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回:焚金闕董卓行兇,匿玉璽孫堅背約
제6회 동탁이 흉함을 저질러 대궐을 불태우고, 손견은 옥쇄를 숨겨 맹약을 배반하다.
卻說張飛拍馬趕到關下,關上矢石如雨,不得進而回。八路諸侯,同請玄德、關、張賀功,使人去袁紹寨中報捷。紹遂移檄孫堅,令其進兵。堅引程普,黃蓋,至袁術寨中相見。堅以杖畫地曰:「董卓與我,本無讎隙。今我奮不顧身,親冒矢石,來決死戰者:上為國家討賊,下為將軍家門之私;而將軍卻聽讒言,不發糧草,致堅敗績,將軍何安!」
각설하고 장비가 말에 박차를 가하여 추격하여 호뢰관 아래 이르니 호뢰관 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 오듯 쏟아져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8로의 제후들이 함께 현덕과 관우, 장비의 공을 축하하기를 청하고, 사람을 시켜 원소의 진중에 가서 승리를 보고하게 했다. 원소가 마침내 손견에게 격문을 주어 군대를 나아가게 했다. 손견이 정보, 황개을 이끌고 원술의 진에 이르러 서로 보았다. 손견이 지팡이로 땅에 금을 그어 말하기를 “동탁과 나는 본래 원수지고 틈이 없었다. 지금 내가 떨쳐 몸을 돌아보지 않고 직접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와서 죽음으로 싸운 것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사로움을 위한 것이었다. 장군은 어찌하여 참소하는 말을 듣고 군량과 말 먹이 풀을 주지 않아 내가 패전함에 이르렀는데 장군은 어찌 편안한가!” 했다.
術惶恐無言,命斬進讒之人,以謝孫堅。忽人報堅曰:「關上有一將,乘馬來寨中,要見將軍。」堅辭袁術,歸到本寨,喚來問時,乃董卓愛將李傕。堅曰:「汝來何為?」傕曰:「丞相所敬者,惟將軍耳。今特使傕來結親:丞相有女,欲配將軍之子。」堅大怒,叱曰:「董卓逆天無道,蕩覆王室,吾欲夷其九族,以謝天下,安肯與逆賊結親耶!吾不斬汝!汝當速去,早早獻關,饒你性命!倘若遲誤,粉骨碎身!」
원술이 황망하고 두려워하여 말이 없다가 참소하는 말을 올린 사람의 목을 베게 하는 것으로 손견에게 사과하였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손견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호로관 위의 한 장수가 있어 말을 타고 진중에 와서 장군을 뵙고자 합니다.” 했다. 손견이 원술을 하직하고 돌아가 본진에 이르러 불러 이를 물으니 곧 동탁의 사랑하는 장군 이각이었다. 손견이 말하기를 “너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왔는가?” 하니 이각이 말하기를 “승상이 공경하는 자는 오직 장군일 뿐입니다. 지금 특히 나를 시켜서 친함을 맺게 합니다. 승상에게는 달이 있는데 장군 아들의 짝을 삼고자 합니다.” 했다. 손견이 크게 성내어 질책하여 말하기를 “동탁은 하늘을 거스르고, 무도하여 왕실을 망하게 하고 뒤집어서 내가 그 9족을 멸하는 것으로 천하에 사죄하고자하는데 어찌 즐겨 역적과 더불어 친척을 맺는단 말인가? 내가 너를 베지 않을 것이니 너는 마땅히 빨리 가서 재빨리 관(호뢰관)을 바치는 것이 너의 목숨을 용서할 것이나! 만약 어정거려 늦고 잘못한다면 뼈를 가루내고, 몸을 부술 것이라!” 했다.
李傕抱頭鼠竄,回見董卓,說孫堅如此無禮。卓怒,問李儒。儒曰:「溫侯新敗,兵無戰心。不若引兵回洛陽,遷帝於長安,以應童謠。近日街市童謠曰:『西頭一個漢,東頭一個漢。鹿走入長安,方可無斯難。』臣思此言,『西頭一個漢』,乃應高祖旺於西都長安,傳一十二帝;『東頭一個漢』,乃應光武旺於東都洛陽,今亦傳一十二帝。天運合回,丞相遷回長安,方可無虞。」卓大喜曰:「非汝言,吾實不悟。」遂引呂布星夜回洛陽,商議遷都。聚文武於朝堂,卓曰:「漢東都洛陽,二百餘年,氣數已衰。吾觀旺氣實在長安,吾欲奉駕西幸。汝等各宜促裝。」
이각이 머리를 감싸고 돌아가 동탁을 보고 손견이 이 같이 무례하다고 말하였다. 동탁이 성내며 이유에게 물었다. 이유가 말하기를 “온후(여포)가 새로 패하여 군대가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낙양으로 돌아가 황제를 장안으로 옮기는 것으로 동요에 호응하는 것만 못합니다. 지금 거리에 아이들이 노래 부르기를 ‘서쪽 끝에 한나라, 동쪽 끝 한나라. 사슴이 달려 장안에 드니 이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합니다. 신이 이 말을 생각해 보니 서쪽 끝 안 한나라는 곧 고조가 서도 장안에서 왕성함에 호응하였고, 12 황제를 전하였고, 동쪽 끝 한나라는 곧 광무제가 종도 낙양에서 왕성하여 지금 12황제를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운수는 합하고, 돌아가니 승상은 장안으로 옮겨 가는 것이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했다. 동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너의 말이 아니면 내가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여포를 이끌고 밤에 낙양으로 돌아가서 천도를 의논하였다. 문무관리가 조당에 모이자 동탁이 말하기를 “한나라가 동쪽 낙양에 도읍한 것이 200여년으로 기운과 운수가 이미 쇠퇴하였다. 내가 보니 왕성한 기운이 실로 장안에 있으니 나는 가마를 받들어 서쪽으로 가고자 한다. 너희들은 각기 꾸리기를 재촉하는 것이 마땅하다.” 했다.
司徒楊彪曰:「關中殘破零落。今無故捐宗廟,棄皇陵,恐百姓驚動。天下動之至易,安之至難:望丞相鋻察。」卓怒曰:「汝阻國家大計耶?」太尉黃琬曰:「楊司徒之言是也;往者王莽篡逆,更始赤眉之時,焚燒長安,盡為瓦礫之地;更兼人民流移,百無一二;今棄宮室而就荒地,非所宜也。」卓曰:「關東賊起,天下播亂;長安有崤、函之險;更近隴右,木石磚瓦,剋日可辦,宮室營造,不須月餘。汝等再休亂言。」司徒苟爽諫曰:「丞相若欲遷都,百姓騷動不寧矣。」卓大怒曰:「吾為天下計,豈惜小民哉!」即日罷楊彪、黃琬、荀爽為庶民。
사도 양표가 말하기를 “관중이 황폐하여 보잘 것 없는데 지금 이유 없이 종묘를 버리고 황릉을 버리면 백성들이 놀라고 소동할까 두렵습니다. 천하가 소동하는 것은 지극히 쉽고, 안정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우니 승상은 잘 살피기를 바랍니다.” 했다. 동탁이 성내며 말하기를 “네가 국가의 큰일을 막는가?” 하니 태위 황완이 말하기를 “양사도의 말이 옳습니다. 지난번에 왕망이 찬역하고 경시연간의 적미의 난 때에 장안이 불타서 모두 깨진 기와와 자갈의 쓸모없는 땅이 되었고, 아울러 인민이 떠돌아다녀 백에 하나 둘뿐인데 지금 궁궐을 버리고 황폐한 땅으로 나아가는 것은 마땅한 바가 아닙니다.” 했다. 동탁이 말하기를 “관동의 적이 일어나 천하가 흩어지고 어지러운데 장안은 효산과 함관의 험함이 있고, 다시 농우지역이 가까워 나무, 돌, 벽돌과 기와를 날을 맞추어 갖출 수 있어 궁궐을 짓는 것이 모름지기 달이 지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 다시 어지럽히는 말을 하지 말라.” 했다. 사도 순상이 간하여 말하기를 “승상이 만약 도읍을 옮기고자 한다면 백성들이 소동하여 편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동탁이 크게 성내면서 “나의 천하를 위한 계획을 어찌 애석해 하겠는가!” 하고는 곧바로 양표, 황완, 순상을 파면하여 평민으로 하였다.
卓出上車,只見二人望車而揖;視之,乃尚書周毖、城門校尉伍瓊也。卓問有何事,毖曰:「今聞丞相欲遷都長安,故來諫耳。」卓大怒曰:「我始初聽你兩個,保用袁紹;今紹已反,是汝等一黨!」叱武士推出都門斬首。遂下令遷都,限來日便行。李儒曰:「今錢糧缺少,洛陽富戶極多,可籍沒入官。但是袁紹等門下,殺其宗黨而抄其家貲,必得巨萬。」
동탁이 수레에 올라 나가는데 다만 두 사람이 수레를 바라보면서 읍하였다. 그를 보니 곧 상서 주비와 성문교위 오경이었다. 동탁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몰으니 주비가 말하기를 “지금 승상이 장안으로 도읍을 옮기고자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와서 간할 뿐입니다.” 했다. 동탁이 크게 성내어 말하기를 “내가 처음 너희 둘을 듣고 원소를 보호하여 등용하였는데 지금 원소가 이미 배반하였다. 이는 너희들도 한 무리이구나.” 하고는 무사를 꾸짖어 도문 밖으로 밀어내어 머리를 베게 했다. 마침내 도읍을 옮기는 명령을 내려 내일 안으로 가게 했다. 이유가 말하기를 “지금 돈과 곡식이 부족하나 낙양의 부호들은 지극히 많으니 몰수 하여 관에 들여야 합니다. 다만 원소 등의 가문는 그 무리들을 죽이고 그 집안의 재물을 약탈하면 반드시 거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卓即差鐵騎五千,遍行捉拏洛陽富戶,共數千家,插旗頭上,大書「反臣逆黨」,盡斬於城外,取其金貲。李傕,郭汜,盡驅洛陽之民數百萬口,前赴長安。每百姓一隊,間軍一隊,互相拖押;死於溝壑者,不可勝數。又縱軍士淫人妻女,奪人糧食;啼哭之聲,震動天地。如有行得遲者,背後三千軍催督,軍手執白刃,於路殺人。
동탁이 곧 철기 5천을 보내 두루 낙양의 부호를 잡았는데 수 천가였으며 ‘반신역당’이라 크게 쓴 깃발을 머리 위에 꼿았으며, 모두 성 밖에서 머리를 베고 그 재물을 취하였다. 이각, 곽사가 낙양의 백성 수만 명을 모두 몰아서 장안으로 가게 했다. 매 백성 한 무리마다 군대 한개 부대를 끼워서 서로 끌고 단속하니 도랑과 구렁에 서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또 군사들이 제 멋대로 다른 사람의 처와 딸을 간음하고, 다른 사람들의 양식을 빼앗으니 울며 통곡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만약 천천히 가는 자가 있으면 뒤의 3천명의 군사들이 재촉하며 감독하고, 손에 흰 칼을 잡은 군사들이 길에서 사람을 죽였다.
卓臨行,教諸門放火,焚燒居民房屋,並放火燒宗廟宮府。南北兩宮,火焰相接;洛陽宮庭,盡為焦土。又差呂布發掘先皇及后妃陵寢,取其金寶。軍士乘勢掘官民墳塚殆盡。董卓裝載金珠緞疋好物數千餘車,劫了天子並后妃等,竟望長安去了。
동탁이 감에 임하여 여러 문에 불을 지르게 하고, 백성들이 살던 집들을 불태우고, 아울러 종묘와 궁궐과 관청에 불을 놓아 태우게 했다. 남북 두 궁궐의 화염이 서로 이으니 낙양의 궁정이 모두 초토가 되었다. 또 여포를 보내 선황과 후비의 릉을 파헤치고 그 보물을 취하였다. 군사들이 형세를 타고 관리와 백성들의 무덤을 거의 다 파헤쳤다. 동탁이 금과 구슬, 비단, 좋은 물건을 실은 수레 천여 대에 싣고 천자와 후비들을 위협하여 마침내 장안을 바라보면서 갔다.
卻說卓將趙岑,見卓已棄洛陽而去,便獻了汜水關。孫堅驅兵先入,玄德、關、張殺入虎牢關,諸侯各引軍入。
각설하고 동탁의 장군 조잠은 동탁이 이미 낙양을 버리고 떠남을 보자 곧 범수관을 바쳤다. 손견이 군대를 몰아 먼저 들어가고, 현덕, 관우, 장비가 호뢰관을 들어가고, 여러 제후들이 각기 군대를 이끌고 들어갔다.
且說孫堅飛奔洛陽,遙望火焰沖天,黑煙鋪地,二三百里,並無雞犬人煙;堅先發兵救滅了火,令眾諸侯各於荒地上屯住軍馬。曹操來見袁紹曰:「今董賊西去,正可乘勢追襲;本初按兵不動,何也?」紹曰:「諸兵疲困,進恐無益。」操曰:「董賊焚燒宮室,劫遷天子,海內震動,不知所歸;此天亡之時也,一戰而天下定矣。諸侯何疑而不進?」眾諸侯皆言不可輕動。操大怒曰:「豎子不足與謀!」遂自引兵萬餘,領夏侯惇,夏侯淵,曹仁,曹洪,李典,樂進,星夜來趕董卓。
또 말한다. 손견이 날듯이 낙양에 달려가는데 멀리 화염이 하늘에 치솟고, 검은 연기가 땅을 덮어 2,300리에 닭, 개, 사람의 자취가 없었다. 손견이 먼저 군대를 풀어 불을 끄게 하고 여러 제후들로 하여금 각기 황폐한 땅 위에 군마를 진 치게 하였다. 조조가 와서 원소를 보고말하기를 “지금 동탁이 서쪽으로 갔으니 바로 형세를 타고 추격하여 습격하는 것이 옳은데, 본초(원소)는 군대를 살피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왜 입니까?” 했다. 원소가 말하기를 “군대가 피곤하고 나아감이 아마도 이익이 없을 것이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동탁이 대궐을 불태우고, 천자를 위협하여 옮겨서 천하가 진동하고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합니다. 이는 하늘이 망하게 하는 때입니다. 한 번 싸워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는데 제후들은 무엇을 의심하여 나아가지 않습니까?” 했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가벼이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였다. 조조가 크게 성내면서 “어린애들과는 함께 도모할 수 없구나!”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군대 만여 명을 이끌고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이전, 낙진을 이끌고 밤에 동탁을 추격하였다.
且說董卓行至滎陽地方,太守徐榮出接。李儒曰:「丞相新棄洛陽,防有追兵。可教徐榮伏軍滎陽城外山塢之旁:若有兵追來,可竟放過;待我這裏殺敗,然後截住掩殺。令後來者不敢復追。」卓從其計,又令呂布引精兵遏後。布正行間,曹操一軍趕上。呂布大笑曰:「不出李儒所料也!」 將軍馬擺開。
또 말한다. 동탁이 가서 형양지방에 이르자 태수 서영이 나와 영접하였다. 이유가 말하기를 “승상이 최근에 낙양을 버리고 추격하는 군대를 방비함이 있었다. 서영으로 하여금 형양성 밖의 4면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땅 옆에 군대를 매복하였다가 군대가 추격하여 오는 군대가 있으면 마침내 지나게 두었다가 내가 이 안에서 죽이고 무너뜨리는 것을 기다린 후에 끊어 죽이면 뒤에 오는 자들이 감히 다시 추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동탁이 그 계획을 따랐다. 또 여포로 하여금 정예 군대를 이끌고 뒤를 막게 했다. 여포가 바로 가는 사이 조조의 한 부대가 추격하여 올라왔다. 여포가 그게 웃으며 말하기를 “이유가 헤아린 바를 벗어나지 않는구나!” 하고는 군마를 거느리고 진을 쳤다.
曹操出馬,大叫:「逆賊!劫遷天子,流徙百姓,將欲何往?」呂布罵曰:「背主懦夫,何得妄言!」夏侯惇挺鎗躍馬,直取呂布。戰不數合,李傕引一軍,從左邊殺來,操急令夏侯淵迎敵。右邊喊聲又起,郭汜引軍殺到,操急令曹仁迎敵。三路軍馬,勢不可當。夏侯惇抵敵呂布不住,飛馬回陣。布引鐵騎掩殺,操軍大敗,回望滎陽而走。走至一荒山腳下,時約二更,月明如晝。方纔聚集殘兵。正欲埋鍋造飯,只聽得四圍喊聲,徐榮伏兵盡出, 曹操慌忙策馬,奪路奔逃,正遇徐榮,轉身便走。榮搭上箭,射中操肩膊。
조조가 말을 타고 나가 크게 부르짖기를 “역적아! 천자를 위협하여 옮기고, 백성을 떠돌아 옮기게 하니 장차 어디로 가려하는가?” 했다. 여포가 꾸짖어 말하기를 “주인을 배반한 나약한 필부가 어찌 망년된 말을 하는구나!” 하였다. 하후돈이 창을 내밀며 말을 몰아 바로 여포를 취하려 하였다. 싸워 몇 번 부딪히지 않았는데 이각이 이끄는 한 부대가 왼쪽으로부터 죽이며 오니 조조가 급히 하후연에게 명령하여 적을 맞게 하였다. 오른 쪽 가에서 함성이 또한 일어나는데 곽사가 군대를 이끌고 죽이며 이르렀다. 조조가 급히 조인에게 명령하여 적을 맞게 하였다. 세 방향 군마의 형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후돈이 여포를 치며 대적하다 머물지 못하고 말을 날 듯이 달려 진에 돌아왔다. 여포가 철기를 거느리고 습격하여 죽이니 조조의 군대가 크게 무너지고 돌아 형양성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달려서 한 황폐한 산자락에 이르렀는데 때가 대략 2경이어서 달의 발기가 낮과 같았다. 막 조금 남은 군대를 모았다. 바로 솥을 묻고 밥을 지으려는데 사방에서 함성소리를 들리고, 서영이 엎드려 있던 군대를 모두 내니 조조가 황급히 말을 채찍질하여 길을 떠나 바쁘게 달아나다 정면에서 서영을 만나니 몸을 돌려 다시 달아났다. 서영이 화살을 걸고 쏘니 조조의 어깨 위쪽에 적중하였다.
操帶箭逃命,轉過山坡。兩個軍士伏於草中,見操馬來,二鎗齊發,操馬中鎗而倒。操翻身落馬,被二卒擒住。只見一將飛馬而來,揮刀砍死兩個步軍,下馬救起曹操。操視之,乃曹洪也。操曰:「吾死於此矣,賢弟可速去!」洪曰:「公急上馬!洪願步行。」操曰:「賊兵趕上,汝將奈何?」
조조가 화살을 매단 채 목숨을 도망하여 산비탈을 굴러 지났다. 두 부대 군사들이 풀 속에 엎드려 있다가 조조의 말이 오는 것을 보고 두 개의 창을 일제히 발사하니 조조의 말이 창에 맞아 거꾸러졌다. 조조가 몸을 뒤집어 말에서 떨어지면서 두 졸병에게 사로잡혔다. 다만 한 장수가 나는 듯이 마를 달려 와 칼을 휘두르고 두 보병을 막아 죽이고, 말에서 내려 조조를 구하여 일으켰다. 조조가 그를 보니 바로 조홍이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동생은 빨리 가라!” 했다. 조홍이 말하기를 “공은 빨리 말에 오르시오! 내가 걸어서 가고자 합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적병이 추격하는데 너는 장차 어떻게 하려하는가?” 했다.
洪曰:「天下可無洪,不可無公。」操曰:「吾若再生,汝之力也。」操上馬,洪脫去衣甲,拖刀跟馬而走。約走至四更餘,只見前面一條大河,阻住去路,後面喊聲漸近。操曰:「命已至此,不得復活矣!」洪急扶操下馬,脫去袍鎧,負操渡水。纔過彼岸,追兵已到,隔水放箭。操帶水而走。比及天明,又走三十餘里,土岡下少歇。忽然喊聲起處,一彪人馬趕來,卻是徐榮從上流渡河來追。
조홍이 말하기를 “천하에 조홍이 없을 수 있으나 공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만약 두 번 살아난다면 너의 힘이다” 하고는 말에 오르고, 조홍은 옷과 갑옷을 벗고 칼을 끌면서 말을 뒤따라 달아났다. 따라 달아 난지 4경 정도에 이르러 앞 쪽을 보니 한 개 큰 강이 가는 길을 막고 있고, 뒤 쪽에는 함성이 점점 가까워 졌다. 조조가 말하기를 “운명이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다시 살아날 수 없겠구나!” 했다. 조홍이 급히 조조를 부축하여 말에서 내리게 하고 전포와 투구를 벗고 조조를 업고 물을 건넜다. 겨우 건너편을 지나는데 추격 병이 이미 이르러 물을 사이에 두고 화살을 쏘았다. 조조가 물을 끼고 달아나는데 하늘이 밝아졌다. 또 30여리를 달아나 산 아래에 서 조금 쉬었다. 갑자기 함성이 일어나는 곳에 한 떼의 인마가 따라 왔는데 이는 서영이 상류로부터 물을 건너 따라 온 것이었다.
操正慌急問,只見夏侯惇、夏侯淵引十數騎飛至,大喝:「徐榮勿傷吾主!」徐榮便奔夏侯惇,惇挺鎗來迎。交馬數合,惇刺徐榮於馬下,殺散餘兵。隨後曹仁,李典,樂進,各引兵尋到;見了曹操,憂喜交集;聚集殘兵五百餘人,同回河內。卓兵自往長安。
조조가 황급히 묻는데 한편으로 하후돈과 하후연이 수십 기를 이끌고 날듯이 이르러 크게 소리치기를 “서영은 우리 주인을 상하게 하지 말라!” 했다. 서영이 곧 분주히 하후돈과 하후연에게 창을 들어 와서 맞이하였다. 말이 엇갈리기를 몇 번 하고는 하후돈이 서영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리고, 흩어진 나머지 군대를 죽였다. 뒤를 따라 조인, 이전, 낙진이 각기 군대를 이끌고 찾아 이르렀는데 조조를 보자 근심과 기쁨이 엇갈렸다. 남은 군사 500여명을 모아 함께 하내로 돌아갔다. 동탁의 군대가 장안으로 갔다.
卻說眾諸侯分屯洛陽。孫堅救滅宮中餘火,屯兵城內,設帳於建章殿基上。堅令軍士掃除宮殿瓦礫。凡董卓所掘陵寢,盡皆掩閉。於太廟基上,草創殿屋三間,請眾諸侯立列聖神位,宰太牢祀之。祭畢,皆散。堅歸寨中,是夜星日交輝,乃按劍露坐,仰觀天文。見紫微垣中白氣漫漫,堅歎曰:「帝星不明,賊臣亂國,萬民塗炭,京城一空!」言訖,不覺淚下。
각설하고 여러 제후들이 나누어 낙양에 주둔하였다. 손견이 궁궐의 남은 불을 끄고 성 안에 군대를 주둔하고, 건장전 터 위에 장막을 설치하였다. 손견이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궁전의 기와와 조약돌을 청소하게 하고, 동탁이 파헤친 능침을 모두 덮어 가리게 했다. 태묘 터 위에 풀로 전각 3칸을 짓고 여러 제후들이 돌아가신 황제 신주 앞에 열지어 설 것을 청하고 주재하여 소를 잡아 제사하였다. 제사를 마치고 모두 흩어졌다. 손견이 진영으로 돌아갔다. 이날 밤 별과 해가 서로 빛나는데 검을 어루만지며 길에 앉아 우러러 천문을 살펴보니 자미원 가운데 흰 기운이 가득하였다. 손견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황제의 별이 밝지 않아 역적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서울이 텅 비었구나!” 했다. 말을 마치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傍有軍士指曰:「殿南有五色豪光起於井中。」堅喚軍士點起火把,下井打撈。撈起一婦人屍首,雖然日久,其屍不爛,宮樣裝束,項下帶一錦囊。取開看時,內有硃紅小匣,用金鎖鎖著。啟視之,乃一玉璽:方圓四寸。上鑴五龍交紐;傍缺一角,以黃金鑲之;上有篆文八字云:「受命於天,既壽永昌」。
옆에 있던 군사가 가리켜 말하기를 “전각의 남쪽에 5색의 빛이 우물 속에서 일어납니다.” 했다. 손견이 군사를 불러 불을 일으켜 잡고 우물에 내려가 건지게 하였다. 한 부인의 시체를 건져 올렸는데 비록 날이 오래되었으되 그 시체가 썩지 않았고, 궁중식 옷차림을 하였는데 목 아래 비단 주머니 하나를 매고 있었다. 가져다 이를 열어보니 안에 붉은 색 작은 상자가 있는데 쇠를 써서 잠가 놓았다. 열어서 그것을 보니 한 개 옥쇄였는데 둘레가 네 치였다. 위에는 송곳으로 다섯 마리 용을 서로 무늬 넣었고, 옆은 한 모서리가 없으며, 황금으로 매워졌으며 위에 전서체의 글 8자가 있었는데 “受命於天,既壽永昌(하늘에서 명을 받아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다.)” 했다.
堅得璽,乃問程普。普曰:「此傳國璽也。此玉是昔日卞和於荊山之下,見鳳凰棲於石上,載而進之楚文王。解之,果得玉。秦二十六年,令玉工琢為璽,李斯篆此八字於其上。二十八年,始皇巡狩至洞庭湖,風浪大作,舟將覆,急投玉璽於湖而止。
손견이 옥쇄를 얻고는 정보에게 물었다. 정보가 말하기를 “이는 나라에 전하는 옥쇄입니다. 이 옥은 옛날 변화가 형산 아래에서 봉황이 돌 위에 사는 것을 보고 실어서 초 나라 문왕에게 바쳤습니다. 헤쳐서 과연 옥을 얻었습니다. 진 나라 26년 옥을 쪼아 옥쇄를 만들게 할 때 이사가 그 위에 이 8 글자를 전서하였습니다. 28년 진 나라 시황제가 순수하여 동정호에 이르렀는데 바람과 파도가 크게 일어 배가 장차 뒤집어지려 할 때 급히 호수에 옥을 던지자 (풍랑이) 그쳤습니다.
至三十六年,始皇巡狩至華陰,有人持璽遮道,與從者曰:『持此還祖龍。』言訖不見。此璽復歸於秦。明年,始皇崩。後來子嬰將玉璽獻與漢高祖。後至王莽篡逆,孝元皇太后將璽打王尋,蘇獻,崩其一角,以金鑲之。光武得此寶於宜陽,傳位至今。近聞十常侍作亂,劫少帝出北邙,回宮失此寶。今天授主公,必有登九五之分。此處不可久留,宜速回江東,別圖大事。」堅曰:「汝言正合吾意。明日便當託疾辭歸。」商議已定,密諭軍士勿得洩漏。
36년에 이르러 시황제가 순수하여 화음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람이 옥쇄를 가지고 길을 막고 따르는 사람과 함께 말하기를 “이를 조룡에게 돌려줄 것을 기다렸습니다.” 했다. 말을 마치고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옥쇄가 다시 진 나라에 돌아 온 것입니다. 다음 해 시황제가 죽고 후에 아들 (진왕)자영이 옥쇄를 가지고 와서 한 나라 고조에게 바쳤습니다. 후에 왕망이 천자의 자리를 빼앗음에 이르러 효원황태후가 옥쇄를 가지고 왕심과 소헌을 때릴 때 그 한 모서리가 부서지자 금으로 매웠습니다. 광무제가 이 보배를 의양에서 얻어 지위를 전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최근에 10상시가 난을 일으켜 소제를 위협하여 북망으로 내보냈는데 황궁으로 돌아 와서 이 보물을 잃어버렸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하늘이 주공에게 주는 것으로 반드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은 오래 머물 수 없으니 빨리 강동으로 돌아가 따로 대사를 도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했다. 손견이 말하기를 “너의 말이 바로 나의 뜻에 부합한다. 내일 병을 핑계로 하직하고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는 상의하여 정하고, 비밀리에 군사를 깨우쳐 누설되지 않게 하였다.
誰想數中一軍,是袁紹鄉人,欲假此為進身之計,連夜偷出營寨,來報袁紹。紹與之賞賜,暗留軍中。次日,孫堅來辭袁紹曰:「堅抱小疾,欲歸長沙,特來別公。」紹笑曰:「吾知公疾乃害傳國璽耳。」堅失色曰:「此言何來?」紹曰:「今興民討賊,為國除害。玉璽乃朝廷之寶,公既獲得,當對眾留盟主處,候誅了董卓,復歸朝廷。今匿之而去,意欲何為?」堅曰:「玉璽何由在吾處?」紹曰:「建章殿井中之物何在?」堅曰:「吾本無之,何強相逼?」紹曰:「作速取出,免自生禍。」堅指天為誓曰:「吾若果得此寶,私自藏匿,異日不得善終,死於刀箭之下!」
그 안에 한 군인이 원소의 고향 사람일 줄을 누가 생각하였겠는가? 이를 빌려 출세의 계획으로 하고자하여 밤에 몰래 진을 나와 원소에게 보고하였다. 원소가 상을 주고 몰래 군중에 머물게 했다. 다음 날 손견이 와서 원소에게 하직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작은 병이 있어 장사로 돌아가고자 하여 와서 공을 이별합니다.” 했다. 원소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공의 병이 곧 전해지는 국새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햇다. 손견이 얼굴색이 변하여 말하기를 “이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입니까?” 하니 원소가 말하기를 “지금 백성을 흥기하고 적을 토벌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해침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옥새는 곧 조정의 보배인데 공이 이미 얻었으니 마땅히 무리를 대하여 맹주가 있는 곳에 두었다가 제후들이 동탁을 죽이면 다시 조정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지금 그것을 숨기고 가는 것은 뜻이 무엇을 하고자 함입니까?” 했다. 손견이 말하기를 “옥새가 어떤 연유로 나에게 있다 하는 것입니까?” 원소가 말하기를 “건장전 우물 속의 물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했다. 손견이 말하기를 “나에게 본래 그것이 없는데 어찌 억지로 서로 핍박합니까?” 원소가 말하기를 “빨리 취한 것을 내 놓아서 스스로 화가 생겨나는 것을 면하시오.” 했다. 손견이 하늘을 가리키며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만약 관연 이 보물을 얻어서 사사로이 감추어 숨겼다면 다른 날 좋은 마침을 얻지 못하여 칼과 화살 아래에서 죽을 것이라!” 했다.
眾諸侯曰:「文臺如此說誓,想必無之。」紹喚軍士出曰:「打撈之時,有此人否?」堅大怒,拔所佩之劍,要斬那軍士。紹亦拔劍曰:「汝斬軍士,乃欺我也。」紹背後顏良、文醜皆拔劍出鞘。堅背後程普,黃蓋,韓當,亦掣刀在手。眾諸侯一齊勸住。堅隨即上馬,拔寨離洛陽而去。紹大怒,遂寫書一封,差心腹人連夜往荊州,送與刺史劉表,教就路上截住奪之。
여러 제후가 말하기를 “문대(손견)가 이 같이 맹세하니 반드시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했다. 원소가 군사를 불러내어 말하기를 “건졌을 때 이 사람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했다. 손견이 크게 성내어 차고 있던 검을 뽑아 군사의 허리를 베었다. 원소가 또한 검을 뽑고 말하기를 “에가 군사를 벤 것은 곧 아를 속이려는 것이다.” 했다. 원소 뒤에 안량, 문추가 모두 검을 칼집에서 뽑았다. 손견의 뒤에 정보, 황개, 한당이 또한 칼을 뽑아 손에 쥐었다. 여러 제후들이 일제히 멈출 것을 권하였다. 손견이 이에 따라 말에 올라 진을 거두고 낙양을 떠나갔다. 원소가 크게 성내어 마침내 편지 한 통을 써서 심복을 보내 밤을 이어 형주에 가서 형주자사 유표에게 보내 주고 길을 끊어 그것을 빼앗으라 했다.
次日,人報曹操追董卓,戰於滎陽,大敗而回。紹令人接至寨中,會眾置酒,與操解悶。飲宴間,操歎曰:「吾始興大義,為國除賊。諸公既仗義而來,操之初意,欲煩本初引河內之眾,臨孟津,酸棗;諸君固守成皋,據廒倉,塞轘轅、大谷,制其險要;公路率南陽之軍,駐丹、析,入武關,以震三輔:皆深溝高壘,勿與戰,益為疑兵,示天下形勢,以順誅逆,可立定也。今遲疑不進,大失天下之望。操竊恥之!」紹等無言可對。
다음날 조조가 동탁을 추격하다 형양에서 싸워 크게 패하여 돌아왔다고 보고하였다. 원소가 사람을 시켜 진중에 이르러 영접하고, 무리들이 만나 술을 두고 조조의 고민을 풀었다. 마시는 연회 사이에 조조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처음 대의를 일으켜 나라를 위해 도적을 제거하려하자 제 공들이 이미 의를 지팡이 삼아 왔습니다. 나의 처음 뜻은 본초(원소)가 하내의 무리를 이끌고 맹진, 산조에 임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겼습니다. 여러 장수들이 성고를 굳게 지키고 오창에 근거하여 환원, 대곡을 막아 그 험한 요해처를 제어하였습니다. 공로(원술)가 남양의 군사를 이끌고 단현, 석현에 주둔하여 무관에 들어가 삼보를 진동시켰습니다. 모두 깊은 도랑과 높은 보루를 만들어 더불어 싸우고, 더욱이 병사를 의심하지 말아야 하며, 천하의 형세보아 순히 역적을 베어 죽여야 안정함을 세울 수 있습니다. 지금 미루고 의심하여 나아가지 않아 천하의 바람을 크게 잃으니 나는 적이 부끄럽게 여깁니다!” 했다 원소 등은 대답할 만한 말이 없었다.
既而席散,操見紹等各懷異心,料不能成事,自引軍投揚州去了。公孫瓚謂玄德、關、張曰:「袁紹無能為也,久必有變。吾等且歸。」遂拔寨北行。至平原,令玄德為平原相,自去守地養軍。兗州太守劉岱,問東郡太守喬瑁借糧;瑁推辭不與,岱引軍突入瑁營,殺死喬瑁,盡降其眾。袁紹見眾人各自分散,就領兵拔寨,離洛陽,投關東去了。
이윽고 자리가 흩어지자 조조가 원소 등을 보니 각기 다른 마음을 품고 있어 일을 이룰 수 없음을 헤아리고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양주를 향하여 갔다. 공손찬이 현덕, 관우, 장비를 보고 말하기를 “원소는 잘 할 수 없다. 오래면 반드시 변란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도 또한 졸아갈 것이다.” 했다. 마침내 진지를 거두어 북쪽으로 갔다. 평원에 이르러 현덕으로 하여금 평원의 관리로 삼아 스스로 가서 땅을 지키고 군대를 기르게 했다. 예주 태수 유대가 동군태수 교모에게 식량을 빌릴 수 있는지를 물었다. 교모가 사양하고 주지 않으니 유대가 군대를 이끌고 교모의 진영을 돌입하여 교모를 죽이니 그 무리들이 모두 항복하였다. 원소가 여러 사람들이 각자 나누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나아가 군대를 거느리고 진을 거두어 낙양을 떠나 관동을 향하여 갔다.
卻說荊州刺史劉表,字景升,山陽高平人也:乃漢室宗親;幼好結納,與名士七人為友,時號「江夏八俊」。那七人:一一汝南陳翔,字仲麟;同郡范滂,字孟博;魯國孔昱,字世元;渤海范康,字仲真;山陽檀敷,字文友;同郡張儉,字元節;南陽岑晊,字公孝。劉表與此七人為友;有延平人蒯良、蒯越,襄陽人蔡瑁為輔。當時看了袁紹書,隨令蒯越、蔡瑁引兵一萬來截孫堅。
각설하고 형주 자사 유표는 자가 승경이니 산양 고평 사람이다. 곧 한 나라 황실의 종친으로 어려서 부터 (다른 사람과)관계 맺기를 좋아하여 명망 있는 선비 7명과 벗이 되었는데 그 때 ‘강하팔준(강하 지방의 8명의 준걸)’이라 불렸다. 그 일곱 사람은 여남의 진상은 자가 중린이고, 같은 군 범방은 자가 맹박이고, 노국의 공욱은 자가 세원이고, 발해의 범강은 자가 중진이고, 산양의 단부는 자가 문우이고, 같은 군 장검은 자가 원절이고, 남양의 잠질은 자가 공효이다. 유표와 이 일곱 사람은 벗이 되었고, 연평인 괴량, 괴월, 양양 사람 채모는 보조가 되었다. 당시에 원소의 글을 보고 따라 괴월, 채모로 하여금 군대 1만을 거느리고 와서 손견을 막게 했다.
堅軍方到,蒯越將陣擺開,當先出馬。孫堅問曰:「蒯英度何故引兵截吾去路?」越曰:「汝既為漢臣,如何私匿傳國之寶?可速留下,放汝歸去!」堅大怒,命黃蓋出戰。蔡瑁舞刀來迎。鬥到數合,黃蓋揮鞭打瑁,正中護心鏡。瑁撥回馬走,孫堅乘勢殺過界口。山背後金鼓齊鳴,乃劉表親自引軍來到。
손견의 군대가 막 이르는데 괴월이 진을 치고 앞서 말을 타고 나와 대적하였다. 손견이 물어 말하기를 “괴영도가 무슨 이유로 군대를 이끌고 내가 가는 길을 막는가?” 했다. 괴월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한 나라의 신하가 되었는데 어찌하여 사사로이 나라에 전하는 보배를 감추는가? 빨리 남겨 놓고 네가 돌아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했다. 손견이 크게 성내면서 황개로 하여금 나가 싸우게 했다. 채모가 칼춤을 추면서 나와 맞았다. 싸움이 몇 합에 이르자 황개가 채찍을 휘둘러 채모를 쳐서 호심경을 적중시켰다. 채모가 말을 돌려 달아나니 손견이 형세를 타고 경계를 지났다. 산 뒤에서 금고가 일제히 울리면서 곧 유표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와 이르렀다.
孫堅就馬上施禮曰:「景升何故信袁紹之書,相逼鄰郡!」表曰:「汝匿傳國璽,將欲反耶?」堅曰:「吾若有此物,死於刀箭之下!」表曰:「汝若要我聽信,將隨軍行李,任我搜看。」堅怒曰:「汝有何力,敢小覷我!」方欲交兵,劉表便退。堅縱馬趕去,兩山後伏兵齊起,背後蒯越、蔡瑁趕來,將孫堅困在垓心。正是:玉璽得來無用處,反因此寶動刀兵。畢竟孫堅怎地脫身,且聽下文分解。
손견이 말위에서 나아가 예를 베풀면서 말하기를 “승경(유표)은 무슨 이유로 원소의 글을 믿고 서로 이웃 군을 핍박하는가!” 하니 유표가 말하기를 “네가 나라에 전하는 옥쇄를 숨기고 장차 배반하려하는가?” 했다. 손견이 성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만약 이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면 칼과 화살 아래서 죽을 것이다!”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네가 만약 나를 믿게 하고자 한다면 군대를 따라 행리(여행 할 때 쓰이는 물건과 차림)를 나에게 맡기고 수색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했다. 손견이 성내면서 말하기를 “너에게 무슨 힘이 있기에 감히 나를 희롱 하는가!” 했다. 막 군대가 서로 싸우려는데 유표가 물러났다. 손견이 군사를 놓아 추격하는데 두 산 뒤에 숨어있던 군대가 일제히 일어났다. 뒤에는 괴월과 채모가 추격해 와서 장차 손견이 어렵게도 포위된 가운데 있었다. 바로 이러한데 옥쇄를 얻어 왔으되 쓸 곳이 없이 도리어 이 보배 때문에 칼과 군대가 움직이고, 마침내 손견이 어떻게 몸을 탈출 할지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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