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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113 남월열전 제53

by 최인표 2019. 7. 4.

史記卷一百一十三

  南越列傳第五十三

 

南越王[]尉佗者[]真定人也[]姓趙氏秦時已并天下略定楊越[]置桂林[]南海象郡[]以謫[]徙民與越雜處十三歲[]秦時用為南海龍川令[]至二世時南海尉[]任囂[一一]病且死召龍川令趙佗語曰:「聞陳勝等作亂秦為無道天下苦之項羽劉季陳勝吳廣等州郡各共興軍聚眾虎爭天下中國擾亂未知所安豪傑畔秦相立南海僻遠吾恐盜兵侵地至此吾欲興兵絕新道[一二]自備待諸侯變會病甚且番禺負山險阻南海東西數千里頗有中國人相輔此亦一州之主也可以立國郡中長吏無足與言者故召公告之。」即被佗書[一三]行南海尉事[一四]囂死佗即移檄告橫浦[一五]陽山[一六]湟谿[一七]關曰:「盜兵且至急絕道聚兵自守!」因稍以法誅秦所置長吏以其黨為假守[一八]秦已破滅佗即擊并桂林象郡自立為南越武王[一九]高帝已定天下為中國勞苦故釋佗弗誅漢十一年遣陸賈因立佗為南越王與剖符通使和集百越毋為南邊患害與長沙接境

남월왕 위 타는 진정 땅 사람으로 성은 조씨이다. 진나라 때 이미 천하를 아우르고, 양월을 침략하여 평정하고, 계림, 남해, 상군을 두고 귀양지로서 백성을 옮겨 월에 섞여 지내게 한지 13년이었다. 위타는 진나라 때 등용되어 남해 용천 령이 되었다. (진나라) 2세 때에 이르러 남해 위 임효가 병들었다가 죽자 용천 령이 조타를 불러 말하기를 진승 등이 난을 일으켰다고 들었다. 진나라가 무도하여 천하가 그것을 괴롭게 여기고, 항우, 유계, 진승, 오광 등 주와 군이 각각 함께 군대를 일으키고 무리를 모아 범처럼 천하를 다투니 중국이 소란스러워 편안한 곳을 알지 못하고 호걸들은 진나라를 배반하고 서로 즉위한다. 남해는 편벽되고 멀지만, 내가 도적과 군대가 땅을 침범하여 여기에 이르는 것을 두려워하여 내가 군대를 일으켜 새 길을 끊고 스스로 대비하여 제후의 변란을 대비하고자 하였는데 병이 심하게 들었다. 또 번우는 산의 험함을 등졌고, 남해에 막히고 동서로 수 천리이니 자못 중국 사람들이 서로 도움이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한 주의 주인으로 나라를 세울만하다. 군 안에 고을 수령과는 말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공을 불러 말하는 것이다.” 했다. 곧 조타가 글을 받고 남해 위의 일을 행하였다. 임효가 죽자 조타가 곧 격문을 써서 횡포, 양산, 황계관에게 알리며 말하기를 도적과 군대가 또한 이르니 급히 길을 끊고 군대를 모아 스스로 지킬 것이다!” 했다. 인하여 점차 법으로 진나라가 두었던 수령를 죽이고, 그 무리로서 임시 수령을 삼았다. 진나라가 이미 깨트려지고 없어진 후 조타는 곧 계림, 상군, 쳐서 아우르고 스스로 즉위하여 남월무왕이라 하였다. 고제가 천하를 평정한 후 중국을 위하여 수고했다하여 위타를 풀어주고 죽이지 않았다. 11년 육가를 보내 위타를 세워 남월왕이라 하고, 부절을 쪼개 사신을 통하게 하고 백월을 온화하게 모으니 남쪽 변경의 근심과 해침이 없어졌으며, 장사와 경계를 접하였다.

 

[] 正義都廣州南海縣

[] 正義도광주 남해현이다.

 

[] 索隱尉他官也名也姓趙他音徒河反又十三州記云大郡曰守小郡曰尉」。

[] 索隱위타이다. ‘는 관직이고, ‘는 이름이고, 성은 이다. ‘의 음은 이다. 십삼주기큰 군은 라 하고, 작은 군은 라 한다.

 

[] 索隱韋昭曰:「故郡名後更為縣在常山。」

[] 索隱위소가 말하기를 옛 군 이름인데 후에 고쳐서 현으로 삼았으며 상산에 있다.

 

[] 集解張晏曰:「楊州之南越也。」 索隱案戰國策云吳起為楚收楊越正義夏禹九州本屬楊州故云楊越

[]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양주의 남월이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전국책오가 일어나서 초를 위해 양월을 거두었다.” 했다. 正義하우의 구주는 본래 양주에 속하였기 때문에 양월이라 한 것이다.

 

[] 索隱按地理志武帝更名鬱林

[] 索隱살펴보니 지리지에 무제가 이름을 바꾸어 울림이라 했다.

 

[] 索隱案本紀始皇三十三年略陸梁地以為南海桂林象郡地理志云武帝更名日南」。

[] 索隱살펴보니 본기시황제 33년 육양의 땅을 침략하고 남해, 계림, 상군을 삼았다. 지리지무제가 이름을 바꾸어 일남이라 하였다.”


[] 索隱音直革反

[] 索隱음은 이다.

 

[] 集解徐廣曰:「秦并天下至二世元年十三年并天下八歲乃平越地至二世元年六年耳。」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진나라가 천하를 아우르고(병탄하고) 21년에 이르기

가지가 13년이다. 천하를 아우른 지 8년 만에 월 땅을 평정한 21년에 이르기 까지가 6년이었을 뿐이다.


[] 索隱地理志縣名屬南海也正義顏師古云:「龍川南海縣也即今之循州也。」裴氏廣州記云:「本博羅縣之東鄉有龍穿地而出即穴流泉因以為號也。」

[] 索隱】 「지리지현 이름으로 남해에 속한다.” 했다. 正義안사고가 용천은 남해현이니 곧 지금의 순주이다.” 했다. 배씨광주기본래 박라현의 동향인데 용이 판 땅이 있어서 나오니 곧 구멍 속으로 흐르는 샘이다. 인하여 부르게 되었다.” 했다.


[] 集解徐廣曰:「爾時未言都尉也。」

[0]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이 때는 도위를 말하지 않았다.” 했다.

 

[一一] 索隱五刀反

[一一] 索隱이다.

 

[一二] 索隱案蘇林云秦所通越道」。

[一二] 索隱살펴보니 소림은 진나라가 월도를 통하였다.” 했다.

 

[一三] 集解韋昭曰:「被之以書光被』。」 索隱韋昭云被之以書」,音皮義反

[一三]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글로서 받음이다. 은은 光被이다.” 했다. 索隱위소가 말하기를 글을 준 것이다.” 했다. 음은 이다.

 

[一四] 索隱服虔云:「囂詐作詔書使為南海尉。」

[一四] 索隱복건이 말하기를 임효가 거짓으로 조서를 지어 남해 위로 삼게 한 것이다.” 했다.

 

[一五] 索隱案南康記云南野縣大庾嶺三十里至橫浦有秦時關其下謂為塞上』」。

[一五] 索隱】 「남강기남야현 대유령 30리로 횡포에 이르는데 진나라 때 관이 있었고, 그 아래를 말하여 塞上이라 한 것이다.” 했다.


[一六] 索隱姚氏案地理志云揭陽有陽山縣今此縣上流百餘里有騎田嶺當是陽山關

[一六] 索隱요씨가 살펴보니 지리지게양에 양산현이 있다. 지 이 현 상류 100여리에 기전령이 있으니 이것이 양산관에 해당한다.

 

[一七] 集解徐廣曰:「在桂陽通四會也。」 索隱涅谿鄒氏劉氏本並作」,音年結反漢書作湟谿」,音皇[衛青傳][南粵傳]出桂陽下湟水是也而姚察云史記作」,今本作」,涅及湟不同良由隨聞則輒改故也水經云含匯縣南有匯浦關未知孰是然鄒誕作」,漢書作」,蓋近於古

[一七]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계양에 있는데 사방으로 통하여 만난다.” 했다. 索隱(개흙 열,)谿이다. 추씨와 유씨는 본래 같이 이라 쓴다.” 했다. 음은 이다. 한서에는 (해자 황)谿라 썼는데 음은 이다. 위청전남월전계양을 나와 황수를 내려간다.”한 것이 이것이다. 요찰은 사기이라 썼다 했는데 지금 본에는 이라 썼으니 은 같지 않으니 그렇기에 들은 것을 따라 문득 고쳤기 때문이다. 수경함회현 남쪽에 회포관이 있다.”하는데 무엇이 옳은지 말지 못하겠다. 그러나 추탄은 이라 쓴다. 하고, 한서이라 섰으니 아마도 옛날에 가까울 것이다.


[一八] 索隱案謂他立其所親黨為郡縣之職或假守

[一八] 索隱살펴보니 조타가 그 친한 무리를 세워 군현의 직책을 맡겨 혹 임시로 지키게 한 것을 말한다.

 

[一九] 集解韋昭曰:「生以為號不稽於古也。」

[一九]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살아 있을 때 로 호를 삼았으니 옛 것을 상고하지 않은 것이다.” 했다.

 

高后時有司請禁南越關市鐵器佗曰:「高帝立我通使物今高后聽讒臣別異蠻夷隔絕器物此必長沙王計也欲倚中國擊滅南越而并王之自為功也。」於是佗乃自尊號為南越武帝發兵攻長沙邊邑敗數縣而去焉高后遣將軍隆慮侯灶[]往擊之會暑溼士卒大疫兵不能踰嶺[]歲餘高后崩即罷兵佗因此以兵威邊財物賂遺閩越西甌役屬焉[]東西萬餘里迺乘黃屋左纛稱制與中國侔

고후 때 담당 관청이 남월에 철기교역을 금지할 것을 청하였다. 조타가 말하기를 고제가 나를 세워 사신과 물건을 통하게 하였는데, 지금 고후가 신을 참소하는 것을 듣고 오랑캐로 구별지어 기물을 끊으니 이는 반드시 장사왕의 계책일 것으로 중국에 기대어 남월을 쳐서 없애고 왕을 아울러 스스로 공을 삼으려는 것이다.” 했다. 이에 조타가 스스로 호를 높여 남월무제라 하고 군대를 내어 장사의 변경 읍을 공격하여 여러 개의 읍을 무너뜨리고 갔다. 고후가 장군 융려후 조를 보내 가서 치게 하였다. 도위와 습기를 만나 사졸들에게 역질이 발생하니 군대가 고개를 넘지 못하였다. 1년여 후 고후가 죽으니 곧 군대를 파하였다. 조타가 이로 인하여 군대를 가지고 변경을 위협하고, 민월, 서구, 낙에 재물과 뇌물을 주어 부리고 속하게 하였는데 동서로 만 여리 였다. 이에 황색 휘장을 두른 수레를 타고, 왼쪽에 깃발을 세우고, 황제를 칭하며, 중국과 짝이 되려 하였다.


[] 索隱韋昭云:「姓周隆慮縣名屬河內音林閭二音。」

[] 索隱위소가 말하기를 성은 이다. ‘융려는 현 이름이니 하내에 속한다. 음은 두 음이다.

 

[] 索隱案此嶺即陽山嶺

[] 索隱살펴보니 여기의 령은 양산령이다.

 

[] 集解漢書音義曰:「駱越也。」 索隱鄒氏云又有駱越」。姚氏案廣州記云交趾有駱田仰潮水上下人食其田名為駱人』。有駱王駱侯諸縣自名為駱將』,銅印青綬即今之令長也後蜀王子將兵討駱侯自稱為安陽王治封溪縣後南越王尉他攻破安陽王令二使典主交阯九真二郡人」。尋此駱即甌駱也

[] 集解】 「한서음의낙월이다.” 했다. 索隱추시가 말하기를 또 낙월이 있다.” 했다. 요씨가 살펴보니 광주기교지에 낙전이 있는데 조수가 오르내리는 것을 우러러보고 사람들이 가 밭을 부쳐 먹는데 이름을 낙인이라 한다. 낙왕, 낙후가 있다. 여러 현에 스스로 이름하여 낙장이라 하고, 동인과 푸름 인끈이니 곧 지금의 령장이다. 후에 초의 왕자가 군대를 이끌고 낙후를 토벌하고 스스로 안양왕이라 일컳고, 봉계현을 다스렸다. 후에 남월왕 위타가 안양왕을 공격하여 깨트리고 두 사람을 보내 교지와 구진 두 군 사람을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했다. 이를 찿아 보면 낙은 곧 구락이다.

 

及孝文帝元年初鎮撫天下使告諸侯四夷從代來即位意喻盛德焉乃為佗親冢在真定置守邑歲時奉祀召其從昆弟尊官厚賜寵之詔丞相陳平等舉可使南越者平言好畤陸賈先帝時習使南越迺召賈以為太中大夫往使因讓佗自立為帝曾無一介之使報者陸賈至南越王甚恐為書謝稱曰:「蠻夷大長老夫臣佗前日高后隔異南越竊疑長沙王讒臣又遙聞高后盡誅佗宗族掘燒先人冢以故自棄犯長沙邊境且南方卑溼蠻夷中閒其東閩越千人眾號稱王其西甌駱裸[]亦稱王老臣妄竊帝號聊以自娛豈敢以聞天王哉!」乃頓首謝願長為藩臣奉貢職於是乃下令國中曰:「吾聞兩雄不俱立兩賢不並世皇帝賢天子也自今以後去帝制黃屋左纛。」陸賈還報孝文帝大說遂至孝景時稱臣使人朝請然南越其居國竊如故號名其使天子稱王朝命如諸侯至建元四年卒

효문제 1년에 이르러 처음 천하를 진정시키고 어루만지고 사신을 보내 제후와 四夷에게 대로부터 와서 즉위한 뜻을 알리고 성대한 덕을 깨우치게 하였다. 이에 위타의 부모 무덤이 진정에 있다하여 수읍을 설치하고 매년 때에 맞추어 제사를 받들었다. 그 종형제를 불러 관직을 높이고, 내리는 것을 후하게 하며 그들을 총애하였다. 승상 진평 등에게 명령하여 남월에 사신을 갈만 한 자를 천거하게 하니 진평이 호치의 육가가 선제 때 자주 남월에 사신을 간다고 말하였다. 이에 육가를 불러 태중대부로 산고 사신으로 가게 하였다. 인하여 위타가 스스로 즉위하여 황제가 되고는 한 개의 사신이 보고한 적이 없음을 꾸짖었다. 육가가 남월에 이르니 왕이 매우 두려워하여 글을 써서 사과하고 일컳어 말하기를 오랑캐 대장노인 저 신 타는 지난날 고후가 남월을 막고 구별한 것이 아마도 장사왕이 신을 참소한 것이라 의심하였고, 또 멀리서 고후가 저의 종족을 모두 죽이고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고 불살랐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버리고 장사의 변경을 범하였던 것입니다. 또 남방은 낮고 습하고 오랑캐의 사이에 있어 그 동쪽은 민월의 천명의 무리들이 왕을 일컳고, 그 서쪽의 구낙나국이 또한 왕을 일컳습니다. 노신이 망녕되게 황제의 호를 훔친 것은 오직 스스로 즐기려는 것일 뿐 어찌 감히 천왕으로 불려짐을 들으려는 것이리오!” 하고는 이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며 길이 번병의 신이 되어 조공의 직분을 받들기를 원합니다. 이에 나라 안에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고, 두 현인은 세상을 같이 할 수 할 수 없다 한다. 황제는 어진 하늘의 아들이다. 지금부터 이후로 황제가 정한 황제의 수레와 깃발을 없애라.”하므로 육가가 돌아가 보고하자 효문제가 크게 기뻐하였다. 마침내 효경제 때에 이르도록 신하임을 말하고 사람을 시켜 조회를 청하였다. 그러나 남월이 그 나라에 살 때는 몰래 옛날에 부르던 이름과 같이하고, 천자에게 사신 갈 때는 왕을 일컳고, 조정에서 명을 받을 때만 제후와 같이 하였다. 건원 4년에 이르러 죽었다.


[] 索隱躶國音和寡反露形也

[] 索隱躶國이다. 음은 이다. ‘벗은 형상이다.

 

佗孫胡為南越王[]此時閩越王郢興兵擊南越邊邑胡使人上書曰:「兩越俱為藩臣毋得擅興兵相攻擊今閩越興兵侵臣臣不敢興兵唯天子詔之。」於是天子多南越義守職約為興師遣兩將軍[]往討閩越兵未踰嶺閩越王弟餘善殺郢以降於是罷兵

위타의 손자 호가 남월왕이 되었다. 이 때 민월왕 영이 군대를 일으켜 남월의 변경 음을 공격하니 호가 사람을 시켜 글을 올려 말하기를 두 월이 모두 번병의 신하가 되었으므로 멋대로 군대를 일으켜 서로 공격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민월이 군대를 일으켜 신을 침범하나 신은 감히 군대를 일으키지 못하고 오직 천자께 그것을 알립니다.” 했다. 이에 천자가 남월이 의리가 많아 직분과 약속을 지킨다 하여 군대를 일으키고 두 장군을 보내 민월에 가게 하였다. 군대가 령을 넘지 않았는데 민월 왕의 동생 여선이 영을 죽이고 항복하니 이에 군대를 그만두게 하였다.


[] 集解徐廣曰:「皇甫謐曰越王趙佗以建元四年卒爾時漢興七十年佗蓋百歲矣。」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황보밀이 말하기를 월왕 조타는 건원 4년에 죽었고, 이 때는 한이 흥기한지 70년이니 조타는 대개 100세였을 것이다.’” 했다.

 

[] 索隱王恢韓安國

[] 索隱왕회와 한안국이다.

 

天子使莊助往諭意南越王胡頓首曰:「天子乃為臣興兵討閩越死無以報德!」遣太子嬰齊入宿衛謂助曰:「國新被寇使者行矣胡方日夜裝入見天子。」助去後其大臣諫胡曰:「漢興兵誅郢亦行以驚動南越且先王昔言事天子期無失禮要之不可以說好語入見[]入見則不得復歸亡國之勢也。」於是胡稱病竟不入見後十餘歲胡實病甚太子嬰齊請歸胡薨謚為文王

천자가 장()조로 하여금 가서 남월왕에게 뜻을 깨닫게 하니 조호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천자께서 신을 위하여 군대를 일으켜 민월을 토벌하시니 죽어도 덕을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고는 태자 조영제를 보내 들어가 숙위하게 했다. 조호가 장조에게 말하기를 나라가 새로 침략을 당하였으니 사자는 돌이가시오. 저는 밤낮으로 행장을 꾸려 들어가 천자를 뵙겠습니다.” 했다. 장조가 떠난 후 그 대신이 조호를 간하여 말하기를 한이 군대를 일으켜 영을 죽였는데, 또한 가는 것은 남월을 놀라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왕이 옛날에 말하기를 천자를 섬기는 것은 예를 잃음이 없도록 하라.’하셨으니 요컨대 기뻐하고 좋은 말로서 때문에 들어가 알현해서는 안됩니다. 들어가 알현하면 곧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니 나라를 망하게 하는 형세입니다.” 했다. 이에 조호가 병을 핑계로 마침내 들어가 알현하지 않았다. 10여년 후 조호가 실제로 병이 심해지자 태자 영제가 돌아갈 것을 청하였다. 조호가 죽자 시호를 문왕이라 했다.


[] 索隱悅好語入見漢書作」。韋昭云誘怵好語」。

[] 索隱좋은 말에 기뻐하여 들어가 알현하는 것이다. ‘한서이라 썼다. 위소가 말하기를 좋은 말에 유인되는 것이다.” 했다.

 

嬰齊代立即藏其先武帝璽[]嬰齊其入宿衛在長安時取邯鄲樛氏女[]生子興[]及即位上書請立樛氏女為后興為嗣漢數使使者風諭嬰齊嬰齊尚樂擅殺生自恣懼入見要用漢法比內諸侯固稱病遂不入見遣子次公入宿衛嬰齊薨謚為明王

조영제가 대신 즉위하여 곧 선무제의 옥쇄를 감추었다. 조영제가 숙위로 들어가 장안에 있을 때 한단의 규씨 집 딸을 취하여 아들 흥을 낳았다. 즉위함에 이르러 글을 올려 규씨의 딸을 후로 하고, 조흥을 후계자 삼을 것을 청하였다. 한이 여러 번 사신을 보내 영제를 타일렀으나 영제는 오히려 멋대로 죽이고, 제멋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여 들어가 알현하면 한의 법을 적용받고, 내제후들과 같이 취급될 것을 두려워하여 굳이 병들었다는 핑계로 마침내 들어가 알현하지 않았다. 아들 차공을 보내 숙위로 들어가게 하였다. 영제가 죽으니 시호를 명왕이라 하였다.


[] 索隱李奇云去其僭號」。

[] 索隱이기가 말하기를 그 참칭한 호를 없앤 것이다.” 했다.

 

[] 索隱摎氏女紀虯反摎姓出邯鄲

[] 索隱규시의 딸이다. ‘(규룡 규)’이다. 규씨 성은 한단에서 나왔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이라 쓴다.” 했다.

 

太子興代立其母為太后太后自未為嬰齊姬嘗與霸陵人安國少季[]及嬰齊薨後元鼎四年漢使安國少季往諭王王太后以入朝比內諸侯令辯士諫大夫終軍等宣其辭勇士魏臣等輔其缺[]衛尉路博德將兵屯桂陽待使者王年少太后中國人也嘗與安國少季通其使復私焉國人頗知之多不附太后太后恐亂起亦欲倚漢威數勸王及群臣求內屬即因使者上書請比內諸侯三歲一朝除邊關於是天子許之賜其丞相呂嘉銀印及內史中尉太傅印餘得自置除其故黥劓刑用漢法比內諸侯使者皆留填撫之王太后飭治行裝重齎為入朝具

태자 흥이 대신하여 즉위하고 그 어미를 태후로 삼았다. 태후는 아직 영제의 희첩이 되지 않았을 때부터 일찍이 패릉 사람인 안국소계와 간통하였다. 영제가 죽은 후 원정 4년 한이 안국소계로 하여금 가서 왕과 왕태후를 타일러 내제후와 같이 입조하게 하였다. 그리고 변사인 간대부 종군 등에게 그 말을 펴게하고, 용사 위신 등에게는 그 빠짐을 돕게하고, 위위 노박덕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계양에 주둔하여 사신을 기다리게 하였다. 왕의 나이가 어리고 태후는 중국 사람인데다 일찍이 안국소계와 간통하였으므로 그가 사신을 오자 다시 사통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알고 많이 태후에게 붙지 않았다. 태후가 남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고, 또한 한의 위엄에 기대고자 하여 여러번 왕과 여러 신하들을 권하여 내속할 것을 구하였다. 곧 인하여 사신을 보내 글을 올려 내제후와 같이 3년에 한번 입조할 것과 변경에 있는 관을 없앨 것을 청하였다. 이에 천자가 허락하고 그 승상 여가에게는 은인을 내리고, 내사, 중위, 태부에게는 인을 내리고 나머지 관직은 스스로 설치할 수 있게 하였다. 옛날의 黥刑(몸에 먹으로 죄를 서 넣는 형벌), 鼻刑(코를 베는 형벌)을 없애고 내제후와 같이 한의 법을 쓰게 했다. 사신이 모두 머물며 진정시키고 어루만지게 하였다. 왕과 왕태후는 행장과 폐백을 갖추고 입조할 준비를 갖추었다.


[] 索隱安國姓也少季名也

[] 索隱안국은 성이고, 소계는 이름이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이라 쓴다.” 했다.

 

其相呂嘉年長矣相三王宗族官仕為長吏者七十餘人男盡尚王女女盡嫁王子兄弟宗室及蒼梧秦王有連[]其居國中甚重越人信之多為耳目者得眾心愈於王王之上書數諫止王王弗聽有畔心數稱病不見漢使者使者皆注意嘉勢未能誅王太后亦恐嘉等先事發乃置酒介漢使者權[]謀誅嘉等使者皆東鄉太后南鄉王北鄉相嘉大臣皆西鄉侍坐飲嘉弟為將將卒居宮外酒行太后謂嘉曰:「南越內屬國之利也而相君苦不便者何也?」以激怒使者使者狐疑相杖遂莫敢發嘉見耳目非是即起而出太后怒欲鏦[]以矛王止太后嘉遂出分其弟兵就舍[]稱病不肯見王及使者乃陰與大臣作亂王素無意誅嘉嘉知之以故數月不發太后有淫行國人不附欲獨誅嘉等力又不能

그 재상 여가의 나이가 많았는데 세 왕을 도와 종족의 관직이 관리의 우두머리가 된 자가 70여명이었고, 남자는 모두 왕의 딸에게 장가들고, 여자는 왕자 형제, 종실에 시집갔으며 창오, 진왕과도 인척이었다. 나라 안에 머물 때 월 사람들이 그를 믿어서 눈과 귀가 된 자들이 많았으며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얻어 왕보다 나았다. 왕에게 글을 올려 여러 번 간하여 왕을 저지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여가가)배반하려는 마음이 있어 여러 번 병을 핑계로 한의 사신을 보지 않았다. 사신들이 모두 여가를 주의하였으나 형세가 죽일 수 없었다. 왕과 왕태후가 또한 여가 등이 먼저 일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술을 두고 한 사자를 방패삼아 믿고 여가 등을 북일 것을 모의하였다. 사신들이 동쪽을 향하고 태후는 남쪽을 향하고, 왕을 북쪽을 향하며, 재상 여가와 대신들은 모두 서쪽을 향해서 모시고 술을 마셨다. 여가의 동생은 장군이 되어 군졸을 거느리고 궁 밖에 있었다. 술이 돌면서 태후가 여가에게 말하기를 남월은 내속하는 것이 나라의 이익인데 재상이 괴로워하고 불편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여 한의 사신들이 격노하게 하였다. 사신들이 의심하여 서로 의지하다가 마침내 감히 도발하지 못하였다. 여가는 이목들이 좋지 않다 하는 것을 보고는 곧 일어나 나갔다. 태후가 노하여 작은 창으로 여가를 치려하니 왕이 태후를 저지하였다. 여가가 마침내 나가서 그 동생의 군대를 나누어 집에 들어가 병을 핑계로 왕과 사신들을 즐겨 보려하지 않았다. 이에 몰래 대신들과 난을 일으켰다. 왕이 평소에 여가를 죽이려는 뜻이 없었는데 여가가 그것을 알고 일을 여러 달 벌이지 않았다. 태후가 음란한 행실이 있어 나라 사람들이 붙지 않으므로 홀로 여가 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힘이 또한 할 수 없었다.

 

[] 集解漢書音義曰:「蒼梧越中王自名為秦王連親婚也。」 索隱案蒼梧越中王自名為秦王即下趙光是也故云有連」。連者連姻也趙與秦同姓故稱秦王

[] 集解】 「한서음의창오 월중왕은 스스로 이름을 진왕이라 하고, ‘은 혼인관계를 맺는 것이다.” 했다. 索隱살펴보니 창오 월중왕이 스스로 진왕이라 이름하였으니 곧 아래의 조광이 이이다. 그러므로 有連이라 하였다. ‘은 인척관계를 맺음이다. 조와 진은 같은 성이므로 진왕을 칭한 것이다.

 

[] 集解韋昭曰:「恃使者為介冑也。」 索隱韋昭曰恃使者為介冑」,志林云介者因也欲因使者權誅呂嘉」,然二家之說皆通韋昭以介為恃介者閒也以言閒恃漢使者之權意即得云恃為介冑則非也虞喜以介為因亦有所由介者賓主所由也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사신을 방패삼아 믿었다.” 했다. 索隱위소가 말하기를 사신을 방패삼아 믿었다.” 했고, 지림“‘이라 하여 사자를 매개로 임의대로 여가를 죽이려 하였다.”했으니 두 사람의 말이 모두 통한다. 위소는 (믿고)’라 하였다. ‘(사이)’인데 말하는 사이에 한 사신의 권세를 믿고 의지하였다 한 것은 뜻을 곧 얻었으나 介冑라 한 것은 곧 잘 못이다. 우희는 이라 하니 도한 말미암은 바가 있음이다.

 

[] 集解韋昭曰:「撞也。」 索隱韋昭云:「撞也。」字林七凶反又吳王濞傳鏦殺吳王」,與此同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창 총)’(칠 당)’이다.” 했다. 索隱위소가 말하기를 “‘이다.” 했다. 살펴보니 자림“‘이다.” 했고, 오왕비전“‘鏦殺吳王(창으로 오왕을 죽였다.)”한 것이 이와 같다.

 

[] 索隱分弟兵就舍謂分取其兵也漢書作」。被也恃也

[] 索隱동생의 군대를 나누어 집에 나아갔다. 살펴보니 그 군대를 나누어 취함을 말한다. 한서에는 라고 썼는데 이니 믿고 의지함이다.

 

天子聞嘉不聽王王太后弱孤不能制使者怯無決又以為王王太后已附漢獨呂嘉為亂不足以興兵欲使莊參以二千人往使參曰:「以好往數人足矣以武往二千人無足以為也。」辭不可天子罷參也[]壯士故濟北相韓千秋奮曰:「以區區之越又有王太后應獨相呂嘉為害願得勇士二百人必斬嘉以報。」於是天子遣千秋[]與王太后弟樛樂將二千人往入越境呂嘉等乃遂反下令國中曰

천자가 여가가 왕의 명을 듣지 않고 왕과 왕태후는 약하고 고립되어 (여가를)잘 제어하지 못하고, 사자는 겁을 내어 결단하지 못한다는 것을 들었다. 또 왕과 왕태후는 이미 한에 붙었는데 오직 여가만이 난을 일으켰으니 군대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고 장삼으로 하여금 2천명을 거느리고 사신으로 보내고자 했다. 장삼이 말하기를 좋은 일로(친선을 목적으로) 간다면 몇 사람이면 충분하고, 군대의 일로 간다면 2천명은 충분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하고는 할 수 없다고 사양하니 천자가 장삼을 파면하였다. 겹 땅의 장사이면서 옛 제북의 재상이었던 한천추가 떨쳐 말하기를 자잘한 월에 왕과 태후의 응대가 있고, 유독 재상 여가만 해를 끼치고 있으니 용사 200명을 주시면 반드기 여가를 목 베고 보고하기를 원합니다.” 했다. 이에 천자가 한천추와 왕태후의 동생규악으로 하여금 2첨 명을 거느리고 가서 월의 국경에 들어가게 하였다. 여가 등이 이에 마침내 배반하고 나라 안에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王年少太后中國人也又與使者亂專欲內屬盡持先王寶器入獻天子以自媚多從人行至長安虜賣以為僮僕取自脫一時之利無顧趙氏社稷為萬世慮計之意。」乃與其弟將卒攻殺王太后及漢使者遣人告蒼梧秦王及其諸郡縣立明王長男越妻子術陽侯[]建德為王而韓千秋兵入破數小邑其後越直開道給食未至番禺四十里越以兵擊千秋等遂滅之使人函封漢使者節置塞上[]好為謾辭謝罪發兵守要害處於是天子曰:「韓千秋雖無成功亦軍鋒之冠。」封其子延年為成安侯[]樛樂其姊為王太后首願屬漢封其子廣德為龍亢侯[]乃下赦曰:「天子微諸侯力政譏臣不討賊今呂嘉建德等反自立晏如令罪人及江淮以南[]樓船十萬師[]往討之。」

왕은 어리고 태후는 중국 사람이다. 또한 사신과 함께 음란하였으며 오로지 내속되고자 하여 선왕의 보배로운 기물을 가지고 한에 들어가 천자에게 바치는 것으로서 스스로 아첨하고, 많은 따르는 사람을 데리고 가서 장안에 이르러 빼앗고 팔아 종으로 삼으려 한다. 스스로 재앙에서 벗어나려는 한 때의 이익을 취하여 조씨의 사직을 돌아보아 만대를 위한 생각과 계책이 없다.” 했다. 이에 그 동생과 군대를 거느리고 왕과 왕태후, 한의 사신을 죽였다. 사람을 보내 창오의 진왕과 여러 군과 현에 알리고 명왕의 장남으로 월의 처자가 낳은 아들 술양후 건덕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한천추의 군대가 들어가서 몇 개의 작은 읍을 깨트렸다. 그 후 월이 단지 길을 열고 먹을 것을 공급하면서 한천추의 군대가 번우 40리쯤에 못 미쳤을 때 월이 군대로 한천추 등을 쳐서 전멸시켰다. 사람을 시켜 상자에 한의 사신의 부절을 봉하여 요새 위에 두고 좋게 속이는 말로 사죄하고 군대를 내어 요해처를 지켰다. 이에 천자가 말하기를 한천추가 비록 공을 이룸이 없었으나 또한 군대의 선봉으로 으뜸이 되었다.”하고는 그 아들 한연년을 봉하여 성안후로 삼았다. 규악은 그 누이가 왕태후로 먼저 한에 속하기를 원하였으므로 그 아들 공덕을 봉하여 용항후로 삼았다. 곧 사면하여 말기를 천자가 미약하여 제후들이 노역에 힘쓰고, 신하로 적을 토벌하지 않는 것을 춘추는 꾸짖었다. 지금 여가와 건덕이 배반하고 자립하여 편안하니 죄인과 장강, 회수 이남의 누선 10만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그들을 토벌하라.” 했다.

 

[] 集解徐廣曰:「縣屬潁川音古洽反。」 索隱如淳云:「縣名在潁州。」 正義今汝州郟城縣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현은 영천에 속하는데 음은 이다.” 했다. 索隱여순이 말하기를 “‘(고을 이름 겹)’은 현 이름이니 영천에 있다.” 했다. 正義지금의 여주 겹성현이다.

 

[] 集解徐廣曰:「為校尉。」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교위가 되었다.” 했다.

 

[] 集解徐廣曰:「元鼎四年以南越王兄越封高昌侯。」 索隱韋昭云漢所封案功臣表術陽屬下邳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원정 4년 남월왕 형인 월을 고창후에 봉하였다.” 했다. 索隱위소가 말하기를 한이 봉한 것이다.” 했다. 공신표를 살펴보니 술양하비에 속한다.


[] 索隱函封漢使節置塞上南康記以為大庾名塞上

[] 索隱상자에 한 사신의 부절을 담아 봉하여 요새 위에 두었다. 살펴보니 남강기“‘대유의 이름을 塞上이라한다.” 했다.


[] 索隱案功臣表成安屬郟

[] 索隱】 「공신표를 살펴보니 성안에 속한다.

 

[] 索隱案龍亢屬譙國漢書作」,服虔音邛晉灼云古

[] 索隱살펴보니 용항은 초국에 속한다. 한서龒侯라 썼다. 복건은 음이 이다.” 하였고, 진작은 라 했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는 하편으로 (물 합할 회)’라 쓴다.

 

[] 集解應劭曰:「時欲擊越非水不至故作大船船上施樓故號曰樓船。」

[] 集解응소가 말하기를 월을 치고자 할 때 물이 아니면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큰 배를 만들었다. 배위에 누각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을 樓船이라 한다.” 했다.


元鼎五年秋衛尉路博德為伏波將軍出桂陽下匯水[]主爵都尉楊僕為樓船將軍出豫章下橫浦故歸義越侯二人[]為戈船下厲將軍[]出零陵或下離水[]或柢蒼梧使馳義侯[]因巴蜀罪人發夜郎兵[]下牂柯江[]咸會番禺

원정 5년 가을 위위 노박덕을 복파장군으로 삼아 계양을 나가 회수를 내려가게 하고, 주작도위 양복을 누선장군으로 삼아 예장을 나가 횡포로 내려가게 하고, 이전에 귀의한 월후 두 사람을 과선과 하려장군을 삼아 영릉을 나가게 하여 한 사람은 이수를 내려가게 하고, 한 사람은 창오에 자리 잡게 하고, 치의후로 하여금 파와 촉의 죄인들과 양랑병을 징발하여 양가강을 내려가게하여 모두 번우에서 만나게 하였다.


[] 集解徐廣曰:「一作』。」駰案地理志曰桂陽有匯水通四會或作索隱劉氏云匯當作』」。漢書云下湟水」。或本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편으로 (해자 황)’이라 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지리지“‘계양에 회수에 있는데 사방으로 통하여 만난다. 혹은 자를 쓴다. 索隱유씨가 말하기를 ”‘는 마땅히 이라 써야 한다.“ 했다. 한서”‘황수를 내려갔다.“ 했다. 어떤 본에는 (땅이름 광)’이라 썼다.

 

[] 集解張晏曰:「故越人降為侯。」

[] 集解장안이 말하기를 전에 월 사람이었는데 항복하여 후가 되었다.” 했다.

 

[] 集解徐廣曰:「一作』。」駰案張晏曰越人於水中負人船又有蛟龍之害故置戈於船下因以為名也」。應劭曰水流涉上也」。瓚曰伍子胥書有戈船以載干戈因謂之戈船」。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는 한편으로 라 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장안이 말하기를 월 사람들이 물속에서 다른 사람의 배를 뒤집고, 또 교룡의 해침이 있어 배 아래에 창을 설치해 두었기 때문에 이름 한 것이다.” 했다. 응소가 말하기를 “‘(여울 뢰)’는 물이 흐르는 위를 건넘이다.” 했다. 신찬은 오자서의 글에 과선이 있는데 방패와 창을 싣기 때문에 과선이라 말한다.” 했다.

 

[] 集解徐廣曰:「在零陵通廣信。」 正義地理志云零陵縣有離水東至廣信入鬱林九百八十里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영릉에 있는데 광신에 통한다.” 했다. 正義】 「지리지에 영릉현에 이수가 있다. 동쪽으로 광신에 이르러 울림에 들어가는데 980리이다.

 

[] 集解徐廣曰:「越人也名遺。」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월 사람이니 미름은 이다.” 했다.

 

[] 正義曲州協州以南是夜郎國

[] 正義곡주’, ‘협주이남이 야랑국이다.

 

[] 正義江出南徼東通四會至番禺入海也

[] 正義강은 남쪽에서 나와 밖으로 돌아 동쪽으로 통하여 사방으로 만나 번우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

 

元鼎六年冬樓船將軍將精卒先陷尋陝[]破石門[]得越船粟因推而前挫越鋒以數萬人待伏波伏波將軍將罪人道遠會期後與樓船會乃有千餘人遂俱進樓船居前至番禺建德嘉皆城守樓船自擇便處居東南面伏波居西北面會暮樓船攻敗越人縱火燒城越素聞伏波名日暮不知其兵多少伏波乃為營遣使者招降者賜印復縱令相招樓船力攻燒敵反驅而入伏波營中犁旦[]城中皆降伏波呂嘉建德已夜與其屬數百人亡入海以船西去伏波又因問所得降者貴人以知呂嘉所之遣人追之以其故校尉司馬蘇弘得建德封為海常侯[]越郎[]都稽[]得嘉封為臨蔡侯[]

원정 6년 누선장군이 정예 군졸을 거느리고 먼저 심협을 함락시키고 석문을 깨트렸다. 월의 배에 실은 곡식을 얻어 밀어 앞으로 나아가 월의 선봉을 꺽고 수만 명으로서 복파장군을 기다렸다. 복파장군이 죄인을 거느렸고, 길이 멀어 약속보다 늦어 만났다. 누선장군과 만났을 때 천여 명이 있었고 마침내 함께 전진하였다. 누선장군이 앞에 있으면서 번우에 이르렀다. 건덕과 여가가 성을 지켰다. 누선장군은 스스로 편한 자리를 택하여 동남쪽을 향하여 주둔하고, 복파장군은 서북쪽을 향하여 주둔하였다. 날이 저물자 누선장군이 공격하여 월 사람들을 무너뜨리고 불을 질러 성을 불살랐다. 월은 평소 복파장군의 이름을 들었고, 날이 저물어 그 군대의 많고 적음을 알지 못하였다. 복파장군이 이에 군영을 설치하고 사자를 보내 항복한 자를 불러 인을 내리고 다시 풀어 주어 서로 부르게 하였다. 누선장군이 힘써 공격하여 적을 불태운 것이 도리어 월 사람들을 몰아서 복파장군의 군영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다. 새벽에 이르러 성 안이 모두 복파장군에게 항복하였다. 여가, 건덕은 이미 밤에 그 속한 사람 수 백명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로 들어가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갔다. 복파장군이 또한 항복한 사람들 중 귀한 사람에 여가가 있는 곳을 물은 뒤 사람을 보내 추격하게 하였다. 그 때문에 교위의 사마 소홍이 건덛을 잡았으므로 봉하여 해상후라 하였다. 월의 낭 도계는 여가를 잡았으므로 봉하여 임채후로 삼았다.

 

[] 索隱姚氏云:「尋陝在始興西三百里近連口也。」

[] 索隱요씨가 말하기를 심협은 시흥 서쪽 3백이에 있는데 연구에 가깝다.” 했다.

 

[] 索隱按廣州記在番禺縣北三十里昔呂嘉拒漢積石鎮江名曰石門又俗云石門水名曰貪泉』,飲之則令人變故吳隱之至石門酌水飲乃為之歌云也」。

[] 索隱살펴보니 광주기번우현 북쪽 30리에 있다. 옛 날 여가가 한에 대항하면서 돌을 쌓고 강을 메워 이름을 석문이라 했다. 또 세속에서 석문수를 탐천이라 하였는데 그것을 마시면 곧 사람을 변하게 한다. 그러므로 오은지가 석문에 이르러 물을 떠 마시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

 

[] 集解徐廣曰:「呂靜云犁結也音力奚反猶連及逮至也。」漢書犁旦遲旦」,謂待明也索隱鄒氏云一作』,比音必至反」。然犁即比義又解犁黑也天未明尚黑時也漢書亦作遲明」。遲音稚待也亦犁之義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여정은 (밭을 갈 리)’는 맺음이니 음은 이다. ‘連及(이어 미침)’逮至(이름)이다.’” 했다. 한서에는 犁旦遲旦이라 했는데 밝음을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索隱는 한편으로 라 스는데 의 음은 이다.“ 했다. 그러나 는 곧 의 듯이다. 로 풀어내니 검음인데 하늘이 아직 밝지 않고 오히려 검은 때이다. 한서에 또한 遲明이라 썼다. ‘의 음은 (어릴 치)’이다. ‘는 기다림이니 또한 의 뜻이다.

 

[] 集解徐廣曰:「在東萊。」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동래에 있다.” 했다.

 

[] 集解徐廣曰:「南越之郎官。」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남월의 낭관이다.” 했다.

 

[] 集解徐廣曰:「表曰孫都。」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손도’”라 했다.

 

[] 索隱案表屬河內

[] 索隱살펴보니 하내에 속한다.” 했다.

 

蒼梧王趙光者越王同姓聞漢兵至及越揭陽令定[]自定屬漢越桂林監居翁[]諭甌駱屬漢[]皆得為侯[]戈船下厲將軍兵及馳義侯所發夜郎兵未下南越已平矣遂為九郡[]伏波將軍益封樓船將軍兵以陷堅為將梁侯

창오왕 조광은 조왕과 성이 같다. 한의 군대가 이른다는 것을 듣고 월의 게양령인 정과 함께 스스로 한에 복속하기로 정하였다. 월의 계림감인 거옹은 구락에게 한에 복속할 것을 종용하였다. 모두 후가 될 수 있었다. 과선과 하여장군의 군대와 치의후가 징발한 야랑의 군대가 미쳐 내려오지 않았는데 남월이 이미 평정되었다. 마침내 9개 군을 삼았다. 복파장군은 봉을 더하였다. 누선장군은 군대로서 견고한 군대를 함몰시켰으므로 장량후로 삼았다.


[] 集解韋昭曰:「揭音其逝反。」 索隱地理志揭陽縣屬南海揭音桀韋昭音其逝反劉氏音求例反定者令之名也漢功臣表云定揭陽令」,意又別也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의 음은 (갈 서)’이다.” 했다. 索隱】 「지리지게양현은 남해에 속한다.” 했다. ‘의 음은 이다. 위소는 음이 이라 하고, 유씨는 음이 이다. ‘은 게양령의 이름이다. 살펴보니 한공신표게양현령을 정하였다.” 아마도 또한 구별하려는 것이다.

 

[] 集解漢書音義曰:「桂林郡中監姓居名翁也。」

[] 集解】 「한서음의계림군 안의 감이니 성은 거이고 이름은 옹이다.

 

[] 索隱案漢書甌駱三十餘萬口降漢

[] 索隱】 『한서를 살펴보니 구락 30여만 인구가 한에 복속하였다.


[] 索隱案漢書云光聞漢兵至封為隨桃侯揭陽令史定為安道侯越將畢取為膫侯桂林監居翁為湘城侯」。韋昭云湘城屬堵隨桃安道膫三縣皆屬南陽膫音遼也」。

[] 索隱살펴보니 한서조광이 한의 군대가 이르는 것을 듣고 항복하니 봉하여 수도후로 삼았다. 게양령의 사인 정은 안도후가 되고, 월의 장군인 필취는 요후가 되고, 계림감 거옹은 상성후가 되었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상성은 도양에 속한다. 수도, 안도, 요의 3현은 모두 남양에 속한다. ‘의 음은 이다.” 했다.

     

[] 集解徐廣曰:「珠崖南海蒼梧九真鬱林日南合浦交阯。」 索隱徐廣皆據漢書為說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담이, 주애, 남해, 창오, 구진, 울림, 일남, 합포, 교지이다.” 했다. 索隱서광은 모두 한서에 의거하여 말하였다.

 

自尉佗初王後五世九十三歲而國亡焉

위타가 처음 왕이 된 후부터 593년만에 나라가 망하였다.

 

太史公曰尉佗之王本由任囂遭漢初定列為諸侯隆慮離溼疫佗得以益驕甌駱相攻南越動搖漢兵臨境嬰齊入朝其後亡國徵自樛女呂嘉小忠令佗無後樓船從欲怠傲失惑伏波困窮智慮愈殖因禍為福成敗之轉譬若糾

태사공이 말하기를 위타가 왕이 된 것은 본래 임오에 말미암았다. 한이 처음 평정함을 만나 제후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융려후가 습하고 전염병에 걸리자 위타가 더욱 교만해졌다. 구락에서 남월을 공격하니 남월이 동요하였다. 한의 군대가 경계에 맞대자 영제가 입조하였다. 그 후 나라가 망하였는데 징조는 규씨 딸로부터였다. 여가의 작은 충성으로 위타의 후사가 끊기게 되었다. 누선장군이 욕심을 따라 태만하고 오만하여 미혹됨에 잘못을 저질렀다. 복파장군이 곤궁할 때 지혜와 생각이 더욱 자라나서 화가 복이 되었다. 이룸과 무너짐의 뒤바뀜은 비유하면 먹줄을 긋는 것과 같다.” 했다.


索隱述贊中原鹿走群雄莫制漢事西驅越權南裔陸賈騁說尉他去帝嫪后內朝呂嘉狼戾君臣不協卒從剿

索隱述贊들판에 사슴이 달리는데 여러 영웅이 제압하지 못한다. 한이 서쪽으로 몰아감에 종사하자 월은 남쪽 변방의 땅을 저울질 하였다. 육가는 말을 함부로 하였고, 위타는 제의 칭호를 떼었다. 규후는 內朝를 만들고 여가는 탐욕스러웠다. 임금과 신하가 화합하지 못하여 마침내 죽이고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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