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七回:袁公路大起七軍,曹孟德會合三將
제17회 원공로가 크게 칠군을 일으키고, 조맹덕은 세 장군과 회합하다
卻說袁術在淮南,地廣糧多,又有孫策所質玉璽,遂思僭稱帝號;大會群下議曰:「昔漢高祖不過泗上一亭長,而有天下;今歷年四百,氣數已盡,海內鼎沸。吾家四世三公,百姓所歸;吾欲應天順人,正位九五,爾眾人以為如何?」主簿閻象曰:「不可。昔周后稷積德累功,至於文王,三分天下有其二,猶以服事殷。明公家世雖貴,未若有周之盛;漢室雖微,未若殷紂之暴也。此事決不可行。」術怒曰:「吾袁姓出於陳。陳乃大舜之後。以土承火,正應其運。又讖云:「代漢者,當塗高也。」吾字公路,正應其讖。又有傳國玉璽,若不為君,背天道也。吾意已決,多言者斬!」
각설하고 원술이 회남에 있었는데 땅이 넓고 식량이 많았으며, 또한 손책이 저당잡힌 옥쇄를 소유하여 마침내 황제의 칭호를 참칭할 것을 생각하고, 크게 여럿이 모여 의논할 때 말하기를 “ 옛날 한 고조는 사상의 일개 정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천하를 소유하여 지금 사백여 년을 지나 기운과 운수가 이미 다하여 천하가 솥에 물이 끓는 듯하다. 우리 가문은 사 세대에 삼공을 배출하여 백성이 귀의한 바이다. 내가 하늘에 응하고 사람을 따라 바로 구오(임금)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여기는가?” 했다. 주부 염상이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옛날 주나라 후직은 덕을 쌓아 여러 번 공을 세워 문왕에 이르러 셋으로 나뉜 천하 중에서 그 둘을 소유하였지만 오히려 은 나라에 복종하여 섬겼습니다. 명공께서는 가문이 비록 대대로 비록 귀하였지만 주나라의 성대함보다는 못함이 있고, 한 나라가 비록 쇠미해졌으나 아직 은나라 주왕의 사나움보다는 못합니다. 이 일은 결단코 행해서는 안 됩니다.” 했다. 원술이 노하여 말하기를 “우리 원씨 성은 陳나라에서 나왔다. 진나라는 대순의 후예이다. 토의 덕으로 불의 덕을 이었으니 바로 그 운수에 응한 것이다. 또한 도참에 말하기를 ‘한 나라를 대신하는 자는 응당 塗高이다.’ 하였는데 나의 자가 公路이니 바로 그 도참과 부합한다. 또 나라를 전하는 옥쇄를 소유하였는데도 만약 임금이 되지 않는다면 천도를 배반하는 것이다. 나의 뜻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말이 많은 자는 머리를 베어 죽일 것이다!” 했다.
遂建號仲氏,立臺省等官,乘龍鳳輦,祀南北郊,立馮方女為后,立子為東宮。因命使催取呂布之女為東宮妃。卻聞布已將韓胤解赴許都,為曹操所斬,乃大怒;遂拜張勳為大將軍,統領大軍二十餘萬,分七路征徐州:第一路大將張勳居中,第二路上將橋蕤居左,第三路上將陳紀居右,第四路副將雷薄居左,第五路副將陳蘭居右,第六路降將韓暹居左,第七路降將楊奉居右。各領部下健將,﹝左克右寸﹞日起行。命兗州刺史金尚為太尉,監運七路錢糧。尚不從,術殺之,以紀靈為七路都救應使。術自引軍三萬,使李豐、梁剛、樂就為催進使,接應七路之兵。
마침내 중씨의 호를 세우고, 대, 성 등의 관직을 세우며, 용봉연을 타고, 남북에서 천지에 교사를 지내며 풍방의 딸을 세워 후라 하고, 아들을 세워 동궁(태자)을 삼았다. 인하여 사자에게 명하여 여포의 딸을 취하여 동궁의 비로 삼을 것을 재촉하게 하였다. 그러나 여포가 이미 한윤을 잡아 허도에 압송하여 조조에게 죽음을 당하였다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마침내 장훈을 대장군으로 삼아 대군 이십여 만을 통솔하여 일곱개 길로 나누어 서주를 정벌하게 하였다. 제 일로는 대장군 장훈이 가운데 있고, 제 이로는 상장군 교유가 왼쪽에 있었다. 제 삼로는 상장군 진기가 오른 쪽에 있고, 제 사로는 부장군 뇌박이 왼쪽에 있고, 제 오로는 부장군 진란이 오른 쪽에 있고, 제 육로는 강장군 한 섬이 왼쪽에 있고, 제 칠로는 강장군 양봉이 오른 쪽에 있었다. 각각 부하 건장을 거느리고 정해진 기일에 군대를 일으켜 행군하였다. 연주자사 김상을 명하여 태위로 삼고, 칠로의 돈과 곡식 운반을 감독하게 하였다. 김상이 따르지 않으니 원술이 죽이고 기령으로서 칠로도구응사를 삼았다. 원술이 스스로 군대 삼만을 이끌고 이풍, 양강, 악취로 하여금 최진사로 삼아 칠로의 군대에 호응하여 행동하게 하였다.
呂布使人探聽得張勳一軍從大路逕取徐州,橋蕤一軍取小沛,陳紀一軍取沂都,雷薄一軍取瑯琊,陳蘭一軍取碣石,韓暹一軍取下邳,楊奉一軍取浚山,七路軍馬,日行五十里,於路劫掠將來,乃急召眾謀士商議,陳宮與陳珪父子俱至。陳宮曰:「徐州之禍,乃陳珪父子所招;媚朝廷以求爵祿,今日移禍於將軍,可斬二人之頭獻袁術,其軍自退。」
여포가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장훈의 일군은 대로를 따라 곧장 서주를 취하려하고, 교유의 일군은 소패를 취하려 하고, 진기의 일군은 기도를 취하려하고, 뇌박의 일군은 낭야를 취하려하고, 진란의 일군은 갈석을 취하려하고, 한섬의 일군은 하비를 취하려하고, 양봉의 일군은 준산을 취하려하였다. 일곱 길의 군마가 매일 오십 리를 행군하면서 길에서 약탈하니 이에 급히 여러 모사를 불러 상의하는데 진궁과 진규 부자도 같이 이르렀다. 진궁이 말하기를 “서주의 재앙은 곧 진규 부자가 불러 온 것입니다. 조정에 아첨하여 작록을 구하다 오늘 장군에게 재앙이 옮겨졌으니 두 사람의 머리를 베어 원술에게 바치면 그 군대가 저절로 물러갈 것입니다.” 했다.
布聽其言,即命擒下陳珪、陳登。陳登大笑曰:「何如是之懦也?吾觀七路之兵,如七堆腐草,何足介意!」布曰:「汝若有計破敵,免汝死罪。」陳登曰:「將軍若用愚夫之言,徐州可保無虞。」布曰:「試言之。」登曰:「術兵雖眾,皆烏合之師,素不親信;我以正兵守之,出奇兵勝之,無不成功。更有一計,不止保安徐州,並可生擒袁術。」布曰:「計將安出?」登曰:「韓暹、楊奉乃漢舊臣,因懼曹操而走,無家可依,暫歸袁術;術必輕之,彼亦不樂為術用。若憑尺書結為內應,更連劉備為外合,必擒袁術矣。」布曰:「汝須親到韓暹、楊奉處下書。」陳登允諾。
여포가 그 말을 듣고 곧 진규와 진등을 잡아오라고 명령하였다. 진등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리도 나약합니까? 내가 칠로의 군대를 보니 일곱 개의 썩은 풀을 쌓은 듯하니 무엇을 개의하리오!”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네가 만약 적을 깨트릴 계책이 있다면 너의 죽을죄를 면할 것이다.” 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장군이 만약 나의 말을 쓴다면 서주를 보존하는데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시험삼아 말해 보라” 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원술의 군대가 비록 많으나 모두 오합의 무리인지라 평소 친하고 신의가 없어 우리의 정병으로 지키고, 기병을 내어 이기면 공을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다시 한 계책이 있으니 서주를 지키고 편안하게 할뿐만 아니라 아울러 원술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계책은 장차 어디에서 나오는가?”하니 진등이 말하기를 “한섬과 양봉은 곧 한 나라의 옛 신하로 조조를 두려워하여 달아났으나 의지할만한 집이 없어 잠시 원술에게 의지한 것입니다. 원술이 반드시 그들을 가볍게 대우하고, 그들 또한 원술에게 쓰여지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글을 써서 내응하게 하고, 다시 유비와 연결하여 밖에서 합세하면 반드시 원술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직접 한섬, 양봉이 있는데 이르러 글을 내리도록 하라.”하니 진등이 수락하였다.
布乃發表上許都,並致書與豫州,然後令陳登引數騎,先於下邳道上候韓暹。暹引兵至,下寨畢,登入見。暹問曰:「汝乃呂布之人,來此何幹?」登笑曰:「某為大漢公卿,何謂呂布之人?若將軍,向為漢臣,今乃為叛賊之臣,使昔日關中保駕之功,化為烏有,竊為將軍不取也。且袁術性最多疑,將軍後必為其所害。今不早圖,悔之無及。」暹歎曰:「吾欲歸漢,恨無門耳。」登乃出布書。暹覽書畢曰:「吾已知之。公先回。吾與楊將軍反戈擊之。但看火起為號,溫侯以兵相應可也。」
여포가 허도에 표를 올리고 아울러 글을 써서 예주에 준 후 진등으로 하여금 몇 기를 이끌고 먼저 하비로 가는 길 위에서 한섬을 기다리게 하였다. 한섬이 군대를 이끌고 이르러 영채 설치를 마치자 진등이 들어가 만났다. 한섬이 물어 말하기를 “너는 곧 여포의 사람인데 여기에 온 것은 무슨 상관이 있는가?”했다. 진등이 웃으며 말하기를 “저는 대한의 공경이 되는데 어찌하여 여포의 사람이라 합니까? 만약 장군이 옛날에는 한나라 신하였다가 지금 곧 반적의 신하가 된 것은 옛날 관중에서 천자의 수레를 보호한 공이 변화하여 없어짐이 될 것이니 제 생각으로는 장군이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원술의 성품은 의심이 매우 많으니 장군은 후에 반드시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지금 빨리 도모하지 않는다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한섬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한나라로 돌아가고자 하여도 문이 없음을 한 하였을 뿐입니다.”하였다. 진등이 곧 여포의 글을 내어 주었다. 한섬이 글을 살펴보기를 마치고 말하기를 “내가 이미 그것을 알았으니 공은 먼저 돌아가시오. 나는 양봉장군과 창을 돌이켜 그를 칠 것입니다. 다만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신호로 삼아 온후(여포)께서 군대로서 서로 응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했다.
登辭暹,急回報呂布。布乃分兵五路:高順引一軍進小沛,敵橋蕤;陳宮引一軍進沂都,敵陳紀;張遼、臧霸引一軍出瑯琊,敵雷薄;宋憲、魏續引一軍出碣石,敵陳蘭;呂布自引一軍,出大道,敵張勳。各領軍一萬,餘者守城。呂布出城三十里下寨。張勳軍到,料敵呂布不過,且退二十里屯住,待四下兵接應。
진등이 한섬을 하직하고 급히 돌아가 여포에게 보고하였다. 여포가 곧 군대를 다섯 길로 나누었는데 고순은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소패로 나아가 교유를 대적하고, 진궁은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근도로 나아가 진기를 대적하고, 장요, 장패는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낭야를 나와 뇌박을 대적하고, 송헌, 위속은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갈석을 나와 진란을 대적하고, 여포는 스스로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대도를 나와 장훈을 대적하였다. 각각 군대 일만을 거느리고 나머지는 성을 지켰다. 여포가 성을 나와 삼십 리를 가서 영채를 세웠다. 장훈의 군대가 이르러 여포를 대적하여 지나가지 못할 것을 헤아리고는 또한 이십 리를 물러나 주둔하고 사방의 군대가 호응하여 행동하기를 기다렸다.
是夜二更時分,韓暹、楊奉,分兵到處放火,接應呂家軍入寨。勳軍大亂。呂布乘勢掩殺,張勳敗走。呂布趕到天明,正撞著紀靈接應。兩軍相迎,恰待交鋒,韓暹、楊奉兩路殺來。紀靈大敗而走,呂布引兵追殺,山後一彪軍到。門旗開處,只見一隊軍馬,打龍鳳日月旗旛,四斗五方旌幟,金瓜銀斧,黃銊白旄,黃羅銷金傘蓋之下,袁術身披金甲,腕懸兩刀,立於陣前,大罵呂布:「背主家奴!」
이 때 이경 쯤 한섬, 양봉이 군대를 나누어 도처에 불을 놓으니 여포의 군대가 호응하여 영채에 들어갔다. 장군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여포가 형세를 타고 덥쳐 죽이니 장훈이 패하여 달아났다. 여포가 뒤쫓아 가다 날이 밝았는데 바로 기령이 호응하는 것을 만났다. 두 군대가 서로 맞이하여 막 교전하려 하는데 한섬, 양봉이 두 길로 쇄도해 왔다. 기령이 크게 패하여 달아나니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여 죽이는데 산 뒤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이르렀다. 문 기가 열린 곳에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나 용봉일월 깃발과 사두오방정기, 금과은부, 황월백기, 황라초금산개의 아래에서부터 원술이 몸에 금빛 갑옷을 입은 채 칼 두 자루를 차고 진 앞에 서서 크게 여포를 꾸짖기를 “주인집을 배반한 종놈아!” 했다.
布怒,挺戟向前。術將李豐挺鎗來迎;戰不三合,被布刺傷其手,豐棄鎗而走。呂布麾兵衝殺,術軍大亂。呂布引軍從後追趕,搶奪馬匹衣甲無數。袁術引著敗軍,走不上數里,山背後一彪軍出,截住去路。當先一將,乃關雲長也。大叫:「反賊!還不受死!」袁術慌走,餘眾四散奔逃,被雲長大殺了一陣。袁術收拾敗軍,奔回淮南去了。
여포가 노하여 극을 잡고 앞을 향하였다. 원술이 이풍을 거느리고 창을 잡고 나와 맞이하였다. 싸운 지 세 합이 되지 않아 여포에게 찔려 그 손을 다치자 이풍이 창을 버리고 달아났다. 여포가 군대를 지휘하여 들이치니 원술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뒤를 따라 추격하여 빼앗은 말과 갑옷이 헤아릴 수 없었다. 원술이 패한 군대를 이끌고 달아나 몇 리가지 못하여 산 뒤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나와 가는 길을 막았다. 앞에 선 한 장수는 곧 관운장이었다. 크게 외치기를 “반적아! 아직도 죽지 않았는가!” 하였다. 원술이 황망히 달아나자 나머지 무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였는데 관운장이 크게 한 무리를 죽였다. 원술이 패한 군대를 수습하여 달아나 회남으로 돌아갔다.
呂布得勝,邀請雲長並楊奉、韓暹等一行人馬到徐州,大排筵宴款待。軍士都有犒賞。次日,雲長辭歸。布保韓暹為沂都牧。楊奉為瑯琊牧,商議欲留二人在徐州。陳珪曰:「不可。韓、楊二人據山東。不出一年,則山東城郭皆屬將軍也。」布然之,遂送二將暫於沂都、瑯琊二處屯﹝左答右刀﹞,以候恩命。陳登私問父曰:「何不留二人在徐州,為殺呂布之根?」珪曰:「倘二人協助呂布,是反為虎添爪牙也。」登乃服父之高見。
여포가 이기고 나서 관운장, 양봉, 한섬 등 일행을 맞아 청하여 서주에 이르러 크게 잔치를 열고 정성껏 대우하였다. 군사들 모두에게 공로를 상 주었다. 다음 날 관운장이 하직하고 돌아갔다. 여포가 한섬을 지켜 기도목으로 삼았다. 양봉은 낭야목으로 삼고, 상의하여 두 사람을 서주에 머물게 하고자 하였다. 진규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한섬과 양봉 두 사람이 산동에 웅거하면 일년이 지나지 않아서 곧 산동의 성곽이 모두 장군에게 속하게 될 것입니다.” 했다. 여포가 그렇다하고, 마침내 두 장군을 보내 잠시 근도, 낭야 두 곳에 주둔하여 은혜로운 명을 기다리게 하였다. 진등이 사사로이 아버지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찌하여 두 사람을 머무르게 하여 서주에 두고 여포를 죽이는 근본을 삼지 않습니까?”하니 진규가 말하기를 “만약 두 사람이 여포에게 협조하면 이는 도리어 범에게 발톱과 이빨을 더하는 것이 된다.”하니 진등이 곧 아버지의 훌륭한 견해에 복종하였다.
卻說袁術敗回淮南,遣人往江東問孫策借兵報讎。策怒曰:「汝賴吾玉璽,僭稱帝號,背反漢室,大逆不道!吾方欲加兵問罪,豈肯反助叛賊乎?」遂作書以絕之。使者齎書回見袁術,術看畢,怒曰:「黃口孺子,何敢乃爾!吾先伐之!」長史楊大將力諫方止。
각설하고 원술이 패하고 회남으로 돌아가 사람을 보내 강동의 손책에게 가서 군대를 빌려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손책이 모하여 말하기를 “너는 내 옥쇄에 의지하고 황제의 칭호를 참칭하여 한나라를 배반하였으니 대역부도하구나! 내가 바야흐로 군대를 더하여 죄를 물으려는데 어떻게 즐겨 도리어 반적을 돕겠는가?” 했다. 마침내 글을 지어 거절하였다. 사자가 글을 가지고 돌아와 원술에게 보이니 원술이 보기를 마치고 노하여 말하기를 “어린아이가 어찌 감히 이렇다 말인가! 내가 먼저 그를 칠 것이다!” 하니 장사 양대장이 힘껏 간하여 그만두었다.
卻說孫策自發書後,防袁術兵來,點軍守住江口。忽曹操使至,拜策為會稽太守,令起兵征討袁術。策乃商議,便欲起兵。長史張昭曰:「術雖新敗,兵多糧足,未可輕敵;不如遺書曹操,勸他南征,吾為後應。兩軍相援,術軍必敗。萬一有失,亦望操救援。」策從其言,遣使以此意達曹操。
각설하고 손책이 글을 보낸 후로부터 원술의 군대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군대를 점검하여 강구를 지키며 주둔하였다. 갑자기 조조의 사자가 이르러 손책에게 벼슬을 주어 회계태수로 삼고, 군대를 일으켜 원술을 정토할 것을 명령하였다. 손책이 이에 상의하여 곧 군대를 일으키려 하였다. 장사 장소가 말하기를 “원술이 비록 패하였으나 군대가 많고, 양식이 충분하니 가벼이 대적할 수 없습니다. 조조에게 글을 보내 다른 이(조조)가 남쪽으로 정벌하면, 내가 후에 호응한다 하는 것이 낫습니다. 두 군대가 서로 도우면 원술의 군대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만일 잘못됨이 있어도 또한 조조의 구원을 바랄 수 있습니다.” 했다. 손책이 그 말을 따라 사자를 보내 이런 뜻을 조조에게 전달하였다.
卻說曹操至許都,思慕典韋,立祀祭之;封其子典滿為中郎,收養在府。忽報孫策遣使致書。操覽書畢,又有人報袁術乏糧,劫掠陳留,欲乘虛攻之。遂興兵南征,令曹仁守許都,其餘皆從征,馬步兵十七萬,糧食輜重千餘車;一面先發人會合孫策與劉備、呂布。
각설하고 조조가 허도에 이르러 전위를 추모하여 제사하고 그 아들 전만을 봉하여 중랑을 삼고 거두어 기르며 부에 있게 하였다. 갑자기 손책이 보낸 사자가 글을 가지고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조조가 글을 살펴보기를 마쳤을 때 또 어떤 사람이 보고하기를 원술이 식량이 부족하여 진류를 약탈하고, 빈틈을 타서 공격하려 한다고 했다. 마침내 (조조)가 군대를 일으켜 남쪽으로 정벌가면서 조인으로 하여금 허도를 지키게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정벌을 따르게 하였는데 기병과 보병 십칠만 명, 군량과 군수품 천여 수레였고, 한편으로 먼저 사람을 출발시켜 손책, 유비, 여포와 회합하게 하였다.
兵至豫章界上,玄德早引兵來迎,操命請入營。相見畢,玄德獻上首級二顆。操驚曰:「此是何人首級?」玄德曰:「此韓暹、楊奉之首級也。」操曰:「何以得之?」玄德曰:「呂布令二人權住沂都、瑯琊兩縣,不意二人縱兵掠民,人人嗟怨;因此備乃設一宴,詐請議事;飲酒間,擲盞為號,使關、張二弟殺之,盡降其眾。今特來請罪。」操曰:「君為國家除害,正是大功,何言罪也?」
군대가 예장의 경계에 이르니 유현덕이 일찍 군대를 이끌고 와서 영접하였는데 조조가 진영에 들어오기를 청하였다. 서로 예를 마치니 유현덕이 수급 두 개를 올렸다. 조조가 놀라 말하기를 “이는 누구의 수급입니까?”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는 한섬, 양봉의 수급입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어떻게 수급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여포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임시로 근도, 낭야 두 현에 있게 하였는데 불의에 두 사람이 군대를 풀어 백성을 약탈하니 사람들마다 원망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한 번 잔치를 열어 일을 의논할 속이고 청하였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이에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삼아 관우, 장비 두 형제로 하여금 그를 죽이게 하였더니 그 무리들이 모두 항복하였습니다. 지금 특히 와서 죄를 청합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대가 국가를 위해 해를 없앴으니 바로 이는 큰 공을 세운 것인데 어찌 죄를 말하는가?” 했다.
遂厚勞玄德,合兵到徐州界。呂布出迎、操善言撫慰,封為左將軍,許於還都之時,換給印綬。布大喜。操即分呂布一軍在左,玄德一軍在右,自統大軍居中,令夏侯惇、于禁為先鋒。
마침내 후하게 유현덕을 위로하고 군대를 합하여 서주의 경계에 이르렀다. 여포가 나와 맞으니 조조가 좋은 말로 위로하고 봉하여 좌장군으로 삼고, 도읍에 돌아갔을 때 인수를 준다고 하였다. 여포가 크게 기뻐하였다. 조조가 곧 여포의 일군을 나누어 왼쪽에 있게 하고, 유현덕의 일군을 오른 쪽에 있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통솔하여 중간에 있으면서 하후돈, 우금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였다.
袁術知曹兵至,令大將橋蕤引兵五萬作先鋒。兩軍會於壽春界口。橋蕤當先出馬,與夏侯惇戰不三合,被夏侯惇搠死。術軍大敗,奔走回城。忽報孫策發船攻江邊西面,呂布引兵攻東面,劉備、關、張引兵攻南面,操自引兵十七萬攻北面。術大驚,急聚眾文武商議。楊大將曰:「壽春水旱連年,人皆缺食;今又動兵擾民,民既生怨,兵至難以拒敵。不如留軍在壽春,不必與戰。待彼糧盡,必然生變。陛下且統御林軍渡淮;一者就熟,二者暫避其銳。」
원술이 조조의 군대가 이르는 것을 알고 대장 교유로 하여금 군대 오만을 이끌고 선봉이 되게 하였다. 두 군대가 수춘의 경계에서 만났다. 교유가 먼저 말을 타고 나가 하후돈과 싸운 지 삼합이 되지 않아 하후돈에게 찔려 죽었다. 원술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분주히 달아나 성으로 돌아갔다. 그 때 손책이 군대를 내어 강변 서쪽을 공격하고,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동쪽을 공격하고, 유비, 관운장, 잡비가 군대를 이끌고 남족을 공격하고 조조는 군대 십칠만을 거느리고 북쪽을 공격한다고 보고하였다. 원술이 크게 놀라 급히 무리를 모으고 문무관과 상의하였다. 양대장이 말하기를 “수춘은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들어 사람이 모두 먹는 식량이 부족한데 지금 또 군대를 동원하고, 백성을 소란스럽게 하여 백성들에게 이미 원망이 생겨나 군대가 이르러도 적에게 대항하기 어렵습니다. 군대를 수춘에 머물러 있으면서 반드시 싸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저들의 식량이 다하기를 기다리면 반드시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또한 어림군을 통솔하여 회수를 건너십시오, 하나는 익숙함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둘째는 잠시 그 날카로움을 피하는 것입니다.” 했다.
術用其言,留李豐、樂就、梁剛、陳紀四人,分兵十萬,堅守壽春;其餘將卒,並庫藏金玉寶貝,盡數收拾過淮去了。
원술이 그 말을 써서 이풍, 악취, 양강, 지기 네 사람이 머물면서 군대 십만을 나누어 수춘을 굳게 지키게 하고, 그 나머지 장졸들과 창고에 있던 금옥과 보패를 모두 거두어 회수를 건너갔다.
卻說曹兵十七萬,日費糧食浩大,諸郡及荒旱,接濟不及;操催軍速戰,李豐等閉門不出。操軍相拒月餘,糧食將盡,致書於孫策,借得糧米十萬斛,不敷支散。管糧官任峻,部下倉官王垕,入稟操曰:「兵多糧少,當如之何?」操曰:「可將小斛散之,權且救一時之急。」垕曰:「兵士倘怨,如何?」操曰:「吾自有策。」
각설하고 조조의 군대 십칠만은 매일 소비하는 식량이 매우 많고, 여러 군들에는 흉년과 가뭄이 들어 보급이 미치지 못하였다. 조조는 군대를 재촉하여 속히 싸우려 하였으나 이풍 등은 성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조조의 군대는 서로 대치한 지 한 달이 지나 식량이 장차 다하려하자 글을 손책에게 보내 쌀 십만 곡을 빌리지만 펴 흩어주지 못하였다. 식량을 관리하는 관리 임준과 부하 창고지기 왕후가 들어가 조조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군대는 많고 식량은 적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작은 용기로 그것을 나누어 주면 임시로 또한 한 때의 급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했다. 왕후가 말하기를 “병사들이 혹시 원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나에게 계책이 있다.” 했다.
垕依命,以小斛分散:操暗使人各寨探聽,無不嗟怨,皆言丞相欺眾。操乃密召王垕入曰:「吾欲問汝借一物,以壓眾心,汝必勿吝。」垕曰:「承相欲用何物?」操曰:「欲借汝頭以示眾耳。」垕大驚曰:「其實無罪。」操曰:「吾亦知汝無罪;但不殺汝,軍心變矣。汝死後,汝妻子吾自養之,汝勿慮也。」垕再欲言時,操早呼刀斧手推出門外,一刀斬訖,懸頭高竿,出榜曉示曰:「王垕故行小斛,盜竊官糧,謹按軍法。」於是眾怨始解。
왕후가 명에 의하여 작은 용기로 나누어 주었다. 조조가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각 영채를 엿듣게 하였더니 탄식하고 원망하지 않음이 없고, 모두 승상이 무리를 속였다고 말하였다. 조조가 비밀리에 왕후를 불러들여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한 가지 물건을 빌려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누르고자 하니 너는 반드시 아까워하지 말라.” 했다. 왕후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어떤 물건을 쓰고자 하는 것입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너의 머리를 빌려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자 할뿐이다.” 했다. 왕후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진실로 죄가 없습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또한 네가 죄가 없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너를 죽이지 않으면 군졸들의 마음이 변할 것이다. 네가 죽은 후 너의 처자는 내개 잘 봉양할 것이니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했다. 왕후가 다시 말하려할 때 조조가 재빨리 도부수를 불러 문밖으로 끌고나가 한 칼에 머리를 베어 머리를 높은 장대에 매달고 방을 붙여 분명하게 알려주어 말하기를 “왕후가 고의로 작은 용기를 써서 관청의 식량을 훔친 것을 삼가 군법으로 죄를 물었다.”하니 이에 무리의 원망이 비로소 풀렸다.
次日,操傳令各營將領:「如三日內不併力破城,皆斬!」操親至城下,督諸軍搬土運石,填壕塞塹,城上矢石如雨,有兩員裨將畏避而回,操掣劍親斬於城下,遂自下馬接土填坑。於是大小將士,無不向前,軍威大振。城上抵敵不住。曹兵爭先上城,斬關落鎖,大隊擁入。李豐、陳紀、樂就、梁剛都被生擒。操令皆斬於市。焚燒偽造宮室殿宇,一應犯禁之物。壽春城中,收掠一空。商議欲進兵渡淮,追趕袁術。荀彧諫曰:「年來荒旱,糧食艱難,若更進兵,勞軍損民,未必有利;不若暫回許都,待來春麥熟,軍糧足備,方可圖之。」
다음 날 조조가 각 진영의 장령들에게 명령을 전하기를 “만약 삼일 안에 힘을 합하여 성을 깨트리지 못한다면 모두 머리를 베어 죽일 것이다!” 하고는 조조가 직접 성 아래 이르러 군사들을 감독하여 흙을 나르고, 돌을 옮겨 해자를 메꾸고 구덩이를 채우게 하였는데 성 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 오듯 쏟아졌다. 두 명의 비장이 두려워하고 피하여 돌아오니 조조가 검을 잡고 직접 성 아래에서 머리를 베어 죽였다. 마침내 스스로 말에서 내려 흙을 모으고 구덩이를 메꾸었다. 에 대소의 장사들이 앞을 향하지 않음이 없어 군사의 위력이 크게 떨쳤다. 성위에서 막는 적이 없었다. 조조의 군대가 선봉을 다투며 성에 올라 빗장을 베어 자물쇠를 떨어뜨리고 큰 대열이 빽빽하게 들어갔다. 이풍, 진기, 악취, 양강이 모두 사로잡혔다. 조조가 모두 거리에서 머리를 베어 죽이게 하였다. 거짓으로 지은 궁실과 전각과 한편으로 법에 금지하거나 범한 물건을 불태웠다. 수춘성 안을 고두고 약탈하니 성이 비게 되었다. 상의하여 회수를 건너 군대를 진격시켜 원술을 뒤쫓았다. 순욱이 간하여 말하기를 “몇 해 흉년과 가뭄이 들어 식량이 매우 어려운데 만약 다시 군대를 진군시키는 것은 군사를 수고롭게 하고, 백성을 상하게 되니 반드시 이로움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잠간 허도에 돌아가 오는 봄에 보리가 익기를 기다렸다가 군량이 충분히 준비되면 바야흐로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操躊躇未決。忽報馬到,報說:「張繡依託劉表,復肆猖獗;南陽諸縣復反;曹洪拒敵不住,連輸數陣,今特來告急。」操乃馳書與孫策,令其跨江布陣,以為劉表疑兵,使不敢妄動;自己即日班師,別議征張繡之事。臨行,令玄德仍屯兵小沛,與呂布結為兄弟,互相救助,再無相侵。呂布引兵自回徐州。操密謂玄德曰:「吾令汝屯兵小沛,是『掘坑待虎』之計也。公但與陳珪父子商議,勿致有失。某當為公外援。」話畢而別。
조조가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보고하는 말이 이르러 보고해 말하기를 “장수가 유표에게 의탁하여 다시 방자히 사납게 날뛰니 남양의 여러 현들이 다시 배반하고 있습니다. 조홍이 적을 막아 머물지 못하고 연거푸 패하여 지금 특히 와서 급함을 알려드립니다.” 했다. 조조가 이에 글을 손책에게 보내 강을 건너 진을 쳐서 유표가 의병으로 여겨 감히 망년되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는 그날 군대를 돌려 별도로 장수를 정벌하는 일을 논의하였다. 행군에 즈음하여 유현덕은 그대로 군대를 소패에 주둔하게 하고 여포와는 결연하여 형제가 되어 서로 구원하고 도와 다시 서로 침범하지 않게 하였다.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서주로 돌아갔다. 조조가 비밀리에 유현덕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당신으로 하여금 군대를 소패에 주둔하게 한 것은 이는 ‘구덩이를 파고 범을 기다린다.’는 계책입니다. 공은 다만 진규 부자와 상의하여 감히 잘못이 있지 않게 하십시오. 나는 마땅히 공을 위하여 밖에서 도울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헤어졌다.
卻說曹操引軍回許都,人報段煨殺了李傕,伍習殺了郭氾,將頭來獻。段煨並將李傕合族老小二百餘口活解入許都。操令分於各門處斬,傳首號令,人民稱快。天子陞殿,會集文武,作太平筵宴。封段煨為盪寇將軍,伍習為殄虞將軍,各引兵鎮守長安。二人謝恩而去。操即奏張繡作亂,當興兵伐之。天子乃親排鑾駕,送操出師,時建安三年夏四月也。
각설하고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허도로 돌아갔는데 사람들이 단외가 이각을 죽이고, 오습이 곽사를 죽여 머리를 가지고 와서 바친다고 보고하였다. 단외가 아울러 이각 가문의 노소 이백 여명을 산채로 잡아 데리고 허도에 들어왔다. 조조가 나누어 각문에서 머리를 베어 죽이게 하고, 머리를 전하도록 명령을 내리니 백성들이 칭송하고 유쾌하게 여겼다. 천자가 전각에 올라 문, 무관을 모아 태평 잔치를 열었다. 단외를 봉하여 탕구장군으로 삼고, 오습을 진우장군으로 삼고 각각 군대를 이끌고 장안을 지키게 하였다. 두 사람이 은혜에 감사하고 갔다. 조조가 곧 장수가 난을 일으켰으니 마땅히 군대를 일으켜 쳐야 한다고 아뢰었다. 천자가 이에 직접 수레를 배열하고 조조가 출정하는 것을 전송하였는데 이때는 건안 3년 여름 4월이다.
操留荀彧在許都,調遣兵將,自統大軍進發。行軍之次,見一路麥已熟。民因兵至,逃避在外,不敢刈麥。操使人遠近遍諭村人父老,及各處守境官吏曰:「吾奉天子明詔,出兵討逆,與民除害。方今麥熟之時,不得已而起兵,大小將校,凡過麥田,但有踐踏者,並皆斬首。軍法甚嚴,爾民勿得驚疑。」百姓聞諭,無不歡喜稱頌,望塵遮道而拜。官軍經過麥田,皆下馬以手扶麥,遞相傳送而過,並不敢踐踏。
조조는 순욱을 허도에 머물러 있게 하면서 군대를 배정하고 자신은 대군을 통솔하여 출발하였다. 행군할 때 길 옆에 보리가 이미 익은 것을 보았다. 백성들이 군대가 이름으로 인하여 도망하고 피하여 밖에 있으면서 감히 보리를 베지 못하였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원근에 두루 마을 사람과 부로와 각처의 경계를 지키는 관리들에게 깨우쳐 말하기를 “내가 천자의 밝은 명을 받들어 군대를 내는 것은 역적을 토벌하고, 백성의 해를 없애려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보리가 익는 때인데도 부득이하게 군대를 일으키게 되어 대소의 장교들이 모두 보리밭을 지난다. 다만 보리를 밟는 자가 있다면 아울러 모두 머리를 베어 죽일 것이다. 군법이 매우 엄하니 너희 백성들은 놀라거나 의심하지 말라.” 했다. 백성들이 깨우침을 듣고 기뻐하고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고, 멀리 먼지가 이는 길을 바라보며 절하였다. 관군이 보리밭을 지날 때는 모두 말에서 내려 손으로 보리를 헤치면서 번갈아 서로 전하고 보내고 지나가는데 아울러 감히 밟지 않았다.
操乘馬正行,忽田中驚起一鳩,那馬眼生,竄入麥中,踐壞了一大塊麥田。操隨呼行軍主簿,擬議自己踐麥之罪。主簿曰:「丞相豈可議罪?」操曰:「吾自制法,吾自犯之,何以服眾?」即掣所佩之劍欲自刎。眾急救住。郭嘉曰:「古者春秋之義,法不加於尊。丞相總統大軍,豈可自戕?」操沉吟良久,乃曰:「既春秋有法不加於尊之義,吾姑免死。」乃以劍割自己之髮,擲於地曰:「割髮權代首。」使人以髮傳示三軍曰:「丞相踐麥,本當斬首號令,今割髮以代。」於是三軍悚然,無不懍遵軍令。後人有詩論之曰:
조조가 말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밭 가운데서 한 마리 비둘기가 놀라 일어나니 말이 낯설어 하여 달아나 보리 속으로 들어가 보리밭을 밟고 무너뜨려 하나의 큰 덩어리로 만들었다. 조조가 따르던 행군주부를 불러 자기가 보리를 밟은 죄를 입안하게 하였다. 주부가 말하기를 “승상을 어떻게 죄를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지은 법을 내가 스스로 그것을 범하였으니 어떻게 무리들이 복종하겠는가?”하고는 곧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자기의 목을 찌르려 하였다. 무리들이 급히 말려 그쳤다. 곽가가 말하기를 “옛날 『춘추』의 의리에서 높은 이에게는 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승상께서 대군을 총괄 통솔하는데 어찌 스스로 죽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조조가 오래도록 망설이다 이에 말하기를 “이미 『춘추』에 높은 이에게 법을 더하지 않는 다는 의가 있다하니 내가 우선 죽음을 면할 것이다.” 했다. 이에 검으로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머리카락을 잘라 임시로 머리를 대신한다.”하고는 사람을 시켜 머리카락을 돌려 삼군이 보게 하고 말하기를 “승상이 보리를 밟았는데 본래는 마땅히 머리를 베도록 명령해야 하지만 지금 머리털을 자르는 것으로서 대신한다.” 했다. 이에 삼군이 두려워 벌벌 떨면서 군령을 따르지 않음이 없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논한 것이 있다.
十萬貔貅十萬心,一人號令眾難禁。拔刀割髮權為首,方見曹瞞詐術深。
십만의 용맹한 군대는 십만의 마음이니 한 사람 호령으로 여럿을 금하기 어렵네. 칼을 뽑아 머리카락을 베어 잠시 머리를 삼았으니 바야흐로 조조의 거짓 술책 깊음을 보네.
卻說張繡知操引兵來,急發書報劉表,使為後應;一面與雷敘、張先二將領兵出城迎敵。兩陣對圓,張繡出馬,指操罵曰:「汝乃假仁義無廉恥之人,與禽獸何異!」操大怒,令許褚出馬,繡令張先接戰。只三合,許褚斬張先於馬下,繡軍大敗。操引軍趕至南陽城下。繡入城,閉門不出。
각설하고 장수는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오는 것을 알고 급히 글을 보내 유표에게 보고하고 뒤에서 호응하게 하였다. 한 편으로 뇌선, 장선 두 장수와 군대를 거느리고 성을 나와 적을 맞이하게 하였다. 두 진영이 둥글게 대치하자 장수가 말을 타고 나와 조조를 가리키며 욕하여 말하기를 “너는 곧 인의를 빌렸으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니 금수와 무엇이 다른가!” 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허저로 하여금 말을 타고 나가게 하니 장수가 장선으로 하여금 싸우게 하였다. 단지 삼합에 허저가 장선의 목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리니 장수의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 성 아래에 이르렀다. 장수가 성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操圍城攻打,見城壕甚闊,水勢又深,急難近城,乃令軍士運土填濠;又用土布袋並柴薪草把相雜於城邊作梯凳;又立雲梯窺望城中。操自騎馬遶城觀之。如此三日,操傳令教軍士於西門角上,堆積柴薪,會集諸將,就那裡上城。
조조가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려는데 성의 해자가 매우 넓고, 물의 형세가 또한 깊은 것을 보고 급히 성에 가까이 가기 어려웠다. 이에 군사로 하여금 흙을 옮겨 해자를 메꾸게 하였다. 또 흙 포대와 섶을 써서 서로 섞어 성 가에 제등을 만들게 하였다. 또 운제를 세워 성 안을 엿보았다. 조조가 스스로 말을 타고 성을 돌면서 보았다. 이 같이 하기를 삼일을 하고, 조조가 군사로 하여금 명령을 전하여 서문 모퉁이에 장작과 섶을 쌓게 하고 여러 장수를 모아 성위로 올라가게 하였다.
城中賈詡見如此光景,便謂張繡曰:「某已知曹操之意矣;今可將計就計而行。」正是:「強中自有強中手,用詐還逢識詐人。」不知其計若何,且看下文分解。
성 안의 가후가 이러한 광경을 보고 문득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제가 이미 조조의 뜻을 알았습니다. 지금 상대의 계책을 알고 반대로 그것을 이용하는 계책 쓸 만합니다.” 했다. 이는 바로 “강함 가운데는 저절로 강함 속의 묘수가 들어있고, 거짓을 쓰려다 도리어 거짓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네.”이다. 그 계책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하지만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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