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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17회 원공로가 크게 칠군을 일으키고, 조맹덕은 세 장군과 회합하다

by 최인표 2020. 3. 13.

第十七回袁公路大起七軍曹孟德會合三將

17회 원공로가 크게 칠군을 일으키고, 조맹덕은 세 장군과 회합하다

 

卻說袁術在淮南地廣糧多又有孫策所質玉璽遂思僭稱帝號大會群下議曰:「昔漢高祖不過泗上一亭長而有天下今歷年四百氣數已盡海內鼎沸吾家四世三公百姓所歸吾欲應天順人正位九五爾眾人以為如何?」主簿閻象曰:「不可昔周后稷積德累功至於文王三分天下有其二猶以服事殷明公家世雖貴未若有周之盛漢室雖微未若殷紂之暴也此事決不可行。」術怒曰:「吾袁姓出於陳陳乃大舜之後以土承火正應其運又讖云:「代漢者當塗高也。」吾字公路正應其讖又有傳國玉璽若不為君背天道也吾意已決多言者斬!」

각설하고 원술이 회남에 있었는데 땅이 넓고 식량이 많았으며, 또한 손책이 저당잡힌 옥쇄를 소유하여 마침내 황제의 칭호를 참칭할 것을 생각하고, 크게 여럿이 모여 의논할 때 말하기를 옛날 한 고조는 사상의 일개 정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천하를 소유하여 지금 사백여 년을 지나 기운과 운수가 이미 다하여 천하가 솥에 물이 끓는 듯하다. 우리 가문은 사 세대에 삼공을 배출하여 백성이 귀의한 바이다. 내가 하늘에 응하고 사람을 따라 바로 구오(임금)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여기는가?” 했다. 주부 염상이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옛날 주나라 후직은 덕을 쌓아 여러 번 공을 세워 문왕에 이르러 셋으로 나뉜 천하 중에서 그 둘을 소유하였지만 오히려 은 나라에 복종하여 섬겼습니다. 명공께서는 가문이 비록 대대로 비록 귀하였지만 주나라의 성대함보다는 못함이 있고, 한 나라가 비록 쇠미해졌으나 아직 은나라 주왕의 사나움보다는 못합니다. 이 일은 결단코 행해서는 안 됩니다.” 했다. 원술이 노하여 말하기를 우리 원씨 성은 나라에서 나왔다. 진나라는 대순의 후예이다. 토의 덕으로 불의 덕을 이었으니 바로 그 운수에 응한 것이다. 또한 도참에 말하기를 한 나라를 대신하는 자는 응당 塗高이다.’ 하였는데 나의 자가 公路이니 바로 그 도참과 부합한다. 또 나라를 전하는 옥쇄를 소유하였는데도 만약 임금이 되지 않는다면 천도를 배반하는 것이다. 나의 뜻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말이 많은 자는 머리를 베어 죽일 것이다!” 했다.

 

遂建號仲氏立臺省等官乘龍鳳輦祀南北郊立馮方女為后立子為東宮因命使催取呂布之女為東宮妃卻聞布已將韓胤解赴許都為曹操所斬乃大怒遂拜張勳為大將軍統領大軍二十餘萬分七路征徐州第一路大將張勳居中第二路上將橋蕤居左第三路上將陳紀居右第四路副將雷薄居左第五路副將陳蘭居右第六路降將韓暹居左第七路降將楊奉居右各領部下健將,﹝左克右寸日起行命兗州刺史金尚為太尉監運七路錢糧尚不從術殺之以紀靈為七路都救應使術自引軍三萬使李豐梁剛樂就為催進使接應七路之兵

마침내 중씨의 호를 세우고, , 성 등의 관직을 세우며, 용봉연을 타고, 남북에서 천지에 교사를 지내며 풍방의 딸을 세워 후라 하고, 아들을 세워 동궁(태자)을 삼았다. 인하여 사자에게 명하여 여포의 딸을 취하여 동궁의 비로 삼을 것을 재촉하게 하였다. 그러나 여포가 이미 한윤을 잡아 허도에 압송하여 조조에게 죽음을 당하였다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마침내 장훈을 대장군으로 삼아 대군 이십여 만을 통솔하여 일곱개 길로 나누어 서주를 정벌하게 하였다. 제 일로는 대장군 장훈이 가운데 있고, 제 이로는 상장군 교유가 왼쪽에 있었다. 제 삼로는 상장군 진기가 오른 쪽에 있고, 제 사로는 부장군 뇌박이 왼쪽에 있고, 제 오로는 부장군 진란이 오른 쪽에 있고, 제 육로는 강장군 한 섬이 왼쪽에 있고, 제 칠로는 강장군 양봉이 오른 쪽에 있었다. 각각 부하 건장을 거느리고 정해진 기일에 군대를 일으켜 행군하였다. 연주자사 김상을 명하여 태위로 삼고, 칠로의 돈과 곡식 운반을 감독하게 하였다. 김상이 따르지 않으니 원술이 죽이고 기령으로서 칠로도구응사를 삼았다. 원술이 스스로 군대 삼만을 이끌고 이풍, 양강, 악취로 하여금 최진사로 삼아 칠로의 군대에 호응하여 행동하게 하였다.

 

呂布使人探聽得張勳一軍從大路逕取徐州橋蕤一軍取小沛陳紀一軍取沂雷薄一軍取瑯琊陳蘭一軍取碣石韓暹一軍取下邳楊奉一軍取浚山七路軍馬日行五十里於路劫掠將來乃急召眾謀士商議陳宮與陳珪父子俱至陳宮曰:「徐州之禍乃陳珪父子所招媚朝廷以求爵祿今日移禍於將軍可斬二人之頭獻袁術其軍自退。」

여포가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장훈의 일군은 대로를 따라 곧장 서주를 취하려하고, 교유의 일군은 소패를 취하려 하고, 진기의 일군은 기도를 취하려하고, 뇌박의 일군은 낭야를 취하려하고, 진란의 일군은 갈석을 취하려하고, 한섬의 일군은 하비를 취하려하고, 양봉의 일군은 준산을 취하려하였다. 일곱 길의 군마가 매일 오십 리를 행군하면서 길에서 약탈하니 이에 급히 여러 모사를 불러 상의하는데 진궁과 진규 부자도 같이 이르렀다. 진궁이 말하기를 서주의 재앙은 곧 진규 부자가 불러 온 것입니다. 조정에 아첨하여 작록을 구하다 오늘 장군에게 재앙이 옮겨졌으니 두 사람의 머리를 베어 원술에게 바치면 그 군대가 저절로 물러갈 것입니다.” 했다.


布聽其言即命擒下陳珪陳登陳登大笑曰:「何如是之懦也吾觀七路之兵如七堆腐草何足介意!」布曰:「汝若有計破敵免汝死罪。」陳登曰:「將軍若用愚夫之言徐州可保無虞。」布曰:「試言之。」登曰:「術兵雖眾皆烏合之師素不親信我以正兵守之出奇兵勝之無不成功更有一計不止保安徐州並可生擒袁術。」布曰:「計將安出?」登曰:「韓暹楊奉乃漢舊臣因懼曹操而走無家可依暫歸袁術術必輕之彼亦不樂為術用若憑尺書結為內應更連劉備為外合必擒袁術矣。」布曰:「汝須親到韓暹楊奉處下書。」陳登允諾

여포가 그 말을 듣고 곧 진규와 진등을 잡아오라고 명령하였다. 진등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리도 나약합니까? 내가 칠로의 군대를 보니 일곱 개의 썩은 풀을 쌓은 듯하니 무엇을 개의하리오!”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네가 만약 적을 깨트릴 계책이 있다면 너의 죽을죄를 면할 것이다.” 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장군이 만약 나의 말을 쓴다면 서주를 보존하는데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시험삼아 말해 보라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원술의 군대가 비록 많으나 모두 오합의 무리인지라 평소 친하고 신의가 없어 우리의 정병으로 지키고, 기병을 내어 이기면 공을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다시 한 계책이 있으니 서주를 지키고 편안하게 할뿐만 아니라 아울러 원술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계책은 장차 어디에서 나오는가?”하니 진등이 말하기를 한섬과 양봉은 곧 한 나라의 옛 신하로 조조를 두려워하여 달아났으나 의지할만한 집이 없어 잠시 원술에게 의지한 것입니다. 원술이 반드시 그들을 가볍게 대우하고, 그들 또한 원술에게 쓰여지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글을 써서 내응하게 하고, 다시 유비와 연결하여 밖에서 합세하면 반드시 원술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직접 한섬, 양봉이 있는데 이르러 글을 내리도록 하라.”하니 진등이 수락하였다.


布乃發表上許都並致書與豫州然後令陳登引數騎先於下邳道上候韓暹暹引兵至下寨畢登入見暹問曰:「汝乃呂布之人來此何幹?」登笑曰:「某為大漢公卿何謂呂布之人若將軍向為漢臣今乃為叛賊之臣使昔日關中保駕之功化為烏有竊為將軍不取也且袁術性最多疑將軍後必為其所害今不早圖悔之無及。」暹歎曰:「吾欲歸漢恨無門耳。」登乃出布書暹覽書畢曰:「吾已知之公先回吾與楊將軍反戈擊之但看火起為號溫侯以兵相應可也。」

여포가 허도에 표를 올리고 아울러 글을 써서 예주에 준 후 진등으로 하여금 몇 기를 이끌고 먼저 하비로 가는 길 위에서 한섬을 기다리게 하였다. 한섬이 군대를 이끌고 이르러 영채 설치를 마치자 진등이 들어가 만났다. 한섬이 물어 말하기를 너는 곧 여포의 사람인데 여기에 온 것은 무슨 상관이 있는가?”했다. 진등이 웃으며 말하기를 저는 대한의 공경이 되는데 어찌하여 여포의 사람이라 합니까? 만약 장군이 옛날에는 한나라 신하였다가 지금 곧 반적의 신하가 된 것은 옛날 관중에서 천자의 수레를 보호한 공이 변화하여 없어짐이 될 것이니 제 생각으로는 장군이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원술의 성품은 의심이 매우 많으니 장군은 후에 반드시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지금 빨리 도모하지 않는다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한섬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한나라로 돌아가고자 하여도 문이 없음을 한 하였을 뿐입니다.”하였다. 진등이 곧 여포의 글을 내어 주었다. 한섬이 글을 살펴보기를 마치고 말하기를 내가 이미 그것을 알았으니 공은 먼저 돌아가시오. 나는 양봉장군과 창을 돌이켜 그를 칠 것입니다. 다만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신호로 삼아 온후(여포)께서 군대로서 서로 응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했다.

 

登辭暹急回報呂布布乃分兵五路高順引一軍進小沛敵橋蕤陳宮引一軍進沂都敵陳紀張遼臧霸引一軍出瑯琊敵雷薄宋憲魏續引一軍出碣石敵陳蘭呂布自引一軍出大道敵張勳各領軍一萬餘者守城呂布出城三十里下寨張勳軍到料敵呂布不過且退二十里屯住待四下兵接應

진등이 한섬을 하직하고 급히 돌아가 여포에게 보고하였다. 여포가 곧 군대를 다섯 길로 나누었는데 고순은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소패로 나아가 교유를 대적하고, 진궁은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근도로 나아가 진기를 대적하고, 장요, 장패는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낭야를 나와 뇌박을 대적하고, 송헌, 위속은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갈석을 나와 진란을 대적하고, 여포는 스스로 한 부대의 군대를 이끌고 대도를 나와 장훈을 대적하였다. 각각 군대 일만을 거느리고 나머지는 성을 지켰다. 여포가 성을 나와 삼십 리를 가서 영채를 세웠다. 장훈의 군대가 이르러 여포를 대적하여 지나가지 못할 것을 헤아리고는 또한 이십 리를 물러나 주둔하고 사방의 군대가 호응하여 행동하기를 기다렸다.


是夜二更時分韓暹楊奉分兵到處放火接應呂家軍入寨勳軍大亂呂布乘勢掩殺張勳敗走呂布趕到天明正撞著紀靈接應兩軍相迎恰待交鋒韓暹楊奉兩路殺來紀靈大敗而走呂布引兵追殺山後一彪軍到門旗開處只見一隊軍馬打龍鳳日月旗旛四斗五方旌幟金瓜銀斧黃銊白旄黃羅銷金傘蓋之下袁術身披金甲腕懸兩刀立於陣前大罵呂布:「背主家奴!」

이 때 이경 쯤 한섬, 양봉이 군대를 나누어 도처에 불을 놓으니 여포의 군대가 호응하여 영채에 들어갔다. 장군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여포가 형세를 타고 덥쳐 죽이니 장훈이 패하여 달아났다. 여포가 뒤쫓아 가다 날이 밝았는데 바로 기령이 호응하는 것을 만났다. 두 군대가 서로 맞이하여 막 교전하려 하는데 한섬, 양봉이 두 길로 쇄도해 왔다. 기령이 크게 패하여 달아나니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여 죽이는데 산 뒤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이르렀다. 문 기가 열린 곳에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나 용봉일월 깃발과 사두오방정기, 금과은부, 황월백기, 황라초금산개의 아래에서부터 원술이 몸에 금빛 갑옷을 입은 채 칼 두 자루를 차고 진 앞에 서서 크게 여포를 꾸짖기를 주인집을 배반한 종놈아!” 했다.

 

布怒挺戟向前術將李豐挺鎗來迎戰不三合被布刺傷其手豐棄鎗而走呂布麾兵衝殺術軍大亂呂布引軍從後追趕搶奪馬匹衣甲無數袁術引著敗軍走不上數里山背後一彪軍出截住去路當先一將乃關雲長也大叫:「反賊還不受死!」袁術慌走餘眾四散奔逃被雲長大殺了一陣袁術收拾敗軍奔回淮南去了

여포가 노하여 극을 잡고 앞을 향하였다. 원술이 이풍을 거느리고 창을 잡고 나와 맞이하였다. 싸운 지 세 합이 되지 않아 여포에게 찔려 그 손을 다치자 이풍이 창을 버리고 달아났다. 여포가 군대를 지휘하여 들이치니 원술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뒤를 따라 추격하여 빼앗은 말과 갑옷이 헤아릴 수 없었다. 원술이 패한 군대를 이끌고 달아나 몇 리가지 못하여 산 뒤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나와 가는 길을 막았다. 앞에 선 한 장수는 곧 관운장이었다. 크게 외치기를 반적아! 아직도 죽지 않았는가!” 하였다. 원술이 황망히 달아나자 나머지 무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였는데 관운장이 크게 한 무리를 죽였다. 원술이 패한 군대를 수습하여 달아나 회남으로 돌아갔다.


呂布得勝邀請雲長並楊奉韓暹等一行人馬到徐州大排筵宴款待軍士都有犒賞次日雲長辭歸布保韓暹為沂都牧楊奉為瑯琊牧商議欲留二人在徐州陳珪曰:「不可楊二人據山東不出一年則山東城郭皆屬將軍也。」布然之遂送二將暫於沂都瑯琊二處屯左答右刀﹞,以候恩命陳登私問父曰:「何不留二人在徐州為殺呂布之根?」珪曰:「二人協助呂布是反為虎添爪牙也。」登乃服父之高見

여포가 이기고 나서 관운장, 양봉, 한섬 등 일행을 맞아 청하여 서주에 이르러 크게 잔치를 열고 정성껏 대우하였다. 군사들 모두에게 공로를 상 주었다. 다음 날 관운장이 하직하고 돌아갔다. 여포가 한섬을 지켜 기도목으로 삼았다. 양봉은 낭야목으로 삼고, 상의하여 두 사람을 서주에 머물게 하고자 하였다. 진규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한섬과 양봉 두 사람이 산동에 웅거하면 일년이 지나지 않아서 곧 산동의 성곽이 모두 장군에게 속하게 될 것입니다.” 했다. 여포가 그렇다하고, 마침내 두 장군을 보내 잠시 근도, 낭야 두 곳에 주둔하여 은혜로운 명을 기다리게 하였다. 진등이 사사로이 아버지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찌하여 두 사람을 머무르게 하여 서주에 두고 여포를 죽이는 근본을 삼지 않습니까?”하니 진규가 말하기를 만약 두 사람이 여포에게 협조하면 이는 도리어 범에게 발톱과 이빨을 더하는 것이 된다.”하니 진등이 곧 아버지의 훌륭한 견해에 복종하였다.


卻說袁術敗回淮南遣人往江東問孫策借兵報讎策怒曰:「汝賴吾玉璽僭稱帝號背反漢室大逆不道吾方欲加兵問罪豈肯反助叛賊乎?」遂作書以絕之使者齎書回見袁術術看畢怒曰:「黃口孺子何敢乃爾吾先伐之!」長史楊大將力諫方止

각설하고 원술이 패하고 회남으로 돌아가 사람을 보내 강동의 손책에게 가서 군대를 빌려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손책이 모하여 말하기를 너는 내 옥쇄에 의지하고 황제의 칭호를 참칭하여 한나라를 배반하였으니 대역부도하구나! 내가 바야흐로 군대를 더하여 죄를 물으려는데 어떻게 즐겨 도리어 반적을 돕겠는가?” 했다. 마침내 글을 지어 거절하였다. 사자가 글을 가지고 돌아와 원술에게 보이니 원술이 보기를 마치고 노하여 말하기를 어린아이가 어찌 감히 이렇다 말인가! 내가 먼저 그를 칠 것이다!” 하니 장사 양대장이 힘껏 간하여 그만두었다.


卻說孫策自發書後防袁術兵來點軍守住江口忽曹操使至拜策為會稽太守令起兵征討袁術策乃商議便欲起兵長史張昭曰:「術雖新敗兵多糧足未可輕敵不如遺書曹操勸他南征吾為後應兩軍相援術軍必敗萬一有失亦望操救援。」策從其言遣使以此意達曹操

각설하고 손책이 글을 보낸 후로부터 원술의 군대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군대를 점검하여 강구를 지키며 주둔하였다. 갑자기 조조의 사자가 이르러 손책에게 벼슬을 주어 회계태수로 삼고, 군대를 일으켜 원술을 정토할 것을 명령하였다. 손책이 이에 상의하여 곧 군대를 일으키려 하였다. 장사 장소가 말하기를 원술이 비록 패하였으나 군대가 많고, 양식이 충분하니 가벼이 대적할 수 없습니다. 조조에게 글을 보내 다른 이(조조)가 남쪽으로 정벌하면, 내가 후에 호응한다 하는 것이 낫습니다. 두 군대가 서로 도우면 원술의 군대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만일 잘못됨이 있어도 또한 조조의 구원을 바랄 수 있습니다.” 했다. 손책이 그 말을 따라 사자를 보내 이런 뜻을 조조에게 전달하였다.

 

卻說曹操至許都思慕典韋立祀祭之封其子典滿為中郎收養在府忽報孫策遣使致書操覽書畢又有人報袁術乏糧劫掠陳留欲乘虛攻之遂興兵南征令曹仁守許都其餘皆從征馬步兵十七萬糧食輜重千餘車一面先發人會合孫策與劉備呂布

각설하고 조조가 허도에 이르러 전위를 추모하여 제사하고 그 아들 전만을 봉하여 중랑을 삼고 거두어 기르며 부에 있게 하였다. 갑자기 손책이 보낸 사자가 글을 가지고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조조가 글을 살펴보기를 마쳤을 때 또 어떤 사람이 보고하기를 원술이 식량이 부족하여 진류를 약탈하고, 빈틈을 타서 공격하려 한다고 했다. 마침내 (조조)가 군대를 일으켜 남쪽으로 정벌가면서 조인으로 하여금 허도를 지키게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정벌을 따르게 하였는데 기병과 보병 십칠만 명, 군량과 군수품 천여 수레였고, 한편으로 먼저 사람을 출발시켜 손책, 유비, 여포와 회합하게 하였다.


兵至豫章界上玄德早引兵來迎操命請入營相見畢玄德獻上首級二顆操驚曰:「此是何人首級?」玄德曰:「此韓暹楊奉之首級也。」操曰:「何以得之?」玄德曰:「呂布令二人權住沂都瑯琊兩縣不意二人縱兵掠民人人嗟怨因此備乃設一宴詐請議事飲酒間擲盞為號使關張二弟殺之盡降其眾今特來請罪。」操曰:「君為國家除害正是大功何言罪也?」

군대가 예장의 경계에 이르니 유현덕이 일찍 군대를 이끌고 와서 영접하였는데 조조가 진영에 들어오기를 청하였다. 서로 예를 마치니 유현덕이 수급 두 개를 올렸다. 조조가 놀라 말하기를 이는 누구의 수급입니까?”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는 한섬, 양봉의 수급입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어떻게 수급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여포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임시로 근도, 낭야 두 현에 있게 하였는데 불의에 두 사람이 군대를 풀어 백성을 약탈하니 사람들마다 원망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한 번 잔치를 열어 일을 의논할 속이고 청하였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이에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삼아 관우, 장비 두 형제로 하여금 그를 죽이게 하였더니 그 무리들이 모두 항복하였습니다. 지금 특히 와서 죄를 청합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대가 국가를 위해 해를 없앴으니 바로 이는 큰 공을 세운 것인데 어찌 죄를 말하는가?” 했다.


遂厚勞玄德合兵到徐州界呂布出迎操善言撫慰封為左將軍許於還都之時換給印綬布大喜操即分呂布一軍在左玄德一軍在右自統大軍居中令夏侯惇于禁為先鋒

마침내 후하게 유현덕을 위로하고 군대를 합하여 서주의 경계에 이르렀다. 여포가 나와 맞으니 조조가 좋은 말로 위로하고 봉하여 좌장군으로 삼고, 도읍에 돌아갔을 때 인수를 준다고 하였다. 여포가 크게 기뻐하였다. 조조가 곧 여포의 일군을 나누어 왼쪽에 있게 하고, 유현덕의 일군을 오른 쪽에 있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통솔하여 중간에 있으면서 하후돈, 우금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였다.


袁術知曹兵至令大將橋蕤引兵五萬作先鋒兩軍會於壽春界口橋蕤當先出馬與夏侯惇戰不三合被夏侯惇搠術軍大敗奔走回城忽報孫策發船攻江邊西面呂布引兵攻東面劉備張引兵攻南面操自引兵十七萬攻北面術大驚急聚眾文武商議楊大將曰:「壽春水旱連年人皆缺食今又動兵擾民民既生怨兵至難以拒敵不如留軍在壽春不必與戰待彼糧盡必然生變陛下且統御林軍渡淮一者就熟二者暫避其銳。」

원술이 조조의 군대가 이르는 것을 알고 대장 교유로 하여금 군대 오만을 이끌고 선봉이 되게 하였다. 두 군대가 수춘의 경계에서 만났다. 교유가 먼저 말을 타고 나가 하후돈과 싸운 지 삼합이 되지 않아 하후돈에게 찔려 죽었다. 원술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분주히 달아나 성으로 돌아갔다. 그 때 손책이 군대를 내어 강변 서쪽을 공격하고,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동쪽을 공격하고, 유비, 관운장, 잡비가 군대를 이끌고 남족을 공격하고 조조는 군대 십칠만을 거느리고 북쪽을 공격한다고 보고하였다. 원술이 크게 놀라 급히 무리를 모으고 문무관과 상의하였다. 양대장이 말하기를 수춘은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들어 사람이 모두 먹는 식량이 부족한데 지금 또 군대를 동원하고, 백성을 소란스럽게 하여 백성들에게 이미 원망이 생겨나 군대가 이르러도 적에게 대항하기 어렵습니다. 군대를 수춘에 머물러 있으면서 반드시 싸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저들의 식량이 다하기를 기다리면 반드시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또한 어림군을 통솔하여 회수를 건너십시오, 하나는 익숙함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둘째는 잠시 그 날카로움을 피하는 것입니다.” 했다.


術用其言留李豐樂就梁剛陳紀四人分兵十萬堅守壽春其餘將卒並庫藏金玉寶貝盡數收拾過淮去了

원술이 그 말을 써서 이풍, 악취, 양강, 지기 네 사람이 머물면서 군대 십만을 나누어 수춘을 굳게 지키게 하고, 그 나머지 장졸들과 창고에 있던 금옥과 보패를 모두 거두어 회수를 건너갔다.


卻說曹兵十七萬日費糧食浩大諸郡及荒旱接濟不及操催軍速戰李豐等閉門不出操軍相拒月餘糧食將盡致書於孫策借得糧米十萬斛不敷支散管糧官任峻部下倉官王垕入稟操曰:「兵多糧少當如之何?」操曰:「可將小斛散之權且救一時之急。」垕曰:「兵士倘如何?」操曰:「吾自有策。」

각설하고 조조의 군대 십칠만은 매일 소비하는 식량이 매우 많고, 여러 군들에는 흉년과 가뭄이 들어 보급이 미치지 못하였다. 조조는 군대를 재촉하여 속히 싸우려 하였으나 이풍 등은 성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조조의 군대는 서로 대치한 지 한 달이 지나 식량이 장차 다하려하자 글을 손책에게 보내 쌀 십만 곡을 빌리지만 펴 흩어주지 못하였다. 식량을 관리하는 관리 임준과 부하 창고지기 왕후가 들어가 조조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군대는 많고 식량은 적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작은 용기로 그것을 나누어 주면 임시로 또한 한 때의 급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했다. 왕후가 말하기를 병사들이 혹시 원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나에게 계책이 있다.” 했다.

 

垕依命以小斛分散操暗使人各寨探聽無不嗟怨皆言丞相欺眾操乃密召王垕入曰:「吾欲問汝借一物以壓眾心汝必勿吝。」垕曰:「承相欲用何物?」操曰:「欲借汝頭以示眾耳。」垕大驚曰:「其實無罪。」操曰:「吾亦知汝無罪但不殺汝軍心變矣汝死後汝妻子吾自養之汝勿慮也。」垕再欲言時操早呼刀斧手推出門外一刀斬訖懸頭高竿出榜曉示:「王垕故行小斛盜竊官糧謹按軍法。」於是眾怨始解

왕후가 명에 의하여 작은 용기로 나누어 주었다. 조조가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각 영채를 엿듣게 하였더니 탄식하고 원망하지 않음이 없고, 모두 승상이 무리를 속였다고 말하였다. 조조가 비밀리에 왕후를 불러들여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한 가지 물건을 빌려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누르고자 하니 너는 반드시 아까워하지 말라.” 했다. 왕후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어떤 물건을 쓰고자 하는 것입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너의 머리를 빌려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자 할뿐이다.” 했다. 왕후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진실로 죄가 없습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또한 네가 죄가 없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너를 죽이지 않으면 군졸들의 마음이 변할 것이다. 네가 죽은 후 너의 처자는 내개 잘 봉양할 것이니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했다. 왕후가 다시 말하려할 때 조조가 재빨리 도부수를 불러 문밖으로 끌고나가 한 칼에 머리를 베어 머리를 높은 장대에 매달고 방을 붙여 분명하게 알려주어 말하기를 왕후가 고의로 작은 용기를 써서 관청의 식량을 훔친 것을 삼가 군법으로 죄를 물었다.”하니 이에 무리의 원망이 비로소 풀렸다.


次日操傳令各營將領:「如三日內不併力破城皆斬!」操親至城下督諸軍搬土運石填壕塞塹城上矢石如雨有兩員裨將畏避而回操掣劍親斬於城下遂自下馬接土填坑於是大小將士無不向前軍威大振城上抵敵不住曹兵爭先上城斬關落鎖大隊擁入李豐陳紀樂就梁剛都被生擒操令皆斬於市焚燒偽造宮室殿宇一應犯禁之物壽春城中收掠一空商議欲進兵渡淮追趕袁術荀彧諫曰:「年來荒旱糧食艱難若更進兵勞軍損民未必有利不若暫回許都待來春麥熟軍糧足備方可圖之。」

다음 날 조조가 각 진영의 장령들에게 명령을 전하기를 만약 삼일 안에 힘을 합하여 성을 깨트리지 못한다면 모두 머리를 베어 죽일 것이다!” 하고는 조조가 직접 성 아래 이르러 군사들을 감독하여 흙을 나르고, 돌을 옮겨 해자를 메꾸고 구덩이를 채우게 하였는데 성 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 오듯 쏟아졌다. 두 명의 비장이 두려워하고 피하여 돌아오니 조조가 검을 잡고 직접 성 아래에서 머리를 베어 죽였다. 마침내 스스로 말에서 내려 흙을 모으고 구덩이를 메꾸었다. 에 대소의 장사들이 앞을 향하지 않음이 없어 군사의 위력이 크게 떨쳤다. 성위에서 막는 적이 없었다. 조조의 군대가 선봉을 다투며 성에 올라 빗장을 베어 자물쇠를 떨어뜨리고 큰 대열이 빽빽하게 들어갔다. 이풍, 진기, 악취, 양강이 모두 사로잡혔다. 조조가 모두 거리에서 머리를 베어 죽이게 하였다. 거짓으로 지은 궁실과 전각과 한편으로 법에 금지하거나 범한 물건을 불태웠다. 수춘성 안을 고두고 약탈하니 성이 비게 되었다. 상의하여 회수를 건너 군대를 진격시켜 원술을 뒤쫓았다. 순욱이 간하여 말하기를 몇 해 흉년과 가뭄이 들어 식량이 매우 어려운데 만약 다시 군대를 진군시키는 것은 군사를 수고롭게 하고, 백성을 상하게 되니 반드시 이로움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잠간 허도에 돌아가 오는 봄에 보리가 익기를 기다렸다가 군량이 충분히 준비되면 바야흐로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操躊躇未決忽報馬到報說:「張繡依託劉表復肆猖獗南陽諸縣復反曹洪拒敵不住連輸數陣今特來告急。」操乃馳書與孫策令其跨江布陣以為劉表疑兵使不敢妄動自己即日班師別議征張繡之事臨行令玄德仍屯兵小沛與呂布結為兄弟互相救助再無相侵呂布引兵自回徐州操密謂玄德曰:「吾令汝屯兵小沛掘坑待虎之計也公但與陳珪父子商議勿致有失某當為公外援。」話畢而別

조조가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보고하는 말이 이르러 보고해 말하기를 장수가 유표에게 의탁하여 다시 방자히 사납게 날뛰니 남양의 여러 현들이 다시 배반하고 있습니다. 조홍이 적을 막아 머물지 못하고 연거푸 패하여 지금 특히 와서 급함을 알려드립니다.” 했다. 조조가 이에 글을 손책에게 보내 강을 건너 진을 쳐서 유표가 의병으로 여겨 감히 망년되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는 그날 군대를 돌려 별도로 장수를 정벌하는 일을 논의하였다. 행군에 즈음하여 유현덕은 그대로 군대를 소패에 주둔하게 하고 여포와는 결연하여 형제가 되어 서로 구원하고 도와 다시 서로 침범하지 않게 하였다.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서주로 돌아갔다. 조조가 비밀리에 유현덕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당신으로 하여금 군대를 소패에 주둔하게 한 것은 이는 구덩이를 파고 범을 기다린다.’는 계책입니다. 공은 다만 진규 부자와 상의하여 감히 잘못이 있지 않게 하십시오. 나는 마땅히 공을 위하여 밖에서 도울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헤어졌다.

 

卻說曹操引軍回許都人報段煨殺了李傕伍習殺了郭氾將頭來獻段煨並將李傕合族老小二百餘口活解入許都操令分於各門處斬傳首號令人民稱快天子陞殿會集文武作太平筵宴封段煨為盪寇將軍伍習為殄虞將軍各引兵鎮守長安二人謝恩而去操即奏張繡作亂當興兵伐之天子乃親排鑾駕送操出師時建安三年夏四月也

각설하고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허도로 돌아갔는데 사람들이 단외가 이각을 죽이고, 오습이 곽사를 죽여 머리를 가지고 와서 바친다고 보고하였다. 단외가 아울러 이각 가문의 노소 이백 여명을 산채로 잡아 데리고 허도에 들어왔다. 조조가 나누어 각문에서 머리를 베어 죽이게 하고, 머리를 전하도록 명령을 내리니 백성들이 칭송하고 유쾌하게 여겼다. 천자가 전각에 올라 문, 무관을 모아 태평 잔치를 열었다. 단외를 봉하여 탕구장군으로 삼고, 오습을 진우장군으로 삼고 각각 군대를 이끌고 장안을 지키게 하였다. 두 사람이 은혜에 감사하고 갔다. 조조가 곧 장수가 난을 일으켰으니 마땅히 군대를 일으켜 쳐야 한다고 아뢰었다. 천자가 이에 직접 수레를 배열하고 조조가 출정하는 것을 전송하였는데 이때는 건안 3년 여름 4월이다.


操留荀彧在許都調遣兵將自統大軍進發行軍之次見一路麥已熟民因兵至逃避在外不敢刈麥操使人遠近遍諭村人父老及各處守境官吏曰:「吾奉天子明詔出兵討逆與民除害方今麥熟之時不得已而起兵大小將校凡過麥田但有踐踏者並皆斬首軍法甚嚴爾民勿得驚疑。」百姓聞諭無不歡喜稱頌望塵遮道而拜官軍經過麥田皆下馬以手扶麥相傳送而過並不敢踐踏

조조는 순욱을 허도에 머물러 있게 하면서 군대를 배정하고 자신은 대군을 통솔하여 출발하였다. 행군할 때 길 옆에 보리가 이미 익은 것을 보았다. 백성들이 군대가 이름으로 인하여 도망하고 피하여 밖에 있으면서 감히 보리를 베지 못하였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원근에 두루 마을 사람과 부로와 각처의 경계를 지키는 관리들에게 깨우쳐 말하기를 내가 천자의 밝은 명을 받들어 군대를 내는 것은 역적을 토벌하고, 백성의 해를 없애려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보리가 익는 때인데도 부득이하게 군대를 일으키게 되어 대소의 장교들이 모두 보리밭을 지난다. 다만 보리를 밟는 자가 있다면 아울러 모두 머리를 베어 죽일 것이다. 군법이 매우 엄하니 너희 백성들은 놀라거나 의심하지 말라.” 했다. 백성들이 깨우침을 듣고 기뻐하고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고, 멀리 먼지가 이는 길을 바라보며 절하였다. 관군이 보리밭을 지날 때는 모두 말에서 내려 손으로 보리를 헤치면서 번갈아 서로 전하고 보내고 지나가는데 아울러 감히 밟지 않았다.

 

操乘馬正行忽田中驚起一鳩那馬眼生竄入麥中踐壞了一大塊麥田操隨呼行軍主簿擬議自己踐麥之罪主簿曰:「丞相豈可議罪?」操曰:「吾自制法吾自犯之何以服眾?」即掣所佩之劍欲自刎眾急救住郭嘉曰:「古者春秋之義法不加於尊丞相總統大軍豈可自戕?」操沉吟良久乃曰:「既春秋有法不加於尊之義吾姑免死。」乃以劍割自己之髮擲於地曰:「割髮權代首。」使人以髮傳示三軍曰:「丞相踐麥本當斬首號令今割髮以代。」於是三軍悚然無不懍遵軍令後人有詩論之曰

조조가 말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밭 가운데서 한 마리 비둘기가 놀라 일어나니 말이 낯설어 하여 달아나 보리 속으로 들어가 보리밭을 밟고 무너뜨려 하나의 큰 덩어리로 만들었다. 조조가 따르던 행군주부를 불러 자기가 보리를 밟은 죄를 입안하게 하였다. 주부가 말하기를 승상을 어떻게 죄를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지은 법을 내가 스스로 그것을 범하였으니 어떻게 무리들이 복종하겠는가?”하고는 곧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자기의 목을 찌르려 하였다. 무리들이 급히 말려 그쳤다. 곽가가 말하기를 옛날 춘추의 의리에서 높은 이에게는 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승상께서 대군을 총괄 통솔하는데 어찌 스스로 죽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조조가 오래도록 망설이다 이에 말하기를 이미 춘추에 높은 이에게 법을 더하지 않는 다는 의가 있다하니 내가 우선 죽음을 면할 것이다.” 했다. 이에 검으로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머리카락을 잘라 임시로 머리를 대신한다.”하고는 사람을 시켜 머리카락을 돌려 삼군이 보게 하고 말하기를 승상이 보리를 밟았는데 본래는 마땅히 머리를 베도록 명령해야 하지만 지금 머리털을 자르는 것으로서 대신한다.” 했다. 이에 삼군이 두려워 벌벌 떨면서 군령을 따르지 않음이 없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논한 것이 있다.


十萬貔貅十萬心一人號令眾難禁拔刀割髮權為首方見曹瞞詐術深

십만의 용맹한 군대는 십만의 마음이니 한 사람 호령으로 여럿을 금하기 어렵네. 칼을 뽑아 머리카락을 베어 잠시 머리를 삼았으니 바야흐로 조조의 거짓 술책 깊음을 보네.

 

卻說張繡知操引兵來急發書報劉表使為後應一面與雷敘張先二將領兵出城迎敵兩陣對圓張繡出馬指操罵曰:「汝乃假仁義無廉恥之人與禽獸何異!」操大怒令許褚出馬繡令張先接戰只三合許褚斬張先於馬下繡軍大敗操引軍趕至南陽城下繡入城閉門不出

각설하고 장수는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오는 것을 알고 급히 글을 보내 유표에게 보고하고 뒤에서 호응하게 하였다. 한 편으로 뇌선, 장선 두 장수와 군대를 거느리고 성을 나와 적을 맞이하게 하였다. 두 진영이 둥글게 대치하자 장수가 말을 타고 나와 조조를 가리키며 욕하여 말하기를 너는 곧 인의를 빌렸으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니 금수와 무엇이 다른가!” 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허저로 하여금 말을 타고 나가게 하니 장수가 장선으로 하여금 싸우게 하였다. 단지 삼합에 허저가 장선의 목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리니 장수의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 성 아래에 이르렀다. 장수가 성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操圍城攻打見城壕甚闊水勢又深急難近城乃令軍士運土填濠又用土布袋並柴薪草把相雜於城邊作梯凳又立雲梯窺望城中操自騎馬遶城觀之如此三日操傳令教軍士於西門角上堆積柴薪會集諸將就那裡上城

조조가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려는데 성의 해자가 매우 넓고, 물의 형세가 또한 깊은 것을 보고 급히 성에 가까이 가기 어려웠다. 이에 군사로 하여금 흙을 옮겨 해자를 메꾸게 하였다. 또 흙 포대와 섶을 써서 서로 섞어 성 가에 제등을 만들게 하였다. 또 운제를 세워 성 안을 엿보았다. 조조가 스스로 말을 타고 성을 돌면서 보았다. 이 같이 하기를 삼일을 하고, 조조가 군사로 하여금 명령을 전하여 서문 모퉁이에 장작과 섶을 쌓게 하고 여러 장수를 모아 성위로 올라가게 하였다.


城中賈詡見如此光景便謂張繡曰:「某已知曹操之意矣今可將計就計而行。」正是:「強中自有強中手用詐還逢識詐人。」不知其計若何且看下文分解

성 안의 가후가 이러한 광경을 보고 문득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제가 이미 조조의 뜻을 알았습니다. 지금 상대의 계책을 알고 반대로 그것을 이용하는 계책 쓸 만합니다.” 했다. 이는 바로 강함 가운데는 저절로 강함 속의 묘수가 들어있고, 거짓을 쓰려다 도리어 거짓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네.”이다. 그 계책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하지만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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