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二回:陶恭祖三讓徐州,曹孟德大戰呂布
제12회 도공조(도겸)은 서주를 양보하고, 조맹덕(조조)은 여포와 크게 싸우다.
曹操正慌走間,正南上一彪軍到,乃夏侯惇引軍來救援,截住呂布大戰。鬥到黃昏時分,大雨如注,各自引軍分散。操回寨,重賞典韋,加為領軍都尉。
조조가 다급하는 사이에 남쪽에서 한 범 같은 군대가 이르니 곧 하후돈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구원하여 여포를 가로막고 크게 싸웠다. 싸움이 황혼에 이를 때 큰비가 내려 물을 대는 것과 같으니 각기 군대를 이끌고 나뉘어 흩어졌다. 조조가 진영에 돌아와 전위에게 큰 상을 주고 영군도위를 더하였다.
卻說呂布到寨,與陳宮商議。宮曰:「濮陽城中有富戶田氏,家僮千百,為一郡之巨室;可令彼密使人往操寨中下書,言呂溫侯殘暴不仁,民心大怨,今欲移兵黎陽,止有高順在城內,可連夜進兵,我為內應。操若來,誘之入城,四門放火,外設伏兵。曹操雖有經天緯地之才,到此安能得脫也?」 呂布從其計,密諭田氏使人逕到操寨。操因新敗,正在躊躇,忽報田氏人到,呈上密書云:「呂布已往黎陽,城中空虛。萬望速來,當為內應。城上插白旗,大書『義』字,便是暗號。」操大喜曰:「天使吾得濮陽也!」重賞來人,一面收拾起兵。劉曄曰:「布雖無謀,陳宮多計。只恐其中有詐,不可不防。明公欲去,當分三軍為三隊:兩隊伏城外接應,一隊入城方可。」
각설하고 여포가 진영에 이르러 진궁과 의논하였다. 진궁이 말하기를 “복양 성 안에 부호 전씨가 있는데 집의 종이 천백으로 한 군의 큰 집이 됩니다. 그로 하여금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조조의 진영에 중에 가서 글을 보내 말하기를 ‘여온후(여포)는 잔인하고 사납고 仁하지 않아 민심이 크게 원망하기 때문에 지금 군대를 여양으로 옮기고 다만 고순 만 성 안에 있게 하였으니 밤을 이어 군대를 나아가게 한다면 나는 안에서 호응하겠다.’하십시오. 만약 조조가 온다면 그를 유인하여 성에 들어오면 4개의 성문에 불을 놓고 밖에는 복병을 두십시오. 조조가 비록 온 천하를 짜임새 있게 잘 계획하여 다스릴 수 있는 재주가 있다 할지라도 이에 이른다면 어찌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여포가 그 계획을 다라 비밀리에 전씨를 깨우쳐 사람으로 하여금 지름길로 조조의 진영에 이르게 하였다. 조조가 패한 것으로 인하여 주저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씨의 사람이 이르러 밀서를 올렸다고 보고하였다. 글에 “여포는 이미 여양에 갔기 때문에 성안이 비어 있습니다. 속히 오시면 마땅히 안에서 호응할 것을 만 번 바랍니다. 성 위에 흰 깃발을 꼿았는데, 크게 ‘義’자를 쓰고 암호로 삼겠습니다.” 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하늘이 나로 하여금 복양을 얻을 수 있게 하는구나!”하고는 왔던 사람에게 많은 상을 주는 한편으로 군대를 수습하여 일으켰다. 유엽이 말하기를 “여포가 비록 계책이 없다하나 진궁은 계책이 많습니다. 그 안에 속임이 있을까 두려우니 방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명한 공께서 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삼군을 나누어 3개부대로 하고 두 부대는 성 밖에 숨겨두었다가 호응하여 행동하고 한 부대만 성에 들어가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했다.
操從其言,分軍三隊,來至濮陽城下。操先往觀之,見城上遍豎旗旛,西門角上,有一「義」字白旗,心中暗喜。是日午牌,城門開處,兩員將引軍出戰:前軍侯成,後軍高順。操即使典韋出馬,直取侯成。侯成抵敵不過,回馬望城中走。韋趕到弔橋邊,高順亦攔擋不住,都退入城中去了。數內有軍人乘勢混過陣來見操,說是田氏之使,呈上密書。約云:「今夜初更時分,城上鳴鑼為號,便可進兵。某當獻門。」操撥夏侯惇引軍在左,曹洪引軍在右,自己引夏侯淵,李典,樂進,典韋四將,率兵入城。李典曰:「主公且在城外,容某等先入城去。」操喝曰:「我不自往,誰肯向前!」遂當先領兵直入。
조조가 그 말을 따라 군대를 세 개 부대로 나누어 와서 복양성 아래에 이르렀다. 조조가 앞서 사서 보니 성 위에 두루 깃발이 세워져 있고, 서문의 모퉁이 위에 ‘義’자가 써진 백기가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이날 정오 무렵 성문이 열린 곳에 두 사람의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나와 싸웠는데 전군은 후성이고 후군은 고순이었다. 조조가 곧 전위를 시켜 말을 타고 나가게 하여 곧바로 후성을 잡게 하였다. 후성이 적을 막지 못하고 말을 달려 성안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전위가 쫓아서 조교 가에 이르자 고순이 또한 가로막지 못하고 바로 물러나 성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던 군인이 형세가 혼란한 틈을 타고 진을 지나와서 조조를 뵙자 전씨의 심부름꾼이라 말하고 밀서를 올렸다. 밀서를 요약하면 “오늘 밤 초경 때 성위에서 징이 울리는 것을 신호 삼아 군대를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마땅히 문을 바치겠습니다.” 했다. 조조가 하후돈을 뽑아 군대를 이끌고 왼쪽에 있게 하고, 조홍은 군대를 이끌고 오른 쪽에 있게 하고 자기는 하후연, 이전, 악진, 전위 네 장군을 이끌고 군대를 거느리고 성에 들어갔다. 이전이 말하기를 “주공은 또한 성 밖에 있으면 저희들이 먼저 성에 들어가려 합니다.” 했다. 조조가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직접 가지 않는다면 누가 즐겨 앞으로 나가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앞장 서 군대를 거느리고 바로 들어갔다.
時約初更,月光未上。只聽得西門上吹蠃殼聲,喊聲忽起,門上火把燎亂,城門大開,弔橋放落。曹操爭先拍馬而入。直到州衙,路上不見一人。操知是計,忙撥回馬,大叫:「退兵!」州衙中一聲砲響,四門烈火,轟天而起;金鼓齊鳴,喊聲如江翻海沸。東巷內轉出張遼,西巷內轉出臧霸,夾攻掩殺。操走北門,道傍轉出郝萌、曹性,又殺一陣。操急走南門,高順、侯成攔住。典韋怒目咬牙,衝殺出去。高順、侯成倒走出城。典韋殺到弔橋,回頭不見了曹操,翻身復殺入城來,門下撞著李典。典韋問:「主公何在?」典曰:「吾亦尋不見。」韋曰:「汝在城外催救軍,我入去尋主公。」李典去了。典韋殺入城中,尋覓不見;再殺出城壕邊,撞著樂進。進曰:「主公何在?」韋曰:「我往複兩遭,尋覓不見。」進曰:「同殺入去救主!」兩人到門邊,城上火砲滾下,樂進馬不能入,典韋冒煙突火,又殺入去,到處尋覓。
때는 대략 초경이어서 달빛이 오르지 않았다. 다만 나각을 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는데 함성이 갑자기 일고 문 위에 불이 요란하데 타오르고 성문이 크게 열리며, 조교가 놓여 떨어졌다. 조조가 다투어 말을 박차고 들어갔다. 바로 주의 관아에 이르렀는데 길 위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조조가 이가 계책임을 알고 급히 말을 돌리며 크게 소리치기를 “군대를 물리라!” 하는데 주의 관아 안에서 한 소리 포성이 울리고 4개문이 치열하게 불타고 굉음이 일어나면서 금고가 일제히 울고 함성이 강이 뒤집어지고 바다가 끓듯 하였다. 동쪽 거리 안에서 장요가 돌아 나오고 서쪽 거리에서는 장패가 돌아나와 협공하며 습격하여 죽였다. 조조가 북문으로 달아나는데 길옆에서 학맹, 조성이 돌아 나와 또 일진을 죽였다. 조조가 급히 남문으로 달아나니 고성과 후성이 막았다. 전위가 노한 눈으로 이를 악물과 쳐서 죽이며 나갔다. 고순과 후성이 돌아서 달아나 성을 나갔다. 전위가 조교에 쇄도하여 머리를 돌려보니 조조가 보이지 않자 몸을 돌려 다시 성에 들어가는데 문 아래에서 이전을 만났다. 전위가 묻기를 “주공은 어디에 있습니까?”하니 이전이 말하기를 “내가 또한 찾았으나 보지 못하였습니다.” 했다. 전위가 말하기를 “당신은 성 밖에 있으면서 구원군을 재촉하시오. 나는 들어가 주공을 찾을 것입니다.”하니 이전이 갔다. 전위가 성 안으로 밀고 들어가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다시 성의 해자 가로 밀고 나가는데 악진을 만났다. 악진이 말하기를 “주공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전위가 말하기를 “내가 가서 거듭 두 번 만나려 하여 찾았으나 보지 못하였습니다.” 했다. 악진이 말하기를 “같이 밀고 들어가 주공을 구합시다!”하고는 두 사람이 문가에 이르니 성 위에서 화포가 물 흐르듯 떨어져서 악진의 말은 들어가지 못하고 전위가 연기와 불을 무릅쓰고 또 밀고 들어가 여러 곳에서 찾았다.
卻說曹操見典韋殺出去了,四下裏人馬截來,不得出南門;再轉北門,火光裏正撞見呂布挺戟躍馬而來。操以手掩面,加鞭縱馬竟過。呂布從後拍馬趕來,將戟於操盔上一擊,問曰:「曹操何在?」操反指曰:「前面騎黃馬者是他。」
각설하고 조조가 전위를 찾아 밀고 나가다 사방이 인마에 막혀 남문을 나갈 수 없자 다시 북문으로 돌아가면서 불 빛 속을 돌진하여 가다 여포가 창을 들고 말을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조조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채찍을 치면서 말을 놓아 달려 지나갔다. 여포가 말을 박차고 뒤를 쫓아오면서 창으로 조조의 투구 위를 한번 치고 물어 말하기를 “조조는 어디에 있는가?” 했다. 조조가 반대로 가리키면서 “앞에 누런 말을 탄자가 조조입니다.” 했다.
呂布聽說,棄了曹操,縱馬向前追趕。曹操撥轉馬頭,望東門而走,正逢典韋。韋擁護曹操,殺條血路,到城門邊,火燄甚盛,城下推下柴草,遍地都是火。韋用戟撥開,飛馬冒煙突火先出。曹操隨後亦出。方到門道邊,城門上崩下一條火梁來,正打著曹操戰馬後胯,那馬撲地倒了。操用手托梁推放地上,手臂鬚髮,盡被燒傷。
여포가 말을 듣고 조조를 버리고 말을 놓아 앞을 향해 쫓아갔다. 조조가 말 머리를 돌려 동문을 바라고 달아나 전위를 만났다. 전위가 조조를 호위하여 쇄도하여 혈로를 뚫고 성문 가에 이르니 화염이 매우 성대하고, 성 아래에 시초를 밀어 떨어뜨리니 두루 땅에 불이 일었다. 전위가 창을 써서 밀어 열고 말을 달려 연기를 무릅쓰고, 불을 치며 먼저 나갔다. 조조가 뒤를 따라 또한 나갔다. 막 성문 길 가에 이르렀는데 성문 위에서 한 개의 불붙은 대들보가 무너져 내리면서 조조가 탄 말의 뒷다리를 치니 말이 땅에 엎어졌다. 조조가 손으로 대들보를 밀어 땅위에 밀어놓았는데 손과 팔, 수이 모두 불에 타 상하였다.
典韋回馬來救,恰好夏侯淵亦到。兩個同救起曹操,突火而出。操乘淵馬,典韋殺條大路而走。直混戰到天明,操方回寨。眾將拜伏問安,操仰面笑曰:「誤中匹夫之計,吾必當報之!」郭嘉曰:「計可速發。」操曰:「今只將計就計:詐言我被火傷,火毒攻發,五更已經身死。布必引兵來攻。我伏兵於馬陵山中,候其兵半渡而擊之,布可擒矣。」嘉曰:「真良策也!」於是令軍士挂孝發喪,詐言操死。早有人來濮陽報呂布,說曹操被火燒傷肢體,到寨身死。布隨點起軍馬,殺奔馬陵山來。將到操寨,一聲鼓響,伏兵四起。呂布死戰得脫,折了好些人馬;敗回濮陽,堅守不出。
전위가 말을 돌려 와서 구하고, 마침 하후연이 또한 이르렀다. 둘이 함께 조조를 구하여 일어나 불을 뚫고 나왔다. 조조가 하후연의 말을 타니 전위가 대로를 밀고 달아났다. 바로 어지러이 싸우는데 날이 밝아 올 때 조조가 막 진영으로 돌아갔다. 여러 장수들이 절하고 엎드려 안부를 물으니 조조가 얼굴을 쳐들고 웃으며 말하기를 “필부의 계책에 잘못되었으니 나는 반드시 그것을 갚을 것이다!” 했다. 곽가가 말하기를 “계책을 속히 내야 합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지금 장계취계(적의 계책을 알고 반대로 이용하는 계책)하여 내가 화상을 입어 불의 독으로 5경에 이미 죽었다고 속여 말하면 여포는 반드시 군대를 이끌고 와서 공격할 것이다. 내가 마릉산 안에 군대를 숨겨두었다가 그 군대의 반이 지나가기를 엿보았다가 공격하면 여포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했다. 곽가가 말하기를 “참으로 좋은 계책입니다.” 했다. 이에 군사로 하여금 상복을 입게 하고, 상을 발표하게 하고 조조가 죽었다고 속여 말하였다. 재빠르게 어떤 사람이 복양에 와서 여포에게 보고하여 조조가 불을 만나 신체가 불타고 상하여 진영이 이르러 죽었다고 말하였다. 여포가 군마를 점검하고 일으켜 마릉산에 쇄도하여 왔다. 조조의 진영에 이르려 하는데 한 소리 북 소리가 울리고, 복병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여포가 죽음을 무릅쓰고 벗어났으나 꽤 많은 인마를 잃고 패하여 복양에 돌아가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是年蝗蟲忽起,食盡禾稻。關東一境,每榖一斛,值錢五十貫,人民相食。曹操因軍中糧盡,引回鄄城暫往。呂布亦引兵出屯山陽就食。因此二處權且罷兵。
이해 메뚜기 떼가 갑자기 일어 모든 곡식을 먹었다. 관동 경계 안에서 매 곡식 1곡의 가치가 돈 50관으로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조조가 군대 안의 식량이 다하였기 때문에 (군대를) 이끌고 견성에 돌아와 잠시 머물렀다. 여포가 또한 군대를 이끌고 나와 산양에 주둔하고 나아가 살 길을 찾았다. 이 두 곳으로 안하여 잠시 군대를 해산하였다.
卻說陶謙在徐州,時年已六十三歲,忽然染病,看看沈重,請糜竺、陳登議事。竺曰:「曹兵之去,止為呂布襲兗州故也。今因歲荒罷兵,來春又必至矣。府君兩番欲讓位於劉玄德,時府君尚強健,故玄德不肯受;今病已沈重,正可就此面與之,玄德必不辭矣。」
각설하고 도겸이 서주에 있었는데 그 때 나이가 이미 63세로 갑자기 병에 걸려 점점 침중해지니 미축과 진등을 청하여 일을 의논하였다. 미축이 말하기를 “조조의 군대가 떠난 것은 다만 여포가 연주를 습격한 일 때문입니다. 지금 흉년으로 인하여 군대를 해산하였기 때문에 봄이 오면 또한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부군께서는 두 번 유현덕에게 자리를 양보하고자 하였을 때는 부군께서 오히려 강건하였기 때문에 유현덕이 즐겨 받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병이 이미 침중하니 이런 면에 나아가 그것을 준다면 유현덕은 반드시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謙大喜使人來小沛,請劉玄德議軍務。玄德引關、張帶數十騎到徐州,陶謙教請入臥內。玄德問安畢,謙曰:「請玄德公來,不為別事:止因老夫病已危篤,朝夕難保;萬望明公可憐漢家城池為重,受取徐州牌印,老夫死亦瞑目矣!」玄德曰:「君有二子,何不傳之?」謙曰:「長子商,次子應,其才皆不堪任。老夫死後,猶望明公教誨,切勿令掌州事。」玄德曰:「備一身安能當此大任?」謙曰:「某舉一人,可為公輔:係北海人,姓孫,名乾,字公祐。此人可使為從事。」又謂糜竺曰:「劉公當世人傑,汝當善事之。」
도겸이 크게 기뻐하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소패에 보내 유현덕과 군대의 일을 의논하기를 청하였다. 유현덕이 관우와 장비를 이끌고, 수 십기를 대동하여 서주에 이르니 도겸이 침실에 들어오기를 청하였다. 유현덕이 안부 묻기를 마치고 도겸이 말하기를 “유현덕 공이 올 것을 청한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만 노부의 병이 이미 위태롭고 깊어 아침저녁으로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현명한 공께서는 가엾고 불쌍한 한나라 땅을 중요하게 여겨 서주의 牌印을 받을 것을 만 번 바라며 노부가 죽어도 또한 편안히 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그대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어찌 전하지 못하겠습니까?” 하니 도겸이 말하기를 “장자 상과 차자 응은 그 재능이 모두 맡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노부가 죽은 후에 오히려 현명한 공의 가르침을 바라고 절대로 주의 일을 담당하게 하지 마십시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저 한 몸으로 어찌 이 임무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도겸이 말하기를 “제가 한 사람을 천거하는데 공을 도울 수 있음 것입니다. 그 사람은 북해 사람으로 성은 손이고, 이름은 건이며, 자는 공우입니다. 이 사람은 일을 맡길 만합니다.” 하고, 또한 미축에게 말하기를 “유공은 지금 세상의 호걸이니 너는 마땅히 잘 섬겨야 할 것이다.” 했다.
玄德終是推託,陶謙以手指心而死。眾軍舉哀畢,即捧牌印交送玄德。玄德固辭。次日,徐州百姓,擁擠府前哭拜曰:「劉使君若不領此郡,我等皆不能安生矣!」關、張二公亦再三相勸。玄德乃許權領徐州事;使孫乾、糜竺為輔,陳登為幕官;盡取小沛軍馬入城,出榜安民;一面安排喪事。玄德與大小軍士,盡皆挂孝,大設祭奠。祭畢,葬於黃河之原。將陶謙遺表,申奏朝廷。
유현덕이 끝내 핑계를 대서 거절하니 도겸이 손가락으로 심장을 가리키고 죽었다. 군사들이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마치고 곧 牌印을 받들어 유현덕에게 보냈다. 유현덕이 굳게 사양하였다. 다음 날 서주의 백성들이 부 앞에 모여 곡하고 절하며 말하기를 “유사군(유현덕)께서 만약 이 군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모두 편안히 살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관우와 장비 두 공이 또한 두 번, 세 번 서로 권하였다. 유현덕이 곧 임시로 서주의 일을 다스릴 것을 허락하고, 손건, 미축으로 하여금 돕게 하고 진등은 모관으로 삼고, 소패의 군마를 모두 취하여 성에 들어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방을 붙이는 한편으로 상례의 일을 안배하였다. 유현덕과 대소 군사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크게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치고 황하의 언덕에 장례하였다. 도겸이 임금에게 올린 글을 가지고 조정에 아뢰었다.
操在鄄城,知陶謙已死,劉玄德領徐州牧,大怒曰:「我讎未報,汝不費半箭之功,坐得徐州!吾必先殺劉備,後戮謙屍,以雪先君之怨!」即傳號令,剋日起兵去打徐州。荀彧入諫曰:「昔高祖保關中,光武據河內,皆深根固本,以正天下。進足以勝敵,退足以堅守,故雖有困,終濟大業。明公本首事兗州,且河、濟乃天下之要地,是亦昔之關中、河內也。今若取徐州,多留兵則不足用,少留兵則呂布乘虛寇之,是無兗州也。若徐州不得,明公安所歸乎?今陶謙雖死,已有劉備守之。徐州之民,既已服備,必助備死戰。明公棄兗州面取徐州,是棄大而就小,去本而求末,以安而易危也:願熟思之。」操曰:「今歲荒乏糧,軍士坐守於此,終非良策。」彧曰:「不如東略陳地,使軍就食;汝南、潁川,黃巾餘黨何儀、黃劭等,劫掠州郡,多有金帛、糧食。此等賊徒,又容易破。破而取其糧,以養三軍,朝廷喜,百姓悅,乃順天之事也。」
조조가 견성에 있으면서 도겸이 이미 죽고, 유현덕이 서주목을 다스린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아직 원수를 갚지 못하였는데 너는 반 개 화살을 허비하는 공을 세우지도 않고, 앉아서 서주를 얻었구나! 내가 반드시 유비를 먼저 죽인 후에 도겸의 시신을 육시 하는 것으로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원한을 갚을 것이다!”하고는 곧 명령을 내려 날을 정해 군대를 일으켜 가서 서주를 친다고 전하였다. 순욱이 들어가 간하여 말하기를 “옛날 고조는 관중을 지켰고, 광무제는 하내에 근거하였는데 모두 뿌리를 깊게 하고, 근본을 굳게하는 것으로서 천하를 바로잡았습니다. 발을 나아가는 것으로서 적을 이기고, 발을 물리는 것으로서 굳게 지켰기 때문에 비록 곤궁함이 있어도 끝내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현명한 공께서는 본래 처음 연주에서 일을 시작하였고, 또한 황하와 제수는 곧 천하의 요해지인데 이는 또한 옛 날의 관중과 하내이다. 만약 서주를 얻지 못하면 현명한 공께서는 어디로 돌아갈 것입니까? 지금 도겸이 비록 죽었으나 이미 유비(유현덕)가 지키고 있습니다. 서주의 백성들이 이미 유비(유현덕)에게 복종하고 있으니 반드시 유비(유현덕)를 도와 죽기로 싸울 것입니다. 현명한 공이 연주를 버리고 한편으로 서주를 취하는 것은 이는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에 나아가는 것이고, 근본을 버리고 지엽을 구하는 것이고, 편안함으로서 위태로움으로 바꾸는 것이니 원하건데 깊이 생각하십시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지금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한데 군사들이 여기에서 앉아 지키기만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다.” 했다. 순욱이 말하기를 “동쪽으로 진의 땅을 공략하여 군사로 하여금 먹음에 나아가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여남, 영천은 황건적의 남은 무리들인 하의, 황소 등이 주와 군을 위협하고 약탈한 금과 비단, 양식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 도적의 무리들은 또한 쉽게 깨트릴 수 있습니다. 깨트리고 그 양식을 취하여 삼군을 길러 조정을 기쁘게 고, 백성이 기뻐하면 곧 하늘의 일을 따르는 것입니다.” 했다.
操喜,從之,乃留夏侯惇、曹仁守鄄城等處,自引兵略陳地,次及汝、潁。黃巾何儀、黃劭知曹兵到,引眾來迎,會於羊山。時賊兵雖眾,都是狐群狗黨,並無隊伍行列。操令強弓硬弩射住,令典韋出馬。何儀令副元師出戰,不三合,被典韋一戟剌於馬下。操引眾乘勢趕過羊山下寨。
조조가 그것을 따랐다. 곧 하후돈, 조인 등을 남겨 견성 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진의 땅을 공략하고 다음으로 여와 영에 이르렀다. 황건적인 하의 황소 등이 조조의 군대가 이른다는 것을 알고 무리를 이끌고 와서 맞이하여 양산에서 만났다. 이 때 적병이 비록 많으나 모두 여우무리와 개떼 같고, 아울러 대오와 행렬이 없었다. 조조가 강한 활과 굳센 쇠뇌를 쏘게 하고 전위로 하여금 말을 타고 나가게 하였다. 하의가 부원수로 하여금 나가 싸우게 하였는데 삼합이 되지 않아 전위가 한 창으로 찌르니 말에서 떨어졌다. 조조가 무리를 이끌고 형세를 타고 쫓아 양산 아래 진영을 지났다.
次日,黃劭自引軍來。陣圓處,一將步行出戰,頭裏黃巾,身披綠襖,手提鐵棒,大叫:「我乃截天夜叉何曼也!誰敢與我廝鬥?」曹洪見了,大喝一聲,飛身下馬,提刀步出。兩下向陣前廝殺,四五十合,勝負不分。曹洪詐敗而走,何曼趕來;洪用拖刀背砍計,轉身一跳,砍中何曼,再復一刀,殺死。李典乘勢飛馬直入賊陣。黃劭不及隄備,被李典生擒活捉過來。曹兵掩殺賊眾,奪其金帛糧食無數。何儀勢孤,引數百騎奔走葛陂。正行之間,山背後撞出一軍。為頭一個壯士,身長八尺,腰大十圍;手提大刀,截住去路。何儀挺鎗出迎,只一合,被那壯士活挾過去。餘眾著忙,皆下馬受縳,被壯士盡驅入葛陂塢中。
다음 날 황소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왔다. 둥글게 진을 친 곳에 한 장군이 싸우러 걸어 나왔는데 머리에는 황건을 쓰고, 몸에는 녹색의 갖옷을 걸치고 손에는 철봉을 잡고 크게 소리치기를 “나는 곧 절천야차 하만이다! 누가 감히 나와 싸워보겠는가?” 했다. 조홍이 보고 한 소리 외치고는 몸을 날려 말에서 내려 칼을 가지고 걸어 나갔다. 둘이 진 앞에서 싸웠는데 4, 50합에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조홍이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니 하만이 쫓아 왔다. 조홍이 거짓으로 달아나다 칼로 베는 계책을 써서 몸을 돌려 한 번 뛰어오르며 하만을 베어 적중시키고는 다시 한 칼로 죽였다. 이전이 형세를 타고 나는 듯이 말을 달려 바로 적진으로 들어갔다. 황소가 방비하지 못하고 이전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조조의 군대가 적의 무리를 습격하여 죽이고, 그 돈과 비단 양식이 무수하였다. 하의는 형세가 외롭게 되자 수 백기를 이끌고 갈파로 달아났다. 바로 가는 사이에 산 뒤에서 한 군대가 치고 나왔다. 우두머리 되는 한 장사는 키가 여덟 자, 허리둘레는 10아름인데 손에 큰 칼을 잡고 가는 길을 막았다. 하의가 창을 내밀어 나와 맞이하였으나 단지 1합만에 장사가 사로잡아 끼고 지나갔다. 나머지 무리들이 놀라 모두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고, 장사들이 모두 갈피 성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卻說典韋追襲何儀到葛陂,壯士引軍迎住。典韋曰:「汝亦黃巾賊耶?」壯士曰:「黃巾數百騎,盡被我擒在塢內!」韋曰:「何不獻出?」壯士曰:「你若贏得手中寶刀,我便獻出!」韋大怒,挺雙戟向前來戰。兩個從辰至午,不分勝負,各自少歇。不一時,那壯士又出搦戰,典韋亦出。直戰到黃昏,各因馬乏暫止。典韋手下軍士,飛報曹操。操大驚,忙引眾將來看。
각설하고 전위가 하의를 추격하여 갈피에 이르니 장사들이 군대를 이끌고 맞이하였다. 전위가 말하기를 “네가 도한 황건적인가?” 하니 장사가 말하기를 “황건적 수 백기를 모두 내가 사로잡아 성채 안에 두었습니다.” 했다. 전위가 말하기를 “왜 내 놓지 않는가?” 하니 장사가 말하기를 “네가 만약 손 안에 있는 보도를 빼앗을 수 있다면 내가 곧 내 놓을 것이다.” 했다. 전위가 크게 노하여 쌍극(창)을 들고 앞을 향해 와서 싸우려 하였다. 두 사람이 진시로부터 오시에 이르기까지(아침부터 한 낮에 이르기까지) 승부가 가려지지 않아 각자 조금 쉬었다. 한 때가 되지 않아 장사가 또 싸움을 걸어오니 전위가 또한 나갔다. 곧 바로 싸워 황혼에 이르니 각기 말이 피곤해졌으므로 잠시 그쳤다. 전위의 수하 군사가 날듯이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조조가 크게 놀라 황망히 무리를 이끌고 와서 보았다.
次日,出壯士又出搦戰。操見其人威風凜凜,心中暗喜,分付典韋,今日且詐敗。韋領命出戰;戰到三十合,敗走回陣。壯士趕到陣門中,弓弩射回。操急引軍退五里,密使人掘下陷坑,暗伏鉤手。次日,再令典韋引百餘騎出。壯士笑曰:「敗將何敢復來!」便縱馬接戰。典韋略戰數合,便回馬走。壯士只顧望前趕來,不隄防連人帶馬,都落於坑之內,被鉤手縳來見曹操。操下帳叱退軍士,親解其縳,急取衣衣之,命坐,問其鄉貫姓名。
다음 날 장사가 나와 또 싸움을 걸었다. 조조가 그 사람을 보니 위풍이 늠늠하니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하면서 전위에게 명령하여 오늘은 또한 거짓으로 패하라고 명하였다. 전위가 명을 받고 출전하여 싸움이 삼십 합에 이르자 패하여 달아나 진으로 돌아왔다. 장사가 쫓아 진영 문 안에 이르자 활과 쇠뇌를 쏘니 돌아갔다. 조조가 급히 군대를 이끌고 오리를 물러나서 몰래 사람을 시켜 함정을 파게하고 갈고리를 든 군사를 매복시켰다. 다음 날 다시 전위로 하여금 백여기를 거느리고 나가게 했다. 장사가 웃으며 말하기를 “패장이 어찌 감히 다시 왔는가!”하고는 곧 말을 달려 싸웠다. 전위가 대략 몇 합을 싸우고 곧 말을 돌려 달아났다. 장사는 다만 앞을 바라보고 쫓아오는데 사람과 말을 막지 않으니 모두 구덩이 안에 떨어졌고, 갈고리를 둔 순사들이 잡아 묶어 와서 조조에게 보였다. 조조가 장막에서 내려와 군사를 꾸짖고 물러가게 한 후 직접 그 결박을 풀어주고 급히 옷을 가져다 입혀주면서 앉게 하고 그 출신 지역과 성명을 물었다.
壯士曰:「我乃譙國譙縣人也:姓許,名褚,字仲康。向遭寇亂,聚宗族數百人,築堅於塢中以禦之。一日寇至,吾令眾人多取石子準備,吾親自飛石擊之,無不中者,寇乃退去。又一日寇至,塢中無糧,遂與賊和,約以耕牛換米。米已送到,賊驅牛至塢外,牛皆奔走回還,被我雙手掣二牛尾,倒行百餘步。賊大驚,不敢取牛而走:因此保守此處無事。」操曰:「吾聞大名久矣,還肯降否?」褚曰:「固所願也。」遂招宗族數百人俱降。操拜許褚為都尉,賞勞甚厚。隨將何儀、黃劭斬訖。汝、潁悉平。
장사가 말하기를 “나는 곧 초국 초현 사람입니다. 성은 허씨이고, 미름은 저이며, 자는 중강입니다. 지난번에 도적의 난을 만나 종족 수백 명을 모아 성 안에서 쌓음을 굳게 하여 지켰습니다. 어느 날 도적이 이르렀는데 내가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돌멩이를 많이 취하여 준비하고 내가 직접 스스로 돌을 날려 쳤는데 맞추지 못한 것이 없어 도적들이 이에 물러갔습니다. 또 어느 날은 도적이 이르렀는데 성 안에 식량이 없어 마침내 적과 화친하고 농사짓는 소와 쌀을 바꿀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쌀이 이른 후 적이 소를 몰아 성 밖에 이르자 소가 모두 달아나 돌아 왔습니다. 제가 두 손으로 두 마리 소의 꼬리를 잡아 반대로 백여 보를 갔습니다. 도적들이 크게 놀라 감히 소를 잡지 못하고 달아났습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지켜 일이 없었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대명을 들은 것이 오래 되었는데 돌려 항복하겠는가? 않겠는가?” 하니 허저가 말하기를 “진실로 바라던 바입니다.” 했다. 마침내 종족 수백 명을 불러 모두 항복하였다. 조조가 허저를 도위로 삼고, 상을 주고 위로함이 매우 많았다. 이어서 하의와 황소를 참수하였다. 여와 영이 모두 평정되었다.
曹操班師,曹仁、夏侯惇接見,言近日細作報說:兗州薛蘭、李封軍士皆出擄掠,城邑空虛,可引得勝之兵攻之,一鼓可下。操遂引軍逕奔兗州。薛蘭、李封出其不意,只得引兵出城迎戰。許褚曰:「吾願取此二人,以為贄見之禮。」操大喜,遂令出戰,李封使畫戟,向前來迎。交馬兩合,許褚斬李封於馬下。薛蘭急走回陣,弔橋邊李典攔住;薛蘭不敢回城,引軍投鉅野而去;卻被呂虔飛馬趕來,一箭射於馬下,軍皆潰散。
조조가 군대를 철수 하였는데 조인과 하후돈이 맞아 뵙고는 “최근 첩자의 보고에 연주 설란과 이봉의 군사가 모두 나와 노략질하느라 성읍이 비었다. 하니 승리한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면 북 한번 치고 함락시킬 수 있다.”고 말하였다. 조조가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지름길로 연주에 달려갔다. 설란과 이봉이 생각하지 않게 (조조의 군대가)나왔지만 군대를 이끌고 성을 나와 맞아 싸웠다. 허저가 말하기를 “제가 이 두 사람을 잡아 뵙는 예의 선물로 삼기를 원합니다.” 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면서 마침내 나가 싸우게 하니 이봉이 방천화극을 휘두르면서 앞을 향해 나와 맞이하였다. 두 말이 엇갈리며 싸운지 두 합 만에 허저가 이봉의 목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설란이 급히 달아나 진영으로 돌아가는데 조교 가에 이전이 막으니 설란이 감히 성에 돌아가지 못하고 군대를 이끌고 거야에 들어가려는데 뜻 밖에 여건이 날듯이 말을 달려 쫓아 와서 한 개 화살을 쏘아 말 아래로 떨어뜨리니 군대가 모두 무너져 흩어졌다.
曹操復得兗州,程昱便請進兵取濮陽。操令許褚、典韋為先鋒,夏侯惇、夏侯淵為左軍,李典、樂進為右軍,操自領中軍,于禁、呂虔為合後。兵至濮陽,呂布欲自將出迎,陳宮諫:「不可出戰。待眾將聚會後方可。」呂布曰:「吾怕誰來?」遂不聽宮言,引兵出陣,橫戟大罵。許褚便出。鬥二十合,不分勝負。操曰:「呂布非一人可勝。」便差典韋助戰,兩將夾攻。左邊夏侯惇、夏侯淵,右邊李典、樂進齊到,六員將共攻呂布。布遮攔不住,撥馬回城。城上田氏,見布敗回,急令人拽起弔橋。布大叫:「開門!」田氏曰:「吾已降曹將軍。」
조조가 다시 연주를 얻었는데 정욱이 곧 군대를 나아가게 하여 복양을 취할 것을 청하였다. 조조는 허저와 전위로 하여금 선봉을 되게 하고, 하후돈, 하후연을 좌군으로 삼고, 이전, 악진을 우군으로 삼고, 조조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우금과 여건을 후군으로 삼았다. 군대가 복양에 이르니 여포가 스스로 나가 맞이하려 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나가 싸워서는 안됩니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습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내가 누가 온다한들 두려워하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진궁의 말을 듣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진을 치고 창을 휘두르며 크게 꾸짖었다. 허저가 곧 나왔는데 이십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조조가 말하기를 “여포는 한 사람이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하고는 곧 전위를 보내 싸움을 돕게 하였으므로 두 장군이 협공하였다. 좌측에 하후돈과 하후연, 우측에 이전과 악진이 일제히 이르러 여섯 명의 장군이 함께 여포를 공격하였다. 여포가 막아 머물지 못하고 말을 돌려 성에 돌아갔다. 성 위에서 전씨는 여포가 패하여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급히 사람으로 하여금 조교를 끌어 올리도록 하였다. 여포가 크게 외치기를 “문을 열라!”하니 전씨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조장군에게 항복하였다.” 했다.
布大罵,引軍奔定陶而去。陳宮急開東門,保護呂布老小出城。操遂得濮陽,恕田氏舊日之罪。劉曄曰:「呂布乃猛虎也,今日困乏,不可少容。」操令劉曄等守濮陽,自己引軍趕至定陶。時呂布與張邈、張超盡在城中,高順、張遼、臧霸、侯成巡海打糧未回。操軍至定陶,連日不戰,引軍退四十里下寨。正值濟郡麥熟,操即令軍割麥為食。細作報知呂布,布引軍趕來。將近操寨,見左邊一望林木茂盛,恐有伏兵而回。
여포가 크게 꾸짖고는 군대를 이끌고 달아나 정도로 갔다. 진궁이 급히 동문을 열고 여포와 노소를 보호하고 성을 나왔다. 조조가 마침내 복양을 얻고는 전씨의 옛날 죄를 용서하였다. 유엽이 말하기를 “여포는 곧 사나운 호랑이인데 오늘 곤궁하고 결핍되었으니 조금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했다. 조조가 유엽 등에게 복양을 지키게 하고, 자기는 군대를 이끌고 쫓아가 정도에 이르렀다. 이 대 여포와 장막, 장초는 모두 성 안에 있고, 고순, 장요, 장패, 후성 등은 바다를 따라 식량을 구하느라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조조의 군대가 정도에 이르렀으나 연일 싸우지 않으니 군대를 이끌고 40리를 물러나 진영을 세웠다. 바로 그 때 제군의 보리가 익었으므로 조조는 곧 군대로 하여금 보리를 베어 먹게 하였다. 첩자가 여포에게 보고하니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쫓아 왔다. 조조의 진영 가까이 갔을 때 왼쪽에 숲과 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는 복병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돌아갔다.
操知布軍回去,乃謂諸將曰:「布疑林中有伏兵耳,可多插旌旗於林中以疑之。寨西一帶,長提無水,可盡伏精兵。明日呂布必來燒林,堤中軍斷其後,布可擒矣。」於是止留鼓手五十人於寨中擂鼓;將村中擄來男女在寨內吶喊。精兵多伏堤中。
조조가 여포의 군대가 돌아간 것을 알고는 이에 여러 장군들에게 말하기를 “여포는 숲 속에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였을 뿐이니 숲 속에 많은 깃발을 꼿아 의심하게 할 수 있다. 진영 서쪽 일대에 둑은 기나 물이 없으니 정예로운 군대를 모두 숨길만하다. 내일은 여포가 반드시 와서 숲을 태울 것이니 둑 안의 군대가 그 뒤를 끊는다면 여포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했다. 이에 북치는 자 오십 명을 머물게 하여 진영 안에서 북을 치게 하고, 마을에서 사로잡아 온 남녀를 성안에 두고 고함을 지르게 하였다. 많은 정예로운 군대는 둑 안에 매복하게 하였다.
卻說呂布回報陳宮。宮曰:「操多詭計,不可輕敵。」布曰:「吾用火攻,可破伏兵。」乃留陳宮、高順守城。布次日引大軍來,遙見林中有旗,驅兵大進,四面於火,竟無一人;欲投寨中,卻聞鼓聲大震。正自疑惑不定,忽然寨後一彪軍出,呂布縱馬趕來。砲聲響處,堤內伏兵盡出:夏侯惇,夏侯淵,許褚,典韋,李典,樂進,驟馬殺來。呂布料敵不過,落荒而走。從將成廉,被樂進一箭射死。布軍三停去了二停,敗卒回報陳宮。宮曰:「空城難守,不若急去。」遂與高順保著呂布老小,棄定陶而走。曹操將得勝之兵,殺入城中,勢如破竹。張超自焚,張邈投袁術去了。山東一境,盡被曹操所得。安民修城,不在話下。
각설하고 여포는 돌아가 진궁에게 돌아오게 된 일을 말하였다. 진궁이 말하기를 “조조는 속이는 계책이 많으니 가벼이 대적할 수 없습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화공을 써서 복병을 깨트릴 수 있다.”하고는 진궁, 고순이 머물며 성을 지키게 하였다. 여포가 다음 날 대군을 이끌고 와서 숲 속에 깃발이 있는 것을 보고는 군대를 몰라 크게 나아가 사방에 불을 놓았으나 한 사람도 없었고, 진영 안에 들어가고자 하는데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였다. 의혹이 일어나 어떻게 할지를 정하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진영 뒤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나오니 여포가 말을 달려 쫓아 왔다. 포성이 울리고 둑 안의 복병이 모두 나오는데 하후돈, 하후연, 허저, 전위, 이전, 악진이 말을 달려 쇄도하였다. 여포가 적을 대적하지 못할 것을 헤아리고는 황망히 달아났다. 따르던 장군 성렴이 악진이 쏜 한 개 화살을 맞아 죽었다. 여포는 군대의 셋 가운데 둘을 잃었는데 패한 군졸이 돌아가 진궁에게 보고하였다. 진궁이 말하기를 “빈 성은 지키기 어려우니 급히 떠나는 것이 낫다.”하고는 마침내 고순과 여포의 노소를 보호하면서 정도를 버리고 달아났다. 조조가 승리한 군대를 거느리고 성안에 밀고 들어가는데 형세가 대나무를 가르는 것과 같았다. 장초는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죽였고, 장막은 원술에게 들어갔다. 산동의 경내가 모두 조조에게 넘어갔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성을 고친 것은 더 이야기할 것이 없다.
卻說呂布正走,逢諸將皆回。陳宮亦已尋著。布曰:「吾軍雖少,尚可破曹。」遂再引軍來。正是:兵家勝敗真常事,捲甲重來未可知。不知呂布勝負如何,且聽下文分解。
각설하고 여포는 달아나다 돌아오는 여러 장군을 만났다. 진궁을 또한 찾아 만났다. 여포가 말하기를 “우리 군대가 비록 적으나 오히려 조조의 군대를 깨트릴 수 있다.” 하고는 마침내 다시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 그야말로 군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참으로 있을 수 있는 일로 다시 힘을 길러 싸운다면 승패를 알 수 없다. 여포와 승부가 어떠하였는지는 알지 못하겠구나!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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