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一百一十六
西南夷列傳第五十六
西南夷君長[一]以什數,[二]夜郎最大;[三]其西靡莫[四]之屬[五]以什數,滇最大;[六]自滇以北君長以什數,邛都最大:此皆魋結,[七]耕田,有邑聚。其外西自同師以東,[八]北至楪榆,[九]名為嶲、昆明,[一0]皆編髮,隨畜遷徙,[一一]毋常處,毋君長,地方可數千里。自嶲以東北,君長以什數,徙、筰都[一二]最大;自筰以東北,君長以什數,冉駹最大。[一三]其俗或士箸,或移徙,在蜀之西。自冉駹以東北,君長以什數,白馬最大,[一四]皆氐類也。此皆巴蜀西南外蠻夷也。
서남이의 군장은 십수 명인데 야랑이 가장 크다. 그 서쪽의 미모 등속이 십수 명인데 전이 가장 크다. 전으로부터 이북의 군장이 십수 명인데 공도가 가장 크다. 이는 모두 머리를 묶고, 밭을 갈며 마을이 있다. 그 외 서쪽의 동사 동쪽으로부터 북쪽으로 접유에 이르기까지는 이름을 휴, 곤명이라 하는데 모두 편발하고 가축을 따라 옮겨 다녀서 항상 머무는 곳이 없으며, 군장이 없는데 땅은 사방 수천리 정도 된다. 휴로부터 동북쪽은 군장이 십수 명인데 사와 작도가 가장 크다. 작으로부터 동북쪽은 군장이 십수 명인데 염방이 가장 크다. 그 풍속은 혹은 땅에 붙어살고, 혹은 옮겨 다니는데 촉의 서쪽에 있다. 염방으로부터 동북쪽으로 군장이 십수 명인데 백마가 가장 큰데 모두 저족의 무리이다. 이는 모두 파와 촉의 서남쪽 외곽의 오랑캐이다.
[一] 正義在蜀之南。
[一] 【正義】 촉의 남쪽에 있다.
[二] 索隱劉氏音所具反。鄒氏音所主反。
[二] 【索隱】 유씨는 “음이 ‘所’와 ‘具’의 反”이다. 했다. 추씨는 음이 “‘所’와 ‘主’의 反이다.” 했다.
[三] 索隱荀悅云:「犍為屬國也。」韋昭云:「漢為縣,屬牂柯。」按:後漢書云「夜郎東接交阯,其地在胡南,其君長本出於竹,以竹為姓也」。正義今瀘州南大江南岸協州、曲州,本夜郎國。
[三] 【索隱】 순열이 말하기를 “‘犍(불깐 소 건)’을 속국으로 하였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한이 현을 삼아 장가에 속하게 했다.” 했다. 살펴보니 『후한서』에 “야랑은 동쪽으로 교지에 접하고, 그 땅은 호남에 있으며, 그 군장은 본래 죽에서 나왔기 때문에 죽으로서 성을 삼았다.” 했다. 【正義】 지금의 노주 남쪽 대강 남쪽 물가의 협주, 곡주는 본래 야랑국이었다.
[四] 索隱夷邑名,滇與同姓。
[四] 【索隱】 오랑캐의 읍 이름이니 전과 동성이다.
[五] 正義在蜀南以下及西也。靡非在姚州北,去京西南四千九百三十五里,即靡莫之夷。
[五] 【正義】 촉의 남쪽이하와 서쪽에 있다. 미는 요주의 북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서울 서남쪽 4935리 떨어져 있으니 곧 미막의 오랑캐이다.
[六] 集解如淳曰:「滇音顛。顛馬出其國也。」 索隱崔浩云:「後為縣,越嶲太守所理也。」 正義昆州、郎州等本滇國,去京西五千三百七十里也。
[六]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滇(성할 전)’의 음은 ‘顚(꼭대기 전)’이다. 전마가 그 나라에서 나온다.” 했다. 【索隱】 최호가 말하기를 “후에 현이 되었는데 월휴태자가 다스리던 곳이다.” 햇다. 【正義】 곤주, 낭주 등은 본래 전인데 서울 서쪽으로 5370리 떨여져 있다.
[七] 索隱魋,漢書作「椎」,音直追反。結音計。
[七] 【索隱】 ‘魁(으뜸 괴)’는 『한서』에 “椎(몽치 추)”로 썼는데 음은 ‘直’과 ‘追’의 反이다. ‘結’의 음은 ‘計’이다.
[八] 集解韋昭曰:「邑名也。」 索隱韋昭云邑名。漢書作「桐師」。
[八]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음으 이름이다.” 했다. 【索隱】 위소가 말하기를 “읍의 이름이다.” 했다. 『한서』에는 “桐師”라 썼다.
[九] 集解韋昭曰:「在益州。楪音葉。」 索隱韋昭曰:「益州縣。楪音葉。」 正義上音葉。楪澤在靡北百餘里。漢楪榆縣在澤西益都。靡非,本葉榆王屬國也。
[九]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익주에 있다. ‘楪(평상 접)’의 음은 ‘葉’이다.” 했다. 【索隱】 위소가 말하기를 “익주현이다. ‘楪’의 음은 ‘葉’이다.” 했다. 【正義】 위의 음은 ‘葉’이다. 접택은 미의 북쪽 백여리에 있다. 한 접유현은 늪 서쪽 익도에 있다. 미비는 본래 접유왕의 속국이다.
[一0] 集解徐廣曰:「永昌有嶲唐縣。」 索隱崔浩云:「二國名。」韋昭云:「嶲,益州縣。」 正義嶲音髓。今嶲州也。昆明,嶲州縣,蓋南接昆明之地,因名也。
[一0]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영창은 휴당현에 있다.” 했다. 【索隱】 최호가 말하기를 “두 나라 이름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휴는 익주현이다.” 했다. 【正義】 ‘雟’의 음은 ‘髓(골수 수)’이다. 지금의 휴주이다. 곤명, 휴주현은 대개 곤명의 땅에 접하고 있다. 때문에 이름한 것이다.
[一一] 正義編,步典反。畜,許又反。皆嶲、昆明之俗也。
[一一] 【正義】 ‘步’와 ‘典’의 反이다. ‘畜’은 ‘許’와 ‘又’의 反이다. 모두 휴와 곤명의 풍속이다.
[一二] 集解徐廣曰:「徙在漢嘉。筰音昨,在越嶲。」 索隱服虔云:「二國名。」韋昭云:「徙縣屬蜀。筰縣在越嶲。」徐廣云:「筰音昨。」 正義徙音斯。括地志云:「筰州本西蜀徼外,曰貓羌嶲。地理志云徙縣也。華陽國志雅州邛郲山本名邛筰山,故邛人、筰人界。」
[一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徙’는 한가에 있다. ‘莋(풀 먹을 작)’의 음은 ‘昨’이니 월휴에 있다.” 했다. 【索隱】 복건이 말하기를 “두 나라 이름이다.” 했다. 위소가 말하기를 “사현은 촉에 속한다. 작현은 월휴에 있다.” 했다. 서광이 말하기를 “‘莋’의 음은 ‘昨’이다.” 했다. 【正義】 ‘徙’의 음은 ‘斯’이다. 『괄지지』에 “작주는 본래 서촉의 외곽으로 묘강휴라 말한다.” 했다. 「지리지」에 “사양현이다.” 했다. 『화양국지』에 “아주 공래산으로 본래 공작산이라 이름하였기 때문에 공의 사람과 작의 사람이 경계를 이루었다.” 했다.
[一三] 索隱案:應劭云「汶江郡本冉駹。音亡江反」。正義括地志云:「蜀西徼外羌,茂州、冉州本冉駹國地也。後漢書云冉駹其山有六夷、七羌、九氐,各有部落也。」
[一三] 【索隱】 살펴보니 응소가 말하기를 “문강군은 본래 염방이다. 음은 ‘亡’과 ‘江’의 反이다.” 했다. 【正義】 『괄지지』에 “촉의 서쪽 외곽의 오랑캐지역인 무주, 염주는 본래 염방국 땅이다. 『후한서』에 ”염방의 산에 6이와 7강, 9저가 있는데 각기 부락이 있다.“ 했다.
[一四] 索隱案:夷邑名,即白馬氐。正義括地志云:「隴右成州、武州皆白馬氐,其豪族楊氏居成州仇池山上。」
[一四] 【索隱】 살펴보니 오랑캐의 읍 이름이니 곧 백마저이다. 【正義】 『괄지지』에 “농우의 성주, 무주는 모두 백마저인데 그 호족 양씨가 성주 구지산 위에 살았다.” 했다.
始楚威王時,使將軍莊蹻[一]將兵循江上,略巴、(蜀)黔中以西。莊蹻者,故楚莊王苗裔也。蹻至滇池,(地)方三百里,[二]旁平地,肥饒數千里,以兵威定屬楚。欲歸報,會秦擊奪楚巴、黔中郡,道塞不通,因還,以其眾王滇,變服,從其俗,以長之。秦時常頞[三]略通五尺道,[四]諸此國頗置吏焉。十餘歲,秦滅。及漢興,皆棄此國而開蜀故徼。巴蜀民或竊出商賈,取其筰馬、僰僮、[五]髦牛,以此巴蜀殷富。
처음 초나라 위왕 때 장군 장교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강가를 따라 파와 (촉) 검중 서쪽을 침략하게 하였다. 장교는 옛 초나라 장왕의 후예이다. 장교가 전지에 이르렀는데 땅이 사방 300리였고, 옆은 평지로 비옥한 땅이 수천리였는데 군대의 위엄으로 평정하여 초나라에 속하게 했다. 돌아가 보고하려 하는데 진나라가 초나라 파와 검중군을 쳐서 빼앗으니 길이 막혀 통하지 않자 돌아가 그 무리를 데리고 전에서 왕 노릇하면서 옷을 바꾸어 입고 그 풍속을 따르는 것으로서 우두머리가 되었다. 진나라 때 상안이 침략하여 폭 다섯 자의 길을 통하게 하고는 여기의 여러 나라에 관리를 두었다. 10여년 후 진나라가 멸망하였다. 한이 흥기함에 이르러 모두 여기의 나라들을 버리고 촉의 옛 요를 열었다. 파와 촉의 백성들이 혹 몰래 나가 장사하고 그 작마와 복동, 모우를 취하였는데 이로써 파와 촉이 넉넉하고 부유해졌다.
[一] 索隱音炬灼反。楚莊王弟,為盜者。正義其略反。郎州、昆州即莊蹻所王。
[一] 【索隱】 음은 ‘炬(횃불 거)’와 ‘灼(사를 작)’의 反이다. 초 장왕의 동생으로 도적이 된 자이다. 【正義】 ‘其’와 ‘略’의 反이다. 낭주와 곤주는 곧 장교가 왕 노릇 하던 곳이다.
[二] 索隱滇池方三百里。地理志益州滇池縣,澤在西北。後漢書云:「其池水源深廣,而[末]更淺狹,有似倒流,故謂滇池。」 正義括地志云:「滇池澤在昆州晉寧縣西南三十里。其水源深廣而[末]更淺狹,有似倒流,故謂滇池。」
[二] 【索隱】 전지는 사방 300리이다. 「지리지」 익주 전지현조에는 “늪이 서북쪽에 있다.” 했다. 『후한서』에 “그 못의 수원은 깊고 넓되 끝은 다시 얕고 좁아져서 뒤집어 흐르는 듯함이 있기 때문에 전지라고 한다.” 했다. 【正義】 『괄지지』에 “전지택은 곤주 진녕현 서남쪽 30리에 있다. 그 수원은 깊고 넓지만 끝은 다시 얕아지고 좁아져 거꾸로 흐르는 듯하게 때문에 전지라 말한다.” 했다.
[三] 集解音案。
[三] 【集解】 음은 ‘案’이다.
[四] 索隱謂棧道廣五尺。正義括地志云:「五尺道在郎州。顏師古云其處險阨,故道纔廣五尺。如淳云道廣五尺。」
[四] 【索隱】 잔도의 폭이 다섯 자임을 말한다. 【正義】 『괄지지』에 “오척도는 난주에 있다. 안사고가 말하기를 ‘그 곳은 험준하기 때문에 길이 폭이 겨우 다섯자이다.’ 여순이 말하기를 ‘길의 폭이 다섯자이다.” 했다.
[五] 索隱韋昭云:「僰屬犍為,音蒲北反。」服虔云:「舊京師有僰婢。」 正義今益州南戎州北臨大山,古僰國。
[五] 【索隱】 위소가 말하기를 “‘북’은 건위에 속하고, 음은 ‘蒲(부들 포)’와 ‘北’의 反이다.” 했다. 복건이 말하기를 “옛 경사에 북비(북족의 여자 종)가 있었다.” 했다. 【正義】 지금의 익주 남융주 북쪽 임대산이 옛 북국이다.
建元六年,大行王恢擊東越,東越殺王郢以報。恢因兵威使番陽令[一]唐蒙風指曉南越。南越食蒙蜀枸醬,[二]蒙問所從來,曰「道西北牂柯,牂柯江[三]廣數里,出番禺城下」。蒙歸至長安,問蜀賈人,賈人曰:「獨蜀出枸醬,多持竊出市夜郎。夜郎者,臨牂柯江,江廣百餘步,足以行船。南越以財物役屬夜郎,西至同師,然亦不能臣使也。」蒙乃上書說上曰:「南越王黃屋左纛,地東西萬餘里,名為外臣,實一州主也。今以長沙、豫章往,水道多絕,難行。竊聞夜郎所有精兵,可得十餘萬,浮船牂柯江,出其不意,此制越一奇也。誠以漢之彊,巴蜀之饒,通夜郎道,為置吏,易甚。」上許之。乃拜蒙為郎中將,將千人,食重萬餘人,[四]從巴蜀筰關入,遂見夜郎侯多同。蒙厚賜,喻以威德,約為置吏,使其子為令。夜郎旁小邑皆貪漢繒帛,以為漢道險,終不能有也,乃且聽蒙約。還報,乃以為犍為郡。發巴蜀卒治道,自僰道指牂柯江。[五]蜀人司馬相如亦言西夷邛、筰可置郡。使相如以郎中將往喻,皆如南夷,為置一都尉,十餘縣,屬蜀。
건원 6년 대행 王恢(넓을 회)가 동월을 치자 동월이 왕영을 죽이는 것으로서 (항복의 의사를)알렸다. 왕회가 군대의 위세로 번양령 당몽을 시켜 넌지시 남월을 깨우치게 하였다. 남월이 당몽에게 촉의 구장을 먹이니 당몽이 들여 온 곳을 물으니 말하기를 “서북쪽 장가로부터 오는데 장가강은 넓이가 수 리이며 번우성 아래로 나옵니다.” 했다. 당몽이 돌아가 장안에 이르러 촉에서 온 상인에게 물으니 상인이 말하기를 “오직 촉에서만 구장이 니오고 많이 몰래 지니고 나와 양랑에서 팝니다. 야랑은 장가강 가에 있는데 강의 넓이가 100여보인데 충분히 배를 가게할 수 있습니다. 남월이 재물로 야랑을 부리고 속하게 하여 (영향력이)서쪽으로 동사에 이르나 또한 신하로 부리지는 못합니다.” 했다. 당몽이 이에 글을 올려 천자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남월왕은 황옥자독의 제도를 시행하고 땅은 동서로 만 여리이며, 이름은 외신이라 하나 실제는 한 주의 주인입니다. 지금 장사와 예장으로 갈 때 물길이 많이 끊어져 가기 어렵습니다. 가만히 들으니 야랑이 소유하고 있는 정에 군대가 10 여만 명 정도 된다하니 장가강에 배를 띄워 그 뜻하지 않게 나아간다면 이는 월을 제압할 수 있는 하나의 기이한 계책입니다. 진실로 한의 강성함과 파와 촉의 풍요로움으로 야랑의 길을 통하여 관리를 두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하니 천자가 그것을 허락하였다. 이에 당몽에게 벼슬을 주어 낭중장으로 삼고 천명과 보급부대 만 여명을 거느리게 하여 파와 촉, 작관으로부터 들어가게 하니 마침내 야랑후 다동을 만났다. 당몽이 후하게 내리고 위엄과 덕으로 깨우쳐서 관리를 두기로 약속하고 그 아들로 하여금 령이 되게 하였다. 야랑 옆의 작은 읍들은 모두 한의 繒帛을 탐하였으나 한으로 가는 길이 험하다 여겨 끝내 소유하지 못하였는데 이에 또한 당몽과의 약속을 받아들였다. 돌아가 보고하니 곧 건위군으로 삼았다. 파와 촉의 병졸을 징발하여 길을 닦았는데 북도로부터 장가강으로 향하였다. 촉 사람인 사마상여가 또한 “서이의 공과 작은 군을 둘만하다.” 말하였다. 사마상여로 하여금 낭중장으로서 가서 깨우치게 하니 모두 남이처럼 한 개 도위, 10여개 군을 두어 촉에 속하게 했다.
[一] 正義番音婆。
[一] 【正義】 ‘番’의 은은 ‘婆’이다.
[二] 集解徐廣曰:「枸,一作『蒟』,音窶。」駰案:漢書音義曰「枸木似穀樹,其葉如桑葉。用其葉作醬酢,美,蜀人以為珍味」。索隱蒟。案:晉灼音矩。劉德云「蒟樹如桑,其椹長二三寸,味酢;取其實以為醬,美」。又云「蒟緣樹而生,非木也。今蜀土家出蒟,實似桑椹,味辛似薑,不酢」。又云「取葉」。此注又云葉似桑葉,非也。廣志云「色黑,味辛,下氣消穀」。窶,求羽反。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枸’는 한편으로 ‘蒟’라고도 쓰는데 음은 ‘寠(가난할 구)’이다.” 했다. 배인이 살펴보니 “「한서음의」에 ‘구목은 곡수와 비슷한데 그 잎은 뽕나무 잎과 같다. 그 잎을 써서 장초를 만들면 맛이 좋아 촉 사람들이 진미로 여긴다.’” 했다. 【索隱】 구장이다. 살펴보니 진작은 “음이 ‘矩(곱자 구)’이다.” 했다. 유덕이 말하기를 “‘구수’는 뽕나무와 비슷한데 그 오디는 길이가 두, 세치로 맛은 시다. 그 열매를 취하여 장을 만들면 맛이 좋다.” 했다. 또 말하기를 “구장은 나무를 타고 자라지만 나무는 아니다. 지금 촉의 토가에서 구장이 나오는데 열매는 뽕나무 오디와 비슷하고 맟은 맵고 생강과 비슷하나 시지 않다.” 했다. 또 말하기를 “잎을 딴다.” 했다. 이 주에 도한 말하기를 “잎은 뽕나무 잎과 비슷하다. 했으나 아이다. 『광지』에 ”검은 색이고, 맛이 매우며 기를 낮추고 곡식을 소화시킨다.“ 했다. ”寠(가난할 구)‘는 ’求‘와 ’羽‘의 反 이다.
[三] 正義崔浩云:「牂柯,繫船杙也。」常氏華陽國志云:「楚頃襄王時,遣莊蹻伐夜郎,軍至且蘭,椓船於岸而步戰。既滅夜郎,以且蘭有椓船柯處,乃改其名為牂柯。」
[三] 【正義】 최호가 말하기를 “장가는 배를 매다는 말뚝이다.” 했다. 상시의 『화양국지』에 “초나라 경양왕 때 장교를 보내 야랑을 토벌하고 군대가 차란에 이르러 물가에 배를 치고 걸어가면서 싸웠다. 야랑을 멸망시킨 후에 차란으로 배를 나뭇가지로 친 곳이 있어서 이에 그 미름을 고쳐 장가라 한 것이다.” 했다.
[四] 索隱案:食貨輜重車也。音持用反。
[四] 【索隱】 살펴보니 「식화지」의 짐 싣는 수레(輜重車)이다.]
[五] 索隱道牂柯江。崔浩云:「牂柯,繫船杙也,以為地名。」道猶從也。地理志夜郎又有豚水,東至南海四會入海,此牂柯江。
[五] 【索隱】 장가강을 따라가는 것이다. 최호가 말하기를 “‘장가’는 배를 매는 말뚝인데 땅 이름으로 삼았다.” 했다. ‘道’는 ‘從’과 같다. 「지리지」에 야랑에 또한 돈수가 있는데 동쪽으로 남해에 이르기까지 네 번 만나 바다에 들어 간는데 이것이 장가강이다.
當是時,巴蜀四郡[一]通西南夷道,戍轉相饟。數歲,道不通,士罷餓離溼死者甚眾;西南夷又數反,發兵興擊,秏費無功。上患之,使公孫弘往視問焉。還對,言其不便。及弘為御史大夫,是時方築朔方以據河逐胡,弘因數言西南夷害,可且罷,專力事匈奴。上罷西夷,獨置南夷夜郎兩縣一都尉,[二]稍令犍為自葆就。[三]
이러한 때를 당하여 파와 촉 4군이 서이도와 남이도를 통하기 위해 수자리 사는 군사를 돌리고 서로 건량을 주었다. 여러 해가 지나도 길이 통하지 않자 군사들이 파리하고 굶주리며 유리하고 습한 기운에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서남이가 또한 여러 번 배반하니 군대를 징발하여 쳤으나 비용만 소모하고 공은 없었다. 천자가 근심하여 공손홍으로 하여금 가서 (사정을)보고 물어보게(조사하게) 하였다. 돌아와 대답하여 불편함(불리함)을 말하였다. 공손홍이 어사대부가 됨에 이르렀는데 이때 바야흐로 삭방에 성을 쌓는 것으로서 황하를 근거하여 오랑캐를 축출하려 하였다. 공손홍이 여러 차례 서남이의 해로움을 말하며 그만두고 흉노의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다. 천자가 서남이의 일을 그만두고 다만 남이와 야랑 두 현에 도위 하나만을 두고 점차 건위군으로 하여금 스스로 지켜 나가게 하였다.
[一] 集解徐廣曰:「漢中,巴郡,廣漢,蜀郡。」
[一]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중, 파군, 광한, 촉군”이라 했다.
[二] 集解徐廣曰:「元光六年,南夷始置郵亭。」
[二] 서광이 말하기를 “원광 6년 남이가 처음 우정을 두었다.
[三] 正義令犍為自葆守,而漸修成其郡縣也。
[三] 【正義】 건위군으로 하여금 스스로 잘 지켜 점차 그 군현을 닦아 이루게 한 것이다.
及元狩元年,博望侯張騫使大夏來,言居大夏時見蜀布、邛竹杖,[一]使問所從來,曰「從東南身毒國,[二]可數千里,得蜀賈人市」。或聞邛西可二千里有身毒國。騫因盛言大夏在漢西南,慕中國,患匈奴隔其道,誠通蜀,身毒國道便近,有利無害。於是天子乃令王然于、柏始昌、呂越人等,使閒出西夷西,指求身毒國。至滇,滇王嘗羌[三]乃留,為求道西十餘輩。歲餘,皆閉昆明,[四]莫能通身毒國。
원수 1년 박망후 장건이 대하에 사신갔다가 돌아왔는데 대하에 머물 때 촉에서 생산되는 포, 공의 대나무 지팡이를 보고 그 온 것을 물었더니 말하기를 “동남으 신독으로부터 오는데 수천리 정도이나 촉의 상인들이 시장에서 파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했다. 어떤 이에게 들으니 “공의 서쪽 2천리 정도에 신독국이 있다.” 한다. 장건이 때문에 조금 과장하여 말하기를 “대하는 한의 서남쪽에 있는데 중국을 동경하나 흉노가 그 길에 끼어 있음을 근심하니 진실로 촉과 통하면 신독국 길이 편하고 가까우며 이로움은 있지만 해로움은 없다.” 했다. 이에 천자가 곧 왕연우, 백시창, 여월인 등에게 명령을 내려 조용히(몰래)서이의 서쪽으로 나가 신독국을 찾게하였다. 전에 이르니 전왕 상강이 곧 억류하고 대신하여 길을 찾아서 서쪽으로 간 이가 10여 무리였다. 1년 정도 후 모두 곤명에 막혀 신독국과 통할 수 없었다.
[一] 集解韋昭曰:「邛縣之竹,屬蜀。」瓚曰:「邛,山名。此竹節高實中,可作杖。」
[一] 【集解】 위소가 말하기를 “공현의 대나무이니 촉에 속한다.” 찬이 말하기를 “‘공’은 산 이름이다. 이 대나무는 마디가 길고 속이 실하여 지팡이를 만들만 하다.” 했다.
[二] 集解徐廣曰:「字或作『竺』。漢書直云『身毒』,史記一本作『乾毒』。」駰案:漢書音義曰「一名『天竺』,則浮屠胡是也」。索隱身音捐,毒音篤。一本作「乾毒」。漢書音義一名「天竺」也。
[二]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글자는 혹 ‘竺’이라 쓰기도 한다. 『한서』에 곧바로 ‘身毒’이라 했고, 『사기』의 어떤 본에는 ‘乾毒’이라 썼다.” 했다. 인이 살펴보니 「한서음의」에 “일명 ‘天竺’이라 하니 곧 부도호 이것이다.” 했다. 【索隱】 ‘身’의 음은 ‘捐(버릴 연)’이고, ‘毒’으 음은 ‘篤’이다. 어떤 본에는 ‘乾毒’이라 썼다. 「한서음의」에 일명 ‘천축’이라 썼다.
[三] 集解徐廣曰:「嘗,一作『賞』。」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嘗’은 한편으로 ‘賞’으로도 쓴다.
[四] 集解如淳曰:「為昆明所閉道。」 正義昆明在今嶲州南,昆縣是也。
[四] 【集解】 여순이 말하기를 “곤명이 길을 막았다.” 했다. 【正義】 곤명은 지금의 휴주 남쪽 곤현이 이것이다.
滇王與漢使者言曰:「漢孰與我大?」及夜郎侯亦然。以道不通故,各自以為一州主,不知漢廣大。使者還,因盛言滇大國,足事親附。天子注意焉。
전왕이 한의 사신과 이야기하면서 말하기를 “한과 우리 중에 누가 더 큰가?”하였다. 야랑후가 또한 그렇게 말하였다. 길로서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각기 스스로 한 주의 주인으로 여기서 한이 넓고 큼을 알지 못하였다. 사신이 돌아가 인하여 과장되게 말하기를 “전은 큰 나라이니 충분히 친하게 지낼만하다. 했다.” 천자가 이 말에 주의하였다.
及至南越反,上使馳義侯因犍為發南夷兵。且蘭[一]君恐遠行,旁國虜其老弱,乃與其眾反,殺使者及犍為太守。漢乃發巴蜀罪人嘗擊南越者八校尉擊破之。會越已破,漢八校尉不下,即引兵還,行誅頭蘭。[二]頭蘭,常隔滇道者也。已平頭蘭,遂平南夷為牂柯郡。夜郎侯始倚南越,南越已滅,會還誅反者,夜郎遂入朝。上以為夜郎王。
남월이 배반함에 이르자 천자가 치의후로 하여금 건위군을 통하여 남이의 군대를 징발하게 하였다. 차란의 임금이 멀리 가는 것을 두려워하였는데 이웃 나라가 그 노약자를 포로로 잡을까 해서였다. 이에 그 무리들과 함께 배반하여 사신과 건위군의 태수를 죽였다. 한이 이에 파와 촉의 죄수를 징발하여 일찍이 남월을 쳤던 여덟 교위로 그들을 쳐서 깨트렸다. 마침 월이 이미 깨트려졌기 때문에 한의 여덟 교위가 내려가지 않고 곧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다가 두란에가서 죽였다.(명망시켰다.) 두란은 항상 전의 길을 막던 자였다. 이미 두란을 평정하고는 마침내 남이를 평정하고 장가군을 삼았다. 야랑후가 처음에 남월에 기대었는데 남월이 이미 멸망하고 마침 (한의 군대가)돌아가다 배반하는 자들을 죽이니 야랑후가 마침내 입조하였다. 천자가 야랑왕으로 삼았다.
[一] 索隱上音子餘反。小國名也。後縣,屬牂柯。
[一] 【索隱】 위의 음은 ‘子’와 ‘餘’의 反이다. 소국의 이름이다. 후에 현이 되어 장가군에 속하였다.
[二] 索隱即且蘭也。
[二] 【索隱】 곧 차란이다.
南越破後,及漢誅且蘭、邛君,并殺筰侯,冉駹皆振恐,請臣置吏。乃以邛都為越嶲郡,筰都為沈犁郡,冉駹為汶山郡,[一]廣漢西白馬為武都郡。
남월을 깨트린 후 한이 차란과 공의 임금을 죽이고 아울러 작후를 죽이니 염방이 모두 떨며 두려워하여 신하가 되고, 관리를 둘 것을 청하였다. 이에 공도를 월구군으로 삼고, 작도를 침려군으로 삼으며 염방을 문산군으로 삼고, 광한 서쪽 백마를 무도군으로 삼았다.
[一] 集解應劭曰:「今蜀郡岷江。」
[一] 【集解】 응소가 말하기를 “지금의 촉군 민강이다.” 했다.
上使王然于以越破及誅南夷兵威風喻滇王入朝。滇王者,其眾數萬人,其旁東北有勞濅、靡莫,[一]皆同姓相扶,未肯聽。勞濅、靡莫數侵犯使者吏卒。元封二年,天子發巴蜀兵擊滅勞濅、靡莫,以兵臨滇。滇王始首善,以故弗誅。滇王離難西南夷,舉國降,請置吏入朝。於是以為益州郡,賜滇王王印,復長其民。西南夷君長以百數,獨夜郎、滇受王印。滇小邑,最寵焉。
천자가 왕연우로 하여금 월을 깨트린 것과 남이를 죽인 군대의 위엄으로 넌지시 전왕이 입조하도록 깨우치게 하였다. 전왕은 그 무리가 수 만인이고, 그 곁 동북쪽에는 노침과 미막이 있어 모두 성이 같고 서로 도와 즐겨 듣지 않았다. 노침과 미막이 여러 번 사신과 관리와 병졸을 침범하였다. 원봉 2년 천자가 파와 촉의 군대를 징발하여 노침과 미막을 쳐 멸망시키고 군대로 전을 마주하였다. 전왕은 처음부터 관계를 잘 하였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 전왕이 서남이의 전레를 따라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 관리를 두고 입조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익주군을 삼고 전왕의 왕인을 내리고 다시 그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게 했다. 서남이의 군장이 백수 명인데 단지 야랑과 전 만이 왕의 인을 받았다. 전은 소읍으로 가장 총애를 받았다.
[一] 索隱勞濅、靡莫。二國與滇王同姓。
[一] 【索隱】 ‘노침’과 ‘미막’이다. 두 나라는 전왕과 같은 성이다.
太史公曰:楚之先豈有天祿哉?在周為文王師,封楚。及周之衰,地稱五千里。秦滅諸候,唯楚苗裔尚有滇王。漢誅西南夷,國多滅矣,唯滇復為寵王。然南夷之端,見枸醬番禺,大夏杖、邛竹。西夷後揃,[一]剽分二方,[二]卒為七郡。[三]
태상공이 말하기를 “초나라의 선조가 무슨 하늘의 록이 있었겠는가? 주나라 때 문왕의 스승이 되어 초에 봉해졌다. 주나라가 쇠퇴함에 이르러 땅은 5천리라 잃컬어졌다. 진나라가 제후를 멸하였으나 오직 초의 후예로 오히여 전왕이 있었다. 한이 서남이를 죽이고 나라를 많이 없앴는데 오직 전만이 다시 총애 받는 왕이 되었다. 그러나 남이 정벌의 단서는 구장과 번우, 대하의 지팡이 공의 대나무에 있었다. 서이는 후에 나뉘어져 두 지방이 되었고, 끝내 일곱 개 군이 되었다.” 했다.
[一] 集解漢書音義曰:「音翦。」 索隱音剪。揃謂被分割也。
[一] 【集解】 「한서음의『에 “음은 ‘翦(자를 전)’이다. ‘揃(자를 전)은 나뉘어짐을 당함이다’” 했다.
[二] 索隱剽音匹妙反。言西夷後被揃迫逐,遂剽居西南二方,各屬郡縣。剽亦分義。
[二] 【索隱】 【索隱】 ‘剽(빠를 표)’의 음은 ‘匹’과 ‘妙’의 反이다. 서이가 후에 나늬고, 몰리고 쫒겨서 마침내 흩어져 서남이의 두 지방에 살면서 각기 군과 현에 속하게 되었음을 ‘剽’가 또한 나눈다는 뜻이다.
[三] 集解徐廣曰:「犍為、牂柯、越嶲、益州、武都、沈犁、汶山地也。」
[三]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건우ㅏ, 장가, 월수, 익주, 무도, 심려, 문산의 땅이다.” 했다.
【索隱述贊】 西南外徼,莊蹻首通。漢因大夏,乃命唐蒙。勞寖、靡莫,異俗殊風。夜郎最大,邛、筰稱雄。及置郡縣,萬代推功。
【索隱述贊】 서남쪽 외곽은 장교가 처음 길을 통하게 했다. 한이 대하로 인하여 이에 당몽에게 명하였다. 노침, 미막은 풍속이 다르다. 야랑은 가장 크고 공과 작은 영웅을 일컬었다. 군현을 둠에 이르러 만대가 공을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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