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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102 장석지풍당열전 제42

by 최인표 2019. 4. 8.

史記卷一百二

  張釋之馮唐列傳第四十二

 

張廷尉釋之者陽人也[]字季有兄仲同居以訾為騎郎[]事孝文帝十歲不得調無所知名釋之曰:「久宦減仲之產不遂。」欲自免歸中郎將袁盎知其賢惜其去乃請徙釋之補謁者[]釋之既朝畢因前言便宜事文帝曰:「卑之毋甚高論令今可施行也。」[]於是釋之言秦漢之閒事秦所以失而漢所以興者久之文帝稱善乃拜釋之為謁者僕射

정위 장석지는 도양 사람으로 자는 계이다. 형 장중과 같이 살았다. 재물로 기랑이 되어 효문제를 섬기기를 10여년을 하였으나 뽑히지 못하여 이름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장석지가 말하기를 오래 벼슬하면서 장중의 재산을 줄이고도 이루지 못하였다.”하고는 스스로 면직하고 돌아가려 하였다. 중랑장 원앙이 그 현명함을 알고 그가 떠남을 아까워하여 이에 장석지를 옮겨 알자에 보임할 것을 청하였다. 장석지가 이미 조회를 마치고 앞에 나아가 편하게 하고, 정사를 마땅하게 하는 것을 말하였다. 문제가 말하기를 낮추고, 매우 높은 논의를 말하지 말고 지금 시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하라.”했다. 이에 장석지가 진나라와 한나라 사이의 일을 말하면서 진나라가 잃은 까닭과 한나라가 일어난 까닭을 오래동안 말하였다. 문제가 좋다 칭찬하고 장석지를 알자복야로 삼았다.


[] 索隱韋昭堵音赭又音如字地名屬南陽正義應劭曰:「哀帝改為順陽水東南入蔡。」括地志云:「順陽故城在鄧州穰縣西三十里楚之郇邑也及蘇秦傳云楚北有郇陽』,並謂此也。」

[] 索隱위소가 “‘의 음은 이고, 또한 글자와 같으며, 지명으로 남양에 속한다.” 했다. 正義응소가 말하기를 애제가 고쳐 순양이라 하였는데 물이 동남쪽으로 채에 들어간다.” 했다. 괄지지순양 옛 성이 등주 양현 서쪽 30리에 있는데 초의 순읍이다. 소진전에 초의 북쪽에 순양이 있다.”하니 모두 이것을 말한다.


[] 集解蘇林曰:「顧錢若出穀也。」如淳曰:「漢儀注訾五百萬得為常侍郎。」 索隱訾音子移反字苑云積財也」。

[] 集解소림이 말하기를 돈을 내거나 곡식을 내는 것이다.” 했다. 여순이 말하기를 한의주에 5백만을 내면 상시랑이 될 수 있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다. 자원“‘는 재물을 쌓는 것이다.” 했다.

 

[] 正義百官表云謁者掌賓讚受事員十七人秩比六百石

[] 正義】 「백관표알자는 손님을 맞는 일과 황제의 명을 받드는 일을 주관하며 정원은 17명이며, 품급은 6백석이다.” 했다.


[] 索隱案下也欲令且卑下其志無甚高談論但令依時事無說古遠也

[] 索隱는 낮춤이다. 황제의 령으로 그 뜻을 낮추어 매우 높은 수준의 담론을 하지 말고 단지 당시의 일에 의지하게 하여 오래되고 멀리 있는 것을 말하지 말라 한 것이다.


釋之從行登虎圈[]上問上林尉[]諸禽獸簿十餘問尉左右視盡不能對虎圈嗇夫[]從旁代尉對上所問禽獸簿甚悉欲以觀其能口對響應無窮者文帝曰:「吏不當若是邪尉無賴!」[]乃詔釋之拜嗇夫為上林令釋之久之前曰:「陛下以絳侯周勃何如人也?」上曰:「長者也。」又復問:「東陽侯張相如何如人也?」上復曰:「長者。」

장석지가 따라 갔다가 호권에 올랐다. 문제가 상림원의 위에게 여러 새와 짐승의 장부를 물으며 10여 가지를 물었는데 상림원 위가 좌우를 바라보기만 하고, 모두 잘 대답하지 못하였다. 호권의 색부가 곁에서 따르다 상림원 위를 대신하여 문제가 물은 새와 짐승의 장부에 대한 물음에 매우 자세하게 대답하였는데 말로 응대함이 메아리가 응하여 다함이 없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았다. 문제가 말하기를 관리가 마땅히 이 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상림원 위를 믿을 수 없구나!” 하고는 장석지에게 조칙을 내려 색부를 제수하여 상림원 령으로 삼으라 했다. 장석지가 오래 후에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강후 주발을 어떤 사람이라 여깁니까?”하니 문제가 말하기를 장자이다.” 했다. 또 다시 묻기를 동양후 장상은 어떤 사람이라 여깁니까?” 하니 문제가 다시 말하기를 장자이다.” 했다.


釋之曰:「夫絳侯東陽侯稱為長者此兩人言事曾不能出口豈斅此嗇夫諜諜[]利口捷給哉且秦以任刀筆之吏吏爭以亟疾苛察相高然其敝徒文具耳[]無惻隱之實以故不聞其過陵遲而至於二世天下土崩今陛下以嗇夫口辯而超遷之臣恐天下隨風靡靡爭為口辯而無其實且下之化上疾於景響舉錯不可不審也。」文帝曰:「。」乃止不拜嗇夫

장석지가 말하기를 저 강후와 동양후를 칭찬하여 장자라 하시면서 이 두 사람은 정사를 말할 때 일찍이 입에서 잘 나오지 않았는데 어찌 이 색부의 재잘거리는 말재주를 배우라 하시는지요! 또한 진나라가 공문을 대나무(죽간)에 새기는 것으로 관리를 임용하였기 때문에 관리들이 성급하고 가혹하게 살피는 것으로 서로 높음을 다투었으나 공연히 문장에 갖추어졌을 뿐 그 불쌍하게 여기는 실제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허물을 듣지 않아 처음은 성대하였으나 점차 쇠퇴하여 2세에 이르러서는 천하의 땅이 무너졌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색부가 말을 잘 한다하여 뛰어넘어 승진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신은 천하가 바람을 따라 순종하여 말을 자하는 것을 다투고 그 실제가 없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또한 아래가 위를 따라 변화하는 것은 그림자와 메아리보다 빠르니 천거하고 두는 것(관리의 인사는)을 자세하게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했다. 문제가 말하기를 좋다.”하고는 이에 그치고 색부를 제수하지 않았다.


[] 正義求遠反

[] 正義이다.

 

[] 索隱漢書表上林有八丞十二尉百官志尉秩三百石

[] 索隱】 『한서』 「상림원에는 8명의 승과 12명의 위가 있다.” 했다. 백관지위의 녹은 300석이다.” 했다.

 

[] 正義掌虎圈百官表有鄉嗇夫此其類也

[] 正義호원을 주관한다. 백관표에 향색부가 있는데 이는 그런 종류이다.

 

[] 集解張晏曰:「才無可恃。」

[]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재주를 믿을 만하지 않다.” 했다.

 

[] 集解晉灼曰:「音牒。」 索隱音牒漢書作喋喋」,口多言

[] 集解진작이 말하기를 음은 이다.” 했다. 한서喋喋이라 썼는데 입에 말이 많음이다.

 

[] 索隱案謂空具其文而無其實也

[] 索隱살펴보니 공연히 그 문장을 갖추었으되 그 실제가 없다는 말이다.

 

上就車召釋之參乘徐行問釋之秦之敝具以質言[]至宮上拜釋之為公車令

문제가 수레를 타면서 장석지를 불러 함께 타고 천천히 가면서 장석지에게 진나라의 피폐해짐을 물었다. 장석지가 진실한 사실을 들어 모두 말하였다. 궁궐이 이르러 문제가 장석지를 공거령으로 삼았다.

 

[] 集解如淳曰:「誠也。」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은 참으로(진실로)이다.” 했다.

 

頃之太子與梁王共車入朝不下司馬門[]於是釋之追止太子梁王無得入殿門遂劾不下公門不敬奏之薄太后聞之文帝免冠謝曰:「教兒子不謹。」薄太后乃使使承詔赦太子梁王然后得入文帝由是奇釋之拜為中大夫

얼마 후 태자와 양왕이 함께 수레를 타고 조정에 들어가면서 사마문에서 수레를 내리지 않자 장석지가 태자와 양왕을 쫒아가 저지하여 전각의 문을 들어갈 수 없었다. 드디어 수레를 타고 공문에서 내리지 않은 불경죄를 탄핵하여 아뢰었다. 박태후가 그것을 들었으므로 문제가 관을 벗고 사과하며 말하기를 아들을 가르침에 삼가지 못하였다.” 했다. 박태후가 이에 사자를 시켜 조칙을 받들고 태자와 양왕을 용서한 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가 이로 말미암아 장석지를 기이하게 여겨 중대부로 삼았다.


[] 集解如淳曰:「宮衛令諸出入殿門公車司馬門乘軺傳者皆下不如令罰金四兩』。」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궁위령궁궐 문과 公車의 사마문을 출입할 때 수레를 타거나 전하는 자는 모두 내려야하고, 령과 같이하지 않는 자는 벌금이 4냥이다.” 했다.

 

頃之至中郎將從行至霸陵居北臨廁[]是時慎夫人從上指示慎夫人新豐道:「此走邯鄲道也。」[]使慎夫人鼓瑟上自倚瑟而歌[]意慘悽悲懷顧謂群臣曰:「嗟乎以北山石為槨[]用紵絮[]漆其閒[]豈可動哉!」左右皆曰:「。」釋之前進曰:「使其中有可欲者雖錮南山猶有隙[]使其中無可欲者雖無石槨又何戚焉!」文帝稱善其後拜釋之為廷尉

얼마 후 중랑장에 이르렀다. 문제를 따라가 패릉에 이르렀는데 북쪽에 자리하고 높이 솟은 언덕 사이 물가에 있었다. 이 때 신부인이 따랐는데 문제가 신부인에게 신풍 가는 길을 가리켜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한단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하고는 신부인으로 하여금 비파를 연주하게하고 문제가 스스로 비파에 맞추어 노래하였는데 뜻이 마음 아프고 슬프며 시름겨웠다. 여러 신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 북산의 돌로 을 만들고, 모시와 솜 자른 것을 써 늘어놓고, 그 틈을 끈적끈적하게 칠한다면 어찌 움직일 수 있겠는가!” 했다. 측근들이 모두 말하기를 훌륭합니다.” 했다. 장석지가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그 안에 욕심 낼만한 것을 있게 한다면 비록 남산으로 땜질할지라도 오히려 틈이 있을 것이고, 그 안에 욕심낼만한 것이 없다면 비록 석곽이 없어도 또한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했다. 문제가 좋다고 칭찬하였다. 그 후에 장석지를 정위로 삼았다.


[] 集解李奇曰:「霸陵北頭廁近霸水帝登其上以遠望也。」如淳曰:「居高臨垂邊曰廁也。」蘇林曰:「邊側也。」韋昭曰:「高岸夾水為廁也。」 索隱劉氏廁音初吏反李奇曰霸陵北頭廁近霸水」。蘇林曰邊側也」。包愷音側義亦兩通也

[] 集解이기가 말하기를 패릉 북쪽 머리 곁은 패수에 가까운데 황제가 그 위에 올라 멀리 바라본 것이다.” 했다. 여순이 말하기를 높이 세워진 가를 마주하는 것을 이라 한다.” 했다. 소림이 말하기를 “‘은 가장자리이다.”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높은 언덕 사이에 긴 물을 이라 한다.” 했다. 索隱유씨는 “‘의 음이 이다.” 살펴보니 이기는 패릉 북쪽 머리 곁은 패수에 가깝다.”하였고, 소림은 “‘은 가장자리라 했고, 포개는 음이 이라 했는데 뜻이 또한 두 사람과 통한다.

 

[] 集解張晏曰:「慎夫人邯鄲人也。」如淳曰:「走音奏趨也。」 索隱音奏走猶向也

[]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신부인은 한단 사람이다.”했다. 여순이 말하기를 “‘의 음은 이니 달림이다.” 했다. 索隱음은 이다. 살펴보니 는 향함과 같다.

 

[] 集解漢書音義曰:「聲氣依倚瑟也書曰聲依永』。」 索隱倚於綺反謂歌聲合於瑟聲相依倚也

[] 集解】 『한서음의소리의 기운을 비파에 맞추었다.” 했다. 서에 소리를 길게 의지한다.” 했다. 索隱이다. 살펴보니 노래 부르는 소리가 비파 소리에 부합하게 서로 맞추는 것을 말한다.


[] 正義顏師古云:「美石出京師北山今宜州石是。」

[] 正義안사고가 말하기를 좋은 돌이 서울의 북산에서 나는데 지금의 의주석이 이것이다.” 했다.

 

[] 索隱上張呂反下息慮反

[] 索隱위는 이고, 아래는 이다.

 

[] 集解徐廣曰:「一作』。」駰案漢書音義曰斮絮以漆著其閒也」。 索隱斮陳絮漆其閒斮音側略反絮音女居反斮陳絮以漆著其閒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은 한편 이라 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한서음의그 틈에 솜을 잘라 막고 칠하는 것이다.’ ‘의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 集解張晏曰:「鑄也帝北向故云北山』;迴顧南向故云南山』。」 索隱案張晏云鑄也帝北向故云北山』;回顧向南故云南山』」。今案大顏云北山青石肌理密為碑槨至今猶然故秦本紀作阿房或作酈山石槨是也」。故帝欲北山之石為槨取其精牢釋之答言但使薄葬冢中無可貪雖無石槨有何憂焉若使厚殉冢中有物雖并錮南山猶為人所發掘也南山取其高厚之意張晏殊失其旨也

[]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는 쇠를 녹여 부어 만드는 것이다. 황제가 북족을 향하였기 때문에 北山이라 했다. 돌아보아 남쪽을 향하기 때문에 南山이라 한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장안은“‘는 쇠를 녹여 부어 만드는 것이다. 황제가 북족을 향하였기 때문에 北山이라 했다. 돌아보아 남쪽을 향하기 때문에 南山이라 한다.” 했는데 지금 살펴보니 대안이 말하기를 북산의 청석은 피부처럼 치밀하여 비와 곽을 만들 만하여 지금에도 그렇다. 그러므로 진본기아방궁을 짓거나, 여산의 석곽을 만들었다.’ 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북산의 돌로 곽을 만들고자 한 것은 그 정하고 굳음을 취함 것이다. 장석지가 담하여 말한 것은 단지 장례를 간단히 해도(薄葬) 무덤 안에 탐할 만한 것이 없으면 비록 석곽이 없어도 무엇을 근심할 것이 있겠는가? 만약 장례를 잘 하고(厚葬), 순장하여 무덤 안에 물건이 있으면 비록 남산을 녹여 만들어도 오히려 사람들에게 파헤쳐질 것이다. 한 것이다. ‘南山이라 말한 것은 그 높고, 두터움의 뜻을 취하한 것인데 장안이 다른 것인가 하여 그 뜻을 잃었다.

 

頃之上行出中渭橋[]有一人從穚下走出乘輿馬驚於是使騎捕屬之廷尉釋之治問:「縣人來[]聞蹕匿橋下久之以為行已過即出見乘輿車騎即走耳。」廷尉秦當一人犯蹕當罰金[]文帝怒曰:「此人親驚吾馬吾馬賴柔和令他馬固不敗傷我乎而廷尉乃當之罰金!」釋之曰:「法者天子所與天下公共[]今法如此而更重之是法不信於民也且方其時上使立誅之則已今既下廷尉廷尉天下之平也一傾而天下用法皆為輕重民安所措其手足唯陛下察之。」良久上曰:「廷尉當是也。」

얼마 후 문제가 행차를 나서 위교를 지나던 중 한 사람이 위교 아래로부터 달려 나오니 수레를 끄는 말이 놀랐다. 이에 말탄 이로 하여금 잡게 하여 정위에게 맡겼다. 장석지가 다스려 물으니 말하기를 현의 사람으로 오는데 벽제소리를 듣고 다리 아래에 숨었습니다. 오래되어 행차가 이미 지났다 여기고 곧 나왔으나 수레와 기병을 보고, 곧 달아났을 뿐입니다.” 했다. 정위가 담당하여 아뢰기를 한 사람이 벽제를 범하였는데 벌금에 해당합니다.” 하니 문제가 노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직접 내 말을 놀라게 하였다. 내 말이 부드럽고 순했기에 버틴 것이지 다른 말이었다면 진실로 나를 무너뜨리고 상하게 하지 않았겠는가?” 했다. 장석지가 말하기를 법은 천자가 천하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지금 법이 이 같은데도 고쳐서 무겁게 한다면 이 법을 백성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 당시에 문제께서 세워 그를 베게 하였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지금 이미 정위에게 내렸으니 정위는 천하에 공평하게 해야 하고,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천하에 법을 적용하는 이가 가볍게 하기도 하고, 중하게 하기도 할 것이니 백성들이 어디에 그 손발을 둘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살펴야 합니다.” 했다. 오래 후에 문제가 말하기를 정위가 마땅하고 옳다.” 했다.

 

[] 集解張晏曰:「在渭橋中路。」瓚曰:「中渭橋兩岸之中。」 索隱張晏臣瓚之說皆非也案今渭橋有三所一所在城西北咸陽路曰西渭橋一所在東北高陵道曰東渭橋其中渭橋在古城之北也

[]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위교 가운데 길이 있다.” 했다. 신찬은 “‘은 위교는 두 언덕의 가운데라 했다. 索隱장안과 신찬의 말은 모두 잘못이다. 살펴보니 지금 위교는 3군데 있다. 하나는 성 서북쪽 함양로에 있고, 서위교는 동북쪽 고릉도에 있고, 동위교는 그 가운데 위교로 옛 성의 북쪽에 있다.


[] 集解如淳曰:「長安縣人。」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장안현 사람이다.” 했다.

 

[] 集解如淳曰:「乙令蹕先至而犯者罰金四兩』。止行人。」 索隱案崔浩云當謂處其罪也」。百官志云廷尉平刑罰奏當所應郡國讞疑罪皆處當以報之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을령벽제가 먼저 이르는데 범한자는 벌금이 4냥이다.’했다. ‘은 가는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최호는 “‘은 그 죄에 처하는 것을 말한다.” 했다. 살펴보니 백관지정위가 형벌을 저울질하여 마땅히 응당한 바를 아뢴다. 군국은 죄과가 의심스러우면 평의하여 모두 마땅한 처벌을 보고한다.” 했다.


[] 索隱小顏云:「公謂不私也。」

[] 索隱소안은 “‘은 사사롭지 않음을 말한다.” 했다.

 

其後有人盜高廟坐前玉環捕得文帝怒下廷尉治釋之案律盜宗廟服御物者為奏奏當棄市上大怒曰:「人之無道乃盜先帝廟器吾屬廷尉者欲致之族而君以法奏之[]非吾所以共承宗廟意也。」釋之免冠頓首謝曰:「法如是足也[]且罪等[]然以逆順為差今盜宗廟器而族之有如萬分之一假令愚民取長陵一抔[]陛下何以加其法乎?」久之文帝與太后言之乃許廷尉當是時中尉條侯周亞夫與梁相山都侯王恬[]見釋之持議平乃結為親友張廷尉由此天下稱之

그 후 어떤 사람이 고조의 사당 신주 앞의 옥가락지를 훔쳤으므로 잡았는데 문제가 노하여 정위에게 내려 다스리게 하였다. 장석지가 종묘의 옷과 물건을 훔친 자를 법률을 살펴 아뢰면서 기시에 해당한다고 아뢰었다. 문제가 크게 노하여 사람이 무도하여 곧 선제의 사당 기물을 훔쳤기 때문에 내가 정위레게 맡겨 일족을 멸하고자 하였는데 그대가 법으로써 아뢰는 것은 내가 종묘를 함께 받들려는 뜻이 아니다.” 했다. 장석지가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하며 말하기를 법은 이같이 하면 충분합니다. 또한 죄는 같으나 거스르고, 순한 것으로 차등이 있습니다. 지금 종묘의 기물을 훔친 것으로 일족을 멸하면 만약 만분의 일이라도 가령 어리석은 백성들이 장릉의 한 웅큼 흙을 취하였을 때 폐하께서는 어떻게 법을 더하여 적용하시겠습니까?” 했다. 오래 동안 문제가 태후와 말을 나눈 후 정위가 마당하다 허락하였다. 이 때 중위 조후 주아부와 양의 재상 산도후 왕렴개가 장석지의 지론이 공평한 것을 보고 이에 맺어 친우가 되었다. 장정위가 이로 말미암아 천하의 칭찬을 받았다.

 

[] 索隱案法者依律以斷也

[] 索隱살펴보니 법은 율에 의거하여 결단한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은 한편으로 라 쓴다.” 했다.

 

[] 集解如淳曰:「俱死罪也盜玉環不若盜長陵土之逆也。」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모두 죽일 죄인데 옥가락지를 훔친 것은 장릉의 흙을 훔친 거스름과 같지 않다.” 했다.

 

[] 解張晏曰:「不欲指言故以取土譬也。」 索隱抔音步侯反禮運云汙尊而抔飲」,鄭氏云手掬之字從手」。字本或作」,言一勺一杯兩音並通又音普迴反塼之未燒之名也張晏云不欲指言故以取土譬蓋不欲言盜開長陵及說傷迫近先帝故也

[] 장안이 말하기를 가리켜 말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흙을 취하는 것으로써 비유한 것이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다. 살펴보니 예운웅덩이를 술동이 삼아 움켜 마신다.” 했다. 정씨는 “‘는 손으로 그것을 움키는 것으로 글자는 를 따른다.”했다. 자본에는 혹은 라 섰는데 一勺’, ‘一杯를 말함이니 두 음이 모두 통한다. 또 음은 이다. ‘는 벽돌을 굽지 않았을 때의 이름이다. 장안이 말한 가리켜 말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흙을 취하는 것으로서 비유했다.”는 것은 대개 장릉을 도굴한 것이 선제를 해침에 미침을 말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集解徐廣曰:「一作』。漢書作』。啟者景帝諱也故或為』。」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이라 쓴다.” 했다. 한서에는 “‘라 썼다.” ‘는 경제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혹 라 했을 것이다.

 

後文帝崩景帝立釋之恐[]稱病欲免去懼大誅至欲見謝則未知何如用王生計卒見謝景帝不過也

문제가 죽은 후 경제가 즉위하니 장석지가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하였다. 관직을 면하고 떠나려 하나 크게 죽음이 이를 것을 두려워하여 뵙고 사죄하고자 하였으나 곧 어떻게 할지를 알지 못하였다. 왕생의 계책을 써서 마침내 뵙고 사죄하였는데 경제가 허물하지 않았다.


[] 索隱謂帝為太子時與梁王入朝不下司馬門釋之曾劾故恐也

[] 索隱경제가 태자였을 때 양왕과 조정에 들어가려다 사마문에서 말에 내리지 않았으므로 장석지가 일찍이 탄핵하였기 때문에 두려워한 한 것을 말한 것이다.

 

王生善為黃老言處士也嘗召居廷中三公九卿盡會立王生老人吾襪」,[]顧謂張廷尉:「為我結襪!」[]釋之跪而結之既已人或謂王生曰:「獨柰何廷辱張廷尉使跪結襪?」王生曰:「吾老且賤自度終無益於張廷尉張廷尉方今天下名臣吾故聊辱廷尉使跪結襪欲以重之。」諸公聞之賢王生而重張廷尉

왕생은 황노의 말을 잘하는 처사였다. 일찍이 불려 조정안에 있었는데 三公九卿이 모두 모여 섰는데 왕생 노인이 말하기를 내 버선이 풀어졌구나. 하고 돌아보며 장정위에게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버선을 매시오!” 하니 장석지가 무릎을 꿇고 그것을 맺다. 마치자 사람들이 왕생에게 말하기를 유독 어찌하여 조정에서 장석지를 욕보여 무릎을 꿇고 버선을 매게 하였는가?” 했다. 왕생이 말하기를 내가 늙고 또한 천하여 스스로 헤아리니 끝내 장 정위에게 이익을 줄 수 없었다. 장 정위는 지금 천하의 이름 있는 신하로 내가 그렇기 때문에 장 정위를 욕보여 무릎을 꿇고 버선을 매게 하여 그를 중히 하고자 한 것이다.” 했다. 제공들이 그것을 듣고 왕생을 어질다하고, 장 정위를 중하게 여겼다.


[] 正義上萬越反下閑買反

[] 正義위는 이고, 아래는 ;.

 

[] 索隱結音如字又音計

[] 索隱의 음은 글자와 같다. 또 음은 이다.

 

張廷尉事景帝歲餘為淮南王相猶尚以前過也久之釋之卒其子曰張摯字長公官至大夫以不能取容當世故終身不仕[]

장 정위가 경제를 섬긴지 수 년여에 회남왕의 재상이 되었는데 아직도 이전의 허물 때문이었다. 오래되어 장석지가 죽었다. 그 아들은 장지라 하는데 자는 장공이고, 벼슬이 대부에 이르렀으나 관직을 면하였다. 당시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죽을 때가지 벼슬하지 않았다.

 

[] 索隱謂性公直不能曲屈見容於當世故至免官不仕也

[] 索隱성품이 공정하고 정직하여 굽히지 않아 당시의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관직을 면하고 벼슬하지 않음에 이른 것이다.

 

馮唐其大父趙人父徙代漢興徙安陵唐以孝著為中郎署長[]事文帝文帝輦過[]問唐曰:「父老何自為郎[]家安在?」唐具以實對文帝曰:「吾居代時吾尚食監高袪數為我言趙將李齊之賢戰於鉅鹿下今吾每飯意未嘗不在鉅鹿也[]父知之乎?」唐對曰:「尚不如廉頗李牧之為將也。」上曰:「何以?」唐曰:「臣大父在趙時為官[][]善李牧臣父故為代相善趙將李齊知其為人也。」上既聞廉頗李牧為人[]而搏髀:「嗟乎吾獨不得廉頗李牧時為吾將吾豈憂匈奴哉!」唐曰:「主臣[]陛下雖得廉頗李牧弗能用也。」上怒起入禁中良久召唐讓曰:「公柰何眾辱我獨無閒處乎?」唐謝曰:「鄙人不知忌諱。」

풍당은 그 할아버지가 조 사람이다. 아버지가 대 땅으로 옮겼다. 한이 흥기하자 안릉으로 옮겼다. 풍당은 효로써 드러나 중랑서의 장이 되어 문제를 섬겼다. 문제의 가마를 타고 지나면서 풍당에게 묻기를 노인장은 언제 낭이 되었는가? 집은 어디에 있는가?”하니 풍당이 모두 실제대로 대답하였다. 문제가 말하기를 내가 대 땅에 살 때 내가 내 상식감 고거가 여러 번 나를 위하여 조의 장군 이제의 어짊과 거록 아래에서의 싸움에 대하여 말했다. 지금 내가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 일찍이 거록에 있었던 때를 생각하지 않음이 없었다. 노인장은 그를 아는가?” 했다. 풍당이 대답하기를 오히려 염파, 이목의 장군된 것만 못합니다.” 했다. 문제가 어째서인가?” 하니 풍당이 말하기를 신의 할아버지가 조에 있을 때 벼슬하여 장군이 되어 이목과 잘 지냈고, 신의 아버지는 옛날에 대의 재상이 되어 조의 장군 이제와 잘 지내서 그 사람됨을 압니다.” 했다. 문제가 연파와 이제의 사람됨을 듣고 기뻐하면서 넓적다리를 치면서 말하기를 ! 나는 어찌하여 염파, 이목을 얻지 못하는가? 이들을 내 장군으로 삼을 수 있다면 내가 어찌 흉노를 근심하겠는가?” 했다. 풍당이 말하기를 황공합니다! 폐하께서는 비록 염파와 이목을 얻을 지라도 등용할 수 없습니다.” 했다. 문제가 노하여 일어나 궁궐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지나 풍당을 불러 꾸짖으며 말하기를 공은 어찌하여 여러 사람 앞에서 나를 욕보였는데 어찌 조용한 곳이 없었겠는가?” 했다. 풍당이 사죄하며 말하기를 비루한 사람이라 꺼리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했다.

 

[] 集解應劭曰:「此云孝子郎也。」或曰以至孝聞索隱案謂為郎署之長也

[] 集解응소가 말하기를 이는 효자랑을 말한다.”했다. 어떤 이는 지극한 효로써 알려졌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낭서의 장이 되었음을 말한다.


[] 索隱過音戈謂文帝乘輦會過郎署

[] 索隱의 음은 이다. 문제가 가마를 타고 낭서를 지나다 만난 것을 말한다.

 

[] 索隱案崔浩云從也帝詢唐何從為郎」。又小顏云年老矣乃自為郎怪之也」。

[] 索隱살펴보니 최호가 말하기를 “‘는 부터이다. 문제가 풍당이 언제부터 낭이 되었는지를 물은 것이다.” 했다. 또 소안은 나이가 많아 늙어서 낭이 된 것을 괴이하게 여긴 것이다.” 했다.

 

[] 集解張晏曰:「每食念監所說李齊在鉅鹿時。」

[]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매번 밥 먹을 때마다 감이 이제가 거록에 있었을 때를 말한 것을 생각한 것이다.” 했다.


[] 集解徐廣曰:「一云官士將』。」駰案晉灼曰百人為徹行亦皆帥將也」。 索隱注百人為徹行將帥」,案國語百人為徹行行頭皆官師」。賈逵云百人為一隊也官師隊大夫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관사장이라 한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진작이 말하기를 ‘100명이 대오를 이루어 가면 또한 모두 장군이 이끈다.” 했다. 索隱주에 “100명이 대오를 이루어 가면 대오의 머리는 모두 관사이다.” 했다. 가규가 말하기를 “100명이 一隊가 된다. 관사는 대의 대부이다,” 했다.


[] 集解如淳曰:「善也。」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은 좋음이다.” 했다.

 

[] 索隱案樂彥云人臣進對前稱主臣』,猶上書前云昧死』」。志林云馮唐面折萬乘何言不懼」,主臣為驚怖其言益著也又魏武謂陳琳云卿為本初檄何乃言及上祖」,琳謝云主臣」,益明主臣是驚怖也解已見前志也

[] 索隱살펴보니 악언에 말하기를 신하된 자는 나아가 앞을 대할 때 말하기를 主臣이라 한다.” 했다. 글을 올릴 때 앞에 眛死라 하는 것과 같다. 살펴보니 지림풍당이 면전에서 천자를 꺽었으니 어떤 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했다. ‘主臣은 놀라고 두려워하여 그 말을 더욱 드러내는 것이다. 또 위나라 무제가 진림에게 말하기를 경이 맨 처음 격문을 쓰면서 어찌하여 임금의 조상을 언급하였는가.” 하니 임사가 황공합니다.” 하니 主臣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이 더욱 분명하다. 풀이가 이미 앞의 지에 보인다.

 

當是之時匈奴新大入朝那[]殺北地[]都尉卬[]上以胡寇為意乃卒復問唐曰:「公何以知吾不能用廉頗李牧也?」唐對曰:「臣聞上古王者之遣將也跪而推轂曰閫以內者[]寡人制之閫以外者將軍制之軍功爵賞皆決於外歸而奏之此非虛言也臣大父言李牧為趙將居邊軍市之租皆自用饗士[]賞賜決於外不從中擾也委任而責成功故李牧乃得盡其智能遣選車千三百乘[]彀騎萬三千[]百金之士十萬[]是以北逐單于破東胡[]滅澹林[]西抑彊秦南支韓當是之時趙幾霸[一一]其後會趙王遷立其母倡也[一二]王遷立乃用郭開讒卒誅李牧[一三]令顏聚代之[一四]是以兵破士北為秦所禽滅今臣竊聞魏尚為雲中守[一五]其軍市租盡以饗士卒[]私養錢[一六]五日一椎[一七]饗賓客軍吏舍人是以匈奴遠避不近雲中之塞虜曾一入尚率車騎擊之所殺其眾夫士卒盡家人子[一八]起田中從軍安知尺籍伍符[一九]終日力戰斬首捕虜上功莫府[]一言不相應[二一]文吏以法繩其賞不行而吏奉法必用臣愚以為陛下法太明賞太輕罰太重且雲中守魏尚坐上功首虜差六級陛下下之吏削其爵罰作之由此言之陛下雖得廉頗李牧弗能用也[二二]臣誠愚觸忌諱死罪死罪!」文帝說是日令馮唐持節赦魏尚復以為雲中守而拜唐為車騎都尉主中尉及郡國車士[二三]

이러한 때를 당하여 흉노가 새로이 크게 조나에 들어와 북지도위 손앙을 죽였다. 문제가 오랑캐가 침략할 것으로 생각하여 마침내 다시 풍당에게 묻기를 공은 무엇 때문에 내가 염파와 이목을 등용할 수 없다고 여기는가?” 하니 풍당이 대답하기를 신이 들으니 상고시대 왕이 장군을 보낼 때는 꿇어서 수레바퀴통을 밀고, 말하기를 곤 이내는 과인이 그것을 다스리고, 곤 밖은 장군이 다스린다. 군공과 벼슬과 상을 모두 밖에서 결단하고 돌아와 아뢰라. 합니다. 이는 빈 말이 아닙니다. 신의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이목이 조의 장군이 되어 변경에 있으면서 군시의 세금을 모두 스스로 군사를 먹이는 데 사용하고, 상을 내림을 밖에서 결단하여 조정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맡기고 공을 이룸을 책임지웠기 때문에 이목은 그 지혜와 능력을 다할 수 있었고, 수레 천삼백대, 활을 쏘는 기병 삼천, 백금을 상 줄만한 병사 18만을 뽑아 보낼 수 있었으니 이 때문에 북쪽으로 선우를 쫒아내고 동호를 깨트리고, 담림을 없애며 서쪽으로 강한 진을 억제하고, 남으로 한과 위에 대항하였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조는 거의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그 후 조 왕이 천이 즉위하였는데 그 어머니는 광대였습니다. 왕 천이 즉위하자 곽개의 참소를 써서 마침내 이목을 죽이고 안취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군대는 깨트려지고 군사가 달아나 진에게 사로잡혀 멸망당하였습니다. 지금 신이 가만히 들으니 위상이 운중의 태수가 되어 그 군시의 세금을 모두 사졸을 먹이고, 개인적으로 돈을 불려 5일에 한 번 소를 잡아 빈객, 군리, 사인을 먹이니 이 때문에 흉노가 멀리 피하고 운중의 요새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오랑캐가 일찍이 한 번 들어왔을 때 위상이 기마병을 거느리고 그들을 쳐서 그 죽인 자가 많았습니다. 대저 사졸은 모두 남의 집 아들로 밭을 일구다 군대를 따랐으니 어찌 군령과 군공을 기록한 문서와 서로 대오를 유지하는 수칙을 알았겠습니까? 종일토록 머리를 베고 포로를 잡으며 공을 막부에 올릴 때 한마디 말이라도 서로 맞지 않으면 문리가 법으로 그것을 다스렸습니다. 그 상은 행해지지 않았으되 문리가 받드는 법은 반드시 쓰여졌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폐하의 법은 지나치게 밝아 상은 크게 가벼우나 벌은 크게 무겁습니다. 또한 운중의 군수 위상이 공을 보고할 때 오랑캐를 벤 머리수가 6개 차이난다 하여 폐하께서 관리에게 내려 그 작을 깍고, 벌을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말하면 폐하께서는 비록 염파와 이목을 얻을지라도 등용하지 못한다 한 것입니다. 신이 진실로 어리석어 휘를 꺼림에 저촉되었으니 죽을죄입니다. 죽을죄입니다!” 했다. 문제가 기뻐하였다. 이날 풍당으로 하여금 절을 가지고 위상을 용서하여 다시 운중의 군수로 삼고, 풍당을 거기도위로 삼아 중위와 군군의 車士를 주관하게 하였다.


[] 索隱上音朝早也下音乃何反縣名屬安定也正義在原州百泉縣西北十里漢朝那縣是也

[] 集解위의 음은 ’, ‘이다. 아래의 음은 으로 현 이름이니 안정에 속한다. 正義원주 백천현 서북쪽 10리에 있는데 한 조나현이 이것이다.

 

[] 正義北地郡今寧州也

[] 正義북지군이니 지금의 영주이다.

 

[] 索隱案都尉姓孫名卬

[] 索隱살펴보니 도위의 성은 손이요 이름은 앙이다.

 

[] 集解韋昭曰:「此郭門之閫也門中橛曰閫。」 索隱橛音其月反正義閫音苦本反謂門限也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이는 성곽 문의 문지방이다. 문 가운데 문지방을 이라 한다.” 했다. 索隱의 음은 이다. 正義의 음은 이다. 문의 한계를 말한다.

 

[] 索隱案謂軍中立市市有稅稅即租也

[] 索隱살펴보니 군부대 안에 시장을 세우고, 시장에는 세금이 있다. ‘가 곧 이다.

 

[] 索隱案六韜書有選車之法

[] 索隱살펴보니 육도서에 수레를 선발하는 법이 있다.

 

[] 索隱如淳云:「彀音構彀騎張弓之騎也。」

[] 索隱여순이 말하기를 “‘의 음은 이다. ‘彀騎는 활을 당기는 기마병이다.” 했다.

 

[] 集解服虔曰:「良士直百金也。」或曰直百金言重索隱晉灼云:「百金取其貴重也。」服虔曰:「良士直百金也。」劉氏云:「其功可賞百金者。」事見管子及小爾雅

[] 集解복건이 말하기를 좋은 군사는 백금의 가치를 지닌다.” 했고, 어떤 사람은 백금의 가치라 했는데 중하다는 말이다. 索隱진작이 말하기를 백금은 그 귀중함을 취한 것이다.” 했고, 복건은 좋은 군사는 백금의 가치가 있다.” 했고, 유씨는 그 공이 백금을 상으로 줄만하다.” 했다. 일이 관자소아이아에 보인다.

 

[] 索隱案崔浩云烏丸之先也國在匈奴之東故云東胡也」。

[] 索隱살펴보니 최호가 말하기를 오환의 선조인데 나라가 흉노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호라 한 것이다.”했다.


[] 集解徐廣曰:「一作』。」 索隱澹丁甘反一本作檐檻」。

[0]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은 한편으로 이라 쓰기도 한다.” 했다. 索隱이다. 어떤 본에는 첨함이라 썼다.

 

[一一] 索隱幾音祈

[一一] 索隱의 음은 이다.

 

[一二] 索隱按列女傳云邯鄲之倡」。 正義趙幽王母樂家之女也

[一二] 索隱】 「열녀전한단의 광대라 했다. 正義조가 유왕의 어머니로 樂家의 딸이다.

 

[一三] 索隱按開是趙之寵臣戰國策云秦多與開金使為反閒

[一三] 索隱살펴보니 곽개는 조나라의 총신이다. 전국책진나라가 곽개에게 금을 많이 주어 이간하게 하였다.” 했다.


[一四] 索隱聚音似喻反漢書作」。本齊將也。 正義絕庾反

[一四] 索隱음은 이다. 한서라 썼다. 본래 제나라 장군이다. 正義이다.

 

[一五] 集解漢書曰:「槐里人也。」 正義雲中郡故城在勝州榆林縣東北三十里

[一五] 集解】 『한서“‘은 괴리 사람이다.” 했다. 正義운중군의 옛 성은 승주 유림현 동북쪽 30리에 있다.


[一六] 集解服虔曰:「私廩假錢。」 索隱按漢書市肆租稅之入為私奉養」,服虔曰私廩假錢是也或云官所別廩給也

[一六] 集解복건이 말하기를 개인적으로 돈을 빌리는 것이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한서시장의 조세가 들어오면 개인적으로 봉양하였다.” 했는데 복건이 말한 개인적으로 돈을 빌렸다.” 한 것이 이것이다. 혹은 관청이 별도로 녹을 주던 것을 말한다.” 했다.

 

[一七] 索隱椎音直追反擊也

[一七] 索隱의 음은 이니 치는 것이다.

 

[一八] 索隱按謂庶人之家子也

[一八] 索隱서인 가정의 아들을 말한다.

 

[一九] 集解如淳曰:「漢軍法曰吏卒斬首以尺籍書下縣移郡令人故行不行奪勞二歲五符亦什伍之符約節度也。」或曰以尺簡書故曰尺籍也索隱按尺籍者謂書其斬首之功於一尺之板伍符者命軍人伍伍相保不容姦詐故行不行」,案謂故命人行而身不自行奪勞二歲也。「

[一九]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한나라 군법이졸이 적의 머리를 베면 군공을 기록하는 널빤지에 글로 써서 현에 내려주고 군을 옮기며,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고향에 가게하고, 노역 2년을 부과하지 않는다. 하고, 五符는 또한 군대 편성의 부절로 행동 기준을 묶은 것이다.’” 했다. 혹은 척간서를 예전에 척적이라 했다. 한다. 索隱살펴보니 尺籍은 적의 머리를 벤 공을 한 자의 널빤지에 쓰는 것을 말한다. ‘伍符는 군인을 다섯 명씩 편성하고 서로 보증하게 하여 간사함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주에 그러므로 행하지 말 것을 행한다.” 하였는데 살펴보니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행할 것을 명하고 자신이 스스로 행하지 않으면 노역 2년을 징발한다는 말이다. ‘는 같다.

 

[] 索隱按莫訓大也又崔浩云古者出征無常處以幕為府舍故云莫府」。「當為」,古字少耳

[0] 索隱살펴보니 의 훈은 크다 이다. 또 최호는 옛 날에 출정은 정해진 곳이 없어 휘장으로서 집을 삼았기 때문에 莫府라 한 것이다. ‘은 마땅히 으로 써야 하는데 옛 글자가 적었을 뿐이다.


[二一] 索隱音乙陵反謂數不同也

[二一] 索隱음은 으로 수가 같지 않음을 말한다.

 

[二二] 集解班固稱楊子曰孝文帝親詘帝尊以信亞夫之軍曷為不能用頗彼將有激」。

[二二] 集解반고가 말하기를 양자가 말하기를 효문제가 친히 황제의 존엄함을 내치고 주아부의 군대를 믿었으니 어찌 염파와 이목을 등용하지 못하였겠는가? 그가 장차 격발함이 있었을 것이다.’ 했다.”고 한다.


[二三] 集解服虔曰:「車戰之士。」

[二三] 集解보건이 말하기를 수레로 싸우는 군사이다.” 했다.

 

七年景帝立以唐為楚相武帝立求賢良舉馮唐唐時年九十餘不能復為官乃以唐子馮遂為郎遂字王孫亦奇士與余善

7년에 경제가 즉위하여 풍당을 초의 재상으로 삼았다가 면하였다. 무제가 즉위하여 현량을 구할 때 풍당을 천거하였다. 풍당의 당시 나이가 90여세로 다시 관리가 될 수 없었으므로 이에 풍당의 아들 풍수를 낭으로 삼았다. 풍수의 자는 왕손이니 또한 기이한 선비로 나와 잘 지냈다.

 

太史公曰張季之言長者守法不阿意馮公之論將率有味哉有味哉語曰不知其人視其友」。二君之所稱誦可著廊廟書曰不偏不黨王道蕩蕩不黨不偏王道便便」。[]張季馮公近之矣

태사공이 말하기를 장계가 장자를 말한 것은 법을 지킴에 황제의 듯에 아부하지 않는 것이었고, 풍당이 장군의 통솔을 논한 것은 맛이 있다!, 맛이 있다! 속담에 그 사람을 알지 못하면 그 벗을 보라.’ 했으니 두 사람이 칭송을 받는 것은 조정에 드러날만 하다. 서경치우치지 않고 무리 짓지 않으면 왕도가 넓고 커 끝이 없고, 무리짓지 않고 치우지치 않으면 왕도가 편안하고 편안할 것이다.’ 하니 장계와 풍당이 여기에 가까울 것이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으로 쓴다.” 했다.

 

索隱述贊張季未偶見識袁盎太子懼法嗇夫無狀驚馬罰金盜環悟上馮公白首味哉論將因對李齊收功魏尚

索隱述贊장계는 만나지 못하여도 원앙을 보아 알 수 있다. 태자는 법을 겁내고 색부는 형상이 없다. 말을 놀라게 하고 벌금내고, 가락지를 훔쳐 황제를 깨우쳤다. 풍당이 흰머리로 맛스럽게 장군을 논하였다. 이제를 대하여 위상의 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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