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十三回:諸葛亮舌戰群儒,魯子敬力排眾議
제43회 제갈공명은 여러 유학자와 말싸움을 하고, 노숙은 힘써 여러 의논을 배격하다.
卻說魯肅、孔明辭了玄德、劉琦,登舟望柴桑郡來。二人在舟中共議,魯肅謂孔明曰:「先生見孫將軍,切不可實言曹操兵多將廣。」孔明曰:「不須子敬叮嚀,亮自有對答之語。」及船到岸,肅請孔明於館驛中暫歇,先自往見孫權。權正聚文武於堂上議事,聞魯肅回,急召入問曰:「子敬往江夏,體探虛實若何?」肅曰:「已知其略,尚容徐稟。」權將曹操檄文示肅曰:「操昨遣使齎文至此,孤先發遣來使,現今會眾商議未定。」肅接檄文觀看。其略曰:
각설하고 노숙과 제갈공명이 유현덕과 유기를 하직하고 배에 올라 시상군을 향해 갔다. 두 사람이 배 안에 있으면서 함께 의논하는데 노숙이 제갈공명에게 일러 말하기를 “선생께서 손 장군을 뵈면 일체 조조의 군대가 많고 장수가 넓음을 실제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노숙은 신신당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대답할 말이 있습니다.”했다. 배가 언덕에 이르자 노숙이 제갈공명에게 관역 안에서 잠시 쉴 것을 청하고, 먼저 제가 가서 손권을 뵈겠습니다. 손권이 바로 당상에 문무관을 모아 일을 의논하던 중에 노숙이 돌아왔다는 것을 듣고, 급히 불러 들여 물어 말하기를 “노숙은 강하에 가서 몸으로 허실을 탐지하여보니 어떠하던가?”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이미 그 대략을 알았으니 천천히 보고하겠습니다.”했다. 손권이 조조의 격문을 가져다 노숙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조조가 앞서 사자를 보내 글을 가지고 여기에 왔는데 내가 먼저 온 사신을 보내고 지금 여러 사람을 모아 상의하는데 결정하지 못하였다.”했다. 노숙이 격문을 받아 살펴보았다. 대략적으로 말하면
孤近承帝命,奉詔伐罪。旄麾南指,劉琮束手;荊襄之民,望風歸順。今統雄兵百萬,上將千員,欲與將軍會獵於江夏,共伐劉備,同分土地,永結盟好。幸勿觀望,速賜回音。
“나는 천자의 명령을 가까이 계승하고 조서를 받들어 죄를 토벌한다. 깃발이 남쪽을 향하니 유종은 손을 묶었고, 형양의 백성들은 바람을 향해 귀순하였다. 지금 용감한 군대 백만 명과 훌륭한 장수 천명을 거느리고 장군과 함께 강하에서 사냥하며, 함께 유현덕을 정벌하여 같이 땅을 나누어 길이 동맹을 맺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관망만 하지 말고 속히 회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했다.
魯肅看畢曰:「主公尊意若何?」權曰:「未有定論。」張昭曰:「曹操擁百萬之眾,借天子之名,以征四方,拒之不順。且主公大勢可以拒操者,長江也。今操既得荊州,長江之險,已與我共之矣,勢不可敵。以愚之計,不如納降為萬安之策。」眾謀士皆曰:「子布之言,正合天意。」孫權沈吟不語。張昭又曰:「主公不必多疑。如降操則東吳民安,江南六郡可保矣。」孫權低頭不語。
노숙이 보기를 마치고 말하기를 “주공의 높은 뜻은 어떠합니까?”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아직 논의를 정하지 못하였습니다.”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조조는 백만의 무리를 안고, 천자의 이름을 빌려 사방을 정벌하니 항거하면 천자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됩니다. 또한 주공께서 대세로 조조를 막을 수 있는 곳은 장강입니다. 지금 조조가 이미 형주, 장강의 험함을 얻었으니 (형주와 장강의 험함을)우리와 함께 하게 되어 형세가 대적할 수 없습니다. 저의 계책으로는 항복을 받아들여 모든 편안함의 계책으로 삼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여러 모사들이 모두 말하기를 “장소의 말은 바로 하늘의 뜻에 부합합니다.”하니 손권이 깊이 침음하며 말하지 않았다. 장소가 또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많이 의심하지 마십시오. 만일 조조에게 항복한다면 곧 강남 육군을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머리를 숙이고 말하지 않았다.
須臾,權起更衣,魯肅隨於權後。權知肅意,乃執肅手而言曰:「卿欲如何?」肅曰:「恰纔眾人所言,深誤將軍。眾人皆可降曹操,惟將軍不可降曹操。」權曰:「何以言之?」肅曰:「如肅等降操,當以肅還鄉黨累官,故不失州郡也;將軍降操,欲安所歸乎?位不過封侯,車不過一乘,騎不過一匹,從不過數人,豈得南面稱孤哉?眾人之意,各自為己,不可聽也。將軍宜早定大計。」
잠시 후 손권이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노숙이 손권의 뒤를 따랐다. 손권이 노숙의 뜻을 알고 이에 노숙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경은 어떻게 하고자 하는가?”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방금 여러 사람들이 말한 바는 깊이 장군을 잘못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조조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오직 장군께서만은 조조에게 항복할 수 없다.”합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어째서 그런 말을 합니까?”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만일 저희들이 조조에게 항복한다면 마땅히 저는 고향에 돌아가 관직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주군을 잃지는 않을 것이지만, 장군께서 조조에게 항복하신다면 어디로 돌아가시려 합니까? 지위는 후에 봉해지는 것이 지나지 않을 것이고, 수레는 한 대에 지나지 않으며, 타는 말은 한 필에 지나지 않으며, 따르는 이는 몇 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남쪽을 향해 앉아 孤(제후가 스스로를 지칭할 대 쓰는 말)라 말하겠습니까? 여러 사람의 뜻은 각자 자기를 위한 것이니 들어서는 안 됩니다. 장군께서는 마땅히 일찍 대계를 정하십시오.” 했다.
權歎曰:「諸人議論,大失孤望。子敬開說大計,正與吾見相同。此天以子敬賜我也!但操新得袁紹之眾,近又得荊州之兵,恐勢大難以抵敵。」肅曰:「肅至江夏,引諸葛瑾之弟諸葛亮在此,主公可問之,便知虛實。」權曰:「臥龍先生在此乎?」肅曰:「現在館驛中安歇。」權曰:「今日天晚,且未相見。來日聚文武於帳下,先教見我江東英俊,然後升堂議事。」
손권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여러 사람들의 의논은 크게 나의 바람을 잃었다. 노숙이 큰 계책을 열어 말한 것이 바로 나의 견해와 서로 같다. 이는 하늘이 노숙을 아에게 내린 것이다. 다만 조조가 새로 원소의 무리를 얻었고, 최근에는 또한 형주의 군대를 얻었으니 형세가 적을 막기에 크게 어려울까 두렵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제가 강하에 이르러 제갈근의 동생 제갈공명을 인도하여 여기에 있으니 주공께서 물어보시면 곧 허실을 알 것입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와룡선생이 여기에 있는가?”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현재 관역 안에서 편안히 쉬고 있습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오늘은 늦어서 만나지 못한다. 내일 문무관을 휘장 아래 모아 먼저 우리 강동의 훌륭한 인재를 보게 한 후 당에 올라 일을 의논할 것이다.”했다.
肅領命而去;次日至館驛中見孔明,又囑曰:「今見我主,切不可言曹操兵多。」孔明笑曰:「亮自見機而變,決不有誤。」肅乃引孔明至幕下。早見張昭、顧雍等一班文武,二十餘人,峨冠博帶,整衣端坐。孔明逐一相見,各問姓名。施禮已畢,坐於客位。張昭等見孔明丰神飄洒,器宇軒昂,料道此人必來游說。張昭先以言挑之曰:「昭乃江東微末之士,久聞先生高臥隆中,自比管、樂。此語果有之乎?」孔明曰:「此亮平生小可之比也。」昭曰:「近聞劉豫州三顧先生於草廬之中,幸得先生,以為如魚得水,思欲席捲荊、襄。今一旦以屬曹操,未審是何主見?」
노숙이 명을 받고 갔다. 다음 날 관역에 이르러 제갈공명을 보고 또 부탁하여 말하기를 “지금 우리 주인을 만나면 절대로 조조의 군대가 많음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기회를 보아 변통하여 결정에 잘못이 없게 하겠습니다.”했다. 노숙이 이에 제갈공명을 인도하여 장군의 막사에 이르렀다. 이미 장소, 고옹 등 한 떼의 문무관 이십여 명을 보니 높은 관을 쓰고, 넓은 대를 띠고 옷을 정돈하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제갈공명이 일일이 보고 각각 성명을 물었다. 예를 베풀기를 마치고 빈객의 자리에 앉았다. 장소 등이 제갈공명을 보니 풍채가 위풍당당하고 생김새가 헌앙하여 이 사람은 반드시 유세하러 온 것이라 생각하였다. 장소가 먼저 말로서 도발하여 말하기를 “저는 곧 강동의 미미한 선비로 선생이 융중에서 속세를 떠나 숨어 지내며, 스스로 관중과 악의에 비교하였다는 것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 말을 과연 함이 있었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이는 저의 평생을 보잘 것 없는 것에 비교한 것입니다.”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근래에 유예주(유현덕)가 초려에 세 번 찾아 가 다행히 선생을 얻은 것을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처럼 여기고, 형주와 양양을 석권하고자 생각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하루아침에 (형주와 양양이)조조에게 속하였으니 어떤 견해를 주장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했다.
孔明自思張昭乃孫權手下第一個謀士,若不先難倒他,如何說得孫權;遂答曰:「吾觀取漢上之地,易如反掌。我主劉豫州躬行仁義,不忍奪同宗之基業,故力辭之。劉琮孺子,聽信佞言,暗自投降,致使曹操得以猖獗。今我主屯兵江夏,別有良圖,非等閒可知也。」
제갈공명이 속으로 장소는 곧 손권의 부하 중 제일의 모사인데 만약 먼저 그를 먼저 당황케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손권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고는 마침내 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한상의 땅을 취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습니다. 나의 주군 유예주(유현덕)는 몸소 인의를 행하여 차마 같은 종친의 기업을 빼앗을 수 없어서 힘껏 그것을 사양한 것입니다. 유종은 어린 아이로 아첨하는 말을 듣고 믿어 몰래 투항하여 조조로 하여금 창궐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주공은 군대를 강하에 주둔해 있으면서 따로 좋은 계책을 가지고 있으나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습니다.”했다.
昭曰:「若此,是先生言行相違也。先生自比管、樂。管仲相桓公,霸諸侯,一匡天下;樂毅扶持微弱之燕,下齊七十餘城;此二人者,真濟世之才也。先生在草廬之中,但笑傲風月,抱膝危坐;今既從事劉豫州,當為生靈興利除害,剿滅亂賊。且劉豫州未得先生之時,尚且縱橫寰宇,割據城池;今得先生,人皆仰望;雖三尺童蒙,亦謂彪虎生翼,將見漢室復興,曹氏即滅矣;朝廷舊臣,山林隱士,無不拭目而待:以為拂高天之雲翳,仰日月之光輝,拯斯民於水火之中,措天下於衽席之上,在此時也。何先生自歸豫州,曹兵一出,棄甲拋戈,望風而竄;上不能報劉表以安庶民,下不能輔孤子而據疆土;乃棄新野,走樊城,敗當陽,奔夏口,無容身之地?是豫州既得先生之後,反不如其初也。管仲、樂毅,果如是乎?愚直之言,幸勿見怪!」
장소가 말하기를 “만약 이 같다면 이는 선생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스스로 관중과 악의에 비교하였습니다.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로 만들어 천하를 다스려 바로잡았습니다. 악의는 미약한 연나라를 도와서 제나라의 칠십여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세상을 구한 인재입니다. 선생께서는 초려의 안에 있으면서 다만 세상을 비웃고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풍월을 즐기고 무릎을 안고 단정하게 앉았을 뿐입니다. 지금 이미 유예주(유현덕)를 따라 섬기기로 했으면 마땅히 백성을 위해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제거하며 어지럽히는 도적을 무찔러 없애야 합니다. 또한 유예주(유현덕)는 선생을 얻지 못하였을 때도 오히려 또한 천하를 종횡하며 성지를 할거하였습니다. 지금 선생을 얻고 나서는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비록 작은 어린애일지라도 또한 표범과 범이 날개를 얻었으니 장차 한나라는 부흥하고, 조씨(조조)는 곧 없어질 것이라 하였습니다. 조정의 오래된 신하, 산림에 숨어 있는 선비는 눈을 닦고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높은 하늘의 해를 가리는 구름을 걷어내어 일월의 광휘를 우러르며 이 백성들을 물과 불 안에서 구원하여 천하를 안락한 자리 위에 놓아두는 이런 때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선생께서는 예주(유현덕)에게 돌아감으로부터 조조의 군대가 한번 나오니 갑옷을 버리고 창을 던지며 바람을 향하여 쥐새끼처럼 달아났습니다. 위로는 유표에게 은혜를 갚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였고, 아래로는 외로운 아들을 도와 강토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신야를 버리고 번성으로 달아났고, 당양에서 패하자 하구로 달아나 몸을 둘 땅이 없었습니다. 이는 예주(유현덕)가 이미 선생을 얻은 후에도 도리어 그 처음보다 못한 것입니다. 관중과 악의가 과연 이 같았습니까? 어리석은 말을 아무쪼록 괴이하게 보지 말아 주십시오. 했다.
孔明聽罷,啞然而笑曰:「鵬飛萬里,其志豈群鳥能識哉?譬如人染沈痾,當先用糜粥以飲之,和藥以服之;待其腑臟調和,形體漸安,然後用肉食以補之,猛藥以治之;則病根盡去,人得全生也。若不待氣脈和緩,便投以猛藥厚味,欲求安保,誠為難矣。吾主劉豫州,向日軍敗於汝南,寄跡劉表,兵不滿千,將止關、張、趙雲而已;此正如病勢尪羸已極之時也。新野山僻小縣,人民稀少,糧食鮮薄,豫州不過暫借以容身,豈真將坐守於此耶?夫以甲兵不完,城郭不固,軍不經練,糧不繼日,然而博望燒屯,白河用水,使夏侯惇、曹仁輩心驚膽裂。竊謂管仲、樂毅之用兵,未必過此。至於劉琮降操,豫州實出不知;且又不忍乘亂奪同宗之基業,此真大仁大義也。當陽之敗,豫州見有數十萬赴義之民,扶老攜幼相隨,不忍棄之,日行十里,不思進取江陵,甘與同敗,此亦大仁大義也。寡不敵眾,勝負乃其常事。昔高皇數敗於項羽,而垓下一戰成功,此非韓信之良謀乎?夫信久事高皇,未嘗累勝。蓋國家大計,社稷安危,是有主謀,非比誇辯之徒,虛譽欺人,坐議立談,無人可及;臨機應變,百無一能。誠為天下笑耳!」
제갈공명이 듣기를 마치고 어안이 벙벙하여 웃으며 말하기를 “붕새가 만리를 날아가는데 그 뜻을 어찌 뭇 새들이 알 수 있겠습니까? 비유하면 만일 사람이 병에 걸려 오래되면 마땅히 먼저 죽을 써서 마시게 하고, 온화한 약을 복용하게 하게하고 그 내장이 조화를 이루고, 형체가 점차 안정된 후 고기 먹는 것을 스는 것으로서 그를 돕고, 강한 약으로서 병을 치료하면 곧 병의 부리가 모두 제거되어 사람이 온전히 살아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기맥이 완화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 강한 약과 진한 맛의 음식을 주어 보존하기를 기다리고자 한다면 진실로 (치료하기)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주인 유예주(유현덕)는 지난날 군대가 여남에서 패하고 유표에게 잠시 의탁하였으나 군대는 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장수로는 다만 관운장과 장비, 조자룡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병의 형세가 수척함이 이미 지극한 때입니다. 신야는 구석진 작은 현으로 백성이 적고, 양식이 적어서 예주(유현덕)께서 잠시 빌려 몸을 붙이고 살았음에 지나지 않았으니 어찌 참으로 여기에 머물러 지키려 했겠습니까? 대저 군대는 완전하지 못하였고 성곽은 견고하지 않았으며 군대는 가벼운 훈련도 못하였고, 양식은 하루를 잇지 못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박망에서 조조의 주둔지를 불태웠고, 백하의 물을 써서 하후돈, 조인 등의 무리로 하여금 심장이 놀라고 쓸개가 찢어지게 하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관중, 악의 군대 운용은 반드시 이보다 낫지 않을 것입니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함에 이르러 예주(유현덕)께서는 알지 못할 때 나왔고, 또 차마 난을 타고 같은 종친의 기업을 빼앗지 못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대인과 대의입니다. 당양의 패함은 예주(유현덕)께서 수십만의 의에 나아가는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애를 데리고 서로 따르는 것을 보고 차마 그들을 버리지 못하여 하루 십리를 가면서도 진군하여 강릉을 취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함께 무너지는 것을 달게 여겼으니 이는 또한 ‘대인’과 ‘대의’입니다. 적음은 많음을 대적할 수 없고, 이기고 지는 것은 그 통상의 일입니다. 옛날 고황제께서는 여러 번 항우에게 패하였으나 해하에서 한 번 싸워 공을 이루었던 것은 이는 한신의 좋은 계책이 아니었습니까? 대저 한신은 오래동안 고황제를 섬겼지만 일찍이 거듭 이기지는 못하였습니다. 대개 국가의 큰 계책과 사직의 안위를 주장하여 도모함이 있었으니 자랑하고 말 잘하는 무리가 헛된 명예로 사람을 속이는 이와 비교해서는 안 되며, 앉아서 의논하고 서서 얘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나으나 그때그때의 일에 알맞게 대응함에는 백 가지 중에 한 가지도 능한 것이 없는 이와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했다.
這一篇言語,說得張昭並無一言回答。座上忽一人抗聲問曰:「今曹公兵屯百萬,將列千員,龍驤虎視,平吞江夏,公以為何如?」孔明視之,乃虞翻也。孔明曰:「曹操收袁紹蟻聚之兵,劫劉表烏合之眾,雖數百萬不足懼也。」虞翻冷笑曰:「軍敗於當陽,計窮於夏口,區區求救於人,而猶言不懼,此真大言欺人也!」孔明曰:「劉豫州以數千仁義之師,安能敵百萬殘暴之眾,退守夏口,所以待時也。今江東兵精糧足,且有長江之險,猶欲使其主屈膝降賊,不顧天下恥笑;由此論之,劉豫州真不懼操賊者矣!」
히 한편의 말로 장소를 설득하니 한 마디 말도 답하지 못하였다. 자리 사이에서 홀연히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물어 말하기를 “지금 조조는 군대 백만을 주둔하고, 장수 천 명을 배열하여 용처럼 날뛰고, 범의 눈초리로 보며 강하를 평정하여 삼켰는데 공은 어떻게 여깁니까?”했다. 제갈공명이 그를 보니 곧 우번이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조조는 원소의 개미떼처럼 모인 군대와 유표의 오합지중을 겁주어 거두었으니 비록 수백만이라 하더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했다. 우번이 냉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군대는 당양에서 패하였고, 계책은 하구에서 다하여 구구히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청하였는데도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말하니 이는 참으로 큰 소리로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유예주(유현덕)께서는 수천 명 인의의 군대로 어찌 백만 잔폭한 무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물러나 하구를 지킨 것은 때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지금 강동의 군대는 정예롭고, 양식은 풍족하며 또 장강의 험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히려 그 주인으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적에게 항복하게 하는 것은 천하의 부끄러움과 비웃음을 돌아보지 않으니 이로 말미암아 논하면 유예주(유현덕) 참으로 조조 도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했다.
虞翻不能對。座間又一人問曰:「孔明欲效儀、秦之舌,游說東吳耶?」孔明視之,乃步騭也。孔明曰:「步子山以蘇秦、張儀為辯士,不知蘇秦、張儀亦豪傑也。蘇秦佩六國相卬,張儀兩次相秦,皆有匡扶人國之謀,非比畏強凌弱,懼刀避劍之人也。君等聞曹操虛發詐偽之詞,便畏懼請降,敢笑蘇秦、張儀乎?」
우번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이 물어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장의와 소진의 혀(말)를 본 받아 동오에서 유세하려하는가?”하였다. 제갈공명이 그를 보니 곧 보즐이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보즐은 소진과 장의를 말 잘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소진과 장의가 또한 호걸임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소진은 육국 재상의 인을 찼고, 장의는 두 번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으니 모두 사람과 나라를 바로잡고 도울 꾀가 있었으니 강한 자를 두려워하고, 약한 자를 능멸하며 칼을 두려워하고 검을 피하는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들은 조조가 헛되이 내놓은 거짓된 말을 듣고 곧 두려워하여 항복을 청하였음에도 감히 소진과 장의를 비웃을 수 있는가?” 했다.
步騭默默然無語。忽一人問曰:「孔明以操何如人也。」孔明視其人,乃薛綜也。孔明答曰:「曹操乃漢賊也,又何必問?」綜曰:「公言差矣。漢歷傳至今,天數將終。今曹公已有天下三分之二,人皆歸心。劉豫州不識天時,強欲與爭,正如以卵擊石,安得不敗乎?」孔明厲聲曰:「薛敬文安得出此無父無君之言乎!夫人生天地間,以忠孝為立身之本。公既為漢臣,則見有不臣之人,當誓共戮之,臣之道也。今曹操祖宗叨食漢祿,不思報效,反懷纂逆之心,天下之所共憤。公乃以天數歸之,真無父無君之人也!不足與語!請勿復言!」
보즐이 묵묵히 말이 없었다. 홀연히 한 사람이 물어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조조를 어떤 사람이라 생각합니까?”했다. 제갈공명이 그 사람을 보니 곧 설종이었다. 제갈공명이 답하여 말하기를 “조조는 곧 한나라의 도적인데 도한 반드시 물을 필요가 있습니까?”했다. 설종이 말하기를 “공의 말은 어긋납니다. 한나라는 차례로 전하하였으나 지금에 이르러 하늘의 운수가 다하려 합니다. ㅈ;금 조조가 이미 천하의 삼분의 이를 소유하여 사람들이 모두 민심이 돌아갔습니다. 유예주(유현덕)는 천시를 알지 못하고 억지로 다투려하니 바로 계란으로서 돌을 치는 것과 같은데 어찌 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했다. 제갈공명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설종은 어찌 이런 아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대저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나서 충과 효로서 몸을 세우는 근본으로 삼습니다. 공이 이미 한나라의 신하가 되었으니 곧 신하노릇하지 못하는 사람을 봄이 있다면 마땅히 함께 죽이기를 맹세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일 것입니다. 지금 조조는 조상 때부터 한나라의 녹을 먹고도 은혜를 갚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찬역의 마음을 품으니 천하가 함께 분노하는데 공은 곧 하늘의 운수로 돌렸으니 참으로 아버지를 없이하고, 임금을 없이하는 사람입니다. 더불어 말할 것이 없으니 다시 말하지 말 것을 청합니다.”했다.
薛綜滿面羞慚,不能對答。座上又一人應聲問曰:「曹操雖挾天子以令諸侯,猶是相國曹參之後。劉豫州雖云中山靖王苗裔,卻無可稽考,眼見只是織蓆販屨之夫耳,何足與曹操抗衡哉!」孔明視之,乃陸績也。孔明笑曰:「公非袁術座間懷橘之陸郎乎?請安坐聽吾一言。曹操既為曹相國之後,則世為漢臣矣;今乃專權肆橫,欺凌君父,是不惟無君,亦且蔑祖;不惟漢室之亂臣,亦曹氏之賊子也!劉豫州堂堂帝冑,當今皇帝,按譜賜爵,何云無可稽考?且高祖起身亭長,而終有天下;織蓆販屨,又何足為辱乎?公小兒之見,不足與高士共語!」
설종이 얼굴 가득히 부끄러움을 나타내면서 대답하지 못하였다.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이 대응하는 소리로 물어 말하기를 “조조는 비록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호령하지만 오히려 이는 산국 조참의 후예입니다. 유예주(유현덕)는 비록 중간정왕의 후예라 말하지만 상고할 수 없고, 눈으로 보는 것은 다만 돚자리를 짜고 신발을 팔던 필부일 뿐이니 어찌 조조와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그를 보니 곧 육적이었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공은 원술을 만나던 자리에서 귤을 품었던 육적이 아닙니까? 정좌하여 나의 한마디 말을 듣기를 청합니다. 조조가 조상국의 후예라면 곧 대대로 한나라의 신하입니다. 지금은 곧 권력을 오로지하고 함부로 하며 군부를 속이고 능멸하니 이는 임금을 없이 할뿐만 아니라 도한 조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한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일뿐만 아니라 조씨 가문에 효도하지 않는 자식입니다! 유예주(유현덕)는 당당한 천자의 후손으로 지금 황제가 족보를 살펴보고 관작을 내렸는데 어찌하여 상고할 수 없다고 말합니까? 또 고조는 정장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끝내 천하를 소유하였으니 돚자리를 짜고, 신을 판 것이 또한 어찌 욕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공의 어린애 같은 견해는 훌륭한 선비와 함께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했다.
陸績語塞。座上一人忽曰:「孔明所言,皆強詞奪理,均非正論,不必再言。且請問孔明治何經典?」孔明視之,乃嚴畯也。孔明曰:「尋章摘句,世之腐儒也,何能興邦立事?且古耕莘伊尹、釣渭子牙、張良、陳平之流,鄧禹、耿弇之輩,皆有匡扶宇宙之才,未審其生平治何經典。豈亦效書生區區於筆硯之間,數黑論黃,舞文弄墨而已乎?」
육적의 말이 막혔다. 짜리 안에서 한 사람이 홀연히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말한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말로 억지를 쓰는 것으로 모두가 바른 논의가 아닌 것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묻습니다. 제강공명께서는 어떤 경전을 공부하였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그를 보니 곧 엄준이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문장을 찾고 글귀를 뽑아내는 것은 세상의 쓸모없는 선비입니다. 어찌 나라를 일으키고 일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또한 옛날 신야에서 밭 갈던 이윤, 위수에서 낚시하던 태공, 장량, 진평 등의 무리들과 등우, 경엄의 무리들은 모두 우주를 바로잡고 도울 재능이 있었지만 그 평생동안 어떤 경전을 공부하였는지 자세하지 않습니다. 어찌 서생을 본 받아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가지고 구구하게 검은 것을 세고 누른 것을 논하여 글 장난하겠습니까?” 했다.
嚴畯低頭喪氣而不能對。忽又一人大聲曰:「公好為大言,未必真有實學,恐適為儒者所笑耳。」孔明視其人,乃汝南程德樞也。孔明答曰:「儒有君子小人之別。君子之儒,忠君愛國,守正惡邪,務使澤及當時,名留後世。若夫小人之儒,惟務雕蟲,專工翰墨,青春作賦,皓首窮經;筆下雖有千言,胸中實無一策;且如揚雄以文章名世,而屈身事莽,不免投閣而死,此所謂小人之儒也;雖日賦萬言,亦何取哉!」
엄준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기운을 잃어 대답하지 못하였다. 홀연히 또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공이 큰소리치기를 좋아하나 반드시 참된 실제 학문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니 마침 유자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그 사람을 보니 곧 여남의 정덕추였다. 제갈공명이 답하여 말하기를 “유가에는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있습니다. 군자의 유는 김금에 충성하고, 나라를 아끼고, 바름을 지키고 간사함을 미워하며 은택이 당시에 미치게 하기를 힘써 이름이 후세에 남겨졌습니다. 저 소인의 유 같은 경우는 오직 벌레나 새기는 하찮은 재주에 힘쓰고, 오로지 글을 쓰고 지어 젊을 때는 부를 짓고,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경전을 공부하여 붓으로는 비록 천 마디 말이 있으나 가슴 속에는 하나의 계책도 없습니다. 또 양웅 같은 이는 문장으로서 세상에 이름이 있었으나 몸을 굽히고 왕망을 섬기다 전각에서 던져지는 것을 면치 못하고 죽었으니 이를 이른 바 소인의 유라 하는 것입니다. 비록 하루에 만언의 부를 짓는다 할지라도 또한 무엇을 취하리오!” 했다.
程德樞不能對。眾人見孔明對答如流,盡皆失色。時座上張溫、駱統二人,又欲問難。忽一人自外而入,厲聲言曰:「孔明乃當世奇才,君等以脣舌相難,非敬客之禮也。曹操大軍臨境,不思退敵之策,乃徒鬥口耶!」
정덕추가 대답하지 못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제갈공명의 대답이 물 흐르는 듯 한 것을 보고 모두 얼국 색이 변하였다. 그 때 자리에 있던 장온, 낙통 두 사람이 또한 어려운 것을 묻고자 했다. 홀연히 한 사람이 밖으로부터 들어와 노한 소리로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곧 이 시대의 기이한 인재인데 그대들이 입술과 혀로서 곤란하게 하는 것은 객을 공경하는 예가 아닙니다. 조조의 대군이 국경에 이하였는데 적을 물리칠 계책을 생각하지 않고 한갓 말싸움만 하고 하고 있구려!” 했다.
眾視其人,乃零陵人,姓黃,名蓋,字公覆,現為東吳糧官。當時黃蓋謂孔明曰:「愚聞多言獲利,不如默而無言。何不將金石之論為我主言之,乃與眾人辯論也?」孔明曰:「諸君不知世務,互相問難,不容不答耳。」
무리들이 그 사람을 보니 곧 영릉 사람으로 성은 황이고, 미름은 개이며, 자는 공복인데 현재 동오의 양관이었다. 당시 황개가 제갈공명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말을 많이하여 이로움을 얻는 것은 묵묵히 말이 없는 것보바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금석의 논의로 우리 주인을 위해 말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변론합니까?” 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여러 분들이 세상의 일을 잘 알지 못하고 서로 어려움을 물으니 답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입니다.” 했다.
於是黃蓋與魯肅引孔明入;至中門,正遇諸葛瑾,孔明施禮。瑾曰:「賢弟既到江東,如何不來見我?」孔明曰:「弟既事豫州,理宜先公後私,公事未畢,不敢及私。望兄見諒。」瑾曰:「賢弟見過吳侯,卻來敘話。」說罷自去。
이에 황개와 노숙이 제갈공명을 인도하였는데 중문에 이르러 바로 제갈근을 만나니 제갈공명이 예를 베풀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아우가 이미 강동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나를 보러 오지 않았는가?”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이미 유현덕을 섬기니 이치상 공적인 일을 우선하고 사적인 일을 뒤로하는 것이 마땅하니 공적인 일을 마치치지 못하였는데 감히 사적인 일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형님께서는 양해하시기를 바랍니다.”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아우는 오후(손권)를 뵙고 나서 얘기를 나누세” 했다. 말을 마치고 갔다.
魯肅曰:「適間所囑,不可有誤。」孔明點頭應諾。引至堂上,孫權降階而迎,優禮相待。施禮畢,賜孔明坐。眾文武分兩行而立。魯肅立於孔明之側,只看他講話。孔明致玄德之意畢,偷眼看孫權:碧眼紫鬚,堂堂儀表。孔明暗思:「此人相貌非常,只可激,不可說。等他問時,用言激之便了。」
노숙이 말하기를 “금방 부탁한 바는 잘못이 있을 수 없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고개를 끄덕이고 승낙하였다. 인도하여 당상에 이르자 손권이 계단을 내려와 맞이하고, 훌륭한 예로 대우하였다. 에를 베풀기를 마치고 제갈공명에게 자리에 앉게 하였다. 여러 문무관이 나누어 두 열로 섰다. 노숙이 제갈공명의 옆에 서서 그가 말하는 것을 보았다. 제갈공명이 유현덕의 뜻을 전하기를 마치고 손권을 훔쳐보니 푸른 눈동자에 자줏빛 수염에 모습이 당당하였다. 제갈공명이 몰래 생각하기를 “이 사람의 모습이 비상하니 격동시킬 수는 있으나 설득할 수는 없겠다. 그가 물을 때 말을 써서 격동시키는 것이 편할 것이다.”했다.
獻茶已畢,孫權曰:「多聞魯子敬談足下之才,今幸得相見,敢求教益。」孔明曰:「不才無學,有辱明問。」權曰:「足下近在新野,佐劉豫州與曹操決戰,必深知彼軍虛實。」孔明曰:「劉豫州兵微將寡,更兼新野城小無糧,安能與曹操相持?」權曰:「曹兵共有多少?」孔明曰:「馬步水軍,約有一百餘萬。」權曰:「莫非詐乎?」孔明曰:「非詐也。曹操就兗州已有青州軍二十萬;平了袁紹,又得五六十萬;中原新招之兵三四十萬;今又得荊州之軍二三十萬:以此計之,不下一百五十萬。亮以百萬言之,恐驚江東之士也。」
차를 올리기를 마치자 손권이 말하기를 “노숙이 그대의 재능을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 다행히도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감히 이익되는 가르침을 청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재능이 없고 배운 것이 없어 밝은 물음을 욕됨이 있을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그대는 근래 신야에 있다가 유예주(유현덕)를 도와 조조와 결전하였으니 반드시 그 군대의 허실을 깊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유예주(유현덕)는 군대가 미미하고 장수는 적으며, 게다가 신야는 성이 작고 양식이 없으니 어찌 조조와 설로 대치할 수 있었겠습니까?”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조조의 군대는 합하면 어느 정도인가?”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기병, 보병, 수군이 대략 일백여만 명입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거짓이 아님이 없는가?”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거짓이 없습니다. 조조가 연주에 나아가 이미 청주 군대 이십만을 소유하였고, 원소를 평정하고 또한 오십육만을 얻었고, 중원에서 불러 모은 군대가 삼, 사십 만인데 지금 또한 형주의 군대 이, 삼십만을 얻었으니 이로서 계산하면 일백오십 만이 넘습니다. 제가 백만이라고 말한 것은 강동의 사들이 놀랄 것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했다.
魯肅在旁,聞言失色,以目視孔明;孔明只做不見,權曰:「曹操部下戰將,還有多少?」孔明曰:「足智多謀之士,能征慣戰之將,何止一二千人!」權曰:「今曹操平了荊楚,復有遠圖乎?」孔明曰:「即今沿江下寨,準備戰船,不欲圖江東,待取何地?」權曰:「若彼有吞併之意,戰與不戰,請足下為我一決。」孔明曰:「亮有一言,但恐將軍不肯聽從。」
노숙이 옆에 있다가 말을 듣고 얼굴색을 잃고 제갈공명에게 눈짓하였으나 제갈공명은 다만 보지 못한 채하였다. 손권이 말하기를 “조조의 부하 중에 싸움을 잘 하는 장수는 또 얼마나 되는가?”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지혜가 충분하고 꾀가 많은 선비와 싸움에 강하고 익숙한 장수가 어찌 일, 이천 명에 그치겠습니까!”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지금 조조가 형초를 평정하고도 다시 멀리 도모함이 있겠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지금 강의 연안에 영채를 설치하고 전선을 준비하고 있으니 강동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면 어떤 땅을 취하기를 기다리십니까?”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만약 그가 병탄의 뜻이 있다면 싸우는 것과 싸우지 않는 것 중에서 그대는 나를 위하여 한번 결단해 주기를 청합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한 말이 있는데 다만 장군께서 즐겨 다르지 않을까 두려울 뿐입니다.”했다.
權曰:「願聞高論。」孔明曰:「向者宇內大亂,故將軍起江東,劉豫州收眾漢南,與曹操並爭天下。今操芟除大難,略已平矣;近又新破荊州,威震海內;縱有英雄,無用武之地:故豫州遁逃至此。願將軍量力而處之。若能以吳越之眾,與中國抗衡,不如早與之絕;若其不能,何不從眾謀士之論,按兵束甲,北面而事之?」
손권이 말하기를 “훌륭한 견해 듣기를 원합니다.” 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전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졌기 때문에 장군께서 강동에서 일어났고, 유예주(유현덕)께서는 한남에서 무리를 거두어 조조와 천하를 다투었습니다. 지금 조조는 큰 어려움을 없애고 대략 이미 평정하였고, 최근에는 또한 새로 형주를 깨트려 위엄이 천하를 진동하였습니다. 설령 영웅일지라도 군대를 쓸 땅이 없기 때문에 유예주(유현덕)가 도망하여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장군께서는 힘을 헤아려 대처하기를 원합니다. 만약 오월의 무리로서 중국과 맞설 것이라면 일찍 조조와 끊는 것이 낫습니다. 만약 할 수 없다면 어찌하여 여러 모사들의 논의를 따라 병기를 놓고 갑옷을 벗어 묶어 북쪽을 향하여 그를 섬기지 않습니까?” 했다.
權未及答。孔明又曰:「將軍外託服從之名,內懷疑貳之見,事急而不斷,禍至無日矣。」權曰:「誠如君言,劉豫州何不降操?」孔明曰:「昔田橫齊之壯士耳,猶守義不辱,況劉豫州王室之冑,英才蓋世,眾士仰慕?事之不濟,此乃天也,又安能屈處人下乎?」
손권이 대답하기도 전에 제갈공명이 또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겉으로는 복종의 이름에 의탁하고, 안으로는 두 단 마음을 품고 일이 급한데도 결단하지 않으니 화의 이름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진실로 그대의 말과 같다면 유예주(유현덕)은 어찌하여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는가?”하니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옛 날 전횡은 제나라의 장사일 뿐이었는데도 오히려 의를 지켜 욕되게 살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유예주(유현덕)는 왕실의 후예로 훌륭한 재능이 세상을 덮어 많은 사람들이 앙모합니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는 곧 하늘의 뜻이니 어찌 굽혀서 다른 사람 아래에 있겠습니까?”했다.
孫權聽了孔明此言,不覺勃然變色,拂衣而起,退入後堂。眾皆哂笑而散。魯肅責孔明曰:「先生何故出此言?幸是吾主寬洪大度,不即面責。先生之言,藐視吾主甚矣。」孔明仰面笑曰:「何如此不能容物耶?我自有破曹之計,彼不問我,我故不言。」肅曰:「果有良策,肅當請主公求教。」孔明曰:「吾視曹操百萬之眾,如群蟻耳!但我一舉手,則皆為虀粉矣!」
손권이 제갈공명의 이 말을 듣고 갑자기 화를 내고 얼굴색이 변하면서 옷을 떨치고 일어나서 물러나 후당에 들어갔다. 무리들이 모두 비웃으며 흩어졌다. 노숙이 제갈공명을 질책하며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무슨 이유로 이 말을 하였습니까? 다행히 우리 임금이 도량이 크고 너그러워서 얼굴을 맞대도 질책하지는 않았습니다. 선생의 말은 우리 임금을 얕잡아 보기를 심하게 하였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얼굴을 들고 웃으며 말하기를 “어찌 이 같이 남을 용납하지 못합니까? 내가 조조를 깨트릴 계책이 있으나 그가 나에게 묻지 않으니 내가 말하지 못하였습니다.”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과연 좋은 계책이 있다면 저는 마땅히 주공께 가르침을 구할 것을 청하겠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나는 조조의 백만 무리를 개미 무리 같이 볼 뿐입니다. 단지 내가 한 손을 들기만 하여도 모두 산산조각날 것입니다.” 했다.
肅聞言,便入後堂,見孫權。權怒氣未息,顧謂肅曰:「孔明欺吾太甚!」肅曰:「臣亦以此責孔明,孔明反笑主公不能容物,破曹之策,孔明不肯輕言。主公何不求之?」權回嗔作喜曰:「原來孔明有良謀,故以言詞激我。我一時淺見,幾誤大事。」便同魯肅重復出堂,再請孔明敘話。權見孔明,謝曰:「適來冒瀆清嚴,幸勿見罪。」孔明亦謝曰:「亮言語冒犯,望乞恕罪。」權邀孔明入後堂,置酒相待。
노숙이 말을 듣고 곧 후당에 들어가 손권을 만났다. 손권이 노한 기운을 그치지 않고 노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제갈공명이 나를 속임이 너무 심하구나!”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신이 또한 이로써 제갈공명을 질책하였더니 제갈공명이 도리어 웃으며 주공께서 남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조를 깨트릴 계책을 제갈공명이 기꺼이 가볍게 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그것을 구하지 않습니까?”했다. 손권이 화를 내다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원래 제갈공명이 좋은 계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말로서 나를 격동시킨 것이다. 내가 한때의 얕은 견해로 대사를 그르치겠는가?”했다. 곧 같이 노숙과 같이 거듭 당에 나가 다시 제갈공명과 말을 나눌 것을 청하였다. 손권이 제갈공명을 만나 감사하며 말하기를 “방금 맑은 위엄을 모독하였으나 허물하지 않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또한 감사하고 말하기를 “저의 말이 무례하였다면 죄를 용서하여 줄 것을 청합니다.”했다. 손권이 제갈공명을 맞아 후당에 들어가 술을 놓고 서로 마주하였다.
數巡之後,權曰:「曹操平生所惡者,呂布、劉表、袁紹、袁術、豫州與孤耳。今數雄已滅,獨豫州與孤尚存。孤不能以全吳之地,受制於人。吾計決矣。非劉豫州莫與當曹操者。然豫州新敗之後,安能抗此難乎?」孔明曰:「豫州雖新敗,然關雲長猶率精兵萬人;劉琦領江夏戰士,亦不下萬人。曹操之眾,遠來疲憊;近追豫州,輕騎一日夜行三百里。此所謂「強弩之末,勢不能穿魯縞」者也。且北方之人,不習水戰。荊州士民附操者,迫於勢耳,非本心也。今將軍誠能與豫州協力同心,破曹軍必矣。操軍破必北還,則荊吳之勢強,而鼎足之形成矣。成敗之機,在於今日。惟將軍裁之。」
몇 번 술잔이 돈 후 손권이 말하기를 “조조가 평생동안 미워한 자는 여포, 유표, 원소, 원술, 예주(유현덕)와 나
뿐입니다. 지금 몇몇 영웅이 이미 없어졌는데 유독 예주(유현덕)와 내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내가 오나라의 땅을 보존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제재를 받을 것입니다. 나는 계획을 결단할 것입니다. 유예주(유현덕)가 아니면 함께 조조를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주(유현덕)가 새로 패한 후인데 어찌 이 어려움에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예주(유현덕)가 비록 새로이 패하였으나 관운장은 오히려 정예 군대 만 명을 거느리고 있고, 유기는 강하의 전사를 거느림이 또한 만 명보다 많습니다. 조조의 무리는 멀리서 와서 완전히 지친데다 최근에는 예주(유예주)를 추격하여 가볍게 무장한 기병이 하루 밤낮에 삼백 리를 행군하였습니다. 이는 이른 바 ‘강한 화살도 끝에 가서는 형세가 노나라의 비단도 뚫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북방의 사람들은 수전을 익히지 못하였습니다. 형주의 사민들로 조조에게 붙은 자는 형세에 압박을 받았기 때문일 뿐 본심이 아닙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진실로 예주(유현덕)와 협력하고 마음을 같이하면 조조의 군대를 깨트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조조는 군대가 깨트려지면 반드시 북쪽으로 돌아갈 것이고, 곧 형주와 오가 강해져서 솥발의 형세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패의 기미가 오늘에 달려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결정하십시오.” 했다.
權大悅曰:「先生之言,頓開茅塞。吾意已決,更無他疑。即日商議起兵,共滅曹操。」遂令魯肅將此意傳諭文武官員,就送孔明於館驛安歇。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선생의 말은 우둔함을 단번에 열어주었습니다. 내 뜻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다시 다른 뜻이 없습니다. 그날 군대를 일으켜 함께 조조를 없앨 것을 상의하였다.”했다. 마침내 노숙으로 하여금 이 뜻을 문무관원에게 전하게 하고, 제갈공명을 관역(숙소)에 보내 편안히 쉬게 하였다.
張昭知孫權欲興兵,遂與眾議曰:「中了孔明之計也!」急入見權曰:「昭等聞主公將興兵與曹操爭鋒。主公自思比袁紹若何?曹操向日兵微將寡,尚能一鼓克袁紹,何況今日擁百萬之眾南征,豈可輕敵?若聽諸葛亮之言,妄動甲兵,此所謂負薪救火也。」孫權只低頭不語。顧雍曰:「劉備因為曹操所敗,故欲借我江東之兵以拒之,主公奈何為其所用乎?願聽子布之言。」
장소는 손권이 군대를 일으키려 하는 것을 알고는 마침내 무리들과 함께 의논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의 계책에 적중 당하였구나!”하고는 급히 들어가 손권을 뵙고 말하기를 “저희들이 들으니 주공께서 장차 군대를 일으켜 조조와 예봉을 다투려 한다고 합니다. 주공께서는 스스로 생각할 때 원소에 비하여 어떠합니까? 조조는 지난날 군대는 미미하고 장수도 적었으나 오히려 한 번의 북소리로 원소를 이겼는데 하물며 지금 백만의 무리를 이끌고 남쪽을 정벌하고 있으니 어찌 가벼이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제갈공명의 말을 듣고 망녕되이 군대를 움직인다면 이는 이른바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머리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 고옹이 말하기를 “유현덕은 조조에게 패하였기 때문에 우리 강동의 군대를 빌려 그들을 막고자 하는 것인데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이용당하려 하십니까? 자초의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했다.
孫權沈吟未決。張昭等出,魯肅入見曰:「適張子布等,又勸主公休動兵,力主降議,此皆全軀保妻子之臣,為自謀之計耳。願主公勿聽也。」孫權尚在沈吟。肅曰:「主公若遲疑,必為眾人誤矣。」權曰:「卿且暫退,容我三思。」肅乃退出。時武將或有要戰的,文官都是要降的,議論紛紛不一。
손권이 망설이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장소 등이 나오니 노숙이 들어가 뵙고 말하기를 “마침 장소들이 또 주공께서 군대를 움직이는 것을 그만둘 것을 권하고, 힘써 항복하는 의사를 주장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모두 몸을 보존하고, 처자를 보호하려는 신하들로 스스로를 도모하기 위한 계책일 뿐입니다. 주공께서는 듣지 말기를 원합니다.”했다. 손권이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노숙이 말하기를 “주공께서 만약 주저한다면 반드시 여러 사람들이 주공을 그르치게 할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경은 또한 잠시 물러나 있으면 내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이다.”했다. 노숙이 곧 물러나왔다. 그 때 무장들은 혹 싸울 것을 주장함이 있었으나, 문관은 모두 항복을 청하여 의논이 분분하여 하나로 되지 않았다.
且說孫權退入內宅,寢食不安,猶豫不決。吳國太見權如此,問曰:「何事在心,寢食俱廢?」權曰:「今曹操屯兵於江漢,有下江南之意。問諸文武,或欲降者,或欲戰者。欲待戰來,恐寡不敵眾;欲待降來,又恐曹操不容:因此猶豫不決。」吳國太曰:「汝何不記吾姐臨終之語乎?」孫權如醉方醒,似夢初覺,想出這句話來。正是:追思國母臨終語,引得周郎立戰功。畢竟說著甚的,且看下文分解。
각설하고 손권이 물러나 내택으로 들어갔는데 자고 먹는 것이 편안하지 못하며, 미루고 결단하지 못하였다. 오국태가 손권의 이 같음을 보고 물어 말하기를 “어떤 일이 마음에 있어 자고 먹는 것을 모두 폐하였는가?”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지금 조조가 군대를 강한에 주둔하고 있는데 강남에 내려오려는 뜻이 있습니다. 여러 문관과 무관에게 물어보니 혹은 항복하려는 자가 있고, 혹은 싸우려는 자가 있습니다. 싸우려 하니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대적하지 못할 것이 두렵고, 또 항복하고자 하니 조조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 두렵습니다. 이 때문에 미루고 결단하지 못하였습니다.”했다. 오국태가 말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나의 언니가 죽을 때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가?”했다. 손권이 마치 술에 취하였다가 막 깬 듯하고, 꿈을 꾸다가 처음 깬 듯 한 마디 말을 생각해 내었다. 바로 이러하다. 국모가 죽을 때 한 말을 돌이켜 생각하고 주랑이 전공을 세울 수 있도록 이끈다. 마침내는 더 없이 정곡을 찔렀으니 또한 아래 에서 글을 나누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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