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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권116 서남이열전56

by 최인표 2019. 9. 9.

史記卷一百一十六

  西南夷列傳第五十六  

 

西南夷君長[]以什數[]夜郎最大[]其西靡莫[]之屬[]以什數最大[]自滇以北君長以什數都最大此皆魋結[]耕田有邑聚其外西自同師以東[]北至楪[]名為嶲昆明[]皆編髮隨畜遷徙[一一]毋常處毋君長地方可數千里自嶲以東北君長以什數[一二]最大自筰以東北君長以什數冉駹最大[一三]其俗或士箸或移徙在蜀之西自冉駹以東北君長以什數白馬最大[一四]皆氐類也此皆巴蜀西南外蠻夷也

서남이의 군장은 십수 명인데 야랑이 가장 크다. 그 서쪽의 미모 등속이 십수 명인데 전이 가장 크다. 전으로부터 이북의 군장이 십수 명인데 공도가 가장 크다. 이는 모두 머리를 묶고, 밭을 갈며 마을이 있다. 그 외 서쪽의 동사 동쪽으로부터 북쪽으로 접유에 이르기까지는 이름을 휴, 곤명이라 하는데 모두 편발하고 가축을 따라 옮겨 다녀서 항상 머무는 곳이 없으며, 군장이 없는데 땅은 사방 수천리 정도 된다. 휴로부터 동북쪽은 군장이 십수 명인데 사와 작도가 가장 크다. 작으로부터 동북쪽은 군장이 십수 명인데 염방이 가장 크다. 그 풍속은 혹은 땅에 붙어살고, 혹은 옮겨 다니는데 촉의 서쪽에 있다. 염방으로부터 동북쪽으로 군장이 십수 명인데 백마가 가장 큰데 모두 저족의 무리이다. 이는 모두 파와 촉의 서남쪽 외곽의 오랑캐이다.

[] 正義在蜀之南

[] 正義촉의 남쪽에 있다.

 

[] 索隱劉氏音所具反鄒氏音所主反

[] 索隱유씨는 음이 이다. 했다. 추씨는 음이 “‘이다.” 했다.

 

[] 索隱荀悅云:「犍為屬國也。」韋昭云:「漢為縣屬牂。」後漢書云夜郎東接交阯其地在胡南其君長本出於竹以竹為姓也」。正義今瀘州南大江南岸協州曲州本夜郎國

[] 索隱순열이 말하기를 “‘(불깐 소 건)’을 속국으로 하였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한이 현을 삼아 장가에 속하게 했다.” 했다. 살펴보니 후한서야랑은 동쪽으로 교지에 접하고, 그 땅은 호남에 있으며, 그 군장은 본래 죽에서 나왔기 때문에 죽으로서 성을 삼았다.” 했다. 正義지금의 노주 남쪽 대강 남쪽 물가의 협주, 곡주는 본래 야랑국이었다.

[] 索隱夷邑名滇與同姓

[] 索隱오랑캐의 읍 이름이니 전과 동성이다.

 

[] 正義在蜀南以下及西也靡非在姚州北去京西南四千九百三十五里即靡莫之夷

[] 正義촉의 남쪽이하와 서쪽에 있다. 미는 요주의 북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서울 서남쪽 4935리 떨어져 있으니 곧 미막의 오랑캐이다.

[] 集解如淳曰:「滇音顛顛馬出其國也。」 索隱崔浩云:「後為縣越嶲太守所理也。」 正義昆州郎州等本滇國去京西五千三百七十里也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성할 전)’의 음은 (꼭대기 전)’이다. 전마가 그 나라에서 나온다.” 했다. 索隱최호가 말하기를 후에 현이 되었는데 월휴태자가 다스리던 곳이다.” 햇다. 正義곤주, 낭주 등은 본래 전인데 서울 서쪽으로 5370리 떨여져 있다.

 

[] 索隱魋漢書作」,音直追反結音計

[] 索隱(으뜸 괴)’한서(몽치 추)”로 썼는데 음은 이다. ‘의 음은 이다.

 

[] 集解韋昭曰:「邑名也。」 索隱韋昭云邑名漢書作桐師」。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음으 이름이다.” 했다. 索隱위소가 말하기를 읍의 이름이다.” 했다. 한서에는 桐師라 썼다.

 

[] 集解韋昭曰:「在益州楪音葉。」 索隱韋昭曰:「益州縣楪音葉。」 正義上音葉楪澤在靡北百餘里漢楪榆縣在澤西益都靡非本葉榆王屬國也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익주에 있다. ‘(평상 접)’의 음은 이다.” 했다. 索隱위소가 말하기를 익주현이다. ‘의 음은 이다.” 했다. 正義위의 음은 이다. 접택은 미의 북쪽 백여리에 있다. 한 접유현은 늪 서쪽 익도에 있다. 미비는 본래 접유왕의 속국이다.

 

[] 集解徐廣曰:「永昌有嶲唐縣。」 索隱崔浩云:「二國名。」韋昭云:「益州縣。」 正義嶲音髓今嶲州也昆明嶲州縣蓋南接昆明之地因名也

[0]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영창은 휴당현에 있다.” 했다. 索隱최호가 말하기를 두 나라 이름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휴는 익주현이다.” 했다. 正義의 음은 (골수 수)’이다. 지금의 휴주이다. 곤명, 휴주현은 대개 곤명의 땅에 접하고 있다. 때문에 이름한 것이다.

 

[一一] 正義編步典反許又反皆嶲昆明之俗也

[一一] 正義이다. ‘이다. 모두 휴와 곤명의 풍속이다.

 

[一二] 集解徐廣曰:「徙在漢嘉筰音昨在越嶲。」 索隱服虔云:「二國名。」韋昭云:「徙縣屬蜀筰縣在越嶲。」徐廣云:「筰音昨。」 正義徙音斯括地志云:「筰州本西蜀徼外曰貓羌嶲地理志云徙縣也華陽國志雅州邛郲山本名邛筰山故邛人筰人界。」

[一二]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는 한가에 있다. ‘(풀 먹을 작)’의 음은 이니 월휴에 있다.” 했다. 索隱복건이 말하기를 두 나라 이름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사현은 촉에 속한다. 작현은 월휴에 있다.” 했다. 서광이 말하기를 “‘의 음은 이다.” 했다. 正義의 음은 이다. 괄지지작주는 본래 서촉의 외곽으로 묘강휴라 말한다.” 했다. 지리지사양현이다.” 했다. 화양국지아주 공래산으로 본래 공작산이라 이름하였기 때문에 공의 사람과 작의 사람이 경계를 이루었다.” 했다.

 

[一三] 索隱案應劭云汶江郡本冉駹音亡江反」。正義括地志云:「蜀西徼外羌茂州冉州本冉駹國地也後漢書云冉駹其山有六夷七羌九氐各有部落也。」

[一三] 索隱살펴보니 응소가 말하기를 문강군은 본래 염방이다. 음은 이다.” 했다. 正義】 『괄지지촉의 서쪽 외곽의 오랑캐지역인 무주, 염주는 본래 염방국 땅이다. 후한서염방의 산에 6이와 7, 9저가 있는데 각기 부락이 있다.“ 했다.

 

[一四] 索隱案夷邑名即白馬氐正義括地志云:「隴右成州武州皆白馬氐其豪族楊氏居成州仇池山上。」

[一四] 索隱살펴보니 오랑캐의 읍 이름이니 곧 백마저이다. 正義】 『괄지지농우의 성주, 무주는 모두 백마저인데 그 호족 양씨가 성주 구지산 위에 살았다.” 했다.

 

始楚威王時使將軍莊蹻[]將兵循江上略巴、(黔中以西莊蹻者故楚莊王苗裔也蹻至滇池,(方三百里[]旁平地肥饒數千里以兵威定屬楚欲歸報會秦擊奪楚巴黔中郡道塞不通因還以其眾王滇變服從其俗以長之秦時常頞[]略通五尺道[]諸此國頗置吏焉十餘歲秦滅及漢興皆棄此國而開蜀故徼巴蜀民或竊出商賈取其筰馬僰僮[]髦牛以此巴蜀殷富

처음 초나라 위왕 때 장군 장교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강가를 따라 파와 () 검중 서쪽을 침략하게 하였다. 장교는 옛 초나라 장왕의 후예이다. 장교가 전지에 이르렀는데 땅이 사방 300리였고, 옆은 평지로 비옥한 땅이 수천리였는데 군대의 위엄으로 평정하여 초나라에 속하게 했다. 돌아가 보고하려 하는데 진나라가 초나라 파와 검중군을 쳐서 빼앗으니 길이 막혀 통하지 않자 돌아가 그 무리를 데리고 전에서 왕 노릇하면서 옷을 바꾸어 입고 그 풍속을 따르는 것으로서 우두머리가 되었다. 진나라 때 상안이 침략하여 폭 다섯 자의 길을 통하게 하고는 여기의 여러 나라에 관리를 두었다. 10여년 후 진나라가 멸망하였다. 한이 흥기함에 이르러 모두 여기의 나라들을 버리고 촉의 옛 요를 열었다. 파와 촉의 백성들이 혹 몰래 나가 장사하고 그 작마와 복동, 모우를 취하였는데 이로써 파와 촉이 넉넉하고 부유해졌다.

[] 索隱音炬灼反楚莊王弟為盜者正義其略反郎州昆州即莊蹻所王

[] 索隱음은 (횃불 거)’(사를 작)’이다. 초 장왕의 동생으로 도적이 된 자이다. 正義이다. 낭주와 곤주는 곧 장교가 왕 노릇 하던 곳이다.

 

[] 索隱滇池方三百里地理志益州滇池縣澤在西北後漢書云:「其池水源深廣[]更淺狹有似倒流故謂滇池。」 正義括地志云:「滇池澤在昆州晉寧縣西南三十里其水源深廣而[]更淺狹有似倒流故謂滇池。」

[] 索隱전지는 사방 300리이다. 지리지익주 전지현조에는 늪이 서북쪽에 있다.” 했다. 후한서그 못의 수원은 깊고 넓되 끝은 다시 얕고 좁아져서 뒤집어 흐르는 듯함이 있기 때문에 전지라고 한다.” 했다. 正義】 『괄지지전지택은 곤주 진녕현 서남쪽 30리에 있다. 그 수원은 깊고 넓지만 끝은 다시 얕아지고 좁아져 거꾸로 흐르는 듯하게 때문에 전지라 말한다.” 했다.

[] 集解音案

[] 集解음은 이다.

 

[] 索隱謂棧道廣五尺正義括地志云:「五尺道在郎州顏師古云其處險阨故道纔廣五尺如淳云道廣五尺。」

[] 索隱잔도의 폭이 다섯 자임을 말한다. 正義】 『괄지지오척도는 난주에 있다. 안사고가 말하기를 그 곳은 험준하기 때문에 길이 폭이 겨우 다섯자이다.’ 여순이 말하기를 길의 폭이 다섯자이다.” 했다.

[] 索隱韋昭云:「屬犍為音蒲北反。」服虔云:「舊京師有僰婢。」 正義今益州南戎州北臨大山古僰國

[] 索隱위소가 말하기를 “‘은 건위에 속하고, 음은 (부들 포)’이다.” 했다. 복건이 말하기를 옛 경사에 북비(북족의 여자 종)가 있었다.” 했다. 正義지금의 익주 남융주 북쪽 임대산이 옛 북국이다.

建元六年大行王恢擊東越東越殺王郢以報恢因兵威使番陽令[]唐蒙風指曉南越南越食蒙蜀枸醬[]蒙問所從來西北牂柯牂柯江[]廣數里出番禺城下」。蒙歸至長安問蜀賈人賈人曰:「獨蜀出枸醬多持竊出市夜郎夜郎者臨牂柯江江廣百餘步足以行船南越以財物役屬夜郎西至同師然亦不能臣使也。」蒙乃上書說上曰:「南越王黃屋左纛地東西萬餘里名為外臣實一州主也今以長沙豫章往水道多絕難行竊聞夜郎所有精兵可得十餘萬浮船牂柯江出其不意此制越一奇也誠以漢之彊巴蜀之饒通夜郎道為置吏易甚。」上許之乃拜蒙為郎中將將千人食重萬餘人[]從巴蜀筰關入遂見夜郎侯多同蒙厚賜喻以威德約為置吏使其子為令夜郎旁小邑皆貪漢繒帛以為漢道險終不能有也乃且聽蒙約還報乃以為犍為郡發巴蜀卒治道自僰道指牂柯江[]蜀人司馬相如亦言西夷邛筰可置郡使相如以郎中將往喻皆如南夷為置一都尉十餘縣屬蜀

건원 6년 대행 王恢(넓을 회)가 동월을 치자 동월이 왕영을 죽이는 것으로서 (항복의 의사를)알렸다. 왕회가 군대의 위세로 번양령 당몽을 시켜 넌지시 남월을 깨우치게 하였다. 남월이 당몽에게 촉의 구장을 먹이니 당몽이 들여 온 곳을 물으니 말하기를 서북쪽 장가로부터 오는데 장가강은 넓이가 수 리이며 번우성 아래로 나옵니다.” 했다. 당몽이 돌아가 장안에 이르러 촉에서 온 상인에게 물으니 상인이 말하기를 오직 촉에서만 구장이 니오고 많이 몰래 지니고 나와 양랑에서 팝니다. 야랑은 장가강 가에 있는데 강의 넓이가 100여보인데 충분히 배를 가게할 수 있습니다. 남월이 재물로 야랑을 부리고 속하게 하여 (영향력이)서쪽으로 동사에 이르나 또한 신하로 부리지는 못합니다.” 했다. 당몽이 이에 글을 올려 천자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남월왕은 황옥자독의 제도를 시행하고 땅은 동서로 만 여리이며, 이름은 외신이라 하나 실제는 한 주의 주인입니다. 지금 장사와 예장으로 갈 때 물길이 많이 끊어져 가기 어렵습니다. 가만히 들으니 야랑이 소유하고 있는 정에 군대가 10 여만 명 정도 된다하니 장가강에 배를 띄워 그 뜻하지 않게 나아간다면 이는 월을 제압할 수 있는 하나의 기이한 계책입니다. 진실로 한의 강성함과 파와 촉의 풍요로움으로 야랑의 길을 통하여 관리를 두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하니 천자가 그것을 허락하였다. 이에 당몽에게 벼슬을 주어 낭중장으로 삼고 천명과 보급부대 만 여명을 거느리게 하여 파와 촉, 작관으로부터 들어가게 하니 마침내 야랑후 다동을 만났다. 당몽이 후하게 내리고 위엄과 덕으로 깨우쳐서 관리를 두기로 약속하고 그 아들로 하여금 령이 되게 하였다. 야랑 옆의 작은 읍들은 모두 한의 繒帛을 탐하였으나 한으로 가는 길이 험하다 여겨 끝내 소유하지 못하였는데 이에 또한 당몽과의 약속을 받아들였다. 돌아가 보고하니 곧 건위군으로 삼았다. 파와 촉의 병졸을 징발하여 길을 닦았는데 북도로부터 장가강으로 향하였다. 촉 사람인 사마상여가 또한 서이의 공과 작은 군을 둘만하다.” 말하였다. 사마상여로 하여금 낭중장으로서 가서 깨우치게 하니 모두 남이처럼 한 개 도위, 10여개 군을 두어 촉에 속하게 했다.

 

[] 正義番音婆

[] 正義의 은은 이다.

 

[] 集解徐廣曰:「一作』,音窶。」駰案漢書音義曰枸木似穀樹其葉如桑葉用其葉作醬酢蜀人以為珍味」。索隱蒟晉灼音矩劉德云蒟樹如桑其椹長二三寸味酢取其實以為醬」。又云蒟緣樹而生非木也今蜀土家出蒟實似桑椹味辛似薑不酢」。又云取葉」。此注又云葉似桑葉非也廣志云色黑味辛下氣消穀」。求羽反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는 한편으로 라고도 쓰는데 음은 (가난할 구)’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한서음의구목은 곡수와 비슷한데 그 잎은 뽕나무 잎과 같다. 그 잎을 써서 장초를 만들면 맛이 좋아 촉 사람들이 진미로 여긴다.’” 했다. 索隱구장이다. 살펴보니 진작은 음이 (곱자 구)’이다.” 했다. 유덕이 말하기를 “‘구수는 뽕나무와 비슷한데 그 오디는 길이가 두, 세치로 맛은 시다. 그 열매를 취하여 장을 만들면 맛이 좋다.” 했다. 또 말하기를 구장은 나무를 타고 자라지만 나무는 아니다. 지금 촉의 토가에서 구장이 나오는데 열매는 뽕나무 오디와 비슷하고 맟은 맵고 생강과 비슷하나 시지 않다.” 했다. 또 말하기를 잎을 딴다.” 했다. 이 주에 도한 말하기를 잎은 뽕나무 잎과 비슷하다. 했으나 아이다. 광지검은 색이고, 맛이 매우며 기를 낮추고 곡식을 소화시킨다.“ 했다. ”(가난할 구)‘이다.

 

[] 正義崔浩云:「牂柯繫船杙。」常氏華陽國志云:「楚頃襄王時遣莊蹻伐夜郎軍至且蘭船於岸而步戰既滅夜郎以且蘭有椓船柯處乃改其名為牂柯。」

[] 正義최호가 말하기를 장가는 배를 매다는 말뚝이다.” 했다. 상시의 화양국지초나라 경양왕 때 장교를 보내 야랑을 토벌하고 군대가 차란에 이르러 물가에 배를 치고 걸어가면서 싸웠다. 야랑을 멸망시킨 후에 차란으로 배를 나뭇가지로 친 곳이 있어서 이에 그 미름을 고쳐 장가라 한 것이다.” 했다.

[] 索隱案食貨輜重車也音持用反

[] 索隱살펴보니 식화지의 짐 싣는 수레(輜重車)이다.]

[] 索隱道牂柯江崔浩云:「牂柯繫船杙也以為地名。」道猶從也地理志夜郎又有豚水東至南海四會入海此牂柯江

[] 索隱장가강을 따라가는 것이다. 최호가 말하기를 “‘장가는 배를 매는 말뚝인데 땅 이름으로 삼았다.” 했다. ‘과 같다. 지리지에 야랑에 또한 돈수가 있는데 동쪽으로 남해에 이르기까지 네 번 만나 바다에 들어 간는데 이것이 장가강이다.

 

當是時巴蜀四郡[]通西南夷道戍轉相饟數歲道不通士罷餓離溼死者甚眾西南夷又數反發兵興擊秏費無功上患之使公孫弘往視問焉還對言其不便及弘為御史大夫是時方築朔方以據河逐胡弘因數言西南夷害可且罷專力事匈奴上罷西夷獨置南夷夜郎兩縣一都尉[]稍令犍為自葆[]

이러한 때를 당하여 파와 촉 4군이 서이도와 남이도를 통하기 위해 수자리 사는 군사를 돌리고 서로 건량을 주었다. 여러 해가 지나도 길이 통하지 않자 군사들이 파리하고 굶주리며 유리하고 습한 기운에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서남이가 또한 여러 번 배반하니 군대를 징발하여 쳤으나 비용만 소모하고 공은 없었다. 천자가 근심하여 공손홍으로 하여금 가서 (사정을)보고 물어보게(조사하게) 하였다. 돌아와 대답하여 불편함(불리함)을 말하였다. 공손홍이 어사대부가 됨에 이르렀는데 이때 바야흐로 삭방에 성을 쌓는 것으로서 황하를 근거하여 오랑캐를 축출하려 하였다. 공손홍이 여러 차례 서남이의 해로움을 말하며 그만두고 흉노의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다. 천자가 서남이의 일을 그만두고 다만 남이와 야랑 두 현에 도위 하나만을 두고 점차 건위군으로 하여금 스스로 지켜 나가게 하였다.

[] 集解徐廣曰:「漢中巴郡廣漢蜀郡。」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한중, 파군, 광한, 촉군이라 했다.

 

[] 集解徐廣曰:「元光六年南夷始置郵。」

[] 서광이 말하기를 원광 6년 남이가 처음 우정을 두었다.

 

[] 正義令犍為自葆守而漸修成其郡縣也

[] 正義건위군으로 하여금 스스로 잘 지켜 점차 그 군현을 닦아 이루게 한 것이다.

及元狩元年博望侯張騫使大夏來言居大夏時見蜀布邛竹杖[]使問所從來從東南身毒國[]可數千里得蜀賈人市」。或聞邛西可二千里有身毒國騫因盛言大夏在漢西南慕中國患匈奴隔其道誠通蜀身毒國道便近有利無害於是天子乃令王然于柏始昌呂越人等使閒出西夷西指求身毒國至滇滇王嘗羌[]乃留為求道西十餘輩歲餘皆閉昆明[]莫能通身毒國

원수 1년 박망후 장건이 대하에 사신갔다가 돌아왔는데 대하에 머물 때 촉에서 생산되는 포, 공의 대나무 지팡이를 보고 그 온 것을 물었더니 말하기를 동남으 신독으로부터 오는데 수천리 정도이나 촉의 상인들이 시장에서 파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했다. 어떤 이에게 들으니 공의 서쪽 2천리 정도에 신독국이 있다.” 한다. 장건이 때문에 조금 과장하여 말하기를 대하는 한의 서남쪽에 있는데 중국을 동경하나 흉노가 그 길에 끼어 있음을 근심하니 진실로 촉과 통하면 신독국 길이 편하고 가까우며 이로움은 있지만 해로움은 없다.” 했다. 이에 천자가 곧 왕연우, 백시창, 여월인 등에게 명령을 내려 조용히(몰래)서이의 서쪽으로 나가 신독국을 찾게하였다. 전에 이르니 전왕 상강이 곧 억류하고 대신하여 길을 찾아서 서쪽으로 간 이가 10여 무리였다. 1년 정도 후 모두 곤명에 막혀 신독국과 통할 수 없었다.

 

[] 集解韋昭曰:「邛縣之竹屬蜀。」瓚曰:「山名此竹節高實中可作杖。」

[] 集解위소가 말하기를 공현의 대나무이니 촉에 속한다.” 찬이 말하기를 “‘은 산 이름이다. 이 대나무는 마디가 길고 속이 실하여 지팡이를 만들만 하다.” 했다.

[] 集解徐廣曰:「字或作』。漢書直云身毒』,史記一本作乾毒』。」駰案漢書音義曰一名天竺』,則浮屠胡是也」。索隱身音捐毒音篤一本作乾毒」。漢書音義一名天竺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글자는 혹 이라 쓰기도 한다. 한서에 곧바로 身毒이라 했고, 사기의 어떤 본에는 乾毒이라 썼다.” 했다. 인이 살펴보니 한서음의일명 天竺이라 하니 곧 부도호 이것이다.” 했다. 索隱의 음은 (버릴 연)’이고, ‘으 음은 이다. 어떤 본에는 乾毒이라 썼다. 한서음의에 일명 천축이라 썼다.

 

[] 集解徐廣曰:「一作』。」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은 한편으로 으로도 쓴다.

 

[] 集解如淳曰:「為昆明所閉道。」 正義昆明在今嶲州南昆縣是也

[] 集解여순이 말하기를 곤명이 길을 막았다.” 했다. 正義곤명은 지금의 휴주 남쪽 곤현이 이것이다.

滇王與漢使者言曰:「漢孰與我大?」及夜郎侯亦然以道不通故各自以為一州主不知漢廣大使者還因盛言滇大國足事親附天子注意焉

전왕이 한의 사신과 이야기하면서 말하기를 한과 우리 중에 누가 더 큰가?”하였다. 야랑후가 또한 그렇게 말하였다. 길로서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각기 스스로 한 주의 주인으로 여기서 한이 넓고 큼을 알지 못하였다. 사신이 돌아가 인하여 과장되게 말하기를 전은 큰 나라이니 충분히 친하게 지낼만하다. 했다.” 천자가 이 말에 주의하였다.

 

及至南越反上使馳義侯因犍為發南夷兵且蘭[]君恐遠行旁國虜其老弱乃與其眾反殺使者及犍為太守漢乃發巴蜀罪人嘗擊南越者八校尉擊破之會越已破漢八校尉不下即引兵還行誅頭蘭[]頭蘭常隔滇道者也已平頭蘭遂平南夷為牂柯郡夜郎侯始倚南越南越已滅會還誅反者夜郎遂入朝上以為夜郎王

남월이 배반함에 이르자 천자가 치의후로 하여금 건위군을 통하여 남이의 군대를 징발하게 하였다. 차란의 임금이 멀리 가는 것을 두려워하였는데 이웃 나라가 그 노약자를 포로로 잡을까 해서였다. 이에 그 무리들과 함께 배반하여 사신과 건위군의 태수를 죽였다. 한이 이에 파와 촉의 죄수를 징발하여 일찍이 남월을 쳤던 여덟 교위로 그들을 쳐서 깨트렸다. 마침 월이 이미 깨트려졌기 때문에 한의 여덟 교위가 내려가지 않고 곧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다가 두란에가서 죽였다.(명망시켰다.) 두란은 항상 전의 길을 막던 자였다. 이미 두란을 평정하고는 마침내 남이를 평정하고 장가군을 삼았다. 야랑후가 처음에 남월에 기대었는데 남월이 이미 멸망하고 마침 (한의 군대가)돌아가다 배반하는 자들을 죽이니 야랑후가 마침내 입조하였다. 천자가 야랑왕으로 삼았다.

[] 索隱上音子餘反小國名也後縣屬牂柯

[] 索隱위의 음은 이다. 소국의 이름이다. 후에 현이 되어 장가군에 속하였다.

 

[] 索隱即且蘭也

[] 索隱곧 차란이다.

 

南越破後及漢誅且蘭邛君并殺筰侯冉駹皆振恐請臣置吏乃以邛都為越嶲郡筰都為沈犁郡冉駹為汶山郡[]廣漢西白馬為武都郡

남월을 깨트린 후 한이 차란과 공의 임금을 죽이고 아울러 작후를 죽이니 염방이 모두 떨며 두려워하여 신하가 되고, 관리를 둘 것을 청하였다. 이에 공도를 월구군으로 삼고, 작도를 침려군으로 삼으며 염방을 문산군으로 삼고, 광한 서쪽 백마를 무도군으로 삼았다.

[] 集解應劭曰:「今蜀郡岷江。」

[] 集解응소가 말하기를 지금의 촉군 민강이다.” 했다.

 

上使王然于以越破及誅南夷兵威風喻滇王入朝滇王者其眾數萬人其旁東北有勞濅靡莫[]皆同姓相扶未肯聽勞濅靡莫數侵犯使者吏卒元封二年天子發巴蜀兵擊滅勞濅靡莫以兵臨滇滇王始首善以故弗誅滇王離難西南夷舉國降請置吏入朝於是以為益州郡賜滇王王印復長其民西南夷君長以百數獨夜郎滇受王印滇小邑最寵焉

천자가 왕연우로 하여금 월을 깨트린 것과 남이를 죽인 군대의 위엄으로 넌지시 전왕이 입조하도록 깨우치게 하였다. 전왕은 그 무리가 수 만인이고, 그 곁 동북쪽에는 노침과 미막이 있어 모두 성이 같고 서로 도와 즐겨 듣지 않았다. 노침과 미막이 여러 번 사신과 관리와 병졸을 침범하였다. 원봉 2년 천자가 파와 촉의 군대를 징발하여 노침과 미막을 쳐 멸망시키고 군대로 전을 마주하였다. 전왕은 처음부터 관계를 잘 하였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 전왕이 서남이의 전레를 따라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 관리를 두고 입조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익주군을 삼고 전왕의 왕인을 내리고 다시 그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게 했다. 서남이의 군장이 백수 명인데 단지 야랑과 전 만이 왕의 인을 받았다. 전은 소읍으로 가장 총애를 받았다.

[] 索隱勞濅靡莫二國與滇王同姓

[] 索隱노침미막이다. 두 나라는 전왕과 같은 성이다.

 

 

太史公曰楚之先豈有天祿哉在周為文王師封楚及周之衰地稱五千里秦滅諸候唯楚苗裔尚有滇王漢誅西南夷國多滅矣唯滇復為寵王然南夷之端見枸醬番禺大夏杖邛竹西夷後揃[]剽分二方[]卒為七郡[]

태상공이 말하기를 초나라의 선조가 무슨 하늘의 록이 있었겠는가? 주나라 때 문왕의 스승이 되어 초에 봉해졌다. 주나라가 쇠퇴함에 이르러 땅은 5천리라 잃컬어졌다. 진나라가 제후를 멸하였으나 오직 초의 후예로 오히여 전왕이 있었다. 한이 서남이를 죽이고 나라를 많이 없앴는데 오직 전만이 다시 총애 받는 왕이 되었다. 그러나 남이 정벌의 단서는 구장과 번우, 대하의 지팡이 공의 대나무에 있었다. 서이는 후에 나뉘어져 두 지방이 되었고, 끝내 일곱 개 군이 되었다.” 했다.

[] 集解漢書音義曰:「音翦。」 索隱音剪揃謂被分割也

[] 集解】 「한서음의음은 (자를 전)’이다. ‘(자를 전)은 나뉘어짐을 당함이다’” 했다.

 

[] 索隱剽音匹妙反言西夷後被揃迫逐遂剽居西南二方各屬郡縣剽亦分義

[] 索隱】 【索隱(빠를 표)’의 음은 이다. 서이가 후에 나늬고, 몰리고 쫒겨서 마침내 흩어져 서남이의 두 지방에 살면서 각기 군과 현에 속하게 되었음을 가 또한 나눈다는 뜻이다.

 

[] 集解徐廣曰:「犍為牂柯越嶲益州武都沈犁汶山地也。」

[] 集解서광이 말하기를 건우, 장가, 월수, 익주, 무도, 심려, 문산의 땅이다.” 했다.

 

索隱述贊西南外徼莊蹻首通漢因大夏乃命唐蒙勞寖靡莫異俗殊風夜郎最大筰稱雄及置郡縣萬代推功

索隱述贊서남쪽 외곽은 장교가 처음 길을 통하게 했다. 한이 대하로 인하여 이에 당몽에게 명하였다. 노침, 미막은 풍속이 다르다. 야랑은 가장 크고 공과 작은 영웅을 일컬었다. 군현을 둠에 이르러 만대가 공을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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