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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10회 왕실을 위하여 마등이 의기를 들고, 아비의 원수를 갚으려 조조가 군대를 일으키다.

by 최인표 2020. 1. 20.

第十回勤王室馬騰舉義報父讎曹操興師

10회 왕실을 위하여 마등이 의기를 들고, 아비의 원수를 갚으려 조조가 군대를 일으키다.

 

卻說李郭二賊欲弒獻帝張濟樊稠諫曰:「不可今日若便殺之恐眾人不服不如仍舊奉之為主賺諸侯入關先去其羽翼然後殺之天下可圖也。」郭二人從其言按住兵器帝在樓上宣諭曰:「王允既誅軍馬何故不退?」李傕郭汜曰:「臣等有功王室未蒙賜爵故不敢退軍。」帝曰:「卿欲封何爵?」

각설하고 이각과 곽사 두 도적이 헌제를 시해하고자 하였다. 장제와 번조가 간하여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지금 만약 다시 그를 죽인다면 여러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옛날과 같이 받들어 임금으로 삼고, 속여서 제후가 관으로 들어오면 먼저 그 날개를 제거한 후에 죽여서 천하를 도모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니 이각과 곽사 두 사람이 그 말을 따라 병기를 살폈다. 황제가 루 위에 있으면서 널리 알려 말하기를 왕윤이 이미 죽었는데 군마가 어찌하여 물러나지 않는가?”하니 이각과 곽사가 말하기를 신들은 왕실에 공이 있으나 아직 작을 내림을 입지 못하였습니다.”하니 황제가 말하기를 경들은 어떤 작에 봉해지고자 하는가?” 했다.

 

四人各自寫職銜獻上勒要如此官品帝只得從之封李傕為車騎將軍池陽侯領司隸校尉假節鉞郭汜為後將軍假節鉞同秉朝政樊稠為右將軍萬年侯張濟為驃騎將軍平陽侯領兵屯弘農其餘李蒙王方等各為校尉然後謝恩領兵出城又下令追尋董卓屍首獲得些零碎皮骨以香木雕成形體安湊停當大設祭祀用王者衣冠棺槨選擇吉日遷葬郿塢臨葬之期天降大雷雨平地水深數尺霹靂震開其棺屍首提出棺外李傕候晴再葬是夜又復如是三次改葬皆不能葬零皮碎骨悉為雷火消滅天之怒卓可謂甚矣

이각, 곽사, 장제, 번조 등 4명이 각기 스스로 직함을 써 올리면서 이러한 관품이라 강요하였다. 황제가 다만 따를 뿐이었다. 이각을 봉하여 위거기장군지양후영사례교위가절월로 삼고, 곽사는 후장군가절월을 삼고 같이 조정을 잡게 하였다. 번조는 우장군만년후로 삼고, 장제는 표기장군평양후영병둔홍농으로 삼았다. 그 나머지 이몽, 왕방 등은 각기 교위로 삼았다. 그럼 후 은혜를 감사하고 군대를 이끌고 성을 나갔다. 또 명령을 내려 동탁의 시체와 머리를 찾아 조금 찾자 가죽과 뼈를 부수고 향나무로서 조각하여 형체를 이루어 모아 적절하게 처리하고는 크게 제사를 베풀고, 왕의 의관과 관곽을 스고 좋은 날을 가려서 미오에 옮겨 장사하였다. 장례를 임하는 날에 하늘이 큰 우레와 비를 내려 평지에 물 깊이가 여러 자였으며, 벽력이 진동하여 그 관을 열리면서 시체와 머리를 관 밖으로 나오게 하였다. 이각이 날씨가 맑아지자 두 번째 장사하였는데 이 날 밤 또 다시 이 같았다. 세 번째 고쳐 장사하는데 모두 장사할 수 없었는데 떨어진 가죽과 부순 뼈가 모두 번갯불에 타 없어졌다. 하늘의 동탁에게 성내는 것이 심하다고 이를만하다!


且說李傕郭汜既掌大權殘虐百姓密遣心腹待帝左右觀其動靜獻帝此時舉動荊棘朝廷官員並由二賊陞降因採人望特宣朱雋入朝封為太僕同領朝政一日人報西涼太守馬騰并州刺史韓遂二將引軍十餘萬殺奔長安來聲言討賊原來二將先曾使人入長安結連侍中馬宇諫議大夫种邵左中郎將劉範三人為內應共謀賊黨三人密奏獻帝封馬騰為征西將軍韓遂為鎮西將軍各受密詔併力討賊

또 말하면 이각과 곽사가 이미 대권을 장악하고 백성에게 잔인하고 사납게 하고, 몰래 심복을 보내 황제의 좌우를 모시게 하면서 그 동정을 살피게 하니 헌제가 이 때 거동하는 것이 가시였다. 조정의 관원들이 아울러 두 도적으로 말미암아 승진하고 강등되었다. 사람의 바람을 채택함으로 인하여 특히 주휴를 입조하게 하고, 봉하여 태복으로 삼고 함께 조정을 거느리고 정사를 보았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서량태수 마등이 주의 자사 한수와 함께 둘이서 10여만의 군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달려 와 말로 죄를 열거하고 도적을 토벌한다. 고 보고 하였다. 원래 두 장군은 먼저 사람을 시켜 장안으로 들어가게 하여 시중 마우, 간의대부 종소와 좌중랑장 유범 등 세 사람과 연결하여 안에서 응원하여 함께 도적의 무리를 도모하려 했었다. 세 사람이 비밀리에 헌제에게 아뢰어 마등을 봉하여 정서장군으로 삼고, 한수를 진서장군으로 삼아 각기 밀조를 받고 힘을 합하여 도적을 토벌하려 했다.


當下李傕郭汜張濟樊稠聞二軍將至一同商議禦敵之策謀士賈詡曰:「二軍遠來只宜深溝高壘堅守以拒之不過百日彼兵糧盡必將自退然後引兵追之二將可擒矣。」李蒙王方出曰:「此非好計願借精兵萬人立斬馬騰韓遂之頭獻於麾下。」賈詡曰:「今若即戰必當敗績。」

그 때 이각, 곽사, 장제, 번조 등이 2군이 장차 이른다는 것을 듣고 함게 적을 막을 계책을 의논하였다. 모사 가후가 말하기를 “2군은 멀리서 오므로 다만 마땅히 해자를 깊이하고, 성채를 높이하여 굳게 지키는 것으로서 막을 뿐입니다. 100일이 지나지 않아 저들의 군량이 다하여 반드시 스스로 물러날 것입니다. 그런 후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면 두 장군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이몽과 왕방이 나와 말하기를 이는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원하건데 정예병사 1만영을 빌려주시면 마등과 한수의 머리를 베어 막하에 바치겠습니다.” 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지금 만약 곧바로 싸운다면 반드시 패함을 당할 것입니다.” 했다.


李蒙王方齊聲曰:「若吾二人敗情願斬首吾若戰勝公亦當輸首級與我。」詡謂李傕郭汜曰:「長安西二百里盩厔山其路險崚可使張樊兩將軍屯兵於此堅壁守之待李蒙王方自引兵迎敵可也。」李傕郭汜從其言點一萬五千人馬與李蒙王方二人忻喜而去離長安二百八十里下寨西涼兵到兩個引軍迎去西涼軍馬攔路擺開陣勢馬騰韓遂聯轡而出指李蒙王方罵曰:「反國之賊誰去擒之?」

이몽과 왕방이 소리내어 말하기를 만약 우리 두 사람이 패한다면 머리를 베어도 됩니다. 만약 싸움을 이긴다면 공이 마땅히 머리를 보내 나에게 주어야 할 것입니다.” 했다. 가후가 이각, 곽사에게 말하기를 장안 서쪽 200리에 주지산이 있는데 그 길이 험준하여 장제, 번조 두 장군이 여기에 군대를 주둔하여 벽을 굳게하고 지키면서 이몽과 왕방이 군대를 인솔하여 적을 맞아 싸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했다. 이각과 곽사가 그 말을 따라 15천인을 점검하고 이몽, 왕방과 함께 하니 두 사람이 기뻐하며 갔다. 장안을 떠나 280리쯤에 진을 쳤다. 서량의 군대가 이르자 2개 군대를 이끌고 맞아갔다. 서량의 군마가 길을 막고 진을 쳤다. 마등 한수가 말고삐를 이어 나와 이몽과 왕방을 가리키며 꾸짖어 말하기를 나라를 배반한 도적놈아! 누가 가서 잡을 것인가?” 했다.

 

言未絕只見一位少年將軍面如冠玉眼若流星虎體猿臂彪腹狼腰手執長鎗坐騎駿馬從陣中飛出原來那將即馬騰之子馬超字孟起年方十七歲英勇無敵王方欺他年幼躍馬迎戰戰不到數合早被馬超一鎗刺於馬下馬超勒馬便回李蒙見王方刺死一騎馬從馬超背後趕超只做不知馬騰在陣門下大叫:「背後有人追趕!」 聲猶未絕只見馬超已將李蒙擒在馬上原來馬超明知李蒙追趕卻故意俄延等他馬近舉鎗刺來超將身一閃李蒙搠個空兩馬相並被馬超輕舒猿臂生擒過去軍士無主望風奔逃馬騰韓遂乘勢追殺大獲勝捷直逼隘口下寨把李蒙斬首號令

말이 끝나기 전 단지 한 자리의 소년 장군이 나타났는데 얼굴은 관옥과 같고, 눈은 흐르는 별과 같으며, 호랑이 몸에 원숭이 필이며, 표범의 배에 이리의 허리였다. 손에 긴 창을 잡고 준마를 타고 진중으로부터 나는 듯이 나왔다. 원래 이 장군은 곧 마등의 아들 마초이니 자는 맹기로 나이는 막 17세로 영웅의 용기로 적이 없었다. 왕방이 다른 나이 어림을 업신여겨서 말을 뛰게 하여 맞아 싸웠다.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일찍이 마초의 한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졌다. 마초가 말고삐를 당겨 돌아왔다. 이몽이 왕방이 찔려 죽는 것을 보고는 말을 타고 마초로 뒤를 따라 쫓아 왔다. 마초가 다만 알지 못하였다. 마등이 진의 문아래 있다가 크게 소리치기를 뒤에 어떤 사람이 쫓아온다!” 했다.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마초가 이미 장군 이몽을 보고 사로잡아 말위에 두었다. 원래 마초는 이몽이 쫓아오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꾸물대고자 하였는데, 말이 가까이 와서 창을 들어 찔러왔다. 마초가 몸을 한 줄기 번개처럼 나아가니 이몽이 빈 공 중을 푹하고 찔렀다. 두 말이 서로 나란하게 달리게 되자 마초는 가볍게 원숭이 팔을 펴서 사로잡아 지나갔다. 군사들은 주인이 없어지자 풀이 바람을 맞은 것처럼 달아났다. 마등과 한수가 형세를 타고 추격하여 죽이고, 크게 승리하고는 곧바로 성채에 육박하여 입구를 막고, 이몽의 벤 머리를 잡고 호령하였다.


李傕郭汜聽知李蒙王方皆被馬超殺了方信賈詡有先見之明重用其計只理會緊守關防由他搦並不出迎果然西涼軍未及兩月糧草俱乏商議回軍好長安城中馬宇家僮出首家主與劉範种邵外連馬騰韓遂欲為內應等情李傕郭汜大怒盡收三家少良賤斬於市把三顆首級直來門前號令

이각과 곽사는 이몽과 왕방이 모두 마등에게 죽음을 당하였다는 것을 듣고, 바야흐로 가후가 선견지명이 있음을 믿고 그 계책을 중하게 써서 다만 이회가 긴급히 관방을 지키고, 어쩔 수 없이 싸움을 할지라도 아울러 나가 맞아 싸우지 못하게 했다. 과연 서량군은 두 달이 되지 않아 식량과 말먹이 풀이 모두 부족하여져서 서로 의논하여 군대를 돌렸다. 마침 장안 성안의 마우 가의 종이 가주와 유범, (?)소가 밖으로 마등, 한수와 접촉하고 여러 가지 사항을 안에서 따라 움직이고자 한다고 고발하였다. 이각과 곽사가 크게 노하여 세 집의 젊은 양인과 천인을 모두 잡아 길거리에서 머리를 베어 세 개의 수급을 잡고 바로 문 앞으로 가 호령하였다.


馬騰韓遂見軍糧已盡內應又泄只得拔寨退軍李傕郭汜令張濟引軍趕馬騰樊稠引軍趕韓遂西涼軍大敗馬超在後死戰殺退張濟樊稠去趕韓遂看看趕上相近陳倉韓遂勒馬向樊稠曰:「吾與公乃同鄉之人今日何太無情?」樊稠也勒住馬答道:「上命不可違!」韓遂曰:「吾此來亦為國家耳公何相逼之甚也?」樊稠聽罷撥轉馬頭收兵回寨讓韓遂去了不隄防李傕之姪李別見樊稠放走韓遂回報其叔李傕大怒便欲興兵討樊稠賈詡曰:「目今人心未寧頻動干戈深為不便不若設一宴請張濟樊稠慶功就席間擒稠斬之毫不費力。」

마등과 한수는 군량이 이미 다하고, 내응이 또한 세어나간 것을 보고 단지 성채를 함락하고는 군대를 물렸다. 이각과 곽사가 장제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마등을 쫓게 하고, 번조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한수를 쫓게 하니 서량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마초가 뒤에 있으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서 장제를 죽이고 물러났다. 번조는 한수를 쫓아갔는데 (한수가) 둘러보니 거의 따라 잡혀 진창에 접근하고 있었다. 한수가 말고삐를 당기며 번조를 향해 발하기를 나와 공은 바로 고향이 같은 사람인데 오늘 어찌 이리도 무정합니까?” 번조가 말고삐를 당겨 세우고는 답하여 말하기를 윗사람의 명령을 어길 수 없습니다.” 한수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에 온 것도 또한 국가를 위한 것일 뿐인데 공은 어찌하여 서로 핍박함이 심합니까?” 하니 번조가 듣고는 그만두고 말머리를 돌려 병졸을 거두어 성채로 돌아가면서 한수를 꾸짖고 갔다. 이각의 조카 이별은 명령을 따르지 않고(隄防) 번조가 한수를 놓아주어 달아나게 하는 것을 보고는 돌아가 그 숙부에게 보고하였다. 이각이 크게 노하여 문득 군대를 일으켜 번조를 치려하였다. 가후가 말하기를 지금 인심이 편안하지 않고, 빈번히 전쟁에 동원하여 깊이 편하지 않다하니 한번 잔치를 열어 장제와 번조를 청하여 공을 축하한다 하고 자리에 나아가는 사이에 번조를 사로잡아 머리를 벤다면 털끝의 힘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李傕大喜便設宴請張濟樊稠二將忻然赴宴酒半闌李傕忽然變色曰:「樊稠何故交通韓遂欲謀造反?」稠大驚未及回只見刀斧手擁出早把樊稠斬首於案下得張濟俯伏於地李傕扶起曰:「樊稠謀反故而誅之公乃吾之心腹何須驚懼?」將樊稠軍撥與張濟管領張濟自回弘農去了

이각이 크게 기뻐하여 곧 잔치를 열고 장제, 번조를 청하였다. 두 장군이 기쁘게 잔치에 나아갔다. 술이 한창일 때 이각이 갑자기 얼굴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번조는 무슨 이유로 한수와 서로 통하여 배반에 나아갈 것을 꾀하는가?” 하니 번조가 크게 놀라 미처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칼과 도끼를 손으로 잡아 빼는데 급히 번조를 잡아 상 아래에서 머리를 베었다. 지레 겁을 낸 장제가 당에 엎드렸다. 이각이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말하기를 번조는 모반하였기 때문에 그를 죽였고, 공은 곧 나의 심복인데 어찌하여 모름지기 놀라고 두려워하는가?”하고는 번조의 군대를 다스려 거느리고 장제와 함께 도맡아 다스렸다. 장제가 스스로 홍농으로 돌아갔다.

 

李傕郭汜自戰敗西涼兵諸侯莫敢誰何賈詡屢勸撫安百姓結納賢豪自是朝廷微有生意不想青州黃巾又起聚眾數十萬頭目不等劫掠良民太僕朱雋保舉一人可破群賊李傕郭汜問是何人朱雋曰:「要破山東群賊非曹孟德不可。」李傕曰:「孟德今在何處?」雋曰:「見為東郡太守廣有軍兵若命此人討賊賊可剋日而破也。」李傕大喜星夜草詔差人齎往東郡命曹操與濟北相鮑信一同破賊

이각과 곽사가 서량의 군대와 싸워 패하게하고 나서부터 제후들이 감히 건드리지 못하였다. 가후가 자주 백성을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하고, 어진 호걸들과 맺고 받아들이기를 권하였다. 이로부터 조정은 뜻을 내는 것을 숨김이 있었다. 뜻 밖에 청주의 황건이 또 일어나 무리 수 십만을 모았는데 두목이 같지 않고 양민을 위협하여 약탈하였다. 태복 주준이 한 사람을 보증하여 추천하였는데 군적을 깨트릴만 하였다. 이각과 곽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주준이 말하기를 요컨대 산동의 여러 도적을 깨트리는 것은 조맹덕(조조가)이 아니면 할 수 없다.” 하니 이각이 말하기를 조 맹덕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였다. 주준이 말하기를 동군 태수가 되어 널리 군대를 소유하고 있다. 만약 이 사람에게 명하여 적을 토벌하게 한다면 적은 기한 내에 깨트릴 수 있다.” 했다. 이각이 크게 기뻐하면서 한 밤중에 조서를 작성하여 사람에게 주어 가지고 동군에 가게하여 조조와 제북상 포신으로 하여금 같이 적을 깨트리도록 명하였다.


操領了聖旨會合鮑信一同興兵擊賊於壽陽鮑信殺入重地為賊所害操追趕賊兵直到濟北降者數萬操即用賊為前驅兵馬到處無不降須不過百餘日招安到降兵三十餘萬男女百餘萬口操擇精銳者號為青州兵」,其餘盡令歸農操自此威名日重捷書報到長安朝廷加曹操為鎮東將軍

조조가 성지(조서, 명령)를 받고, 포신을 만나 함께 군대를 일으켜 적을 수양에서 쳤다. 포신이 죽이면서 요해처로 들어갔다가 적에게 해침을 당하였다. 조조가 적병을 뒤쫓아 곧바로 제북에 이르렀는데 항복한 자가 수만이었다. 조조는 곧 적들을 써서 길잡이를 삼았는데 병마가 이르는 곳마다 항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100여일이 지나지 않아 귀순하여 이르러 항복한 군대가 30여만, 남녀가 100여만 명이었다. 조조가 정예로운 자를 가려 청주병이라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돌아가 농사짓게 하였다. 조조가 이로부터 위엄과 명성이 날로 중요해졌다. 승리를 보고하는 글이 장안에 이르자 조정에서는 조조에게 벼슬을 더하여 진동장군으로 삼았다.


操在兗州招賢納士有叔姪二人來投曹操乃穎川穎陰人姓荀名彧字文若荀昆之子也舊事袁紹今棄紹投操操與語大悅:「此吾之子房也!」遂以為行軍司馬其姪荀攸字公達海內名士曾拜黃門侍郎後棄官歸鄉今與其叔同投曹操操以為行軍教授荀彧曰:「某聞兗州有一賢士今此人知何在。」操問是誰彧曰:「乃東郡東阿人姓程名昱字仲德。」操曰:「吾亦聞名久矣。」遂遣人於鄉中尋問訪得他在山中讀書操拜請之程昱來見曹操大喜

조조는 연주에 있으면서 현명한 이를 부르고 선비를 받아들였다. 삼촌과 조카 두 사람이 있었는데 와서 조조에게 투신하였다. 곧 영천 영음 사람이니 성은 순이요 이름은 욱이며 자는 문약으로 순곤의 아들이다. 예전에 원소를 섬겼는데 지금 원소를 버리고 조조에게 투신한 것이다. 조조가 순욱과 말해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장자방이다!”하고는 마침내 행군사마로 삼았다. 그 조카는 순유로 자는 공달이고, 천하의 이름있는 선비로 일찍이 황문시랑에 임명되었었는데 후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왔다가 지금 그 삼촌과 함께 조조에게 투신한 것이다. 조조는 순유를 행군교수로 삼았다. 순욱이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연주에 한 현명한 선비가 있다하는데 지금 이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하니 조조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순욱이 말하기를 동군 동아 사람으로 성은 정이고, 이름은 욱이며 자는 중덕이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도한 이름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 하고는 마침내 마을 안에 사람을 보내 찾고 묻게 했다. 찾고 보니 산중에서 독서하고 있어서 조조가 절하고 청하였다. 정욱이 와서 뵈니 조조가 크게 기뻐하였다.


昱謂荀彧曰:「某孤陋寡聞不足當公之薦公之鄉人姓郭名嘉字奉孝乃當今賢士何不羅而致之?」彧猛省曰:「吾幾忘卻!」遂啟操徵聘郭嘉到兗州共論天下之事郭嘉薦光武嫡派子孫淮南成德人姓劉名曄字子陽操即聘曄至曄又薦二人一個是山陽昌邑人姓滿名寵字伯寧一個是武城人姓呂名虔字子恪曹操亦素知這兩個名譽就聘為軍中從事滿寵呂虔共薦一人乃陳留平邱人姓毛名玠字孝先曹操亦聘為從事又有一將引軍數百人來投曹操乃泰山鉅平人姓于名禁字文則操見其人弓馬熟嫺武藝出眾命為典軍司馬

정욱이 순욱에게 말하기를 나는 외롭고 비루하며 들은 것이 적어 공의 추천을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공의 고향 사람 중에 성은 곽이고, 이름은 가이며 자는 봉효인 사람이 곧 지금의 형명한 선비에 해당하는데 어찌하여 망라하여 이르게 하지 않는가?” 하니 순욱이 크게 반성하여 말하기를 내가 거의 있었구나!”하고는 마침내 조조에게 말하여 곽가를 초빙하여 연주에 이르게 하여 함게 천하의 일을 논의하자고 했다. 곽가가 광무제의 적파의 자손으로 회남에서 덕을 이룬 사람을 추천하였는데 성은 유이고, 이름은 엽이며, 자는 자양이었다. 조조가 곧 유엽을 초빙하니 이르렀다. 또 유엽이 두 사람을 추천하였는데 한 사람은 산양 창읍 사람이니 성은 만이고, 이름은 총이며, 자는 백녕이었다. 또 한 사람은 무성 사람으로 성은 여이고, 이름은 건이며, 자는 자각이었다. 조조가 또한 평소에 두 사람의 이름과 칭찬을 들었으므로 초빙하여 군중종사를 삼았다. 만총과 여건이 함께 한 사람을 추천하였으니 곧 진류 평구 사람으로 성은 모이고, 이름은 개이며 자는 효선이었다. 조조가 또한 초빙하여 종사로 삼았다. 또 한 장수가 군대 수백명을 이끌고 와서 조조에게 투신하니 곧 태산 거평 사람으로 성은 우이고, 이름은 금이며, 자는 문칙이었다. 조조는 그 사람이 활과 말(군대의 일)을 익히고, 무예가 무리 중에 뛰어난 것을 보고 명하여 전군사마로 삼았다.

 

一日夏侯惇引一大漢來見操問何人惇曰:「此乃陳留人姓典名韋勇力過人舊跟張邈與帳下人不和手殺數十人逃竄山中惇出射獵見韋逐鹿過澗因收於軍中今特薦之於公。」操曰:「吾觀此人容貌魁梧必有勇力。」惇曰:「他曾為友報讎殺人提頭直出鬧數百人不敢近只今所使兩枝鐵戟重八十斤挾之上馬運使如飛。」操即令韋試之韋挾戟驟往來馳騁忽見帳下大旗為風所吹岌岌欲倒眾軍士挾持不定韋下馬喝退眾軍一手執定旗桿立於風中巍然不動操曰:「此古之惡來也!」遂命為帳前都尉解身上錦襖及駿馬雕鞍賜之自是曹操部下文有謀臣武有猛將威鎮山東乃遣泰山太守應劭往瑯琊郡迎父曹嵩

하루는 하후돈이 한 사내를 데리고 와서 조조를 뵈었는데 조조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하후돈이 말하기를 이는 곧 진류 사람으로 성은 전이고, 이름은 위로 용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납니다. 옛날 장막을 따르다 휘장아래 사람과 불화가 있어 손으로 수 십명을 죽이고 산중에 도망하여 숨었다. 하후돈이 사냥을 나갔다가 전위가 사슴을 쫓아 개천을 넘는 것을 보고 군중에 거두었습니다. 지금 특히 공에게 추천합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이 사람을 보니 용모가 장대하니 반드시 용력이 있을 것이다.” 했다. 하후돈이 말하기를 일찍이 벗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머리를 가지고 바로 시장에 나가 소란스럽게 하였는데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두 가지가 달린 철창을 사용하는데 무게 80근이며, 옆구리에 끼고, 말을 타고 운영하는 것이 나는 것 같습니다.” 했다. 조조가 곧 전위로 하여금 시험하게 했다. 전위가 창을 끼고, 말을 달려 오가기를 빨리하였다. 갑자기 장막 아래의 큰 깃발이 바람을 맞아 위태롭게 넘어지려 하니 여러 군사들이 붙들었으나 안정되지 않았다. 전위가 말에서 내려 소리쳐 여러 군사들을 물리치고 한손으로 깃대를 잡아 안정시켜 바람 속에 세우니 우뚝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옛날의 악래구나!” 했다. 마침내 명하여 장전도위로 삼고, 자신의 비단 웃옷을 벗어 주고 좋은 말과 무늬를 조각한 안장을 내렸다. 이로부터 조조 부하 중에 문관으로 꽤를 내는 신하가 있고, 문신으로 용맹한 장수가 있어 위엄이 산동에 떨쳤다. 이에 태산 태수 응소를 보내 낭야군에 가서 아버지 조숭을 맞이하게 하였다.


嵩自陳留避難隱居瑯琊當日接了書信便與弟曹德及一家老小四十餘人帶從者百餘人車百餘輛逕望兗州而來道經徐州太守陶謙字恭祖為人溫厚純篤向欲結納曹操正無其由知操父經過遂出境迎接再拜致敬大設筵宴款待兩日曹嵩要行陶謙親送出郭特差都尉張闓將部兵五百護送

조숭은 진류로부터 난을 피하여 낭야에 숨어 살고 있었는데 서신을 받은 그날 문득 동생 조덕과 일가 노소 40여명과 따르는 사람 100여명, 수레 100여대를 대동하고 지름길로 연주를 바라보고 왔다. 길을 가다 서주를 지나는데 태수 도겸은 자가 공조인데 사람됨이 온후하고 순수하며 돈독하였다. 예로부터 조조와 마음을 결합하여 서로 의지하고자 하였는데 바로 그 기회가 없었다. 조조의 아버지가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는 마침내 경계를 나와 영접하였는데 두 번 절하여 공경을 다하고 크게 연회를 잔치를 열어 정성껏 이틀이나 대우하였다. 조숭이 가려하자 도겸이 직접 환송하여 성곽을 나왔고, 특히 도위 장개를 보내 부병 500명을 거느리고 호위하여 보냈다.


曹嵩率家小行到華費間時夏末秋初大雨驟至只得投一古寺歇宿寺僧接入嵩安頓家小命張闓將軍馬屯於兩廊眾軍衣裝都被雨打濕同聲嗟怨張闓喚手下頭目於靜處商議曰:「我們本是黃巾餘黨勉強降順陶謙未有好處如今曹嵩輜重車輛無數你們欲得富貴不難只就今夜三更大家砍將入去把曹嵩一家殺了取了財物同往山中落草此計何如?」

조숭이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가서 화와 비 사이에 이르렀는데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들어가던 때로 큰 비가 휘몰아치니 한 옛 절에서 쉬게 되었다. 절의 중이 영접하여 들이니 조숭이 아내와 자식을 편안하게 정돈하고는 장개로 하여금 군마를 거느리고 두 회랑에 주둔하게 하였다. 군사들이 옷과 장비가 비를 맞아 축축하니 같은 소리로 욕하고 원망하였다. 장개가 부하 중에 두목을 불러 고요한 곳에서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래 황건의 남은 무리들로 마지못해 도겸에게 항복하여 따랐으나 좋은 곳에 있지 못하였다. 지금 조숭이 수송하는 수레가 수를 헤아릴 수 없으니 너희들이 부귀를 얻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다. 오늘 밤 삼경에 우두머리를 베고 들어가 조숭 일가를 잡아 죽인 후 재물을 취하여 함께 산 속으로 가서 산적이 되자. 이 계책이 어떠한가?” 했다.


眾皆應允是夜風雨未息曹嵩正坐忽聞四壁喊聲大舉曹德提劍出看就被搠曹嵩忙引一妾奔入方丈後欲越牆而走妾肥胖不能出嵩慌急與妾躲於廁中被亂軍所殺應邵死命逃脫投袁紹去了張闓殺盡曹嵩全家取了財物放火燒寺與五百人逃奔淮南去了後人有詩曰

무리들이 모두 승낙하였다. 이날 밤은 비바람이 그치지 않아 조숭 바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사방의 벽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들었다. 조덕이 검을 가지고 나가 보다가 찔려 죽었다. 조숭이 급하게 한 첩을 이끌고 수지 승의 방 뒤로 들어가 담을 넘어 달아나고자 하였으나 첩이 뚱뚱하여 나갈 수 없자 조숭이 황급히 첩과 함께 화장실 안에 숨었다가 난을 일으킨 군사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응소가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하여 벗어나 원소에게 가서 투신하였다. 장개가 조숭의 온 가족을 모두 죽이고 재물을 취한 후 불을 질러 절을 불태우고 500명과 함께 회남으로 도망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은 것이 있으니

 

曹操奸雄世所誇曾將呂氏殺全家如今闔戶逢人殺天理循環報不差

조조는 간웅으로 세상에 자만하여 일찍이 여씨 일가를 죽였다. 지금 문을 꼼짝없이 살인자를 만났으니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돌아 갚음에 차이가 없다.


當下應劭部下有逃命的軍士報與曹操操聞之哭倒於地眾人救起操切齒曰:「陶謙縱兵殺吾父此讎不共戴天吾今悉起大軍洗蕩徐州方雪吾恨!」遂留荀彧程昱領軍三萬守鄄城范縣東阿三縣其餘盡殺奔徐州來夏侯惇于禁典韋為先鋒操令但得城池將城中百姓盡行屠戮以雪父讎當有九江太守邊讓與陶謙交厚聞知徐州有難自引兵五千來救操聞之大怒使夏侯惇於路截殺之

그 때 응소의 부하 중에 목숨을 걸고 도망한 군사가 있어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조조가 그것을 듣고 곡하며 땅에 엎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구하여 일으켰다. 조조가 이를 갈며 말하기를 도겸이 군대를 풀어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이는 하늘을 함께 일 수 없는 원수리라! 내가 지금 모든 대군을 일으켜 서주를 씻어서 바야흐로 내 한을 씻을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순욱과 정욱이 삼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머물러 견성, 범현, 동아 세 현을 지키게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서주에 싸우러 달려갔다. 하후돈, 우금, 전위가 선봉이 되었다. 조조는 다만 城池만 얻어도 성을 지키던 안의 백성을 모두 죽이는 것으로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게 하였다. 그러한 때에 구강태수는 변양이 있어 도과 두터이 사귀었는데 서주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들어 알았다. 스스로 군대 5천을 거느리고 와서 구원하였다. 조조가 그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하후돈으로 하여금 길을 막고 죽이게 하였다.

 

時陳宮為東郡從事亦與陶謙交厚聞曹操起兵報讎欲盡殺百姓星夜前來見操操知是為陶謙作說客欲待不見又滅不過舊恩只得請入帳中相見宮曰:「今聞明公以大兵臨徐州報尊父之讎所到欲盡殺百姓某因此特來進言陶謙乃仁人君子非好利忘義之輩尊父遇害乃張闓之惡非謙罪也且州縣之民與明公何讎殺之不祥望三思而行。」操怒曰:「公昔棄我而去今有何面目復來相見陶謙殺吾一家誓當摘膽剜以雪吾恨公雖為陶謙游說其如吾不聽何?」陳宮辭出歎曰:「吾亦無面目見陶謙也!」遂馳馬投陳留太守張邈去了

이 때 진궁이 동군 종사가 되었는데 또한 도겸과 교분이 두터웠다. 조조가 군대를 일으켜 원수를 갚기 위하여 백성을 모두 죽이고자 한다는 것을 듣고 밤에 앞으로 와서 조조를 만났다. 조조는 진궁이 도겸을 위하여 유세하는 객임을 알고 기다리게 하고는 만나려하지 않고, 또한 옛 은혜를 지나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장막 안에 들어 올 것을 청하여 서로 만났다. 진궁이 말하기를 지금 들으니 명공이 큰 군대를 가지고 서주를 공격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데 이르는 곳 마다 백성을 모두 죽이고자 한다하니 제가 이로 인하여 특별히 와서 말을 올리려합니다. 도겸은 곧 仁人이고 군자로 이익을 좋아하고, 의를 잊어버리는 무리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해침을 당한 것은 곧 장개의 악이지 도겸의 죄가 아닙니다. 또한 주현의 백성이 명공과 무슨 원수이겠습니까? 그들을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합니다. 여러 번 생각하여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했다. 조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공은 옛날에 나를 버리고 갔는데 지금 무슨 낮으로 다시 와서 서로 만나려 하는가? 도겸이 우리 一家를 죽였으니 마땅히 쓸개를 뽑고, 심장을 깍는 것으로서 내 한을 씻기를 맹서하였느니 공이 미록 도겸을 위하여 유세하나 그것을 내가 듣지 않으면 어찌할 것입니까?” 했다. 진궁이 하직하고 나와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또한 면목없이 도겸을 보아야 하는가!” 하고는 마침내 진유 태수 장막에게 가서 투신하였다.


且說操大軍所到之處殺戮人民發掘墳墓陶謙在徐州聞曹操起軍報讎殺戮百姓仰天慟哭曰:「我獲罪於天致使徐州之民受此大難!」急聚眾官商議曹豹曰:「曹兵既至豈可束手待死某願助使君破之。」

또한 말해보면 조조의 대군이 이르는 곳 마다 백성을 도륙하고 무덤을 파헤쳤다. 도겸은 서주에 있었는데 조조가 군대를 일으켜 원수를 갚는다며 백성을 살육한다는 것을 듣고는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죄를 얻어 서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 큰 어려움을 받게 함에 이르렀구나!”하고는 급히 여러 관리를 모아 서로 의논하였다. 조표가 말하기를 조조의 군대가 이미 이르렀는데 어찌 손을 묶고 죽음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가 그들을 깨뜨리게 돕기를 원합니다.” 했다.

 

陶謙只得引兵出迎遠望操軍如鋪霜湧中軍豎起白旗二面大書報讎雪恨四字軍馬列成陣勢曹操縱馬出陣身穿縞素揚鞭大罵陶謙亦出馬於門旗下欠身施禮曰:「謙本欲結好明公故託張闓護送不想賊心不改致有此事實不干陶謙之故望明公察之。」操大罵曰:「老匹夫殺吾父尚敢亂言誰可生擒老賊?」夏侯惇應聲而出陶謙慌走入陣夏侯惇趕來曹豹挺鎗躍馬前來迎敵兩馬相交忽然狂風大作飛沙走石兩軍皆亂各自收兵

도겸이 할 수 없이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맞이하였는데 멀리 조조의 군대를 바라보니 (군대가 상복을 입어)서리가 펴지고 눈이 용솟음치는 듯하고, 중군에 세운 흰 깃발 두 면에 크게 報讎雪恨(원수를 갚아 한을 씻는다.)’의 네 글자를 썼다. 군마를 열지어 진세를 이루었다. 조조가 말을 타고 진을 나왔는데 몸에는 흰 비단 옷을 입고, 채찍을 흔들며 크게 꾸짖었다. 도겸이 또한 말을 타고 문의 깃발아래에 나가 공경히 몸을 굽혀 예를 베풀고 말하기를 나는 본래 명공과 우호를 맺고자 하였기 때문에 장개에 호위하여 보낼 것을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생각지 못하게 적이 마음을 바꾸지 않아 이 일이 있음에 이르렀습니다. 실로 제가 고의로 간여한 것이 아니니 명공은 살펴주실 것을 바랍니다.” 했다. 조조가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늙은 필부야! 내 아버지를 죽이고도 오히려 감히 말을 어지럽게 하는가! 누가 노적을 생포할 수 있는가?” 하니 하후돈이 대답하고는 나갔다. 도겸이 다급하게 달려 진에 들어갔다. 하후돈이 쫓아오자 조표가 창을 빼고, 말을 뛰게 하여 앞으로 달려와 맞이하여 대적하였다. 두 말이 서로 교차하는데 갑자기 광풍이 크게 일어나 모래가 날고 돌이 굴러다니니 두 군대가 모두 어지러워졌으므로 각기 군대를 거두었다.


陶謙入城與眾計議曰:「曹兵勢大難敵吾當自縛往操營任其剖割以救徐州百姓之命。」言未絕一人進前言曰:「府君久鎮徐州人民感恩今曹兵雖眾未能既破我城府君與百姓堅守勿出某雖不才願施小策教曹操死無葬身之地!」眾人大驚便問計將安出正是

도겸이 성에 들어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계책을 논의하며 말하기를 조조 군대의 형세가 커 대적하기 어려우니 내가 마땅히 스스로를 묶고 조조의 진영에 가서 그 쪼갬(몸을)을 맡기는 것으로서 서주 백성의 목숨을 구할 것이다.” 했다. 말이 끝나기 전에 한 사람이 앞에 나아가 말하기를 부군은 오래도록 서주를 지켜 백성들이 은혜를 느꼈습니다. 지금 조조의 군대가 비록 많으나 아직 우리 성을 깨트리지 못하였습니다. 부군과 백성들이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으며, 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작은 계책을 써서 조조로 하여금 죽어서 자신을 장사지낼 땅조차 없도록 하기를 원합니다!” 했다. 여러 사람들이 크게 놀라면서 문득 어떤 계책을 낼 것인지를 물었다. 바로 이러하다.


本為納交反成怨那知絕處又逢生畢竟此人是誰且聽下文分解

본래 친교를 맺으려다 도리어 원망을 이루었으니 끊어진 곳에서 또한 살길을 만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 사람은 누구일까? 또 아래 글에서 나누고 푼 것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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