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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7회 원소가 반하에서 공손찬과 싸우고, 손견은 강을 따라 유표를 치다.

by 최인표 2020. 1. 10.

第七回袁紹磐河戰公孫孫堅跨江擊劉表

7회 원소가 반하에서 공손찬과 싸우고, 손견은 강을 따라 유표를 치다.

 

卻說孫堅被劉表圍住虧得程普黃蓋韓當三將死救得脫折兵大半奪路引兵回江東自此孫堅與劉表結怨

각설하고 손견이 유표에게 포위당하였는데 다행히 정보, 황개, 한당 세 장군이 죽음으로 구하여 탈출하였으나 군대 태반이 꺽이고, 좁은 길로 군대를 이끌고 강동으로 돌아갔다. 이로부터 손견과 유표가 원한을 맺었다.

 

且說袁紹屯兵河內缺少糧草冀州牧韓馥遣人送糧以資軍用謀士逢紀說紹曰:「大丈夫縱橫天下何待人送糧為食冀州乃錢糧廣盛之地將軍何不取之?」紹曰:「未有良策。」紀曰:「可暗使人馳書與公孫瓚令進兵取冀州約以夾攻瓚必興兵韓馥無謀之輩必請將軍領州事就中取事唾手可得。」

또 말해보면 원소는 하내에 군사를 주둔하였는데 식량과 풀(말이 먹을 풀)이 부족하였다. 기주목 한복이 사람을 보내 식량을 보내 군사용으로 쓰게 했다. 모사 봉기가 원소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대장부가 천하를 종횡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약식을 보내는 식량을 기다려서 먹겠습니까? 기주는 곧 돈과 식량이 넓고, 풍성한 땅입니다. 장군은 어찌하여 그것을 취하지 않습니까?” 했다. 원소가 말하기를 좋은 계책이 없다.” 하니 봉기가 말하기를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공손찬에게 글을 주어 군대를 진격시켜 기주를 취하게 하기로 약속하여 공격하자하면 공손찬이 판드시 군대를 일으킬 것입니다. 한복은 꾀가 없는 무리이니 반드시 장군을 청하여 주의 일을 거느리게 할 것이니 나아가 일을 취하면 손에 침을 뱉듯이 얻을 수 있습니다.” 했다.

紹大喜即發書到瓚處瓚得書見說共攻冀州平分其地大喜即日興兵紹卻使人密報韓馥馥慌聚荀諶辛評二謀士商議諶曰:「公孫瓚將燕代之眾長驅而來其鋒不可當兼有劉備張助之難以抵敵今袁本初智勇過人手下名將極廣將軍可請彼同治州事彼必厚待將軍無患公孫瓚矣。」

원소가 크게 기뻐하면서 곧 글을 내어 공손찬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공손찬이 글을 받아 함께 기주를 공격하고 그 땅을 반으로 나누자는 것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면서 그날 군대를 일으켰다. 원소가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한복에게 알렸다. 한복이 당황하여 순심, 신평을 모아 두 모사가 의논하게 했다. 순심이 말하기를 공손찬은 연 지방과 대 지방의 무리를 거느리고 오래 달려올 것이니 그 예봉을 당할 수 없습니다. 겸하여 유비, 관우, 장비가 그를 도우면 대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운소는 지혜와 용맹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휘하에 이름있는 장수가 지극히 많으니 장군은 그와 함께 주의 일을 다스릴 것을 청하면 그가 반드시 장군을 두터이 대접할 것이니 공손찬을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했다.

韓馥即差別駕關純去請袁紹長史耿武諫曰:「袁紹孤客窮軍仰我鼻息譬如嬰兒在股掌之上絕其乳哺立可餓死奈何欲以州事委之此引虎入羊群也。」馥曰:「吾乃袁氏之故吏才能又不如本初古者擇賢者而讓之諸君何嫉妒耶?」耿武歎曰:「冀州休矣!」於是棄職而去者三十餘人獨耿武與關純伏於城外以待袁紹

한복이 곧 별가 관순을 보내 원소에게 청하였다. 장사 경무가 간하여 말하기를 원소는 외로이 떠돌아 군대가 궁색하여 우리의 콧숨을 우러릅니다. 비유하면 어린애가 넓적다리와 손바닥 위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젖먹이기를 끊으면 서서 굶겨 죽일 수 있습니다. 어찌 주의 일을 맡기려 합니까? 이는 호랑이를 이끌어 양의 무리에 들이는 것입니다.” 했다. 한복이 말하기를 내가 곧 원씨의 옛 관리인데 재능이 원소와 같지 못하다. 옛 날에 어진 자를 가려서 양보 한다 하는데 그대들이 어찌 질투하는가?” 했다. 경무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기주가 끝나는구나!”하고는 이에 관직을 버리니 떠난 자가 30여사람 이었다. 유독 경무와 관순이 성 밖에 엎드려 원소를 기다렸다.

數日後紹引兵至耿武關純拔刀而出欲刺殺紹紹將顏良立斬耿武文醜砍死關純紹入冀州以馥為奮威將軍以田豐沮授許攸逢紀分掌州事盡奪韓馥之權馥懊悔無及遂棄下家小匹馬往投陳留太守張邈去了

몇 일 후 원소가 군대를 이끌고 이르렀다. 경무와 관순이 칼을 뽑아 나가 원소를 찔러 죽이려 했다. 원소가 안량을 거느리고 경무를 선채 베고, 문추는 관순을 베어 죽였다. 원소가 기주에 들어가 한복을 분위장군으로 삼고, 전풍, 저수, 허유, 봉기에게 주의 일을 나누어 맡게 하였는데 모두 한복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었다. 한복이 후회하여도 미침이 없어 마침내 처자식을 버리고 한 필의 말을 타고 진류태수 장막에게 갔다.

卻說公孫瓚知袁紹己據冀州遣弟公孫越來見紹欲分其地紹曰:「可請汝兄自來吾有商議。」越辭歸行不到五十里道旁閃出一彪軍馬口稱:「我乃董丞相家將也!」亂箭射死公孫越從人逃回見公孫瓚報越已死瓚大怒曰:「袁紹誘我起兵攻韓馥他卻就裏取事今又詐董卓兵射死吾弟此冤如何不報!」盡起本部兵殺奔冀州來

각설하고 공손찬이 원소가 이미 기주를 근거하였음을 알고는 동생 공손월을 보내 원소를 만나 그 땅을 나눌 것을 바랐다. 원소가 말하기를 너의 형에게 청하여 스스로 오면 내가 상의할 수 있다.” 했다. 공손월이 하직하고 돌아갔다. 가기를 50리에 이르지 못하여 길옆에서 번개 같이 한 떼의 군대가 나와 말하기를 나는 동 승상(동탁) 가문의 장수이다!” 하고는 어지러이 활을 쏘아 공손월을 죽였다. 따르는 사람이 도망하여 돌아가 공손찬을 보고 공손월이 이미 죽었음을 보고하였다. 공손찬이 크게 성내면서 말하기를 원소가 나를 유인하여 군대를 일으켜 한복을 치게 하고 다른 쪽으로 나아가 일을 취하고 지금 또한 거짓으로 동탁의 군대가 내 동생을 쏘아 죽인 것으로 하니 이 원한을 어떻게 갚을고!” 하고는 본부의 군대를 모두 일으켜 죽이며 기주로 달려 왔다.

紹知瓚兵至亦領軍出二軍會於磐河之上紹軍於磐河橋東瓚軍於橋西瓚立馬橋上大呼曰:「背義之徒何敢賣我!」紹亦策馬至橋邊指瓚曰:「韓馥無才願讓冀州於吾與爾何干?」瓚曰:「昔日以汝為忠義推為盟主今之所為真狼心狗行之徒有何面目立於世間!」袁紹大怒曰:「誰可擒之?」

원소가 공손찬의 군대가 이름을 알고는 또한 군대를 이끌고 나왔다. 두 군대가 반하 위에서 만났는데 원소의 군대는 반하교 동쪽, 공손찬의 군대는 다시 서쪽이었다. 공손찬이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의를 배반한 무리가 어찌 감히 나를 파는가!” 원소가 또한 말을 채찍질하여 다리 가에 이르러 공손찬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한복이 재능이 없어 기주를 나에게 양보하였는데 너는 무엇을 구하는가?” 하니 공손찬이 말하기를 옛날 네가 충의를 행하여 맹주로 추대하였다. 지금 하는 바는 참으로 이리의 마음과 개의 행동을 하는 무리이니 무슨 면목으로 세간에 서려는가!” 했다. 원소가 크게 성내면서 말하기를 누가 잡을 수 있겠는가?” 했다.

言未畢文醜策馬挺鎗直殺上橋公孫瓚就橋邊與文醜交鋒戰不到十餘合瓚抵擋不住敗陣而走文醜乘勢追趕瓚走入陣中文醜飛馬逕入中軍往來衝突瓚手下健將四員一齊迎戰被文醜一鎗刺一將下馬三將俱走文醜直趕公孫瓚出陣後瓚望山谷而逃文醜驟馬厲聲大叫:「快下馬受降!」瓚弓箭盡落頭盔墮地披髮縱馬奔轉山坡其馬前失瓚翻身落於坡下文醜急捻鎗來刺忽見草坡左側轉出一個少年將軍飛馬挺鎗直取文醜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문추가 말을 채찍질하고 창을 내밀러 곧바로 다리에 올랐다. 공손찬이 다리 가에 나아가 문추와 함께 칼끝을 주고받았다. 싸움이 10여합이 되지 않아 공손찬이 막지 못하고 진이 무너져 달아났다. 문추가 형세를 타고 추격하였다. 공손찬이 달려 진 안으로 들어가니 문추가 나는 듯이 말을 타고 바로 중군에 들어가서 오고가면서 충돌하였다. 공손찬의 부하 용맹스런 장수 네 사람이 일제히 맞아 싸웠는데 문추이 한 창에 찔려 한 장수가 말에서 떨어지니 세 장군이 모두 달아났다. 문추가 바로 추격하니 공손찬이 진의 뒤로 나와 산 계곡을 바라보고 도망하였다. 문추가 말을 달리며 위협하는 소리로 크게 부르짖기를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하였다. 공손찬은 활과 화살이 모두 떨어지고 투구가 땅에 떨어져 머리를 풀고 말을 재촉하여 구르듯이 산기슭으로 달아나는데 그 말이 앞으로 고꾸라지자 공손찬이 몸을 뒤집어 기슭아래에 떨어졌다. 문추가 급히 창을 들어 찔러 왔다. 갑자기 풀 언덕 왼쪽에서 구르듯이 나오는 한 소년 장군이 나와 나는 듯이 말을 달려 바로 문추를 취하였다.

公孫瓚爬上坡去看那少年生得身長八尺濃眉大眼闊面重頤威風凜凜與文醜大戰五六十合勝負未分瓚部下救軍到文醜撥馬回去了那少年也不追趕瓚忙下土坡問那少年姓名那少年欠身答曰:「某乃常山真定人也姓趙名雲字子龍本袁紹轄下之人因見紹無忠君救民之心故特棄彼而投麾下不期於此處相見。」瓚大喜遂同歸寨整頓甲兵

공손찬이 기어 언덕 위로 올라가서 어떤 소년인지 보니 신장은 여덟 자이고, 짙은 눈썹에 큰 눈, 넓은 얼굴, 중첩한 턱에 위풍이 늠늠하였다. 문추와 더불어 크게 싸운지 5,60합에 승부가 나지 않았다. 공손찬의 부하 구원군이 이르니 문추가 말을 배어 돌아갔다. 소년이 추격하지 않았다. 공손찬이 바쁘게 흙 언덕을 내려가 소년의 성명을 물었다. 소년이 몸을 굽히고 댇바하여 말하기를 나는 곧 상산 진정 땅 사람으로 성은 조이고, 이름은 운이며, 자는 자룡입니다. 본래 원소 휘하 사람이었습니다. 원소가 임금에 충성하고 백성을 구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특히 그를 버리고 휘하에 몸을 던질 것을 기약하지 않음에도 이곳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했다. 공손찬이 크게 기뻐하면서 마침내 함께 진으로 돌아가 군사를 정돈하였다.

次日瓚將軍馬分作左右兩隊勢如羽翼馬五千餘匹大半皆是白馬因公孫瓚曾與羌人戰盡選白馬為先鋒號為白馬將軍」;羌人但見白馬便走因此白馬極多袁紹令顏良文醜為先鋒各引弓弩手一千亦分作左右兩隊令在左者射公孫瓚右軍在右者射公孫瓚左軍再令麴義引八百弓手步兵一萬五千列於陣中袁紹自引馬步軍數萬於後接應

다음 날 공손찬이 군마를 좌우 두 부대로 나누어 거느리니 형세가 날개와 같았다. 5천여필은 태반이 백마였다. 공손찬이 일찍이 강족과 싸웠는데 모두 백마를 가려 선봉으로 하고 백마장군이라 불렀는데 강족이 단지 백마를 보면 곧 달아났기 때문에 백마가 지극히 많았다. 원소가 안량, 문추로 선봉을 삼아 각기 궁노수 1천을 이끌게 하고 또한 좌우 두 부대로 하여 왼쪽에 있는 자는 공손찬의 우군을 쏘게 하고, 오른 쪽에 있는 자는 공손찬의 좌군을 쏘게 하였다. 다시 국의로 하여금 궁수 8백명과 보병 15천을 거느리고 진 가운데 늘어서게 하였다. 원소 스스로는 기병과 보병 수만을 거느리고 뒤에서 응원하였다.

公孫瓚初得趙雲不知心腹令其另領一軍在後遣大將嚴綱為先鋒瓚自領中軍立馬橋上傍豎大紅圈金線字旗於馬前從辰時擂鼓直至巳時紹軍不進。 麴義令弓手皆伏於遮箭下只聽砲響發箭嚴綱鼓譟吶喊直取麴義義軍見嚴綱兵來都伏而不動直到來得至近一聲砲響八百弓弩手一齊俱發綱急得回被麴義拍馬舞刀斬於馬下瓚軍大敗左右兩軍欲來救應被被顏良文醜引弓弩手射住紹軍並進直殺到界橋邊麴義馬到先斬執旗將把繡旗砍倒

공손찬이 처음 조운을 얻었으되 마음속을 알 수 없어 그 한 부대를 나누어 거느리고 뒤에 있게 하고, 대장 엄강을 보내 선봉으로 삼았다. 공손찬 스스로는 중군을 거느리고 다리에 올라 말을 세웠는데 크고 붉으며 금선을 두른 자 기를 말 앞에 세웠다. 진시에 북을 침으로부터 바로 사시에 이르기까지 원소의 군대가 나가지 않았다. 국의가 국의는 궁수 모두를 화살 막이 아래 숨기고 다만 포 소리를 들으면 활을 쏘게 했다. 엄강이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서 곧 바로 국의를 취하니 국의의 군대가 언강의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는 모두 엎드려 움직이지 않다가 곧바로 지극히 가까이 이르자 한 소리 포소리가 울리면서 8백의 궁수가 일제히 모두 활을 쏘앗다. 엄강이 급히 돌아오려 하는데 국의가 말에 박차를 가하고 칼을 춤추듯이 휘둘러 베어 말에서 떨어뜨리니 공손찬으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 우 두 군대가 와서 구원하려 하였으나 안량과 문추가 이끄는 궁노수의 화살을 맞았다. 원소의 군대가 아울러 나아가 바로 계교 가에 이르자 국의의 말도 이르러 먼저 기를 잡은 장수를 베고 수놓은 기를 잡아 베고 넘어뜨렸다.

公孫瓚見砍倒繡旗回馬下橋而走麴義引軍直衝到後軍正撞著趙雲挺鎗躍馬直取麴義戰不數合一鎗刺麴義於馬下趙雲一騎馬飛入紹軍左衝右突如入無人之境公孫瓚引軍殺回紹軍大敗

공손찬이 수놓은 기가 베어 넘어지는 것을 보고는 말을 돌려 다리를 내려가 달아났다. 국의가 군대를 이끌고 바로 돌진하여, 후군에 이르러 바로 조운을 만났다. (조운이)창을 내밀고 말을 뛰어 바로 국의를 취하였다. 싸운지 몇 합되지 않아 한 창으로 국의를 찌르니 국의가 말에서 떨어졌다. 조운이 한 마리 말로 나는 듯이 달려 원소의 군대로 들어가는데 마치 사람이 없는 듯하였다. 공손찬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죽이니, 원소의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卻說袁紹先使探馬看時回報麴義斬將搴旗追趕敗兵因此不作準備與田豐引著帳下持戟軍士數百人弓箭手數十騎乘馬出觀呵呵大笑曰:「公孫瓚無能之輩!」

각설하고 원소가 먼저 적의 동정을 살피게 할 때 국의가 기를 든 장수를 베고 추격하여 군대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보고하니 이로 인하여 준비 없이 전풍과 함께 장막아래서 창을 지니고 군사 수백인과 궁전수 수 십기를 이끌고 말을 타고 나와 보면서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공손찬이 무능한 무리이구나!” 했다.

正說之間忽見趙雲衝到面前弓箭手急待射時雲連刺數人眾軍皆走後面瓚軍團團圍裹上來田豐慌對紹曰:「主公且於空牆中躲避!」紹以兜鍪撲地大呼曰:「大丈夫願臨陣鬥死豈可入牆而望活乎!」眾軍士齊心死戰趙雲衝突不入紹兵大隊掩至顏良亦引軍來到兩路并殺趙雲保公孫瓚殺透重圍回到界橋紹驅兵大進復趕過橋落水死者不計其數袁紹當先趕來不到五里只聽得山背後喊聲大起閃出一彪人馬為首三員大將乃是劉玄德關雲長張翼德因在平原探知公孫瓚與袁紹相爭特來助戰當下三匹馬三般兵器飛奔前來直取袁紹紹驚得魂飛天外手中寶刀墜於馬下忙撥馬而逃眾人死救過橋公孫瓚亦收軍歸寨玄德張動問畢瓚曰:「若非玄德遠來救我幾乎狼狽。」教與趙雲相見玄德甚相敬愛便有不捨之心

바로 말하는 사이에 갑자기 조운이 충돌하면서 얼굴 앞에 이르렀다. 궁전수가 급히 활쏘기를 준비할 때 조운이 연이어 여러 명을 찌르니 여러 군대가 모두 달아났다.

卻說袁紹輸了一陣堅守不出兩軍相拒月餘有人來長安報知董卓李儒對卓曰:「袁紹與公孫瓚亦當今豪傑見在磐河廝殺宜假天子之詔差人往和解之二人感德必順太師矣。」卓大喜次日便使太傅馬日磾太僕趙岐齎詔前去二人來至河北紹出迎於百里之外再拜奉詔

각설하고 원소가 일 진이 돌아오자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두 군대가 서로 막으며 대치한지 한 달 쯤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장안으로 와서 동탁에게 보고하였다. 이유가 동탁을 대하여 말하기를 원소와 공손찬은 또한 지금의 호걸입니다. 반하에 있으면서 서로 싸우고 죽임을 보이니 천자의 조서를 빌려 사람을 보내가서 화해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두 사람이 덕에 감동하여 반드시 대사를 따를 것입니다.” 했다. 동탁이 크게 기뻐하였다. 다음날 곧 태부 마일제, 태부 조기로 하여금 조서를 가지고 가게 했다. 두 사람이 하북에 이르니 우너소가 백리 밖으로 나와 맞고는 두 번 절하고 조서를 받들었다.

次日二人至瓚營宣諭瓚乃遣使致書於紹互相講和二人自回京復命瓚即日班師又表薦劉玄德為平原相玄德與趙雲分別執手垂淚不忍相離雲歎曰:「某日誤認公孫瓚為英雄今觀所為亦袁紹等輩耳!」玄德曰:「公且屈身事之相見有日。」灑淚而別

다음날 두 사람이 공손찬의 진영에 이르러 가르침을 펴니 공손찬이 곧 사자를 시켜 원소에게 글이 이르도록 하고 서로 강화하니 두 사람이 서울로 돌아가 복명하였다. 공손찬이 그날 군대를 돌이키면서 또한 표를 올려 유현덕을 평원상에 삼을 것을 추천하였다. 현덕과 조운이 이별하면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차마 서로 떨어지지 못하였다. 조운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날로 공손찬이 영웅이 될 것이라 잘 못 여겼다. 지금 하는 바를 보니 또한 원소 등의 무리일 뿐이구나!”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공이 또한 몸을 굽혀 그를 섬기니 서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하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졌다.

卻說袁術在南陽聞袁紹新得冀州遣使來求馬千匹紹不與術怒自此兄弟不睦又遣使往荊州問劉表借糧二十萬表亦不與術恨之密遣人遺書於孫堅使伐劉表其書略曰前者劉表截路乃吾兄本初之謀也今本初又與表私議欲襲江東公可速興兵伐劉表吾為公取本初二讎可報公取荊州吾取冀州切勿誤也

각설하고 원술이 남양에 있으면서 원소가 기주를 얻었다는 것을 듣고 사자를 보내 말 천 필을 구하였다. 원소가 주지 않자 원술이 성내었다. 이로부터 형제가 화합하지 못하였다. 또한 사자를 형주에 보내 유표에게 군량 20만석을 빌려 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유표가 또한 주지 않았다. 원술이 그것을 원망하여 비밀히 사람을 시켜 손견에게 글을 보내 유표를 치게 하였다. 그 글을 요약하면 앞서 유표가 길을 끊은 것은 곧 내 형 원소의 꾀이다. 지금 원술이 유표와 함께 사사로이 의논하여 강동을 습격하려한단. 공은 속히 군대를 일으켜 유표를 치는 것이 옳다. 나는 공을 위해 원소를 취하여 두 원수를 갑을 수 있다. 공이 형주를 취하고 내가 기주를 취하면 간절하여 잘못 됨이 없을 것이라!’ 했다.

堅得書曰:「叵耐劉表昔日斷吾歸路今不乘時報恨更待何時!」聚帳下程普黃蓋韓當等商議程普曰:「袁術多詐未可准信。」堅曰:「吾自欲報讎豈望袁術之助乎?」便差黃蓋先來江邊安排戰船多裝軍器糧草大船裝載戰馬剋日興師江中細作探知來報劉表表大驚急聚文武將士商議蒯良曰:「不必憂慮可令黃祖部領江夏之兵為前驅主公率荊襄之眾為援孫堅跨江涉湖而來安能用武乎?」表然之令黃祖設備隨後便起大軍

손견이 글을 보고는 말하기를 참을 수 없다. 유표야! 지난날에 내가 돌아가는 길을 끊었으니 지금 때를 타서 한을 갚지 못하면 다시 어느 대를 기다릴꼬!” 하고는 장막 아래로 정보, 황개, 한당 등을 모아 상의 하였다. 정보가 말하기를 원술은 속임이 많으니 믿을 수 없습니다.” 하니 손견이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원소를 갚고자 하는 것이지 어찌 원술의 도움을 바라겠는가?” 하고는 곧 황개를 먼저 강변으로 오게 하여 전선을 안배하고 많은 군기와 식량, 풀을 준비하며, 큰 배에는 전마를 싣고 날을 정해 군대를 일으키게 했다. 강 가운데의 첩자가 탐지하여 유표에게 보고하였다. 유표가 크게 놀라 급히 문관과 무장을 모아 상의하였다. 괴량이 말하기를 굳이 근심하지 마십시오. 황조부로 하여금 강하의 군대를 이끌고 선봉으로 삼고, 주공은 형양의 무리를 거느리고 응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손견이 강을 따라 호수를 건너 오니 어찌 군대 운용을 잘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유표가 그렇다하고는 황조로 하여금 대비를 하게하고 뒤를 따라 곧 대군을 일으켰다.

卻說孫堅有四子皆吳夫人所生長子名策字伯符次子名權字仲謀三子名翊字叔弼四子名匡字季佐吳夫人之妹即為孫堅次妻亦生一子一女子名朗字早安女名仁堅又過房俞氏一子名韶字公禮堅有一弟名靜字幼臺

각설하고 손견에게는 4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오부인이 낳았다. 장자는 이름이 책이고 자는 백부요, 차자는 이름이 권이고 자는 중모이며, 세재는 이름이 명익이고 자는 숙필이며, 넷째는 이름이 광이고 자는 계좌이다. 오부인의 여동생은 곧 손견의 두 번째 처이니 또한 일남일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이름이 랑이고 자는 조난이며, 딸은 이름이 인이다. 손견이 또한 유씨의 한 아들을 양자로 하였는데 이름은 소이고 자는 공례이다. 손견은 동생이 하명이니 미름은 정이고 자는 유대이다.

堅臨行靜引諸子列拜於馬前而諫曰:「今董卓專權天子懦弱海內大亂各霸一方江東方稍寧以一小恨而起重兵非所宜也願兄詳之。」堅曰:「弟勿多言吾將縱橫天下有讎豈可不報!」長子孫策曰:「如父親必欲往兒願隨行。」堅許之遂與策登舟殺奔樊城

손경이 가려할 즈음에 정이 여러 아들을 데리고 말 앞에서 절하고 간하여 말하기를 지금 동탁이 권력을 오로지 하고 천자는 유약하며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각각 한 지방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강동이 막 편안해지는데 한 가지 작은 한 때문에 거듭 군대를 일읔는 것은 마땅한 바가 아닙니다. 형은 자세히 살피기를 바랍니다.” 했다. 손견이 말하기를 동생은 많은 말을 하지 말라. 내가 장차 천하를 종횡하려는데 원수를 두고서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했다 장자 손책이 말하기를 만약 아버지께서 반드시 가고자 하신다면 저도 다라 가기를 원합니다.” 했다. 손견이 허락하니 마침내 손책과 함께 배에 올라 번성을 향하였다.

黃祖伏弓弩手於江邊見船傍岸亂箭俱發堅令諸軍不可輕動只伏於船中來往誘之一連三日船數十次傍岸黃祖軍只顧放箭箭已放盡堅卻拔船上所得之箭約十數萬當日正值順風堅令軍士一齊放箭岸上支吾不住只得退走

황조가 궁노수를 강변에 숨기고 언덕에서 배를 보고 어지러이 활을 갖추어 쏘았다. 손견이 여러 군사로 하여금 가벼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다만 배 속에 숨어 오고 가면서 유인하였는데 연속하여 3일간 배 수십 척이 언덕에 갔다. 황조의 군대는 다만 바라곱보 화살을 소아 화살이 거의 다하였다. 손견이 배위의 얻은 바의 화살을 뽑으니 십 수만 개였다. 그날 순풍을 맞아 손견이 군사로 하여금 일제히 화살을 쏘게 하니 (황조의 군대가)언덕위에서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 달아났다.

堅軍登岸程普黃蓋分兵兩路直取黃祖營寨背後韓當驅兵大進三面夾攻黃祖大敗棄卻樊城退入鄧城堅令黃蓋守住船隻親自統兵追襲黃祖引軍出迎布陣於野堅列成陣勢出馬於門旗之下孫策也全副披掛挺鎗立馬於父側黃祖引二將出馬一個是江夏張虎一個是襄陽陳生黃祖揚鞭大罵:「江東鼠賊安敢侵犯漢室宗親境界!」便令張虎搦戰堅陣內韓當出迎兩騎相交戰三十餘合陳生見張虎力怯飛馬來助孫策望見按住手中鎗扯弓撘箭正射中陳生面門應弦落馬張虎見陳生墜地吃了一驚措手不及被韓當一刀削去半個腦袋程普縱馬直來陣前捉黃祖黃祖棄卻頭盔戰馬雜於步軍內逃命孫堅掩殺敗軍直到漢水命黃蓋將船隻進泊漢江

손견의 군대가 언덕에 올라 정보, 황개는 군대를 나누어 두 길로 바로 황조의 영채를 취하고, 뒤에는 한당의 군대가 치달아 크게 나아갔다. 3면으로 협공하니 황조가 크게 무너져 번성을 버리고 물러나 등성에 들어갔다. 손견이 황개로 하여금 배를 지키게 하고 직접 군대를 통솔하고 추격하여 습격하니 황조가 군대를 이끌고 나와 맞이하여 들판에 진을 쳤다. 손견이 열지어 진의 형세를 이루고는 문기의 아래에 말을 타고 나왔다. 손책이 또한 군장을 모두 갖추고 창을 내밀고 아버지 옆에 말을 타고 섰다. 황조가 두 장군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나왔는데 하나는 강하의 장호이고, 다른 하나는 양양의 진생이었다. 황조가 채찍을 휘두르면서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강동의 쥐새끼 같은 도적아 어찌 감히 한 나라 황실 종친의 경계를 침범하는가!” 하고는 곧 장호로 하여금 도전하게 했다. 손견의 진 안에서 한당이 나가 맞이하였다. 두 말이 서로 교차하면서 싸운지 30여합에 진생이 장호의 힘이 약함을 보고는 날듯이 말을 달려와 도왔다. 손책이 바라보고는 손 안의 창을 어루만지며 활을 끌어 화살을 걸어 바로 쏘니 진생의 얼굴에 적중하여 시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말에서 떨어졌다. 장호가 진생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머뭇거리고 놀라 손을 쓰지 못하고 한당의 한 칼을 맞아 뇌가 깍여 나가 반이 되었다. 정보가 말을 몰아 바로 진 앞으로 와 황조를 잡으려 했다. 황조가 투구, 전마를 버리고 보병에 섞여 안으로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하였다. 손견이 별안간 습격하여 죽이니 군대가 무너지므로 곧 바로 한수에 이르러 황개에게 배를 거느리고 나아가 한강에 정박하도록 명령하였다.

黃祖聚敗軍來見劉表備言堅勢不可當表慌請蒯良商議良曰:「目今新敗兵無戰心只可深溝高壘以避其鋒卻潛令人求救於袁紹此圍自可解也。」蔡瑁曰:「子柔之言直拙計也兵臨城下將至河邊豈可束手待斃某雖不才願請軍出城以決一戰。」劉表許之

황조가 무너진 군대를 모아 와서 유표를 만나 손견의 형세가 당할 수 없음을 갖충 말하였다. 유표가 허겁지겁 괴량을 청하여 상의하였다. 괴량이 말하기를 지금 새로 무너지고 군대는 싸우려는 마음이 없으니 다만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는 것으로 그 예봉을 피하면서 비밀리 사람을 시켜 원소에게 구원을 구하면 이 포위가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했다. 채모가 말하기를 자유(괴량)의 말은 바로 졸렬한 계책입니다. 군대가 성 아래 임하고 장차 물가에 이를 것인데 어지 손을 묶고 죽음 기다리겠습니까? 내가 비록 재능이 없으나 군대로 성을 나가 한번 싸움으로 결정할 것을 청합니다.” 하니 유표가 허락하였다.

蔡瑁引軍萬餘出襄陽城外於峴山布陣孫堅將得勝之兵長驅大進蔡瑁出馬堅曰:「此人是劉表後妻之兄也誰與吾擒之?」程普挺鐵脊矛出馬與蔡瑁交戰不到數合蔡瑁敗走堅驅大軍殺得尸橫遍野蔡瑁逃入襄陽蒯良言瑁不聽良策以致大敗按軍法當斬劉表以新娶其妹不肯加刑

채모가 군대 일 만을 이끌고 양양성 밖으로 나가 현산에 진을 쳤다. 손견이 승리한 군대를 거느리고 말을 몰아 쫓아 크게 나아갔다. 채모가 말을 몰아 나왔다. 손견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유표 후청의 오빠이다. 누가 나와 함께 그를 잡겠는가?” 하니 정보가 철척모 창을 내밀고 말을 타고 나와 채모와 더불어 서로 싸웠다. 몇 합 되 않아 채모가 패하여 달아났다. 손견이 대군을 몰아 죽이니 시체가 들에 가득하였다. 채모가 도망하여 양양으로 들어갔다. 괴량이 말하기를 채모가 좋은 계책을 듣지 않고 크게 무너짐에 이르렀으니 군법을 살펴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했다. 유표는 새로 그 여동생에게 장가들었으므로 즐겨 형벌을 가하지 않았다.

卻說孫堅分兵四面圍住襄陽攻打忽一日狂風驟起將中軍帥字旗竿吹折韓當曰:「此非吉兆可暫班師。」堅曰:「吾屢戰屢勝取襄陽只在旦夕豈可因風折旗竿遽爾罷兵!」遂不聽韓當之言攻城愈急蒯良謂劉表曰:「某夜觀天象見一將星欲墜以分野度之當應在孫堅主公可速致書袁紹求其相助。」

각설하고 손견이 군대를 4방향으로 나누어 양양성을 둘러싸고 공격하였다. 갑자기 하루는 광풍이 일어 중군의 자 깃대가 부러졌다. 한당이 말하기를 이는 좋은 조짐이 아니니 잠시 군사를 돌리는 것이 옳다했다. 손견이 말하기를 내가 여러 번 싸우고 여러 번 이겨 양양성을 취하는 것이 다만 아침, 저녁에 달려 있다. 어찌 바람 때문에 깃대가 부러진 것으로 대번에 군대를 파할 것인가!” 하고는 마침내 한당의 말을 듣지 않고 성을 공격하기를 더욱 급하게 했다. 괴량이 유표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밥에 하늘의 상을 관찰해 보니 하나의 장군 별이 떨어지려합니다. 들을 나누어 헤아리니 손견이 있는 곳에 해당하였습니다. 주공께서는 어서 원소에게 글을 보내 서로 도움을 구하소서.” 했다.

劉表寫書問誰敢突圍而出健將呂公應聲願往蒯良曰:「汝既敢去可聽吾計與汝軍馬五百多帶能射者衝出陣去即奔峴山他必引軍來趕汝分一百人上山尋石子準備一百人執弓弩伏於林中但有追兵到時不可逕走可盤旋曲折引到埋伏之處矢石俱發若能取勝放起連珠號砲城中便出接應如無追兵不可放砲趕程而去今夜月不甚明黃昏便可出城。」

유표가 글을 쓰고는 누가 용감하게 포위를 뚫고 나갈 것인지를 물었다. 굳센 장수 여공이 가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괴량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용감하게 나의 계책을 들을 수 있다하니 너의 군마 500명과 함께 활을 잘 쏘는 자를 많이 데리고 진을 나가서 곧 현산으로 달려가면 반드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추격할 것이니 너는 100명을 나누어 산에 올라가 자갈을 찾아 준비하고 100명은 활을 잡고 숲 속에 숨어 있으라. 다만 추격하는 군대가 이를 때가 있으면 곧 달아나지 말고 이리저리 돌라 매복한 곳에 이르도록 인도하여 화살과 돌을 모두 발사하라. 만약 승리를 취하여 연주 호포를 일으키면 성 안에서 곧 나가 응원할 것이다. 추격 군대가 없다면 포를 놓아서는 않되고 길을 재촉하여 가라. 오늘 밤은 달이 매우 밝지 않으니 저녁 때에 곧 성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했다.

呂公領了計策拴束軍馬黃昏時分密開東門引兵出城孫堅在帳中忽聞喊聲急上馬引三十餘騎出營來看軍士報說:「有一彪人馬殺將出來望峴山而去。」堅不會諸將只引三十餘騎趕來呂公已於山林叢雜去處上下埋伏堅馬快單騎獨來前軍不遠堅大叫:「休走!」呂公勒回馬來戰孫堅交馬只一合呂公便走閃入山路去堅隨後趕入卻不見呂公堅方欲上山忽然一聲鑼響山上石子亂下林中亂箭齊發堅身中石箭腦漿迸流人馬皆死於峴山之內壽止三十七歲

여공이 마음 속으로 계책을 알고는 군마를 단속하였다. 저녁 때 쯤 비밀리에 동문을 영고 군대를 이끌고 성을 나갔다. 손견이 장막 안에 있다가 갑자기 함성소리를 듣고는 급히 말에 올라 30여기를 이끌고 진영을 나가 보았다. 군사들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한 떼의 인마들이 나와 현산을 바라보고 갔습니다.” 했다. 손견이 여러 장수들을 만나지 않고 단지 30여기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여공이 이미 산림이 우거지진 곳에 가서 아래, 위로 매복하였다. 손견이 말을 빨리하여 단기로 오는데 앞의 군대가 멀지 않았다. 손견이 크게 부르짖기를 어찌 달아나는가!” 하니 여공이 말을 돌아와 손견과 싸웠다. 말이 교차 한지 단지 일합 만에 여공이 다시 달아나는데 빛과 같이 산길로 들어갔다. 손견이 뒤를 따라 추격하여 들어가니 갑자기 여공이 보이지 않았다. 손견이 막 산에 오르고자 하는데 갑자기 징 소리가 한 번 나더니 산 위에서 자갈이 어지럽게 떨어지고, 숲 가운데서 어지럽게 화살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손견의 몸에 돌과 화살이 적중하여 뇌수가 흘러내리면서 사람과 말이 모두 현산 안에서 죽으니 나이가 다만 37세였다.

呂公截住三十騎並皆殺盡於起連珠號砲城中黃祖蒯越蔡瑁分頭引兵殺出江東諸軍大亂黃蓋聽得喊聲震天引水軍殺來正迎著黃祖戰不兩合生擒黃祖程普保著孫策急待尋路正遇呂公程普縱馬向前戰不到數合一矛刺呂公於馬下兩軍大戰殺到天明各自收軍劉表軍自入城孫策回到漢水方知父親被亂箭射死屍首已被劉表軍士扛抬入城去了放聲大哭眾軍俱號泣策曰:「父屍在彼安得回鄉!」黃蓋曰:「今活捉黃祖在此得一人入城講和將黃祖去換主公屍首。」

여공이 30기를 차단하고 아울러 모두 죽이고, 연주호포소리를 울렸다. 성안에서 황조, 괴월, 채모가 군대를 나누어 이끌고 나오니 강동의 여러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황개가 함성이 하늘을 진동하는 것을 듣고 수군을 이끌고 와서 바로 황조를 맞았다. 싸운지 두 합이 되지 않아 황조를 사로잡았다. 정보가 손책을 보호하면서 급히 길을 찾다가 바로 여공을 만났다. 정보가 말을 놓아 앞을 향하여 싸운지 몇 합이 되지 않아 한 창으로 여공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두 군대가 크게 싸워 하늘이 밝음에 이르러 각기 군대를 거두었다. 유표의 군대는 성으로 들어가고 손책은 돌아와 한수에 이르러 막 부친이 어지러운 화살에 맞아 죽었으며, 시체와 머리는 이미 유표의 군사들이 메고 성에 들어갔음을 알고는 소리 내어 크게 울었다. 여러 군사들이 모두 소리 내어 목 놓아 울었다. 손책이 말하기를 아버지의 시체가 그들에게 있으니 어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니 황개가 말하기를 지금 황조를 산채로 잡아 여기에 있으니 한 사람이 성에 들어가 강화할 수 있다면 장차 황조와 주공의 시체와 머리를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言未畢軍吏桓楷出曰:「某與劉表有舊願入城為使。」策許之桓楷入城見劉表具說其事表曰:「文臺屍首吾已用棺木盛貯在此可速放回黃祖兩家各罷兵再休侵犯。」桓楷拜謝欲行階下蒯良出曰:「不可不可吾有一言令江東諸軍片甲不回一一請先斬桓楷然後用計。」正是追敵孫堅方殞命求和桓楷又遭殃未知桓楷性命如何且聽下文分解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군리 환해가 나와 말하기를 내가 유표와 오랜 사귐이 있으니 성에 들어가는 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했다. 손책이 허락하였다. 환해가 성에 들어가 유표를 만나 그 일을 갖추어 말하였다. 유표가 말하기를 문대(손책)의 시체와 모리는 내가 이미 관목을 써서 담아 여기에 두었다. 속히 돌아가 황조를 놓아 돌여 보내고, 두 집안이 각기 군대를 거두어 다시 침범을 그만두라.” 했다. 환해가 절하고 감사하며 가려는데 계단 아래서 괴량이 나와 말하기를 안됩니다. 안됩니다. 내가 한 마디 말이 있습니다. 강동의 여러 군대가 갑옷 조각도 돌려보낼 수 없으며, 먼저 환해를 베어 죽인 후 계책을 쓰기를 청합니다.” 했다. 바로 이러하다. 적을 추격하던 손견이 막 운명하고, 환해가 회의를 구하다가 재앙을 만났다. 환해의 목숨이 어떠게 될지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들으면서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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