다.
[六] 集解徐廣曰:「罌,一作『缶』。」服虔曰:「以木押縛罌缶以渡。」韋昭曰:「以木為器如罌缶,以渡軍。無船,且尚密也。」 正義按:韓信詐陳列船艘於臨晉,欲渡河,即此從夏陽木押罌缶渡軍,襲安邑。臨晉,同州東朝邑界。夏陽在同州北渭城界。
[六]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罌’은 한편 ‘缶’라 쓴다.” 했다. 복건이 말하기를 “나무로 앵부를 누르고 묶어 강을 건너는 것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나무로 앵부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군대를 건너게 하는 것이다. 배는 없지만 또한 오히려 은밀하다.” 했다. 【正義】 한신이 거짓으로 임진에 배를 진열하여 하를 건너고자 하면 곧 이는 하양에서 나무로 앵부를 눌러 묶어 군대를 건너게하여 안읍을 습격한 것이다. 임진은 동주 동호읍 경계이다. 하양은 동주 북쪽 위성의 경계에 있다.
[七] 正義安邑故城在絳州夏縣東北十五里。
[七] 【正義】 안읍 옛 성은 강주 하현 동북쪽 15리에 있다.
[八] 索隱按:劉氏云「夏陽舊無船,豹不備之,而防臨晉耳。今安邑被襲,故豹遂降也」。
[八] 【索隱】 살펴보니 유씨가 말하기를 “하양은 오래되어 배가 없으니 표가 갖추지 못하고 임진을 막았을 뿐이다. 지금 안읍이 습격당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항복한 것이다.
[九] 正義今安邑縣故城。
[九] 【正義】 지금의 안읍현 옛 성이다.
[一0] 集解徐廣曰:「音余。」駰案:李奇曰「夏說,代相也」。索隱司馬彪郡國志上黨沾縣有閼與聚。閼音曷,又音嫣。與音余,又音預。沾音他廉反。正義閼與聚城在潞州銅鞮(가죽신 제)縣西北二十里。
[一0]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음은 ‘余’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이기가 말하기를 “하열은 대의 재상이다.” 했다. 【索隱】 사마표의 『군국지』에 상당 점현에 알여취가 있다. ‘閼’의 음은 ‘曷’이고, 또 음은 ‘嫣(싱긋 웃을 언)’이고, ‘與’의 음은 또 음이 ‘預’이다. ‘沾’의 음은 ‘他’와 ‘廉’의 反이다. 【正義】 알여취 성은 로주 동제현 서북쪽 20리이다.
信與張耳以兵數萬,欲東下井陘擊趙。[一]趙王、成安君陳餘聞漢且襲之也,聚兵井陘口,[二]號稱二十萬。廣武君李左車說成安君曰:「聞漢將韓信涉西河,虜魏王,禽夏說,新喋血[三]閼與,今乃輔以張耳,議欲下趙,此乘勝而去國遠鬥,其鋒不可當。臣聞千里餽糧,士有飢色,樵蘇後爨,[四]師不宿飽。今井陘之道,車不得方軌,騎不得成列,行數百里,其勢糧食必在其後。願足下假臣奇兵三萬人,從閒道絕其輜重;足下深溝高壘,堅營勿與戰。彼前不得鬥,退不得還,吾奇兵絕其後,使野無所掠,不至十日,而兩將之頭可致於戲下。願君留意臣之計。否,必為二子所禽矣。」成安君,儒者也,常稱義兵不用詐謀奇計,曰:「吾聞兵法十則圍之,倍則戰。今韓信兵號數萬,其實不過數千。能千里而襲我,亦已罷極。今如此避而不擊,後有大者,何以加之!則諸侯謂吾怯,而輕來伐我。」不聽廣武君策,廣武君策不用。
한신과 장이가 군대 수만으로 동쪽으로 정형으로 내려가 조를 치고자 하였다. 조왕과 성안군 진여가 한이 또 습격한다는 것을 듣고 정형의 입구에 군대를 모았는데 20만이라고 일컬었다. 광무군 이좌거가 성안군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들으니 한나라 장군 한신이 서하를 건너 위왕을 포로로 하고, 하열을 사로잡으며, 새로이 알여에서 피를 밟았으며, 지금 곧 장이를 도와 의논하여 조를 함락시키고자 한다 합니다. 이는 이기는 형세를 타고 나라를 떠나 멀리서 싸우는 것이니 그 예봉을 당할 수 없습니다. 신이 들으니 천리서 식량을 실어와 먹이니 군사들은 주린 기색이 있고, 나무를 한 두에 밥을 지으니 군사들이 배불리 먹고 잠자지 못한다 합니다. 지금 정형의 길은 수레는 두 대가 나란히 갈 수 없고, 말을 탄 이는 열을 이루지 못하고, 수 백리를 행군하니 그 형세 상 식량은 반드시 뒤에 있습니다. 그대가 나에게 기병 3만 명을 빌려주면 사잇길을 따라 그 치중을 끊고, 그대는 도랑을 깊게 하고 보루를 높게 하며, 군영을 견고하게 하고 더불어 싸우지 마십시오. 그들은 앞에서 싸울 수 없고, 물러나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니 내가 기병으로 그 뒤를 끊고, 들에 약탈할 것을 없게 하면 10일이 되자 않아 두 장군의 머리기 깃발 아래 이를 것입니다. 원하건데 그대는 신의 계책을 잘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두 사람을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했다. 성안군은 유생이어서 항상 의로운 군대를 일컬어 속이는 꾀와 기이한 계책을 쓰지 않았다.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병법에 열배이면 포위하고, 두 배이면 곧 싸운다. 한다. 지금 한신의 군대가 수만이라 말하지만 그 실제는 수천에 지나지 않는다. 천리를 와서 나를 습격하니 또 이미 피로가 지극할 것이다. 지금 이 같은데도 피하고 치지 않으면 후에 더 큰 일이 있을 때 무엇으로써 더할 것인가! 곧 제후들이 내가 겁먹었다 하면서 가벼이 와서 나를 칠 것이다. 하고는 광무군의 계책을 듣지도 않고, 광무군의 계책을 쓰지도 않았다.
[一] 索隱案:地理志常山石邑縣,井陘山在西。又穆天子傳云「至于陘山之隧,升于三道之磴」是也。
[一] 【索隱】살펴보니 『지리지』에 “상산 석읍현은 정형산 서쪽에 있다.”했다. 또 「목천자전」에 “형산에 이르는 길이고, 三道의 비탈길을 오른다.”는 것이 이것이다.
[二] 正義井陘故關在并州石艾縣東十八里,即井陘口。
[二] 【正義】 정형의 옛 관이 병주 석애현 동쪽 18리에 있으니 곧 정경구이다.
[三] 索隱喋,舊音歃,非也。案:陳湯傳「喋血萬里之外」,如淳云「殺人血流滂沱也」。韋昭音徒協反。
[三] 【索隱】 ‘喋’은 옛 음이 ‘歃’이라 하나 아니다. 살펴보니 「진탕전」에 “만리의 밖에 유혈이 낭자하다.” 하였고, 여순은 “사람을 죽여 흐른 피가 세차게 흐른다.” 했다. 위소는 “음이 ‘徒’와 ‘協’의 反이다.” 했다.
[四] 集解漢書音義曰:「樵,取薪也。蘇,取草也。」
[四] 【集解】 『한서음의』에 “‘樵’는 섶을 취하는 것이다. ‘蘇’는 풀을 취하는 것이다.” 했다.
韓信使人閒視,知其不用,還報,則大喜,乃敢引兵遂下。[一]未至井陘口三十里,止舍。夜半傳發,[二]選輕騎二千人,人持一赤幟,從閒道萆山而望趙軍,[三]誡曰:「趙見我走,必空壁逐我,若疾入趙壁,拔趙幟,立漢赤幟。」令其裨將傳飧,[四]曰:「今日破趙會食!」[五]諸將皆莫信,詳應曰:「諾。」謂軍吏曰:「趙已先據便地為壁,且彼未見吾大將旗鼓,未肯擊前行,恐吾至阻險而還。」信乃使萬人先行,出,背水陳。[六]趙軍望見而大笑。平旦,信建大將之旗鼓,鼓行出井陘口,趙開壁擊之,[七]大戰良久。於是信、張耳詳棄鼓旗,走水上軍。水上軍開入之,復疾戰。趙果空壁爭漢鼓旗,逐韓信、張耳。韓信、張耳已入水上軍,軍皆殊死戰,不可敗。信所出奇兵二千騎,共候趙空壁逐利,則馳入趙壁,皆拔趙旗,立漢赤幟二千。趙軍已不勝,不能得信等,欲還歸壁,壁皆漢赤幟,而大驚,以為漢皆已得趙王將矣,兵遂亂,遁走,趙將雖斬之,不能禁也。於是漢兵夾擊,大破虜趙軍,斬成安君泜水上[八],禽趙王歇。
한신이 사람을 시켜 틈을 보게 하였는데 그 쓰이지 않음을 알고 돌아가 보고하니 곧 크게 기뻐하며 이에 감히 군대를 이끌고 내려갔다. 정형의 입구 30리에 못 미쳐 그치고 쉬었다. 한 밤중에 전령을 내어 가볍게 무장한 기병 2000명을 선발하여 사람마다 빨강 색 깃발 하나씩을 지니게 하고 사이 길을 따라 산에 숨어 조의 군대를 바라보고 경계하여 말하기를 “조는 우리가 달아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성벽을 비우고 우리를 쫓을 것이니 너희들은 재빨리 조의 성벽에 들어가 조의 깃발을 뽑고 한의 빨강 깃발을 세우라. 했다. 그 비장으로 하여금 저녁밥을 전하게 하고 말하기를 “오늘 조를 깨트리고 모여 밥 먹을 것이다!” 했다. 여러 장군들이 모두 믿지 않았는데 거짓으로 대답하여 말하기를 “예”하고는 군리에게 말하기를 “조가 이미 먼저 편한 땅에 의지하여 벽을 만들었으나 또한 그들이 아직 우리의 대장기와 북을 보지 못하였으니 즐겨 앞으로 가서 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우리가 막히고 험함에 이르러 돌아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했다. 한신이 이에 만 명으로 하여금 먼저 가게하고 나가 배수진을 치게 했다. 조 군이 멀리서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날이 샐 무렵 한신이 대장의 기와 북을 세우고 북을 치면서 행군하여 정형의 입구로 나가니 조가 성벽을 열고 쳐서 크게 싸우기를 오래하였다. 이에 한신과 장이가 거짓으로 북과 기를 버리고 강가의 군진으로 달아났다. 강가의 군진이 열고 들어가게 하고 다시 재빠르게 싸웠다. 조가 과연 성벽을 비우고 한의 기와 북을 다투면서 한신과 장이를 쫓았다. 한신과 장이가 이미 강가의 군진에 들어가자 군대가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니 무너뜨릴 수 없었다. 한신이 기병 2천기를 내보냈는데 함께 조가 성벽을 비우고 이익을 쫓는 것을 엿보다가 곧 말을 달려 조의 성벽으로 들어가 모든 조의 기를 뽑고 한의 빨간 기 2천개를 세웠다. 조군이 이기지 못하고, 한신 등도 잡지 못하자 성벽에 돌아가고자 하는데 성벽이 모두 한의 빨간 기여서 크게 놀라고, 한이 이미 조왕과 장군을 모두 잡았다고 여겼다. 군대가 마침내 어지러워지면서 달아나 숨으니 조의 장군이 그들의 목을 베어 죽였으나 금하지 못하였다. 이에 한 군대가 협공하여 크게 깨트리고 조군을 포로로 잡고, 성안군을 제수 가에서 목을 베어 죽이고, 조왕 헐을 사로잡았다.
[一] 正義引兵入井陘狹道,出趙。
[一] 【正義】 군대를 이끌고 정형의 좁은 길로 들어간 것은 조로 나온 것이다.
[二] 集解漢書音義曰:「傳令軍中使發。」
[二] 【集解】 『한서음의』에 “군중에 령을 전하여 출발하게 하였다.” 했다.
[三] 集解如淳曰:「萆音蔽。依山自覆蔽。」 索隱案:謂令從閒道小路向前,望見陳餘軍營即住,仍須隱山自蔽,勿令趙軍知也。萆音蔽。蔽者,蓋覆也。楚漢春秋作「卑山」,漢書作「箄山」。說文云「箄,蔽也,從竹卑聲」。
[三]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萆’의 음은 ‘蔽’이다. 산에 의지하여 스스로 덮어 가린 것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령을 내려 사이 길로 작은 길을 따라 앞을 향하게 하고, 진여의 군영을 바라보면서 머물고 그대로 산에 숨어 스스로 가리고 조 군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萆’의 음은 ‘蔽’이다. ‘蔽’는 뚜껑을 덮는 것이다. 『초한춘추』에 “卑山”이라 썼고, 『한서』에는 “箄”라 썼다. 『설문』에 “‘箄’는 ‘蔽’인데 ‘從’과 ‘竹’의 낮은 소리이다.” 했다.
[四] 集解徐廣曰:「音飧也。」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음은 飧(저녁밥 손)이다.
[五] 集解服虔曰:「立駐傳飧食也。」如淳曰:「小飯曰飧。言破趙後乃當共飽食也。」 索隱如淳曰:「小飯曰飧。謂立駐傳飧,待破趙乃大食也。」
[五] 【集解】 복건이 말하기를 “서서 저녁밥 먹으라. 전한 것이다.” 여순이 말하기를 “조금 먹는 것을 ‘飧’이라 한다. 조를 깨트린 후 곧 마땅히 함께 배부르게 먹을 것이라 말한 것이다.” 【索隱】 여순이 말하기를 “적게 먹는 것을 ‘飧 ’이라 한다. 서서 저녁 밥 먹으라. 전하고 조를 깨트리기를 기다려 크게 먹는 것이다.” 했다.
[六] 正義綿蔓水,一名阜將,一名回星,自并州流入井陘界,即信背水陣陷之死地,即此水也。
[六] 【正義】 ‘면만수’는 일명 ‘부장’, 일명 ‘회성’이라 하는데 병주부터 흘러 정형의 경계에 들어간다. 곧 한신이 배수진이 죽을 땅에 몰아넣은 곳이 곧 dl 물이다.
[七] 正義恆州鹿泉縣,即六國時趙壁也
[七] 【正義】 항주 녹천현이니 곧 6국시대 조의 성벽이다.
[八] 集解徐廣曰:「泜音遲。」 索隱徐廣音遲。劉氏音脂。
[八]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泜’의 음은 ‘遲’이다. 했다. 【索隱】 서광은 음이 ‘遲’라 했고, 유씨는 음을 ‘脂’라 했다.
信乃令軍中毋殺廣武君,有能生得者購千金。於是有縛廣武君而致戲下者,信乃解其縛,東鄉對,西鄉對,師事之。諸將效首虜,[一](休)畢賀,因問信曰:「兵法右倍山陵,前左水澤,今者將軍令臣等反背水陳,曰破趙會食,臣等不服。然竟以勝,此何術也?」信曰:「此在兵法,顧諸君不察耳。兵法不曰『陷之死地而後生,置之亡地而後存』?且信非得素拊循士大夫也,此所謂『驅市人而戰之』,其勢非置之死地,使人人自為戰;今予之生地,皆走,寧尚可得而用之乎!」諸將皆服曰:「善。非臣所及也。」
한신이 군중에 광무군을 죽이지 말라고 명하고, 살려서 얻은 자가 있으면 천금의 상금을 준다고 하였다. 이에 광무군을 묶어서 깃발아래에 이른 자가 있었는데 한신이 이에 그 묶은 것을 풀어주고 동쪽을 향해 앉게 하고, 서쪽을 향해 마주하여 스승으로 그를 섬겼다. 여러 장수들이 머리와 포로 바치기를 마치고 축하하며 한신에게 물어 말하기를 “병법에 오른 쪽으로 산과 언덕을 등지고, 앞과 왼쪽으로 물과 못을 두라 하였는데 지금은 장군이 우리들에게 도리어 물을 등지고 진을 치라 명하시고, 조를 깨트리고 모여 밥 먹자 하신 것을 우리들이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 것으로 승리하였으니 이것은 무슨 방법입니까?” 했다. 한신이 말하기를 “이는 병법에 있는 것인데 다만 그대들이 살피지 않았을 뿐이다.” 했다. 병법에 “죽을 땅에 빠진 후에 살아남고, 망할 땅에 둔 후에 보존한다.” 하지 않았는가? 또 내가 평소에 사대부를 어루만져서 따를 수 있게 한 것이 아니었으니 이는 이른바 “시장사람을 몰아 싸우게 하는 것이다. 그 형세가 죽을 땅에 두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싸우게 하지 않고, 지금 살 땅을 주면 모두 달아날 것이니 어찌 오히려 그들을 쓸 수 있겠는가?” 했다. 여러 장군들이 모두 복종하여 말하기를 “훌륭합니다. 저희들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했다.
[一] 索隱如淳曰:「效,致也。」晉灼云:「效,數也。」鄭玄注禮「效猶呈見也」。
[一] 【索隱】 여순이 말하기를 “‘效’는 이르다 이다.” 했다. 진작이 말하기를 “‘效’는 헤아림이다.” 했다. 정현이 주석한 『예기』에 “‘效’는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했다.
於是信問廣武君曰:「僕欲北攻燕,東伐齊,何若而有功?」廣武君辭謝曰:「臣聞敗軍之將,不可以言勇,亡國之大夫,不可以圖存。今臣敗亡之虜,何足以權大事乎!」信曰:「僕聞之,百里奚居虞而虞亡,在秦而秦霸,非愚於虞而智於秦也,用與不用,聽與不聽也。誠令成安君聽足下計,若信者亦已為禽矣。以不用足下,故信得侍耳。」因固問曰:「僕委心歸計,願足下勿辭。」廣武君曰:「臣聞智者千慮,必有一失;愚者千慮,必有一得。
이에 한신이 광무군에게 묻기를 “내가 북쪽으로 연을 공격하고, 동쪽으로 제를 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공이 있겠습니까?” 했다. 광무군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패배한 장군은 용맹함을 말 할 수 없고, 나라를 망하게 한 대부는 사는 것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저는 패망한 포로로 어찌 큰일을 저울질하기에 충분하겠습니까?” 했다. 한신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백리해는 우 나라에 살다 우 나라가 망하자 진 나라에 있으면서 진나라의 패업을 이루었다. 합니다. (백리해가)우 나라에서는 어리석었고, 진나라에서는 지혜로웠던 것이 아니라 쓰이고 쓰이지 않음과 들어주고, 들어주지 않음에 달려 있습니다. 계책을 들었다면 나 같은 자는 또한 이미 사로잡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대의 계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모실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하고는 굳이 묻기를 “내가 마음을 맡기고 계책을 돌리니 그대는 사양하지 말기를 원합니다.” 했다. 광무군이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지혜로운 자는 천 번 고려하여도 반드시 한 번 잃음이 있고, 어리석은 자는 천 번 고려하여 반드시 한 번 얻습니다.
故曰『狂夫之言,聖人擇焉』。顧恐臣計未必足用,願效愚忠。夫成安君有百戰百勝之計,一旦而失之,軍敗鄗下,[一]身死泜上。今將軍涉西河,[二]虜魏王,禽夏說閼與,一舉而下井陘,不終朝破趙二十萬眾,誅成安君。名聞海內,威震天下,農夫莫不輟耕釋耒,褕衣甘食,[三]傾耳以待命者。[四]若此,將軍之所長也。然而眾勞卒罷,其實難用。今將軍欲舉倦獘之兵,頓之燕堅城之下,欲戰恐久力不能拔,情見勢屈,曠日糧竭,而弱燕不服,齊必距境以自彊也。燕齊相持而不下,則劉項之權未有所分也。若此者,將軍所短也。臣愚,竊以為亦過矣。故善用兵者不以短擊長,而以長擊短。」韓信曰:「然則何由?」廣武君對曰:「方今為將軍計,莫如案甲休兵,鎮趙撫其孤,百里之內,牛酒日至,以饗士大夫醳兵,[五]北首燕路,[六]而後遣辯士奉咫尺之書,[七]暴其所長於燕,[八]燕必不敢不聽從。
그러므로 말하기를 ‘미친 사내의 말도 성인은 선택한다.’합니다. 다만 저의 계책이 반드시 충분히 쓰여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니 원하건데 어리석은 충성을 본받겠습니다. 대저 성안군은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수 있는 계책이 있어도 하루아침에 실수하여 군대는 호 땅 아래에서 무너지고 자신은 지수 가에서 죽었습니다. 지금 장군은 서하를 건너 위왕을 포로로 하고, 하열을 알여에서 사로잡았으며 일거에 정형을 함락하여 하루아침에 조의 20만 무리를 깨트리고 성안군을 죽였습니다. 이름은 대륙에 들려졌고, 위엄은 천하를 떨쳤으니 농부는 밭 갈기를 멈추고 보습을 풀며, 고운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귀를 기울여 명을 기다립니다. 이 같음이 장군의 장점입니다. 그러하되 무리는 수고롭고 병졸은 피폐하니 그들은 실로 쓰기 어렵습니다. 지금 장군은 게으르고 피폐한 군대를 일으켜 갑자기 연의 경고한 성의 아래로 가고자 합니다. 싸우고자하기를 오래하여도 힘으로 함락시키지 못하고 형세가 굽혀진 정세를 드러내어 쓸데없이 허송세월을 보내 식량이 다할 것을 두려워하는데 약한 연을 복종시키지 못하면 제는 반드시 경계에서 막아 스스로 강해 질 것입니다. 연과 제가 서로 의지하여 함락시키지 못하면 곧 유방과 항우의 권력도 나누어지는 바가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같은 것이 장군의 단점입니다. 나의 어리석음으로도 가만히 도한 잘못이라 여깁니다. 그러므로 군대를 잘 운용하는 자는 단점으로 장점을 치지 않고, 장잠으로써 단점을 칩니다. 했다. 한신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곧 어찌해야 합니까?” 하니 광무군이 대답하기를 “바야흐로 장군을 위한 계책으로는 무기를 살피고, 군대를 쉬게 하며, 조를 진정시키고 고아를 어루만지면 백리의 안에서 소와 술이 날로 이를 것이니 사대부에게 대접하고, 군대에게 먹이면서 북쪽으로 연을 향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 후에 말 잘하는 선비를 보내 지척의 글을 받들게 하여 연에게 장점을 드러내면 연은 반드시 감히 듣고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이 이미 따르게 되면 말을 떠드는 자로 하여금 동쪽으로 제에 고하게 하면 제가 반드시 바람에 따라 복종할 것입니다.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어도 또한 제를 위한 계책을 알지 못합니다. 이 같으면 곧 천하의 일을 모두 도모할 수 있습니다. 군대는 진실로 먼저 소리를 낸 후 실제로 한다는 것은 이를 말한 것입니다.” 했다. 한신이 말하기를 “훌륭합니다.” 하고는 그 계책을 따라 사신을 내어 연에 사신가게 하였더니 연이 바람을 따라 쓰러졌습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 한에 보고하게 하고, 장이를 세워 조왕으로 삼아 그 나라를 진정시키고, 어루만져야 합니다. 했다. 한왕이 그것을 허락하고 이에 장이를 세워 조왕으로 삼았다.
[一] 集解李奇曰:「鄗音臛。今高邑是。」
[一] 【集解】 이기가 말하기를 “‘鄗’의 음은 ‘臛’이다. 지금의 고읍이 이것이다.
[二] 索隱此之西河當馮翊也。 正義即同州龍門河,從夏陽度者。
[二] 【索隱】 여기의 서하는 ‘풍익’에 해당한다. 【正義】 곧 동주 용문하이니 하양에서 건넌 것이다.
[三] 索隱褕,鄒氏音踰,美也。恐滅亡不久,故廢止作業而事美衣甘食,日偷苟且也,慮不圖久故也。漢書作「靡衣媮食」也。
[三] 【索隱】 ‘褕’는 추씨가 음이 ‘踰’이고, 아름다움이다. 멸망이 오래지 않음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작업을 폐지하고 아름다운 옷과 좋은 음식을 일삼아 날로 훔치고 구차히 하며, 생각이 오랜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한서』에는 ‘靡衣媮食(아름다운 옷과 한 끼의 밥을 탐하다.)’로 썼다.
[四] 集解如淳曰:「恐滅亡不久故也。」
[四]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멸망이 오랜 일이 아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했다.
[五] 集解魏都賦曰:「肴醳順時。」劉逵曰:「醳酒也。」 索隱劉氏依劉逵音。醳酒謂以酒食養兵士也。案:史記古「釋」字皆如此作,豈亦謂以酒食醳兵士,故字從酉乎?
[五] 【集解】 「위도부」에 “안주와 잘 익은 술은 때를 따른다.” 했다. 유규가 말하기를 “잘 익은 술”이라 했다. 【索隱】 유씨는 유규의 음에 의지하였다. ‘醳酒’는 술과 음식으로 병사를 기르는 것이다.
[六] 正義首音狩,向也。
[六] 【正義】 ‘首’의 음은 ‘狩’이니 향함이다.
[七] 正義咫尺,八寸。言其簡牘或長尺也。
[七] 【正義】 ‘咫尺’은 8치이다. 그 편지 혹은 길이 한자를 말한다.
[八] 正義暴音僕。
[八] 【正義】 ‘暴’의 음은 ‘僕’이다.
楚數使奇兵渡河擊趙,趙王耳、韓信往來救趙,因行定趙城邑,發兵詣漢。楚方急圍漢王於滎陽,漢王南出,之宛、葉閒,[一]得黥布,走入成皋,楚又復急圍之。六月,漢王出成皋,東渡河,獨與滕公俱,從張耳軍脩武。至,宿傳舍。晨自稱漢使,馳入趙壁。張耳、韓信未起,即其臥內上奪其印符,以麾召諸將,易置之。信、耳起,乃知漢王來,大驚。漢王奪兩人軍,即令張耳備守趙地。拜韓信為相國,收趙兵未發者擊齊。[二]
초가 여러 번 기병으로 하여금 하를 건너 조를 치니 조왕 장이와 한신이 오고가면서 조를 구원하고 인하여 조의 성읍을 안정시키고 군대를 징발하여 한에 갔다. 초가 바야흐로 급히 한왕을 형양에서 포위하니 한왕이 남쪽으로 나와 완과 섭간에 가서 경포를 얻고, 달려서 성고에 들어가니 초가 또한 다시 급히 포위하였다. 6월 한왕이 성고를 나와 동쪽으로 하를 건넜는데 홀로 등공과 함께 수무에 있는 장이의 군대를 따랐다. 이르러 전사에서 묵었다. 새벽에 스스로 한의 사신이라 일컬으며, 말을 달려 조의 성벽에 들어갔다. 장이와 한신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그 침실로 올라가 그 인과 부절을 빼앗고 깃발로 여러 장수를 불러 바꾸어 두었다. 한신과 장이가 일어나 한왕이 온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랐다. 한왕이 두 사람의 군대를 뺏고, 장이로 하여금 조의 땅을 갖추어 지키게 했다. 한신을 제수하여 상국으로 삼고, 조의 군대로 아직 징발되지 않은 자를 거두어 제를 쳤다.
[一] 正義宛在鄧州。葉在許州。
[一] 【正義】 ‘宛’은 등주에 있다. ‘葉’은 허주에 있다.
[二] 集解文穎曰:「謂趙人未嘗見發者。」
[二] 【集解】 문영이 말하기를 “조의 사람으로 일찍이 장발 당하지 않은 자를 말한다.” 했다.
信引兵東,未渡平原,[一]聞漢王使酈食其已說下齊,韓信欲止。范陽辯士蒯通說信曰:「將軍受詔擊齊,而漢獨發閒使下齊,寧有詔止將軍乎?何以得毋行也!且酈生一士,伏軾[二]掉三寸之舌,下齊七十餘城,將軍將數萬眾,歲餘乃下趙五十餘,為將數歲,反不如一豎儒之功乎?」於是信然之,從其計,遂渡河。齊已聽酈生,即留縱酒,罷備漢守禦信因襲齊歷下軍,[三]遂至臨菑。齊王田廣以酈生賣己,乃亨之,而走高密,使使之楚請救。韓信已定臨菑,遂東追廣至高密西。楚亦使龍且將,號稱二十萬,救齊。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아직 평원을 건너지 않았는데 한왕이 여식기로 하여금 이미 제를 설득하여 항복받았다는 것을 듣고 한신이 멈추고자 하였다. 범양의 변사 괴통이 한신을 설득하기를 “장군께서는 조를 받고 제를 치는데 한이 홀로 밀사를 보내 제를 항복받았습니다. 어디에 조로 장군을 그치게 함이 있습니까? 어찌 가지 않을 수 있으며! 또한 역생은 일개 선비로 수레의 가로대에 엎드려 3치 혀를 놀려 제의 70여성을 함락시켰고, 장군은 수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1년여 만에 조의 50여성을 함락시켰고, 장군이 된지 여러 해인데 도리어 일개 유생의 공보다 못합니까?“ 했다. 이에 한신이 그렇다 하고, 그 계책을 따라 드디어 하를 건넜다. 제가 이미 역생의 말을 듣고 곧 머물러 술을 흠뻑 마시며 한을 지키는 대비를 멈추고 있을 때 한신이 제의 역하군을 습격하여 마침내 임치에 이르렀다. 제왕 전광은 역생이 자기를 팔았다하며 이에 그를 삶고는(烹刑에 처하고는) 고밀로 달아나 사신으로 하여금 초에 가게하여 구원을 청하였다. 한신이 이미 임치를 안정시키고 마침내 동쪽으로 전광을 뒤쫓아 고밀 서쪽에 이르렀다. 초가 또한 용차로 하여금 장군을 삼고 20만이라 말하며 제를 구원하게 하였다.
[一] 正義懷州有平原津。
[一] 【正義】 회주에 평원진이 있다.
[二] 集解韋昭曰:「軾,今小車中隆起者。」
[二]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軾’은 지금 작은 수레 안에 틔어 나온 것이다.
[三] 集解徐廣曰:「濟南歷城縣。」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제남의 역성현이다.” 했다.
齊王廣、龍且并軍與信戰,未合。人或說龍且曰:「漢兵遠鬥窮戰,其鋒不可當。齊、楚自居其地戰,兵易敗散。[一]不如深壁,令齊王使其信臣招所亡城,亡城聞其王在,楚來救,必反漢。漢兵二千里客居,齊城皆反之,其勢無所得食,可無戰而降也。」龍且曰:「吾平生知韓信為人,易與耳。且夫救齊不戰而降之,吾何功?今戰而勝之,齊之半可得,何為止!」遂戰,與信夾濰水陳。[二]韓信乃夜令人為萬餘囊,滿盛沙,壅水上流,引軍半渡,擊龍且,詳不勝,還走。龍且果喜曰:「固知信怯也。」遂追信渡水。信使人決壅囊,水大至。龍且軍大半不得渡,即急擊,殺龍且。龍且水東軍散走,齊王廣亡去。信遂追北至城陽,[三]皆虜楚卒。
제왕 광과 용차가 군대를 합하여 한신과 싸우려하였으나 접전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 용차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한의 군대는 멀리서 와 싸우므로 힘을 다해 싸울 것이니 그 예봉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와 초가 스스로 사는 그 땅에서 싸우므로 군대가 쉽게 무너지고 흩어질 것입니다. 성벽을 깊게 하고 제왕으로 하여금 그 믿는 신하로 하여금 잃은 성의 성주를 부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잃은 성에 그 왕이 있고, 초가 와서 구원한다는 것을 들으면 반드시 한을 배반할 것입니다. 한의 군대는 2천리 객지에 주둔하여 제의 성이 모두 배반하면 그 형세가 음식을 얻지 못하여 싸움 없이도 항복받을 수 있습니다. 했다. 용차가 말하기를 “내가 평생토록 한신의 사람됨을 알고 있고, 쉽게 할 수 있다. 또한 대저 제를 구원함에 싸우지도 않고 항복받는다면 내가 무슨 공이겠는가? 지금 싸워서 승리하면 제의 반을 얻을 수 있는데 어찌 그쳐야 하는가!” 드디어 싸우는데 한신과 유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한신이 곧 밤에 사람을 시켜 만여 개의 주머니를 만들게 하고, 모래를 가득 채워 물의 상류를 막고, 군대를 이끌고 반쯤 건너 용차를 치되 거짓으로 이기지 않고 돌아 달아났다. 용차가 과연 기뻐하며 말하기를 “진실로 한신이 겁내는 것을 알았다.”하고는 마침내 한신을 쫓아 물을 건넜다. 한신이 사람을 시켜 막은 주머니를 트게 하여 물이 크게 이르렀다. 용차의 군이 태반도 건너지 못하였을 때 급히 쳐서 용차를 죽였다. 용차의 물 동쪽 군대가 흩어져 달아났고, 제왕 광이 도망갔다. 한신이 마침내 쫓아서 북쪽으로 성양에 이르러 모두 초의 군졸에게 포로가 되었다.
[一] 正義近其室家,懷顧望也。
[一] 【正義】 그 집이 가까워 돌아보는 것을 품는 것이다.
[二] 集解徐廣曰:「出東莞而東北流,至北海都昌縣入海。」 索隱濰音維。地理志濰水出琅邪箕縣東北,至都昌入海。徐廣云「出東莞而東北流入海」,蓋據水經而說,少不同耳。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동쪽으로 완을 나와 동북으로 흘러 북해 창현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 했다. 【索隱】 ‘濰’의 음은 ‘維’이다. 『지리지』에 유수는 낭야 기현 동북쪽에서 나와 도창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 서광이 말하기를 “동쪽 완에서 나와 동북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 했다. 대개 『수경』에 근거하여 말하였는데 조금 같지 않다.
[三] 正義城陽雷澤縣是也,在濮州東南九十一里。
[三] 【正義】 성양 뇌택현이 이것으로 보주 동남쪽 91리에 있다.
漢四年,遂皆降平齊。使人言漢王曰:「齊偽詐多變,反覆之國也,南邊楚,不為假王以鎮之,其勢不定。願為假王便。」當是時,楚方急圍漢王於滎陽,韓信使者至,發書,[一]漢王大怒,罵曰:「吾困於此,旦暮望若來佐我,乃欲自立為王!」張良、陳平躡漢王足,因附耳語曰:「漢方不利,寧能禁信之王乎?不如因而立,善遇之,使自為守。不然,變生。」漢王亦悟,因復罵曰:「大丈夫定諸侯,即為真王耳,何以假為!」乃遣張良往立信為齊王,[二]徵其兵擊楚。
한 4년 마침내 모두 항복받아 제를 평정하였다. 사람을 시켜 한왕에게 말하기를 “제는 속이고 많이 변하고 뒤집는 나라로 남으로 초를 접경하여 가왕이 되어 진정시키지 않으면 그 형세를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가왕이 되어 편의를 보고자 합니다.” 했다. 이런 때를 당하여 초가 급하게 한왕을 형양에서 포위할 때 한신의 사자가 이르렀다. 보낸 편지를 보고 한왕이 크게 노하여 욕하며 말하기를 “내가 여기서 곤궁하여 아침저녁으로 네가 와서 나를 돕기를 바라는데 스스로 왕이 되려하는구나!” 했다. 장량과 진평이 한왕의 발을 밟고 귀에 대고 말하기(귓속말을 하기)를 “한이 바야흐로 이롭지 않은데 어찌 한신의 왕 노릇 하려는 것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인하여 세워서 잘 대우하여 스스로 지키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이 생길 것입니다.” 했다. 한왕도 또한 깨닫고 인하여 다시 꾸짖으며 말하기를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시키면 진왕이 될 뿐이지 무엇 때문에 가왕을 한단 말인가!” 하고는 곧 장량을 보내 가서 한신을 세워 제왕을 삼고 그 군대를 징발하여 초를 쳤다.
[一] 集解張晏曰:「發信使者所齎書。」
[一]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한신의 사자가 가져간 글을 펼친 것이다.
[二] 集解徐廣曰:「四年二月。」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4년 2월이다.” 했다.
楚已亡龍且,項王恐,使盱眙人武涉[一]往說齊王信曰:「天下共苦秦久矣,相與戮力擊秦。秦已破,計功割地,分土而王之,以休士卒。今漢王復興兵而東,侵人之分,奪人之地,已破三秦,引兵出關,收諸侯之兵以東擊楚,其意非盡吞天下者不休,其不知厭足如是甚也。且漢王不可必,身居項王掌握中數矣,[二]項王憐而活之,然得脫,輒倍約,復擊項王,其不可親信如此。今足下雖自以與漢王為厚交,為之盡力用兵,終為之所禽矣。足下所以得須臾至今者,以項王尚存也。當今二王之事,權在足下。足下右投則漢王勝,左投則項王勝。項王今日亡,則次取足下。足下與項王有故,何不反漢與楚連和,參分天下王之?今釋此時,而自必於漢以擊楚,且為智者固若此乎!」韓信謝曰:「臣事項王,官不過郎中,位不過執戟,[三]言不聽,畫不用,故倍楚而歸漢。漢王授我上將軍印,予我數萬眾,解衣衣我,推食食我,言聽計用,故吾得以至於此。夫人深親信我,我倍之不祥,雖死不易。幸為信謝項王!」
초가 이미 용차를 잃고 항왕이 두려워하여 우이 사람인 무섭을 시켜 가서 제왕 한신을 유세하게 하여 말하기를 “천하가 함께 진나라에 괴로움을 당한 것이 오래되어 서로 죽이며 힘써 진나라를 쳤습니다. 진나라가 이미 부서지고 공을 헤아려 땅을 나누며 땅을 나누어 왕 노릇하는 것으로 사졸을 쉬게 하였습니다. 지금 한왕이 다시 군대를 일으켜 동쪽으로 가서 다른 사람의 나누어진 것을 침략하고,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으며 이미 삼진을 깨트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함곡관을 나와 제후의 군대를 거두어 동쪽으로 초를 치니 그 뜻이 천하를 다 삼키지 않으면 그치지 않아 만족함을 알지 못함이 이 같이 심합니다. 또한 한왕은 믿을 수 없습니다. 몸이 항왕의 손아귀 안에 있은 것이 여러 번이었으나 항왕이 불쌍하게 여겨 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벗어나서는 갑자기 약속을 배반하고 다시 항왕을 치니 친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지금 그대가 비록 스스로 한왕과 두터이 사귀어 그를 위해 힘을 다해 군대를 쓰지만 마지막에는 그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잠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까닭은 하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두 왕의 일은 저울추가 그대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대가 오른 쪽으로 던지면 한왕이 이기고, 왼쪽으로 던지면 항왕이 이깁니다. 항왕이 오늘 망하면 곧 다음으로는 그대를 취할 것입니다. 그대와 항왕은 옛 일이 있는데 어찌하여 한을 배반하고 초와 잇고, 화친하여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왕 노릇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 반드시 한에서는 반드시 초를 친다하니 또한 지혜로운 자가 진실로 이같이 하겠는가? 했다. 한신이 감사하며 말하기를 “신이 항왕을 섬길 대 관직이 낭중에 지나지 않았고, 지위가 집극에 지나지 않으며, 말을 해도 듣지 않고, 계책을 내어도 쓰이지 않기 때문에 초를 배반하고 한에 귀의하였습니다. 한왕은 나에게 상장군의 인을 주었고, 나에게 수만의 군대를 주었으며, 옷을 벗어 나에게ㅔ 입혀주었고, 음식을 미루어 나에게 먹여주었으며, 말은 들어주고, 계책은 써줍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대저 사람이 깊이 친하고 나를 믿어주니 내가 그를 배반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니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바뀌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위해 항왕에게 사양함을 말해 주십시오!” 했다.
[一] 集解張華曰:「武涉墓在盱眙城東十五里。」
[一] 【集解】 장화가 말하기를 “무섭의 묘는 우이성 동쪽 15리에 있다.” 했다.
[二] 正義數,色庾反。
[二] 【正義】 ‘數’는 ‘色’과 ‘庾’의 反이다.
[三] 集解張晏曰:「郎中,宿衛執戟之人也。」
[三]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낭중은 숙위로 창을 잡는 사람이다.” 했다.
武涉已去,齊人蒯通知天下權在韓信,欲為奇策而感動之,以相人說韓信曰:「僕嘗受相人之術。」韓信曰:「先生相人何如?」對曰:「貴賤在於骨法,憂喜在於容色,成敗在於決斷,以此參之,萬不失一。」韓信曰:「善。先生相寡人何如?」對曰:「願少閒。」信曰:「左右去矣。」通曰:「相君之面,不過封侯,又危不安。相君之背,貴乃不可言。」[一]韓信曰:「何謂也?」蒯通曰:「天下初發難也,俊雄豪桀建號壹呼,天下之士雲合霧集,魚鱗雜遝,熛至風起。當此之時,憂在亡秦而已。今楚漢分爭,使天下無罪之人肝膽塗地,父子暴骸骨於中野,不可勝數。楚人起彭城,轉鬥逐北,至於滎陽,乘利席卷,威震天下。然兵困於京、索之閒,迫西山而不能進者,三年於此矣。漢王將數十萬之眾,距鞏、雒,阻山河之險,一日數戰,無尺寸之功,折北不救,[二]敗滎陽,傷成皋,[三]遂走宛、葉之閒,此所謂智勇俱困者也。夫銳氣挫於險塞,而糧食竭於內府,百姓罷極怨望,容容無所倚。以臣料之,其勢非天下之賢聖固不能息天下之禍。當今兩主之命縣於足下。足下為漢則漢勝,與楚則楚勝。臣願披腹心,輸肝膽,效愚計,恐足下不能用也。誠能聽臣之計,莫若兩利而俱存之,參分天下,鼎足而居,其勢莫敢先動。夫以足下之賢聖,有甲兵之眾,據彊齊,從燕、趙,出空虛之地而制其後,因民之欲,西鄉[四]為百姓請命,[五]則天下風走而響應矣,孰敢不聽!割大弱彊,以立諸侯,諸侯已立,天下服聽而歸德於齊。案齊之故,有膠、泗之地,懷諸侯以德,深拱揖讓,則天下之君王相率而朝於齊矣。蓋聞天與弗取,反受其咎;時至不行,反受其殃。願足下孰慮之。」割大弱彊,以立諸侯,諸侯已立,天下服聽而歸德於齊。案齊之故,有膠、泗之地,懷諸侯以德,深拱揖讓,則天下之君王相率而朝於齊矣。蓋聞天與弗取,反受其咎;時至不行,反受其殃。願足下孰慮之。」
무섭이 이미 떠나니 제의 사람인 괴통이 천하 권력이 한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기이한 계책으로 그를 감동시키고자 하여 사람의 상을 보는 것으로써 한신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제가 일찍이 사람의 상을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했다.한신이 말하기를 “선생은 사람의 상을 어떻게 봅니까?”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귀천은 골법에 달려 있고, 근심과 기쁨은 얼굴색에 있으며, 이루고 실패하는 것은 결단에 달려 있는데 이 세 가지를 가지고 하면 만 가지 중에 한 가지 잘못을 하지 않습니다.”했다. 한신이 말하기를 “훌륭합니다. 선생이 나의 상을 보니 어떻습니까?”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잠간의 틈을 원합니다.” 하니 한신이 “좌우는 물러가라.” 했다. 괴통이 말하기를 “그대의 얼굴을 살펴보니 제후에 봉해짐에 지나지 않고, 위태로워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대의 등을 살펴보니 귀하기가 말할 수 없습니다. 한신이 말하기를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니 괴통이 말하기를 “천하에 처음 난이 펴질 때는 준웅과 호걸이 이름을 세우고 한번 소리 지르자 천하의 선비가 구름처럼 합하고 안개처럼 모이는 것이 물고기 비늘처럼 뒤섞이고 불처럼 이르고 바람처럼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근심은 망한 진에 달려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초와 한이 나뉘어 다투니 천하의 죄 없는 이들로 하여금 간담을 땅에 칠하게 하고, 아비와 자식의 해골들을 들에 드러나게 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초의 사람들은 팽성에서 일어나 싸우고 싸우며 북쪽을 쫓아 형양에 이르러 이김을 타고 석권하니 위엄이 천하에 진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군대는 경과 색의 사이에서 곤궁하고 서산을 압박하면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 이에 3년이었습니다. 한왕이 장차 수십만의 무리로 공과 낙을 막고, 산과 강의 험함에 막히며 하루에 여러 번 싸워도 한 자 한 치의 공이 없고, 꺽이고 패배하여도 구원하지 않고, 형양에서 패하고, 성고에서 고통 받다가 마침내 완과 섭의 사이로 달아나니 이것이 이른바 지혜와 용기가 모두 곤궁한 자라는 것입니다. 대저 날카로운 기운은 험하고 막힘에 좌절하고, 양식은 안에서 다하며, 백성이 지극히 피폐하고 원망하며, 갈팡지팡하여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제가 헤아리건데 그 형세가 천하의 어진이와 성인이 아니면 진실로 천하의 재앙을 그치게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두 임금의 운명은 그대에게 달렸습니다. 그대가 한을 위하면 곧 한이 이기고, 초와 함께하면 초가 이깁니다. 신은 복심을 파헤치고, 간담을 옮겨 어리석은 계책을 드리는데 그대가 쓰지 않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진실로 저의 계책을 들어줄 수 있다면 양쪽의 이로움으로 모두 있게 하는 것 만함이 없습니다.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솥발처럼 있게 하면 그 형세가 감히 먼저 음직일 수 없습니다. 대저 그대의 어짐과 성스러움으로 무장한 군대의 많음으로 강한 제를 점거하고 연과 조를 따르게 하고 비어있는 당에 나아가 그 뒤를 제압하여 백성들이 하고자 함으로 인하여 서쪽으로 향하고는 백성들을 위하여 목숨 살리기를 청한다면 곧 천하는 바람처럼 달리고 메아리처럼 응할 것이니 누가 감히 듣지 않을 것인가! 큰 것은 나누고 약한 것은 강하게 하는 것으로써 제후를 세우고, 제후를 이미 세웠다면 천하가 복종하고 명을 들어 덕을 제에 돌릴 것입니다. 제의 옛 일을 살펴 교와 사의 땅을 소유하고 제후를 덕으로 품으면 깊숙이 손을 마주잡고 읍하고 겸양하면 곧 천하의 군왕이 서로 거느리고 제에 조회할 것입니다. 대개 들으니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고, 때가 이르러도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 합니다. 원하던데 그대는 깊이 생각하십시오.” 했다.
[一] 集解張晏曰:「背畔則大貴。」
[一]【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배반하면 곧 크게 귀해진다.” 했다.
[二] 集解張晏曰:「折,衄敗也。北,奔北。」
[二]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折’은 기세가 꺽이고 무너짐이다. ‘北’은 도망치다.” 했다.
[三] 集解張晏曰:「於成皋傷胸也。」臣瓚曰:「謂軍折傷。」
[三]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성고에서 가슴을 다쳤다.” 했다. 신찬이 말하기를 “군사가 꺽이고 상처입음을 말한다.”
[四] 正義鄉音向。齊國在東,故曰西向也。
[四] 【正義】 ‘鄕’의 음은 ‘向’이가. 제나라는 동쪽에 있기 때문에 ‘서향’이라말한 것이다.
[五] 正義止楚漢之戰鬥,士卒不死亡,故云「請命」。
[五] 【正義】 초, 한의 전투를 그치면 사졸이 죽지 않기 때문에 ‘請命’이라 한 것이다.
韓信曰:「漢王遇我甚厚,載我以其車,衣我以其衣,食我以其食。吾聞之,乘人之車者載人之患,衣人之衣者懷人之憂,食人之食者死人之事,吾豈可以鄉利倍義乎!」蒯生曰:「足下自以為善漢王,欲建萬世之業,臣竊以為誤矣。始常山王、成安君為布衣時,相與為刎頸之交,後爭張黶、陳澤之事,二人相怨。常山王背項王,奉項嬰頭而竄,逃歸於漢王。漢王借兵而東下,殺成安君泜水之南,頭足異處,卒為天下笑。此二人相與,天下至驩也。然而卒相禽者,何也?患生於多欲而人心難測也。今足下欲行忠信以交於漢王,必不能固於二君之相與也,而事多大於張黶、陳澤。故臣以為足下必漢王之不危己,亦誤矣。大夫種、范蠡存亡越,霸句踐,立功成名而身死亡。野獸已盡而獵狗亨。夫以交友言之,則不如張耳之與成安君者也;以忠信言之,則不過大夫種、范蠡之於句踐也。此二人者,足以觀矣。願足下深慮之。且臣聞勇略震主者身危,而功蓋天下者不賞。臣請言大王功略:足下涉西河,虜魏王,禽夏說,引兵下井陘,誅成安君,徇趙,脅燕,定齊,南摧楚人之兵二十萬,東殺龍且,西鄉以報,此所謂功無二於天下,而略不世出者也。今足下戴震主之威,挾不賞之功,歸楚,楚人不信;歸漢,漢人震恐:足下欲持是安歸乎?夫勢在人臣之位而有震主之威,名高天下,竊為足下危之。」韓信謝曰:「先生且休矣,吾將念之。」後數日,蒯通復說曰:「夫聽者事之候也,計者事之機也,聽過計失而能久安者,鮮矣。聽不失一二者,不可亂以言;計不失本末者,不可紛以辭。夫隨廝養之役者,失萬乘之權;守儋石之祿者,[一]闕卿相之位。故知者決之斷也,疑者事之害也,審豪氂之小計,遺天下之大數,智誠知之,決弗敢行者,百事之禍也。故曰『猛虎之猶豫,不若蜂蠆之致螫;[二]騏驥之跼躅,[三]不如駑馬之安步;孟賁之狐疑,不如庸夫之必至也;雖有舜禹之智,吟而不言,[四]不如瘖聾之指麾也』。此言貴能行之。夫功者難成而易敗,時者難得而易失也。時乎時,不再來。願足下詳察之。」韓信猶豫不忍倍漢,又自以為功多,漢終不奪我齊,遂謝蒯通。蒯通說不聽,已詳狂為巫。[五]
한신이 말하기를 “한왕이 나를 대우하는 것이 매우 도타워 나를 그 수레에 태웠으며, 나에게 그 옷을 입혀주었으며, 나에게 그 밥을 먹여주었습니다. 내가 들으니 다른 사람의 수레를 타는 것은 다른 사람의 근심을 자기에게 싣고,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자는 다른 사람의 근심을 품고, 다른 사람의 밥을 먹는 자는 다른 사람의 일에 죽는다 합니다. 내가 어찌 이익을 향하는 것으로써 의를 배반하리오!” 했다. 괴생이 말하기를 “그대가 스스로 한왕을 좋게 여기고 만세의 업을 세우고자 하는데 신이 가만히 잘못이라 여깁니다. 처음 상산왕과 성안군이 벼슬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을 때 서로 목을 베는 사귐을 하다가 후에 장염, 진택의 일을 다투어 두 사람이 서로 원망하였습니다. 상산왕이 항왕을 배반하고, 항영의 머리를 받들고 달아나 도망하여 한왕에게 귀의하였습니다. 한왕이 군대를 빌려 동쪽으로 내려가 성안군을 지수의 남쪽에서 죽이고, 머리와 발을 다른 곳에 두니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서로 같이 할 때 천하는 지극히 기뻐하였습니다. 그러하지만 마침내 서로 사로잡히게 된 것은 어째서입니까? 근심은 많은 욕심에서 생겨나고 인심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지금 그대는 충과 신을 행하는 것으로써 한왕과 사귀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두 군(상산왕과 성안군)이 함께하는 것을 굳게 할 수 없고, 일은 장염과 진택 보다 많고 큽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대를 한왕이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기필하는 것은 또한 잘못입니다. 대부 종과 범려는 망하는 월을 보존시키고 구천을 패자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세웠으되 몸은 죽었습니다. 들에 짐승이 이미 다하였으면 사냥개는 삶습니다. 대저 벗을 사귀는 것으로 말하면 장이가 성안군에 대한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충심으로써 말하면 대부종과 범려의 구천에 대한 것보다 지나치는 것(나은 것)은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충분히 볼만 합니다. 그대는 깊이 생각하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신이 들으니 용맹과 계략이 임금을 떨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이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이 없다 하였습니다. 제가 대왕의 공과 계략을 말하기를 청합니다. 그대는 서하를 건너 위왕을 포로로 하고 하열을 사로잡으며 군대를 이끌고 정형을 함락시키고 성안군을 죽이고 조를 항복시키고 연을 위협하며 제를 평정하고, 남쪽으로 초 사람의 군대 20만을 꺽고 동쪽으로 용차를 죽이고 서쪽을 향하여 보고하였으니 이는 이른바 공은 천하에 둘이 없고 지략은 세상에 나오지 않을 자입니다. 지금 그대는 임금을 떨게 할 위엄을 이고 상 받지 못할 공을 끼고서 초에 돌아가면 초 사람들이 믿지 않고, 한에 돌아가면 한 사람들이 떨고 두려워 하니 그대는 이것을 지니시고 어디로 돌아가고자 합니까? 대저 형세는 신하의 자리에 있으면서 임금을 떨게 할 위엄이 있고, 명성이 천하에 높으니 그대를 위해 위태롭게 여깁니다.” 했다. 며칠 후 괴통이 다시 설득하기를 “대저 듣는 것은 일의 조짐이고, 계획하는 것은 일의 기틀입니다. 들음이 지나치고 계획이 잘 못되면 오래 편안할 수 있는 자가 적습니다. 듣는데 하나, 또는 둘을 잃지 않는 자는 말로 어지럽힐 수 없고, 계획에 근본과 지엽을 잃지 않는 자는 말로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천한 일을 따르는 자는 만승의 권력을 잃고, 작은 녹을 지키는 자는 경상의 지위를 잃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결단하고, 의심하는 자는 일을 방해하고, 터럭 같은 작은 계획을 살피다 천하의 큰 운수를 잃게 되니 지혜와 정성으로 그것을 알고 결단하여 감히 행하지 않는 자는 백가지 일의 화입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사나운 호랑이의 머뭇거림은 벌과 전갈의 쏨에 이른 것만 못하고, 준마의 머뭇거림은 노둔한 말의 편안한 걸음보다 못하고. 맹분 같은 역사의 의심은 평범한 사람의 반드시 이룸보다 못합니다. 비복 순과 우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도 웅얼거리고 말하지 않는 것은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 보다 못하다. 합니다. 이 말은 행할 수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대저 공은 이루기는 어렵고 무너지는 것은 쉽고, 때는 얻기 어려우나 잃기는 쉽습니다. 이런 때는 두 번 오지 않습니다. 그대는 자세히 살피가를 원합니다. 했다. 한신이 머뭇거리며 차마 한을 배반하지 못하고, 또 스스로 공이 많아 한이 나의 제를 뺏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마침내 괴통에게 사양하였다. 괴통이 유세하였으나 듣지 않자 스스로 거짓으로 미친척하고 무당이 되었다.
[一] 集解晉灼曰:「楊雄方言『海岱之閒名罌為儋』。石,斗石也。」蘇林曰:「齊人名小罌為儋。石,如今受鮐魚石罌,不過一二石耳。一說,一儋與一斛之餘。」 索隱儋音都濫反。石,斗也。蘇林解為近之。鮐音胎。
[一] 【集解】 진작이 말하기를 “양웅방이 ‘해와 대의 사이를 항아리를 儋이라 한다’ 하였고, ‘石’은 ‘斗石(말섬)’이라 한다.” 했다. 소림이 말하기를 “제의 사람 이름인 ‘小罌’을 ‘儋’이라 한다. ‘石’은 지금 고등어를 받는 돌 항아리와 같은데 한 두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일설에 일담과 일곡의 나머지라 한다.” 【索隱】 ‘儋’의 음은 ‘都’와 ‘濫’의 反 이다. ‘石’은 말이다. 소림의 풀이가 가깝다. ‘鮐’의 음은 ‘胎’이다.
[二] 正義音適。
[二] 【正義】 음은 ‘適’이다.
[三] 集解徐廣曰:「跼,一作『蹢』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跼’은 한편 ‘蹢’이라 쓴다.” 했다.
[四] 索隱吟,鄭氏音拒蔭反,又音琴。
[四] 【索隱】 ‘吟’은 정씨가 “음은 ‘拒’와 ‘蔭’의 反이다. 하고, 또 음은 ‘琴’이다.
[五] 集解徐廣曰:「一本『遂不用蒯通,蒯通曰:「夫迫於細苛者,不可與圖大事;拘於臣虜者,固無君王之意。」說不聽,因去詳狂』也。」 索隱案:漢書及戰國策皆有此文。
[五]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어떤 본에는 ‘遂不用蒯通,蒯通曰:「夫迫於細苛者,不可與圖大事;拘於臣虜者,固無君王之意。」說不聽,因去詳狂』也(마침내 괴통을 쓰지 않으니 괴통이 말하기를 작은 부담에 급박한 자와는 함께 큰 일을 도모할 수 없고, 신하의 수고로움에 구애되는 것은 진실로 임금의 뜻이 없다.’ 하고는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떠나서 거짓으로 미친 듯이 하였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한서』와 『전국책』에 모두 이 글이 있다.
漢王之困固陵,用張良計,召齊王信,遂將兵會垓下。項羽已破,高祖襲奪齊王軍。[一]漢五年正月,徙齊王
信為楚王,都下邳。
한왕이 고릉에서 곤궁하였을 때 장량의 좋은 계책을 써서 제왕 한신을 불렀는데 마침내 군대를 거느리고 해하에서 만났다. 항우를 깨트린 후 고조가 제왕의 군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한 5년 정월 제왕 한신을 옯겨 초왕으로 삼으니 하비에 도읍하였다.
[一] 集解徐廣曰:「以齊為平原、千乘、東萊、齊郡。」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제를 평원, 천승, 동래, 제군으로 하였다.” 했다.
信至國,召所從食漂母,賜千金。[一]及下鄉南昌亭長,賜百錢,曰:「公,小人也,為德不卒。」召辱己之少年令出胯下者以為楚中尉。告諸將相曰:「此壯士也。方辱我時,我寧不能殺之邪?殺之無名,故忍而就於此。」
한신이 나라에 이르러 따라다니며 밥을 얻어먹던 빨래하던 여자를 불러 천금을 내렸다. 하향의 남창정장에 이르러서는 백전을 내리고 말하기를 “공은 소인으로 덕을 베풀기를 끝까지 하지 못하였다.” 했다. 사타구니 아래로 나가게 하여 자기를 욕보인 소년을 불러 초의 중위로 삼았다.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장사이다. 처음 내가 어렸을 때 욕 보였는데 내가 어찌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를 죽이는 명분이 없기 때문에 인내하여 여기에 나아간 것이다.” 했다.
[一] 集解張華曰漂母冢在泗口南岸。
[一] 【集解】 장화가 말하기를 “표모의 무덤이 사구 남쪽 물가에 있다.” 했다.
項王亡將鍾離眛家在伊廬,[一]素與信善。項王死後,亡歸信。漢王怨眛,聞其在楚,詔楚捕眛。信初之國,行縣邑,陳兵出入。漢六年,人有上書告楚王信反。高帝以陳平計,天子巡狩會諸侯,南方有雲夢,發使告諸侯會陳:「吾將游雲夢。」實欲襲信,信弗知。高祖且至楚,信欲發兵反,自度無罪,欲謁上,恐見禽。人或說信曰:「斬眛謁上,上必喜,無患。」信見眛計事。眛曰:「漢所以不擊取楚,以眛在公所。若欲捕我以自媚於漢,吾今日死,公亦隨手亡矣。」乃罵信曰:「公非長者!」卒自剄。信持其首,謁高祖於陳。上令武士縛信,載後車。信曰:「果若人言,『狡兔死,良狗亨;[二]高鳥盡,良弓藏;敵國破,謀臣亡。』天下已定,我固當亨!」上曰:「人告公反。」遂械繫信。至雒陽,赦信罪,以為淮陰侯。
항왕의 도망한 장군 종리매의 집이 이려에 있었는데 평소 한신과 잘 지냈다. 항왕이 죽은 후 도망하여 한신에게 돌아갔다. 한왕이 종리매를 원망하였는데 그가 초에 있다는 것을 듣고 초가 종리매를 잡을 것을 명령하였다. 한신이 처믐 나라에 갔을 때 현읍을 다니면서 군대를 나열하고 나고 들었다. 한 6년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 초왕 한신이 배반하다고 알렸다. 고제가 진평의 계책으로 천자가 순수하니 제후를 모이게 하였다. 남쪽에 운몽이 있는데 사자를 내어 제후들을 진에 모이도록 알리면서 “내가 장차 운몽에서 놀고자 한다.”했으나 실제로는 한신을 습격하고자 한 것으로 한신이 알지 못하였다. 고조가 또한 초에 이르자 한신이 군대를 내어 배반하고자 하였으나 스스로 죄가 없음을 헤아리고는 황제를 뵙고자 하였으나 사로잡힐 것을 두려워하였다. 어떤 사람이 한신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종리매의 목을 베어 임금을 뵈시면 황제가 반드시 기뻐하여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했다. 한신이 종리매를 만나 일을 헤아리니 종리매가 말하기를 “한이 초를 쳐서 취하지 못하였던 까닭은 제가 공이 있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를 잡아서 스스로 한에 아첨하고자 한다면 내가 오늘 죽을 것이나 공이 또한 즉시 망할 것입니다.” 하고는 이에 한신을 욕하여 말하기를 “공은 장자가 아니다!”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렀다. 한신이 그 머리를 가지고 진에서 고조를 뵈었다. 황제가 무사로 하여금 한신을 묶어 뒷 수레에 태웠다. 한신이 말하기를 “과연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좋은 개는 삶고, 높이 잇는 새가 다하면 좋은 활을 감추고, 적국을 깨트리면 도모하던 신하는 망한다.’ 하였는데 천하가 이미 평정되니 내가 진실로 삶김을 당하는구나!” 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공이 배반하다고 알렸다.” 했다. 마침내 한신을 형틀에 묶었다. 낙양에 이르러 한신의 죄를 용서하고 회음후로 삼았다.
[一] 集解徐廣曰:「東海朐縣有伊廬鄉。」駰案:韋昭曰「今中廬縣」。 索隱徐注出司馬彪郡國志。 正義括地志云:「中廬在義清縣北二十里,本春秋時廬戎之國也,秦謂之伊廬,漢為中廬縣。項羽之將鍾離眛冢在。」韋昭及括地志云皆說之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동해 구현에 이려현이 있다.”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위소가 말하기를 “지금의 중려현이다.” 했다. 【索隱】 서광의 주석은 사마표의 『군국지』에 나온다. 【正義】 『괄지지』에 중려는 의청현 북쪽 20리에 있다. 본래 춘추시대 여융의 나라였는데 진나라가 이려라 불렀고, 한나라가 중려현이라 하였다. 항우의 장군 종리매의 무덤이 있다.“ 했다. 귀소와 『괄지지』에 말한 것이 모두 그것을 말한 것이다.
[二] 集解張晏曰:「狡猶猾。」 索隱郊兔死。郊音狡。狡,猾也。吳越春秋作「郊兔」,亦通。漢書作「狡兔」。戰國策曰「東郭逡,海內狡兔也」。
[二]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狡’는 ‘猾’과 같다.” 했다. 【索隱】 ‘郊兔死’의 ‘郊’의 음은 ‘狡’이다. ‘狡’는 ‘猾’이다. 『오월춘추』에는 ‘郊兎’라 썼는데 또한 통한다. 『한서』에는 ‘狡兔’라 썼고, 『전국책』에는 ‘東郭逡,海內狡兔也(아주 빠른 토끼를 해내에서 狡兔라 한다.’ 했다.
信知漢王畏惡其能,常稱病不朝從。信由此日夜怨望,居常鞅鞅,羞與絳、灌等列。信嘗過樊將軍噲,噲跪拜送迎,言稱臣,曰:「大王乃肯臨臣!」信出門,笑曰:「生乃與噲等為伍!」上常從容與信言諸將能不,各有差。上問曰:「如我能將幾何?」信曰:「陛下不過能將十萬。」上曰:「於君何如?」曰:「臣多多而益善耳。」上笑曰:「多多益善,何為為我禽?」信曰:「陛下不能將兵,而善將將,此乃言之所以為陛下禽也。且陛下所謂天授,非人力也。」
한신은 한왕이 그 능력을 두려워하고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항산 병을 핑계로 조회하고 따르지 않았다. 한신이 이로 말미암아 낮밤으로 원망하여 평소에 늘 마음에 즐겁지 않았으며, 강후와 관영 등과 같은 반열임을 부끄럽게 여겼다. 한신이 일찍이 번쾌 장군을 지나는데 번쾌가 무릎을 꿇고 절하며 보내고 맞으며 신을 칭하여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곧 즐겨 신을 마주대했습니다!” 했다. 한신이 문을 나와 웃으며 말하기를 “살아서는 곧 번쾌 등과 함께 같은 대열이 되었구나!” 했다. 황제가 평소 조용히 한신과 함께 여러 장군의 능력이 있고, 없음이 각기 차가 있다고 말하다가 황제가 묻기를 “나 같은 경우에 얼마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했다. 한신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능력이 10만을 거느리는데 불과합니다.” 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그대는 어떠한가?” 하니 한신이 말하기를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 했다. 황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면서 어찌하여 나에게 사로잡혔는가?” 했다. 한신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병졸을 잘 거느리지 못하지만 장군을 잘 거느립니다. 이는 곧 폐하께 사로잡힌 까닭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폐하께서는 이른 바 하늘이 준 것이고,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했다.
陳豨拜為鉅鹿守,[一]辭於淮陰侯。淮陰侯挈其手,辟左右與之步於庭,仰天歎曰:「子可與言乎?欲與子有言也。」豨曰:「唯將軍令之。」淮陰侯曰:「公之所居,天下精兵處也;而公,陛下之信幸臣也。人言公之畔,陛下必不信;再至,陛下乃疑矣;三至,必怒而自將。吾為公從中起,天下可圖也。」陳豨素知其能也,信之,曰:「謹奉教!」漢十年,陳豨果反。
진희가 거록의 지방관이 되어 회음후에게 하직 인사하였다. 회음후가 그 손을 끌고 좌우를 물리치고 함께 뜰을 걸으며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나와 말할 수 있는가? 그대와 말을 나누고자 한다.” 했다. 진희가 말하기를 “장군이 명하실 뿐입니다.” 했다. 회음후가 말하기를 “공이 있는 곳은 천하의 정예 병사가 있는 곳이고. 공은 폐하의 심인과 사랑을 받는 신하입니다. 사람들이 공의 배반을 말하더라도 페하께서는 반드시 믿지 않고, 두 번 이르면 폐하께서 이에 의심하고, 세 번 이르면 반드시 노하여 스스로 군대를 거느릴 것입니다. 내가 공을 위하여 중도에 따라 일어난다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진희가 평소에 그 능력을 알고 그를 믿었으므로 말하기를 “삼가 가르침을 받들 것입니다!” 했다. 한 10년 진희가 과연 배반하였다.
上自將而往,信病不從。陰使人至豨所,曰:「弟舉兵,吾從此助公。」信乃謀與家臣夜詐詔赦諸官徒奴,欲發以襲呂后、太子。部署已定,待豨報。其舍人[二]得罪於信,信囚,欲殺之。舍人弟上變,告信欲反狀於呂后。呂后欲召,恐其黨不就,乃與蕭相國謀,詐令人從上所來,言豨已得死,列侯群臣皆賀。相國紿信曰:「雖疾,彊入賀。」信入,呂后使武士縛信,斬之長樂鍾室。[三]信方斬,曰:「吾悔不用蒯通之計,乃為兒女子所詐,豈非天哉!」遂夷信三族。
황제가 스스로 거느리고 갔는데 한신은 병이 있다 하여 따르지 않았다. 몰래 사람을 시켜 진희가 있는 곳에 이르러 말하기를 “동생이 군대를 일으키면 나가 이를 따라 공을 도울 것이다.” 했다. 한신이 곧 가신과 모의하고 밤에 거짓 조서로 관의 죄수와 노비를 풀어주고 동원하여 여후와 태자를 습격하려 하였다. 부서가 이미 정해지고 진희의 보고를 기다렸다. 그 사인이 한신에게 죄를 지어 한신이 가두고 죽이려 하였다. 사인의 동생이 위에 변란을 알리면서 여후에게 한신이 배반하려는 상황을 말하였다. 여후가 부르고자 하나 그 당이 나아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소상국(소하)과 모의하여 사람을 시켜 거짓으로 황제로부터 온 것으로 하여 진희가 이미 죽었으니 제후와 여러 신하들은 축하하라고 했다. 상국이 한신을 속여 말하기를 “비록 병이 있으나 억지로라도 들어와 축하하라.”고 했다. 한신이 들어가니 여후가 무사를 시켜 한신을 묶고, 장락종실에서 목을 베어 죽였다. 한신을 막 머리를 베려는데 말하기를 “내가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곧 아녀자에게 속임을 당하였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했다. 마침내 한신의 삼족을 죽였다.
[一] 集解徐廣曰:「表云為趙相國,將兵守代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표」에 ‘조의 상국이 되어 군댈르 거느리고 대를 지켰다.” 했다.
[二] 索隱按:晉灼曰,楚漢春秋云謝公也。姚氏案功臣表云慎陽侯樂說,淮陰舍人,告信反。未知孰是。」
[二] 【索隱】 진작이 말하기를 “『초한춘추』에 ‘謝公’이라” 했다. 요씨의 『공신표』를 살펴보니 “신양후 악설에 회음 사인이 한신의 배반을 알렸다고 하는데 누가 옳은지 알지 못하겠다.” 했다.
[三] 正義長樂宮懸鍾之室。
[三] 【正義】 장락궁의 종을 걸어놓는 방이다.
高祖已從豨軍來,至,見信死,且喜且憐之,問:「信死亦何言?」呂后曰:「信言恨不用蒯通計。」高祖曰:「是齊辯士也。」乃詔齊捕蒯通。蒯通至,上曰:「若教淮陰侯反乎?」對曰:「然,臣固教之。豎子不用臣之策,故令自夷於此。如彼豎子用臣之計,陛下安得而夷之乎!」
고조가 진희의 군으로부터 와서 이르러 한신이 죽은 것을 보고 또한 기뻐하고, 또한 불쌍하게 여겨 묻기를 “한신이 죽으면서 또한 무슨 말을 하였는가?” 하니 여후가 말하기를 “한신이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을 한한다.” 했습니다. 고조가 말하기를 “이는 제의 변사이다.” 하고는 이에 조서로 제의 괴통을 잡으라 하였다. 괴통이 이르자 황제가 말하기를 “네가 회음후에게 배반하게 하였는가?” 하자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신이 진실로 그를 가르쳤습니다. 못난 사람이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여기에서 죽었습니다. 만약 저 못난 사람이 신의 계책을 썼더라면 폐하께서 어찌 그를 해칠 수 있었겠는가!” 했다.
上怒曰:「亨之。」通曰:「嗟乎,冤哉亨也!」上曰:「若教韓信反,何冤?」對曰:「秦之綱絕而維弛,山東大擾,異姓並起,英俊烏集。秦失其鹿,天下共逐之,[一]於是高材疾足者先得焉。蹠之狗吠堯,堯非不仁,狗因吠非其主。當是時,臣唯獨知韓信,非知陛下也。且天下銳精持鋒欲為陛下所為者甚眾,顧力不能耳。又可盡亨之邪?」高帝曰:「置之。」乃釋通之罪。
황제가 노하여 말하기를 “그를 삶으라.”하니 괴통이 말하기를 “아 원통하다 삶아지다니!” 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네가 한신으로 하여금 모반하게 하였는데 무엇이 원통한가?”하니 대답하기를 “진의 벼리가 끊어지고 벼리가 느슨해지니(기강이 무너지니) 산동이 크게 소란스러워지면서 성이 다른 이가 함께 일어나고 영준한 이가 까마귀 떼처럼 모였습니다. 진나라가 그 사슴을 잃으니 천하가 그를 쫓아내었습니다. 이에 높은 재주와 빠른 발을 가진 자가 먼저 여기를 얻었습니다. 도척의 개가 요를 보고 짖은 것은 요가 어질지 않아서가 아니라 개가 그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짖은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신이 오직 홀로 한신을 알았을 뿐 페하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천하의 날카롭고 훌륭한 이들이 칼날을 잡고 폐하가 했던 것을 하려는 자가 매우 많았으나 다만 힘이 부족할 뿐이었습니다. 또한 모두 삶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고조가 말하기를 “그를 놓아주라.”하고는 곧 괴통의 죄를 풀어주었다.
[一] 集解張晏曰:「以鹿喻帝位也。」
[一]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사슴으로써 왕제의 자리를 비유하였다.” 했다.
太史公曰:吾如淮陰,淮陰人為余言,韓信雖為布衣時,其志與眾異。其母死,貧無以葬,然乃行營高敞地,令其旁可置萬家。余視其母冢,良然。假令韓信學道謙讓,不伐己功,不矜其能,則庶幾哉,於漢家勳可以比周、召、太公之徒,後世血食矣。不務出此,而天下已集,乃謀畔逆,夷滅宗族,不亦宜乎!
태사공이 말하기를 “내가 회음에 갔는데 회음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한신이 비록 포의를 입고 있을 때 그 뜻이 무리들과 달랐다. 그 어미가 죽고 가난하여 장례하지 못하였으나 곧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지세가 높고 시원한 땅에 두고 그 옆에는 만가를 둘 수 있었다. 내가 그 어미의 무덤을 보니 매우 그러하였다. 가령 한신이 도를 배우고 겸양하여 자지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그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곧 한에 대한 공훈이 주, 소, 태공의 무리에 가까워 후세가 혈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힘씀이 여기서 나오지 않고 천하가 이미 모였는데 모반하여 거스르니 종족을 해치고 없애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했다.
【索隱述贊】 君臣一體,自古所難。相國深薦,策拜登壇。沈沙決水,拔幟傳餐。與漢漢重,歸楚楚安。三分不議,偽遊可歎。
【索隱述贊】 임금과 신하가 한 몸이 되는 것은 예로부터 어려운 것이다. 상국의 깊은 추천받아 계책으로 제수되어 단에 올랐다. 모래를 가라앉히고 물을 트고, 깃발 뽑은 후 밥 먹었다. 한과 함께하니 한이 무거워졌고, 초에 돌아가니 초가 편안해졌다. 셋으로 나눔을 의논하지 않고, 거짓으로 노닐었으니 탄식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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