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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15회 태사자는 소패왕(손책)과 치열하게 싸우고, 손백부(손책)는 엄백호와 크게 싸우다.

by 최인표 2020. 3. 3.

第十五回太史慈酣鬥小霸王孫伯符大戰嚴白虎

15회 태사자는 소패왕(손책)과 치열하게 싸우고, 손백부(손책)는 엄백호와 크게 싸우다.

 

卻說張飛拔劍要自刎玄德向前抱住奪劍擲地曰:「古人云:『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衣服破尚可縫手足斷安可續?』吾三人桃園結義不求同生但願同死今雖失了城池家小安忍教兄弟中道而亡況城池本非吾有家眷雖被陷呂布必不謀害尚可設計救之賢弟一時之誤何至遽欲捐生耶!」說罷大哭張俱感泣

각설하고 장비가 검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찌르려는데 현덕이 앞을 향해 껴 앉으며 검을 빼앗아 땅에 내던지며 말하기를 옛 사람이 말하기를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의복이 헤지면 오히려 기울 수 있지만 수족이 끊어지면 어찌 이를 수 있겠는가?’하였다. 우리 세 사람이 도원에서 결의할 때 함께 살기를 구하지 않고, 다만 함께 죽기를 원하였을 뿐이다. 지금 비록 성지와 가족을 잃었지만 어찌 차마 형제를 중도에 죽게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성지는 본래 나의 소유가 아니었고, 가솔들이 비록 함정에 빠졌으나 여포는 반드시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니 아직도 계책을 써서 구할 수 있다. 동생은 한 때의 잘못으로 어찌 대번에 삶을 버리려 하는가!” 하고는 크게 곡하였다. 관우와 장비가 모두 눈물을 흘렸다.


且說袁術知呂布襲了徐州星夜差人至呂布處許以糧五萬斛馬五百匹金銀一萬兩綵緞一千疋使夾攻劉備布喜令高順領兵五萬襲玄德之後玄德聞得此信乘陰雨撤兵棄盱眙而走思欲東取廣陵比及高順軍來玄德已去高順與紀靈相見就索所許之物靈曰:「公且回軍容某見主公計之。」高順乃別紀靈回軍見呂布具述紀靈語

또 각설하고 원술이 여포가 서주를 습격한 것을 알고는 밤에 사람을 보내 여포가 있는 곳에 이르러 식량 오백 곡, 말 오백 필, 금은 일만 량, 채단 일천 필로 유비(유현덕)를 협공하게 하였다. 여포가 기뻐하여 고순으로 하여금 군대 오만을 거느리고 현덕의 뒤를 습격하게 하였다. 현덕이 이 소식을 듣고 장마 비를 타고 군대를 거두어 우이를 버리고 달아나 동쪽의 광릉을 취하려 생각하였다. 고순의 군대가 와서 보니 현덕은 이미 떠난 후였다. 고순과 기령이 서로 보고 허락한 바의 물건을 찿았다. 기령이 말하기를 공은 또한 군대를 돌리시오. 내가 주공의 계책을 볼 것입니다.” 하니 고순이 곧 기령과 작별하고 회군하여 여포를 뵙고 기령의 말을 모두 전하였다.


布正在遲疑忽有袁術書至書意云:「高順雖來而劉備未除且待捉了劉備那時方以所許之物相送。」布怒罵袁術失信欲起兵伐之陳宮曰:「不可術據壽春兵多糧廣不可輕敵不如請玄德還屯小沛使為我羽翼他日令玄德為先鋒那時先取袁術後取袁紹可縱橫天下矣。」布聽其言令人齎書迎玄德回

여포가 의심하여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원술의 글이 이르렀다. 글에 말하기를 고순이 비록 왔으나 유비를 제거하지 못하였고, 또 유비를 잡기를 기다려서 그 때 비로소 허여한 바의 물건을 보낼 것이오.” 했다. 여포가 노하여 원술이 믿음 잃은 것을 욕하면서 군대를 일으켜 치려하였다. 진궁이 말하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원술은 수춘에 웅거하여 군대가 많고 식량이 많으니 가벼이 대적할 수 없습니다. 현덕이 소패에 돌아와 주둔하기를 청하여 우리를 위해 우익이 되게 하는 보다 못합니다. 다른 날 현덕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고 언젠가 먼저 원술을 취한 후 원소를 취하면 천하를 종횡할 수 있습니다.” 했다. 여포가 그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글을 가지고 가서 현덕을 맞아 돌아오게 하였다.

 

卻說玄德引兵東取廣陵被袁術劫寨折兵大半回來正遇呂布之使呈上書札玄德大喜張曰:「呂布乃無義之人不可信也。」玄德曰:「彼既以好情待我奈何疑之?」遂來到徐州布恐玄德疑惑先令人送還家眷糜二夫人見玄德具說呂布令兵把定宅門禁諸人不得入又常使侍妾送物未嘗有缺玄德謂關張曰:「我知呂布必不害我家眷也。」乃入城謝呂布張飛恨呂布不肯隨往先奉二嫂往小沛去了

각설하고 현덕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광릉을 취하려다 원술에게 진영을 공격당하여 반이 넘는 군대를 잃고 돌아오다 여포의 사자를 만났는데 사자가 글을 올리자 현덕이 크게 기뻐하였다. 관우와 장비가 말하기를 여포는 곧 의리가 없는 사람이니 믿을 수 없습니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그가 이미 좋은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데 어찌하여 그를 의심하는가?”하고는 마침내 가서 서주에 이르렀다. 여포는 현덕이 의심할 것을 두려워하여 먼저 사람을 시켜 가솔들을 돌려보냈다. 감과 미 두 부인이 현덕을 만나 여포가 군대를 정하여 집의 문을 지키면서 사람들을 금하여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을 모두 말하고, 또 항상 시녀를 시켜 물건을 보내게 하였는데 일찍이 빠트림이 없었고 했다. 현덕이 관우와 장비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포가 반드시 우리 가솔을 해치지 않을 것을 알았다.”하고는 곧 성에 들어가 여포에게 사례하였다. 장비가 여포를 원망하여 잘 따라가려 하지 않고, 먼저 두 형수를 받들고 소패에 갔다.


玄德入見呂布拜謝呂布曰:「我非欲奪城因令弟張飛在此恃酒殺人恐有失事故來守之耳。」玄德曰:「備欲讓兄久矣。」布假意仍讓玄德玄德力辭還屯小沛住張心中不平玄德曰:「屈身守分以待天時不可與命爭也。」呂布令人送糧米緞疋自此兩家和好不在話下

현덕이 들어가 여포를 만나 절하고 감사하였다. 여포가 말하기를 우리들이 성을 빼앗으려 한 것이 아니라 동생 장비가 여기에 있으면서 술을 마시고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실수 할 것을 두려워하여 와서 지켰을 뿐입니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저는 형에게 양보하려 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했다. 여포가 일부러 현덕에게 양보하였다. 현덕이 힘써 사양하고 돌아가 소패에 주둔하였다. 관우와 장비는 속으로 불평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몸을 굽히고 분수를 지키는 것으로서 하늘의 때를 기다려야지 목숨을 다투어서는 않된다.” 했다. 여포가 사람을 시켜 양식과 비단을 보냈다. 이로부터 두 진영이 친하여 사이가 좋아졌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卻說袁術大宴將士於壽春人報孫策征廬江太守陸康得勝而回術喚策至策拜於堂下問勞已畢便令侍坐飲宴原來孫策自父喪之後退居江南禮賢下士後因陶謙與策母舅丹陽太守吳璟不和策乃移母并家屬居於曲阿自己卻投袁術術甚愛之常歎曰:「使術有子如孫郎死復何恨!」因使為懷義校尉引兵攻涇縣太師祖郎得勝術見策勇復使攻陸康今又得勝而回

각설하고 원술이 수춘에서 장사들에게 크게 잔치를 열었을 때 어떤 사람이 손책이 여강태수 육강을 정벌하여 이기고 돌아왔다고 보고하였다. 원술이 손책을 불러 이르게 하니 손책이 마루 아래에서 절하였다. 원술이 수고로움 묻기를 마친 후 곧 모시고 앉아 술을 마시게 하였다. 원래 손책은 아버지의 상을 입은 이후로 강남에 물러나 있으면서 어진 이를 예로 대우하고 선비에게 낮추었다. 후에 도겸과 손책의 외삼촌인 단양태수 오경이 화합하지 못하자 손책이 이에 어머니와 가족을 옮겨 곡아에 살게 하고 자기는 원술에게 갔다. 원술이 그를 매우 아껴서 항상 탄식하여 말하기를 나에게 손랑(손책)과 같은 아들을 있게 한다면 죽은들 무엇을 한하리오!”하고는 인하여 회의교위를 삼아 군대를 이끌고 경현 태사 조랑을 공격하게 하였더니 승리를 거두었다. 원술이 손책의 용맹함을 보고 다시 육강을 공격하게 하였더니 지금 또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것이다.


當日筵策歸營寨見術席間相待之禮甚傲心中鬱悶乃步月於中庭因思父孫堅如此英雄我今淪落此不覺於聲大哭忽見一人自外而入大笑曰:「伯符何故如此尊父在日多曾用我君若有不決之事何不問我乃自哭耶?」策視之乃丹陽故鄣人姓朱名治字君理孫堅舊從事官也策收淚而延之坐曰:「策所哭者恨不能繼父之志耳。」治曰:「君何不告袁公路借兵往江東假名救吳璟實圖大業而乃久困於人之下乎?」

그날 잔치 자리가 끝난 후 손책은 진영으로 돌아갔다. 원술을 만나는 자리의 서로 대하는 (원술의)예가 매우 오만하니 마음속으로 울적하고 번민하여 달밤에 뜰을 거닐었다. 아버지 손견은 이 같은 영웅이었건만 나는 지금 몰락에 이르렀음을 생각하고 소리 내어 통곡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갑자기 한 사람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백부는 무슨 일로 이 같이 합니까? 존부께서 살아계실 때 일찍이 나를 많이 등용하였습니다. 그대가 만약 결정하지 못할 일이 있다면 어찌하여 나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곡합니까?” 했다. 손책이 그를 보니 곧 단양 고장 사람으로 성은 주이고, 이름은 치이며, 자는 군리로 손견의 옛 종사관이었다. 손책이 눈물을 거두고 이어 앉아 말하기를 제가 곡을 한 것은 아버지의 뜻을 잘 잇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였을 뿐입니다.” 했다. 주치가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원공로에게 말하여 군대를 빌려 강동에 가서 오경을 구한다는 핑계를 대고, 실제로는 대업을 도모하지 않고, 오래도록 다른 사람의 아래에서 곤궁하게 지냅니까?” 했다.

 

正商議間一人忽入曰:「公等所謀吾已知之吾手下有精壯百人暫助伯符一臂之力。」策視其人乃袁術謀士汝南細陽人姓呂名範字子衡策大喜延坐共議呂範曰:「只怕袁公路不肯借兵。」策曰:「吾有亡父留下傳國玉璽以為質當。」範曰:「公路欲得此久矣以此相質必肯發兵。」

서로 상의하는 사이에 한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 말하기를 공들이 모의하는 바를 내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내 부하 중에 정예롭고 건장한 군사 백명이 있는데 잠시 백부를 도와 한 팔의 힘이 될 것입니다.” 했다. 손책이 그 사람을 보니 곧 원술의 모사인 여남 세양 사람으로 성은 여이고, 이름은 범이며, 자는 자형이었다. 손책이 크게 기뻐하며 옆에 앉아 함께 의논하였다. 여범이 말하기를 아마도 원공로가 즐겨 군대를 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하니 손책이 말하기를 나에게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전국옥쇄가 있으니 전당 삼을 수 있습니다.” 했다. 여범이 말하기를 원공로가 이것을 얻으려 한 것이 오래 되었다! 이것으로서 서로 보증하면 반드시 즐겨 군대를 출발시킬 것입니다,

 

三人計議已定次日策入見袁術哭拜曰:「父讎不能報今母舅吳璟又為揚州刺史劉繇所逼策老母家小皆在曲阿必將被害策敢借雄兵數千渡江救難省親恐明公不信有亡父遺下玉璽權為質當。」術聞有玉璽取而視之大喜曰:「吾非要你玉璽今且權留在此我借兵三千馬五百匹與你平定之後可速回來你職位卑微難掌大權我表你為折衝校尉殄寇將軍剋日領兵便行。」

세 사람이 계책을 의논하여 정해졌다. 다음 날 손책이 들어가 원술을 뵙고 곡하며 절하고 말하기를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하였는데 지금 외삼촌 오경이 또한 양주자사 유요의 핍박을 받고 있고, 저의 노모와 가족은 모두 곡아에 있으니 반드시 해를 입을 것입니다. 저는 감히 군대 수천을 빌려 강을 건너 어려움을 구원하고, 어버이를 보살피려 합니다. 공이 믿지 못하신다면 소유하고 있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옥쇄를 임시로 전당 삼을 것입니다.” 했다. 원술이 옥쇄가 있다는 것을 듣고 취하여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나는 너의 옥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또한 임시로 여기에 두시오. 내가 군대 삼천과 말 오백 필을 빌려 줄 것이다. 평정한 후 속히 돌아와야 할 것이다. 너의 직위가 낮고 비천하니 대권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표를 올려 너를 절충교위진구장군으로 삼을 것이니 날을 정해 군대를 이끌고 곧 가시오.” 했다.

 

策拜謝遂引軍馬帶領朱治呂範舊將程普黃蓋韓當等擇日起兵行至歷陽見一軍到當先一人姿質風流儀容秀麗見了孫策下馬便拜策視其人乃廬江舒城人姓周名瑜字公瑾原來孫堅討董卓之時移家舒城瑜與孫策同年交情甚密因結為昆仲策長瑜兩月瑜以兄事策瑜叔周尚為丹陽太守今往省親到此與策相遇

손책이 절하며 감사하고 마침내 군마를 이끌고 주치, 여범, 옛 장군이었던 정보, 황개, 한당 등을 데리고 날을 가려 군대를 일으켰다. 행군하여 역양에 이르러 한 군대가 이르는 것을 보았다. 앞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자질이 품위가 있고, 위의와 용모가 아름다웠는데 손책을 보자 말에서 내려 절하였다. 손책이 그 사람을 보니 곧 여강 사성 사람으로 성은 주이고, 이름은 유이며 자는 공근이었다. 원래 손견이 동탁을 토벌할 때 집을 서성으로 옮겼는데 주유와 손책은 나이가 같아 사귀는 정이 매우 친밀하여 맺어 형제가 되었다. 손책이 주유보다 두 달이 위였으므로 주유가 형으로 손책을 섬겼다. 주유의 숙부 주상이 단양태수가 되었으므로 지금 부모를 살피러 가다 이에 이르러 손책과 서로 만난 것이었다.

 

策見瑜大喜訴以衷情瑜曰:「某願施犬馬之力共圖大事。」策喜曰:「吾得公瑾大事諧矣。」便令與朱治呂範等相見瑜謂策曰:「吾兄欲濟大事亦知江東有二張乎?」策曰:「何為二張』?」瑜曰:「一人乃彭城張昭字子布一人乃廣陵張紘字子綱二人皆有經天緯地之才因避亂隱居於此吾兄何不聘之?」策喜即便令人齎禮往聘俱辭不至策乃親到其家與語大悅力聘之二人許允策遂拜張昭為長史兼撫軍中郎將張紘為參謀正議校尉商議攻擊劉繇

손책이 주유를 만나 크게 기뻐하며 속마음을 호소하였다. 주유가 말하기를 제가 견마의 힘을 베풀 것이니 함께 대사를 도모할 것을 원합니다.” 했다. 손책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공근(주유)을 얻어 대사를 함께 할 것이다.” 했다. 곧 주치, 여범 등과 서로 만나게 하였다. 주유가 손책에게 일러 말하기를 형이 대사를 이루고자 한다면 또한 강동에 두 장씨가 있는 것을 압니까?”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누구를 두 장씨라 하는가?”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한 사람은 곧 팽성의 장소이니 자는 자포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곧 장굉이니 자는 자강으로 두 사람은 모두 경천위지의 재능이 있으나 난을 피하여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형님은 어찌하여 그를 초빙하지 않습니까?”했다. 손책이 기뻐하며 곧 사람을 시켜 예물을 가지고 가서 초빙하려 하였으나 둘 다 사양하고 이르지 않았다. 손책이 이에 직접 그 집에 이르러 함께 말을 나누고는 크게 기뻐하여 힘써 초빙하니 두 사람이 허락하였다. 손책이 마침내 장소에게 벼슬을 주어 장사를 삼고, 무군중랑장을 겸하게하고, 장굉은 참모정의교위를 삼고, 상의하여 유요를 공격하였다.


卻說劉繇字正禮東萊牟平人也亦是漢室宗親太尉劉寵之姪兗州刺史劉岱之弟舊為揚州刺史屯於壽春被袁術趕過江東故來曲阿當下聞孫策兵至急聚眾將商議部將張英曰:「某領一軍屯於牛渚縱有百萬之兵亦不能近。」言未畢帳下一人高叫曰:「某願為前部先鋒。」眾視之乃東萊黃縣人太史慈也慈自解了北海之圍後便來見劉繇繇留於帳下當日聽得孫策來到願為前部先鋒繇曰:「你年尚輕未可為大將只在吾左右聽命。」太史慈不喜而退

각설하고 유요는 자가 정례로 동래 모평사람이다. 또한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 태위 유총의 조카이며, 연주자사 유대의 동생인데 원래 양주자사가 되어 수춘에 주둔하고 있다가 원술에게 쫓겨 강동을 지나 곡아에 왔다. 바로 손책의 군대가 이르렀음을 듣고 급히 여러 장군을 모아 상의하였다. 부장 장영이 말하기를 내가 한 부대를 거느리고 우저에 주둔하면 백만 명의 군대가 있을지라도 또한 가까이 올 수 없습니다.” 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장막 아래서 한 사람이 높이 소리쳐 말하기를 제가 앞에서 선봉이 되기를 원합니다.” 했다. 여럿이 그를 보니 곧 동래 황현 사람 태사자였다. 태사자가 스스로 북해의 포위를 푼 후 곧 와서 유요를 뵈니 유요가 휘하에 있게 하였다. 그날 손책이 와서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앞 부대의 선봉이 될 것을 원하였다. 유요가 말하기를 너는 아직 나이가 적어 아직 대장이 될 수 없으니 다만 나의 좌우에 있으면서 명을 들으라.” 했다. 태사자가 기뻐하지 않고 물러갔다.

 

張英領兵至牛渚積糧十萬於邸閣孫策引兵到張英出迎兩軍會於牛渚灘上孫策出馬張英大罵黃蓋便出與張英戰不數合忽然張英軍中大亂報說寨中有人放火張英急回軍孫策引軍前來乘勢掩殺張英棄了牛渚望深山而逃

장영이 군대를 이끌고 우저에 이르러 식량 십만을 저각에 쌓았다. 손책이 군대를 이끌고 이르니 장영이 나가 맞이하였다. 두 군대가 우저탄에서 만났다. 손책이 말을 타고 나오니 장영이 크게 욕하니 황개가 곧 나와 장영과 싸웠다. 몇합이 되지 않아 장영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는데 영채 안의 어떤 사람이 불을 놓았다고 보고하였다. 장영이 급히 군대를 돌리니 손책이 군대를 이끌고 앞으로 나가 형세를 타고 습격하여 죽였다. 장영이 우저를 버리고 깊은 산을 바라보며 도망하였다.


原來那寨後放火的乃是兩員健將一人乃九江壽春人姓蔣名欽字公奕一人乃九江下蔡人姓周名泰字幼平二人皆遭世亂聚人在揚子江中劫掠為生久聞孫策為江東豪傑能招賢納士故特引其黨三百餘人前來相投策大喜用為車前校尉收得牛渚邸閣糧食軍器并降卒四千餘人遂進兵神亭

원래 영채의 뒤에서 불을 놓은 이는 곧 두 명의 건장한 장군인데 한 사람은 구강 수춘 사람으로 성은 장이고, 이름은 흠이며, 자는 공혁이고, 한 사람은 곧 구강 하채 사람으로 성은 주이고, 미름은 태이며, 자는 유평이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이 혼란해짐을 만나 사람을 모아 양자강 안에 있으면서 약탈을 하며 살았다. 오래전부터 손책이 강동의 호걸로 어진 선비를 초빙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특히 그 무리 삼백여 명을 이끌고 앞으로 와서 들어왔다. 손책이 크게 기뻐하며 등용하여 거전교위를 삼고, 우저 저각의 양식, 무기와 아울러 항복한 군졸 사천여 명을 거두고, 마침내 군대를 신정에 나아가게 했다.

 

卻說張英敗回見劉繇繇怒欲斬之謀士笮薛禮勸免使屯兵零陵城拒敵繇自領兵於神亭嶺南下營孫策於嶺北下營策問土人曰:「近山有漢光武廟否?」土人曰:「有廟在嶺上。」策曰:「吾夜夢光武召我相見當往祈之。」長史張昭曰:「不可嶺南乃劉繇寨有伏兵奈何?」策曰:「神人佑我吾何懼焉?」遂披挂綽鎗上馬引程普黃蓋韓當蔣欽周泰等共十三騎出寨上嶺到廟焚香下馬參拜已畢策向前跪祝曰:「若孫策能於江東立業復興故父之基即當重修廟宇四時祭祀。」

각설하고 장영이 패하고 돌아가 유요를 뵈니 유요가 노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모사 착융과 설예가 사면을 권하니 군대를 영릉성에 주둔하게 하여 적을 막게 하였다. 유요는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 신정의 고개 아래에 진영을 세웠고, 손책은 고개 북쪽에 진영을 세웠다. 손책이 지역 주민에게 물어 말하기를 산 가까이에 한 나라 광무제 사당이 있는가? 없는가?”하니 지역 주민이 말하기를 사당이 고개 위에 있습니다.” 하니 손책이 말하기를 내 꿈에 광무제가 나를 불러 보려하시니 마땅히 가서 기도할 것이다.” 했다. 장사와 장소가 말하기를 안됩니다. 고개 남쪽이 곧 유요의 영채인데 혹시 복병이 있으면 어찌합니까?”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신인이 나를 돕는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했다. 마침내 갑옷을 입고 창을 잡고 말에 올라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등 십삼 기를 이끌고 영채를 나와 고개를 올라 사당에 이르러 향을 살랐다. 말에서 내려 참배를 마친 후 손책이 앞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말하기를 만약 제가 강동에서 업을 세워 옛 아비의 기업을 부흥시킬 수 있다면 곧 마땅히 사당을 중수하고 四時로 제사할 것입니다.” 했다.


祝畢出廟上馬回顧眾將曰:「吾欲過嶺探看劉繇寨柵。」諸將皆以為不可策不從遂同上嶺南望村林早有伏路小軍飛報劉繇繇曰:「此必是孫策誘敵之計不可追之。」太史慈踴躍曰:「此時不捉孫策更待何時?」遂不候劉繇將令竟自披挂上馬綽鎗出營大叫曰:「有膽氣者都跟我來!」諸將不動惟有一小將曰:「太史慈真猛將也吾可助之!」拍馬同行眾將皆笑

기도를 마치고 사당을 나와 말에 올라 여러 장군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고개를 지나면서 유요의 목책을 더듬어 보고자 하였다.” 했다. 여러 장군들이 모두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손책이 따르지 않고 마침내 같이 고개에 올라 남쪽으로 촌과 숲을 바라보았다. 그때 길 옆에 숨어 있던 소규모의 군대가 날 듯이 유요에게 보고하였다. 유요가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손책이 적을 유인하는 계책이니 쫓을 수 없다.” 했다. 태사자가 펄쩍 뛰며 말하기를 이 때 손책을 잡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했다. 마침내 유요의 명령을 살피지 않고, 마침내 스스로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창을 잡고 진영을 나가면서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담력과 기운이 있는 자는 모두 나를 따라오라!”했으나 하였으나 여러 장군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한 하급 장군이 말하기를 태사자는 진실로 용맹한 장군이다! 내가 도울 수 있습니다!”하고는 말에 박차를 가하여 함께 갔다. 여러 장군들이 모두 웃었다.


卻說孫策看了半晌方始回馬正行過嶺只聽得嶺上叫:「孫策休走!」策回頭視之見兩匹馬飛下嶺來策將十三騎一齊擺策橫鎗立馬於嶺下待之太史慈高叫曰:「那個是孫策?」策曰:「你是何人?」答曰:「我便是東萊太史慈也特來捉孫策!」策笑曰:「只我便是你兩個一齊來併我一個我不懼你我若怕非孫伯符也!」慈曰:「你便眾人都來我亦不怕!」縱馬橫鎗直取孫策策挺鎗來迎兩馬相交戰五十合不分勝負程普等暗暗稱奇

각설하고 손책은 한나절을 지켜보다가 비로소 말을 돌렸다. 바로 행군하여 고개를 지나다 고개 위에서 소리치는 것을 들었는데 손책은 달아나지 말라!”하였다. 손책이 머리를 돌려 보는데 두 필의 말이 나는 듯이 고개를 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손책이 십삼기를 거느리고 일제히 늘어섰다. 손책이 창을 빗겨들고 말을 세우고서 고개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태사자가 크게 부르짖기를 누가 손책인가?” 하니 손책이 너는 누구냐?” 했다. 태사자가 대답하기를 나는 곧 동래의 태사자인데 특히 손책을 잡으러 온 것이다!” 했다. 손책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바로 손책이다. 너희 둘이 일제히 와서 나 한 사람과 싸워도 나는 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너를 두려워한다면 손백부가 아니다.” 했다. 태사자가 말하기를 너는 곧 여러 사람들이 모두 오라. 내가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하고는 말을 놓아 창을 빗겨들고 곧 바로 손책을 공격하였다. 손책이 창을 내밀고 맞아 싸웠다. 두 말이 서로 엇갈리며 오십 합을 싸웠는데도 승부가 갈리지 않으니 정보 등이 마음속으로 기이하다 여겼다.

 

慈見孫策鎗法無半點兒滲漏乃佯輸詐敗引孫策趕來慈卻不由舊路上嶺竟轉過山背後策趕到大喝:「走的不算好漢!」慈心中自忖:「廝有十二從人我只一個便活捉了他也被眾人奪去再引一程教這廝沒尋處方好下手。」於是且戰且走策那裏肯捨一直趕到平川之地慈兜回馬再戰又到五十合策一鎗搠慈閃過挾住鎗慈也一鎗搠去策亦閃過挾住鎗兩個用力只一拖都滾下馬來馬不知走的那裏去了兩個棄了鎗住廝打戰袍扯得粉碎策手快掣了太史慈背上的短戟慈亦掣了策頭上的兜鍪策把戟來刺慈慈把兜鍪遮架

태사자가 손책의 창법을 보니 조금의 잘못도 없어 거짓으로 패한 척하며 손책을 유인하니 쫓아 왔다. 태사자가 옛 길을 통하지 않고 고개를 올라가 마침내 산 뒤를 지나갔다. 손책이 쫓아와 이르러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달아나다니 사나이가 아니구나!” 했다. 태사자가 마음속으로 이 놈에게는 열 두 명의 따르는 사람이 있고, 나는 한 명일 뿐이니 곧 살려서 잡더라도 여러 사람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다시 조금의 거리를 유인하여 그놈이 찾아 낼 수 없게 하고, 바야흐로 손을 쓰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이에 또 싸우고 또 달아났다. 손책이 개의치 않고 곧바로 쫒아서 평평한 땅에 이르렀다. 태사자가 말을 돌려 다시 싸워 오십 합에 이르렀다. 손책이 창을 찌르면 태사자가 번개 같이 지나치며 창을 끼고, 태사자가 창을 찌르면 손책이 또한 번개같이 지나치며 창을 끼었다. 두 사람이 힘을 써 끌어당기다 모두 말에서 떨어져 굴렀다. 말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두 사람이 창을 버리고 서로 맞잡고 싸웠는데 전포가 찢어져 흩어졌다. 손책이 빠르게 손을 놀려 태사자 등 위의 짧은 창을 뽑으니 태사자가 또한 손책 머리 위의 투구를 벗겼다. 손책이 창을 잡고 와서 태사자를 찌르니 태사자가 투구를 잡아 막았다.

 

忽然喊聲後起乃劉繇接應軍到來約有千餘策正慌急程普等十二騎亦衝到策與慈方纔放手慈於軍中討了一匹馬取了鎗上馬復來孫策的馬卻是程普收得策亦取鎗上馬劉繇一千餘軍和程普等十二騎混戰逶迤殺到神亭嶺下喊聲起處周瑜領軍來到劉繇自引大軍殺下嶺來時近黃昏風雨暴至兩下各自收軍

갑자기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고 곧 유요가 호응하여 대략 천여 명의 군대가 이르렀다. 손책이 황급해 하는데 정보 등 십이여 기가 또한 치고 이르니 손책과 태사자가 비로소 겨우 손을 놓았다. 태사자가 군중에서 토론을 마치고 한 필의 말과 창을 취하여 말을 타고 다시 왔다. 손책의 말은 정보가 거두었는데 손책이 또한 창을 잡아 말을 탔다. 유요가 일천여 명의 군대와 정보 등 십이 기가 섞여 싸우는데 멀고 길게 신정령 아래에 쇄도하였다. 함성이 일어나는 곳에서 주유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르렀다. 유요가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고개 아래로 쇄도해 왔다. 그 때는 황혼이 가까웠는데 비바람이 사납게 이르니 양쪽이 각기 스스로 군대를 거두었다.


次日孫策引軍到劉繇營前劉繇引軍出迎兩陣圓處孫策把鎗挑太史慈的小戟於陣前令軍士大叫曰:「太史慈若不是走的快已被刺死了!」太史慈亦將孫策兜鍪挑於陣前也令軍士大叫曰:「孫策頭已在此!」

다음 날 손책이 군대를 이끌고 유요의 진영 앞에 이르니 유요가 군대를 이끌고 나가 맞이하였다. 양 측이 둥글게 진을 친 곳에 손책이 창을 잡고, 태사자의 작은 극을 진 앞에서 흔들며 군사로 하여금 크게 외치게 하기를 태사자가 만약 빨리 달아나지 않았다면 이미 찔려 죽었을 것이다!”하였다. 태사자가 또한 손책의 투구를 가지고 진 앞에서 흔들며 군사로 하여금 치게 하기를 손채듸 머리가 이미 여기에 있구나!” 했다.

 

兩軍吶喊這邊誇勝那邊道強太史慈出馬要與孫策決個勝負策遂欲出程普曰:「不須主公勞力某自擒之。」程普出到陣前太史慈曰:「你非我之敵手只教孫策出馬來!」程普大怒挺鎗直取太史慈兩馬相交戰到三十合劉繇急鳴金收軍太史慈曰:「我正要捉拿賊將何故收軍?」劉繇曰:「人報周瑜領軍襲取曲阿有廬江松滋人陳武字子烈接應周瑜入去吾家基業已失不可久留速往秣會薛禮融軍馬急來接應。」

두 군대가 함성을 지르며 이곳은 이겼다 자랑하고, 저곳은 강함을 말하였다. 태사자가 말을 타고 나가 손책과 개인별 승부를 짓자고 요구하니 손책이 마침내 나가려 하였다. 정보가 말하기를 반드시 주공이 수고롭게 힘쓸 것 없이 제가 사로잡겠습니다.”하고는 정보가 나가 진 앞에 이르니 태사자가 말하기를 너는 나의 적수가 아니니 손책으로 하여금 말을 타고 나오게 하라!”했다. 정보가 크게 노하여 창을 내지르며 태사자를 잡으려 하였다. 두 말이 서로 엇갈리며 싸운지 삼십 합에 이르렀을 때 유요가 급히 징을 울려 군대를 거두었다. 태사자가 말하기를 내가 적장을 잡으려하는데 무엇 때문에 군대를 거둡니까?”하니 유요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주유가 군대를 거느리고 곡아를 습격하여 취하였는데 여강 송자 사람인 진무, 자는 자열이 주유에게 호응하여 들어가게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내가 집안의 기업을 이미 잃었으니 오래 머물 수 없다. 속히 말릉에 가서 설예, 착융의 군마를 만나 급히 와서 호응하려한다.” 했다.


太史慈跟著劉繇退軍孫策不趕收住人馬長史張昭曰:「彼軍被周瑜襲取曲阿無戀戰之心今夜正好劫營。」孫策然之當夜分軍五路長驅大進劉繇軍兵大敗眾皆四紛五落太史慈獨力難當引十數騎連夜投涇縣去了

태사자가 유요를 따라 군대를 물리는데 손책이 쫓지 않고 인마를 거두었다. 장사 장소가 말하기를 주유가 곡아를 습격하여 빼앗았기 때문에 그들의 군대는 싸움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니 오늘 밤 진영을 공격하기 좋습니다.” 했다. 손책이 그렇다 여기고 그날 밤 군대를 다섯 길로 나누어 길게 몰아 크게 진격하였다. 유요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무리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태사자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수십 기를 이끌고 밤새 경현으로 나아갔다.


卻說孫策又得陳武為輔其人身長七尺面黃睛赤形容古怪策甚敬愛之拜為校尉使作先鋒攻薛禮武引十數騎突入陣去斬首級五十餘顆薛禮閉門不敢出

각설하고 손책이 또 진무를 얻어 보좌로 삼았는데 그 사람은 키가 칠척이고, 얼굴은 누르며 눈동자는 붉어 형상이 괴상하였다. 손책이 매우 공경하고 아껴 교위를 삼고 선봉에 세워 설예를 공격하게 하였다. 진무가 수십 기를 이끌고 진영에 돌입하여 오십여 급의 머리를 베었다. 설에가 문을 닫고 감히 나가지 못하였다.

 

策正攻城忽有人報劉繇會合笮融去取牛渚孫策大怒自提大軍竟奔牛渚劉繇笮融二人出馬迎敵孫策曰:「吾今到此你如何不降?」劉繇背後一人挺鎗出馬乃部將于糜也與策戰不三合被策生擒過去撥馬回陣繇將樊能見捉了于糜挺鎗來趕那鎗剛搠到策後心策陣上軍士大叫:「背後有人暗萛!」策回頭忽見樊能馬到乃大喝一聲聲如巨雷樊能驚駭倒翻身撞下馬來破頭而死策到門旗下將于糜丟下已被挾死一霎時挾死一將喝死一將自此人皆呼孫策為小霸王」。

손책이 성을 공격하려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유요가 착융과 회합하여 가서 우저를 빼앗았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손책이 크게 노하여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우저에 달려갔다. 유요, 착융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나와 적을 맞이하였다. 손책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여기에 이르렀는데 너는 왜 항복하지 않는가?”하니 유요의 뒤에서 한 사람이 창을 내밀고 말을 타고 나왔는데 곧 부장 우미였다. 손책과 싸운 지 삼합이 되지 못하여 손책이 사로잡아 말을 돌려 진으로 돌아갔다. 유요의 장군 번능이 우미가 사로잡힌 것을 보고는 창을 내밀고 쫓아 왔다. 창이 손책의 등 가운데를 푹 찌르려 하니 손책 진 중의 군사들이 크게 부르짖기를 뒤에 어떤 사람이 몰래 붙습니다.” 하였다. 손책이 머리를 돌려 갑자기 번능의 말이 이르는 것을 보고는 크게 한 소리를 내질렀는데 소리가 큰 우레와 같았다. 번능이 놀라 뒤집혀 말에서 떨어져 땅에 부딪히니 머리가 깨져 죽었다. 손책이 진영 문 깃발 아래 이르러 우미를 내려놓았는데 이미 끼어 죽어 있었다. 한 순간에 한 장군을 끼어 죽이고, 큰 소리로 한 장군을 죽였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모두 손책을 부를 때 소패왕이라 하였다.


當日劉繇兵大敗人馬大半降策策斬首萬餘劉繇與笮融走豫章投劉表去了孫策還兵復攻秣陵親到城壕邊招諭薛禮投降城上暗放一冷箭正中孫策左腿翻身落馬眾將急救起還營拔箭以金瘡藥傅之策令軍中詐稱主將中箭身死軍中舉哀拔寨齊起

그날 유요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인마 태반이 손책에게 항복하였다. 손책이 만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유요와 착융이 예장으로 달아나 유표에게 들어갔다. 손책이 군대를 돌려 다시 말릉을 공격하면서 직접 성의 해자 가에 이르러 설례가 항복할 것을 권하였다. 성 위에서 몰래 숨어 하나의 화살을 쏘았는데 바로 손책의 왼쪽 넓적다리에 적중되면서 손책이 몸을 굴리며 말에서 떨어졌다. 여러 장군들이 급히 구원하여 일으켜 진영에 돌아와 화살을 뽑고 금창약을 발랐다. 손책이 군중에 거짓으로 주장이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말하게 하니 군 중에서 초상을 발표하고 영채를 뽑아 일제히 일어나 떠났다.

 

薛禮聽知孫策已死連夜起城內之軍與驍將張英陳橫殺出城來追之忽然伏兵四起孫策當先出馬高聲大叫曰:「孫郎在此!」眾軍皆驚盡棄鎗刀拜於地下策令休殺一人張英撥馬回走被陳武一鎗刺死陳橫被蔣欽一箭射死薛禮死於亂軍中策入秣陵安輯居民移兵至涇縣來捉太史慈

설례가 손책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들어 알고, 밤새 성내의 군대를 일으켜 효장 장영, 진횡과 성을 쇄도해 나와 추격하였다. 갑자기 복병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손책이 먼저 말을 타고 나오며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손랑이 여기에 있다!”하니 여러 군사들이 모두 놀라 모두 창과 칼을 버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였다. 손책이 한 사람도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장영이 말을 돌려 달아나다 진무의 한 창에 찔려 죽었다. 진횡은 장흠이 쏜 하나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설례는 혼란스러운 군대 안에서 죽었다. 손책이 말릉에 들어가 살고 있는 백성들은 안심시키고, 군대를 이동하여 경현에 이르러 태사자를 잡았다.


卻說太史慈招得精壯二千餘人并所部兵正要來與劉繇報讎孫策與周瑜商議活捉太史慈之計瑜令三面攻縣只留東門放走離城二十五里三路各伏一軍太史慈到那裏人馬困乏必然被擒原來太史慈所招軍大半是山野之民不諳紀律涇縣城頭苦不甚高夜孫策命陳武短衣持刀首先爬上城放火太史慈見城上火起上馬投東門走背後孫策引軍趕來

각설하고 태사자가 정예 장사 이천여 명과 부병을 불러 마침 유요와 원수를 갚으려던 참이었다. 손책과 주유가 태사자를 산채로 잡을 계책을 상의하였다. 주유가 세 방향으로 현을 공격하면서 다만 동문만 달아날 수 있게 터 두게 하고, 성으로부터 이십오리 떨어진 곳에 세 길에 각각 일군씩을 매복시켰다가 태사자가 그 곳에 이르면 반드시 인마가 피로할 터이니 반드시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다. 원래 태사자는 불렀던 군대의 태반이 산과 들의 백성들이어서 기율을 알지 못하였다. 경현은 성의 높이가 매우 높지 않았다. 밤에 손책이 진무에게 명하여 짧은 옷을 입고 칼을 지니게 하고 먼저 성을 기어 올라가 불을 놓게 하였다. 태사자가 성위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말을 타고 동문으로 나아가 달아나는데 뒤에서 손책이 군대를 이끌고 쫓아 왔다.

 

太史慈正走後軍趕至三十里卻不趕了太史慈走了五十里人困馬乏蘆葦之中喊聲忽起慈急待走兩下裏絆馬索齊來將馬絆翻了生擒太史慈解投大寨策知解到太史慈親自出營喝散士卒自釋其縛將自己錦袍衣之請入寨中謂曰:「吾知子義真丈夫也劉繇蠢不能用為大將以致此敗。」

태사자가 바로 도망하는데 후군이 삼십리에 이르니 더 쫓지 않았다. 태사자 오십리를 달아나니 사람과 말이 곤궁하고 피곤하였는데 갈대 숲 속에서 함성이 갑자기 일어났다. 태사자가 급히 달아나려는데 양쪽에서 반마색(말 올가미)가 일제히 와서 말 다리를 얽어매어 넘어뜨리고 태사자를 사로잡아 큰 우리에 가두어 갔다. 손책이 태사자가 이름을 알고 직접 스스로 진영에 나와 사졸들을 나무라고 흩은 후 스스로 그 결박을 풀고, 자기의 금포를 입혀 준 후 영채 중에 들기를 청하고 일러 말하기를 나는 자의가 참된 장부임을 안다. 유요는 어리석은 무리로 큰 장군을 등용하여 쓰지 않으니 이런 패함에 이르렀습니다.” 했다.

 

慈見策待之甚厚遂請降策執慈手笑曰:「神亭相戰之時若公獲我還相害否?」慈笑曰:「未可知也。」策大笑請入帳邀之上坐設宴款待慈曰:「劉君新破士卒離心某欲自往收拾餘眾以助明公不識能相信否?」策起謝曰:「此誠策所願也今與公約明日日中望公來還。」慈應諾而去諸將曰:「太史慈此去必不來矣。」策曰:「子義乃信義之士必不背我。」眾皆未信

태사자가 손책의 대우가 매우 두터운 것을 보고는 마침내 항복을 청하였다. 손책이 태사자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하기를 신정에서 서로 싸울 때 만약 공이 나를 잡았더라면 도리어 나를 해쳤겠는가? 아닌가?” 하니 태사자가 웃으며 말하기를 알 수 없습니다.” 했다. 손책이 크게 웃으며 장막에 들기를 청하여 윗 자리에 앉게 하고 잔치를 열어 정성껏 대우하였다. 태사자가 말하기를 유군이 새로이 깨트려진 후 사졸의 마음이 떠났으니 내가 스스로 가서 남은 무리를 수습하여 명공을 돕고자하는데 믿으실지 믿지 않을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했다. 손책이 일어나 사례하며 말하기를 이는 진실로 손책이 원하는 바입니다. 지금 공과 약속하는데 내일 정오쯤에 공이 돌아 올 것을 바랍니다.” 했다. 태사자가 응락하고 갔다. 여러 장군들이 말하기를 태사자가 여기를 떠나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자의는 곧 신의의 선비이니 반드시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하였으나 무리들은 모두 믿지 못하였다.

 

次日立竿於營門以候日影恰將日中太史慈引一千餘眾到寨孫策大喜眾皆服策之知人於是孫策聚數萬之眾下江東安民恤眾投者無數江東之民皆呼策為孫郎但聞孫郎兵至皆喪膽而走及策軍到並不許一人擄掠雞犬不驚人民皆悅齎牛酒到寨勞軍策以金帛答之懽聲遍野其劉繇舊軍願從軍者聽從不願為軍者給賞歸農江南之民無不仰頌由是兵勢大盛策乃迎母叔諸弟俱歸曲阿使弟孫權與周泰守宣城策領兵南取吳郡

다음 날 진영 문에 장대를 세우고 해의 그림자를 살폈다. 마침 해가 중천에 왔을 때 태사자가 천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영채에 이르렀다. 손책이 크게 기뻐하였다. 무리들이 모두 손책의 사람 알아보는 것에 탄복하였다. 이에 손책이 수 만의 무리를 모아 강동으로 내려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무리를 구휼하니 오는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강동의 백성들이 모두 손책을 불러 손랑이라 하였다. 다만 손랑의 군대가 이르렀다는 것을 들으면 모두 간담을 잃은 듯이 달아났다. 손책의 군대는 이르러도 한 사람도 노략질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닭과 개도 놀라지 않아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여 소와 술을 가지고 영채에 와서 군사를 위로하였다. 손책이 비단으로 보답하니 기뻐하는 소리가 들에 두루하였다. 유요의 옛 군대로 종군하기를 원하는 자는 따르게 하고, 군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상을 주어 농사를 짓게 하였다. 강남의 백성들이 우러러 칭송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군대의 세력이 크개 성대해졌다. 손책이 이에 어머니, 숙부, 여러 동생을 맞아 함께 곡아에 돌아가고, 동생 손권과 태수로 하여금 선성을 지키게 하였다. 손책이 군대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오군을 취하였다.

 

時有嚴白虎自稱東吳德王據吳郡遣部將守住烏程嘉興當日白虎聞策兵至令弟嚴輿出兵會於楓橋輿橫刀立馬於橋上有人報入中軍策便欲出張紘諫曰:「夫主將乃三軍之所繫命不宜輕敵小寇願將軍自重。」策謝曰:「先生之言如金石但恐不親冒矢石則將士不用命耳。」遂遣韓當出馬

그 때 엄백호가 있어서 자칭 동오 덕왕이라 하고, 오군에 근거하여 부장을 보내 오정, 가흥을 지키게 하였다. 그날 엄백호가 손책의 군대가 이르렀음을 듣고 동생 엄여로 하여금 군대를 내게 하였더니 풍교에서 만났다. 엄여가 칼을 빗겨들고 다리 위에 말을 세웠다. 어떤 사람들이 중군에 들어가 보고하니 손책이 곧 나가고자 하였다. 장굉이 간하여 말하기를 대저 주장은 곧 삼군의 운명이 걸린 바이니 가벼이 작은 도적을 대적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장군은 자중하시기 바랍니다.” 했다. 손책이 감사하며 말하기를 선생의 말은 금석과 같으나 다만 직접 화살과 돌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곧 장군과 사졸들이 명령을 쓰지 않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했다. 마침내 한당이 말을 타고 나가게 했다.


比及韓當到橋上時蔣欽陳武早駕小舟從河岸邊殺過橋來亂箭射倒岸上軍二人飛身上岸砍殺嚴輿退走韓當引軍直殺到閶門下賊退入城裏去了策分兵水陸並進圍住吳城一困三日無人出戰策引眾軍到閶門外招諭城上一員裨將左手托定護梁右手指著城下大罵太史慈就馬上拈弓取箭顧軍將曰:「看我射中這廝左手!」

한당이 다리 위에 이르렀을 때 장흠, 진무가 일찍이 작은 배를 타고 하의 강변으로부터 다리를 지나가면서 어지러이 화살을 쏘아 강변의 군사들을 거꾸러뜨리고 두 사람이 몸을 날려 강변에 올라 베어 죽이니 엄여가 물러나 달아났다. 한당이 군대를 이끌고 곧바로 창문 밖으로 쇄도하니 적이 물러나 성 안으로 들어갔다. 손책이 군대를 나누어 물과 뭍에서 나란히 나아가 오성을 포위하였다. 삼일을 곤궁하게 하여도 한 사람도 나와 싸우는 이가 없었다. 손책이 여러 군대를 이끌고 창문 밖에 이르러 불러 타이르니 성 위에서 한 명의 비장이 왼 손은 대들보를 잡아 고정하고 오른 손은 성 아래를 가리키면서 크게 욕하였다. 태사자가 말을 타고 나아가 활을 잡고 화살을 취하여 군사들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내가 화살을 쏘아 이놈의 왼손을 맞히는 것을 보라!” 했다.

 

說聲未絕弓弦響處果然射個正中把那將的左手射透反牢釘在護梁上城上城下見者無不喝采

말하는 소리가 끊어지기도 전에 활의 시위가 울렸는데 과연 쏜 화살이 적중하여 잡고 내민 왼손을 꿰뚫고 다시 못처럼 대들보 위에 박혔다. 성위와 성 아래에서 보는 자들이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다.


眾人救這人下城白虎大驚曰:「彼軍有如此人安能敵乎!」遂商量求和次日使嚴輿出城來見孫策策請輿入帳飲酒酒酣問輿曰:「令兄意欲如何?」輿曰:「欲與將軍平分江東。」策大怒曰:「鼠輩安敢與吾相等!」命斬嚴輿輿拔劍起身策飛劍砍之應手而倒割下首級令送入城中白虎料敵不過棄城而走

여러 사람들이 이 사람을 구원하여 성을 내려갔다. 엄백호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저들의 군대에 이 같은 사람이 있으니 어찌 대적할 수 있겠는가?”하고는 마침내 상의하여 화친을 구하였다. 다음 날 엄여로 하여금 성을 나가 손책을 보게 하였다. 손책이 엄여를 청하여 장막에 들어가 술을 마셨다. 술이 얼큰해지자 엄여에게 물어 말하기를 형은(그대는) 어떻게 하고자 합니까?”하니 엄여가 말하기를 장군과 고르게 강동을 나누고자 합니다.” 했다. 손책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쥐새끼 같은 놈 어찌 감히 나와 서로 같고자 하는가!”하고는 엄여의 목을 베게 하였다. 엄여가 검을 뽑으며 몸을 일으키니 손책이 검을 날려 그를 베고 손을 움직여 엎어놓고 머리를 베어 성안에 들여보내게 하였다. 엄백호가 대적할 수 없음을 헤아리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策進兵追襲黃蓋攻取嘉興太史慈攻取烏程數州皆平白虎奔餘杭於路劫掠被土人凌操領鄉人殺敗望會稽而走凌操父子二人來接孫策策使為從征校尉遂同引兵渡江嚴白虎聚寇分布於西津渡口程普與戰復大敗之連夜趕到會稽

손책이 군대를 진격시켜 추격하는데 황개는 가흥을 공격하여 취하였고, 태사자는 오정을 공격하여 취하니 여러 개의 주들이 모두 평정되었다. 엄백호가 여항으로 달아나는 길에 약탈을 하니 그 곳 사람 능조가 고향 사람들을 거느리고 죽이고 무너뜨리니 회계를 바라보고 달아났다. 능조 부자 두 사람이 와서 손책을 만나니 손책이 종정교위를 삼고, 마침내 같이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넜다. 엄백호가 도적을 모아 서진의 나루에 나누어 펼쳤다. 정보가 사워 다시 크게 무너뜨리고 밤중에 추격하여 회계에 이르렀다.

 

會稽太守王朗欲引兵救白虎忽一人出曰:「不可孫策用仁義之師白虎乃暴虐之眾還宜擒白虎以獻孫策。」朗視之乃會稽餘姚人姓虞名翻字仲翔見為郡吏朗怒叱之翻長歎而出朗遂引兵會合白虎同陳兵於山陰之野兩陣對圓孫策出馬謂王朗曰:「吾興仁義之兵來安浙江汝何故助賊?」朗罵曰:「汝貪心不足既得吳郡而又強併吾界今日特與嚴氏報讎!」

회계태수 왕랑이 군대를 이끌고 엄백호를 구원하고자 하였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손책은 인의의 군사를 쓰고, 엄백호는 포학한 무리들이니 도리어 마땅히 엄백호를 사로잡아 손책에게 바쳐야 합니다.” 했다. 왕랑이 그를 보니 곧 회계 여요 사람으로 성은 우이고, 이름은 번이며, 자는 중상이니 군의 관리였다. 왕랑이 노하여 그를 질책하니 우번이 탄식하고 나갔다. 왕랑이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엄백호와 만나 같이 산음의 들에 군대의 진을 쳤다. 두 진이 둥글게 대치하자 손책이 말을 타고 나가 왕랑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인의의 군대를 일으켜 와서 절강을 편안히 하려하는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도적을 돕는가?” 하니 왕랑이 욕하며 말하기를 너의 탐욕스러운 마음이 부족한가? 어찌하여 오군을 얻고서도 또한 억지로 나의 경계를 병탄하려 하는가? 오늘 특히 엄씨와 원수를 갚을 것이다!” 했다.


孫策大怒正待交戰太史慈早出王朗拍馬舞刀與慈戰不數合朗將周昕殺出助戰孫策陣中黃蓋飛馬接住周昕交鋒兩下鼓聲大震互相鏖戰忽王朗陣後先亂一彪軍從背後抄朗大驚急回馬來迎原來是周瑜與程普引軍刺斜殺來前後來攻王朗寡不敵眾與白虎周昕殺條血路走入城中起弔橋堅閉城門

손책이 크게 노하여 바로 교전하려는데 태사자가 재빨리 나왔다. 왕랑이 말을 박차고 칼춤을 추면서 태사자와 싸웠다. 몇 합되지 않아 낭장 주주흔이 쇄도해 나와 싸움을 도왔다. 손책의 진중에서 황개가 날듯이 말을 타고 나와 주흔을 막고 싸웠다. 두 부대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자 서로 크게 싸웠다. 갑자기 왕랑의 진 뒤가 먼저 혼란해지면서 한 떼의 군마가 뒤로부터 치고 왔다. 왕랑이 크게 놀라 급히 말을 돌려 와서 맞이하였다. 원래 주유와 정보가 군대를 이끌고 측면을 찌르면서 쇄도해 앞뒤에서 공격하였다. 왕랑이 적은 수로 많은 수를 대적하지 못하고 엄백호, 주흔과 혈로를 열고 달아나 성안에 들어가고 조교를 올리고 굳게 성문을 닫았다.

 

孫策大軍乘勢趕到城下分布眾軍四門攻打王朗在城中見孫策攻城甚急欲再出兵決一死戰嚴白虎曰:「孫策兵勢甚大足下只宜深溝高壘堅壁勿出不消一月彼軍糧盡自然退走那時乘虛掩之可不戰而破也。」朗依其議乃固守會稽城而不出

손채긔 대군이 형세를 타고 쫓아 성 아래에 이르러 여러 군대를 나누어 펴고 네 성문을 쳤다. 왕랑이 성 안에 있으면서 손책이 성을 공격하기를 매우 급하게 하는 것을 보고 다시 군대를 내어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하였다. 엄백호가 말하기를 손책 군대의 형세가 매우 큰데 그대는 마땅히 도랑(해자)를 깊게하고, 보루를 높게하며 성벽을 견고하게 하여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들의 군대는 식량이 다하여 저절로 물러나 달아났다. 그 때 빈틈을 타서 그들을 업습하면 싸우지 않아도 깨트릴 수 있습니다.” 하니 왕랑이 그 의논에 의지하여 굳게 회계성을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孫策一連攻了數日不能成功乃與眾將計議孫靜曰:「王朗負固守城難可卒拔會稽錢糧大半屯於查其地離此數十里莫若以兵先據其內所謂攻其無備出其不意也。」策大喜曰:「叔父妙用足破賊人矣!」即下令於各門燃火虛張旗號設為疑兵連夜撤圍南去周瑜進曰:「主公大兵一起王朗必然出城來趕可用奇兵勝之。」策曰:「吾今準備了取城只在今夜。」遂令軍馬起行

손책이 계속하여 여러 날을 공격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자 이에 여러 장군들과 계책을 의논하였다. 손정이 말하기를 왕랑이 성을 굳게 지키므로 갑자기 함락시키기 어렵고, 회계는 돈과 양식의 태반을 사독에 두었는데 그 땅은 여기서 수십 리 떨어져 있으니 군대를 가지고 먼저 그 안을 근거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른 바 그 대비가 없는 것을 공격하고, 생각하지 못한 데로 나오는 것입니다.” 했다. 손책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숙부의 신묘한 계책이면 충분히 도적들을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하고는 곧 명령을 내려 각 문에 불을 놓도록 하고, 거짓으로 깃발을 벌려 세워 거짓 군대로 삼고, 밤에 포위를 풀고 남쪽으로 가게 했다. 주유가 나아가면서 말하기를 주공이 큰 군대를 한꺼번에 일으키면 왕랑이 반드시 성을 나와 쫓아 올 것이니 기습하는 군대를 쓰면 이길 수 있습니다.”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준비해 두었으니 오늘 밤에 성을 취할 것이다.” 했다. 마침내 군마를 일으켜 가게 하였다.

 

卻說王朗聞報孫策軍馬退去自引眾人來敵樓上觀望見城下煙火併起旌旗不雜心下遲疑周昕曰:「孫策走矣特設此計以疑我耳可出兵襲之。」嚴白虎曰:「孫策此去莫非要去查瀆我令部兵與周將軍追之。」朗曰:「查瀆是我屯糧之所正須隄防汝引兵先行吾隨後接應。」白虎與周昕領五千兵出城追趕將近初更離城二十餘里忽密林裏一鼓響火把齊明白虎大驚便勒馬回走一將當先攔住火光中視之乃孫策也周昕舞刀來迎被策一鎗刺死餘眾皆降白虎殺條血路望餘杭而走

각설하고 왕랑이 손책의 군마가 물러난다는 보고를 듣고 스스로 무리들을 이끌고 와서 적을 성루 위에서 바라보았는데 성 아래에서 연기와 불이 나란히 일어나고 깃발이 섞이지 않으니 마음속에 늦게 의심이 들었다. 주흔이 말하기를 손책이 달아나면서 특히 이 계책을 베푸는 것으로서 우리를 의심하게 할 뿐입니다. 군대를 내어 습격할 만합니다.”했다. 엄백호가 말하기를 손책이 여기를 떠났으니 사독으로 갔을 것입니다. 내가 부하 군사들과 주장군으로 하여금 추격하게 할 것입니다.” 했다. 왕랑이 말하기를 사독은 우리의 양식을 저장한 곳이니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네가 군대를 이끌고 먼저 가면 내가 뒤를 따라 응원할 것입니다.”했다. 엄백호와 주흔이 오천의 군대를 거느리고 성을 나와 추격하였다. 거의 초경 무렵 성을 나와 이십여리 정도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밀림 속에서 일제히 북소리가 울리고, 불이 일제히 밝아졌다. 엄백호가 크게 놀라 말의 굴레를 당겨 돌아 달아났다. 한 장군이 선두에 서서 막는 것이 불꽃 중에 보였는데 곧 손책이었다. 주흔이 칼춤을 추면서 와서 맞이하였는데 손책의 한 창에 찔려 죽었다. 남은 무리들이 모두 항복하였다. 엄백호가 혈로를 뚫고 여항을 바라고 달아났다.

 

王朗聽知前軍已敗不敢入城引部下奔逃海隅去了孫策復回大軍乘勢取了城池安定人民不隔一日只見一人將著嚴白虎首級來孫策軍前投獻策視其人身長八尺面方口闊問其姓名乃會稽餘姚人姓董名襲字元代策喜命為別部司馬自是東路皆平令叔孫靜守之令朱治為吳郡太守收軍回江東

왕랑이 앞선 군대가 이미 패하였다는 것을 듣고 알아서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하를 이끌고 바닷가 구석으로 도망하였다. 손책이 다시 대군을 돌려 형세를 타고 성지를 취하고, 백성들을 안정시켰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의 장군이 엄백호의 수급을 가지고 와서 손책의 군대 앞에 나아가 바쳤다. 소책이 그 사람을 보니 키가 팔척이고, 얼굴은 네모나고 입은 넓었다, 그 성명을 물으니 곧 회계 여조 사람인데 성은 동이고, 이름은 습이며, 자는 원대입니다. 손책이 기뻐하며 명하여 별부사마를 삼았다. 이로부터 동쪽 방면이 모두 평정되고, 숙부 손정을 시켜 그것을 지키게 하고, 주치로 하여금 오군태수를 삼은 후 군대를 거두어 강동으로 돌아갔다.


卻說孫權與周泰守宣城忽山賊竊發四面殺至時值更深不及抵敵泰抱權上馬賊用刀來砍泰赤體步行提刀殺賊砍殺十餘人隨後一賊躍馬挺鎗直取周泰被泰扯住下馬來奪了鎗馬殺條血路救出孫權餘賊遠遁周泰身被十二鎗金瘡發脹命在須臾

각설하고 손권과 주태가 선성을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산적이 강도질하며 사방에서 쇄도해 이르렀다. 그 때 마침 밤이 깊었는데 적을 막을 수 없자 주태가 손권을 안고 말에 몰랐다. 도적이 칼을 쓰고 와서 베었다. 주태가 알몸으로 걸어가면서 칼을 가지고 적에게 쇄도하여 십여 명을 베어 죽였다. 뒤를 따르던 한 도적이 말을 달려오면서 창으로 찔러 곧바로 주태를 취하려하니 주태가 창을 붙잡고 말 아래로 끌어내려 창과 말을 빼앗고 혈로를 뚫어 손권을 구출하였다. 나머지 도적들이 멀리 달아났다. 주태의 몸은 열 두 번의 창에 찔리고, 칼과 창에 베인 상처가 부풀어서(터져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다.

 

策聞之大驚帳下董襲曰:「某曾與海寇相持身遭數鎗得會稽一個賢郡吏虞翻薦一醫者半月而愈。」策曰:「虞翻莫非虞仲翔乎?」襲曰:「。」策曰:「此賢士也我當用之。」乃令張昭與董襲同往聘請虞翻翻至策優禮相待拜為功曹因言及求醫之意翻曰:「此人乃沛國譙郡人姓華名佗字元化真當世之神醫也當引之來見。」

손책이 그것을 듣고 크게 놀랐다. 부하 동습이 말하기를 제가 일찍이 바다의 도적과 서로 대치하였을 때 몸에 여러 번 창에 찔렸는데 회계 땅의 일개 어진 군리 우번이 추천한 의사를 얻어 반 개월 만에 나았습니다.”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우번은 혹 우중상이 아닌가?”하니 동습이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이는 어진 선비이다. 내가 마땅히 그를 등용할 것이다.”하고는 곧 장소와 동습으로 하여금 같이 가서 우번을 초빙하게 하였다. 우번이 이르자 손책이 좋은 예로 대우하고 공조를 삼고, 말이 의사를 구함의 뜻에 미쳤다. 우번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곧 패국 초군 사람으로 성은 황이고, 미름은 타이며 자는 원화입니다. 참으로 지금 세상의 신묘한 의사입니다. 마땅히 인도하여 와서 뵈어야 합니다.” 했다.


不一日引至策見其人童顏鶴髮飄然有出世之姿乃待為上賓請視周泰瘡佗曰:「此易事耳。」投之以藥一月而愈策大喜厚謝華佗遂進兵殺除山賊江南皆平孫策分撥將士守把各處隘口一面寫表申奏朝廷一面結交曹操一面使人致書與袁術取玉璽

하루가 지나지 않아 인도하여 이르렀다. 손책이 그 사람을 보니 동안에 학의 털(흰색)이며 표연하여 세상을 벗어난 자태였다. 이에 최고의 손으로 대우하여 주태의 상처를 보기를 청하였다. 화타가 말하기를 이는 쉬운 일일뿐입니다.”하고는 약을 주었는데 한 달만에 나았다. 손책이 크게 기뻐하여 화타에게 두텁게 사례하였다. 마침내 군대를 나아가게 하여 산적을 없앴다. 강남이 모두 평정되었다. 손책이 장수와 선비를 나누어 각 처의 요충지를 지키게 하였다. 한편으로 표를 써서 조정에 이뢰고, 한편으로 조조와 교류를 맺고,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글을 가지고 원술에게 주어 옥쇄를 취하게 하였다.

 

卻說袁術暗有稱帝之心乃回書推託不還急聚長史楊大將都督張勳紀靈橋蕤上將雷薄陳蘭等三十餘人商議曰:「孫策借我軍馬起事今日盡得江東地面乃不思報本而反來索璽殊為無禮當以何策圖之?」長史楊大將曰:「孫策據長江之險兵精糧廣未可圖也今當先伐劉備以報前日無故相攻之恨然後圖取孫策未遲某獻一計使備即日就擒。」正是

각설하고 원술이 몰래 황제를 칭하려는 마음이 있어 이에 돌려주지 못한다고 답장하고, 급히 장사 양대장, 도독 장훈, 기령, 교유, 상장 뇌박, 진란 등 삼십여 명과 상의하여 말하기를 손책이 나의 군마를 빌려 일을 일으키고, 오늘 강동의 땅을 모두 얻었으면서도 보답할 생객을 하지 않고 도리어 와서 옥쇄를 찾으니 매우 예가 없는 것이다. 손책을 어떻게 도모하는 것이 마땅하겠는가?”하니 장사 양대장이 말하기를 손책은 장강의 험한 곳을 점거하고 군대는 정예롭고 양식은 많으니 도모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마땅히 먼저 유비를 치는 것으로서 전 날 일없이 서로 공격한 한을 갚은 후에 손책을 도모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제가 한 계책을 올리니 유비는 즉시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했다.


不去江東圖虎豹卻來徐郡鬥蛟龍不知其計若何且看下文分解

강동에가서 범과 표범을 도모하지 않고 도리어 서군에 가서 교룡과 싸우려 하는구나. 그 계책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겠구나.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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