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八回:定三分隆中決策,戰長江孫氏報讎
제38회 융중에서 천하를 셋으로 나눌 계책을 정하고, 장강에서 사워 손씨의 원수를 갚다.
卻說玄德訪孔明兩次不遇,欲再往訪之。關公曰:「兄長兩次親往拜謁,其禮太過矣。想諸葛亮有虛名而無實學,故避而不敢見。兄何惑於斯人之甚也?」玄德曰:「不然。昔齊桓公欲見東郭野人,五反而方得一面。況吾欲見大賢耶?」張飛曰:「哥哥差矣。量此村夫,何足為大賢?今番不須哥哥去;他如不來,我只用一條麻繩縛將來!」玄德叱曰:「汝皆不聞周文王謁姜子牙之事乎?文王且如此敬賢,汝何太無禮!今番汝休去,我自與雲長去。」飛曰:「既兩位哥哥都去,小弟如何落後?」玄德曰:「汝若同往,不可失禮。」
각설하고 유현덕이 제갈공명을 두 차례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하자 다시 방문하고자 하였다. 관운장이 말하기를 “형님께서 두 차례나 직접 보러 간 것은 그 예가 크게 지나칩니다. 제갈량은 헛된 이름은 있지만 실제는 배움이 없기 때문에 피하고 감히 만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형님은 어찌하여 이 사람에게 미혹됨이 심합니까?”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옛날 제나라 환공은 동곽야인을 만나려 다섯 번 갔다가 돌아오고 바야흐로 한 번 만났다. 하물며 내가 크게 어진 이를 만나려함에 있어서이겠는가?”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이는 촌부로 추측되는데 어찌 크게 어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형님께서 가실 필요가 없고 그가 만일 오지 않는다면 제가 단지 한 조의 밧줄을 써서 묶어 오게 할 것입니다.” 했다. 유현덕이 질책하여 말하기를 “너는 주나라 문왕이 강태공을 뵌 일을 듣지 못하였는가? 문왕도 또한 이 같이 어진 이를 공경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무례함이 큰가. 이번에 너는 가지 말고 나와 관운장이 갈 것이다.”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이미 두 분 형님이 모두 가시는데 제가 어찌 뒤에 떨어지겠습니까?”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네가 만약 같이 가려한다면 예를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했다.
飛應諾。於是三人乘馬引從者住隆中。離草廬半里之外,玄德便下馬步行,正遇諸葛均。玄德忙施禮,問曰:「令兄在莊否?」均曰:「昨暮方歸。將軍今日可與相見。」言罷,飄然自去。玄德曰:「今番僥倖,得見先生矣!」張飛曰:「此人無禮!便引我等到莊也不妨!何故竟自去了!」玄德曰:「彼各有事,豈可相強?」
장비가 응락하였다. 이에 세 사람이 말을 타고 종자를 이끌고 융중에 갔다. 초려에서 반리 쯤 덜어졌을 때 유현덕은 곧 말에서 내려 걸어가 바로 제갈균을 만났다. 유현덕이 급히 예를 베풀고 물어 말하기를 “당신의 형님께서는 장원에 있습니까?”하니 제갈균이 말하기를 “어제 늦게 막 돌아왔습니다. 장군께서는 오늘 서로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말을 마치고는 제 갈 길을 표연히 갔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번에는 요행히도 선생을 만날 수 있겠구나!”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이(제갈균) 사람이 무례하구나! 곧 우리들을 인도하여 장원에 이르는 것이 괜찮은데 무슨 이유로 뜻밖에 떠나는가!”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그들은 각기 일이 있을 것이니 어찌 강요 할 수 있겠는가?” 했다.
三人來到莊前叩門,童子開門出問。玄德曰:「有勞仙童轉報,劉備專來拜見先生。」童子曰:「今日先生雖在家,但現在草堂上晝寢未醒。」玄德曰:「既如此,且休通報。」分付關、張二人,只在門首等著。玄德徐步而入,見先生仰臥於草堂几席之上。玄德拱立階下。
세 사람이 장원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니 동자가 문을 열고 나와 물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선동은 수고롭겠지만 돌아가 유현덕이 선생을 뵈러 왔다고 전해다오.” 했다. 동자가 말하기를 “오늘 선생께서 비록 집에 계시나 현재 초당에서 낮잠을 자면서 아직 깨지 않았습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미 이 같다면 또한 통보하지 말라.”하고는 관운장, 장비 두 사람에게 분부하여 문에 있게 하였다. 유현덕이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선생이 초당 궤석 위에 바로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유현덕이 두 손을 모으고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半晌,先生未醒。關、張在外立久,不見動靜,入見玄德,猶然侍立。張飛大怒,謂雲長曰:「這先生如何傲慢!見我哥哥侍立階下,他竟高臥,推睡不起!等我去屋後放一把火,看他起不起!」雲長再三勸住。玄德仍命二人出門外等候。望堂上時,見先生翻身將起,忽又朝裡壁睡著。童子欲報。玄德曰:「且勿驚動。」又立了一個時辰,孔明纔醒,口吟詩曰:
한 나절이 지나도 선생이 깨지 않았다. 관운장과 장비가 밖에 서 있기를 오래하여도 동정이 보이지 않자 들어가 유현덕을 보니 여전히 시립하고 있었다. 장비가 크게 노하여 관운장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선생을 어찌 이리도 오만한가! 우리 형님은 계단 아래 시립해 있는 것을 보고도 저는 끝내 높은 베개를 베고 누워 잠자면서 일어나지 않는구나! 내가 집 뒤로 가서 불을 지르면 일어나는지 일어나지 않는지 보겠다.” 했다. 관운장이 두 번 세 번 그만 둘 것을 권하였다. 유현덕이 두 사람에게 명하여 문을 나가 밖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당 위를 바라보니 선생이 몸을 돌려 일어나는 듯하더니 홀연히 또한 벽을 보고 돌아누워 잠을 잤다. 동자가 알리려하였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또한 놀라 움직이게 하지 말라.”하고는 도한 서서 한 시진(두 시간)을 서 있으니 제갈공명이 겨우 깨 입으로 시를 읊조려 말하기를
大夢誰先覺?平生我自知。草堂春睡足,窗外日遲遲。
“큰 꿈꾸는데 누가 먼저 깨우는가? 평생토록 나 스스로 알았다. 초당에서 충분히 봄잠을 자는데 창밖의 해는 길기만 하다.”
孔明吟罷,翻身問童子曰:「有俗客來否?」童子曰:「劉皇叔在此,立候多時。」孔明乃起身曰:「何不早報!尚容更衣。」遂轉入後堂。又半晌,方整衣冠出迎。玄德見孔明身長八尺,面如冠玉,頭戴綸巾,身披鶴氅,飄飄然有神仙之概。玄德下拜曰:「漢室末冑、涿郡愚夫,久聞先生大名,如雷貫耳。昨兩次晉謁,不得一見,已書賤名於文几,未審得入覽否?」孔明曰:「南陽野人,疏懶性成,屢蒙將軍枉臨,不勝愧赧。」
제갈공명이 읊조리기를 마치고 몸을 돌려 동자에게 물어 말하기를 “속객이 온 분이 계시는가?”하니 동자가 말하기를 “유황숙이 여기에 계시는데 서서 기다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했다. 제갈공명이 곧 몸을 일으키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일찍 알려주지 않았는가! 얼굴을 가다듬고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하고는 마침내 돌아 후당에 들어갔다. 또 얼마 후 비로소 의관을 정리하고 나와 맞이하였다. 유현덕이 제갈공명을 보니 신장이 여덟 자이고, 얼굴은 관옥과 같으며, 머리에는 윤건을 쓰고 몸에는 학창의를 입었는데 표표하여 신선의 기개가 있었다. 유현덕이 몸을 굽혀 절하며 말하기를 “한나라 황실의 말손이고, 탁군의 보통 사람이 선생의 큰 이름이 우레와 같이 귀를 꿰는 것을 들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두 차례 뵈려하였으나 한 번도 뵙지 못하고 천한 이름을 문궤에 써 두었는데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남양의 야인은 성품이 태만한데도 여러 차례 장군의 방문을 입었으니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했다.
二人敘禮,分賓主而坐。童子獻茶。茶罷,孔明曰:「昨觀書意,足見將軍憂民憂國之心;但恨亮年幼才疏,有誤下問。」玄德曰:「司馬德操之言,徐元直之語,豈虛談哉?望先生不棄鄙賤,曲賜教誨。」孔明曰:「德操、元直,世之高士。亮乃一耕夫耳,安敢談天下事?二公謬舉矣。將軍奈何舍美玉而求頑石乎?」玄德曰:「大丈夫抱經世奇才,豈可空老於林泉之下?願先生以天下蒼生為念,開備愚魯而賜教。」孔明笑曰:「願聞將軍之志。」玄德屏人促席而告曰:「漢室傾頹,奸臣竊命,備不量力,欲伸大義於天下,而智術淺短,迄無所就。惟先生開其愚而拯厄,實為萬幸。」
두 사람이 예를 표하고 손님과 주인을 나누어 앉았다. 동자가 차를 올렸다. 차 마시기를 마치고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지난 번 글의 뜻을 보고 장군이 백성을 근심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을 충분히 보았습니다. 다만 저의 나이가 어리고, 재능이 적어 물음에 잘못이 있을까 한할 뿐입니다.” 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사마덕조의 말과 서원직의 말이 어찌 헛된 얘기이겠습니까? 선생께서는 비천한 저를 버리지 마시고 곡진한 가르침을 내려 주실 것을 바랍니다.” 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사마덕조와 서원직은 세상의 고상한 선비이고, 저는 곧 일개 농부일 뿐이니 어찌 감히 천하의 일을 얘기하겠습니까? 두 공이 잘못 천거하였습니다.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을 버리고 잡석을 구하십니까?”했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세상을 경영할 기이한 재능을 안고 있는데 어찌 공연히 숲 속에서 늙을 수 있겠습니까? 원하건 데 선생께서는 천하창생을 위하여 저의 어리석고 노둔함을 열어 줄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했다.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장군의 뜻을 듣기를 원합니다.” 했다. 유현덕이 다른 사람을 물리치고 무릎을 맞대고 앉아 말하기를 “한나라 황실은 기울어 무너지고 간신이 명을 훔치는데 저는 역량이 부족하여 천하에 대의를 펴고자 하나 지혜와 꾀가 천박하여 마침내 나아갈 바가 없었습니다. 선생만이 그 어리석음을 열어 재앙을 구해주시면 실로 다행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했다.
孔明曰:「自董卓造逆以來,天下豪傑並起。曹操勢不及袁紹,而竟能克紹者,非惟天時,抑亦人謀也。今操已擁百萬之眾,挾天子以令諸侯,此誠不可與爭鋒。孫權據有江東,已歷三世,國險而民附,此可用為援,而不可圖也。荊州北據漢沔,利盡南海,東連吳會,西通巴蜀,此用武之地,非其主不能守。是殆天所以資將軍,將軍豈可棄乎?益州險塞,沃野千里,天府之國,高祖因之以成帝業。今劉璋闇弱,民殷國富,而不知存恤,智能之士,思得明君。將軍既帝室之冑,信義著於四海,總攬英雄,思賢如渴,若跨有荊益,保其巖阻,西和諸戎,南撫彝越,外結孫權,內修政理;待天下有變,則命一上將,將荊州之兵,以向宛洛;將軍身率益州之眾,以出秦川,百姓有不簞食壼漿以迎將軍者乎?誠如是,則大業可成,漢室可興矣。此亮所以為將軍謀者也。惟將軍圖之。」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동탁이 반역을 한 이래로부터 천하에 호걸이 나란히 일어났습니다. 조조의 세력은 원소에게 미치지 못하였으나 마침내 원소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천시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계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조가 이미 백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명령하니 이는 진실로 예봉을 다툴 수 없습니다. 손권은 강동을 점거하여 이미 삼 세대를 지났고, 나라는 험하고 백성이 따르니 이는 써서 돕게 할 수는 있으나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형주 북쪽은 한수와 면수가 자리 잡아 이로움이 남해를 다하고, 동쪽으로는 오나라와 회계에 잇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파촉에 통하니 이는 무력을 쓸 땅으로 그 주인이 아니면 지킬 수 없습니다. 이는 자못 하늘이 장군에게 준 것인데 장군은 어찌하여 버려둡니까? 익주는 험하고 막혔으며 비옥한 들이 천리로 생산이 풍부한 나라로 고조가 그 땅으로 제업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유장은 어둡고 약하여 백성은 많고 나라는 부유하되 사람을 보내 위로하고 돌볼 줄 알지 못하고, 지혜롭고 능력 있는 선비는 현명한 임금을 맞이할 것을 생각합니다. 장군께서는 이 황실의 후손으로 신의가 천하에 드러났고, 영웅을 통틀어서 관할하고, 어진 이를 생각하기를 목마른 듯이 하시니 만약 형주와 익주를 타넘어 소유하시고, 그 험함에 의지하여 지키면서 서쪽으로 여러 오랑캐와 화친하고 남쪽으로 이와 월을 어루만지며 밖으로는 손권과 맺고, 안으로 정치를 잘 다스리다가 천하에 변함이 있으면 곧 한 뛰어난 장수에게 명하여 형주의 군대를 거느리고 완성과 낙양을 향하게 합니다. 장군 자신은 익주의 무리를 거느리고 진천으로 나오시면 백성들이 대바구니의 밥과 한 단지의 장을 가지고 장군을 맞이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진실로 이 같이하면 대업을 이루어 한나라를 흥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장군을 위한 꾀입니다. 장군께서는 도모하십시오.” 했다.
言罷,命童子取出畫一軸,挂於中堂,指謂玄德曰:「此西川五十四州之圖也。將軍欲成霸業,北讓曹操占天時,南讓孫權占地利,將軍可占人和。先取荊州為家,後即取西川建基業,以成鼎足之勢,然後可圖中原也。」
말을 마치고 동자에게 드림 한 축을 내오게 하여 중당에 걸게하고, 유현덕에게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는 서천 사십 이주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북쪽은 조조가 천시로 차지하고 있으니 양보하시고, 남쪽은 손권이 땅의 이점을 차지하고 있으니 양보하시고 장군께서는 인화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먼저 형주를 취하여 가로 만든 뒤 곧 서천을 취하여 기업을 세우는 것으로서 솥발의 형세를 이룬 후 중원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했다.
玄德聞言,避席拱手謝曰:「先生之言,頓開茅塞,使備如撥雲霧而睹青天;但荊州劉表、益州劉璋,皆漢室宗親,備安忍奪之?」孔明曰:「亮夜觀天象,劉表不久人世。劉璋非立業之主,久後必歸將軍。」玄德聞言,頓首拜謝。只這一席話,乃孔明未出茅廬,已知三分天下,真萬古人不及也!後人有詩讚曰:
유현덕이 말을 듣고 자리를 피하여 손을 모으고 감사하여 말하기를 “선생의 말로 어리석음을 갑자기 깨닫게 하여 저로 하여금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맑은 하늘을 보게 하였는데 다만 형주의 유표, 익주의 유장은 모두 한나라 황실의 종친인데 제가 차마 그것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밤에 천상을 관찰해보니 유표는 사람의 세상에서 오래하지 못합니다. 유장은 업을 세울 주인이 아니니 오랜 후에 반드시 장군에게 돌아 올 것입니다.”했다. 유현덕이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례하였다. 이 한 자리에서의 말은 곧 제갈공명이 띠 집을 나오지 않고 이미 천하가 셋으로 나누어질 것을 알았으니 참으로 만고의 사람들이 미치지 못할 것이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려 말하기를
豫州當日歎孤窮,何幸南陽有臥龍。欲識他年分鼎處,先生笑指畫圖中。
“유현덕이 그날 외롭고 막힘을 탄식하였는데, 어쩜 남양에 있는 와룡을 만났는가. 다른 해에 솥발로 나누어질 곳을 알고자하니 선생이 웃으며 지도를 가리켰네.” 했다.
玄德拜請孔明曰:「備雖名微德薄,願先生不棄鄙賤,出山相助。備當拱聽明誨。」孔明曰:「亮久樂耕鋤,懶於應世,不能奉命。」玄德泣曰:「先生不出,如蒼生何?」言畢,淚沾袍袖,衣襟盡濕。孔明見其意甚誠,乃曰:「將軍既不相棄,願效犬馬之勞。」
유현덕이 절하며 제갈공명을 청하여 말하기를 “제가 비록 명성이 미미하고 덕이 없으나 선생께서 비천함을 버리지 마시고 산을 나와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마땅히 손을 모으고 밝은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했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저는 오래동안 밭 갈고 김매는 것을 즐기며 시세에 적응함에 게을러 명을 받들지 못합니다.” 했다. 유현덕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선생께서 나오시지 않으신다면 백성을 어찌하시겠습니까?”했다.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려 포의 소매를 적시니 옷이 모두 축축해졌다. 제갈공명이 그 뜻이 매우 정성스러운 것을 보고는 곧 말하기를 “장군께서 이미 버리시지 않으시니 견마의 수고로움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했다.
玄德大喜,遂命關、張入拜獻金帛禮物。孔明固辭不受。玄德曰:「此非聘大賢之禮,但表劉備寸心耳。」孔明方受。於是玄德等在莊中共宿一宵。次日,諸葛均回,孔明囑付曰:「吾受劉皇叔三顧之恩,不容不出。汝可躬耕於此,勿得荒蕪田畝。待吾功成之日,即當歸隱。」後人有詩歎曰:
유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관운장과 장비를 하여금 들어와 비단과 예물을 올리게 했다. 제갈공명이 굳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유현덕이 말하기를 “이는 크게 어진 이를 초빙하는 예물이 아니라 저의 한 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했다. 제갈공명이 비로소 받았다. 이에 유현덕 등이 장원 안에 있으면서 하루 밤을 묵었다. 다음 날 제갈균이 돌아오자 제갈공명이 부탁하여 말하기를 “내가 유황숙이 세 번 방문한 은혜를 받아 나가지 않을 수 없다. 너는 몸소 여기서 농사지어 토지를 황폐하게 하지 말라. 내가 공을 이루는 날을 기다렸다가 즉시 돌아와 숨을 것이다.” 했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찬탄한 것이 있는데 시에 말하기를
身未升騰思退步,功成應憶去時言。只因先主丁寧後,星落秋風五丈原。
자신이 날아오르지도 않았는데 물러날 것을 생각하고, 공을 이루고 떠날 때의 말을 생각하는구나. 오직 선주의 신신당부 때문에 가을바람 속 오장원에서 별이 떨어졌다.
又有古風一篇曰:
또 고풍이 한 편이 있는데 말하기를
高皇手提三尺雪,芒碭白蛇夜流血。平秦滅楚入咸陽,二百年前幾斷絕。大哉光武興洛陽,傳至桓、靈又崩。獻帝遷都幸許昌,紛紛四海生豪傑。曹操專權得天時,江東孫氏開鴻業。孤窮玄德走天下,獨居新野愁民危。南陽臥龍有大志,腹內雄兵分正奇。只因徐庶臨行語,茅廬三顧心相知。先生爾時年三九,收拾琴書離隴畝。先取荊州後取川,大展經綸補天手。縱棋舌上鼓風雷,談笑胸中換星斗。龍驤虎視安乾坤,萬古千秋名不朽。
“고황제의 손에 들린 세 자 하얀 칼날에 망탕산 백사가 밤에 피를 흘렸다. 진나라를 평정하고 초나라를 멸하고 함양에 들어갔으나 이백 년 전에 거의 단절 될 뻔하였네. 크도다 광무제가 낙양에서 흥기하고, 전하여 환제, 영제에 이르러 또한 무너졌네. 헌제가 도읍을 옮겨 허창에 가니, 어지럽게 사해에서 호걸들이 일어났다. 조조는 권세를 오로지하여 천시를 얻고, 강동의 손씨는 홍업을 열었다. 외롭고 막힌 유현덕은 천하를 달리고, 홀로 신야에 머물러 백성의 위태로움을 근심하였다. 남양의 와룡이 큰 뜻이 있어, 뱃속의 웅병은 정기를 나누었다. 서원직이 떠날 즈음에 한 말로 인하여, 띠집을 세 번 방문한 마음 서로 알았다. 선생의 이때 나이 삼십구 세로, 거문고 책 거두어 시골을 떠났다. 먼저 형주를 취한 후 서천을 취하여 크게 하늘을 깁는 경륜을 폈다. 그 혀를 종횡으로 놀리니 바람과 우레가 울리고 담소하는 가슴 속 별이 빛난다. 영웅의 의기는 하늘과 땅을 편안하게 하고, 천년만년 명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玄德等三人別了諸葛均,與孔明同歸新野。玄德待孔明如師,食則同桌,寢則同榻,終日共論天下之。孔明曰:「曹操於冀州作玄武池以練水軍,必有侵江南之意,可密令人過江探聽虛實。」玄德從之,使人往江東探聽。
유현덕 등 세 사람이 제갈균을 이별하고 제갈공명과 함께 신야에 돌아왔다. 유현덕이 제갈공명을 스승과 같이 대우하여 밥을 먹을 때는 같은 식탁에서 하고, 잠을 잘 때는 곧 같은 침상을 쓰며, 종일토록 함께 천하에 대해 논하였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조조가 기주에 현무지를 만들고 수군을 훈련하는 것은 반드시 강남을 침공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니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강을 건너 허실을 조사해 보아야 합니다.” 했다. 유현덕이 그것을 따라 사람을 시켜 강동에 가 탐지하게 하였다.
卻說孫權自孫策死後,據住江東,承父兄基業,廣納賢士,開賓館於吳會,命顧雍、張紘延接四方賓客。連年以來,你我相薦。時有會稽闞澤,字德潤;彭城嚴畯,字曼才;沛縣薛綜,字敬文;汝南程秉,字德樞;吳郡朱桓,字休穆;陸績,字公紀;吳人張溫,字惠恕;會稽凌統,字公續;烏程吳粲,字孔休:此數人皆至江東。孫權敬禮甚厚。又得良將數人,乃汝陽呂蒙,字子明,吳郡陸遜,字伯言,瑯琊徐盛,字文嚮,東郡潘璋,字文珪,廬江丁奉,字承淵。文武諸人,共相輔佐。由此江東稱得人之盛。
각설하고 손권은 손책이 죽은 후로부터 강동을 점거하고 부형의 기업을 계승하여 어진 선비를 많이 받아들이고, 오회에 빈관을 열고 고옹, 장굉으로 하여금 사방에서 오는 빈객을 맞이하게 하였다. 여러 해 이어진 이래로 너, 나가 서로 추천하였다. 그 때 회계에는 감택이 있었으니 자는 덕윤이다. 팽성의 엄준은 자가 만재이다. 패현 설종의 자는 경문이다. 여남 정병은 자가 덕추이다. 오군의 주환은 자가 휴목이다. 육적은 자가 공기이다. 오 사람 장온은 자가 혜서이다. 회계 능통은 자가 공적이다. 오정 오찬은 자가 공휴이다. 이 몇 사람이 모두 강동에 이르렀다. 손권이 공경하는 예를 매우 두터이 하였다. 또 훌륭한 장수 몇 사람을 얻었으니 곧 여양의 여몽은 자가 자명이고, 오군의 육손은 자가 백언이며, 낭야의 서성은 자가 문향이고, 동군의 반장은 자가 문규이고, 여강의 정봉은 자가 승연이다. 무관, 무관 여러 사람이 함께 서로 보좌하였다. 이로부터 강동이 사람을 얻음이 성대하다고 일컬어졌다.
建安七年,曹操破袁紹,遣使往江東,命孫權遣子入朝隨駕。權猶豫未決。吳太夫人命周瑜、張昭等面議。張昭曰:「操欲令我遣子入朝,是牽制諸侯之法也。然若不令去,恐其興兵下江東,勢必危矣。」周瑜曰:「將軍承父兄遣業,兼六郡之眾,兵精糧足,將士用命,有何逼迫而欲送質於人?質一入,不得不與曹氏連和;彼有命召,不得不往;如此則見制於人也。不如勿遣,徐觀其變,別以良策禦之。」吳太夫人曰:「公瑾之言是也。」權遂從其言,謝使者,不遣子。自此曹操有下江南之意。但正值北方未寧,無暇南征。
건안 칠년 조조가 원소를 깨트리고 사신을 강동에 보내 손권으로 하여금 아들을 입조시켜 천자를 모시라고 명하였다. 손권이 미적거리며 결젖하지 못하였다. 오태부인이 주유, 장소 등으로 하여금 얼굴을 맞대고 의논하였다. 장소가 말하기를 “조조가 우리로 하여금 아들을 보내 입조하게 하는 것은 제후를 견제하려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만약 보내지 않는다면 군대를 일으켜 강동으로 내려올 것이니 형세가 반드시 위태로워질까? 두렵습니다.” 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장군께서 부형의 업을 잇고, 육군의 무리를 겸하였고, 군대는 정예롭고 양식은 풍족하며 장사는 명령에 복종하여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데 어찌 핍박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인질을 보내려 하십니까? 인질은 한 번 들어가면 조씨와 화친하지 않을 수 없어 그가 명으로 부르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 같으면 곧 다른 사람에게 제재 당할 것입니다. 보내지 말고 천천히 그 변을 관찰하여 별도의 좋은 계책으로서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했다. 오태부인이 말하기를 “공근의 말이 옳습니다.”했다. 손권이 그 말을 따라 사자에게 거절하고 아들을 보내지 않았다. 이로부터 조조가 강남에 내려올 뜻을 갖게 되었다. 다만 북방이 아직 편안하지 않아 남쪽으로 정벌할 겨를이 없었다.
建安八年十一月,孫權引兵伐黃祖,戰於大江之中。祖軍敗績。權部將凌操,輕舟當先,殺人夏口,被黃祖部將甘寧一箭射死。凌操子凌統,時年方十五歲,奮力往奪父屍而歸。權見風色不利,收軍還東吳。
건안 팔년 십일월 손권이 군대를 이끌고 황조를 쳐서 대강 안에서 싸웠다. 황조의 군대가 패하였다. 손권의 부장 능조가 가벼운 배를 타고 앞장 서서 하구에서 사람을 죽이다. 황조의 부장 감녕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능조의 아들 능통은 그 때 나이 십오 세였는데 힘을 떨쳐가서 아버지의 시신을 빼앗아 돌아왔다. 손권이 정세가 이롭지 않음을 보고 군대를 거두어 동오로 돌아갔다.
卻說孫權弟孫翊為丹陽太守。翊性剛好酒,醉後嘗鞭撻士卒。丹陽督將媯覽、郡丞戴員二人,常有殺翊之心,乃與翊從人邊洪結為心腹,共謀殺翊。時諸將縣令,皆集丹陽。翊設宴相待。翊妻徐氏美而慧,極善卜易;是日卜一卦,其象大凶,勸翊勿出會客。翊不從,遂與眾大會。
각설하고 손권의 동생 손익이 단양태수가 되었다. 손익은 성품이 굳세고 술을 좋아하였는데 취한 후에는 항상 사졸을 채찍으로 쳤다. 단양의 독장 규람, 군승 대원 두 사람은 항상 손익을 죽이려는 마음이 있어 이에 손익의 종인 변홍과 맺고 심복이 되어 함께 손익을 죽일 것을 꾀하였다. 이 때 여러 장수와 현령들이 모두 단양에 모였다. 손익이 연회를 베풀고 서로 대작하였다. 손익의 처 서씨는 아름답고 지혜로웠는데 점을 지극히 잘 쳤다. 이날 한 괘를 점쳤는데 그 상이 크게 흉하자 손익을 권하여 손님을 만나러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손익이 따르지 않고 마침내 무리와 함께 크게 모였다.
至晚席散,邊洪帶刀跟出門外,即抽刀砍死孫翊。媯覽、戴員乃歸罪邊洪,斬之於市。二人乘勢擄翊家資侍妾。媯覽見徐氏美貌,乃謂之曰:「吾為汝夫報仇,汝當從我;不從則死。」徐氏曰:「夫死未幾,不忍便相從。可待至晦日,設祭除服,然後成親未遲。」
저녁에 이르러 자리가 흩어지자 변홍이 칼을 가지고 뒤따라 문밖을 나와 곧 칼을 뽑아 손익을 찔러 죽였다. 규람과 대원이 곧 죄를 변홍에게 돌려 저자에서 그를 목 베었다. 두 사람이 형세를 타고 손익의 재산과 시첩을 사로잡았다. 규람이 서씨의 미모를 보고 이에 일러 말하기를 “내가 너를 위해 지아비의 원수를 갚았으니 너는 마땅히 나를 따라야 할 것이다. 따르지 않는다면 곧 죽을 것이다.” 했다. 서씨가 말하기를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마 곧 따를 수 없습니다. 그믐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제사를 지내고 상복을 벗은 후에 친함을 이루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覽從之。徐氏乃密召孫翊心腹舊將孫高、傅嬰二人入府,泣告曰:「先夫在日,常言二公忠義。今媯、戴二賊,謀殺我夫,只歸罪邊洪,將我家資童婢盡皆分去。媯覽又欲強占妾身,妾已詐許之,以安其心。二將軍可差人星夜報知吳侯,一面設密計以圖二賊,雪此仇辱,生死啣恩!」言畢再拜。孫高、傅嬰皆泣曰:「我等平日感府君恩遇,今日所以不即死難者,正欲為復仇計耳。夫人所命,敢不效力?」
규람이 그것을 따랐다. 서씨가 곧 몰래 손익의 심복 옛 장수인 손고, 부영 두 사람을 불러 부에 들어오게 한 후 눈물을 흘리며 고하여 말하기를 “돌아가신 남편이 살아 있을 때 항상 두 공의 충의를 말하였습니다. 지금 규람과 대원 두 적이 내 남편을 죽인 후 그 죄를 변홍에게 돌리고, 장차 우리 집의 재물과 종을 모두 나누어 가지고 갔습니다. 규람은 또한 억지로 나의 몸을 점유하고자 하여 제가 이미 거짓으로 그것을 허락하는 것으로서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습니다. 두 장군께서는 사람을 시켜 밤을 세워 오후에게 보고하여 알리고, 한편으로는 비밀계책을 세우는 것으로서 두 적을 도모하여 이 원수와 치욕을 갚아 주시면 살아있으나 죽으나 은혜를 품을 것입니다.” 했다. 말을 마치고 두 번 절하였다. 손고, 부영이 무두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우리들이 평소 부군의 은혜로운 대우를 느꼈는데 오늘 어려움에 죽지 못하였으니 바로 원수를 갚을 계책을 만들고자 합니다. 부인이 명하신 것인데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겟습니까?” 했다.
於是密遣心腹使者往報孫權。至晦日,徐氏先召孫、傅二人,伏於密室幃幕之中,然後設祭於堂上。祭畢,即除去孝服,沐浴薰香,濃妝豔裹,言笑自若。
이에 몰래 심복 사자를 보내 손권에게 보고하게 했다. 그믐날에 이르러 서씨가 먼저 손고와 부영을 불러 밀실 잠막 안에 숨어있게 한 후 당상에서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치고 상복을 벗고 목욕 후 향을 피우고 화장을 하고 탐스럽게 옷을 입고 말하고 웃는 것이 태연하였다.
媯覽聞之甚喜。至夜,徐氏遣婢妾請覽入府。設席堂中飲酒。飲既醉,徐氏乃邀覽入密室。覽喜,乘醉而入。徐氏大呼曰:「孫、傅二將軍何在?」二人即從幃幕中持刀躍出。媯覽措手不及,被傅嬰一刀砍倒在地,孫高再復一刀,登時殺死。徐氏復傳請戴員赴宴。員入府來,至堂中,亦被孫、傳二將所殺。一面使人誅戮二賊家小,及其餘黨。徐氏遂重穿孝服,將媯覽、戴員首級,祭於孫翊靈前。不一日,孫權自領軍馬至丹陽,見徐氏已殺媯、戴二賊,乃封孫高、傅嬰為牙門將,令守丹陽,取徐氏歸家養老。江東人無不稱徐氏之德。後人有詩讚曰:
규람이 그것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밤이 되자 서씨가 종을 규람에게 보내 부에 들기를 청하였다. 당 안에 자리를 베풀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셔 취하자 서씨가 돋 규람을 맞이하여 밀실에 들어갔다. 규람이 기뻐하며 취함을 타고 들어갔다. 서씨가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손고와 부영 두 장군은 어디에 있습니까?”하니 두 사람이 휘장 안으로부터 칼을 가지고 뛰어 나왔다. 규람이 손을 놀렸으나 미치지 못하고 부영의 한 칼에 베어져 땅에 엎어지고, 손고가 다시 한 칼을 더하니 즉시 죽었다. 서씨가 다시 대원에게 전하여 잔치에 오도록 청하였다. 대원이 부에 들어와 당 안에 이르러 또한 손고, 부영 두 장수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두 적의 가족과 그 나머지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였다. 서씨가 마침내 거듭 상복을 입고 규람, 대원의 수급을 가지고 손익의 영전에 제사하였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손권이 스스로 군마를 거느리고 단양에 이르렀는데 서씨가 이미 규람과 대원 두 적을 죽인 것을 보고는 곧 손고와 부영을 봉하여 아문장으로 삼아 단양을 지키게 하고 서씨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게 하였다. 강동 사람으로 서씨의 덕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후세 사람이 기리는 시를 지었는데 시는
才節雙全世所無,姦回一旦受摧鋤。庸臣從賊忠臣死,不及東吳女丈夫。
“재능과 절개 둘을 온전히 한 이는 세상에 없고, 간사한 이를 하루아침에 김매 듯 꺽었다. 용렬한 신하는 적을 따르고 충신은 죽었으나 동오의 여장부에는 미치지 못한다.
且說東吳各處山賊,盡皆平復。大江之中,有戰船七千餘隻。孫權拜周瑜為大都督,總統江東水陸軍馬。建安十二年,冬十月,權母吳太夫人病危,召周瑜、張昭二人至,謂曰:「吾本吳人,幼亡父母,與弟吳景徙居越中。後嫁與孫氏,生四子。長子策生時,吾夢月入懷。後生次子權,又夢日入懷。卜者云:『夢日月入懷者,其子必貴。』不幸策早喪,今將江東基業付權。望公等同心助之,吾死不朽矣!」又囑權曰:「汝事子布、公瑾以師傅之禮,不可怠慢。吾妹與我共嫁汝父,則亦汝之母也,吾死之後,事吾妹如事我。汝妹亦當恩養,擇佳婿以嫁之。」
각설하고 오의 각처에 있던 산적들을 모두 평정하였다. 대강 안에는 전투선 칠천여 척이 있었다. 손권은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고, 강동 수군과 육군의 군마를 총괄 지휘하게 하였다. 건안 십이 년 겨울 시월 손권의 어머니 오 태부인이 병으로 위태로웠는데 주유와 장소 두 사람을 불러 이르자 오 태부인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오 사람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 동생 오경과 함께 월 땅에 옮겨 살았다. 후에 손씨와 혼인하여 네 아들을 낳았다. 맏아들 손책을 낳을 때 나는 달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후에 둘째 아들 손권을 낳을 때는 또 해가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점치는 자가 말하기를 ‘해와 달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꾼 것은 그 아들이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다.’하였는데 불행히도 일찍 죽고, 지금 장차 강동의 기업을 손권에게 부탁하려 합니다. 공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그를 도와주면 내가 죽어도 영원할 것입니다.” 했다. 또 손권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너는 자포와 공근을 사부의 예로 섬겨 태만히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여동생이 나와 함께 너의 아버지에게 시집왔으니 곧 또한 너의 어머니이다. 내가 죽은 후에도 나의 여동생 섬기기를 나를 섬기는 것과 같이 하라. 너의 여동생 또한 마땅히 은혜로 길러 좋은 사위를 가려서 시집보내게 하라.” 했다.
言訖遂終。孫權哀哭,具喪葬之禮,自不必說。至來年春,孫權商議欲伐黃祖。張昭曰:「居喪未及期年,不可動兵.」周瑜曰:「報仇雪恨,何待期年?」權猶豫未決。適北平都尉呂蒙入見,告權曰:「某把龍湫水口,忽有黃祖部將甘寧來降。某細詢之。寧字興霸,巴郡臨江人也;頗通書史,有氣力,好游俠;嘗招合亡命,縱橫於江湖之中;腰懸銅鈴,人聽鈴聲,盡皆避之。又嘗以西川錦作帆幔,時人皆稱為『錦帆賊』。後悔前非,改行從善,引眾投劉表。見表不能成事,即欲來投東吳,卻被黃祖留住在夏口。
말을 마치고 마침내 죽었다. 손권이 슬프게 곡하며 상장의 예를 갖춘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다음해 봄에 이르러 손권이 황조를 정벌할 것을 상의하였다. 장소가 말하기를 “상을 당한지 일 년이 되지 않았는데 군대를 동원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원수를 갚고 한을 설욕하는데 어찌 일 년이 되기를 기다리겠습니까?”하니 손권이 머뭇거리며 결당하지 못하였다. 마침 북평도위 여몽이 들어가 뵈며 손권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제가 용추수 입구를 지키는데 홀연히 황조의 부장 감녕이 와서 항복하였습니다. 제가 자세히 물었습니다. 감녕의 자는 흥패로 파군 임강 사람인데 자못 서사에 능통하고 기력이 있으며 의협심이 있는 사람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일찍이 도망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강호를 자유자재로 행동하여 거침이 없었다. 허리에 구리 방울을 달았는데 사람들이 방울 소리를 들으면 모두 그를 피하였다. 또 일찍이 서천의 비단으로 돛을 만들었는데 그 때 사람들이 모두 ‘금범적’이라 했다. 후에 앞의 잘못을 뉘우쳐 행실을 고치고 선을 따라 무리를 이끌고 유표에게 들어갔다. 유표를 뵙고 나서 일을 이루지 못할 듯하자 곧 동오에 들어오고자 하였으나 황조에게 억류당하여 하구에 머물고 있습니다.
「前東吳破祖時,祖得甘寧之力,救回夏口;乃待寧甚薄。都督蘇飛屢薦寧於祖。祖曰:『寧乃劫江之賊,豈可重用?』寧因此懷恨。蘇飛知其意,乃置酒邀寧到家,謂之曰:『吾薦公數次,奈主公不能用。日月逾邁,人生幾何;宜自遠圖。吾當保公為鄂縣長,自作去就之計。』寧因此得過夏口,欲投江東,恐江東恨其救黃祖殺凌操之事。某具言主公求賢若渴,不記舊恨;況各為其主,又何恨焉?寧欣然引眾渡江,來見主公。乞鈞旨定奪。」
앞서 동오가 황조를 깨트렸을 때 황조가 감녕의 힘을 얻어 하구를 구하고 돌아 왔으나 감녕의 대우는 매우 박하였습니다. 도독 소비가 여러 번 황조에게 감녕을 추천하였다. 황조가 말하기를 ‘감녕은 곧 강을 겁탈하던 도적인데 어찌 중히 쓸 수 있겠는가?’하니 감녕이 이로 인하여 한을 품었다. 소비가 그 뜻을 알고 곧 술을 차려두고 감녕을 맞아 집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가 공을 여러 번 추천하였는데도 주공이 등용하지 않으니 어찌하리오. 날과 달은 빨리 지나가니 사람이 얼마나 살겠습니까. 스스로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내가 공을 보증하여 악현의 장으로 천거할 것이니 스스로 나아가고, 떠나는 계책을 만드시오.’ 했다. 감녕은 이로 인하여 하구를 지날 수 있어 강동에 들어가고자 하나 강동이 그가 황조를 구원하여 능조를 죽인 일을 원망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공이 어진 이를 구하는 것을 목마른 듯이 하여 옛 원망을 기억하지 않는데, 하물며 각각 그 주인이 있는데 또한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하고 모두 말하였더니 감녕이 기쁘게 무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주공을 뵈러 왔습니다. 취할 것인 지 버릴 것인 지 높은 뜻을 청합니다.“ 했다.
孫權大喜曰:「吾得興霸,破黃祖必矣。」遂命呂蒙引甘寧入見。參拜已畢,權曰:「興霸來此,大獲我心,豈有記恨之理?請無懷疑。願教我以破黃祖之策。」寧曰:「今漢祚日危,曹操終必纂竊。荊南之地,操所必爭也。劉表無遠慮,其子又愚劣,不能承業傳基。明公宜早圖之。若遲,則操先圖之矣。今宜先取黃祖。祖今年老昏邁,務於貨利;侵刻吏民,人心皆怨;戰具不修,軍無法律。明公若往攻之,其勢必破。既破祖軍,鼓行而西,據楚關而圖巴蜀,霸業可定也。」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흥패(감녕)를 얻었으니 황조를 깨트릴 것이 틀림없다.”하고는 마침내 여몽으로 하여금 감녕을 인도하여 들어와 뵙게 하였다. 뵙기를 마친 후 손권이 말하기를 “감녕이 여기에 와 크게 내 마음을 얻었는데 무슨 원망할 이치가 있겠는가? 의심을 품지 말라. 나에게 황조를 깨트릴 계책을 가르쳐주기를 원한다.” 했다. 감녕이 말하기를 “지금 한나라가 날로 위태로워지니 조조는 끝내 반드시 권력을 훔칠 것입니다. 형주 남쪽의 땅은 조조와 반드시 다투어야 할 곳입니다. 유표는 원대한 생각이 없고, 그 아들이 또한 어리석어 기업을 계승하고 전할 수 없습니다. 명공(손권)께서는 일찍 도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약 늦추면 곧 조조가 먼저 그것을 도모할 것입니다. 지금 먼저 황조를 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황조는 나이가 많고 사리판단이 어두우며, 재물과 이익에 힘써 관리와 백성을 침범하여 인심이 모두 원망하고, 전쟁의 도구가 준비되지 않았으며, 군대에는 법률이 없습니다. 명공(손권)께서 만약 가서 친다면 그 형세가 반드시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 황조를 깨트린 후 북을 치며 서쪽으로 가 초관을 점거하고 파촉을 도모하면 패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孫權曰:「此金玉之論也!」遂命周瑜為大都督,總水陸軍兵;呂蒙為前部先鋒;董襲與甘寧為副將;權自領大軍十萬,征討黃祖。細作探知,報至江夏。黃祖急聚眾商議,令蘇飛為大將,陳就、鄧龍為先鋒,盡起江夏之兵迎敵。陳就、鄧龍各引一隊艨艟截住沔口,艨艟上各設強弓硬弩千餘張,將大索繫定艨艟於水面上。東吳兵至,艨艟上鼓響,弓弩齊發,兵不敢進,約退數里水面。甘寧謂董襲曰:「事已至此,不得不進。」乃選小船百餘隻,每船用精兵五十人。二十人撐船,三十人各披衣甲,手執鋼刀,不避矢石,直至艨艟傍邊,砍斷大索,艨艟遂橫。
손권이 말하기를 “이는 금옥의 논의이다!”하고는 마침내 쥬유로 하여금 대도독이 되게 하고, 수군과 육군의 군대를 총괄하게 되었다. 여몽을 앞 부대의 선봉이 되게 하고, 동습과 감녕을 부장으로 삼고, 손권 자신은 대군 십만을 거느리고 황조를 정벌하였다. 첩자가 탐지하여 강하에 보고하였다. 황조가 급히 무리를 모아 상의하고는 소비를 대장으로 삼고 진취, 등룡을 선봉으로 삼아 강하의 군대를 모두 일으켜 맞아 대적하였다. 진취와 등룡이 각각 한 부대의 전함을 이끌고 면구를 끊어 막았는데 전함 위에는 각각 강궁과 경노 천여 개를 설치하고 물 위에 큰 받줄로 전함을 묶어 놓았다. 동오의 군대가 이르니 전함 위에서 북이 울리며 궁노를 일제히 발사하니 군대가 감히 전진하지 못하고, 대략 수면을 몇 리 물러났다. 감녕이 동습에게 일러 말하기를 “일이 이미 이에 이르렀으니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했다. 이에 작은 배 백여 척을 뽑고, 매 배마다 정예 군사 오십 명씩을 태웠다. 이십 명은 배를 젓고, 삼십 명은 각기 갑옷을 입고 손에는 강철 칼을 잡고 화살과 돌을 피하지 않고 곧 바로 전함의 옆에 이르러 큰 받줄을 베어 끊으니 전함이 마침내 뒤엉켰다.
甘寧飛上艨艟,將鄧龍砍死。陳就棄船而走。呂蒙見了,跳下小船,自舉櫓棹,直入船隊,放火燒船。陳就急待上岸,呂蒙捨命趕到跟前,當胸一刀砍翻。比及蘇飛引軍於岸上接應時,吳軍一齊上岸,勢不可當。祖軍大敗。蘇飛落荒而走,正遇東吳大將潘璋。兩馬相交,戰不數合,被璋生擒過去,逕至船中來見孫權。權命左右以檻車囚之,待活捉了黃祖,一并誅戮;催動三軍,不分晝夜,攻打夏口。正是:只因不用錦帆賊,至令衝開大索船。不知黃祖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감녕이 날듯이 전함에 올라 등룡을 베어 죽였다. 진취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여몽이 보고는 작은 배로 뛰어 내려 스스로 노와 상앗대를 들어 곧바로 선대에 들어가 불을 질러 배를 태웠다. 진취가 급히 강안에 오를 것을 준비하였는데 여몽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뒤 쫒아 곁에 이르러 가슴을 향하여 한칼로 베어 뒤집어지게 했다. 소비가 군대를 이끌고 강가에 올라 대응할 때에 이르러 오군이 일제히 강가에 오르니 형세가 감당할 수 없었다. 황조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소비가 큰길을 벗어나 황야로 달아나다가 동오의 대장 반장을 만났다. 두 말이 서로 교차하며 싸운 지 몇 합되지 않아 반장이 산채로 사로잡아 지나가면서 재빨리 배안에 이르러 손권을 뵈었다. 손권이 좌우에게 명하여 함거에 가두게 하고, 황조를 사로잡은 후에 한꺼번에 죽일 것이라 하고, 삼군이 움직일 것을 재촉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구를 치게 하였다. 바로 이러하다. ‘금범적’을 등용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지금 크게 묶인 배를 쳐서 열리게 하였다. 황조와의 승부가 어떠할지를 알지 못하니 또한 아래 글에서 나누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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