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九回:下邳城曹操鏖兵,白門樓呂布殞命
제19회 하비성에서 조조는 격전을 치르고, 백문루에서 여포는 목숨을 잃다.
卻說高順引張遼擊關公寨,呂布自擊張飛寨,關、張各出迎戰,玄德引兵兩路接應。呂布分軍從背後殺來,關,張兩軍皆潰,玄德引數十騎奔回沛城。呂布趕來,玄德急喚城上軍士放下弔橋。呂布隨後也到。城上欲待放箭,又恐射了玄德。被呂布乘勢殺入城門,把門將士,抵敵不住,都四散奔避。呂布招軍入城。玄德見勢已急,到家不及,只得棄了妻小,穿城而過,走出西門,匹馬逃難。
각설하고 고순이 장요를 이끌고 관운장의 영채를 치고, 여포는 스스로 장비의 영채를 치니 관운장과 장비가 각각 나가 맞아 싸웠다. 유현덕은 군대를 이끌고 두 길로 호응하여 행동하였다. 여포가 군대를 나누어 뒤로부터 쇄도하니 관운장과 장비 두 군대가 모두 무너지자 유현덕은 수십 기를 이끌고 달려 패성에 돌아갔다. 여포가 쫓아오니 유현덕이 급히 성 위의 군사를 불러 조교를 내렸다. 여포가 뒤따라 이르렀다. 성 위에서 화살을 쏘고자 하였으나 또한 유현덕을 쏘게 될까 두려워하였다. 여포가 승세를 타고 성문에 쇄도하자 문을 지키는 장사가 적을 막지 못하고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피하였다. 여포가 군대를 불러 성에 들어갔다. 유현덕이 형세가 이미 급박한 것을 보았으나 집에 이르지 못하고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성을 뚫고 달아나 서문을 나와 말 한 마리를 타고 어려움에서 도망하였다.
呂布趕到玄德家中,糜竺出迎,告布曰:「吾聞大丈夫不廢人之妻子。今與將軍爭天下者,曹公耳。玄德常念轅門射戟之恩,不敢背將軍也。今不得已而投曹公,惟將軍憐之。」布曰:「吾與玄德舊交,豈忍害他妻子?」便令糜竺引玄德妻小,去徐州安置。布自引軍投山東兗州境上,留高順、張遼守小沛。此時孫乾已逃出城外。關、張二人亦各自收得些人馬,往山中住劄。
여포가 쫓아가 유현덕의 집 안에 이르니 미축이 나와 맞으며 여포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대장부는 다른 사람의 처자를 없애지 않는다 합니다. 지금 장군과 천하를 다투는 자는 조조일 뿐입니다. 유현덕이 항상 원문에서 극을 쏜 은혜를 생각하여 감히 장군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부득이하게 조조에게 나아갔으니 장군께서는 불쌍하게 여겨주십시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나와 유현덕은 옛날에 사귀었는데 어찌 차마 다른 사람의 처자를 해치겠습니까?” 했다. 곧 미축으로 하여금 유현덕의 처자를 이끌고 서주에 가서 편안히 지내게 하였다. 여포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산동 예주 경계에 나아가고 고순, 장요를 머물게하여 소패를 지키게 하였다. 이 때 손건이 이미 도망하여 성 밖에 나왔다. 관운장, 장비 두 사람이 또한 스스로 미축의 인마를 거두어 산중으로 가서 머물렀다.
且說玄德匹馬逃難,正行間,背後一人趕至,視之乃孫乾也。玄德曰:「吾今兩弟不知存亡,妻小失散,為之奈何?」孫乾曰:「不若且投曹操,以圖後計。」玄德依言,尋小路投許都。途次絕糧,嘗往村中求食。但到處,聞劉豫州,皆爭進飲食。一日,到一家投宿,其家一少年出拜,問其姓名,乃獵戶劉安也。
그런데 유현덕이 필마로 도망하여 가던 중에 뒤에서 한 사람이 쫓아왔는데 그를 보니 손건이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두 동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하고, 처자식은 흩어졌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했다. 손건이 말하기를 “조조에게 가서 후일의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하니 유현덕이 그 말에 의거하여 소로를 찾아 허도에 갔다. 길을 가는 중에 일찍이 촌 안에 들어가 음식을 구하였다. 이르는 곳마다 유예주(유현덕)라는 것을 듣고, 모두 다투어 음식을 올렸다. 하루는 한 집에 이르러 잠을 잤는데 그 집의 한 소년이 나와 절하므로 그 이름을 물었더니 곧 사냥하는 집의 유안이었다.
當下劉安聞豫州牧至,欲尋野味供食,一時不能得,乃殺其妻以食之。玄德曰:「此何肉也?」安曰:「乃狼肉也。」玄德不疑,乃飽食了一頓,天晚就宿。至曉將去,往後院取馬,忽見一婦人殺於廚下,臂上肉已都割去。玄德驚問,方知昨夜食者,乃其妻之肉也。玄德不勝傷感。洒淚上馬。劉安告玄德曰:「本欲相隨使君,因老母在堂,未敢遠行。」
그 때 유안이 예주목이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사냥한 고기를 찾아 음식을 올리려 하였으나 한 때 얻을 수 없어 그 아내를 죽여 먹게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는 무슨 고기인가?”하니 유안이 말하기를 “이리의 고기입니다.”했다. 유현덕이 의심하지 않고 곧 배불리 한 끼를 먹은 후 날이 저물자 잠을 자러 갔다. 새벽에 이르러 장차 가려하여 후원에 가 말을 취하려는데 한 부인이 부엌에 죽어 있었고, 팔 위의 고기가 이미 모두 베어져 없었다. 유현덕이 놀라 묻고서야 어제 저녁에 먹은 것이 곧 그 처의 고기임을 알았다. 유현덕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말에 올랐다. 유안이 유현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본래 사군(유현덕)을 따르고자 하였으나 노모가 생존해 있기 때문에 감히 멀리 가지를 못합니다.” 했다.
玄德稱謝而別,取路出梁城。忽見塵頭蔽日,一彪大軍來到。玄德知是曹操之軍,同孫乾逕至中軍旗下,與曹操相見,具說失沛城,散二弟,陷妻小之事。操亦為之下淚。又說劉安殺妻為食之事,操乃令孫乾以金百兩往賜之。
유현덕이 감사하고 헤어져 길을 취하여 양성을 나왔다. 갑자기 먼지가 일어 해를 가리며 한 떼의 대군이 이르렀다. 유현덕이 조조의 군대임을 알고 손건과 함께 좁은 길로 중군 깃발 아래 이르렀다. 조조와 만나 패성을 잃고 두 아우를 잃고, 처자식이 함정에 빠진 일을 갖추어 설명하였다. 또 유안이 처를 죽여서 음식을 삼은 일을 설명하니 조조가 곧 손건으로 하여금 금 백량을 가지고 가서 주게 했다.
軍行至濟北,夏侯淵等迎接入寨,備言兄夏侯惇損其一目,臥病未痊。操臨臥處視之,令先回許都調理;一面使人打探呂布現在何處。採馬回報云:「呂布與陳宮,臧霸結連泰山賊寇,共攻兗州諸郡。」操即令曹仁引三千兵打沛城。操親提大軍,與玄德來戰呂布。前至山東,路近蕭關,正遇泰山寇孫觀,吳敦,尹禮,昌豨,領兵三萬餘攔去路。操令許褚迎戰,四將一齊出馬。許褚奮力死戰,四將抵敵不住,各自敗走。操乘勢掩殺,追至蕭關,探馬飛報呂布。
군대가 행군하여 제북에 이르니 하후연 등이 영접하여 영채에 들어가 현 하후돈이 그 한 눈을 잃고 병으로 누웠는데 아직 낫지 않았다고 갖추어 말하였다. 조조가 누워있는 곳에 가서 보고는 먼저 허도에 돌아가 조리하게 하는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여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탐지하는 말이 돌아와 보고하여 말하기를 “여포는 진궁, 장포와 함께 태산의 도적과 연계하여 함께 연주 여러 군을 공격하려 합니다.”했다. 조조가 곧 조인홍으로 하여금 삼천의 군대를 이끌고 패성을 치게 하였다. 조조는 직접 대군을 데리고 유현덕과 여포에게 가서 싸우려 했다. 산동에 이르기 전 소관 근처 길옆에서 태산의 도적 손관, 오돈, 윤례, 창희가 군대 삼만을 거느리고 길을 막았다. 조조가 허저로 하여금 맞아 싸우게 하니 네 장수가 일제히 말을 타고 나왔다. 허저가 힘을 떨쳐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니 네 장수가 적을 막지 못하고 각자 패하여 달아났다. 조조가 형세를 타고 습격하여 죽이며, 추격하여 소관에 이르자 탐마가 날듯이 여포에게 보고하였다.
時布已回徐州,欲同陳登往救小沛,令陳珪守徐州,陳登臨行,珪謂之曰:「昔曹公曾言東方事盡付與汝。今布將敗,可便圖之。」登曰:「外面之事,兒自為之;倘布敗回,父親便請糜竺一同守城,休放布入,兒自布脫身之計。」珪曰:「布妻小在,此心腹頗多,為之奈何?」登曰:「兒亦有計了。」乃入見呂布曰:「徐州四面受敵,操必力攻,我當先思退步。可將錢糧移於下邳,倘徐州被圍,下邳有糧可救。主公盍早為計!」布曰:「元龍之言甚善。吾當并妻小移去。」遂令宋憲,魏續保護妻小與錢糧移屯下邳;一面自引軍與陳登住救蕭關。到半路,登曰:「容某先到關探曹兵虛實,主公方可行。」
그 때 여포가 서주로 돌아 온 후 진등과 함께 소패에 가서 구원하고자 하여 진규로 하여금 서주를 지키게 하였다. 진등이 행군하려할 때 진규가 일러 말하기를 “옛날 조조가 일찍이 동방의 일은 모두 너에게 맡긴다. 했다. 지금 여포는 패할 것이니 곧 도모할 수 있다.” 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외면의 일은 제가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혹 여포가 패해서 돌아오면 아버지께서는 곧 미축에게 청하여 함께 성을 지켜 여포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십시오, 저는 여포로부터 몸을 뺄 계책이 있습니다.” 했다. 진규가 말하기를 “여포는 처가 있어서 여기에 심복이 자못 많으니 어떻게 합니까?”하니 진등이 말하기를 “제게 또한 계책이 있습니다.”하고는 곧 들어가 여포를 만나 말하기를 “서주가 사방으로 적을 맞아 조조가 반드시 힘껏 공격할 것이니 우리는 먼저 물러날 곳을 생각해 두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돈과 곡식을 하비에 옮겨서 혹 서주가 포위를 당하여도 하비에 있는 곡식으로 구원할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어찌 급히 헤아리지 않습니까!”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원룡(진등)의 말이 매우 좋습니다. 내가 마땅히 처자식을 옮길 것입니다.”했다. 마침내 송헌, 위속으로 하여금 처자식과 전량을 하비에 옮겨두고, 한 편으로 스스로 군대와 진등을 이끌고 소관을 구원하게 하였다. 길 중간에 이르러 진등이 말하기를 “제가 먼저 소관에 이르러 조조 군대의 허실을 탐지한 후에 주공께서 가야 할 것입니다.” 했다.
布許之,登乃先到關上。陳宮等接見。登曰:「溫侯深怪公等不肯向前,要來責罰。」宮曰:「今曹兵勢大,未可輕敵。吾等緊守關隘,可勸主公深保沛城,乃為上策。」陳登唯唯。至晚上關而望,見曹兵直逼關下,乃乘夜連寫三封書,拴在箭上,射下關去。次日辭了陳宮,飛馬來見呂布曰:「關上孫觀等皆欲獻關,某已留下陳宮守把,將軍可於黃昏時殺去救應。」
여포가 허락하니 진등이 곧 먼저 소관에 이르렀다. 진궁 등이 접견하였다. 진등이 말하기를 “온후께서 공들이 즐겨 앞을 향하지 않는 것을 깊이 괴이하게 여기고, 벌을 주기 위해 옵니다.” 했다. 진궁이 말하기를 “지금 조조 군대의 형세가 크니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긴급히 소관의 좁은 곳을 지키고, 주공을 권하여 패성을 깊이 지키게 하는 것이 곧 상책이 됩니다.” 했다. 진등이 예, 예 하였다. 저녁 때 소관에 올라 바라보니 조조의 군대가 바로 관 아래를 핍박하는 것을 보고, 곧 밤을 타 세통의 글을 이어 베껴 화살에 비끌어 매고 관 아래로 쏘아 보냈다. 다음 날 진궁을 하직하고 날듯이 말을 달려 와 여포를 보고 말하기를 “소관 위의 손관 등이 모두 소관을 바치고자 하여 제가 이미 진궁에게 머물면서 지키게 하였으니 장군께서는 해질녘에 쇄도해 가서 구원하고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했다.
布曰:「非公則此關休矣。」便教陳登飛騎先至關,約陳宮為內應,舉火為號。登逕往報宮曰:「曹兵已抄小路到關內,恐徐州有失。公等宜急回。」宮遂引眾棄關而走。登就關上放起火來。呂布乘黑殺至,陳宮軍和呂布軍在黑暗裏自相掩殺。
여포가 말하기를 “공이 아니었다면 곧 이 관을 잃었을 것이다.”하고는 곧 진등으로 하여금 날듯이 말을 타고 먼저 소관에 이르게 하여 진궁과 안에서 호응하고, 불을 드는 것을 신호로 삼기로 약속하였다. 진등이 좁은 길로 가서 진궁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조조의 군대가 이미 작은 길을 돌아 소관 안에 이르렀으니 서주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공들은 마땅히 급히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했다. 진궁이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소관을 버리고 달려갔다. 진등이 소관 위에 나아가 불을 놓았다. 여포가 어둠을 타고 쇄도해 이르자 진궁의 군대가 여포의 군대와 마주쳐 어둠 속에서 서로 습격하여 죽였다.
曹兵望見號火,一齊殺到,乘勢攻擊。孫觀等各自四散逃避去了。呂布直殺到天明,方知是計;急與陳宮回徐州。到得城邊叫門時,城上亂箭射下。糜竺在敵樓上喝曰:「汝奪吾主城池,今當仍還吾主,汝不得復入此城也。」布大怒曰:「陳珪何在?」竺曰:「吾已殺之矣。」布回顧宮曰:「陳登安在?」宮曰:「將軍尚執迷而問此佞賊乎?」
조조의 군대가 신호 불을 바라보고는 일제히 쇄도하여 형세를 타고 공격하였다. 손관 등이 각자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였다. 여포가 날이 밝을 무렵 바로 쇄도하여 비로소 이 계책을 알고 급히 진궁과 서주로 돌아왔다. 성 가에 이르러 문을 열라 소리칠 때 성 위에서 어지러이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미축이 적루 위에 있으면서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우리 주인의 성지를 빼앗았다. 지금 마땅히 우리 주인에게 돌려드릴 것이니 너는 다시 이 성에 들어올 수 없다.” 했다. 여포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진규는 어디에 있는가?”하니 미축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그를 죽였다.”했다. 여포가 진궁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진등은 어디에 있는가?”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장군은 아직도 잘못된 곳에 집착하여 이 간사한 도적을 묻습니까?(찾습니까?)” 했다.
布令遍尋軍中,卻只不見。宮勸布急投小沛,布從之。行至半路,只見一彪軍驟至,視之乃高順,張遼也。布問之,答曰:「陳登來報說主公被圍,今某等急來救解。」宮曰:「此又佞賊之計也。」布怒曰:「吾必殺此賊!」急驅馬至小沛。只見城上盡插曹兵旗號。原來曹操已令曹仁襲了城池,引軍守把。呂布於城下大罵陳登。登在城上指布罵曰:「吾乃漢臣,安肯事汝反賊耶!」布大怒。正待攻城,忽聽背後喊聲大起,一隊人馬來到。當先一將乃是張飛。高順出馬迎敵,不能取勝。布親自接戰。正鬥間,陣外喊聲復起,曹操親統大軍衝殺前來。
여포가 두루 군 내를 찾았으나 보지 못하였다. 진궁이 여포에게 급히 소패에 들어 갈 것을 권하니 여포가 그를 따랐다. 행군하여 반쯤 갔을 때 한 떼의 군대가 모여 이르는 것을 보았는데 곧 고순과 장요였다. 여포가 물으니 답하여 말하기를 “진등이 와서 주공이 포위를 당하였다 보고하기에 지금 저희들이 급히 와서 구원하여 풀려고 합니다.” 했다. 진궁이 말하기를 “이것이 또한 간사한 적의 계책입니다.” 했다. 여포가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이 도적을 죽일 것이다!”하고는 급히 말을 몰아 소패에 이르렀다. 다만 성위를 보니 모두 조조 군대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원래 조조가 이미 조인으로 하여금 성지를 습격하게 한 뒤 군대를 이끌고 지키게 하였다. 여포가 성 아래에서 크게 진등을 욕하였다. 진등이 성 위에 있으면서 여포를 가리키며 욕하여 말하기를 “나는 곧 한 나라의 신하인데 어찌 즐겨 너 반적을 섬길 수 있겠는가!”하니 여포가 크게 노하였다. 바로 성을 공격하기를 기다리는데 홀연히 뒤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고, 한 무리의 인마가 이르렀다. 앞에 선 한 장군은 곧 장비였다. 고순이 말을 타고 나와 적을 맞이하였으나 이길 수 없었다. 여포가 직접 싸웠다. 싸우는 사이에 진 밖에서 함성이 다시 일어나면서 조조가 직접 대군을 통솔하하여 앞으로 쇄도해 치고 왔다.
布料難抵敵,引軍東走。曹兵隨後追趕。呂布走得人困馬乏。忽大閃出一彪軍攔住去路,為道一將,立馬橫刀,大喝:「呂布休走!關雲長在此!」呂布慌忙接戰。背後張飛趕來。布無心戀戰,與陳宮等殺開條路,逕奔下邳。侯成引兵接應去了。關、張相見,各洒淚言失散之事。雲長曰:「我在海州路上住紮,探得消息,故來至此。」張飛曰:「弟在芒碭山住了這幾時,今日幸得相遇。」
여포가 적을 막기 어렵다는 것을 헤아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났다. 조조의 군대가 뒤를 따라 쫓았다. 여포가 달아나는데 사람은 곤궁하고 말은 피곤하였다. 홀연히 크게 번적이듯 한 떼의 군대가 나와 가는 길을 막았는데 길에 한 장수가 말을 세우고 칼을 빗겨 든 채 크게 소리 지르기를 “여포는 달아나지 말라! 관운장이 여기에 있다!”하니 여포가 급히 맞아 싸웠다. 뒤에서는 장비가 쫓아왔다. 여포가 싸움터를 떠나려는 마음이 없었으나 진궁 등과 한 줄기 길을 열고 좁은 길로 하비로 달아났다. 후성이 군대를 이끌고 호응하여 대응하면서 갔다. 관운장과 장비가 서로 만나 각자 눈물을 흘리며 잃고 흩어짐의 일을 말하였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나는 해주 길 가에 머물고 있다가 소식을 듣고 여기에 이르렀다.”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저는 망탕산에 얼마간 머물러 있다가 오늘 요행히 서로 만났습니다.” 했다.
兩個敘話畢,一同引兵來見玄德,哭拜於地。玄德悲喜交集,引二人見曹操,便隨操入徐州。糜竺接見,具言家屬無恙,玄德甚喜。陳珪父子亦來參拜曹操。操設一大宴,犒勞諸將。操自居中,使陳珪居左、玄德居右。其餘將士,各依次坐。宴罷,操嘉陳珪父子之功,加封十縣祿,授登為伏波將軍。
두 사람이 말을 나누기를 마치고 함께 군대를 이끌고 와서 유현덕을 만나 땅에 엎드려 곡하며 절하였다. 유현덕은 슬픔과 기쁨이 번갈아하는 속에 두 사람을 이끌고 조조를 만나고는 곧 조조를 따라 서주에 들어갔다. 미축이 맞아 보고는 가속들이 별일 없음을 갖추어 말하니 유현덕이 매우 기뻐하였다. 진규 부자가 또한 와서 조조를 참배하였다. 조조가 큰 잔치를 열고 여러 장수들을 술과 음식으로 위로하였다. 조조가 가운데 있으면서 진규는 왼쪽에, 유현덕은 오른 쪽에 있게 하였다. 그 나머지 장사는 각각 차례에 의하여 앉았다. 잔치가 끝나고 조조는 진규 부자의 공을 아름답게 여겨 열 개 현의 녹을 더해 봉하고, 진등에게는 복파장군을 주었다.
且說曹操得了徐州,心中大喜,商議起兵攻下邳。程昱曰:「布今止有下邳一城,若逼之太急,必死戰而投袁術矣。布與術合,其勢難攻。今可使能事者守住淮南徑路,內防呂布,外當袁術。況今山東尚有臧霸、孫觀之徒未曾歸順,防之亦不可忽也。」
각설하고 조조가 서주를 얻고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군대를 일으켜 하비를 공격할 것을 상의하였다. 정욱이 말하기를 “여포는 지금 다만 하비 한 개 성을 소유하고 있는데 만약 압박함이 너무 급하면 반드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거나 원술에게 들어갈 것입니다. 여포와 원술이 합하면 그 형세는 공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일을 잘하는 자로 하여금 회남의 지름길을 지키며 머물게 하여 안으로는 여포를 막고 밖으로 원술을 감당하게 해야 합니다. 게다가 지금 산동에는 오히려 장패, 손관의 무리들이 아직 귀순하지 않았으니 그들을 막는 것을 또한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했다.
操曰:「吾自當山東諸路。其淮南徑路請玄德當之。」玄德曰:「丞相將令,安敢有違?」次日,玄德留糜竺、簡雍在徐州,帶孫乾,關,張引軍往守淮南徑路。曹操自引兵攻下邳。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산동의 여러 길을 감당할 것이고, 그 회남의 좁은 길은 유현덕이 막기를 청할 것입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승상이 명령하시면 어찌 감히 어김이 있겠습니까?”했다. 다음 날 유현덕이 미축과 간옹을 서주에 머물게 하고, 손건, 관운장, 장비를 데리고 군대를 이끌고 회남의 좁은 길을 지켰다. 조조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하비를 공격하였다.
且說呂布在下邳,自恃糧食足備,且有泗水之險,安心坐守,何保無虞。陳宮曰:「今操兵方來,可乘其寨柵未定,以逸擊勞,無不勝者。」布曰:「吾方屢敗,不可輕出。待其來攻而後擊之,皆落泗水矣。」遂不聽陳宮之言。
각설하고 여포는 하비에 있으면서 스스로 양식이 충분히 준비되고, 또 사수의 험함을 믿고 안심하며 앉아 지키는데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진궁이 말하기를 “지금 조조의 군대가 바야흐로 와서 그 영채와 목책이 완성되지 않음을 타고고, 편안한 군대를 가지고 피곤한 군대를 치면 이기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우리가 여러 번 패하여 가벼이 나갈 수 없다. 그가 오기를 기다린 후에 공격하면 모두 사수에 떨어질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진궁의 말을 듣지 않았다.
過數日,曹兵下寨已定。操統眾將至城下,大叫呂布答話。布上城而立。操謂布曰:「聞奉先又欲結婚袁術,吾故領兵至此。夫術有反逆大非,而公有討董卓之功,今何自棄其前功而從逆賊耶?倘城池一破,悔之晚矣!若早來降,共扶王室,當不失封侯之位。」布曰:「丞相且退,尚容商議。」
몇 일이 지나 조조의 군대가 영채를 완성하였다. 조조가 여러 장군을 통솔하고 성 아래에 이르러 크게 외치기를 여포는 대답하라. 했다. 여포가 성위에 올라섰다. 조조가 여포에게 일러 말하기를 “봉선(여포)이 또한 원술과 혼인하고자 하는 것을 듣고 내가 군대를 이끌고 여기에 이르렀다. 대저 원술은 반역의 큰 잘못이 있고, 공은 동탁을 토벌한 공이 있는데 지금 어찌하여 스스로 그 앞서의 공을 버리고 역적을 따르는가? 혹 성지가 한 번 깨트려지면 뉘우쳐도 늦을 것이다! 만약 빨리 와서 항복하여 함께 왕실을 돕는다면 마땅히 봉후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승상이 또한 물러난다면 오히려 상의해 볼 수 있다.” 했다.
陳宮在布側大罵曹操奸賊,一箭射中其麾蓋。操指宮恨曰:「吾誓殺汝!」遂引兵攻城。宮謂布曰:「曹操遠來,勢不能久。將軍可以步騎出屯於外,宮將餘眾閉守於內。操若攻將軍,宮引兵擊其背;若來攻城,將軍為救於後。不過旬日,操軍食盡,可一鼓而破,此乃掎角之勢也。」布曰:「公言極是。」遂歸府收拾戎裝。時方冬寨,分付從人多帶綿衣。
진궁이 여포의 옆에 있으면서 크게 조조 이 간사한 도적놈이라 크게 욕하면서 한 개의 화살로 그 깃발을 맞추었다. 조조가 진궁을 가리켜 원망하여 말하기를 “내가 너를 죽일 것을 맹서한다!”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성을 공격하였다. 진궁이 여포에게 말하기를 “조조는 멀리서 왔기 때문에 형세가 오랠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보병과 기병으로서 밖에 나가 주둔하면 저는 남은 무리를 거느리고 안에서 문을 닫고 지키겠습니다. 조조가 만약 장군을 공격하면 제가 군대를 이끌고 그 등을 치고, 만약 (조조가)와서 성을 공격하면 장군이 뒤에서 구하십시오. 열흘이 지나지 않아 조조의 군대는 식량이 다할 것이니 북 한번 쳐서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掎角之勢(사슴의 두 뿔을 잡은 형세:협공하다.)’라는 것입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공의 말이 지극히 옳다.”하고는 마침내 부에 돌아가 군장을 수습하였다.
布妻嚴氏聞之,出問曰:「君欲何往?」布告以陳宮之謀。嚴氏曰:「君委全城,捐妻子,孤軍遠出,倘一旦有變,妾豈得為將軍之妻乎?」布躊躇未決,三日不出。宮入見曰:「操軍四面圍城,若不早出,必受其困。」布曰:「吾思遠出不如堅守。」宮曰:「近聞操軍糧少,遣人往許都去取,早晚將至。將軍可引精兵往斷其糧道。此計大妙。」
여포의 처 엄씨가 그것을 듣고 나가 물어 말하기를 “그대는 어디로 가고자 합니까?”하니 여포가 진궁의 꾀를 말하였다. 엄씨가 말하기를 “그대가 완전히 성을 맡기고, 처자를 버리며 외로운 군대로 멀리 나갔다가 혹 하루아침에(갑자기) 변이 있으면 첩이 어찌 장군의 아내가 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여포가 주저하면서 결정하지 못하고 삼일이 되어도 나가지 않았다. 진궁이 들어가 여포를 뵙고 말하기를 “조조의 군대가 사방으로 성을 포위하니 만약 빨리 나가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곤궁하게 됨을 받을 것입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나는 멀리 나가는 것이 굳게 지키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하였다. 진궁이 말하기를 “근래에 들으니 조조 군대는 양식이 부족하여 사람을 보내 허도에 가서 취하게 하였으니 조만간에 이를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정예 군대를 이끌고 가서 그 식량 보급로를 끊을 수 있습니다. 이 계책이 크게 뛰어납니다.” 했다.
布然其言,復入內對嚴氏說知此事。嚴氏泣曰:「將軍若出,陳宮,高順,安能堅守城池?倘有差失,悔無及矣!妾昔在長安,已為將軍所棄,幸賴龐舒私藏妾身,再得與將軍相聚;孰佑知今又棄妾而去乎?將軍前程萬里,請勿以妾為念!」言罷痛哭。
여포가 그 말을 그렇다 여기고, 다시 안에 들어가 엄씨를 대면하여 이 일을 말하였다. 엄씨가 울며 말하기를 “장군께서 만약 나간다면 진궁, 고순이 어찌 굳게 성지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혹 어긋나 잃음이 있으면 뉘우쳐도 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 첩이 옛날 장안에 있을 때 이미 장군에게 버려진 바 되었으나, 요행히도 방서가 사사로이 저를 감추어준 것에 의지하여 다시 장군과 서로 모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지금 또한 저를 버리고 간 줄 알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앞길이 만리이시니 저를 생각지 않기를 청합니다.”하면서 말을 마치고 통곡하였다.
布聞言愁悶不決,入告貂蟬。貂蟬曰:「將軍與妾作主,勿輕騎自出。」布曰:「汝無憂慮。吾有畫戟,赤兔馬,誰敢近我?」乃出謂陳宮曰:「操軍糧至者,詐也。操多詭計,吾未敢動。」宮出歎曰:「吾等死無葬身之地矣!」
여포가 듣고 걱정하여 결단하지 못하고, 들어가 초선에게 말하였다. 초선이 말하기를 “장군은 저의 주인이 되니 가벼이 말을 타고 스스로 나가지 마십시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너는 근심하지 말라. 나는 화극과 적토마가 있으니 누가 감히 나에게 가까이 오겠는가?” 하고는 곧 나가 진궁에게 일러 말하기를 “조조 군대의 식량이 이른다는 것은 거짓이다. 조조는 속이는 계책이 많으니 내가 감히 움직이지 않겠다.” 했다. 진궁이 나와 탄식하며 말하기를 “우리들은 죽어서 자신을 장례할 땅이 없겠구나!” 했다.
布於是終日不出,只同嚴氏,貂蟬飲酒解悶。謀士許汜,王楷入見布,進計曰:「今袁術在淮南,聲勢大振。將軍舊曾與彼約婚,今何不仍求之?彼兵若至,內外夾攻,操不難破也。」布從其計,即日修書,就著二人前去。許汜曰:「須得一軍引路衝出方好。」布令張遼,郝萌兩個引兵一千,送出隘口。
여포가 이에 종일토록 나가지 않고 다만 엄씨, 초선과 함께 술을 마시며 고민을 풀었다. 모사인 허사, 왕해가 들어가 여포를 만나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 지금 원술이 회남에 있는데 성세가 크게 떨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옛날에 그와 혼인을 약속하였는데 지금 어찌하여 혼인을 청하지 않습니까? 그들(원술)의 군대가 만약 이른다면 안팎으로 협공하는 것이니 조조를 깨트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여포가 그 계책을 따라 그날 글을 지어서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가지고 가게 하였다. 허사가 말하기를 “반드시 한 부대가 길을 인도하여 치고 나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하니 여포가 장요, 학맹 두 사람으로 하여금 군대 일천을 이끌고 좁은 입구를 나갈 수 있게 하였다.
是夜二更,張遼在前,郝萌在後,保著許汜,王楷殺出城去。抹過玄德寨,眾將追趕不及,已出隘口。郝萌將五百人,跟許汜,王楷而去。張遼引一半軍回來,到隘口時,雲長攔住。未及交鋒,高順引兵出城救應,接入城中去了。
이날 밤 이경에 장요가 앞에 있고, 학맹이 뒤에 있으면서 허사, 왕해를 보호하여 성을 나가게 하였다. 유현덕의 영채를 지날 때 여러 장수들이 뒤쫓았으나 미치지 못하여 좁은 입구를 나갈 수 있었다. 학맹이 오백 명을 거느리고 허사, 왕해를 따라 갔다. 장요가 나머지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좁은 입구에 이르렀을 때 관운장이 지키고 있었다. 서로 교봉에 이르기 전에 고순이 군대를 이끌고 성을 나와 구원하여 맞아 성 안으로 들어갔다.
且說許汜,王楷至壽春,拜見袁術,呈上書信。術曰:「前者殺吾使命,賴我奼姻,今又來相問,何也?」汜曰:「此為曲奸計所誤:願明公詳之。」術曰:「汝主不因曹兵困急,豈肯以女許我?」楷曰:「明公今不相救,恐脣亡齒寒,亦非明公之福也。」術曰:「奉先反覆無信,可先送女,然後發兵。」許汜,王楷只得拜辭,和郝萌回來。到亡德寨邊,汜曰:「日間不可過。夜半吾二人先行,郝將軍斷後。」
각설하고 허사, 왕해가 수춘에 이르러 원술을 절하고 만나 서신을 올렸다. 원술이 말하기를 “전에는 내 명을 전한 사자를 죽이고, 나와의 혼인을 발뺌하더니 지금 또한 와서 묻는 것은 어째서인가?” 했다. 허사가 말하기를 “이는 왜곡된 간계로 잘못 된 것이니 명공께서는 자세히 살피시기를 원합니다.” 했다. 원술이 말하기를 “너의 주인이 조조의 군대로 인하여 곤궁하고 급하지 않았다면 어찌 즐겨 딸을 나에게 허락했겠는가?” 했다. 왕해가 말하기를 “명공이 지금 구원하지 않는다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까(脣亡齒寒) 두려우니 또한 명공의 복이 아닙니다.” 했다. 원술이 말하기를 “봉선은 믿음이 없음을 반복하니 먼저 딸을 보낸 후에 군대를 낼 것이다.” 했다. 허사, 왕해가 다만 절하고 하직한 후 학맹을 만나 돌아왔다. 망덕채 가에 이르러 허사가 말하기를 “낮에는 지날 수 없으니 한 밤 중에 우리 두 사람이 먼저 가고, 학맹 장군은 뒤를 끊으시오.” 했다.
商量停當。夜過玄德寨,許汜,王楷先過去了。郝萌正行之次,張飛出寨攔路。郝萌交馬只一合,被張飛生擒過去,五百人馬盡被殺散。張飛解郝萌來見玄德,玄德押往大寨見曹操。郝萌備說求救許婚一事。操大怒,斬郝萌於軍門,使人傳諭各寨,小心防守,如有走透呂布及彼軍士者,依軍法處治。各寨悚然。
알맞게 상의하고 밤에 유현덕의 영채를 지나 허사, 왕해가 먼저 갔다. 학맹이 행군해 갈 때 장비가 영채에서 나와 길을 막았다. 학맹이 말을 교차한지 단지 일합 만에 장비에게 사로잡혔고, 오백의 인마가 모두 죽고 흩어졌다. 장비가 학맹을 압송해 유현덕에게 보이자 유현덕이 대 영채에 압송해 가서 조조를 만났다. 학맹이 구원을 청한 것과 혼인을 허락한 일을 갖추어 말하였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학맹을 군문에서 머리를 베고 사람을 시켜 각 영채에 명령을 전하여 주의 깊게 지키고, 만약 여포와 저 군사에게 누설함이 있는 자는 군법에 의거 다스릴 것이라 했다. 각 영채가 두려워하였다.
玄德回營,分付關、張曰:「我等正當淮南衝要之處。二弟切宜小心在意,勿犯曹公軍令。」飛曰:「捉了一員賊將,曹操不見有甚褒賞,卻反來諕嚇,何也?」玄德曰:「非也:曹操統領多軍,不以軍令,何能服人?弟勿犯之。」關,張應諾而退。
유현덕이 진영에 돌아가 관운장과 장비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바로 회남의 요충지를 담당하고 있다. 두 동생은 간절하고 마땅하게 주의하여 마음에 두어 조조의 군령을 범함이 없게 하라.”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한 명의 적장을 잡았는데 조조가 큰 포상을 하지는 않고 도리어 속이고 으르는 것은 왜입니까?”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아니다. 조조는 많은 군대를 통솔하는데 군령으로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아우는 범하지 말라.” 했다. 관운장과 장비가 응락하고 물러났다.
且說許汜,王楷,回見呂布,具言袁術先欲得婦,然後起兵救援。布曰:「如何送去?」汜曰:「今郝萌被獲,操必知我情,預作準備。若非將軍親自護送,誰能突出重圍?」布曰:「今日便送去,如何?」汜曰:「今日乃凶神值日,不可去。明日大利,宜用戌亥時。」布命張遼,高順引三千軍馬,安排小車一輛:「我親送至二百里外,卻使你兩個送去。」
각설하고 허사와 왕해가 돌아가 여포를 만나 원술이 먼저 부인을 얻은 후(혼인한 후) 군대를 일으켜 구원하고자한다는 것을 갖추어 말하였다. 여포가 말하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하니 허사가 말하기를 “지금 학맹이 사로잡혀 조조는 반드시 우리의 실정을 알았을 것이니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장군이 직접 보호하여 보내지 않는다면 누가 여러 겹의 포위를 뚫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오늘 곧 보내려 하는데 어떠한가?” 하니 허사가 말하기를 “오늘은 곧 흉한 신이 담당하는 날이니 갈 수 없습니다. 다음 날은 크게 이로우니 마땅히 술, 해시를 써야 합니다.” 했다. 여포가 장요, 고순에게 명하여 삼천의 군마를 이끌고 작은 수레 한 대를 안배하게 하고는 “자신이 직접 호송하여 이백 리 밖에 이르면 너희 두 사람으로 하여금 호송해 가게 할 것이다.” 했다.
次夜二更時分,呂布將女以綿纏身,用甲包裏,負於背上,提戟上馬。放開城門,布當先出城,張遼,高順跟著。將次到玄德寨前,一聲鼓響,關,張二人攔住去路,大叫:「休走!」布無心戀戰,只顧奪路而行。玄德自引一軍殺來,兩軍混戰。呂布雖勇,終是縛一女在身上,只恐有傷,不敢衝突重圍。後面徐晃、許褚皆殺來,眾軍皆大叫曰:「不要走了呂布!」
다음 날 이경에 여포가 딸을 비단으로 몸에 얽어매 갑옷 속에 싸서 등 위에 업은 후 극을 가지고 말에 올랐다. 성문을 열고 여포가 선두에 서서 성을 나가는데 장요와 고순이 뒤를 따랐다. 장차 유현덕의 영채 앞에 이르려 하는데 북소리가 울리고 관운장, 장비 두 사람이 가는 길을 막고 크게 외치기를 “달아나지 말라!” 했다. 여포가 싸울 마음이 없어 다만 벗어날 길을 돌아보고 갔다. 유현덕이 스스로 일군을 거느리고 쇄도해 와 두 군대가 섞여 싸웠다. 여포가 비록 용맹하다해도 내내 한 여자를 몸에 묶어 두어 상처를 입을 것을 두려워하니 감히 거듭된 포위에 충돌할 수 없었다. 뒤에는 서황, 허저가 쇄도해 오면서 여러 군대가 모두 크게 외치기를 “여포는 달아나지 말라!” 했다.
布見軍來太急,只得仍退入城。玄德收軍,徐晃等各歸寨,端的不曾走透一個。呂布回到城中,心中憂悶,只是飲酒。
여포는 군대가 크게 급하게 오는 것을 보고 그대로 물러나 성에 들어갔다. 유현덕이 군대를 거두었고, 서황 등도 각기 영채에 돌아갔는데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하였다. 여포가 돌아가 성 안에 이르러 마음속으로 근심하고 번민하여 다만 술을 마실 뿐이었다.
卻說曹操攻城,兩月不下,忽報:「河內太守張揚出兵東市,欲救呂布;部將楊醜殺之,欲將頭獻丞相,欲被張揚心腹將眭固所殺,反投大城去了。」操聞報,即遣史渙追斬眭固。因聚眾將曰:「張揚雖幸自滅,然北有袁紹之憂,東有表、繡之患,下邳久圍不克。吾欲捨布還都,暫且息戰,何如?」荀攸急止曰:「不可,呂布屢敗,銳氣已墮。軍以將為主,將衰則軍無戰心。彼陳宮雖有謀而遲,今布之氣未復,宮之謀未定,作速政之,布可擒也。」郭嘉曰:「某有一計,下邳城可立破,勝於二十萬師。」荀彧曰:「莫非決沂、泗之水乎?」嘉笑曰:「正是此意。」
각설하고 조조가 성을 공격한 지 두 달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하내태수 장양이 동시에서 군대를 내어 여포를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장양의)부장 양추가 그를 죽이고 머리를 가져와 승상에게 바치려하였는데, 장양의 심복 장수 휴고가 (양추를)죽이고 도리어 대성에 들어갔습니다.”고 보고하였다. 조조가 보고를 듣고 곧 사환을 보내 휴고를 추격하여 휴고의 목을 베었다. 인하여 여러 장수들을 모아 말하기를 “장양이 비록 요행히도 자멸하였으나 북쪽에는 원소의 근심이 있고, 동쪽에는 유표, 장수의 근심이 있고, 하비는 오래 포위하여도 이기지 못하였다. 내가 여포를 버리고 허도에 돌아가 잠시 또한 싸움을 쉬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했다. 순유가 급히 저지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여포는 여러 번 패하여 날카로운 기운이 이미 떨어졌습니다. 군대는 장수로서 주를 삼습니다. 장수가 쇠퇴하면 군대는 싸울 마음이 없어집니다. 저 진궁이 비록 꾀가 있으나 느립니다. 지금 여포의 기운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진궁의 꾀는 정해지지 않았으니 속히 공격한다면 여포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했다. 곽가가 말하기를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하비성을 깨트리는데 이십만의 군대보다 나을 것입니다.” 했다. 순욱이 말하기를 “기수와 사수의 물을 트려는 것입니까?” 하니 곽가가 웃으며 말하기를 “바로 이것이 이러한 뜻입니다” 했다.
操大喜。即令軍士決兩河之水。曹兵皆居高原,坐視水淹下邳。下邳一城,只剩得東門無水;其餘各門,都被水淹。眾軍飛報呂布。布曰:「吾有亦免馬,渡水如平地,又何懼哉!」乃日與妻妾痛飲美酒。因酒色過傷,形容銷減。一旦取鏡自照,驚曰:「吾被酒色傷矣!自今日始,當戒之。」遂下令城中,但有飲酒皆斬。
조조가 크게 기뻐하였다. 곧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두 강의 물을 트게 하였다. 조조의 군대는 모두 높은 곳에 있으면서 앉아 물에 하비가 잠기는 것을 보았다. 하비 한 성 중에 다만 남은 곳은 동문만 물이 있었다. 그 나머지 각문은 모두 물에 잠겼다. 여러 군사들이 날듯이 여포에게 보고하였다. 여포가 말하기를 “나에게 적토마가 있는데 물 건너기를 평지와 같이 하니 또한 무엇을 두려워하리오!”하고는 그날 처첩과 좋은 술을 마음껏 마셨다. 인하여 술과 여색이 지나치게 하여 상처를 입어 형용이 쇠하였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가져다 스스로를 비쳐보고 놀라 말하기를 “내가 술과 여색에 빠져 상하였구나! 오늘부터 시작하여 마땅히 경계할 것이다.” 했다. 마침내 성 안에 명령을 내려 술을 마시는 자는 모두 머리를 베라고 했다.
卻說侯成有馬十五匹,被後槽人盜去,欲獻與玄德。侯成知覺,追殺後槽人,將馬奪回;諸將與侯成作賀。侯成釀得五六斛酒,欲與諸將會飲;恐呂布見罪,乃先以酒五瓶詣布府,稟曰:「托將軍虎威,追得失馬。眾將皆來作賀,釀得些酒,未敢擅飲,特先奉上微意。」
각설하고 후성에게는 말 열다섯 필이 있었는데 말을 기르는 사람이 훔쳐가서 유현덕에게 바치려 하였다. 후성이 알고는 추격하여 말기를는 사람을 죽이고 말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오니 여러 장군들이 후성과 축하를 하였다. 후성이 술을 빚어 오륙 곡의 술을 얻어 여러 장수들과 모여 마시려다 여포에게 죄를 발각 당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에 먼저 술 다섯병을 여포의 부에 보내고 품의하여 말하기를 “장군의 범 같은 위엄에 의지해서 추격하여 잃었던 말을 얻었습니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와서 축하하므로 술을 빚어 이 술을 얻었으나 감히 멋대로 마시지 못하고 특히 먼저 올리는 작은 뜻을 받들어 올립니다.” 했다.
布大怒曰:「吾方禁酒, 汝卻釀酒會飲,莫非同謀伐我乎?」命推出斬之。宋憲,魏續等諸將俱入告饒。布曰:「故犯吾令,理合斬首。今看眾將面,且打一百!」眾將又哀告,打了五十背花,然後放歸。眾將無不喪氣。
여포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바야흐로 술 마시는 것을 금지하였는데 너희들은 도리어 술을 빚어 모여 마시니 함께 도모하여 나를 치는 것이 아님이 없다.”하고는 끌어내어 목을 베라고 명령하였다. 송헌, 위속 등 여러 장군들이 모두 들어가 용서를 빌었다. 여포가 말하기를 “내 명령을 범하였기 때문에 이치상 머리를 베는 것이 합당하다. 지금 여러 장수들의 얼굴을 보아 또한 백대를 때리라!” 했다. 여러 장수들이 또한 애원하였으나 등에 오십 대를 매질한 후 풀어주어 돌아가게 했다. 여러 장수들이 기운이 꺽이지 않음이 없었다.
宋憲,魏續至侯成家探視,侯成泣曰:「非公等則吾死矣!」憲曰:「布只戀妻子,視吾等如草芥。」續曰:「軍圍城下,水遶壕邊,吾等死無日矣!」憲曰:「布無仁無義,我等棄之而走,何如?」續曰:「非丈夫也。不若擒布獻曹公。」侯成曰:「我因追馬受責,而布所倚恃者,赤免馬也。汝二人果能獻門擒布,吾當先盜馬去見曹公。」
송헌과 위속이 후성의 집에 이르러 병문안하니 후성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공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입니다!” 했다. 송헌이 말하기를 “여포가 다만 처자를 생각하여 우리들을 초개와 같이 봅니다.”하니 위속이 말하기를 “군대는 성 아래를 포위했고, 물은 해자 가를 둘러쌓으니 우리들은 죽음이 멀지 않을 것이다.” 했다. 송헌이 말하기를 “여포는 인과 의가 없으니 우리들은 그를 버리고 달아나는 것이 어떠한가?”하니 위속이 말하기를 “장부가 아닙니다. 여포를 사로잡아 조조에게 바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했다. 후성이 말하기를 “내가 말을 뒤쫓음으로 인하여 질책을 받았는데 여포가 기대어 믿는 것은 적토마입니다. 당신들 두 사람이 과연 성문을 열고 여포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나는 마땅히 먼저 말을 훔쳐 조조에게 가서 만날 것입니다.” 했다.
三人商議定了。是夜侯成暗至馬院,盜了那匹赤免馬,飛奔東門來。魏續便開門放出,卻佯作追趕之狀。侯成到曹操寨,獻上馬匹,備言宋憲、魏續插白旗為號,準備獻門。曹操聞此信,便押榜數十張射入城去。其榜曰:
세 사람이 상의하여 정하였다. 이날 밤 후성이 몰래 마원(마굿간)에 이르러 한 필의 적토마를 훔쳐서 날듯이 동문에 달려 왔다. 위속이 곧 문을 열고 나가면서 도리어 거짓으로 뒤쫓아 가는 형상을 지었다. 후성이 조조의 영채에 이르러 말을 바치고, 송헌과 위속이 백기를 꽂는 것을 신호로 삼아 성문을 열 것을 준비할 것이라 갖추어 말하였다. 조조가 이 소식을 듣고 곧 방 수십 장에 도장을 찍은 후 활을 쏘아 성에 들여보냈다. 그 방에 말하기를
大將軍曹,特奉明詔,征伐呂布。如有抗拒大軍者,破城之日,滿門誅戳。上至將校,下至庶民,有能擒呂布來獻,或獻其首級者,重加官賞。為此榜諭,各宜知悉。
“대장군 조조가 특히 밝은 조칙을 받들어 여포를 정벌하노라. 만약 대군에 항거하는 자가 있다면 성을 깨트리는 날 성문 가득히 죽일 것이다. 위로는 장교에 이르고,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여포를 사로잡아 와 바치거나, 혹 그 수급을 바칠 수 있는 자는 관직과 상을 많이 줄 것이다. 이 방문으로 깨우치니 각자는 마땅히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했다.
次日平明,城外喊聲震地。呂布大驚,提戟上城,各門點視,責罵魏續走透侯成,失了戰馬,欲待治罪。城下曹兵望見城上白旗,竭力攻城,布只得親自抵敵。從平明直打到日中,曹兵稍退。布少憩門樓,不覺睡著在椅上。宋憲趕退左右,先盜其畫戟,便與魏續一齊動手,將呂布繩纏索綁,緊緊縛住。
다음 날 새벽 성 밖에서 함성이 당을 울렸다. 여포가 크게 놀라 극을 가지고 성에 올라 각 문을 점검하고 살펴보며 위속이 후성이 달아나고, 전마를 잃어버린 것을 꾸짖고 욕하며 죄를 다스리려 하였다. 성 아래서 조조의 군대가 성 위의 백기를 보고는 힘을 다하여 성을 공격하니 여포가 직접 적을 막았다. 새벽으로부터 곧바로 공격하여 한낮에 이르자 조조의 군대가 조금 물러났다. 여포가 성문 누에서 잠시 쉬다 자기도 모르게 의자 위에서 잠이 들었다. 송헌이 좌우를 물리친 후 먼저 화극을 훔치고 곧 위속과 함께 일제히 손을 움직여 여포를 노끈으로 묶고 새끼로 동여매어 꽉 포박하였다.
布從睡夢中驚醒,急喚左右,卻都被二人殺散,把白旗一招,曹兵齊至城下。魏續大叫:「已生擒呂布矣!」夏侯淵尚未信。宋憲在擲下呂布畫戟來,大開城門,曹兵一擁而入。高順,張遼在西門,水圍難出。為曹兵所擒。陳宮奔至南門,為徐晃所獲。
여포가 잠을 자면서 꿈을 꾸다가 놀라 깨어 급히 좌우를 불렀는데 도리어 모두 두 사람이 죽이고 흩어 버린 후 백기 하나를 잡아 부르자 조조의 군대가 일제히 성 아래에 이르렀다. 위속이 크게 부르짖기를 “이미 여포를 산채로 사로잡았다!”하였으나 하후연은 오히려 믿지 않았다. 송헌이 여포의 화극을 던지고 크게 성문을 열자 조조의 군대가 일제히 거느리고 들어왔다. 고순과 장요는 서문에 있었는데 물이 둘러싸 나가기 어려워 조조의 군대에게 사로잡혔다. 진궁이 달아나다 남문에 이르러 서황에게 사로 잡혔다.
曹操入城,即傳令退了所決之水,出榜安民;一面與玄德同坐白門樓上,關,張侍立於側,提過擒獲一干人來。呂布雖然長大,卻被繩索綑作一團。布叫曰:「縛太急,乞緩之!」操曰:「縛虎不得不急。」布見侯成,魏續[陳怡妏1],宋憲,皆立於側,乃謂之曰:「我待諸將不薄,汝等何忍背反?」憲曰:「聽妻妾言,不聽將計,何謂不薄?」
조조가 성에 들어가 곧 텃던 물을 빼게 명령하고 방을 내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한편으로 유현덕과 같이 백문루 위에 올라 앉고, 관운장과 장비가 옆에 시립하고 있는데 포로 모두를 끌고 오게 하였다. 여포가 비록 장대하나 도리어 줄에 묶인 것이 한 무리를 이루었다. 여포가 부르짖어 말하기를 “포박이 매우 급하니 늦추어 달라!”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범을 포박하는데 급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했다. 여포가 후성과 위속, 송헌을 보니 모두 옆에 서 있었다. 이에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여러 장군을 소홀히 대접하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차마 배반하였는가?” 하니 송헌이 말하기를 “처첩의 말을 듣고 장수의 계책을 듣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소홀하지 않았다고 하는가?” 했다.
布默然。須臾,眾擁高順至。操問曰:「汝有何言?」順不答。操怒命斬之。徐晃解陳宮至。操曰:「公臺別來無恙?」宮曰:「汝心術不正,吾故棄汝!」操曰:「吾心不正,公又奈何獨事呂布?」宮曰:「布雖無謀,不似你詭詐奸險。」操曰:「公自謂足智多謀,今竟何如?」宮顧呂布曰:「恨此人不從吾言!若從吾言,未必被擒也。」操曰:「今日之事當如何?」宮大聲曰:「今日有死而已!」操曰:「公如是,奈公之老母妻子何?」宮曰:「吾聞以孝治天下者,不害人之親;施仁政於天下者,不絕人之祀。老母妻子之存亡,亦在於明公耳。吾身既被擒,請即就戮,並無挂念。」
여포가 묵묵히 말이 없었다. 여러 사람이 고순을 끌고 이르렀다. 조조가 물러 말하기를 “너는 무슨 말이 있는가?”하니 고순이 대답하지 않았다. 조조가 노하여 목을 베도록 명하였다. 서황이 진궁을 압송하여 이르렀다. 조조가 말하기를 “공은 그간 편안하였는가?”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너의 심술이 바르지 않아 내가 옛날에 너를 버렸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공은 또한 어찌하여 여포를 섬겼는가?”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여포가 비록 꾀가 없으나 너와 같이 남을 속이고 간사하지 않았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공이 스스로 지혜가 충분하고 꾀가 많다 하니 지금은 어떠한가?”하니 진궁이 여포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내 말을 다르지 않음을 한탄한다. 만약 내말을 따랐다면 사로잡히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한가?”하니 진궁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오늘은 죽음이 있을 뿐이라!”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공은 이와 같되 공의 노모와 처자는 어떻게 하려는가?”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나는 효호서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다른 사람의 어버이를 해치지 않고, 천하에 어진 정사를 베푸는 자는 다른 사람의 제사를 끊지 않는다고 들었다. 노모와 처자의 살고 죽음은 또한 명공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내 몸이 이미 사로잡혔으니 곧 죽음을 청하고, 아울러 근심하지 않는다.” 했다.
操有留戀之意。宮徑步下樓,左右牽之不住。操起身泣而送之。宮並不回顧。操謂從者曰:「即送公臺老母妻子回許都養老。怠慢者斬。」宮聞言,亦不開口,伸頸就刑。眾皆下淚。操以棺槨盛其屍,葬於許都。後人有詩歎之曰:
조조가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뜻이 있었다. 진궁이 빠른 걸음으로 루를 내려가니 좌우가 끌어도 머물지 멈추지 않았다. 조조가 몸을 일으켜 눈물을 흘리며 보냈다. 진궁이 아울러 돌아보지 않았다. 조조가 따르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곧 공대(진궁)의 노모와 처자를 허도에 돌려보내 늙은이로 봉양하라. 태만히 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 했다. 진궁이 말을 듣고 또한 입을 열지 않고 목을 펴고 형장에 나아가니 무리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조조가 관곽을 갖추어 그 시신을 담고 허도에서 장례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탄복한 것이 있다.
生死無二志,丈夫何壯哉!不從金石論,空負棟梁材。輔主真堪敬,辭親實可哀。白門身死日,誰肯似公臺!
살거나 죽거나 뜻이 다르지 않으니 대장부 얼마나 장한가! 금석 같은 논의 따르지 않아 헛되이 동량의 재주 저버렸구나. 주군을 보좌하는 참됨은 공경을 다하였으나 어버이 하직함은 진실로 슬퍼할만 하다. 백문루에서 몸이 죽던 날 누가 진궁 같이 흔쾌할 수 있으랴!
方操送宮下樓時,布告玄德曰:「公為坐上客,布為階下囚,何不發一言而相寬乎?」玄德點頭。及操上樓來,布叫曰:「明公所患,不過於布。布今已服矣。公為大將,布副之,天下不難定也。」操回顧玄德曰:「何如?」玄德答曰:「公不見丁建陽、董卓之事乎?」布目視玄德曰:「是兒最無信者!」操令牽下樓縊之。布回顧玄德曰:「大耳兒!不記轅門射戟時耶?」忽一人大叫曰:「呂布匹夫!死則死耳,何懼之有!」眾視之,乃刀斧手擁張遼至。操令將呂布縊死,然後梟首。後人有詩歎曰:
막 조조가 진궁을 보내 루를 내려갈 때 여포가 유현덕에게 말하기를 “공은 상객의 자리에 있고, 나는 계단 아래 죄수가 되었는데 어찌하여 한 마디 말을 하여 서로 너그럽게 하지 않습니까?” 하니 유현덕이 머릴 끄덕였다. 조조가 백문루에 올라오니 여포가 부르짖어 말하기를 “명공이 근심하는 바는 여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이미 항복하였습니다. 공이 대장이 되고 제가 부장이 되면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조조가 유현덕에게 머리를 돌려 보며 말하기를 “어떻습니까?”하니 유현덕이 답하기를 “공은 정건양과 동탁의 일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하니 여포가 유현덕을 바라보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가징 믿을 수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했다. 조조가 누 아래로 끌어내려 목을 매어 달아 죽이라 명령하였다. 여포가 유현덕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큰 귀를 가진 아이야! 원문에서 활을 쏘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가?”하니 갑자기 한 사람이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여포 필부 놈아! 죽이면 죽을 뿐, 무슨 두려움이 있단 말이냐!” 했다. 무리들이 보니 곧 도부수 가 장요를 끌고 이르렀다. 조조가 장수로 하여금 여포를 목매달아 죽힌 후 효수하게 하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한 것이 있는데
洪水滔滔淹下邳,當年呂布受擒時:空如赤免馬千里,漫有方天戟一枝。縛虎望寬今太懦,養鷹休飽昔無疑。戀妻不納陳宮諫,枉罵無恩大耳兒。
“홍수가 도도히 하비를 덮치니, 그 해는 여포가 사로잡힐 때였다.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 주인을 잃고 방천화극 한 가지 버려졌네. 묶인 범 지금 크게 유약하여 관용 바라니, 매를 기를 때 배부르지 않게 하라는 옛 말 의심함이 없도다. 처첩 아껴 진궁의 간언 듣지 않다가 은혜 없는 큰 귀 아이라 욕하네.”
又有詩論玄德曰:傷人餓虎縛休寬,董卓,丁原血未乾。玄德既知能啖父,爭如留取害曹瞞?
또 유현덕을 논한 시가 있으니 사람 다치게 하는 주린 범은 묶음에 너그러움 없게 해야하니 동탁과 정원의 치 아직 마르지 않았다. 유현덕이 이미 아비를 삼킨 것을 알아, 조조를 해칠 것이라 간하였는가?
卻說武士擁張遼至。操指遼曰:「這人好生面善。」遼曰:「濮陽城中曾相遇,如何忘卻?」操笑曰:「你原來也記得!」遼曰:「只是可惜!」操曰:「可惜甚的?」遼曰:「可惜當日火不大,不曾燒死你這國賊!」操大怒曰:「敗將安敢辱吾!」拔劍在手,親自來殺張遼。遼全無懼色,引頸待殺。曹操背後一人攀住臂膊,一人詭於面前,說道:「丞相且莫動手!」
각설하고 무사가 장요를 끌고 이르렀다. 조조가 장요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매우 낯이 익다.” 하니 장요가 말하기를 “복양성 안에서 일찍이 서로 만났는데 어찌하여 잊었습니까?” 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너를 원래 기억하고 있었다.”하니 장요가 말하기를 “이는 애석해 할 만하구나!”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매우 애석한가?”하니 장요가 “그날 불이 일어나지 않아 일찍이 이 나라의 도적을 불태워 죽이 못한 것이 애석해 말한 한 것이라!” 했다. 조조가 트게 노하여 말하기를 “패한 장수가 어찌 감이 나를 욕하는가!”하고는 검을 봅아 손에 쥐고 직접 스스로 가서 장요를 죽였다. 장요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목을 늘려 죽음을 기다렸다. 조조 뒤에 있던 한 사람이 팔을 잡아 멈추게 하고, 한 사람은 면전에 꿇으면서 “승상께서는 또한 손을 멈추십시오!‘하고 말했다.
正是:乞哀呂布無人救,罵賊張遼反得生。畢竟救張遼的是誰,且看下文分解。
바로 이러하다. “애걸하던 여포를 구한 사람 없더니, 조조를 도적이라 욕하던 장요는 도리어 살아났구나. 마침내 장요를 구한 이는 누구일까?” 또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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