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一百
季布欒布列傳第四十
季布者,楚人也。為氣任俠,[一]有名於楚。項籍使將兵,數窘漢王。[二]及項羽滅,高祖購求布千金,敢有舍匿,罪及三族。季布匿濮陽周氏。周氏曰:「漢購將軍急,跡且至臣家,將軍能聽臣,臣敢獻計;即不能,願先自剄。」季布許之。迺髡鉗季布,衣褐衣,置廣柳車中,[三]并與其家僮數十人,之魯朱家所賣之。朱家心知是季布,迺買而置之田。誡其子曰:「田事聽此奴,必與同食。」朱家迺乘軺車[四]之洛陽,見汝陰侯滕公。
계포는 초 사람이다. 기운이 약자를 돕고 강자를 물리치는 정의감이 있어 초에서 이름이 있었다. 항적이 군대를 거느리게 하였는데 여러 번 한왕을 막히게 하였다. 항우가 멸망함에 이르러 고조가 계포에게 천금의 상금을 걸고 찾으면서 감히 버려두어 숨김이 있으면 죄가 3족에 미칠 것이다. 했다. 계포가 복양 주씨에게 숨었는데 주씨가 말하기를 “한이 장군을 다급하게 찾아 자취가 또한 신의 집에 이르고 있으니 장군이 신의 말을 들어준다면 신이 감히 계책을 올리겠습니다. 곧 하지 못한다면 먼저 스스로 목을 찌를 것을 원합니다.” 했다. 계포가 그것을 허락하였다. 이에 계포를 머리를 풀며 칼을 채우고, 베옷을 입히고 광류거 안에 두고, 아울러 그 종 수십 명과 함께 노의 주가에 가서 그를 팔았다. 주가는 마음으로 이가 계포임을 알고도 사서 그를 밭에 두었다. 그 자식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밭의 일은 이 종의 말을 듣고 반드시 함께 밥먹으라.” 했다. 주가가 이에 가볍고 작은 마차를 타고 낙양에 가서 여음후 등공을 만났다.
滕公留朱家飲數日。因謂滕公曰:「季布何大罪,而上求之急也?」滕公曰:「布數為項羽窘上,上怨之,故必欲得之。」朱家曰:「君視季布何如人也?」曰:「賢者也。」朱家曰:「臣各為其主用,季布為項籍用,職耳。項氏臣可盡誅邪?今上始得天下,獨以己之私怨求一人,何示天下之不廣也!且以季布之賢而漢求之急如此,此不北走胡即南走越耳。夫忌壯士以資敵國,此伍子胥所以鞭荊平王之墓也。君何不從容為上言邪?」汝陰侯滕公心知朱家大俠,意季布匿其所,迺許曰:「諾。」待閒,果言如朱家指。上迺赦季布。當是時,諸公皆多季布能摧剛為柔,朱家亦以此名聞當世。季布召見,謝,上拜為郎中。夫忌壯士以資敵國,此伍子胥所以鞭荊平王之墓也。君何不從容為上言邪?」汝陰侯滕公心知朱家大俠,意季布匿其所,迺許曰:「諾。」待閒,果言如朱家指。上迺赦季布。當是時,諸公皆多季布能摧剛為柔,朱家亦以此名聞當世。季布召見,謝,上拜為郎中。
등공이 주가를 머물게 하고 여러 날 술을 마셨다. 등공에게 말하기를 “계포는 어떤 큰 죄를 졌기에 고조가 급하게 찾는 것입니까?” 하니 등공이 말하기를 “계포는 여러 번 항우를 위하여 고조를 어렵게 하였으므로 고조가 그것을 원망하여 반드시 그를 잡고자 하는 것이다.” 했다. 주가가 말하기를 “그대는 계포를 어떤 사람이라 봅니까?” 하니 말하기를 “현명한 자입니다.” 하니 주가가 말하기를 “신하는 각기 그 임금에게 쓰여 지는데 계포도 항적에게 등용되어 일을 맡았을 뿐입니다. 항씨의 신하이면 모두 죽일 수 있습니까? 지금 고조가 처음 천하를 얻었는데 다만 자기의 사사로운 원한으로서 한 사람을 찾는 것이 어찌 천하에 도량이 넓지 않음을 보인단 말입니까! 또한 계포의 현명함으로 한이 급히 찾기를 이 같이 하면 이는 북쪽으로 호에 달아나지 않으면 곧 남쪽으로 월로 달아날 뿐입니다. 대저 장사를 꺼리는 것으로 적국을 이롭게 하는 것은 이는 오자서가 평왕의 무덤에 채찍질하는 격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조용히 고조에게 말을 하지 않습니까?” 했다. 여음후 등공이 마음속으로 주가의 큰 협의를 알아 계포가 그 곳에 숨었을 것으로 생각하여 허락하여 말하기를 “예” 했다. 한가한 틈을 기다려 과연 주가의 뜻과 같이 말하였다. 고조가 이에 계포를 용서하였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여러 공들이 모두 많이 계포가 강한 것을 꺽고 유순해졌다 여겼고, 주가가 또한 이러한 명성이 당세에 들었다. 계포가 불려가 뵙고, 사죄하니 고조가 낭중을 삼았다.
[一] 集解孟康曰:「信交道曰任。」如淳曰:「相與信為任,同是非為俠。所謂『權行州里,力折公侯』者也。」或曰任,氣力也;俠,俜也。索隱任,而禁反。俠音協。如淳曰「相與為任,同是非為俠,權行州里,力折公侯者」,其說為近。俜音普丁反,其義難喻。
[一] 【集解】 맹강이 말하기를 “신의로 도를 교류하는 것을 ‘任’이라 한다.” 여순이 말하기를 “서로 믿는 것을 ‘任’이라 하고, 옳고 그름을 ‘俠’이라 한다. 이른바 ‘권도를 주리에 행하고, 힘으로 공후를 꺽는다는 것이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任’은 기력이고, ‘俠’은 호협함이다.” 했다. 【索隱】 ‘任’은 ‘而’와 ‘禁’의 反이다. ‘俠’의 음은 ‘協’이다. 여순이 말하기를 “서로 더불어 하는 것을 ‘任’이라 하고, 옳고 그름을 함께하는 것을 ‘俠’이라 하고, 권도를 주리에 행하고, 힘써 공후를 꺽은 자이다.” 했다. 그 말이 가깝다. ‘俜’의 음은 ‘普’와 ‘丁’의 反이라 하는데 그 뜻을 비유하기 어렵다.
[二] 集解如淳曰:「窘,困也。」
[二]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窘’은 곤궁함이다.” 했다.
[三] 集解服虔曰:「東郡謂廣轍車為『柳』。」鄧展曰:「皆棺飾也。載以喪車,欲人不知也。」李奇曰:「大牛車也。車上覆為柳。」瓚曰:「茂陵書中有廣柳車,每縣數百乘,是今運轉大車是也。」 索隱案:服虔、臣瓚所據,云東郡謂廣轍車為廣柳車,及茂陵書稱每縣廣柳車數百乘,則凡大車任載運者,通名廣柳車,然則柳為車通名。鄧展所說「柳皆棺飾,載以喪車,欲人不知也」,事義相協,最為通允。故禮曰「設柳翣,為使人勿惡也」。鄭玄注周禮云「柳,聚也,諸飾所聚也」。則是喪車稱柳,後人通謂車為柳也。
[三] 【集解】 복건이 말하기를 “동군에서는 광철거를 일러 ‘柳’라 한다.” 했다. 등전이 말하기를 “모두 관의 꾸밈이다. 장례용 수레에 실어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한 것이다.” 했다. 이기가 말하기를 “대우거이다. 수레 위를 버드나무로 덮었다.” 했다. 신찬이 말하기를 ‘「무릉서」 안에 광류거가 있는데 매 현마다 수백 대를 두었는데, 이는 지금의 짐을 실어 나르는 큰 수레가 이것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복건, 신찬이 근거한 바는 동군에서는 광철거를 일러 광류거라 하였고, 「무릉서」에 일컳기를 매 현마다 광류거 수백 대를 두었는데 곧 무릇 큰 수레로 짐을 실어 운반하는 것은 통상 광류거라 이름한다. 그러한 즉 ‘柳’는 곧 수레의 통상적인 이름이다. 등전이 말한 “‘柳’는 관 꾸밈으로 장례 용 수레에 실어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고자 했다.”는 일과 뜻이 서로 합하여 가장 진실에 통한다. 그러므로 예에 “버드나무로 덮개를 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싫어하지 않게 한다.” 했다. 정현이 주석한 「주례」에 “‘柳’는 모음이니 여러 꾸밈을 모은 것이다.” 한 것은 곧 후세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車’를 ‘柳’라 한 것이다.
[四] 集解徐廣曰:「馬車也。」 索隱案:謂輕車,一馬車也。
[四]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말이 끄는 수레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輕車’이니 한 마리 말이 끄는 수레이다.
孝惠時,為中郎將。單于嘗為書嫚呂后,不遜,呂后大怒,召諸將議之。上將軍樊噲曰:「臣願得十萬眾,橫行匈奴中。」諸將皆阿呂后意,曰「然」。季布曰:「樊噲可斬也!夫高帝將兵四十餘萬眾,困於平城,今噲柰何以十萬眾橫行匈奴中,面欺!且秦以事於胡,陳勝等起。于今創痍未瘳,噲又面諛,欲搖動天下。」是時殿上皆恐,太后罷朝,遂不復議擊匈奴事。
효혜제 때 중랑장이 되었다. 단우가 일찍이 글을 보내 여후를 업신여기고, 공손하지 않으니 여후가 크게 노하여 여러 장군을 불러 의논하였다. 상장군 번쾌가 말하기를 “신은 10만의 군대로 흉노를 휘젓기를 원합니다.” 했다. 여러 장군이 모두 여후의 뜻에 아첨하여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했다. 계포가 말하기를 “번쾌는 베어야 하겠구나! 대저 고제가 40만의 무리를 거느리고도 평성에서 곤욕을 치루었는데 지금 번쾌가 어떻게 10만의 무리로 흉노를 휘저을 수 있겠습니까? 태후 앞에서 속이다니! 또한 진나라가 胡에서의 일(胡를 정벌하는 일) 때문에 진승 등이 봉기하였습니다. 지금 병기에 다친 상처가 다 낫지 않았는데 번쾌가 또한 면전에서 아첨하여 천하를 소란스럽게 하려합니다.” 했다. 이 때 전 위의 모두가 두려워하고, 태후도 조회를 그치니 마침내 다시 흉노를 치는 일을 의논하지 않았다.
季布為河東守,孝文時,人有言其賢者,孝文召,欲以為御史大夫。復有言其勇,使酒難近。[一]至,留邸一月,見罷。季布因進曰:「臣無功竊寵,待罪河東。[二]陛下無故召臣,此人必有以臣欺陛下者;今臣至,無所受事,罷去,此人必有以毀臣者。夫陛下以一人之譽而召臣,一人之毀而去臣,臣恐天下有識聞之有以闚陛下也。」[三]上默然慚,良久曰:「河東吾股肱郡,故特召君耳。」布辭之官。
계포가 하동군 수가 되고 효문제 때 사람들 중에 계포가 현명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니 효문제가 불러 어사대부로 삼고자 하였다. 다시 그가 용맹하지만 술 때문에 가까이 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 계포가 이르자 저택에 한 달을 머물게 하였는데 불러 보기만 하고 그쳤다. 계포가 나아가 말하기를 “신은 공이 없이 총애를 훔치니 하동에서 죄를 기다립니다. 폐하께서 일 없이 신을 부르시니 이는 사람이 반드시 신으로서 폐하를 속이는 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신이 이르러 일을 받은 바가 없어 그치고 떠나는 것은 이는 사람이 반드시 신을 헐뜯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대저 폐하께서 한 사람의 칭찬으로써 신을 부르시고, 한 사람의 헐뜯음으로서 신을 보내시니 신은 천하의 지식있는 이가 그것을 듣고 폐하를 엿봄이 있을까 두려워합니다.” 했다. 효문제가 말없이 부끄러워하며 오래하다가 말하기를 “하동은 나의 팔 다리 같은 군이기 때문에 특별히 그대를 불렀을 뿐이다.” 했다. 계포가 관직을 사직하였다.
[一] 索隱使音如字。近音其靳反。因酒縱性謂之使酒,即酗酒也。
[一] 【索隱】 ‘使’의 음은 글자와 같다. 음은 ‘其’와 ‘靳(가슴걸이 근)’의 反이다. 술로 인하여 성품을 함부로 하는 것을 ‘使酒’라 말하는데 곧 ‘酗(주정할 후)酒’이다.
[二] 索隱季布言己無功能,竊承恩寵,得待罪河東。其詞典省而文也。
[二] 【索隱】 계포는 자기가 공과 능력이 없어 은총을 훔쳤기 때문에 죄를 하동에서 기다린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생략하여 쓴 글이다.
[三] 集解韋昭曰:「闚見陛下深淺也。」
[三]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폐하의 깊고 얕음을 엿본다.” 한 것이다.
楚人曹丘生,辯士,數招權顧金錢。[一]事貴人趙同等,[二]與竇長君善。季布聞之,寄書諫竇長君曰:「吾聞曹丘生非長者,勿與通。」及曹丘生歸,欲得書請季布。[三]竇長君曰:「季將軍不說足下,足下無往。」固請書,遂行。使人先發書,季布果大怒,待曹丘。曹丘至,即揖季布曰:「楚人諺曰『得黃金百(斤),不如得季布一諾』,足下何以得此聲於梁楚閒哉?且僕楚人,足下亦楚人也。僕游揚足下之名於天下,顧不重邪?何足下距僕之深也!」季布迺大說,引入,留數月,為上客,厚送之。季布名所以益聞者,曹丘揚之也。
초 사람 조구생은 말 잘하는 선비로 여러 번 권세를 구하고, 금전을 돌아보았다. 귀인 조동 등을 섬기고 두 장군과 잘 지냈다. 계포가 그것을 듣고 글을 붙여 두장군을 간하여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좌구생은 장자가 아니니 더불어 통하지 말라.” 했다. 조구생이 돌아감에 미쳐서 소개 글을 받아 계포에게 가고자 하였다. 두장군이 말하기를 “계장군이 그대를 좋아하지 않으니 그대는 가지 마시오.” 했으나 굳이 글을 청하여 마침내 갔다. 사람을 시켜 먼저 글을 보내니 계포가 과연 크게 노하여 조구를 기다렸다. 조구가 이르러 계포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초 사람의 속담에 ‘황금 100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 한 명의 허락을 얻는 것이 낫다.’ 합니다. 그대는 어떻게 양과 초 사이에서 이 명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또한 나는 초 사람이고, 그대가 또한 초 사람입니다. 제가 그대의 명성을 천하에 드날리면, 단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어찌 그대는 나ㄹ르 거절함이 심한지!” 했다. 계포가 이에 크게 기뻐하여 인도하여 들어가 여러 달을 머물게 하고 상객으로 삼아 후하게 환송하였다. 계포의 명성이 이 때문에 더하여 들린 것은 조구가 그를 드날린 것이다.
[一] 集解孟康曰:「招,求也。以金錢事權貴,而求得其形勢以自炫燿也。」文穎曰:「事權貴也。與通勢,以其所有辜較,請託金錢以自顧。」 索隱義如孟康、文穎所說。辜較音姑角。正義言曹丘生依倚貴人,用權勢屬請,數求他人。顧錢,賞金錢也。
[一] 【集解】 맹강이 말하기를 “‘招’는 구함이다. 금전 때문에 권세와 귀함을 섬기고, 그 형세로써 스스로 빛남을 찾아 얻었다.” 했다. 문영이 말하기를 “권세와 귀함을 섬기니 형세와 더불어 통하고, 허물이 있는 바를 비교하는 것으로서 금전을 청탁하여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했다. 【索隱】 뜻은 맹강, 문영이 말한 바와 같다. ‘辜較’의 음은 ‘姑角’이다. 【正義】 조구생이 귀인에 의지하고 권세를 써서 부탁하고 청하여 여러 번 다른 사람에게 구함을 말한 것이다.
[二] 集解徐廣曰:「漢書作『趙談』,司馬遷以其父名談,故改之。」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서』에 ‘趙談’이라 썼는데, 사마천은 그 아버지의 이름이 ‘談’이기 때문에 그것을 고쳤다.” 했다.
[三] 集解張晏曰:「欲使竇長君為介於布,請見。」
[三] 【集解】 장안이 말하기를 “두장군으로 하여금 계포에게 소개하게 하여 보기를 청하고자 한 것이다.” 했다.
季布弟季心,[一]氣蓋關中,遇人恭謹,為任俠,方數千里,士皆爭為之死。嘗殺人,亡之吳,從袁絲[二]匿。長事袁絲,弟畜灌夫、籍福之屬。嘗為中司馬,[三]中尉郅都不敢不加禮。少年多時時竊籍其名[四]以行。當是時,季心以勇,布以諾,著聞關中。
계포의 동생 계심의 기세가 관중을 덮고, 사람을 만남이 공손하고 삼가 하며, 사내답게 용감하여 사방 수 천리의 선비들이 모두 다투어 그를 위해 죽었다. 일찍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하여 오에 가서 원사를 따라 숨었다. 오래 동안 원사를 섬기고, 관부와 적복의 등속을 동생처럼 돌보았다. 일찍이 중사마가 되었는데 중위 질도가 감히 예를 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때때로 그 이름을 깔아 행하였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계심은 용맹으로서 계포는 허락하는 것으로서 관중에 드러나고 들렸다.
[一] 集解徐廣曰:「一作『子』。」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子’라 쓴다.” 했다.
[二] 索隱盎字絲。
[二] 【索隱】 ‘盎’자는 실이다.
[三] 集解如淳曰:「中尉之司馬。」 索隱漢書作「中尉司馬」。
[三]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중위의 사마이다.” 했다. 【索隱】 『한서』에는 “中尉司馬”라 섰다.
[四] 索隱籍音子亦反。
[四] 【索隱】 ‘籍’의 음은 ‘子’와 ‘赤’의 反이다.
季布母弟丁公,[一]為楚將。丁公為項羽逐窘高祖彭城西,短兵接,高祖急,顧丁公曰:「兩賢豈相厄哉!」於是丁公引兵而還,漢王遂解去。及項王滅,丁公謁見高祖。高祖以丁公徇軍中,曰:「丁公為項王臣不忠,使項王失天下者,迺丁公也。」遂斬丁公,曰:「使後世為人臣者無效丁公!」
계포의 어머니의 동생은 정공인데 초의 장군이 되었다. 정공이 항우를 위하여 고조를 팽성 서쪽에서 쫓아 막히게 하였는데 짧은 병기로 접전하여 고조를 다급하게 하니 정공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두 현명한 이가 서로 곤액하게 하는가!” 이에 정공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니 한왕이 마침내 풀려서 갔다. 항왕이 멸함에 이르러 정공이 고조를 알현하였다. 고조가 정공을 군중에게 돌리며 말하기를 “정공이 항왕의 신하로 충성하지 못하여 항왕으로 하여금 천하를 잃게 한 것은 바로 정공이다.”하고는 마침내 정공을 베게 하면서 말하기를 “후세에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 하여금 정공을 본받음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했다.
[一] 集解晉灼曰:「楚漢春秋云薛人,名固。」 索隱案:謂布之舅也。
[一] 【集解】 진작이 말하기를 “『초한춘추』에 설 사람으로 이름은 ‘固’이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계포의 장인이다.
欒布者,梁人也。始梁王彭越為家人時,[一]嘗與布游。窮困,賃傭於齊,為酒人保。[二]數歲,彭越去之巨野中為盜,而布為人所略賣,為奴於燕。為其家主報仇,燕將臧荼舉以為都尉。臧荼後為燕王,以布為將。及臧荼反,漢擊燕,虜布。梁王彭越聞之,迺言上,請贖布以為梁大夫。
난포는 양 사람이다. 처음 양왕 팽월이 家人이 되었을 때 일찍이 계포와 함께 노닐었다. 가난하여 제에서 품삯을 받으며 술 만드는 사람을 여러 해 도왔다. 팽월이 거야의 안에 가서 도적이 되었는데 난포가 다른 사람에게 팔려 연에서 종이 되었다. 그 가주를 위하여 원수를 잡았는데 연의 장군 장도가 천거하여 도위가 되었다. 장도가 후에 연왕이 되자 난포를 장군으로 삼았다. 장도가 배반함에 이르자 한이 연을 쳤는데 난포를 포로로 잡았다. 양왕 팽월이 그것을 듣고 황제에게 말하여 난포의 죄를 돈으로 대신하기를 청하여 양 대부로 삼았다.
[一] 索隱謂居家之人,無官職也。
[一] 【索隱】 집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니 관직이 없는 것이다.
[二] 集解漢書音義曰:「酒家作保傭也。可保信,故謂之保。」
[二] 【集解】 『한서음의』에 “술 만드는 집을 지키는 일꾼이다. 진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保’라 한다.
使於齊,未還,漢召彭越,責以謀反,夷三族。已而梟彭越頭於雒陽下,詔曰:「有敢收視者,輒捕之。」布從齊還,奏事彭越頭下,祠而哭之。吏捕布以聞。上召布,罵曰:「若與彭越反邪?吾禁人勿收,若獨祠而哭之,與越反明矣。趣亨[一]之。」方提趣[二]湯,布顧曰:「願一言而死。」上曰:「何言?」布曰:「方上之困於彭城,敗滎陽、成皋閒,項王所以(遂)不能[遂]西,徒以彭王居梁地,與漢合從苦楚也。當是之時,彭王一顧,與楚則漢破,與漢而楚破。且垓下之會,微彭王,項氏不亡。天下已定,彭王剖符受封,亦欲傳之萬世。今陛下一徵兵於梁,彭王病不行,而陛下疑以為反,反形未見,以苛小[三]案誅滅之,臣恐功臣人人自危也。今彭王已死,臣生不如死,請就亨。」於是上迺釋布罪,拜為都尉。
제에 사신 가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한이 팽월을 불러 모반으로서 질책하고, 삼족을 해쳤다. 이윽고 팽원의 머리를 낙양 아래 매달고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팽월의 머리를)거두고 돌보는 자가 있으면 문득 체포할 것이다.” 했다. 난포가 제로부터 돌아와 팽월의 머리 아래서 일을 아뢰고 제사하며 곡하였다. 관리가 난포를 잡아 아뢰었다. 고조가 난포를 불러 욕하며 말하기를 “네가 팽월과 함께 배반하였느냐? 내가 사람들을 금하여 거두지 말라 하였는데 네가 오직 제사하고 곡하니 팽월과 더물어 배반한 것이 분명하다. 삶는 형벌에 나아가라.” 하니 바야흐로 데리고 끓는 물에 나아가려는데 난포가 돌아보며 말하기를 “한마디 말만 하고 죽기를 원하다.”했다. 고조가 말하기를 “무슨 말인가?” 하니 난포가 말하기를 “고조가 팽성에서 곤궁함을 당하고, 형양, 성고의 사이에서 패하였을 때 항왕이 서쪽으로 갈 수 없었던 것은 팽왕이 양 땅에 있으면서 한과 합하여 초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팽왕이 한 번 돌아보아 초와 함께하였다면 곧 한이 깨트려지고, 한과 함께하면 초가 깨트려집니다. 또한 해하의 만남에 팽왕이 없었다면 항씨는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고 팽왕이 부절을 쪼개고 봉함을 받아 또한 만세에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한번 양에서 군대를 징발하였는데 팽왕이 병으로 오지 못하자 폐하께서 배반하는 것으로 의심하여 모반의 형상이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작은 사안을 가혹하게 하여 죽이시니 신은 광신과 사람들이 스스로 위태롭다고 여길 것을 두려워합니다. 지금 팽월이 이미 죽었으니 신은 사는 것이 죽은 것만 못하니 삶아 죽임에 나아가기를 청합니다. 했다. 이에 고조가 난포의 죄를 풀어주고 제수하여 도위라 했다.
[一] 索隱上音促,下音普盲反。謂疾令赴鑊也。
[一] 【索隱】 위의 음은 ‘促’이고 아래의 음은 ‘普’와 ‘盲’의 反이다. 령을 재촉하여 큰 솥에 달려 가는 것이다.
[二] 集解徐廣曰:「一作『走』。」 索隱上音啼,下音趨。徐廣云一作「走」,走亦趣向之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走’라 쓰기도 한다. 【索隱】 위의 음은 ‘啼 ’이고, 아래의 음은 ‘趨’이다.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走’라 쓰고, ‘走’는 또한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三] 集解徐廣曰:「小,一作『峭』。」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小’는 한편으로 ‘峭’라 쓰기도 한다.” 했다.
孝文時,為燕相,至將軍。布迺稱曰:「窮困不能辱身下志,非人也;富貴不能快意,非賢也。」於是嘗有德者厚報之,有怨者必以法滅之。吳(軍)[楚]反時,以軍功封俞侯,[一]復為燕相。燕齊之閒皆為欒布立社,號曰欒公社。
효문제 때 연의 재상이 되어 장군에 이르렀다. 난포가 이에 일컬어 말하기를 “곤궁할 때 몸을 욕되게 하지 않고 뜻을 낮추면 사람노릇 하지 못하고, 부귀할 때 뜻을 쾌하게 하지 못하면 현명함이 아니다.” 했다. 이에 일찍이 덕을 베픔이 있는 자에게는 두터이 갚고, 원망이 있는 자는 반드시 법으로써 그것을 없앴다. 오와 초가 배반할 때 군공으로서 유후를 봉하고 다시 연의 재상이 되었다. 연, 제의 사이에 난포를 위하여 社를 세우고, 난공사라 불렀다.
[一] 集解徐廣曰:「擊齊有功也。」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제를 칠 때 공이 있었다.” 했다.
景帝中五年薨。子賁嗣,為太常,犧牲不如令,國除。
경제 5년에 죽었다. 아들 비가 이어 태상이 되었는데 희생이 령과 같지 않아 나라를 없앴다.
太史公曰:以項羽之氣,而季布以勇顯於楚,身屨(典)軍[一]搴旗者數矣,可謂壯士。然至被刑戮,為人奴而不死,何其下也!彼必自負其材,故受辱而不羞,欲有所用其未足也,故終為漢名將。賢者誠重其死。夫婢妾賤人感慨而自殺者,[二]非能勇也,其計畫無復之耳。[三]欒布哭彭越,趣湯如歸者,彼誠知所處,[四]不自重其死。雖往古烈士,何以加哉!
태사공이 말하기를 “항우의 기개로 계포는 용맹함으로 초에 드러났고, 몸으로는 군대를 이끌고 그 깃대를 뽑은 것이 여럿이었으니 장사라 이를 만하다. 그러나 형벌로 죽임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서까지 죽지 않았으니 얼마나 낮춘 것인가! 그는 반드시 스스로 그 재질을 믿었기 때문에 욕을 받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이 쓰이는 바가 있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끝내 한의 이름 있는 장군이 되었다. 현명한 자는 진실로 그 죽음을 중하게 여긴다. 대저 비첩과 천인들이 감격하고 마음속에 깊이 사무쳐 스스로 죽는 자는 용기라 할 수 없고, 그 계획을 다시 함이 없을 뿐이다. 난포가 팽월을 곡하고 뜨거운 물에 나아가기를 돌아가는 자와 같이하니 그는 진실로 처한 바를 알아 스스로 그 죽음을 중시하지 않았다. 비록 진난 옛 열사라 할지라도 무엇을 더하겠는가!
[一] 集解徐廣曰:「屨,一作『屢』,一曰『覆』。」駰案:孟康曰「屨,履蹈之也」。瓚曰「屢,數也」。索隱身履軍。按:徐氏云一作「覆」,按下云「搴旗」,則「覆軍」為是,勝於「屢」之與「履」。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履’는 한편으로 ‘屢’라 쓰고, 한편으로는 ‘覆’이라 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맹강이 말하기를 “‘屨’는 밟는 것이다.” 했다. 찬이 말하기를 “‘屢’는 자주이다.” 했다. 【索隱】 신리군이다. 살펴보니 서씨가 말하기를 “한편으로 ‘覆’이라 쓴다.” 했다. 살펴보니 아래에서 “‘搴旗’라고 말한 것은 곧 ‘覆軍’이 옳고, ‘屢’의 ‘履’ 보다 낫다.
[二] 集解徐廣曰:「或作『概』字,音義同。」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혹은 ‘槪’자로 쓰는데 음은 같다.” 했다.
[三] 集解徐廣曰:「復,一作『冀』。」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復’은 한편으로 ‘冀’로 쓴다.” 했다.
[四] 集解如淳曰:「非死者難,處死者難。」
[四]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죽지 않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처하는 것이 어렵다.” 했다.
【索隱述贊】 季布、季心,有聲梁、楚。百金然諾,十萬致距。出守河東,股肱是與。欒布哭越,犯禁見虜。赴鼎非冤,誠知所處。
【索隱述贊】 계포와 계심은 양과 초에 명성이 있었다. 백금으로 허락하여 십만에 이르렀다. 나와 하동의 군수가 되니 고굉이 이것이다. 난포가 월을 곡하다 금하는 것을 범하여 포로가 되었다. 솥에 나아가되 원망하지 않으니 진실로 죽음에 대처하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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