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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제18회 가문화(가후)가 적을 헤아려 승리를 결정짓고, 하후돈은 화살을 뽑고 눈동자를 먹다

by 최인표 2020. 3. 17.

第十八回賈文和料敵決勝夏侯惇拔失啖睛

18회 가문화(가후)가 적을 헤아려 승리를 결정짓고, 하후돈은 화살을 뽑고 눈동자를 먹다

 

卻說賈詡料知曹操之意便欲將計就計而行乃謂張繡曰:「某在城上見曹操遶城而觀者三日他見城東南角磚土之色新舊不等鹿角多半毀壞意將從此處攻進卻虛去西北上積草詐為聲勢欲哄我撤兵守西北彼乘夜黑必爬東南角而進也。」繡曰:「然則奈何?」詡曰:「此易事耳來日可令精壯之兵飽食輕裝盡藏於東南房屋內卻教百姓假扮軍士虛守西北夜間任他在東南角上爬城俟其爬進城時一聲砲響伏兵齊起操可擒矣。」

각설하고 가후가 조조의 듯을 헤아려 알고 곧 장계취계를 행하고자 하여 이에 장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성위에 있으면서 조조가 성을 둘러보는 것을 관찰한 것이 삼일입니다. 성 동남쪽 모퉁이 벽돌의 색이 다르고, 새로운 것과 옛 것이 고르지 않으며, 녹각이 반 넘게 훼손된 것을 보고 장차 이곳으로부터 공격할 것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헛되이 서북쪽에 가서 풀을 쌓는 것은 허장성세로 우리가 떨쳐 일어나 군대를 철수하여 서북쪽을 지키면 그들이 밤의 어둠을 틈 타 반드시 동남쪽 모퉁이를 기어서 나올 것입니다.” 했다. 장수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이는 쉬운 일입니다. 내일 정예롭고 건장한 병사로 하여금 배불리 먹이고 가볍게 무장한 후 모두 동남쪽 건물 안에 감추어 두고, 백성으로 하여금 거짓 군사로 꾸며 서북쪽을 지키게 하면 밤에 동남쪽 모퉁이에 있으면서 성에 기어오를 것입니다. 기어올라 성에 나아가는 때를 기다려 한 소리 포 소리에 복병을 일제히 일어나게 하면 조조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繡喜從其計早有探馬報曹操說張繡盡撤兵在西北角上吶喊守城東南卻甚空虛操曰:「中吾計矣!」遂命軍中密備鍬钁爬城器具日間只引軍攻西北角至二更時分卻領精兵於東南角上爬入濠去砍開鹿角城中全無動靜眾軍一齊擁只聽得一聲砲響伏兵四起曹軍急退背後張繡親驅勇壯殺來曹軍大敗退出城外奔走數十里張繡直殺至天明方收軍入城曹操計點敗軍已折五萬餘人失去輜重無數呂虔于禁俱各被傷

장수가 기뻐하며 그 계책을 따랐다. 곧 말탄 정찰병이 조조에게 보고하기를 장수가 군대를 모두 철수시켜 서북쪽 모퉁이 위에 있으면서 함성을 지르며 성을 지키게 하고, 동남쪽은 매우 비워두었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나의 계책이 적중하였구나!”하고는 마침내 군중에 명하여 비밀리에 가래와 괭이, 성을 기어오르는 도구를 준비하게 하고 낮에는 군대를 이끌고 서북쪽 모퉁이를 공격하다 이경 때에 이르러 정예 군대를 거느리고 동남쪽 모퉁이에서 성을 기어오르기 위해 해자를 건너 가 녹각을 부수고 열었다. 성 안은 완전히 동정이 없었고, 여러 군사가 일제히 밀어 닥쳤다. 한 소리 포 소리가 들리고 복병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조조의 군대가 급히 물러나는데 뒤에서 장수가 직접 용감한 장사를 몰아 쇄도해 들어왔다. 조조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물러나 성 밖으로 나와 수십 리를 달아났다. 장수가 곧 바로 쇄도하여 날이 밝아질 즈음 군대를 거두어 성에 들어갔다. 조조가 패한 군대를 헤아리고 점검하니 이미 오십여 만명이 꺾였고, 잃어버린 보급품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여건과 우금이 모두 각각 상처를 입었다.

 

卻說賈詡見操敗走急勸張繡遺書劉表使起兵截其後路表得書即欲起兵忽探馬報孫策屯兵湖口良曰:「策屯兵湖口乃曹操之計也今操新敗若不乘勢擊之後必有患。」表乃令黃祖堅守隘口自己統兵至安眾縣截操後路一面約會張繡繡知表兵已起即同賈詡引兵襲操

각설하고 가후는 조조가 패하여 달아나는 것을 보고 급히 장수를 권하여 유표에게 글을 보내 군대를 일으켜 그 뒤의 길을 끊게 하였다. 유표가 글을 받고 곧 군대를 일으키려하는데 갑자기 말을 타는 척후병이 손책이 군대를 호구에 주둔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괴량이 말하기를 손책이 주둔한 것은 곧 조조의 계책입니다. 지금 조조가 새로이 패하였는데 만약 형세를 타고 그를 치지 않는다면 후에 반드시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했다. 유표가 이에 황조로 하여금 험하고 좁은 목을 굳게 지키게 하고 자기는 군대를 거느리고 안중현에 이르러 조조의 뒷길을 끊고, 한 편으로는 장수에게 만날 것을 약속하였다. 장수는 유표가 군대를 이미 일으켰음을 알고 곧 가후와 함께 군대를 이끌고 조조를 습격하였다.


且說操軍緩緩而行至襄城到淯水操忽於馬上放聲大哭眾驚問其故操曰:「吾思去年於此地折了吾大將典韋不由不哭耳!」因即下令屯住軍馬大設祭筵弔奠典韋亡魂操親自拈香哭拜三軍無不感嘆祭典韋畢方祭姪曹安民及長子曹昂并祭陣亡軍士連那匹射死的大宛馬也都致祭

그런데 각설하고 조조의 군대가 천천히 행군하여 양성, 육수에 이르자 조조가 갑자기 말위에서 소리 내어 크게 곡하였다. 여럿이 놀라 그 이유를 물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지난 해 이 땅에서 우리의 대장 전위를 잃었으므로 곡하지 않을 수 없구나!” 하고는 영을 내려 군마를 주둔하게 하고 크게 제사를 지내 전위의 혼령에게 조문하였다. 조조가 직접 스스로 향을 집어 곡하며 절하니 삼군이 감탄하지 않음이 없었다. 전위의 제사를 마치고 막 조카 조안민과 장자 조앙을 제사하고, 아울러 진에서 죽은 군사를 제사하였다. 이어 화살에 맞아 죽은 대완마도 제사하였다.


次日忽荀彧差人報說:「劉表助張繡屯兵安眾截吾歸路。」操答彧書曰:「吾日行數里非不知賊來追我然吾計劃已定若到安眾破繡必矣君等勿疑。」便催軍行至安眾縣界劉表軍已守險要張繡隨後引軍趕來操乃令眾軍黑夜鑿險開道暗伏奇兵

다음 날 홀연히 순욱이 사람을 보내 보고하기를 유표가 장수를 도와 군대를 안중에 주둔하여 우리가 돌아가는 길을 끊으려 합니다.” 했다. 조조가 순욱에게 답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매일 수리를 행군하는데 적이 우리를 추격해 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계획이 이미 정하여졌으니 만약 안중에 이르면 장수는 깨트려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했다. 곧 군대의 행군을 재촉하여 안중현계에 이르렀다. 유표의 군대가 이미 험한 요해처를 지키고 장수가 뒤를 따라 군대를 이끌고 쫓아왔다. 조조가 이에 여러 군대를 이끌고 깜깜한 밤에 험한 곳을 뚫고 길을 열면서 기병을 몰래 매복시켰다.

 

及天色微明劉表張繡軍會合見操兵少疑操遁去俱引兵入險擊之操縱奇兵出大破兩家之兵曹兵出了安眾界口於隘外下寨劉表張繡各整敗兵相見表曰:「何期反中曹操奸計!」繡曰:「容再圖之!」於是兩軍集於安眾

하늘이 어스름 밝아질 때 유표, 장수의 군대가 만났는데 조조의 군대가 적은 것을 보고 조조가 도망해 갔다 의심하며, 같이 군대를 이끌고 험한 곳에 들어가 쳤다. 조조가 기병을 놓아 나와 크게 두 개의 군대를 깨트렸다. 조조의 군대가 안중의 경계 입구를 나와 좁은 곳 밖에 영채를 만들었다. 유표와 장수가 각각 패한 군대를 정비하여 서로 만났다. 유표가 말하기를 어찌 도리어 조조의 간계에 빠질 것을 생각이나 했겠는가!”하니 장수가 말하기를 다시 도모합시다!”하였다. 이에 두 개의 군대가 안중에 모였다.


且說荀彧探知袁紹欲興兵犯許都星夜馳書報曹操操得書心慌即日回兵細作報知張繡繡欲追之賈詡曰:「不可追也追之必敗。」劉表曰:「今日不追坐失機會矣。」力勸繡引軍萬餘同往追之約行十餘里趕上曹軍後隊曹軍奮力接戰表兩軍大敗而還繡謂詡曰:「不用公言果有此敗。」詡曰:「今可整兵再往追之。」繡與表俱曰:「今已敗奈何復追?」詡曰:「今番追去必獲大勝如其不然請斬吾首。」繡信之劉表疑慮不肯同往繡乃自引一軍往追操兵果然大敗軍馬輜重連路散棄而走

그런데 각설하고 순욱이 원소가 군대를 일으켜 허도를 범하려한다는 것을 탐지하고는 밥을 세워 글을 보내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조조가 글을 보고는 마음으로 다급하게 그날 군대를 돌렸다. 첩자가 장수에게 보고하여 알리니 장수다 추격하고자 하였다. 가후가 말하기를 추격해서는 안 되며, 추격하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오늘 추격하지 않는다면 앉아서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하고는 힘껏 장수를 권하여 군대 만여 명을 이끌고 함께 추격해 갔다. 약 십여 리를 행군하여 조조 군대의 뒤를 쫓아갔다. 조조의 군대가 분발하여 힘껏 싸우니 장수, 유표의 두 군대가 크게 패하고 돌아갔다. 장수가 가후에게 밀러 말하기를 공의 말을 쓰지 않아 과연 이 패배가 있었다.”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지금은 군대를 정비하여 다시 추격할 만합니다.” 하니 장수와 유표가 모두 말하기를 지금 이미 패하였는데 어찌 다시 추격하라 하는가?”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지금 따라가면 반드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제 머리를 베어주십시오.” 했다. 장수가 그것을 믿었다. 유표가 의심하고 걱정하여 즐겨 함께 가지 않았다. 장수가 이에 스스로 한 군대를 거느리고 추격하였는데 과연 조조의 군대가 과연 크게 무너지고, 군마와 보급품을 길을 따라 버리고 달아났다.


繡正往前追趕忽山後一彪軍擁出繡不敢前追收軍回安眾劉表問賈詡曰:「前以精兵追退兵而公曰必敗後以敗卒擊勝兵而公曰必克究竟悉如公言何其事不同而皆驗也願公明教我。」詡曰:「此易知耳將軍雖善用兵非曹操敵手操軍雖敗必有勁將為殿以防追兵我兵雖銳不能敵之也故知必敗夫操之急於退兵者必因許都有事既破我追軍之後必輕車速回不復為備我乘其不備而更追之故能勝也。」劉表張繡俱服其高見詡勸表回荊州繡守襄城以為脣齒兩軍各散

장수가 바로 앞서 뒤쫓아 가는데 갑자기 산 뒤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밀어닥쳤다. 장수가 감히 앞으로 쫓아가지 못하고, 군대를 거두어 안중에 돌아갔다. 유표가 가후에게 물어 말하기를 앞서 정예군대로 물러나는 군대를 추격하였을 때 공은 반드시 패할 것이라 말하였고, 후에 패한 군졸로 이긴 군대를 치는데도 공은 반드시 이길 것이라 말하였는데 마침내 모두 공의 말과 같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같지 않음에도 모두 증명할 수 있었습니까? 공은 나에게 밝은 가르침을 원합니다.” 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이는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장군이 비록 군대를 잘 운용하니 조조는 적수가 아닙니다. 조조가 비록 패하였으나 반드시 굳센 장군이 있어 후군으로 삼음으로서 추격하는 군대를 막으면 우리 군대가 반드시 비록 날카로울지라도 대적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패할 것을 알았습니다. 대저 조조가 급하게 군대를 물리는 것은 반드시 허도에 일이 있기 때문인데 이미 우리의 추격하는 군대를 깨트린 후일 것이므로 반드시 가벼운 수레로 속히 돌아가려 할 것이므로 다시 대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대비하지 않음을 타서 다시 추격하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했다. 유표와 장수가 모두 그 높은 견해에 감복했다. 가후가 유표는 형주로 돌아가게 하고, 장수는 양성을 지켜 입술과 이빨을 삼게 하는 것을 권하는 것으로서 두 개의 군대는 각기 흩어졌다.

 

且說曹操正行間聞報後軍為繡所追急引眾將回身救應只見繡軍已退敗兵回告操曰:「若非山後這一路人馬阻住中路我等皆被擒矣。」操急問何人那人綽槍下馬拜見曹操乃鎮威中郎將江夏平春人姓李名通字文達操問何來通曰:「近守汝南聞丞相與張繡劉表戰特來接應。」操喜封通為建功侯守汝南西界以防表李通拜謝而去

그런데 각설하고 조조가 바로 행군하는 사이에 후군이 장수에게 추격당했다는 보고를 듣고 급히 여러 장수를 이끌고 몸을 돌려 구원하였다. 장수의 군대가 이미 물러난 것을 보고, 패한 군대가 돌아가 조조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만약 산 뒤에서 한 갈래의 인마가 중간 길을 망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모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했다. 조조가 어 떤 사람인지를 물으니 그 사람이 창을 잡고 말에서 내려 조조에게 절하며 뵈었는데 곧 진위중낭장 강하 평춘 사람인데 성은 이이고, 이름은 통이며 자는 문달이었다. 조조가 어떻게 왔는지를 물었다. 이통이 말하기를 근래에 여남을 지키다가 승상과 장수, 유표가 싸운다는 것을 듣고 와서 호응하여 싸웠습니다.” 했다. 조조가 기뻐하며 이통을 봉하여 건공후로 삼고, 여남의 서쪽 경계를 지키는 것으로서 유표와 장수를 막게 하였다. 이통이 절하며 감사하고 갔다.


操還許都表奏孫策有功封為討逆將軍賜爵吳侯遣使齎詔江東諭令防剿劉表操回府眾官參見畢荀彧問曰:「丞相緩行至安眾何以知必勝賊兵?」操曰:「彼退無歸路必將死戰吾緩誘之而暗圖之是以知其必勝也。」

조조가 허도에 돌아가 표를 올려 손책이 공이 있음을 아뢰고, 봉하여 토역장군으로 삼고, 오후의 작을 내리고, 사자를 보내 조서를 가지고 강동에 가게하고 유표가 노략질하는 것을 막으라는 조칙을 내렸다. 조조가 부에 돌아가니 여러 관리들이 뵙기를 마쳤다. 순욱이 물어 말하기를 승상이 천천히 행군하여 안중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적병에게 이길 것을 알았습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그들이 물러나 돌아갈 길이 없으니 반드시 장차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것이니 내가 천천히 유인하여 몰래 도모하였다. 이 때문에 반드시 이길 것을 알았다.” 했다.

 

荀彧拜服郭嘉入操曰:「公來何暮也?」嘉袖出一書白操曰:「袁紹使人致書承相言欲出兵攻公孫瓚特來借糧借兵。」操曰:「吾聞紹欲圖許都今見吾歸又別生他議。」遂拆書觀之見其詞意驕慢乃問嘉曰:「袁紹如此無狀吾欲討之恨力不及如何?」

순욱이 절하며 탄복하였다. 곽가가 들어가니 조조가 말하기를 공은 오는 것이 어찌 늦었는가?”하니 곽가가 소매에서 글 한 통을 내고, 조조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원소가 가람을 시켜 승상에게 글을 보냈는데 군대를 내어 공손찬을 공격하고자 하여 특히 식량과 군대를 빌리려 합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나는 원소가 허도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내가 돌아 온 것을 듣고 또한 별도로 다른 의논을 낸 것이다.” 했다. 마침내 글을 열어 보았다. 그 말의 뜻이 교만한 것을 보고는 이에 곽가에게 물어 말하기를 원소가 이 같이 버릇이 없으니 내가 토벌하고자하나 힘이 미치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데 어떠한가?” 했다.


嘉曰:「劉項之不敵公所知也高祖惟智勝項羽雖強終為所擒今紹有十敗公有十勝紹兵雖盛不足懼也紹繁禮多儀公體任自然此道勝也紹以逆動公以順率此義勝也靈以來政失於寬紹以寬濟公以猛糾此治勝也紹外寬內忌所任多親戚公外簡內明用人惟才此度勝也紹多謀少決公得策輒行此謀勝也紹專收名譽公以至誠待人此德勝也紹恤近忽遠公慮無不周此仁勝也紹聽讒惑亂公浸潤不行此明勝也紹是非混淆公法度嚴明此文勝也紹好為虛勢不知兵要公以少克眾用兵如神此武勝也。─公有此十勝於以敗紹無難矣。」

곽가가 말하기를 유방을 항우가 대적하지 못한 것은 공이 아는 바입니다. 고조께서는 오로지 지혜로 이기고 항우는 비록 강하였으나 끝내 사로잡힌 바가 되었습니다. 지금 원소는 열 가지 패배할 조건이 있고, 공은 열 가지 승리의 조건이 있습니다. 원소의 군대는 비록 성대하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원소는 예가 번거롭고 의식이 많고, 공은 몸으로 맡음이 자연스러우니 이는 이기는 도입니다. 원소는 거슬러 움직이지만 공은 순리로 통솔하니 이는 의에서 이깁니다. 환제와 영제 이래로 정사는 너그러움에서 잘못되었는데 원소는 너그러움으로서 이루었고, 공은 엄격하게 관리감독하니 이는 다스림에서 이깁니다. 원소는 밖은 너그러우나 안은 꺼리고, 맡기는 바가 친척이 많은데 공은 밖은 간명하나 안은 밟고, 사람을 등용함은 오직 재능으로 하시니 이는 법도에서 이깁니다. 원소는 꾀가 많으나 결단함이 부족하고 공은 계책을 얻으면 바로 행하니 이는 꾀에서 이깁니다. 원소는 오로지 명예를 거두기만 하나 공은 지극한 정성으로 사람을 대우하니 이는 덕에서 이깁니다. 원소는 가까운 이를 구휼하고 먼 이를 소홀히 하는데 공은 생각하기를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인에서 이깁니다. 원소는 참소함을 듣고 의혹하여 어지럽지만 공은 (참소에)무젖어도 행하지 않으니 이는 밝음에서 이깁니다. 원소는 옳고 그름이 혼란한데 공은 법도가 엄하고 밝으니 이는 법에서 이깁니다. 원소는 허세부리기를 좋아하지만 군대의 요체를 알지 못하고, 공은 무리를 이기는 것은 부족하지만 군대를 쓰는 것은 신과 같으니 이는 무에서 이깁니다. 공은 이 열 가지 이기는 조건이 있으니 원소를 패하게 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까닭입니다.


操笑曰:「如公所言孤何足以當之?」荀彧曰:「郭奉孝十勝十敗之說正與愚見相合紹兵雖眾何足懼耶!」嘉曰:「徐州呂布實心腹大患今紹北征公孫瓚我當乘其遠出先取呂布掃除東南然後圖紹乃為上計否則我方攻紹布必乘虛來犯許都為害不淺也。」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공이 말한 바와 같은 것을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니 순욱이 말하기를 곽효봉(곽가)의 십승십패의 설은 바로 저와 경해가 서로 부합합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리오!” 했다. 곽가가 말하기를 서주의 여포는 실로 마음과 배의 큰 근심입니다. 지금 원소가 북쪽으로 공손찬을 정벌하려 하니 우리는 마땅히 그 멀리 나감을 타서 먼저 여포를 취하여 동남을 쓸고 없앤 후 원소를 도모하는 것이 곧 좋은 계책이 됩니다. 아니면 곧 우리가 바야흐로 원소를 공격하면 여포는 반드시 빈 것을 타고 와서 허도를 범할 것이니 해 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操然其言遂議東征呂布荀彧曰:「可先使人往約劉備待其回報方可動兵。」操從之一面發書與玄德一面厚遣紹使奏封紹為大將軍太尉兼都督冀并四州密書答之云:「公可討公孫瓚吾當相助。」紹得書大喜便進兵攻公孫瓚

조조가 그 말을 그렇다하고 마침내 동쪽으로 여포를 정벌할 것을 의논하였다. 순욱이 말하기를 먼저 사람을 시켜 유비에게 가서 약속하게 하고, 그 회보를 기다려 바야흐로 군대를 동원해야 합니다.” 하니 조조가 그것을 따르는 한편으로 글을 써서 유현덕에게 주고, 한편으로 원소의 사신을 후히 대접해 보내고 아뢰어 원소를 봉하여 대장군태위를 삼고 겸하여 기주, 청주, 유주, 병주 네 개 주를 모두 다스리게 하고, 밀서로 답하여 말하기를 공이 공손찬을 토벌하면 나는 마땅히 서로 도울 것입니다.” 했다. 원소가 글을 받고는 크게 기뻐하여 곧 진군하여 공손찬을 공격하였다.

 

且說呂布在徐州每當賓客宴會之際陳珪父子必盛稱布德陳宮不悅乘間告布曰:「陳珪父子面諛將軍其心不可測宜善防之。」布怒叱曰:「汝無端獻讒欲害好人耶?」宮出歎曰:「忠言不入吾輩必受殃矣。」意欲棄布他往卻又不忍又恐被人嗤乃終日悶悶不樂

그런데 각설하고 여포가 서주에 있으면서 매번 빈객을 맞아 연회할 때면 진규 부자는 반드시 여포의 덕을 성대히 칭송하였다. 진궁이 기뻐하지 않고 틈을 타서 여포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진규 부자가 장군 면전에서 아첨하여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으니 마땅히 잘 막아야 합니다.” 했다. 여포가 성내며 질책하여 말하기를 너는 단서 없이 참소를 올려서 좋은 사람을 해치고자 하는가?”하였다. 진궁이 나오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충성스러운 말을 들이지 않으니 우리들은 반드시 재앙을 받을 것이다.” 하고는 마음속으로 여포를 버리고 다른 곳에 가고자 하였으나 또한 차마 하지 못하겠고, 또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받을 것이 두렵고, 이에 종일토록 울적하여 즐겁지 않았다.


一日帶領數騎去小沛地面圍獵解悶忽見官道上一騎驛馬飛奔前去宮疑之棄了圍場引從騎從小路趕上問曰:「汝是何處使命?」那使者知是呂布部下人慌不能答陳宮令搜其身得玄德回答曹操密書一封宮即連人與書拿見呂布布問其故來使曰:「曹丞相差我往劉豫州處下書今得回書不知書中所言何事。」布乃拆書細看書略曰

하루는 몇 명의 기병을 데리고 소패에 가 사냥을 하면서 고민을 풀려하다가 갑자기 관도 위에서 하나의 역마를 보았는데 날듯이 앞으로 갔다. 진궁이 의심하여 수렵장을 버리고 기병을 이끌고 작은 길을 따라 쫓아가 물어 말하기를 너는 어느 곳의 명을 전하는가?”하니 이 사자가 이는 여포의 부하 사람인 것을 알고는 황망하여 답하지 못하였다. 진궁이 그 몸을 수색하여 유현덕이 조조에게 회답하는 밀서 한 통을 얻었다. 진궁이 곧 사람을 글과 함께 글고 여포를 만났다. 여포가 그 이유를 물었다. 사자가 말하기를 조 승상이 나를 보내 유예주(유현덕)가 있는 곳에 가서 글을 전하고 지금 회답하는 글을 받았는데 글 가운데 말한 바가 어떤 일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했다. 여포가 이에 글을 열어 세밀히 살펴보았다. 글에 대략적으로 말하기를

 

奉明命欲圖呂布敢不夙夜用心但備兵微將少不敢輕動丞相若興大師備當為前驅謹嚴兵整甲專待鈞命

밝은 명을 받들어 여포를 도모하고자 하는데 감히 밤낮으로 마음을 쓰지 않겠습니까? 다만 저는 군대가 미미하고 장수가 적어 감히 가벼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승상이 만약 큰 군사를 일으키면 저는 마땅히 선봉이 될 것입니다. 삼가 군대를 엄격히 하고 무기를 정돈하여 오로지 귀하의 명을 기다리겠습니다. 는 것이었다.


呂布見了大驚曰:「操賊焉敢如此!」遂將使者斬首先使陳宮臧霸結連泰山寇孫觀吳敦尹禮昌豨東取山東兗州諸郡令高順張遼取沛城攻玄德令宋憲魏續西取汝布自總中軍為三路救應

여포가 보기를 마치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조적(조조)이 어찌 감히 이 같이 할 수 있는가!”하고는 마침내 사자의 목을 베어 죽이게 하고, 먼저 진궁, 장패로 하여금 태산의 도적 손관, 오돈, 윤례, 창희와 맺어 동쪽으로 산동, 연주 여러 군을 취하게 했다. 고순, 장요로 하여금 패성을 취하고, 유현덕을 공격하게 했다. 송헌, 위속으로 하여금 서쪽으로 여와 영을 취하게 했다. 여포는 스스로 중군을 총괄하여 세 길로 구원하고 응원하였다.

 

且說高順等引兵出徐州將至小沛有人報知玄德玄德急與眾商議孫乾曰:「可速告急於曹操。」玄德曰:「誰可去許都告急?」階下一人出曰:「某願往。」視之乃玄德同郡人姓簡名雍字憲和現為玄德幕賓玄德即修書付簡雍使星夜赴許都求援一面整頓守城器具玄德自守南門孫乾守北門雲長守西門張飛守東門令糜竺與其弟糜芳守護中軍原來糜竺有一妹嫁與玄德為次妻玄德與他兄弟有郎舅之親故令其守中軍保護妻小

그런데 고순 등이 군대를 이끌고 서주를 나와 소패에 이르려하는데 어떤 사람이 유현덕에게 보고하여 알렸다. 유현덕이 급히 무리와 상의하였다. 손건이 말하기를 속히 조조에게 급함을 알려야 합니다.”하니 유현덕이 말하기를 누가 허도에 가서 급함을 알릴 것인가?”하니 계단 아래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제가 가기를 원합니다.” 했다. 그를 보니 곧 유현덕과 같은 군사람으로 성은 간이고, 이름은 옹이며, 자는 헌화로 현재는 유현덕 막하의 빈객이 되었다. 유현덕이 글을 지어 간옹에게 주어 밤에 허도에 나아가 구원을 청하게 하였다. 한편으로 성을 지키는 기구를 정돈하였다. 유현덕이 스스로 남문을 지키고, 손건은 북문을 지키고, 관운장은 서문을 지키고 장비는 동문을 지키고, 미축과 그 동생 미방으로 하여금 중군을 지키고 보호하게 하였다. 원래 미축에게는 한 누이가 있었는데 유현덕과 혼인하여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유현덕과 다른 형제도 매부와 처남의 친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중군을 지키면서 아내와 자녀를 지키게 한 것이다.


高順軍至玄德在敵樓上問曰:「吾與奉先無隙何故引兵至此?」順曰:「你結連曹操欲害吾主今事已露何不就縛?」言訖便麾軍攻城玄德閉門不出次日張遼引兵攻打西門雲長從城上謂之曰:「公儀表非俗何故失身於賊?」張遼低頭不語雲長知此人有忠義之氣更不以惡言相加亦不出戰

고순의 군대가 이르자 유현덕이 성루 위에 있으면서 물어 말하기를 나와 봉선(여포)은 틈이 없었는데 무슨 이유로 군대를 이끌고 여기에 이르렀는가?”하였다. 고순이 말하기를 너는 조조와 맺어 우리 주군을 해치고자 하다가 지금 이미 탄로났는데 어찌 결박에 나아가지 않는가?”하였다. 말을 마치고는 곧 군대를 지휘하여 성을 공격하였다. 유현덕이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다음 날 장요가 군대를 이끌고 서문을 공격하여 쳤다. 관운장이 성 위에서 일러 말하기를 공의 몸가짐과 예절을 갖춘 태도가 속되지 않은데 무엇 때문에 도적에게 절개를 잃습니까?”하니 장요가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관운장은 이 사람이 충의의 기개가 있음을 알고는 다시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또한 나가 싸우지도 않았다.

 

遼引兵退至東門張飛便出迎戰早有人報知關公關公急來東門看時只見張飛方出城張遼軍已退飛欲追趕關公急召入城飛曰:「彼懼而退何不追之?」關公曰:「此人武藝不在你我之下因我以正言感之頗有自悔之心故不與我等戰耳。」飛乃悟只令士卒堅守城門更不出戰

장요가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 동문에 이르니 장비가 곧 나와 맞아 싸웠다. 급히 어떤 사람이 관공(관운장)에게 보고하여 알렸다. 관운장이 급히 동문에 와서 때를 보니 장비가 막 성을 나가는데 장요의 군대는 이미 물러났다. 장비가 쫓아가려하는데 관운장이 급히 불러 성에 불러들였다. 장비가 말하기를 그가 두려워하여 물러나는데 어찌하여 추격하지 않습니까?” 하니 관운장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무예가 너와 나의 아래에 있지 않다. 때문에 내가 바른 말로 그를 느끼게 하여 자못 스스로 뉘우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과 싸우지 않았을 뿐이다.” 했다. 장비가 이에 깨닫고 사졸로 하여금 성문을 굳게 지키게 하고 다시 나가 싸우지 않았다.


卻說簡雍至許都見曹操具言前事操即聚眾謀士議曰:「吾欲攻呂布不憂袁紹掣肘只恐劉表張繡擾其後耳。」荀攸曰:「二人新破未敢輕動呂布驍勇若更結連袁術縱橫淮急難圖矣。」郭嘉曰:「今可乘其初叛眾心未附疾往擊之。」

각설하고 간옹이 허도에 이르러 조조를 만나 앞의 일을 갖추어 말하였다. 조조가 곧 여러 모사를 모아 의논하여 말하기를 내가 여포를 공격하려 할 때 원소의 방해는 근심하지 않지만 다만 유표와 장수가 그 뒤를 소란스럽게 할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했다. 순유가 말하기를 두 사삼은 최근에 깨트려져서 감히 가벼이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여포의 사납고 날쌤으로 만약 다시 원술과 맺어 연결된다면 회수와 사수를 종횡하여 급히 도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했다. 곽가가 말하기를 지금 처음 배반함을 타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미처 붙지 않았을(합해지지 않았을) 때 빠르게 가서 공격해야 합니다.” 했다.


操從其言即命夏侯惇與夏侯淵呂虔李典領兵五萬先行自統大軍陸續進發簡雍隨行早有探馬報知高順順飛報呂布布先令侯成曹性引二百餘騎接應高順使離沛城三十里去迎曹軍自引大軍隨後接應

조조가 그 말에 따라 곧 하후돈과 하후연, 여건, 이전에게 명하여 군대 오만을 거느리고 먼저 가게하고, 스스로는 대군을 통솔하여 끊임없이 출발하게 하고 간옹이 따라 가게 하였다. 급히 정찰하는 기병이 고순에게 보고하여 알렸다. 고순이 날듯이 여포에게 보고하였다. 여포가 후성, 학맹, 조성으로 하여금 이백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고순에 호응하여 행동하게 하면서 패성에서 삼십 리 떨어진 곳에서 조조의 군대를 맞아 싸우게 하고,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뒤를 따라 호응하여 행동하게 하였다.

 

玄德在小沛城中見高順退去知是曹家兵至乃只留孫乾守城糜竺糜芳守家自己卻與關張二公提兵盡出城外分頭下寨接應曹軍

유현덕이 소패 성 안에 있으면서 고순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 조조의 군대가 이르렀음을 알았다. 이에 손건이 머물러 성을 지키게 하고, 미축, 미방은 가문을 지키게 하며, 자기는 관운장, 장비 두 공과 함께 군대를 데리고 모두 성 밖으로 나와 머리를 나누어 영채를 세우고 조조의 군대에 호응하여 행동하였다.


卻說夏侯惇引軍前進正與高順軍相遇便挺槍出馬搦戰高順迎敵兩馬相交戰有四五十合高順抵敵不住敗下陣來惇縱馬追趕順遶陣而走惇不捨亦遶陣追之陣上曹性看見暗地拈弓搭得真切一箭射去正中夏侯惇左目惇大叫一聲急用手拔箭不想連眼珠拔出乃大呼曰:「父精母血不可棄也!」遂納於口內啖仍復挺槍縱馬直取曹性性不及提防早被一槍搠透面門死於馬下兩邊軍士見者無不駭然

각설하고 하후돈이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다 바로 고순의 군대와 서로 만나자 곧 창을 들고 말을 타고 나와 싸움을 걸었다. 고순이 적을 맞이하였다. 두 말이 서로 교차하며 사, 오십 합을 싸웠는데 고순이 적을 막지 못하고 패하여 진영으로 갔다. 하후돈이 말을 타고 쫓으니 고순이 진영을 둘러 달아 났다. 하후돈이 멈추지 않고 또한 진영을 둘러 추격하였다. 진영 위에서 조성이 보고 있다가 몰래 땅의 활을 잡아 화살을 걸고 기회를 엿보다가 뚜렷해지자 한 개의 화살을 쏘았는데 바로 하후돈의 왼쪽 눈에 적중하였다. 하후돈이 크게 한 소리를 외치면서 급히 손으로 화살을 뽑았는데 생가지 않게 눈알이 뽑혀 나왔다. 이에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는 버릴 수 없도다!” 하고는 마침내 입 안에 넣어 먹고는 곧 다시 창을 들고 말을 타고 곧 바로 조성을 취하였다. 조성이 제방에 미치지 못하고 급히 한 창으로 푹 찔러 얼굴을 뚫으니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양 측 군사들이 보고는 놀라지 않음이 없었다.

 

夏侯惇既殺曹性縱馬便回高順從背後趕來麾軍齊上曹軍大敗夏侯淵救護其兄而走呂虔李典將敗軍退去濟北下寨高順得勝引軍回擊玄德恰好呂布大軍亦至布與張遼高順分兵三路夾攻玄德張三寨正是啖睛猛將雖能戰中箭先鋒難久持未知玄德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하후돈이 조성을 죽이고 나서 말을 타고 곧 돌아왔다. 고순이 뒤로부터 쫓아와 휘하의 군대를 일제히 돌격하니 조조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하후연이 그 형을 구하여 보호하면서 달아났다. 여건, 이전이 패한 군대를 거느리고 제북으로 물러나 영채를 세웠다. 고순이 승리를 얻고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유현덕을 쳤는데 마침 여포의 대군이 또한 이르렀다. 여포와 장요, 고순이 군대를 세 길로 나누어 유현덕, 관운장, 장비의 세 영채를 협공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눈알을 먹은 사나운 장수 비록 잘 싸우나 화살에 맞아 선봉 오래 지니기 어렵다. 유현덕이 이길지 질지를 알지 못하겠구나. 아래 글에서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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